서대문구 청소년 문학상
1995년도 운문부문 장려상 수상작
슬픈 나의 가을
강 진 영
어젯밤 비에 떨어진
낙엽을 생각합니다.
안녕이란 말 한마디 없이
떠나간 사람들은
가을을 사랑했기에
미워할 수가 없습니다.
아름다운 추억보다는
가슴 아픈 추억이 많은
내 가을은
빛을 잃고 떠나가 버린지
오래 되었습니다.
고개 들어 생각해 보면
가을은
눈물이 만들어 낸 시요
슬픔이 만들어 낸 그림이요
아픔이 만들어 낸 음악입니다.
서대문구 청소년 문학상
1993년도 산문부문 장려상 수상 작품
행복, 불행 그리고 희망
이 정 선
행복과 불행이 교차되는 우리의 인생살이에 있어서 で행복한 인간と에 대해 생각해 보는 것은 즐거운 일일 것이다. 나는 내 친구들의 얘기와 내가 읽은 책을 통하여 행복이란 과연 무엇일까 생각해 보았다.
행복에는 각각 두 가지 상반되는 면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 두 가지를 구별해 보자면 현실적인 면과 허상적인 면, 동물적인 면과 정신적인 면으로 분류할 수 있겠다. 이들 행복의 차이점은 하나는 책을 읽고 글을 쓰며 자신의 정신적인 가치 추구를 위하여 노력하는 인간에게 개방되어 있는 행복이다.
따라서, 행복을 느끼는 원인도 여러 가지일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물질적인 면이 충족되어야만 행복하고 어떤 이들은 사회에서의 자신의 권력의 고하에 따라 행복을 느끼며, 또 어떤 이들은 이성적인 면에서 느끼는 사랑으로 인하여 행복을 느끼기도 한다. 이뿐만이 아니라 행복을 좌우하는 원인은 수없이 많다.
그 중에서도 난 한 인간이 성공했을 때 느끼는 행복에 대해 생각해 보고 싶다. 한 사람이 성공의 기쁨을 느끼기까지에는 남다른 노력과 수많은 고난, 절망 그리고 실패들이 응당 따르기 마련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성공했을 때 누리는 행복이 가장 잊혀질 수 없었다고 하는 이유는 바로 성공은 곧 자기 자신이 우수하다는 평가를 받을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관문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성공의 행복을 누리려면 반드시 노력을 해야만 한다. 행복은 대단히 드문 경우를 제외하고는 무르익은 과일처럼 저절로 입속으로 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행복한 인간이 되려면 누구나 노력해야만 한다. 그러므로 노력하지도 않고서 성공의 행복을 느낄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러니 노력의 대가는 성공, 또 성공의 대가는 행복, 이것은 절대로 변할 수 없는 진리라고 난 믿는다.
행복은 어떤 경우에는 외부적 환경에 의해 좌우되고, 또 어떤 경우에는 자기의 노력 여하에 달려 있다. 행복한 인간은 저마다 행복에 대한 믿음을 갖고 산다. 그리고 행복과 불행을 자기 자신에 대한 믿음으로 돌릴 것이다. 또한 우리 대다수의 인간 행복의 조건에는 물질이 필요하다. 먹을 것, 집, 건강, 사랑, 사업의 성공, 사회인으로부터의 존경 등등. 하지만 이런 것들을 추구하지 않고도 행복을 느끼며 사는 사람이 이 세상에는 또한 아주 많다. 언젠가 선생님께서 하신 말씀이 기억난다. ぢ행복은 곧 자신의 만족에서 오는 것っ이라고. 이 한마디의 교훈은 나에게는 행복의 비결을 깨닫게 해주는 너무도 소중한 것이었다.
그럼, 과연 불행이란 어떤 것일까? 우리는 왜 스스로를 불행하다고 느끼며 사는 것일까?
우리는 일생을 살아가는 동안 수없이 많은 불행을 당하게 된다. 하지만 이 수 많은 불행 중에서 물론 우리의 힘으로는 도저히 피할 수 없고 예측할 수 없는 운명적인 것도 많이 있다.
그러나 그 밖의 사람들은 왜 자신이 남보다 불행하다고 느끼는 것일까? 이것은 바로 개인의 심리상태로 인하여 좌우된다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한다면 이런 사람들은 행복은 바로 우리 곁에 있는데도 불구하고 스스로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어리석은 사람일 것이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자기보다 경제적으로 풍부한 사람들을 봤을 때 で저 사람은 얼마나 행복할까?と라고 생각한다. 단지 자신과 비교하여 경제적으로 우월하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자신은 불행한 인간일 것이라고 생각하기가 쉽다. 만약 이런 외부적인 요소로 인하여 자신이 불행하다고 생각된다면 이제부터라도 희망을 갖고 자신의 삶을 아름답고 성공적인 삶이 될 수 있도록 더욱 노력해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희망에 관해 이야기 해 보고 싶다.
희망만 있다면 우리는 끝내 성공이란 과실을 맛보며 행복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희망은 우리의 인생에 있어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해 줄 수 있는 유일한 도구인 것이다. 희망을 갖고 사는 사람은 자신에 대해 무한한 가능성을 느낄 수 있기 때문에 행복할 수 있다.
반대로 희망이 없는 삶은 자신의 인생을 이미 포기한 상태라 말 할 수 있기 때문에 불행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행복과 불행의 차이는 아주 작은 요인으로 인해 좌우된다. 자신의 삶에 대한 긍정적인 태도와 만족감, 더불어 미래에 대한 희망마저 일치된다면 이 사람은 반드시 성공할 수 있으며 행복할 수 있다. 이와 반대로 희망은 고사하고 자포자기한 태도로 삶을 살아가는 사람은 단지 앉은자리에서 남을 부러워하기만 하면서 시간을 허비하고 영원히 불행한 삶을 살아야 할 것이다. 우리는 이 세대를 이끌어 갈 신세대 즉, 젊은이들이다.
우리는 젊기에 아름답고 젊기에 그 누구보다 정의로울 수 있으며 희망찬 인생을 추구할 수 있다. 그러므로 사회에 이바지하고 나의 조국과 전 세계 인류의 행복과 평화를 위해 희망을 잃지 않고 함께 노력하면서 또 다른 세상을 창조하는데 힘써야 할 것이다.
서대문구 청소년 문학상
1994년 산문부분 우수상 수상 작품
할아버지
유 지 애
작년 이만 추석 때만 해도 새벽부터 부엌에선 향기로운 냄새가 풍겨 나오고, 먼지가 쌓인 병풍과 큰상들을 꺼내고 차례가 끝나면 가족들이 정답게 둘러앉아 맛있는 음식을 차려 놓고 추석을 보내곤 했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외할아버지께서 돌아가시는 바람에 우리 집도 제사상을 차리게 되었다.
아침 제사를 지낸 후, 우리 가족들은 할아버지 산소로 향했다. 가을이고 또 성묘객들이 많아 오늘만은 산소가 쓸쓸해 보이질 않아서 조금은 위안이 되었다, 저번에 와서 심어 두었던 국화꽃도 아직 시들지 않았고 무덤 위의 풀들도 이젠 제법 풍성해졌다. 오늘따라 날씨가 화창해서 우린 산소 앞에 자리를 깔고 모두 둘러앉아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었다. 할아버지 산소 앞에 앉아 있으니 순간 내 머리 속엔 옛 추억이 밑물처럼 밀려왔다.
어려서부터 조용한 성격에 식성까지 할아버지를 많이 닮은 나는 언제나 할아버지가 나의 유의한 친구 였다. で하부지と하며 쫓아다니던 나를 무릎에 앉히시고서 다리가 저리도록 비행기를 태워 주시던 할아버지, 내가 유치원에 처음 들어갔을 때 남들이 다 입은 빨간 코트 하나 없는 손녀가 애처로워 보이셨는지 숨겨 둔 쌈짓돈을 꺼내셔서 내게 빨간 코트를 사 주셨던 할아버지, 낚시를 좋아하셔서 언제나 이곳 저곳으로 나를 데리고 다니시던 할아버지. 저녁때만 되면 두려움과 설레임으로 할아버지 옷자락에 숨어서 눈을 빼꼼 내 놓고서는 で전설의 고향と을 보던 나, 이제 와서 생각하니 너무나도 아름답고 그리운 시절이었다. 그렇듯 선량하시던 할아버지께서 갑자기 돌아가실 줄은 난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었다.
작년 10월, 여느 때와 다름없이 친구들과 어울리다 집에 돌아온 나는, 어머니의 창백한 얼굴을 보고 무척이나 놀랬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며 나를 붙들고 우시는 엄마에게 난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고 눈물조차 흐르질 않았다. で죽음と이란 단어가 무엇을 의미하는 조차 모르는 아이처럼 그저 멍하니 서 있을 수밖에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엄마와 아빠는 급히 할머니 댁으로 향하셨고 나 혼자만이 덩그러니 집에 남게 되었다. 옷도 갈아입지 않은 채 의자에 앉고 보니 멍한 정신에 갑자기 눈물이 흘러 내렸다. 무슨 이유 때문에 눈물이 나는지도 모르겠고 그저 서글플 뿐이었다. 칠순 잔치를 바로 눈앞에 두시고 그만 갑자기 세상을 뜨신 할아버지가 그리워 견딜 수가 없었다. 이튿날 허둥지둥 강릉으로 내려간 나는 할아버지의 장례식에 참석하였다. 할아버지의 관, 그걸 붙들고 울부짖는 식구들, 난 그 틈에서 제대로 울지도 못했었다. 오랜만에 만나서 좋다고 뛰노는 아이들을 보니, 할아버지의 죽음만이 더욱 애절하게 느껴질 뿐이었다. 장례식을 치르고 집으로 향하는 나는 버스 속에서 밤하늘의 달을 보며 누가 볼까 무서워 그저 마음속으로 흐느끼고 있었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도 달은 여전히 밝은 것이 싫었고 차창 밖으로 보이는 평온한 모습에 모든 세상 사람들이 미웠다. 그나마 난 할아버지의 무덤도 못보고 온 것이 더 가슴이 아팠다. 내가 고등학생이 된 이후로는 강릉에 내려가질 않아서 몇 달 동안 할아버지의 얼굴도 보지 못했는데, 또 손녀딸로서 아직 해 드린 것이 아무것도 없는데 이렇게 빨리 우리 곁을 떠나시다니, 내 눈에 흘러내리는 눈물은 그 무슨 참회의 눈물이라도 되는 것인지....
