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마당9

















韓國漢城華僑中學

韓語韓文敎學硏究會

목 차

<시>

가 족 高1-3 林 莉 1

동 물 中1-1 張詩幥 1

별과 나 中1-1 王得方 2

사 랑 中1-1 王惠里 2

언니들 中1-1 李珉愛 3

하느님은 불공평해! 中1-1 劉于銀 3

<계절 이야기>

봄 中3-4 孫善寶 4

봄에 대한 여러 가지 느낌 中3-1 趙 英 4

비온 뒤 高2-4 甄美媛 5

<사랑과 행복의 이야기>

나의 가족 高1-2 王秀仁 6

사 랑 中2-3 牟德芬 6

아버지 中1-1 錢錦汶 7

어머니 中2-3 高慧丞 7

우 정 高1-1 戚正蘭 8

친 구 中2-1 王煢煢 9

친구야 미안해 中3-1 王祖玲 10

할아버지 中3-1 朱長靑 10

행 복 高1-4 劉玉莉 11

<추억 이야기>

겨울 방학 中3-4 譚秋錦 12

겨울 방학에 있었던 일 中1-1 劉于銀 12

나의 겨울 방학 中3-3 盛暉眞 13

방학 때 있었던 일 中2-2 李殷禎 中2-3 王琇橱 14

소학교의 추억 高2-3 王梅馨 15

즐거운 방학을 보내면서 中1-2 王祖夫 16

<우리들의 생활이야기>

감정이라는 이름의 도로 高2-3 陳彦文 17

고 3이 되어서 高3-5 孫善娜 17

농 구 中2-1 董先雯 18

농구를 보고 나서 中2-3 高慧丞 19

두발 검사에 대하여 中3-3 陳芳疴 19

소녀의 꿈 中2-1 陳珝錦 20

시 험 中1-1 孫靜宜 21

10년 뒤의 내 모습 高1-3 王暦娟 高1-3 呂世華 高1-3 陳秀正 21

10년 후의 나 高3-5 周景玉 23

십 년 후의 나의 모습 高1-3 譚安維 25

IMF 이후 사람들의 모습들 高2-3 賀仁華 25

엉뚱한 상상 中3-4 譚秋錦 26

여 행 高3-5 崔晸宇 高2-1 林文瑛 27

일요일 아침 高2-4 冷宜安 29

자 유 高3-5 臧秀瑛 29

졸업에 대하여 中2-3 趙振福 30

토 끼 中1-1 湯志隆 31

한국어를 배우면서 中1-2 臧珍瑩 中1-2 鐘莉娜 31

中1-2 陳芳雯 中1-2 黃新元

<편지글>

선생님께 드리는 편지 中3-3 陳玉珠 34

20년 후 미래에 사는 나에게 高2-4 劉小萍 34

친구에게 中3-3 方文玉 中3-4 王莉娜 35

<영화 감상문>

<동행>을 보고 中2-1 謝愼珍 38

<스텝맘>을 보고 中2-3 柳欣雅 38

<태양은 없다>를 보고 中2-1 杜京宛 39

<특집>

학교 교육 극대화를 위한 동아리 활성화의 필요성 40

취미활동 살리면 학교가 즐거워진다 43

<과학 이야기>

건강-茶의 질병예방 효과 45

바닷물은 왜 짭짤할까? 46

벌침의 독으로 암세포를 죽인다 47

'비행중 숨쉬기' 왜 아무런 문제가 없을까? 48

순간접착제는 왜 즉시 붙을까? 49

요구르트, 물 마신 뒤나 식후에 50

인터넷 중독, 당신은 안전한가? 51

핸드폰이 뇌에 미치는 영향 52

<역사 이야기>

사육신, 충신인가 역적인가 54

<세상 이야기>

영어가 세계사 흐름 바꾼다 56

<지혜의 샘>

토끼해는 문화 꽃피운 상서로운 해 59

편집자의 변 60

<시>

가 족

高 1-3 林 莉

세상이 이토록 아름답게 느껴지는 건

아마도 서로 사랑할 수 있음일 거야.

이렇게 크고 큰 대지에 나 홀로 살아가야 한다면,

함께 공유할 수 있는 사람들이 내 주위에 없다면,

아마도 이 세상은

끝없는 고통으로만 다가올 거야.

말하지 않아도 서로를 다 이해한다면,

눈빛으로도 서로의 마음을 읽을 수 있는

사랑하는 나의 사람들てててててて

세상이 힘겹게 다가올 때면

내 주위에 울타리를 만들어 주는 나의 고마운 사람들

아늑하고 따뜻함의 진정한 의미를 새삼 일깨워 주는 사람들

무엇일까? 자석과 같이 날

이끄는 힘은てててててて

아마도 그건 세상 어떤 말로도 형언할 수 없는

날 존재하게 하는

가족의 사랑일 거야!




동 물

中 1-1 張 詩 幥

나는 동물이 좋다. 특히 강아지를

하지만 강아지는 짖기만 하고

말을 못해서 답답하기만 하다.

강아지도 말을 했으면てててててて.


별과 나

中 1-1 王 得 方

밤이면 밤마다

보석들이 검은 바다에 모여있다.

밤이면 밤마다

나는 그들을 보러 나간다.

나도 저 검은 바다에서 반짝이는 별들과 같이

이 넓은 세상을 보고싶다.

밤이면 밤마다

나는 저 별들과 같이 반짝이고 있다.

나는 여기에 그들은 하늘에.



사 랑

中 1-1 王 惠 里

사랑이란 아픔 고통 슬픔

난 이제 사춘기 열 다섯 살의 소녀

난 매일 꿈을 꾼다

한 남자의 품안에 있다가

갑자기 깨어 다시 현실로

나의 사랑은

혼자만의 사랑

공부할 나이지만

왜 사람들은 외모를 보는지

외모는 석 달 간다는데

난 오늘도 사랑에 빠져있다

이게 꿈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언니들

中 1-1 李 珉 愛

난 지금 중학교 일 학년 어린 소녀

나보다 한 살 높은 사람들이 뭐 길래

왜? 인사를 꼬박꼬박하라고 하는지.

인사를 하면 안 받아주고

인사를 안 하면 계속 쳐다보고

정말 우리보고 어쩌란 말인지.





하느님은 불공평해!

中 1-1 劉 于 銀

난 하나님이 밉다.

왜냐면! 하나님은 불공평하니까!

열심히 일하지만 안 좋은 일만 생기고

하나님은 불공평해!

난 하나님이 밉다.

왜냐면! 하나님은 불공평하니까!

게으른 사람에겐 행운을 갖다 주고

하나님은 불공평해!

난 하나님이 밉다.

왜냐면 하나님은 불공평하니까!

우리 엄마 아빠는 노력하지만 불행만 갖다 주고

하나님은 불공평해!

<계절 이야기>

봄

中 3-4 孫 善 寶

어느 날, 밖을 나가보니, 얼마 전과는 달리 사람들의 옷차림과 발걸음이 가벼워진 것 같다. 저녁 반찬에 싱그러운 나물들이 올라온 것을 보면 봄이 왔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사람들 얼굴을 보니, 모두 봄이 와서 그런지 생기가 있어 보이고, 새로운 희망을 가진 것 같았다. 어제 내린 봄비는, 겨울 동안 쌓였던 갈증을 풀어 주는 것도 같았고てててててて. 나는 원래 비를, 기분도 우울해지고 질퍽질퍽해서 안 좋아하지만, 봄비는 사람들의 얼어붙었던 마음을 녹여 주는 것 같기에 좋아한다.

나는 사람들이 봄처럼 따스하고 행복했으면 좋겠다.




봄에 대한 여러 가지 느낌

中 3-1 趙 英

겨울을 어두운 밤이라고 한다면, 봄은 상쾌한 아침이라고 할 수 있다. 일년의 시작인 봄에는 여러 가지 느낌을 갖게 된다.

추운 겨울이 가고 따뜻하고 예쁜 봄이 왔다. 봄이 되면 모든 생명체의 활동이 시작되고 꽃들이 피기 시작한다. 봄을 비유하자면 어머니의 품과 같다. 따뜻하고 인자한 어머니라는 느낌을 주는 봄이기에 내가 특히 좋아한다.

봄이 시작되는 것을 알리는 건 따뜻한 바람이다. 따뜻한 온기를 갖고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그건 봄의 시작을 알리는 것이다. 이 바람은 봄은 어머니라는 느낌을 나에게 남긴다.

봄이 되면 꽃이 핀다. 상쾌한 봄내음이 코를 찌른다. 봄이 내게 남기는 인상은 꽃이라고도 할 수 있다. 봄에 피는 꽃은 모두 아기자기한 꽃들이다. 거기에는 진달래, 개나리, 민들레 등 모두 너무나 아기자기한 것들이다.

만약 봄에 대한 느낌이 하나 더 있다면, 그건 편안함일 것이다. 봄에 바람을 맞아 본 사람은 알 것이다. 겨울 바람과 다른 점을てててててて. 봄이 그토록 편안하기에 수업하다 졸린 건 당연한 일.

이렇게 봄은 나에게 여러 가지 느낌으로 다가온다. 그런 봄을 허비하기 보단 보람있게 보내는 게 좋지 않을까?




비온 뒤

高 2-4 甄 美 媛

창 밖을 보니 비가 주르륵 내리고 있다. 몇 시간이 흐른 후 비는 그치고, 꽃과 나무에 묻은 흙과 먼지들은 다 씻겨 내렸다. 마치 비에 목욕을 한 듯てててててて.

비온 뒤의 하늘은 더 없이 상쾌하고, 태양도 한결 더 맑고 눈이 부시다. 대지를 내리 쬐고 있는 햇볕 때문에 풀잎 위에 맺혀 있던 이슬들이 진주처럼 반짝반짝 빛이 나고 있다. 하늘의 저 편에는 일곱 빛깔의 무지개가 아름다운 형태로 뻗어 있다.

비온 뒤의 거리에 남아있는 빗물들을 한 발 한 발씩 밟으며 왠지 모를 상쾌함에 빠져든다. 거리는 깨끗함과 많은 공기, 사람들은 어디선가 모두 나와 거리는 다시 활기를 되찾았다.

어느덧 무지개는 사라지고, 비온 뒤의 세상은 청결하고 편해져서, 사람들은 아름다운 풍경 속에 자신도 모르게 푹 빠져들고 있었다.










<사랑과 행복의 이야기>

나의 가족

高 1-2 王 秀 仁

듣기만 해도 가슴 뭉클하고 따스한 단어가 바로 '가족'이다. 하지만 난 내 가족을 사랑하지 않는다. 아니다. 사랑할 수 없었다 라는 표현이 더 맞을 것이다.

나의 아버지는 사업을 하시는 분이셨다. 우리에게 그런 아버지는 더할 나위 없이 크신 존재였다. 그런데 세상이 그런 아버지를 처음으로 거부했다. 아버지는 사업에 실패했고 모든 걸 잃었다. 아버지가 다시 일어서길 간절히 바랬지만 아버진 당신 자신까지 버리셨다. 그리고 아버진 변했다. 더 이상 아버지는 나에게서 커다란 아버지가 아닌 작고 무능하고 초라한 술주정뱅이로의 모습밖엔 보여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곧 엄마가 우릴 버렸다. 힘들었지만 엄마를 미워하지 않았다. 자식을 버리고까지 갈구했던 행복이 엄마를 비켜가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었다.

그 사이 나와 내 동생은 지쳐갔다. 그리고 아버지가てててててて, 돌아가셨다. 엄마가 돌아왔지만 엄만 이미 변해 있었다. 딸의 야속한 말에도 대꾸조차 하지 못하는 약한 여자. 엄만 자신의 그런 모습으로 내 마음의 기둥을 뽑아버렸다. 하지만 난 누군가에게 용서하는 법을 배웠다. 이젠 엄마를 용서할 수 있고 아버질 용서할 수 있다. 이젠 사랑하는 법을 배우고 싶다. 내 가족을 누구보다도 많이 사랑할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사 랑

中 2-3 牟 德 芬

사랑이라는 단어는 우리에게 아주 친숙하다. 우리는 어쩌면 사랑이라는 단어를 너무 쉽게 생각하고 또 말하는 건 아닐까?

사랑이라는 것의 가치는 이 세상 어느 것보다도 소중하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는 데 있어 사랑은 없어서도 안 되고, 그렇다고 해서 지나쳐도 안 된다. 사랑이 지나치면 그 사랑은 거짓 사랑, 아니 욕심일지도 모른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무엇인가를 바란다면 그것은 진실한 사랑이 아니다. 진실한 사랑은 그 사람이 나를 알아주지 않아도 행복하고, 그 사람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한없이 기쁜 것이다.

세월이 흘러서 자동차가 하늘을 누비고, 우리가 해 왔던 모든 일들을 로봇이 대신 한다고 해도, 딱 한 가지, "사랑"만은 영원히 우리의 몫이라고 생각한다.



아버지

中 1-1 錢 錦 汶

우리 아버지는 곱슬머리에다가 인상은 무서우며 덩치는 크십니다. 그래서인지 사람들은 아빠의 첫인상을 보고 아빠를 아주 무서운 사람으로 봅니다. 우리 아빠는 인상만 그렇지 속은 아주 넓고 깊은 분이십니다. 동물과 아이들을 좋아하셔서인지, 장난을 잘 치셔서인지, 어쩔 땐 애들 같으십니다.

우리 아빠는 교육에 대해서는 엄격하십니다. 우리가 말을 안 듣거나 공부를 안 하면 소리를 지르십니다. 어릴 때는 미웠지만 중학생이 되니 부모님들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젠 다 컸다고 꾸짖지는 않으십니다.

제가 철이 든다고 생각할 때는 바로 아빠의 흰머리를 볼 때입니다. 저는 점점 커가지만 아빠의 흰머리는 늘어만 갑니다. 제가 아빠에게 너무 마음을 아프게 했습니다. 제가 할 수만 있다면 아빠의 흰머리를 없애고 싶습니다. 그러려면 공부를 열심히 하는 사람이 되는 길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다시 태어난다면 꼭 지금의 부모님에게 태어나고 싶습니다. 제가 지금 아빠에게 하고 싶은 말은, "사랑해요".


어머니

中 2-3 高 慧 丞

이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품을 갖고 계신 분은 어머니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며칠 전 저의 어렸을 적 앨범을 보았습니다. 앨범엔 사진이 가득 차 있었습니다. 사진의 포즈도 다양했습니다. 한 달마다 정기적으로 찍은 사진도 있고, 우는 모습과 잠자는 모습을 담은 사진도 있었습니다. 전 이 사진들을 보고 마음 속으로 제 자신이 매우 자랑스러웠습니다. 이렇게 조그만 내가 벌써 의젓한 중학생이라니, 하지만 제가 이렇게 건강하고 올바르게 큰 것은 제 뒤에서 항상 절 지켜주신 어머니의 덕이라고 느꼈습니다.

제 위론 오빠가 한 명 있었습니다. 하지만 오빠는 난지 채 일주일도 안 지나 엄마의 곁을 떠나 저 먼 하늘 나라로 갔습니다. 그 후 몇 년 뒤 힘들게 가진 아이가 바로 저입니다. 어머니는 절 하늘이 내려주신 보물이라 생각하시며 절 귀하게 키워 주셨습니다. 그 후로 저의 동생을 낳아 주셨습니다. 하지만 저희 네 식구가 살기엔 경제적으로 부담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어머닌 조그만 가게를 얻어 장사를 하셨습니다. 밤엔 새벽시장에 가서 물건 사시고 낮엔 가게에 장사하러 가시고, 잠잘 시간이 턱없이 부족한 어머니는 저희 두 자매가 남에게 손짓 받을까 두려워 바쁜 와중에도 공부 가르치고 옷도 손으로 직접 빨아 주셨습니다. 그리고 새벽마다 따뜻한 밥을 지어 도시락도 매일 싸 주셨습니다.

전 그런 어머니의 마음도 모르고 엄마에게 말대답도 하고 신경질도 부리고 매일같이 속을 썩였습니다.

그런 어머닌 항상 새벽 기도를 갔다 오시고 잠자는 저의 손을 붙잡고 눈물을 흘리며 기도 해 주셨습니다. 몇 년이 지난 지금도 어머닌 끝임 없이 저에게 기도를 해 주십니다.

전 정말 커서 어머니에게 보답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이 세상 보든 사람에게 우리 어머니를 자랑하고 싶습니다.


우 정

高 1-1 戚 正 蘭

사람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꼭 필요한 세 가지를 말하라 한다면, 난 아마도 물과 자유와 친구랄 말할 것이다. 내게 있어 친구와의 우정이 소중하게 느껴진 것은, 내가 슬플 때와 고민이 있을 때, 또는 누군가에게 도움이 필요했을 때, 그럴 때마다 내게 위로가 돼주고 날 도와 준 것이 다름 아닌 친구였기 때문이다. 어쩜 그래서인지 몰라도 난 친구와 또 그들과 나눴던 우정을 사랑한다.

'우정'이란 두 글자, 비록 쉽게 쓸 수도, 쉽게 말할 수도 있는 단어지만 그것은 절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그런 보이지 않는 감정이다. 때로 어떤 애들이 내게 묻는다. "내게 진정한 친구가 누굴까?" 난 그 질문에 이렇게 답하곤 한다. "누가 너에게 진정한 친구인지 찾는 것보다 네 자신이 누구에게 진정한 친구가 될 수 있는지를 먼저 생각해 보라고てててててて."

내 생각엔 한평생 살아가면서 가장 마음 깊이 느낄 수 있는 것은 '우정'이다. 그래서 우린 그것을 소홀히 해선 안 되는 것이고.

끝으로, 친구와의 우정은 일생 최대의 보물이며 그 보물은 결코 끝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친 구

中 2-1 王 煢 煢

나는 오늘 친구의 편지를 보았다. 편지 내용에 난 감동을 받았다. 나에게도 이런 소중한 친구가 곁에 있었다니! 편지를 모고 나서 난 그 친구에게 답장을 쓰고 싶었다.

