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마당 2
韓國漢城華僑中學
韓語敎學硏究會
차 례
운문부문
슬픈 나의 가을 高 2-3 姜珍榮 1
널 다시 만난다면 高 1-1 馬玉萍 1
수필부문
가 을 中 3-2 王艶玲 2
가 을 中 1-1 蘇宥毓 3
가 을 高 2-1 呂巧燕 4
가 을 高 2-3 王秋菊 4
계절! 계절! 계절! 中 2-1 曲壽瑩 5
꿈 中 2-4 徐英順 7
그래도 널 사랑해 高 1-1 馬玉萍 8
길 中 3-1 張佩琳 9
나의 할머니 中 3-1 學生作品 10
돈의 가치 中 1-1 陳實嬉 12
별 하나에 담긴 사랑 高 1-1 郭玉琪 12
모 험 中 3-2 孫傳芸 13
부모님의 은혜 中 1-2 姜鮮美 15
미 래 中 1-2 王秋霞 15
소중한 건 中 1-2 林 莉 16
손 中 1-1 曹 馮 16
신세대와 쉰세대 高 1-1 李宣和 17
아직도 우리 주위엔 中 3-3 方文君 18
우리 동네 中 2-3 方恩美 19
여 행 中 3-3 牟傳美 19
요즘 아이들 高 1-1 劉莉莉 20
21 세기 中 3-4 呂序麗 21
우 정 高 2-2 諸葛仙花 23
인 생 高 2-3 陳尙秀 23
자 유 中 3-1 傅修英 24
지금의 우리는 中 3-1 蘇小萍 25
재 활 용 高 2-3 祝立偉 27
중학생이 된 소감 中 1-1 牟德京 27
친 구 中 1-1 楊曉芳 28
친구와의 영원한 우정 中 1-1 曹慧珉 29
할머니의 주름살 中 1-1 畢鑑龍 29
천사인 엄마 高 2-3 劉永愛 30
총명함과 노력 中 1-1 賀昭允 31
친 구 中 3-1 姜鮮英 31
풍 선 高 2-3 楊敬玉 32
환경을 아끼고 보호하자 中 3-4 孫成賦 33
독후감
백범일지 독후감 高 2-3 邢禮昌 34
백범일지를 읽고 나서 高 3-3 劉知愛 35
'백범일지'를 읽고서 高 2-3 劉永愛 38
영원에 이른 '나흘간의 사랑' 資料室 39
보충자료
학생 생활 지도를 인내--사랑으로 資料室 40
제 2 의 인생 資料室 41
美國의 X세대와 Y세대 資料室 42
四歲 課外 資料室 43
유엔 안보리 어떻게 운용되나 資料室 44
콜레라균 資料室 44
한국에서의 석전(釋典)과 문묘(文廟) 資料室 45
博 士 資料室 46
韓民族의 쌀 역사 資料室 47
편집후기 資料室 48
슬픈 나의 가을
서대문구 청소년 문학상
운문부문 장려상 수상작
高 2-3 姜 珍 榮
어젯밤 비에 떨어진
낙엽을 생각합니다.
안녕이란 말 한마디 없이
떠나간 사람들은
가을을 사랑했기에
미워할 수가 없습니다.
아름다운 추억보다는 고개 들어 생각해 보면
가슴 아픈 추억이 많은 가을은
내 가을은 눈물이 만들어 낸 시요
빛을 잃고 떠나가 버린지 슬픔이 만들어 낸 그림이요
오래 되었습니다.. 아픔이 만들어 낸 음악입니다.
널 다시 만난다면
高 1-1 馬玉萍
널 다시 만난다면
이런 얘길 해 주고 싶어
널 정말 좋아했다고.
널 다시 만난다면
이런 얘길 해 주고 싶어.
널 진정 사랑했었다고.
널 다시 만난다면
이런 얘길 해 주고 싶어.
이젠 널 잊겠다고.
그것이
진정 네가 원하는 것이라면 말야 !!!
가 을
中 3-2 王艶玲
따갑고도 무더운 여름 햇살이 지나, 이제는 조금은 쌀쌀한 날씨 가을이 성큼 다가오고 있다. 아침과 저녁에는 늘 쌀쌀하지만 그래도 낮에는 봄 날씨처럼 포근하다고나 할까!!
여름이 지나서인지 이제는 얇은 옷은 모두 잘 치워 넣어 두고, 이제는 긴 옷들을 정리해 두어야 할 시기인 것 같다. 아침과 저녁에는 늘 쌀쌀하기 때문에 감기에도 각별히 조심해야 할 것이다.
가을이 오면 가장 떠 오르는 것, 바로 나무위에 예쁜 옷을 입고 있는 빨간 단풍잎. 단풍잎을 보고 있으면 언제나 가을이 왔다는 걸 실감할 수 있다.
가을 달력 속에는 언제나 중요한 날들이 많이 적혀져 있다. 며칠전 가을에서 가장 큰 명절인 추석이 있었다. 추석은 정만 뜻 깊은 명절인 듯 하다. 많은 친척들이 모두 한 자리에 모일 수 있도록 해 주고, 또 맛있는 음식을 많이 맛 볼 수 있게 해 주는 고마운 날 또한 추석이다. 물론 즐거운 날이지만 가장 중요한 일이 한가지 남아 있다. 가장 먼저 조상님들께 인사드리러 가야 하는 일을 잊어선 안 된다. 즐거운 추석 연휴 끝에는 언제나 슬픔이 따르기 마련이다. 많은 친척들, 그리고 식구들과 해어져야만 하고, 또 더 쉬고 싶다는 아쉬운 마음만 생기기 마련일 것이다. 하지만 나는 즐거운 마음으로 고향과 이별을 했지만, 이 즐거운 날들이 너무 빠르게 지나간 것 같아 정만 아쉽다. 그리고 조금 더 쉬었으면 하는 것도 내 간절한 소망이다.
우리 식구 중, 아마도 가장 행복한 사람은 나와 동생일 것이다. 엄마꼐서는 추석 음식 만드시느라고 바쁘시고, 아빠께서는 힘드신 일과에서 추석이 되어서야만 편히 쉬신다. 정말 아빠를 보고있을 때면 언제나 이런 즐거운 날이 있었으면 하는 바램 뿐이다.
내가 사계절 중에서 제일 좋아하는 계절은 바로 가을이다. 가을에는 오색 단풍잎들이 물이들고 덥지도 않고 춥지도 않은 약간 쌀쌀한 날씨가 마음에 든다. 그리고 가을이 되면 많은 과일들이 익는다. 탐스럽게 익은 빨간 사과, 많은 종류의 감, 그리고 달콤하고도 시원한 배, 정말 먹음직스럽고 지금 당장 먹고 싶은 과일들이다.
먹음직스러운 과일들을 생각하니 작년 시골에서 생긴 재미있는 일들이 떠오른다.
작년 가을 방학, 할며니, 그리고 큰아빠, 동생과 나는 총청북도에 있는 시골 영동으로 친척 할아버지, 할머니를 보러 즐겁게 길을 떠났다. 거의 목적지에 도착했을飁엔 먼 곳에서부터 향긋한 시골 냄새가 풍겨오고, 조용한 거리에는 졸졸졸 시냇물 소리가 흘러내려오고 있었다. 가을이어서 그런지 조금은 싸늘한 바람이 불어 오고, 저 멀리 언덕에서는 검은 염소들이 매애-매애- 하면서 즐겁게 노래를 부르며 평화로운 시간을 보내며 먹이를 먹고 있을때, 우리가 타고 간 승용차가 집 앞에 멈춰서자, 꼭 염소들이 우리 모두를 환영해 주는 듯, 계속 매애-매애-하며 짖어 때고 있었다. 모두들 즐거운 마음으로 집에 들어서자, 식구들은 모두 환한 웃음으로 우리를 환영해 주었다. 어른들께서는 차를 드시며 그 동안 나누지 못했던 이야기들을 나누시고, 나와 동생은 바구니에 예쁘게 놓인 과일을 들고 마당에 앉아 풍경을 보며 맛있게 과일을 먹었다. 그 때, 학교에 갔던 친척 동생은 돌아 오며, 우리를 즐겁게 맞이하고, 함께 냇가로 바람을 쏘이러 나갔다. 물도 가을이라 그런지 여름과 달리 차가워지고, 바람도 쌀쌀해지고 해서, 동생들과 집으로 돌아와 TV를 보았다. 시간은 흘러 밤이 되어 모두들 돌아갈 준비를 해야 했다. 그 때, 할머니꼐서는 맛있는 사과, 배, 그리고 생밤도 싸 주시고, 차 안에서 먹으라며 곶감도 넣어주셨다. 우리는 즐거운 마음으로 식구들과 헤어졌다. 너무 슬펐다. 하지만 다음 기회가 있기 때문에 마음을 가다듬었다. 차 안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러는 동안 우리는 벌써 집 앞에 다다랐고 벌써 어두 컴컴한 날씨가 되어있었다. 난 정말 그 즐겁고 행복한 시간들을 잊으려 해도 잊을수가 없다.
이러한 가을 생각을 하니 너무 기분이 상쾌하다. 그리고 더 빨리 가을이 왔으면하는 바램이다. 올 가을 방학에도 영동에 가고 싶은 생각이다. 물론 가을 방학이 좀 짧긴 하지만..... 가을 방학이 되려면 지금으로부터 약 3주일 가량 남아 있다. 그리고 방학이 되자마자 영동으로 달려가고픈 마음 뿐이다.
지금도 밖에선 싸늘한 바람이 불어 오고 있다. 나 또한 긴 소매의 옷을 입고 가을을 즐겁게 맞이 했다. 난 추억도 많고 싸늘하고 행복한 가을이 정말 마음에 들고 너무 좋다.
가 을
中 1-1 蘇宥毓
가을은 고독한 계절입니다. 나는 거리에서 만나는 사람들을 보면 왠지 모든 사람들이 고독하게 보입니다. 그리고 나무에있는 잎들이 하나, 둘 떨어지는 것을 보면 꼭 생명의 솹불이 점점 없어지는 것과 같이 생명의 한계를 느낍니다.
그 가을이 되면 나는 무엇 때문인지 릴케의 시가 생각납니다. "지금 집이 없는 사람은 이제 집을 짓지 않습니다. 지금 고독한 사람은 이후도 오래 고독하게 살아 잠자지 않고 읽고 그리고 긴 편지를 쓸 것입니다." 이러한 감정을 가진 나는 가을이 될때면 항상 슬픕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 이유를 물어봅니다. "왜 너는 이리 슬프냐"고 그 대답을 아는 나는 그것에 대한 답변은 하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무엇인가 나에 마음에 '상처'란 두 글자만 남기고 갔기 때문입니다.
가을은 끝나가고 이제 겨울이 옵니다. 거리에 있는 수 많은 낙엽들은 이제 하얀 솜처럼 생긴 눈송이에 파묻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이제 가을은 먼 훗날을 기약하며 우리의 곁을 떠나갈 것입니다.
가 을
高 2-1 呂巧燕
가을은 흔히 말하는 천고마비의 계절이자 독서의 계절이다. 낙엽이 하나 둘 떨어지고 단풍이 빨갛게 물이 들고 밤, 벼와, 과일들이 익어 가며 농부의 노고가 수확되어 우리에게 전달된다. 아마도 농부들은 이런 보람으로 더욱 열심히 할 것이다. 그리고 가을에는 빼놓을 수 없는 동양 고유의 명절인 추석이 있다. 한국의 추석은 온 가족이 모여 송편도 빚고, 조상들에게 제사도 지내고, 한 쪽에선 옹기종기 모여 앉아 이야기도 한다. 참으로 보기 좋은 광경이다.
후덥지근한 여름은 가고 선선한 가을 바람이 우리의 얼굴을 살며시 스치는데 가을 하늘 사이로 고추잠자리가 떼를 지어 하늘을 가득 메운다. 그것을 보고 있노라면 가을이 언제 소리소문도 없이 찾아왔는지 새삼 느끼게 된다.
요즘 같은 완연한 가을 날씨에는 가을 여행을 떠나는 사람들도 많다. 특히 설악산으로 많이 떠난다. 왜냐하면 설악산은 가을 풍경으로는 소문난 곳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가을을 맞이하여 각종 행사와 축제들도 많다. 특히 지금 한국에서 제일 주목받고 있는 광주 비엔날레가 열리고 있어 연극, 영화와 음악회 등등 사람들에게 많은 유익함을 준다. 거리에는 새로운 가을 옷들과 이번 가을에 유행할 칼라들도 많이 나와 있고, 사람들은 가을을 맞이하여 집안 구석구석을 가을 냄새가 물씬 풍기게 꾸미고 단장하며, 옷들도 아주 잘 정리 정돈해 놓았다. 참으로 상쾌한 기분이다. 하늘은 높고 말이 살찌는 이 계절, 좋아하는 이 가을에 잊혀지지 않는 가을 추억도 하나 만들었으면 좋겠다.
가 을
高 2-3 王秋菊
흔히들 가을을 천고마비의 계절 혹은 독서의 계절이라고도 한다. 하지만 나는 갈색의 계절이라고 부르고 싶다. 가을의 거리를 걸어보면 사람들은 커피색 계통의 옷을 많이 입는다. 갈색은 외로움, 고독, 좀 고상한 듯한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그리고 거리에 깔려있는 낙엽들 역시 갈색이고 나무들 또한 갈색이다.
가을은 여름보다 싸늘하며 겨울보다는 따뜻하다. 내가 가을에 태어나선지 나는 가을이란 계절이 내 적성에 잘 맞는것 같다.
봄의 나무들은 새로운 옷을 입지만 가을의 나무들은 또다른 새옷을 입기 위해 헌옷을 벗고 새로운 옷을 입으려고 준비한다. 그리고 나무들이 옷을 다 벗어 갈때쯤은 아마 겨울이 다가올 것이다.
가을이 되면 제일로 바쁘게 사는 사람들은 아마 농부일 듯 싶다. 농부는 가을 추수를 기다리기 위해 모를 심고 가꾸고 그리하여 일년이 지나면 애지중지 키운 곡식들이 다 자라 팔려나가면 농부들은 기쁨과 보람을 느끼게 될 것이다. 물론 농부들은 크는 것을 바라보면서 시련도 많이 겪었을 것이지만 그래도 보람을 느낀다는 것은 매 한가지다.
추석 또한 가을의 명절이다. 한국 사람들은 추석을 명절처럼 여기어 차례도 치루고 성묘도 하지만 우리는 온 가족이 모여 앉아서 월병(月餠)이라는 간식을 먹는다.
가을이 되면 나도 웬지 뭔가 허전한 것 같고 좀 고독하다고나 할까? 이런걸 보면 나도 가을을 타나 보다. 거리를 걸으면 연인들이 쌍쌍으로 거리를 걷는다. 그리고 보란듯이 어깨에 손을 올리고 나란히 걸어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가을이 되면 나의 몸에서 살찌는 소리가 여기저기에서 들려오는 것 샅다. 아무리 천고마비의 계절이라해도 살찌는건 싫다. 그래서 내가 결심하기를 "가을이 되면 밥은 1/2로 과일과 야채는 두배로"라는 결심을 갖고 다이어트를 시작하려고 한다. 이번엔 정말 성공했으면 좋겠는데....
계절! 계절! 계절!
中 2-1 曲壽瑩
1년엔 사계절이 있다. 봄·여름·가을·겨울 계절에 따라서 기후도 각각 다르다.
봄은 따뜻한 엄마의 사랑과 같고, 여름은 연인들의 사랑이 타오르는 마음과 같고, 가을엔 고독한 남자의 쓸쓸한 가슴과 같으며 또 겨울은 날카로운 바람이 마치 칼날 같다. 사계절의 특성은 가각 있다.
봄은 겨울의 끝이다. 봄은 사계절중 첫번째 계절이다. 봄이 첫번째 계절인 만큼 할일도 많다. 첫번째 할 일은 겨울에 쓴 모든 물건들을 정리해서 넣어 두고 작년에 정리했던 봄에 쓸 물건들을 꺼내어 서랍과 장농에 집어 넣어야 한다. 또 두번째는 개학을 했으니 방학중 생겼던 모든일들을 잊어버려야 한다. 만약 방학때 생겼던 모든일들의 잡념을 없애야 한다. 그래야 공부에 지장이 없기 때문이다.
봄의 기후는 엄마의 마음과 같은 포근한 날씨다. 봄비가 내리면 푸른 잎싹에 은구슬 같은 물방울이 고여있고, 햇볕이 나올 땐 푸른 새싹들이 마음껏 기지개를 편다. 봄엔 아이들이 첫 입학을 하고 처음으로 선생님과 친구들을 알게된다. 또 졸업을 앞든 학생들은 설레임에 잠을 못 이룬다. 봄은 정말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계절인 것 만큼 우리가 하는 일마다 정확하고 물론 책임도 알아서 져야 할 것같다.
여름엔 시원한 물에 빠지고 싶은 계절이다. 왜냐하면 짜증이 많이 나는 계절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으시으시한 공포물로 더위를 잊으려고 한다. 공포 드라마, 공포 시리즈, 공포 영화등 또 서점에 가면 공포물의 책들이 순식간에 다 팔리고 만다. 그래서 난 여름을 어쩔땐 좋아하면서 반면엔 또 싫어한다. 내가 여름을 좋아햐는 점은 과일이 많아 매일매일 여러 가지의 과일들을 먹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여름엔 뭐든지 풍성하다. 과일도 많고, 야채도 많다. 수박·참외· 복숭아·앵두·포도·살구·자두등 과일들은 모두 내가 좋아하는 과일이다. 싫어하는 점은 여름엔 햇볕이 너무 강해 사람들의 마음을 짜증나게 하는 점이다. 작년과 올해는 유난히 더운데 뉴스에선 세계가 오염되어서 그렇다고 한다. 내 생각엔 이것을 보고 '자업자득'이라고 하는가 보다. 여름엔 햇볕 때문에 현기증이 나는 사람도 많다. 우리는 이런 계절일수록 몸과 마음을 더욱 강하게 다쳐 여름을 건강하게 지내야 겠다.
가을은 고독한 계절이라고 할 수 있다. 여러 사람들은 가을을 고독한 계절, 남자의 계절, 또 독서의 계절이라고 많이 얘기들을 한다. 하지만 난 고독한 계절이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가을엔 여름에 돋았던 잎싹이 시들어 버리는 계절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꼭 나무 가지가 올 여름을 기쁘게 같이 지내온 친구가 떠났을 땐 얼마나 외로울까를 연상하는 것이고, 남자의 계절이라고 그런것은 남자의 마음이 여자보다 쌀쌀해 가을의 날씨와 흡사하다고 생각해서 그렇다고 본다. 독서의 계절은 낙엽지는 길에 혼자 앉아 외로이 책속에 빠져드는 느낌을 생각한 점이라서 그런것 같다.
가울은 또 결실의 계절이다. 봄에 시작했던 일들이 모두 결실과 결과를 얻는 계절이다. 봄에 뿌렷던 씨앗은 작은 나무로 자라고 봄에 피었던 꽃은 열매를 맺고, 여름에 시작했던 모든것은 결과가 있을 것이다. 이런 계절에 만약 결실과 결과가 없다면 봄엔 어디서 무엇을 했는지 둘러보고 다음 해부터는 결실과 결과를 얻기 위해 열심히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겨울은 내가 제일 좋아하는 계절이다. 왜냐햐면 겨울엔 스키를 즐길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비록 스키를 잘 타진 못 하지만 눈에서 달리는 느낌은 참 스릴 만점이다. 눈에선 넘어지거나 구르면 안 아프다고 생각하지만 눈에서 넘어지는게 사실은 더 아프다. 그래서 난 되도록이면 스키장에선 안 넘어지려고 노력을 하지만 꼭 넘어지기 마련이다.
겨울은 아주 못 된 성미를 갖고 있다. 그 날카로운 바람이 우리의 피부에 닿을 때 마다 꼭 칼날이 스쳐 지나가는 것 같다. 꼭 목도리와 장갑을 지참하지 않으면 피부가 상할 것만 같은 느낌이 드는데 꼭 겨울이 나를 미워하는 것 같다. 나는 겨울에 대해 아무 감정이 없는데!