아직도 강릉에 가면 나와서 반겨 줄 것만 같은 할아버지는 늘 우리 곁에 계신것 같다. 무뚝뚝한 성격이시지만 나에게만은 늘 웃음을 띄우시던 할아버지, 거피를 좋아하셔서 내가 서투른 솜씨에 커피를 타 드리면 그저 좋으시다며 입가에 미소를 지으시던 인자하신 그 모습이, 제사상에 놓여진 사진 속의 할아버지의 그 모습이 내 기억 속에서 사라지질 않는다. で지애야と하며 나를 부르시던 그 정겨운 목소리가 이젠 어디에서도 듣지 못할 그리운 소리가 되어 버렸다. 세상에서 믿었던 할아버지를 조금은 일찍 데려가신 하느님을 원망도 해봤지만 시간이 지나니 그 아픔도 차츰차츰 망각 속에서 아물어 가고 있는 듯하다. 그저 며칠 앓다가 돌아가셨으면 마지막 얼굴이라도 보았을 텐데 하는 미련만 남는다.
ぢ꽃은 져서 보다 아름답게 피어나고 사람은 죽어서 사람의 마음속에 보다 아름답게 영원히 되살아난다っ라는 책 속에서 본 이 말을 난 요즘 와서 절실히 깨닫고 비록 할아버지의 모습은 보이질 않지만 언제나 나에게 힘이 되어 극복해 나가고 있는 셈이라고나 할까? 할아버지의 목소리와 체취는 느낄 수 없지만 내 마음속에 함께 살고 계신 할아버지를 난 언제까지라도 간직하고 싶다. 가끔은 보고 싶어 답답하고 눈물이 나곤 하지만 할아버지를 위해 너무 슬퍼하진 않을 거다. 내가 슬퍼하면 할아버진 더욱 슬프실 테니까....오늘밤 꿈에라도 그리운 할아버지를 한번 만나 보았으면 좋겠다.
서대문구 청소년 문학상
1995년도 산문부문 장려상 수상작
아직도 우리 주위엔
방 문 군
찬바람이 불면서 어느새 가을이 우리들 곁에 다가왔다. 이제 날씨가 점점 추워져 간다.
이맘 때면 꼭 떠오르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우리 주위의 불우 이웃들이다. 고아원에 버려진 아이들, 가난해서 밥 한끼조차 제대로 먹지 못하는 사람들.......지금처럼 풍요로운 세상에도 고통받는 사람들은 너무나 많다.
인간은 누구나 자신이 처해 있는 환경이 있다. 만약, 그 생활 환경을 제대로 알지 못한다면 사회에 많은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돈이 많다고 돈을 펑펑 쓰고 다니는 사람들이, 그 반대로 너무 가난해서 밥 한 끼 옷 한 벌조차 제대로 갖추지 못하는 사람들도 너무 많다. 나는 돈을 물 쓰듯 쓰고 다니는 사람들에게 물어 보고 싶다. 이 세상에 밥 한끼를 먹기 위해 새벽부터 일을 하며 고생하는 사람들을 알고 있냐고.....
때론 가난이 범죄를 부르기도 한다. 특히 청소년들이 그런 유혹에 자주 넘어 갈 수 있다. 돈이 필요해서 남에게 해를 입히는 일을 하게 되고, 점점 발전하여 범죄로까지 가기도 한다. 이런 험악한 세상에서도 꿋꿋하게 참으면서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소외된 우리의 불우한 이웃들이다. 우리 주위엔 소외된 이웃들이 너무나 많다.
따뜻한 사랑조차 제대로 받아 보지 못하고, 오직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힘겨운 나날들을 보내는 사람들, 하지만 그 어려움 속에서도, 그들의 입가에는 언제나 미소가 머문다. 그들은 아무리 힘이 들어도 매일매일 절망하지 않고 희망차게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작년 겨울의 일이었다. 텔레비전에서는 불우 이웃에 관한 방송을 하고 있었다. 내 머릿속에 지워지지 않는 한 소녀가 있는데, 그 소녀는 국민학교 4학년이었다. 아버지께서는 와병 중이셨고, 어머니는 가출을 했고, 국민학교 1 학년 짜리 어린 동생이 있었다. 그 소녀는 어머니의 몫을 대신해야 했다. 아침엔 신문 배달을 하고 동생과 자신의 학교갈 준비를 했다. 학교가 끝나는 대로 집으로 돌아와 밀린 집안 일을 했고, 틈나는 대로 생활비용을 벌기 위해 일을 했다. 그런 소녀에게 소원이 뭔지 물어 보자 그 소녀는 이렇게 대답했다. 다른 가정들처럼 평범하게 살고 싶다고 했다.
내기 그 소녀를 잊지 못하는 이유는 다른 사람들 같으면 부자가 되고 싶다거나, 고생을 하고 싶지 않다고 얘길 했을 것이다. 하지만 가녀린 그 소녀는 너무나 평범한 생활을 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런 소녀의 모습을 보면서 내가 얼마나 행복한지 느끼게 되었다.
지금 で우리의 사회가 너무 이기적으로 변해 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문득 든다. 어떤 사람들은 돈을 물 쓰듯이 쓰고 다니고, 어떤 사람들은 한끼 저녁조차 제대로 먹지 못하는 그런 불공평한 사회가 되었는지 모르겠다. 우리가 좀더 마음을 열고 온정을 베풀어,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인정을 나눈다면 소외된 이웃들에게 조그마한 보탬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해마다 겨울이 다가오면 거리에는 불우 이웃을 돕는 모금함이나, 구세군 등이 눈에 들어온다. 이런 것에서 아직도 우리 사회의 따뜻한 마음씨가 남아 있다는 걸 느낄 수 있다. 또한 우리 주변에서 눈물겹도록 아름다운 이야기들도 있고, 좋은 일을 하는 사람도 많다.
서로 돕고 서로 사는 사회야말로 참되고 아름다운 세상이라고 생각한다. 언제쯤이면 굶주림과 가난이 사라지는 세상이 올지 모르지만 모두가 노력한다면 언젠가는 반드시 찾아올 거라 믿는다. 우리 모두 착한 마음씨로 주위를 둘러보고, 소외된 이웃을 생각하며, 자신을 반성했으면 한다.
올 겨울엔 우리 모두 불우 이웃을 돕자는 하얀 상자를 마다하지 말고 힘들게 살아가는 그들에게 희망을 가져다주자.
나의 일기
소 승 걸
1996년 3월 17일 일요일 흐림
어젠 오후부터 부슬부슬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비오는 날엔 집에 앉아 있는 게 최고다. 괜히 나갔다가 감기가 더 심해지면 골치다. 오늘 아침에 일찍 눈을 떴다. 웬지 잘 모르겠다. 밤에 일찍 잔 것도 아닌데, 아침에 오랜만에 일요일 아침 TV프로를 봤다. 코끼리에 대한 다큐멘터리 같은 프로였다. 그걸 보며 역시 동물의 세계는 신비하다는 것을 다시 깨달았다. 나는 코끼리가 매우 온순하며, 서로가 생활하는 데 별 마찰 같은 것이 없을 줄 알았다. 그러나 오늘 그렇지 않다는것을 알았다. 코끼리 세계에서도 강자가 약자를 괴롭히는 일이 있다. 그건 이 지구상 어느 곳에서든 다 존재하는 법칙인 것 같다. 늙은 코끼리가 젊은 코끼리에게 죽음을 당하는 장면을 보고 눈앞이 아찔했다. 아직 우리 인간이 알지 못하는 것은 많다 그러나 이런 것을 다 알지도 못한 채 인간은 생태계를 마구 파괴하고 있다. 어쩌면 몇년후 지구상에서 코끼리를 볼 수 없게 될지도 모른다. 인간들은 정말 너무 많은 것을 엉망으로 만들고 있다. 이 프로를 보며 나는 많은 생각을 했다. 이 생각들은 말로써 표현할 수 없는 것들인 듯 싶다.
1996년 3월 21일 목요일 비
벌써 3월도 후반에 접어들었다 시간이 정말 너무 빨리 흐르고 있다. 이제 이 학교에서 보낼 수 있는 완벽한 달은 4월밖에 없다. 오월이면 이제 끝났다고 할 수 있다.그럼 이제 남은 시간은 한 달 약간 남짓한 시간, 이 뒤론 모두 뿔뿔이 흩어져 서로 각자의 길을 가게 되겠지? 이제 남은 시간은 정말로 그 무엇보다도 소중한 것이다. 요즘에는 잠이 많아졌다. 밤에도 일찍 잠이 든다. 오늘도 8시에 잤다. 그런데도 12시에 일어났다. 한데 잠도 안오고해서 숙제를 쓰고 있다. 밤엔 정말 조용하고 호젓해서 좋다. 멀리 창문 밖으로 보이는 남산이 오늘은 더욱더 아름답게 보인다. 그런데 이게 갑자기 무슨 소리일까? 우리 집 앞은 바로 큰 길인데, 갑자기 큰 소음을 내며 폭주족들이 달려가는 것이었다. 한 열대쯤 되는 것 같았다.그들은 과연 무슨 생각을 하고 살까? 인생의 목표는 있을까? 그냥 매일 먹고 달리고 사고에도 별로 신경을 쓰지 않는다. 그들의 미래는 무엇일까? 그들을 보면서 별 생각을 다 해봤다. 우리 집밖에선 항상 소음이 들린다. 조금 시끄럽지만, 이미 익숙해진지 오래다. 내일을 위해 나는 다시 눈을 붙여야겠다.
1996년 3월 31일 일요일 맑음
힘든 한 주를 보냈다. 성인이 된다는 것이 이렇게도 힘든 것인가? 이번 주는 내가 만 18세가 된 후의 첫 번째 주였다. 그래서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인지도 모르지만, 이번 주는 마치 나를 시험하는 한 주 같았다. 그 중에서도 친구와 불화가 생기는 일은 가장 가슴 아픈 일이었다. 지금은 반이 다른 친구들과의 사이에서 약간의 오해가 생겼다. 그래서 약간은 서먹서먹해졌는데, 어제 만나서 서로의 마음을 터놓고 얘기하니, 예전부터 친한 친구이기에 오해를 금방 풀 수가 있었다.얘기하고 놀다보니 시간가는 줄도 모르고, 돈도 다 써버려서 지하철을 타고 갈 형편밖에 못됐는데 다행히도 홍대에서 막차를 탈 수가 있었지만, 환승역에서 4호선을 갈아탔는데 이 지하철은 바로 우리 집 전 정거장인 한성대까지만 운행하는 차였다. 지난번에도 이와 비슷한 경우가 있었는데 다행히 연장운행을 하여 집에까지 간 적이 있었다. 이번에도 요행을 바랬지만 한성대까지만 운행을 하였다. 할 수 없이 차에서 내려 집에까지 걸어왔다. 조용한 밤거리를 혼자서 걸어가면서 마음을 정리해보았다. 기분이 좋았다. 다음 주부터 활기차게 생활해야겠다.
