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마당 6
韓國漢城華僑中學
韓語韓文敎學硏究會
차 례
가을 1
高3 沈成勤 1 高3 邢才喜 1 高3 姜曉雯 2 高3 唐美燕 2 高3 曲徑耐 3
高3 張詠祐 3 高3 李智娜 4
개교 기념일 高3 王鴻雁 4
거울에게 쓰는 편지 中2 曹瑜珉 5
격려 高3 傅修英 5
나에게 주어진 행복 高3 于小莉 6
나의 미래 高3 孫盛豪 6
나의 어릴적 기억 高1 周鴻椿 7
나의 인생 7
高3 劉莉莉 7 高3 邢才喜 8 高3 牟德華 8 高3 李智娜 9
나의 학창시절 10
高3 唐美燕 10 高3 王振德 10
눈 高2 郭文正 12
뉘우침 高3 沈成巀 13
늦은 봄맞이 高3 賀明華 14
무(無)와 유(有)의 차이점 高2 宇忠信 15
동화 속에서 高2 王可慧 15
다이어트 高2 孫正華 16
모애(母愛) 高2 傅象莉 16
물 高2 慕桂芳 17
봄 18
卒業生 劉永愛 18 高2 崔美蘭 18
사계절 속의 행복 高2 唐如靑 19
소풍 19
高2 孫 璇 19 高2 呂序麗 20
수학여행 21
高3 李慧玲 21 高3 牟德蓉 22
생활방식 高2 臧秀瑛 23
스트레스 高1 鄒德建 23
아름다움과 미움 高2 孫善娜 24
언니의 편지 高3 孫淑華 25
여행 高1 蘇小萍 25
오월 26
高3 初善珠 26 高3 劉惠莉 26
우정 27
高3 李宣和 27 高3 孫如彦 27 高3 郭玉琪 28 高3 岇林貌 29
高3 王振德 29 高3 賀明華 30
20년 후의 나 30
高3 賀明華 30 高3 王振德 31 高3 岇林貌 32 高3 范文一 33
高3 劉正義 34 高3 唐美燕 34 高3 孫德蘭 35 高3 任慶美 35
21세기 高1 盧愛麗 36
EQ 高3 于培夫 36
인생 37
高3 唐忠華 37 高3 于惠珍 38
재미있는 경험 高2 王 霖 38
졸업여행 高3 雷美燕 39
졸업을 앞두고 40
中3 趙美花(現高1) 40 中3 陳貴蘭(現高1) 40 中3 崔美艶(現高1) 41
중학생 시절 高1 曲壽瑩 41
춤 高3 李炅美 42
친구 42
高2 杜立明 42 高2 崔美蘭 43 高2 婁元惠 43
친구야 안녕 高1 王紀莉 44
편지 45
中2 宋樹林 45 中2 孫效蓉 46 中2 高華春 46 中2 李慧萍 47 中2 湯宇隆 47
中2 沙維利 48 中2 權志慧 48 中2 鞠文卿 48 中2 趙 英 49 中2 馬慧珍 49
中2 張世美 50 高2 孫德美 51 高3 唐美燕 51
행복 52
高3 李宣和 52 高3 孫如娜 52 高3 武代運 53 高3 沈成勤 53 高3 雷美燕 54
高3 張莉花 54 高3 孫德蘭 55 高3 任慶美 55 高3 李高儀 56 高3 楊書賢 56
高3 賀明華 57 高2 孫善娜 57 高2 呂序麗 58 高2 梁在英 59
호주의 휴양지 케인즈(CAIRNS) 高1 焉保喜 60
하교길 高 2-1 張 瑛 坢 61
참고자료 모음 62
동화 세계--한 편의 동화 '삶이 아름다운 열 네 가지 이유'에서 62
생활 만담--KBS 대하사극 '용의 눈물'통해 본 言官] 중앙 일보 65
--행복의 조건 문화 일보 66
--오늘은 좋은 날 조선 일보 67
한국 민속--지신밟기 한국 4H 신문 67
동물 세계--제비 문화 일보 69
과학 세계--화성 내부구조 지구와 동일 증거 확보 경향 신문 70
--달, 화성 두배짜리가 충돌해 형성 한겨레 신문 71
--폐타이어에서 레몬성분 추출 중앙 일보 72
식물 세계--가장 오래된 벼씨 중앙 일보 72
--딸기 한국 4H 신문 73
논술 세계--논술에도 정답은 있다 중앙 일보 74
연세대 지난해 논술시험 문제 문화 일보 75
1. < 延大 97 수능 논술 우수 답안 1 > 76
2. < 延大 97 수능 논술 우수 답안 2 > 77
3. < 延世大 논술 우수 답안 > 78
4. < 답안에 대한 평가 > 79
편집 후기 80
가 을
高 3 沈 成 勤
뜨거운 태양, 무더운 날씨와 짜증이 나게 하는 습기가 우리를 괴롭게 했던 여름. 그 여름을 몰아 내고 푸른 하늘과 시원한 바람을 우리에게 선사해 주는 가을. 우리는 여름을 지내면서 항상 가을을 기다려 온 것 같다.
천고마비 하늘은 높고 말은 살찐다는 계절. 푸른 하늘, 시원한 선들바람, 먹거리도 풍부한, 그런 계절이 우리로 하여금 한 번쯤 야외로 나가 자연을 만끽하게 한다. 난 여름의 피서보단 가을의 단풍 여행을 훨씬 좋아한다. 피서라곤 하지만 사람들 속에서 짜증만 내고 스트레스만 쌓이는 게 어디 여행이라고 할 수 있을까? 차라리 시원한 바람과 따스한 태양 아래 물이 오를 때로 오른 그 화사한 붉은 낙엽을 밟아 본 사람이라면, 그 매력에 휩싸일 것이다.
가을을 가장 좋아하는 사람은 아마도 농부가 아닐까? 범에는 씨를 뿌리고, 여름에 장마 때문에 시달리고 타는 듯한 태양에 지친 농부들이 가을의 그 황금 들판을 바라보는 느낌은 아마도 성공한 자식이 금의 환향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부모의 마음일 것이다. 추수를 하고 나면 도시의 자식들이 부모님들께 감사의 마음을 표현하기 위해, 그 먼 길을 단숨에 달려간다. 가을은 이래서 좋다. 먹을 것도 많고, 추석도 있고 꿩 먹고 알 먹고 너무너무 행복한 계절이 아닌가!
가을은 또 학생의 계절이다. 가을 하늘을 보자면 그 푸른 색깔이 우리의 졸음과 게으름이 달아나게 한다. 한마디로 공부만 열심히 하면 되는 계절이 바로 가을이다. 사실 가을이 우리에게 많은 것을 부지만 환절기에 건조한 날씨가 우리의 몸과 재산에 피해를 주기도 한다. 감기, 화재가 가을의 대명사이기도 하지만, 그래도 조심하면 면할 수 있는 재해일 것이다. 하니만 가을이라는 계절은 우리에게 다시금 힘을 내게 하는 계절인 것 같다. 그만큼 우리는 이 짧은 계절을 낭비해선 안될 것이다.
가 을
高 3 邢 才 喜
가을은 사람을 더욱 성숙하게 만드는 힘을 지녔다. 나뭇잎도 적갈색의 색상의 옷으로 몸을 단장하고, 잠재되어 있던 최대의 아름다운 빛깔과 향기로 사람을 매혹시킨다. 그 또한 가을만이 지니고 있는 특색이라 여겨진다.
사람에게는 학문을 쌓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도 선물한다. 농부에게는 곡식을 수확하는 성취감과 기쁨을 준다. 이처럼 가을은 버릴 데 없는 좋은 계절이다. 항상 새로운 변화를 할 수 있게 하는 시간도, 여유를 가지고 생각을 깊게 하는 시간도 주곤 한다.
엄숙, 성숙, 고심, 완숙미, 아름다움, 출발, 희망을 모두 내포하고 있는 계절, 바로 내가 가장 좋아하고 기다려지는 가을이다.
가 을
高 3 姜 曉 雯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계절은 가을이 아닌가 싶다. 가을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낙엽이다. 그것을 볼 때 또한 고독과 낭만도 떠오른다. 그래서 가을을 독서의 계절이라고 하나보다.
나는 개인적으로 가을을 좋아한다. 왠지 모르게 가을만 오면 혼자의 시간을 많이 갖고 싶어진다. 그렇게 되면 내 자신의 지나간 모습들을 반성하면서 내 자신을 만들어 갈 수 있는 것이다.
가을이란 계절은 별로 덥지도 춥지도 않은 무척 좋은 계절이다. 그래서 나는 독서를 좋아하기 때문에 이 가을 속의 시간을 꽉 잡아 여름에 못 본 책이나 못 다한 공부들을 하고 싶다. 그리 길지도 않은 이 가을을 나는 헛되게 보내지 않을 것이다.
가 을
高 3 唐 美 燕
우리들의 땀을 거두어 가고, 농부들이 허리를 펴고 함박 웃음 짓게 해주는 가을이 성큼 우리들 곁으로 다가 왔다. 언제인지도 모르게 소리소문 없이 바람을 만들어 주고 우리를 편안하게 해주고 있다.
며칠 전부터 갑자기 날씨가 시원해졌다. 교실엔 더 이상 부채질을 하는 학생들의 모습도 보이지 않았고, 동생과 난 선풍기를 차지하려고 더 이상 신경전을 벌일 필요도 없었다. 이제는 저녁 공기가 서늘해서 이불을 찾기까지 한다. 정말 가을이구나 몸소 느끼게 된다.
가을을 천고마비의 계절이라고 한다. 하늘을 올려다보면 너무 맑고 너무 새파란 세상이 펼쳐져 있다. 가을을 무슨 색에 비유하면 좋을까? 마치 파란 유리구슬 같다. 저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자니 나의 마음까지도 넓어지는 것 같다. 바람이 너무 보드랍고 햇살이 너무 편안해서 난 가을이 좋다. 이제 곧 단풍이 지고 낙엽이 떨어져 가을은 더 깊어질 것이다. 우리들의 마음도 더 깊고 성숙해졌음 좋겠다.
무덥고 힘든 여름을 보낸 우리에게 신께선, 추수의 풍성함이 있는 시원한 가을을 만들어 주셨을 것이다. 그만큼 우린 가을이 주는 모든 것에 감사하며 열심히 보내야 될 것이다.
가 을
高 3 曲 徑 耐
새삼 얼굴에 불어오는 바람이 쌀쌀하다고 느꼈을 때 이미 가을은 소리 없이 나의 곁에서 숨쉬고 있었다. 늘 이렇게 계절의 변화에 무딘 나였지만 가을이라는 계절은 정말 나를 설레게 한다.
가을은 왠지 어딘가 매력적인 계절이다. 가을이 깊어 감에 따라 나뭇잎들도 차례 차례로 알록달록한 옷들을 입고 아름다운 단풍의 모습으로 변해 가고 있고, 거리에 쓸쓸히 떨어져 있는 낙엽들도 누군가의 발자취를 그리워하고 있다.
내가 가을을 사랑하는 이유는 그는 날 슬프게도 하고, 기쁘게도 하고, 흐뭇하게도 하기 때문이다. 그가 날 슬프게 하는 까닭은 나의 맘속 깊이 숨어 있던 나의 고독을 고개 들게 하여 외로움느끼게 하기 때문이고, 그가 날 기쁘게 하는 것은 특유의 높디높은 푸른 하늘과 그만의 따뜻한 정취가 베어 나는 저녁놀을 즐길 수 있게 해 주어서이다. 또 그가 날 흐뭇하게 하는 것은 추수하는 기쁨으로 행복한 미소를 짓는 농부들을 볼 수 있게 해주는 것이다.
그 누구라도 이렇게 한없이 따사롭고 온화한 태양 같은 가을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을 거라 생각한다. 점점 깊어만 가는 가을날의 정취를 맘껏 느낄 수 있기를 바라며......
가 을
高 3 張 詠 祐
늦더위의 기세가 점차 수그러들면서 가을이 찾아오고 있다. 가을은 내가 사계절 중 가장 좋아하는 계절이다. 1년에 한 번씩은 꼭 찾아오지만 그래도 항상 나의 마음을 들뜨게 한다.
가을이 되면 모든 생물들이 바빠진다. 동물들은 겨울을 나기 위해 식량을 비축하거나 동면을 하기 위해 음식을 미리 먹어 두고 나무들은 겨울을 나기 위해 낙엽을 뿌린다. 그중 가장 바쁜 것은 농부들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반년간 고생해서 키워 낸 농작물을 거둬들여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생명력이 충만한 부지런함은 가을에서만 볼 수 있는 장관이다. 그래서 가을은 나를 부지런하게 만든다. 또한 가을은 내가 사계절 중 가장 아름답다고 느끼는 계절이다. 가을이 되면 단풍들이 빨갛게 물들어 산을 봄보다 더욱 아름답게 치장하고 논밭에는 황금 물결을 이루는 벼들이 살랑거리고 있다. 이러한 가을의 풍경은 나의 감수성을 더욱 풍부하게 한다.
가을은 매년 나에게 찾아와 많은 도움을 준다. 그래서 나는 사계절 중 가을이 가장 아름답고 생명력이 넘친다고 믿으며 가을을 가장 좋아한다.
가 을
高 3 李 智 娜
가을이란 계절의 풍요로움과 그 뒷면의 고독함을 전하러 가을의 여신이 우리 앞으로 성큼 다가왔다. 가을이란 계절은 우리의 눈, 귀, 입, 마음을 즐겁게 한다. 눈으로 한 폭의 수채화와 같은 가을 풍경을 볼 수 있고, 귀로는 귀뚜라미의 합창을 들을 수 있고, 또한 입으로 갓 수확된 과일과 곡식들을 맛 볼 수 있다.