"친구야! 우린 싸워선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항상 싸우지. 정말 미안해. 나도 여러 번 화해하려고 조력해 보았어. 근데 그게 잘 안 된단다. 그런데 네가 먼저 나에게 사과 편지를 보내줘서 정말 고마워. 우리 다시는 싸우지 말자. 우리가 화해하기 전에 나는 많이 울었어. 왠지 나는 혼자란 느낌이 왔었거든. 죽을 생각까지 했다는 걸 넌 믿겠니? 너는 나의 가장 소중하고 아꼈던 친구야! 오늘 이 편지로 나의 마음을 알아줬으면 해! 네가 이 편지를 읽고 어떤 느낌이 올까? 우린 이제 혼자가 아니야. 너의 곁에 항상 내가 있잖아. 우리는 아마 죽는 날까지 절대로 헤어질 수 없을 거야! 아니 죽고 천당 갈 때도 말이야. 정말로 난 널 사랑한다. 우리의 우정을 영원히 간직하자. 네가 항상 말하듯이 우리의 정은 어느 누구도 끊을 순 없을 거야! 정말로 다시 한 번 고마워! I LOVE YOU!"

난 그 친구의 편지를 보고 나서 마음이 한결 좋아졌다. 정말 왠지 모르게 눈물이 나려고 한다. 이런 게 우정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정말 줄도 없는 친구인 것이다! 편지는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친구야! 편지 정말 고마워. 그리고 우리 우정 변치 말자. 너의 친구 정정이가!"

친구야 미안해

中 3-1 王 祖 玲

저에게는 몇 달 전에 사귄 친구 녀석이 한 명 있는데요, 그 애는 다른 친구들보다 저와 마음이 너무 잘 맞아서 매일 같이 다니게 되었어요. 그런데 뜻밖에도 그 친구는 저처럼 부모님 사정이 똑같았고, 혼자서 너무 힘들어하는 것 같아서 쉽게 친구가 되었습니다.

그렇게 알고 지낸 지 5개월이 지난 후 어느 날, 갑자기 그 친구가 집을 나오게 되었어요. 지금은 너희 집에서 저와 함께 하숙을 하고 있지만 친구는 따로 사시는 엄마가 많이 아프셔서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어요. 그걸 모르는 나도 아닌데 사소한 오해 하나 때문에 그 친구와 다투었습니다. 그 친구한테 미안하다고 말해주고 싶었지만 그 못난 자존심 하나 때문에 아직까지 화해를 못하고 속만 태우고 있습니다. 그 친구를 볼 때면 저도 모르게 화가 났거든요.

이제는 더 이상 그 친구와 거리를 두고 싶지 않습니다. 이 글로 그 친구에게 진심으로 용서를 빌고 싶어요. 친구야, 미안해. 그리고 사랑해!



할아버지

中 3-1 朱 長 靑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저는 할아버지와 함께 살고 있습니다. 요즘 들어 할아버지가 무척 많이 걱정됩니다.

제가 어겼을 때 할아버지는 제가 원하는 건 뭐든지 들어주셨어요. 어딜 가시던지 저를 데리고 항상 같이 놀아주셨어요. 저의 할머니는 제가 어렸을 때 돌아가셔서 저는 할머니 얼굴을 잘 기억하지 못해요. 대신 사진으로는 봤어요. 할머니가 일찍 돌아가셔서 할아버지는 늘 외로워하셨어요. 가끔 혼자 우시기도 하세요. 그런 모습을 볼 때마다 제가 할머니의 빈자리를 대신 채워 드려야지 항고 항상 생각해요. 그래서 잘해 드리려고 노력하는데 그게 생각만큼 잘 안돼요. 요즘 들어 가끔씩 할아버지께 짜증을 내는데 짜증을 내고 나서 생각해보면 제가 무척 미워져요.

겨울 방학 때 할아버지께서 저에게 이런 말을 하셨어요. 할아버지가 요즘 들어 자꾸 아프다고てててててて, 얼마 못 살 것 같다고てててててて. 이 말을 듣는 순간 저는 울어 버렸습니다. 너는 할아버지와 늘 함께 사는 줄 알았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잖아요.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까지 할아버지께 후회 없이 효도하고 싶습니다.

행 복

高 1-4 劉 玉 莉

행복은 어느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행복한 것 그건 우리에게 가족이 있다는 것, 행복한 것 그건 우리에게 친구가 있다는 것, 행복한 것 그건 우리가 웃을 수 있다는 것, 행복한 것 그건 우리가 사랑할 수 있다는 것, 생각해 보면 우리 주위엔 아주 작은 것부터 큰 것까지 많은 행복이 있습니다. 다만 우리가 발견하지 못할 뿐입니다.

아브라함 링컨이 말하길 "인간은 자신이 얼만큼 마음먹느냐에 따랄 행복해진다."고 하였습니다. 행복한 사람은 어떤 특정한 환경 속에 있는 사람이 아니라 오히려 어떤 특정한 마음 자세를 갖고 살아가는 사람이 아닐까요?

행복이 찾아오기만을 기다린다는 건 너무 바보 같은 짓입니다. 행복은 우리가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삶은 우리 자신이 만든 것이고 언제나 우리 자신이 만들어 왔고, 앞으로도 우리 자신이 만들어 나갈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행복도 그러합니다. 자신이 행복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행복이 찾아온다고 해도 느끼지 못하여 그럴 것입니다. 저도 어렸을 때 모든 일이 행복하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커가며 많은 것을 배우고 내가 얼마나 행복한지 알았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얼마나 행복한지 모릅니다. 하지만 자신이 불행하다고는 너무도 잘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행복하단 말 보단 불행하다는 말을 더 많이 쓰고 있는지 모릅니다. 주위의 모든 것을 사랑한다면 행복해지지 않을까요? 화난 마음으로 고고를 돌아보지 말고 두려움으로 미래를 내다보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 모두 행복을 원합니다. 자신의 인생을 행복으로 가득 채우고 싶다면 지금부터라도 행복을 만들어 가는 게 어떨까요?

우리가 모든 일을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또 그렇게 세상을 바라본다면, 서로가 사랑한다면, 또 행복을 만들어 간다면 이 세상은 행복으로 넘칠 것입니다.

<추억 이야기>

겨울 방학

中 3-4 譚 秋 錦

기말고사가 끝나고 겨울 방학이 시작한 것이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개학한지 일주일이 넘었다. 중3의 겨울 방학, 친구들과 신나게 논 적 없고, 잠 한 번 편하게 잔 적 없지만, 나름대로 의미 있는 방학이었다.

겨울 방학에 나의 생활은 집에서 숙제 쓰고, 학원 가고, 틈틈이 친구들에게 편지 쓰는 게 고작이었다. 하지만 이번에 두 가지가 더 늘었다. 하나는 PC통신, 호기심에 몇 번 해 본 통신이란 게 이제는 나에게 심심한 시간을 때워주고, 소중한 친구를 가져다주는 존재가 되었다. 그 친구들과 대화하다보면 시간가는 줄 몰랐고, 보고 싶은 그림이나 듣고 싶은 음악이 있으면 다운 받아 바로 보고들을 수 있고, 틈틈이 TV나 라디오 프로에 참여하여 상품도 탈 수 있었다.

또 하나는 운동. 방학에 살찌는 걸 방지하고 싶어서 방학 초에 "스쿼시"란 운동을 시작했다. 운동 신경이 없어 잘 하진 못했지만, 늘 집에서 정신없이 지내는 것보다 활기차게 행동할 수 있다는 게 너무 기분이 좋았다. 스쿼시는 또 내게 좋은 언니를 가져다주었다. 스쿼시에서 만난 언니, 나랑 나이 차이가 많이 나서 항상 따뜻함으로 날 대해 주었고, 틈틈이 연습도 시켜주었다. 코치들도 잘 해주었다. 레슨도 재미있게 해 주시고, 스쿼시 가는 게 설렐 정도였다.

개학을 했으니 통신은 할 기회가 별로 없을 거고, 스쿼시도 며칠 안 남았다. 하지만 이 두 가지 일이 있었으므로 내 중3 겨울 방학을 알차게 보낼 수 있었다.

지금부터는 학교 생활에 충실해야겠다.


겨울 방학에 있었던 일

中 1-1 劉 于 銀

내가 정말로 기대하고 또 기대하던 방학이 드디어 내 곁으로 왔다. 길다고 할 수도 있고 짧다고 할 수도 있는 이 겨울 방학, 정말 기대가 된다.

방학이 되면, 눈을 못 뜬 채 일어나지 않아도 되고, 눈을 뜰 힘도 없이 집에 돌아오지 않아서 정말 좋다. 태양이 동쪽에서 뜰 때부터 서쪽으로 내려갈 때까지 자도 말리는 사람이 없다. 아! 이 얼마나 편안한 세월인가!

하지만 행복이 있으면 불행이 닥치고, 불행이 닥치면 행복이 온다고 한다. 과연 어느날 새벽, 전화가 왔다. "따르릉, 따르릉" 그 때는 우리 가족 모두 다 깊은 잠에 푹 빠져 있었다. 한참 뒤, 엄마가 잠에서 깨어 전화를 받았다. 나도 무슨 일인지 호기심에 일어났다. 엄마는 전화를 받다 갑자기 얼굴이 창백해지면서 눈물이 쏟아져 내렸다. 나는 무슨 일인지 몰랐지만 옆에서 엄마를 위로해 주었다. 엄마가 전화를 끊은 후 난 꼬치꼬치 캐물었다. 엄마의 입에서는 딱 한마디 "너의 외할아버지가 눈을 감으셨다"란 말이 흘러 나왔다. 나는 순간적으로 기절할 뻔했다.

오늘이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신지 49일째다. 엄마하고 나는 전날 새벽에 빵을 만들어서 오늘 불당에 가서 상을 차렸다. 49일 전에는 혼령이 사람의 세계에서 떠돌아다니고, 49일째 날에 하늘로 올라간다고 한다. 내가 바라는 것은 할아버지께서 편안히 가시는 거다.

나는 방학이 되면 꼭 느끼는 게 있다. 그건 바고 사람이 살아가면서 할 일이 없다는 건 아주 비참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번 방학은 내 스스로 의미 있게 지낼 거다.



나의 겨울 방학

中 3-3 盛 暉 眞

이번 방학엔 두 가지 큰일이 있었다.

하나는, 할머니가 감기에 걸리셔서 내가 얼마나 놀랬는지 모른다. 그래서 내가 할머니를 얼마나 소중하고, 사랑하는지 새삼 깨달을 수 있었다. 그래서 설거지도 하고 방청소도 내가 했다. 할머니를 위해서 내가 할 일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했는지 모른다.

또 하나는, 할머니 감기가 조금 나았을 때, 할머니와 난 겨울을 피해 따뜻한 나라 태국으로 갔다. 게다가 고모와 언니까지 와서 한층 더 재미있었다. 유람선을 차고 태국 곳곳을 구경하였고, 옛 사찰 등을 관광했다. 절은 한국하고는 참 달랐다. 금 종류가 많이 장식되어있어 한국의 절보다 훨씬 화려했다. 또 왕궁에도 갔는데, 참 웅장했다. 왕궁에 들어갈 때는 샌들이나 짧은 반바지 등을 입고 갈 수 없는 게 특징이었다. 관광한 것 외에도 쇼핑도 많이 했고, 좋은 음식도 많이 먹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상어지느러미 요리도 맛있게 잘 먹었다. 매번 갈 때마다 잘 해주시는 막내 고모와 고모부께 정말 고마웠다. 또 그곳에서 병원에도 많이 다녔다. 할머니의 건강을 확인하느라 한의원, 치과 등 병원에도 많이 갔다. 이번은 태국의 모든 생활에 익숙해졌다.

아무튼 할머니가 건강해지셔서 난 너무 기쁘다.



방학 때 있었던 일

中 2-2 李 殷 禎

이번 방학에는 특별한 일은 없었습니다. 저는 그저 엄마 일을 도와주고 동생을 데리고 공부를 지도해 주었습니다.

그러나 이번 방학에 제겐 아주 좋은 일이 있었습니다. 그건 바로 제 눈이 많이 회복된 것입니다. 학교에서는 너무 아팠는데, 방학에 병원도 잘 다니고 약도 잘 먹어서 정말 눈이 좋아졌습니다.

또 집에서 엄마를 도와서 일을 많이 했습니다. 그래서 엄마는 저에게 "니가 있어서 덜 힘들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정말 뿌듯하게 방학을 지냈습니다.


방학 때 있었던 일

中 2-3 王 琇 橱

저는 오늘 콘서트에 갔다 왔습니다. 세종문화회관에 도착하자마자 너무 놀래서 저도 모르게 입이 벌어졌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줄을 서려고 맨끝 사람을 찾아 뱅뱅 돌아서 겨우겨우 찾았는데 사람이 너무 많았습니다. 줄을 서기 싫었지만 그래도 내 자신이 원해서 온 거니까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렸습니다. 그렇게 해서 6시가 되었습니다. 곧 입장하기 시작했습니다. 줄이 너무 길어서 그런지 입장하는 데도 시간이 꽤 많이 걸렸습니다. 입장해서 한 30분 정도 지나자 갑자기 소리가 울렸습니다. 그러자 갑자기 사람들이 막 소리를 지르는 것이었습니다. 주인공도 나오지 않았는데 웬 소리를 지르는지!

7시 정각이 되자 갑자기 조명이 꺼지고 음악이 나오는 거였습니다. 그러자 사람들이 다 고함을 지르기 시작했고, 어떻게 됐는지 저도 따라서 소리를 지르고 있었던 거였습니다. 콘서트가 시작됐습니다. 저희가 모르는 노래가 나오면 소리를 지르고, 아는 노래가 나오면 같이 따라 부르고, 같이 얘기도 하였습니다. 또 VTR로 자기네 숙소와 집도 보여 주었습니다. 정말 재미있었습니다. 그러나 소리를 너무 질러서 그런지 목이 다 아파 오는 거예요. 그래서 집에 가서 약을 먹어야만 잠을 잘 수 있었습니다.

오늘이 방학 중에서 가장 기쁜 날이 될 수도 있지만, 저는 좋은 추억으로만 남았으면 좋을 거라 생각합니다. 혼자 가서 조금은 쓸쓸하고 남 원망도 많이 했지만, 그래도 기분 좋게 노래도 들었고, 재미있게 놀았고, 스트레스도 풀었고, 정말 일석삼조 아니겠어요?

가끔 가다 콘서트 보는 것도 괜찮다고 생각하지 않으세요?




소학교의 추억

高 2-3 王 梅 馨

사람이 세상에 태어나서 누구나 한 번을 거쳐야하는 소학교. 어린 시절 설레는 마음으로 첫발을 내디뎠던 학교라는 곳, 아기자기한 동심으로 6년이란 세월을 보낸 그 곳. 아무런 욕심 없이 그저 한결같이 희노애락을 마음껏 펼친 그 곳, 그곳이 바로 소학교, 즉 초등학교 시절.

지금은 고등학생 신분인 나는 아직도 그 어리고 철없던 시절을 떠올리면 가끔 웃음이 터져 나오곤 한다. 지금 이 얘기를 떠올리며, 유난히 그 시절이 그리운 것을 보면 나는 그 옛날 그 시절이 가장 행복한 순간이 아닌가라는 기분이 언뜻 든다.

나의 초등학교 시절. 산 중심부쯤에 자리잡은 나의 모교는 봄이면 노랑 개나리로 학교 전체 풍경이 노랗고, 날아다니는 벚꽃 잎으로 봄날의 눈을 연상시키며, 여름엔 아카시아 향기가 온 교실로 퍼지고, 살구, 복숭아, 앵두 들이 나무에 주렁주렁 열릴 때면 수업이든 뭐든 만사 제쳐놓고 전교생이 모두 나와 과일을 따곤 했다. 늦가을엔 떨어지는 나뭇잎이 운동장을 덮고, 겨울에 새하얀 눈이 그 큰 운동장을 덮을 때면 벌써 한 학년이 훌쩍 지나가 버리곤 했다.

이것이 바로 나의 어린 시절, 소학교 때의 작은 추억이다. 이렇게 6년이란 세월을 보내고 나서, 기억을 더듬어 볼 때면 그 옛날 내가 얼마나 행복했는지를 연상할 수 있다. 이래서 난 소학교의 추억을 나 나름대로 소중히 간직하고 싶은 것이 아닐까?

물론 난 지금 이 시간, 이 자리에도 애착을 갖고 소중하게 여기고 있다. 지금의 나를 만든 그 옛날, 그 어린 시절을 더욱 소중히 간직하고, 사랑하고 싶다.



즐거운 방학을 보내면서

中 1-2 王 祖 夫

즐거운 방학이 시작한지 엊그제 같던 방학이 벌써 끝나고 지금은 교실에 않아 있지만 이 전에 있었던 방학을 한 번 더 생각해 봅니다. 저는 방학 때 아주 편하고 즐겁게 쉬었습니다. 시구들과 뭐든지 모두 같이 할 수 있어서 정말 너무 기뻤습니다. 하지만 굉장히 아쉬운 것은 동생들과 싸우고 저만 생각하고, 동생들을 너무 마음 아프게 만들었던 것입니다. 그건 제가 동생들을 교육시키겠다는 잘못된 생각이었습니다. 저는 지금 동생들을 너무 사랑합니다.

어느 날, 동생이 학원에서 가는 놀이 동산에 갔습니다. 저는 동생과 같이 못 갔습니다. 저는 동생이 무척 부러웠습니다. 저녁때가 되자 저도 모르게 동생이 걱정되었습니다. 조금 뒤 동생이 왔습니다. 전 너무 기뻤습니다. 동생의 두 손엔 선물이 가득했습니다. 동생은 제가 필요한 것을 사주었습니다. 저의 선물을 사려고 놀이 동산에서 놀지도 못하고 찾아다녔다는 것을 알고 저는 너무 부끄러웠습니다.

그후 전 혼자 컴퓨터 학원을 다니게 되었습니다. 그 학원 때문에 저는 동생이 혼자 집에 남아 있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그후 저는 동생에게 조금씩 잘해 주었지만 금방 개학이 다가왔습니다. 지금은 기숙사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저는 동생에게 미안하다고 그리고 사랑한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누구보다 더 잘해주고 싶고, 앞으로 저도 동생에게 뭐든지 양보할 겁니다.

