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마당 7

개교 50 주년 특집














韓國漢城華僑中學

韓語韓文敎學硏究會

차 례

韻文部分

봄. 여름. 가을. 겨울. 高3 王傳萍 1

가을 2

高2 傅象莉 2 高2 趙樹愛 3

구름 高2 于志歆 3

고향 高2 李家宏 4

걸인의 삶 中3 孫德仲 5

나더러 어쩌라고..... 中3 王愛玲 5

남자는 그렇다면서요 中3 王愛玲 6

어떤 남자 高1 王貴善 7

원(圓) 高3 夘才萬 7

우정 8

中2 譚秋錦 8 中3 呂世華 9

젊음이란 中3 畢鑑龍 10

추억 高1 潘忠延 11

散文部分

가을 12

高1 郭永俊 12

가을 13

高1 賀仁華 13 高1 孫詩媛 14 高1 劉佩凱 15 高1 焉保元 15

고1이 되어서 高1 楊先任 16

겨울방학 高1 姜進昊 17

겨울 18

初1 王偉立 18 初1 于慧璟 18

고독 高2 李家宏 19

나의 미래 20

高1 高華英 20 高1 林文瑛 20

낙엽 中3 王秀仁 21

눈 22

高1 楊永安 22

눈 23

高1 王愛玲 23 高1 張惠林 23

대중문화 24

高3 沈成勤 24 高3 劉正義 25

방학을 보내고 中1 徐吉全 25

엄마! 사랑해요! 中1 陳珝錦 26

오늘과 내일 中1 柳欣雅 27

외할머니 初1 高慧丞 27

우리들이 찾는 비상구 初1 王淇萱 28

우리 학교 高1 林文瑛 29

우정 30

高1 王紀莉 30 高1 王銀珠 31

유행 32

高3 孫德蘭 32 高3 任慶美 33 高3 王惠莉 33 高3 孫如娜 34

高3 賀明華 35 高3 范文一 36 高3 王善正 37 高3 沈成勤 37

高1 黃仁娜 39

이별 39

高2 于小莉 39 高3 李宣和 40 高1 劉小萍 41

사춘기 42

中2 王祖玲 42 中3 周美娜 43

스트레스 44

高3 沈成勤 44 高1 曲壽瑩 45 高1 李文采 45 中3 陳實嬉 46

자유 47

高3 唐美燕 47 高2 崔晸宇 48 高1 張惠林 49 高2 孫成夫 50

高1 王愛玲 50

추억 51

高1 黃仁娜 51 高1 李雪玉 52 高1 王梅馨 53 高1 宋啓玉 54

高1 鄒德建 54

할머니 사랑해요! 初1 張慶惠 56

행복 57

高1 史安娜 57 高1 王志惠 58 高1 張惠林 58 高1 范東熙 59

高1 王凱霞 60 高1 陳芳德 61 高1 蕭美媛 62 高1 徐小晶 62

高1 李世華 63

효 64

中1 謝愼珍 64 中1 畢美蘭 65 中2 車玉潔 66 中2 周廣志 66

紀行文

수학여행을 다녀와서 67

高2 孫成夫 67 高2 婁元惠 70

讀後感

어린 왕자를 읽고 高3 劉遠佩 72

'서커스'를 읽고 高3 王振德 73

參考 資料 모음

동물의 세계--거미의 사회성 중안일보 (서울대학교 생물학과) 74

--청결한 돼지 모 신문 칼럼 '숨결'에서 75

식물의 세계--옥수수 76

--감자 한국4-H신문 77

논평 자료--"애국가 가사는 중국 漢나라 서약문 표절" 중앙 일보 79

의료 상식--상처가 나면 왜 침을 바를까? 한겨레신문 80

--이발사가 외과 의사였다 81

--간단한 샤워로 스트레스 해소 82

과학 소식--소행성 파괴력 얼마나 될까? 82

--'달의 물 확인되자 과학자들 흥분 83

편집자의 변 80

<운문부분>

봄 여름 가을 겨울

高 3-1 王 傳 萍

봄 !

봄은 파릇릇한 새싹과

싱그러운 꽃들이 온 세상을 아름답게 해준다.

여름 !

여름에는 강한 햇빛, 푸른 바닷가

사람들의 좋은 놀이터가 되어 준다.

가을 !

가을은 우리들에게 낭만적인 풍경과

독서의 향취를 돋구어 준다.

겨울 !

겨울에는 하얀 눈과

투명한 얼음이 온 세상을 별빛 찬란하게 해준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우리는 이 사계절로 우리들의 아름답고

잊지못할 추억을 만들어 준다.









가 을

高 2-1 傅 象 莉

맑게 핀 하늘은

빙그레 웃고 있는 아이의 얼굴

붉게 물든 낙엽들은

수줍음을 타는 소녀의 얼굴

초라해진 나무들의 가지가지 마다

주렁주렁 매달린 감들을 보며

아∼ 벌써 가을이 왔구나 하고

언뜻 내게 귀뜸해 준다.

둥근 산들은

어느새 오색 색조를 띄우며

마치 어머니의 치마폭으로

들어온 듯 포근하기만 하고

부스슥 부스슥 거리는 낙엽들은

마치 깃털로 덮은 듯

흠이라도 날까 봐

차마 밟지도 못하고

그것을 치마 속에 쌓아 두어

앞에 보인 냇가에 사뿐히 뿌려 본다.

훨훨 거리는 바람은

어느새 내 귓가에 머물며

작은 소리로 속삭이며

저 멀리 작별 인사를 하고 떠나갔다.

가 을

高 2-1 趙 樹 愛

따스한 햇살이

창틈 사이로

스며들고,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가

산과 나무를 붉게 물 들리고 간 것처럼 보이는

가을.

도화지에 그림붓과 물감으로

색칠해 놓은 것처럼

아름다운 가을의 풍경.

귀뚤, 귀뚤하는 귀뚜라미의 소리와

낙엽 밟히는 소리.

나의 감정을 더욱더

가을의 풍경으로 물들이려고 한다.

구름

高 2-2 于 志 歆

닿을지도 모를 저 솜사탕은

내 입 속을 사르르 사르르

스며드는 천국.

내가 따서 맛보고 싶지만

자꾸만 멀어져 가는데

나도 따라 가고파라

고 향

高 2-5 李 家 宏

내가 여태껏 살수 있게 자리를 마련해 주고

내가 여태껏 숨을 쉴 수 있게 맑은 공기를 준 그곳.

이름하여 사랑스러운 나의 고향이다.

비록 내가 태어난 곳은 아닐지라도 난 이곳을 나의 고향으로 생각한다,

비록 아름다운 강물이 없다 해도

푸른 초원이 없다 해도

높은 하늘이 없다 해도

난 이곳을 사랑하고 또 영원히 아낄 것이다.

맑은 아이들의 웃음이 있고 사랑스러운 나의 가족이 있는 곳

그건 바로 나의 고향이다,

당신이 어딜 가든 어디에 있든지 항상 당신의 마음을 그립게 하는 것은

바로, 당신의 고향 냄새일 것이다.

비록 그때 못 느꼈다 해도, 어렴풋이 느껴지는 그런 포근함은

아마 고향의 품밖에 없을 거다.

이런 사랑스러운 우리 고향을 우리는 아끼고 또 보호해야 한다.

먼 훗날 우리의 후손들도 우리와 같은 느낌이 들 수 있도록

우리 모두 노력해야 할 것이다.








걸인의 삶

中 3-4 孫 德 仲

이 천지가 내 집이며

저 태양은 내 등불이고

저 달은 내 친구다.

젓가락 하나 있으면

뭐든 못먹으랴

지팡이 하나 있으면

어디든 못가랴

정처없는 내 몸은

바람따라 물따라

욕심없는 내 마음

이 길따라 저 길따라

속세에서 벗어난

이 몸과 이 마음

아무 것도 없지만

자유롭다.

나더러 어쩌라고.....

中 3-2 王 愛 玲

멀어지지도

다가오지도 않는 사람.

멀어질수도

다가갈수도 없게 하는 사람.

나더러 어쩌라고........


구 름

高 2-2 于 志 歆

닿을지도 모를 저 솜사탕은

내 입 속을 사르르 사르르

스며드는 천국.

내가 따서 맛보고 싶지만

자꾸만 멀어져 가는데

나도 따라 가고파라

남자는 그렇다면서요

中 3-2 王 愛 玲

남자는 그렇다면서요

순간순간 생각나는 말을

아무 뜻도 없이 입밖으로 내뱉는다면서요

여자는 그렇다더군요

좋은 사람의 스쳐가는 작은 말에도

커다란 의미를 붙여 가슴에 고이 새긴다더군요

남자는 그렇게

장난스럽게 말을 한다죠

농담속에 진담이 있다고

여자는 바보스럽게도

그 헛갈리는 농담을

진담으로 착각한데요.

그렇게 그저 지나가는 자신의 말에

사랑에 빠진 여자가 있을땐

남자는 기분좋은 웃음으로

자신을 과대평가한다면서요

못난 남자는 말이예요.

어떤 남자

高 1-3 王 貴 善

언제나

좁은 곳에서 땀 흘리고

고생하는 이가 있다.

반 백 년의 세월 속에서

반백의 머리칼을 가진

내게 너무도 소중한 이가 있다.

언제나 지친 기색 없이

무뚝뚝하지만 마음속에서 우러나오는

그런 웃음을 주는 이가 있다.

난 그 사람을 거역할 수가 없다.

화내며 꾸짖는 것보다

더 두려운 인자함으로

나의 잘못을 꾸짖는 이

그는 바로

나의 아버지이시다.


원(圓)

高 3-2 夘 才 萬

아무리 걸어도 아무리 달려도

아무리 바라봐도 끝을 알 수가 없네

돌아도 돌아도 항상 그 자리네

다람쥐 쳇바퀴 돌 듯이 인생은 돌아가네


우 정

初 2-4 譚 秋 錦

아주 오래 전 우리는

우정이라는 나무를 심었습니다.

아주 멋있게 말이죠.

그렇지만 오래 못 가서

그 나무는 죽어가고 말았습니다. 이유 없이......

아주 오래 전 우리는

우정이라는 새를 키웠습니다.

남부럽지 않게 말이죠.

그렇지만 오래 못 가서

그 새는 멀리 날아가고 말았습니다. 이유 없이......

하지만 지금 우리는

우정이라는 마음을 심고 있습니다.

아주 멋있고 튼튼하고 남부럽지 않게 말이죠.

이 마음은 영원히 변치 않을 겁니다.














우 정

中 3-2 呂 世 華

언제나 나를 지켜 주는 친구에게

꿈속 그림을 아름답게 그릴 수 있도록

잠깐의 휴식이 오랜 달콤함이 될 수 있도록

쉼터가 되어 주는 것

나만을 바라보는 친구에게

언제나 맑은 모습으로 친구를 맞이할 수 있도록

영원히 너만을 바라볼 수 있도록

친구의 창문이 되어 주는 것

궂은 일이 있는 친구에게

젖은 마음을 달랠 수 있도록

비오는 세상의 물기를 닦아주는

우산이 되어 주는 것

꿈을 만드는 친구에게 조금씩 커져가는 기쁨을 느낄 수 있도록

포기하지 말아라.... 격려를 해줄 수 있도록

용기가 되어 주는 것













젊음이란

中 3-1 畢 鑑 龍

내 사전에 불가능이란 없다고 말하는 것

자기보다 힘센 사람에게 맞아도 울지 않는 것

스스로 감정을 다스릴 줄 알아야 하는 것

모교를 위해 혼자라도 응원가를 부를 수 있는 것

이른 아침 도서관의 긴 대열에 서 있는 것

친구를 위해 즐겁게 헌혈하는 것

비싼 옷을 입지 않아도 싱싱한 매력이 풍기는 것

열 번 다운되어도 K.O당하지 않는 것

좌절이란 말을 자신의 일기장에 적지 않는 것

한 번 싸웠다면 승부가 날 때까지 도시락을 싸 들고 다니며 싸우는 것

잠시 울고 오래 웃을 줄 아는 것

뛰지 못하면 걷고, 걷지 못하면 기어서라도 목적지까지 가는 것

꼴찌에게 힘껏 박수를 쳐주는 것

"할 수 없습니다"라는 말을 쉽게 않는 것.
















추 억

高 1-4 潘 忠 延

가슴이 몹시 아프다

왠지 모르겠다.

서운함인지, 그리움인지, 아쉬움인지,

그저 그 애가 행복하길 바랄 뿐,

눈물이 앞을 가린다.

눈앞에 서성이는 그애와의 추억들,

너무 힘들다.

그립다.

마음 한편에 고여 있는 내 눈물의 샘

터질 것 같은 내 마음을 잡으려고

애를 쓰고 있다.

슬프다.

또 이별했다.

미안하다

나 때문에 괜한 눈물 흘린

그 애에게 미안하다.

비록 잡은 시간이었지만,

내겐 정말 소중한 추억들이 될 것이다.

눈물로 물들인 내 기억의 한 조각으로

그 애를 잊을 것이다.

사랑하던 그 앨

지울 것이다, 사랑했기 때문에 보낸 그 애......







<수필부분>

가 을

高 1-1 郭 永 俊

가을은 참 낭만적인 계절이다. 가을에는 다른 계절에는 볼 수 없는 수 많은 일들이 생기기 때문이다. 가을에만 볼 수 있는 특별한 것으로 제일 먼저 꼽을 수 있는 것은 단풍일 것이다. 한국의 명산인 설악산의 단풍이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실제로 나는 가을에 설악산을 가 보진 못 했지만, 텔레비전에서 보아 온 이 맘때의 설악산은 정말 이루 형언하지 못할 정도로 아름다웠다. 그리고 다음으로 가을에만 볼 수 있는 특별한 것은 아마도 낙엽일 것이다. 내가 일요일마다 교회에 갈때 지나가는 덕수궁 길은 가을만 되면 온통 은행나무에서 떨어진 노란 낙엽으로 수북해 진다. 수없이 많이 떨어진 낙엽을 발로 헤치면서 걷고 있을 때면 마치 내가 드라마의 주인공이라는 느낌마저 든다. 그러기에 가을은 참으로 낭만적인 계절이다.

가을은 수확의 계절이기도 하다. 봄여름 내내 열심히 땀흘리어 가꾼 곡식을 수확하는 농부들의 마음은 그 어느 때보다도 뿌듯하고 행복할 것이다. 가을 햇살을 받아 가며 고개를 숙여 가는 벼이삭을 보면서 가을은 천고마비의 계절이라는 것을 다시금 실감한다. 이와 같이 가을은 자연의 법칙대로 수많은 변화를 한다. 가을이 되면 거리에 나서는 사람들의 모습도 변화한다. 흔히 '가을 탄다.'라고 말하는데, 가을의 거리는 가을을 타는 많은 사람들로 인하여 북적거린다. 자연의 아름다운 변화와는 반대로 거리는 사람들이 버린 쓰레기들로 더러워지기 일쑤다. 산이나 들도 마찬가지이다. 가을의 화창한 날씨를 틈타서 놀러 간 사람들이 무심코 버리는 쓰레기로 산과 들은 몸살을 앓는다.

가을이 되었다고 마냥 놀아서는 안된다.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라는 말도 있듯이 가을에 책을 읽는 것이야말로 우리의 몸과 마음을 맑고 풍요롭게 만드는 일이다. 책을 평소에 많이 보는 편은 아니지만 추운 겨울이 오기 전에 책방에서 좋은 책을 한 권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마지막으로 가을은 모든 것이 새롭게 시작되는 계절인 것 같다. 이번에 고등학생이 된 나로서는 모든 일을 새로이 준비하고 마음가짐 새롭게 가져야겠다. 예전에는 무엇이든 혼자서 하긴 힘들었지만, 고등학생이 된 지금 더 이상 누구에게 의지하면서 살아가면 안될 것이다. 그러므로 이 가을에 나를 좀더 모든 일에 적극적인 사람으로 바꾸기로 노력해야겠다.

가 을

高 1-3 賀 仁 華

낙엽이 거리를 뒤덮고 단색 옷을 벗고 여러 색이 아름다운 옷으로 갈아입은 산으로 인파들이 하나, 둘 모여 들 때쯤...... 날씨는 점점 겨울로 치닫고 거리의 사람들이 쌀쌀한 바람으로 인해 겨울옷으로 하나 둘씩 옷을 바꾸어 갈 때쯤...... 하늘이 유난히 높아 보이고 은근히 겨울과 눈이 기다려지는 이때, 이때는 흔히 사람들이 독서의 계절이라고 일컫는 가을이다.

매년 이맘 때쯤 한국의 단풍 명산인 설악산. 치악산 등으로 사람들이 물린다. 이유는 나무가 겨울잠에 앞서 남겨 둔 예술품이기 때문이다. 온 산들은 여름 내내 입고 있던 녹색 옷이 노랗고 붉은 색으로 차츰 변해 가며 온 산을 예술품으로 변모시킨다. 누구나 한 번쯤 보았겠지만 정말 아름다운 풍경이다. 이것뿐만이 아니다. 날씨가 날씨인 만큼 독서 또는 공부하기가 매우 적합한 계절이다. 또한 감기도 성행하는 계절이다. 구체적으로 가을은 8월의 立秋가 가을의 시작을 알리며 시작된다. 조금 지난 후에 處暑가 다가오며 아침과 저녁 때 싸늘한 기운을 느낀다. 그후로 白露, 秋分, 寒露를 지나서 霜降이 오면서 차츰 가을이 결말과 함께 겨울의 시작을 감지한다. 이렇듯 가을은 짧은 기간을 유지하며 금새 달아나고 만다. 이렇듯 가을은 아름답고 적합한 계절이지나 빨리 떠나 버리고 만다. 우리 인간의 인생과 비슷하지 않을까? 아직 내 나이에 인생을 논하기는 부적합 하지만 인간의 젊고 활기찬 10대 20대 30대를 순식간이라 한다. 인생 중에서는 여름과 겨울에 상응하는 나이도 있고 매우 활동하기도 편하며 무엇이든지 할 것만 같은 나이는 가을의 수명과 마찬가지로 금세 지나간다는 것이다. 그렇다. 이 문장을 쓰고 있는 나 자신도 잘하지 못하며 항상 머리와 마음으로 황금 같은 이 시간을 아끼며 활용해야지...... 라고 하면서도 현실 세계에서는 역시 어려운 일이다. 이야기가 빗나간 것 같다. 이와 같이 가을은 매우 좋은 계절이기에 학생의 도리로서 이 짧디 짧은 이 계절을 잘 활용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나 역시 이 말에서 많은 부족함을 느끼기에 더더욱 열심히 해야 할 것이다.

가을이 지나가고 있다. 이 문장을 쓰고 있는 지금도 시간은 우리를 절대 기다려 주지 않는다. 이 가을은 1년을 기다려야 다시 돌아올 것이고 역시 내년도 같은 모습으로 나를 찾아올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때쯤 변해 있을 것이다. 나는 이것을 더욱 진보하는 계기로 삼을 것이다. 다른 학생에게도 권하는 바이다. 아름다운 계절인 가을 공부하기 적합한 계절인 가을인 동시에 단기간 지속되는 가을이라는 계절 속의 시간을 아끼라고. 이 시간을 사서 공부에 활용하자고 가을이 말없이 사라지듯이 우리의 좋은 나날들이 말없이 사라지기 전에......

가 을

高 1-2 孫 詩 媛

1년에는 사계절이 있다. 봄, 여름, 가을, 겨울 계절에 따라서 기후도 각각 다르다. 가을은 여름처럼 덥지도 않고 겨울처럼 춥지도 않는 그저 쌀쌀한 계절이다.

사람들은 흔히 가을을 천고마비이자 독서의 계절이라고도 한다. 가을하면 생각나는 것은 빨갛게 물든 낙엽들이다. 거리를 걷다 보면 이런 광경들을 많이 볼 수도 있고 어떤 사람들은 일부러 단풍을 보러 산으로 가기도 한다.

가을은 또한 풍년의 계절이기도 하다. 봄에 뿌렸던 씨앗은 작은 나무로 자라고 봄에 피었던 꽃들은 열매를 맺는다. 물론 밤과 벼, 과일들도 익어서 먹음직스럽게 변해 있다. 물론 가을엔 농부들이 제일 바쁘고 힘들지만 아마도 농부들은 이런 보람으로 더욱 더 열심히 일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가을에는 빼놓을 수 없는 동양 고유의 명절인 추석이 있다. 한국사람들은 추석때 차례도 치르고 성묘도 간다. 하지만 우리는 온 가족이 함께 모여 월병을 먹으면서 그 동안 못했던 얘기도 나눈다.

요즘 같은 가을엔 가을 여행을 떠나는 사람들도 많다. 특히 설악산으로 많이 떠난다. 왜냐하면 설악산은 가을 풍경으로 소문난 곳이기 때문이다. 나도 이 가을이 끝나기 전에 산으로 놀러 가고 싶다.

지금은 거의 가을이 지나갈 무렵이지만, 가을 초에는 산과 뜰에 물감을 풀어놓은 듯 풀과 나뭇잎은 새로운 옷을 입고 우리를 반기고 있다. 그래서 마음이 우울할 때 단풍을 보러 가면 한층 즐거워질 수 있을 거라고 나는 믿는다.

가을에는 이런 좋고 편안함이 있는 반면에 대학 시험이 가까운 수험생들에겐 힘들고 긴장감이 드는 계절이기도 하다. 하지만 노력을 하면 아무리 어떠한 어려운 문제가 있어도 다 풀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제일 중요한 것은 아무래도 자신의 '믿음'이 아닐까 생각된다.

나는 조금 안 남은 이 가을에 잊혀지지 않은 가을 추억을 하나 만들었으면 좋겠다.



가 을

高1-1 劉 佩 凱

따갑고도 무더운 여름 햇살은 지나가고, 이제는 조금 쌀쌀한 가을이 성큼 다가오고 있다. 아침저녁에는 늘 쌀쌀하지만 낮에는 봄 날씨처럼 포근하다.

여름이 지나서인지 다들 얇은 옷은 모두 정리하여 넣어 두고, 이제는 긴 옷을 꺼내 놓는다. 가을 달력에는 언제나 중요한 날들이 많이 있다. 며칠전 가을에 가장 큰 명절인 추석이 있었다. 추석은 정말 뜻 깊은 명절인 듯하다. 많은 친척들이 모두 한 자리에 모일 수 있도록 해주고, 또 맛있는 음식을 많이 맛 볼 수 있게 해주는 고마운 날이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중요한 날이지만 가장 중요한 일이 한가지 남아 있다. 가장 먼저 조상님께 인사 드리러 가야 하는 것을 잊어선 안된다. 추석 연휴가 끝나도 쉬고 싶은 아쉬운 마음은 생기기 마련이다.

내가 사계절 중에서 제일 좋아하는 계절은 바로 가을이다. 가을에는 오색 단풍잎들이 물들고, 덥지도 춥지도 않은 약간 쌀쌀한 날씨가 좋다. 그리고 가을이 되면 제일 바쁘게 사는 사람들은 아마 농부일 듯하다. 농부는 가을 추수를 기다리기 위해 모를 심고 가꾸고 그리하여 일년이 지나면 애지중지 키운 곡식을 수확하면 농부들은 기쁨과 보람을 느끼게 될 것이다. 물론 농부들은 벼가 커 가는 것을 바라보면서 걱정도 많이 했겠지만, 그래도 기다린 만큼 보람이 온다는 것을 믿고 보내 왔던 것이다. 이러한 가을을 생각하니 기분이 너무 상쾌하다. 그리고 더 빨리 다음 가을이 왔으면 하는 바램이 앞선다.

지금도 밖에선 싸늘한 바람이 불어오고 있다. 나 또한 긴소매의 옷을 입고 가을을 즐겁게 맞이했다. 난 추억을 많이 간직할 수 있는 행복한 가을이 좋다.