겨울엔 1년에 생겼던 일들을 정리해야 한다. 좋은 일은 마음에 묻어 놓고 나쁜일은 아무 생각없이 잊어버리면 된다고 생각하며 내년엔 꼭 무엇 무엇을 해야겠다며 도전을 하는 생각을 늘려야겠다.
계절, 계절은 참 약속을 잘 지킨다. 봄이 지나면 여름이, 여름이 지나면 가을이, 가을이 지나면 겨울이 온다. 계절은 이 일을 매년 반복한다. 그래도 약속을 어긴적은 없다. 우리가 만약 약속을 잘 지키면 사회 생활에 나가선 분명히 반은 성공을 한 것으로 본다.
꿈
中 2-4 徐英順
사람들은 적어도 모두다 하나씩의 꿈들을 갖고 있을 것입니다. 나 역시 꿈을 갖고 있다. '꿈, 꿈' 이란 글씨 자체로도 참으로 아름답다는 것을 세상 모든 사람들이 다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사람들은 모두 이렇게 말합니다. 꿈은 마음씨가 맑고 아름다운 사람들만이 가지고 있다고, 하지만,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꿈은 마음씨가 착하고 개끗한 사람들만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다 꿈을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사람들은 모두다 맑고 아름다운 마음씨를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아름다운 꿈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좋아집니다. 그래서, 저는 항상 마음씨가 아름다운 친구들만이 같이 놀고 친해지려고 많은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아름다운 대화만 나누면 마음이 맑고 아름다워지고, 재미있는 얘기를 나누면 답답했던 마음이 확 풀리는 것 같아서 입니다.
미래를 바라보는 사람들은 생각하면 마음이 편안해 집니다. 지금 생각해보니 꿈이란 것도 종류가 참 많이 있는 것 같습니다. '좋은 꿈, 나쁜 꿈, 슬픈 꿈, 아름다운 꿈, 무서운 꿈(앙몽), 임산부가 꾸는 태몽, 다음날에 복이 온다는 복꿈(개꿈, 용꿈, 돼지꿈 등등) 그리고, 미래를 바라보는 꿈도 많이 있습니다.
'꿈'은 참으로 맑고 아름다운 것입니다. 저 역시 꿈을 가지고 있습니다. 제 꿈은 미래가 오면 이 나라의 모든것 아니, 이 지구의 모든것을 다 아름답게 바꾸고, 설계하고 싶습니다. 교통사고도 없고, 길가에 있는 쓰레기도 깨끗하게 없고 싶습니다.
꿈이라고는 너무나도 벅찬것 같은데 언젠가는 제가 말한대로 이렇게 아름다운 세상이 올 것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꿈 속으로 들어가보면 우리가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운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것은 제가 어느날 소문으로 들은것이지만 잠들기 전에 기도를 하면 좋은 꿈을 꾸고, 잠들기 전에 좋아하는 사람의 사진을 베개 밑에다가 집어 넣으면 꿈 속에서 그 사진속의 주인공이 나온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ꃹ 번이나 시도를 해 봤습니다. 바로 소문대로 였습니다. 1주일 동안 좋아하는 사람의 사진을 한번도 빼먹지 않고 베개 밑에다가 매일 집어 넣으니까 정말로 그 사진속의 주인공이 나타났습니다. 꿈은 정말로 좋은 것 같습니다. 하지만 악몽을 꿀 때에는 꿈이 무서울 때도 있습니다.
그래도 저는 꿈이 좋습니다. 왜냐구요? 그 동안 제가 꿈속에서만 보았던 미국을 드디어 제가 직접 가게 된 것입니다. 다섯째 이모가 미국으로 시집을 갔기 飁문입니다. 공항에서 이윽고 기다리던 출발! 비행기 안에서 미국으로 출발 할때 무슨 꼭 마치 꿈을 꾸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어느 날, 요 며칠 꿈 속에서 매일 선생님께 칭찬 받고 1등하고 친구들과도 사이좋게 노는 꿈을 꾸었습니다. 저는 그 꿈이 정말로 좋았습니다. 정말로 이 꿈이 현실로 돌아온다면, 세상이 무너져도 모를 정도로 좋을것 같습니다. 하지만, 꿈이라도 좋았습니다. 그럴 땐 눈을 뜨는 것이 너무도 두려웠습니다. 모든 꿈이 산산히 부서질것만 같아서, 상상처럼 이루어지지 않으리라는 불길한 예감은 없습니다. 열심히 노력하면 다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법은 없습니다. 옛 말에 꿈을 믿으면 그 꿈이 이루어 진다는 속담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전 지금도 꿈을 믿고 있습니다.
저의 삼촌도 역시 꿈을 버리지 않고 있습니다. 이건 좀 창피스런 말이지만 저의 삼촌은 일주일에 한 번씩은 꼭 복권을 사곤 합니다. 삼촌 말로는 복권이 당첨될 때까지 꿈을 버리지 않고 산다고 하였지만 지금은 그래도 좀 걱정이 됩니다. 언제 당첨이 될지? 하지만 삼촌은 꿈을 버리지 않는다고 하니까 마음이 좀 놓였습니다.
'꿈, 꿈'을 가지고 있으면 행복합니다. 저는 정말로 꿈이 너무 큰 것들만 꾸는 것 같습니다. 사람들도 모두 이렇게 큰 꿈을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행복'도 참 좋은 것입니다. 모든 사람들에게 다 행복이 있을 것입니다. '불행'은 오지 않습니다. 꿈을 믿으세요. 전 지금 이 문장을 쓰는 것이 좀 그렇습니다. 지금도 실감이 안난다는 것입니다. 전 문장을 그렇게 잘 쓰는 편도 아닌데 선생님이 절 이렇게 뽑아주실 땐 정말로 기뻤습니다.
이 문장이 끝나기 전에 제가 이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전할 말이 있습니다. 여러분 꿈을 버리지 맙시다. 희망을 가지세요. 꿈을 버리지 않고 희망을 가진다면 꼭 좋은 일이 생길 것입니다. 저도 요즘에 역시 매일 좋은일만 생깁니다. 전 꿈을 믿고 있어서 요즘 매일 좋은 일만 생기는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여러분도 꿈을 믿으세요. 꼭 꼭 좋은 일이 생길 것입니다.
그래도 널 사랑해
高 1-1 馬玉萍
너를 생각하면 눈물이 날 것 같아. 네 사진을 보면 네가 부고 싶어지고 거리를 지나가다 공중전화를 보면 네 집 전화번호가 떠올라 너와 이름이 같은 사람을 보면 혹시 네가 아닐까 생각하고 까페에서 네가 나에게 주었던 레코드판의 음악이 흐르면 난 한 동안 멍해지곤 해. 나의 짧은 머리가 길게 자라면 예쁘게 묶으라고 하트모양의 핀을 주었고 네 집에 놀러갔을 땐 내 손가락에 꼭 맞을 거라면서 네가 까던 반지 하나를 내 손가락에 끼워 주었지. 언젠간 사소한 일로 다투었을 땐 미안하다며 넌 목걸이 하나를 선물했었어. 난 사실 목걸이를 선물받을 만큼 화가나지는 않았었는데....
하지만 이젠 그 모두기 소용이 없어 너와 나 사이엔 너무나도 커다란 장벽이 있으니까 널 잊으려 해도 너를 생각하게 하는 것들이 너무 많아. 그래서 난 너무 힘들어. 너는 왜 나를 잊으라 말해 놓고 너를 기억할 수 있는 것들을 이렇게도 많이 남겨두고 간 거니? 네가 미워!
하지만 널 사랑해!!!
길
中 3-1 張佩琳
사람은 자기 운명의 창조자이고 주체자이다. 우린 우리이의 모든것을 주제하고 있으며 우리의 인생도 주제하고 있다. 인생이란 가득한 기쁨과 행복이 넘칠 수도 있고 또 죄악과 불행이 있을 수도 있다. 그래서 우린 인생의 첫 걸음부터 많은 결정을 해야 한다.
우리는 도대체 어떤 길로 가야 우리의 인생을 아름답게 살 수 있는가?
우린 모두 다 다른 사람보다 무엇을 좀 더 많이 가지고 있다. 이것은 독특하고 계속 의미가 깊고 또 비범한 점이다. 이 세상에서 모든 것은 바로 저기서 그와 만나고 그 한 번의 만남은 다시 만날 수 없다. 이 것은 모든 사람을 위해 중요하고 신성하고 영원히 변치 않은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자신을 아껴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정확한 방향을 잡고 방황하지 말고 시간을 낭비하지 말고 능력을 잘 발휘하여 노력하며 살아야 한다.
길에서 우리는 마치 향기로운 꽃송이와 푸른 초목 그리고 시원한 바람을 만나듯이 우리의 앞날은 희망과 광명이 가득 찬 이때 우리는 절대 득의망형(得意忘形)하지 않아야 한다. 그리고 더욱더 조심하고 앞날을 위해 평탄한 날을 개척해야 한다. 하지만 때로는 우리의 앞에는 험난과 어둠이 있을때도 있다. 시원한 바람도 없고 향기로운 꽃 냄새도 사라져 머렸을 때 이때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주저 않아 버리고 그 때의 생명은 끝 없는 절벽 아래로 떨어지게 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인생의 여정에서 반드시 조심스럽게 행동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마치 뜨거운 햇빛 아래서 그리고 무더움 속에서 자전거를 타고 힘들게 달리면서 체력을 팔며 낮은 보수를 받고 생활을 하는 고된 인생을 살아가야 할 것이다. 그러기에 우리는 우리의 인생을 위해서 반드시 신중하고 조심성 있게 행동할 것이다.
옛말에 '태양의 빛이 부족하다고 불공평하다고 원망을 하지 말고, 자기의 가지에 꽃이 피지 않은 것을 원망하라' 이 말은 즉 우리의 조물주가 불공평하고 혹은 기회가 불평등하다고 탓하지 말고 꼭 따진다면 그것은 우리 자신이 노력을 하지 않아도 기회가 왔을 때도 그것을 잡지 못했기 때문이다. 소위 자기 운명의 창조자는 자신이라는 것, 그러므로 우리는 인생의 여정에서 단 한 발자욱도 절대로 잘못 내밀어서는 안된다. 왜냐하면 그 단 한번의 실수로 우리의 운명을 바꿔버릴 수 있기에 그것으로 인하여 우리의 인생도 달라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중대한 선택을 행할때 더 더욱 잘못을 범하지 않아야 한다. 하지만 우리는 그 선택의 결과를 반드시 용기있게 받아들이며 그 책임을 져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인생길에서 반드시 높이 그리고 멀리 바라 보며 한 발 한발씩 용기 있고 결단력 있게 그래야 밖으로부터의 온갖 유혹과 압력을 막을 수 있는 능력이 생겨 두려움을 극복하여 이미 한 번 실채 했지만 그러나 인생의 여정에서 절대 두번 실패는 할 수 없다는 마음 가짐으로 열심히 노력하며 앞날을 살아 나갈 수 있으리아.
나의 할머니
中 3-1 學生作品
이 세상에서 나를 가장 사랑해 주고 아껴주시는 분은 아마도 부모님 다음은 할머니일 것이다. 아니 할머니가 나를 더 사랑할지도 모른다.
우리 엄마, 아빠는 아주 바쁘다. 한마디로 말하자며 맞벌이 부부다. 그래서 할머니는 내가 태어난 그 순간부터 지금까지 나를 길러주셨다. 하루도 빠짐없이 나를 돌봐주셨다.
나는 어렸을때 너무나도 눈물이 많았다. 지금도 내가 그렇게 울었어요? 물어봐도 이렇게 대답들 한다. "말도 못했지, 다시는 생각하고 싶지 않아" 라고 그정도였다. 나도 생각이 난다. 할머니가 항상 하시는 말씀이"아이고, 우리 문정이 울지만 않으면 참 이쁠텐데" 이런 말이 가끔 떠오르곤 한다.
잘못해서 내가 아빠, 엄마한테 혼났을때 할머니가 나를 감싸주곤 하셨다. 감싸주는 것은 않좋다고 하지만 할수 없나 보다.
할머니께서는 내가 학교를 다니기 시작했을때 집이 너무 멀어서 빨리 일어나야만 했다. 그래서 할머니는 나보다 훨씬 일찍 일어나셔서 도시락을 챙겨 주셨다. 그리고 아침밥을 해 주셨다. 할머니는 무엇보다 나의 건강을 가장 걱정해 주시고 살펴 주셨다. 그래서 아침밥을 안 먹으면 학교에도 가지 말라고 하셨다. 먹기 싫을때는 한 숫가락만이라도 꼭 먹으라고 하셨다. 내가 아프면 밤새도록 내곁에 앉아 나를 간호해주셨다. 할머니는 자신의 몸이 아파도 나의 건강을 더 중히하셨다. 내가 집에 늦게까지 않오면 할머니께서는 너무나도 걱정하신다. 차정류장에 서서 나를 기다리고 계신다. 그리고 내가 오면 하는 말씀이 "우째 늦었어, 전화 좀 하지. 걱정했잖아." 그 몇마디 밖에 없으시다. 집안에 들어가면 할머니는 먼저 저녁밥을 지어 주신다. 누가 뭘 선물 해 준게 있으면 예쁘고 귀한것은 모두 나에게 주신다. 할머니가 나에게는 그 무엇도 아깝지 않다는 것을 나 스스로도 느낄 수 있다. 내가 잘못을 했을 때 할머니는 힘없는 목소리로 나를 혼내신다. 그럴때마다 나는 할머니가 늙으셨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느낀다.
1년 365일 할머니는 하루도 빠짐없이 매일 똑같은 나날을 보내고 계신다. 나를 위해서 하지만 몸은 하루하루 허약해 지신다. 나는 할머니의 그런것을 말로 안해도 알 수 있다.
내가 중학생이 되자 할머니는 더욱 나를 걱정하신다. 항상 조심하고 밤 늦게까지 놀지 말고 빨리 집으로 오라고 할머니께서는 나를 어려울 때보다 덜 혼내시는것 같다. 왜냐하면 할머니는 내가 작은 일에도 예민한 시기인 것을 아신다. 그래서 동생이랑 싸워도 거의 동생이 혼나곤 한다. 동생한테는 너무 미안하다. 하지만 동생도 할머니가 왜 그러시는지 알기에 다행이다.
헐머니와 나는 눈빛만 보아도 알 수가 있다. 어디가 아픈가 보다. 뭐가 잘못된것이 있나 보다. 시험을 못 봤나? 할머니는 다 아실수가 있다.
며칠전 이었다. 내가 밖에서 무엇을 잘 못 먹고 왔다. 그 땐 멀쩡하다가 밤11시쯤 되니까 갑자기 토했다. 할머니는 나가셔서 약을 사 오신다고 하셨다. 몇분, 몇 십분이 지났는데도 안 돌아오시는 것이었다. 나는 아파서 거의 미칠 지경이었다. 그 때 할머니가 오셨다. 약국들이 다 문을 닫아서 한참 찾다가 막 문을 닫으려고 한 약국에서 사 온 것이었다. 나는 그 때 할머니에게 너무 고마웠다.
할머니 이마의 주름이 하루가 갈수록 늘어나고 몸이 기운이 자주 떨어졌다. 그래서 거의 일어나지도 못하셨다. 그런데 병원에 자주 가다보니까 많이 나으셨다. 우리 할머니가 아프시면 난 정말이지 모든게 하기가 싫어진다. 할머니께서는 내가 아플때는 항상 옆에서 간호해 주셨는데, 나는 도대체 할머니께 무엇을 해 드려야만 하나? 낮에는 학교가고 저녁에 늦게오고 할머니는 텅빈 집에 혼자 계신다. 만약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나는 생각 조차 하기 싫다. 아플때 집에 혼자 계시면 얼마나 쓸쓸하고 외로우실까? 나는 어떤 잡지에서 이런 통계를 보았다.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제일 서러울 때는 아플때 곁에 아무도 없다는 것이다. 나는 거 것을 보고 우리 할머니는 안그러시겠지 했지만 우리 할머니도 예외일수는 없다.
할머니는 매일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바람이 부나 하루도 안 빠지고 부처님께 절을 하신다. 그 누구도 할머니의 지극한 정성을 따라올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할머니께서 나에게 배풀어 주시는 은혜는 하늘보다도 넓고 바다보다도 깊을 것이다. 할머니께서는 나에게 바라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저 내가 친구 잘 사귀고 말 잘 듣고 건강하게 자라는 것 밖에는 바라는게 없을 것이다. 어느 부모도 우리 할머니와 비교할 수 없다. 나 자신은 그런것 같다. 우리 부모님들도 할머니께 잘 하라고 언제나 말씀하신다. 하지만 나는 안그래도 그럴 셈이었다. 공부 열심히 하고 할머니 말씀 잘 듣고 커서 나의 꿈을 이룬 후에 할머니를 내가 모시고 행복하게 해 드릴 것이다. 나는 누구보다도 할머니를 공경하고 사랑한다. 할머니께서 나에게 배풀어 주신 은혜를 어떻게 갚을 수 있을까? 할머니가 건강하셔서 오래오래 사시고 더 젊어지셨으면 좋겠다. 할머니가 어렸을 때부터 지금 까지 나를 보살펴 주셨다. 내가 속을 썩인 적이 많다. 다 내가 철이 없었다고 생각해 주셔서 너무도 감사하다. 할머니가 나에게 해 준 것은 글로도 표현할 수 없고 말로 할 수가 없다. 나는 "할머니 제가 커서 꼭 보답하겠습니다. 그 때까지 오래오래 사셔서 잘 지켜봐 주세요."라고 맹세합니다.
돈의 가치
中 1-1 陳實嬉
돈이란 무엇일까? 그것은 없어서는 안되는 것이다. 만약 돈이란 존재가 없어진다면 이 사회는 발전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돈을 적절히 사용할 줄 모른다면 돈은 끔찍한 용기가 될 수도 있다.
만약 너무 돈에만 집착 한다면 돈을 벌기위해서만 힘을 쓸것이고 이것이 심해지면 오늘날과 같은 어이없는 일들이 일어날 것이다. 예를 들자면 돈 때문에 부모를 살해한 일, 재료값을 아끼려고 부실공사를 해서 건물이 붕괴 되는일, 한 나라 대통령이 수 천억을 가로 채는일 이러한 일들은 모두 돈이라는 존재에 너무 집착을 해서 일어난 일이라고 생각한다.
반대로 돈의 소중함을 모르고서 흥청망청 써 버린다면 더 이상의 발전이 없을 뿐더러 오히려 점점 퇴보할 것이다. 또 생활의 여유가 없기 때문에 항상 하루살이 같은 생활을 하게 될 것입니다.
돈이란 분명 우리에게 꼭 필요한 것이다. 누구든지 돈이 없으면 살 수 없다. 그러나 이 돈을 '어떻게 모으고 어떻게 쓰는가'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어른들의 돈에 대한 나쁜 일들을 보면서 우리는 그러면 안 될 것이며 어른들의 좋은점도 본받아 우리가 미래에 개척해 나갈 세상은 지금보다 더 화목하고 발전된 세상이 되었으면 한다.
별 하나에 담긴 사랑
高 1-1 郭玉琪
오늘 처럼 비가 개인 오후에는 항상 창가에 기대어 비를 그리곤 한다. 돌이켜 보면 후회스럽고 기쁨보단 슬픔이 더 많았던 너와 함께한 소중한 나의 추억들을 되새기며....
너를 알게된지 어느덧 2년이란 시간이 흘렀구나 우리가 함께 지냈던 시간은 그리 길지는 않았지만 지금쯤은 아마 서로에 대해 모르는 것이 없을 정도로 죽이 잘 맞는 사이가 되어 있었을텐데.....
제작년 여름방학때 비를 처음 만났었지. 혹시 기억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어설픈 첫 만남속에 너의 첫 마디는 "영원히 널 좋아할 것 같아"라구..... 그 때 너의 눈동자가 어땠는지 알아?! 마치 하늘에서 반짝이는 별처럼 아름다웠어 그런 널 보냈어야만 하다니....