<우리들의 생활이야기>

감정이라는 이름의 도로

高 2-3 陳 彦 文

우리 인간이라는 존재에게는 감정이라는 이름의 도로가 있습니다. 각자 자신의 생각대로 이어지는 도로 말입니다. 이 도로는 2차선으로 이루어진 길, 한 차선은 지신을 상대방에게 보내는 길이고, 또 하나는 그 반대의 길이죠.

자신의 감정인 사랑, 미움, 분노, 환희라는 이름의 자동차는, 우리의 의지를 운반하는 이 자동차는 상대방한테로 갈 수 있는 도구랍니다. 역시 나한테 이어지는 길에 또 하나의 자동차도 올 수 있고요. 그 차는 내가 보내는 차랑 똑같을 수도 있고 또 내 것이랑 많이 틀릴 수도 있겠죠.

우리에게는 상대방과 이어지는 도로가 있답니다. 그러나 그 상대방에게서 오는 감정이 두려워서 자신이 직접 길을 끊어서는 안 되겠죠?

지금도 우리의 차는 우리의 도로를 달리고 있답니다. 우리는 글 존재를 반갑게 맞이해야겠죠.


고 3이 되어서

高 3-5 孫 善 娜

나는 "고 3이 되어서"라는 제목을 한글마당에서 여러 번 보았다. 볼 때마다 나는 이 제목은 쓸 게 뭐가 있기에 이렇게 매번 나올까 하고 중얼거렸다. 아마 지금도 이 제목을 보며 투덜거리는 친구가 있을 거라 생각한다. 그러나 지금 내가 고 3이라는 입장에 서 보니 모든 것이 새롭고 다르게 느껴진다. 너무 많아 무엇을 써야할지てててててて.

모든 것이 달라졌다. 내가 고 3이라는 신분도. 모든 것이 긴장감과 연결된다. 평소 그냥 지나갈 그런 사소한 것들까지도 소중하고 새롭게 느끼는 것은 왜일까? 내 학창 시절의 마지막을 알차고 멋지게 장식하려는 내 의식 속에서 나오는 걸까?

지난 5년 동안 무엇을 했나 되돌아보면 추억이라는 것이 나를 반긴다. 학창 시절만큼 행복하고 즐거운 시절도 없다는데, 난 시간이 흐르기만을 바래왔다. 그저 빨리 졸업하고 학교라는 테두리를 벗어나고 싶었다. 그러나 지금의 나를 보며 내가 얼마나 바보 같은 생각을 해왔는지를 알았다.

나는 앞으로 우리가 학교라는 울타리 안에서 웃을 수 있는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안다. 곧 있으면 시험이라는 관문이 우리의 지식을 검사하려 할 것이고, 우리는 그저 시험에 맞게 공부해야한 할 것이다. 물론 고 3이란 지위 자체가 놀지 못한다는 것을 알지만.

곧 있으면 뿔뿔이 흩어질 친구들을 소홀히 대하고 싶지 않다. 나는 이 고 3이라는 마지막 시절을 소중히 간직할만하게 만들고 싶다. 선생님, 친구들 모두 내 기억 속에 남을 수 있게てててててて.


농 구

中 2-1 董 先 雯

나는 농구가 좋다. 그 경기가 좋고 응원하는 게 재미있다. 하지만 그것들보다 더욱 좋은 것은 추첨이다.

방학 때 나하고 동생은 아빠랑 농구 보러 간 적이 몇 번 있었다. 그 다음은 노구가 너무나도 좋아졌다. 농구를 처음 보러 갔을 때 어디가 어딘 줄 몰랐고, 어떻게 표를 보고 혼자 자리를 찾아가는 지도 몰랐다. 하지만 농구를 몇 번 보다보니 익숙해졌다. 농구에 대한 것도 몇 가지는 알게 되었고. 리바운드, 파울, 어시스트, 실책 등등.

경기를 하기 전에는 애국가를 불러야 된다. 그런데 난 중국 사람인데 어쩌지? 난 그래도 부른다. 왜? 한국에서 사니까. 애국가를 부른 후는 선수 소개가 있다. 선수들이 하나씩하나씩 나오면 싸인공을 던지는데, 우리는 쉽게 받을 수 없다. 선수들이 어디다 던지는 가에 달려 있긴 하지만 나는 아직 받아 본 적이 없다. 그 다음 경기가 시작된다. 시작한 후 우리는 우리가 좋아하는 팀을 응원한다. 그리고 전반전 끝나고 휴식시간에는 추첨이 있다. 먼저 자리 번호 추첨. 당첨이 되면 선물도 있는데 우린 한 번도 당첨 된 적이 없다. 그 다음은 일간 스포츠 추첨이 있다. 이 추첨은 5명만 하는데 선물은 35,000원 짜리 농구공이었다. 그런데 우리는 한 번 당첨된 적이 있는데, 그게 바로 내가 들고 있는 표였다. 그 땐 정말 기뻤고, 하느님한테도 감사했고, 꿈인지 생신지 몰랐다. 꼭 상을 타는 것 같았다. 추첨이 끝나고 다시 또 후반전 경기다. 우리도 다시 힘차게 응원하고 끝나면 집으로 온다.

농구는 그렇게도 재미있고 즐겁다. 그리고 난 지금도 계속 농구를 좋아한다.


농구를 보고 나서

中 2-3 高 慧 丞

요즘 TV를 보면 드라마, 쇼프로, 스포츠 뉴스 등등 아주 많은 종류의 프로그램이 한다. 그 중 나는 스포츠 뉴스를 가장 싫어한다. 내가 여자라서 그럴까? 이런 생각도 하지만 진짜 이유는 아무래도 운동에 대해 아는 것이 없어서 그런 것 같다. 난 이미 15살이나 됐는데도 야구를 어떻게 하는지도 모른다. 이리 뛰었다 저리 뛰었다, 난 선수들이 뛰는 이유를 모르겠다. 난 그래서 이 얘기를 아빠에게 해 주었다.

며칠 뒤, 아빠는 날 야구장 대신 농구장에 데려갔다. 가기 전에 난 시간이 아깝다며 터덜댔다. 그리고 차안에서 아빠는 나에게 농구를 어떻게 하는지 자세히 가르쳐 주셨다. 솔직히 듣기 싫었지만 할 수 없었다.

그날 농구장에는 나주 많은 관객들이 몰려왔다. 경기가 시작되자 순식간에 북적북적대는 시장같이 변했다. 아빠는 내가 지루할까봐 내기를 하자고 말했다. 아빠와 나는 서로 다른 팀을 응원했다. 응원하는 도중 난 속으로 농구가 정말 재미난 운동임을 깨달았다. 그리고 내가 응원한 팀이 이겨서 너무 기뻤다. 농구 경기도 보고 돈도 벌고 그야말로 일석이조였다.

집에 와서 스포츠뉴스 시간만을 기다렸다. 혹시 내가 화면에 잡혔을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하지만 난 TV에 안 나왔다. 그래도 오늘 하루 동안 배운 교훈이 있다. 아무리 어렵고 하기 싫은 일도 공부하고 노력한다면 척척 해나갈 수 있다는 것을てててててて. 우리 청소년들도 이렇게 일을 해나간다면 정말 멋진 신세대가 될 수 있을 거라고 믿는다.


두발 검사에 대하여

中 3-3 陳 芳 疴

우리 학교는 두발에 대해 너무 엄격한 것 같다. 조금만 기르면 자르라고 하고, 나는 그런 제도가 너무 싫다.

머리를 기르는 건 모든 여자아이의 희망이며, 그걸 학교가 억지로 압박하려는 것은 올바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설사 학생이 머리를 기른다고 해도 학교에 나쁠 것도 없다고 본다. 근데 왜 학교가 머리를 자르라고 하는지 이해가 안 간다. 학교는 여학생들 여자다워야 한다고 하며 교복을 치마로 했다. 하지만 왜 머리를 기르게 하지 않는 걸까? 나는 여자가 머리를 기르면 더 여성스러워 진다고 생각한다.

선생님들 이야기를 들으면, 머리를 짧게 자르는 것은 학교의 전통이라고 한다. 하지만 이 제도가 학생에게 얼마나 영향이 큰 지 모를 거다. 나는 머리를 1센티만 잘라도 우는 성격이다. 근데 학교에서 계속 머리를 자르라고 해서 얼마나 울었는지 모르겠다. 선생님들은 머리를 기르게 하면 머리에만 신경 쓴다고 한다. 하지만 사실은 단발머리가 손질하기 더 어렵다. 잠자고 일어나면 머리가 뻗치고, 진짜 신경 쓰인다. 머리를 기르면 아침에도 안 뻗치고, 학교 생활에도 더 충실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교장 선생님께 한 마디 드립니다. "제발, 머리 기르게 해주세요!"

소녀의 꿈

中 2-1 陳 珝 錦

오늘 전 아주 특이한 꿈을 꿨습니다. 이 꿈은 아주 생생하고 마치 진짜인 것 같았습니다.

꿈속에서 나의 친구가 나를 자기 집으로 안내한다고 했다. 학교 끝나고 그 친구를 따라 아주 먼길을 걸었다. 친구 집은 놀랍게도 다름 아닌 고아원이었다. 친구가 고아원에 들어서자마자 십여 명의 꼬마들이 그를 쫓아 달라붙었다. 그 중에 한 소녀는 아주 특이한 눈빛으로 나를 보았다. 나도 모르게 그를 동종하며 그 소녀와 놀아 주었다. 시간은 흘러가고 소녀와 난 이미 지쳐있었다. 그래서 그네를 타며 휴식을 취했다. 소녀가 갑자기 나한테 물었다. "언니, 언닌 꿈이 있나요?" 하고. 그 소녀는 하늘을 보며 계속 말했다. "하늘에 있는 별들이 예쁘죠!"하고. 그런데 이상한 건 서울에선 안 보이던 별이 하늘에 반짝반짝하며 매달려 있었다. 소녀는 "우리 엄마, 아빠도 저 하늘에 있어요. 난 늘 이 시간이면 엄마, 아빠를 보러 오죠." 하며 그 소녀는 나에게 자기의 소원을 얘기해 주었다. 그 소녀의 소원은 커서 결혼하면 꼭 자기의 아이들에게 행복을 줄 거라고, 왜냐하면 자기는 부모님의 사랑을 못 받았기 때문이라고.

이 꿈은 저에게 큰 의미를 가르쳐 주었어요. 세상을 살아가며 사람들에게 늘 사랑하고 아끼는 사람이 되라고. 그래서 전 부모님을 사랑할 거고, 형제들을 사랑할 거고, 친구를 사랑하며 세상을 살아갈 거예요.

시 험

中 1-1 孫 靜 宜

시험은 수업 시간에 얼마나 잘 들었나, 집에서 얼마나 공부를 열심히 했나를 시험하는 것이다. 그런데 시험을 못 봐도 된다고, 열심히만 하면 된다고, 엄마나 아빠께서 말씀하시는데, 진짜로 시험을 못 보면 엄마 아빠께서 공부 좀 해하면서 혼을 냅니다. 나는 그런 점이 싫습니다. 왜? 시험은 그저 자기를 시험하는 건데, 시험을 못 본다고 혼내는지 정말 궁금합니다.

시험을 못 본다고 혼내고, 무시하고, 때리면, 학생들이 공부를 해도 잘 안 될 때는, 시험을 못 보면 혼날까봐 컨닝을 하고 싶어합니다. 그런데도 엄마, 아빠, 선생님들께서는 왜 컨닝을 하냐고 혼냅니다. 나는 그런 점을 고쳤으면 합니다.

만약에 시험이 없으면 천국이나 다름없습니다. 시험 보는 일주일 전이면 선생님들이나 학생들이나 준비를 많이 해야 합니다. 국어 시간에도 테스트, 수학 시간에도 테스트, 영어 시간에도 테스트, 하루가 정말 빳빳합니다.

저는 시험이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10년 뒤의 내 모습

高 1-3 王 暦 娟

때로는 이런저런 생각 끝에 제 미래를 꿈꾸곤 합니다. 멋질 것만 같은, 순탄할 것만 같은 그런 밝은 미래를요.

10년이 지난 뒤면 전 '스물 여덟'이라는 나이와 '의사'라는 직업과 어쩌면 '노처녀'라는 딱지도 붙을 수 있을 듯 합니다. 왜냐하면 제 장래 희망은 정신과 전문의이고 또한 전 남들과는 다른 사고방식을 갖고 있으니까요. 그건 사람은 자고로 자유로워야 한다고 생각하니까요.

모든 사람은 다 각자가 추구하는 인생관과 행복이 있을 테죠. 제게 있어서 행복이란 자유와 일이라고 생각하거든요. 물론 주위의 많은 사람들과 제 부모님들은 제 말과 꿈이 아직은 어리다고 하죠. 처음에는 그런 모든 이들이 너무 답답하고 속상했습니다. 그래서 이해를 시키려 많은 말을 해야만 했죠. 하지만 이젠 더 이상 그 모든 분들에게 변명과 설명을 하지 않으려 합니다. 1년이란 시간은 폭포수가 떨어지듯 순식간이니까 10년이란 시간도 그럴 테고, 그럼 그때는 제 의지와 사상을 세상에 실현해 놓으면 되니까요.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라는 말이 있듯, 지금의 저도 10년 뒤에는 많은 것들이 변해 있을 테죠. 세상도, 내 모습도, 이상도, 바램도てててててて. 하지만 이런 내 자신이 이것들만은 꼭 잊지 말아주었으면 좋겠어요. 지금의 소망을, 앞으로의 노력을, 그리고 그동안 날 지켜봐 준 모든 사람들을てててててて.

많이 노력하겠습니다. 제 미래는 저 스스로 책임질 수 있는, 사회에 필요한 그런 한 사람이 되겠습니다. 그러니 선생님, 앞으로도 많은 지도와 격려로 저를 지켜봐 주세요.

10년 뒤의 내 모습

高 1-3 呂 世 華

난 가끔 내 10년 뒤의 모습을 상상해요. 예를 들면 현모양처, 의사, 간호사 또는 선생님이 되는 상상을 하는데 그 중에서도 선생님, 유치원 선생님 또는 피아노 선생님이 되는 상상을 많이 해요. 왜냐하면 난 어린아이를 너무 좋아하기 때문이에요.

만약 10년 뒤에 내 모습이 유치원 선생님이라면, 아이들과 함께 뛰놀고 노래도 함께 부르고, 첫날엔 아이들과 첫 만남을 가지고 오전이 되면 아이들과 같이 공부도 하고, 점심이면 아이들과 같이 간식도 먹고, 오후가 되면 같이 장난감도 놀고 잠도 자고, 만약 아이들이 친구와 싸우면 화해의 악수도 시켜주고, 이러면 정말 유치원 선생님이 된 것 같아요. 10년 뒤의 내 모습이 유치원 선생님의 모습이었으면てててててて.

만약 10년 뒤의 내 모습이 피아노 선생님이라면 아침에 피아노 학원에 와서 청소부터 하고, 아이들을 맞이할 준비를 하고 아이들이 오면 같이 피아노 연습도 하고, 처음 피아노를 배우는 아이들을 위해 하얀 건반과 검정 건반을 알려주고 '도'가 어디인지, '높은음'이 어디인지, '낮은음'이 어디인지 알려주고, 만약 아이들이 틀리면 내가 지적도 하고, 아이들이 배가 고프면 과자도 같이 먹고, 시간이 다 되면 아이들과 '안녕'이란 말도 하고, 이러면 정말 피아노 선생님이 된 것 같아요. 10년 뒤의 내 모습이 피아노 선생님의 모습이었으면てててててて.

비록 지금은 상상 속 미래의 모습이지만, 꿈을 실현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해서 그 꿈을 이루었으면てててててて.

10년 뒤의 내 모습

高 1-3 陳 秀 正

10년 뒤의 내 모습, 이 글씨만 봐도 마음이 설렌다. 설렌다기 보다는 약간은 낯설고 신비롭다. 가끔 상상해 보았지만 평범하기 보단 화려하고 거대한 상상이 대체적이다.

우선 정확히 10년 후면 내 나이 만 26살, 어쩜 결혼을 했을지도?! 한 가정의 며느리로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 아님 내 일을 갖고 있을까? 내가 상상한 10년 뒤의 내 모습은 대학을 잘 마치고 전공을 살려 내가 하고픈 일을 하면서 멋있게 유능한 여성으로 인정받으며 사는 것. 이렇게 멋있는 상상도 해 보지만 한편으론 나도 여자인 만큼 아름다운 결혼 생활을 연상하기도 한다. 아래와 같이てててててて.

그리 부유하진 않지만 평화롭고 아늑한 가정에서 아침에 일어나 식사를 정성들여 지어 놓고 남편을 깨워 출근시키고, 집안을 정리해 놓곤 낮 시간을 이용해 생활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스텐실, 미싱 등을 배워 지루하지 않은 낮 시간을 보낸 뒤 예쁜 새댁 치마를 입고 한 손엔 장바구니를 들고 찬거리를 보아오고 저녁을 준비하면서 남편을 마중 나갈 준비를 한다てててててて. 비록 상상이지만 행복이 막 솟는 것 같다.

그러나 애가 바라는 내 10년 뒤의 모습은, 부지런히 내가 하고픈 일을 했음 좋겠다. 내 결혼 자금을 준비하며, 아님 부모님께 가정 생활의 부담을 덜어 드리며. 엄마, 아빠의 울타리 안에서, 늙어 가시는 엄마, 아빠께 위안도 되며 가끔 어리광도 부리며, 더 어른이 되면 한 스물 여덟 아홉쯤 결혼을 하고 싶다.

뜻대로 될 진 몰라도 지금 난 10년 뒤 내 모습을 이렇게 가정하고 싶다.

