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마당 1
韓國漢城華僑中學
韓語敎學硏究會
소녀의 기도
중 2-4 呂 序 麗
무릎을 꿇고 무언가 바라는 소녀의 마음.
사랑스런 뽀오얀 그 볼 위에 무언가 서리는 소녀의 마음.
조그만 두 손을 살짝 맞대고 아침 창가에 살며시 앉으면.
하이얀 손끝마다 베어있는 그 작고 예쁜 소망들은,
손 위로 흐르는 아침햇살이 소녀의 마음을 알아주려나.
누구를 향한 기도이길래.
누구를 위한 기도이길래.
그리도 아름다울까.
인간의 기도
중 2-4 呂 序 麗
제 어미의 젖을 빠는 아이처럼, 당신의 가슴에서, 심장의 고동소리를 듣게 해주십시요. 그 심장의 고동소리가 내 가슴 가득히 사랑의 언어로 잠재워질 때, 비로소 나의 상처는 아물 것입니다.
나를 당신의 품에 안고, 내 머리에 입맞추며 영원히 사랑한다고 말해주십시요. 그 입맞춤으로, 나의 분노가 가라 앉을 때, 비로소 나는 잠들 수 있을것입니다.
당신을 처음 만났을 때의 첫 느낌을 영원히 기억하게 해주십시요. 당신과의 첫 사랑을 가슴에 새기며 사는 한 나는 영원히 행복할 수 있을 것입니다.
언제나 당신이 함께 있음을 잊지 말게 하시고 영원히 당신을 사랑할 것을 다짐하게 해주십시요.
내가 당신을 사랑할 수 있음을 거듭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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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달음
중 2-4 呂 序 麗
의미 없는 치흘림과 대상 없는 탄식.
차디찬 어둠이 드리워진 거리에서.
메마르는 목과 허기진 배를 움켜지며.
채워지지 않는 육신의 만족을 위해.
나는 너무도 탐욕스럽게 살았습니다.
칼날같이 얼어붙은 눈빛
얼어붙은 영혼이 가득한 사람들 틈에서
친구로 믿었고 의지했고 사랑했던 자들의.
조롱하는 웃음과 냉혹한 뒷모습에
나는 버림받았음에 분노했고 절망했으며.
그들을 증오하며 살았습니다.
신음과 기성의 소리가 높아져가고.
아픔과 괴로움이 가득한 병마의 늪에서.
오한과 고통이 가득한 이 내몸에
한 가닥 의식의 끈을 놓지 못한 채
내 육신이 병들었음에
나는 통곡하며 살았습니다.
아름다운 선물과 순수함으로만
영원히 값지게 채우리라 다짐했던 나의 영혼마저.
다치고 상처받고 곪아서
피 고름이 쏟아져 내렸을 때
나는 내 안에 아무것도 남지 않았음에 좌절하고 말았습니다.
가난하고 외롭고 병들어 버린 나를 위해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핏값을 지불하시고.
생명을 주시려는 한 분을 만났던 그때는
비로소 배고픔보다 외로움보다 이품보다 썩어져가는 내 영혼보다.
더욱 소중한 것이 내 안에 있음을 나는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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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의 샘-- 공자
고 1-1 劉 永 愛
우리는 어릴 적부터 예절 바른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말을 무척이나 많이 들었다. 어른에게 공손히 대하고. 부모에게 효도하며. 형제간에 우애 있게 지내는 등등. 예절에 대한 이러한 생각은 공자의 사상에서 그 뿌리를 찾을 수가 있다.
공자는 늘 다른 사람을 자신처럼 여기면서 자기 자신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도 정성을 다하는 태도를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러한 태도를 "인(仁)"이라고 하는데, 공자는 "예절 있는 생활"을 통해서 이것을 실천해야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4대 성인이라고 불리는 예수, 석가, 공자, 소크라테스 같은 분들은 외모의 매력이 아닌 인간적인 매력을 지닌 인물들이다. 그들의 삶은 인류에게 정신적으로 많은 영향을 끼쳐 왔다. 그들의 삶은 인류에게 정신적으로 많은 영향을 끼쳐 왔다. 그들이 살았던 시대는 무척 오래 전이지만. 그들의 삶은 현재까지 우리 삶의 중요한 규범이 되었고, 앞으로도 영원히 인류의 정신적 길잡이가 될 것이다. 이 성인들 중에서도 가장 현실과 가까운 곳에서 평범한 진리를 말했던 분이 공자이다. 그 분이 우리에게 깨우쳐 준 진리도 위대하지만, 삶을 통해서 보여 준 인간적인 매력은 지금 살펴보아도 너무나 생생하다.
공지의 이름은 구(丘)이고, 자(字)는 중니(仲尼)라고 한다. 공자는 기원 전 551년에 중국의 노(魯)라는 나라에서 태어났는데, 당시는 춘추 시대로 중국의 주(周) 왕조가 쇠퇴하여 정치 질서가 혼란하여 어지러운 세상이었다.
공자의 아버지 숙량흘은 본처에게서 아들을 낳지 못하고 있다가, 60세가 넘어서 젊은 안징재를 만나 공자를 낳은 것이라 한다. 원래 공자의 집안은 훌륭하긴 했으나 형편이 어려웠다. 생계를 꾸려 가기 위해 나라 창고의 물건을 지키는 낮은 관직인 위리(委吏)라는 벼슬을 하기도 했다. "어렸을 때 놀이를 할 때면 언제나 제사 그릇을 차려 놓고 예를 갖추고 장난을 하였다"라고 한 것을 보면, 공자는 홀어머니 밑에서 자랐지만 바르고 엄격한 가정 교육을 받은 것 같다.
공자가 살았을 당시 노나라는 정치가 어지러워 왕에게는 거의 힘이 없었고, 세 집안이 나라를 마음대로 다스렸다. 이런 나라에서는 자신의 정치적인 꿈을 이룰 수 없다고 보고, 55세 때 지신을 받아들여 줄만한 임금을 찾아 여행길은 나섰다. 13년 동안 여러 나라에서 많은 임금들을 만나보았지만 이상을 펼쳐보려고 노력은 했으나 실패했다.
공자는 다시 노나라에 돌아와 교육에 힘썼는데, 제자가 삼천 명이나 되었다고 한다. 공자에게 이렇게 많은 제자들이 몰려들고 그가 존경을 받은 것은 공자가 학문과 수양에 대한 남다른 노력을 가지고 생활하였기 때문이다. 바로 이러한 그의 생활 태도에서 풍기는 인간적인 매력이 제자들을 끌어당기는 큰 힘이 되었던 것이다.
공자는 15세에 일생을 학문에 받치기로 결정하고, 19세에 장가를 들었고 다음해에 아들을 낳았는데. 안타깝게도 공자보다 먼저 죽었다. 30세에 학문의 기초를 확립하였고, 40세에 자기 학문에 자신을 얻게 되어 자신이 나아가는 방향이 인간의 생활로서 타당하다고 믿고 남의 말에 마음이 없게 되었다. 50세에는 학문에 몸을 받치는 것이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이며, 도를 세워 인류를 위하여 힘을 다하는 길이 자기 운명인 것을 깨닫게 되었다. 60세에는 부질없이 반발하지 않은 마음의 여유를 얻었다. 70세에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해도 인간의 법도를 어기지 않을 정도의 경지에 이르러 진정한 자유를 찾았다. 73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공자는 자신의 뜻을 그 당시에는 이루지 못하였다. 또한 질서가 바로잡히고 사람이 사람답게 되는 인(仁)이 이루어질 수 있는 이상정치를 실현할 임금도 만나지 못하였다. 그러나 그의 가르침은 제자들에 의해 오늘날까지 남아 있다.
공자가 추구한 것은 도덕적인 인간이다. 그리고 도덕적인 인간의 상태를 인(仁)으로 보았다. 인간이 군자인지 소인인지는 그 사람이 어진가, 아니면 어질지 않은가에 달려 있다. 즉 그 사람의 지식이나 능력이 아니라, 자기 자신에 충실하고 다른 사람의 입장을 내 입장처럼 여겨 남을 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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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사랑하는가에 달려 있는 것이다.
이렇게 공자는 항상 어떤 일을 할 때 그 일이 결과적으로 내게 이로울 것인가 아니면 해로울 것인가를 따지지 않고 오직 그것이 옳은 지, 그른 지를 따져서 행동했으며 이렇게 행동할 것을 제자들에게 강조했던 것이다. 결국 그는 아무런 보상도 바라지 않고 옳다고 여기는 것을 실행해 옮기기 위해 노력하며 살았다. 바로 이러한 공자의 삶이야말로 무수한 세월이 흘러도 빛이 바래지 않는 그의 매력인 것이다.
가을여행
순수함과 투명한 낭만을 가진 듯한 분위기의 계절-- 가을! 아름다운 새들의 지저귐에 찬사를 보내는 듯한 계절, 가을! 누구라도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이 계절, 가을을 그대들은 진정 느끼고 계십니까?
그것은 너무나도 고귀하고 아름답기에 손이 스치기만 해도 금새 사라질듯 하면서 우리 앞에 존재하는, 은총의 계절 가을입니다.
마치 갓 난 아이가 탄생한 후 처음으로 색동옷을 차려 입은 듯한 가을의 모습은 여러 가지 물감으로 지신의 옷을 치장하고 그의 아름다움을 뽐내는 듯이 우리의 작은 마음속으로 사랑스럽게 스며듭니다.
우리는 이것을 거부하지 못하고, 자신도 모르게 그 아름다움 속으로 살며시 빠져듭니다.
이런 우리에겐 새삼스레 우리에게 젊음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하여 우리는 충동적으로 무언가 하고 싶어집니다.
그 누구에게도 비밀로 하고 싶고 자신만이 간직하고 싶은 추억거리를 생각하고, 아름다운 자연의 공기를 마시며 자신을 되찾고 싶어하는 이들은 가을여행을 떠납니다.
하지만, 그 가을여행에 앞서서 우리는 우리의 인생에 있어서 삶의 지침서를 이야기하고 있는 괴테의 글을 떠올립니다.
" 가라, 네 눈짓을 따르라, 너의 젊은 날을 이용하고, 배움의 때를 놓치지 마라, 거대한 행운의 저울 위에 지침이 평형을 이루는 순간은 드물다. 너는 올라가던가 아니면 내려가야 한다. 너는 이기고 지배하던가, 아니면 지고나서 복종해야 한다. 이겨 의기 양양하던가 쓴맛을 삼 키던가, 망치가 되든지 모루가 되어야 한다."
이 글은 우리에게 큰 지침이 될 것입니다. 우리는 더 이상 망치와 모루같은 것이 될 수는 없습니다. 이 글에서 지적하듯 우리는 이로서 더욱더 땅만 바라보며 방관할 수만은 없습니다. 우리는 인생의 낙오자가 되기 전에 다시 일어서야 합니다.
가을 여행은 우리를 더욱 더 빛나게 할 것이며 재충전의 기회를 갖게 할 것입니다.
우리는 자신을 되찾아야만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의 젊음을 될 수 있는 한 힘껏 활용하고 빛이 나도록 가꿔야 합니다. 이 아름다운 가을이 마치 자신을 치장하듯 말입니다.
빨강, 노랑, 주홍, 초록으로 자신의 아름다움을 뽐내는 가을이여, 따사로운 햇살로부터 보호받으며 자라나는 나무여, 우리는 결코 너의 그 아름다움에 빠져 가을 여행을 떠나는 것은 아니다.