행복했었어 너와 함께한 시간들.... 우린 힘들 때면 언제나 뒷산에 올라가서 맘껏 소리지르고 서로를 의지하며 다시 일어났는데... 지금도 그렇게 힘을 내보려 하지만 난 너에게서 사라진 존재인지 이제 그런 힘이 생기질 않는다.
오늘도 공부한다는 펭계를 대고 연습장에 너의 이름만 적어대는 바보같은 날 넌 어떻게 생각해? 한편으론 가슴 아파하고 또 한편으로 비웃겠지? 너는 정말 나한테 미안하지도 않아? 이렇게 쉽게 날 잊어버릴 수 있냐구? 그래 넌 날 금방 잊어버릴 수 있겠지만 난 그럴수 없잖아. 난 아직도 네 생각이 나는데 아무것도 할 수가 없어. 그저 울거나 널 그리워 할 수밖에...
이젠 웬지 어떤 희망도 가지지 못할 것 같아. 물론 제 탓은 아니겠지 하지만 힘들어 하는 내게 제가 있다면 이런 아픔은 겪지 않았을 거란 생각에 말도 안되는 원망도 했었어. 며칠 전엔 너에게서 온 편지를 정리하면서 한 번 씩 읽어봤다. 읽으면서 난 또 물고 말았지. "이젠 정말 울지 않아야지.'하고 다짐했던 것이 또 무너져 버리고 말았어. 특정한 이유없이 마냥 멀어져만 가고 일부러 만나려 해도 마주칠 수가 없었던 너....
넌 정말 너무 순수하고 깨끗한 마음을 가져서 나랑 너무 다른 것 같더라. 그래서 내가 쉽게 다가 설 수 없는 걸까...? 언제나 높이 있는 너에게 난 괜한 고통만 안겨주는 것 같았어. 그렇지만 난 왜 힘들때마다 네 생각부터 나는건지..? 너 한테만은 내 모든것을 보여주고 싶고, 의지하고 싶고, 너를 나만 차지하고 싶고.. 이런 모든 것들이 너를 부담스럽게 너를 힘들게 한다는 걸 조금도 생각하지 않은 채.... 난 아직도 너를 위해 별을 접고 있어. 보내지도 못한... 나 정말 바보같지? 난 나밖에 모르나봐 네 마음은 조금도 헤아려줄 줄 모르는 이기주의자...
너에 대한 내 감정을 차마 말로 다 할 수 없겠다. 하지만 알아주리라 믿어. 내가 있는 이 세상에는 항상 너를 사랑해 주는 사람이 있다는 걸... 이 세상에서 아무리 많은 사람들이 널 사랑한다고 해도 나만큼 널 사랑해 주는 사람은 없을 거야 내몸이 이 세상에 태어나는 그 순간부터 한 줌 흙으로 변해 버린다 해도 난 영원히 널 사랑해. 나 혼자만의 사랑이라고 해도 난 행복해. 이렇게 너에게 글을 쓸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 항상 널 지켜주는 그런 사람이 옆에 서 있음을 잊지 말아줘. 너와 같은 하늘 아래 산다는 것만으로도 삶에 대한 온기를 느낄수 있으니... 널 잘 모르겠지만 이토록 아름다운 마음을 갖게 해 준 널 사랑해...
이제 "영원히 널 잊지 않겠다."는 생각으로 조금씩 허물기로 했어 너도 내가 이렇게 살기를 바라지?! 서로 다시 만나는 날 서로의 반쪽을 소개하며 씩씩하게 활짝 웃자! 화사한 안개꽃 처럼....
*창을 열고 턱을 기대어 밤 하늘을 바라보는 네 앞에서 난 한 줄기 스치는 우정으로 사라져도 좋다. *
모 험
中 3-2 孫傳芸
저에겐 군고구마처럼 뜨끈뜨끈한 기억에 길이길이 남은 모험을 했어요. 그건 바로 미아가 될 뻔했던 일입니다. 그 사건은 바로 5 년 전의 얘기예요.
제가 열 살 때, 학교에선 가을 여행으로 내장산엘 갔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와우'하고 소릴 질렀죠. 그렇게 기분 좋게 내장산에 도착하자 모두들 도시락을 먹기 시작하는 거예요. 저도 마찬가지로 도시락을 맛있게 먹고 친구들과 재미있게 놀고 있었어요. 그렇게 놀다가 집에 돌아갈 시간이 됐나봐요. 그땐 몰랐어요. 전 그저 가방을 메고 빈둥빈둥 단풍잎을 많이 줍고 있었어요. 근데 사건이 시작됐어요. 어느새 저 혼자가 되어 버렸어요. 멀리 앞을 보니 올 때 탔던 버스가 막 가는 거예요. 전 막 버스를 쫓아갔죠, 근데 절 끝내 보질 못하고 그냥 매정하게 가는 거예요. 저는 숨이 찬 나머지 그 자리에서 멈췄어요. 눈에선 눈물이 끊임없이 나오는 거 있죠. 갑자기 이런 상황이 되자 머리 속엔 아빠 엄마의 얼굴이 저절로 왔다갔다하는 것예요. 순간 너무 무서웠어요. 하지만 그땐 나 말고도 많은 차들이 있었어요. 왜냐하면 제가 서 있던 곳은 고속도로 였거든요, 전 고속도로 길을 따라 계속 걸었어요. 한 2 시간 넘게 걸었을 것예요 무척 다리가 아팠죠, 계속 가다가 도로 중간에 스피커가 있었나봐요. 갑자기 아이를 찾는다는 방송이 나왔어요. 전 생각을 했어요. 그게 날 찾는 거였으면 했는데, 그게 바로 절 찾는 방송이었어요. 끝부분에는 '이 아이를 보신 분은 내장산 방송국으로 연락을 해주십시오.'라는 것이에요. 전 깜짝 놀랐어요! 하나님이 절 구해 주신 것이라고 생각했죠. 하지만 기쁨은 금방 사라졌어요. 문제는 고속도로에서 내장산 방송국이 어디 있는지 알아 야죠.
방송은 계속 나오는데 차를 타고 있는 사람들 듣지도 보지도 않고 그저 휘-잉하고 그냥 가는데 그땐 마음속에서 그저 누가 이 방송을 듣고 날 좀 봤으면 하고 하는 생각이 계속 들고, 마음은 자꾸 조이고, 눈물만 계속 흘렀어요. 계속 울다 보니 배가 고팠어요. 바위에 앉아 가방을 뒤적거리다가 간신히 발견한 콜라와 오징어 땅콩, 전 처음으로 눈물 젖은 과자를 먹어 봤어요. 정말 말이 아니더군요. 먹으면서도 엄마 얼굴이 흐릿하게 보이는 거 있죠. 길은 점점 깜깜해지고 도와주는 사람은 없고 정말 그때 고생이 말이 아니었어요. 근데 마침 이 때 어떤 조그만한 흰색 용달차가 오는 거예요. 그 아저씨가 절 봤나 봐요. 차에서 내리더니 "전윤아, 너 여기서 뭣하고 있니?" 그러는 거예요! 아하! 자세히 보니 옆집 아저씨였어요. 전 기쁜 나머지 말이 나오지 않았어요. 전 천천히 숨을 들여 마시고 아저씨 한데 전 길을 잃었다고 했죠. 그리고 아저씨와 함께 내장산 방송국으로 갔죠. 내장산 방송국에 도착하자 엄마가 바로 앞에 있는 거예요. 눈물 때문에 흐릿하게 보였지만 가까이 에서 엄마 얼굴을 보니 아까만 해도 있었던 공포가 금방 사라지는 것 있죠. 집에 도착해서 따끈따끈한 밥을 먹고 있는데 자꾸 아까 먹었던 눈물 젖은 과자가 생각나더군요. 그 사건 이후로 전 한 번도 길을 잃은 적이 없어요. 전 밖에 나가면 항상 길을 물어 봐요. 혹시 내가 또 길을 잃어버리지 않았나 해서죠. 그리고 옆집 아저씬 저에겐 은인이고 고마우신 분이에요. 어떻게 생각해 보면 낭만적인 추억이라고 생각돼요.
아름다운 가을에 이렇게 잊혀지지 않는 모험을 해봤으니 말이에요. 집에서 가방을 끌러 보니 제가 그때 주웠던 단풍잎이 있는 거예요. 전 기분이 좋았어요. 벌써 5년이나 지난 일인데도 하나도 잊혀지지 않는 거 있죠.
지금 생각하면 우습지만 전 태어나 처음으로 이렇게 큰 모험을 한 것이 매우 자랑스럽게 생각됩니다. 사람은 크던 작던 모험을 해봐야 경험도 많이 쌓이고 그렇게 되면 자연적으로 큰 사람이 될 수 있는 것이 아니겠어요!
부모님의 은혜
中 1-2 姜鮮美
부모님은 참으로 고마우신 분들입니다. 우리들을 낳아 주시고 이때까지 키워 주신 분들은 누구일까요? 그 분들은 바로 부모님들입니다. 이 세상 부모님들의 마음은 모두 똑같습니다. 자기의 자식이 아프면 병간호하시느라 잠도 제대로 이루지 못하지는 분들 역시 부모님입니다. 우린 이런 부모님을 위해서 무엇을 할 수 있습니까? 우린 아직 어리니까 할 수 있는 일이 적습니다. 그러나 열심히 찾으면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아주 가까운 곳에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효도입니다. 아주 비싼 선물을 드려서 부모님께서 기뻐하시는 그런 효도 말고 쉽게 할 수 있는 성의가 있는 그러한 효도를 해야 합니다. 우리가 학교에 다니면서 조금씩 쌓아 가는 지식은 모두 부모님의 힘으로부터 쌓아 가는 것입니다. 부모님의 은혜는 참으로 고귀한 것입니다. 아무리 넓은 땅과 바다로도 보답할 수 없습니다. 이 세상 모든 것들과도 바꿀 수 없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부모님의 은혜입니다.
미 래
中 1-2 王秋霞
우리는 미래를 향해 날아가고 있습니다. "과연 미래는 더 나은 곳일까요?" 아니면, "환경오염이 지금보다 더 심해진 곳일까요?" 우리는 미래를 책임지고 있는 학생이기 때문에, 이러한 문제점들을 생각해 보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오늘날, 토질오염·공기오염·수질오염으로 인해 우리가 살아야 할 이 지구는 생명의 위협을 받고 있습니다. 지금도 환경오염으로 인해 사람의 생명이 길어야 칠십, 팔십, 미래에는 어쩌면 오십을 못 넘길 지도 모릅니다.
또한, 환경오염이 심각해진 오늘날 왜 또 사람들의 공중도덕은 사라져 버린 걸 것까요? 공중도덕이 없어진다면 아마 이 세상은 쓰레기장이 될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나부터 실천하자"는 마음을 가지고, 미래의 자손들이 살아야 할 이 지구의 환경을 보존하기 위해 우리 다 같이 노력합시다.
소중한 건
中 1-2 林 莉
우리는 아름다운 초록빛 지구 안에서 맑은 공기와 함께 숨을 쉬며, 세상에 있는 모든 만물들과 더불어 기뻐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가 갖은 특권중의 하나는 바로 모든것을 함께 할 수 있다는 것이 아닐까요? 우리는 가정에서나 학교에서나 정말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가장 존귀한 오물들을 지니고 있습니다. 이 아름다운 세상에서 모든 것을 혼자 해야 한다면, 우리는 음식을 앞에 두고 먹을 수 없는 장님과도 같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가정에서는 부모님, 형제와 함께 학교에서는 친구들, 선생님과 함께 이렇게 우리를 에워싸주는 이러한 울타리 속에서 나날이 성장해 가고 있습니다.
기독교의 십계명중 이러한 말이 있습니다.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것과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그렇습니다. 우리는 우리와 함께 하고 있는 사람들의 소중함을 깨달아야 합니다. 우린 이러한 울타리 속에서 모든 것을 체험하고 있습니다. 대로는 샘물이 펑펑 솟듯 기쁨이 넘칠때도 있고, 아기새를 잃은 어미새와 같이 슬픔에 잠길때도 있습니다.
이때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과연 무엇일까요? 기쁨도 함께 하면 그 기쁨이 몇 배로 늘어날 수 있고, 슬픔 또한 함께 하면 그 슬픔을 반으로 줄여 줄 수 있는 내 주변의 사람들입니다. 우린 그 사람들과 함께 인생에 정말 값진 보석들을 광부가 탄을 케는 것처럼 조금씩 우리들의 보석을 케가고 있습니다. 어떠한 어른들은 정말 소중한 것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이득만을 생각하고 재물에 탐을 내여 정말 소중한 것을 잃은채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한 어른들은 재물들로 인하여 행복을 만끽하며 살아가고 있을까요? 아닐 것입니다. 우리는 서로를 위하는 마음과, 모두를 사랑하며 더불어 살아가게 해 주신 분께 진정한 감사의 마음을 지니고 있어야 하며, 그것을 언제나 행복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내 마음을 갖고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주위에 있는 사람들과 함께 희망차고, 밝은 우리들만의 미래를 개척해 나가기 위해 주위를 아름답게 빚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겠습니다.
손
中 1-1 曹 馮
사람들에게는 모두 한 쌍의 손이 있습니다. 손과손 사이에 다 다른 기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 몸에서 제일 활동적인 기관은 손이고, 제일 힘든 기관 역시 손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손을 간직하지 못하고 손을 절단하는 사람이 있으니, 우리의 손이 얼마나 불행합니까? 그래서 우리의 손을 아끼자고, 몇 번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손은 한마디로 말해서 만능군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어떤 성공한 사람들도 손과 두뇌가 없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에디슨도 두뇌로 생각하고, 두손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발명왕]이란 별명을 갖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몇번을 강조하지만 손을 아끼자고 여러분께 부탁드립니다.
마지막으로, 여러분 손은 우리의 분신과도 같습니다. 우리 모두 손을 건강하고 쓸모있게 사용하십시다. 이것만이 손에게 보답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 되기 때문입니다.
신세대와 쉰세대
高 1-1 李宣和
우리 사회에서는 언제부턴가 젊은 사람들은 흔히 신세대로 불리우며 기성세대들은 흔히 쉰세대라 불리운다.
신세대와 쉰세대 발음도 비슷하고 글자의 모양새도 비슷한데 사고와 행동은 왜 그리도 하늘과 땅차이일까.....
나도 당연히 빼놓을 수 없는 신세대중의 한사람이다. 우리 신세대들은 자기 주장이 강하고 한번 하고지 한 일은 결코 쉽게 포기하지 않는다. 또한 신세대들의 사랑공식 또한 기성세대들과는 많은 차이점이 있다. 그러나 신세대 중에는 자기 주장이 뚜렷하지 못하고 예의범절도 모르는 아이들도 있다. 하지만 그것은 일부분이지 결코 전부가 다 그렇지는 않다. 아주 많은 신세대의 생각을 상대방에게 정확하게 전달하는 패기넘치는 자신감이 요즘 신세대들의 참 모습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우리 아버지, 어머니를 비롯해 나이가 많으신 분들이 바로 이 시대의 쉰세대. 요즘은 우리 신세대들에게 맞춰가는 쉰세대들이 늘고 있다고 한다. TV프로그램이나 가요 심지어는 음식까지도 모두 신세대들의 취향에 맞게 맞춘다고 한다. 난 이렇게 하는것이 결코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생각한다. 혹 우리의 전통적인 문화를 잃어가는 것은 아닐까? 우리 모두 함번쯤 생각해 봐야 하지 않을까. 물론 새로운 문화를 맞이하는 것도 괜찮을 듯 싶다. 하지만 여지껏 꾸준히 지켜온 우리의 문화를 지키고 싶다.
신세대든 쉰세대든 누구나 세대의 흐름과 상관없이 자기 주장과 생각이 있을 것이다. 그것은 결코 똑같진 않지만 누구나가 바라는 것은 혹 우리의 전통적인 문화를 지키며 자부심을 갖는 것이다.
이렇듯 우리 신세대는 세월이 지나 쉰세대가 되고 또 다른 신세대가 나타날 것이다.
아직도 우리 주위엔
-- 서대문구 청소년 문학상
산문부문 장려상 수상작
中 3-3 方文君
찬바람이 불면서 어느새 가을이 우리들 곁에 다가왔다. 이제 날씨가 점점 추워져 간다.
이맘 때면 꼭 떠오르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우리 주위의 불우 이웃들이다. 고아원에 버려진 아이들, 가난해서 밥 한끼조차 제대로 먹지 못하는 사람들.......지금처럼 풍요로운 세상에도 고통받는 사람들은 너무나 많다.
인간은 누구나 자신이 처해 있는 환경이 있다. 만약, 그 생활 환경을 제대로 알지 못한다면 사회에 많은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돈이 많다고 돈을 펑펑 쓰고 다니는 사람들이, 그 반대로 너무 가난해서 밥 한 끼 옷 한 벌조차 제대로 갖추지 못하는 사람들도 너무 많다. 나는 돈을 물 쓰듯 쓰고 다니는 사람들에게 물어 보고 싶다. 이 세상에 밥 한끼를 먹기 위해 새벽부터 일을 하며 고생하는 사람들을 알고 있냐고.....
때론 가난이 범죄를 부르기도 한다. 특히 청소년들이 그런 유혹에 자주 넘어 갈 수 있다. 돈이 필요해서 남에게 해를 입히는 일을 하게 되고, 점점 발전하여 범죄로까지 가기도 한다. 이런 험악한 세상에서도 꿋꿋하게 참으면서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소외된 우리의 불우한 이웃들이다. 우리 주위엔 소외된 이웃들이 너무나 많다.
따뜻한 사랑조차 제대로 받아 보지 못하고, 오직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힘겨운 나날들을 보내는 사람들, 하지만 그 어려움 속에서도, 그들의 입가에는 언제나 미소가 머문다. 그들은 아무리 힘이 들어도 매일매일 절망하지 않고 희망차게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작년 겨울의 일이었다. 텔레비전에서는 불우 이웃에 관한 방송을 하고 있었다. 내 머릿속에 지워지지 않는 한 소녀가 있는데, 그 소녀는 국민학교 4학년이었다. 아버지께서는 와병 중이셨고, 어머니는 가출을 했고, 국민학교 1 학년 짜리 어린 동생이 있었다. 그 소녀는 어머니의 몫을 대신해야 했다. 아침엔 신문 배달을 하고 동생과 자신의 학교갈 준비를 했다. 학교가 끝나는 대로 집으로 돌아와 밀린 집안 일을 했고, 틈나는 대로 생활비용을 벌기 위해 일을 했다. 그런 소녀에게 소원이 뭔지 물어 보자 그 소녀는 이렇게 대답했다. 다른 가정들처럼 평범하게 살고 싶다고 했다.
내기 그 소녀를 잊지 못하는 이유는 다른 사람들 같으면 부자가 되고 싶다거나, 고생을 하고 싶지 않다고 얘길 했을 것이다. 하지만 가녀린 그 소녀는 너무나 평범한 생활을 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런 소녀의 모습을 보면서 내가 얼마나 행복한지 느끼게 되었다.
지금 '우리의 사회가 너무 이기적으로 변해 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문득 든다. 어떤 사람들은 돈을 물 쓰듯이 쓰고 다니고, 어떤 사람들은 한끼 저녁조차 제대로 먹지 못하는 그런 불공평한 사회가 되었는지 모르겠다. 우리가 좀더 마음을 열고 온정을 베풀어,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인정을 나눈다면 소외된 이웃들에게 조그마한 보탬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해마다 겨울이 다가오면 거리에는 불우 이웃을 돕는 모금함이나, 구세군 등이 눈에 들어온다. 이런 것에서 아직도 우리 사회의 따뜻한 마음씨가 남아 있다는 걸 느낄 수 있다. 또한 우리 주변에서 눈물겹도록 아름다운 이야기들도 있고, 좋은 일을 하는 사람도 많다.
서로 돕고 서로 사는 사회야말로 참되고 아름다운 세상이라고 생각한다. 언제쯤이면 굶주림과 가난이 사라지는 세상이 올지 모르지만 모두가 노력한다면 언젠가는 반드시 찾아올 거라 믿는다. 우리 모두 착한 마음씨로 주위를 둘러보고, 소외된 이웃을 생각하며, 자신을 반성했으면 한다.