1996년 4월 16일 화요일 맑음
시간이 참 빠르구나. 벌써 1년이 지났다니, 졸업여행을 갔다 온지 며칠 안된 것 같은데, 후배들이 벌써 여행을 떠나다니, 너무나도 부럽다. 작년 이맘땐 우리도 부푼 마음으로 여행을 떠났는데, 여행을 가기 전 한달 전부터 맹렬히 춤추는 연습을 하고 마지막날밤을 멋지게 장식하자고 다짐도 하고 잔뜩 마음이 부풀어 여행을 떠났었다. 우리가 즐겁고 멋지게 놀고 왔듯이 후배들 또한 그랬으면 한다.
지난주 시험이 끝났다. 그리고 모처럼 숙제 없는 주말을 맞아서 즐겁게 놀았다. 즐거운 주말을 보내고 나니 이번 주는 공포의 시험점수가 나오는 주다. 다행히 지금까지의 받은 시험지의 점수가 지난번보다 잘 나온 것 같다. 이제 시험은 이 학교에서 치르는 시험은 졸업시험만 남았구나.이 마지막 시험을 앞두고 마음이 뒤숭숭하다. 이 시험을 멋지게 잘 보고 싶은데 시험, 범위가 너무 많은 듯하다. 평소에 조금씩 준비했으면 그리 어렵지도 않을 텐데, 그것을 알면서도 준비 안한 것이 아쉽다. 이제 정말 얼마 남지 않았다. 이 시간들을 어떻게 하면 더욱 알차고 유익하게 보낼 수 있을까? 가능한 최대로 친구들의 머리 속에 '나'라는 아이가 오랫동안 기억될 수 있도록 하고 싶다.
나의 일기
손 지 우
1996년 3월 26일 화요일 맑음
이제 60일 정도만 있으면 고 3도 끝이다. 즉 이젠 더는 고등학생이 될 수 없다는 뜻이다. 친구끼리 '회의록(回憶錄)'을 돌리고 점점 학창시절을 마무리 단계에 이르는 학습에서 더 절실히 느낀다 이젠 더 광범한 세계를 볼 수 있어 기쁘기도 하고 친구들과 헤어져야 하다니 아쉽기도 하고 성인이 된다는 게 두렵기도 하고 더 냉혹하고 컴컴한 사회에서 생존을 해야 한다는 게 좀 무섭다. 난 어린 게 좋다. 비록 많은 일에 제한을 받지만 보호받을 수 있고 때 타지 않고 깨끗하고 천진난만하게 살 수 있으니까 난 커가면서 이 사회가 점점 싫어진다. 장점은 눈을 씻고 찾아 볼 수 없고 오직 경쟁, 멸시, 눈속임 등 극복하기 어려운 일을 많이 본다. 서로 기분이 상한 일이 있어도 그냥 "며칠만 있으면 끝인데 뭐"하며 다시는 안 만날 것처럼 얘길한다. 친구들끼리 무심코 "대만에 가서 만나자!"하는 그들의 말도 한국 대학교에 갈 나한테는 말할 수 없는 아픔을 안겨준다. 가끔은 나 혼자 너무 민감해서 시시콜콜 따지는 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한다. 아무래도 내가 속이 좁은가 보다.
1996년 4월 20일 토요일 맑음
오늘은 퇴계원 고등학교 중국어 노래반에서 우리 학교를 방문하러 온다. 그래서 우리 학교에서는 그쪽 학생 40명의 파트너를 뽑았는데 말재주도 없고 활발하지 못한 나도 그 중에 한 명으로 뽑혔다. 정말 뽑힐 이유가 없는데 아무래도 작년 논산여상 학생들이 방문 했을 때 나갔던 계기로 인해 이번에 뽑힌 것 같다.
그리고 제4교시가 되자 퇴계원 고등학교 학생들이 우리 반에 들어와서 담임 선생님께서 추천하신 "만강홍"이라는 어려운 노래를 한 곡 부른 뒤 회의실로 가서 선생님들이 짝을 지어 주셨다. 내 짝은 아주 얌전하고 공부도 잘하게 보이는 고1 학생이었다. 단점이 하나 있다면 쑥스러움을 너무 많이 타는 것이다. 말을 하면 떨려서 쉬었다가 다시 다시 하던가 아니면 처음부터 다시 하곤 했다. 약간 답답하기도 했지만 참을만 했다. 그 아이는 중국 노래반에서 유일한 이과 학생이라고 했다. 또 그 아이의 희망은 건축학과를 가는 것이고 좋은 성적으로 들어가고 싶다고 했다. 우리의 만남은 비록 짧은 시간이었지만 아주 많은 얘기를 나눴고 다음에 또 만나도 다시 기억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고1 동생이라서 펜팔을 할까말까 생각 중이다. 하고 싶은데 중도하차 할까봐 걱정이 된다. 만약 그 아이가 먼저 편지를 해오면 답장을 할 생각이다.
나의 일기
오 영 걸
1996년 3월 30일 토요일 맑음
기쁜 토요일 날씨가 또 갑자기 추워졌다. 기상보고에 따르면 다음주에는 꽃샘추위가 찾아온다고 한다. 어머니의 "옷을 꼭 차려 입으라는" 충고도 끊이지 않는 아침에 나름대로 교복을 두둑이 차려입고 활기차게 문밖을 나와 오늘 내 작은 인생 길에 넘어야할 산을 극복하리라 마음먹었다. 집 문밖을 나오고 나니 전방이 애매모호하게 보인다. 요즘 따라 시력이 많이 감퇴되었다는 사실을 새삼스럽게 또 한번 느꼈다. 수업을 하면서도 칠판이 흐릿하게 보이고 안과에 가야겠다는 생각에 방과 후 금강안경점에 가서 시력검사를 했더니 글쎄 0.1의 시력에 설상가상으로 난시까지 겹쳤다고 한다. 눈을 잘 보호 못해준 것이 참 미안하다. 안경을 새로 맞추고 전철을 타고 할머니의 집에 가는 도중 많은 대학생들을 봤다. 참 부러워 보였다. 과연 내년에 나도 저렇게 될 수 있을까? 아니, 되면 얼마나 좋을까? 최선을 다한다는 것이 도대체 어느 경지까지 이르러야 하는 것일까? 실력도 중요하지만 운 또한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 같다. 참 복잡미묘했다.
요즘 참으로 여러 가지 문제로 고민하고 방황한다. 나는 이러고 싶지가 않다. 놀 때는 화끈하게 놀고.그러나 편안하면 웬지 불안해진다. 매일매일 내 자신이 가위에 눌린 기분이고 속박을 당하는 기분이다. "뜻이 있는 자에게 길이 있다고" 요즘은 철저히 계획을 세웠다. 학교 수업에 충실하고 여가시간 때에는 자연과 시사에 관심을 더 갖고 최선의 경지가 어디까지인 줄은 모르겠지만, 당일 주어진 임무를 완벽하게 수행해 게으르지 않고 그때 그때를 충실히 살아가는 것이 최선의 길이라고 생각한다.
졸업을 앞두고
오 영 걸
하루가 또 흘렀다 졸업과도 한 발짝 더욱 가까워진 지금 내 뇌리에는 온통 "시간이 금이다"라는 슬로건뿐이다. 계산해보면 대략 6 개월 정도 남았는데 대학이라는 올라가야할 높은 정상이 눈앞에 있는데 아직 아래서 풀이나 뜯어먹고 있으니 참 걱정이다 이제 와서 할 수 있는 것은 오르지 계속 주어진 지침에 따라 두려워하지 말고 헤쳐 나가는 것이다. '가장 늦은 때가 가장 빠른 때'라고 남은 시간을 잘 활용해야겠다.
나를 비롯한 전교의 한국대학교 진학반 학생들이 열심히 해서 제각기 밝은 미래를 창출해냈으면 좋겠다. 비록 소수의 학생들은 지금도 태평이지만 곧 열심히 할 것이라 생각한다. 용의 후예인 만큼 위로 솟을 줄 아는 용기를 가지고 소위 '진인사 대천명'이라, 결과를 두려워하지 말고 최선을 다해야지 않겠는가!
현 시점에서 과거를 돌이켜보면 웃음 반 슬픔 반이다. 철부지같이 어린 중학시절 내가 왕인 줄 착각하고 나섰던 시절 지금은 고개 숙인 난처럼 후배를 보살피는 어른이 되었다고나 할까? 항상 아는 후배를 볼 때마다 "그들은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할 덴데"하여 생각하곤 한다. '배워서 남주나?'라는 말이 고 3에 와서 실감난다. 인간은 왜 막바지에 와서 많은 것을 깨닫는 것일까? 본능을 떠나서 이것은 인지상정인가보다.
이제 대학 걱정 때문에 과거 육년을 회고하는 여유조차 잃어버렸다 눈을 뜨건 감건 오르지 지식과의 싸움! 이런 인생을 결코 행복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이제 남은 6 개월의 고통을 '합격'이란 두 글자와 바꿀 수만 있다면 객관적으로 아마, 그 누구도 쾌히 승낙할 것이다. 자 내 자신을 격려하며 시험의 그 날까지 솟구쳐 올라가자 !