난 단지 너의 그 모습에서 또 다른 자신을 발견하고, 나의 새로운 삶을 향해 전진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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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여행
가을의 햇빛 가득한 거리는 너무나 맑고 투명해서 오히려 눈이 부십니다. 그런데도 왠지 쓸쓸함을 느끼는 것은 열정과 낭만의 계절 여름이 지나갔기에 지나가 버린 것에 대한 아쉬운 추억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황홀했던 날들이 사라지듯 여름은 지나가 버리고 우리는 이제 조락의 가을 깊숙이 들어와 있습니다. "가을", 바로 이 계절이야말로 우리 모두가 자기 자신에게로 돌아가는 때가 아나런지요. 하늘이 높고 푸른 날엔 사람들은 못내 도시를 벗어나, 낙엽 따라 산과 들이 있는 곳을 찾아 여행을 떠나고 싶어합니다. 홀로 외로이 고독을 벗삼아 자아 발견과 절정에 이른 가을날의 정취와 생명감을 온 마음으로 만끽하고, 종교적, 철학적 의미를 새삼스레 생각해 보기도 합니다. 가을은 시인의 계절이요 또한 감상의 계절입니다. 이른 아침에 소슬한 바람이 머리칼과 얼굴과 마음에 와 닿을 때 온 세상의 자연을 느끼듯 한없이 가을을 음미합니다. 자아 발견을 위한 고독, 뒹구는 낙엽 한 잎 한 잎에서 느끼는 시의 정서, 이러한 것들은 가을이기에 느낄 수 있고, 또한 가을 병을 앓아도 좋을 것 같은 낭만과 고독의 계절인 것입니다. 또한 가을은 한 폭의 그림과도 같습니다. 붉게 물들어 가는 저녁 노을을 보면 어머니와도 같은 자상함과 평온함을 느낄 수 있고 햇살이 가득 퍼지며 구름이 하늘을 가릴 땐 천상의 아름다운 구름 사막을 보는 것 같습니다. 들녘을 지날 때 보이는 농부들의 바쁜 움직임과 길가에 펼쳐진 갓 추수한 황금빛 벼들은 "오즈의 마법사"에서 나오는 황금의 길을 연상케 합니다. 그 길을 한참 따라가다 보면 어느샌가 자아를 발견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지 않습니까? 가지각색의 낙엽이 지는 골목을 거닐며 깊은 생각에 빠지면 나 또한 시인이 됩니다.
가을날의 하늘, 그것은 끝없는 푸르름과 티없는 깨끗함을 지니고 있습니다. 또한 가을날의 바람은 꾸밈이 없는 신선한 생명감을 줍니다.
가을은 수확의 계절이요, 또한 하나님이 우리에게 베푸신 은총의 계절이기도 합니다. 이제 곧 낙과가 시작되면 제 아무리 탐스러웠던 과실들이라 할지라도 제 운명을 다 할 것입니다. 가을은 이렇게 결실의 풍요와 제 길로 회귀하는 쓸쓸함을 동시에 안겨다 줍니다. 무한한 공간 속에 티끌보다 작은 우리 자신을 느낄 때 용기를 내어 갈색빛 여행지로 자신의 메말랐던 마음을 "가을 여행"에 실어 보내시지 않으시렵니까?
친구를 보내며
중 2-3 方 文 君
우린 너무나 충격적인 일을 겪게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우리의 친구가 전학을 가게 되었습니다. 우린 갑작스러운 일이었기에 당황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며칠 전부터 그 친구가 학교에 나오지 않았습니다. 우린 그저 가벼운 감기쯤으로만 생각했습니다. 금요일 4교시 수업종이 울릴 때 그 친구가 사복을 입고 교실로 들어섰습니다. 우린 '왔구나!'라고 생각했지만, 그 친구는 대답 없이 서있었습니다. 그저 수심이 가득한 얼굴을 한채....
이때 그 뒤를 따라 들어온 담임선생님의 입에선 뜻밖의 말들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이 친구가 오늘 갑작스럽게 전학을 가게되었다고, 그의 수심이 가득한 눈에선 뜨거운 눈물이 흘렀습니다. 예고 없이 닥쳐온 일에 우리는 할 말을 잃었습니다. 순식간에 친구들도 모두 눈물을 흘리고있었습니다. '왜 평소에 잘 해주지 못했을까'라는 생각이 머리 속을 스쳐지나 갔습니다. 평소 그 친구는 우리 반에서 뿐만 아니라, 학교에서도 알아주는 말썽장이였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우리에게 짖誙게 대하고 못살게 굴었지만, 그 친구는 정말 좋은 친구라고 할 수 있었습니다. 친구간의 의리도 중요시 여겼고, 때로는 남을 돕는 마음도 엿볼 수 있었습니다. 이런 친구가 지금은 우리 곁을 떠나갔습니다. 다시는 우리들과 함께 웃고 떠들면서 지낼 수 없게 되었습니다. 떠나는 그 친구를 보며 너무나 큰 아쉬움을 느겼습니다. 울고 있는 그의 모습은 우리들을 등뒤로 한 채 서서히 교문 밖으로 사라지고 있습니다. 그 모습이 바로 우리가 마지막으로 접한 그 친구의 모습이었습니다. 때론 남을 돕는 마음도 엿볼 수 있었습니다. 이런 친구가 지금은 우리 곁을 떠나갔습니다. 다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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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우리들과 함께 웃고 떠들면서 지낼 수 없게 되었습니다. 떠나는 그 친구를 보며 너무나 큰 아쉬움을 느꼈습니다. 울고 있는 그의 모습은 우리들을 등뒤로 한채 서서히 교문 밖으로 ...... 마지막으로 접한 그 친구의 모습이었습니다.
친구에게:
지금 우리들이 너에게 하고 싶은 말은 네가 행복하길 바라는거야. 참 아쉽구나! 우린 언제나 영원히 함께 할 수 있이 것이라 생각했는데...이렇게 헤어지게 되다니, 믿을 수가 없다 너의 기억 속에 우리들이 영원히 남아있길 바라며 부디 힘차고 행복하길 바란다 우리 웃는 모습으로 꼭 다시 만나자!!
안녕! 친구를 보내며....
나의 추억
중 2-4 陳 美 悌
이 세상에 사람들에게는 누구나 추억이 있을 것이다. 추억이 없는 사람은 이때까지 재미없고 시시한 인생을 살아온 것이다 추억에는 나쁜 추억 좋은 추억 그 외에도 아주 많다. 나에게도 아주 힘들었던 시절이 있었다. 그때는 힘들었지만 지금 와서 그때를 생각하면 혼자 미소를 머금곤 한다.
호기심이 많은 나의 어린 시절 증조할머니는 화재로 인해 돌아가셨다. 그래서 어머니는 불을 제일 싫어한다. 내가 살던 집은 큰 이층집이었다. 일층은 어머님과 아버님이 식당을 차렸고 이층은 우리 안집이었다.
어느 날 저녁 언니는 학원에서 돌아오지 않았고 어머님과 아버님은 아래층에서 바쁘게 일을 하고 계셨다 그때 나와 동생은 살그머니 어머니 방으로가 놀고있었다. 호기심에 나와 동생은 어머니의 화장품을 꺼내 온 얼굴에 멋을 내고 스타킹과 옷을 꺼내 입고 성냥불을 켜 마치 담배라도 피는 듯이 흉내를 냈다. 그때 나의 동생은 완전히 꺼지지 않은 성냥불을 창문 밖으로 던진 것이다. 창문 밖 벽쪽에는 바로 우리 집 간판이 있었고, 가을이라 낙엽도 많이 쌓여 있었고 전깃줄도 많았다 나는 그것도 모르고 계속 흉내를 내며 놀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뭔가가 타고 있는 냄새가 났다. 나는 얼른 창문을 내다보았다 간판 안에서는 성냥불로 인해 나뭇잎이 타고 있었던 것이다. 정말 무서웠다. 내 동생은 흥분한 나머지 옆에 있던 책을 꺼내 창문 밖으로 나갔다. 점점 커지고 있는 불을 끄려고 맨발로 들어가 책을 휘두르고 있는 동생이 바보 같았다. 어머니가 그것을 보고 급히 동네사람들에게 알렸다. 동네 사람들은 바가지를 들고 물을 길어 불을 끄려고 애를 썼다. 동생은 커진 불을 이겨내지 못하고 발에 화상을 입었다. 동생은 더 이상 바로 설 수 없어 뒤로 쓰러지고 말았다. 나는 너무도 무서워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쓰러져있는 동생을 꺼내고 싶었지만 내 힘으로는 어림도 없었다. 그때 동네사람들이 바가지로 마구 물을 부었다. 동생을 꺼내 급히 병원으로 데려갔고 불은 완전히 꺼졌다. 집은 난장판이 되었고 어머니는 동생과 같이 병원으로 갔다. 나는 계속 울음을 그치지 않았다. 그때 우리 옆집에 사시는 아저씨가 나에게 다가와 말했다 "울지마 많이 놀랬지? 다음부터는 그렇게 위험한 장난은 하지 말거라. 너의 동생은 잘 못하면 목숨을 잃을 뻔했어 다행히 전깃줄이 다 타지 않았기 때문에 다행이었지만........ 나는 아저씨의 말을 듣고 울음을 그쳤다. 병원은 우리 집에서 가까웠기 때문에 나도 뛰어갔다. 동생은 응급실에서 치료를 받고있었다. 한시간 후 드디어 치료가 끝났다. 의사선생님에 말로는 며칠 입원해 있으면 금방 나을 것이라고 했다. 나는 그제서야 조금 안정이 되었다. 그 다음날 아침 나는 어제 있었던 일에 충격이 너무 커서 학교도 못 가고 집에서 쉬었다. 그때 어머니와 아버지가 나를 조용히 불렀다. 나는 내가 어머니에게 맞을 거라고 예상을 했는데 아니었다. 어머니는 자상하게 말씀하신 말들을 나는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한다 어머니에게 벌을 받았으나, 심한 벌은 아니었다. 그 후로 나는 다시는 불장난을 안하기로 맹세를 했다 .
그때 나는 정말 무섭고 힘들었다. 하지만 다른 아이들은 나처럼 이렇게 재미있고 바보 같은 추억은 없을 것이다. 추억은 스스로 만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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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미래 설계
인생에는 몇 개의 마침표와 이음표가 또 어떤 시점에서 제각기 조화롭게 찍혀질까?
미래의 이상을 어떻게 하면 현실화하여 자기의 자리를 확고히 하며 의미 있는 삶을 살 수 있는 것일까? 그렇게 가치 있고 만족스런 삶을 영유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먼저 올바르고 체계가 있는 미래의 설계도가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아이들에게 커서 무엇이 될 것이냐고 물으면 천진난만하게도 대통령 의사, 간호사, 경찰, 심지어 버스 기사가 되겠다고 대답하며 순진함을 한껏 자랑한다. 그럼 이 아이들의 꿈은 과연 몇 퍼센트쯤 실현 가능한 걸까? 아마 50%도 채 되지 않을 것이다. 이건 지닌 꿈의 지속성이 매우 짧음과 수시로 변하는 것임을 증명한다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아동시기를 거쳐 자기 판단이 가능한 청소년 시기가 되면 꿈과 이상에 대한 개념이 달라진다 지식과 학문 교육과 깨달음을 통해 보다 현실적이고 실현성이 높은 추세의 꿈이 정치가로 다시 선생님으로........ 이렇듯 변해 간다.