가 을

高1-1 焉 保 元

하늘은 저렇게 높고 저렇게 파랗고 별들은 반짝반짝거리며, 차가운 듯한 빛을 뿜어내고, 또한 날씨는 점점 시원해지고, 이것들은 다 그가 왔다는 걸 우리에게 알려주려 하는 것이다. 그의 이름은 바로 "가을"이다.

그가 지나간 곳이면,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들리고, 또한 사람들의 한숨 소리도 귓가에 맴돈다. 밭에 있는 벼들은 허리를 구부린 채 점점 황금빛으로 물들어 가고, 창문 밖에서는 벌레들의 가을 노래 소리에 더욱 조용하게 느껴진다.

그가 제일 좋아하는 곳은 바로 노을에 찬 초원이다. 파란 하늘에는 오색 구름이 솜털같이 이리저리 모였 있고, 차디찬 가을 밤 하늘에 보석보다 더 아름다운 별들은 곳곳에서 밤하늘의 아름다움을 나타내고 있다. 가을 바람의 초원은 가을 소리를 내고, 마치 "가을이여, 안녕!" 하는 듯이......

가을의 날씨는 거의 맑고 화창하다. 하지만 바람이 부는 날이면 더욱 사람들의 마음에 차가움을 느끼게 한다.. 비가 오는 날이면 왠지 모르게 마음이 더욱도 무거워 잠을 이룰 수 없게 한다.

가을은 슬픔의 계절이다. 하지만 그 슬픔 속에도 그의 아름다운 곳이 있고, 우리가 배울 것들이 많다. 이젠 우리 모두 눈을 감고 마음으로 그의 소리 행동 마음과 평소에 우리가 알지 못했던 아름다움을 마음껏 느껴 볼 때다. 그의 이름은 바로 가을이다.


고1이 되어서

高 1-1 楊 先 任

겨울방학을 맞이하고 이제는 고1이 된지도 반년이 지났다. 반년동안 나는 나의 꿈에 대한 생각을 자주 하게 됐다. 학교에서나 밖에서나 미래에 대한 생각을 자주 논하게 되기 때문이다.

처음 고1로 올라와서 나는 적응하기가 다소 힘들었다. 숙제는 많지 않았지만 공부에 대한 정신적 부담감이 적지 않게 들었다. 이제는 서서히 프린트 같은 것에 의지하기 보단, 스스로 해 나가야 했다. 그러나 중학생활에 익숙해져 있던 나는 선생님이 도와주시지 않으면 혼자 하지 못할 정도였다. 그리고 보통 한국학생들이나 대만에 있는 학생들에 비해 우리는 그래도 자유로운 거라고 생각했을 때, 조금 불안하기도 했다. '고2가 되면 아마 나도 그렇게 해야겠지' 라는 생각도 둘고, 고1이 되어 거의 매일 잡혀있는 시험 계획들은 나로 하여금 정신적인 피로감을 가져다 주었고 그럴수록 나의 성적은 떨어져 갔다. 공부에 집중이 되지 않았다.

우리학교는 작년부터 우리들의 성적을 올리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는 것 같았지만, 나는 그것이 더없이 불안했다. 평소시험과 진짜시험의 점수를 합산해서 평균한다는 새로운 제도, 이제는 시험전 벼락치기론 소용이 없었다. 그래서 힘들었다.

이제는 고1 2학기에 접어들었다. 힘든 생활도 이제는 차차 적응이 되어가고 있고, 진로를 확실히 결정할 때이기도 하다. 그래서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지만, 노력하기로 했다. 노력만이 힘든 생활에 적응하는 길이기 때문이다.

겨울방학

高 1-4 姜 進 昊

흰눈에 뒤덮인 거리와 아이들의 해맑은 웃음소리를 들을수 있는 겨울방학을 생각하니 벌써부터 마음이 설레인다. 수업시간에 수업은 듣지 않고 창밖을 멍하니 쳐다보기만 했다.

종소리와 함께 시작한 즐거운 나의 겨울방학은 경제위기 때문에 다소 위축되긴 했지만 그래도 더욱 의미가 있었다.

이번 방학은 실로 힘든 생활이었다. 육제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더욱더 성장한 나 자신이 대견스럽다. 방학이라고 해서 놀기만 하는 것은 학생된 도리로서 너무나 이치에 벗어난 행동이고, 또 책상앞에 앉아서 공부나 하자니 힘들어 하시는 부모님들을 차마 보기가 민망했다. 그래서 조금이나마 부모님을 돕고 싶었다. 아침 일찍 일어나서 부모님보다 일찍 가게로 나가서 청소를 했다. 그리고 도구들을 정리하고 있을 때쯤 부모님들께서 축처진 어깨를 하시며 가게로 들어오셨다. 나는 눈물이 왈칵 쏟아질 뻔 했지만 겨우 꾹 참았다. 어머니는 의아해 하지며 내게 물어셨다. "니가 여긴 무슨 일로 왔니?", "예! 이번 방학때는 열심히 부모님을 도와드릴께요!" 그때까지만 해도 곧 쓰러지실 것 같았던 어머님의 얼굴이 어느새 그랬냐는 듯이 활짝 펴 계셨다. 아마 믿음직한 아들을 둬서 기쁘셨나 보다.

일은 생각보다 힘들었다. 너무 늦게 배달해서 혼났었던 일, 또 집을 못찾아서 헤맸었던 일… 그렇게 길기만 하던 방학이 어느새 다 지나가 버렸다. 나는 계속 남아서 도와드리고 싶었지만, 학교를 가야 하기 때문에 결국은 계속해서 도와드릴수가 없었다.

방학은 생각외로 길었지만, 나에게는 너무나도 짧게 느껴졌다. 부모님을 도와드렸을 때의 그 기분은 말로 이루다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기뻤다. 더욱더 기쁜건 방학내내 신나하시는 부모님을 보았다는 것이다. 또 기뻐하시는 부모님을 보며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는 나 자신이 부끄러웠다. 그래! 이젠 학교에 가더라도 더 나은 미래를 위해서 열심히 공부해야겠다. 어머니! 조금만 기다리세요. 제가 꼭 훌륭한 사람이 되어서, 어머니를 기쁘게 해드릴께요!



겨 울

初 1-2 王 偉 立

"펄펄 눈이 옵니다. 하늘에서 눈이 옵니다." 라는 좋은 노래가 있듯이 난 겨울이 참 좋다.

거울은 아주 공부하기 좋은 계절이다. 비록 좀 추운 게 흠이지만 그래도 여름보단 천 배 만 배 나은 것 같다. 또 겨울은 낭만적인 계절. 눈이 오는 날 창문 가에 앉아 뜨거운 차, 아님 코코아 한 잔, 와- 생각만 해도 맛있을 것 같다. 그러므로 눈과 입에 행복을 동시에 느낄 수 있어.

옛날에는 겨울은 참 좋았는데, 눈도 무릎까지 오고 친구랑 길에서 눈싸움도 하고 눈사람도 만들었는데, 하지만 지금은 환경 오염에 오존층 파괴에다 정말 문제가 심해. 그래서 인제 겨울엔 눈이 안 올 지도 몰라. 더구나 이번에 나라 경제가 어려워 IMF의 지원을 받아 겨우 괜찮아 진 한국. 그래서 요번 겨울엔 어디 나가 놀지도 못할 것 같다.

겨울엔 1년 365일 중 딱 한 번밖에 없는 크리스마스가 있다. 이날은 바로 아기 예수가 태어난 날이지. 그래서 우린 모두 축복을 하지. 아이들은 겨울이 되면 모두 기다리지 '크리스마스'를, 또 산타할아버지를 기다리는 아이도......

겨울은 아주 좋은 계절이야. 또한 내가 무지무지 좋아하는 계절. 그러니 겨울의 추억을 소중히 여겨. 부디 겨울에 아름다운 추억을......


겨 울

初 1-2 于 慧 璟

겨울은 우리에게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봄에는 씨앗을 뿌리고 여름에는 열심히 일하고 가을에는 수확하고 겨울에는 저장하는 것입니다. 즉, 봄, 여름, 가을에 열심히 일하면 행복하고 편한 겨울이 있을 것입니다.

이것이야말로 우리의 인생살이 학교 생활과 똑같은 뜻을 간직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학교에서 열심히 공부하고, 선생님의 말씀 잘 듣고, 친구와 잘 사귀면 결국은 행복한 뒷날의 디딤돌이 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겨울을 간단하게 생각하는 것보다 뜻 깊게 겸손한 마음으로 맞이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고 독

高 2-5 李 家 宏

고독. 이 고독이라는 낱말은 대체 무슨 의미이기에 우리 생활에서 이토록 많이 쓰이는 걸까? 막상 고독을 논하라 하면 앞길이 좀 흐려지는 것은 사실이다. 우리의 신분은 학생이고, 도 이 학생이라는 신분에 얼마나 고독을 느낀다고 이런 제목을 주었는지...... 하지만 여러 가지의 예를 갖고 이 문장을 시작하여 나간다면 꼭 어렵다는 법은 없을 것 같다.

고독의 의미를 다시 한 번 깊게 생각해 보자. 많은 사람이 고독하면, 흔히 연인들의 사랑과 연관을 시키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이건 몹시 잘못 된 사고 방식이라고 난 생각한다. 왜, 사랑하고만 고독을 연관시키려 하는지 그 이유도 도무지 납득이 안 간다. 물론 사랑을 하고 이별을 하게 되면 고독을 느낀다든지 슬픔에 잠긴 다는지 이런 것들은 사실이다. 하지만 고독의 의미를 사랑으로 결론을 맺는다면, 만약 그렇다면 이 세상에 진정한 고독은 다 어떻게 될 것인가를 우리 한 번 생각해 봐야 한다. 고독은 꼭 이런 신분과 저런 상황에서만 느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지금부터 예를 몇 가지 들고 넘어가자. 그리고 진정한 고독의 의미를 생각해 보자. 우리는 흔히 사랑하는 사람(친지, 친구, 부모, 형제)들이 우리 곁에서 사라지면 고독을 느낀다고 한다. 고독을 느끼는 것은 좋지만 그 결과를 인생의 끝과 연결하는 사람도 드물지 않다. 물론, 사랑하는 것을 잃으면 낙심하거나 슬픔에 잠긴다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런 비관된 행동을 저지르는 것은 너무도 무의미하다. 고독은 어쩌면 새로운 시작을 뜻할 수도 있다. 다시 생각해 보자. 고독을 느낄 땐 반드시 이유가 있을 것이고 이 고독이라는 느낌이 없어지면 새로운 또 다른 느낌이 드는 것은 당연한 것이므로 이렇게 생각하면 고독은 꼭 안 좋은 것만은 아니다. 고독하면 또 빼먹을 수 없는 계절이 있다. 이름하여 가을이다. 낙엽이 떨어지고 싸늘한 바람이 우리 볼을 스칠 때면 많은 사람이 고독을 느낀다고 한다. 하지만 이건 절대적인 현상이므로 고독의 의미고 뭐고 이런 머리 아픈 것들은 생각 안하고 그냥 느낌으로만 받아들일 수 있다. 가을은 우리 모두가 공감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자 이제 결론을 맺자. 우리가 생각한 것 같이 고독은 꼭 나뿐 것만이 아니란 걸 우린 알 수 있었고 그 또한 꼭 필요한 것도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러므로 고독은 우리가 갈아 가는데 하나의 감정 표현으로 꼭 의미를 정한다면 '고독은 그냥 하나의 쓸 때 없는 생각으로 인해 우리 마음을 아프게 하는 것이다.' 라고 그 의미를 정하면 된다.

나의 미래

高 1-3 高 華 英

나의 미래는 즉 나의 장래이다. 이 지구상의 미래가 있듯이 그 안에 존재하는 나에게도 미래는 있다. 미래는 그 누구도 모른다. 이런 내가 미래에 어떤 모습으로 변할지 아무도 모른다. 어느 누구도 모르는 것이 미래이다. 그러기에 나 자신도 나의 미래를 장담할 수 없다.

어릴 적, 만화책 보기를 좋아했던 나는 '난 미래에 만화책 가게를 차릴 거야. 그러면 매일 매일 만화책을 볼 수 있을 테니까'라고 생각했다. 참 단순하고도 순진했던 나의 어린 시절, 그러나 성숙해 졌다. 이젠 더 이상 어린 시절의 내가 아니다. 지금의 난 미래를 결정하고 만들어 간다. 어느새 난 자신도 모르게 변해 있었다. 정말 궁금하다. 미래의 난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학생들을 가르치는 선생님? 집에서 살림을 하는 현모양처? 글을 쓰는 작가? 집에서 할 일 없이 빈둥빈둥 노는 백수? 그러나 난 이런 직업들을 원치 않는다. 난 미래의 내가 유명한 헤어 디자이너가 되길 원한다. 그러나 맘속으로 원한다고 다 그렇게 되는 것은 아니기에 난 열심히 나의 미래를 만들어 갈 것이다. 누군가가 말했다. '자신의 미래는 자신이 창조해 나가는 것'이라고 난 이 말에 동감한다. 그러기에 지금보다 훨씬 열심히 노력해서 내 꿈을 이뤄 갈 것이다.

난 외친다. 나의 미래, 나의 미래는 내가 만들어 간다.!


나의 미래

高 1-3 林 文 瑛

나는 미래에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지금 내가 바라는 나의 모습일까? 미래를 알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수많은 사람들이 이런 문제를 해결하려고 무단히 노력을 한다. 나 역시도 그러하다. 내가 무엇이 될는지 궁금하고 알고 싶다. 내가 바라는 나의 모습은 '의젓한 전문의가 되어 있는 나' 무슨 전문의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지금은 모든 분야에 의문과 신기함을 느끼고 있고 더우기 아직 모든 분야에 대한 자세한 지식이 없기에 결정을 하지 못했다. 그런데 요즘 들어 나의 생각이 뿌리채 흔들리고 있다. 이유는 의사가 되기 위한 길이 너무나도 험난하고 고달픈 길이라는 것을 새삼 느끼고 두려워하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할 수 있을까?' 난 이런 고달픈 욕망 즉, 의문과 신기함의 힘이 그 고달픔을 이겨낼 수 있을까?' 난 이미 나 자신의 믿음이 사라져 가고 있는 것을 느꼈다.

나의 이런 생각을 그냥 무시하고 져 버리기엔 결코 지나칠 수 있을 만한 마음의 동요라 할 수 없고 그렇다고 쉽게 판단하고 포기하기에도 마음이 여전히 허락하지 않으니, 나는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 없다. 지금 이 상태로 고2가 되어 버린다면 내가 비록 이과 의대를 선택한다 한들 집중하고 목표를 향해 노력할 수 있을까? 따라서 지금 나에게 필요한 건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분야와의 접촉과 자료를 수집하는 일이다. 그 과정에서 나는 내가 원하는 것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을 한다. 이렇게 보면 미래란 알아낼 수 있는 성질의 것이라기 보다 그 자체를 창조해 나가는 것인 것 같다. 내가 원하는 쪽으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창조해 나가는 것, 그리고 나 역시 고1이란 길지만 짧은 시간을 이용해 '나의 미래'를 만드는 과정을 밟으려 한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르다고 하지 않았던가. 지금부터 난 이 세상과의 접촉을 시작할 것이다. 물론 주위에 선생님과 학교측에 많은 도움이 기초가 되어 우리들의 힘으로는 역부족인 많은 면에서 좌절하지 않고 그때마다 따뜻한 격려와 배려 그리고 갖가지 자료로 용기를 북돋아 주어 밝은 미래가 되도록 또한 만족할 만한 미래가 되도록 후회 없는 인생을 살아가디 위한 미래를 창조해 나가는 것이기에......

낙 엽

中 3-4 王 秀 仁

나는 가을을 사랑한다. 오색 찬란한 단풍들을 사랑하고 가을의 곁에서만이 느낄 수 있는 행복을 사랑하며 또 코끝을 스쳐 가는 차가운 바람을 사랑한다.

그렇지만 가을은 슬프다. 혼자 외로이 떨어져 자신도 모르는 곳으로 가야 하는 낙엽을 볼 때 가을은 슬프다 . 자신을 지탱해야 하는 고통을 이겨내지 못하고 아무런 힘없이 떨어져야만 하는 낙엽을 볼 때 가을은 너무나도 슬프다. 이미 눈물샘이 말라 버려 울어 버리지도 못하는 가을은 창백한 갈색의 얼굴을 드러내며 슬픈 표정을 짓는다. 낙엽은 그런 가을의 마음을 알면서도 작은 반항조차 못한 채 쪼르륵 눈물 소리를 내며 떨어진다. 아무 욕심 없이 살아가는 낙엽을 세상은 왜 알아주지 못하는지 나는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

행복을 찾아 길을 나서는 사람은 자신의 그림자를 따라 달린다고 한다. 혹시 낙엽 또한 냉정한 이 세상을 벗어나기 위해 희망 아닌 희망을 갖고 홀로 쓸쓸히 헤메이는 건 아닌지 문득 그런 걱정을 해본다. 만일 정말 그렇다면 가을은 이런 말을 할 것이다. '내가 지금 무엇인가 의미 있는 존재로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내가 지금 성취하려는 것 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고. 그리고 바로 그 존재의 이유는 내가 나의 친구라는 사실 무엇보다 더 중요한 건 그 사실이 우리에게 가장 큰 의미라는 것이라고......

나는 낙엽이 짓는 아주 작은 미소를 볼 때 행복을 느낀다. 그래도 가끔은 가을을 미소짓게 만드는 낙엽이 되기를 나는 소망한다.


눈

高 1-1 楊 永 安

일년 사계절 중에서 나는 오늘 아침처럼 흰눈이 내리는 겨울이 제일 좋다. 매년 겨울마다 꼭 하늘에서 솜사탕처럼 내리는 눈, 이 눈을 보면 난 가슴속에서 포근함이 느껴진다. 흰눈은 세상을 맑게 해주고 온 세상을 흰색으로 덮어 준다. 한편으로 난 이곳, 눈이 내리는 곳에서 사는 게 너무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눈이 내릴 때마다 친구들이랑 눈싸움을 하고 눈사람도 만들고 썰매도 타고, 재미있는 놀이를 즐길 수 있다. 다른 나라는 눈을 보려 비행기를 타고 이리저리 보러 다니는 곳도 있다. 예를 들면 가까운 대만같은 곳이다. 내가 가끔가다 대만에 가면 항상 눈에 대한 질문을 꼭 받는다. 예를 들어 눈은 어떻게 내리느냐? 눈이 내리면 금방 녹는가? 심지어는 눈을 맞으면 아프지 않는가? 라는 질문도 받는다. 이런 질문을 받을 때 나는 꼭 내가 무슨 이상한 나라에서 살고 있나 하는 생각이 든다. 한편으론 이런 질문을 받는 내가 재미있기도 하다.

내 생각에 이 세상에 사는 모든 사람들이 다 흰눈이 내리면 각자의 어린 시절로 돌아가 동심을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한다. 흰눈이 내리는 이곳이 난 너무 좋다.

눈

高 1-1 王 愛 玲

하얀 눈은 괜시리 우리의 마음을 들뜨게 합니다. 온세상이 전부 새하얀 눈으로 뒤덮인다면 그 상상만으로도 황홀해지지 않나요?

이번 겨울은 그나마 몇차례 눈이 내려서 오래간만에 눈구경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예전과는 달리 이젠 눈이 깨끗하지 못해서 맘놓고 맞을수가 없어 아쉽고 속상합니다. 어떤 영화에서처럼 사랑하는 연인이 눈위에서 뛰어노는걸 보면, 부럽고 나도 한 번 저런 눈밭에서 뛰어놀아 봤으면 하고 혼자 생각합니다. 하지만 우리들의 생각과는 다르게 어른들은 눈의 낭만이 느껴지질 않는가 봅니다. 아마도 바쁜 일상과 눈으로 인한 교통 체증 때문이겠죠. 눈이 온후 지저분함과 불편함도 아름다움을 느끼지 못하게 하는 이유중 하나인 것 같아요. 그러나 눈이 내리지 않는다면 스키장의 스릴감은 어찌 맛보며 썰매 타는 재미는 느껴볼 수 없잖아요. 또 앙상해진 나무에 핀 눈꽃은 얼마나 아름다운지… 정말 없어서는 안될 겨울만의 보석인 것 같아요.


눈

高 1-4 張 惠 林

겨울이 되면 하늘에선 솜사탕같은 눈들이 내려온다. 온 세상을 장식하듯 난 그런 눈을 좋아한다. 눈이 내리면 대지는 맑고 깨끗하게 새하얀 옷을 입은 듯 그렇게 예뻐 보일수가 없다. 어릴땐 아무리 추운날에도 눈만 오면 밖으로 나가 손이 얼도록 눈싸움을 하고, 아이들과 눈사람도 만들었었다. 또 밤새도록 눈이 내린 날은 아침일찍 일어나 제일먼저 눈위에 내 발자국을 남겼다. 꼭 혼자 이 세상을 다 가진 것 처럼…아마 이런 나의 어릴적 추억들 때문에 눈만 오면 내 마음이 설레이는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런 나의 철없고 또 순수했던 시절이 그리워진다. 아이들과 눈을 맞으며 뛰어다니던 추억 또 썰매를 타고 엉덩방아를 찧던 추억까지도 모두 그립다. 비록 지금은 그렇게 할 수 없지만 그래도 눈이 내리면 마음만은 늘 동심의 세계로 돌아간다.

매년 돌아오는 겨울은 어김없이 나의 마음을 설레이게 한다. 세상을 하얗게 감싸주는 눈이 있기 때문에…

대중문화

高 3-4 沈 成 勤

인간의 정신과 사상을 지배하는 것이 과연 무엇일까? 환경, 교육, 사회, 그래도 제일 많은 영향을 끼치는 건 바로 문화가 아닌가 싶다.

문화는 여러 갈래로 구분되어 있지만 현재 우리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이 바로 대중문화일 것이다. 대중문화란 우리 대중들이 창출하고 만들어 낸 가장 솔직하고 거짓없이 우리 자신을 보여주는 문화라고 난 말하고 싶다. 사회를 대변하듯 대중문화는 사회의 변천에 따라 변해 갔고, 또한 문화의 수많은 변천에서 우리의 생활 양식 또한 변해 갔다. 대중 문화의 발달과 함께 서민들에게도 문화를 즐길 수 있게 되었고, 또한 그것에 대한 비평과 적대감을 동시에 이끌어 오게 된 것이다. 고급 문화와 대중문화를 구분해 본다면 대중문화는 보다 쉽게 접할 수 있다는 점이다. 우리에게 친근하게 보다 가깝게 느낄 수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보다 많은 문화를 직접 참여하고, 함께 공감할 수 있는 것이다. 예를 들자면 음악이나 패션, 운동과 경기 등 여러 가지 접하기 쉬운 것들로 하여금 우리에게 기쁨과 행복감을 느끼게 하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대중문화는 산업성을 짙게 깔고 전개되기 때문에 사람들이 사기만 하면 된다는 산업 주의가 끼치는 악영향을 그대로 우리가 흡수하는 것이다.

대중문화의 문제점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남이 어찌돼도 상관하지 않은 그런 이기심이다. 가수나 연기자들 같은 연예인이 바로 그렇다. 그들은 자신의 인기만을 위해, 일단 튀고 보자는 심정으로 사람들이 꺼려하는 선정적인 의상과 퇴폐적인 언어를 사용하며 심지어는 욕을 노래에 담아 인기를 누리려 한다. 하지만 그들은 그들이 하는 모든 행위에 책임을 지려고 하지 않는다. 청소년들이 그들을 모방하여 욕을 하든, 선정적인 의상을 입고 거리를 활보하든 그들에게서 오는 모든 사회적인 부작용은 그들의 관심 밖이다. 대중문화에 있어서는 안될 것들이 바로 이런 것들이라 할 수 있다.