고 3 수업을 마치면서
고 3-3 오 영 걸
최근 들어 학교가 더욱 깔끔해 보인다. 곧 이 학교를 떠나야 된다는 생각이 이런 심적 변화를 초래했을까? 공부는 고등학교 때부터 열심히 해왔지만 유독 고교 때만 열심히 해서 그런지 중학시절이 매우 안타깝게 생각된다. 그리고 많은 생각들이 내 머리 속에서 교차된다. 그러나 절대로 후회 되서가 아니라 육 년의 시간을 함께한 곳이라 감회가 새로워서 그런가 보다. 많은 학우들이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다들 피상적인 것에 시간을 소비했었는데 어느새 "대학"을 향해 매진하고 있다. 때로는 공부 때문에 친구를 소홀히 하는 학생들을 보면 안타깝지만, 그것 또한 대학이라는 부담이 낳은 소치라고 할 수 있다. "나만은 그러지 말아야지"하며 내 자신을 끊임없이 충고하였다. 공부도 해보고, 놀기도 해보고, 많은 것을 학교에서 경험해왔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나를 아는 모든 이에게 좋은 인상을 심어주는 것이 무엇보다도 첫째인 것 같다. 많은 지식을 갖추면 좋겠지만, 그것을 지혜롭게 사용하지 못하면 결국 헛것이 아닌가? 나는 이 세상의 많은 사람과 만나고 대화하고자 하는 것 내 행동의 지표를 설정해 적응해나가는 것이 더욱 큰 지혜가 될 것이다. 고 3의 '귀국진학반'은 곧 정규수업을 마친다. 아마도 지금 그들은 근심과 걱정에 휩싸여 있을 것이다. 나와 친한 친구들이든 그렇지 않은 친구들 간에 모두 원하고자 하는 대학에 진학했으면 한다. 비록 많은 친구들을 만날 시간은 뜸하겠지만 정의로 가득찬 우리 고3-3반의 '동지 '들이 받쳐주니 저절로 힘이 솟는다.
이제 이런 환경에서 남은 두 달을 더욱 소중히 간직해야겠다. 그 까닭은 일생에 있어서 고 3-3 반의 한 구성원이 되는 기회는 바로 지금뿐이니까.
봄
고 3-3 반 오 영 걸
"봄,봄,봄,봄,봄, 봄이 왔어요....." 봄에 관한 노래가 TV에서 흘러나오면서 마침내 희망차고 따뜻한 계절의 황제인 봄이 다가왔다는 것을 느낄 수가 있다. 강변엔 고운 달빛과 두 손을 꼭 잡으며 흐르는 물소리를 듣는 여인들이 있는가하면 길가에는 어린아이들이 천진난만하게 뛰어 놀고, 어른들은 계절에 순응하지 못하고, 쳐져 있는 듯하고, 입시준비를 위하여 고심하는 고 3 수험생들의 모습이 노곤해 보인다. 이런 자연현상에 구속당하는 인간의 존재가 얼마나 미약한 것인지를 새삼스럽게 느꼈다. 동면에서 갓 깨어나 활동을 재기한 동물들, 모든 것이 새로운 것을 시작하며 자신의 생애에 새로운 장을 넘기기 시작하는 계절, 봄! 봄이 온 것이다.
무엇보다도 화려하며 무지개와 같은 봄, 물론 계절마다 특색을 지니고 있기는 하지만 가장 아름다운 것은 단연 봄이다. 세상은 새싹으로 덮이고, 갓난아이와 같이 순수한 봄은 깨끗하기만 하다. 그러나 요즘엔 봄기운도 도시에서는 이젠 찾아보기 힘들다. 도시의 소음공해로 인해 새들의 봄 노래는 들리지 않고, 공기오염으로 인하여 신선한 봄 향기도 와 닿지 않는다. 이렇듯 20세기의 봄은 고개를 숙이며 비참해져 가는 듯하다. 과학의 발전에 따라 정신적인 도덕수양은 퇴보해가고 그럼으로 말미암아 봄은 우리 도시 사람들과 멀리 격리되고 말았다. 그 사회의 일원인 나 또한 봄에 대해 무덤덤하기만 하다. 이제 물질적인 풍요 속에 우리 인간들이 추구해야할 것은 자연을 잘 가꾸고 도시 속에서 자리잡을 수 없는 봄에게 다시 그의 황금의 보금자리를 마련해주는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다시 찾아 온 봄
중 3-1 부 수 영
따스한 햇빛과 소리없이 다가온 봄바람과 함께 조용히 내 곁에 찾아온 이봄은 어디서부터 시작된 것일까?
아무도 모르게 시작된 이봄은 소리없이 왜 내 곁을 떠났다가 소리없이 내 곁을 다시 찾아왔다. 그 무엇을 위해 다시 찾아온 것일까?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봄은 새로운 시작을 위해 다시 찾아 온 것이라고..........
봄은 한해의 시작이며 계절의 시작이고 또한, 모든 자연의 시작이다. 제일 중요한 것은 봄이란 우리 인생에 있어서 새로운 목표와 같다는 것이다. 더 나가서 봄은 모든 사람의 희망, 소망의 목표인 것이다. 즉 또 하나의 새로운 시작이라고 나는 생각된다.
그래서 봄이 되면 많은 사람들이 새로운 계획과 목표를 세워 실천하기 위하여 노력한다. 사람들은 모든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이 봄을 맞이하여 새롭게 다시 한 해를 시작한다. 봄은 정말 커다란 힘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이렇게 봄은 모든 사람들의 마음을 새롭게 바꾸어 놓으니 이 얼마나 대단한 일인가?
봄이 되면 맑은 하늘, 푸릇한 마뭇가지 향기로운 꽃향기 그리고 봄비, 낭만적인 봄밤들을 느낄 수 있다.
봄에는 대부분 화창한 날씨가 지속된다.그때 그 날씨를 보면 정말 더 할 것없이 하늘이 맑고 구름도 너무 예쁘다. 나뭇가지에 돋아나는 파릇파릇한 새싹들을 보면 나도 한층생기가 돋는다. 그리고 공원을 지날 때마다 풍기는 향긋한 꽃향기는 취할 정도로 향기롭다. 또한 향기들도 다양하다. 봄비는 봄에만 느낄 수 있는 그런 상쾌한 기분이다. 봄비가 내리고 나면 푸른 잎에는 수정과 같은 물방울이 맺히고 공기도 신선해진다. 뜰에는 봄 빛이 가득하고, 봄바람이 산들산들 불어온다. 이 것들 모두 역시 봄에만 느낄 수 있는 것이다.
지금 난 다시 찾아온 봄 안에 있다. 추위는 아름다운 풍경으로 새 단장을 했고 따뜻한 봄볕이 마치 보석처럼 와르르하고 쏟아지는 것 같다. 봄바람은 여전히 따뜻하고 감미롭기만 하다.
봄
고 3-2 소 승 걸
만인의 가슴속에 봄이란 창조의 계절, 시작의 계절이라 인식되고 있을 것이다. 나 또한 예외는 아니다. 「봄」이 얼마나 아름다운 계절인가! 겨울 동안 침묵에 잠겨 있던 자연의 만물이 깨어나는 순간, 이 「탄생」의 순간은 지구상의 어떤 것 보다 아름다운 것이다.
정열의 여름, 낭만의 가을, 사랑의 겨울, 봄이 없었다면 과연 이런 계절들이 존재할 수 있을까? 봄날의 따뜻한 햇살을 받으며 새싹이 피어나고, 겨울잠에 빠져 있던 동물들이 하나 둘 깨어나 세상에 활력을 찾아 주지 않는다면, 그런 계절들도 없으리라 생각된다.
옛날 우리 동네에는 개나리 고개라 불릴 만큼 개나리꽃이 많았었다. 지금은 별로 많지 않지만, 그 땐 이맘 때면 개나리가 모두 활짝 피어 온 동네가 노랗게 물들곤 했는데........ 어린 마음에 그걸 꺾어다 집에 가져가 놀곤 했는데, 지금은 무엇 때문인지 몰라도 개나리를 찾기란 아주 힘들어졌다. 그래서 봄을 느끼기가 예전만큼 쉽지 않은 것 같다
.세상이 많이 변해 가고 있다. 사람들은 점점 더 바빠져 가고, 계절을 느끼며 사는 사람 또한 점점 주는 듯하다. 하지만 계절은 항상 우리의 곁에 있다. 우리가 마음을 느긋하게 갖고 계절의 변화를 즐기며 살 수 있다면, 우리의 삶은 더욱 아름다워지고 풍요로워질 것이다.
봄
고 3-2 손 지 우
무서운 추위와 전쟁을 치른 뒤 무거운 색은 다 떨쳐 버리고 밝게 단장하는 봄! 봄이 왔다.
따사로운 햇살이 사람들의 몸을 감싸고 향기로운 꽃향기의 산들바람이 얼굴을 스치는 푸른 풀밭과 움트는 새싹들...... 이 얼마나 아름다운 계절인가? 여성스러운 계절 부담이 없는 계절, 대자연에 마음껏 심취할 수 있는 계절, 이 계절이 바로 봄인 것이다.
우린 사람들의 의상에서도 봄이 오는걸 느낄 수 있다. 노란 색, 분홍색 등 화사한 색이 우리의 마음에도 봄이 오게 만든다. 봄이 오면 사람들은 겨울에 굳었던 뼈가 풀려 부드러운 낮잠도 자고 아름다운 꽃과 작은 새소리가 함께 하는 봄나들이도 나간다.
아! 정다운 봄이여! 언제 왔다가 언제 가는지는 확실히 모르지만 언제나 그렇게 우리를 밝혀주리라.
봄
중 2-4 필 감 이
봄은 일년의 첫번째 계절입니다. 그래서인지 모든 것이 새롭게 느껴집니다. 봄은 참 아름다운 계절입니다. 따스한 햇살 아래서, 푸른 새싹이 돋아나고, 오색의 꽃이 피고, 대지의 모든 것들이 봄이라고 얘기 해주는 것 같습니다.
봄이 되자, 시냇물은 노래를 부르며 이리저리 여행을 하고, 철새도 남쪽에서 돌아와 둥지를 틀고, 산들도 겨울 옷을 벗어내고 초록색의 봄 옷으로 갈아입고, 모두들 봄의 찬송가를 부르는 것 같습니다. 봄, 그 자체가 바로 한 폭의 그릴 수 없는 아름다운 그림, 사람들은 그 그림에 자신을 그려놓으려고 나들이를 갑니다.
봄은 아름답고 사랑스런 계절이며, 중요한 계절입니다. 왜냐하면, 좋은 시작이 좋은 끝을 보기 때문입니다. 봄은 일년의 시작입니다. 일년을 어떻게 보내는 건 봄에 어떤 계획을 세워 어떻게 실행하느냐에 달려있습니다. 봄은 시작인 만큼, 할 일도 많습니다. 농부는 모내기를 해야하며, 사람들은 겨울에 쓴 모든 물건들을 정리해서 넣어 두고, 동물들도 겨울 잠에서 깨어나 활동을 합니다.
봄은 따뜻한 엄마의 사랑과도 같습니다. 봄은 여신 비너스와도 같습니다. 봄은 활기찬 청년과도 같습니다. 봄은 우리에게 많은 기쁨을 안겨줍니다. 그래서 저는 봄이 제일 좋습니다.