나도 지금까지 많은 꿈들을 키워왔다 바라는 것도 많았지만 내게 가장 적합한 분야는 어학을 공부하는 것임을 깨달았다.
자국은 물론 타국의 언어와 문화를 공부하여 여러 나라 상호간의 문화의 교류를 이룰 수 있고 보다 진취적이며 시대에 퇴보하지 않는 현대인이 되는 것이 내 꿈이다.
나는 미래의 삶의 방향이나 직업의 유형을 결정할 때 눈에 보이는 호화스러움보다는 그 일을 통해 만족하며 기쁨을 느낄 수 있는 성취도야말로 진정 의미가 있다 생각한다.
무작정 동경의 대상을 내일의 희망으로 점찍는 것이 아닌 내 일에서 기쁨과 보람을 느끼며 사랑하며 살 수 있는 그런 일을 하며 살고 싶다.
호랑이가 죽어서 가죽을 남기듯 나는 꼭 이 세상에 내 이름을 남겨야겠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단지 먼 훗날 내 후손들에게 떳떳하며 존경받을 수 있는 내가 되길 원한다. 그러기 위해 난 보다 성실한 삶의 자세와 부단한 노력을 통해 내 삶의 목표를 향해 전진한 것이다.
통 일
중2-4 吳 明 姬
난 얼마전 MTV에서 방송되었던 '통일의 창'을 시청하게 되었다.
난 이 프로그램을 시청하면서 " 왜, 한 나라가 되어야할 땅이, 단지 동쪽에서 서쪽까지 이어진 철조망 때문에 휴전선이란 명칭아래 남과 북으로 갈라져 살아가야 하는지" 의문이 생겼습니다. 전 할머니께 6.25때의 이야기를 자주 들을 수 있었기 때문에 저는 더욱 남과 북이 따로 갈라져 다른 이름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이 이해를 할 수가 없었습니다.
벌써 6.25 전쟁이 끝난지도 45년이란 세월이 흘러갔습니다. 하지만 전쟁이 남긴 마음의 상처는 아직 모든 이의 마음에서 시간처럼 흘러가진 않았겠지요.
전쟁에 대한 아픔은 영원히 지워지질 않겠지요. 전 비록 6.25를 겪어보진 못하였지만. 그래도 그 당시의 일들을 책과 TV를 통해 보았기에 잘 알 수가 있습니다.
6.25때문에 가족들이 이리 저리 흩어져 지름은 생사조차 알 수가 없어 찾을 수 없다지요, 이 또한 많은 아픈 우리들의 마음이 상처가 되어있겠지만 만약 통일이 하루라도 빨리 된다면 이북에 있는 자신의 가족들을 찾을 수가 있겠지요. 그리고 통일이 된다면 서로도움을 주고 왕래하며 행복하게 지냈으면 하는 것이 저의 소망입니다.
하루라도 더 빨리 통일이 되어 완전한 한 나라가 되었을 때 그 후손들이 더욱 아름답고 발전된 미래를 설계할 때. 통일이 하루빨리 이루어지는 것이 우리 아니 모든 사람들의 희망이자 바램일것입니다. 어쩌면 내일을 향한 미소가 미래 통일에 더욱 빠른 길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휴전선이라는 명칭의 철조망보다는 통일이 되어 평화의 선이라 불릴 그 날을 저는 기다리며, 저 서쪽 산 아래로 지는 붉은 노을을 보며 저의 소망인 통일을 외쳐 보려 합니다.
하루 빨리 통일이 되어 6.25가 남긴 상처를 씻어 내렸으면 하는 것이 저의 진정 마음에서 솟아나는 소망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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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을 앞두고
고 3-3 張 愛 莉
세월은 유수라더니, 시간은 흘러 내가 어느 새 졸업을 앞둔 고3이라니 실감이 나질 않는다 , 예전엔 내가 고3이 되면 남들처럼 공부하느라고 얼마나 고달프고 힘들까 하고 생각했었지만 그러나 막상 되고 보니 난 별로 그런 것 같지도 않다. 물론 이것은 전적으로 나의 예일 뿐이다, 단지 고3이 되어서 달라진 것이 있다면 예전과는 다른 나의 가치관이나 생각 그런 것들이다. 점점 어른이 되어 가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어른이 된다는 것에 대해서 두려움보다는 설렘이 더 크다. 정작 어른이 되면 지금의 생각대로 잘할 수 있을까? 어떤 때는 "난 잘 할 수 있을 거야! " 하는 그런 자신감도 가져본다.
나이가 들면 추억을 먹고산다더니 건방진 얘기 같지만 지금의 내가 그렇다. 친구들과 함께 과거지사를 돌이켜 보며 얘기를 나누다 보면 서로의 얼굴에는 어느 새 마음의 따뜻함에서 우러나오는 홍차 같은 미소가 번진다. 씹을 수록 진하고 향기로운 맛을 내는 것이 추억이란 생각이 든다.
예전에 중학교 때는 그야말로 뭘 모르던 철이 없던 시절이었다. 물장난을 해서 옷이 온통 물에 젖어 수업시간에 제대로 앉지도 못하고 그야말로 좌불안석의 상황을 연출했던 일들....중학교 1학년 때 선배 언니한테 야단맞고 눈물과 콧물을 동시 다발적으로 흘린 기억들.......지금도 거의 다를 바는 없지만 그때는 공부하는 시간보다는 노는 시간이 훨씬 많았었다. 이 부분은 나뿐만이 아닐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고등학교 시절은 아무래도 중학교 시절 보단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많이 성숙(?) 해졌는지 주위의 친구들에 대한 소중함을 새삼 절실하게 느끼게 된다. 학교 생활에 있어서 친구라는 존재는 제2의 나 자신인 것이다. 들이 없었다면 나의 학창 시절은 얼마나 무미건조하고 삭막했으랴, 새삼 그들에게 고마움을 느낀다. "우정, 추억" 이런 말들은 너무나 흔하게 느껴질지 모르지만 그만큼 너무나 소중하기에 되새기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제일 감사드려야 할 분들은 바로 부모님이다. 매 학기마다 학비를 내주시며 나의 모든 것을 뒷바라지 해주시고 늘 말없이 속아주시고 믿어주시던 엄마 아빠께 나는 정작 너무나 못되게 굴고 마음 아프게 한 적이 얼마나 많은가? 이것은 나만의 얘기가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 모두 "있을 때 잘하라! "라는 신조로 엄마 아빠께 그리고 주위의 친구들에게 진실함으로 먼저 마음의 창문을 연다면 분명 그이상의 우정과 사랑의 바람이 창문을 넘어 들어와 마음과 마음을 기쁨과 따뜻함으로 채워 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기 위해선 무엇보다도 내가 먼저 마음의 창을 활짝 열어야 할 것이다.
우리 곁에 다소곳이 다가온 저 은은한 라일락 향기 만연한 이 봄처럼 ..................!!
'매디슨 카운티 외 다리' 독후감
고 2-2 王 大 雄
난 처음 이 책을 접했을 때 뜻하지 않은 신비감을 느끼었다. 아. 도대체 그런 사람이 있을 수 있을까. 사진을 찍을 다리까지 가는 길을 묻다가 영원토록 가슴에 둘 여자에게 이르는 길을 찾게된 그 사람 로보트 킨케이드. 그는 고물 트럭을 몰고 차(茶) 길 끝에 우뚝 서있는 하얀 집에 이르게 되었고 그곳에서 그의 운명인 프란채스카 존슨이라는 여인을 만나게 된다. 처음엔 길을 묻는 것으로 시작된 만남이었지만, 일초 일초 시간이 지날 때마다 그들의 감정은 더욱 더 깊어져 갔다. 아니, 그들은 첫눈에 서로를 사랑했다고 봐야 할 것이다. 그녀는 그를 식사에 초대했고 그녀의 마음속에서는 이미 무언가를 바라고 있었다. 그의 마음도 그러했다. 그들의 첫 만남은 한 끼의 저녁 식사로 끝냈었지만 그들의 눈빛에서는 마치 다음의 만남을 기대 하는 것 같았다. 난 그들의 첫만남이 순간적인 사랑이라는 것에서 내용상의 불만을 느꼈지만, 그들의 두 번째 만남에서는 첫만남과는 전혀 다른 청순한 소녀같은 순수한 사랑을 느끼었다. 프란체스카는 사십대의 가난한 농부의 아내이다. 결혼후 20여년의 결혼생활을 고난의 늪에서 허위적 거렸던 그녀, 따뜻했야 했던 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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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의 지극한 사랑도 없었던 그녀, 그녀는 그동안 잠재해 있던 삶의 의미를 만난지 하루도 안되어 그에게서 발견했던 것이다. 그가 식사후 사진 촬영을 위해 문을 나선 후부터 그녀의 마음 속에는 그의 형상이 떠나질 않았다. 가슴을 설래이며 그의 전화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는 마치 소녀인 양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그 기다림은 얼마 안 지나 환희로 그녀에게 다가갔고 그들은 함께 사진 촬영을 핑계로 그 곳에서 얼마 안 떨어져있는 "로즈먼" 다리로 가게되었다. 그들은 서로를 조금씩 가까이 느끼게 됐으며, 그 후 다시 그녀의 텅빈 집으로 돌아와서는 그들의 사랑을 뜨겁게 나누었던 것이다. 그들은 4일간의 무조건적인 사랑을 했으며 서로의 체취를 온 몸으로 느꼈다. 그후 그들은 그들의 만남을 기념하기 위해 그들이 처음 사랑을 느꼈을때 입었던 옷을 입고서는 아침의 햇살 아래서 그들의 행복을 사진속에 담았다. 가족이 없는 프란체스카의 집에서 나눈 나흘 간의 사랑, 그들은 상대를 통해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되었던 것 같다. 로버트는 자신이 살아왔던 마치 카우보이 같은 삶의 무의미를 깨달았고 프란체스카는 이제 다시 춤을 출 수있는 여유를 되찾은 것이다.
그들은 함께 떠나고 싶어 했다, 하지만 그녀에게는 가족이라는 책임이 있었다. 그리고 로버트 역시 그녀의 그런 부담을 이해하고 그 이해심을 자신의 아픔으로 받아들여 그들은 끝내 이별을 하게된다. 프란체스카의 그런 갈등을 이 책 속에서 는 아주 길게 다루지는 않았으나, 난 이 부분에서 아주 많은 것을 느끼게 되었다. 사랑, 사랑하기에 서로의 고통을 이해했고, 사랑하기에 서로를 놔줘야 했던 그들, 그들의 진실한 사랑이 나로 사여금 다시 한번 현세의 연애풍속을 생각하게 한다. 허나, 더욱 아름다운 이야기는 그후이다. 두 사람은 그후로 22년을 서로 연락없이 살아간다. 그러나 그들은 매일매일을 서로의 생각으로 보낸다. 결국, 그들은 죽을 때 가져갈 수 있는 영혼의 사랑만을 가지고 세상을 떠난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이야기인가.
난 이 소설을 하나의 충고로 받아들이기로 하였다. 사랑이 메마른 이 세상에서 다시 삶의 춤을, 본능의 춤을 출 수 있도록 사랑의 진실성을 되찾아야 한다는 충고로 말이다. 사랑의 그 넓은 호수가 다 말라버리기 전에 진실이라는 강물과 영원이라는 빗물이 쉬지않고 고이고 또 고여야 한다고. 그래서 난 이 책의 주인공 프란체스카와 로버트가 그랬듯이 영혼으로 영원히 진실된 마음으로 사랑을 할 것이다. 난 이 책을 읽으며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떠올렸다. 그리고 자기 자신을
고찰해 보았다. 난 혹 그저 순간적인 감정만이 있는건 아닌지, 그들 처럼 영원한 영혼의 사랑이 아닌건 아닌지.