곡식들은 여물어 하나 둘씩 고개를 숙이고 농부들은 한해 동안 고생한 땀의 결실을 맺는다. 황갈색으로 물들은 논밭과 옷을 갈아입은 산들과 나무들. 이 모두가 가을의 아름다움이라 말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계절의 날씨와 자연의 풍요로움이 잘 조화를 이루어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라 하는가 보다. 가을은 덥지도 춥지도 않고 시원한 바람이 우리의 마음까지도 시원케 한다.
가을 또한 사람들의 마음을 여리게 만든다. 떨어지는 낙엽만 봐도 서글퍼지고, 길거리를 홀로 걷고 있는 이들만 보아도 고독해 보이고 바람만 불어도 허전함을 느끼고 마음속의 사람을 그리면 눈물이 먼저 흘러내리고 이렇게 사람들의 마음을 구슬프게 한다. 난 가을의 또 하나의 색을 '끝없는 그리움'이라 말하고 싶다.
난 가을만 오면 이 모든 것을 느끼니, 아마도 난 가을 여자!? 남은 97년을 더욱 값지게 알차게 보내기 위해 난 이 가을을 재충전의 시간으로 하고 싶다. 더 많은 책을 읽고 공부도 열심히 하는 알찬 가을을 보내고 싶다.
개교 기념일
高 3 王 鴻 雁
5월5일은 저희 학교의 개교기념일입니다. 이 날이면 학교는 마흔 아홉 살의 생일을 맞이합니다. 여러 선생님들과 학생들이 이날을 위하여 많은 노력을 했습니다. 공연 준비와 교실 미화를 하기 위해 모두들 힘을 썼습니다.
개교기념일은 때를 잘 맞춘 것 같습니다. 마침 5월이면 저희 학교의 화원이 가장 아름답고 풍성한 달입니다. 바람이 서서히 불면 나뭇가지에 꽃잎이 사르르 떨어지고, 이 순간엔 은은하나 향기가 온 운동장을 맴돕니다. 큰 행사이기에 학교 무용단들이 공연도 매우 흥미진진합니다. 중국 전통의 무용을 마음껏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각 반마다 공연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모두들 한달 전부터 연습해서 비록 실력은 전문가들을 따를 순 없지만, 다들 용기를 갖고 개교기념일의 행사를 축하하는 뜻에서 매우 노력합니다. 창립 49주년이 된 저희 학교는 성적은 다른 학교 보단 못하지만 의리와 인내심은 강합니다. 서로서로 돕고 단결하고, 의지하고 그래서 성공을 거듭하는지도 모릅니다.
저희 학교의 개교기념일이 있기에 저는 학교에서 얽힌 추억 거리가 매우 많습니다. 결코 모두 잊지 못할 것들......
제가 졸업해서 사회에 나가게 되면, 예전에 이 학교에 있었던 모든 과거를 절대 잊지 못할 것입니다. 우리 모두 같이 개교기념일을 축하합시다!
거울에게 쓰는 편지
中 2 曹 瑜 珉
거울아 안녕?
거울아 거울아, 너 지금 뭐해? 나 지금 너한테 편지 써! 일단 고마워 왜냐고? 나처럼 예쁜 얼굴을 비춰 주니깐.
거울아, 거울아, 너는 우리 반에서 최고 인기 있는 물건이란다. 우리 반의 예쁜 얼굴과 멋있는 얼굴들을 비춰 주니깐. 넌 아직도 우리 교실을 비춰 주겠지? 방과후, 너는 우리와 달리 집에도 안가고 24시간 우리 교실을 비춰 주니깐. 쉬는 시간마다 우리 반 애들은 몰려가 너를 보곤 한다. 너는 동화 속에서도 인기 있는 물건이란다. 특히 백설공주에선 너의 활약이 컸지. 거울아! 난 네가 너무 좋아. 그럼 이만 펜을 ....
good-bye 답장 8282(빨리빨리)
유민
격 려
高 3 傅 修 英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사회는 과거의 어둠을 청산하고 새로운 것을 찾아 좀더 편리한 생활, 경제 능력을 상승시키기 위해 창조해 나아가려고 진통하는 과정 중에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개개인으로 성공하기 위하여 끝없이 노력하고 목표를 정해 놓는다. 그것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과정을 겪게 된다. 그 과정 중에는 물론 힘든 일, 주저앉고 포기하고 싶을 때, 자신의 의지력을 잃게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럴 때 누군가에게 격려를 받는다면 자신은 더 많은 확신과 용기가 생길 것이다. 따라서 격려라 할 수 있는 이 말 한마디가 사람의 운명을 바꾸어 놓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이토록 우리에게 있어서 너무나 중요한 격려를 우리는 아직 그것을 베풀어주질 못한다. 또 우리는 이런 경쟁 사회에 들어서면서 주변 사람들의 장점 한 두 가지를 치켜세우고 격려해 주기보다는 자신만의 성공을 위하여 오히려 단점을 부각시킴으로써 상대방도 어려워지고 본인 자신도 어려워지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된다. 이런 인간 관계에서 과연 사회가 발전 할 수 있을까?
'알버트 아인슈타인' 하면 아마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그가 20세기가 낳은 천재 중의 한 사람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의 학창 시절을 보면 그는 결코 천재가 될 자격이 없는 사람이었다. 그의 고등학교 생활 기록부에는 담임 선생님의 날카로운 지적이 생생이 적혀 있었다. 이 학생은 무슨 공부를 해도 성공할 가능성이 없습니다. 이러한 내용이 적힌 성적표를 받아 든 그의 어머니는 낙담해 하는 아들을 오히려 달래며 격려해 주었다. 또 그는 어머니의 격려로 인해 그의 담임 선생님의 가혹한 평가는 오히려 그에게 큰 힘이 되어 주었다. 이런 이야기처럼 격려는 정말 중요하다는 것을 다시 상기시켜 주었고 우리의 생활이 항상 격려의 생활이 될 때 나의 주변에는 많은 사람들이 있게 되는 것은 물론이고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나의 격려를 들은 사람들이 더욱더 훌륭한 역할을 감당하고 성공한 것을 보게 될 것이라 생각한다.
나에게 주어진 행복
高 3 于 小 莉
이 세상에서는 행복한 사람과 불행한 사람이 있다. 하지만 불행한 사람보다는 행복한 사람이 더 많을 것이다.
사람에겐 누구나 자신에게 주어진 행복이 있다. 단지 그 행복이 크고 작고에 따라 사람들은 자신이 행복하다 또는 불행하다라고 말한다. 하지만 진정으로 자신에게 주어진 행복을 알고, 만족하고 감사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나만해도, 이 문장을 쓰고 생각하기 전까지는 나 자신이 행복하다고 느낀 적이 없다. 그러나 이 문장을 쓰면서 많은 것을 깨달았고, 진정으로 행복한 것이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지금 난 행복하다
세상에 있는 수많은 사람 중에 가장 행복한 어떤 사람일까? 돈이 많은 사람? 학벌이 좋은 사람? 아니다. 내가 생각하는 행복한 사람은 사랑을 받는 사람이다. 그 무엇보다 고귀하고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사랑. 사랑을 받는 중에 가장 큰사랑은 가족의 사랑이다. 그 다음이 친구의 사랑. 그리고 연인의 사랑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부모가 없어 부모의 사랑을 받지 못한다면 불행한 사람일까? 아니다. 비록 부모의 사랑을 받지 못하더라도 용기를 갖고 자기 자신을 사랑하면서 꿋꿋하게 마음의 평화를 느끼며 살아 간다면, 그 역시 행복한 사람이라 할 수 있다.
요즘 우리 주위에 있는 많은 사람들은 자시에게 주어진 행복을 발견하지 못하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예를 들어, 버스나 길거리에서 남에게 구걸하며 사는 사람들은 과연 처음부터 불행했을까? 그렇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조금만 노력하면 얻을 수 있는 행복을 얻으려 노력하지 않고 포기하였기에 지금 자신들이 원하지 않는 일을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난, 나에게 주어진 작은 행복에 만족하고, 감사하고 있다. 내가 이것을 깨달은 것처럼. 다른 모든 사람들도 허황된 욕심은 버리고 자신을 되돌아보며 자신의 행복에 만족했으면 좋겠다.
나의 미래
高 3 孫 盛 豪
현재의 모습이 곧 미래의 나의 모습인 것 같다. 현재 내가 노력하는 만큼 미래도 더 나아질 것이다. 나의 미래는 내가 창조하기 때문에 현재와 미래는 깊은 연관성을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 기회는 준비한 사람이 잡을 수 있듯이 아무리 좋은 기회가 있더라고 능력이 없다면 아무 소용이 없기 때문이다.
미래를 창조하기 위해선 먼저 자기 자신이 갖고 있는 특기를 살리는 것이 제일 중요한 것 같다. 성공할 수 있는 것이라면 그 방면에 미리 투자를 해서 발전시켜야 된다. 그래야 좋은 미래가 생길 것이다. 그리고 이것저것 배울 수 있는 대로 배워라. 분명히 사회생활에 필요한 밑거름이 될 것이다.
시대가 변하면서 세상은 급속도로 성장해 가고 있다. 불과 10년 전만 해도 컴퓨터란 것을 배울 필요는 없었다. 허나 이제 몇 년만 있으면 컴퓨터를 모르면 문맹과 같아질 것이다. 미래엔 어떤 교통 수단이 생길지, 또 달에 관광을 갈 수 있을 지 아직 아무도 알 수 없다. 만약 그러한 미래가 나를 기다린다면 내가 40세정도 쯤이면 가능할지? 아니면 내년이면 가능할지? 참 궁금하다.
알 수 없는 미래를 상상하면 끝도 없을 것이다. 역시 내 미래를 알 수는 없지만 꼭 성공하고 좋은 사람과 결혼하고 싶다.
나의 어릴적 기억
高 1 周 鴻 椿
내가 한 대여섯 살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때 우리 집 옆에는 아주 가난한 가족이 살고 있었다. 그들은 할머니 한 분과 언니들이 살고 있는 집이였다.
나하고 동생은 자주 놀러 갔었고 집은 아주 작은 주방이 달린 단칸방이었다. 할머니와 언니들은 아주 친절했다. 매일 가는 데도 항상 반갑게 맞아 주시었다. 우리가 가면 매일 빈대떡을 해 주고 같이 놀아 주시곤 했다. 항상 우리가 가는 시간이 지나면 할머니는 걱정이 되시는지, 언제나 우리 집 앞에서 기다리곤 했다. 이렇게 즐겁게 지낸지 며칠이 지나고 우리는 여전히 할머니를 찾아갔었다. 근데 문이 잠겨져 있는 것이었다. 나는 본능적으로 문을 치며 문을 열어 달라고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아무 반응도 없자 어느새 내 눈 주위에는 빗방울 같은 것이 흐르고 있었다.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 나는 너무 어려서 할머니하고 언니들의 얼굴이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난 알고 있다. 언제나 우리에게 친절하게만 대해 주시던 할머니는 머리가 하얗게 세어 건강하게 지내시고, 언니들은 아주 예쁘게 변해 있겠지? 난 그때의 기억들을 어렴풋이 생각한다. 아주 자세히는 기억되지 않는 이 아름다운 추억을 영원히 간직할 것이며 먼 훗날 내 자손들에게 얘기 해 주고 싶다. 항상 사람들에게 친절하고 따뜻하게 대해 주라고 내가 말한 이 아름다운 할머니처럼......
나 의 인 생
高 3 劉 莉 莉
지금의 나는 고3이고, 이제 나의 인생은 나 자신의 힘으로 개척할 수 있는 나이다. 그렇지만, 나는 여태까지 내가 미래에 무엇을 해야 할지 또 대학은 어디로 가야 할지 아무것도 해 놓은 것이 없다. 참으로 한심한 일이다. 여태까지 나는 부모님께 의지하며 살아왔다. 내가 겪은 힘든 일들은 거의가 다 부모님이 해결해 주셨다. 그러나 이제는 더 이상 부모님께 의지할 나이는 지났다. 이제 좀 더 나이를 먹으면 도리어 내가 부모님을 모셔야 하지 않는가?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내가 해야 할 일은 내가 스스로 해야 하고, 장래에 무엇을 해야 할지 생각해 보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열심히 노력해야 할 것이다.
아직 나는 인생에 대해 '이렇다 저렇다' 말하지는 못한다. 나는 아직 인생에 대해 알지도 못하고, 아직 남은 인생보다 살아가야 할 인생이 더 많기 때문이다. 인생은 살아가면서 많은 일을 겪고 또 그 겪은 일을 통해 삶을 배워 나가는 것이 아닐까? 이렇게 보면 나는 아직 배울 것이 너무 많다. 그 배움의 첫 단계는 학교가 아닌가 싶다. 그 다음이 바로 사회에 나가 세상을 배우고 익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첫 단계인 학교생활부터 제대로 해야 나중에 사회인이 되서도 잘 해 나갈 수 있고, 또 나의 인생을 좀더 의미 있고 완벽하게 살 수 있을 것이다.