10년 후의 나

高 3-5 周 景 玉

응애∼응애∼ 한밤 중 나의 깊은 잠을 깨우는 건 여느 때와 다름없이 나의 귀여운 아가의 울음소리인 것이다. 나는 물론 나의 남편까지도 잠이 깨어 서로 번갈아 가며 아가를 돌보고 있는 어둠이 가득한 밤, 지금은 21세기 2008년인 것이다.

나는 지금 내가 하고 싶은 일들을 하며, 안정된 가정 속에서 행복하게 살고 잇다. 난 작년 가을에 하얀 드레스를 입었다. 지금의 남편과는 대학교에서 처음 만났다. 우린 캠퍼스 커플이었다. 그와 나는 같은 의과 공부를 하고 있었다. 지금 우리는 같은 병원에서 인턴 생활을 같이 하고 있다. 서로 같은 일을 하고 있어서인지 우린 서로 너무나 잘 통하고, 마음이 통하여 어려운 일들도 쉽게, 큰 어려움 없이 헤쳐나갈 수 있었다. 남편은 아이들을 좋아하는 까닭에 소아과 원장이 되는 것이 꿈이며, 난 그저 한 분야의 전문적인, 남이 인정해주는 그런 의사가 되는 것이 꿈이기에 남편과 나는 꿈을 실현시키기 위해 서로 격려도 하며 열심히 생활하고 있는 것이다.

날마다 병원에 가야 하는 까닭에 귀여운 아기는 내 어머니가 돌보아 주시고 계시다. 만약 어머니가 바쁜 일이 생기신다면 난 어머니와 못지 않게 나에게 잘 대해 주시는 시어머니께 염치 불구하고 아기를 맡기기도 한다. 난 시댁과 거리낌없이 친정과 마찬가지로 지내고 있다. 시댁 가족은 남편의 부모님, 누나, 형, 그리고 남동생까지 모두 4남매이다. 난 남동생밖에 없는 까닭에 아기를 낳고 산후저리를 할 깨에도 시누이가 돌보아 주셨다. 물론 나중에는 친정어머니한테 갔지만. 그래도 시누이와는 자매와 같이 지내고 있다. 그리고 가끔 젊으신 시아버지와 쇼핑을 가기도 한다. 난 지름의 이런 생활이 더 없이 행복하고 즐겁기만 하다.

이런 생각들을 잠시 하는 중에 난 남편에게 줄 아침밥을 그만 태우고 말았다. 난 매일 이렇게 남편에게 정성어린 밥상을 차려 준다. 그래야 든든한 하루가 되지 않을까? 그런데 오늘은 잡생각에 밥을 태운 바람에 빵을 먹어야겠다. 이런 나를 남편은 너무나 너그러운 마음으로 이해해준다. 또한 바쁠 때는 서로 가정일을 도우며 산다. 때론 남편이 청소도 하며, 설거지, 밥짓기까지도 서슴치 않고 할 때가 있다. 이런 남편에게 너무 미안하지만 미안한 만큼 너무나 고맙다.

오늘은 늦게 잠을 들어야 할 것 같다. 내일 일에 대해 준비할 것이 너무나 많다. 남편은 너무 피곤했는지 아기와 함께 잠이 들었다. 조용한 밤에 나 홀로 일들을 해나갔다.

잠깐 잠이 들었나 보다. 일어나 보니 침대 위てててててて.

난 지난 밤 너무 행복한 미래의 꿈을 꾸었다. 꿈같지 않았다. 꼭 현실처럼 너무 생생했다. 정말 지금까지 꿈에 불과한 이야기였지만 난 다만 이이야기를 꿈 이야기로 끝내지 않고 현실로 만들 것이다. 10년 후 내가 월 어떻게 살고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난 문명 내가 하고 싶은 일이 있으며, 이루고 싶은 일들도 있다. 내가 어젯밤에 꾸었던 꿈과 같이 난 자랑스러운 남편과 함께 안정된 생활 공간 속에서 아름답고 행복한 날들을 누리며 살고 싶을 뿐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오직 한 가지 방법밖에는 없는 것 같다. 그건 바로 나의 노력, 또 노력이 아닐까?

십 년 후의 나의 모습

高 1-3 譚 安 維

십 년 후의 나의 모습, 어렸을 때 생각하고 안 하다가, 대학진학문제로 고민하는 나에게 다시 이 끝내지 못한 숙제가 나를 찾아 왔다.

어렸을 때부터 생각하고 있었던 나의 모습, 바로 교단에 서 있는 모습이다. 나의 아버지가 교사이신 탓인지 몰라도, 어렸을 때부터 나의 소원은 교사가 되는 것이었다. 흰 와이셔츠, 잘 다려진 바지와 양복상의, 손에는 분필을 쥐고 학생들 앞에서 내가 원하는 과목을 전수하는 모습이야말로 십 년 후의 나의 모습이고 싶다.

나는 선생님이라는 직업을 아주 신성하게 생각한다. 내 머리 속에 있는 지식을 총동원하여 나의 다음 세대에게 이수를 해주어 사회를 위해 봉사하게 만들고, 학생들을 이행해주고, 같이 웃어주고, 슬퍼하고, 그들을 진심으로 위하는 그런 선생님이 되고 싶다.

나의 부모님께서는 내가 원하는 과목의 선생님이 되는 것을 반대하시지만, 나는 나의 십 년 후의 모습이 한성화교중고등학교 국어 선생님임을 다짐한다.






IMF 이후 사람들의 모습들

高 2-3 賀 仁 華

참으로 기나긴 나날들이었다. 국민 모두가 경제적으로 시달림을 겪은 98년은 한 가정의 가장에게는 큰 부담을, 주부에게는 맞벌이를 해야 하는 어려움을, 거리에 늘어나는 노숙자, 길가에는 붕어빵, 계란빵 등 직업을 잃은 많은 아저씨와 아줌마들의 리어커 장사, 오락실과 만화방에서, 또는 전철이나 버스를 타고 시간을 보내며 실직을 숨기는 우리의 아버지들てててててて 등등 많은 어려움을 주었다.

그러나 모두들 어두움만을 가진 채 살아가진 않는다. 서로 어려울 때일수록 돕고 살며 더욱더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과, 나라 경쟁력을 살리려는 노력, 해외로 진출하는 연예계 인사들, 더욱더 좋은 제품을 외국에 수출하는 사람들. 작년 어느 땐가 내가 대만에 거주할 때 TV에서 한국의 금 모으기 운동을 보도하였다. TV에서 하는 말이 "대만이 IMF를 겪는다면 과연 이런 단결력을 보여줄 수 있을까"라는 내용이었다. 어느 때인가 중국 대륙에서 미사일을 대만 해상에 떨어뜨려 위협을 할 때 많은 국민이 다른 나라로 이주했다고 한다. 대만 학교에서도 이런 점을 비교해가며 대만 사람은 너무 이기적이라는 선생님들의 비평이 있었다.

돈이 없다는 것이 그 사람 또는 그 나라를 비참한 꼴로 만드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어려움 속에서 피어나는 돈독한 사랑과 우정, 단결력은 21세기를 맞이하는 지금, 다른 나라에게 자기 국가를 알리는데, 더 나아가 IMF를 더욱더 쉽고 빨리 극복하는데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렇다 아직 우리는 IMF라는 깊은 수렁에서 완전히 빠져 나오진 못했고,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어려울수록 더욱더 단결해야 하며, 특히 학생들에게 나라 경제력을 살리는 큰 멍에가 지워진 것이다. 어른들이 비참하게 만든 이 나라를 우리가 자신 있게 이겨내기 위해서는 지금 열심히 공부해서 이 나라를 선진국 대열에 들어서게 해야한다.

IMF 이후 사람들의 모습이 구겨지고 슬퍼진 건 사실이나, 어려움 뒤에 기쁨이 온다고 했듯이 얼마 지나지 않아 국민 모두가 환하게 웃는 그 날을 기다리며 살아야겠다.

엉뚱한 상상

中 3-4 譚 秋 錦

나는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 나는 종이의 재료인 나무이기 때문이다. 종이 공장에서 나무들은 나무로서 할 일을 다 하고 종이로 만들어진다. 나는 산에서 무럭무럭 잘 자라났고 꽤 오래 산 것도 같다. 내 나이 60이 좀 넘었을 때 나는 사람들에게 베어졌고 그 뒤론 정신을 잃었다. 정신을 차려 보니 난 어느새 여러 가지 재료로 가공되어 수 백 장의 종이가 되어 있었다. 난 포장이 되어 상인을 거쳐 어느 학교로 싼값에 팔려 나갔다. 난 불만이었다. 난 훌륭한 나무로서 잘 살아가고 있는데 어느날 한 장에 10원도 안 될 것 같은 연습종이로 변해 있다니てててててて. 난 그 학교의 교무실에 배치되었다. 나의 일부분은 쪽지 시험 종이로 쓰여 엉망진창이 되어 쓰레기통에 버려졌다. 어느날 그 학교에 한국어 선생님이 날 중 3-4반 교실로 갖고 가셨다. 아마도 글쓰기에 날 쓰실 건가 보다. 여러 명에게 나누어진 난 재미있기도 하고, 엉뚱하기도 하고, 멋있기도 하고, 말도 안 되기도 한 글의 바탕이 되었다. 가장 인상에 남는 건 한 여학생이었다. 내 몸에 하란 펜으로 이상한 글을 써내려 갔다. 화이트도 처음엔 몇 군데 있었지만 뒤엔 귀찮았는지 틀린 글씨는 그냥 싹싹 그어 버렸다. 다 치장해 논 내 몸을 보니 제목이 "엉뚱한 상상"이었다. 쳇! 유치하기도 하지てててててて. 하지만 내용은 꽤 재미있었다. 난 곧 다시 선생님의 손으로 넘겨졌고, 좋은 점수를 받았다. 아마도 이 글은 한글마당에도 실릴 것도 같다.

P.S. 한 장의 종이도 아껴 씁시다.

여 행

高 3-5 崔 晸 宇

노회(老獪)한 사람들을 떠나고, 답답한 매연 밖으로 나갈 수 있다면 그 얼마나 편할까? 바다로, 강으로, 산으로 어디든지 갈 수 있다면 그 얼마나 좋을까? 생활하며 쌓여 가는 번뇌들을 잊고 떠난다면 그 얼마나 행복할까? 일상에 지쳐 찌든 생활을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여행을 떠나려 한다. 여행이라면 그 살찐 고뇌와 생각들을 다 해소시킬 것이라 믿고, 홀가분하게 다시 시작하려는 맘 때문이지 않을까?

여행, 그 얼마나 갈망스런 존재인가? 식구들과 떠나는 가족 여행, 친구들과 즐길 수 있는 배낭 여행, 또 누구든 꿈꿔 보는 해외 여행. 떠올리기만 해도 며칠 밤을 뜬눈으로 보낼 것만 같다. 여행의 참뜻은 과연 무엇일까? 마냥 어딘가 떠나는 것일까? 그렇지 않으면 사진이라는 과학적 산물을 뽑아내려? 그것도 아니면 수기를 쓰려고? 아니다. 이것들은 '배움'이라는 개념에 종속된 일부분일 뿐이다. 사기(史記)의 저자인 사마천 선생도 '귀여운 자식일수록 밖으로 내보내라'하였다. 또, 여행을 통한 배움을 다룬 유명한 지식의 보고(寶庫)들도 서점에 자랑스런 듯 꽂혀있다. 특히나 '어린 왕자'나 '나를 찾아 떠난 여행'등의 작품은 여행 그 자체를 다루지 않지만 여행을 통해 배운다는 것을 명확히 보여 준다.

그럼 이젠 여행을 준비해야겠다. 진정한 여행의 필수품은 마음가짐이다. 돈도 가방도 먹거리도 아닌 확고한 마음의 다짐이다. 막연히 떠나는 여행은 호환마마보다 더 무서운 것이다. 그것은 정신적, 육체적 노동밖에는 뜻하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자! 이젠 떠날 수 있겠다. 어딜 가는 건 자신의 선택 과제이다. 간다라는 말 보단 탐사하러 떠나자! 어깨엔 희망의 배낭을 메고, 머리엔 생각의 모자를 쓰고 가보자. 지금껏 없었던 배움의 터로.

여 행

高 2-1 林 文 瑛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인간은 여행을 선호하며 사랑한다. 그 이유는 여행은 짧은 시간 안에 많은 것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인 것 같다.

여행은 선불로 설렘, 흥분과 기대란 것을 주고 다음엔 지식, 교훈, 만족감과 성취감 등을 주고 서비스로 아쉬움을 남기고 유유히 사라진다.

여기에 여행의 대표급인 산과 바다가 있다. 그들이 주는 공통점은 감동이란 것이지만, 어떻게 감동을 주느냐는 것과 어떤 것이 우위에 있는 지는 누구도 단정지을 수 없다.

먼저 산을 보자. 외관으로썬 울창한 숲으로 빽빽이 채워진 푸르름을 가진 '여름'과, 울긋불긋한 단풍과 푸르름이 멋진 조화를 이룬 '가을'. 눈을 감기가 아쉽다. 하지만 그 외관은 모두 한 그루의 나무가 모여 이루어 낸 커다란 기적이다. 그렇다면 우리 인간은 그 산의, 아니 나무의 가지를 잡기도 힘든 아주 미약한 존재가 아닌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거만함을 서슴치 않고 자만심에 차 있다. 우린 산의, 자연의 거대함을 보며 겸손함을 배워야 할 것이다. 또 다른 각도로 보면, 산 정상에 오른 우리는 무한한 희망을, 할 수 있다는 희망을 갖게 되는 것이다.

산은 사람에게 겸손함을, 희망을 가르쳐 주고 있다.

바다는 어떠한가? 하염없이 펼쳐진 바다의 끝은 하늘이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바다와 하늘의 만남. 이런 기괴한 광경은 바다에 와서만 볼 수 있다.

바다를 보면 소리를 지르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힌다. 21세기를 바라보는 현대인에게 있어서 좁은 집, 좁은 회사 사무실, 좁은 공간에 끼어 살아야 하기에 바다를 보는 느낌은 더욱 각별하게 와 닿을 것이다. 더욱이 요즘 같은 불황에 무수히 않은 약자들이 각박한 상황에 처함에 따라 바다가 주는 감동은 극에 도달할 것이다.

바다는 사람에게 용기를, 환희를, 삶에 의미를 부여해 주고 있다.

이렇듯이 여행이 주는 감동이 사람과 인연을 맺고 있다. 풀래야 풀 수 없는 단단한 매듭을 짖고 있는 것이다.

일요일 아침

高 2-4 冷 宜 安

우리 학생들은 학교를 다니는 기간 중에 가장 기다리는 것이 일요일일 것이다. 방학 기간 중에는 오늘이 며칠인지, 무슨 요일인지도 모른다. 자기가 일어나고 싶을 때 일어나고, 자고 싶을 때 자고, 놀고 싶을 때 졸기 때문에 시간이 얼마나 흐르던 무슨 요일이건 신경을 안 쓴다. 하지만 학교를 다닐 경우 얘기는 달라진다. 무슨 요일은 학교가 일찍 끝나고 늦게 끝나기 때문에 '오늘이 무슨 요일이더라?' 항상 이 생각만 하기에 요일 구분이 확실하다.

일요일 아침에 눈을 뜨면 만감이 교차한다. 어쩔 때는 알람시계 소리에 일어나고 온 방에 만감이 교차한다. 어쩔 때는 알람시계 소리에 일어나고 어쩔 때는 창가에 비치는 햇빛 때문에 눈이 부셔 일어난다. 햇빛이 창을 넘어서 온 방에 퍼질 때, 그 빛은 내 방에 있는 모든 물건을 황금색으로 바꾸어 놓고, 내가 왕자가 된 기분을 들게 해준다. 나는 그 광경이 너무도 아름다워 잠시 동안 넋을 잃고 누워 있다. 환상에서 깨어난 수 아침을 간단하게 한 뒤 옷을 걸치고 밖으로 나간다. 해는 이미 중천에 떠 있지만 나에게는 상쾌한 아침이다. 동네 아이들의 깔깔거리는 웃음소리가 날 다시 동심의 세계로 밀어 넣는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는 모른다. 바람이 날 집으로 들어가게 한다. 이제 나만의 일요일은 끝난 것이다. 또다시 삐삐와 전화가 울리기 시작한다. 일요일 저녁은 항상 피곤하게 들어온다.

항상 반복되는 나의 일요일 아침, 다른 사람들은 지겹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일요일이 찾아오면 난 다시 환상에 빠진다.


자 유

高 3-5 臧 秀 瑛

자유는 우리가 생활하면서 쉽게 누리며 살고 있으나, 이것의 소중함을 깨닫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자유란 무엇일까? 누구에게도 구속받지 않고 모든 것으로부터 해방된 것을 자유라고 할까? 누구에게나 자유란, 각자의 개념에 따라, 그리고 바라는 조건에 따랄 다를 것이다. 자신이 진정으로 하고픈 일을 하고, 행동에 억압을 받지 않는 이런 것이 바로 자유가 아닐까?

자유는 소중한 갓이다. 그러나 자유를 누리되 남의 자유를 방해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자신만의 자유를 소중히 하고 남의 자유는 뒤로하는 이러한 행동은 자유를 누릴 자격이 없는 사람이다.

성인이라면 자신의 행동과 말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타인에게 규제와 간섭을 받지 않고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그러한 행동이 바고 자유에서 없어서는 안 되는 자율적 행동이다. 자유를 진정으로 누리는 사람은 자율적 행동을 할 줄 아는 사람이다.

그러므로 자유는 나신이 행동함에 달려 있다. 이러한 소중한 것을 부여받은 우리는 이 자유의 소중함을 절실히 느껴야 한다. 우리가 지금 행복한 생활을 할 수 있는 건 자유가 우리 곁에 있기 때문이 아닐까?


졸업에 대하여

중 2-3 趙 振 福

최근에 저는 TV에서 한국 학교의 졸업식 보도 소식을 많이 보았습니다. 겨울에 하는 졸업이기 때문에 춥겠다고도 생각했지만, 눈이 내린다면 매우 낭만적일 거라 느껴집니다.