책 속에서 일어난 이야기를 도덕적인 관점으로 볼 때, 난 약간의 불만을 가졌었다. 허나, 이 책을 부도덕적인 작품이라 하기에는 너무나 아름다운 이야기인것 같다. 이 책을 탈고할 당시 미국 출판가에서 이책을 (제2의 러브스토리)라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고 한다. 또한 이 소설은, "방금 딴 콜라처럼 톡 쏘고 달콤한, 모든 여성들의 환상적 로맨티시즘" 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영화의
귀재 스티븐 스필버그 역시 이 소설의 판권을 사들여 영화로 기획, 제작 중이라고 한다. 이 정도의 문학적 가치라면 더이상의 설명이 필요치 않다고 생각한다.
이 책의 시작은 한 작가와 두 남매 (프란체스카의 자녀) 의 인터뷰로 시작된다. 그러므로 독자로 하여금 소설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듯한 느낌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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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시인의 사회
고 2-2 姜 明 愛
'죽은 시인의 사회'는 1959년 미국의 한 엄격한 규율하에 있는 월튼 아카테미 고등학교에 키딩이라는 새 국어 선생님이 부임해 옴으로부터 이야기가 전개된다. 숨막히는 학교에서 격식을 파괴한 수업방식으로 학생들 사이에 폭발적인 명성을 얻고 있는 키딩 선생님과 인생의 진수를 만끽하려는 모임인 "죽은 시인의 사회"는 존 키딩을 흠모 하는 닐, 토마스, 녹스, 믹스, 피치등 이런 구성원들로 중심이된, 그들의 꿈과 좌절, 그리고 부모님들과의 사이에서 일어나는 감당하기엔 벅찬 심한 갈등, 그리고 닐의 자살, 또다시 피어나는 순수한 사랑등 슬프고도 아름답고 또한 공감할 수 있는 어떠한 힘이 끝 없는 수펑선처럼 펼쳐진 이야기속으로 우릴 끌어들인다. 아이젠 하워가 대통령이었던 이 시대는 교사나 아버지가 거의 절대적인 존재였다. 그래서 십대들은 자기 주장을 하면 곧바로 불량하다는 딱지가 붙게 마련이였고 자기 의지와는 상관 없이 오직 순종할 뿐이었
다. 이러한 때에 아이들은 존.키딩을 만남으로써 처음으로 자의식을 갖고 자신의 생각을 자신의 말로 표현하는 기쁨에 눈떠간다. 소년들은 아버지나 학교라고 하는 답답하고 지옥같은 관료체제의 바깥으로 뛰어나가고, <그들의 언어>가 아니라 자신들의 언어 곧 <우리들의 언어>로 자신을 표현하는 것에 기쁨과 환희를 발견해간다. 키딩은 제자들에게 <카르페.디엄> 즉 "오늘을 살라" 라고 가르쳤고 제자들은 구것을 실천하려했다. 하지만 예상하지 못하였던 닐의 자살을 학교와 부모님측에선 키딩의 잘못으로 돌렸다. 물론 키딩선생님이 상황을 냉정하게 판단하지 않고 자신의 이상을 너무 강렬하게 직선적으로 가르치려고 한 그도 책임이 없는것은 아니다. 아니, 오히려 감수성이 예민한 그들에게는 치명적인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모든 탓을 키딩 선생님에게로만 돌리려는 것은 너무도 이기적인 일이다. 키딩 선생님을 해고한 것은 학교와 부모님들에겐 티끌만큼의 잘못도 없다는 듯, 그들 스스로 무언의 외침을 울리는 듯하다.
이 책의 클라이막스는 키딩이 해고 당한 후 학생들을 헤치고 교실을 떠나려할 때 소년들 중 한 사람이 책상 위에 올라가서 사라져 가는 키딩에게 <투.서.위즈.러브(To Sir with Love)>의 연대 인사를 보내는 장면은 가슴을 울린다. 친구인 닐의 자살에 누구보다 충격을 받고 우는 마음 약하고 그렇게 수줍어 했던 토드가 맨 먼저 주저하면서 그러나 결국은 단호하게 책상 위에 올라섰다. 그렇게 함으로써 교장선생님께 짓밟힌 자유와 그리고 키딩과 자신들이 공유했던 그 즐거웠던 시간을 한번 더 되돌리려고 한다. 흘러 넘치는 눈물을 참으며........나는 이 장면을 보고 또 보고 읽고 또 읽었지만, 복받쳐 흘러 내리는 눈물을 금히지 못하였다. 키딩은 시대를 잘못 타고 났을 뿐 결코 선생님으로서의 자격이 부족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보다 충분할 정도로 자격이 있는 사람이다. 나는 마지막으로 그를 로맨틱한 혁명가이며 돈키호테라고 부르고 싶다. 그리고 이 작품은 멀지 않은 가까운 장래에 이 시대의 새로운 고전으로 우리의 마음을 울리는 영원히 기록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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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의 독서 경향.
중 2-3 方 文 君
한달전. 저는 모잡지책에서. '청소년들이 가장 선호하는 책"이란 통계 조사를 한적이 있습니다. 조사결과 70%이상의 청소년들이 만화책을 선호하고 있었습니다. 저 또한 만화책을 무척 좋아 합니다. 만약 학교의 교과서를 만화 형식과 교과서 형식으로 구분하여. 두가지 형식으로 나눈 다면 아마 대부분의 학생들은 만화 형식으로 편집되어 있는 책을 선택할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런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우리가 현재 배우고 있는 교과서를 만화 형식으로 편집한다면, 아마 우리 청소연 들의 독서 퉢과를 더욱 높일 수 있을 거라고 생각 합니다. 물론, 이런 생각은 쉽게 이루어 질 수 있다고 생각 하진 않습니다. 하지만 전 언젠간 있을 수도 있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읽은 책-- "아낌 없이 주는 나무"
중 2-4 呂 序 麗
전 아주 사랑이 넘치는 책--"아낌없이 주는 나무"을 읽었숩니다. 나는 너무나 좋아해서 틈만 나면 몇번이고 그책을 읽곤합니다. 읽을 때마다 나는 '사람은 남에게 베풀어 주는 만큼 자신도 행복함을 느끼게 된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어떤 사람은 "왜 내가 남을 도와 줘야 하느냐. 나만 잘 살면 陖지! "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결코 행복을 느끼지 못할 겁니다. 나는 비록 넉넉하게 살지 못하더라도 남에게 배풀고 살면 행복을 느낀다고 생각합니다.
진정한 행복이란 서로 배풀줄 알고 남을 진정하게 생각해주고 편한 마음을 가지는 것이 바로 행복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읽은 책은 이렇듯 사랑과 행복을 추구하는 그런 내용입니다. 여러분도 시간이 나시면 "아낌 없이 주는 나무"라는 책을 읽어 보시면 많은 도움이 될 것입니다. 전 나무처럼 늘 남에게 배풀줄 아는 그런 사람이 되겠습니다.
청소년의 독서경향
중 2-3 邢 才 君
지금 청소년들이 주로 보는 책은 만화책입니다. 하지만 매일 만화책만 본다면, 공부할 시간이 없습니다. 공부를 한다해도. 만화책 생각 때문에, 집중할 수 없습니다. 소설책을 본다해도, 주로 애정소설 이고, 이것도, 사람의 마음을 들뜨게 해서, 공부에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저는 아무리 만화책이나 소설이 재미있다고 하더라도 공부를 마치고 보는 것이 좋다고 생각됨니다.
앞서가는 청소년이 되러먼 자신의 할 일이 무엇인지 ? 지금 무엇을 해야 옳은 자를 판단하여 먼저 할 일을 마치고, 오락으로 또는 취미로 만화책이나 소설을 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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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질오염
중 2-3 呂 世 運
요세 우리가 살고 있는 곳은 수질오염이 말그대로 오염이 너무 심하다. 무엇보다 수질오염을 시킨 장본인은 모두 사람들이다. 우리는 무질서하게 쓰래기를 마구 버리고 있고, 언제부터인지 우리는 쓰레기를 강에다 버리는 것을 습관적으로 행하고 있습니다. 정화조를 거치지않는 생활 폐수, 낚시 터의 쓰래기, 무조건 나만 편안하면 된 다는 생각이 수질을 오염시키고 있습니다. 이로 인하여 우리의 생활 터전에 영향을 미치게 되었습니다.
요 몇년 사이에 공장에서 흘르는 폐수와, 가정에서 흘르는 각종 폐기물 때문에 물도 제대로 마식수가 없습니다. 나는 물을 오염시킨다는 것은 우리 스스로를 죽음으로 몰아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모두 자신과 가정을 지키는 마음으로 수질 오염 방지에 많은 노력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수질 오염
중 2-3 王 美 娟
오염이 심각하다는 것은 어제 오늘의 얘기가 아닙니다. 공기오염, 토지오염, 소음공해등, 그중 수질오염은 우리의 식수문제에 많은 영향을 끼칩니다. 몇년전, 대구 두산그룹이 '페놀'이란 독소가 함유되어 있는 공장폐수를 강에 방류하여 영남권 국민들의 생활과 건강을 위협하는 만행을 저질러 사회 문제가 되었던 것을 잊지못합니다.
정부에선 대대적으로 관련된 사람들을 사법처리를 했고, 두산그룹에선 엄청난 액수의 보상금을 내야 했습니다.
환경 문제는 세계적으로 큰 문제입니다. 여러나라에서도 법으로. 사회단체 등에서는 보호와 감시 운동을 대대 적으로 펼치고 있다. 미국 환경부에선 폐수를 무단방출한 업체에 대해서 아주 무차별한 사법 조치를 취합니다. 환경보호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은 만큼 아주 중요하고, 인류의 미래에 영향을 끼치는 것입니다. 사람마다 환경보호를 생활화 하고, 집마다 세제, 샴푸. 폐유 등을 조금씩 줄여 나가 후손들에게 건강하고, 푸른산과 강, 공기와 물을 물려 줍시다.
수질 오염
중 2-3 于 雲 厚
한국의 수질은 이미 위험수치에 도달하였습니다, 우리는 지금부터 노력을 해야합니다, 우리가 아주 어렸을 때에는 물이 깨끗해서 수돗물도 그냥 마셨습니다. 그러나 제작년부터 극심한 오염이 시작 되었습니다, 여기저기서 흘러나오는 온갖 폐수와 화학약품들로 인해 물이 죽어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작년에는 낙동강 페놀오염 사건도 있었습니다, 심지어는 기형으로 생긴 물고기들도 있습니다. 이것은 전부다 사람들의 무관심이 초래한 것들입니다. 우리들도 이제부터 뭔가 달라져야 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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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동네
중 2-3 邢 才 君
우리 동네는 서울시 마포구 연남동입나다.
우리 동네에는 화교가 많이 살고 있고 그리고 학교와 가까워서 아버지와 어머니께선 굳이 연남동으로 이사를 하셨습니다.