올 겨울엔 우리 모두 불우 이웃을 돕자는 하얀 상자를 마다하지 말고 힘들게 살아가는 그들에게 희망을 가져다주자.
우리 동네
中 2-3 方恩美
우리동네는 참 아름다운 동네입니다. 겨울이 오면 많은 눈이 쌓이고 봄이 되면 예쁜 꽃들이 피어나거든요. 낮에는 동네 아이들이 씩씩하데 뛰어노는 모습이 참으로 보기 좋습니다. 저희 동네는 서울 한 곳에 위치하고 있는 성북구 정릉에 있습니다. 정릉에서는 돈암동이라는 동네랑 너무도 거리가 가까워서 저희 근처에 사는 사람들은 모두 이곳에서 쇼핑을 하곤하지요. 저도 가끔은 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안 좋은 면도 있습니다. 환경오염과 수질오염 그리고 또한 쓰레기 문제이지요. 저희 동네도 본래는 깨끗하고 질서있는 동네였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사람들의 무질서한 생활 때문에 동네가 더러워진 것 같습니다. 저희 동네도 사람들이 열심히 노력하여 환경문제도 막고 수질 오염 또한 사람들의 질서 모두 다 올바로 실천해야겠습니다.
여 행
中 3-3 牟傳美
난 올해 여름에 가족과 함께 여행을 갔다. 가족과 함께 여행을 간 것은 처음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먼저 바닷가 갈라진다는 제부도에 갔다. 거기에 많은 횟집과 바다, 그리고 산이 있었다. 물고기를 잡으로 배를 타고 떠난 사람들도 있었다. 우리는 그냥 바닷가 한 쪽에서 조개 껍질을 찾고 있었다. 저녁이 되자 우리는 그냥 밥을 지어먹고 폭죽을 터뜨리면서 놀았다. 하루 동안 그렇게 놀고 우리는 어느새 잠이 들었다.
다음날 아침, 우리는 일찍 바닷가로 향했다. 우리가 바닷가에 도착한 시간은 6시 30분이었다. 그때까지도 바다는 갈라지질 않았다. 배도 고프고 해서 우리는 가까이 있는 슈퍼마켓에 갔다. 먹을 것을 사면서 난 아주머니께 물어 보았다. "아줌마, 바다는 언제쯤 갈라지나요?" 그러나 아주머니는 아마도 8시쯤 바닷가 갈라진다고 대답했다. 너무 이른 아침이라 문을 연 횟집이 없어서 우리는 차에 올라타서 빵을 먹을 수밖에 없었다. 간단한 요기를 하고 나서 작은 꽃게를 잡고 있었다. 거기에는 보지도 못한 벌레와 나비 그리고 갈매기도 많았다.
바다는 계속해서 파도를 치고, 날씨도 좀 쌀쌀해졌다. 8시가 되자 바다가 조금씩 갈라지기 시작했다. 물이 빠지고 길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 광경은 매우 신기했다. 그때 횟집이 문을 열기 시작했다. 우리는 횟집에 들어갔다. 그 집의 횟감이 싱싱하고 맛있었다. 바닷가에서 먹어서 그런지 밥맛이 좋아 배불리 먹었다. 바닷가에 나와 보니 바다는 갈라져 있었다. 우리는 차를 몰고 제부도를 떠나 청부로 향했다.
가는 도중에 점심을 먹기 위해 휴게소에서 간단한 요기를 하고 차를 타니 피곤하여 잠 속으로 빠져 들어갔다. 한 참만에 깨어 보니 청주에 가까이 와 있었다. 라디오에서 들여오는 노랫소리를 들르면서 흥얼거렸다. 청주에 도착하여 우리는 고모네 집으로 갔다. 나는 거기서 목욕을 하고. 동생들과 놀다가 꿈속을 거닐고 있었다. 다음날 아침, 고모님이 해주시는 아침을 맛있게 먹고 텔레비전을 보다가 집으로 향했다.
이번 여행에서 많은 것을 보고 느꼈다. 가족과 함께 여행하는 여행의 즐거움을 맛보면서 가족의 따뜻함을 느꼈다. 고모님이 지어 주신 아침밥, 제부도의 횟집, 바닷가의 맑은 공기와 아름다운 풍경들, 이러한 많은 추억을 마음속에 고이 간직하고 싶다.
요즘 아이들
高 1-1 劉莉莉
요즘 사회가 점점 삭막하고 황폐해져 가고 있다. 그 이유 중의 하나는 청소년들의 문제가 제일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을 것이다. 그 만큼 청소년들의 문제가 심각해져 간다는 증거다. 문론 건전한 청소년들도 더러 있지만 대부분이 비건전한 청소년들일 것이다. 도대체 그들은 무엇을 생각하고 있기에, 또 어떻게 해서 그리 비건전한 청소년들로 변해 버렸는지 같은 청소년인 입장에서도 도저히 알 수가 없다. 이 문제가 심각한 만큼 우린 이 문제를 거론하지 않을 수가 없다. 지금 이 사회는 청소년들의 문제로 심각한 고민을 하고 있다. 그들은 왜 그렇게 변해버린 것인지 그들의 말에 위하면 대부분이 과실로 인해 삐뚤어져 버렸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부모님이 자주 싸우신다던가, 이혼을 하셨다든가, 부모님이 사업상으로 자식을 돌보아 줄 수 없다는 것 등등.... 이 모든 것이 특히 사춘기 청소년들에겐 큰 자극이 되어 금방 삐뚤어져 나가게 되는 큰 이유일 것이다. 요즘 폭주족이니 뭐니 하는 것들로 사회가 떠들썩하고 있다. 그들은 경찰까지도 무시해 버리는 다름아닌 청소년인 것이다. 사치와 젊은이들의 거리 압구정, 그 거리에는 사치가 들끓고 있다. 그 압구정동 청소년이 생각하기엔 그 사치에 거리도 청소년들에겐 꿈의 거리라고들 한다. 이 얼마나 큰 문제인가? 요즘 카페들과 술집, 비디오방, 노래방 등등. 청소년들이 들끓고 있다. 물론 18세 미만 출입금지 그렇지만 청소년들은 서슴치 않고 들락거린다. 이런 곳에 가는 청소년도 문제지만 이들을 받아들이는 어른들 또한 큰 잘못이다. 그러니 청소년들만 탓할 일도 아니다. 어른들부터 우리 청소년들에게 모범을 보여야 할 것이다. 왜 이런 말도 있지 않은가. "아이들의 눈은 속일 수 없다."고 물론 청소년들이 아이가 아니지만 청소년들도 어른들을 보고 배운다는 것이다.
한 번 나쁜 길로 빠져 들어가면 쉽게 빠져 나올 수가 없다. 그러니 더 깊게 빠져 들기 전에 가족, 친구들이 잘 이쓸어 주어야 한다. 안 그러면 인생을 망칠수도 있기 때문이다. 집에서는 반항을 하고 심지어는 가출까지 하는 청소년들 그들은 어느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고 자유 방임한다. 하지만 이런 학생들은 자연히 나쁜길로 빠져들어 가기 쉽상이다. 예를 들어 본드를 마신다든지 담배, 술 심지어는 마약까지 도저히 믿겨지지 않겠지만 이것은 현실인 것이다.
청소년은 나라의 기둥 나라를 이끌어 나갈 기둥이 무너진다면 이나라는 죽어가는 것과 다를 바 없다. 그저 돈, 사치 자기주의 밖에 모르고 경찰서와 파출소도 한치의 부끄럼 없이 들락거리는 청소년들 이것은 더할 나위 없이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이 문지를 해결하려면 청소년들보다도 어른들이 먼저 반성을 하여 청소년들에게 모범을 보여야 할 것이다. 그 이유는 바로 이 나라의 미래를 개척하여 이끌어 나갈 주역이 우리 청소년들이기 때문인 것이다.
21 세기
中 3-4 呂序麗
지금은 1995년이다. 5년이 지나면 21세기이다. 5년이란 시간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다르게 빨리간다. "시간은 곧 화살과 같다."는 말이 떠오른다.
우리의 생활은 하루하루 바뀌고 있다. 점점 새로운 삶을 향해 전진해가고 있는 것을 우리는 느낄 수 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사회를 생각해보면 삭막하기도 하고, 새롭기도 하다. 삭막한 사회는 거칠고 나쁜 사람들도 많고 그 사람들이 생활 하면서 이 사회를 엉망으로 만들고 있다. 그 반면에 나쁜 사람이 있기에 좋은 사람도 있다. 그 사람들은 이 사회를 어떻게 해서든 발전시키고 싶어하고 좋은 사회를 만들고 싶어한다.
우리 지금이 학생들은 생각해 볼때 호기심에 가득 차 있다. 무엇이든지 도전하고자 하는 마음, 그 마음은 좋지만 좋은쪽과 나쁜쪽으로 갈라진다. 만약 좋은 쪽을 택한다면 우리의 삶이 바르고 정직한 인생이 될 것이고 또 나쁜쪽을 택한다면 어떻게 될 것이지는 훤히 알 수 있다. 어떤 학생들은 좋은데로 가지 않고 나쁜데로만 가려 한다. 내 주위에도 몇 명이 있다. 나쁜쪽으로만 따라가려고 하는 그들을 볼때 불쌍하다는 생각이 든다. 예를 들어 술, 담배, 언어등 요즘말로 하면 락카페를 간다든지 등등.... 여러 가지이다. 유행을 다 따라하고 싶어하는 우리마음, 그 마음은 아무도 막을 수 없다. 이런 모습을 볼때 어른들은 얼마나 속상해 하실지 우린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다. 어른들은 모두 우리가 바른길로 가길 원하신다. 우리도 한 번쯤은 어른들을 생각해 봐야 한다.
인생은 자기가 사는 것이지만 마냥 자유롭게 살 순 없다. 자유롭게 산다면 좋겠지만 그건 자유가 아니라 방종이다. 만약에 그렇게 된다면 국가의 법이 존재할 필요가 없다. 그렇게 되면 우리도 그 법을 지킬 일도 없을 것이다. 그것은 바로 나라가 망하는 지름길이다. 이런 우리는 우리를 다시 돌아 보며 반성을 해야 한다. 우리는 21세기의 '기둥'이다. 만약에 이 기둥이 밑부터 흔들린다면 과연 이 사회는 어찌될 것인가?
21세기는 컴퓨터 자동화 시대이다. 무엇이든지 명령만 하면 다 되는 사회일 것이다. 얼마전 어떤 공강과락 영화를 보았다. 그 영화는 상상할 수도 없을 만큼 지구가 발전했다. 한 사람이 그 나라를 다스린다. 지구엔 지상세계와 지하 세계 두부분으로 나눠져 있다. 지상세계는 편하고 발전돼 있는 사회지만 지하세계엔 먹을 것도 없고, 냄새가 나고, 쥐고기를 먹어야 한다. 우리의 사회도 이렇게 된다면 어떨까? 우리도 한 번쯤 생각해 봐야 한다. 우리도 한번쯤 생각해 봐야 한다. 한 대통력이 사회를 지배하고, 나라의 정치권을 갖고 마음대로 한다면... 정말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인간은 살아가면서 일을 해야 되고 댓가가 있어야 한다. 인간은 먹어야 살 수 있다. 하지만 거기선 먹을 것도 없이 살아가는 것을 볼땐 정말 딱하다.
내가 그 영화에서 제일 맘에 든 부분이 있다면 총을 쓰지 않는것과, 말을 함부로 하지 않는 것이다. 지금 20세기는 총을 쏴서 사람을 살해하고 말을 함부로 해서 타인에게 상처를 안겨주는 일도 있다. 우린 이런 사회를 우리 스스로 바꾸어야 한다. 우리의 사명은 사회를 발전시키는 것이다. 아무 생각이 없이 살아가는 사람을 볼때 정말 불쌍하다는 생각이 든다.
21세기가 다가오고 있다. 우리 청소년들은 21세기를 좋은 사회로 만들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좋은 사회를 만들기 위한 노력을 해야 되고, 공부도 열심히 해야 된다.
우리가 살아가는 짓금의 20세기는 사라져가고 역사로 남을 것이다. 21세기 때 우리의 후손들이 20세기의 역사를 보며 우리 조상들이 발자취를 본 받을 수 있는 그런 사회를 만들어야 하겠다.
우 정
高 2-2 諸葛仙花
이 광활한 우주에서 이 초록별 지구에서 아시아에서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에서 연희동에서 난 학문을 추구하며 사랑도 하며 우정을 배우고 사람들과 어울린다. 지구상의 모든 생물들은 모두 친구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유일하게 감정이 있는 동물 이것이 바로 인간이다. 친구의 감정을 우정이라고 한다. 이 세상에서 제일 강한 것이 사랑이라 했다. 하지만 이 사랑보다 더 강하고 더 중요하고 더 찬란한 것이 바로 우정이다.
우정은 삼각형도, 동그라미도 사각형도 아니다. 사랑은 예쁜 연분홍색이라 언젠가는 변색되고 만다. 하지만 우정은 무색이라 영원할 뿐이다. 사랑은 구속하고 또 구속 받지만 우정은 구속하지 못하거니와 구속 받지 않고, 사랑은 질투하지만 우정은 질투하지 아니하는것. 만약 이 세상에서 우정이라는 감정이 없어지면 사람들은 모두 삭막하고 무표정하게 살아갈 것이다.
우정은 계절이 없고 우정은 나이가 없다. 성별이 문제가 되지 않는다. 남녀노소 언제 어디서나 친구와 우정이라는 단어는 환영을 받는다 이 세상에는 중요한게 많다지만 그 중에서 꼭 빼놓을 수 없는 것 역시 우정이다. 언제나 내 곁에서 믿고 따라줄 수 있으며 언제나 즐거운 내 친구와 우정을 나누고 싶다. 꽃처럼 영원히 아름다울 수 있는 우정을, 나는 지금 나를 보고 있는 친구와 나누고 싶다.
인 생
高 2-3 陳尙秀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한갈래 길이 주어지게 된다. 이 길을 걷다보면, 때로는 험난한 자갈길도 만나겠지만 또한 때로는 평탄한 잔디길도 걷게될 것이다. 나는 이 길을 '인생의 길'이라 부르고 싶다.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많은 역경과 고난이 따르겠지만 어찌보면 그 역경과 고난이 살아가는데 큰 도움이 될 지도 모른다. '고진감래(苦盡甘來)'즉 고생끝에 보람이 온다는 말이 있듯이 고생을 겪으면서 그만큼의 경험을 쌓아가게 되는 것이다. 경험이라는 것은 인생에 있어서 커다란도움이 될 거이다. 일을 처리하는데 있어서 자신이 쌓아온 경험을 잘 활용하고 또 그것이 일상생활에서까지 응용이 된다면 당신의 인생길을 한층 더 넓힐 수 있을 것이다. '生於憂患 死於安樂'이것은 성현 맹자(孟子)가 남긴 격언이다. 바로 이말과 같이 좋고 편안한 환경에 있으면 있을수록 더욱 자만에 빠지기 쉬우며 게을러질 것이다. 아무리 백만장자라 할 지라도 근면을 모르고 눈앞의 즐거움만 찾는다면 그 돈돈 머지않아 없어지게 마련이다. 곤궁(困窮)한 환경은 더 큰 삶의 의지(意志)를 심어낼 수 있는 것이다. 우리 모두 호일악로(好逸惡撈)한 나쁜 습성(習性)을 버리고 인생에 의의(意義)를 찾아야 할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가 다 성공적인 인생을 꿈꿔 올 것이다. 이 꿈을 현실화 하려면 반드시 근면과 노력이 뒷받쳐야 한다. 근면은 인생이라는 여정에 있어서 참으로 중요한 뜻을 지닌다. 발명왕 에디슨이 말했듯이 성공은 1%의 선천적 재능과 99%의 노력으로 이루어진 것으로 천재라고 칭송(稱呼)되는 인물일수록 강하고 끈기있는 노력가인 것이다. 아무리 재능이 뛰어난 사람이라도 끈기와 노력이 없다면 근면하고 노력하는 자에게 지고 마는 것이다. 어쨌든 근면과 노력이 있다면 무슨일을 해도 틀림없는 성과를 이루게 될 것이다.
인생은 연극과도 같다. 우리 모두는 자신의 인생극 속에서 한 역할을 맡고 있는 것이다. 만일 그 연극을 보다 성공적으로 완성하려거든 바로 자신을 그 연극의 주인공으로 삼고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우리는 다같이 한 땅에 살고 있지만 제각기 다른 인생길을 걷고 있는 것이다. 어떤이는 부유하고 행복한 삶을 사는가 하면, 가난하고 불안한 환경 속에 사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또 생각지 못한 사고로 안타깝게 인생을 마쳐야 하는 사람도 있다. 이러한 다른 길 속에서 각기 다른 삶을 살고 있지만 우리 모두에게 주어진 이 길을 소중히 여기어 잘 닦고 개척해 나아가는 것이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할 일이며 또 목적인 것이다.
자 유
中 3-1 傅修英
자유란? 아무에게도 구속받지 않고 나 자신만을 위해 활개를 치며 새로운 삶을 창조해 나갈 수 있는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됩니다.
현재 민주국가에 살고 있는 우리는 오직 자유만을 믿으며 너무나 엄청난 삶을 살고 있습니다. 하지만 자유는 이런 것이 아니라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 입니다. 아무리 자유를 외치며 살수 있는 사회라지만 너무나 많은 살인 사건 , 무질서로 인한 사고 등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만약에 세상 사람들이 다 자유에 대한 잘못된 생각을 지니고 있다면 이 세상은 과연 어떻게 되겠습니까? 누구에게나 자유가 있습니다. 하지만 자유는 어떻게 누리냐에 따라서 자유의 의미는 뒤바뀔 수 있습니다. 자유의 의미를 확실히 알고 있는 자만이 아름다운 자유를 누릴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세상에는 자유를 갖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에 자유를 이용하며 나쁜짓을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자유를 갖고 싶어 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이미 자유를 잃은 다음에야 자유의 소중함을 알게되는 사람입니다. 그 사람들은 이미 자유에 대한 잘못된 생각을 한 사람들입니다. 자유를 갖고 싶어도 가질 수 없게 된 것 입니다. 자유를 이용하여 나쁜짓을 하는 사람들은 자유의 소중함이 얼마나 큰 것인지 빨리 깨달아야 할 사람들입니다.
미주국가라고 해도 이 나라에는 여전히 엄격한 법이 있고 또 자유만을 내세워 모든 일을 할 수 있는 그런 시대는 아닙니다. 그런데 아직도 자유에 대한 잘못된 생각을 하고 있는 사람들은 과연 세대에 뒤쳐져서 그런건지 아니면 알면서도 자유를 자기 주장으로 삼아 범죄를 저지르는지 정말 모르겠습니다. 자유를 허황되게 누리고 있는 사람들은 남은 생각하지도 않고 오직 나만이 존재한다는 이런 이기주의의 잘못된 가치관을 버려야 한다고 생각됩니다.
이 세상에서 제일 자유로운 것은 새라고 생각합니다. 새는 가장 자유를 아름답게 누리고 사는 동물입니다. 저는 새가 날아다니는 것을 보면 자유를 느낍니다. 날개짓을 한 번씩 할때마다 그 날개에는 자유가 듬뿍 담겨 있는 것 같습니다. 새가 날아다니는 모습은 마치자유를 아름답게 누리고 있는 모습으로 보입니다. 제일 자유로운 동물, 새. 새는 아름다운 날개짓을 하며 훨훨 자유롭게 날아다니며 온 세상을 자유롭고 아름답게 날아다닙니다. 저는 이렇게 자유로운 새가 부럽습니다. 저한테도 자유가 있지만 저는 그 만큼이나 자유를 아름답게 누리지는 못합니다. 여기서 저는 또 한 번 의문을 갖게 됩니다. 아름다운 자유란 바로 무엇일까. 자유 그 자체만 들어도 행복해지고 왠지 자유를 가졌다는 생각을 하면 편안해 지고 상쾌한 이 느낌. 자유의 아름다움은 과연 무엇일까? 자유는 좀 더 나를 편안하게 해 주고 또 말 그대로 날 자유롭게 해 줍니다. 자유는 순수하고 아름답습니다. 그런 자유를 우리는 소중하게 여겨야 하며 고히 간직해야 한다고 생각됩니다. 자유를 지니고 있다고 해도 조심해야할 말이 있고 행동이 있습니다.