이번 보도 중에서 특히나 저를 감동시키는 것은 한 교장 선생님이 정년 퇴직을 앞두고 졸업생 모두에게 초상화를 그려주었다는 이야기입니다. 너무 아름다운 일이라고 생각됩니다. 그 졸업반 아이들에게 영원히 잊지 못할 귀한 선물이겠죠.

또 한 학교는 졸업 후 "교복 물려주기" 운동을 실천하여 후배에 대한 선배의 사랑을 보여주었다고 합니다. 저도 우리 학교에서 이 운동을 했으면 합니다. 부모님 가계 부담도 덜어주고, 절약하는 정신도 배울 겸해서てててててて. 저희 부모님 시절에는 다 물려 입었다고 하는데, 심지어 책도 물려 쓰고 했답니다.

좋은 것은 저희 학교도 배워서 실천했으면 합니다. 꼭 교복이 아니더라도 사전이나 자습서, 기타 등등. 또 저희가 자유롭게 물물교환 할 수 있는 장소라도 제공해 주셨으면 합니다.



토 끼

中 1-1 湯 志 隆

어느날 아버지께서는 신년 선물로 미니 토끼 한 마리를 사오셨다. 그 토끼는 초롱초롱한 검은 눈동자와 갈색빛 털을 갖고 있어, 참 부드럽고 예뻤습니다. 토끼는 당근과 배추만 잘 먹는 줄 알았는데, 다른 야채도 안 가리고 다 잘 먹어서 미니 토끼란 말이 이상할 정도였지요.

미니 토끼는 우리 가족 모두의 관심을 한눈에 받았고, 그래서 우리들은 토끼의 이름을 지어 주기로 했어요. 바로 토즈라고요. 토즈는 우리 집의 말썽꾸러기입니다. 여기 저기 다니며 소변을 보니까 하루 종일 닦아야해요. 하지만 토즈의 행동 하나하나가 미워할 수 없어요. 왜냐하면 토즈는 사람들한테 애교도 많이 부리고 말귀도 알아듣는 것 같거든요. 그리고 토즈의 자는 모습은 진짜 사람들처럼 발을 쭈욱 펴고 잔답니다. 그것도 햇빛 밑에서, 정말 귀여워요.

신년은 토끼의 해, 다시 말해서 기묘년이죠. 이제부터는 우리 모두가 토끼처럼 지금보다 더 높이 뛰어나가야겠습니다. 그렇다고 자만하는 토끼가 되어서는 안 되겠지요.



한국어를 배우면서

中 1-2 臧 珍 瑩

우리는 중국인이지만 한국에 살고 있다. 제 2의 모국인 한국의 한국어를 배우면서 느낀 점을 몇 가지 적어보려 한다.

나는 학교 수업 이외에 특별히 한국어를 배운 적이 없다. 그러나 어릴 적부터 아니, 태어났을 때부터 보고들은 언어라 혼자서 쉽게 통달까지는 아니어도 웬만한 건 다 쓸 수 있는 정도까지 되었다. 하지만 외국인들은 한국어가 굉장히 어렵다고 한다. 왜냐하면 한국어는 다른 나라의 언어, 글자와는 달리 띄어쓰기, 발음, 존칭어 등 어려운 부분이 많기 때문이다. 웬만한 대졸 이상의 학력을 가진 어른들도 맞춤법 등이 틀릴 때가 있다.

그만큼 한국어는 어렵지만 역사도 길고 다른 나라의 언어에는 없는 다양한 표현, 존칭어들을 포함하고 있다는 장점도 있다. 한국 글자는 다른 어떤 글자에서도 찾아 볼 수 없는 과학적인 구성 방법이 있다. 자음, 모음 등으로 나눠진 것이 외국인들에겐 좀 어렵게 느껴질지 모르겠지만, 따져보면 나무랄 데 없는 훌륭한 그자다.

한국에선 매년 10월 9일 한글날에 한글의 훌륭함을 기리기 위해서 기념행사를 한다. 하지만 해방 이후 지금까지도 일본 문화의 영향으로 이런 뛰어난 한국어가 점점 훼손되어 가고 있다. 예를 들면 바께쓰는 한국말로 양동이다. 양동이란 한국어가 있는데 한국 사람들은 왜 굳이 바께쓰란 말을 쓰는 것일까? 좀 이해가 안 가는 부분이다.

하여튼 나도 그렇고 우리 모두 아름다운 한국어를 잘 사용해야겠다.

한국어를 배우면서

中 1-2 鐘 莉 娜

저는 어렸을 적부터 한국어를 조금 할 줄 알았습니다. 그 이유는 제 엄마가 한국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친구들 엄마 거의 다 중국 사람인데 몇몇 엄마들만 한국 사람이었는데 그 중에 우리 엄마도 끼어 있었습니다.

저의 엄마는 저를 어렸을 때부터 한국어로 가르쳤고, 한국말로 말하고, 옛날 이야기도 한국어로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래서인지 저는 지금 중국어보다 한국어를 훨씬 더 잘합니다. 몇몇 발음만 부정확하고, 글씨도 받침이 그럭저럭 다 맞습니다. 하지만 전 띄어쓰기를 잘 못합니다. 그래서 문장이나 편지 같은 것을 쓰면 꼭 몇 개씩 틀립니다. 그래서 전 지금 무척 띄어쓰기를 배우고 싶습니다.

마지막으로 한국어를 배우면서 어렵고 힘들기도 했지만, 배우면서 웃기고 재미있는 일이 많았기 때문에 저는 한국어를 무척 좋아합니다.


한국어를 배우면서

中 1-2 陳 芳 雯

나는 한국에서 태어난 화교이다. 그래서 한국어를 꼭 배워야 한다. 한국에 있는 화교 학교들은 다 한국어 시간이 있다. 우리 학교도 예외는 아니다.

나는 한국어를 배우면서 느낀 점이 많다; 한국어는 띄어쓰기가 어렵다든지 한국어는 받침이 어렵다든지 등등てててててて 많은 것을 느꼈다. 나는 이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지금 한국어를 열심히 공부하고 있다.

나는 내가 왜 한국어를 배워야 하느냐를 생각해 보았다. 나는 이제 그 해답을 알았다. 바로 한국에서 살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국어는 필수이다.

지금은 한국어로 짧은 글짓기도 할 수 있고, 작문도 할 수 있다. 이건 다 내가 한국어를 배웠기 때문이다. 무엇을 배우는 것은 행복한 일이다. 그러니 나는 한국어를 배우면서 행복을 많이 느꼈다.


한국어를 배우면서

中 1-2 黃 新 元

나는 한국어를 배우면서 아주 많은 것을 느꼈다. 한 다섯 살쯤부터 한국말을 참 잘했고, 기본 자음이나 기본 모음도 잘 썼다. 받침도 대충 잘 쓰고 별 문제가 없었다.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자음과 모음을 배웠고, 4학년 때부터 받침을 배웠다. 너무 쉬워서 배울 맛이 안 났다. 5학년, 6학년도 똑같은 것만 반복했다. 그래서 내 한글 실력은 우수했고 한글이 별 게 아니구나하고 생각했다.

하지만 중 1 때부터 한글이 점점 어려워졌고 배우기가 싫어졌다. 그러나 난 이렇게 생각했다. '만약 여기서 포기한다면 한국에 살면서 한글을 언제 배우나' 하고. 그래서 노력을 조금 했다. 그후로 한글 성적이 조금 올랐다. 난 그때 "자신감"이라는 것이 생겼고, 그후로 노력을 조금 더 했다. 하지만 그 자신감은 얼마 지나지 않아 "자만"으로 변했다. 당연히 한국어 성적도 내려갔다. 성적을 보고 난 크게 느꼈다. 자만한 사람은 일을 제대로 못한다는 것을.

지금도 난 노력을 한다. 이 노력이 성적에 조금이라도 도움을 주었으면 한다. 마지막으로, 다른 모든 사람이 자만하지 않고 자신감을 얻으며 자신의 성적이 많이 좋아지기를 바라면서 이 글을 마친다.





<편지글>

선생님께 드리는 편지

中 3-3 陳 玉 珠

중국에 계신 강 선생님에게

선생님 안녕하세요? 저는 말썽꾸러기 제자 옥주예요. 옛날에 선생님 저 때문에 많이 화내셨죠? 정말 죄송해요.

저는 지금 한국에서 화교 학교에 다니고 있어요. 여기서는 선생님의 말씀도 잘 듣고 공부도 열심히 하고 있어요. 이젠 많이 컸어요. 또 제 생각에 개구쟁이도 벗어났어요!

저는 선생님을 잊은 적이 한 본도 없어요. 그 날을 기억하시나요? 저의 생일이었죠. 일요일이라서 애들은 다 집에 가고, 저만 기숙사에 남아 있었죠. 그 때 선생님은 저를 찾아 오셔서 집에 데려가서 생일 파티를 열어 주셨죠. 저는 그 날을 영원히 잊지 못해요.

그리고 제가 아팠을 때, 사과를 너무 먹고 싶어서 친구한테 말했는데, 선생님은 집에 가셔서 사과 두 개를 가져 오셔서 제 기숙사까지 보내셨죠. 저는 그 때 너무 감동해서 눈물을 그치지 못했어요. 선생님은 정말 우리 할머니처럼 잘해주셨어요. 지금도 선생님 만나서 얘기도 나누고, 옛날 제가 선생님께 잘못한 일을 용서 빌고 싶어요.

선생님은 저의 영원한 선생님이에요. 저는 선생님의 말씀대로 좋은 학생이 될게요. 선생님 감기 조심하시고 건강하세요! 사랑해요!

제자 옥주 올림



20년 후 미래에 사는 나에게

高 2-4 劉 小 萍

20년 후 미래에 사는 나에게,

안녕? 나는 20년 전에 살고 있는 너야! 잘 있었니? 너의 아이는 잘 크고 있니? 행복하게 살고 있지? 나는 여기서 건강하게 잘 지내고 있어. 친구들이랑도 잘 지내고. 하지만 동생이랑은 여전히 잘 티격태격하고 지내.

지금의 나의 꿈은 일어 통역사와 의사야. 그래서 고 2-4 이과에 들어와서 미래 직업에 관련된 공부를 하고 있어. 시간 나면 틈틈이 일어 공부도 하고, 독학하는 만큼 많은 노력이 필요하더라. 지금 네 직업은 뭐니? 무척 궁금하다. 의사? 통역관? 아님 현모양처?

그리고 친구들이랑은 자주 연락하니? 난 네가 지금 이 시절을 잘 기억했으면 좋겠어. 친구들과 기숙사 생활을 하고 공부하는 이 시절을 말이야. 때론 싸우기도 하고, 단합을 해서 무슨 일이든 해냈던 우리, 생각해보면 잊지 못할 웃긴 사연들도 많을 거야! 한 사람이 라디오를 듣다가 "어, HOT노래 나온다"라고 하면 모두 다 "어디, 어디"를 연발하며 하나 둘씩 라디오를 꺼내며 같이 한 방송을 듣던 친구들. 참 좋았던 친구들이었지. 어쩔 땐 친구의 잘못을 용서하고 격려도 해줬던 너였어. 그 곳의 너도 아직 그래? 난 네가 지금의 나처럼 변함없었으면 좋겠다.

20년 뒤에 난 이 편지를 읽고 어떤 반응을 보일까? 내 생각엔 웃을 것 같아. 지금 넌 많이 늙었겠다. 이제 하나 둘씩 흰머리도 생기고.

20년 후의 소평아! 우리 내년에 다시 만나자. 넌 지금의 날 볼 수 없겠지만 난 널 거울을 통해 볼 수 있어. 그러니까 우리 좋은 모습으로 만나자. 그러기 위해선 내가 많이 노력해 줄게.

이제 그만 헤어져야 할 시간이 돌아왔다. 그럼 너의 순수한 모습을 기대하면서 여기서 이만 펜을 놓을게. 부모님께 안부도 좀 전해주고, 그럼 안녕!

1999년 3월. 20년 전의 소평이가



친구에게

중 3-3 方 文 玉

가장 소중하고 사랑하는 친구 안리에게

Hi, 나야! 너의 원수다. 이렇게 편지 쓰는 건 처음이지?

우리가 3년 동안 가장 많이 싸우고, 또 가장 친하게 지낸 친구라고 말해도 지나친 건 아닐 거야. 그치? 너랑 2년 동안 기숙사 생활을 하면서 참 기억에 남은 일이 무지 많다. 생각나니? 나 처음 왔을 때 자주 아프고, 그럴 때마다 너는 늘 내 곁에서 돌봐주고 지켜줬지. 감기 걸렸을 땐가, 체온이 40도로 올라가자 넌 알콜과 찬물을 가지고 내 체온을 조금이라도 낮추려고 했던 너의 모습, 난 아직도 기억한다. 우유를 나한테 마시라고 하면서 빨리 회복하라고, 그때 네가 얼마나 고마웠는지 넌 아마 모를 거다. 내가 슬플 때, 너는 썰렁한 얘기를 해 주면서 내 기분을 바꿔주고, 아침 일어날 때마다 또 항상 나를 깨워주고, 내가 기숙사에서 늦게 나갈 때도 같이 혼나주고てててててて. 너한테 고마운 일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너는 참 특이하다. 가끔은 너를 알다가도 모르겠어. 중 2 때였지. 우리가 밤에 옥상에서 싸웠던 거. 너의 목소리와 표정이 굉장히 무서운 호랑이 같았는데, 너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나올 때는 마치 여린 천사가 날개를 잃은 것처럼 슬퍼 보였고 아팠던 것 같아. 그 때 내 마음도 얼마나 찢어질 것 같았는데てててててて. 우리 그일 이후로 싸움을 줄일 수 있을 줄 알았는데 그것도 아니었지. 하루도 안 빠지고 너랑 또 다투는 게 이제는 나의 일상생활 같아.

네가 2학기에 와서 기숙사를 나간다고 했을 때 나 무지 서운하고, 또 마음이 너무 허전했다. 우리 커서도 서로의 힘이 돼서 살아가자. 널 알게 돼서 나는 늘 기쁘다. 네가 있기에 난 오늘도 웃으면서 학교에 다닌단다!

사랑한다, 안리야!

1999년 3월

너의 벗 문옥


친구에게

中 3-4 王 莉 娜

나의 사랑스러운 친구 설혜와 지혜에게

안녕? 나 리나야. 오랜만에 너희들한테 편지 쓴다. 미안해. 너희한테 내가 너무 무관심하지. 하지만 난 매일 너희를 위해 기도하고 있단다. 우리가 친구한지 얼마 안 됐지? 지혜 넌 2년, 그리고 설혜, 넌 반면. 하지만 지금은 난 어는 누구보다 너희가 너무 좋아. 내가 소심하고 무슨 일에 자신이 없어졌을 땐 지혜 네가 항상 나를 위로해주고, 자신감을 주고, 또 날 밀어줬어. 그리고 내가 친구들과 싸우고 화나는 일이 있고, 또 짜증이 날 땐 설혜 네가 항상 내 옆에서 날 토닥거려 주고, 참을성이란 게 뭔지 가르쳐 줬었지. 솔직히 난 굉장히 못된 애야. 욕심 많고, 참을성 없고, 성질 급하고. 그래서 옛날엔 친구들이랑 많이 싸우곤 했었지. 그리고 진실한 친구도 몇 명 없었어. 하지만 너흰 항상 내 곁에 있어 주었어. 그리고 난 늦게나마 너히의 우정을 느꼈고, 또 너희의 소중함을 느꼈지. 특히 설혜 넌 너무 내성적이라서 나와 계속 같은 반이었어도 서로 친해질 기회가 별로 없었지. 하지만 난 후회하지 않아. 우리가 만나게 된 것만으로도 너무 기쁜 걸!

이제 얼마 안 있으면 졸업이구나. 그러면 또 반을 나누겠지. 우리 셋이 같은 반이 될 수 있을까? 아무튼 같은 반 안 되더라도 우리 우정 꼭 변치 말고. 중학교 졸업하기 전에 우리 아주 좋은 추억들을 많이 만들어 보자꾸나! 알았지? 아참! 권지혜! 이설혜! 항상 건강하고, 공부도 열심히 해라! 그리고, 사랑해∼.

너희의 귀엽고, 너희를 항상 생각하는 친구 리나.


























<영화 감상문>

<동행>을 보고

中 2-1 謝 愼 珍

방학 때 일요일 한밤 중, 뭐 볼만한 게 없을까 하고 TV 앞에 앉았다. KBS에서 영화가 하고 있었다. '일단은 어떤 얘기인가 파악부터 하자' 라는 생각에 유심히 보았다. 계속 보다 엄마가 자자고 소리쳤다. 그렇지만 난 왠지 이 영화를 끝까지 보고 싶다는 생각에 "이따가 잘 게"하며 봤다.

담배를 좋아하는 친구와 폐암이라는 선고를 받은 친구가 있었다(처음부터 보지 않았기 때문에 왜 폐암에 걸렸는지는 자세히 모르고). 아마 그 담배 피우는 친구 때문에 폐암에 걸렸다고 한 걸 거다.(친구 이름을 '샘'으로 하고, 폐암 걸린 친구를 '해리'로 하자!). 샘은 해리가 마냥 걱정만 되고, 이상하게 해리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엉뚱한 짓만 골라서 한다. 게다가 해리는 죽기 전에 샘의 담배 버릇을 끊게 하겠다고 선언한다. 이렇게 끝까지 담배를 피우려는 샘과 아프면서도 끝까지 쫓아다니는 해리의 해프닝이 시작된다. 그리고 샘과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면서 샘의 또 다른 아내를 찾아가고, 자신의 옛 아내와 아들을 본다. 마지막에 두 친구는 서로 얘기를 주고받으며 우정을 확인하고, 엉뚱한 짓만 골라하던 해리는 수척해진 모습으로 휠체어에 앉아서, 샘은 휠체어를 밀면서 얘기를 주고받으며 길을 가며 영화는 끝났다.