대중문화란 우리 서민들의 진실된 모습이다 대중문화가 황폐해지면 우리 역시 질적으로 황폐해지는 것이며 대중 문화의 질이 높여진다면 그것은 우리의 의식이 한층 더 발전했다는 뜻이 될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의 우리 대중문화를 조금 더 발전시켜 우리 뿐만 아닌 외국의 눈으로도 우리의 문화가 우수하다는 걸 느낄 만큼 노력해야 할 것이다.



대중문화

高 3-4 劉 正 義

우리가 일상에서 쉽게 접하는 가요나 영화, 콘서트 등등, 이런 것들은 모두 대중들을 위해 만들어진 문화이다. 즉, 우리들이 흔히 말하는 "대중문화"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문화와 대중 문화의 차이점은 무엇일까? 쉽게 예를 들면, 우리가 문화를 떠올릴 땐 주로 예술 위주에 관한 것, 미술 전람회나 오페라 등등 高品格적인 문화를 떠올릴 것이다. 반면에 대중문화는 보통 사람들이 쉽게 즐길 수 있는 그런 문화를 생각 할 것이다. 즉, 사상의 차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대중문화는 많은 사람들을 위한 문화이므로 그에 대한 장, 단점이 있을 것이다. 대중 문화의 장점은 일상에서 자기의 목표를 위해 투자하는 시간외에 여가의 시간을 대중문화라는 사회단체를 통해 그 동안에 쌓인 많은 걱정이나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게 도움을 준다. 우리는 스트레스를 해소하므로 삶의 활력을 얻을 수 있고 많은 정보들도 나눌 수 있다. 단점은 대중문화는 사람들의 호감을 얻어야 하므로, 주로 선정적인 광고나 화면을 많이 등용한다. 만약 이런 것이 지속된다면 무방비 상태에 방출 되 있는 우리 청소년들은 그릇된 인식을 갖게 되 비행 행위나 많은 범죄 행위들을 범할 수 있게 된다.

대중문화는 우리의 생활에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올바른 태도로 대중문화의 좋은 점들은 많이 받아들이고, 나쁜 점들은 개선 해 나가 대중문화의 발달에 기여해야 한다.

방학을 보내고

初 1-2 徐 吉 全

전 겨울을 좋아합니다. 겨울엔 좀 춥긴 해도 마음만은 왠지 푸근하고, 새해가 시작되면서 나이도 한 살 더 먹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겨울이 좋은 건 기나긴 겨울 방학이 있어 평소에 읽어보고 싶었던 책도 많이 읽을 수 있고 그 동안 못 뵈었던 여러 친지들과 사촌들도 만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이번 방학에는 부모님하고 친지분들을 뵙고 새해 인사를 드리고, 또래의 사촌들과 어울려 그 동안 나누지 못했던 서로의 이야기들도 하고, 사촌 누나의 예쁜 조카도 이젠 부쩍 커져서 내 얼굴을 알아보곤 생긋 웃는 모습에 내게 친동생이 생긴 듯 마음이 뿌듯했습니다.

사촌들도 자주 보지 못하면 친구보다도 더 어색한 것 같지만, 또 한편으로 보면 이상하게 오래간만에 만나도 마음이 포근하게 느껴지는 것이 아마도 가족이라는 하나의 울타리에 혈연이라는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로 맺어진 인연이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새해 연휴 기간의 짧은 만남이었지만 즐거운 시간들이었고, 앞으로 학교에 다니면서 자주 만나 지 못할 생각을 하니 무척 섭섭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앞으로도 학교 수업 때문에 바쁘겠지만 가끔씩이라도 내 친지, 사촌들을 돌아보며 함께 즐기는 시간을 가져서 한 가족이라는 유대감을 돈독히 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방학도 중순쯤 이르러 매일 똑같은 하루를 보내며 지루함을 느끼는 내게 부모님께서 배려를 해 주시어 서울에 있는 몇 군데의 고궁들을 돌아볼 수 있도록 시간을 내주셨습니다.

방학이라는 기회를 통하여 가 보지 못했던 곳에도 가 보고 해 보지 못 했던 일들을 하게 되어 기뻤고 정말 유익한 방학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엄마! 사랑해요!

初 1-1 陳 珝 錦

저를 나으시고 길러주신 엄마 그리고 아빠. 저는 세상에서 이분들을 제일 사랑합니다!

나는 어릴 적에 아빠가 일찍 돌아가셨습니다. 그래서 엄마가 고생해서 저를 길러 주셨습니다. 매일 학교에 갈 때 엄마는 일찍 일어나서 내 도시락을 싸주십니다. 그런 엄마를 보면 너무나도 자랑스럽다! 그래서인지 학교에서 저는 우리 엄마를 친구들에게 자랑하고 싶습니다.

저희 엄마는 힘들고 외로울 때 위로해 줄 사람도 없습니다. 그래서 저희 세 남매는 늘 엄마를 기쁘게 했고 그런 엄마는 늘 우리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셨습니다.

어느 날 엄마의 머리에서 하얀 머리카락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엄마에게 물어보았습니다. "엄마, 왜 엄마 머리에 하얀 머리카락이 있어?" 하고. 엄마는 웃으면서 저에게 말했습니다. "사람은 늙으면 다 그래" 하고. 하지만 엄마가 아무리 그래도 제 마음에서는 우리 엄마는 하나도 안 늙으셨습니다. 저는 자신에게 약속했습니다. 제가 어른이 되면 꼭 엄마를 잘 모시겠다고!

엄마! 저를 이렇게 예쁘고 건강하게 길러 주셔서 정말 고마워요! 그리고 엄마, 사랑해요!

우리들이 부모님께 효도할 것은?

1. 부모님께 힘들게 안 할 것!

2. 공부를 열심히 해서 부모님께 보답할 것!

3. 늘 부모님께 건강한 모습으로 보일 것!

이상을 부모님께 보이면 그야말로 완벽한 효자 효녀!

오늘과 내일

初 1-2 柳 欣 雅

오늘과 내일. 제가 보기엔 오늘과 내일의 차이점은, 오늘은 지금, 바로 지금을 말하고 내일은 무엇이든지 미루는 일인 것 같습니다.

당신은 오늘을 좋아합니까? 아님 내일을! 전 이렇게 생각을 하죠. 내일을 더 아끼는 사람은 자기 일에 충실하지 못하고 아끼지도 사랑하지도 않는 사람이라고.(물론 안 그런 사람도 있겠지만)

사람들은 오늘보다 내일을 더 많이 써요. 저도 예외는 아니죠. 음-- 뭐, '내일부터, 내일 시작, 내일 뭐뭐......' 정말 이유를 만드는 핑계죠. 그럼 오늘은 언제 쓰죠? 음-- '오늘부터, 오늘 시작, 오늘 뭐뭐......' 내일과는 완전히 틀려요.

오늘을 쓸 줄 아는 사람은 정말 노력하는 우리들의 우상이겠죠! 이제 우리도 내일보다는 오늘을 더욱 사랑합시다.



외할머니

初 1-2 高 慧 丞

- 제가 외할머니를 쓴 이유는 저의 수호천사이기 때문입니다. -

'겨울' 이 소리만 들어도 누구든지 설레는 마음이 있을 겁니다. 겨울엔 크리스마스, 또 하얀 눈이 우릴 기다리고 있잖아요.

전 겨울이 되면 외할머니 댁이 생각나요. 저희 외할머니 댁은 경기도입니다. 어릴 적부터 외할머니를 잘 따랐다고 외할머니는 저에게 가끔 말씀해 주십니다.

저는 겨울 방학이 되면 꼭 외할머니 댁에 갑니다. 가서 할머니와 같이 고구마와 감자도 구워 먹었습니다. 그래서 전 겨울이 되면 외할머니가 제일 먼저 생각나요.

제가 여섯 살 때 외할머니 댁에 놀러갔을 때 할머니는 뜨개질을 하고 계셨습니다. 전 할머니에게 물어 봤습니다. "할머니, 지금 뭐 하세요?" 할머니가 말하길, "우리 예쁜 손녀 목도리 짜고 있지." 전 아직도 그 파란 목도리를 갖고 있습니다. 겨울이 되면 제일 먼저 옷장을 열어서 목도리를 메고 동네 오빠 언니들에게 자랑도 하고 외할머니 얘기를 해 주곤 했습니다.

제가 아플 땐 할머니가 손으로 만져만 주시면 아프다가도 나가 놀 정도로 외할머니 손은 약손이었습니다. 제일 중요한 것은 제가 어렸을 때 편식을 해서 엄마가 걱정을 하셨다고 합니다. 하지만 할머니가 만들어 주신 김장 김치덕에 제가 여태까지 잘 자랄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외할머니의 김장 김치는 저의 하루 반찬으로도 충분했습니다. 그만큼 외할머니의 김장 김치는 아주 맛있었습니다.

이렇게 외할머니는 어렸을 때부터 저의 수호천사였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목도리와 말끔히 저의 아픈 몸 곳곳을 다 낫게 해 주는 할머니의 약손, 그리고 세상에서 제일 맛 나는 김치를 해 주시는 외할머니를 전 제일 존경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제가 어렸을 때부터 가장 따뜻한 겨울 추억을 심어 주신 것을 정말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외할머니, 이번 겨울에도 꼭 찾아뵐게요. 그리고 오래오래 건강하게 사세요.


우리들이 찾는 비상구

初 1-2 王 淇 萱

비상구는 있다, 아니 없다. 잘 모르겠다. 우린 항상 긴장감 속에서 그냥 숨만 쉴 뿐이다. 세상은 점점 험해지고 복잡해진다. 우리의 눈만 가린다고 숨겨질 문제가 아닌 것 같다. 어른들은 그저 이해하는 '척'만 하고 있다. 모두 우리를 위해서라고 그러지만. 어른들은 마치 꼭 우리를 이용하려 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우린 학교에서 항상 선생님의 좋은 말들을 들어왔기 때문일까? 사회가 보여준 것은 선생님의 말과 전혀 동일하지 않다. 그런 세상 속에서 우리들의 꿈은 부서져 갔다. 언제나 이런 시달림 속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생각해 본다. 다시 한 번 생각해 본다. 폭력, 구타 등도 우리를 무섭게 만든다. 한 순간의 충동으로 아주 무서운 일도 저질러 버릴 것만 같은데......

비상구를 찾아야겠다. 행복과 평화만이 있는 그곳으로 난 떠날 것이다. 언젠가 꼭!

우리 학교

高 1-3 林 文 瑛

우리 학교는 남들이 보기엔 너무나도 평범한 아니 초라하다는 표현이 정확할 정도로 유별난 구석이 없는 학교다. 그러나 그 속엔 매우 큰 뜻이 숨겨져 있다. 화교들의 희망, 화교들의 미래가 이곳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 우리 학교는 비록 일반적인 한국 학교의 중학생 보다 더 작은 중, 고등 학생의 인원수를 보유하고 있지만 절대 무시할 순 없는 학교다.

우리 학교는 전국에 몇 안되는 화교 학교 중에서 가장 앞서가는 학교다. 첫째 뒷산에는 농구장, 운동장에는 축구장, 이동식 농구대와 핸드볼대가 있고. 실내엔 탁구장이 있다. 둘째 뒷산에서는 공원이 건립 중이며, 그곳에선 아래를 내려다보면 아름답고 깜찍한 분수대와 인공 폭포를 겸비한 연못이 있다. 그곳에선 여름엔 더위를 피할 수 있고 겨울엔 따뜻한 태양을 느낄 수 있다. 셋째 화교 학교라는 악조건 속에서도 컴퓨터실, 미술실, 음악실 시청각실등은 물론, 언어교육실과 생물 화학들의 실험실, 그리고 그에 따른 최첨단 기술 장비가 마련되어 있다. 네째 편리한 문구점과 매점이 교내에 갖추어져 있고 정수기 또한 설치되어 있다. 끝으로 집이 지방에 있는 학생들을 위한 기숙사가 있다.

지금까지는 우리 학교의 장점을 간단하게 소개한 것이다. 평범해 보이지만 절대 평범할 수 없는 시설들이었다. 그리고 지금 내가 말하려는 건 그와 같은 시설에 발맞춰 변화가 필요한 것들이다.

첫째 우리 학교엔 그 많은 운동시설들 중에서 여학생들이 치마를 입고 즐길 수 있을 만한 것이 없다는 것. 유일하다고 볼 수 있는 탁구시설 마저 단 두 개밖에 되지 않아 우리 몫은 없다. 둘째 공중전화가 단 한 대밖에 없다는 것. 학생들이 더구나 학교에서 무슨 전화기가 필요하며 어디에 하겠냐며 반문하시겠지만 일 천명이 넘는 학생을 수용하고 있는 학교로서 전화가 한 대 뿐이라는 건 성립되지 않는다. 셋째 교실에서의 세 가지 문제. 첫째, 창문 맞은 편 건물로 옮겨간 중학교 2학년을 제외한 모든 교실의 창문의 틀이 몇십 년 전 것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그 중에 고장이 나서 철사로 고정시켜 논 것이 있는데 여름이면 무더위를 참지 못한 학생들이 고장이란 것을 알지 못한 채 철사를 푸르고 열려다 쨍그랑하는 소리와 함께 유리를 깨뜨리고 만다. 겨울에 통풍을 막기 위한 것과 고장이 난 것과의 아무런 표시도 없이 방치해 논 창은 위험 천만일 수밖에 없다. 둘째. 나는 먼저 칠판을 교체한지가 얼마나 됐는지 묻고 싶다. 칠판의 수명이 아무리 길다고 해도 그 옆의 나무들은 잘 박아 주어야 하는데 전혀 그렇게 하고 있지 않으니, 답답하다. 세째 벽의 낙서들. 물론 이것은 우리들의 책임이다. 하지만 우리가 페인트를 할 수 있는 곳은 교실뿐이고, 거기다 특별히 눈에 띠게 더러운 곳이나 할 뿐더러 한다고 해봐야 색깔도 틀리고 더욱이 천장은 아예 할 수 없으니...... 학교측에서 책임지고 정기적으로 전 교실을 칠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우리 학교의 제도 중에 여학생의 머리카락은 커트나 단발머리만을 허용하고 있는데 시야를 조금만 넓혀 보자. 다른 많은 한국 학교들은 여학생이 머리카락을 단발머리 이상으로 기를 수 있다. 그 학교들 모두가 학생들에게 엄하지만 머리카락에선 자유가 있다. 그렇다고 무한정 기르자는 것이 아니라 기르되 깔끔함과 단정함을 중점으로 두고 실행하면 되지 않을까?

이러한 것들이 하루아침에 이루어지길 바랄 수 없다. 하지만, 언젠가는 꼭 바꿔야 할 것들이다. 우리 학교가 가진 장점을 더욱 빛나게 하며 단점을 보완할 수 있다면 좋겠다. 그래서 우리 학교가 한국의 중심 지역인 서울에서 자랑스럽게 청천백일기를 펄럭이고 국가를 연주할 수가 있을 것이다. 또한 우리 화교들은 이곳에서 꿈과 희망과 미래와 이상을 계속 키워갈 수 있을 것이다.



우 정

高 1-4 王 紀 莉

이 세상에 태어나서 필요한 게 사랑 외에 하나 더 있다면 우정이다. 우리가 우정과 가까워지기 시작한 시기는 아마 유치원 다닐 때 쯤일 거다. 처음 같이 놀게 된 또래 아이들과 시간이 갈수록 친구가 되어 우정을 쌓고 비록 대부분 헤어지게 되지만 결국은 또 다른 친구들을 만들어 또 다시 우정을 쌓게 된다. 따라서 참된 우정이 있고 못 된 우정이 있다. 누구나 다 참된 우정을 원하고 바랄 거라 생각한다.

참된 우정을 가지려면 우선 친구를 잘 사귀어야 한다. 그리고 친구와 같이 있을 수 있는 시간에 딸 우정은 깊어 간다. 어느 정도 깊어지면 서로를 항상 위해 주고 생각해 주고 믿게 된다. 어느 경우엔 배신을 당할 수도 있겠지만 이렇게 된 경우엔 잘 못된 우정이라고 밖에 볼 수 없다.

내게도 많은 친구들이 있다. 어렸을 적부터 지금까지도 계속 알아 온 친구도 있고 초등 학교부터 친해 온 친구들도 있고 지금 와서 생긴 친구들도 있다. 그 동안 사귀어 오던 친구 중에 중학교부터 친해진 친구들이 제일 좋은 것 같다. 순진하고 발랄하고 웃음밖에 없는 친구들이었다. 우리 5명이 같이 다니면 마음이 안 맞을 때도 있지만 항상 편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이 4명 외에 다른 기숙하는 친구들이 있다. 이 친구들도 의리 있고 재밌는 친구들이지만 학교에서밖에 못 보니 같이 다닐 수가 없다. 하지만 어려울 때 항상 도와주고 누구에게나 힘이 되어 주니 미운 짓을 해도 미워할 수 없는 친구들이다. 그리고 이들 외에도 우정이란 건 아직 없지만 친구라고는 할 수 있는 이성 친구들이 있다.

우정과 사랑은 영원히 함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살아가면서 때가 되면 사랑과 우정 사이에 갈등하는 일도 있을 거다. 이런 일이 있을 땐 나라 해도 어떻게 결정해야 할지 모를 거다. 이럴 때 사람들은 거의 사랑을 선택하지만 중국 속담에 집에선 부모님이 중요하고 밖에선 친구가 중요하다라는 말이 있듯이 우정도 꽤 사람들에게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친구라는 건 어떤 걸까? 힘들 때 옆에서 도와주고 고민 있을 때 상담해 주고 기쁜 일 있을 때 함께 기뻐해 주고 항상 나의 거울이 되어 나의 모습을 비춰 주고 슬플 때 위로 해주고 서로를 위해 주는 이런 게 친구가 아닐까?

내겐 지금 좋은 친구들이 많이 있다. 그리고 이 많은 우정들이 모두 참된 우정이라 믿는다. 그리고 친구들에게 이 말을 남기고 싶다. 3,4년 동안 쌓아 온 우정을 변치 말고 영원히 간직하자고.


우 정

高 1-4 王 銀 珠

내가 살아가면서 꼭 필요한 게 있다면 아마 그것도 우정이란 단어일 것입니다. 때론 싸우고 토라져 서로의 마음을 아프게 하지만 그래도 나의 마음은 그게 아닌데 아무 생각 없이 했던 말이 친구에게 큰 아픔이 될 줄은 몰랐는데 나의 그 작은 실수가 그만...... 하지만 다시는 나의 우정을 슬프게 하진 않겠어요. 만약에 친구가 없었다면 난 아마 너무 외롭고, 고민이 있어도 툭 터놓고 말할 친구가 없어 사는 의욕을 못 느낄 것입니다. 반대로 나에게 속마음을 부담 없이 털어놓고 얘기할 친구가 있다면 내 인생은 언제나 무지개빛이 맴돌고 있을 거예요.

내가 여기 이 학교에 전학 온지 1 년하고도 반개 월이 지났다. 그 동안 친구들과의 우정이 피고 있었고 처음 왔을 때 너무 힘들었다. 그때 내가 너무 힘들었을 때 아무 말 없이 미소를 지으며 한 친구가 나에게 편지를 주었다. 편지 속의 내용은 이러했다. '지금은 힘들어도 조금만 참고 항상 힘내라'라는 내용이었다. 나는 그 편지를 받는 순간 행복하고도 이게 바로 우정이라는 걸 느꼈다. 난 그 친구에게 답장을 주었다. 조그마한 종이에 이말 한마디를 썼다. '고마워'라는 말 한마디. 그 친구는 너무 섭섭해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난 그 친구에게 어떻게 써야 할지 몰랐다. 그저 생각나던 단어는 '고마워'뿐이었다. 그 친구에게 편지를 다시 써 주고 싶었다. 하지만 그 친구는 전학을 갔다. 너무 미안했다. 편지를 줄 기회가 있다면 난 이렇게 써 주고 싶다. '그 땐 정말 고마웠어. 또 한번 이 단어를 쓰는구나. 친구야! 살아가는 동안 어렵고 힘든 일도 많겠지만 기쁨의 웃음은 넓은 바다만큼 슬픔의 눈물은 작은 손수건만큼 그렇게 삶을 사랑하자. 그리고 성숙한 어른으로 한 걸음 한 걸음 발걸음을 내딛기로 하자.. 하얀 종이 위에 펜을 꾹꾹 눌러 적어 본다. 넌 나의 참된 친구. 나의 둘도 없는 우정임을'


유 행

高 3-4 孫 德 蘭

'유행' 사람들이 흔히 쓰는 언어가 되어 버린 이 '유행'. 요즘 사람들의 말에는 꼬리가 달린 것처럼 말끝마다 유행이란 말이 자주 따른다. 또 전부다 우리가 자주 들을 수 있는 것들이다. 감기의 유행으로 시작해서 패션의 유행, 음식의 유행, 헤어스타일의 유행, 어떤 어떤 노래 가사의 유행 등 수많은 유행들이 우리 주위에 맴돌며 또 우린 꾸준히 따라간다. 요 며칠, 하교하고 집에 가는 길에 우연히 지나가다 공터에서 놀고 있는 초등학생 같아 보이는 어린애들의 말을 언뜻 들었다. 내용은 이런 것들 이였다. "너 요즘 삐삐가 유행이야" 라는 거였다. 또 한 여자아이는 "우리 언니랑 오빠는 핸드폰이 있는데, 그것도 유행이래" 라는 것이다. 정말 어처구니없는 말들이었다. 과연 저 아이들이 내가 본 작고 어린아이들인지 내 눈과 귀를 의심 안할 수가 없었다. 유행, 유행도 좋지만 사람들은 그 유행에 너무 민감한 존재가 되어 버린 것이다. 남이 있으니 나도 있어야 하고 계절마다 옷을 바꿔 입어야 하고 의류뿐만 아니라 신발, 액세서리, 시계, 모자 등 전부다 유행이란 이유만으로 사치를 해 버리는 것이다. 꼭 모방해서 꾸미고 보여주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그걸 어떻게 멋있고 바르게 사용하느냐에 딸려 있는 것이다. 자신의 개성을 살리는 것은 어떨까. 자신만의 성격으로 유행을 만들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모방하는 유행은 오히려 자신의 외모와 성격을 죽이는 것과 같다. 외모만 중시하는 유행이 아닌 자신의 장점을 드러내는 유행이면 사치가 아닌 개성으로 만든 유행이 필수일 것이다.

유 행

高 3-4 任 慶 美

한 시대를 살아가는 데 있어 그 시대의 유행을 따른다는 건 정말 흔한 일이다. 한참 유행에 민감한 나이인 중, 고등학생들에게 있어서 '유행'은 우리 삶의 아주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그만큼 유행은 우리들에겐 없어서는 안될 존재가 됐다. 만약 그 시대의 유행을 따르지 못하는 자는 여러 친구들로부터 따돌림을 받거나 무시당하고 심지어는 놀림감이 되기도 한다. 이런 상황을 더욱 악화시키는 큰 요소는 아무래도 연예인들이 아닐까라고 생각해 본다. 연예인들은 관중들 앞에 튀어 보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 한다. 그러다 보니 자꾸 새로운 유행이 생기게 된다. 너무나도 튀는 색상의 의상이나, 헤어스타일 , 질질 끄는 통바지 이러한 것들이 청소년들을 유혹해 많은 사회적 악영향을 준다. 그래서 연예인들은 이런 복잡한 치장에 대해선 자제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 학교의 유행을 관찰해 보면 교복 치마를 좀 짧게 입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 학교에선 치마를 좀 짧게 입어도 쳐다보거나 이상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없는데 학교 밖으로 나가면 다른 학교 학생들의 눈총을 한꺼번에 받는다. 그래서 어디를 갈 때에 그 장소에 맞춰 예의를 벗어나지 않게 하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유 행

高 3-4 王 惠 莉

유행을 포괄적으로 설명한다면, 사회의 전반적인 흐름이라고 하겠다. 유행에는 여러 가지 종류가 있다. 예를 들어 옷의 디자인, 음악의 장르, 유행어와 유행하는 행동 등 정말로 그 수가 많다. 이렇게 유행이 다양한 만큼 유행의 힘이 사회단체와 개개인에 미치는 영향 또한 무시할 수 없을 만큼 크다. 그것을 간단하게 요약한다면 첫째로 이것이 유행이다 라고 단정지어 볼 수 있다. 유행이란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따라 행동하게 되는 것이다. 그 대부분의 사람들 중에서 진정 좋아해서 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단지 유행이니까 별 관심 없는 사람도 참여하게 된다. 그렇지 않으면 자기만 사람들과 동떨어졌다는 소외감 같은 것을 느끼게 되기 때문이다. 둘째로는 유행에 처지는 사람들은 소위 말하는 좋은 인상을 줄 수 없다. 너무 최신 유행을 따라 해도 그렇겠지만 너무 유행을 무시한다면 첫인상에서 좋은 인상을 남기기 어렵게 된다. 예를 들자면 같은 착한 여자 친구를 사귀더라도 패션 감각 있는 멋진 여성을 선호하지 월남치마에 옷을 잘 못 입는 여성을 원치는 않을 것이다. (요즘은 복고풍이 유행이라 촌스러운 것이 더 잘 나가지만...)