자유가 있기에 새로운 삶을 실천 할 수 있고 자유가 있기에 자유롭고 편안하게 살 수 있고 자유가 있기에 내가 존재 할 수 있고 마지막으로 자유는 우리의 인생에 있어서도 제일 도움이 되고, 또 꼭 필요함과 동시에 자유를 좀 더 아름다운 세상에서 아름답게 누리고 산다면 더 의미가 크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지금의 우리는
中 3-1 蘇小萍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를 현대화 시대 또는 컴퓨터 시대라고 한다. 그래서 지금은 컴퓨터가 필수품이 되어 버렸다. 만약 컴퓨터를 다룰 줄 모르면 자기 장래에도 지장이 있다. 컴퓨터가 우리 생활의 자리 잡은건 아마도 컴퓨터가 편하고 빠르기 때문일 것이다. 요즘에는 컴퓨터로 시장정보, 게임, 심지어 PC통신까지 한다. 요즘은 대학 숙제를 컴퓨터로 한다. 이젠 숙제까지 아니 컴퓨터가 우리 생활의 얼마나 깊이 자리 잡아가는가를 알 수 있다. 일반적으로 어른들은 요즘 애들은 버릇이 없어 라고 말한다. 반면 우리들은 너무 권위적이라고 생각한다. 예전에는 강산이 10년에 한번씩 변한다고 했지만 지금은 쌍둥이도 세대차이가 있다고들 말한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나한테는 대학교 1학년 사촌언니가 한 명 있다. 나랑 자주 놀면서 이야기를 하는데 언니는 내 얘기를 듣고 자주 놀란다. 그리고는 꼭 세대 차이가 난다며 웃는다. 어른들이 흔히 내가 너만할 때는 하는 말을 자주 쓰는데 언니도 그 이유를 알 것 같다고 한다. 난 수업이 끝나고 친구들이랑 버거킹이나 맥도널드에 가서 햄버거도 먹고 가끔 영화도 보러 간다. 나에겐 이런 일이 당연한데 언니가 내 나이였을 때는 수업이 끝나고 바로 집으로 갔다고 한다. 내 친구가 가수 콘서트에 갔다고 했더니 언니는 아직 한 번도 콘서트에 가본 적이 없다고 했다. 언니는 날 잘 이해해 주고 또 어떨때는 날 잘 이해 못할 때가 많다. 언니랑 나랑 5살 차이 밖에 나지 않는데도 세대차가 있으니 부모님과는 얼마나 많은 차이가 있을까? 이런 이유로 어른과 아이들의 사이는 나빠지고 어른들은 요즘 애들은 공부도 안해 가수 뒤꽁무니만 따라 다닌다고 나무란다. 난 우리에게는 존경할 만한 위인이 없는것 같다. 매일 밤 뉴스를 보면 국회의사당에서는 멱살을 잡고 싸우고 남의 돈을 빼앗고, 부실 공사로 건물이 무너지는 등 모두 자기 배를 채우기에 바쁘다. 위인 전집에 나오는 옛날 사람은 너무 현실감이 없고 누구를 본 받아야 할지 모르겠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쉽게 찾을 수 있는 연예인을 좋아한다. 또 우리 학생들은 마땅히 놀을 수 있는 공간도 없고 그래서 매일 TV나 라디오만 켜면 볼수 있는 그들 누군가를 따라하고 싶은 우리들을 유혹에 빠진다.
난 요즘 공부하느라 너무 힘들다. 대학을 가기 위해서 공부도 해야하고, 미술도 해야하는데 왜냐하면 내 꿈이 미대에 들어가는 것이다. 이렇게 열심히 하는데도 대학에 못갈까봐 걱정 된다. 난 사실 왜 대학에 가야하는지 아직 잘 모르겠다. TV에 나오는 청소년 드라마를 보면 대학 생활이 재미있기는 하지만 이렇게 친구들과 치열한 경쟁을 해야만 하는건지 잘 이해가 않된다. 대학을 위해 존재하는 사람처럼 눈만 뜨면 공부하고 잠만 자는 내 생활이 너무 싫어진다. 나도 외국 아이들처럼 자유롭게 공부하고 싶다. 전혀 생각없이 선생님이 가르쳐주는 것만 외우지 말고 자유롭게 생각할 수 있는 것을 배우고 싶다. 친구들과도 경쟁자가 아니었으면 좋겠다. 물론 평생을 남들과 경쟁하면서 살아야 겠지만 단지 대학 때문에 서로 눈치보는 것은 정말 싫다. 난 어떤때는 휴일이 싫다. 집에 있는 날이면 마땅히 갈때도 없다. 사람은 계속 일만 할 수 없다. 휴식도 아주 중요하다. 그래서 기껏해야 친구들과 롯데월드나 영화를 보러 가는 것이 전부이다. 대학생이나 어른들은 갈 수 있는데가 많으니 정말 어떨땐 부러울 때도 있다. 그래서 우린 놀이터에 가서 놀수도 없고 어른들처럼 아무데나 갈수도 없다. 난 우리들이 건전하고 재미있게 놀 수 있는 장소가 있었으면 좋겠다. 친구들과 맛있는 것도 먹고 얘기도 하고 게임도 할 수 있는 그런 곳 말이다. 만약 그런 곳이 생긴다면 정말 좋을 것이다. 그래서 우린 컴퓨터나 TV, 라디오를 자주 애용한다. 하지만 어른들은 우리가 건전하지 못하다고 한다. 어른들은 우리를 이해 한다고 하지만 모두 이해할 수는 없다. 요즘 우리 청소년들에겐 호출기가 유행이다. 어른들은 "학생이 무슨 호출기야" 라며 말할 때가 있다. 하지만 호출기가 사람 찾을 때에는 아주 도움이 된다. 삼풍 백화점 붕괴 사건을 보아도 알 수 있다. 그러니 너무 반대를 해도 안된다고 본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사회에는 태어나서부터 죽을 때까지 모두 경쟁이다. 그래서 우리는 열심히 공부하고 더 많은 노력을 해야 한다. 이런 현대화 시대에 떳떳하게 살아 가길 원한다면 아마도 지금 보다 더 많은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그래서 자기 삶의 목표를 향해 한발 한발 전진해야 할 것이다.
재 활 용
高 2-3 祝立偉
천연 자원이 점점 부족해지는 지금에 재활용으로 얼마간 극복할 수 있다. 유리병은 용기류 중에서 가장 오래 사용陖으며 가장 많이 쓰이고 있다. 스위스는 맥주병을 60-80회 재활용하고 음료수병은 20-70회이다. 이에 비해 한국의 재사용횟수와 수거율을 보면 맥주병은 13회이고, 음료수병은 7회이다. 다른 나라에 비해 재사용 횟수가 너무 낮다.
유리병은 다른 음료용기에 비해 같은 용도로 다시 쓰기가 쉽다. 따라서 유리병도 회수만 되면 모두 재활용이 되기 때문에 재활용성이 높은 귀중한 자원이다.
페트병은 최근 몇 년 사이에 사용량이 급증가한 음료용기다. 가장 큰 장점은 매우 가볍고, 튼튼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사용량이 늘어나는 것과 달리 재활용이 거의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페트병은 부피가 커서 매립하기 어렵고, 배립을 해도 썩는데 100년 이상이 걸려 환경오염을 일으킨다.
93년에 신문에서 이런 소식을 본적이 있다. "서울의 서대문구청에서는 우유팩 1천만 개를 수집해 환경보전, 외화 절약, 자원 재생에 앞장서고 있다." 한국의 우유팩 생산량은 약 60억 개다. 그러나 이 중에서 약 8%정도만 수거되고 있다. 만약 우유팩이 모두 수거가 된다면 연간 240억원을 절약할 수 있고, 약 1억 5천만 개의 화장지를 만들 수 있다. 하루에 우유팩으로 없어지는 종이가 30년생 나무 2700그루이다.
금속켄의 가장 큰 장점은 가볍고 위생적이라는 점이다. 금속캔은 재활용의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아주 적은 양만이 재활용되고 있다. 알루미늄캔 1개를 버리는 일은 그 캔이 절반 가량의 휘발유를 캔에 채워 버리는 것과 같고, 텔레비젼을 3시간 동안 켤 수 있는 에너지를 낭비하는 것과 같다.
가정에서 나오는 쓰레기는 재활용할 수 있는 것이 많다. 한 사람의 작은 실천이 환경 보전, 자원 재생에 커다란 일을 한다는 것을 마음 속 깊이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중학생이 된 소감
中 1-1 牟德京
국민학교를 졸업하고, 나는 곧 어엿한 중학생이 되었다. 짧은 머리, 약간은 헐렁한 교복, 그리고 무엇보다도 성숙해진 내 모습이 정말 날 기쁘게 했다.
처음으로 중학교에 등교산 그 날, 조금은 날 실망하게 했다. 중학교는 국민하교와 별 다른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단지 학교가 커진것뿐, 중학생이되니 모든일은 전부 내힘으로 해결해야 하니, 생각외로 정말 힘들었지만 지금은 나도 모르게 익숙해져 가고 있다. 이 것은 내가 그리던 생활이 아니었다. 난 벌써 2학기를 맞이할 준비를 해야한다. 한 편으론 허탈한 마음을 감출 수가 없었지만, 난 나의 후손이 좀 더 낳은 생활과 더 편히 생활하여 이 보다 더 좋은 '중학생이 된 소감'을 써 다시는 그 문장속에서 '실망' 이란 단어를 드러나지 않게 열심히 배우고 노력하겠다.
아마 3년후 난 더욱더 성숙해진 모습으로 모두들 칭찬하는 '고등학생이 된 소감'을 쓸 수 있을 것이다.
친 구
中 1-1 楊曉芳
여러분 친구는 참 소중한 것입니다.
만일 지금 저에게도 소중한 친고가 없었다면 아마 전 지금 이자리에 당당히 서 있질 못 할 것입니다. 그러나 친구가 바른길로 못가게 된다면 아마 저희도 따라서 좋은길로 못 갈 겁니다. 친구를 아끼고 사랑하고 친하게 지내야 합니다. 아플땐 서로 도와주고 항상 곁에서 보호해 주고, 슬플땐 서로 위로해 주고 기쁠땐 같이 기뻐해 주고 친구가 외로울땐 그 고통을 덜어주고 나눠줄 그런 친구가 되어야 합니다. 부모님 또 가족 이외에 두번째로 소중한 것이 바로 친구랍니다. 저도 그걸 느꼈습니다. 친구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처음엔 몰랐었지요. 그러나 지금 느꼈습니다. 이걸 느끼게 한 것도 바로 저의 친구입니다. 저는 기쁠땐 같이 기뻐해 주고, 슬플땐 날 위로해주고 또 아플땐 걱정해주는 그런 친구, 진정한 친구가 있습니다. 저는 지금 그 친구를 몹시 사랑합니다. 물론 그 친구도 절 아끼고 사랑합니다. 여러분 아직 친구가 정말 소중한 것인지 못 깨달으신 분도 계시겠지요 어려분도 아마 곧 깨닫게 되실 것입니다.
여러분 또 하나가 있습니다.
TV에서도 보셨을 겁니다. 친구를 잘 못 사귀어 인생을 망친 언니, 오빠들을 보셨는지요. 지금 내가 그렇지 않다고 우습게 보지 말고 한 번 다시 생각해 봅시다. 또한 경쟁상대의 친구를 만들어 보셨습니까? 그러나 여기서도 주의할 점이 있습니다. 서로 어떤 문제를 알게되면 안 알려주고 혼자서만 잘 하려고만 하죠. 그건 틀린 것입니다. 경쟁상대란 정정당당하고 또한 서로 아는게 있으면 서로 알려주고, 같이 공부하고, 서로 깨워주고 그런것이 경쟁상대인 것입니다. 만일 또한 다른길로 가도 서로 안 알려주고 친구가 졸아도 일부러 안 깨워주고 같으로 말로는 경쟁상대라고 하면서, 서로 중요한 친구의 노트를 한 두장 찢거나 그럼 그것도 나쁜 짓입니다. 그러니 여러분 친구랑 이상한 데로 가면 안 됩니다. 어려울 땐 서로 도와주고 친구가 바른길로 못 갈때 어려울 땐 서로 도와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친구를 소중히 아끼고 사랑합시다.
친구와의 영원한 우정
中 1-1 曹慧珉
우리들의 친구는 너무 제한적이다. 지금까지 같이 공부하며 같이 놀면서 그렇게 지내왔다.
나는 중학교에 올라온 후로부터 친고들과 많이 다투고 정말 많은 일들이 일어났었다. 그 중에 가장 기억이 나는 것은 국민학교때부터 아주 절친한 친구와 다퉜던 일이다. 나는 그 친구를 무시한 적이 없는데 그 친구는 내가 자기를 무시했다며 나와 절교를 선언했다. 그 당시에 나는 전혀 내가 잘못한게 없는것 같았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나한테 잘못이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자존심 때문에 먼저 화해를 할 수가 없었다. 오히려 그 아이를 보면 내가 먼저 못 본 척하며 지나갔다. 그러던 중 주위의 친구들이 나와 그아이를 화해시켜 줬다. 얼마나 기뻤는줄 모른다. 마음 한 구석에 있던 답답함이 한 순간에 풀려버린 것 같았다.
친구!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
비가 오고 나면 땅이 더 단단해 지듯이 싸우고 난뒤에 우리의 우정은 더욱더 단단해 질 것이다. 내일 나는 또 어떤 친구와 다투게 될지도 모른다. 그러면서 친구들을 이해하며 아끼며 우정을 쌓아 갈 것이다.
소중한 내 친구들이여! 너희들을 사랑한다.
할머니의 주름살
中 1-1 畢鑑龍
저의 할머니는 우리를 위해서 자신을 희생하면서까지 우리를 돌보아 주신다. 그 만큼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일까? 아니면 아무 생각없이 그냥 우리를 돌보아 주시는 걸까? 하지만 분명한건 할머니의 주름살은 우리가(형과 나) 할머니의 속을 상하게 할때 생기는 것 같다.
나는 먼저 한 번 할머니께 이런말을 물어보았다.
"할머니! 할머니! 주름살은 왜 생기는 거죠?"
그러자 할머니는 대답하였다.
"너희들이 할머니 속을 상하게 할때마다 생기는 것이란다."
그 때 난 아직 어리기 때문에 그말을 정말로 믿어 버렸다.
우리 어머니는 매일 회사에 나가셔서 일주일에 한 두번 정도 들어오신다. 그래서 할머니가 우리를 돌보아 주신다. 때로는 이런 생활이 싫증나기도 하지만 어떤 때는 이런 생활이 좋기도 하다. 비록 우리집에는 어머니가 회사에 나가서 없지만 할머니가 우리들을 돌봐 주시기 때문에 결코 외롭지는 않다. 그렇지만 어쩐지 마음 한구석이 비어 있는것 같고 할머니의 주름살이 늘어 날수록 내 마음은 아프고 한편으론 할머니께 고마운 마음도 점점 늘어 나는 것 같다. 난 진심으로 할머니께 여태껏 키워 주신것에 감사한다. 나도 할머니께 있는 힘껏 효도를 다 할 것이다.
천사인 엄마
高 2-3 劉永愛
"엄마!"
난 엄마라는 단어를 들으면 엄마 품에 의존하고 싶고, 편안한 마음을 가지게 된다.
우리 엄마는 굉장히 좋으신 분이다. 아무것도 흠잡을 데가 없으신 분이다. 아빠가 안 계시면 아빠 몫까지 다정하게 친구가 없으면 친구같이....., 이런 우리 엄마를 보고 있을 때면 우울했던 나의 마음이 어느 새 밝아지는 것을 느낄 때가 많다.
우리 아빠는 직업 때문에 출장을 자주 나가시며, 바쁠 때에는 집에도 못 돌아오신다. 아빠가 잘 안 계시는 집이라서 어수선 할텐데도 엄마는 침착하고 밝은 표정으로 집안의 분위기가 계속 유지되고 있다. 비록 나 때문에 집안이 시끄러워지고 어지럽게 되지만, 엄마께서 잘 정리하시기 때문에 집안의 분위기가 안정되어 있다.
나는 엄마의 마음을 잘 알고 있다. 엄마께선 아빠가 보고 싶으시면서도 언제나 겉으로는 내색을 안하시고 마음속으로만 생각하시는 분이다. 엄만 늘 웃고 계신다. 하지만 그 웃음 속엔 엄마의 마음이 나타난다. 어떤 날에는 환한 웃음 속에 외로움과 슬픔이 담겨져 있고, 어떤 날에는 기쁨이 가득 담겨져 있다. 아빠께서 안 계시는 집안에서도 꿋꿋하게, 열심히 어려운 일을 헤쳐 나가시는 엄마. 힘들고 지칠 때도 항상 웃고 계시는 엄마. 아빠가 안 계시면 다정한 아빠같이, 나의 고민을 들어주실 때는 선생님 같이, 내가 혼자 있고 외로울 때는 언니같이...항상 날 대하시는 엄마의 태도는 여러 가지이다.
'엄마는 이렇게 하는 거구나!'하고 느낀 것은 어렸을 때였다. 내가 태어나서 지금까지 이렇게 자란 것은 엄마의 튼튼한 뒷받침이 아니었나 생각된다. 지금까지 자라면서 확실하고 정확하게 느낀 것은 엄마의 따뜻하고, 아름다운 마음씨와 밝은 표정이었다.
지금까지도 엄마는 그 마음씨와 표정을 간직하고 계시지만, 엄마의 흰머리와 축 처진 어깨를 보면 엄마의 꿈과 희망이 밝고 건강하게 보이지 않는다.
엄마의 뒷모습... 엄마의 뒷모습에는 슬픔과 외로움이 담겨져 있다. 어떤 슬픔과 외로움일까? 아직 나는 그런 엄마의 슬픔과 외로움의 실체를 알지 못한다. 엄마의 추억일까?
오늘 엄마의 뒷모습은 더욱 초라해 보인다. 축 처진 어깨에는 가족을 사랑하는 마음이 가득 담겨져 있는 것이 느껴진다. 예쁜 꽃 냄새가 바람에 날려 풍겨 오는 것처럼...
총명함과 노력
中 1-1 賀昭允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사람들 중엔 똑똑하고 총명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 반면에 머리가 나쁜 사람들 역시 많습니다. 총명한 사람들은 무슨일을 하든지 빠르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머리가 나쁜사람들은 무엇을 하든지 느리고, 그들보다 두 배로 노력해야 합니다.
하지만 한 사람이 성공을 하든, 실패를 하든 단순히 총명함과는 별 관계가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 사람이 얼마나 노력을 하는가 거기에 달려 있습니다. 이제까지 역사의 몇 몇 위인들도 총명함보다는 노력을 앞세워 역사에 화려한 행적을 남겼습니다. 그 중에서도 [발명왕]에디슨이 대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에디슨은 국민학교때 머리가 너무 나빠 선생님도 그를 포기하고 퇴학시켰습니다. 하지만 에디슨은 용기를 잃지 않고, 열심히 연구하며, 먹고 자고 하는 시간 외에는 언제나 연구에만 몰두했습니다. 그런 노력이 있었기에 지금의 그를 우린 [발명왕]이라고 부를 수 있었던 겁니다.
이와같이, 노력을 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희망이 생기는 동시에 성공할 수 있는 보장도 생깁니다. 또한, 총명함이 지닌 의미는 모든일을 열심히 함으로써 더욱 돋보입니다.
'한 푼의 노력은 한푼어치 수확한다'란 중국 속담이 있듯이, 한 사람이 주어진 일에 대한 열정과 노력에 따라서 결과는 크게 달라집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실패를 싫어합니다. 그것은 실패가 한 사람에게 너무나 큰 상처와 돌이킬 수 없는 실수가 되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이와같이, 사람들은 노력도 그리 반가워하지 않습니다. 이유인즉 노력은, 한 사람에게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큰 피로를 주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언제나 성공하는 헛된 공상만 하고 있으면, 언제쯤 성공할 수 있을까요?