봄
중 3-2 최 정 우
모든 생물이 기지개를 펴는 봄이 왔다. 길고 긴 동장군의 방문이 끝나고 봄 냄새를 믿으며 새싹도 트고 길가엔 개나리도 활짝 피었다. 사람들의 옷차림과 가벼워진 걸음걸이, 따스하게 웃는 얼굴에는 벌써 봄이 와 있고 새학기가 된 학생들은 저마다 새로운 계획으로 또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새 출발을 하려 한다.
봄이 되면 모든 사람들은 마음이 들 떠 있을 것이다. 중.고생은 수학여행을 가고, 어린 아이들은 일년에 한번 있는 어린이 날을 손꼽아 기다릴 것이다. 그리고 새학기를 맞아 갓 입학한 어린아이와 대학 진료 때문에 고생하는 수험생에게 봄은 새로운 희망일 것이다. 누구나 한번은 들어봤을만한 이야기가 있다. "좋은 시작은 성공의 반이다"라는 이야기다 그러므로 만물이 새롭게 시작하는 이 봄은 그들에게 조금이나마 더 노력하여 대학 진학이든가 아니면 어려움이 많을 앞으로의 학교 생활을 잘 이겨내라는 희망을 줄 것이다. 이렇게 모든 것이 새롭게 시작되는 봄에 자신들이 자신들의 분야에서 열심히 한다면 명예라든지 직위나 자신이 바라는 목표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젠 우위가 완전히 가 버렸고 따뜻하게 내리 쪼이는 햇살과 몸에 닿으면 기분이 좋아질 것 같은 봄 바람이 무서운 냉기를 지닌 겨울 바람을 쓸어가 버렸다. 뱀도 개구리도 곰도 모두 땅 밖에서 활동하고 겨울 내내 움츠렸던 나무와 꽃들도 이제는 그 화려한 기지개를 펴려한다.
이 희망과 사랑이 넘치는 계절을 난 모든 어려움에 부딪힌 사람들에게 이 좋은 시간에 자기가 해야 할 일을 사명감과 힘찬 기분을 갖고 새롭게 시작하면 그 어떤 어려움도 이겨 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해주고 싶다.
봄
한국어 학습반 왕 립 태
사계절 중에 처음으로 시작하는 것은 봄이다. 그래서 나는 사계절 중에 웬지 봄이 제일 좋다. 벌써 봄은 성큼 우리들 곁에 다가와 버린 것 같다. 사람들의 복장과 날씨에서도 봄을 느낄 수 있다. 그러나 이 봄도 곧 멀어져 갈 것이다. 아쉬운 이별의 시간처럼...........
봄
중 2-4 임 문 영
봄이 오긴 왔나보다. 왜냐고요? 따뜻한 날씨, 거리 한편에 핀 꽃들, 화사한 옷들이 그 예다. 하지만 봄이 와서 생기는 부작용도 조금 있긴 하다.
그 부작용은 :
첫째, 나른한 몸. 봄이 되면 몸이 찌뿌둥한게 아침에 일어나면 개운하지가 않다. 둘째. 떨어지는 입맛. 봄이 되면 그렇게도 좋아했던 음식들이 왜그리도 맛이 없어지는지
셋째, 쏟아지는 잠. 봄이 되면 잠들이 친구하자고 천리 길을 마다하지 않고 찾아온다. 자도 자도 끝은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당신은 봄이 싫어요?'라고 물어본다면, 나는 황급히 아니라고 대답할 것이다. 왜냐하면 이런 부작용들은 잠시일뿐 금방 사라져버리고 그 자리엔 이것들이 차지한다.
이것들이란 아까도 살짝 공개한 것들이다.
첫째, 따듯한 날씨. 일기예보들을 듣자하니 며칠전 어느 지역에 날씨가 섭씨 31 도 였다고 한다. 조금만 뛰면 땀이 주르륵 흐를 정도의 따뜻한 날씨.
둘째, 거리 한 편에 핀 꽃들. 봄이 되면 거리 한 쪽 나뭇가지에 하양, 노랑, 빨강, 분홍색의 꽃들이 줄줄이 피고 그 꽃의 이름을 다 외울 수 없지만 바라보기만 해도 미소를 짓게 한다.
셋째, 화사한 옷들. 요즘 거리엔 나뭇가지에 핀 꽃은 저리 가라고 할 정도로 행인들의 옷은 말 그대로 화사하다.
이런 것들이 '와! 봄이 왔구나!'라는 감탄사를 나오게 한다.
지금까지 내가 얘기한 것은 1년에 3, 4, 5월, 그러니까, 봄이다. 하지만 지금 내가 얘기하려는 건 인생의 봄이다. 인생에도 물론 봄은 있다. 봄에 푸른 새싹이 돋는 것처럼 인간의 봄은 유아기인 어린 시절이다. 태어난 걸로 시작해서 조금 커 아장아장 걸어가고, 조금 터 크면 말도 하는 어린 시절이 바로 봄인 것이다.
이는 얼마나 아름다운 것인가! 그래서 나는 인생의 봄이든, 그냥 봄이든, 무조건 봄이 좋다. 그럼 우리 학생은 이렇게 좋은 봄에 무엇을 해야 하는가? 만약 우리가 학생이 아닌 노는 처지라면 이렇게 맑은 봄날 매일매일 꽃을 보며 놀겠지만, 우린 학생이다. 학생은 자기에게 주어진 임무, 즉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한다. 아마도 하느님이 우리에게 공부할 수 있는 좋은 환경을 만들어 주시려고 이렇게 좋은 날씨와 꽃들을 내려 주신 것 같다. 그런만큼 우린 열심히 공부해야 한다.
세상에 많은 사람들은 남을 위해서 많은 희생을 한다는데, 적어도 우린 우리를 위해서 공부 좀 하면 안되는가? 학생들이여! 이 좋은 봄날 너무 놀지 말고 공부좀 합시다.
봄이 올 때쯤이면
중 2-4 황 인 나
늘 차갑고 탁하며 싸늘하던 공기가 어느 덧 따사로워져 갑니다. 봄이 1년의 첫 계절이듯이 사계절 중에 제일 마음도 넓고 푸근합니다. 마치 자기가 큰형인 듯.....,
봄이 올 때쯤이며 예쁘게 연둣빛 어린 새싹이 돋고 또 꽃이 하나 둘씩 피어나 온 세상을 노란빛, 분홍빛으로 물들게 합니다. 그러나, 그 아름다움과 화려함에 비해 봄은 늘 겸손합니다. 그래서 사람은 봄이 오기를 기다리는가 봅니다. 그런 봄의 따스함 때문에 늘 아무 말없이 희망을 주고 떠나는 봄의 따스함이 겨우내내 움츠렸던 가슴을 그런 봄의 푸근함에 열어제치곤 합니다.
꾸밈없는 예쁜 봄, 그런 봄이 올 때쯤이면 사람들은 행복해 하고 있을 것입니다.
아름다운 계절 봄
중 3-1 최 미 란
졸업을 앞두고 있는 내게 봄이 다시 찾아왔다. 늘 그렇듯이 올 봄도 예전과 다름없이 새싹들도 자랐고, 꽃도 폈다. 그렇지만 예전과 다른 점도 있었다. 말하자면 개나리나 진달래 같은 꽃들이 별로 많이 피지 않았다는것이다.기 원인은 아무래도 환경오염 때문인 것 같다. 시골이나 산에 가보면 꽃들이 참 많이 피어 있다. 그렇지만 도시에서는 그런 경치를 잘 찾아 볼 수 없다.
수업 도중에 창 밖을 내다보면 하얀 목련꽃 잎이 바람에 나부낀다. 그리고 버스안 창가에서 밖을 내다보면 아름다운 풍경과 사람들의 화사한 옷 차림이 눈에 띈다. 그럴 때 그런 것들이 새삼스럽게 다시 봄을 느끼게 해주는 것 같다.
만물이 소생하는 계절--봄, 개구리가 겨울잠에서 깨어나고, 모든 식물들이 새로운 모습으로 다시 태어나는 계절, 내 마음을 한결 포근하게 해주는 봄. 라디오에서 음악이 나오면 웬지 마음이 쓸쓸하고 허전한 기분을 주는 봄, 그렇지만 언제나 봄은 다시 가고 새로운 기분 새로운 마음으로 한해를 시작하는 봄. 요번 봄은 웬지 오래 갈 것 같다. 그리고 내 마음에 영원히 남을 것 같다.
수 학 여 행
중 3-1 정 원 려
4월15일, 드디어 몇 주일 전부터 기대하고 고대하던 「수학여행」가는 날이 다가온 것입니다. 어젯밤에 늦게 잤는데도 조금도 피곤하지 않고 기다려만 집니다. 학교에 도착하자마자 저는 많은 짐을 챙겨 온 친구들을 볼 수 있었습니다. 우린 버스에 올라타고 버스를 오랫동안 타고서야 드디어 「설악산 국립공원」에 도착하였습니다. 우린 버스에서 내린 후 친구들과 걷다 보니 「오색 약수」를 마시는 곳이 있어 친구들과 물을 마시고 또다시 버스를 타고 삼박 사일 동안 지낼 숙소에 도착했습니다. 숙소에 가자마자, 선생님께서는 방을 정해 주셨습니다. 첫 날이라서 그런지 밤이 되자마자 피곤하여 친구들과 같이 잠을 잤습니다.
둘째날 아침 일찍부터 나갈 준비를 한 후 나가기만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 이유는 오늘 우리는 설악산의 유명한 で비룡폭포と와 で흔들바위と에 올라가는 날이기 때문입니다. 올라가는 도중 너무 힘이 들었지만, 휴식시간의 물맛은 정말 시원했습니다. 저는 で비룡폭포と를 본 후 너무 실망하였습니다. 제가 상상한 で비룡폭포と의 모습과 실제의 모습이 너무 차이가 났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폭포 물은 깨끗했고 공기도 맑아 무엇보다도 끝까지 올라갔다는 기쁨으로 제 마음을 만족시킬 수밖에 없었습니다,
셋째날, 아침부터 비가 왔습니다. 우리가 우비를 입고 간 곳은 바로 옛날 선녀가 내려와 목욕을 했다는 「비선대」입니다. 비가 와서 돌도 미끄러웠지만 끝까지 올라갔습니다. 비안개가 비로봉을 가려서 비로봉을 자세히 보지 못했습니다. 우리들은 사진을 찍고 숙소로 돌아와 친구들과 쉬면서 밤에 열릴 켐푸화이어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밤이 되자 우리는 마당에 모여 반별로 준비한 프로그램을 보면서 재미있게 논 후 방에 돌아와 친구들과 또 놀았습니다.