별 것 아니다라고 생각하며 보았다가 내가 잘못 생각했음을 알았다. 엉뚱한 짓만 골라하지만 속으론 샘을 진심으로 아끼고 사랑하는 해리의 모습이 보기 좋았다. 무엇보다 죽음 앞에서도 두려워하는 내색 없이 농담하는 여유가 무척 존경스럽기까지 했다. 나에게도 그런 용기와 여유가 있을까? 나는 가끔 무모하고, 내 자신이 무서운 애인 척 허풍만 떠는 것 같다. 별 것도 아닌 일에 쓸 데 없이 화내고 집어던지고てててててて.

내게도 죽음 앞에서도 농담과 여유를 부릴 수 있는 용기가 있었으면 좋겠다.(앞으로 키워 나가야지!)

<스텝맘>을 보고

中 2-3 柳 欣 雅

오늘은 일요일. 오랜만에 엄마와 영화보기로 한 날이다. 정말 오랜만이다. 엄마랑 함께 영화 보는 것이てててててて. 저번에 "뮬란"이란 영화 한 번 보고, 이번이 딱 두 번째다. 이 영화의 제목은 바로 "스텝맘". 이 영화는 멜로 영화다. 하지만 이 영화는 아주 가정적인 영화다.

물론 이 영화는 내가 권해서 보러왔지만, 엄마도 오랜만이라 신이 잔뜩 나있었다. 이런 좋은 기회가 많지 않은 만큼 우린 영화를 아주 재미있게 보았다. 아역 배우들의 코믹 연기로 웃기도 하고, 성숙한 연기로 우리들의 눈에 눈물을 고이게도 했다. 정말 그들의 연기에 경의를 보내고 싶다.

이 영화의 내용은 이 영화의 제목으로 알 수 있다. 그 뜻은 바로 "스텝맘", "새엄마"란 뜻이다. 한 가정에 새 엄마가 들어옴으로 해서 아이들이 적응을 하지 못해 서로 겪게 되는 어려움을 다룬 스토리다. 물론 다른 영화처럼 마지막은 해피엔딩으로 끝이 났다.

이 영화를 보면서 느낀 점이 적지 않다. 먼저 느낀 것은 우리도 외국인들처럼 모녀 사이에 대화가 많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때론 서로의 의견 전쟁도 필요하다. 그래야 서로의 생각을 존중할 수 있으며, 서로의 생각도 주고받고. 또한 서로가 고민이 있을 때 의지하며 방법을 찾고てててててて. 전 그래도 이 방면에선 일가견이 있다. 그래서 엄마의 고민도 잘 들어준다. 그러면서 우린 서로를 존중하며 살아간다. 내가 엄마랑 잘 통하는 이유는, 난 애교 잘 부리는 귀여운 막내딸이기 때문이다.

<태양은 없다>를 보고

中 2-1 杜 京 宛

이 영화의 내용은 제목과 마찬가지로 "태양은 없다" 그 자체이다. 두 젊은이의 만남, 그리고 그들만의 세계에서 일어나는 방황, 돈, 사기, 명예, 그리고 사랑을 그린 영화이다.

그들에게는 꿈이 있지만 이 사회는 그들을 그리 쉽게 받아주지 않았다. 사회에서는 학벌, 돈, 명예, 그리고 힘이 있어야 하고 그런 조건에서 그들은 너무나 불리했다. 그들은 그들이 이루고자 하는 꿈을 이룰 수 없었다. 왜냐하면 그들의 조건 때문이었다. 능력이 없고 돈도 없고, 하지만 그 속에서도 사랑은 있었다. 그러나てててててて, 그런 사랑도 결국엔 힘이 없기에 얻을 수 없었다. 그들에게는 그렇게 태양이 없다고 믿어지게 된 것이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는 친구 사이의 우정이 아주 아름답게 그려졌다. 그 속에서도 '친구'라는 존재가 있기에, '우정'이란 것이 있기에 서로 의지하며 그들의 꿈을 이룰 수 있다는 희망이 있고, 언젠가는 그들에게도 태양이 뜰 것을 믿으며 이 영화는 끝났다. 이 영화에는 비록 방황하는 젊은이들이 등장하지만 그 속에서 피어나는 우정을 우린 볼 수 있다. 그렇기에 우린 그런 우정, 영원한 우정을 느끼는 그런 친구가 있나 한 번 돌이켜 보게 된다.

<특집>

학교 교육 극대화를 위한 동아리 활성화의 필요성

한국4-H신문(99/3/15)

최근 정부 교육정책은 바람직한 인간상, 창의적인 인간 육성, 사람다운 사람을 기르는 교육, 자율성과 특성화된 교육, 수요자 중심의 교육을 지향하며, 학교 울타리를 허물어서 열린 평생교육으로, 지식위주의 교육에서 사람됨을 중시하는 교육으로, 학교 교실 수업 중심에서 벗어나 체험 중심의 교육으로 변화라고 있다. 이러한 정부 교육정책의 방향이 구체화된 형태가 곧「교육비전 2002 : 새학교 문화창조」이다. 새학교 문화창조란 학교 공동체 구성원 모두가 학교현장의 문제점을 스스로 고쳐나가고, 학생의 자아실현을 극대화할 수 있도록 창의성의 신장과 인성교육을 꾸준히 추구해 나가는 교육실천 운동이다.

새학교 문화 창조의 내용은 자율과 참여의 학교 공동체 만들기, 입시부담이 적은 교육과정 운영, 학생의 자기 주도적 공부능력 기르기, 학생들의 동아리 활동과 학생자치 문화 활성화, 학생평가제도의 개선 등으로 되어 있다.

그런데 위의 교육정책의 성공적 실기 및 효과의 극대화를 위해서는 학교내의 교육활동뿐만 아니라 동아리 활동 등의 활성화가 필요하다. 특히 앞으로는 자율과 민주주의를 배우는 학생자치활동인 동아리 활동을 통해서 공동체 활동을 배울 수 있고 민주적 토론과 집단사고의 경험을 쌓을 수 있다.

동아리 활동에 관한 전반적인 사항들을 간략하게 언급하면 다음과 같다.

1. 동아리는 취미나 특기, 흥미, 장래희망 등이 유사한 학생들이 공동적인 관심사를 가지고 모여서 구성하도록 한다.

2. 구성된 동아리는 학교에 등록하면 학교의 지원을 받을 수 있다.

3. 원활한 동아리활동을 하기 위해서 구성원 수가 15-20명 안팎이 되도록 한다. 가능하면 모든 학교의 전 학년이 골고루 동아리 활동에 참가하여 구성할 것을 권장한다.

4. 동아리는 매주 1회 이상 정기적인 모임을 가지며 모든 활동들은 스스로의 규율과 규제의 원칙에 따라 이루어지도록 한다.

5. 동아리에 참가하는 학생들은 학교축제나 알뜰시장 등 학교 행사에 주도적으로 참여하고, 교내, 교외에서 봉사할 일을 한가지 이상 정해서 전체 동아리 구성원 모두가 실천하도록 한다.

6. 모든 교사들은 하나 이상의 동아리를 맡아 지도한다. 단 교사들의 지도는 학생들의 자발적인 활동을 장려, 지원하는데 중점을 둬야 한다.

학교에서 구성할 수 있는 동아리의 예는 다음과 같다.

1. 문학 : 글쓰기, 독서모임, 소설창작, 시 창작, 신문 읽기, 수필읽기, 논술공부.

2. 연기 : 풍물, 무용, 발레, 영어연극, 백댄서, 장구연주, 민요 부르기 등.

3. 컴퓨터 : HWP, 프로그래머, 게임, 그래픽, 인터넷, 시스템조립.

4. 미술 : 동양화, 한국화, 판화, 조소, 서예, 도자기, 종이 접기, 일러스트(삽화) 그리기 등.

5. 음악 : 합창, 중창, 가요 부르기, 보컬그룹, 악기 배우기(기타, 플룻), 실내악단, 3중주단 등.

6. 봉사 : 고아원, 양로원, 장애인시설, 사회복지관 등.

7. 학습 : 생물, 물상, 국사, 세계사, 수학, 고적답사, 영어회화, 영 어 펜팔, 사회, 문화 등.

8. 취미, 특기 : 바둑, 장기, 영화(비디오)감상, 만화 그리기, 만화영화, 영화제작

9. 종교 : 기독교, 불교, 천주교, 등 종교활동 등.

10. 희망 : 과학자, 교사, 의사, 프로그래머, 건축사, 회계사, 사회사업가, 정치가, 변호사 등.

11. 운동 : 농구, 축구, 당구, 볼링 등.

12. 청소년단체 : 4-H회, 보이스카웃, 걸 스카웃, 누리단, 흥사단, RCY, 해양청소년, 우주소년단 등.

동아리 활동의 순기능은 일일이 다 열거할 수 없을 만큼 많지만, 그 중 일부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동아리 활동에 참여한 학생이나 청소년들은 동아리 활동에 참여하지 않은 학생들보다 사회 적응력이 강하며, 이러한 의식과 능력은 심신의 조화로운 발달을 돕고 자기 관리능력을 신장시킬 뿐만 아니라 민주시민에게 필요한 기본적 자질을 기르는데 필수적인 요소이다. 동아리 활동에서는 학생의 자율성과 자발성이 강조되면서도 집단전체의 목적을 달성하는데 필요한 협동성, 자주성, 책임감, 소속감, 희생, 봉사정신 등의 자질을 획득하는 일이 중요시되고 있다. 동아리 활동을 통하여 학생들은 공통의 목표를 계획하고 제안하며 집단 속에서 규율을 지켜가며 함께 실천하고 공동으로 책임감을 체험하게 된다. 동아리 활동에서는 원만한 인격형성뿐만 아니라 지적, 신체적, 정서적 개발, 사회성, 창의성 개발로 조화로운 인간을 육성하는데 크게 도움이 된다.

동아리 활동은 특기, 적성, 잠재능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으며 창의성을 기르는 데도 도움이 되는 활동이다. 또한 동아리 활동은 좋은 인간관계 형성, 지도성 함양, 건전한 여가선용, 건전한 이성교제 등에도 많은 도움이 된다.

결론적으로 과거의 교육환경에서는 입시위주의 교육환경 때문에 동아리 활동이 교육활동에서 제도적으로 허용되기만 하였을 뿐 실천적인 차원에서 그 의미가 매우 작았다. 그러나 새 정부가 추진하는 교육개혁은 학생들을 입시고통으로부터 해방시켜 동아리 활동을 통한 인간교육, 전인교육, 공동체교육 등으로 새로운 학교문화를 창조하여 우리 교육현장을 획기적으로 바꾸려 함으로써 동아리 활동의 활성화를 위한 교육 여건을 조성하고자 한다.

국민의 정부는 동아리 활동을 통하여 창의적인 교육으로 바꾸는데 앞장서 가고 입시지옥이 없는 학교, 즐거운 학교로 바꾸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동아리 활동이 학생 및 자녀지도에 많은 도움이 됨에도 불구하고, 가정, 학교, 사회에서 국민의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새학교 문화 창조(동아리활동의 활성화 등)를 올바로 이해하지 못하여 학생이나 청소년들의 동아리 활동에의 참여를 저해하는 경우가 많다.

미래 지식사회에 적응하는 행복한 인간교육을 위해서는 첫째, 우리 모두 교육관이 바뀌어야 하고, 둘째, 학생들이 자유롭게 동아리 활동에 참여할 수 있도록 시간적, 공간적, 내외적 교육환경을 조성해 주고, 셋째, 신체적, 정신적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취미활동 살리면 학교가 즐거워진다

한겨레신문( 99/03/08 )

초등학교부터 대학교까지 16년 동안 학교를 다녔어도 이렇다할 특기나 취미를 가지지 못한 사람들이 많다. 피아노나 기타 같은 악기를 다루는 것부터 친구들과 공을 차거나 자전거를 타는 방법에 이르기까지 어느 것 하나 제대로 배울 수 없는 곳이라면 학교는 죽은 것이나 다름없을지도 모른다.

선생님과 학생들이 어울려 합창, 연극, 무용 등으로 꾸며진 축제를 준비하고, 좋아하는 `놀이'나 `취미'를 하나쯤 배울 수 있는 즐거운 학교를 만들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클럽 활동을 수업이 아닌 즐거운 놀이로 지원한다는 영국의 학교들을 교사탐색대 `클럽활동'팀이 둘러봤다. (편집자)

“왜 클럽활동을 즐기는 개념이 아니라 학습개념으로 접근하려 합니까”

영국 런던 우드헤이중학교의 베네트 교장은 클럽활동의 교육적인 의의를 묻자 연신 고개를 가로 저었다. 클럽활동은 학생 중심의 놀이활동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학습 관점에서만 접근하면 교사중심이 될 소지가 많으므로, 교사는 학생과 어울려 단순히 즐기면서 학생이 자발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돕는 데 머물러야한다고 강조한다.

이 때문인지 12월4일 우리가 방문한 우드헤이중학교의 교지반 '후레쉬(FRESH)부' 학생들은 외부의 도움 없이 매월 교지를 발행하고 있었다. 학생들은 그들만의 힘으로 해낸다는 데 큰 자부심을 느낀다고 입을 모았다.

학생들은 클럽활동을 통해 장래의 꿈도 자연스럽게 키워나가고 있다. 교지의 상담코너를 맡고 있는 하워드(11학년)양의 장래 희망은 카운슬러(전문상담가)이다. 작가 지망생인 라이트(10학년)양은 글재주를 기르기 위해 설문자료를 주로 만들고 있다.

이렇게 학생중심의 놀이활동으로 이뤄지다 보니 영국의 어느 학교에서도 클럽활동을 개인적으로 평가하는 경우는 없다. 맨체스터웰레이커중학교의 윌리엄스 교사는“활동 정도에 따라 다음해 활동비를 나눠주기 때문에 개인적인 평가대신 학생들은 발표회를 통해 자신들의 활동을 보여주고 싶어한다”고 말했다.

대개 크리스마스께 맞춰 마련되는 발표회는 아주 큰 연중행사로 학부모들이 모두 참여해 즐거운 하루를 보내게 된다. 발표회에 참여한 학부모들은 학교에 대한 고마움의 표시로 학교발전기부금을 내기도 한다. 학부모들이 십시일반으로 낸 돈은 다음해 활동예산에 반영돼 클럽활동을 활발하게 만드는 자극제가 된다.

국가나 기업이 클럽활동 지원을 통해 창의적인 인재를 길러내는 장치도 인상적이다. 우드헤이중학교의 과학클럽인 `크리스트'의 경우 활동에 필요한 비용을 즈네카(ICI-ZENECA)라는 학술산업재단에서 지원 받고 있었다. 지도교사인 에드워즈는“학생들이 우리 클럽에 가입하면 재단에서 제공하는 단계별 교육활동을 이수해야 한다"며“이때 자신들이 가장 관심 있는 부분에 대해 팀을 이뤄 보고서를 쓰기 때문에 놀이의 일종처럼 모두 즐겁게 받아들여야 활동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이때 교사의 역할은 학생들이 보고서 쓰는 과정이 공정한가만을 확인하면 된다는 것이다.

집단별 보고서 가운데 우수보고서는 재단에서 상금을 준다. 지난해 `크리스트' 클럽은 2000파운드(약 400만원)의 상금을 받았다. 학생들은 상의 끝에 이 돈을 우주에 관심이 많은 한 동료학생의 꿈을 실현시켜 주기 위해 천체망원경을 사는 데 썼다.

클럽활동을 지원하기 위해 방학 때마다 교사들의 연수비와 강사초청비를 지원하는 경우도 있다. 이스트본 모이라 사립중등학교는 매일 오후 2시30분부터 4시까지 1시간30분 동안 자유로운 클럽활동을 실시하는데, 지리교사인 클레어는 수구반 지도를 위한 연수비용을 학교로부터 지원 받고 있었다. 이 학교의 해리스 교장은“교사의 수업자료는 도서관뿐만 아니라 활동을 통해서 얻는 것도 대단히 가치가 있다"며“학교는 학생에게 즐거움을 주는 장소이면서 한편으로는 교사에게도 즐거움을 주는, 모두를 위한 장소여야 한다"고 말했다.

영국의 교사와 학생들은 이렇게 놀이중심의 클럽활동을 통해 자신들의 꿈을 키우며 즐거운 학교를 운영하고 있었다.








<과학 이야기>

건강-茶의 질병예방 효과

YTN (98/09/17)

우리가 일상적으로 마시는 녹차와 홍차에 암과 심장병 등을 예방할 수 있는 성분이 들어 있다고 한다.

차는 영국과 아시아 등지에서 오랫동안 인기를 끌었다. 이제는 미국에서도 다시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어떤 사람은 하루에 차를 한 잔씩 마신다고 한다. 최근 발표된 연구 보고서에 의하면 차는 맛도 좋을 뿐 아니라 건강에 좋은 성분이 가득 들어 있다고 한다.

차는 심장병과 뇌졸중 그리고 암 등을 예방하는 항산화 성분을 함유하고 있다고 한다. 차 한 잔에 들어 있는 항산화 물질의 양은 과일주스 한 잔이나 그에 상응하는 양의 과일과 야채에 들어 있는 항산화 물질의 양보다 많다고 한다.

차가 인간에게서도 암을 예방할 수 있다는 직접적인 증거도 처음으로 발견되었다. 구강에 전암성 병변이 나타난 중국인 59명을 대상으로 실시된 연구 결과 6달 동안 차를 마신 사람은 차를 마시지 않은 사람 보다 병변이 암으로 진행되는 속도가 느렸다고 한다.

이건 매우 중대한 발견이라고 한다. 구강암 자체가 중요한 질병일 뿐 아니라 모든 종류의 암은 공통된 특성을 몇 가지 갖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천 박사의 연구 결과는 워싱턴에서 열린 차와 건강에 관한 국제 학술회의에서 발표되었다. 동물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도 차는 폐암, 결장암 그리고 소화기관의 암을 예방하는 효과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차에 함유된 항산화 물질이 인체에 해가 되는 성분을 중화하는 성질을 갖고 있다고 한다. 차는 또 질병과 싸우는 효소의 생성을 돕는다고 한다. 그리고 기존의 생각과 달리 녹차만 몸에 좋은 것이 아니라 홍차도 건강에 좋다고 한다.