나의 인생
高 3 邢 才 喜
현실에 발 맞추어 살아가는 사람들은 모두 새 정보 또는 더 좋은 것을 추구하면서 지낸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신의 인생을 아름답게 만들기 위해서 시간을 쫓아 바삐 뛰어 다니는 것이다. 내에게 비추어진 그 모습은 무엇보다 아름답게 보인다. 활기찬 삶을 그리고 꿈을 꾸는 것은 가장 행복한 사람이라고 나는 생각해 본다. 누구나 자신이 선택한 대로의 인생을 누리지 못하는 것 같다. 그래서 사람은 나름대로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을 하며 생활을 한다. 구속에서 끊임없는 성취감과 뿌듯함을 느끼고 싶어서 아낌없이 정열을 뿜어낸다. 생각하는 관점의 차이는 있지만 사람들은 좀 더 나은 위치에서 인생을 살기 위해 노력한다.
지금 내 자신도 일년이라는 시간을 숨가쁘게 지내는 사람들 속에 들어가야 하는 고3이라고 할 수 있다. 멋있고 찬란한 모습으로 그 안에 합류하기 위해서 나는 지금 이 순간을 꽉 잡아야 한다.
내가 가지고 싶은 것을 꿈꾸고 함께 연구하고 논쟁하며 하고자 하는 일을 하며 살아가는 사람이 되기 위해 열심히 끝없이 준비하고 많은 생각을 할 것이다.
자부심을 가지고 한곳에 몰두할 수 있는 것을 찾아야겠다. 그 어느 누구도 나의 인생을 책임져 주지 않는 것을 알고 있으므로 홀로 개척하고 후회하지 않을 눈부신 것을 찾아서 끊임없는 노력을 해야겠다.
나의 인생
高 3 牟 德 華
나는 행운아다. 태어나자마자 나를 돌봐 주고 나를 사랑해 주는 소중하고 따뜻한 사람들 곁에서 조금씩 보고 배우며 남을 진실 되게 사랑할 수 있는 마음을 가질 수 있었다.
어릴 적 행복만을 알고 자라던 내가 또 다른 세계가 날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지 못했다.
내가 18년 동안 살아온 인생을 생각해 보면 참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그 중에서도 나에게 부모님보다 소중한 사람이 있다. 바로 우리 이모다. 우리 이모는 어릴 적부터 나를 돌봐 주고 큰 힘이 되어 주는 오직 나밖에 모르는, 날 위해서 뭐든지 할 수 있는 그런 사람이다. 그런데 난 큰 은혜도 모르고 열심히 살지 않은 것 같다. 열심히 해야지 하면서도 잘 안되는 나를 보면 너무 바보 같다. 나에게 큰 희망을 갖고 있는 사람들을 위해서도 열심히 해야 되는데…
내가 중학교 때 아마 사춘기가 왔나 보다. 어릴 적부터 혼자 집에서 생활하고 뭐든지 혼자 할 수밖에 없는 내가 혼자라는 것에 슬퍼하고 외로워하면서 많은 슬픔에 젖어 있었다.
그땐 뭐가 그리 힘이 들었는지 참 많이 아파했는데. 그래서 내가 찾아 간 곳은 바로 성당이다. 난 성당에서 많은 기도를 했기에 다시는 슬픔에 젖지도 울지도 않았다. 아마 내 인생에서 종교는 큰 중심이 된 것 같다.
아픈 만큼 성숙해 진 건지 어릴 적 나약하고 누구한테나 뭐든지 기대고 싶었던 내가 지금은 뭐든지 스스로 할 수 있고 도울 수 있는 그런 사람이 언제부턴가 되어 있었다. 정말이지 행복과 슬픔은 종이 한 장 차인가 보다.
지금은 무슨 일이든지 열심히 노력하려고 한다. 또 그럴 자신도 있다. 이젠 난 고3이다. 내 삶에서 가장 중요한 때이다. 이 짧은 시간 동안 열심히 공부해서 많은 지식을 쌓고 지금부터 차근차근 내 미래를 설계하고 생각하면서 충실하게 보내고 싶다.
내 소중한 친구들과 함께…
나의 인생
高 3 李 智 娜
지금 이 자리에서 인생을 논한다는 게 어쩌면 어른들이 보신다면 시건방진다고 생각하실지 모르겠다. 하지만 우리가 이 세상에 태어난 그 순간부터 누구에게나 동등하게 자기만의 인생이 주어진다. 역시 그 순간부터 우리는 인생을 논할 자격이 생긴다고 난 생각한다. 그러므로 난 지금 내가 살아온 나날들과 앞으로 다가올 나의 인생을 생각해 보려 한다.
지금까지의 나의 인생, 누구나 그랬듯이 나도 어릴 적 갓난아이로부터 천진난만한 꼬마 아이가 되어 무거운 책가방을 등에 지고 사회로 한 걸음 가까워지기 위해 학교라는 곳에 들어가 부모와 집 이외의 것들을 차차 배워 나갔다. 학업은 물론 세상 살아가는데 있어 부모 다음으로 소중한 존재들 바로 친구들을 사귀게 되었고 이 친구들로부터 더욱더 많은걸 배웠다. 우정, 사랑, 행복 또한 이와 반대된 단어들도 실제 몸소 배우게 되었다. 때론 아프기도 했지만 지금 난 이 모든 걸 소중히 여길 줄 아는 현재 위치에 와 있다. 비록 어린아이도 다 큰 어른도 어느 쪽에도 속해 있지는 않지만 난 내가 지금껏 살아온 나의 인생에 만족한다.
앞으로 다가올 나의 인생을 생각한다는 게 꼭 이루어지지 않는 꿈을 꾸는 것 같다. 난 지금껏 내가 살아온 것과 같이 힘든 역경, 슬픔 그리고 행복과 기쁨 이 모든 걸 다시 한 번 배우며 살았으면 한다. 고통을 겪으면 힘들기는 하겠지만 나에겐 또 다른 배움이 될 테니까. 폭풍우가 끝나면 밝은 태양이 떠오르는 것 같이 내 인생도 그러리라 믿는다. 언제나 한순간 순간에 충실하고 만족하고 노력하는 그리고 한순간도 사랑을 잃지 않는 그런 인생, 내가 마지막으로 눈을 감기 전에 내가 걸어온 길을 회상할 때 후회 않는 인생이었으면 좋겠다.
지금 내가 앞에 말한 다가올 나의 인생이 그냥 한 번 꾸어 본 꿈이 아니기 위해선 난 아마 더욱더 나의 인생에 충실하고 소중히 할 것이다. 당연히 난 살아온 인생보다 더 나은 인생을 위해 끝없는 노력을 할 것이다.
나의 학창시절
高 3 唐 美 燕
난 지금 마지막 1년이란 시간으로 내 학창시절을 마무리하고 있다. 얼마나 생동감 있고 또 얼마나 많은 의미를 함축시킨 것일까? 학창시절이란 정의하긴 어렵지만 난 학창시절을 무지개라고 얘기하고 싶다.
무지개가 여러 빛깔을 띄고 있듯이 우리는 여러 가지 일들과 추억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나타났다가도 머지 않아 사라진다. 그래서 사람들은 학창시절을 길지 않은 황금기라고 하나보다. 하지만 무지개는 영원히 없어지진 않는다. 다음 번에 또 나타났다가 사라지고 끊임없이 반복된다.
특히 나 같은 여자아이들에겐 학창시절이 더 더욱 유별나다. 웃고 떠들고 다투고 화해하면서 나름대로의 '우정'을 만들어 간다. 우리들이 자라 보니 부모님보다는 친구들에게 더 많이 의지한다. 그만큼 우리들에겐 우정이 제일의 관심사이다. 나 역시도 친구들이 더 없이 소중하고 잃어버릴까 두렵기도 하다. 한때는 짜증이 나고 마치 세상 고민을 다 진 것 같은 기분이 들 때가 있었다. 그때는 뭐가 그리 힘들고 어려웠었는지. 지금 돌이켜보면 편한 웃음으로 넘길 수 있을 정도다. 그렇지만 내게 있어 학창시절 그 파란만장했던 일들은 내가 무엇이 되든 어디를 가든 늘 내겐 좋은 경험으로 추억으로 또 든든한 에너지가 되어 줄 것이다.
'고교의 3년은 인생의 30년과 같다.' 그 만큼 학창시절은 우리에게 많은 영향을 줄 수가 있고 또 그만큼 중요하다. 언젠가 내가 컸을 때 난 나의 학창시절을 생각하며 그리워하고 또 웃음지을 수 있으리라. 늘 마음속 깊이 자리잡을 것이다.
나의 학창생활
高 3 王 振 德
지금은 고3인 나는 지난 11년 동안 정말 파란만장한 학창생활을 해 왔다. 한 번 이사로 난 아주 많은 학교를 옮겨 다녔고 다시는 만나지 못할 것 같았던 친구와 후배까지도 전부 다시 만날 수 있게 되었다. 힘들고 지루한 전학 생활 가운데 난 어려운 환경과 힘들었던 지난날을 잘 버텨 준 내 자신에게도 아주 고맙게 생각한다.
평범하게 여느 다른 아이들과 같이 나는 명동에 있는 초등 학교에 입학하게 되었다. 하지만 나의 서울 생활은 2학년을 마칠 때쯤 잠시 쉬게 되었다. 아버지의 의견에 따라 어머니는 아무말 없이 한국의 제일 남쪽이라 할 수 있는 완도로 이사를 하게 되었다. 그에 따라 나는 집을 짓는 동안 강경에 있는 할머니 집에서 3학년을 맞이하게 되었다. 서울에서 생활하던 나는 시골 친구들의 순수함에 푹 빠졌고, 교실 두 칸밖에 없지만 서로 서로 위해 주는 선후배들이 너무 맘에 들었다. 하지만 계획대로 집은 다 완성되었고 나는 또다시 광주로 전학을 가야만 했다. 광주에서 난생 처음 기숙사 생활을 해봤다. 춥디추운 바람을 맞아 가며 형과 나는 기숙사 생활을 잘 견디어 냈다. 난 부모의 빈자리에 들어와 날 너무너무 아껴 주고 보살펴 준 형에게 너무 감사했다. 만약 이 기숙사 생활을 하지 않았더라면, 나는 아직도 형의 그 따뜻한 마음을 몰랐을지도 모른다.
시간은 지나서 3학년을 무사히 다 마쳤다. 하지만 형이 그만 졸업을 하는 바람에 나는 홀로 광주에 있게 될 줄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이런 나의 사정은 부모님이 더 걱정을 하였다. 그래서 결국은 이리에 있는 이모님댁에 보내야겠다는 결심을 하신 것이다. 또다시 전학을 가야 했던 나는 싫었지만 부모님의 말을 거역할 순 없었다. 이리까지 가는 차안에서 난 아버지를 잡고 계속 울어야만 했었다. 이리에 도착한 난 이모님께서 자주 외국에 나가시는 바람에 또 기숙사 생활을 해야 했다.
처음 몇 달간은 또 꿀 먹은 벙어리처럼 지냈었다. 기숙사는 월요일 저녁만 되면 나를 제외한 모든 사람들이 전부 집에 갔다 온 후 자랑을 하곤 했다. 어린 마음에 그걸 듣고 있으면, 그때마다 울음이 터져 나올 뻔했다. 난 집에 전화도 잘 하지 못했다. 어머니와 통화하려면 말보단 눈물이 먼저 나왔기 때문이다.
몇 달이 더 지났다. 이제껏 참아 왔던 난 드디어 참지 못하게 되어 학교를 그만 다니겠다고 부모님께 말씀을 드렸다. 아버지께선 이런 날 완도로 데리고 오셔서 완도에 있는 한국 초등 학교에 보내 버렸다. 이제껏 중국 교육만 받았었던 난 책을 봐도 무슨 말인지 몰랐고 또 갑자기 많아진 학생들의 틈바구니와 유일하게 외국인이었던 난 학교에서 일약 스타가 되어 버렸다. 시간만 되면 전교생이 몰려와서 철창 안에 있는 동물을 보듯 했고, 선생님들마다 중국어를 해보라며 귀찮게 하셨다. 4학년을 바보같이 보낸 난 성적은 거의 바닥 수준이었고 친구들도 많이 사귀지 못했다. 이런 나의 운명을 바꿔 주신 분을 난 드디어 5학년 때 만나게 되었다. 모두 외지에서 모인 친구들이라 빨리 친해질 수 있었다. 1학년을 마칠 때쯤 난 장학반에 들어간다는 얘길 듣게 되었다. 한편으로 기뻤지만 조금은 뒤쳐진 친구들과는 나도 모르게 큰 벽이 생겼다. 2학년이 되는 게 싫었다. 장학반에 들어가선 난 큰 충격을 받았다. 마치 공부 때문에 인생을 사는 듯한 애들만 있었고 선생님과 제자간의 정이란 걸 느낄 수 없었다. 아침 일찍 시작하고 저녁 늦게까지 공부를 해야 하는 교육 방침이 싫었고, 대학이란 존재가 차차 싫어지기 시작했다. 이런 내가 전학을 결심하게 된건 첫 번째 월말 고사가 끝나고서였다. 나의 가장 친한 친구와 등수 차이가 났고 그런 등수 때문에 우정에 금이 가는 것 같았다. 난 형들과 여러 선배들이 조언에 따라 다시 화교 학교에 가기로 결정했다. 내가 앞으로 한국에서 살아야 하고 한국 국적으로 귀화하지 않는다면 내 신분상 화교들과도 왕래를 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 동안 학교에서 소외감도 많이 느꼈고 그런 소외감을 사회에서도 느끼고 싶지 않았다. 지금 학교에 와서 옛날 헤어졌던 친구들도 다시 만나게 되었고, 새로운 친구들도 많이 사귀었고 처음과는 달리 성적도 많이 올라갔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좋은 건 나와는 다르지 않은 친구를 많이 가지게 된 것이다. 짧은 학창시절 동안 난 전학을 통해 많은 환경을 접할 수 있게 되었고 또 그런 환경에 잘 적응해 가며 지금 내가 원하는 일을 하고 있는 게 너무 좋다. 우등생도 돼봤고 일명 '뒷 클래스'에서 헤매기도 해봤다. 그래서 지금 난 여러 친구들의 마음도 잘 이해할 수 있다.