유행은 자주 변하는 것이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유행을 따르려고 발버둥치며 산다. 남에 비해 쳐져 보이고 싶지 않고 세련돼 보인다는 인상, 곧 잘 보이고 싶어서 유행에 신경을 쓰고 시시각각 변하는 유행을 받아들이기 위해 늘 온갖 준비를 하고 살아간다. 하지만 유행을 쫓는 건 나쁜 일이 아니다. 위에 설명했듯이 누구에게나 남에 비해 뒤쳐지는 것은 기분 좋은 일이 아니기 때문에 유행을 따라가는 것은 사람의 자연적인 심리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사람들은 유행을 부정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인가? 그것은 유행의 방향과도 관련이 있다. 점점 더 원색적이고 과격해졌다는 점에서 기성세대들의 이맛살을 찌푸리게 만들었다. 그리고 또 하나는 그런 유행을 맹목적으로 쫓는 사람들 때문이다. 무엇이든 자기에게 어울리는 안 어울리는 지도 모르고 최신 유행이라면 무조건 카피해 버리는 사람들이다. 그들의 온 신경은 다 유행을 쫓고 있으므로 자기의 본분조차 무시하고 소홀히 한다. 이러한 이유들로 유행은 좋지 못하게 평가되고 있다. 유행은 자연스러운 일이므로 적당히 유행을 따를 줄 알고 개성 있게 자신을 꾸미며 본분을 착실하게 수행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유행을 따른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유 행

高 3-4 孫 如 娜

신세대들이라면 무조건 유행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그것이 옳고 그름을 떠나 한 번 해보고 싶다라는 생각을 먼저 갖게 되는 요즘 신세대들 역시 큰 사회 문제이다. 철마다 바뀌는 유행, 그때마다 유행하는 의류들을 마구잡이로 구입하려 든다. 막상 구입 하고 나면 채 몇 달 안돼 쓸모 없는 옷들이 되어 버리고 만다. 왜냐하면 몇 달 후면 또 다른 스타일의 유행이 찾아오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유행이 아주 나쁘다는 것만도 아니다. 모든 일에는 다 '정도 것'이라는 것이 있다. 도를 지나친다면 이로울 것이 없다는 것이다. 의류뿐만 아니라 핸드폰 등의 고가의 물건도 요즘 학생들 10명중 한 명 꼴로 지니고 있을 것이다. 핸드폰은 그것이 정말로 학생신분에 필요치 않은 물건임에도 불구하고 그저 멋져 보인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거기다 구입하는데까진 좋다. 그 과정이 문제이다. 능력이 되는 아이들은 별 대수롭지 않게 용돈을 조금만 모으면 쉽게 살 수 있겠지만 그렇지 못한 아이들은 상처받거나 그것을 얻기 위해 타락의 길로 빠지거나 범죄의 길로 빠지기 쉽다. 좋은 것이라면 얼마든지 유행을 따라가도 좋다. 그러나 그것이 옳지 않은 것이라면 혼자 자제할 줄 아는 그런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유 행

高 3-4 賀 明 華

힙합 바지를 입고 다니면 경찰이 잡아간다는 뉴스를 나는 얼마 전에 보았다. 힙합 바지는 최신 유행으로서 청소년들 대부분이 입고 싶어한다. 그런데 왜, 부모님이나 어른들 눈에는 안 좋아 보이는 걸까? 유행을 따른다는 것은 과연 좋은 것일까? 유행의 종류는 많지만 나는 오늘날 유행하는 옷차림에 대해 글을 써 보고자 한다.

우리의 옷차림은 우리의 실제 됨됨이나 인품이다. 옷차림은 우리에 관하여 다른 사람에게 전하는 말 곧 메시지를 보낸다. 옷차림은 양심적임, 착실함, 높은 도덕 표준을 은연중에 말해 줄 수 있다. 혹은 반항과 불만을 외칠 수도 있다. 찢어진 옷차림이나 사치스러운 디자이너의 옷은 자신을 광고하는 일종의 상표처럼 이용하는 청소년이 있다. 그런가 하면 이성의 눈을 끌거나 실제보다 나이 들어 보이게 하기 위한 옷을 의도로 옷을 입는 청소년들도 있다. 그러므로 많은 청소년에게 옷차림이 그렇게 중요한 이유는 쉽게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가 옷 입는 방식은 우리가 만나는 사람에게 상당한 영향을 미치며 그들이 우리를 대하는 방식에도 크게 영향을 미친다. 많은 청소년에게 있어서 옷차림은 자주성과 개성의 표현이다. 그러나 청소년으로서의 인격은 계속 형성되어 가고 있고 계속 변화되는 상태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기 자신을 명확히 나타내고 싶지만 사실은 무슨 내용으로 어떻게 말해야 할지 잘 모를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유별나고 이상한 옷으로 치장하는 청소년이 있다. 하지만 그것은 자신의 개성을 분명히 나타내 주는 것이 아니라 부모님들을 당황하게 하고 자기 자신이 아직 장성하지 않았다는 점을 주위를 환기시키는 것일 뿐이다.

요즘 청소년들은 거의 다 유행을 따라가기 때문에, 한 친구가 어떤 옷을 입으면 자기 자신도 같은 옷을 선택한다. 그래야 안정감 및 같은 또래의 청소년과의 일체감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물론 유행을 따르고 사람들과 한데 어울리는 것을 나쁘다고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유행은 대단히 변덕스럽다. 다라서 오늘 유행하는 것은 내일이면 놀라울 정도로 순식간에 구식이 될 수도 있다. 옷자락 선이 올라가는가 하면 내려가고 바지 통이 넓어지다가 좁아지고 이렇게 유행은 빠른 속도로 변해 간다. 그러므로 유행을 따르려는 것은 헛된 것일지도 모른다. 유행을 따르는 옷이 일부 청소년들의 감탄을 자아내게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의복은 마음을 사로잡거나 진정한 친구를 삼게 해주지는 못한다. 그런 일은 "속마음"을 잘 단장함으로 이루어진다. 내적으로 아름다운 사람은 최신 유행하는 옷을 입지 않아도 다른 사람에게 항상 매력적으로 보일 것이다. 다음에는 어떤 유행이 불어와 청소년들이 앞을 다투어 상점으로 몰려들 것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독자적으로 생각해서 옷에 대한 높은 표준을 고수해야 한다. 유행을 따르는데 앞장서지 말고 (반드시 가장 뒤떨어지라는 뜻은 아니지만) 보수적인 면에 머물러야 한다. 금방 유행에 뒤떨어진 옷이 아니라 오래가는 질 좋은 옷을 구할 수 있다. 우리 자신의 옷이 대중매체나 같은 또래들이 만들어 내는 이미지가 아니라 우리의 인격을 나타내는 올바른 메시지를 보낼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유 행

高 3-4 范 文 一

TV에 나오는 연애인의 옷차림을 보면 우리도 한 번쯤은 입어 보고 싶은 생각이 들 때가 있을 것이다. 누구나 다 이러한 생각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들을 따라 하므로 자신도 그들처럼 멋있게 되려 하고 도 많은 사람들이 다 그렇게 하니 자기 자신도 그들과의 일체감과 안정감을 느끼기 위해서 따라가니, 이것이 유행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유행을 따르므로 자기 자신만의 뚜렷한 개성을 살릴 수가 없어질 수도 있다. 그러면 우리는 유행을 따라야 할까, 말아야 할까......

유행하는 옷차림은 흔히 힙합 바지나 몸에 꽉 끼는 옷들이 대부분이다. 우리는 이러한 옷들을 입어서 주위 사람들에게 불쾌감을 주어서는 안된다. 처음 만나는 사람들은 우리의 옷차림에 먼저 관심을 보인다. 만약 우리가 정숙한 옷차림을 하고 있다면 그 사람에게 좋은 인상을 줄 것이고 우리의 옷이 가수들이나 입는 (너무 크거나 너무 적은)옷을 입으면 상대방에게 별로 좋은 인상은 주지 못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옷을 선택하는 일에 있어서 대단히 신중을 기할 필요가 있다. 또 우리는 유행에 너무 뒤쳐져서 시대의 흐름에 너무 뒤떨어져도 안 좋다. 유행은 돌고 도는 것이다. 60년대에 유행하던 옷이 지금 유행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유행은 굉장히 빨리 변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너무 무분별하게 유행을 쫓는 것이 아니라 적당한 수준에서 시대의 흐름을 맞추어 나갈 수 있다. 요즘 경제 문제가 매우 심각하다. 주가 폭락, 경상수지 적자, 대외차입의 증가, 대기업의 연쇄부도 등이 있다. 우리는 이 심각한 때에 유행을 쫓으려는 무분별한 생각으로 인해 경제적 타격이 얼마나 심한지를 깨달아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남에게 좋은 인상을 주는 점잖은 옷차림을 함으로서 학교에서나 가정에서나 항상 모범이 되고 유행으로 인한 과소비를 줄이므로 더 나아가 사회에 기여할 수도 있을 것이다.

유 행

高 3-4 王 善 正

시대의 흐름에 따라 수없이 변해 가는 많은 것들이 있다. 옷 모양, 머리 모양, 심지어는 가치관까지도 그렇다. 이런 많은 변화들을 우리들은 유행이라고 한다. 60년대 이후 가수 윤복희가 몰고 온 유행이 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지금도 여자들에게 가장 인기가 있는 미니스커트이다. 그 이외에도 장발, 나팔바지 등. 그래서 70년대에는 장발 단속이라는 우스운 광경도 보게 된다. 그런데 시대가 변할수록 유행도 변해 간다. 한동안은 배꼽 티다, 핫팬츠다 노출이 심한 옷들이 유행을 하더니 요즘은 일본 문화를 많이 접해서 인지 일본 패션을 선호하는 10대, 20대들이 눈에 띄게 많아졌다. 또한 유행은 돌고 도는 것 같다. 6,70년대에 유행했었던 나팔바지며, 통굽 구두, 심지어는 촌순이 패션이라는 것까지도 물결처럼 밀려오고 있으니 말이다. 우리는 이런 것을 복고 패션이라고 한다. 그러나 기성세대들은 당연히 달갑지 않게 여긴다. 땅에 끌리는 바지, 가지각색의 머리카락, 찢어진 청바지 등 모두가 기성세대의 초점에서는 미친 아이들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은 열심히도 유행을 만들고 따라 간다. 그러나 유행은 또 변할 것이다. 그럼 또다시 우리는 그것을 따라 갈 것이다. 이제 우리는 유행을 하나의 문화라고 생각해야 한다. 그러므로 신세대, 기성세대 모두가 좋은 시선으로 인정하고 바라볼 수 있도록 가꾸고 발전시켜야 한다. 그런 날이 올 때쯤이면 아마 우주복이 유행하고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유 행

高 3-4 沈 成 勤

역사를 보면 정치나 국정의 흐름을 볼 수 있다. 그와 마찬가지로 유행은 그 시대의 문화적, 사회적인 형태나 유형을 볼 수 있기에, 유행은 그 만큼의 중요성을 갖고 있다. '유행'이라는 말은 참 매력이 있다. 왜냐하면 유행으로 인해 문화적 , 사회적, 심지어 경제, 정치까지도 영향을 끼치고 그에 걸맞은 변화를 우리에게 요구하기 때문이다. 유행은 곧 변화라는 의미를 띄고 있다. 변화에 발을 맞추어 유행을 따라가는 것이 우리에게 발전적일 수 도 있고, 그와 반대로 퇴폐적일 수도 있다. 많은 이들이 유행에 민감해 하는 것 같다. 예를 들면 요즘 스티커 사진이 유행인데, 다들 그 사진을 찍기 전에 생각해 보지도 않고 마구 찍어 댄다. 마치 신경의 반사작용처럼 그것을 찍어 대는 것이다. 이 사진이 어쩌면 하나의 추억이 될 수도 있지만, 한두 번으로 족하지 못하고 계속해서 행한다면 이것을 필시 퇴폐적이면서 낭비적인 유행일 것이다. 모두들 알다시피 요즘 사회가 너무 빨리 변해 가고 있다. 이 같은 현상의 대표적인 원인중 하나가 바로 유행이다. 급속히 변해 가는 세상 속에 더 급히 바뀌는 유행이 우리를 혼돈 속에 빠지게 한다. 혼돈 속에 살아가는 이들에겐 무언가 결정할 것이 필요하다. 이럴 때 자신이 자신을 잘 모르면 그저 남이 하는 데로 흘러가게 마련이다. 이것이 바로 우리의 정신을 황폐하게 만드는 제일 큰 요인이라고 생각한다. 이것은 우리들 자신에게 문제가 있다는 것을 의미하며 사회 전반에도 문제가 있다는 것을 말한다. 우선 우리는 우리 자신을 알아야 할 자주성이 필요하다. 이것은 최우선적으로 실현시켜야 되고 그리고 사회적으로는 빨리 뭘 하려고 하지 말고 장기적인 안목으로 변화를 시도해야 한다.

외국의 유명한 기업이나, 나라들은 자기만의 독특한 개성과 전통이 있다. 그리하여 먼 훗날인 지금까지도 명성과 사람을 지킬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우리 문화는 누가 뭣해서 약간의 명성을 쌓았다고 하면 너도나도 그것을 따라 하려고 한다. 이것은 분명한 손실이며 불행이다. 이 세상에서 남이 있어야 자신도 있지만 자신이 없으면 남이 어떻게 존재하겠는가?

유행도 마찬가지다. 자신만이 갖고 있는 개성이나 특징을 살리면 분명 유행에 뒤지지 않는 자신만의 그 무엇을 창출하며 그 어떤 유행에도 구애받지 않을 것이다.

요즘 많은 학생들이 "나는 남과 다르다"라는 선입견이 있다. 하지만 정작 그런 학생들이 밀집해 있는 곳에서 그들을 보면 누가 누군지 구별하기가 힘들다. 모두들 비슷한 차림에 비슷한 머리 모양에 심지어는 얼굴에 하는 화장까지도 비슷하다. 그렇다면 그들이 주장하는 것도 아무 소용이 없는 것이 아닌가. 이렇듯 유행에 속박 받고 있는 이 들은 남의 것을 따라 만하지 그 외에 것은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면서 남들과 똑같아지면 싫어하고 금방 그 유행에 싫증을 낸다. 이와 같은 현상이 자주 일어나므로 서 더욱더 유행에만 신경을 쓴다. 마치 유행의 노예가 된 것처럼 말이다. 그렇다고 유행이라는 것이 나쁘다고만 할 수는 없다. 물론 건전하고 유익한 유행도 무수히 많다. 하지만 지금 우리 현대 사회에서는 유행이 굳이 좋다고 할 수 없다. 긍정적인 면보다는 부정적인 면이 우리에게 훨씬 많이 부각되었기 때문이다. 유행이란 한 문화가 일시적으로 사회 전반적으로 확산되는 것을 말한다. 그것이 장기적으로 진행된다면 하나의 전통이나 사례가 될 수 있기 때문에 나쁜 유행이 오랫동안 흐른다면 그것은 분명히 사회의 병폐적인 관습이 될 것이다. 이와 같은 유행은 우리 사회에 있어서는 안될 것이다.

우린 필히 유행에 어느 선까지는 따라야 한다. 하지만 유행에 너무 집착해서는 안된다. 만일 그렇다면 하루 빨리 고쳐야 한다. 그리하여 좀더 나은 사회의 형태를 이룰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그래야만 유행이 갖고 있는 본질적인 의미를 훼손하지 않을 것이다.

유 행

高 1-2 黃 仁 娜

21세기를 바라보는 지금의 시점에서 유행이라는 단어는 우리와 너무 가까이 있다. 더군다나 항상 새로운 것과 최고인 것을 추구하려는 나와 같은 10대들과는 더 근접되어 있는 것이 유행이다.

'유행'. 나는 이 두 글자를 폭주라고 표현하고 싶다. 그 이유인즉 폭주는 즐길 때는 즐겁지만 그와 비례하는 불상사를 초례 하기 때문이다. TV 매스컴을 통해 보여지는 연예인들의 화려함, 그들의 의상, 헤어스타일 심지어는 화장법까지도...... 유행은 대중문화의 한 부분인 만큼 우리 생활 속에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유행을 선호하는 우리들에겐 개성이란 글자는 점점 사라져 가고 있는 것이다. 화려하고 튀는 것만이 꼭 예쁘고 멋진 것만은 아니다. 다만 그들에겐 자기만족일 뿐이다.

'유행'. 옳다, 그르다 단정지을 수 있는 간단한 문제는 아니다. 그렇지만, 한 곳만을 모방하는 유행보다는 자기만의 멋을 보일 수 있는 개성을 가지라고 말해 주고 싶다. 나는 유행에 둔감한 편이다. 그렇다고 해서 개성이 있는 것도 아니다. '평범함' 바로 이것이 나만의 개성이고 멋인 것이다.

이 별

高 2-3 于 小 莉

하늘이 맑아지고, 들과 나무가 노랗게 되면, 무엇인가 그립고 마음 어딘가 허전한 그런 계절이 옵니다. 그래서인지 나도 모르게 나와 이별을 한 친구가 떠오릅니다.

우리는 아주 오래된 친구였고, 서로 의지하고, 사랑하고 행복과 슬픔을 함께 나눴던 정말 둘도 없는 친구였습니다. 하지만, 만남이 있으면 이별도 있다는 말과 같이 나 역시 그 친구와 헤어져야만 했습니다.

어느 가을날, 함께 여행을 가면 세상 그 누구도 느낄 수 없는 행복감을 느꼈고 함께 걸으면서 이야기 할 땐, 가을 햇빛만큼이나 눈부신 웃음꽃이 피었습니다. 난 정말 행복했고 그 친구를 사랑했습니다. 하지만, 그 행복도 잠시 그 친구는 나만큼 나를 사랑하지 않았나 봅니다. 그 친구에겐 나 아닌 다른 친구가 생겼고 그는 그 친구와 함께 있을 때도 나하고 있을 때만큼 행복해 보였습니다. 아니, 어쩌면 더 즐거워하고 더 행복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전 떠났습니다. 아무말 없이 조용히...... 이것이 그 친구를 위한 것이라 생각했고 그래서 이것이 나에겐 행복한 이별이었습니다. 그리고 지금, 난 멀리서 그 친구의 행복한 모습을 복 수 있습니다. 내가 생각하는 이별은 꼭 슬프고 외로운 것이 아닙니다. 이별은 또 하나의 새로운 시작입니다. 그 시작은 예전보다 더 나을 수 있기 때문에 이별은 더 이상 슬픈 이별이 아닌 아름다운 이별이 되어야 합니다. 친구와 헤어져 그가 더 행복해 질 수 있다면 이별을 하세요. 꼭 그 친구를 잡고 함께 있는 것이 행복은 아니니까요. 아름다운 이별을 하세요. 더 좋은 시작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굳이 지난 일에 집착할 필요는 없습니다.

저는 친구와 헤어졌지만 지금 행복합니다. 그것은 내가 친구를 위한 아름다운 이별을 했기 때문이고, 그리고 지금 난 그 친구만큼 좋은 친구를 만났기 때문입니다.

이 별

高 3-4 李 宣 和

사람이 살아가는 데에 있어서 만남과 이별은 꼭 거쳐야 할 순리이다. 만남이 있으면 이별이 있고 이별이 있으면 또한 만남이 있다. 사람은 누구나 한 번쯤은 이별을 경험했을 것이다. 그것이 친구들과의 이별이든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이든 '이별' 이 단어 하나만으로도 모든 사람들의 마음을 뭉클하게 만든다. 나 또한 여느 사람과 다름없이 이별을 경험했고 그 쓴 아픔을 충분히 헤아리고 있다. 하지만 그 이별의 아픔을 견뎌 내지 못하고 일생을 마감해 버리는 어리석은 인간들이 종종 우리 주변에 일어나고 있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이별도 잠시 뿐이다. 새로운 만남이 언젠가는 찾아오기 때문이다. 누가 말했던가. 이별은 또 다른 만남이라고. 그 말뜻과 같이 이별을 했다고 너무 목놓아 상심할 필요까지 없다고 생각한다. TV나 영화를 보면 이별을 아름답게 표현한 것들이 많다. 하지만 대부분 사람들이 갖고 있는 이별의 인식은 고통, 아픔, 절망 이런 것들이다. 그러나 내 생각은 그것과는 좀 다르다. 이별은 기쁨이어야 한다. 진정 사랑하는 사람을 자유롭게 놓아주는 것, 그것이 이별이고 그것이 참 사랑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어렸을 땐 친구들과의 이별, 좀 커서는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 그리고 부모님과의 이별 등등......

나는 지금 또 하나의 이별을 준비해야 한다. 중학교 생활 3년, 고등학교 생활 3년 다 합해서 6년 동안의 학교 생활을 정리하고 또 다른 만남을 시작해야 한다. 같이 지내 온 친구들과의 이별을 생각하면 정말 섭섭한 마음뿐이다. 그 동안 같이 울고 웃고 떠들고 다투기도 하고 서로 위해 주며 지내던 친구들과의 이별을 준비해야 할 때가 되가는 지금의 마음은 모르는 사람은 그 마음을 헤아릴 수 없을 것이다. 물론 이별은 가슴이 아픈 일이지만 우리는 항상 이별을 준비해야 하고 이별에서 슬픔을 느끼긴 하겠지만 되도록 빨리 그 슬픔을 딛고 아픈 만큼 성숙해 진다는 말과 같이 새로운 만남을 기대하며 살아가는 지혜로운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이 별

高 1-3 劉 小 萍

모든 사람들이 이 세상에 태어나면서부터 수많은 만남과 이별을 경험한다. 비록 상대가 사람이나 애완 동물이라는 차이점만 있을 뿐 이별시에 느끼는 아픔과 고통만은 똑같은 것 같다.