학생 여러분, 우리 모두 자신에게 주어진 일들을 열심히 하여, 가정에서나, 학교에서나, 먼 훗날 사회에서나 인정받는 국민이 됩시다.
친 구
中 3-1 姜鮮英
제가 학교에 들어온지 2년이 지났습니다. 그 전에는 아주 작은 국민학교에서 공부를 했기 때문에 친구가 별로 없었고, 물론 친구의 소중함도 깨닫지 못탖습니다. 그러나 이 학교는 아주 크고 친구도 많은 곳입니다. 1학년 시절 처음 들어왔을땐 너무 어려서 모든게 어색했고, 부모님도 무척 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매일 밤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때부터 친구의 소중함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친구, 그는 무슨 존재이길래 그렇게 중요하다 하는지 영문을 몰랐습니다. 하지만 지금 아주 소중한 친구들이 많이 있습니다. 또한 내가 슬프고 외로울때 언제나 내곁에 머물러 줄 수 있는 친구가 있습니다. 의외로 절 자주 놀리는 친구도 있지만 전 3학년이 되면서 친구들의 소중함과 의지할수 있는 친구가 참으로 고맙습니다. 비록 학교 생활은 즐겁고 힘들지만 친구들이 항상 내 곁에 있어준다면 그 무엇이 더 힘들지라도 이겨낼것입니다. 한창 자라는 우리들 에게는 부모님 의외로 학교에서는 친구들이 제일 중요한 존재일 것입니다. 기숙사 생활에서나 어디서나 최우선은 친구를 잘 사귀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학교에는 친구를 잘 사귀는 그런 과목은 없습니다. 그리고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습니다. 그저 우리가 스스로 터득하기전에는 모르고 나쁜 친구를 사귈수도 있습니다. 중3이라는 학년은 호기심이 가득하고 무엇이든지 갖고 싶어하는 시기입니다. 그러므로 친구를 사귀는 방법이 중요하겠지요. 사람이 학교에서는 친구가 물론 중요하겠지만 사회 생활에서는 자기자신이 열심히 해야만 성공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친구도 없어서는 안되는 존재입니다. 그렇다고 친구만 의지해서는 안되지요. 인간은 자신혼자 무엇이든 할수가 없답니다. 곁에서 지적해주고 충고해주고 기뻐해주는 사람이 있어야만 어떤일이든 열심히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곁엔 부모님이 계신겁니다. 하지만 영원히 제 곁에 있어 준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아직 우리는 학생 신분이기에 일의 판단능력이 부족합니다. 우리가 사회인이 된다면 판단 능력도 늘어날뿐만 아니라 모든걸 제대로 느끼고 친구를 사귀는 방법 그의 소중함을 더욱 확실하게 체험할수 있습니다. 그래서 제 소중한 친구들에게 고맙다고 사랑한다고 말 해 주고 싶습니다.
풍 선
高 2-3 楊敬玉
나는 어렸을 때 풍선을 아주 좋아했다. 빨간 풍선, 파랑 풍선, 노랑 풍선, 하얀 풍선... 공기를 가득 가득 배불리 먹고 날아가는 풍선들, 비록 내 손에서 빠져나가는 것이 아쉽지만, 푸른 하늘로 날아가지 못하면 그것은 곧 풍선이 아니겠지... 날아가지 못하고는, 결국은 지상에서 터지고 말 것인 풍선을 난 날려보내 주어야 한다. 내가 날려보낸 풍선들은 곧 멀리멀리 날아가 저마다의 꿈을 이루겠지... 마치 학생이 학교를 나오는 과정을 풍선은 공기를 마시는 것으로 비유하여, 풍선은 공기를 마시는 것으로 비유하여, 풍선이 하늘로 날아가는 것을 사람이 사회로 흩어지는 것과 똑같다고 한다. 이와 같이, 인간은 동등하고, 똑같은 눈, 코, 입, 손, 발... 등이 있다.
가끔 풍선 공장에서도 불량품이 나오기 마련이다. 사람도 가끔가다가 지능이 떨어지거나, 신체 장애가 있는 저능아 혹은 기형아가 태어난다. 불량 풍선은 그냥 버려지거나 다시 재생되지만, 인간은 그렇지 않다. 단지 자신이 그 시련을 극복할 수 있느냐 없느냐에 달렸다. 정상적인 풍선은 곧 정상적인 인간이라 할 수 있다. 바람을 넣다가 터져 버린 풍선은, 정상적인 모든 것이 있으면서 그것을 만족하지 못하고 욕심을 부리다가 결국 모든 일들을 실패해 버리는 사람일 것이다.
모든 이에게 꿈이란 것은 참 중요한 것이다. 나도 예외는 아니다. 나는 나의 꿈을 이루기 위해 더욱더 노력하여 넓고 더 넓은 세상으로 나아갈 것이다. 비록 나의 꿈을 이루려면 수많은 시련과 좌절이 따르겠지만, 그것은 결코 허황한 것만은 아닐 것이다. 난 더욱더 노력하여 그 시련과 좌절을 극복하고 나의 꿈을 이룰 것이다. 무한하게 펼쳐진 푸른 하늘로 날아가는 풍선처럼.....
환경을 아끼고 보호하자
中 3-4 孫成賦
약 7000년 전, 최초로 문명이 싹튼후로 인류는 비약적인 발전을 이룩하여 지금에 이르렀다. 지구상의 무궁무진한 자원들은 인류문명 발달에 초석이 되었고, 인간 본래의 탐구 개척 정신도 한 몫 기여했다. 오랜 기간 동안의 농경위주의 사회형태에서, 18세기 영국에서의 '산업혁명'후 세계는 급속히 '공업화'가 진행되었다. 이로써 사회와 문명발달에 가속을 가져오게 된 것이다. 이는 곧 인간 생활의 질을 높였고, 또한 풍요한 삶을 실현 시켰다. 그러나 인류가 얻은 것은 눈부신 발전 뿐만 아니라, 그것과 함께 따라온 환경과 생태계의 파괴이다.
현 시점에서 환경보호는 인류의 가장 큰 숙제이자 고민이다. 하지만 우리 인간이 좀 더 환경을 아끼고, 과학적으로 열정적으로 그리고 미래를 내다보는 현명한 대처를 한다면 아직 희망이 있는 것이다. 그러나 오염과 파괴의 실상은 날로 더해가고 있다.
대기오염·수질오염·온난화·생태계파괴등 모두 인간이 인위적으로 만들어 놓은 인재이다.
먼저 심각한 대기오염이다. 프레온 가스의 배출로, 자외선을 차단하고 조절 해 주는 오존층의 부분파괴로 지구 온난화 현상을 초래하여 양극지방의 빙하가 녹고, 세계도처의 이상기온 등 수많은 기상이변이 일어나고있다. 과학자들은 계속적으로 온난화현상이 지속되면, 머지않은 장래에는 몇몇 도시는 물에 잠긴다고 말한다. 우리가 이대로 계속 문제의 심각성을 깨닫지 못하면 우리의 후손들은 물 바다속에서 또 뜨거운 감자 같은 지구속에서 살아야 할 것이다.
극심한 대기오염이 빛은 또 다른 한 재난은 바로 '산성비'이다. 더러운 매연이 하늘로 올라갔다가 그대로 우리이 머리위로 떨어지는 것이다. 이는 우리 인간 자체의 피해이기도 하고 또 소중한 문화재의 훼손이다. 옛 성과, 석탑, 고궁, 동상등 동서를 막론하고 진귀한 문화재산이 산화되고 부식된다. 인류의 역사를 알게하고 역사의 가치를 소중하게 일깨워주는 보물들이 산성비로 인해 차차 제 고귀한 못급을 상실해 가고 있는 것이다. 대기오염의 정도는 정말 도를 지나치고 있다.
수질 오염도 상당히 심화되었다. 현재 인류에게 가장 밀접한 것은 물에 관한 것이 아니겠는가? 그러므로 더욱 물의 소중함을 알아 물보호에 대한 경각심을 늦추지 않아야 할 인간이 오히려 물을 어지럽히지 않는가? 가정과 공장 등지에서 무단 방류된 각종 오물 폐수들이 맑은 강과 하천에 유입되어 강물 자체를 오염시키는 동시에 식수원과 바다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지구의 수권(水圈)을 유린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끊임없이 계속되는 대형유조선의 해상침몰로 엄청난 양의 기름이 바다로 퍼져 바다 생물과 바다를 크게 오염 시킨다. 대자연이 수천수만년에 걸쳐서 만들어 놓은 것을 인간들은 단 며칠 동안의 짧은 시간에 산산조각을 내었다. 수자원 보호는 정말 강조되고 보호되어야 마땅하다.
환경오염에 또한 일익을 담당하는 것은 '쓰레기'문제이다. 산업, 농업, 가정등등.... 매일 많은 규모의 온갖 쓰레기들이 소각되고 매립된다. 썩지않는 비닐, 플라스틱 쓰레기는 토양의 질을 파괴하고 미생물과 양분함유를 저지하여 실물을 비롯 곡물의 성장에 있어서 암과 같은 존재이다. 쓰레기는 버리는 방법과 처리에 따라 얼마든지 감소시키고 재활용 될 수 있다. 인간의 의식과 행동에 달린 것이다.
심각한 환경오염은 인류의 동반자이자 친구인 동물, 식물 등에게도 큰 타격을 주고 있다. 무차별한 개발, 오염...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의 수 많은 친구들이 신음하고 있다. 개발로 많은 나무들이 토벌되고 그러므로 울창한 삼림이 사라지며 동물들의 생활터전이 없어지고 있다. 강의 오염으로 어패류가 물위로 떠오르고, 자연의 법칙이 인공적인 만행으로 깨어진다. 삼림이 점점 없어지고 도시가 증가하여 아마도 미래의 지구 색깔은 검고 잿빛을 띄우고 있을 것이다.
많고 많은 파괴와 오염 지구가 죽어가는 지금, 그러나 아직 많은 사람들이 환경보전에 힘쓰고 있다. 인류가 발전과 개발에 치중한 만큼, 인간은 다시 환경보호에 힘쓰지 않으면 곧 하나밖에 없는 푸르른 지구에는 종말의 그림자가 드리워질 것이다. 과학자들은 앞으로 10억년 후에는 지구도 사라져 버릴 것이라고 예측했다. 이 경이롭고 신비스러운 생명의 세계도 영원하지는 못한다고 한다. 사람은 원래 죽는다는 것을 알고 현재의 삶을 소중히 살고 있다. 그러므로 지금 이 살아있는 지구를 아끼고 푸른 빛을 더욱 발(發) 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할 것이다. 그리고 과거를 알고 미래를 내다보는 것이 인간의 지성이라면, 우리는 과거에 숭고하게 자연을 이어온 선조들의 의지와 기개를 계승하여, 미래의 아름다운 자연 환경을 만들 수 있도록 방법을 모색해야 된다.
우리가 살고 있는 우리와 한 몸인 지구와 쾌적하고 깨끗한 환경을 우리는 정말로 지켜나가야 한다. 왜냐하면 아직 지구는 살아있으니까.....
백범일지 독후감
高 2-3 邢禮昌
세상에는 자기의 조국과 민족을 위해 헌신한 사람들이 많다. 그리고 그들은 결코 인격과 품위에서 떨어지는 사람은 아닐 것이다. 김구 선생님께서도 그렇다.
김구선생님께서는 어릴적에 양반집 사람이 아니라 양반을 싫어했다. 아마도 그 래서 "독립"이란 거센 격동의 인생을 살았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선생님은 학식에 매우 총망받는 미래를 갖고 있었다. 운이 나빴는지, 과거에 응시했지만 낙방했다. 그러나 이에 연연하지 않고, 아버지(김순영)의 충고로 풍수와 관상을 공부했다. 그리고는 왜놈들을 토벌하는 운동에 적극적으로 동참하였다. 그리고 국모인 민비의 원한을 풀기 위해 일본 군인 토전 양량(土田壤亮)을 죽이고, 감옥에 붙잡혀 사형을 선고 받았다. 다행히 행동을 가상히 여긴 고종의 특명으로 사형하기전에 특사령이 내려져 사형을 면했다.
김구 선생님께서는 바로 이러한 분이시다. 대의명분을 가리여, 국가발전을 위해 헌신하고, 효를 경(輕)히 어기지 않고, 공부에 전념하셨다. 그러나 우리는 이런 분들의 살신성인(殺身成仁)으로 만들어진 현금의 '성과'(비록 완정하지 못하지만). 우리들은 이에 만족하고 살고 있는 어리석은 자들이다. 공자(孔子)가 말하기를 "臣子不二君, 妻子不二嫁"(충신은 하나의 군주만 섬기고, 열녀는 한번만 시집을 간다.) 김구선생님께서도 하나의 국가(國家)만을 섬기어, 결코 두 개의 국가를 섬기지 아니하고, 또 이러한 것을 그 분의 정신적인 지주(支柱)라 말 할 수 있을 것이다. 혼란한 당시의 돈도이러한 어진 세상에 김구선생님이야 말로 밤 바다의 등대요, 아침의 태양이다. 이와 같이 중국에도 어진 세상을 구하려고 나타난 은거지사(隱居之士)들이 많다. 그 중에서도 나의 우상(偶像)은 바로 제갈량(諸葛亮)이다. 이 분은 삼국시대때 축나라 유비현덕을 도와 삼국을 통일하려 했다. 비록 그 목적은 달성되지 아니하였으나, 제갈량의 지혜와 계략은 실로 당대(當代) 제일이라 할 수 있다. 내가 김구선생님을 우상화 하려는 것도 이점 때문일지도 모른다.
"독립", 하나의 국가를 건립시키는 "독립", 이 신비롭고 찬란한 빛이 발산하기 위하여 아직 수많은 사람들의 희생을 필요로하고 있다.
사람들이여! "독립"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세계정상에 우뚝선 그 날이 오면, "독립"이 되는 여명의 날이 오면, 사람들의 희생은 비 개인 맑은 하늘에 무지개를 띄울것입니다.
그리고 김구선생님의 정신과 건국이념은 길이길이 후세에 모범(模範)이 되어, 그 자취가 우리가 가야 할 길을 인도하여 줄 것입니다.
백범일지를 읽고 나서
高 3-3 劉知愛
백범일지는 한국의 민족 영웅 김구 선생님의 자서전이다. 독립운동가로서 한 평생을 나라를 위해 살아온 그의 생애의 모든 것이 수록되어 있다. 이 책에서 김구 선생님은 이 첵을 쓰게된 동기에 대해 자신의 목숨은 언제 어떻게 될지 아무런 보상이 없으니 후에 자신의 두 아들에게 아버니의 뜻과 지난일을 알리고자 썼다 한다. '백범(白凡)'은 그의 호이며, 뜻은 가장 천한 백성과 무식한 범부까지도 애국심을 갖게 하자는 그의 뜻이다. 그는 일평생을 나라를 위해 애써 왔고, 오로지 나라가 잘 되기만을 바라며 살았다. 이러한 헌신이 있었으므로 오늘날 우리에게 이 자유와 평화가 있는 것이다.
김구는 1876년 황해도 해주 백운당 텃골에서 7,8일간에 걸친 난산으로 태어났다. 어릴적 아명은 창암(昌岩)이었고 어릴적부터 성질이 곧고 남한테 지길 싫어 했으며 분한 일을 당하면 기어코 복수를 하고마는 성격을 지니었다. 그가 다섯살 때의 일이다. 같이 놀던 이생원집 아이들이 해줏놈이라 놀리며 때려주자 분함을 참지못해 집으로 달려가 식칼을 들고 다 죽여버릴거라고 덤벼드나 나이가 어린탓에 칼만 빼앗기고 얻어맞기만 했다. 하지만 그는 끝까지 항복하지 않았다. 이런 점에서부터 그가 후에 큰 일을 할 것이 엿보였던 것 같다. 창암은 여느 아이들처럼 말썽을 많이 피웠다. 아버지의 은수저를 랄아 엿을 사 먹는가 하면 떡을 사 먹겠다고 숨겨둔 돈을 허리에 차고 가다가 호되게 매를 맞기도 한다. 상놈이라 멸시를 받아온 아버지의 심정을 어린 마음에도 헤아렸기에 그의 마음속에 양반이 되어야겠다는 포부가 도사리고 있었고 아버지께 글방에 보내달라 하여 학업에 결중하였다. 17세때 이름을 창수(昌洙)라 고치고 과거를 보러갔으나 돈이나 세력에 의해 타락된 과거 제도를 보고 실망하여 관상공부를 시작한다. 이외에도 손무자, 삼략 등 병서를 탐독했고, 여러 학문에도 많이 접해본다. 18세에 동학에 입도하였고, 19세 되는 해. 어린 나이에 우두머리 겪인 팔봉접주(八峰接主)가 되어 해주성을 공략하나 실패한다. 후에 창수는 나라를 구하겠다는 일념으로 청국으로 길을 떠난다. 그리고 왜놈을 죽인 이유로 해주 감옥에 잡히게 된다. 고종폐하의 명으로 겨우 사형을 면하고 탈옥을 시도하여 성공한다. 그는 다시 방랑의 길을 걷다가 안명근 사건에 관련되어 다시 구금당한다. 그는 징역 17년을 선고 받았고, 옥살이중 호를 백범이라 하고 이름을 김구(金九)라 고쳤다. 감옥에서 나온뒤 김구는 멀리 상해에 임시정부의 임원이 되어 이봉창, 윤봉길 등 민족의 영웅들을 만들어 내며 오로지 내 나라의 독립, 내 동포를 위해 힘쓴다. 임시정부의 근거지로 장사, 광주, 중경등지로 옮기면서 김구는 여러차례의 죽을 고비를 면하고, 어머니의 상도 치루게 된다. 어머님을 고국땅에 묻지 못함을 원통히 생각하고, 한 평생 아들을 위해 애써온 은혜를 다 값지 못함을 서러워한다.
1945년 8월 15일 일본은 무조건 항복을 하게 되었다. 이 소식을 들은 백범은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충격을 받았다. 그 까닭은 다년간 천신 만고 끝에 훈련해 온 광복군이 본국으로 가서 직접 일본군을 무찔러 볼 기회를 잃었기 때문이었고 자신들이 이번 전쟁에서 별로 한 일이 없으므로 장래 국제사회에서 발언권이 빈약한 것이 걱정되었기 때문이다. 광복의 기쁨과 슬픔을 그는 동시에 맞봐야 했던 것이다. 27년 만에 조국의 땅을 밟은 그는 일천, 마곡사등 전국 38이남을 순회한다. 또 윤봉길, 이봉창 열사의 유적지를 찾아보고, 그들의 유골을 효창공원에 봉암한다. 그리고 "나는 대한 나라 자주 독립의 날을 기다려 다시 이 글을 계속하기로 하고 아직은 붓을 놓는다."하며 '백범일지' 책의 결말을 짓는다.
나는 중국인으로서 처음 이 책을 보며 어휘에서 이해가 안가는 부분도 있었지만 역사에 대한 더 깊은 이해와 민족영웅에 대한 존경심을 한층 높일 수 있었다. 또한 중간 김구 선생님의 뜨거운 민족애를 보면서 감동으로 마음이 뿌듯했고 눈시울을 적셨다. 이 책에서 보면 김구는 일평생을 독립운동가로서 오로지 나라를 위해서만 살아왔다. 비록 민족의 영웅이며 모든 이에게 존경을 받지만 그의 생활은 그다지 행복하지 못한 것 같다. 어려서는 환경이 어려웠고 결혼에 여러번 실패했으며, 자식들과 아내를 곁에 두고 보살피지 못하고 떠나보내야 했고, 오로지 자신만을 바라보고 살아오신 어머님께도 제대로 효도한 번 못 해 드리니, 민족 영웅의 뒤엔 항상 가족의 희생이 따르는 법인 듯 하다. 특히 평생을 식모살이까지 해가며 아들 옥살이를 뒷바라지 하고, 언제나 뒤에서 마음의 힘이 되어주신 그의 어머니는 김구 선생님의 성공의 주요인이 되었다 하여도 과언이 아닐것이다. 자기 가정보단 언제나 나라를 먼저 생각해야 했으니 그 때의 심정은 아마 우리로선 헤아리기 어려울 것이다.