우리동네에는 공원이 두개있습니다. 주말이면 내 또래의 친구들이 아주 많습니다. 그래서 처음보는 친구들도 금방 친해 질수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공원을 무척 좋아합니다. 그리고 우리동네에는 기차길이 있습니다. 어떤때에는 정말 시끄럽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그 기차길을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이 기차길을 손님들을 태우고 우리 동네를 지나가 손님들에게 우리 동내를 소개하는것 같아서입나다.
우리 동네
중 2-3 劉 才 禎
우리 동네는 청주시에 위치하고 있는 한 아파트입나다. 저의 동네는 점점 갈수록 발달되고 있습니다. 저의 집 앞에는 범야 상가가 서 있고, 뒤에는 푸르고높은 나무들이 우뚝서있습니다. 그곳의 풍경은 말 할수 없을 만큼 아름답습니다. 뒷산에는 약수터가 있어 많은 사람들이 약수물을 뜨러 갑니다.
또한 우리 동네에는 아이들이 많아서 항상 시끄럽지만, 저는 그래도 우리 동네가 좋습니다. 우리 동네에는 나무들도 많아서 새벽이 되면 맑은 공기를 마실수 있습니다. 아파트 복도는 항상 아주머니들이 청소를 해주셔서 매우 깨끗합니다. 물론 깨끗한 동네 못지 않게 사람들이 정도 많습니다.
정말 살기 편한 동네 같습니다. 그래서 저는 우리 동네가 정말 좋습니다.
우리 동네
중 2-3 薛 智 午
우리 동네는 신촌이라는 시끌벅적한 곳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그러나 정작 저는 제가 살고있는 이 동네가 무척싫습니다. 남들이 보기에는 살기좋은 동네같지만 겉모습만 그럴 뿐입나다. 정작 속모습은 그렇지 않습니다.
우선은 많은 사람이 오고 가기때문에 사람들이 버리는 쓰레기가 거리를 더럽히고 또 오고가는 차들이 내뿜는 매연이 공기를 더럽힙니다. 그리고 아이들이 제대로 놀만한 공간도 없습니다.
점점 더러워지는 우리동네 아무리 걷모습이 좋아봤자 쓰레기가 많고 공기가 더러운 동네 그 어느 누구가 이런 동네를 좋아하겠습니까?
저는 지금 제가 살고 있는 이 동네를 사람들이 좀더 께끗하게 가꾸었으면 하는것이 저의 크나큰 바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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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동네
중 2-3 方 文 君
우리 동네는 서울시 서대문구 연희동 입니다. 제가 여러분께 저희 동네를 소개한다면 한마디로 참으로 썰렁한 동네입니다. 제가 썰렁하다고 말한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저희동네는 거의가 주택가와 사무실이기 때문에 밤 8 시만 지나면 길가는 사람들의 발걸음은 거의 찾아볼수 없습니다.
공무원들과 학생들은 일곱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면 거의 모두 집으로 돌아갑니다. 그리고 주변의 사무실들은 모두 문을 닫습니다. 그러면 네온싸인 불빛 하나조차도 찾아볼수 없게 됩니다. 저는 이런 썰렁한 분위기에서 벗어나고 싶어서 한번은 사촌언니의 집에가서 하룻밤을 지내기로 했습니다. 그 동네는 우리 동네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이 번화했습니다. 거리마다 반짝이는 네온싸인 카페마다 들려오는 음악소리 길 걷는 사람들의 발걸음 소리와 어울어진 웃음소리들...... 저는 여기야말로 사람이 사는 곳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렇게 거리를 돌아다니다가 저는 언니와 함께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날밤 저는 정말로 잠을 이룰수가 없었습니다. 사촌 언니는 습관이 되었는지 잘 견뎌내는 것 같았습니다. 전집에 돌아와 비로소 느꼈습니다. 내가 잘못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그리고 우리 동네를 잘못 생각한 것을 후회했습니다.
그후로 저는 다신 썰렁하다는 말을 꺼내지 않았습니다. 우리 동네는 정말 조용하고 편안한 동네입니다.
시 험
고 1-1 潘 甫 俓
이 세상에 시험을 한 번도 보지 않았던 사람은 아마 한 사람도 없을 것이다. 한 번씩은 누구나 보았었고. (시험) 이란 단어는 우리 생활 속에서 늘 접하게 된다, 난 시험은 매우 싫어하지만. 없어서는 안된다고 생각 한다. 시험을 봄으로써 자기의 실력을 평가하고. 부족한 곳을 보충한다면, 자기자신에게 많은 도움이 될것이다. 만약, 이 세상에 시험이 없으면 어떨까? 물론 학생들은 학생의신분을 잊어버리고, 매일 놀게되고, 그 나라의 교육수준은 빠른 시일 내에 떨어질 것이다, 내가 어렸을땐 이런 생각을 많이 했었다. 만약 시험만 없다면 이 세상이 얼마나 좋아질까? 학생들이 이렇게 서로경쟁하면서, 그 들어가기 힘든 대학을 위해서 노력하지 않아도 될텐네........... 공부때문에 자살하고 성적이 떨어지는것 때문에, 걱정하는 아이들이 사라질텐데, 시험이 뭔데 이렇게 우리를 힘들게 하는걸까? 하지만 크면서 그 생각이 조금씩 바뀌어 갔다. 비록 난 시험이 무척 싫지만. 시험은 우리가 생활하고, 사회생활을 하는데 없어서는 안된다는것을. 국민학교 때부터 지금까지 시험본 횟수는 셀수도 없을 것이다. 시험을 잘봐서 무척 좋아한 적도 있고, 시험을 못봐서 실망한적도 많았다. 시험은 좋은 점과 나쁜 점이 있지만. 우리가 좋은 쪽으로 많이 활용한다면, 그리고 평소에 조금씩 준비를 해 놓으면 시험을 그리 두려워 하지 않아다도 된다고 생각한다. 시험은 말그대로 자기의 지식을 평가해보는 것이지, 그 사람을 평가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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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와 기상청
중 2-3
날씨는 많은 변화가 있으며, 우리와 밀접한 관계에 있습니다. 또한 날씨가 가져다 주는 수 많은 인명피해와 재난은 예상치 못할 만큼 큽니다.
얼마전 일본의 지진으로 많은 생명을 잃게 되었습니다. 날씨의 변화로 인한 인간의 피해가 말할 수 없이 많습니다. 하지만 이런 인명피해와 재난을 막기위해 기상청은 항상 날씨의 변화를 뉴스로 우리에게 알려줍니다.
기상청은 매일 날씨를 측정하여 비또는 눈, 혹은 파도의 높이, 온도, 지진등, 여러가지 기상정보를 우리에게 알려 주어 우리의 생활에 아주 큰 도움이 됩니다.
몇달전 논이 갈라지고, 저수지에는 바닥이 보일정도로 심한 가뭄이 있었습니다. 그 때 기상청은 비를 내리게 하기 위해 비를 내리게하는 씨앗을 개발하여 가뭄으로 인한 피해를 조금이나마 줄일수 있었다고 합니다.
기상청은 우리의 생활에서 없어서는 안될 아주 중요한 기관입니다. 새삼스럽게 고마움을 느끼며, 인간의 삶을 위해서 더욱더 발전 되었으면 합니다.
한국어를 배우면서
중 1-1 曲 壽 瑩
요즘 같은 국제화시대에 한사람이 여러나라의 언어를 배운다는 것은 아주 평범한 일입니다. 길을 가다보면 학생들이 저마다 외국어학원의 가방을 들고 바쁘게 외국어를 배우러 다니고 있습니다. 한국인들 뿐만아니라 외국인들이 한국에 와서 한국어를 배우는 경우도 흔히 볼수 있습니다.
저는 한국에서 태어 나서 자라고 지금까지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자연스럽게 한국어를 배우게 되었습니다. 제게 있어 한국어는 자연스럽게 알게 됐고, 힘들지 않게 쓰고있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에서 살고 있는 이상 한국어를 많이 알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만, 아직도 모르는 말과 글이 많아 속담이나 격언등을 이해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므로 앞으로는 더욱더 열심히 한국어를 배우고 이해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한국어를 배우면서
중 1-2 金 容 福
세월은 흐르는 물과 같다고하더니 저도 어느새 중 일이 되었습니다. 그동안에 저는 많이 자랐습니다. 비록 국적은 중화민국이지만, 한국에서 살고 있기 때문에 한국말을 배워야 할 필요성을 느낍니다. 그래서 작문도 써 보곤 합니다.
처음으로 한국어 시간에 이경자선생님을 만났고 또 재미있는 것도 많이 배웠습니다. 지금와서 생각해보니 후회도 되고 왜 조금 더 선생님의 말씀을 잘 듣지 않았을까하는 생각도 듭니다. 그리고 선생님께서는 우리 반이 제일 떠드는 반, 또한 우리 반에 귀신이 붙었다는 말씀까지 하셨습니다. 그것은 우리반이 굉장히 떠들었다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물론 혼도 많이 났고 꾸중도 많이 들었지만, 생각해 보면 모든 것이 소중하고 또한 선생님의 사랑이 느껴집니다.
비록 우리반은 떠드는 반이었지만, 중요한 것은 과거가 아닌 지금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도 우리 반의 떠드는 일부분이고 지금 이 작문을 쓰면서 반성합니다. 우리반 모든 사람 하나하나가 다 이 작문을 쓰면서 반성을 하고, 또한 선생님의 말씀을 잘 들어서 착하고 조용한 반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마지막으로 한 마디 하겠습니다. "중 1-2 반 화이팅! 선생님 비록 저희 반이 떠들어도 계속 사랑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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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어를 배우면서
중 1-2 潘 忠 延
저는 한국어를 배우면서 좋았던 점이 참 많았습니다. 우선 일상생활 속에서 아주 편리했습니다. 그리고 여러가지로 저 자신에게 이익이 되었습니다. 첫째로 편지를 쓸때 아주 편리했습니다. 옛날에는 글씨를 몰라 참 불편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아주 편리하게 되었습니다. 글씨를 모두 알아서 나 자신이 원하는 내용을 언제든지 편지에 쓸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그리고 또 좋았던 점이 있었습니다. 옛날에는 책을 읽을때 아주 불편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아주 편리합니다. 왜냐하면 글씨를 다 읽을 수 있어서 뜻을 다 이해할 수 있습니다.
옛날에는 얇은 책 한 권을 삼일동안 읽었는데, 지금은 하루면 다읽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제가 한국어를 배우면서 나빴던 점은 아마 없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여태까지 써온것들은 모두 좋았던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제가 한국어를 배우면서 좋았던 것은 글을 자유럽게 쓸 수 있어서였기 때문이었습니다. 땟날에는 아주 힘들게 써왔던 문장들이 지금은 아주 편리하게
쓸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제가 한국어를 배우면서 좋았던 점입니다.
한국어를 배우면서
중 1-2 언 문 경
한국은 우리의 제 2 의 고향입니다. 우리는 한국에서 태어났으며, 자연스럽게 한국문화와 생활습관을 익혔습니다. 그러므로 한국은 우리에게 어머님의 품같이 따뜻하게 느껴졌습니다.
한국어를 배우면서 저는 한글이 참 재미있는 언어라고 생각했습니다. 자음과 모음으로 형성된 문자가 수 많은 언어로 되었다는 것이 참 신비스롭고 흥미롭게 느껴졌습니다.그러므로 저는 한국어를 배우면서 한국의 문화와 역사등에 대하여도 배우고 싶은 마음이 들었습니다.