1995년이었다. 아버지의 갑작스런 결정에 우리는 편하고 화목하게 살던 집을 남에게 세를 주고 외갓집이 가까운 원주로 이사가게 된 것이다. 아버지의 결정은 이러했다. 멀리 외국 싱가폴에 계신 작은 이모와 동업하고 몇 년간 떨어져 지내면서 돈을 벌어 오겠다고 그때는 이 말은 별로 대수롭게 생각하지 않았다. 나는 그때 혼자 학교에서 기숙사 생활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저 학교에 있느라고 부모님을 만날 수 없다고만 생각하고 만 것이다. 한 번도 떨어져서 지내 본 적이 없는 어머니를 생각 못하고 그저 내 생각만 한 것이다. 그 결정이 내려진 뒤 며칠이 지났다. 아버지는 서둘러서 짐을 챙기고 어머니는 다시 한 번 잘 생각해 보면 안되겠냐고 울며 메달리셨다. 하지만 그때 온갖 수를 써서 마음을 돌려보려 애썼지만 아버지의 그 돈을 벌겠다는 의지를 꺾을 수 없었던 것이었다. 아버지가 떠나신 한 두어 달이 지났다. 드디어 우리가 이사하는 날이 온 것이다. 나는 서울에 있었기 때문에 그때 그 순간이 어떠했는지 몰라도 동생의 말을 듣고는 무척 슬펐다. 우리가 기르고 있던 털이 하얀 개를 생각하니 무척 괴롭고 속이 상했다. 우리가 아파트로 이사하는 바람에 다른 사람에게 주어야 했던 그 개를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어머니의 말씀에 의하면 우리가 이사가는 날 그 개가 떠나는 우리 식구의 마음을 알았던지 눈물을 흘렸다는 것이었다. 그때 나는 이 말을 듣는 순간 무척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매일 밉다면서 내가 괴롭히던 그 개가 없으니 너무 허전했다. 그리고 작별의 인사를 하지 못한 내가 너무도 미웠고,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가끔 그 개가 아직도 건강하게 지내고 있다는 말을 들으면 마음이 무척 놓인다. 어쩌면 우리보다 더 좋은 주인을 만났다는 생각도 든다. 또 한 번은 아버지와의 이별이다. 그때 그 기억을 하면 정말 눈물이 난다.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화가 난다. 그건 아버지와 어머니께서는 나와 상의도 없이 아무 일이나 결정하는 것이다. 아버지가 떠나신 뒤 몇 달이 지나 다시 한국으로 오셨다. 나에게 이번엔 좀 오래 머물다가 가신다고 했다. 그런데 일주일이 지난 뒤 아버지께서 혼자 서울에 오신 것이다. 나는 그냥 아버지가 날 보려고 왔구나 하고 기뻐했다. 그러나 내 생각으로는 달리 아버지는 냉정하게 말씀하셨다. 내일 다시 떠나신다고...... 그 순간 정말 억장이 무너지는 듯 했다. 그래도 나는 아버지께서 슬퍼하실까봐 울지도 못하고 그저 쓸쓸히 미소만 지어 줄 수밖에 없었다. 그때가 96년 3월 14일 이였다. 그 날 내가 사탕을 받았다면 아버지께 자랑을 했기에 날짜를 기억하고 있는 거다. 그 날 나와 아버지는 단 둘이 노래방에 갔다가 저녁을 먹고 다시 학교로 돌아왔다. 아버지가 잘 있으라며 손을 흔들었다. 나는 힘없이 바라보다가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고 안녕히 가시라는 인사를 하고 뒤돌아 서는 순간 눈물이 났다. 그때가 내 생각으로는 제일 많이 울었던 것 같다.

나는 이런 저런 이별을 겪으면서 많이 성숙해 졌다는 것을 느꼈다. 만남이 있으면 이별이 있듯이 이별이 있으면 반드시 만남도 있다. 나는 그 관계를 아름답게 생각한다. 아픔만큼 성숙해질 수 있음으로......

사춘기

中 2-1 王 祖 玲

지금 우리가 바로 사춘기 시절이죠. 지금은 아주 창피한 일들이 자꾸 생겨서 걱정이 이만 저만이 아니에요. 하지만 어른들 말에 귀 기울여 보았더니 그건 모두 추억으로 남는다며 걱정하지 말라는 거예요. 자, 그럼 우리 모두 한 번 어느 언니의 사춘기 시절 이야기를 들어보시겠어요?

언니의 얘기로는 몇 년 전 언니가 중학생 때 언니의 친구 중에 공부를 너무 나도 잘하던 친구 한 명이 있었는데, 어느 날 같은 반에 전학 온 한 남자아이를 좋아하게 되었대요. 그래서 매일 수업 시간 땐 창쪽에 멋있게 폼잡고 앉아 있는 그 애를 보며 아주 황홀한 미소를 짓고 있었는데, 그때 선생님이 "이놈! 너 죽었다."하는 눈으로 그 친구를 째려보고 있었어요. 그 친구는 허둥지둥 어쩔 줄 모르고 토끼눈을 뜨면서 말했어요. '서..선생님. 전 아무것도 안 봤어요' 그 말을 듣고 반 아이들은 모두 웃고 말았는데요, 며칠 후 시험을 보는 날이라 모두들 공부에 열중하여 정신없을 무렵 친구는 여전히 아직도 그 남자를 포기 못한 채 오직 그 남자아이만 바라보고 있었어요. 시험을 마친지 한 달이 되던 날 드디어 지옥 같은 성적표가 나왔어요. 그날 친구가 하는 말이 집에 가기가 무섭다며 같이 가자는 것이었어요. 집에 도착하자 막 문을 열고 들어설 때 갑자기 베개 하나가 문밖으로 튕겨 나왔어요. 언닌 당황해서 아무 말도 못한 채 멍하니 그 친구를 바라만 보았대요, 그러자 친구가 죽고 싶다며 언니에게 기대어 눈물을 아낌없이 펑, 펑 쏟았대요. 그날 밤, 언니는 친구를 위로해 주느라 집에 갈 시간조차 없었대요. 다음날 어제 언니 친구가 얼마나 많이 울었던지 눈이 퉁퉁 부어서 그날 친구들의 웃음거리가 됐다나 봐요. 지금 그 언니가 이것을 보면 얼굴이 빨개 지겠죠? 하지만 이렇게 재미있는 추억을 만들었으니 얼마나 좋겠어요. 그럼 저도 지금부터 사춘기 시절의 추억 거리를 만들어 가야겠네요.


사춘기

中 3-4 周 美 娜

우리는 지금 사춘기와 함께 자라나는 어린 청소년이다. 어른도 아니고 어린아이도 아닌 삶의 중간을 자리 잡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항상 어른들의 따가운 눈총을 수도 없이 맞으며 살아가고, 생활하고 있는 것이다.

사춘기라는 것은, 우리를 성장하게 해 주는 하나의 과정이다. 지금 나는 그 과정을 거치기 위해 많은 고민과 생각으로 살아가고 있다. 어른들은 항상 우리가 무슨 일을 할 때면 우선 "안돼!"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우리에게 많은 압력을 주고 있다. 우리 부모님도 그 중의 하나이다. 특히 내가 하고 싶은 일은 낯선 친구들과의 펜팔, 남자 애들과의 통화 뭐 이런 것들이다. 하지만 이런 것들은 우리 엄마가 싫어하는 것이다. 하지만 난 그 두 가지를 다 하고 있다. 내 친구를 통해 알게 된 펜팔 친구는 정말 좋은 아이다. 하지만 그 애에게 전화가 오거나 편지가 오면 엄마의 기분은 안 좋다. 그래서 저 번에는 그 일로 싸운 적이 있었다. 그 다음날까지도 우리는 서로 화해를 못하고 눈치만 봐야 했다. 하지만 난 내 잘못을 인정했다. 왜냐하면 지금 아직 어린 청소년이고, 또 엄마는 나를 걱정하신 거였기 때문이다. 그때는 화가 났지만 엄마에게 미안하다고 사랑한다고 얘기했을 때 엄마의 얼굴은 어린 아이처럼 한없이 맑고 깨끗한 눈으로 날 바라보셨다. 그때에 내 기분은 정말 새처럼 날아갈 것 같았다. 어떤 때 엄마와 안 좋은 일이 생기면 우선 내 잘못을 생각하게 된다. 하지만 어떤 청소년들을 자기 잘못이 없다고 화만 내는 사람은 자기 자신에게 지는 것이다. 청소년은 사춘기가 꼭 벼슬을 딴 것처럼 부모와 무슨 일이 있으면 "사춘기잖아!"라고 말하곤 한다. 하지만 그런 태도는 당연히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언제나 사춘기라는 말은 우리에게 도움이 될 수 있지만, 나쁜 생각으로 사춘기를 보내는 사람이 있다면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새로운 결심과 다짐으로 새로운 세계를 맞이하는 것이 우리 청소년들의 숙제라고 생각한다.

스트레스

高 3-4 沈 成 勤

복잡한 현대 사회 끝없이 쏟아져 오는 정보, 이런 것에 익숙해지기 위해 우리는 수 없이 많은 압박감을 느끼며, 계속되는 긴장 속에 노심초사하며 살아가고 있으며, 삶의 무게에 지친 이들은 점점 희망을 잃어 가고 비관적으로 변해 가고 있다. 이 모든 원인 중 가장 큰 원인이 바로 스트레스다. 이 무형무색의 것이 인간을 점점 절망의 늪으로 빠지게 만들고 있다.

스트레스는 사회의 모든 면에서 접할 수 있다. 학교, 직장, 가정. 심지어 자기 자신에게도 말이다. 요즘 고등학생의 자살이 사회 문제로 새롭게 부각되고 있다. 자살한 이유는 다름 아닌 학업성적과 점점 더 치열해지는 대학 진학률 때문에 생겨난 중압감 때문이다. 그리고 스트레스로 인해 발병율이 점점 더 높아지고 있다. 그로 인해 한국은 불명예스러운 세계 제일을 달리고 있다. 그것이 바로 40대 사망 세계1위이다. 간암 발생 및 사망 세계1위이다. 두 가지 다 스트레스 때문에 생기는 불미스러운 병이다. 직장에서 받는 스트레스가 일에 대한 능률을 떨어지게 하고 비능률적인 자신을 만회하기 위해서 지나친 비즈니스를 행하고 그 일을 달성하기 위해 과음, 과식, 과로를 하는 게 일쑤이기 때문에 40대 사망률 세계1위는 어쩌면 당연할 지도 모른다. 꽃다운 나이에 꽃을 채 펴 보지도 못하고 죽어야만 했던 여학생, 한참 일을 해야 할 나이에 과로로 쓰러져 가는 40대들. 이 모든 것이 스트레스 때문이라니 정말 스트레스가 싫어진다. 스트레스, 스트레스. 이 말을 계속하고 있으면 자신도 모르게 짜증이 나고 스트레스가 쌓인다. 하지만 이 스트레스를 계속 쌓이게 해서는 안될 것이다. 오히려 스트레스를 풀어 가면서 이 스트레스를 역이용한다면 상상한 진보와 성취감을 느끼게 될 것이다. 선의 의 스트레스 즉 그 스트레스로 인해 우리가 이익을 본다면 그것은 더 이상 악의 존재가 아닐 것이다. 예를 들어 실의에 빠져 있는 이에게 약간의 스트레스는 어쩌면 그가 의욕을 되찾을 수 있는 좋은 기회일 수 도 있을 것이다.

스트레스, 어떻게 보면 이 사회에서 없어져야 할 암적인 존재일 수 있지만, 스트레스란 인간이 만들어 내기에 없어진다는 것은 불가능한 것이다. 그러므로 더 이상 피할 수 없다면 받아들여라 말처럼, 이젠 스트레스가 나쁘다고 피하지만 말고, 잘 받아들여 나 자신에게 잘 맡게 소화시켜야 할 것이다. 그리하여 나를 위해 이 사회를 위해 스트레스 때문에 일어나는 불필요한 불행이 없어지길 난 간절히 원한다.

스트레스

高 1-3 曲 壽 瑩

스트레스란 한 사람이 어떤 일에 대해 불만이 있고 해결을 하지 못하면 생기는 것이다. 요즘 사회에서 스트레스란 말은 자주 쓰인다. 즉 요즘 사회는 사람들에게 많은 부담을 안겨 준다. 요즘 사회에선 실질적인 걸 더욱 중요시한다. 부와 명예가 바로 그것이다. 어떤 경과를 거치던 그저 부와 명예를 누리면 성공한 사람이 된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이런 사회 관념 때문에 초라한 자신을 비판하게 되며 이런 생각은 곧 스트레스로 바뀌고 점점 쌓여 자신과 주위에 대한 불만이 더욱 많아진다.

스트레스의 심각성은 어디서나 볼 수 있다. 기분이 좋아지는 사탕과 껌들, 스트레스 해소를 위한 유리창 깨기 TV던지기 소리지르는 일이 늘어났으며, 제일 보편화된 건 노래방이다. 노래방에서 노래를 부름으로 해서 스트레스를 조금이나마 없애는 것이다. 하지만 스트레스가 심한 경우 정신 질환으로까지 미칠 수가 있다. 스트레스로 인한 정신 질환은 해마다 늘어간다고 한다. 그러니 스트레스는 되도록 빨리 없애는 것이 상책일 것이다.

스트레스는 특정한 나이 특정한 대상이 없다고 한다. 갓 태어난 아이 심지어는 개나 고양이도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한다. 하지만 스트레스를 받는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다. 부모님의 꾸중과 선생님의 나무람 또 자신의 성적에 대한 불만족 등이다. 그러나 결과는 모두 불 만족감에서 비롯된다. 내 생각엔 스트레스는 자신이 어떻게 일을 대처하느냐에 따라 달려 있다고 생각한다. 모든 일을 긍정적으로 또 낙관적으로 이해하고 해결한다면 스트레스는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스트레스

高 1-4 李 文 采

스트레스는 세상의 모든 사람이 다 느끼고, 소유하는 것입니다. 스트레스는 일정한 시간, 일정한 장소에서 느낄 수 없는 것이 아닙니다. 저는 자신의 생각, 성격 혹은 환경 이상 세 가지 이유가 스트레스를 만들어 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자신이 생각하고 소망하는 일이 이루어지지 않았을 때 사람들은 스트레스를 느낍니다. 또 어떤 한가지 일을 비관 혹을 낙관적으로 생각하느냐에 따라 스트레스를 받을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스트레스를 받는 원인은 그 사람의 연령에 따라 달라질 수도 있습니다. 어린이들은 자신이 원하는 것이 이루어지지 않았을 때 부모님이나 어른들에게서 꾸중을 들었을 때 스트레스를 느낄 수 있으며, 청소년들은 학업, 가정 환경, 학교 생활 등 여러 이유에서 스트레스를 느낄 수 있고, 성인들은 자신의 사업 직장 생활, 가정 불화 등 이와 같은 원인 외에 많은 곳에서 스트레스를 느낍니다. 요즘은 시대의 변화로 인해서 노래방 전화방, 나이트 클럽 등 각종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는 장소를 제공하는 것이 인기 업종으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에 따른 부작용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이러한 장소들은 대부분 성인을 상대로 하고 있으나 일부 비양심적인 사람들은 18세 미만 절대 출입금지. 라는 간판을 걸어 놓고 버젓이 청소년들의 출입을 허락하기 때문에 이 또한 심각한 사회문제로 발전되고 있는 것입니다. 물론, 이러한 장소가 나쁘다는 건 아닙니다. 이런 곳에 가서 모든 것을 잊고 노래도 부르고 춤도 추며 일상이 딱딱한 생활에서 탈피하여 자신의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것은 정당하거나 어른들이 이런 것을 청소년들을 상대로 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스트레스를 마음속에 쌓아 두지 말고 취미 활동이나 운동 등으로 지혜롭게 풀어 가야 되겠습니다.



스트레스

中 3-1 陳 實 嬉

이 세상에서 살아가기 위해 엄마의 뱃속을 박차고 태어난 이상, 수많은 난관에 부딪혀야 할 것입니다. 물론 사람마다 가지고 있는 스트레스는 제각기 다르겠지만, 어쩌면 이 스트레스라는 것이 한 발작씩 앞으로 나아 갈 수 있는 디딤돌의 역할을 할 지도 모릅니다.

우선 스트레스가 생기는 원인은 우리 학생의 경우 첫 번째로 들 수 있는 것이 바로 학업 문제일 것입니다. 매일 매일 써야 하는 숙제와 치러야 하는 시험, 이런 것들이 우리들을 지치고 힘들게 합니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학생이라면 누구나 거쳐가야 할 관문이며 모두에게 똑같이 주어진 일들이니, 스트레스 때문에 풀이 죽어 있기보다는 그것을 극복해 나가는 것이 더욱 현명한 방법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스트레스를 계속 쌓아 두었다가는 더 많은 스트레스를 가져올 수 있으므로 지나치지 않을 만큼의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오락 또한 필요합니다. 가끔씩 친구들과 교외로 나간다든지, 그 밖에도 자신만이 스트레스를 푸는 방법으로 심신을 정화시킨다면 어떠한 스트레스라도 무난히 극복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압박감이 없다면 발전 또한 없을 것입니다. 스트레스에 너무 과민하게 반응하기보다는 누구나 거쳐가야 할 하나의 인생의 관문이라 생각한다면 그까짓 것 스트레스쯤이야 금새 훌훌 털어 버릴 수 있지 않을까요? 그렇게 한 발작, 한 발작씩 현명하고 올바른 길을 향해 걸어간다면 우리의 미래 또한 밝아 질 것입니다.

자 유

高 3-4 唐 美 燕

어느 책에선가 읽었던 한 구절 '한 사람이 도시 속에서 외친다. 누가 나에게 자유를 다오.' 어느 시대를 가든 어떤 억압이나 개방적인 조건 속에서도 사람들은 늘 자유를 얻길 바랬다. 이미 민주화가 된 사회 속에서도 끊임없이 자유를 갈구하고 희망한다.

진정한 자유란 다른 가람에게 해를 입히지 않고서도 일정한 제도를 벗어나지 않고서도 자신의 주장과 생각과 행동을 제재 없이 나타낼 수 있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런 면에서 볼 때 우리 사회는 왜곡된 자유와 지나친 자유를 허용하는 것은 아닐까? 몇 몇 가수들은 그들의 가사가 사회 비판적이라 해서 제재를 받고 금지를 당한다. 물론 모두가 옳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욕설이나 외설을 쓰지 않는 이상한 사회를 진단 해보고 그 사회를 비평한다는 것이 금지되어 있다면 누가 이 시대를 말 할 수 있느냔 말이다. 그런가 하면 선생님과 중, 고등학생들의 관계는 늘 대립돼 있는 것 같다. 한 쪽에선 학교의 규칙을 또 한쪽에선 복장 허용 등의 자유를 외치고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학생 시대에 지켜야 할 규제들을 우리는 억압이라고 할 수 없다. 이 시대가 지나고 나면 더 큰 자유가 주어지고 오히려 방종과 자유를 구분 짓는 명확한 선이 되어 주기 때문이다.

자유란 결코 쉽게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격동의 70, 80년대를 겪은 운동권 학생들처럼 피를 쏟고 목소리를 모아서 민주와 자유를 향해 나아갔던 것처럼 자유는 진통의 시기를 이기고 얻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더 소중히 여겨지는 것 같다. 윗 세대가 힘들게 이뤄 낸 자유가 있기 때문에 후세대인 우리는 그 편안함을 누리고 있는 것이다. 자유와 억압을 다르게 생각해 본다면 동전의 양면과 같을 수 있다. 자신이 지켜야 할 윤리와 올바른 생각을 바탕으로 이 시대를 누리고 대한 다면 무한한 자유를 느낄 수 있고, 결코 정당치 못한 방법을 자유라고 주장한다면 그것은 다만 불편한 억압에 불과한 것이다. 그러므로 더 많은 자유가 주어지는 우리 세대는 자유의 의미를 바로 볼 수 있는 가치관이 있어야겠다.




자 유

高 2-5 崔 晸 宇

우리는 자유 민주 국가인 대한민국에 살고 있다. 그러면서 자유란 단어의 정의를 생각해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그저 지금처럼 갖고 싶은 걸 갖고 하고 싶은걸 하고 또 노력하는 만큼 대가를 얻는 것처럼 이런 일들로 제한해 자유의 참된 의미를 망각하는 것 같다. 그리고 자유로운 행복에 겨워 도가 넘쳐서 방종으로 가는 사람들도 주변에 허다하게 널려 있다. 정작 우리는 자유라는 고마운 존재를 이제는 당연하듯 생각하고 가치 없는 일 인줄 착각하고 있다. 마치 '狡砵死 走狗烹'이라는 말처럼.

많은 사람은 사람이 태어날 때부터 자유를 갖고 있고, 자유를 추구할 권리가 있다고 하지만, 역사가 증명해 주듯이 군주를 잘 못 만나거나 신분이 천하다는 이유로 행사하지 못하고 그렇게 죽어 간 사람들도 많다. 물론 현실에 사는 우리에겐 난해한 문제이지만, 누군가에게 제한되고 억압된다는 것은 정말 삶의 의욕을 저하시키는 것 같다. 수많은 소설이나 영화에도 자유를 소재로 한 작품들이 상당히 많다. 부모님 세대의 빠삐용의 마지막 장면과 우리 세대의 쇼생크의 탈출에서 탈옥에 성공한 후에 하늘을 향해 외치는 모습은 보는 이들에게 자유를 잃었던 고통의 날들에서 해방된 진정한 한 자유로운 인간이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그리고 그 장면에 의도는 아마도 십중팔구 이미 자유에 대한 관념이 없어진 사람들에게 진정으로 자유를 생각하겠끔 해주는 것 같다. 여기서 다시 우리는 자유로운 인간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그 장면에 의도는 아마도 십중팔구 이미 자유에 대한 관념이 없어진 사람들에게 진정으로 자유를 생각하겠금 해주는 것 같다. 여기서 다시 우리는 자유로운 세상에 살게 된 것을 심심히 감사해야 한다. 그렇다고 자유가 좋은 면만을 소유한 건 아니다. 자유에도 역시 양면성이 있다. 앞에서도 제가한 바 있는 삐뚤어진 가치관 때문인 것 같다. 아무 제한 없이 살다 보니 방종이라는 행동으로 가 버린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예전에 좋았던 모습을 잃고 새로운 범죄와 타락한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제한 해주는 것이 없기에 자신을 억제 못하고 모든 것을 뜻대로 하고 있어선 안되는 일들도 서슴지 않게 하는 것 같다. 그러므로 난 이제 어느 정도의 벽이 있어야 된다고 생각한다. 중국의 여러 유명한 폭군들도 방종한 생활 탓에 타락하고 결국 패망의 절차를 밟은 것이다. 어떻게 보면 우리 사람보다는 동물이 더 자유로운 것 같다. 날아가는 새들을 보면 가끔 부러울 때가 있다. 아무런 번뇌도 없이 유유히 창공을 누비며 허기지면 벌레를 잡아먹고 힘들면 쉬었다가 다시 또 어딘가 모를 곳을 향하여 계속 날개짓을 한다. 그래서 비둘기를 평화의 상징이며, 자유의 상징으로 인식한 것 같다.

우리는 사회 과목에서 자유와 인권에 대해 배운다. 세계의 정치제도가 민주주의로 기울면서 지구촌 식구들은 이제 더 이상 억압은 바라지 않고 모든 권리를 행사하면서 자유를 만끽하고 있다. 사실, 지금 공산주의로 평민들에게 주권을 주지 않는 몇몇 국가도 다수 의견 존중이라는 이치에 따라 점점 개인의 존엄성을 존중하고 제도적 변화에도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이에 따라 얼마 안되는 미래의 지구에 수십 억 인구들은 자유를 행사하며 살아갈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자유라는 의미를 보존시키고 너무 흩어지지 않아 방종을 초래하지 않고 너무 얽매이지 않아 삶을 충실하게 해서 진정한 권리를 누비고 서로의 가치를 존중해 주며 자유를 짓밟히지 않도록 참으로 풍요롭고 안정된 삶을 누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자 유

高 1-4 張 惠 林

사람들은 커 가면서 지식을 얻고 자기 주장이 생기기 마련이다. 나이가 든 만큼 성장하기에 자기만의 생각을 인정받기 위해서 자유를 얻고자 한다.