중국의 역사도 한국과 비슷한 점이 많다. 일제의 침략을 받았으며, 한민족이 둘로 나누어지는 아픔을 겪어야 했다. 그리고 그 속엔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수 많은 열사들이 있다. 그 중에서 손문선생과 장개석 총통은 중국의 오늘을 대표하는 인물이다. 또한 김구는 장개석과 안면이 있으며, 서로 정치적 도움을 준 적도 있는 줄로 안다. 김구는 먼 타국땅까지 와서 조국을 위해 전심전력했다. 이렇듯 희생을 치룬 그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우리가 있을 것이라 생각된다.
며칠 전 난 학교에서 관람차 김구 박물관에 갔었다. '백범 김구의 겨레사랑전'이란 주제로 그 곳엔 그 당시 유물들이 소장되어 있었다. 김구 선생님의 친음성친필휘호등을 볼 수 있었고, 암살당시에 입고 있었던 피묻은 옷도 볼수 있었다. 옷에 나 있는 총탄 구멍과 검게 그을린 핏자국을 보니 그 때의 상황이 느껴지는 듯 했다. 사진들도 전시가 되어 있었는데 그 중 기억에 남는 몇 장은 광복 후, 고국에 돌아온 김구 선생님의 침울한 얼굴빛과 윤봉길 의사의 유족을 방문했을때 사진 속에 남은 그들의 외면, 또 임무를 수행하기 전에 마지막으로 남긴 사진들을 보니 괜히 마음이 아파왔다. 이날 난 뜻깊은 하루를 보냈고 일상생활에서 흔히 잊고 사는 것들을 다시금 생각하게 되었다. 또한 모든 청소년들에게 그와 같은 감동과 깨달음을 함께 했음 하는 아쉬움을 남게 했다. 이 책에선 김구 선생님 외에도 많은 열사들을 찾아볼 수 있다. 특히 이봉창, 윤봉길 의사와 같이 조국을 위해선 자신의 목숨까지도 아끼지 않는 두 분의 정신을 우린 본 받아야 할 것이다.
내 시계는 앞으로 한시간 밖에 소용이 없다며 윤봉길 의사가 시계를 내미는 장면은 정말 목이 메이게 했다. 자신의 죽음을 결코 슬퍼하거나 두려워하지 않고, 오히려 나라를 위해 큰 일을 함을영광으로 여기니 정말 대단하다는 말밖엔 달리 표현할 길이 없다. 이렇듯 희생을 치룬 그들이 있기에 우리가 있을터인즉 어찌 우리가 사는 사회의 주면에는 이리도 부정과 타락이 계속되고 있는 것일까. 옛 선조들이 이룩해 놓은 고귀한 이 땅을 우린 바로 살고 있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많은 청소년들을 보면 외래문화에 치우쳐 있고 자기만을 생각하는 이기적 사회를 이루고 있다. 아직 이 나라의 완전한 희망, 통일이 이루어지지 않았는데 한 나라의 기둥인 청소년이 휘청거려서야 되겠는가. 김구 선쌩님의 뜻이며 그의 평생 소원 이셨던 통일은 우리가 이뤄야 할 마지막 과제일 것이다.
김구 선생님의 친필중 이러한 말이 있다. " 踏雪野中去 不順胡亂行 今日我行路 遂作後人程" "눈 덮인 들판을 걸어갈 때 발걸음을 하나라도 어지럽히지 말라. 오늘 내가 가는 이 길은 뒷사람의 이정표가 될 것이므로", 한 평생을 자기 자신보다 조국의 앞날과 발전만을 걱정하셨던 백범 김구, 그의 굳건한 정신은 우리의 디딤돌이 될 것이며, 언제까지나 이 나라의 영광으로 길이 남을 것이며 언제까지나 이 나라의 영광으로 길이 남을 것이며, 보다 나은 한국 창조에 큰 힘이 될 것이다. 그러한 그의 정신을 우린 언제까지나 기억하며 '나라사랑'이란 말을 다시 한 번 되새겨 보아야 할 것이다.
'白凡日誌'를 읽고서
高 2-3 劉永愛
백범 선생의 자서전인 "백범일지(백凡逸志)"를 읽고 난 후, 비록 그것은 그의 두 어린 아들인 신, 인에게 자기자신의 몸은 죽음이 언제 닥쳐올지 모르는 처지에 장래에 자라서 아버지에 대하여 알고 싶어 할 때, 보라고 쓴 것이지만 나에게는 천하에 있는 후손들에게 자기 자신의 애국정신을 알리는 글인 것 같았다. 우린 여기서 그의 피눈물 나는 노력, 투쟁, 자책(自責), 후회를 엿볼수가 있으며,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감동받지 아니할 수가 없었다.
우리가 다 알다시피 그는 안동김씨 경순왕(敬順王)의 자손으로 병자년 7월 11일 자시(子時)에 텃골에 있는 어느 집에서 태어났고, 그의 기구한 일생을 예고인지 유래가 없는 난산이었다. 진통이 나타난지 6,7일이 지나도 태어나지 아니하고, 어머님은 아이가 귀찮아서 죽었으면 좋겠다고 하셨을 정도로 젖이 말라 암죽을 대신 먹이고, 아버지가 아이를 품속에 품고, 동네 방방곳곳을 돌아다니며 젖을 얻어 먹이셨다.
그는 어려서부터 매관매직(賣官賣職)의 타락한 사회와 왜놈에게 늘 수모를 당하는 나라를 보시면서 자라셨기에 자신이 이 나라를 꼭 살리겠다고 굳게 다짐을 했었다.
백범 선생께서 민족의 이름으로 추앙(推仰) 받게 된 것은 그가 우리의 법통인 임시정부 주석으로 항일 투쟁에 일생을 바치신 사실(事實)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남한(南韓)만의 반쪽정권에 전혀 연연하지 않고, 오로지 소박한 민족애와 정략을 배제한 우국충정으로 통일된 정부의 수립을 갈망한 그의 민족주의 정신에 있다 할 것이다. 따라서 8·15이후 민족 분열을 강요하는 외세와 이를 업고 계속해서 권세를 누리려는 친일 수구세력과 맞서 싸운 그의 외로운 민족자주통일노선은 순교자적 자세와도 같은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황소 백마리가 나를 끌어 당겨도 우리 동포끼리 단결하여 통일 독립을 쟁취하고자 하는 나의 결심을 한 치도 무너뜨릴 수 없다."
이것은 김구 선생께서 남북협상 반대시위대 앞에서도 주저함이 없이 태산 같은 신념을 밝히신 말씀이시다. 이 땅에 통일된 자주 독립국가를 세우시겠다던 백범 선생의 간절한 소망은 미·소(美·蘇)양대국이 삼팔선으로 경계로한 분할점령으로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역사의 오류속에서 통속적으로 인식되어 왔던 백범의 민족주의 노선은 다시금 속속들이 우리들로 하여금 재검증하라고 하고 있다.
문민정부 출범은 백범정신의 부활로 보는 그의 기대에 부응하도록 사심없는 자세로서 국정(國政)에 임할 수 있도록 우리는 굳게 다짐을 해야 한다.
비록 50년전 그는 우리 곁을 떠났지만, 우리 현대사의 거목으로 평생을 항일투쟁과 민족의 자주독립을 위해 조국에 몸을 바치시고 돌아가신 백범 김구선생의 그 크고 굵은 발자취는 영원히 우리의 마음속 깊이 남을 것이다. 영원히......
영원에 이른 '나흘의 사랑'
내가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시공사)를 읽게 된 까닭은 책이 출간된지 이태가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주간 베스트셀러 목록에 빠지지 않고 있다는 이유 때문만은 아니다. 얼마 전 중학생 아들을 둘이나 둔 한 여성이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를 읽었다는 얘기 끝에 '아, 나도 그런 사랑 한번 해 봤으면 소원이 없겠네!'하고 열망에 들뜬 눈빛을 했기 때문이다.
나는 그녀에게 마흔이 넘은 나이에 아직도 사랑하고 싶은 남자가 있느냐고 빈정댔다. 그러면서 도대체 무슨 대단한 사랑 이야기가 담긴 소설이기에 그토록 많은 여성들이 감격하고 흥분하는가 하는 호기심이 생겼다.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는 '내셔널 지오그래픽', 사진 기자인 52세의 남자 킨케이드와 45세 농사꾼의 아내인 프란체스카 사이에서 이루어진 지고지순한 사랑의 이야기다. 무료한 일상에 젖어 있던 프란체스카 앞에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를 촬영하러 온 남자가 나타나고 프란체스카는 마침 남편 리차드가 출타 중인 틈을 타 그 남자와 나흘 동안 깊은 육체적 사랑을 맺는다. 그리고 그들은 서로 죽을 때까지 더 이상 만나지 않고 아무런 연락도 없이 22 년 동안 마음속으로 그리워하다가 죽는다. 도저히 현실에서는 있을 것 같지 않은 사랑 이야기다. 이 책의 역자는 '두 사람이 제3의 존재를 가져갈 수 있는 사랑' '죽을 때 가져갈 수 있는 영혼의 사랑'이라고 까지 말하고 있다.
과연 그런가? 그들의 사랑을 평가절하 시키고자 하는 것은 아니지만 , 따져 놓고 보면 소설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는 프란체스카라는 한 유부녀가 한 남자를 만나 바람(?)피운 이야기로 불륜의 사랑을 소설적 미학으로 승화시켜 놓은 것에 불과하다.
고루한 유교적 또는 도덕적 사고인지는 모르지만 순박한 농사꾼 남편을 둔 프란체스카가 처음 만남 남자와 만나자마자 육체적 관계를 갖게 되는 것을 사랑이라고 이해하기는 힘들었다. 그것은 뜨거운 사랑이 아니라 끓어오른 내면의 욕정이 아니었을까?
그녀는 평생 킨케이드를 사랑하면서 동시에 남편도 사랑한다. 어떻게 일생을 두고 남편을 사랑하고 또 다른 남자를 동시에 사랑할 수 있을까? 내가 너무 현실적이고 속물적인지는 모르지만 나는 프란체스카의 남편과 같은 남자로는 일생을 살고 싶지 않다. 그들의 지순하고도 열정적인 사랑에 매료되다가도 그녀의 남편의 입장에서 생각하면 결코 유쾌하지가 않다.
그러나 오랜 세월의 그들의 기다림과 그리움은 감동적이다. 나흘간의 사랑을 일생의 사랑으로 창조하는 가운데서 그들은 기다림과 그리움의 고통을 다스리고 극복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아마 이 책을 읽은 한국의 여성 독자들이 평생 그런 사랑 한 번 해봤으면 하고 소원하게 되는 까닭은 그들의 그리움의 아름다움 때문이 아닌가 한다. 사랑에 필연적으로 따르게 되는 고통을 진실을 통해 아름답게 승화시켰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사랑의 이름으로 부부가 되어 살면서도 그들만큼 진실 되게 사랑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본 작품은 모 신문에 나온 기성작가(성명불상)의 독후감이다. 참고가 되었으면 합니다.)
학생 생활 지도를 인내-사랑으로
교직을 성직이라고 부르던 시대가 있었다. 지금도 그렇게 말하는 인사들을 간혹 본다. 교사들에게 희생을 요구하는 자리거나 아니면 스승의 날과 같은 대회가 열리는 식장에서 높은 분(?)들이 치사를 하는 경우가 대표적인 사례라고 하겠다.
그러면 현장에서 근무하고 있는 교사들의 생각은 어떤가? 특히 젊은 교사들일수록 교직을 특별한 소명 의식이 부여된 성직이라고 생각하기보다는 교육에 관한 전문지식과 자격을 갖춘 전문직으로 이해하려는 경향이 일반화되어 있는 듯하다. 그렇지만 아이들을 학교에 보낸 학부모들과 교육에 기대를 걸고 있는 사람들은 아직도 선생님은 다른 사람들이 줄 수 없는 헌신적인 사랑으로 학생들을 가르쳐 주는 존경할 수 있는 분이기를 기대한다. 교사는 학생들에게 교과 지도를 통하여 지식을 전달하는 임무와 함께 학생들이 건강하고 올바른 인격을 지닌 성인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도 맡고 있다. 이와 같은 영역을 학교에서는 생활 지도라고 한다. 지식을 전달하기 위해선 전문가적 자질이 필요하겠지만, 탈선을 예방하고 잘못을 저지른 학생들을 감화시켜 선도하는 생활 지도에 있어서는 성직자적인 헌신적 사랑과 희생이 더 요구됨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그런 뜻으로 본다면 아직도 교직에서 성직적 기능은 유효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현장에서 사춘기 청소년들을 교육하는 중등학교 선생님들은 교과지도보다 생활지도에 훨씬 더 어려움이 많다고 실토한다. 청소년기는 발달단계로 볼 때 아이에서 성인이 되는 과도기이다. 따라서 성장엔 따른 많은 어려움들을 경험하게 되는데, 신체적 혹은 심리적으로 많은 변화가 일어난다.
얌전하고 착실하게 공부를 잘 하던 아이가 어느날 갑자기 가출을 한다든지, 부모 말씀 잘 듣고 학교에서도 모범생이라고 칭찬을 받던 아이가 반항적인 태도로 돌변하여 부모를 놀라게 하거나, 친구들과 어울려 흡연이나 음주를 하거나, 등록금을 유흥비로 써 버리는 등 전에 볼 수 없었던 돌발적인 행동을 보일 때도 있다. 이런 행동들은 종종 개인적 혹은 집단적인 비행과 탈선으로 연결되기도 하여 학부모와 교사들을 당황시키곤 한다.
이런 아이들의 부모를 상담하다 보면 한결같이 예전엔 안 그랬는데 고등학교에 올라와서, 혹은 학년이 바뀌자 그렇게 되었다고 말하며 이해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어쩌면 사춘기적 당신의 모습인지도 모르면서.)
처음 교단에 서기전까지 교사들은 다들 자신만만했다고 말한다. 가르친다는 것은 보람있는 일이요, 학생들은 교사가 의도한 대로 다들 따라 주리라고 생각을 하지만, 막상 교실에 들어가 보면 그런 생각이 얼마나 순진한 기대였던가를 금방 깨닫게 되고, 사람을 다루는 것이 힘들고 어렵다느니 하게 되며 때로는 자신감이 낙담으로 변해 있음을 보게 된다고 한다. 그래서 흔히들 아이들을 지도하는 일이 책에서 배운 이론과 지식으로는 잘 되지 않더라는 말을 종종 듣게 된다.
그렇다면 교사가 어떻게 이런 예측할 수 없는 아이들을 감화시키고 지도할 수 있을까. 그것은 다름 아닌 아이들을 이해하려는 태도와 인내와 사랑과 헌신을 보일 때 가능하다고 말한다. 교사가 이러한 행동을 아이들에게 보일 때 비로소 아이들은 신뢰하고, 조금씩 행동의 변화를 가져오더라는 것이 선생님들의 공통된 고백이다. 심지어 어떤 선생님은 현장에서 아이들을 가르쳐 보니 교육심리학이 얼마나 허구인가를 알겠노라고 말하면서, 사범대학에서는 교육학보다 먼저 사랑학을 가르쳐야 된다고 주장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바야흐로 교육 개혁 시대가 왔다. 이번에야말로 한국 교육의 백년대계가 이루어지고 참교육이 정착되기 위해 무엇보다 학교 현장교육의 불합리한 점을 제도적으로 보완해야 한다고 본다.
교사간의 공통적인 의식, 젊은 교사와 기성 교사와의 갈등 해소, 교사들의 사명감, 학생들이 교사 존경풍토 등이 확립되고서야 이번 5·31교육 개혁 조치의 실효와 한국 교육의 올바른 지표가 정착되리라 확신한다.
제 2 의 인생
고려대 명예교수인 법의학자 문국진박사는 올해 71세가 된다. 그는 대학에서 정년 퇴직을 하자 '이제부터는 내 뜻대로의 제 2의 인생을 꽃피우겠다'는 생각으로 세 가지 계획을 세웠다.
첫째, 수필 쓰는 것을 배우는 것
둘째, 자동차 정비
셋째, 컴퓨터 배우는 일
배우는 데는 정년이 없다고 생각하고 제일 먼저 동아문화센터 수필반에 등록하여 하루도 빼지 않고 강의를 들으며 글을 썼다. 그곳에서 가까운 국회도서관에 가 자료도 찾고 글도 쓰며, 월간지에 연재를 하기도 했다. 그 분의 글은 거의가 법의학에 대한 내용으로 '강시 강시' '지상아' '오호라' '법의 검시학'이 있는데, 유려하고 읽기 쉬운 필체로 많은 팬들을 확보하고 있다. 최근엔 '의료 인간학'이란 저서를 냈는데, 의대에는 과연 누가 가야 되는가의 문제를 다룬 책이다. 대부분 학력고사 점수가 높은 사람이 의대에 가는데 의사란 편하고 보장되는 직업이 아니며, 진정한 인술이란 무엇인가를 알려주는 색다른 책이다.
그는 자동차 정비와 컴퓨터도 꼭 배우겠다고 결심이 대단하다. 결국 따지면 보면 인생에 정년이란 없는 것이다. 정년 퇴직 후 인생의 패잔병처럼 아랫목에 앉아 있다 보면 유능하던 사람들도 어느새 시든 나뭇잎처럼 되어 버린다. 직장에서의 정년 퇴직은 직장만의 문제는 결코 아니다. 인생의 정년은 이 세상을 하직하는 날인 것이다. 그런데 직장의 정년을 앞두고 대부분 불안해서 안절부절못한다. 내 인생은 여기서 끝났구나 하는 생각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 주변에는 정년 이후 더욱 활발하게 움직이는 분들도 많다.
홍문화, 안병욱, 김형석, 김태길, 류달영선생은 70대 중반인데도 젊은 사람들 못지 않게 정력적으로 뛰고 있다. 우리 모임에서 정력적으로 뛰고 있다. 우리 모임에서 김찬삼선생은 60대 후반이지만 앞의 어른들은 이분을 코흘리개 정도로 어리게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야구의 승부는 '9 회 말 투아웃부터'라는 말이 있다. 나는 배운 게 없다, 아는 게 없다, 힘이 없다, 줄이 없다 등등 '없다'노래를 부를 것이 아니라 있는 것을 찾아보자. 가장 중요한 목숨이 있지 않은가? 언어문화원의 김양호원장이 언어 성공학 저서를 냈는데, 표지 맨 끝에 이런 글이 들어 있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른 때다." 우리 한 번 다 같이 그 의미를 한 번 생각해 보자.
美國의 X세대와 Y세대
미국 유수의 보험회사인 푸르던셜사는 지난 6일 워싱턴 내셔널 프레스 빌딩에서 기자 회견을 갖고 매우 흥미 있는 자료 하나를 내놓았다. 제목은 'Y세대가 X세대를 대체하고 있다.' 웬 세대 교체나 싶어 살펴보니 미국의 청소년을 상대로 한 지역사회 봉사 활동 실태 조사 보고서였다. 이 보고서에 왜 X세대,Y세대가 등장할까?
주최측의 설명은 이러했다. 미국 전역에서 청소년(11-19세) 1천명을 상대로 설문 조사를 했더니 놀랍게도 응답자의 95%가 지역사회를 위해 각종 봉사 활동에 참가하기를 원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 이들을 젊은 세대로 부르기로 했다는 것이다.
남에게 무관심하고 미래를 생각하지 않으며 오직 순간 순간을 즐길 뿐인 X세대와는 너무 대조적이어서 Y세대라는 표현이 적합했다는 것. 한 관계자는 'X는 Yes의 Y를 의미한다.'고 귀띔했다. 매사에 있어서 긍정적이고 참여적이기 때문에 어떤 일에도 'Yes'라는 대답부터 나가는 세대라는 얘기였다. X세대에 대한 대칭 개념으로서 Y세대라는 말이 나온 지는 제법 됐으나 그 정의를 '참여의 세대'로 규정지은 것은 푸르던셜사가 처음이다.
주최측의 설명이 아니더라도 보고서 상의 수치는 주목할 만했다. 청소년 10명중 8명은 자신들이 지역사회를 위해 봉사 활동을 할 때 그 사회는 더욱 살기 좋은 곳이 된다고 답했고 6명이 범죄나 폭력은 정부보다 개인 각자의 노력에 의해서 해결되어야 한다고 믿었다.