아침의 나라인 한국은 사계절이 뚜렷하므로 사람들의 생각과 성격도 강하여 특히 외국 문화의 영향을 많이 받지 않았습니다. 저는 '효녀심청'이라는 책을 읽고 깊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우리 중국에서도 효자효녀의 이야기 책은 많지만, 심청의 효심만큼은 저에게 깊은 감명을 주지 못했습니다. 아버지의 눈을 뜨게 하기위하여 자신의 목숨을 바치는 효심만큼은 우리가 본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한국에서 태어났으므로 한국의 문화와 역사등 모든것을 다 이해해야 하고,한국의 모든것을 배운다는 것에 감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어를 배우면서
중 1-1 王 凱 霞
저는 한국어를 배우면서 많은 지식을 배웠습니다. 물론 한국어를 배우면서 어려운점도 많았지만 그래도 배우고 나니 어려운것도 점점 쉽게 이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다 이해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선생님 덕분에 많은것을 알고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한국어를 배우면서 선생님께서는 자주 선생님의 생활을 우리에게 얘기해 주셨고 그리고 힘들면서도 항상 우리에게웃음을 띄우시면서 수업을 하시곤 하셨습니다. 그러는 선생님을 저는 아주 존경합니다.
선생님께서는 아주 쉬은 문장까지도 자세하게 설명을 해주셨습니다 그리고 선생님께서는 숙제를 많이 주실때도 있지만 저는 오히려 선생님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하고싶습니다. 왜냐하면 글자를 많이 쓰다보면 예전에 자주 틀리던 글자도 이제는 틀리지 않고 쓸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한국어를 배우면서 많은 문장도 배웠습니다 가끔 수업 시간에 아주 재미있는 얘기도 들려주셨습니다.
저는 한국어를 배우는 동안 선생님께 많은 것을 배웠고 느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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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어를 배우면서
중 1-2 史 安 娜
로마에 가면 로마의 법을 따라야 하듯이, 우리가 한국에서 생활을 하려면, 당연히 한국의 언어를 잘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한국어를 열심히 배워서 하루 빨리 깨우쳐야 합니다. 저는 처음에 한국어가 그다지 어렵지 않다고 생각했었습니다. 저의 어머니께서 한국인이시기 때문에 일상 생활에서 중국어보다는 한국어를 더 많이 쓰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점점 배워나갈수록 저는 한국어가 결코 그렇게 쉽지만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한국어는 자음과 모음을 기본으로 만들어져 있습니다. 또 한국어에는 높이는 말과 낮추는 말이 있습니다. 이것들은 모두 매우 중요한 것들입니다. 우리가 올바른 사회 생활과 예절바른 교제를 하려면 당연히 바른 언어를 배워야 합니다.
한국어를 배우면서 저는 언어 예절과 한국의 풍습, 역사등 여러 종류의 지식을 조금씩 배우기 시작했고. 언어의 표현이 부족할 때에는 자기의 의사를 상대방에게 충분히 전달할 수 없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한국어를 배우는 도중에 될 수 있는 대로. 말을 바르고 옳게 배우도록 노력해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한국어를 배울 때에는 항상 바르고 긍정적인 자세로 열심히 배워야 하겠습니다. 저도 앞으로는 열심히 배울것입니다.
한국어를 배우면서
중 1-1 薛 智 延
저는 한국어를 배우면서 한국을 더욱더 깊게 알게 되었고, 한국이 더욱 좋아졌습니다. 또한 한국어를 배우면서 한국의 속담, 인물 민속놀이 등을 알게됐습니다.
저는 한국어를 배우는 것에 대해 아주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지금은 신문을 볼 때도 한글을 거의다 읽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한국의 정치. 미래의 한국도 알게 되었습니다. 제가 지금 한국어를 배우면서 한가지 바램이 있다면 한국 친구들 못지 않게 한국을 더 알고, 한국인 못지 않게 한국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저는 한국에 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당연히 한국어를 잘 배워야합니다. 그것이 또한 저에게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한국어를 배우는게 재미있습니다. 한글은 많은 의미를 갖고있습니다. 우리는 한국어를 배우면서 한국의 전통, 역사 등을 알아 두어야 합니다.
저는 한국에 살고있으니 한국의 모든 것을 다 알아야 합니다. 그러러면 먼저 한국어를 잘 배워야합니다.
한국어를 배우면서
중 1-1 王 可 賢
저는 한국어를 배우면서 한글을 조금씩 읽을 줄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국민학교 삼학년부터 한국어를 배웠습니다. 그 당시에는 글씨들도 거의 읽을 줄 몰랐습니다. 그러나 한국어를 배우면서 읽을 수 있을 뿐만아니라 쓸 줄도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한국어를 배우면서 느끼게 된것이 있습니다. 그건 바로 한국어에는 수식어가 많아서 사물을 표현하는 방법이 매우 다양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한국어의 장점이 아닐까하고 생각합니다.
저는 한국어를 배우면서 점점 흥미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한국어를 쉽게 배웠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한국어에 흥미를 느꼈기에 한국어가 어렵다는 생각은 하지않습니다. 오히려 친근감이 듭니다. 그래서 한국어를 더욱더 많이 배우고 싶습니다 그리고 배울것 입니다.
저는 앞으로도 한국어를 열심히 배워 한국어를 더욱 깊게 알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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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어를 배우면서
중 1-2 王 愛 玲
사람들은 한국어가 세계에서 가장 쉬운 줄 알지만, 저는 한국어가 변화가 많아 아주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어를 배우면서 어려웠던 첫번째는 글의 받침이 어려뛶고, 두번째는 한국어의 발음이었습니다. 이런 점을 해결 할 수 있는 방법은 다음과 같다.
첫번째, 받침은 만화 책이나, 노래 가사를 볼때 글씨를 하나 하나 염두에 두고 보면 한글을 재미있게도 배울수도 있을것입니다.
두번째, 발음에 관해선 버스를 타고 집이나 학교를 갈때 창밖에 있는 간판을 읽고, 만약 모르는 것이 있으면 선생님이나 부모님께 물어 보면 발음을 정확히 배울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어는 우리의 제2의 국어 입니다. 그래서 한국어를 더욱더 이해를 해야하고, 한국에서 사는 사람으로서 만약 한국어를 이해하지 못한다면 한국에서 생활하기가 힘들것입니다. 조그만한 사고
라도 발생할 수 있고 지장도 많을 것입니다.
한국어를 배우면서
중 1-2 李 文 采
한 나라에서 살아가려면, 가장 먼저 그 나라의 언어를 이해해야 할 것이다.
내가 한국어를 배우면서 발견한 점이 하나있다면 그건 바로 좋은 줄만 알았던 내 한국어 실력이, 형편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난 한국어를 더 열심히 하기로 했고 한국어의 중요성을 깨닫게 되었다.
한국어를 배우면 좋은 점은 일상생활에서 자주 쓰는 단어들을 한국어 시간을 통해서 더욱 명백한 뜻을 얻어내며, 여태껏 틀리게 사용해 왔던 언어들을 바르게 고치며 생각해 나갈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것들이 한국어 시간의 중요성을 더 해주고 있다.
우리같은 화교들이 한국말을 하면 발음이 틀릴 때가 많고, 문장을 쓸 때는 틀린 글자를 쓸 때가 많다. 그래서 우리에게 한국어를 배우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한국어를 배우려면 우선 그 중요성, 필요성과 배우는 의미를 알아야 하고, 의문이 있을 때는 친구와 선생님께 물어보고 생각할 줄 알아야 한다.
이러한 점들이 바로 내가 한국어를 배우면서 느낀 점들이다.
한국어를 배우면서
중 1-2 周 鴻 宣
우리가 한국에서 살면서 한국어를 못한다면 우리는 깜깜한 도시에서 사는 것과 다름이 없을 것입니다.
저도 한때 한국말 한국글을 잘 못해서 생활 속에서 많은 불편 또는 지장을 느꼈고 때론 놀림도 받았습니다.
처음에 한국어를 배울때는 한국어가 재미없고 어렵게 느껴졌지만 점점 한국어에 취미가 붙게 되었고 비록 한국어를 잘 못쓰지만, 그러나 내가 이렇게 말할 줄 알고 쓸 수 있으니 얼마나 즐거운지 모릅니다.
지금 중학교에 와서도 선생님 지도밑에서 난 열심히 한국어를 배웠습니다. 전에 모르던 낱말 속담도 많이 알게 되었고 글짓기 쓰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한국책 잡지 신문등을 읽을 때에도 뜻은 모르는게 좀 있지만 그리큰 지장은 없습니다.
특히 한국어를 배우면서 가장깊게 느꼈 던점은 내가 한국친구를 많이 사귀게 되었고 내가 내 조국을 사랑하듯이 한국도 사랑하게 될뿐더러 한국을 보호할 줄 알고 아낄 줄 아는 마음입니다.
비록 지금도 한국어를 배우고 있지만 장차 졸업을 하고 중국에 갈 기회가 있다면 중국인에게 한국어를 가르치고 모든 사람들에게 한국의 문화를 널리 알리고 싶습니다. 또한 내가 한국어와 중국어를 동시에 할 수 있는 것이 너무나 영광스럽게 생각되고 선생님께 깊은 감사를 느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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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國의 姓氏
12억의 인구를 가진 중국에서는 한자 자전 중 화(火)와 수(水)자를 제외하고는 모두 사람의 성이 될 수가 있다는 말도 있으나 현재 쓰이는 성씨수는 8천 1백 55개로 집계되고 있다. 한국보다 30배 가까이 많은 성씨가 있는데, 이중에는 중국이 옛부터 수학이 크게 발달하고 상업활동이 활발했던 영향탓인지 숫자를 성으로 삼은 경우가 적지않아 화제를 낳고 있다.
성씨에 대한 조사에서 지난 30년동안 중국의 성씨관련 문헌들을 조사한 결과 한자 숫자를 一에서 兆에 이르는 모든 숫자가 성으로 사용된 사실이 확인됐다. 그 중 확인된 숫자를 성으로 사용하고 있는 실례를 들어 보면 다음과 같다..
一姓은 明代에 炅壽縣의 縣丞직위에 있던 一炫宗, 知縣직위에 있던 一洪이라는 사람이 있었고, 현재도 廣東省의 花縣과 四川省의 彭山에 이 성을 쓰는 일가가 남아있다.
二姓은 周代부터 사용됐으며 淸代에 二消翁이란 사람이 활동한게 확인됐다.
三姓에는 明代에 활약한 인물 三庸道와 淸말의 三承基가 있다.
四姓은 古代부터 있었으며 四全이 淸乾隆帝시 孟縣 千聰에 임명된 기록이 있다.
五姓은 본래 伍에서 유래했으며 宋代에 五應簡이라는 인물이 있었다.
六姓으로는 乾隆帝때 六安人이라는 사람이 과거에 합격한게 확인됐다.
七姓에는 淸 康熙帝때 瑞安부장에 임명된 七春貴라는 이가 있었다.
八姓은 明 王族의 성인 朱를 八과 牛로 나눠 왕족 후손들이 사용했다.
九姓은 明代 江西 德興지縣 九조와 永平部 부총병 九緊이 있었다.
十姓의 경우는 臺灣省 通誌 씨족편에 이 성을 쓰는 사람이 臺北과 新竹, 章花縣에 거주한다 고씌여 있다.
또한 僞造나 變造를 방지하기 위해 一--十을 대신해 쓰는 壹 貳 參 肆 伍 陸 柒 捌 玖 拾을 모두 성으로 쓰고 있는게 확인됐다.