나의 가장 친했던 친구가 내가 전학을 가면서 내게 한마디 해줬다. '난 적응력이 강해서 어딜 가든 잘 견딜 수 있을 것'이란 말이었다. 난 항상 이 친구의 말을 잊지 않고 있다. 그리고 살아가면서 나의 학창시절의 희로애락을 생각하면 앞으로 닥칠 수많은 거칠고 힘든 일을 잘 헤쳐 나가서, 나에게 희망과 기대를 품고 있는 모든 사람들 앞에 보란 듯이 열심히 살 것이다.
눈
高 2 郭 文 正
평범하고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4지에 손가락 10개 발가락 10개 눈, 코, 입, 귀 모두 정상적으로 당연히 있을 것이다. 난 그중에 "눈"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된다.
눈이 안보이는 사람은 정말 불쌍한 사람이다. 이 무섭지만 아름다운 세상을 볼 수가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자신주변에 모든 것을 볼수 없으니까 정말 살아있어도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 같다.
요즘 사람들은 눈의 시력이 점점 약해지고 있다. 과학의 발전과 인간의 발전, TV나 컴퓨터 같은 전자 제품들을 일상생활에서 뗄래야 뗄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안경을 쓰게 되고 렌즈를 끼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도가 지나치면 실명 할 수도 있다. 소흘하기 쉬운 눈이지만 가장 신경을 써주어야만 한다.
눈이 가장 좋아하는 색은 초록색이다. 그래서 푸른잔디가 많은 곳에 사는 사람들은 눈의 시력이 아주 좋다. 눈은 우리에게 많은 도움을 준다. 공부나 지식을 위해서 눈은 없어서는 않된다. 모든 것은 많이보고 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자기에 얼굴도 못보고 보고싶은 것도 못보고 정말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눈이 안보여서 괴로워 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그것에 비하면 우리는 가장 소중한 눈을 가졌으니 더욱 많이 보고 우리의 다음 세대를 위해서 그들이 좋은것만 볼수 있도록 모든 것을 좋게 좋은쪽으로 노력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볼수 있다는 그 자체 만으로 만족하지 말고 그 소중한 눈을 많이 사용하기 바란다.
뉘우침
高 3 沈 成 巀
한 사람으로서 홀로 세상을 걷기엔 너무나 벅찬 일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타인과 더불어 살아가야 하는데, 이렇게 되면 부모 형제와 친구, 아니, 한 마디로 자기의 소중한 모든 사람과 감정이 좋아야 합니다.
되돌아보면 난 너무나 옹졸해서 여러 사람과 사이가 멀어졌습니다. 생각해 보면 아무 일도 아닌데 정말 너무나도 사소한 일로 감정이 나빠지고 서로 미워하였습니다. 모든 사람이 나에게 힘이 되어 준다는 것을 뉘우치지 못하고, 나의 이익, 나의 고집, 나의 이기심과 나의 자존심만 중요시하고, 다른 삶들은 뒷전이요 모든 것은 '나' 위주로 행동해 왔습니다. 그러다가 한 사람, 두 사람씩 멀어지고 자기 주위엔 형식적인 친구랍시고 마음에도 없는 사람만 곁에 있을 때 비로소 후회하겠지요.
커 가면서 사람과 사람 사이를 자꾸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은 밝고 낙관적인 사람을 좋아합니다. 보면 즐거운 사람, 편안한 사람, 정다운 사람, 얼굴에 미소를 띄우는 사람 이런 사람들이 환영을 받습니다. 가끔 마음에도 없는 아양을 부려야 하고, 자신은 한 걸음 물러서고 남을 한 걸음 내 보낼 수 있는 양보심. 너그럽게 생각할 수 있는 큰 아량과 인내의 아름다움, 남의 일은 자기 일이라는 미덕, 소중한 사람을 위해 희생할 줄 아는 희생정신 등을 항상 기억하고 자기보다 못한 사람이라 경멸하지 말며, 구면이라 소홀하게 대해서도 안되고, 허점이 밝혀진 즉시 인정하고 고칠 줄 알며, 반대로 상대방의 허점을 발견하면 얕잡아 보지 말고, 너무 이치와 도리에만 기울지 않게, 감싸주고 감싸 받고 돈에 너무 인색하지 않으며 모든 일이 정도에 미치지 못한다 할지라도 너부 지나쳐선 안됩니다.
사람으로 태어나서 왜 고달프게 살아야 됨을 깨닫고 때론 동물이 부러울 때도 있습니다. 비록 그들도 그들만의 고민이 있겠지만 적어도 대인관계의 압력은 없으니까요. 또한 이젠 대인관계가 원만한 날은 하루가 즐겁고 그렇지 못한 날은 하루 종일 울상이며 하는 일이 모두 손에 안 잡히고 그러다 나도 모르게 꼬인 일에 시달려 울음을 터트립니다. 이렇듯 대인 관계는 나의 하루에 심정을 좌우하고 내 삶의 큰 몫을 하고 있다는 점과 사람 사람마다 나에게 소중함을 깨우쳤습니다. 만약 깨우치지 못했다면, 난 내 기분대로 행동하며 알고 지내던 사람들은 뿔뿔이 내 곁을 떠나겠지요. 결국 남는 건 자기 혼자 예전엔 혼자라도 성공만 하면 족하다라고 생각했는데 이젠 아무리 자기 이상을 달성하였어도 혼자서 자기의 길을 걷기엔 너무나 외롭고 또한 자신도 모르는 공허감에 자신의 앞날만 생각하면서 살아온 날들을 후회할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아무리 공들여 이상을 달성하였어도 함께 걸을 사람이 없다면 그 인생은 아무 소득이 없는 실패작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늦은 봄맞이
高 3 賀 明 華
벌써 4월말. 이젠 봄도 중순에 다다랐다. 지난 늦겨울 유독 매섭던 날. 말 그대로 칼날 같은 바람을 맞으면서 봄이 빨리 오기를 바라는 맘으로 얇은 웃옷만 걸치고 덜덜 떨던 생각이 난다. 그때 내 주위를 스쳐 지나던 시선이란...... 지금 생각해 봐도 웃음이 난다. 그렇게 시간들은 지나고 드디어 봄은 왔는데, 지금은 정작 그날이 그날 같고 따스한 오후 햇살마저도 나른하게만 느껴진다. 왠지 뭐든지 시작해야만 될 것 같은 계절임은 틀림없는 것 같은데...... 나이에 걸맞지 않는 신세타령에 시간을 소비하는 건 아닌지, 이제 목련도 끝물이고 개나리도 파란 잎이 노란 꽃잎보다 무성해져서 모두들 다가올 계절이며 날씨의 변화에 따라 하루도 아니 한 시간도 머무름이 없이 스스로를 만들어 가고 있다. 따가움과 태양의 빛으로 곧은 가지는 뿌리로부터 끌어올린 수액으로 자신들을 가꾸고 있다. 어찌 보면 인간이 모든 대지와 하늘의 것들보다 훨씬 무딘 감각을 지닌 것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겨우내 부지런히 봄을 생각하며 준비한 꽃봉오리가 하나 피어야만 그것을 보고 뒤늦은 탄성을 내지르며 '응, 이제 봄이구나'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또 그런 생각의 단편들을 정리하고 뭔가 시작이라도 할까 하면 어느새 봄은 저만치 서서 내년을 기약하며 여름 준비를 서두른다. 마치 한 발 앞선 자와 쫓아가는 자의 돌고 도는 경주를 보는 듯한 계절의 변화와 삶들, 그 속에서 어떠한 느낌 없이 사는 건 얼마나 무의미한 것일까? 아니, 무의미한 단어보다 아쉽다거나 안타깝다는 말이 더 어울릴 것 같다.
어느 책에선가 읽은 글이 생각난다. 깨질 듯한 아픈 머리로 병원을 찾은 한 남자가 암이라는 판명을 받게 된다. 그는 괴로워 가슴을 치며 자신의 삶을 후회하는 3일을 보내고 나서야 의사의 오진이였음을 알게 된다. 그때의 그 사람의 기쁨과 감격을 어떻게 말로 할 수 있을까? 주위의 모든 것을 사랑스럽고 아름답게 보게 된 그는 열심히 살 것을 다짐한다. 그때 의사는 조용히 충고한다. 당신 같은 사람은 얼마 안되어 다시 예전처럼 된다고, 부디 지금의 마음을 잊지 말 것을...... 난 내 스스로가 무뎌지고 흔들릴 때마다 의사의 충고를 , 아니 그 남자가 느꼈을 심정을 기억해 본다. 봄을 맞으며 무기력해진 내 스스로를 보고 흠칫 놀라기까지 하는 지금, 다시 한 번 생각해 본다. 주위의 것들이 새롭고 활력소들로 충만해지게.
이제 봄은 새로운 느낌으로 다가온다 코끝을 스치는 훈풍으로 크게 한 번 숨을 들이켜 보면서 4월말 난 진정한 의미의 봄을 맞는 것이다
무(無)와 유(有)의 차이점
高 2 宇 忠 信
무(無)와 유(有). 이 둘 사이에는 이상하리만치 멀면서도 어떻게 보면 이 세상에서 가장 가까운 것 일 것이다.
이 우주는 태초에 무(無)에서 시작되었으며, 점차 팽창하고 있다. 그러는 가운데 많은 은하계, 별, 생명체가 생겼다. 이것이 바로 무(無)가 유(有)로 진화하는 기본단계라 할 수 있다. 그 별에선 여러 무생명체가 유생명체화 됐으며 지금의 우리를 낳은 것이다. 현재의 우리 역시 무로부터 태어났다. 우리는 본래 어머니의 몸 속에서 무의 존재였으며 어머니가 한 남자 즉 아버지와 결혼하여 무였던 우리가 유체(有疜)화 된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언젠가 다시 무로 돌아갈 것이다. 우린 우리의 부모님들과 같이 무를 유로 만드는 과정을 계속할 것이다.
무는 유를 낳고 유는 무로 돌아간다. 무앞에는 또 유가 존재한다. 무와 유의 굴레 이것은 그 무언가로 연결되어 있다. 그것은 영원히 깨지지 않고 우리의 주위에서 맴돌 것이다.
동화 속에서
高 2 王 可 慧
동화는 어린이에게는 꿈과 희망을 어른들에게는 동심을 느끼게 하는 아름답고 슬프고 재미있고 유익한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동화들은 예전부터 전해져 온 이야기이기 때문에 어떤 내용은 현재의 우리가 봤을 때 좀 이해가 안가는 부분이나 혹은 "나라면 이렇게 했을 텐데"라고 생각하는 부분이 많습니다.
우선 아름다운 동화의 대명사인 [신데렐라]에서 한 번 찾아 보겠습니다. 신데렐라가 무도회 방에서 급히 뛰어 나오다가 유리 구두를 떨어뜨린 내용은 아주 유명하죠. 근데 바로 이 유리구두가 문제입니다. 12시가 되면 신데렐라가 입고 있던 옷 타고 왔던 마차 등은 모두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갑니다. 하지만 왜 유리구두만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가거나 사라지지 않았을까요? 슬픈 동화하면 생각나는 이야기는 바로 [인어공주]입니다. 여기에도 이해가 가질 않은 부분이 있습니다. 왕자님을 바다에서 구해 준 것은 인어공주이지만 인간이 되는 조건으로 마녀에게 목소리를 빼앗겨서 그 사실을 말하지 못합니다. 인어공주는 왜 바보처럼 자신이 왕자님을 구했다고 말하지 못했을까요? 만약 저라면 꼭 말이 아니더라도 수화나 글자, 아니면 그림을 그려서라도 알렸을텐데...... 현대인인 저로서는 도저히 인어 공주의 행동을 이해 할 수 없습니다. 마지막으로 재미있는 모험의 동화 [알라딘]에서 램프의 요정 [지니]는 자기의 주인에게 세 가지 소원을 들어준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알라딘은 맛있는 음식을 먹게 해 달라 호화로운 성을 지어 달라는 등의 소원을 말했습니다. 하지만 제가 만약 알라딘이였다면 지니에게 소원을 열 개로 늘려 달라고 말하겠습니다. 그러면 소원을 더 많이 빌 수 있고 어쩌면 영원히 쓸 수도 있으니깐요.
제가 동화속에서 한 이런 생각들은 한편으론 재미있지만 또 한편으론 너무 안타깝습니다. 이것은 아름다운 동화를 만든 옛사람들의 정서와 이 동화를 읽은 현대인들의 정서가 다르다는 것입니다. 어른들은 동화는 어린이들만이 읽는 것인 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따뜻한 마음을 가르쳐 주는 동화는 정서가 메마른 어른들에게 더욱 필요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도 동화를 읽으면서 따뜻하고 아름다운 마음도 배우고 저처럼 재미있는 생각도 해보세요.