현대 사회에서는 자유를 아주 중요시한다. 그리고 사람들마다 자유를 원하는 방식도 가지각색이다. 어떤 사람은 노래로 자유를 얻고 또 반면에 죽음을 선택함으로서 자유를 얻고자 하는 사람들도 있다. 자유를 원한다는 건 매우 좋은 것이다. 하지만 지금이 우리를 돌아다보면 자유라기보다는 허망한 것을 원하고 있다고 봐야겠다. 너무도 모자랄 것이 없는 지금 자유로운 곳에 살고 있는 우리. 그렇지만 이것을 아끼려고 하지 않을 뿐더러 우리는 그저 바쁜 생활이 싫다고 단순하고 따분한 것은 싫다고 무작정 이상하고 별나게 행동하는 것이 자기만의 개성이고 자기만이 자유라는 비뚤어진 생각을 하고 있다. 만약 북한을 본다면 지금 우리는 얼마나 자유롭게 살고 있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한끼 식사도 어려운 나라 자유롭지 못하고 늘 지배를 받으며 컴컴한 세상을 살아가는 북한 사람들 그 속에 살아가는 사람들이야말로 진정한 자유를 원할 것이다. 자유. 비록 유유히 평화로운 그 무엇에도 영향을 받지 않는 뜻을 담고 있지만, 때때론 그 범위를 너무 지나치면 그 때는 자유라 할 수 없고 그저 반항이라 말 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우리 청소년들은 진정한 자유가 무엇인지 잘 생각하고 무조건 내 뜻대로 못하게 하기 때문에 나만의 자유를 달라고 하기 보단 어떤 게 옳은 것인지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고 자유 그 본래의 아름다운 의미를 저 버리지 말아야겠다.

세상의 모든 것들은 그 한도 안에 있을 때 가장 아름다운 것이다. 만약 그 선을 지나치면 아무리 좋은 것도 나쁜 영향을 줄 것이다. 그래서 자유도 그 안에서 얻으려 할 때 비로소 그 의미가 찬란하게 빛날 수 있을 것이다.

자 유

高 2-2 孫 成 夫

삶에 있어서 중요 하나 가치를 얘기해 보라면 결코 빠질 수 없을 것이 자유일 것이다. 만약 한 인간이 자유를 탈취 당하였을 때 그 삶이 허무할 것이고 또한 인간으로서의 권리와 존엄 삶의 의미와 존재의 이유, 이 모든 것을 상실할 것이다. 그렇다면 어찌 자기 자신만의 삶을 영유할 수 있겠는가? 자유를 잃어버린 삶 곧 죽음이요 공허함이다. 쳇 바퀴를 도는 다람쥐와 새장 속의 새를 보라. 그들이 삶의 진부함을 보라. 우리가 어찌 구속받는 삶을 경계하지 아니하고 어찌 자유를 갈망하고 희구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신이 부여하신 자유로운 삶의 신성함과 축복을 우린 마땅히 만끽하여야 할 것이다.

자유란 장미와도 같다. 향기롭고 매혹적이나 자칫 방종의 가시밭으로 곤두박질 칠 수도 있다. 너무나도 자유로운 지금 우린 자유의 의미를 망각하는지도 모르겠다. 지난 시절 억압받고 속박 당하였을 때 자유는 어둠 속에 빛이 더 밝을 것처럼 소중하고 찬란하였거늘 지금의 세태를 보면 자유의 길을 벗어나 방종의 구덩이로 떨어지는 것만 같다. 자유의 참 의미를 깨닫고 자유를 소중히 여기는 것을 바른 삶의 척도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바른 생활을 위해 자율에 의한 자유는 필수라 하겠다.

물질의 자유, 행동의 자유, 여러 가지의 자유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생각의 자유라고 생각한다. 그 어떤 것에도 구애받지 않는 생각의 자유로움. 자유의 극치요 삶의 자유로움을 주도하는 최상의 자유 의식이기도 하다. 우리는 세속의 탐욕으로부터 자유로워야 하겠고 세사의 부귀영화 그 모든 유혹을 떨치고 자유로운 생각을 통해 진정 자유로운 삶을 반드시 구현해야만 한다. 우리 모두 신실하고 충만한 그리고 행복한 삶을 위해 진정한 자유를 소유하는 그런 멋진 사람들이 되어야겠다.

자 유

高 1-1 王 愛 玲

자유... 어쩌면 이것은 한 인간에게 있어 제일로 소중한 부분일지 모른다. 만약 이 세상엔 아무런 자유도 느릴 수 없다면 과연 삶이 어떨지, 생각만으로도 끔찍하다. 새장 속에 갇혀 있는 새들을 비유해 보자. 야생에서 자연과 함께 살아야 할 새들을 오직 사람들의 욕망 때문에 새장 속에 가둔다면 사람들이야 노래 소리와 예쁜 모습에 즐거울지 몰라도 새들 입장에선 얼마나 괴로운 일인가. 입장을 바꿔 생각해 보자. 매일 비좁은 공간에서 주인이 주는 사료를 먹으면 제대로 날수도 없고 정말 끔찍하지 않은가. 어떻게 생각해 보면 사람들은 자유를 얻기 위해 일을 하는지도 모른다. 일을 하면 그에 대한 대가를 얻게 되고 또 그래야 그것으로 집과 입을 것, 먹을 것들을 살수 있다. 일도 하지 않고 남의 것을 탐내는 사람의 대가는 바로 자유를 빼앗기는 것이다. 왜, 죄를 지으면 자유를 빼앗길까? 그 이유는 앞에서도 말했듯, 사람에겐 자유가 제일 소중하기 때문일 거다. 좀더 신중히 자유란 주제를 다룬다면 난 이렇게 생각한다. 물론 개개인의 자유도 중요하지만 어느 정도의 규칙은 있어야 한다고 자신의 자유가 중요하듯 남들 역시 그렇다. 자유의 나라 미국. 그러나 과분한 자유 때문에 사람들을 쉽게 죽이고 물건을 갈취하는가 하면 학교에서 마저 폭력이 심각하다. 그래서 자유도 중요하지만 적당한 규칙과 법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남의 자유를 존중해 주고 규칙을 잘 지키면 다른 사람들 역시 당신의 자유를 뻬앗아 가지 못할 것이다.

추 억

高 1-2 黃 仁 娜

내게는 아침 햇살처럼 예쁘고 아름다운 추억이 있습니다. 그와 더불어 그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참으로 소중한 누군가가 있습니다.

친구야, 기억하니?

우리 5학년 때 봄 소풍 말이야. 그때 난 참 즐거웠어. 너와 그리고 내 친구와 함께 했던 그 하루가 나는 아직도 생생히 기억이 난다. 그날이 처음 너와 얘기를 나눈 날이었어. 너도 기억해 준다면 좋겠지만, 기억이 안 난다면 뭐 하는 수 없지.

소풍가던 버스 안에서 내 친구들이 괜한 장난을 하여 너를 바로 내 뒤에 앉게 하였지. 나는 속으로 참 기뻐했던 기억이 나. 그 후로 우리는 얘기도 많이 하고 애들한테 장난도 치러 다니고 그랬었는데...... 처음 지낸 친구 같지 않았었어. 아주 오래된 친구처럼 푸근한 느낌도 들고 귀여운 남동생 같았는데...... 그날이 지나고는 예전과 같이 말 한 번 제대로 못하는 사이가 되어 버리더구나. 처음엔 너무 아쉬웠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지금 이대로가 좋다는 생각이 들어. 그냥 서로 보며 미소 지을 수 있는 지금이 나는 좋다.

내 소중한 친구야!

언제나 무얼 하며 지내든 널 기억하는 내가 있음을 알아주렴. 그리고, 늘 행복했으면 하는 내 작은 바램이 꼭 이루어지길 바래.

널 아끼는 친구로부터

추 억

高 1-2 李 雪 玉

난 이맘때만 되면 썩 좋지 않은 추억이 떠오른다. 그 일은 나에게 큰 상처를 안겨 주었다. 그리고 그 흔적이 아직 남아 있어 때론 내 마음을 아프게도 한다.

그 일은 중학교 때 있었다. 흰눈이 소록소록 내린 다음날 아침 아버지와 나 그리고 두 동생과 함께 차를 타고 등교 길에 오르고 있었다. 전 날에 눈이 온 이유로 길은 꽁꽁 얼어붙어 있었고, 모든 차량은 안전을 주의하며 운행하고 있었다. 고가에 올라 길이 막혀 거북이 운행을 하고 있었던 중 반대 방향에 차 사고가 나 가드레일을 넘어 운이 없게도 우리 차 위에 떨어진 것이다. 우리는 한순간에 봉변을 당한 것이었다. 한 동안 눈앞이 캄캄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앞 유리는 다 깨져 있었고 두 동생은 코피와 약간의 외상을 난 온통 피투성이였다. 눈물인 줄 알았던 액체가 피였던 것이다. 내 얼굴 그리고 목 부위에는 심한 고통이 있었다. 살이 까지고 유리 조각과 피로 범벅이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우리 아빤 에어 빽이 터진 관계로 얼굴과 상체는 아무 이상이 없었지만 하체는 차가 찌그러져 거의 안보이다시피 했다. 난 그 자리에서 겁을 먹고 '어떻게', '너무 아파', '엄마, 아빠'를 부르며 울고만 있었다. 그 후 20분 뒤에 구급차가 왔다. 그러나 그 사람들은 우선 구하지는 않고 사고 원인을 먼저 알아보는 것이었다. 난 그것을 불평하지 않고 기다렸다. 그게 원칙이니깐, 그러나 우리에게 물어만 대고 차에서 꺼내 주질 않는 것 이였다. 우리에 관한 사항은 병원에 가서도 알아 볼 수 있는 것이었는데. 난 아프고 춥고 그 상황에선 눈물만 나는 것이었다. 얼마 뒤 우린 병원으로 수송되었고 아빠는 수술을 받았다. 난 그 병원에선 안된다며 다른 병원에 가야 한다는 것이었다. 난 다른 병원으로 또 수송되었고 그날은 그렇게 마감되었다. 난 병원에 입원해 있는 동안 많은 것을 깨달았다. 가족 그리고 건강의 중요성을 이 일로 통해 나는 깨달았다. 그리고 나와 아빠와의 관계는 더 친밀해졌다.

이것은 분명 불행한 추억이지만 나에게는 슬픔만 주었던 것은 아니다. 이 일로 인해 나와 아빠의 사이에는 더욱더 끈끈한 정이 이어졌고 , 매일 같은 일 비슷비슷한 경우의 추억만 남겨 준 것이 아니라 이런 불행 속에서 싹트는 정의 추억 잊으려 해도 못 잊을 추억이 남겨진 것이다. 나에겐 이런 소중한 추억이 있다.

추 억

高 1-2 王 梅 馨

사람이라면 누구나 하나쯤 추억을 간직하기 마련. 그 추억을 소중히 간직하려는 사람이 있는 반면에 그 추억으로 아파하고 고통스러워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사람이라면 누구나 아름다운 추억을 만들어 나가려고 노력하는 존재가 아닌가. 나 역시 노력하는 중의 한 사람이다.

내가 가지고 있는 추억...... 누구나 그렇듯이 나 역시 어린 날의 추억이 제일 순수하고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난 어린 날의 추억을 얘기하려 한다.

어린 날의 난 집과 학교(국민학교)가 먼 관계로 항상 1시간 이상 버스를 타고 다니는 형편이었다. 집이 멀고 마땅히 말동무 하나 없이 등교를 해야 했던 난, 창가를 보며 지나가는 곳곳에 아침 인사하는 게 전부였다. 그러나 항상 하교 할 때면 많은 친구들과 함께 웃고 떠드느라 정신이 없었다. 가끔씩은 기사 아저씨한테 야단도 많이 맞았지만, 그래도 난 하교 길이 즐거울 따름이었다. 비록 종점까지 남아야 했던 나였지만...... 가금은 차가 늦게 와서 기다리는 것에 짜증을 부리던 나. 친구 없이 혼자 타고 올 때면 지루함을 못 이겨 꾸벅꾸벅 졸던 나. 그 버스가 너무도 그리울 때가 많다. 하루는 동전 오백 원 짜리가 전부였던 난 그것을 내고 버스를 타는 게 얼마나 안타까웠는지 집으로 향하는 동안 내내 안타까움과 쓰라림 뿐이었다. 그 당시 만해도 어린 나한테, 동전 오백 원이 얼마나 큰 돈이었는지......

얼마 전 난 대전으로 내려가 그 버스가 다니던 그 길로 다시 집을 향하게 되었는데, 그때는 크게만 느껴지던 버스가 왜 그리도 작아 보이는지, 매일 아침 인사에 지겹게만 느껴지던 그 길 하나 하나가 왜 그렇게 반갑고 정답게 보이던지..... 그저 난 그 길로 가고 있는 버스가 고마울 따름이었다.

이것이 나에게 있어 가장 아름다운 추억이라고 할 수 있는지 잘은 모르겠지만 그래도 나에게 있어 너무나도 소중하다. 지금 이 시간에도 추억을 위해 열심히 노력하는 사람이 있지 않을까? 아니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난 참다운 추억을 향해 노력할 것이다. 아름다운 미래를 위해!




추 억

高 1-3 宋 啓 玉

사람이라면 누구나 자기만의 아름다운 추억이 있기 마련이다. 물론 그와 반대로 슬픈 추억도 있을 것이다. 매년 이만 때쯤이면 나의 기억 속에도 아름다운 추억이 떠오른다.

몇 해전 나의 생일이 다가올 때 내 가장 친한 친구 몇 명은 나를 위해서 특별한 선물을 준비해 주었다. 바로 라디오 방송국 어느 프로그램에 엽서를 보내서 나의 생일을 축하해 주려고 한 것이다. 방송을 하는 그 날, 우리는 제 각기 자기 집에서 라디오를 듣고 있었다. 엽서 소개를 하는 순간 순간마다 우린 긴장을 하고 귀를 기울이며 유심히 듣고 있었다. 그러나 그 프로그램이 시작했을 때부터 끝날 때까지 내 이름은 나오지 않았다. 다음날 우린 모두 실망한 표정으로 학교에 나왔다. 친구들은 모두 나에게 미안하다고 계속 말했다. 아마도 엽서를 너무 늦게 보낸 것 같다고 하면서. 하지만 난 기분이 좋았다. 이렇게 날 생각해 주는 좋은 친구들이 나의 곁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 일이 지난지 며칠 안된 토요일 난 친구들과 케이크를 준비하고 근사한 생일 파티를 하고 너무나도 재미있고 즐거운 하루를 보냈다. 하지만 지금은 모두 반이 달라져서 연락도 하지 않고 만나지도 않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이 추억을 영원히 가슴 속에 간직할 것이다.

이와 같이 아름다운 추억은 우리를 미소 짓게 만들고 기분 좋게 해 주는 것 같다. 물론 지금은 말 그대로 "추억"이 되어 버렸지만 우리에게는 너무나도 소중한 우리들의 삶을 돌이킬 수 있는 아름다운 기억이기 때문이다.


추 억

高 1-4 鄒 德 建

행복, 나에겐 어울리지 않을 것이다. 아마 다들 날 이상하게 생각할 것이다. 평상시 나의 모습은 항상 웃는 얼굴 그리고 거의 사이코적인 활발한 행동 방식. 보기엔 사는 게 행복해 보일 것이다. 하지만 그건 겉모습. 나에겐 마음 아픈 옛 과거가 있다. 그건 국민학교 때였다. 부모님 따라 한 어르신의 생신을 축하하러 연회장으로 갔다. 운명은 누구도 모른다. 그 곳에서 난, 내 생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날 이해해 주는 한 여자아이를 만났다. 그녀의 이름은 기억나지 않는다. 이유는 우리 서로가 이름을 알려주지 않았기에 우리의 첫 만남은 너무 어색했다. 그녀의 어머니는 엄마의 오랜 친구. 어머니와 이야기를 하다가 문득 날 보면서 어머니한테 물었다. 아들이냐고. 그리고 내 손을 잡으며 한 여자아이한테 끌어다 자기 딸이라고 사이좋게 지내라며 가셨다. 처음엔 서로 말 한마디 없이 앉아만 있었다. 결국 그 아이가 먼저 말을 걸었다. 처음에 여자아이는 주춤하다가 결국 점점 친해졌다. 연회가 끝나고 나와 그녀는 서로가 친구? 그녀는 나보다 한 살 어렸고, 날 오빠라 불렀다. 난 그녀를 내 여동생으로 여겼다. 가끔가다 어머니께서 친구 집에 가실 때 나를 데리고 갔었다. 그리고 자주 그녀를 만나곤 했다. 우린 항상 말 한마디 없이 서로 마주 보고만 있었다. 하지만 서로가 서로의 마음을 알 듯 우리의 미소가 서로의 마음을 감쌌다. 언제부터인지 난 그녀에게 말 할 수 없는 감정을 느꼈다. 아무래도 그녀를 좋아하는 것 같았다. 이러한 행복도 잠시. 난 금방 국민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에 올라왔다. 그리고 그녀와의 소식도 끊어졌다. 어느 날이었다. 하루는 집에 돌아와 보니 문득 책상에 한 장의 전화 번화가 적힌 메모가 남겨졌다. 그리고 9시까지 전화하라는 글과 함께. 난 엄마 몰래 전화를 걸었다. 전화를 받는 상대방의 목소리는 여자아이었다. 그것도 기쁨에 찬 여자아이 목소리. 처음에 생각나지는 않았다. 하지만 곧 소리의 주인이 누군지를. 바로 내가 여동생으로 생각하는 그녀였다. 난 흥분한 나의 감정을 참으면서 그녀에게 말했다. 보고 싶었다고. 결국 그녀는 나에게 시간을 좀 내 달라고 말했다. 다음날 오후 우리 집 근처에서 우리 둘은 만났다. 이게 얼마나 오랜만인지...... 난 저절로 그녀의 손을 잡아다 내 가슴에 묻었다. 너무 오랜만에 그녀를 봤다. 그녀는 많이 성숙해 있었다. 그리고 더욱 말이 없었다. 하지만 그녀는 내가 이렇게 하는 것을 말리지 않았다. 그날 이후 그녀는 더 이상 나한테 연락을 안했다. 나는 그녀를 그리워하면서 학교를 다녔다. 운명은 결국 우리들을 갈라놓았다. 어느 날 어머니께서 그녀가 병에 걸려 영원한 안식을 했다는 소식에 난 방에 들어가서 눈물을 흘렸다. 할말이 없었다. 한 가수의 노래가 생각났다. 왜 하늘은 그녀를 내 곁에서 빼앗아 갔을까? 도대체 왜?

요즘 그녀가 더욱 그립다. 그녀가 세상을 떠난 후, 난 날 이해해 주는 유일한 사람을 잃은 것이다. 결국 난 이른바 사이코가 된 것이다. 그리고 난 내 감정을 감추는 법을 배웠다. 그래서 날 모르는 사람은 날 너무 냉혹한 사람으로 생각한다. 지금 학교에 사이코란 말을 듣는 사람은 나까지 합해서 8명. 서로 다 그들만의 슬픈 과거가 있기에. 우리들은 결국 竹林八賢이란 써클을 만들었다. 여기서 난 다시 날 이해해 주는 사람을 만난 것이다. 하지만 난 그래도 어딘가 허전한 곳이 있다 무언가가 모자란 그런 느낌.

옆 사람들은 항상 날 이상한 사람으로 인식한다. 난 동물중에서 늑대를 좋아하고, 그리고 어두운 밤을 좋아한다. 특히 비가 내리고 어둠이 감싼 밤이면 그리고 孤獨을 좋아한다. 그녀가 떠난 후 난 실의에 빠졌다. 그녀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내가 진심으로 아끼던 여자아이이기 때문이다.

비가 오는 밤이면 난 창가에서 밖을 보며 그녀를 생각한다. 이 세상에서 날 유일하게 이해해 주고 날 좋아했던 그녀. 내 생에서 그녀만큼이나 내 마음을 흔들어 놓은 여자아이는 없었다. 그녀는 나의 모든 것.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진심으로 한 여자아이를 받아 들인 건 그녀가 바로 그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할머니 사랑해요!

初 1-2 張 慶 惠

방학 때, 우리 가족은 대전에 내려가서 외할머니를 만나 뵈었다. 외할머니가 많이 위독하시기 때문이다. 외할머니를 보신 후 엄마는 슬픈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렇게 대전 집에서 하루를 지내고 다음 날에 서울에 올라와 짐을 다 챙기고 그 다음날로 대전에 또 내려갔다. 하지만 외할머닌 집에 안 계셨다. 큰외숙모가 병원에 이미 모셔 갔던 것이었다.

병원에 가 외할머니를 봤을 땐 전혀 의식이 없었다. 하지만 좋은 점도 있었다. 집에 계실 땐 우유도 잘 못 삼키셨는데 병원에 오니 죽도 드시게 되었다. 기분이 참 좋았다. 대소변도 편히 하시고, 병원에 오길 참 잘 했다는 생각이 자꾸만 들었다. 하지만 의사 선생님이 그러시길 환자가 노인이라서 좋아지시더라도 언제 돌아가실 지 모른다고 했다. 그래서 항상 마음에 준비를 하고 있으라고...... 우린 할머니와 더 있고 싶었지만 동생 경진이가 너무 어려 병원에 오래 있으면 폐병 걸리기가 쉽다고 걱정되어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이튿날, 집에서 동생과 졸고 있는데 엄마한테서 갑자기 전화가 왔다. 할머니가 오늘 밤 안에 돌아가실 지 모르니 옷 많이 입고 빨리 병원으로 오라는 거였다. 나는 눈물이 나려고 했지만 꼬-옥 참고 그저 빨리 가고 싶은 심정에 어찌할 줄을 몰랐다.

병원엔 언제 도착했을까? 내가 서 있는 곳은 병원 안 입원실이었다. 할머닌 아주 고통스러우신 것 같았다. 도대체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모르는 나는 마냥 화장실로 걸어가 거울을 보고는 울기 시작했다. 할머니가 너무 불쌍해 보였다. 그렇게 몇 시간이 흐른 뒤 담당의사가 들어와 말씀하셨다. " 진찰 결과가 나왔는데요. 지금 왼쪽 폐는 완전히 망가진 상태고 호흡도 어렵게 어렵게 하시고...... 얼마 못 사시겠는데요." "설날이라도 지내시고 돌아가시게 할 순 없나요?" 엄마가 물어 보셨다. 그러자 선생님이 "저희도 어떻게 할 순 없지만은 조금이라도 더 사시게 하시려면 몸 속에 호흡을 도와주는 장치를 넣어야 하는데요" 그러자 "해 주세요" 하고 엄마가 대답하였다. 할머니는 중환자실로 옮겨지셨다. 할머니를 뵙기 위해 위생 가운을 입고 손도 다 소독했다. 그래야 할머니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중환자실에 들어갔을 때 나는 정말 긴장됐다. 그곳엔 죽어 가는 환자들이 많이 있었다. 난 할머니에게 "경혜가 왔어요" 하고 조용하게 말했다. 그러자 할머니가 눈을 뜨셨다. 무언가 말씀하시고 싶은 것 같았다. 그렇게 나는 그냥 할머니에게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하고 간단하게 인사를 하고 나왔다. 뭔지 모를 느낌이 내 온 몸을 감싸고 있었다. 시간이 지나 밤이 되었다. 우리 가족은 모두 긴장을 하였고 그저 의사 선생님이 오시기를 바랬다. 우리의 마음을 아시는 듯 선생님이 오셨다. "오늘은 무사히 넘기셨고 몸도 많이 좋아지셨어요." 우린 좋아서 마치 하늘을 나를 듯 좋았다. 근데 의사 선생님의 표정은 뭔가 걱정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꾸물꾸물 하다가 말하기를 "저, 그런데 환자가 이렇게 갑자기 좋아지시는 건 돌아가실 때가 되었다는 현상이라서 그리 기대는 하지 않는 게 좋을 겁니다. 저 그럼 이만......" 그렇게 의사 선생님은 이 말을 남기고 돌아가셨다. 그러자 분위기는 갑자기 변했고 그냥 무슨 생각에 잠긴 듯 멍하게 앉아 있었다. 몇 분이 지나고 우린 집으로 돌아와 짐을 다 챙겼다. 왜냐하면 우린 내일 오후에 다시 서울 집으로 돌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다음 날 우린 할머니를 마지막으로 보고 가기로 했다. 병원에 도착해서 할머니를 뵈러 차례차례로 위생가운을 입고 손도 깨끗이 소독하고 중환자실에 들어갔다. '할머니 죄송해요!' 하고 마음으로 외쳤다. 그런 다음 나와서 차를 탔다. 역시 분위기는 심각했다. 하지만 다들 힘을 잃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것 같았다.