정확히 차를 얼마나 마셔야 질병 예방 효과를 볼 수 있는 지는 아직 분명치 않지만 하루에 한 잔씩만 마셔도 건강에 좋은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과학자들은 차가 몸에 좋다고 하면서도 과일과 야채를 많이 섭취하는 건강한 식습관을 차가 대신할 순 없다고 강조했다.


바닷물은 왜 짭짤할까?

한겨레신문(99/02/22)

바닷물은 짜지만, 강물이나 호숫물은 그렇지 않다. 바닷물이 짠 이유는 아마도 바닷물에는 강물이나 호숫물에는 없는 어떤 물질이 들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바닷물을 그릇에 떠서 말리면 그릇바닥에 하얀 가루가 남는다. 그러나 강물이나 호숫물을 말리면 바닥에 남는 것이 거의 없다. 그러므로 이 하얀 가루가 바닷물을 짜게 한 물질이라고 할 수 있다.

서해안을 여행해 보면, 바닷가에서 소금을 만드는 밭(염전)을 볼 수 있는데, 바닷물을 말렸을 때 남는 하얀 가루는 바로 소금이며, 이 때문에 바닷물이 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면 왜 바닷물에는 소금이 들어있는 것일까?

지구의 물은 대부분 바다에 모여 있지만, 육지의 강이나 호수에도 물이 있다. 육지나 바다에 있는 물은 증발하여 구름을 이루고, 구름이 무거워지면 비를 내리게 된다. 비는 바다에 직접 떨어지기도 하지만, 육지로 떨어진 비는 땅 위를 흐르다가 강을 이루고, 강물은 마침내 바다에서 모이게 된다.

이 과정에서 빗물은 암석과 흙 사이를 통과하게 되는데, 이 때 암석이나 흙을 이루고 있는 광물 중에서 어떤 성분은 쉽게 녹는다. 그 결과 광물을 이루고 있던 성분(원소)이 물에 섞여서 강물과 함께 바다로 들어가게 된다. 강물에 들어 있는 성분 중 대부분은 소금을 만드는 원료이다. 그러나 강물에는 이 성분이 매우 적게 들어있기 때문에 강물이 짜지는 않다.

하지만 물이 증발하여 비가 되고, 육지를 흘러 다시 바다로 들어가는 과정이 지난 수억 년 동안 계속되면서 바다에는 강물을 따라 흘러 들어간 소금 성분들이 계속 모여 지금과 같은 짠물을 이루게 되었다. 현재 바닷물에는 약 3.5%의 소금 성분이 들어있다.





벌침의 독으로 암세포를 죽인다

한국일보(99/03/08)

머지않아 벌침을 암을 치료하는데 사용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호주과학산업연구기구(CSIRO)의 분자과학연구팀은 벌침 속에 들어있는 독성분자의 구조를 변형시켜 현재 사용되고 있는 항암제에 비해 부작용이 크게 적은 새로운 암치료제를 개발하는 연구를 하고 있다. 연구팀이 이용하려고 하는 물질은 벌침 속에 든 독소의 주성분인 멜리틴이라는 분자이다. 멜리틴은 벌이 침을 쏘면 다른 생물체 안에 들어가 세포벽을 뚫고 침투, 세포를 죽이게 된다.

연구팀의 워크마이스터박사는 "우리는 멜리틴이 세포를 죽이는 기능은 그대로 유지하면서 인체에서 알레르기 반응은 일으키지 않도록 분자구조를 변형시키는 연구를 추진중"이라고 말했다.

해결해야할 문제는 멜리틴이 건강한 정상세포는 건드리지 않고 암세포만 선택적으로 죽이도록 선택성을 부여하는 것이다.

연구팀은 이를 위해 인체면역체계에서 암세포를 인지해내는 항체분자에 변형된 멜리틴을 결합시키는 방법을 개발중이다. 만약 이를 통해 멜리틴이 암세포를 선택적으로 죽일 수 있게 되면 화학적 항암치료의 최대 결점을 극복할 수 있게 된다.

현재 항암치료의 화학요법에 쓰이는 약품들은 세포를 죽이는 효과는 뛰어나지만 선택성이 없어 정상세포까지 공격함으로써 머리가 빠지고 구토와 체중 감소 등 심각한 부작용을 일으킨다. 이런 부작용으로 인해 화학적 항암치료를 할 때 사용할 수 있는 약의 양이 매우 제한되며 이 때문에 치료효과도 떨어진다.

벌침의 독같은 면역독소를 암치료제로 사용한다는 개념은 새로운 것은 아니다. 지금까지 식물과 박테리아에서 얻은 독소를 이용해 약품을 개발하는 연구가 진행된 적이 있으나 이들 독소는 임상치료에 사용하기 어려울 만큼 독성이 강해 실효를 거두지 못했다.

워크마이스터박사는 "멜리틴은 지금까지 사용된 식물이나 박테리아 독소에 비해 독성이 훨씬 약하다"며 "약품을 개발해 임상에 적용하려면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만 그 가능성에 대해서는 매우 낙관하고 있다"고 말했다.

'비행중 숨쉬기' 왜 아무런 문제가 없을까?

한겨레신문(99/03/08)

비행 중에는 승객들이 일상 호흡에 지장을 받지 않도록 외부에서 빨아들인 공기를 가압하여 기내로 공급하고 있다.

우리가 생활하는 지상의 공기압력을 1기압이라 하며, 그 중 호흡할 때 필요한 산소는 전체 공기에서 약 21% 정도의 부피를 차지한다. 그러나 위로 올라갈수록 기압은 낮아지고 따라서 산소의 양도 줄어들게 된다. 정상인이 무리없이 적응할 수 있는 고도의 한계는 약 3000m이고 이때의 대기압은 약 0.75기압이다. 이 이상의 고도에서는 산소부족으로 현기증, 판단장애 등의 증상이 생겨난다.

보통 항공기가 비행하는 고도는 한계고도보다 훨씬 높은 약 1만1000m로 공기가 희박하다. 특별한 장치가 없다면 이런 상태에서승객들은 약 60∼90초 정도밖에는 의식을 유지하지 못한다. 따라서 어떤 식으로든 승객들에게 공기를 공급해야 한다.

항공기에는 객실의 압력이 고도 2500m에 해당하는 0.8기압을 유지할 수 있도록 객실에 강제로 공기를 불어넣는 객실여압장치가 있다. 이 공기는 엔진 또는 보조동력장치로 빨아들인 외부공기의 일부를 사용한 것이다. 따라서 승객들의 일상 호흡을 위해서 지상으로부터 별도의 산소를 가지고 가지는 않다.

그러나 우발적인 상황이 발생하여 객실 내 공기가 빠져나가게 되면 승객들의 안전을 위해 비행 고도를 정상 호흡이 가능한 3000m로 10분 이내에 급강하시켜야 한다. 이동안 승객들에게 마스크를 통해 별도의 산소를 공급하도록 하는 장치가 마련되어 있다.

점보 B747-400의 경우 승객 400명이 약 15분 정도 호흡할 수 있는 양의 산소가 고압탱크에 담겨 화물칸에 실려 있다. 카이로행 비행처럼 높은 히말라야 산맥을 넘게되는 경우, 항공기가 산맥지역을 벗어나 하강하는 데 최대 27분이 걸리기 때문에 산소탱크를 늘리거나 승객의 수를 줄여 비행한다.



순간접착제는 왜 즉시 붙을까?

◇접착제에 의해 물체들이 서로 달라붙는 이유는 무엇일까?

첫째, 대부분의 물질분자 사이에 작용하는 분자력 때문이다. 아무리 매끌매끌한 표면이라도 현미경으로 관찰하면 울퉁불퉁한 요철이 있다. 붙는 물질 즉 피착제의 요철에 접착제가 침투하면, 접착제 분자와 피착제 분자 사이에 분자력이 강하게 작용한다. 또 하나는 앵커 효과라 부르고 있는 소위 기계적인 힘이다. 접착제가 굳으면 피착제 표면의 요철에 걸쇠처럼 걸려 떨어지기 어렵게 된다. 대부분 이들 두 가지의 힘으로 물체는 서로 달라붙는다.

◇그렇다 해도 순간접착제가 그렇게 빨리 달라붙을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붙는 원리는 보통의 접착제와 같지만 굳는 속도가 대단히 빠르기 때문이다. 현재 널리 사용되고 있는 가정용 순간 접착제의 주성분은 시아노아크릴라이트라는 화합물이다. 이 물질은 보통 액상의 상태로 분자가 뿔뿔이 흩어져 있는데, 극히 적은 양의 수분이라도 닿기만 하면 순간적으로 분자끼리 서로 결합, 고분자화되어 굳는 성질이 있다.

◇접착력이 강한 이유는 무엇일까?

시아노아크릴라이트는 다른 접착제에 비해 굳으면 굉장히 단단한 수지로 된다. 또한 피착제 표면의 극히 작은 홈에도 비집고 들어가기 때문에 강한 접착력이 생기나. 실험에 의하면 철과 철을 붙였을 때, 접착력의 세기는 1cm2의 접착 면적당 4kg정도나 되었다. 우표 크기만한 접착면에 씨름선수가 매달려도 떨어지지 않는다.

◇주로 어느 분야에 사용되는가?

자동차나 가전제품이 제조에도 사용되고 있다. 인체에는 무해하니 때문에 외과 수술의 혈관 봉합제로도 사용된다. 기타 연주자가 손톱을 보호하기 위해 매니큐어 대용으로 바르는 경우도 있다.

◇잘못해서 손가락이 붙어버렸다는 이야기도 들었는데.......

떼어내는 액이 시판되고 있는데, 주성분은 유기용제인 아세톤이다. 아니면 미지근한 물에 담가서 조금씩 비비면 뗄 수 있다.


요구르트, 물 마신 뒤나 식후에

한겨레신문(99/03/10)

요구르트는 기원전 3000년께 유목민이 직접 짠 생유를 발효해 마셨던 것이 유래가 됐다고 한다. 상품으로 된 것은 1900년대 초이며, 1960년 이후에야 비로소 전세계적으로 많이 섭취하게 됐다. 요즘은 여러 가지 과일과 감미료가 첨가된 요구르트가 식품진열장마다 즐비하다.

요구르트를 꾸준히 섭취하면 건강에 좋아 장수한다고 알려져 있다. 유산균 배양과정에서 생긴 물질이 장의 부패균이 번식하는 것을 억제하기 때문이다. 장 세균의 정상적인 균형을 유지해주는 요구르트는 설사를 완화해줄 뿐만 아니라 변비증상을 가볍게 해주는데도 효과가 있다. 그밖에도 유산균이 단백질을 분해해 단백질 소화를 잘되게 하고, 유산의 작용으로 칼슘이 쉽게 흡수되며, 새콤한 맛이 소화액 분비를 촉진해 소화를 도와준다. 우유를 마시면 속이 불편한 사람도 요구르트는 잘 소화하는데, 모두 유산균 덕분이다. 이렇게 소화작용을 도와주는 유산균은 세포의 돌연변이 현상을 억제해 암 예방에도 효과가 있다는 연구결과가 최근 나왔다.

요구르트의 여러 효능이 알려지면서 날마다 규칙적으로 마시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지만, 먹는 방법에는 별로 관심이 없는 것 같다. 요구르트의 효능은 살아있는 유산균이 그대로 대장까지 도달해야 제대로 발휘된다. 그런데 많은 유산균이 위를 통과하는 동안 위산에 의해 죽게 된다. 특히 아침 식사 전에는 밤사이 많이 분비된 위액 때문에 위산의 농도가 높아져 있어, 이때 요구르트를 섭취하면 유산균의 효과를 거의 기대할 수 없다.

그래서 물을 먼저 마셔 위산의 농도를 묽게 하거나 식후에 즉시 먹는 것이 요구르트의 효능을 높이는 방법이다. 유산균은 일정기간이 지나면 제품 안에서 숫자가 줄어들게 되므로 구입할 때 유효기간을 반드시 확인해야 한다. 가능한 많은 유산균을 대장까지 도달시켜 유산균의 효과를 가장 크게 하려면 유효기간 안의 제품을 위의 산도가 가장 낮을 때 먹어야한다.


인터넷 중독, 당신은 안전한가?

일요시사(99/03/21)

최근 컴퓨터 오락에 중독된 10대가 발작 증세를 일으키며 숨진 사건이 있었다. 이 학생은 매일 5시간 가량 컴퓨터 오락에 몰입해 왔다고 한다.

이탈리아에서는 연일 인터넷에 매달리던 한 남자가 정신착란을 일으키며 입원한 사례가 있었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인터넷이 보편화되면서 수많은 네티즌들이 인터넷에 돼 가고 있는데, 하루5∼6시간 이상 지속적으로 컴퓨터와 인터넷에 빠지다 보면 정신착란과 질병을 일으킬 수 있다고 한다.

미국에서는 인터넷 중독의 심각성에 대한 논란과 연구가 오래 전부터 활발하게 진행되어왔다.

여기에 인터넷 중독을 측정하는 몇 가지 재미있는 질문이 있다.

1. 운전면허증 응시서류에 무심코 IP 어드레스(숫자로 된 인터넷 주소)를 써넣는다.

2. 첫 만남 후 다음 번 약속날짜를 잡을 때 "인터넷 주소가 뭐지요"라고 묻는다.

3. 배우자에게 저녁먹으러 오라고 할 때 전화대신 메일을 보낸다.

4. '스팸'이 음식이라는 것을 발견하고 깜짝 놀란다.

5. 당신의 이름은 'anonymous - 익명'이다.

6. 당신은 ' :-) '를 당신이 거울에 비친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7. 당신의 북마크(인터넷 주소 책갈피)를 처음부터 끝까지 보는데 15분이 걸린다.

8. 악몽을 HTML과 GIF로 꾼다.

9. 인터넷 접속을 끊을 때, 애인과 전화를 끊을 때처럼 공허하고 아쉬운 마음이 든다.

10. TV에서 www로 시작되는 웹사이트 주소를 보면 마음이 빨라지고 심장박동이 불규칙해진다.

11. 당신의 배우자에게 당신을 알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TV위에 속옷을 걸쳐둔다.

12. 당신의 친구들은 대부분 @가 들어가는 이름을 가지고 있다.

13. 메일 수신함에서 "수신된 메시지 없음"이라는 말이 나와도 곧 다시 체크해 본다.

14. 통신상에서 중성적인 닉네임을 쓰기 때문에 친한 친구의 성별을 착각할 때가 있다.

15. 새벽 3시에 잠에서 깨서 화장실에 갔다가 다시 잠자리에 들기 전에 E-메일을 체크한다.

16. 배우자가 결혼에서 의사 소통이 중요하다는 말을 하면, 서로 채팅을 할 수 있도록 또 한 대의 컴퓨터를 산다.

위의 질문에 대부분 고개를 끄덕인다면 당신은 이미 인터넷 중독의 길로 들어선 것이다.




핸드폰이 뇌에 미치는 영향

- 휴대폰이 뇌암을 부른다.

일요시사(99/03/21)

전세계적으로 휴대폰 소지자가 급증하고 있다. 그러나, 어디서나 간편하게 통화를 할 수 있고 자신만의 통화영역을 확보할 수 있다는 장점 때문에 사람들이 선호하는 휴대폰이, 두뇌에 치명적인 영향을 주고 잇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영국 주간지 선데이미러는 휴대폰의 악영향에 관한 연구결과를 보도하고 있다.

연구결과에 따르면 두뇌 속의 미세한 조직이 휴대폰의 초음파 방사선에 의해 가열된다는 것. 휴대폰은 뇌종양, 기억상실 및 알츠하이머병과 관련이 있다.

실험 시 현상사진을 보면 휴대폰을 받고 있는 쪽을 뇌가 가열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반대쪽은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는다.

이 실험은 인간의 두뇌를 흉내낸 화학성분을 내장한 실험용 머리에 행해졌는데, 이는 조직 내 전자파에 민감하게 반응하도록 고안되었으며, 그 결과물을 컴퓨터로 다시 보내게 되어 있다.

그들은 조직의 발열과 세포막의 변화라는 두 가지 사실이 발견되었다고 발표했다. 휴대폰에서 나온 고동치는 방사선이 초당 2백 17번씩 뇌를 강타하는데 이는 뇌세포의 기능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연구진은 곧 휴대폰이 질병에 대한 면역기능을 약화시키고 발암의 위험을 증가시킨다는 사실을 발표할 예정이다.

그들은 하루에 20분 이상씩 휴대폰을 이용하는 사람들은 뇌 검사를 받을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과학자들은 이미 초음파방사선이 DNA를 분리시키고 쥐에게 암 발병을 증가시킨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조사결과 휴대폰 이용자들은 피로와 두통을 그리고 피부 트러블을 일으키는 경향이 있다고 응답했다.

전세계적으로 휴대폰 이용에 대한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하지만 아직도 정확하게 휴대폰이 뇌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알기에는 많은 시간이 걸릴 것 같다.




















<역사 이야기>

사육신, 충신인가 역적인가

일요시사(99/3/21)

1453년 10월, 수양대군은 무력으로 김종서 등을 제거한 뒤 조정의 실권을 차지하는 쿠데타(계유정란)를 감행했다, 그후 수양은 조선의 왕으로 등극하고 단종을 상황으로 물러나게 했다.

세조 즉 4개월만인 1445년 윤6월 세종과 문종에게 특별한 신임을 받았던 집현전 학사 출신인 성삼문, 박팽년, 하위지, 이개, 유성원 등의 문관들은 유응부, 성승(성삼문의 아버지) 등의 무인들과 모의하여 상왕(上王)으로 물러앉은 단종을 복위시킬 계획이었다.

이 계획은 본국으로 떠나는 명나라 사신의 환송연에서 성승과 유응부가 국왕 양쪽으로 칼을 들고 지켜서는 별운검에 임명되면서 구체화되었다. 당시 세조가 상왕 단종과 함께 창덕궁의 연회에 있을 때 유응부가 세조를 살해하기로 했다.