넷째날, 우리는 「낙산사」에 가서 「의상대」와 돌로 만든 아주 큰 「관음보살」도 보았습니다. 우리는 다시 「경포대」에 갔습니다. 오랜만에 바다에 오니 짠 냄새도 나고 바다 경치도 보고 있으니 기분이 너무 상쾌했습니다. 우린 1시 30분까지 놀았습니다. 드디어 집으로 돌아갈 때가 되었습니다. 저는 가는 길에 많은 것을 생각하고 느꼈습니다. 저는 「수학여행」온 첫 날에는 힘들고, 집 생각도 났고, 도중에서 포기하고도 싶었지만. 저는 끝까지 올라간 것을 보람으로 느끼고 있습니다. 「산은 자신을 찾는 사람에게 무엇이든지 준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번 여행을 통하여 「고통 끝엔 언제나 기쁨이 있고, 고통을 받은 만큼의 기쁨을 받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수 학 여 행
중 3-2 우 소 리
4월 15일. 이 날은 내가 3년 동안 기다리고 기다리던 중요한 말이었다. 난 이 날이 나의 중학교 시절을 아름답게 장식해 줄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다. 이 날이 오기 며칠 전부터 나와 나의 친구들은 흥분이 되어 어찌할 바를 몰랐다. 학교에선 공부를 할 수가 없었고 집에선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그날이 왔다. 나와 나의 친구들은 각자 준비해온 짐을 들고 학교로 모였다. 학교에는 이미 많은 언니 오빠들과 친구들이 와 있었다. 모두 패션쇼에 나가는 모델들 같았다. 도저히 평소에 교복을 입은 모습들을 상상할 수가 없었다. 시작부터가 화려한 이번 여행이 난 참 기대가 됐다.
출발시간이 되어 우리는 조회를 마치고 각 반의 버스에 올라탔다. 버스에 올라타자 우린 더욱 흥분되고 기쁨에 넘쳐 안절부절 못했다. 드디어 버스가 출발하고 두 세시간이 지나자 보기만 해도 아름다운 시골 풍경이 보였다. 내 눈에 비친 이 풍경은 여행이 시작되는 기대로 꽉 차 있었다. 시간이 더 지나자 우리가 탄 버스는 산길을 오르기 시작했다. 멀리 산 봉우리가 보이고 아직 녹지 않은 눈들이 군데군데 쌓여 있었다. 정말 이 풍경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아름답고 멋진 그림과도 같았다. 이런 곳에서 지낼 걸 생각하니 더없이 기뻤다.
그리고 드디어 우리는 목적지인 설악산에 도착했다.갑자기 긴장이 풀려 매우 피곤했다. 그렇게 첫 날밤을 맞이하고 다음날을 기대하며 잠을 잤다.
다음 날은 새벽같이 깬 친구들이 나를 깨웠다. 우린 아침을 먹고 설악산에 오를 준비를 하였다. 너무나도 멋진 흔들바위와 울산바위를 보고 돌아온 우리는 첫째 날보다 더 피곤함을 느꼈다.
셋째 날 아침 나와 나의 친구들은 서러워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 날은 우리의 마지막을 멋지게 장식할 캠프 화이어를 하는 날이었다. 그런데 비가 오는 것이다. 우린 정말 걱정이 되었다. 그러나 우리는 비가 오는 와중에도 설악산에서 빼놓을 수 없는 '비선대'를 가야 했다. 힘들었지만 재미가 있었다. 내가 이틀동안 본 곳 중에서 가장 맘에 드는 곳이었다. 무섭게 깎아 내린 절벽이 더욱 멋지게 보였다.
숙소로 돌아온 우리는 켐프 화이어를 준비했다. 하지만 비는 멈추지 않았다. 우릴 결국 우비를 입고 캠프 화이어를 하게 되었다. 다들 너무 열심히 준비를 해와서 어려운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참으로 재밌고 약간의 감동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다.
우리는 일정을 마치고 아쉬움을 남기고 돌아왔다. 지금 생각하면 짧은 시간이었지만 참 좋은 추억이라고 생각된다. 다 좋은 추억만 남아 있어 기쁘다. 이런 기회가 한번만 더 주어진다면................
어 머 니
中 3-3 方 文 君
이 세상에서 내가 가장 믿고 가장 사랑하고 가장 존경하는 분이 있다면, 그분은 바로 나의 어머니이십니다.
어머니가 계시지 않았다면 저는 이 세상을 엿볼 수 없을 겁니다. 요즘 따라 부쩍 힘이 들 때가 많아집니다. 학교 생활에 지쳐서 밤늦게 집으로 돌아오면 나를 반겨주는 것은 식탁 위에 놓여져 있는 밑반찬과 아침에 어머니께서 끓여놓은 찌개뿐입니다. 저는 힘든 어깨를 떨구며 앉아 예전의 모습들을 그려봅니다.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오면 나를 반겨주던 어머니의 따뜻한 목소리와 화목한 가정의 분위기.......하지만 지금의 어머니께선 우리들의 생계를 위해 아버지와 함께 가게를 경영하시느라 너무나 바쁘십니다. 밤 열시 가 넘는 시간에 돌아오셔서 또 밀린 집안 일을 하시는 어머니의 모습이 너무나 고단해 보였습니다. 그 아름다운 얼굴에 주름이 하나 둘씩 늘어가고, 곱디고운 두 손이 부르트고, 간간이 보이는 흰머리를 볼 때면 가슴이 저려와서 눈물이 멈추지를 않습니다. 또 요즘에는 우리들 앞에서 피곤한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고 남몰래 코피를 흘리시는 어머니를 볼 때마다. 나는 남몰래 죄책감에 시달리곤 합니다. 왜냐하면 나는 그런 어머니의 노고도 알지 못한 채 항상 짜증만 내며 불평불만만을 늘어놨기 때문입니다.
이런 불효자식을 끔찍이도 아끼시고 사랑으로 보살펴주시는 어머니께 어떻게 감사의 말을 전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정말로 한번도 하지 못한 그 말 "엄마!사랑해요!" 언제나 쑥스러워서 차마 입밖으로 던지지 못했지만 어머니는 틀림없이 알고 계실거라 믿습니다.
여러분! 여러분도 여러분을 사랑하시고, 여러분을 이 세상에 발을 딛데 해주신 어머니께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려보는 것이 어떨까요? 어머니........이 얼마나도 따뜻하고 포근한 단어인가요?
축 제
중 3-4 오 명 희
푸른 산과 바다, 향기로운 봄꽃들 어디에선가 조용히 들려 모는 듯한 축제의 경쾌한 음악..........
지금 어디에선가 한창 봄의 축제를 열고 있을 것이다. 축제의 싱그러움 속에 여러 사람들이 각자의 축제에 즐거움을 미소로 표현하듯, 꽃과 나비, 하늘을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새, 어디선가 불어왔다가 어디론가 사라지는 봄 바람 등도 축제의 장단을 맞춘다.
이제 며칠 후면 우리 학교에서도 축제를 개최한다. 한창 준비중인 축제 전에는 모두들 고민하고 '어떻게 하면 모든 이들이 즐거울 수 있을까?'하며 철저히 준비한다. 축제 날엔 준비과정 속에서 힘들고 고민하던 모습들은 찾아 볼 수 없고 즐겁게 기쁘게 모든 이와 어우러져 축제의 오래 가락에 장단맞춰 춤을 추고 노래 부르며 이 시간이 영원히 지속되길 바란다. 하지만 시간은 축제 속에 빠져있는 우리들의 마음을 모르는 듯 평소와는 달리 제법 빠른 속도로 축제의 마지막 순간을 향해 달리는 것만 같다. 하지만 나의 또 다른 마음속엔 누군가 나에게 작게 속삭이듯 이런 말이 들려온다. '난 축제가 좋아! 그렇지만 또 다른 축제를 기다리는 이들을 위해 나의 시간의 바늘은 아쉬움의 마음을 안고 쉴새없이 달려가야해. 또 다른 축제를 향해서.....!' 조금은 아쉽지만 난 이 축제를 영원히 내 곁에 두고 싶지 않다. 왜냐하면 또 다른 즐겁고도 흥에 겨운 축제를 맞이해야 하고 내년에 다시 찾아올 이 축제를 맞이해야 하기에....
축제의 끝은 아쉬움만이 남는 것이 아니라, 또 다시 즐거움과 새 희망을 전해주는 끝이라고 하고 싶다.
기쁨, 즐거움, 아쉬움 이 세 가지는 축제를 마무리하는 표현 같다. 그리고 이번에 열릴 우리학교 축제가 잘 치러지길 난 바란다. 왜냐하면 그건 우리 모두가 힘들게 노력해서 준비한 것이기 때문이다.
「애풀」의 몰락
개인이나 집단이 환경의 변화에 제때 적응하지 못하거나 지나친 자만에 빠져 있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날 수 있는지를 이야기할 때 공룡과 개구리의 경우가 흔히 인용된다.
지구상에서 공룡이 사라진 이유에 대해서는 학설이 분분하지만 거대한 몸집에 비해서 두뇌가 너무 작아 현실에 안주하고 환경의 변화에 적응하지 못해 결국 멸망하게 됐다는 분석이 유력하다. 반면 변온동물이기 때문에 환경적응 능력이 어떤 동물 보다 뛰어나지만 바로 그 능력에서 오는 자만 때문에 몰락한다는 것이 개구리의 경우이다. 즉 개구리를 물이 든 냄비 속에 넣어 놓고 물을 서서히 데우면 수온변화에 따라 조금씩 체온을 바꾸어 나가다 더 이상 견디기가 어려워졌을 때는 이미 기온이 빠져 냄비 밖으로 뛰쳐나오지 못한다는 것이다.
미국의 거대한 컴퓨터 회사인 애풀사가 더 이상의 적자를 견디지 못해 매각될 것이라는 뉴스는 이 공룡과 개구리의 경우를 다시 한 번 상기시키고 있다. 애풀은 IBM과 함께 미국뿐 아니라 전세계 컴퓨터 시장을 지배해 오던 기업이다. 70년대 말과 80년대 초반 개인용 컴퓨터인 애풀과 그래픽 기능이 뛰어난 매킨토시를 잇달아 개발하여 엄청난 호황을 누리던 이 기업의 멸망은 현실안주와 자만이 낳은 결과였다. 즉 매킨토시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자 빌 게이츠의 마이크로소프트사등 경쟁업체를 무시하고, 다른 컴퓨터와의 호환성을 허용하지 않은 것이 몰락을 자초한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다른 컴퓨터 업체들은 상호 호환성을 구축함으로써 가격인하와 시장 점유율을 높여 나갔는데 반해 애풀은 독자적인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고집함으로써 시장을 점차 잃어 간 것이다.