다이어트
高 2 孫 正 華
문명이 발전하면서 아름다움의 기준 역시 많이 바뀌었다. 또 아름다움은 여러 나라마다 그 기준이 틀리다. 먼저 가까운 한국을 보면 옛날에는 통통하고 복스러워 보이는 것이 최고의 아름다움이라고 생각했으나 현재에 들어선 무조건 날씬하고 키 크고 뚜렷한 생김새 볼륨 있는 몸매가 미의 기준이 되고 있다. 예를 들어 미스코리아나 모델들을 대표로 내세울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은 남녀 구분 없이 모두 지신의 모습이 아름다워지기를 바란다. 또 그 아름다움을 위하여 여러 가지 일들을 하기도 한다. 다이어트 역시 그 중의 하나이다. 또한 대부분 남자보다 여자가 더 아름다움에 관심을 보이고 있는데 다이어트는 현대 여성들이 미를 위하여 제일 많이 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 역시 다이어트를 하고 있거나 생각을 하고 있는 사람이 많이 있을 것이다. 여자라면 아마 한번씩 해봤을 다이어트. 물론 다이어트를 어떻게 하냐에 따라서 그 의미는 달라진다. 다이어트를 한다고 해서 무조건 며칠 동안 굶어서 살을 빼려는 사람은 살을 빼기보다는 오히려 자신의 건강을 더욱 해칠 뿐이다. 또 계속 굶다 보면은 어느덧 자신도 모르게 거식증에 걸려 음식을 거부하여 결국엔 죽음의 문턱에 들어선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 그런 얘기를 듣다 보면 정말 섬뜩해진다. 어느 정도의 비만인 사람이 적당량을 먹으며 운동을 하며 정상적으로 다이어트를 한다면 괜찮지만 아름다워지고 싶다며, 나도 어느 모델처럼 되고 싶다며 무리한 다이어트를 하면 오히려 포기하는 것이 날 것이다.
다이어트를 하는 것은 좋은 생각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진정한 아름다움은 자신의 모습 그대로 마음이 아름다움이 드러나는 것이니까.
모애(母愛)
高 2 傅 象 莉
이 세상에서 가장 값지고 아름다운 것을 물어 본다면, 저는 그것을 모애라고 답해 주고 싶습니다 모는 어머니를 뜻하고. 애는 사랑이라고 부른다. 즉 모애란? 어머니의 포근하고 아름다운 사랑을 뜻합니다. 어머니이란 분은 우리에게 둘도 없는 분이시고, 우리를 이 아름다운 세상에 태어나게 해주신 분입니다. 그런데 우린 갈수록 어머니의 존재와 의미를 점점 잃어만 가고 있습니다. 이렇게 복잡한 현대 사회에서 언제나 발전과 앞서려고 만합니다. 그래서 점점 어머니의 사랑을 잊어 가고만 있습니다. 요즘 사람들은 오히려 감사하려고 들지도 않고 괜히 짐만 된다고 양로원에 보내질 안나 아니면 길에다가 버리기도 한다고 합니다. 우리 옛 선조를 보면 훌륭한 어머님도 계시고, 지옥 속에서 어머니를 구한 효자도 있습니다. 옛말에 이러한 말이 있습니다. '어머니는 나를 낳으시고 아버진 나를 기르시니' 라는 말도 있습니다. 그래서 우린 더욱더 외면해선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TV에 나와서 어머니를 찾기도 합니다. 이러한 일들은 우리를 감탄하게 하고 또 우리는 열심히 부모님 말씀을 잘 들어야겠다고 느낍니다. 우리를 낳으시려고 배를 아프면서까지 낳으시고, 그래서 전 저희 어머니처럼 훌륭한 사람이 되고 싶고 저도 비록 어머님의 말씀을 잘 안 듣지만 이 문장을 쓰면서 저도 잘해야 되겠다고 생각합니다.
세상에는 부모님 중에 어머니처럼 위대한 분은 안 계신다고 한다. 유명한 인물들도 모두 다 뒤에서 어머니께서 격려 해주셔서 그리고 또 밤낮 꼬박 새워 자식이 시험에 붙게 하기위해 힘을 써 주신 분도 어머님입니다. 이러한 어머니가 노화되어서 병들어 누워 계실 때 도대체 누굴 의지해야 할까요? 자신이 어렸을 때 병이 들어 옆에 밤을 새운 어머니가, 병들고 아파 자리에 눕게 되면 자식인 우리가 어머니를 보살펴 드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전 이 문장으로 비로소 어머니에게 '감사하다고 말을 전하고 싶고 또 세상에 있는 모든 자식들은 자신의 곁에 남아 있는 어머니께 효도하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물
高 2 慕 桂 芳
우리의 실생활에서 '물'은 없어선 안되는 물질이다. 물론 물은 예전부터 우리에게 많은 편리함을 제공해 왔다. 수력발전 수돗물, 식수, 농사, 공업 이 모든 것에 연관되어 빠져선 안되는 물이, 요즘엔 오염과 낭비로 날로 줄어들고 있는 현실이다. 최근 UN에선 한국을 물이 부족한 나라로 지정됐다.
아침에 기상해서 양치질하고 세수하고 식사하며 물을 마시고 학교에서 손 닦고 청소하며 물을 길러서 교실에 뿌리고 나의 하루 생활의 모든 것들도 물과 관련이 있다. 하물며 다른 사람에겐 어떠하겠는가? 빨래 농사 설거지 외에도 많은 일들이 물이 없어선 절대로 하지 못하는 일들이다. 그런데 만약 물이 없다면 이 세상은 어떻게 될까? 한마디로 끔찍해질 것이다. 곡식들도 없을 것이고 우리 몸에 70%이상이나 차지하는 수분을 어디에서 충족시킬 것이며 또 우리의 생활은 비위생적으로 변해버린 것이다. 현재 물이 모자라는 실황은 한국 이외에도 많은 나라들이 포함되어 있다. 멀지 않은 미래에 전 세계는 이처럼 변할지도 모른다. 지금 당장은 불편함을 느끼지 못하더라도 멀지 랧은 훗날 우리의 후세들에게 무한한 원망을 들을지도 모른다. 이 모든 끔찍한 상황을 피하기 위해선 현재 우리들의 자구 노력이 금장 결과가 나타나는 것은 아니겠지만 훗날 분명 좋은 결과가 있을 거라고 믿는다. 그리고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해야 할 일이기도 하다.
마지막으로 정리하려 한다, 물은 우리에겐 생명수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 생명수가 어떻게 되냐 하는 것은 우리의 손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 모두 물에 대해 더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할 때가 왔다.
봄
卒業生 劉 永 愛
소리 없이 나의 곁으로 찾아온 - 봄.
그녀는 내리쪼이는 햇빛과 동쪽 나라에서 부는 따스한 바람을 몰고 왔다. 그녀는 이 땅위에 있는-아직 잠에서 미쳐 깨어나지 못했던-만물들을 새롭게 다시 눈을 뜨게 했다. 세상이 온통 "새싹"이다. 땅을 박차고 올라온 새싹은 몰래 몰래 이 대지를 흘끔 쳐다보기도 한다. 모든 것이 이토록 아름답고, 신선하기만 하다. 가는 곳마다 흐르고 있는 이 "신(新)"의 향기로움......
"봄", 그녀는 이 우주에 생기를 불어 줄 뿐만 아니라, 사람들에게 꿈과 희망을 안겨 준다 또한 봄은 한해, 모든 계절, 자연의 시작이다. 그만큼 봄은 우리 내 인생에서 중요한 자리를 잡고 있다. 꽃은 시들어지면 다시 피울 수 있고, 봄이 가면 다시 올 수 있지만, 앞으로 우리에게 주워지는 봄은 과연 몇 번이나 남았을까?
봄은 성장 단계에 있는 청소년의 계절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21세기를 바라보고 있는 지금 우리의 청소년들은 어떠한가? 그야말로 죄악으로 찌들어 가고 있다. 폭력과 타락을 일 삼으며, 이 봄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은 짓들만 골라 하지 않은가? 이래서는 "봄"이 너무 초라해질텐데......
이제는 우리 모두 정신을 차릴 때가 온 것 같다. 우리 함께 손을 잡고, 아름답고 귀여운 "봄"과 함께 할 수 있는 세상을 열자. 그래야 봄이 다시 올 때 더욱더 아름답게 치장을 하고 찾아오지 않겠는가? 그리고 인생의 봄날을 죄악으로 좋은 날을 다 보낼 순 없지 않는가?
봄
高 2 崔 美 蘭
추운 겨울이 가고 따뜻한 봄이 찾아왔다. 개구리가 잠에서 깨어나고 얼었던 시냇물이 슬슬 녹아 내린다. 역시 봄은 만물이 소생하는 계절인가 보다.
봄 하면 제일 먼저 뭐가 생각날까? 따스한 햇살, 파릇파릇 돋아나는 새싹. 하지만 봄하면 역시 잠이 최고다. 수업 시간에 자는 단잠 이 맛은 자본 사람이 아니면 그 아무도 모를 것이다. 또
봄하면 역시 책이 떠오른다. 그것도 사랑에 관한.....(히히) 봄은 사랑의 계절 누가 이런 말을 했을까? 진짜 동감이 팍팍 간다. 봄 같이 아름다운 계절에 사랑이 빠진다면 그야말로 실없는 바늘과 같은 것이다. 그래서 봄이 되면 특히 대학생들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성 친구를 구하려 한다. 진짜 이성 친구가 없는 쓸쓸한 봄. 생각만 해도 흐..... 또 어떻게 보면 봄은 사랑을 빼앗아 가는 것 같다. 왜냐하면 봄바람 이게 문제다. 어떤 사람들은 계절이 바뀌면 봄을 탄다. 물론 사랑을 하는 사람들도 예외는 없다. 단 한쪽이라도 봄바람을 타게 되면 그 사랑은 보나마나 불확실해 질 것이다. 그래서 난 봄이 좋기도 하고, 두렵기도 하고 밉기도 하다. 도대체 봄의 진짜 모습은 무엇일까? 그건 아마도 아름다움 그 자체가 아닐까? 아무튼 봄은 사람의 마음을 환하게 하는 건 사실이다.
그래서 이런 노래도 있지 않은가? '봄이 오면 산에 들에 진달래 피고 진달래 피는 곳에 내 마음도 피네' 또 '봄. 봄. 봄. 봄. 봄이 왔어요. 우리 마음속으로-' 역시 봄은 즐겁고 아름답다.
목련, 벚꽃, 개나리, 진달래가 활짝 피는 계절. 기차를 타고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계절 버스에서 슬픈 사랑의 이야기나 노래가 나오면 왠지 가슴이 저리는 계절. 그 외에도 많은 것들이 이 아름다운 봄을 표현한다. 아- 봄이 우리 곁을 안 떠났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그건 내 욕심일 뿐 봄은 분명히 우리 곁을 떠나고 또다시 온다. 그러나 우리 마음속으로 봄을 생각하고 언제나 환한 미소로 하루하루를 살아간다면 봄은 우리의 마음속에서나마 영원히 안 떠날 것이다.
사계절 속의 행복
高 2 唐 如 靑
사람이 다르게 생긴 것처럼 또는 4계절이 있는 것처럼 나에겐 계절의 행복이 있다.
봄엔 따뜻한 햇살과 땅속에 묻혀 갓 내민 새싹의 얼굴이 새로운 시작은 참으로 행복한 것 같다. 「하루의 시작은 아침부터이고, 일년의 시작은 봄으로 시작된다」는 말이 있다 행복도 모든 시작, 처음에서 느낄 수 있는 거라 생각한다. 또 여름은 여름대로 나에게 있어서 행복이다.
우선 '여름'하면 생각나는 것이 바다다, 그만큼 우리의 기억 속에 남을 수 있는 것은 행복한 순간들이 많아서가 아닐까? 가을에도 행복한 일이 많다, 한편으로 슬프지만... 거리에 낙엽들이 떨어져 차곡차곡 모이고 또 그곳을 걷는 사람들은 얼마나 행복감에 빠져 있을까? 낙엽이 떨어지면 모든 것을 잃은 것 같아 조금은 슬프지만 눈송이 같이 내리는 낙엽을 보면 행복감에 빠질 수밖에 없다.
4계절 중 가장 아름다운 경치를 자랑하는 겨울이 있다. 하얀 눈이 소복소복 쌓이면 온 세상이 따뜻한 솜 이 불을 덮은 것처럼 보여 포근하다, 이 포근함을 느낄 수 있어서 행복한 것 같다.
생활하면서도 난 행복을 느낀다. 친구가 있고, 부모님이 있고 또 그 따뜻한 집과 즐거운 학교가 있기에 난 행복하다. 4계절이 날 행복하게 하는 것보다도 더.....
소 풍
高 2 孫 璇
[소풍]이라는 단어를 들을 때마다 저의 마음은 한없이 설렙니다. 아마 저뿐만 아니라 모든 남녀노소들도 같은 마음일 것입니다. 특히 학생들한테는 천국입니다. 왜냐면 소풍을 가면 공부도 필요 없고, 아무 걱정 없이 놀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저도 예외일 수는 없지요.
우리 학교는 2년마다 소풍을 갑니다. 이번에는 [용인 에버랜드]에 갔습니다. 저는 전날에 아주 걱정했습니다. 만약 비가 오면 어떡하나 그런데 다행히도 비는 안 왔고 하늘은 푸르기만 했습니다. 그래서 저의 마음은 더욱더 기뻤습니다. 학교에 와 보니 친구들은 모두 설레는 마음으로 들떠 있는 것 같았습니다. 조회를 마치자마자 학교에서 배정해 준 차를 탔습니다. 5,4,3,2,1,0! 드디어 우리 반의 차가 출발하였습니다. 가는 길에 우리는 차에서 먹고 놀고 창문밖에는 그렇게 아름다운 풍경인데 우리는 감상하지 못하고, 계속 신나게 놀다가 드디어 목적지에 도착했습니다.