百姓은 秦朝때부터 사용돼 오고 있고, 千姓은 魏나라때부터, 萬성은 楚나라때 부터 생겼으며, 億姓은 아직도 上海와 寶山, 臺灣에 일가가 존재하고 있다. 兆姓은 辛亥革命직후 활동한 兆文이 유명하다.
자녀를 위한기도
저의 자녀를 이런 자녀가 되게 해주소서. 넓고 푸른 하늘을 가슴에 품는 자녀가 되게 해주시고 대나무 처럼 곧게 자라게 해주시며 이 땅의 자랑스런 일꾼이 되게 해주소서.
좋은 책 한 권은 훌륭한 스승 한 분 이라는 것과 지위보다 더 소중한 것은 명예임을 알게 해주시며. 끊임없이 스스로 를 갈고 닦아 투한 수정처럼 되게 해주소서
이 세상에 소중한 것은 만남이며 내가 만나는 사람의 좋은 면에서 좋은 점을 배우고 나쁜 면을 보고 이렇게 하면 안된다는 것을 깨우치게 해 주소서
은혜를 평생 잊지 않는 자녀, 상대의 잘못은 용서하고 잊어버리는 그런 자녀가 되게 해주시며, 연약한 여자를 보호하고 열심히 땀을 흘리며 노력하는, 남자에게 존경의 뜻을 보여줄 수 있는 자녀가 되게 해주소서.
사람은 시련과 역경을 통해 더욱 강해진다는 것을 아는 자녀, 권리주장에 앞서 책임완수가 더 중요한 것임을 아는 자녀, 나에게 주어진 1 분 1 초는 자기의 생명임을 알고 시간을 소중히 하는 그런 자녀가 되게해주소서.
함부로 쓰는 천 원은 값지게 쓰는 천만원보다 더 많다는 것을 깨우쳐 주시며, 검소와 절약만이 풍요의 원천임을 깨닫게 해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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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을 백미터처럼 숨가쁘게 살지말고 마라톤을 뛰듯 끈기와 인내심으로 살아가게 인도해주시며, 1 등도 좋지만 완주처럼 값진 것도 없다는 것을 알게 해주소서
옳고 그름을 판별하는 지혜와 자신의 약점 뒤에 깃든 무한한 장점이 있음을 찾아내는 슬기를 갖게 해주시고, 낮은 자리라고 비굴하지 않고 높은 자리라고 교만하지 않는 그런 자녀가 되게 해주소서
자신이 한 약속은 목숨을 바쳐서라도 지키고, 오늘 일을 내일로 미루는 자녀, 내일을 걱정하는 어리석은 자녀가 되지않게 해주소서
앞길이 막막하게 느껴질 때는 여의도 63빌딩 전망대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면서 20층에 서본 서울과 63층에서 본 서울이 전혀 다르다는 것을 깨닫고, 비 바람이 부는 날보다는 맑고 쾌청한 날이 더 많다는 데 감사할 줄 알게 해주소서
그리하여 한 번 뿐인 삶을 한 점 부끄러움 없이 살아가는 자녀가 되게해주소서
한국의 풍속
1 월
설은 1년의 시작인 정월(正月) 초하룻날을 말한다.
이 날 아침에는 모든 사람이 다 새옷으로 갈아 입고, 그 전날에 장만하여 놓은 설음식으로 조상에게 "차례"를 지낸다.
또, 집안 어른들과 일가 친척, 이웃집, 친구집에도 세배 (歲拜)를 다닌다. 설날에 세배하러 온 사람에게는 설음식, 특히 "떡국"을 대접한다. 이 떡국을 먹어야 나이가 한 살 더 먹게 된다는 생각으로 아이들에게 나이를 물을 때 "너, 떡국 몇 그룻 먹었느냐?"고 묻는다.
보통 세배를 하면 웃어른은 아랫사람에게 "올해는 아들 낳고, 벼슬하며, 부자가 되게."라고 말해 주는데 이런 말을 "덕담"이라고 한다.
설날부터 정월 보름까지 방안에서 보두가 할 수 있는 놀이가 윷놀이다. 윷은 나무를 반원형의 기둥 모양으로 깎아서 보통 길이 15센티짜리 네 개를 마련하거나 밤톨만하게 네 개를 만든다.
2 명 이상이 편을 나누어 네 개의 윷가락을 던져서 "도, 개, 걸, 윷, 모"라는 점수에 따라 네 개씩의 윷말을 가지고 윷판에 놓아 간다. "도"는 한 걸음----"모"는 다섯 걸음 앞으로 나갈 수 있느며, 먼저 네 개의 말이 다 한 바퀴를 돌아온 편이 이기게 된다.
이 놀이는 한국의 고유(固有)하고 독특(獨特)한 오락이며, 또 이것으로 마을끼리 농사가 잘 되고 못 되고를 점치는 사람도 있다.
연날리기는 설날부터 정월 보름까지 남자들은 어린이, 어른 모두가 연을 날린다. 날리는 사람의 기술(技術)에 따라 마음대로 방향을 바꿀 수 있고 또 연줄에 사금파리를 먹이면 다른 연의 실을 끊을 수도 있다. 이"끊어먹기"라든가 마음대로 기술을 부려 움직이는 것은 아시아에서 한국의 연만이 할 수 있는 특색(特色)이다.
한국의 연은 사각형의 가운데 둥근 구멍이 뚫려 있기 때문에 바람을 잘 받아서 뜨기가 쉽고, 또 센 바람은 빠져 나가도록 잘 발달(發達)되어 있다. 연 위에는 여러 가지 색을 각기 다른 모양(模樣)으로 칠한다. 연실은 몇 십 미터 정도 얼레에 감아 준비한다. 설날에 하는 여자들의 놀이에 널뛰기가 있다. 긴 널판(2.5cm*0.6m)의 한 가운데를 짚묶음 또는 가마니 뭉치 위에 걸쳐 놓고, 널판의 양 끝에 한 사람씩 올라서서 서로 번갈아 구른다.
그러면, 한 쪽이 뛰어 오를 때 다른 편은 내려지고 하려 서로 솟음과 떨어짐의 동작이 되풀이된다. 이 때 물론 여자들은 아름다운 설빔을 입고 패물을 차서 그 부딪는 소리가 듣기에 좋다.
이 놀이는 옛날에는 나라에 위험이 생겼을 때에 대비하여 여자들도 남자들처럼 활발한 운동(運
動)을 하였다는 사실을 말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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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의 시소(seesaw)와 비숫하지만, 서서 뛰는 젊은 여자만의 놀이로는 한국의 "널뛰기"가 있을 뿐아다. 이 놀이는 옛날에 오끼나와로도 전해졌다.
정월 대보름은 새해 처음로 보름 달을 보는 날이며, 동산에 올라가 횃불을 들고 달맞이를 한다. 먼저 달이 떠오르는 것을 본 사람은 그 해의 재수가 좋다. 또, 이 때 달빛이 붉으면 가물고, 희면 비가 많이 오고, 또 달의 주위가 크면 풍년이 되고, 작으면 흉년이 든다고 한다.
달이 뜨면 모든 사람들은 다리를 열 두 번 지나 다닌다. 이렇게 다리를 밟고 다니면 그 해에는 다리를 앓지 않고 지낸다 하여 "답교"라고 불렀다.
또,그 해에 운수가 다쁠 사람들은 짚으로 인형(人形)을 만들어 십 사 일 밤에 길에다 내버린다. 이 때 그 인형 속에 동전을 넣어서 버리기 때문에 아이들이 좋아서 받아다가 내버려준다. 이것을 "제웅치기"라고 말한다.
찹쌀로 만든 약식과 다섯 가지 곡식으로 지은 잡곡밥과 14 가지의 나물을 십 사 일 저녁에 먹는다.
보름날 이른 새벽에 날밤(生栗), 호두, 은행, 무우 등을 깨물며, "일 년 열 두 달동안 부스럼이 나지않고 평안하게 해 주십시오."라고 한다. 이 풍속은 이도 단단하게 해 주는 것인데, 왜냐하면 단단한 과실들을 깨물게 되기 때문이다. 이 과실들을 "부럼"이라 부른다.
2 월
이월 초하루를 삭일이라 하여 궁중에서는 자를 신하에게 나누어 준다. 보통 정월 보름날 풍년(豊年)을 비느라고 세워 둔 벼가릿대(화간)를 내려서 그 벼이삭으로 달걀만한 떡을 만든다. 이것을 "송편"이라고 하며 노비들에게 나이 수대로 먹이고 농사를 시작한다.
남쪽 지방에서는 이날 하늘에서 "영동 할머니"가 딸을 데리고 내려오면 바람이 불고, 며느리를 데리고 오면 비가 온다고 그 해의 기상을 점치는 전통적 신앙이 있다.
3 월
서울 사람들은 성묘(省墓)를 설날, 한식(寒食), 단오(端午), 추석(秋夕)에 한다. 그 중에서도 한
식과 추석의 제사(祭祀)가 가장 성(盛)하다. 그리하여, 사방 교외(郊外)에는 남녀들이 줄지어 끊이지 않았다. 오늘날도 이 성묘하는 풍습이 지켜지고 있다.
중국(中國)에서는 이 날은 불을 피우지 않고 찬 음식만 먹는 습관도 있다
한식이나 그 하루 잔날을 보통을 청명(淸明)이라 하며 궁중(宮中)에서 는 버드나무에 새로 불을 피워 그 불씨를 신하(臣下)들에게 나누어준다.
삼월 삼일은 삼짇날이라 하여 새로 핀 진달래 꽃을 따다가 찹쌀 가루에 반죽하여 둥근 떡을 만든다 이것을 참기에 지진 것을 "화전" 이라하여 계절 음식으로 먹는다. 또 이날을 전후하여 교외의 산과 계곡으로 "화류"를 하러 간다 이 때에 화전을 만들어 먹으므로 "화전놀이"라고도 한다. 떡 이외에도 술과 불고기 등을 준비하여 먹으며 논다
보통 이 날쯤 되면 남쪽으로 날아갔던 제비가 돌아온다고하며 풀도 새로 돋고 시냇물도 많이 흐르 기 시작한다
4 월
4 월 8 일은 석가모니의 탄신일로서 초파일이라 하여 절을 중심으로 기념하는 날이다. 그러나 옛날에는 보통집에서도 식구 수대로 등을 켜고 즐겼다. 어린이들은 여러 가지 모양의 등 밑에서증편과 소금에 볶은 콩을 먹으며 동이에다 물을 담아 바가지를 엎어 놓고 차례로 두드렸다. 이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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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장구" 라고 했다. 증편은 여름철에 많이 해 먹으며 술도 반죽하기 때문에 쉬지 않는다. 또 이무렵에는 어린이를 위한 장난감 시장이 서기도 했다.
5 월
단오(端午)는 오월 오일(五月五日)이며, 천중가절이라고도 한다. 삼월 삼일(삼짇날) 칠월 칠일(칠석) 구월 구일(중양절)과 함께 명절(名節)이다. 이날 여자들은 모두 창포를 잘라 물에 담가서 머리를 감고 또, 창포뿌리는 깎아 비녀를 만들어 머리에 꽂기도 했다. 또, "그네뛰기"도 여자들의 놀이로 성행했다. 그네는 아주 높은 나무에 굵고 튼튼한 줄을 매어 보통 여자 두 사람이 타고서 서로 굴러서 흔들며 하늘 높이 나는 것이 아름답다.