"출발!!!" 소리와 함께 우리 가족은 서울을 향해 갔다. 할머니를 놔 두로 간다는 게 더욱 미안한지 마음이 좀 안타까웠다. 만약 할머니가 말을 들을 수 있으면 제일 먼저 이 말을 하고 싶다. "할머니! 사랑해요!"

행 복

高 1-3 史 安 娜

'행복' 이 단어는 일상 생활에서 흔히 사용된다. 그러나 전과 달라진 현대 사회 '물질만능주의 사회'에서 '행복'은 주로 큰 돈, 혹은 큰 선물 같은 물질에서만 얻어지는 것 같다. 그렇다면 '행복'은 과연 물질적인 것에서만 얻어지는 것일까? 물론 아니다. 비록 작은 일이라도 상대방의 깊은 사랑과 정성이 느껴지고 마음속에서 피어오른 기쁨으로 코끝이 찡 할 때 그때 비로소 '행복하다'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이 사회에서는 자신이 불행하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아마도 행복이 가까이 와도 마음을 열고 있지 않기 때문에 느낄 수 없는 것일는지도 모른다. '행복'은 자신이 가꾸는 것이다. 사랑으로, 정성으로 가꾼다면 그 대가 또한 사랑처럼 아름다울 것이고, 그냥 버려 둔 채 가꾸지 않는다면 아무것도 얻지 못할 것이다.

한 사람의 인생에서 '행복'을 느끼다는 것은 중요한 것 같다. 그러나 행복은 나누어 가질수록 더 커지는 것. 그러므로 남에게 행복을 나누어 준다면 자신은 그 행복을 배로 느낄 수 있다. 그래서 아마 많은 사람이 행복을 충분히 안고 태어나지 못한 아이들에게 행복을 나누어주는 것인가 보다.

모든 사람이 행복하길 원한다. 나 역시 그런 사람 중의 한 명이다. 내가 생각하는 행복은 '서로 함께 할 수 있는 것'이다. 자신의 이기심으로 행복을 혼자 독차지하려 한다면 그건 진정한 행복이 될 수 없다. 그러나 서로 나누어주고 함께 느낀다면 모두가 참다운 행복을 맛볼 수 있을 것이다.

행복 이것은 인생에서 빼놓을 수 없는 한 부분이다. 그리고 이것은 작은 일에서도 얻어지는 것이다. 행복을 기다리는 것보단 자신이 만드는 것이 더 좋을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우린 인생에서 행복을 만드는 것을 행복한 일이라 생각하고 항상 나누어 주는 것은 어떨까?

행 복

高 1-3 王 志 惠

행복. 이것이 무엇인지를 잘 모르겠다. 사람들은 흔히 자신이 원하던 것이 이루어졌을 때 행복하다고들 한다. 그것만이 진정한 행복일까? 그렇다면 이 세상에서 행복한 사람들은 몇 안될 것이다. 모든 사람들이 자신이 원하는 것만 하고 살진 못하니까...... 나도 나 나름대로 행복하다고 생각하고 산다. 물론 내가 원하는 것들을 이루어 내어서 행복하다고 생각할 때도 있지만, 그것만은 아닌 것 같다. 주변에서의 기쁜 일 또 나를 사랑해 주고 아껴 주는 사람들, 뭐 이런 사소한 것들로 행복이라는 것을 느끼고 살고 있지는 않은건지...... 자신은 불행하다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늘 불행에 젖어 있지만은 않을 것이다. 잠시라도 행복함이 그들에게도 존재할 테니까.

행복이란 생각하기 나름인 것 같다. 내가 현재 살고 있는 나의 삶이 내 생각에 행복하다면 그것은 행복한 삶이고 그렇지 않다면 불행한 삶일 것이다. 그러니 무엇보다도 하루하루를 즐겁게 생활하는 게 가장 중요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행 복

高 1-4 張 惠 林

사람은 누구나 살아가면서 기쁨을 느낀다. 그 느낀 기쁨의 크기는 각자 다 다르지만, 그 기쁨을 느꼈을 때 사람들은 행복감을 얻는다.

행복은 누가 가져다주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만들어 가는 것이다. 만약 자기가 스스로 행복을 느끼려고 노력을 하지 않는다면 그 무엇도 만족을 할 수 없음에 행복 또한 오지 않는다. 행복은 대충 두 가지로 말 할 수 있다. 누구를 위해 무언가를 해서 흐뭇함을 느끼는 행복이 있고, 또 그 반면에 누군가에 의해 오는 행복이 있다. 하지만 사람들은 대부분 받은 행복만이 진짜 행복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늘 작은 행복은 쉽게 잊고 점점 더 큰 욕심 때문에 더 커다란 행복을 찾을 뿐이다. 어쩌면 항상 입에 불만이 가득 차 있는 것이 그 이유 때문일지도 모른다. 잘 사는 누군가와 자기를 비교하면서 스스로 비교하기 시작하면 한없이 불행해질지도 모르지만 , 나보다 못한 사람들을 생각하며 현재 내 위치에 만족할 수 있으며, 그만큼 더 행복한 거다. 한 번 쯤은 자신이 얼마나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는지 뒤돌아 봐야겠다. 아무튼 행복할 수 있는 사람은 자기 현 위치에 부족함만을 느끼지 않고 만족할 수 있는 사람이다. 언젠가 장애자가 이런 말을 했다. 그저 보고, 듣고, 말할 수 있으면 건강한 몸을 갖고 있으면 그것이 세상에서 가장 큰 행복일 것이라고......

행 복

高 1-4 范 東 熙

사람은 누구나 행복해지기를 원한다. 부유한 자 이건 가난한 자 이건 행복을 추구하며 인생에서의 가장 소중한 요소를 물었을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행복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어떻게 보면 건강이라는 최고의 요소도 행복과 직접적인 연관이 있다. 혹은 돈이나 명예도 행복과 연관시키려고 한다. 그렇다면 행복이란 과연 어떤 존재일까? 행복이라는 큰 원안에는 사랑과 희망의 작은 원이 공존한다. 즉, 사랑과 희망이 없는 행복은 참 행복이 아니다. 어떻게 보면 행복은 이루기 힘든 낱말인 것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어린아이부터 할아버지까지 어느 누구든 행복을 한 번쯤은 맛 보았을 것이고, 행복이란 울타리 속에서 먹고 마시며 행동할 것이다. 또 많은 이는 이렇게 물어 볼 것이다. "저는 행복이란 단어를 알지 못합니다. 비록 제 사지는 멀쩡하지만 제겐 어려서부터 부모님이 안 계십니다. 정말 저도 행복한 사람일까요?" 그렇다. 그는 큰 슬픔 때문에 자신이 누리고 있는 작은 행복을 무시하고 있는 격이다. 세상에는 장애자들도 많고 가난한 자도 많다. 최소한 그들보다 낫지 않은가? 그러므로 행복은 정신적인 문제이다.

나는 어려서부터 아버지를 그리 좋아하진 않았다. 아버지는 무뚝뚝하신 데다가 또 매우 엄하셨다. 그 당시에 나는 그런 점이 정말로 마음에 안 들었다. 그와는 반대로 어머니께서는 매우 인자하시고 마음이 넓으신 분이시다. 난 시골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었다. 공기도 신선하고 정서적으로 좋은 영향을 주기 위해서라고 하셨다. 여름이 되면 우리는 집 근처에 있는 계곡에서 수영을 했었다. 어느 무덥던 날 학교를 끝마친 후 집으로 오는 길에 여지없이 냇가로 갔다. 우리는 벌거벗은 채로 수영을 하고 있을 때 나는 병조각에 발바닥이 상처가 났었다. 순식간에 물은 붉은 빛을 띄었고, 나는 아픔을 참지 못해 비명을 질렀다. 그는 나를 집에까지 부축해 주었다. 그런데 집에는 무서운 아버지께서 계셨다. 나는 잠시 무서운 생각이 들었다. "혹시 이것 때문에 쫓겨나는 게 아닐까?" 나는 두려움에 발이 다친 것도 잊고 있었다. 나는 죄송해서 머리를 푹 숙인 채 아무말도 할 수가 없었다. 순간 거대한 느낌이 내 앞에서 어른거렸다. "아버지" 실로 오랜만에 불러 보는 명사다. "자, 이리 와서 내게 업히거라. 그리고 부축해 줘서 고맙구나." 믿을 수가 없었다. 이분이 정말 내 아버지란 말인가? 지금까지 내가 알고 있는 아버지는 이런 분이 아니셨다. '아버지도 이렇게 자상한 면이 계셨구나"나는 속으로 생각한 체 아버지의 등에 업혔다. 정말 기분이 이상했다. 전혀 다른 사람의 등에 업혀 있는 기분이었다. 그럴 수밖에. 한 번도 업혀 본 기억이 없으니까. 나는 아버지의 등에 업힌 채 병원으로 갔다. 그리고 그 따스했던 체온을 난 아직도 잊지 못한다. 병원에 도착했을 때에도 아버지는 매우 조급해 계셨다. 어느새 아버지의 얼굴에서는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혀 계셨다. 그리고 두 눈에는 눈물이 고여 계셨다. 그 모습을 보는 순간 나도 욱하고 눈물이 흘러 내렸다. 나는 그 동안 아버지의 사랑을 느끼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어느새 말못할 행복에 가슴이 뿌듯했다. 그러므로 행복은 반듯이 돈과 명예와 일치하진 않는다. 작은 사랑에서도 우리는 큰 행복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겠다. 그리고 당신을 행복하게 해주는 사람을 잊지 말아야겠다.


행 복

高 1-4 王 凱 霞

행복이란 단어는 듣기에는 멀리 있는 것 같고, 나한테는 해당이 되지 않는 것 같지만 바로 우리 주변에 있습니다.

행복은 무엇일까요? 돈이 많고 명예가 높은 사람만 행복을 누릴 수 있나요? 행복은 물질적으로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 바로 우리의 마음속에서 우러나오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가슴 속에서 어떻게 하면 행복을 느낄 수 있을까요? 그것은 자기 자신에게 달려 있습니다. 자신을 속이지 않고 다른 사람에게 친절을 베풀고 항상 선한 행동을 하며 지금 그대로를 만족하고 필요 없는 욕심을 부리지 않으면 마음속에서 작은 행복을 느낄 수 있지 않을까요? 행동을 하지 않고 가만히 앉아서 행복을 기다리고, 행복이 찾아오지 않으면 하늘은 무심하다고 이 사람 저 사람에게 하소연하고 이런 사람들은 행복을 누릴 자격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자신이 행복을 위해 노력을 하고 그 결과가 노력한 만큼 이루어지지 않더라도 그 꿈을 향해 열심히 노력하는 자세가 제일 아름답고 나중에 생각하면 그게 바로 진정한 행복이라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행복하다고 느낄 때가 제일 행복한 것입니다. 행복은 밤하늘에 널린 별과도 같습니다. 단지 그 별을 따려고 노력하는 사람만이 그 별보다 더욱 밝은 행복을 누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그 별을 따려고 최선을 다 하겠습니다.

행 복

高 1-4 陳 芳 德

돈이 많으면 행복해지리라고 사람들은 믿는다. 하지만 그것은 겉으로 보는 가식적인 행복이다. 진실된 행복은 자신에게 누군가가 사랑을 줄 때에만 생긴다. 만약 누군가가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자라났다면, 그자는 주위에 아무도 없는 캄캄한 감옥 속에서 지내고 있는 느낌을 받을 것이다. 또한 쉽게 나쁜 길로 빠지고 사람들을 미워하게 될 것이다. 그자가 아무리 많은 돈을 훔치고 돈을 펑펑 쓰고 다닌다고 해도 그는 불행한 사람이다. 어려서부터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란 나는 비록 자신이 가난하거나 남들보다 못 할 지라도 그는 반듯이 행복한 사람이다. 불행한 자는 언제나 슬픔이 가득한 얼굴을 하고 다니고, 행복한 자의 얼굴은 언제나 밝고 명랑하다. 과연 '행복'은 어떤 것일까?

나에겐 누님이 세분 계신다. 모두 한결같이 미인이 신데다가 마음은 정말로 비단결 같이 고우신 분들이시다. 큰 누님께서는 내가 어렸을 적부터 많은 것을 내게 주셨다. 물질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이루 말로 표현하지 못 할 정도로 많은 것을 주셨다. 둘째 누님께서는 나의 마음을 매우 잘 달래 주신다. 내가 화가나 있으면 표정만 보고도 금세 내 화를 풀어 주신다. 그리고 셋째 누님께서는 여러 가지 것들을 잘 챙겨 주신다. 밥이나 반찬 또는 교복을 빠는 것은 셋째 누님께서 알아서 다 해주신다. 나의 누님 세분을 나는 언제나 존경하고 또 그분들을 사랑한다. 그리고 그분들의 사랑으로 인해서 나는 언제나 행복하다. 지금까지는 어려서 누님들이 내게 주신 사랑을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 사랑을 온 몸으로 체험하고 있고 또한 그 사랑이 지금의 행복의 원천이라는 것도 깨달았다.

삶과 행복 이 둘 사이에는 뭔가 끈적이는 친밀감이 있지 않을까? 행복이라는 공허한 작은 외침 속에 나는 얼마나 허우적거렸었던가. 이제는 나보다 주위의 친구들을 좀 둘러 봐야겠다. 그리고 그들에게 나의 행복을 조금이나마 나누고 싶다.




행 복

高 1-1 蕭 美 媛

행복이란 한 사람의 극도의 기쁨을 느끼는 그 순간이 행복이라 생각한다. 사람이 외모가 틀리듯이 느끼는 행복 또한 다를 것이다. 풍족한 사람과 가난한 사람간의 행복, 남자와 여자간의 행복. 생각을 해보니 여러 가지 행복이 있는 것 같다.

먼저 풍족한 사람은 돈과 여러 가지가 부귀를 누리기 때문에 모든 행복을 얻은 것 같지만 보이지 않은 불행한 점이 있을 것이다. 가족간의 갈등, 사업 부진, 자기 자신과의 문제. 이런 것들이 잘 해결 될 때 그 사람은 남부럽지 않은 행복을 누릴 것이다. 또 가난한 사람들은 부귀를 못 누리지만 작은 돈이라도 벌어서 가족을 이끌고 가족이 아무 탈없이 이끌릴 때 행복을 누릴 것이다. 그리고 남자와 여자간의 행복은 서로 힘들 때마다 서로 기대고 고민을 털어놓고 서고 믿고 지낼 때가 제일 행복을 느끼는 순간일 것이다. 나는 어떤 때가 제일 행복할까? 먼저 나는 시험을 잘 볼 때가 제일 행복한 것 같다. 시험 성적이 오르면 학교에서도 칭찬을 받을 것이고 어머니가 좋아하시기 때문에 좋은 것 같다. 시험을 잘 보았다는 것은 시험 공부를 함으로써 나 자신에 대한 싸움에서도 이긴 것이고 나 자신에 대한 능력에 보이지 않은 선 하나를 그어 나가는 단계이기 대문에 시험을 잘 볼 때 행복한 것 같다.

행복이란 사람이 느끼는 감정마다 다른 것이다. 그러나 난 행복이란 것은 자기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기는 것이라 생각한다. 자기 자신과의 싸움은 내 일생에서 큰 고비일 테니까...... 그러므로 행복은 나 자신과 싸워서 이길 때가 아닌 것인가 하고 생각해 본다.

행 복

高 1-1 徐 小 晶

사람마다 행복에 대한 관점이 각각 다르다. 인간이란 끝없는 만족을 추구하는데 아무리 풍족하고 편한 생활을 누려도 부귀 영화를 쫓아가려는 것은 마찬가진 것 같다. 물론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있겠지만 그런 사람들이 더 많을 지도 모른다. 사람들은 쉽사리 행복을 느끼지 못한다. 나를 포함해서......

사람들은 큰 것에만 매달리려 하는 것 같다. 큰 행복, 그것을 얻기 위해 나쁜 짓도 서슴지 않고 남은 아랑곳하지 않고 자기 챙기기에 바쁘다. 이런 악순환이 계속되는 한 행복은 우리와 멀어져 갈 것이다.

행복이란 우리 주위에 작은 것, 아주 세심한 곳에서 찾을 수 있는 것이라 생각한다. 예를 들면 남을 도와주어서 얻는 보람이 행복이 될 수 있고, 하루 동안 먹을 수 있는 양식에 대한 고마움에서 오는 행복도 있다. 행복은 이런 작은 곳에서도 얼마든지 있다. 단지, 그 행복감을 우리가 느끼지 못하는데 문제가 있을 따름이다. 사람들 정신 상태, 행복은 그냥 저절로 굴러들어 오는 게 아니라 우리가 만들어 가는 것이라 생각된다. 그리고 사랑을 여러 사람들과 같이 나누어 감으로써 그 속에서 행복을 찾는 것이라 생각한다. 중요한 것은 마음가짐과 생각이다. 항상 스스로 행복하지 않다고 느낄 때 주위의 나보다 훨씬 못한 사람들을 떠 올려 보자. 그들은 나 자신보다도 좋지 못한 여건 속에서 꿋꿋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생각해 보자. 그에 비해 난 참 행복하다라고 느낄 것이다. 나도 한때는 실패하고 힘겨울 때 이런 생각들을 하면서 다소 행복을 느꼈다. 물질적으로만 풍족한 게 행복이 아니라 마음, 우리가 받아들이는 마음과 생각에 관점이 있다. 행복, 이 소중한 단어를 생각의 차이로 불행이란 단어로 변하게 할 수도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행복을 항상 소중히 하고, 감사하는 마음과 여유가 있는 마음을 가지고 행복을 우리 손으로 만들어 가야 한다.


행 복

高1-1 李 世 華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는 행복과 불행이 두 가지가 있다. 행복이 있는 곳에는 불행이 따르기 마련. 또한 불행이 있는 곳에는 행복이 있기 마련이다. 이 둘 중에서 내가 쓰고자 하는 것은 바로 '행복'이다. 다른 사람들에게 행복이 있듯이 나에게도 행복이 있다.

행복이 있는 곳에는 웃음과 기쁨이 가득하다. 사람에게 행복이란 바로 기쁨의 한 순간이라고도 말 할 수 있다. 반대로 불행은 사람들의 웃음과 기쁨을 한순간에 모두 앗아간다. 만약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행복할 수 있다면 그건 바로 편함을 말하는 것이다. 또한 이 세상에 불행이 사라지고 행복만 존재한다면 이 얼마나 평화로운 세상인가를 생각해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사람은 누구나 행복을 추구하는 존재다.

나는 내가 행복한 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이 세상에는 나보다 불행한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나보다 팔이나 다리 하나가 없는 사람, 말을 하지 못하거나 듣지 못하는 사람 , 보지 못하는 사람, 병에 걸려도 치료를 못 받는 사람. 이 수 많은 삶들 중에서 나는 매우 행복하다는 것을 느낀다. 또한 나는 소년, 소녀 가장에 비해 아주 화목한 집안에서 자라는 것도 매우 크나큰 행복이란 것을 알 수 있다. 나에게는 말로 다 이루 못할 행복들이 너무나도 많다. 모든 사람들에게 행복이 있듯이 나에게도 이렇게 많은 행복들이 있다는 것을 다시 이 문장을 쓰면서 새삼 느낀다. 나는 줄곧 내가 불행한 사람인 줄만 알았다. 왜냐하면 남들보다 그리 특별하게 공부도 잘 하지 않고, 용돈도 적다고 해서 불행인 줄만 알고 있었는데..... 다시 돌이켜 생각하면 나의 모든 생각은 전부 잘 못 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나는 지금까지 돈만 많으면 행복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돈만 있으면 뭐든지 살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면 공부만 잘한다고 해서 행복할 수 없고, 또 돈만으로도 행복할 수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나에게 행복이란 내가 어려움에 처했을 때 친구들이 옆에서 도와주는 것. 나를 위로해 주는 것 또한 부모님이 나를 잘 이해해 줄 때가 나에게 있어서 제일 행복한 순간인 것 같다. 이것이 바로 진정한 행복이라 생각한다.

효

中 1-2 謝 愼 珍

효란? 인간에게서는 지켜야 할 도리이자 법도다. 일생을 우리에게 바친 어머니의 정성과 우리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애쓰는 아버지에게 불효란 가당치도 않은 것이다. 세상에 음과 양이 존재하듯이 효에도 효와 불효가 존재하다니......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정작 사람들이 효 하나도 실현하지 못한단 말인가? 태어나서부터 우리가 지켜야 할 것이 효도인데 현대에는 자식이 부모를 죽이는 사건들이 생겼으니, 이 세상이 어떻게 되려고 그러는가? 또 일생을 자식들에게 다 바치고 늙으신 부모님을 노인정에 보내는 경우는 또 어떻단 말인가? 우리들은 죽을 때까지 부모님에게 효도해야 하고, 어른이 되어 자식을 낳으면 그 후손들 또한 효도에 어긋나는 행동을 삼가야 한다. 과연 이 세상 사람들은 부모님께 티끌만큼도 어긋나는 행동을 안하고 효도하고 있을까? 과연 나 또한 효도하고 있을까? 사람들은 겨우 몇 번 선물을 사 드렸다고 그 몇 번 가지고 자만하며 자신을 효자 혹은 효녀라고 부모에게 말하고 있지 않을까?

언젠가 한 번 동물들의 효도에 대해들은 적이 있다. 동물들이 효도와 사람들의 효도가 같다는 걸 느꼈을 때 인간을 창조하신, 우리가 모르는 어떤 신(하나님)의 뜻 깊은 바다 같은 마음을 왠지 헤아릴 수 있었다. 나는 천주교인이기에 가끔씩 성경을 읽어보았는데 거기에는 '하나님은 우리 모든 사람들의 아버지'란 말이 있었다. 처음엔 '아버지가 왜 두분이지?'라고 생각하며 이해가 안 갔지만, 점점 커 가면서 그 뜻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나 자신을 돌이켜 볼 때, 어머니에게 떼쓰고 거짓말하고 아버지에게 대드는 날 혼내면서도 타이르시고 똑바르게 살도록 인도해 주시는 어머니, 아버지에게 감사 또 감사한다.

이제 가을도 끝나 간다. 붉은 빛 옷을 입은 낙엽들도 하나, 하나 떨어진다. 곧 겨울이 온다는 징조다. 어머니, 아버지는 지금도 내 걱정을 하시겠지...... 어머니, 아버지 사랑해요. 앞으로는 더더욱 효도할께요.




효

中 1-1 畢 美 蘭

세상엔 누구나 같다. 자신을 낳아 주신 부모, 키워 주신 부모에겐, 누구나 효도하고 싶은 생각을 갖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요즘 세상이 많이 바뀐 후로부터 효도란 말이 점점 무너져 가고 있다. 과연 그 이유는 무엇일까? 요즘, 뉴스에선 이런 일이 자주 나타나고 있다. 자식이 , 부모가 지겨워 부모를 한가운데 세워 둔 뒤, 도망을 갔다는 일이 많이 생기고 있다. 어떻게 사람들은 이런 일을 저지를 수 있을까? 모두다 이기주의자뿐이다. 왜? 왜? 자신을 낳아 주신 부모께 이런 짓을 저지를 수 있을까 부모의 마음은 언제나 어디서나 우리를 사랑하고 생각하고 아껴 주신다. 하지만 우린 왜 효도를 못하는 걸까? 우린 그저 우리가 잘 되는 것만 바라고 부모가 잘되는 것은 원하는 사람이 없다. 내 생각은 꼭 해외 여행, 좋은 옷, 좋은 신발 등을 사주는 게 완벽한 효도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부모에 대한 효도란, 부모의 마음을 편하게 해 주고 향상 노력한 모습과 행동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바로 건강이다. 부모님들은 자기 자신의 건강보단 자식들의 건강을 더 소중하게 여기고 자식을 그 누구보다 더 앞세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우린 지금 부모에게 효도는커녕, 도움이 되지 못하는 것은 물론, 기쁨 또한 남겨 드리지 못한다. 사람들은 무조건 '난 꼭 효도할 거야.'이렇게 말을 한다. 하지만 이건 모두 새빨간 거짓말이다. 어느 한 사람이라도 부모를 위해 목숨까지 세울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과연 효도는 무엇일까? 무슨 효도가 진정한 효도일까?