목적지에 도착해 보니 사람들이 시장에 온 것처럼 많아서 좀 불편했습니다. 처음 우리는 놀이기구 3가지를 탔습니다. 그런데 모두다 어지럽고 무서운 것이였습니다. 기구를 다 탄 후 우리는 점심밥을 먹었습니다. 그후 이제는 계속 사진을 찍었습니다. 우리는 좋은 풍경을 찾기 위해 여기저기 뛰어다니면서 많은 사진을 찍었습니다. 우리는 다 각자의 예쁜 포즈를 하면서...... 에버랜드에는
꽃이 많이 피어서 참 예뻤습니다. 꼭 우리 같이......
4시20분에 차에서 집합하였습니다. 좀 아쉬웠지만 참 재미있게 놀았습니다. 오는 길에 우리는 너무 피곤해서 모두 다 꿈나라로 갔습니다. 좀 갔다가 또 친구들하고 사진 찍는 순간 벌써 학교에 도착하였습니다. 이번에 소풍을 가서 많은 추억을 남겼습니다. 만약 다시 기회가 생기면 저는 꼭 친구들하고 다시 한번 에버랜드에 가고 싶습니다. 그때는 꼭 더 좋은 추억을 만들어서 영원히 간직할 것입니다.
소 풍
高 2 呂 序 麗
따스한 햇빛이 우리의 머리 위로 내려쬐는 봄날. 우린 소풍을 갈 수 있었다. 여름 날씨 못지 않게 따스한 봄바람이 불어온다.
호화찬란하게 피어 있는 꽃들과 들판에 갓 돋은 잔디,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 나는 그 아름다운 봄 향기에 젖어 보고 싶다
四季중 제일 아름다운 봄. 나는 마음속으로 무척이나 기대했다. 매번 소풍을 갈 때면 잠을 못 이루는 그런 어린 시절이 머리 속을 스쳐 가기도 한다. 이번 역시 마찬가지이다. 들뜬 마음으로 그날을 손꼽아 기다려야만 했다. 그날이 되었다. 학교엔 각양각색의 옷을 입은 학생들, 확실히 봄이 온 것을 가리키나 보다. 옷의 색상이 다 봄에 어울리는 색이었다. 모두 한곳에 모여 출발 준비를 했다. 차에 이르렀을 때 사진 찍는 사람, 가방에서 먹을 것을 꺼내어 먹는 친구들 그리고 마이크를 붙잡고 노래하는 친구들 여러 가지이다. 나는 친구들과 나란히 앉아서 사진도 찍고, GAME도 했다. 어느새 목적지에 도달하였다. 시간가는 줄도 모르고...... 나는 내려서 친구들과 입장하였다. 그런데 너무나 놀란 것은 내 생각이 너무 의외였다. 평일이라서 사람이 없을 줄 알았는데 예상 밖이었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와 있었고, 너무 봄비는 것이었다. 나는 거기에 서 있는 인형들과 사진을 찍었다. 가는 곳마다. 튤립으로 장식해 놓은 것이 아름답고 이뻐보였다. 여러 가지 색으로 물든 꽃들, 아마 우리가 간 시기가 절정이었나 보다. 그날은 여느 때보다 훨씬 더운 날씨여서 꽃들이 더 활짝 핀 것 같다. 조금 더 걸어서 재밌는 기구를 탔다. 줄을 오래서 있어서 다리가 무척 아팠다. 조금 걷다 친구들을 만나서 사진을 찍었지만 그리 많이 찍지 못해서 안타까웠다. 계속 놀다 걷다 반복을 했다. 너무 힘든 나머지 벤치에 앉아 쉬고 있었다. 그런데 저기 먼 쪽에서 보이는 분수대를 보게 되었다. 우리는 숨이 채 가시기도 전에 분수대를 행해 뛰었다. 사진을 마구 찍고 싶었지만 사람이 너무 많았다. 옆쪽엔 신기하게도 땅에서 물이 솟아오르는 것이다. 사람들이 모두 물이 조금씩 튕길 때 뛰어 건너기에 우리도 마구 뛰었다. 옷이 촉촉이 젖었다. 더위를 가시게 해줬다. 그리고 선물 사는 코너에 가서 기념품을 하나 샀다. 집합 시간이 다 되어서 우린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하나 둘씩 떠나가는 모습이 모두들 지친 모습이지만 그래도 재미있었다는 듯 웃으며 발걸음을 재촉했다. 버스가 있는 곳까지 가서, 차에 올라탔다. 다른 반 아이들이 우리 차에 탔다. 그래도 재미있게 놀아서 다행이다. 나는 피곤한 것도 모르고 계속 놀기만 했다. 학교에 도착했을 때 아마 우리가 제일 늦게 도착했나 보다. 점점 어두워졌다. 지친 모습으로 집으로 향했다.
나의 하루는 이렇게 지났다. 정말 즐거운 하루였다. 대자연을 맛볼 수 있어서 좋았다. 매일 반복되는 생활 속에서 벗어났으며, 내가 살고 있는 곳에서 느낄 수 없었던 것을 그곳에 가서 느꼈다. 그리고 창조란 것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됐고 이 만물을 창조하신 분께 감사드린다.
자연 속에 살아가면서 더더욱 자연을 보호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소풍갔던 날은 내 속에서 오래오래 기억될 것이다.
수 학 여 행
高 3 李 慧 玲
4월15일 아침. 나는 전날부터 설레는 마음에 평소보다 1시간이나 늦게 잠이 들었고 떠나는 날
어느 때보다 기쁜 마음으로 아침을 맞이할 수 있었다. 학교에 도착하자 드디어 진짜 수학 여행을 가는구나 하고 실감을 했다. 아홉 대의 버스가 늘어져 있었고 저마다 큰 가방에 사복을 멋지게 차려 입었다. 친구들의 얼굴에도 기쁨이 가득했다. 선생님의 주의 사항을 듣고 우리는 버스에 올랐다. 저마다 신이나 우리는 음악을 틀고 평소에 쌓였던 스트레스를 춤과 노래로 팍팍 풀었다. 시간은 눈 깜짝할 사이에 흘러갔고 놀다 지친 우리가 잠이든 사이 버스는 이미 경주에 도착했다. 각자 방을 배정 받은 우리는 짐을 풀고 식사를 했다. 비록 맛은 없었지만 너무 재밌고 신났다. 그날 저녁 우리는 여관에 있는 노래방에 가서 노래도 부르고 댄스 파티도 열었다. 밤늦게 까지 놀다가 피곤에 지친 우리는 조용히 다음날을 기다렸다. 드디어 이튿날 우리는 본격적으로
여러 유적지를 돌아다녔고 사진도 찍고 바닷가에도 갔다. 수학여행을 가서 남는 건 사진밖에 없다고 해서 우리는 사진도 수없이 찍어 댔다. 세쨋 날도 다를 바 없이 유적지를 돌아 다녔고 우리는 드디어 기다리던 캠프파이어를 하게 됐다. 우리들은 저마다 개성 있는 옷차림과 연기로 서로를 즐겁게 해 주었고 끝나 가는 여행을 못내 아쉬워하며 마지막 날이 오지 않기를 바랬다.
마지막 4일째 우리는 일정대로 [에버랜드]로 향했고 거기서 목이 터져라 소리를 질렀고 마지막 장소에서 신나게 사진기 셔터를 눌러 댔다. 오후에 우리는 다시 서울로 돌아오게 되었고 차안에
서 우리들의 표정은 참 가관이었다. 피곤에 지쳐 자는 애들, 못내 아쉬워하는 애들, 마지막까지
시간을 허비하지 않기 위해 신나게 노는 애들 저마다 모두 아름다워 보였고, 우리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생이 되어서 언젠가는 이 여행을 그리워하며 사진을 보는 모습이 순간 내 머리를
스쳐 갔다.
4일간이란 길지도 짧지도 않은 이 여행을 통해 나는 우정을 다시 한 번 확인 할 수 있었다 정말 너무 즐거운 여행이었고 나는 영원히 이 여행을 잊지 못할 것이다.
수학여행
高 3 牟 德 蓉
학창시절을 보내면서 우리들의 기억 속에 깊이 자리 잡고 있는 추억 거리가 있다면 그 첫 번째는 아마도 수학여행일 것이다. 철없던 중 3때와는 또 다른 마음으로 떠나는 고2 수학여행은 우리 반이 다 같이 모이는 마지막 여행이라서 그런지 마냥 기쁘지만은 않았다.
나는 수학여행 전날 밤에 마음이 설레어 잠을 이루지 못했다. 빼먹은 물건은 없는지 아침에 늦잠을 자서 버스를 놓치진 않을까 하는 이런저런 걱정 때문에 편히 잘 수가 없었다.
드디어 그날, 우리는 버스를 타고 8시간만에 목적지인 청주에 도착했다. 무거운 짐을 숙소에 풀어놓고, 그곳에서 준비해 준 따뜻한 밥을 먹었다. 왜 그리도 맛있었는지 아직도 입가에 군침이 돈다. 그리고 그 다음날 아침 일찍 일어나 아침 식사를 하고 이곳과 가까운 불국사에 갔었다. 2시간이라는 자유시간 동안 우리는 기념 사진을 찍었다. 평소 친하지 않았던 친구들과도 오늘만큼은 부담 없이 같이 놀았다. 저녁 시간이 되면 마음 맞는 친구들끼리 한 방에 모여 불을 꺼 놓고 베개 싸움도 하고 , 귀신 얘기도 해 가며 배가 출출해진 걸 느끼면 각자 준비해 온 밑반찬과 라면을 꺼내 먹었다. 그렇게 정신없이 3일이 지나고 마지막 날이 다가왔다. 그제야 나는 정신없이 보낸 3일이 후회되고 아쉽기만 했다. '좀도 재밌고 뜻깊게 보내고 싶었는데'하는 생각이 머리 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이미 졸업한 선배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남는 건 사진뿐이라던데, 그래서 우리는 재미있는 순간 순간을 필름 속에 하나씩 담아 갔다.
시간은 우리를 기다려 주지 않았다. 아쉬움을 떨치지 못한 채 버스에 올라탔다. 창 밖을 보면서 마음을 조용히 가다듬었다.. 모두들 힘들었는지 잠을 청하고 있었고, 나 또한 그랬다. 학교에 도착했을 때 서로 몇 마디를 주고받고는 각자의 집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언젠가는 우리 모두가 다시 한자리에 모여 오늘처럼 즐겁게 놀 수 있길 바란다. 아마 그때는 우리 모두가 또 다른 모습을 하고 있겠지. 만약 그런 날이 오지 않는다 하더라도 난 오늘의 추억으로 만족하고 학교생활에 충실하려 한다.
생활방식
高 2 臧 秀 瑛
우리 모두는 성장하면서 사람들은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된다. 사람들은 서로 다른 방식으로 즐거움을 찾으며, 자신의 생활을 만들어 낸다. 자신만의 생활 방식을 만들고 또 그 방식에 따라 생활하고 있다. 생활 방식은 곧 우리가 어떻게 생활하느냐와 같다. 그러므로 아주 중요하다. 각자의 방식이 다른 만큼 세상 사람들은 모두 다른 인생을 살고 있다. 올바른 생활을 하는 사람은 곧 즐거운 생활, 행복한 인생을 망칠 수도 있다. 우리는 그런 차이가 인생을 재미있게 해주는 것이라고 믿도록 길러졌다.
생활방식은 여러 가지로 나눌 수 있는데, 그 방식은 어떻게 만드느냐에 따라 사람의 인생과 목표는 달라지는 것이다. 간단하게 말하자면 나만의 이기적인 생활방식은 될 수 있으면 만들지 않는 것이 좋다. 이기적인 생활방식은 그저 자기만의 생활이 아니다. 사회와 연결된 하나의 연결선이 아닌가 하고 생각된다. 그러므로 더욱 중요하게 생각을 않할 수가 없다. 생활방식은 수학 방정식처럼 계산된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 창조해 나가는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된다.
스트레스
高 1 鄒 德 建
사람이라면 누구나 스트레스를 받는다. 스트레스...... 간단하게 해석하면 일상 생활에서 받는 압력이라고 할 수 있다. 정신적, 육체적, 심리적으로 받는 압력. 그중 보편적으로 비율이 높은 것은 정신적 스트레스이다.
요즘 기업 사이에서 명퇴, 조퇴가 늘고 있다. 이런 환경에서 회사원들은 혹시 이런 일이 자신한테 일어나지 않을까 걱정한다. 이런 정신적 압박감이 결국 정신적 스트레스로 변한다. 그러고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게 필사적으로 일한다. 이러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육체적 스트레스가 쌓인다. 결국 어느 날 갑자기 쓰러진다. 중풍, 과로사 등이 바로 구체적인 예이다.
육체적 스트레스는 어른들만의 것이 아니다. 학생에게도 많이 있다.
요즘 좋은 직업을 찾으려면 대학 졸업은 기본. 하지만 대학 문턱은 좁고, 멀기만 한데, 그래서 학생들을 대학에 들어가려고 매일 밤을 새면서 365일 동안 거의 공부만 한다. 쉬는 시간까지 포기하면서 매일 밤을 새면서 공부한다. 쉬는 시간조차 없으면 인체는 과연 얼마나 견딜 수 있을까? 사람마다 다르지만 예를 들면 대만에는 매년 대학 입시 전후로 죽는 사람이 많이 있다고 한다. 대부분 자살이고, 심지어 한 학생은 대학 입시를 치르지 못하고 대학 입시 전날 밤에 심장 발작으로 죽었다. 사망 원인은 오랫동안 정신적 스트레스가 쌓여서 결국 심장 발작을 일으켜 한을 품고 세상을 떠난 것이다. 그리고 통계에 따르면 대학 입시에 결석하는 사람들 중 기절해 실려 나가 시험을 치르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이다. (지각한 사람은 뭐가 되지?)