그러나 이 계획은 무위로 끝나고 만다. 세조가 별운검을 동반하고 연회장을 나서는 것이 위험하다고 판단한 한명회가 창덕궁 연회장이 너무 협소하여 당일에 별운검을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세조가 이 의견을 받아들임으로써 암살계획은 뒤로 미뤄질 수밖에 없었다.

이 사건으로 집현전 학교에 학사 출신 성삼문, 박팽년 등과 이에 연루된 17인이 투옥되었다. 이 들은 옥이 일어난 지 7일 만인 6월9일 군기감 앞에서 처형되었다. 상왕 단종도 사육신 거사 계획에 연루되었다하여 노산군으로 강봉되어 강원도 영월로 유폐되었다.

조선의 11대왕 중종 때, 단종 복위 계획에 가담했다 죽은 여러 신하 가운데 성삼문, 박팽년, 이개, 하위지, 유성원, 유응부 등이 사육신으로 기록되었다. 그후 사육신은 조선시대 절의(節義)를 지킨 충신의 대명사로 평가돼왔다.

사육신은 1691년(숙종 17년) 숙종에 의해 관직이 복구되고 민절(愍節)이라는 사액(賜額)이 내려짐에 따라 서울 노량진 동산의 묘소 아래 민절서원을 세워 신위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게 하였다.

1782년(정조 6년)에는 신도비가 세워졌으며, 서울시는 1955년 그 자리에 육각의 사육신 묘비를 세우고 묘역을 조성하였다.

조선 후기 편찬된 시가집 <청구영언>과 <가곡원류>에는 사육신 중 하위지를 제외한 다섯 사람의 시조가 한 편씩 수록돼 있어 사육신의 충정이 후세에도 높이 평가됐음을 알 수 있다.

사육신이 충신이라는 평가에 대해 이를 부인하기보다는 세조의 계유정난을 옹호하는 입장에서 사육신의 비유교적, 반시대적 행위를 비판하는 시각이 있다.

이에 따르면 숙종이 해당 기관으로 하여금 사육신의 관직을 복원하고 국가가 관리하도록 한 것은 본래 세조의 성덕을 빛내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즉 여섯 신하를 처벌할 때 이들이 당세에는 난신(亂臣)이지만 후세에는 충신이라고 했던 세조의 가르침을 그대로 따랐다는 것.

이러한 시각은 숙종24년 9월 전현감(前縣監) 신규(申奎)의 상소문과 관련이 있다. 상소문은 당시 현실정세 속에서 단종의 양보는 불가피 했고 선양(왕위를 물려줌)이 중국의 사례에 못지 않게 훌륭한 일이었음을 강조하였다. 이어서 여섯 신하의 변이 뜻밖에 발생하여 세조가 상왕의 은혜에 보답하고자 한 뜻을 끝내 이루지 못하게 하였으며, 사육신들의 음모가 결국 단종을 죽음에 이르게 하였음을 지적하였다.

이러한 시각은 단종 복위와 관련, 사육신이 택한 방법에 대해서도 비판적이다. 집현전 출신으로 유능한 지식과 교양을 습득한 사육신이 자신들의 계획을 현왕인 세조를 살해함으로써 실현하고자 한 것은 비유교적, 반시대적이라고 지적한다. 즉, 연산군, 광해군과 같은 소위 포악한 군주들도 폐위와 반정 후 살해하지 않았다는 것.

사육신에 대해 절의(節義)를 지킨 충신이라는 기존의 평가와 이에 상반되는 시각도 있다. 그러나 전자(前者)의 평가가 지배적이다.

숙종이 사육신의 관직을 복원하고 서원까지 내린 것은 세조의 영명함과 성덕을 기리기 위한 것이라는 해석이 있지만 이는 당대 시대상황과 무관하지 않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거친 조선은 침체된 사회분위기와 국정을 일대 쇄신하기 위해 여러 시책들을 단행한다. 그 가운데 정신적, 사상적으로 절의와 명분이 강조됐는데 사육신은 그 대표적 인물로 부각되었다. 이는 당시의 사회적 분위기가 사육신이 조선 민중들 마음속에 충신으로 평가돼 왔다는 것을 말해준다.

또 조선의 선비들에게 유교적 질서는 그들의 실존을 가늠하는 가장 분명한 기준이었다, 그런 점에서 수양대군의 계유정난은 왕권을 탐한 명백한 쿠데타였고, 선비들의 저항은 당연한 것이었다.

역사평론가 이덕일씨는 "사육신은 장래가 보장된 관료였다. 그들은 편하게 살 수도 있었지만 조선의 기본 질서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바쳤다. 유교적 질서가 무너지면 나라도 무너진다고 보았던 것이다. 그런데 수양대군은 그러한 질서를 무너뜨리고 왕이 됐다. 더욱이 쿠데타 추종세력의 전횡은 조정을 무질서하게 만들고 이들은 권력을 유지하는 데만 급급해 나중에 훈구파로 사색당파의 뿌리가 됐다"고 말했다. 즉 사육신의 거사는 당시 선비로서 당연한 결단이었다는 평가다.

<세상 이야기>

영어가 세계사 흐름 바꾼다

한겨레신문(99/03/02)

세계화 열풍이 지구촌을 휩쓸고 있다. 세계화의 주된 도구는 두가지, 정보통신의 혁명과 영어의 세계적 쓰임이다. 영어와 인터넷은 서로 상승작용을 하며 세계화를 세기말 최대의 화두로 만들었다.

지난해 9월 독일 총리로 당선된 게르하르트 슈뢰더와 자크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이 만나 독-프 협력을 논의한 언어는 독일어도 프랑스어도 아닌 영어였다. 아프리카의 프랑스어권 국가 알제리·르완다·콩고민주공화국(옛 자이르) 등지에서도 2-3년 전부터 프랑스어가 영어로 대체되고 있다.

21세기를 눈앞에 둔 지금 영어는 75개 국가에서 모국어 또는 공용어의 지위를 누리고 있다. 영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인구는 3억8천만명, 공용어로 쓰는 인구도 3억7천만여명에 이른다. 외국어로 영어를 배우는 인구는 7억5천만명 수준이다. 세계인구의 4분의 1인 12억명, 많게는 16억명이 의사소통이 가능한 수준까지 영어를 사용할 수 있다. 영어는 모국어·공용어·외국어 사용자 세 측면에서 모두 세계어로 확고하게 자리를 잡았고 그 비중은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영어는 거의 모든 분야에서 지배적인 언어다. 전세계 우편물의 4분의 3이 영어로 쓰여 있고, 컴퓨터에 저장된 정보의 80%가 영어로 돼 있다. 인터넷 메일은 90% 가까이 영어로 오고 간다. 영어 확산은 인류가 오래전 신화시대에 꿈꾸었던 언어공동체에 바탕한 바벨탑의 건설을 떠올리게 할 지경이다. 심지어 먼 미래에는 결국 영어와 중국어·스페인어·아랍어만이 살아남을 것이라고 89년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카밀로 호세 셀라는 탄식하기도 한다.

17세기 섬나라 영국에서 고작 500만명이 쓰던 소수민족어였던 영어가 세계어로 성장하게 된 것은 16세기에 시작된 식민지 경영이 그 밑바탕을 이루었다. 18세기 영국에서 일어난 산업혁명과 과학 기술의 발달이 이 분야의 새 단어들을 영어사전에 보태며 영어를 산업사회·기술·지식 분야에서 주요한 언어로 자리잡게 했다.

20세기 들어 미국이 세계 정치 주도국으로 부상하면서 영어는 가장 지배적 언어로 등장했으며, 그 지위는 더욱 견고해지고 있다.세계경제는 달러를 기축통화로 삼았고 달러의 언어가 영어인 까닭에 영어는 국제 경제활동의 공통어로 자리매김됐다.

1898년 노년의 독일재상 오토 폰 비스마르크가 근대사에서 무엇을 가장 결정적인 것으로 보느냐는 한 언론인의 질문에 대해 “북미인들이 영어를 쓴다는 사실”이라고 예견한 것처럼, 현재의 영어 세계어화에 핵심적 구실을 하는 것은 바로 미국이다.

지난 50년대만 해도 냉전 등 정치적 불안 속에서 막연한 이론적 가능성에 불과했던 영어의 세계어화가 이처럼 짧은 기간에 일어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세계어로서의 영어>의 지은이인 데이비드 크리스탈은 “한 언어가 국제적 언어가 되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그 말을 쓰는 민족의 정치적 힘, 특히 군사력”이라고 설명한다. 그러나 현대에 와서는 군사력의 구실보다 경제적 구실이 더 커졌다.

1945년 유엔 창설 이후 많은 국제기구들이 출범하면서 세계어의 필요성이 강하게 일기 시작했다. 세계은행(1945년), 유네스코(46년), 유니세프(〃), 세계보건기구(48년), 국제원자력기구(57년), 유럽공동체(67년), 180여 가입국이 모인 유엔 총회 따위를 열려면 공용어가 필요하다. 현재 유엔의 공식어는 영어·프랑스어·스페인어·중국어·러시아어 5개어다. 때문에 상당수 국제기구의 예산의 절반 가량이 통역·번역 관련 분야에 들어가고 있다. 이에 따라 유일 공식어를 쓰자는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고, 영어만큼 경쟁력을 갖춘 언어는 드물다. 영국은 유럽통화동맹에 가입하지 않았는데도 프랑크푸르트에 있는 유럽중앙은행의 공식어는 영어일 정도다.

유럽연합의 공식언어는 무려 11개에 이른다. 각국의 대표들이 모인 유럽의회에서 회의를 하자면 엄청난 수의 통역원이 필요하다. 국제기구의 85%가 영어를 업무용 언어로 사용하는 가장 큰 이유는 바로 비용 때문이다. 유럽에서 영어 확산은 더 광범하다. 국제협회의 최근 연감에 등록된 유럽기구의 99%가 영어를 업무용 언어로 삼고 있는 데 비해 프랑스어 사용은 63%, 독일어는 40%에 불과하다.

인수·합병을 통해 점점 거대화하는 다국적 기업들은 국경을 넘나드는 영업을 일상화하고 있고, 정보통신의 혁명과 교통수단의 발달은 통신과 여행의 엄청난 수요를 낳았다. 영국과 미국간 국제전화요금은 개통 당시의 0.2% 수준으로 떨어졌고, 세계 항공여행 역시 그 증가 추세가 가파르다. <CNN>, <MTV> 등에서 보듯 위성을 통한 지구촌 시대의 방송은 인류를 하나의 문화권으로 묶어내는 기능을 하고 있다. 세계시장을 무대로 삼은 미국의 대중문화는 영상세대인 젊은층들에게 막강한 파급력을 과시한다. 미국의 영향은 특별히 전지구화한 소비문화에서 그 위력이 드러난다. 세계화로 특징되는 이 모든 변화는 영어를 세계어로 더 굳건히 자리잡게 하고 있다.

영어의 미래에 대한 예측은 가능한가. 대부분의 학자들은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로마시대 이후 중세기까지 1천년 동안 학문에서 라틴어, 근대 이후 국제정치 무대에서 프랑스어가 각각 보편어로 사용됐으나 그 지배적 위치는 오늘날 모두 영어에 내주고 말았다. 영어 역시 이들의 전철을 밟지 말라는 법은 없다.

그러나 데이비드 크리스털은“인류 언어역사에서 우리는 `결정적 순간'으로 접근하고 있다"며“세계어는 오직 한 번만 생겨날 가능성이 있고 그것은 영어가 될 것"이라고 내다본다. 과거의 라틴어나 프랑스어가 한 지역에서 보편어로 부상했던 예와 달리 전세계 모든 지역에서 동시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세계어로서의 득세 과정이 종전의 예와는 질적으로 다르다는 지적이다.

과연 영어는 유일한 세계어로서 `결정적 순간'에 이르러 있는가. 그리고 그 무엇에도 위협 당하지 않을 지배적 지위를 얻을 것인가.

런던의 영국문화원은 97년에 펴낸 데이비드 그래돌의 <영어의 미래?>에서 다양한 예측 모델과 시나리오·통계치 등을 동원해 영어의 미래를 입체적으로 전망했다. 이 책을 만든 `영어 2000 프로젝트'의 예측 서비스 책임자인 캐럴린 무어는 영어의 현재 지위 "유동적"이라고 말한다.“인터넷과 영어의 밀접한 연관도 일시적 현상"이고,“세계 경제에서 영어권 비중도 앞으로 상당히 줄어들 것"이기 때문이다.

영어의 미래에 대한 전망은 이처럼 엇갈리지만 영어에 더 이상 경쟁어가 없다는 데는 전문가들의 의견이 일치한다. 영어는 영국인과 미국인의 언어를 넘어선 세계인의 소통수단으로 자라났고, 지구촌을 무대로 한 지식인·경제인 등 글로벌 엘리트들은 영어를 쓰지 않고는 불가능한 자신들의 고부가가치 전문활동을 가속시켜 나갈 것이다. 이미 자생적인 생존력을 갖춘 영어는 미국의 경제·정치적 영향력이 쇠퇴하더라도 세계적 전문가 집단의 공용어로 독자적 발전을 약속 받고 있는 것이다.


<지혜의 샘>

토끼해는 문화 꽃피운 상서로운 해

한국일보(99/01/01)

『산길을 걷던 스님이 함정에 빠진 호랑이를 구해주었다. 그러나 굶주린 호랑이는 스님을 잡아먹으려 한다. 지나가던 소도「사람들은 짐승에게 죽도록 일만 시키고 고기까지 먹으니 잡아먹어야 한다」고 거든다. 하지만 토끼는「처음부터 보지 못해 판단을 내릴 수 없다」며,「어떤 상황이었는 지 보여달라」고 한다. 호랑이가 다시 함정에 들어가자 토끼는 재판이 끝났다며 스님에게 가라고 한다.』

99년은 단기 4332년, 기묘년 토끼해. 구전설화에 나오는 토끼는 순하면서도 꾀 많고 지혜가 있는 동물이다. 용궁에 갔던 토끼가 목숨을 건져 살아 나오는 <별주부전(토끼타령)>은 토끼의 슬기를 보여준다. 반면「토끼가 제 방귀에 놀란다」는 속담처럼 겁 많고 방정맞고 약한 동물이다. 때문에 지배세력의 착취와 억압에 저항하는 민중에 자주 비유된다. 토끼와 거북의 경주에서 보듯 인내력과 끈기가 부족한 점도 있다. 위로만 달아날 줄 알지 되돌아서지 못해 몰이꾼들의 희생물이 되기도 한다.

우리 역사기록에 토끼가 처음 등장한 것은 고구려 6대 대조왕 25년, 삼국사기 고구려본기에 보면 그해 10월 부여국 사신이 뿔 3개가 달린 흰 사슴과 꼬리가 긴 토끼를 바쳤고, 대조왕은 사서로운 동물이라며 죄수들을 사면했다. 또 같은 책 <열전 김유신>편에 신라의 김춘추가 고구려에 갔다가 정탐꾼으로 몰려 죽게 됐을 때 보장왕의 총신인 선도해가 별주부전으로 넌지시 탈출방식을 알려주었다는 기록도 나온다.

역사적으로 토끼해는 조광조 등 개혁파가 화를 당한 기묘사화(己卯士禍.1595년.중종14년)와 청이 쳐들어온 정묘호란(丁卯胡亂.1627년.인조5년)을 제외하면 문화적, 사회적 업적이 두드러졌던 상서로운 해였다. BC 1122년에 기자조선이 건국했고, BC 18년에 온조왕이 백제를 세워 즉위했다. 기원 후에는 고구려가 247년(동천왕21년)에 평양성을 쌓았고 427년(장수왕 15년)에 천도했으며 백제도 475년(문주왕 1년)에 웅진으로 천도했다.

신라 경덕왕 10년(751년)에는 김대성이 불국사를 창건했고 고려시대인 1363년(공민왕 12년)에 문익점이 원나라에서 목화씨를 들여왔다. 또 조선시대 <석보상절><월인천강지곡><동국정운>이 편찬된 1447년(세종 29년), 탕평책이 실시된1687(숙종13년), 경복궁 근정전과 경회루가 완공된 1867년(고종4년)이 모두 토끼해이다. 1927년에는 월남 이상재를 중심으로 자주 독립을 위한 단체 신간회가 조직됐다. 1987년은 박종철군 고문치사사건을 시발로 6.10항쟁이 벌어져 6.29선언을 이끌어낸 민주화승리의 해였다.

편집자의 변

또 봄이 왔습니다.

지난 겨울방학의 숙제들이며 수업 시간에 했던 글들을 이렇게 정리했습니다. 학생들의 순수한 마음들을 글을 통해 읽게 되어 기뻤습니다.

이번엔 한글문예반 학생들과 함께 했습니다. 아직은 대부분의 편집 작업이 교사의 몫이었고, 학생들은 돕는 수준에 머물렀으나, 어쨌든 작은 걸음을 내딛었다는 게 큰 기쁨입니다. 학생들이 작업을 함께 하면서 서로 즐거워하는 모습들이 너무 좋습니다. 앞으로는 학생들이 더 많은 부분들을 할 수 있으리라는 믿음을 가져 봅니다.

끝으로 도움을 주신 많은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편집자 올림


문예반 선생님, 그리고 우리 가족 소윤, 유진, 수인, 실희, 가원, 매나, 효염, 소연, 정희 또 나 혜정이, 한글마당을 같이 했습니다. 모두들 힘들어했지만 이렇게 끝이 나서 다행스럽고 보람된 일을 한 것 같습니다. 한글마당 많이 읽어 주시고요, 모두들 수고하셨습니다.

한글문예반

한글 마당 9

發 行 者 : 韓國漢城華僑中學 韓語韓文敎學硏究會

總 編 輯 : 權相基

編 輯 者 : 한글문예반

編輯部員 : 唐梅娜, 呂嘉媛, 王昭娟, 王秀仁, 劉貞希

李惠正, 蔣有珍, 陳實嬉, 初曉艶, 賀昭允

揷 畵 : 金鮮美, 한글문예반

發行號數 : 88-1(通卷 第 9 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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印 刷 者 : 華星文化社

發 行 日 : 中華民國 88年 4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