효

中 2-3 車 玉 潔

효는 아주 아름다운 것입니다. 사람 마음에는 누구나 이 효가 있을 것입니다. 자녀가 부모님을 공경하는 마음, 이건 누구나 해야 되는 것입니다.

저는 효에 대한 한 아름다운 얘기를 하고 싶습니다. 한 효녀가 있었습니다. 그의 어머님은 장애자입니다. 어머니께서 여덟 살 때 그네를 타다 다리를 다쳤는데 수술을 잘못해서 그만 장애자가 됐습니다. 하지만 이 어머님께서는 한 권투 선수와 사랑에 빠졌습니다. 부모의 반대로도 그들은 결혼을 했고 또 아이를 낳았습니다. 하지만 부모의 반대로 너무 힘들던 그의 남편은 결국 모녀 곁을 떠나야 했습니다. 어머님은 아이에게 아버지한테 가라고 말을 했지만 아이는 어머님한테 '죽어도 엄마와 함께 죽고, 살아도 엄마와 함께 살거야.'란 말을 했고 이 말을 들은 어머님은 눈물을 흘리고 말았습니다. 그 모녀는 하루 종일 아무 말 없이 울기만 했습니다. 아이는 초등 학생이 됐습니다. 소풍가는 날 어머님은 아이에게 함께 소풍에 가자고 했지만 아이는 "싫어"라고 말했습니다. 그 후 아이의 엄마는 결코 부끄러운 분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기 때문에 자신의 잘못을 뉘우쳤습니다. 아이는 그날 이후부터 어머니와 여행도 가고 즐거운 나날을 보냈습니다. 어느 날, 그 모녀는 오백 명의 박수를 받는 가운데 열심히 사는 어머니로 상장을 받고, 그 딸은 효녀로 인정받아 상장을 받았습니다.

지금, 그녀는 변호사가 되기 위해 열심히 공부해서 어머니를 기쁘게 해드리고 싶다고 합니다. 저는 이 효녀를 정말 부러워합니다. 저 뿐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다 그녀를 부러워하고 또 한편으로는 부끄러워해야 합니다.

효

中 2-3 周 廣 志

부모님은 우리를 낳아 주시고 길러 주신 아주 고마우신 분들입니다. 그런데 효자들이 있는가 하면 불효자들도 있는 법입니다. 이런 일도 있습니다. 부모의 재산이 탐이 나서 부모를 살해한 사건도 있습니다. 그것은 자식의 도리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저도 예전에는 부모 말을 안 듣는 철없는 아이였습니다. 그런데 제가 병이 났을 때 깨달았습니다. 그때는 몹시 추운 겨울 방학이었습니다. 저의 어머님은 밥도 안 드신 채 밤새워 저를 간호하였습니다. 그 추운 날에 저이 아버지께서는 약을 사러 여기저기 돌아다녔습니다. 왜냐하면 그때는 일요일이라서 약국을 모두 문을 닫은 것입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났습니다. 부모님들의 사랑 덕인지 저의 병이 깨끗이 사라졌습니다. 그런데 부모님께서 저를 돌봐 주시느라 몸살에 걸린 것입니다. 그때 저도 모르게 눈물이 흘러 내렸습니다. 그때서야 저는 깨달은 것입니다. 이제부터는 내가 부모님께 효도를 해야겠다고 그게 자식의 도리라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이제 효도할 줄 모르는 철부지 꼬마가 아니라 효도를 할 줄 하는 좀더 성숙해진 아이입니다. 물론 그다지 효도를 많이 하진 않지만 효도를 하는 효자가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부모에게 효도를 않하고 부모님이 세상을 뜨시자 이럴 줄 알았으면 부모님께 효도할 것을 하면서 땅을 치며 후회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부모님께서 살아 계실 때 부모님께 효도를 하면 땅을 치며 후회를 안해도 되는 것이 아닙니까? 그러니까 부모님께서 돌아가시고 효도 못 해 드렸다고 땅을 치고 후회하지 말고 살아 계실 때 부모님께 효도합시다. 그것이 바로 자식의 도리입니다.

<기행문>

수학여행을 다녀와서

高 2-2 孫 成 夫

참 빠르다. 정말 빨라......

멀게만 느껴지던 졸업 여행을 벌써 다녀와서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다니. 빨리 지나가는 시간, 어째 좀 억울하다는 생각이 든다. 어쨌든 꽤나 즐거웠던 졸업 여행을 잠깐 회상해 보기로 하자.

며칠 전부터 엄마한테 옷을 사 달라고 조르고 졸랐다. 결국엔 자식을 이기는 부모 없다는 말을 다시 한 번 실감하면서 나의 여행 준비는 시작되었다. 전날 밤 짐을 꾸리면서 정말 정말 후회 없이 체면도 버리고 한 번 놀다 오자. 그게 내 맘의 전부였다. 밤잠을 설치며 눈을 뗬을 때 고대하던 그날이 이미 밝아 있었다. 아침 일찍부터 김밥을 싸시느라 부산하신 어머니와 옆에서 여행에 가져갈 과자를 뜯어먹고 있던 사나이 손 성부. 졸업 여행의 장소에 첫 발을 내디뎠다. 학교에 도착하니 벌써 많은 아이들의 모습이 눈에 띄었다. 평소 같으면 아직도 집에서 자고 있을 몇몇 아이들도 보였다. 교장 선생님의 말씀이 있으신 후 우린 차에 올랐다. 차가 출발하자 모두 상기되고 흥분된 표정들이었다. 차가 채 연희동도 안 벗어났을 때 하나 둘 먹을 것을 꺼내어 열심히 먹기 시작했다. 정말 눈부신 먹성들이었다. 우리가 처음 도착한 곳은 독립기념관이었다. 독립기념탑과 독립기념관의 상징인 동상들이 정말 멋있었다. 자유시간에 나와 몇몇 친구들은 독립기념관을 관람하기 시작했다. 광개토대왕비, 거북선, 이순신 장군의 칼 하나같이 흥미로웠다. 그러나 우리들은 '일제치하 시대'관을 들어서면서 강한 반일 감정을 일으켰다. 바로 그 순산, 70년대 교복을 입고 참관하는 일본 학생들을 보았다. 그들은 무슨 생각으로 이곳에 왔을지 참으로 궁금했다. 또 일본 여학생들의 얼굴은 왜 하나같이 그 모양인지 일본 남학생에게 심심한 위로의 말을 전하고 싶었다. 독립기념관을 나서는 길에 또 많은 일본 사람들을 봤다. 나는 독립기념관에 그토록 당당하게 들어오는 그들이 하도 뻔뻔하게 느껴져 유치하지만 애들과 합심해서 쪽발이, 쪽발이라고 놀려댔다. 참으로 통쾌했다. 어쨌든 우린 또 다음 목적지인 속리산으로 행했다. 숙소로 가는 길. 여러 호텔들과 모텔들은 모두 좋아 보였다. 그러나 우리들은 갑자기 이상한 곳으로 길을 꺾더니 아연실색할 정도로 좀 후진 여관으로 들어갔다. 혹시나가 역시나였다. 방을 배정 받은 후 우린, 베개 싸움을 했다. 처음엔 재밌었지만 점점 장난이 아니게 되자 하나 둘 슬슬 빠지기 시작했다. 저녁 식사 후 나는 가장 재밌다고 소문난 방에 들어갔다. 소문대로 정말 재밌었다. 그때 그 분위기는 정말 즐겁고 따뜻했다. 그 날밤 나는 다음날을 위해 일찍 잠을 청했다. 다음날 우리는 우 선생님의 치밀하고 계획적인 작전에 의해 새벽 6시에 일어 날 수밖에 없었다. 세상에 형광등을 켰다 껐다 하시질 않나, 라디오 음악 소리를 가장 크게 틀어 결국 우리 늦잠꾸러기들을 깨우는데 성공하셨다. 역시 맛없는 아침밥을 억지로 다 먹은 후 법주사로 떠났다. 교회를 다니는 나에겐 그리 탐탁지 않은 곳이었다. 그러나 여행이 여행이니 만큼 즐겁게 놀았다. 굉장히 큰 불상은 인상 깊었다. 법주사를 떠난 후 우린 천년의 고도 경주로 향했다. 건물에서부터 역사의 도시다웠다. 선배들이 말에 의하면 이틀째 묵는 여관은 정말 기대해도 좋을 만한 숙소라고 하여 모두들 기대에 부풀었다. 그러나 꿈의 숙소에 도착한 우리는 건물 벽에 나란히 늘어선 공동 화장실을 보고 허탈감에 주저앉았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난 선생님 한 분에게 물었다. "이곳이 정녕 가장 좋은 여관입니까?" 그 선생님은 멋쩍은 웃음을 띄우며 "그래"라고 대답하셨다. 크-으 워째 이런 일이! 실망감과 함께 난 내 친구 하나가 생각났다. 그 친구는 좋은 숙소에서 변을 보려고 급한 그것을 참고 참으며 견디겠다고 나에게 자랑스럽게 말했었는데...... 그 친구의 표정이 상상이 갔다. 그 날밤 나와 왕 수위는 다음날 밤에 있을 만회 준비에 들어갔다. 다른 학교의 캠프 화이어가 옆 여관에서 화려하고 재밌게 진행되고 학생들의 환호 소리가 귀를 때릴 때 난 그들 보다 더 재밌게 연출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대강 준비를 마치고 그때가 새벽 2시였다. 친구들을 놀다 지쳐 이미 곯아 떨어져 있었다. 정말 재미있는 겜프 화이어가 되도록 기도하며 잠들었다. 저녁 식사를 마친 후 거이 모든 방에서 춤 연습이 시작됐다. 내일의 캠프 화이어만를 위해서이다. 모두들 열심히 연습하였다.

셋째날 우리는 불국사로 향했다. 불국사는 세계적인 문화유산답게 정말 볼만했다. 그 다음 코스는 석굴암. 꼭 불교 순례를 보는 것 같아 좀 따분했다. 점점 졸립고 힘들어지기 시작했다. 숙소로 돌아오는 차안에서 난 단잠을 잤다. 점심을 먹은 후 우리는 한국 산업 발전의 초석이요 경제 발전의 기초가 되는 포항제철을 견학했다. 세상에 이렇게 크고 넓을 수가...... 자그마치 270만 평이란다. 세계 제 2의 규모라고 한다. 두꺼운 철을 얇고 길게 만드는 공장으로 들어가 직접 눈으로 그 과정을 볼 수 있었다. 들어가자마자 귀를 때리는 굉음과 용암 같이 붉고 사람 키만큼 큰 철이 만두피 다지듯 얇게 압축되는 걸 볼 수 있었다. 그리고 1200℃나 되는 철의 열을 식히기 위해 물을 뿌리고 물과 뜨거운 철이 만날 때 나오는 수증기는 정말 장관이었다. 마치 거대한 대장간에 온 것 같았다. 여행코스 중 유일하게 재밌었던 곳이었다. 다시 한번보고 싶었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떠나기가 아쉬웠다. 숙소로 돌아가기 전 우리는 마지막으로 오유 해수욕장에 들렀다. 가슴이 탁 터진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느낄 수 있었다. 우리는 멋진 바다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어 댔다. 후- 기분 정말 캡이었다. 숙소로 돌아오는 차안에서 우리는 노래를 불렀다. MC는 북한 아이가 맡았다. 꽤 괜찮은 말솜씨였고 특히 우 선생님의 노래가 압권이었다. 그리고 나는 우리 반에 가수가 그렇게 많은 줄 몰랐다. 그리고 학생회장은 멋진 팝송만을 고집했다. 아프리카에서 온 반장은 우리가 잘 모르는 노래를 불러 무리를 일으키기도 하였다. 숙소로 도착하자마자 난 만회 준비를 마무리하려고 분주하게 뛰었다. 모두가 아는 사실이지만 우리 학교에는 남학생들의 여장이 전통적으로 캠프 화이어의 무대를 장식했었다. 난 몇몇 친구들과 단지 전통이라는 이유만으로 여장을 준비해야만 했다. 팬티 스타킹을 처음 입어 보았다. 느낌이 이상야릇했다. 어여쁜 중3 학생의 도움으로 우리의 화장을 마친 후 우리는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며 남자로 태어난 걸 신께 감사드렸다. 수건으로 가슴을 만들고 머리를 따고 얼굴의 섹시한 점 하나를 더 찍으며 준비를 마쳤다. 사회자의 소개가 있은 후 긴장된 마음으로 무대에 올랐다. 예상 밖의 환호에 우리조차 놀랐다. 그때 아이들의 웃음 먹은 놀란 눈빛을 난 잊을 수 없다. 정말 즐거웠다. 바지가 찢어지는 일도 있었다. 아쉬운 건 밤 10시까지 캠프 화이어를 마쳐야 했기에 준비해 뒀던 많은 폭죽들이 쓸모 없이 되었다. 겜프 화이어를 마친 후 각자 방안으로 돌아갔다. 힘들었지만 즐거웠다. 또 다 끝이구나 하는 생각이 문득 들 때, 허탈하고 서글픈 마음이 들었다. 언제 다시 우리같이 이토록 즐거울 수 있을지. 중1에서부터 고3까지의 일들이 줄줄이 생각났다. 즐거웠을 때 슬펐을 때 다 그리운 생각이 들었다. 나만 그런 게 아닌지 다들 서글픈 표정이었다. 난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남은 학교 생활을 즐겁고 충실하게 지내야 나중에 후회하지 않을 것이라고. 새로운 각오가 섰다. 여태껏 같이 함께 해준 친구들의 우정에 정말 고맙게 느껴지고 또 지금까지 길러 주신 부모님의 얼굴이 참으로 따뜻하게 느껴졌다. 다음날 우리는 모두 각자의 추억을 안고 돌아가고 있었다. 참으로 여행이란 사람에게 있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난 이번 졸업 여행에서 절실히 느꼈다.

수학여행을 다녀와서

高 2-2 婁 元 惠

내가 기다리던 순간이었다. 10월에는 설레는 마음으로 항상 학교를 다녔다. 바로 그 순간이 다가 왔다. 우리는 경주로 수학여행을 갔다 정말 너무 기쁘고 즐거워서 마음이 붕붕 떠 있었다. 우리 반 아이들은 먼저 차안에서 어떻게 놀아야 재미가 있을 지에 대해 고민하는 중이었다. 그렇지만 난 그 무엇보다 3박4일을 어떻게 같이 놀 수 있을까 궁리하고 있었다. 여태까지 반끼리 같이 놀았던 적이 없는 것 같다. 항상 나는 너랑 친하지 않으니깐 놀기가 불편해 하면서 따로 놀려고 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난 어떻게 놀면 좋은 추억을 만들었다고 아이들이 느낄 수 있을까 하고 생각했다. 다행히도 우리 반 아이들은 협조를 너무 잘해 줬다. 우린 먼저 차안에서 노래를 부르고 김밥을 먹기 시작했다. 아이들은 김밥을 서로 나누어 먹었다. 어떤 아이는 우리 엄마가 정성 있게 해준 김밥이 맛있다고 하고 또 어떤 아이는 김밥이 왜 이리도 맛이 없냐고 서로 장난을 치면서 먹었다. 그리고 우리는 고속도로에 도착하자 운전사 아저씨가 노래방 기계를 틀어 주셨다. 난 곧장 마이크를 들고 한 곡을 멋있게 불렸다. 그러자 아이들도 서로 마이크를 달라며 아우성이었다. 우리가 신나게 부르는 동안 제일 중요한 사람을 빼먹을 뻔했다. 그 사람은 바로 우리 담임 선생님이었다. 우리가 언제 선생님의 가창력을 들을 수 있을까 싶어서 우리는 슈퍼맨처럼 날아가서 마이크를 선생님께 드렸다. 선생님은 처음엔 너희들끼리 부르라면서 마이크를 우리에게 건네주시는 것이었다. 하지만 우리 반 모든 아이들이 그 누구보다 선생님 목소리를 듣고 싶다고 그랬더니 선생님은 한 곡을 부르셨다. 정말 내가 보기에도 뿅 갈 것 같았다. 놀다 보니 우리는 첫 번째 목적지에 도착했다. 그곳은 독립 박물관이었다. 솔직히 우리 아이들은 박물관을 그리 열심히 보지 않았다. 우리는 사진이 더 중요했다. 그래서 우리들은 사진을 많이 찍자고 결정을 내렸다. 제일 먼저 멋있는 풍경을 찾자고 그랬다. 그러자 아이들은 "이쪽이 멋있어, 저쪽이 멋있어"하면서 서로 수다를 떠는 도중에 일본 학교 학생을 발견했다. 그때부터 아이들은 일본 남학생들과도 찍고 여학생들과도 같이 찍었다. 처음엔 그리 내키지 않았다. 왠지 모르게 난 한국 역사든 중국 역사든 일본을 그리 좋은 쪽으로 보지 않았기 때문에 마음은 그저 그랬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일본 학생들은 너무 친절했다. 그리고 항상 웃는 모습이었다. 그래서 조금 일본 사람들도 괜찮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선 우리는 숙소에 왔다. 숙소를 도착했을 때 별로 마음은 좋지 않았다. 왠지 모르게 마음이 이상했다. 그러자 그 분위기를 아이들이 띄워 줬다. 우리는 밥을 먹고 놀기 시작했다. 망치게임을 했다. 후배들의 시선은 다 우리 쪽으로 모여졌다. 마음이 왠지 좋았다. 둘째 날, 우리는 속리산에 갔다. 근데 거기에선 사진만 많이 찍었고 별로 기억에 남는 게 없었다. 우리는 숙소를 옮겼다. 경주인 것 같았다. 난 솔직히 어디를 구경하는 것보다 아이들이랑 숙소에서 노는 게 더 즐거웠다. 우리는 숙소에서 게임을 했다. 그 날의 스타는 밥통이었다. 모든 아이들이 그 애 별명을 더 부르기 좋아했다. 밥통이라는 애는 정말 유머 감각이 뛰어났다. 그 애랑 있으면 항상 즐거웠다. 셋째 날, 나에게는 제일 행복한 날이었다. 왜냐하면 내가 제일 좋아하는 곳을 갔기 때문이다. 그 곳은 바로 바다였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것은 바다다. 난 바다를 바라보면 마음이 너무 시원하고 답답한 일이 있어도 깨끗이 씻어지는 것 같다. 그래서 난 내가 갔던 곳 중에 바닷가가 제일 마음에 들었다. 난 바다에서 사진도 많이 찍었다. 그리고 난 바다에게 하고 싶은 말들을 다 해 버렸다. 우리 아이들 중 몇 명이 선생님 허락도 안 받고 라면을 먹으러 갔다. 그 중에 나도 있었다. 정말 난 가슴을 두근두근거리면서 그 곳으로 눈치를 보면서 올라갔다. 참으로 심장이 이쪽, 저쪽으로 이동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우리는 성공을 했다. 진짜로 기분이 너무나도 좋았고 이것도 수학여행 중에 잊지못할 추억이었다. 아참, 바다를 가기 전에 포항제철소를 들렸었는데 깜빡하고 못 쓸뻔 했다. 정말 그 곳에 가서 너무 신기한 것들을 많이 보았다. 우리가 그곳에 들어가기 전에 우리 아이들끼리 이런 말을 했었다. 그 곳에는 정말 수많은 사람들이 열심히 일하고 있을 거라고. 하지만 우리의 생각하고는 전혀 달랐다. 그곳을 들어가자 모든 것은 기계가 움직이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때 난 과학기술이란 것이 정말 대단하다고 느꼈다. 난 솔직히 철은 쉽게 만들어지는지 알았다. 그런데 그것이 아니었다. 철 하나를 만드려면 몇 번을 거쳐서 하나의 철이 성공적으로 만들어진다는 것을 깨달았다. 정말 신기한 눈으로 보았다. 드디어, 축제가 시작되었다. 기분이 너무 들떠 있었다. 그리고 내가 MC를 맞게 되었다. 정말 어딘가 모르게 떨리기도 했지만 또 어딘지 모르게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난 철저히 준비를 하고 우리는 시작을 했다. 솔직히 다른 곳에서 온 한국 학생들의 축제는 말로 표현 할 수 없게 캡이었다. 하지만 우리도 한국 학생들 보다 더 즐겁게 놀았다. 우리의 스페셜은 여장이었다. 선생님들은 다 그러셨다. 여장은 정말 무지 재미없다고. 그래도 난 한 번 해보자고 했다. 남자들이 화장은 후배들이 해주고 옷도 후배들이 여성스런 옷이 많이 있어서 빌려주었다. 정말 축제는 성공적으로 끝났다. 이제 내가 기다리기 싫었던 날이 왔다. 이건 우리의 운명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집으로 가야 했다. 그런 게 가는 도중 우리는 또 어딘가를 들르게 되었다. 그곳의 이름은 잘 모르겠지만 에밀레 종도 있었고, 십원짜리 동전에 있는 탑도 보았다. 박물관을 들어갔지만 아이들은 그런 역사보다 사진이 더 훨씬 중요한 듯 했다. 나도 예외는 아니다. 그리고 우리는 버스를 탔다. 학교로 출발∼ 아이들은 너무 아쉬운 듯 보였다. 나도 너무 많이 아쉬웠다. 정말 시간이 너무 빨리 가는 것 같았다. 마지막까지 난 즐겁게 놀았다. 아이들은 다 잠에 푹 빠져 있었다. 너무 심심했고 어떻게 놀까 궁리를 했다. '아이들 얼굴에다 치약을 묻힐까?' 여러 가지 생각을 했지만 도저히 용기가 나지 않아서 포기를 해 버렸다. 그래서 난 내갤汰� 한번에 이동할 수도 있기 때문에 달을 전진기지로 삼아 우주개발에 몰두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편집자의 변

'한글 마당' 7호는 개교 기념일 50주년 기념호로 발간하게 되었다. 또한 1호부터 7호까지의 합본이 나오게 된다. 이는 우리 학교의 한국어 수준과 발전의 척도를 재는 중요한 좌표라고 할 수 있다.

처음에는 걱정을 많이 하였지만 그래도 꾸준히 노력하다 보니 원고가 넘치고 수준도 향상되어 원래의 취지대로 발전을 거듭하니 기쁘기 그지 없다.

'한글 마당'은 원래 한 학기에 한 권 발간하는 것으로 되어 있는데 한학기에 두 권 발간할 수 있도록 학교에서 후원을 아끼지 않고 도와주어 두권을 발간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지난 학기에 바쁜 관계로 계획대로 두 권을 발간하지 못했다. 양해를 바라는 바이다. 이번 학기부터는 한 학기에 두 권 아니면 적어도 일년에 3권씩은 내도록 노력할 것이다. 앞으로 더욱더 발전할 수 있도록 여러분들의 많은 성원을 부탁한다.

끝으로 이번 '한글 마당' 제 7 호가 나오기까지 수고해 주신 많은 분들께 심심한 사의를 표하며 많은 지도와 편달을 바라는 바이다.

1998. 4. 30.

편집자 올림

한글 마당 7

發 行 者 : 韓國漢城華僑中學

編 輯 者 : 韓語韓文敎學硏究會

主席 譚道經

委員 李賢玉 金英姬 李敬子 權相基

總 編 輯 : 譚道經

表紙 및 揷畵 指導 : 周鴻運 金鮮美

揷 畵 : 董惠媛 楊家玉 王惠莉

打 字 : 金榮柱

發行號數 : 87-1(通卷 第 7 號)

聯 絡 處 : 서울 西大門區 延禧 3 洞 89 - 1

印 刷 者 : 華星文化社

發 行 日 : 中華民國 87年 3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