요즘은 한두 살 아기도 스트레스를 받는 시대이다. 어떻게 스트레스를 해소해야 할까? 대부분 노래방을 찾는다. 요즘은 노래방을 는 사람들이 많아 노래방의 하루 수입이 엄청나다.(그래서 요즘 노래방 주인들이 입을 다물지 못하고 웃는 이유인가?) 심지어 스트레스 해소방이라는 신흥 업종도 나왔다. 하지만 이들 업소에서 드는 비용도 적지는 않다. 이건 본인 생각이지만, 자기 체질에 맞게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한다.(노래방 가다가 나중에 목이 아프다고 하는 사람이 하나 둘인가?) 그래야 스트레스도 풀고 자신의 건강도 지키고......
본인으로 말하자면, 모두가 알아주는 컴퓨터 광이다. 본인은 컴퓨터로 스트레스를 푼다. 예를 들면 정상일 때는 게임을 하고 사이코로 돌변하면 CD음악을 지붕이 날아갈 정도로 약10초-20초 정도 튼다. 그리고 늘 즐거운 마음으로 산다.
끝으로 독자 여러분들께 한마디. 항상 즐겁게 살자. 모든 일에 너무 계산하지 말자. 그리고 제일 중요한 것은-가끔 사이코로 변해 볼 것!
아름다움과 미움
高 2 孫 善 娜
이 두 단어의 차이는 엄연히 다르다. 미, 아름다움. 내 생각엔 우린 이 글자의 진리를 모르고 있는 것 같다. 진정한 미는 우리가 눈으로만 보이는 것보단 마음으로 느낄 수 있는 것이다. 얼굴이 예쁘다고 미를 상징하는가? 아닐 것이다. 아름다움을 상징하는 것은 겉모습이 아니라 속마음 일 것이다.
요즘 신세대들 사이에 유행하고 있는 옷, 신발. 길거리를 걷다 보면 눈에 띄는 사람들, 몸에 짝 달라붙는 옷, 자기 발보다 훨씬 큰 신발들, 이런걸 입고 다니며 유행에 따른다고 들 한다. 또 우리는 이런 사람들에게 개성이란 단어를 붙여 준다. 이런 개성이나 유행이 정말 아름다움에 가까이 갈 수 있을까? 내 생각엔 외모와 관계없이 마음씨가 좋고 상냥하다면 그 빛이 절로 뿜어 나올 것이고 굳이 이런 유행을 따르지 않는다 하여도 사람의 눈길을 끌 것이고 많은 사람의 찬양을 받을 것이다.
우리는 TV나 신문에서 진정한 미의 아름다움을 찾을 수 있다. 메마른 사회 인정 심과 사랑이 없는 사회 이런 것들이 TV나 신문을 차지하고 있을 때 진정한 아름다움이 사회의 한 구석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이 사회는 빛을 찾을 수가 있다. 세상이나 시대는 발전하고 있지만 반면 인간미는 오히려 퇴화되고 있음을 우리는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아무도 모르는 사이 누군가를 돕고 보살펴 주는 사람이 있기에 이 세상을 살아갈 의미를 찾을 수 있다.
언니의 편지
高 3 孫 淑 華
토요일마다 나는 언니의 집에 가곤 한다. 벌써 결혼을 하고 쌍둥이를 둔 어머님이다. 언니는 지금 아주 바쁘게 지내고 있다. 기독교를 믿는 우리 식구 그래서 이름도 주찬이와 주언이다. 낮에는 항상 혼자 아이를 보느라 밥 먹을 시간도 없다. 결국 병이 나서 파출부 아주머니를 고용하였다. 처음엔 맘에 안 들었던지 불만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두 번째로 온 아줌마는 뭐든지 착실하고 아기도 잘 돌봐 준다며 칭찬하셨다. 1주일마다 나에게 용돈을 주는 작은언니, 고마워서 나는 매주 주일에 조카를 대신 봐준다. 일요일 어느 날 기숙사로 돌아오려고 막 나가려는 순간 언니가 나에게 편지를 주는 것이었다. 학교에 가서 읽어보라면서 말이다. 내용이 얼마나 궁금했는지 난 차를 타고 가는 중 궁금해서 편지를 그냥 보려고 했지만 난 결코 언니 말을 무시하지 않았다. 기숙사에 들어서자마자 곧바로 편지를 보았다. 편지를 읽던 중 눈물이 내 양쪽 볼로 흘러내렸다. 내용은 언니가 날 간절히 생각해 주는 마음이 가득히 써 있었다. 내 생각 내 마음까지 훤히 다 아는 언니, 내가 뭘 갖고 싶어하는지 내가 무슨 생각을 하며 눈물짓는지 또 내가 무슨 걱정이 있는지 언니는 다 안다고 했다. 이 편지를 읽을 때마다 난 미소를 지으며 언니에게 고마워했다. 이 편지는 나에게 용기를 북돋아 주었고, 나에게 믿음을 주었다. 처음으로 작은언니에게 받은 편지 나는 소중히 여겼고 항상 교복 속주머니에 갖고 다녔다. 나는 항상 언니에게 말하고 싶었다. "언니 사랑하고 정말 고마워"
여 행
高 1 蘇 小 萍
여행이란 말속엔 봄 냄새가 나는 것 같다. 특히 지금 같은 따뜻하고 나른한 봄에는 더욱 가고 싶어진다.
길가는 사람을 붙잡고 물어 보면 다들 여행을 제일 하고 싶어한다. 특히 요즘 바쁜 현대인들에겐 정말로 여행이란 휴식이 필요한 것 같다. 사실 요즘 사람들에겐 한 달에 한 번이라도 여행을 떠난다는 것이 굉장히 힘든 일이다.
여행은 봄, 여름, 가을, 겨울 여행이 있다. 봄 여행은 힘이 느껴지고 여름에 떠나는 여행은 재미가 느껴지고, 가을에 떠나는 여행은 멋이 느껴지고 겨울 여행은 낭만이 느껴진다. 난 겨울 여행을 가고 싶다. 그것도 바다고 말이다. 난 겨울 아침에 뜨는 해를 가까이에서 느끼고 싶기 때문이다. 겨울 바다에서 뜨는 해는 얼마나 아름다울까 하는 생각 때문이다. 지금은 부모님들이 허락하지 않아서 좀 크면 갈 계획이다.
여행, 여행은 정말로 낭만적이다. 나도 내 생애의 정말로 낭만적인 여행을 하고 싶다. 그게 언제일지는 모르겠지만 지금은 열심히 공부하고 대학가서 정말로 멋있는 여행을 할 것이다.
오 월
高 3 初 善 珠
"계절의 여왕"이라 불리는 오월은 1년 중 가장 아름답다 할 수 있을 것이다. 꽃이 만발하고 나무는 활기를 띠고, 날씨 또한 봄의 끝과 초여름 사이라 화창하고 따뜻합니다. 오월은 또 "가정의 달"이라는 이름이 있다. 그것은 오월 중 "어린이 날"과 "어버이 날"이 있기 때문입니다. 어린이날엔 아이들이 부모님과 함께 놀이 공원과 유원지 등에 가서 놀기도 하고 부모님이 선물을 사다 아이들에게 주기도 합니다. 어버이날은 자식이 부모에게 받은 은혜를 조금이나마 보답할 수 있는 날이기도 하다. 그리고 오월엔 우리 학교의 최대 경축일인 "개교 기념일"있습니다. 이번엔 매 반마다 합창을 한다. 그리고 내년은 50주년이라 기대가 큽니다. 경축일이 끝나면 우린 봄방학에 들어가고 일주일간의 휴식을 얻을 수 있습니다. 이 시간이 나에겐 오월을 즐길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기도 합니다.
오월은 실로 경이로울 정도로 아름답습니다. 모든 것은 활기에 차 있습니다. 우리의 마음 또한 언제나 오월과 같았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오 월
高 3 劉 惠 莉
와 벌써 5월이다. 5월에는 많은 날들이 있다. 그 중에도 우리 학교의 개교 기념일, 그리고 바로 이어지는 봄방학이 제일 기다려진다. 그래서인지 요즘은 왠지 마음이 들떠 있다.
5월이 되니, 날씨가 무척 무더워졌다. 요즘 밖에 나가면 모두들 반소매에 반바지 너무나 시원하게 입고 다닌다. 정말 여름이 다가온 것 같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봄의 향기를 느낄 수 있다. 특히 우리 학교에서는...... 왜냐하면 우리 학교에는 나무가 정말로 많기 때문이다. 그 커다란 나무 위에 꽃이 듬성듬성 피였기 때문에 4,5월에는 학교 전체가 아주 멋있어 보인다. 그래서 난 이때의 우리 학교의 풍경이 좋다.
음- 요즘 친구들과 수다 떠는 주제는 봄 방학 때 뭣하고 놀까 얘기하고 그런다. 모두들 무척 기다리고 있다. 봄방학이 빨리 다가 왔으면......
난 1년 12개월 중, 5월이 가장 좋다, 그 이유는 바로 봄방학 때문이기도 하지만 또 한가지 이유는 바로 5월에 우리 학교 풍경이 너무 예뻐서이다. 그래서 난 5월이 정말 좋다.
우 정
高 3 李 宣 和
우정이란 꾸밈이 없는 것이라 생각한다. 내 곁엔 늘 친구들이 있기에 나는 행복하다. 친구들과 우정이 없다면 내 삶은 정말 무의미하다고 생각한다. 그 만큼 사람들이 세상을 살아가는 데에 있어서 친구들과의 두터운 우정은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을 수 없다.
내가 기쁠 때 나보다도 더 기뻐 해주며 웃어 주는 친구가 있기에 나는 행복하다. 내가 슬플 때 내 마음속을 다 들여다보듯 더 슬퍼하며 위로 해 줄 수 있는 친구가 있기에 행복하다. 나는 그런 친구들에게 늘 감사해 하며 고마움을 느끼곤 한다.
사랑과 우정의 차이는 사랑은 핑크빛이라 언젠가는 변색되어 멀어지지만 우정은 무색이라 영원할 뿐이라는 것이다. 우정이 있기에 친구가 있고, 친구가 있기에 우정 또한 존재한다. 만약 이 세상에 우정이라는 감정이 없다면 사람들은 모두 거칠어지며 삭막하고 무표정한 얼굴로 살아 갈 것이다.
우정은 나이와 성별을 구별하지 않는다. 누구에게나 해당될 수 있는 것이 바로 우정이다. 우정은 구속받지 않는다. 그래서 아름다울 수 있는 것이 우정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그리고 나는 지금 변함없이 내 곁을 지켜 주며 나를 항상 바라봐 주는 친구들에게 나의 이 순수한 우정을 함께 나누고 싶다. 영원히......
우 정
高 3 孫 如 彦
우정이란 친구들과의 우정뿐만 아니라 선, 후배와의 우정 등등 여러 가지를 들 수 있다.
친구가 있기에 우정이 있고, 우정이 있기에 친구 또한 있는 것이다. 우정은 순수하며 깨끗하다. 우정엔 그 누구의 질투 또한 없다. 친구들의 우정이 있기에 학교 가기가 즐겁고, 주위엔 늘 웃음꽃이 핀다.
내가 슬플 때 내 곁에서 함께 슬퍼해 주고 기쁠 때 함께 웃어 줄 수 있는 친구들과의 우정을 난 영원하길 바란다. 우정은 구속받을 수 없으며, 구속하지도 않는다. 우정엔 누구의 시기도 용납하지 않는다. 남녀노소 누구에게나 우정은 존재한다. 그리고 누구나 그 우정을 지켜 나가길 바랄 뿐이다.
우정이라는 것은 참 중요하고 진실하다고 생각한다. 모든 것을 감싸주고, 덮어 주고 모든 것을 이해하고 같이 생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소중한 우정은 잔잔한 바다와 같은 이며, 평화스러운 것이며, 목숨과도 바꿀 수 없는 것이다. 정말 소중한 그 우정이 영원히 변치 않았으면 좋겠다.
우 정
高 3 郭 玉 琪
『우정이란?』 처음「우정」이란 제목을 접했을 때, 난 너무 쉽고 간단할 거란 생각이었으나, 이처럼 어렵고 복잡한 감정을 하나 하나 써 나가기가 결코 쉽지만은 않다는 걸 깨달았다.
과연 우정은 어떤 것일까? 간단히 말하자면 친구간의 정? 어떤 것이기에 인간이란 동물이 때론 눈물을 흘리며 그토록 마음 아파해야 하며, 또 때론 근심 걱정 없이 행복해 하며 하루하루를 지낼수 있게 하는지 내 자신조차 그 까닭을 알 수가 없다.
너를 알게 된지 어느덧 12년이란 시간이 흘러 이제는 13년의 세월에 가까워지고 있다. 한 마디로 거의 같이 성장해 왔지. 지금은 서로 많은 일들로 인해 예전처럼 마음을 다 줄 수 있을 만 큼의 사이는 아니지만 그래도 언제나 멀리서 서로를 응원하고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내에게는 충분한 힘이 된다. 언제나 네가 있는 곳엔 내가 있었고, 또 그것이 당연하다고만 믿고 있었던 내 자신이 기금은 바보스럽게만 느껴질 뿐이다. 어릴 때 다 같이 뛰어 놀던 기억이 생생하기만 한데, 어느새 이렇게 성장해서 서로의 마음을 다치게 하고 아프게만 해야 하는지......