IBM이 몰락한 과정도 이와 매우 흡사하다. 월스트리트 저널지 기자 풀 캐럴이 쓴 「IBM의 몰락」이라는 기사는 그 과정을 두려울 정도로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캐럴에 따르면 IBM은 컴퓨터 시장의 환경변화에 따라 스스로 변화시킬 기회를 여러 차례 가지고 있었으나 그렇게 하지 못했으며『세계에서 가장 이윤을 많이 내고 최고의 존경을 받는 기업인데 왜 변화해야 한다는 말인가』라는 일종의 자기 도취에 빠져 있었다는 것이다. 이들 두 기업의 경우는 공룡의 현실 안주와 개구리의 자만이 복합적으로 나타난 것으로 보인다.
격동의 시대에 현실에 안주하거나 자만하면 망한다는 사실은 이제 누구나가 알고 있다. 그러나 그 알고 있는 사실을 과연 실천하고 있는가는 우리 모두가 한 번 자문해 볼일이다.
(본 내용은 모 신문사 국제부 기자인 정동우기자가 「기자의 눈」란에 쓴 것이다. 내용이 독자에게 많은 것을 느끼게 한 글이라 전재하였다.)
행복의 조건
'이상헌의 사는 얘기'에서
부모의 유산으로 하루아침에 엄청난 부자가 된 한 젊은이는 이 나라에서 제일 가는 여자와 결혼을 하는 꿈을 가지고 있었다. 수십 명과 맞선을 보던 그는 최고의 미인과 결혼을 하고 두 달 동안 세계 일주 여행을 마치고 돌아왔다. 재산가와 미녀의 결혼을 모두 부러워한 것은 물론이다. 그들이 돌아온 다음날 약속대로 그 집을 방문했을 때 여자의 눈은 울어서 퉁퉁 부었고 남자는 심각한 표정으로 말없이 담배만 피우고 있었다. 그날 그들은 가정법원을 찾아갔다. 행보의 절정에서 나락으로 추락하고 만 것이다. 처음 그들이 만나 결혼을 하고 신혼여행을 떠날 때만 해도 그들은 행복했었다. 그러나 그 행복은 두 달을 넘기지 못한 것이다.
눈에 보이는 것은 순간 지나간다. 지나고 나면 보이던 것도 보이지 않고 또다른 모습으로 나타난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 순간 자신이 속았다는 생각을 한다. 우리가 보고 있는 것은 한 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또 겉에 나타난 것이 전부가 되는 것도 아니다. 따지고 보면 자신이 속은 것이 아니라 너무 작은 부분에 집착한 것뿐이다.
우리는 결혼을 할 때 상대방의 학력, 재산, 사회적인 위치 등을 따진다. 그러나 이런 것들이 꼭 행복의 조건은 아니다. 배운 것도 없고 가진 것도 없는 사람이지만 가족끼리 오손도손 행복하게 사는 사람이 있고, 부러운 것 없이 갖출 것은 다 갖췄는데도 불행하게 살아가는 경우도 얼마든지 있다.
눈앞의 조건은 주식 시세처럼 변화무쌍할 수 있다. 비싸게 돈을 내고 산 주식이 폭락하거나 줍다시피 한 주식이 엄청난 효자 노릇을 하는 것을 보더라도 현재의 조건은 중요한 것이 아닌 것이다.
우리는 종종 좋은 사람을 만나면 행복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좋은 사람을 만난다고 해서 행복해진다는 보장도 없다.
그러나 어떤 조건보다 우선 되어야 하는 것이 있다. 언제나 진지하게 상대방의 얘기에 귀를 기울이며 밝은 웃음으로 감싸주는 마음을 갖는 것이다. 내가 이런 마음을 행동으로 보여줄 때 진정한 축복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한국의 호칭에 관한 예절
-- 사돈간, 시댁식구, 배우자를 중심으로 하여 --
1. 사돈(査頓)간의 호칭
で백년손님と이라는 말처럼 처가 식구에게 사위는 편치 않다. 사돈지간 역시 가까우면서도 먼 관계인 만큼 적절한 호칭으로 원만한 관계를 만들어가는 게 중요하다.
아내의 부모를 직접 부를 때는 で장인(丈人)어른と, で장모님と, 아내의 남자 형제를 말할 때는 で처남と, 처남(妻男)의 아내는 で처남댁(妻男宅)と 처남댁이 자녀가 있을 때는 で00어머님と, で00자친(慈親)と이라 부른다. 아내의 언니는 で처형(妻兄)と, で00자친と 아내의 여동생은 で처제(妻弟)と, で00자친と이라 부른다. 처형이나 처제의 남편을 말할 때는 で동서(同壻)と라 한다.
아내의 직계 존속(直系尊屬)외의 처가 가족을 남에게 말할 때 아내와의 관계 앞에 で처(妻)と를 붙여 말하고 직접 부를 때는 사회적 사귐의 호칭으로 부른다.
결혼은 남녀 두 사람만의 결합이 아니라 두 집안의 만남이다. 사돈지간(査頓之間)은 서로 예의를 지키며 관계를 만들어 나가면 피를 나눈 친척보다 더 좋은 동반자가 될 수 있다.
자기보다 윗세대의 사돈은 부를 때는 で사장(査丈)어른と, 같은 세대의 동성 사돈의 호칭은 で사돈と, 같은 세대의 이성 사돈간의 호칭은 で사돈어른と이다.
2. 시댁(媤宅)식구(食口)의 호칭
가족호칭, 특히 시댁식구의 호칭은 집안에 따라 미묘한 차이가 있어 집안의 분위기에까지 영향을 미치기도 해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다.
남편의 부모를 직접 부를 때에는 で아버님と で어머님と, 남에게 말할 때에는 で시(媤)と를 앞에 붙여 で시아버님と で시어머님と으로 칭한다.
남편의 형을 부르는 호칭은 で아주버님と, 시부모에게 말할 때에는 で아주버니と, 자식에게 말할 때에는 で큰아버지と라 칭하고 친족이 아닌 남에게 말할 때에는 で시숙(媤叔)と이라 한다.
남편의 동생을 부를 때와 시댁식구에게 말할 때 미혼이면 で도련님と, 기혼이면 で서방님と이면 で도련님と, 기혼이면 で서방님と이라 한다. 친정식구에게는 で시동생と이라 칭하고 자식에게는 미혼이면 で삼촌と, 기혼이면 で작은아버지と라 말한다. 남에게는 で시제(媤弟)と라 칭한다.
남편의 누나를 부를 때는 で형님と, 남편의 누이동생은 で아가씨と라 한다. 누나와 누이동생의 두 경우 다 친정식구에게는 で시누이と, 자식에게는 で고모と라 말한다.
남편의 형수인 손위 동서는 で형님と이라 부르고 시댁식구에게는 で형님と, 친정식구에게는 で큰동서と 또는 で맏동서と, 자식에게는 で큰어머니と라 칭한다. 시동생의 부인인 손아래 동서는 で동서と, 또는 で자네と라 부르고 시댁이나 친정식구에게 칭할 때에는 で동서と, 자식에는 で작은어머니と라 칭한다.
시누이의 남편에 대한 호칭은 전통적으로는 없었다. 현재는 で고모부님と で시매부(媤妹夫とで아주버님と 등으로 호칭하나 공식호칭은 결정이 유보되고 있다. 자식에게는 で고모부(님)と 친척에게는 그 지역의 이름을 붙여 で00아주버님と で00고모부と라 칭한다.
기타의 시댁 손위 가족은 남편이 부르는 호칭에 で님と을 붙여 부른다.
3. 배우자(配偶者)의 호칭
배우자간의 호칭은 부르기 쑥스러워 엉뚱하게 불리는 경우가 많다.
아내가 남편을 직접 부를 때는 で여보と, 대화중에 지칭할 때는 で당신と, 친구나 남에게 말할 때는 で남편と이라 한다. 시댁어른이나 손아래 동서에게 말할 때에는 で사랑(舍廊)と, 친정어른에게는 で0서방と이라 하고 아랫사람에게는 그들이 남편을 부르는 호칭을 그대로 말한다. 남에게 그의 남편을 말할 때에는 で바깥양반, 바깥어른, 주인양반と, 한문식으로 で부군(夫君)と이라 한다.
남편이 아내를 직접 부를 때는 で여보と, 대화중에는 で당신と 친구나 남에게 말할 때에는 で아내, 집사람, 안사람と, 한문식으로는 で내자(內子)と라 말한다. 자기나 아내의 아랫사람에게는 그들이 아내를 부르는 호칭대로 말한다. 남에게는 그의 아내를 말할 때에는 で제댁(弟宅)と, 동기(同氣:형제자매의 총칭.<예>동기간:同氣間)나 제수, 처남댁 등에게는 で안と 자기나 아내의 아랫사람에게는 그들이 아내를 부르는 호칭대로 말한다. 남에게는 그의 아내를 말할 때에는 で안양반, 안어른と, 한문식으로는 で영부인(令夫人)と이라 한다.
형의 아내를 직접 부를 때는 で아주머니と 집안어른에게 말할 때는 で아주미(아주머니의 낮춤말), 남에게 말할 때는 と형수(兄嫂)씨(氏)で라고 하고 남에게 그의 형수를 말할 대는 と존(尊)형수씨で라 칭한다.
** 호칭문제는 한국 대학교의 정원외 입학시험에 자주 출제된다. 일반적으로 자기를 중심으로한 본가 및 외가에 대한 사용법은 옳게 사용하나 자기를 중 심으로한 처가, 시댁, 배우자에 관한 칭호는 옳게 사용하지 못하는 실정이 다. 특히 동국대학교에서 많이 출제가 된다.
살과의 전쟁
'이상헌의 사는 이야기'에서
일본 NHK에 추적 60분 비슷한 프로가 있다. 한 번은 「다이어트」문제를 추적했는데 아나운서는 해조류 비누 사용자에게 마이크를 들이댔다.
『부인께서는 이 비누를 1 년간 쓰셨다고 하는데 정말 줄어들던가요』
『예. 줄어들었습니다.』
사회자는 놀라는 표정을 지으시면서 다가섰다.