이 날 쑥으로 수레바퀴 모양의 떡을 만들어 먹는데 그 떡을 "수리치"라 불렀다. 단오를 수릿날이라고 부르는 것은 이 떡을 해 먹기 때문인 듯하다.
6 월
유월 보름날에 동쪽으로 흐르는 물에 머리를 감아 온 몸의 묵은 더러운 때를 씻어 버린다. 그리고 교외 물가에서 술을 마시며 "수단"이란 떡을 만들어 꿀물에 넣어 먹는다. 이 풍습을 유두라고 한다.
유두 뒤에 오는 "삼복"이란 더운 때는 강가나 계곡으로 가서 찬물에 발을 담그며 참외, 수박을 먹는다.
7 월
음력 칠월 칠일은 칠석(七夕)이며 하늘 나라의 견우(牽牛)별과 직녀(織女)별은 은하수(銀河水) 위에 까치가 놓은 오작교를 통해서 일년에 단 한번 만난다는 이야기가 있다. 견우는 농사를 짓고 직녀는 베짜기와 바느질을 했다는 것이다. 이 날 낮에 햇볕에 옷을 말리면, 반드시 비가 내린다고 믿는 풍속도 있다.
일월 십오일은 상원(上元), 시월 십오일은 하원(下元), 칠월 십오일은 중원(中元)이라 부르고 이 셋을 "삼원"(三元)이라 하던 도교(道敎)의 풍속이 있었다.
또, 돌아가신 분을 위해 재를 올리는 불교의 "우란분공"도 이날의 행사로 전해 내려온다. 이 때 백가지 꽃과 과일을 부처님께 공양하므로 "백중"(백종)이라 불렀다고 한다.
또, 신라飁는 이 날의 이튿날부터 여자들이 두 편으로 나뉘어 베짜기를 시작하여 팔월 보름까지 한 달 동안 누가 많이 짜는가를 경쟁했다.
8 월
팔월 대보름날은 정월 초하루와 함께 특히 농촌의 가장 큰 영절이며 추석(秋夕) 또는 한가위라고 한다. 거위가 물러가고 새 곡식이 익어 추수를 할 飁이므로 일 년 중 가장 풍성(豊盛)한 시기이다.
신라(新羅)飁는 베짜기 시합을 이날 끝내고 진 편에서 술과 음식, 특히 송편을 대접하여 모두 춤추고 노래하며 놀았다. 이를 가위날이라 했으며, 오늘날까지 가장 큰 명절로 지켜져 내려온 긴 역사를 갖고 있다.
정초, 한식, 추석, 동지에 성묘하여 제사를 지내는데 추석에 가장 풍성하개 지낸다.
호남지방(湖南地方)에서는 한가위날 밝은 달밤에 젊은 여자들이 "강강술래"란 놀이를 지금도 23
많이 하고 있다, 곱게 입은 여자들이 모여 둥글게 서서 돌면서 밤새도록 춤추는 것인데, "강강술
래"란 후렴이 있는 노래를 부른다. 이 노래는 전라남도 바닷가에서 왜적이 쳐들어오는 것을 조심하라는 뜻애서 생겼다고도 한다.
9 월
구월 구일은 중양절(重陽節)이라 하여 단풍과 국화를 구경하며 국화꽃을 따다 찹쌀 떡을 만드는 풍속이, 꽃과 버들을 구경하며 진달래꽃을 따다 떡을 만드는 삼월 삼짇날과 비슷하다. 배, 석류, 잣 등을 꿀물에 탄 화채도 이 시절의 음식이다. 물론 잔치와 등산을 하며 즐겼고, 특히 양반은 시를 짓고 객지(客地)에 있는 사람은 고향 생각을 하던 날이었다.
한여름 동안 날던 제비도 이 날에는 남쪽나라로 돌아간다고 한다.
10 월
상달이란 음력 시월의 속어(俗語)다. 일년 농사를 다 마치고 새로 나온 햇곡식과 과일로 신과 조상에게 추수 감사의 제사를 지내는 달이다. 집안에서 "고사"를 지내고 산소에 가서 "시재"를 지내고, 마을 공동으로 "당산제"를 올리기도 한다.
"오일"(午日)은 말날이며 떡을 만들어 마굿간에 놓고 말의 건강(健康)을 빈다.
20일 경엔 매년 "손돌바람"이라는 차고 센 바람이 불어오므로 털옷을 준비한다.
또, 추운 계절(季節)의 음식으로 불고기, 신선로, 만두 등이 시작되고 김장 담그는 철도 이 무렵이다.
초사흗날 (양력 10월 3일)을 성스럽게 생각하는데, 그것은 우리의 건국(建國) 신화(神話)에 의하면 "단군 왕검"이 기원전(紀元前) 2,333년에 나라를 처음 세웠기 때문이다.
대한 민국 건국 이후에는 당시의 음력을 양력으로 고쳐 국경일(國慶日)로 기념하게 되었다.
11 월
동지 (冬至)는 일 년 중 낮이 가장 짧고 밤이 가장 긴 날로 "작은설"이라고도 한다. 팥죽을 쑤어 새알심을 넣어 먹고, 액땜을 위해 죽을 대문 등에 뿌리기도 한다.
이 때는 새 달력을 만들어 나누어 갖기도 하는데, 이와 비슷한 행사로는 여름철(단오)의 부채를 나누어 갖는 것을 들 수 있다.
12 월
동지 후 세 번째 미일(未日)을 납일이라 하여 돼지, 토끼 도기로 나라의 제사를 지낸다. 이 무렵 산 짐승의 고기가 맛있으므로 사냥을 많이 한다. 참새도 노인이나 어린이의 마마에 좋다고 하여 잡아서 구워 먹는다.
옛날에는 이날 내린 눈의 녹은 물이 약효(藥效)가 있다고 했다. 또 소화제, 해열제 등 여러 가지 한약(漢藥)을 만들어 나누어 갖기도 했다.
섣달 그믐은 한 해가 끝나는 날이다. 어른께 "묵은 세배"를 드리기도 하고, 꽃블 놀이와 축하(祝賀)의 대포 소리가 시작된다. 또 이 날 밤에는 온 집안에 등불을 ꑰ히고 밤새도록 자지 않으며 새해를 맞는다. 이것을 "수세"라고 하는데 만약에 잠을 자면 눈썹이 센다는 것이다. 어쩌다 잠이든 아이가 있으면 흰 가루를 눈썹에 몰래 바른 다음 깨워서 거울을 보이면 정말로 속아서 우는 것을 보고 놀려 준다.
이러다가 새벽 닭이 울면 다시 새해의 아침이 밝아 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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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國 歷代 大統領 一覽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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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 별 | 성 명 | 기 간 | 비 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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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 대 | 이승만(李承晩) | 48.07.20.-52.08.14.| 국회에 선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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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대 | 이승만(李承晩) | 52.08.15.-56.08.14.| 직선으로 선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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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대 | 이승만(李承晩) | 56.08.15.-60.04.27.| 직선으로 선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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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대) | 이승만(李承晩) | (임기 개시전 하야) | 3.15부정선거로 당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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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한대행 | 허 정(許 政) | 60.06.22.-60.08.12.| 이대통령419로하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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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한대행 | 곽상훈(郭尙勳) | 60.06.17.-60.06.22.| 헌법개정으로 (국무장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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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한대행 | 허 정(許 政) | 60.06.22.-60.08.12.| 곽의장 사퇴로 대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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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대 | 윤보선(尹潽善) | 60.08.13.-62.03.24.| 민참의원 합동회의 선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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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한대행 | 박정희(朴正熙) | 62.03.24.-63.12.16.| 윤대통령 하야로 (최고의 의원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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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대 | 박정희(朴正熙) | 63.12.17.-67.06.30.| 직선으 로선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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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대 | 박정희(朴正熙) | 67.07.01.-71.07.02.| 직선으로 선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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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대 | 박정희(朴正熙) | 71.07.03.-72.12.16.| 직선으로 선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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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대 | 박정희(朴正熙) | 72.12.27.-78.12.26.| 직선으로 선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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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대 | 박정희(朴正熙) | 78.12.27.-79.10.26.| 직선으로 선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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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한대항 | 최규하(崔圭夏) | 79.10.27(국무총리).| 박대통려 서거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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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 대 | 최규하(崔圭夏) | 79.12.06.-80.08.16.| 통일주체국민회의 선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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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한대행 | 박충훈(朴忠勳) | 80.08.16.-80.08.31.| 최대통령 하야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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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 대 | 전두환(全斗煥) | 80.09.01.-81.02.24.| 통일주체국민회의 선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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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 대 | 전두환(全斗煥) | 81.02.25.-88.02.24.| 대통령선거인단 선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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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 대 | 노태우(盧泰愚) | 88.02.25.-93.02.24.| 직선으로 선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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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 대 | 김영삼(金泳三) | 93.02.25.-현재 | 직선으로 선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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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 中 日 年 代 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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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年 代 | 韓 國 | 中 國 | 日 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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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C 30000 | 구석기 시대 | 舊石期 時代 | 신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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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000 | | 新石期 時代 | 죠몽시대 |
| 5000 | 신석기 시대 | 仰韶文化 龍山文化 |(繩文時代) |
| | 빛살무늬토기문화 +----------------------------+ |
| 1000 | 빗살무 토기문화 | 商(상) | |
| +------------------+----------------------------+ |
| | 청동기 시대 | 西周(서주) | |
| | 고조선 +----------------------------+ |
| | 민무늬토기문화 | 770 春秋時代 東周 |300 야요이시 |
| 300 | (無文土器文化) | 450 戰國時代 | 古墳時代 |
| +------------------+ +------------------------+ |
| 200 | 초기철기시대 +---+221 秦 | |
| | 삼한(三韓) +----------------------------+ |
| +---+ +---| 206 西(前)漢 | |
| | 57| +--|108| | |
| | 新| +---+37|樂 | | |
|A.D 0 | 羅| |18 |高|浪 +----------------------------+ |
| | +---+百 |句| | 25 東(後)漢 |야요이시대 |
| | |42 |濟 |麗| | |彌生時代 |
| | |伽 | | | | | |
| 200 | |耶 | | | +----------------------------+ |
| | | | | | | 220 三國 | |
| | | | | | +----------------------------+ |
| 300 | | | | |313| 265 西晋 | |
| | | | | +---+----------------------------+ |
| | | | | | 317 東晋 | |
| 400 | | | | +----------------------------+ |
| | | | | | 420 南北朝 | |
| 500 | |562| | +----------------------------+----------------+
| | | |663|668 | 581 隋 |593 아스까飛鳥 |
| 600 | +---+---+------+----------------------------+----------------+
| | 統一新羅+-------+ 618 唐 |710 나라(奈良) |
| 700 | |699渤海| +----------------+
| | |926 | +---------------+794 헤이안 |
| 900 | +-------+------------+907 五代 | 平安 |
| | 935 |966 遼 |960 北宋 | |
| 1100 | 高麗 |1115 金 |1127 南宋 |1185 가마꾸라 |
| | +------------+---------------+ (鎌倉) |
| 1300 | |1308 元 | |
| | +----------------------------+----------------+
| +------------------+1308 明 |1392 무로야찌 |
| 1400 | 1392 | | (室町) |
| | 朝鮮 | +----------------+
| | +----------------------------+1573모모아먀桃山|
| 1600 | |1616 淸 +----------------+
| | | |1603 에도(江湖) |
| +------------------+----------------------------+----------------+
| 1900 | 1897 大韓民國 |1912 中華民國 |1867 일본(日本)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