가장 흥미 있는 지역사회 활동은 남을 도와주는 것이라고 응답한 청소년이 89%에 달했고 82%가 공원이나 하천 청소 같은 환경 보호 운동을 가장 하고 싶은 봉사 활동으로 꼽았다. 물론 미국은 상급학교 진학을 위해서는 봉사 활동 실적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그런 점을 감안하더라도 적어도 설문 조사 상으로 나타난 미국 청소년들의 의식은 대단히 긍정적이고 참여 지향적이었다. 푸르던셜사의 아더 라이언회장이 조사 결과를 놓고 '오늘의 10대는 목표가 없고 참여성이 없는 20대 X세대와는 분명히 달라서 지역사회의 문제 해결을 위해 기꺼이 자신을 내던지기를 원한다.'고 말할 만 했던 것이다.
한국은 어떨까? 우리 또한 X세대로부터 Y세대로 옮아가고 있는가? 아니면 아직도 X세대의 잔영에 젖어 있는가.
四歲 課外
히말라야 깊은 산 속에 취락한 티베트족은 조기교육을 시킨다. 다섯살 전후만 되면 어머니 슬하에서 떼어 절간 학교에 보낸다. 이 절간은 강 건너 깊은 산 속에 있게 마련이며 그 강물에는 칡덩굴로 꼰 외줄 다리가 걸려 있을 따름이다. 이 외줄 다리에 매달려 강을 건너기란 담력이 필요하며 부모들은 아이가 네살만 되면 다리 건너는 과외공부를 시킨다. 일단 건너가면 2-3 년 동안 공부를 마칠 때까지 집에 돌아오지 못한다. 관음보살이 나타난다는 축제일에 단 한번 어머니와 아이는 강의 양편 언덕에 서서 음성만을 교감할 따름이다.
히말라야의 험한 조건 속에서 살아 내려면 강인한 정신력과 자립 심을 떡잎부터 주입시키지 않으면 안되고 그 오랜 히말라야 인생의 체험이 이 조기 격리 교육을 불가피하게 했음직하다.
이 응석 단절과 자립심 배양의 조기 교육은 중세 유럽에도 있었다. 귀족이나 부호들은 아기가 서너 살에 이르면 시골 농가에 양모를 정해 1-2 년 동안 격리 양육을 시킨다. 18세기 루소의 '에밀'에 이러한 대목이 나온다. '가난한 농가에 맡겨진 이 아기들은 양부모들이 밭에 나가 일하거나 가사에 종사하는 동안 누더기로 둘둘 감싸인채 나뭇가지나 못에 걸어 놓아 얼굴이 샛노래져 있는 것을 흔히 볼 수 있다.' 세상 살기가 쉽지않다는 것을 이렇게 떡잎부터 터득시켰던 것이다.
한국 왕족이나 양반 집들에서도 호강에 겨우면 인성에 결함이 생긴다 하여 가난하고 엄하며 법도 있는 집에 의탁해 양육하는 관행이 없지 않았다. 연산군도 어릴 적에 남대문 밖 성희안의 집에 의탁, 양육했다는 기록이 있다. 이처럼 동서고금할 것이 없이 어머니 응석으로부터 자립시키는 조기교육은 바람직하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빨리 교육시킬 수록 공부를 잘해 좋은 대학가고 출세하리라는 공리심(功利心)에서의 조기 교육은 백해무익이다. 송나라 때 요주 땅에 주천석이라는 아기가 신동과거에 급제하여 벼슬을 얻자 너도나도 네닷살만 되면 사서오경을 가르치는데 닭장처럼 죽통속에 가두어 주야로 잠도 재우지 않으며 닦달을 했다.
그리하여 요주는 신동의 산지란 말이 났으나 급제하기 전에 반이 고달파 죽고 급제한 신동들도 하급 과거인 향시에 하나도 급제하지 못했다 한다. 지금 다섯살 취학을 앞두고 그 나이 또래 부모의 4명에 한명꼴이 조기 취학을 시킬 셈이라하고 그 취학 문이 좁아지자 네살배기 과외가 성행하고 있다 한다. 티베트 조기 교육과 요주 신동교육을 비교해 보았으면 하는 것이다.
유엔 안보리 어떻게 운용되나
안보리는 유엔의 상설 운영 기구 중의 하나로 미국, 영국, 프랑스, 러시아, 중국 등 거부권을 가진 5개 상임이사국과 2년 임기의 비상임이사국으로 구성된다. 이중 10개 비상임이사국은 지역 대표성에 따라 아프리카 아시아 그룹에서 5개국, 서구 2, 남미 및 카리브 2, 동구 1개국씩으로 충원되며 매년 5개국씩 교체된다.
이사국의 선임은 총회에서 실시하며 경합이 없더라도 총 유효 투표의 3분의 2이상을 투표해야 한다. 이를 얻지 못할 경우 투표는 계속 반복된다. 각 지역 그룹은 단일 후보를 추천할 수 있으며 한국은 이번에 아시아 그룹의 추천으로 단독 입후보했다. 아주(亞洲)국가 중에는 일본이 지난 58 년 이후 7번을 역임해 최다 기록을 갖고 있으며 이어 인도가 6, 파키스탄 5, 필리핀이 3회씩 비상임이사국을 지냈다.
안보리는 매달 월례 의사일정을 정해 이에 따라 그 달의 회의를 운영한다. 시급한 사태 발생시 월례 일정에 추가해 수시로 공식 비공식 회의를 개최하기도 한다. 안보리 의사국은 회원국들이 알파벳순에 따라 매달 번갈아 맡게 된다. 한국은 97년 2월 의장국을 맡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안보리의 실질적 협의는 주로 비공식 과정을 통해 이루어지는 게 보통이다. 가령 주요 의제의 처리 방식, 즉 결의안, 의장성명, 기타 방식 등에 대한 결정에서부터 초안작성과정 등 모든 실질적 논의가 비공식 접촉으로 진행된다.
본회의는 절차적 차례로 결의나 성명 연례 보고서 등을 채택하며 단순히 기록을 남기기 위한 공개 토의도 이루어진다. 이 때문에 주요 의제의 당사국들은 자신의 문제가 안보리에서 어떻게 다루어질 것인지에 대한 정보를 얻기 위해 이사국에 매달리는 경우가 적지 않다.
콜레라균
최근 4년만에 국내에 모습을 드러낸 콜레라는 전세계적으로는 한 시기도 사라지지 않는 끈질긴 생명력의 전염병이다. 콜레라균의 세계 유행 현황과 생존 기간을 알아본다.
세계 발생 현황 - 작년 1년간 1 백여 개국에서 38만 명이 발생, 10 만 명 정도가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중 68개국은 자국에서 발생했으며 38개국은 해외 유입형으로 판명됐다. 유럽의 경우 이탈리아, 루마니아 등지서 93년보다 10배가 넘는 2천 6백여 명이 발병했다. 아시아에서는 중국, 인도 등지서 10 만 명 이상이 발생했다. 일본의 경우 2백 80여명이 발병했으며 해외 유입형과 자국내 발생이 동시에 있었다. 아메리카는 멕시코와 페루 등지서 11 만 명 이상이 발병했다. 아프리카에서는 작년 16 만 명이 발생했으며 기아, 전쟁 등으로 확산되고 있다.
콜레라균의 생존 기간 - 실온의 개방된 환경에서 콜레라균의 생존 기간은 대변의 경우 7-14일이다. 물의 경우 멸균 수에서는 1-5일, 흐르는 물에서는 1-2일, 강물에서는 2-3일, 바다 속에서는 2 주정도 사는 것으로 알려졌다. 식품의 경우 육류 7-14일, 어패류 2-5일, 야채 1-3일이다. 땅의 경우 열대 습지는 7일, 러시아의 겨울 토양에서는 4개월간 생존한다. 그러나, 냉장 상태에서 콜레라균의 생존 기간은 크게 늘어난다. 예를 들어 바닷물은 60일, 냉장 어류는 10-12일 가량이다.
한국에서의 석전(釋典)과 문묘(文廟)
성균관에서는 봄-가을 두번에 걸쳐 '석전'행사를 치른다. 그런데 항간에는 이 석전이 단순히 공자의 탄신을 기리는 기념 의식으로만 잘못하는 경향이 있다. 석전은 공자 탄생 이전부터 있었던 '학교의 제사'이다. 말하자면 각급 학교에서 학문 정진의 결의를 가지는 스승에 대한 공경의 예절이요, 축제 행사였던 것이다.
오늘날 대학 축제가 학생들만의 행사에 머무르는 서구식 페스티벌을 모방했다면, 석전은 1600년의 전통을 가진 한국의 대학 축전이다. 조선 시대에도 국립대학인 성균관과 지방의 361개 향교에서 일제히 석전의식을 봉행했다.
성균관 안에는 문묘가 있다. 문묘에는 공자를 비롯한 안자, 증자, 자사, 맹자 그리고 설총, 최치원, 정몽주, 조광조 이퇴계 이율곡 조헌등 한국의 현인들의 신위도 함께 모셔져 있다. 이를테면 공자 한사람만을 숭배해 온 것이 아니라 한국의 훌륭한 문인들의 위패를 이곳에 함께 모셨던 것이다.
교육과 학문에 관한 한 성균관이 한국 민족사에서 정통성을 갖는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자기 나라의 훌륭한 학자이며 동시에 지도자의 위패를 문묘에 모두 모시어 스승의 예를 올리는 곳은 아마 세계 어느 나라에도 없을 것이다.
문묘에는 아무리 훌륭한 무인이라 할지라도 위패가 봉안되지 못했다. 오로지 스승과 제자 관계가 성립되며 교육과 학문이 연관되는 문인에게만 적용된 것이다. 그러므로 문묘는 유교의 단순한 종교의식이라기보다는 국가의 인재를 양성하는 학교의 체제요, 석전은 문묘에 봉안된 성현을 스승으로 삼아 그들의 교학정신을 본받아 학문의 정진을 결의하는 학교의 예식인 것이다.
또한 문묘는 문민정치의 상징이기도 했다. 조선조에서 새로운 임금이 등극할 때 또는 왕세자가 새로이 책봉되었을 경우 곧바로 문묘를 찾아 엎드려 고유(告諭)했던 사실이 이를 입증한다. 21세기 세계화를 부르짖는 오늘날 한국적 전통과 문화를 세계에 빛내고자 한다면, 무엇보다 전통 문화의 창달과 민족정기를 회복하여, 이러한 교육 문화의 전통을 적극 선양하여야 할 것이다.
博 士
한국의 독립운동가로서 일찍이 개화사상을 도입, 국민계몽활동에 앞장섰던 서재필 박사는 한국인 최초의 박사학위 소유자였다.
그는 갑신정변이 3일 천하로 실패하자 일본을 거쳐 미국으로 망명했다. 그곳에서 고학으로 고등학교를 마친 후 컬럼비아 의과대학(지금의 조지 워싱턴 대학 의과대학)야간부에 진학, 1893년 6월 2등으로 이 학교의 병리학 강사가 됐다. 그가 이 대학의 병리학 강사가 됐다. 그가 이 대학에서 세균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것은 1904년.
한국 여성박사 1호는 이대 총장을 역임한 김활난 박사다. 1931년 컬럼비아 대학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한국 내에서 정식으로 박사학위가 수여된 것은 52년 부산 피난 시절. 서울대학에서 처음으로 6명에게 박사학위를 수여하면서부터 각 대학에서 박사들이 배출되기 시작했다. 따라서 한국 국내박사 1호는 6명인 셈이다. 이춘근(의학), 김병헌, 이병도(이상 문학), 전풍진, 김동일, 원태상(이상 이학)씨등이다.
이에 앞서 서울대에서는 48년 맥아더 장군 등 2명에게 명예박사 학위를 주었고 49년에는 이승만 당시 대통령에게도 명예학위를 수여했다.
이렇게 한국 대학에서 주어지기 시작한 박사학위 소지자는 94 년 말 현재 3만 8천 1백43명에 달한다. 이외에 명예박사도 1천7백6명이나 된다.
대학별로는 서울대가 7천1백14명으로 가장 많고 고려대 3천3백20명, 연세대 2천7백 67명, 경북대 1천9백78 명 순이다. 그밖에 외국학위를 갖고 있는 사람은 9천92명이다.
한국 교육부는 내년부터 석.박사과정을 통합 운영하는 내용의 대학원 교육제도 개편작업에 나섰다. 석사학위 없이도 박사과정에 바로 입학할 수 있고 최소 수업 연한도 크게 줄어들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대학원 교육의 국제경쟁력을 높이자는 목적이 분명하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제도의 개선이 아니라 운영의 효율성이다. 고학력 인플레 현상으로 가뜩이나 석,박사들의 취업현상으로 가뜩이나 석,박사들의 현상으로 심화되고 있는 판에 박사들만 양산하는 것이나 아닌지 한편으로는 걱정도 앞선다. 각 대학이 대학원 교육의 질을 높이기 위해 얼마나 노력하느냐에 달려 있다.
韓民族의 쌀 역사
한국인은 언제부터 쌀을 밥상에 올리기 시작했을까? 쌀 재배의 출발 지점은 인도 동북부 지역인 아삼(Assam)에서 중국 운남(雲南)지방에까지 걸친 넓고 긴 지대를 차지하고 있다. 이 지대에서 방사형(放射型)으로 아시아의 각 지역에 쌀 재배가 전파되었고, 그중 한 가닥이 한반도로 뻗으면서 한국의 쌀 문화도 개막된 것이다.
그렇다면 그 시기는 언제일까. 지난 77년 경기도 여주군 흔암리에서 3 천여 년 전의 탄화미(炭化米)가 출토된 것으로 보아 한국에서는 한사군(漢四郡)이전의 청동기시대부터 쌀을 생산했다고 판단된다. 평안남도 평양에서도 역시 비슷한 연대의 탄화미가 나왔다.
한국에 쌀 문화가 들어온 경로는 중국 설과 남아 설로 나뉘어 있다. 삼국 시대에 들어와 신라와 백제는 쌀 생산을 국가적 차원에서 장려했고, 특히 통일 신라 시대에서는 쌀이 단연 주곡의 왕이 됐다 조세(租稅)의 주대상이 쌀로 조(租)가 벼의 뜻으로 전용되기까지 했다. 게다가 그때부터 쌀 농사에 관련된 세시 풍속이 많아지고, 논을 뜻하는 답(畓)자도 사용됐다.
황해도 안악고분의 벽화에 부엌에서 시루로 밥을 짓는 광경이 있으므로 고구려 귀족들은 이미 오래 전부터 쌀밥을 주식으로 삼았다고 여겨진다.
수리(水利) 강화, 재배법 개량, 경지 면적 확대, 쌀 창고 증설 등이 활성화된 것이 바로 고려 때 였다. 특히 해마다 봄이면 한국의 농촌에서 시작되는 모내기가 들어온 것도 고려말로 짐작된다. 모판에서 모를 길러 논에 옮겨 심는 이앙법(移秧法)이 한국에 도입된 것도 고려 때로 여겨진다.
조선조는 모내기 법을 전 국화 했고, 함경도 변경 지대의 개답(開畓)시도(試圖) 등 정부 차원에서 여러 가지 노력을 펼쳤다. 쌀의 대중화는 한민족 고유의 식품인 떡을 낳았다. 쌀은 한국인의 사계절(四季節)을 따라 난다. 정월 대보름에는 오곡밥과 약밥, 음력 4월에는 찹쌀 가루를 반죽한 화전(花煎), 5월 단오에는 수리취떡, 8월 한가위에는 햅쌀밥과 떡, 신 도주(新稻酒)등등이다.
임산부를 둔 가정에서는 산달 3,4개월 전부터 미역 외에도 조각나지 않고 완전한 형태의 좋은 쌀만을 따로 보관해 두었다. 임산부의 진통이 시작되면 정한 상에 깨끗이 고른 산미를 한 그릇 담고 정한수 한 그릇을 떠놓고 삼신(三神)에게 안산(安産)을 빌었다. 상례(喪禮)에 있어서 시신에 옷을 다 입히면 염하기 전에 반함(飯含)을 한다.
반함은 쌀을 물에 불려서 사발에 담아 버드나무 숟가락으로 시체의 입을 벌리고 떠 먹이는 것이다. 망자(亡者)가 저승 가는 여정에 배곯지 말라고 먹이는 것이다.
쌀로 운세를 알아보는 쌀 점도 성행했다. 알아보고 싶은 사항을 물으면서 젯상에 올려놓은 쌀을 조금 손가락으로 집어 위로 던진 뒤 손바닥에 떨어진 쌀알의 수를 세어 길흉을 판별한다.
편집자의 변
지난 학년도 말(1995.07.) 학생들의 작품을 모아 '한글 마당' 제 1 호를 탄생시켰습니다. 당시에는 '과연 출간할 수 있겠는가 ?' '편집과 작품 수준이 떨어지면 어떻게 하지 ?' '학생들이 좋아할까 ?' '당초의 발간 취지에 알맞게 우리 화교 학생들의 문장력이 과연 향상될 수 있을까 ?' '학생들이 마음껏 발휘할 수 있는 창작 공간이 될 수 있을까 ?'하고 걱정을 많이 했었습니다. 그러나 '시작이 반'이라는 생각에 학교 당국과 동료들의 격려와 당시의 기능반 학생들의 도움으로 용기를 내어 출간을 하게 되었습니다. 다행히 학생들이 좋아했고 학교 당국과 동료들의 지도와 편달이 뒤따르게 되어 너무나 기뻤습니다. 이에 우리들은 용기 백배하여 '한글 마당' 제 2 호를 여러분들께 선보이게 되었습니다.
이번 호에는 학생들의 호응을 얻어 많은 작품을 수집할 수 있었지만, 한정된 지면에 전 작품을 게재할 수가 없어 안타까워하고 있을 때 학교 당국의 격려와 협조를 얻어 지면을 배가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들은 가능한 '한글 마당'의 원 취지를 살리기 위하여 거의 모든 작품을 게재하려고 했지만, 그래도 일부 실지 못한 작품들이 남아 기쁨보다는 투고한 학생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앞서게 됩니다.
우리들은 전문적인 편집인이 아니기에 편집 방식이 너무 안이하게 편집되었음을 잘 알고 있습니다. 독자들의 따가운 시선을 받을까 두렵습니다. 그러나 우리들의 시도가 점차 호응을 얻고 있다는 데에 큰 의미를 부여하고 싶습니다.
'한글 마당' 제 2 호가 나오기까지 많은 분들이 수고를 해주셨습니다. 학교 당국은 지면을 배가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셨고,韓語敎學硏究會의 譚道經, 李賢玉, 金英姬 李敬子 盧乃愛 선생님들께서 원고의 수집 및 정리를 해주었으며, 周鴻運 선생님께서는 표지 설계와 삽화를 해주셨습니다. '창간호'에는 실험적으로 개설한 기능반 학생들이 워드를 배우면서 원고의 타자 와 정리를 맡아 주었지만, 그들은 이미 졸업을 하였기 때문에 '많은 양의 작품을 어떻게 전부 타자할 수 있을까 ?'하고 고민하고 있던 중, 서울 교육대학교에 재학 중인 중국어 연구회 소속 학생 徐溪鮮양의 도움으로 원고를 다 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 외에 많은 선생님들께서 좋은 의견과 많은 도움을 주셨습니다. 문제되는 점은 점차 개선해 나갈 심산입니다. 많은 지도와 편달을 간절히 바라며, 수고하시고 도움을 주신 모든 분들께 심심한 사의를 표하는 바입니다.
1995년 12월
편집자 올림
한 글 마 당
發 行 者 韓 國 漢 城 華 僑 中 學
編 輯 者 韓 語 敎 學 硏 究 會
主席 譚 道 經
委員 李 賢 玉 金 英 姬 李 敬 子 盧 乃 愛
表紙設計 周鴻運
打 字 徐溪鮮
印 刷 者 華星文化社
住 所 서울 西大門區 延禧 3 洞 89-1
電 話 02 334 7217
發行號數 84-2 (第 2 號)
發 行 日 中華民國 84年 12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