『아 그렇습니까?』
『예. 비누가 줄어들었습니다.』
20-30년전만해도 우리(한국)는 영양실조에 시달렸고 그때 신문에는「살찌는 약」광고가 실렸던 것이 기억난다. 살찐 사람은 인격자로 보이고 마른 사람은 가난한 사람으로 보였던 시절이다. 요즘 신문은 다이어트 광고를 빼면 광고면이 텅빌 정도로 많은 회사들이 서로 다퉈가면서 자기 제품을 선전하고 있다. 그만큼 다이어트 시장이 불이 붙고 있다는 얘기다.
잘 먹는다고 살이 찌는 것이 아니라 운동 부족이 비만의 주범이다. 돼지우리 속을 들여다보자. 조그만 공간 안에서 돼지들은 먹고 자고를 반복한다. 칼로리가 소모되지 않으니까 결국은 살만 찌는 것이다.
산에서 사냥한 산돼지는 비계가 거의 없다. 매일 먹고 뛰어다니기 때문이다. 살 빼기 위해 굶다가 죽거나, 심한 병에 시달리는 경우도 흔히 보게 되는데 잘못된 다이어트 상식처럼 위험한 것도 없다.
로열 인터내셔널이라는 무역회사에 근무하는 조연희 과장은 홍일점이다. 그는 택시를 절대로 타지 않고 버스에서도 앉는 일이 없다. 점심식사가 끝나면 18층 자기 사무실에서 1층까지 걸어서 내려갔다 올라오는 것을 두 번 반복한다. 아무리 바쁜 일이 있어도 거르는 법이 없다. 그래서 그런지 그의 몸매는 물찬 제비처럼 군살 하나 없이 날씬하다고 빌딩 안에 소문이 나 있다.
다이어트에 신경을 쓰는 사람의 집에는 저울이 있다. 그래서 아침저녁으로 달아보면서 눈금 하나가 올라가면 한숨을 쉬며 혹시 저울이 고장난 것이 아닌가 생각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체중이 느는 것과 살찌는 것은 전혀 관계가 없다. 몸은 근육과 지방, 물로 구성되어 있는데 70%가 물이다. 사우나에 가서 한참 땀을 빼고 나와서 저울에 달아보면 눈금 몇 개가 내려온다. 그러나 살이 빠진 것이 아니라 물이 빠졌을 뿐이다 운동이상 다른 방법이 없다. 웬만한 거리는 걸어서 가 보자. 어슬렁대면서 걷기보다는 빠르고 힘차게 걷는 방법으로 체지방을 충분히 줄일 수 있는 것이다.
(본문은 세계일보에 연재된 이상헌의 사는 이야기에서 전재한 것임을 밝혀둔다.)
학력에 대한 학교의 신뢰도
한국 학교는 1년 중 3월 한 달이 가장 바쁘다. 그 가운데서도 가장 큰 행사가 입학식이다. 서울 시내만 해도 초. 중. 고등학교에 약 50만 명에 가까운 학생들이 미지의 세계에 대한 꿈을 안고 입학식을 치렀다. 교장은 즐거워하는 신입생과 다소 불안해하는 학부모들 앞에서 『지금부터는 여러분의 자녀에 관한한 학교를 믿으시고 맡겨 주십시오』라고 공약한다. 다소의 표현의 차이는 있을지 모르지만 입학식 당일에는 이와 같은 판에 박은 듯한 말을 전국 어느 학교에서나 들을 수 있다.
아이의 공부나 생활에 관한 한 학교를 믿고 맡겨 달라고 하는 말속에는 착실히 학교에 다니기만 하면 매년 그 학년 상당의 학력을 쌓게 되고 그리하여 정해진 기간(6년이나 3년)이 지난 후에는 예외 없이 졸업하게 된다는 뜻이 담겨 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초등학교나 중등학교를 졸업한 학생 상당수가 그에 상응하는 학력을 갖지 못하게 됨은 두말할 것도 없다.
학습 부진아는 초등학교 입학때부터 생기기 시작하여 졸업할 때는 30%가량 된다고 하나. 그러니까 이 30%의 학습 부진아에게는 학교를 믿고 아이들을 맡겨 달라고 한 입학식 당일의 교장의 공약이 빈말이 되고 만 셈이다. 이와 같은 일은 중학교, 고등학교에도 있을 수 있는 일이다. 오히려 학교단계가 상승할수록 학습 부진아의 비율도 높아지고 있다는 것이 정설이기 때문에 상급학교일수록 공약 위반의 정도가 더 크다고 할 수 있다.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하는 학교가 그 역할을 다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교육비의 효과적인 사용이라는 측면에서 문제가 된다. 제품의 30%이상이 불량품인 공장이 있다면 경영 부진으로 도산을 면하기 어려울 것이고 공장장도 틀림없이 책임을 추궁 당할 것이다.
교육계에서도 그런 책임 추궁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 내용이 막연하고 주관적이기 때문에 실효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학교를 믿고 아이들을 맡겨 달라」고 하는 빈말이 거듭되고 있어도 학교를 믿지 못하는 측에서는 그 책임을 추궁할 길이 거의 막혀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러한 상태가 지속됨에 따라 학교 불신의 풍조도 표면화되고 증폭되어 가고 있다. 처음부터 교장의 공약을 빈말로 취급하고 아예 아이들을 사설 학원에라도 보내야 안심이 되는 부모들도 있는 것으로 안다.
미국에는 민간 교육산업 회사가 있어 공립학교 학생들의 학력 수준을 일정한 수준까지 끌어올리는 책임을 지는 퍼포먼스 콘트랙팅 시스탬이 있다고 한다. 계약 조건에 「책임」을 지고 확실하게 학생의 학력을 향상시켜 준다는 점에서 주목을 받고 있다.
퍼포먼스 콘트랙팅이 처음으로 실험된 것은 1969년 아칸소주의 텍사카나시에서였다. 텍사가나시는 주의 남서부에 위치하고 있는 인구 2만의 소도시였다. 도시 전반적으로 학력이 부진한 학생들이 늘어감에 따라 이에 대처하기 위하여 당국에서는 초등, 중등교육법에 정해져 있는 학력 부진 방지를 위한 연방자금을 교부받아 민간 교육산업 회사인 에듀케이션 시스템과 계약을 맺고 새로운 실험을 시도하였다. 계약내용은 2백 명 이상의 학생을 대상으로 읽기와 셈하기 두 영역에 대하여 80 시간 이내의 수업을 실시하고 성적을 한 단계 올릴 때마다 80달러의 경비를 지급한다는 것. 이 텍사나시의 실험은 1 년 후 성공을 거두게 되어 학력부진과 학습의욕 결여 문제를 안고 있는 학생들의 성적을 눈에 띄게 높였고 학습 부진아의 비율도 현저히 낮아졌다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개개 학생의 학력부진은 문제삼지 않고 학급 전체, 학교 전체의 평균점으로 평가하였다는 점과 성적만 있고 인간성은 도외시하는 교육이 되고 말았다는 점이다. 생산공장에서 약간의 불량품이 나오는 일은 어쩔 수 없는 일이므로 공장 전체의 생산성 향상만 꾀하면 되다고 하는 기업경영의 논리로 본다면, 오히려 당연한 귀결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학력이 뒤처져 있는 학생이나 부모님들의 입장에서 본다면 평균점 상승은 문제가 안되고 개개 학생의 학습 부진의 해소가 중요하다.
콜먼 리포트에 의하면 아이들의 학력에는 가정의 사회, 경제적 지위나 가정환경이 중요한 요인이 되고 있고 학교의 역할은 상대적으로 작아지고 있다고 한다. 이런 의미로 본다면 학력 부진의 책임이 전적으로 학교에만 있다고 볼 수도 없다. 학교가 교육적 조건을 갖추고 최선을 다했는데도 부진아가 생겼다면 그것은 이미 학교의 책임이 아니라는 견해도 있다. 아이들을 학교에 안심하고 맡겨 달라는 교장의 주문은 어쩌면 안이한 보증이었는지도 모른다.
교육의 성과에는 10년, 20년과 같이 장기간이 아니면 나타날 수 없는 것도 있고 1년이나 2년이라는 짧은 기간에 나타내야 할 것도 있다. 확산되고 있는 학교 불신의 풍조를 잠재우기 위해서는 짧은 기간에 올려야 할 교육성과에도 최선을 다하는 교육자의 자세가 필요하다는 소리에도 귀를 기울여야 하겠다.
(이 문장은 서울 개포중학교 손상철 교장선생님께서 세계일보 で전문가 칼럼と 「아침을 열며」에 기고한 글이다. 여기에 전재하여 참고가 되길 바라는 바입니다).
편집자의 변
'한글마당'제 3 호는 제 48회 개교 기념일 특집으로 출간하게 되었다. 이번 호에서는 본교생이 서대문구 청소년 문학상에 응모하여 당선된 작품을 수록하였다. 그리고 학생들의 작품 몇 점과 신문기사 중에서 학생들에게 도움이 될만한 칼럼 또는 문장을 선별하여 개재하였다. 원래 1 학기에 1호씩 발간할 계획이었으나 개교기념일을 맞이하여 많은 동료들이 특집을 출간한다면 그 의미가 크다고 하여 비록 시간이 촉박하지만 그래도 격려와 관심에 보답하고자 출간을 하게 되었다.
이번 특집에 학생들의 작품을 많이 개재하지 못했고 제대로 편집을 하지 못한 점이 매우 안타깝다. 독자들의 따가운 시선을 받을까 두렵기도 하나 우리들이 이번 개교기념일에 특집을 출간할 수 있었다는 것에 의미를 부여하고 싶다.
で한글 마당と 제 3 호가 나오기까지 많은 분들이 수고를 해주셨습니다. 이에 심심한 사의를 표하며 많은 지도와 편달을 바라는 바이다.
1996 년 5 월
편집자 올림
한 글 마 당 3
發 行 者 韓 國 漢 城 華 僑 中 學
編 輯 者 韓 語 敎 學 硏 究 會
主席 譚 道 經
委員 李 賢 玉 金 英 姬 李 敬 子 盧 乃 愛
表紙設計 周鴻運
揷 畵 祝振保
打 字 譚道經
印 刷 者 華星文化社
住 所 서울 西大門區 延禧 3 洞 89-1
電 話 02 334 7217
發行號數 85-1 (第 3 號)
發 行 日 中華民國 85年 5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