솔직히 너랑 함께 했던 나날들이 그리 행복하지 만은 않았던 것 같아. 너 때문에 많이 힘들어했었다는 사실을 난 부정하고 싶지 않거든. 세상에서 구속받는 생활이 제일 고통받는 일이건만...... 어느 새부터 내 생활에는 바로 「구속」이란 단어 때문에 힘들어했어야 했는지...... 넌 언제나 날 너 옆에 두길 좋아했었지. 그저 하나의 장식품처럼, 하지만 나도 감정이 있는 사람이야. 그땐 어려서 잘 몰랐지만 아직까지 그런 걸 겪고 있을 나이는 훨씬 지난 것 같아. 그래서 더 늦기 전에 그 상황 속에서부터 도망친 거지. 아니 솔직히 말하자면 너로부터 떨어져 나오고 싶었어. 넌 내게 그리도 자신이 없는 거니? 왜 그런 부정한 생각으로 사람을 힘들게 하는 거야? 내가 다른 사람을 만나는 날 엔 널 외면 해 버릴까 봐 두려웠었던 거야? 너에 대한 나의 마음을 차마 말로 표현 할 수가 없겠다. 하지만 언제까지나 내 마음 깊은 곳에 좋은 추억으로 남아 있을 꺼야. 지금 와서 널 탓하는 게 아냐. 한때는 말도 안되는 이유로 널 많이 원망했었지만, 지금은 그저 학장 시절의 좋은 추억으로 내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어. 지금 와서 이런 얘기하면 우리 서로가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지겠지만, 그래도 너와 함께 했을 때 느꼈던 나의 솔직한 마음이야.
우정은 계절이 없고, 나이도 없으며 성별문제 또한 문제가 되지 않아. 우린 그저 10대의 소녀들이고, 이 시기엔 사랑도 우정도 맘껏 해야 하는 거야. 남녀노소 언제 어디서나 친구와 우정이라는 단어는 환영을 받거든. 이 세상에는 중요한 게 많다지만 그 중에서 꼭 빼놓을 수 없는 것 역시 난 우정이라고 생각해. 언제나 내 곁에서 믿고 따라 줄 수 있으며, 언제나 즐거운 내 친구들과 우정을 나누고 싶어. 꽃처럼 영원히 아름다울 수 있는 우정을 나는 지금 나를 보고 있는 친구들과 우정을 나누고 싶다.
우 정
高 3 岇 林 貌
우리가 살아가면서 진정으로 마음을 열고 말 할 수 있는 친구가 한 명이라도 있다면, 우리의 인생은 성공했다고 할 수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저는 요즘 '우정이 아직도 있는가' 라는 의문을 종종 가지곤 합니다.
저희는 최근 고3에 올라오면서 반을 나누었습니다. 그래서 언제나 함께 있던 친구들이 모두 뿔뿔이 흩어졌습니다. 어떤 친구들은 운 좋게 한 반에 모였고, 어떤 친구는 외롭게 혼자 다른 반에 들어갔습니다. 하지만 우정은 변치 않을 줄 알았죠. 그런데 한 반에 모인 친구들이 혼자 떨어진 그 친구를 따돌리고, 혼자된 그 친구가 찾아와야 겨우 아는 체 하는 정도이며, 점심을 먹으러 가도 그 친구를 빼 버리고 자기네들끼리 갔습니다. 고2때까지만 해도 없으면 못 살 것처럼 굴었던 사람들이 자기네들이 필요로 할 때야 비로소 그 친구를 찾고, 볼일이 끝나면 또 모르는 체 합니다. 옆에 보고 있는 사람들이 모두 "너무하다"라고 생각할 정도입니다. 하지만 자기네들은 아직도 모르고 그저 자기네들이 잘났다는 생각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그 동안 혼자된 그 친구는 마음 아파하고, 자기가 무슨 잘못을 했나 생각하고, 외롭게 눈물 흘리고 같이 있어도 외면하는 친구들을 그저 바라만 볼뿐입니다. 점차 그 친구에게 남은 건 미움뿐입니다.
저는, 이런 사람들을 보면 제 마음이 더 답답하고 화가 납니다. 어떻게 인간들이 이런 짓을 할 수 있는지...... 그들에게 우정, 친구는 무엇인지. 그저 가까이 있으면 놀고, 멀리 있으면 외면하고. 이런 사람들이 친구를 가질 자격이 있는지. 이 사람들이 커서도 친구가 남아 있을지, 또 남아 있다면 '진정한 친구들'인지. 아주 궁금합니다.
저는 모든 사람들이 각자 한 명이라도 좋으니 진정한 친구를 가질 수 있는, 서로 누굴 따돌리지 않는 그날이 오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우 정
高 3 王 振 德
우리가 일생을 사는 동안 여러 사람을 만나고 다시 헤어지고 또 그전에 여러 관계로 서로 도움을 받고 살아간다. 그러한 반복되는 관계에서 우리는 아주 소중하고 간절한 감정을 느낄 때가 있다. 그건 바로 '우정'이다. 이 감정은 나이, 성별과는 관계없이 모든 이들이 다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어릴 적 우리는 그저 부모님만을 의지하며 자라난다. 분별력이 생길 정도가 되면 우린 학교라는 곳에 와서 많은 학우, 동기들과 선생님 등 많은 이들과 생활해 간다. 이러한 과정에서 우리는 차차 서로의 소중함과 배려해 주는 것을 배울 수 있다. 때론 서로의 감정에 자존심이란 감정을 섞어 놓을 때도 있지만, 이 세상에 있어서 우정은 어느 감정보다 소중할 수 있다. 또 이러한 삭막한 도시 생활에서 우정이란 아마 생활의 활력소가 될 것이다.
우정을 지속시키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서로를 존중할 줄 알아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때론, 친구에게 무심코 던진 한마디가 그 친구에겐 커다란 상처와 지우지 못할 멍이 될지도 모른다. 우정이란 이런 친한 관계 속에서 서로에게 상처를 주는 것이 아니라 상처가 될지도 모르는 그런 것들을 우정으로 따뜻이 감싸주어야 하는 것이다.
언젠가 우리가 정말 힘들고 어려운 일을 당했을 때 나를 진정으로 생각해 주고 도와주는 친구가 있을까? 지금도 늦지는 않았다. 학창시절 그것도 고등학교 시절의 친구가 평생 친구가 된다고들 한다. 다가서기 힘든 친구에겐 좀더 가까이 다가설 수 있도록 노력하고, 이미 우정이란 테두리 속에 같이 있는 동반자와 영원히 그 누구도 테두리를 벗어나지 않도록 또 그런 생각조차 할 수 없도록 보살펴 주고 아껴 줘서 진정한 '우정'을 쌓아 가야 한다.
우 정
高 3 賀 明 華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여러 부류의 사람을 만나게 되고 그들을 만남으로써 여러 가지 다른 감정들이 생겨날 수 있다. 그 감정들 중에는 사랑, 증오, 우정 등 여러 가지 감정이 생겨 날수 있는데, 내 생각에는 우정이야말로 이 혼잡한 세상의 꽃이라 생각한다,
우정은 우리가 아주 어렸을 때부터 생길 수 있다. 우리 주위에 있는 많은 사람들. 동네 친구들이나 학교, 유치원 친구들이 있을 수 있다. 우정은 영원히 우리를 따라다닌다. 우리가 사랑으로 인해 마음에 상처를 받았을 때 우정은 우리를 위로해 준다. 이 세상은 매우 악하므로 증오와 미움이 만연해 있다. 이러한 혼란스럽고 가슴아픈 일들 중에 오직 오랜 친구만이 우리를 감싸준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아름다운 감정을 매우 소중히 여겨야 한다.
우정은 우리에게 많은 위로와 도움을 준다. 그러나 그런 우정을 소훌히 한다면 좋지 않은 결과를 초래한다. 어떤 이들은 우정이라는 이름 아래 사기 행각이나 친구를 매도하는 파렴치한 행위를 한다. 그 좋은 예가 우리 주변에 일어나고 있다. 학원 폭력이나 학우들에게 압력을 가하여 그 친구들 위에 서려는 행동들은 점점 우리의 가슴을 멍들게 한다.
지금은 21세기이다. 최첨단을 걷는 이사회에 우정이란 사소한 감정에 대해 왈가왈부 하냐는 이가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이 점을 생각해 봐야 한다. 자녀나 그 다음 세대에도 아름다운 인간애가 과연 존재 할 것인가를 생각해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노력해서 더 나은 미래를 만들도록 하자.
20년 후의 나
高 3 賀 明 華
나는 지금 굉장히 행복한 생활을 하고 있다. 집에서는 부모님의 따뜻한 사랑과 학교에서는 선생님들의 관심과 격려 속에서 그리고 친구들과 함께 공부하고 노는 지금 이 생활이야말로 나에게는 정말 소중한 시간이다.
나는 이 시간들이 나에게서 빠른 속도로 지나가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그러나 신은 우리에게 시간을 주셨다. 시간은 멈추지 않고 또 결코 되돌릴 수도 없다. 지금의 나로서는 여러 사람들의 관심 속에서 생활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20년 후에는 내가 어떻게 변해 있을지 내 주위에 있는 많은 사람들도 지금과는 많이 달라져 있을 것이다.
나는 지금 대학 진학을 목표로 공부를 하고 있다. 우리 집은 아버지께서 전설 회사 사장이라서 그런지 삼촌들도 거의 건설 계통에서 일하시고 외삼촌들까지 거이다 그런 일을 하신다. 나는 장남으로서 당연히 아버님의 뒤를 잇게 되어 있다. 나는 그러한 나의 선택에 만족한다. 나는 아버지를 존경한다. 아버지께서는 모든 방면에서 뛰어나시다. 운동도 좋아하셔서 50이 가까운 나이에도 불구하고 매일 수영과 농구를 즐기신다. 집에서는 가정적 이셔서 어머님의 가사일까지 거의 도맡아 하신다. 집에서는 항상 나와 동생의 친구가 되길 원하신다. 우리가 좋아하는 컴퓨터 게임이나 TV프로그램도 항상 함께 즐기신다. 아버지께서는 N.B.A나 메이저리그의 선수들도 거의 다 아시고 요즘 유행하는 노래나 가수 이름도 거의 외우신다. 지금 세상에 50이 다된 아저씨들 중에 누가 이렇게 우리와 잘 맞을 수 있을까? 우리 아버지라서 하는 말이 아니다. 얼마 전에 아버지께서는 나에게 이런 말씀을 하셨다. "어려운 건설 계열의 학과에 가지 말고 한의사 자격증이나 따서 편히 지내라" 라고...... 나는 이 의견에 절대 반대했다. 나는 누구보다도 아버지처럼 되고 싶다. 그래서 나는 아버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이공과에 들어와서 장래를 위해 준비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 내가 이러한 생각을 해본다. 내가 40살이 되면 나는 과연 어떠한 모습으로 변해 있을까? 나의 생각대로 내가 무사히 대학을 졸업하여 아버지와 같이 될 수 있을까? 그래도 내가 지금처럼 편안히 아무 걱정 없이 살 수 있을까? 나의 친구들은 모두 어떻게 변해 있을까? 선생님들과 우리 부모님들은 모두 건강하실 까? 이러한 일들은 아무도 알 수 없다 오직 신께서만이 알고 계실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이 운명이라는 것은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나는 10년후 아니 20년, 30년 후의 나와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 부모님, 동생, 선생님, 친구들을 위해서 지금부터 열심히 공부나 그 밖의 모든 방면에서 더 노력해야겠다.
20년후의 나
高 3 王 振 德
난 가끔 아니 아주 자주 시도 때도 없이 생각한다. 난 커서 뭐가 되어 있고, 어떻게 살며, 누구와 같이 살게 될까? 이런 나의 생각들을 글로 옮기는 것도 가치 있는 일이라 생각한다.
지금 내 나이 열 아홉, 이십년 후면 40대에 가까워진다. 그때 내 모습은 지금 내가 그리고 있는 나의 미래상에 얼마나 접근해 있을까? 건축 설계도를 그리며 사랑하는 아내가 내 곁에 있어 주고, 내 앞에선 항상 재롱을 떠는 두 아이의 모습을 그리면 지금도 너무 행복하다.
우리는 모두 자기의 미래상을 하나씩 가지고 있을 것이다. 내 미래상은 그다지 웅장하고 대단치는 않다. 그저 행복하고 고민 없이 사는 것이다. 사람들은 말한다. '행복하게 살순 있어도 고민 없이 살지는 못한다.' 라고 말이다. 한가지 고민이 해결되면 운명이란 것은 사람을 가만 놔두지 않는다. 또 우리가 사는 이 세상도 아무 걱정 없이 살면 아무런 의미가 없을 것이다. 단지 그 고민을 이겨내서 느끼는 만족과 행복에 의존하며 우리는 살아야 한다.
내 꿈은 건축가다. 항상 나의 미래를 생각할 땐 건축 설계도면 앞에 앉아 설계를 하는 모습을 떠올린다. 건축가가 되기 위해선 엄청난 어려움이 따른다고 한다, 하지만 내 꿈을 이루기 위해서라면 그까짓 어려움은 충분히 헤쳐 나갈 수 있다. 일다 나의 꿈을 이루고 나면 그 다음엔 행복하게 살아갈 나의 가정을 생각한다. 옆에만 있어도 편안한 나의 부인, 우리의 사랑의 산실인 두 아이, 이런 생각을 하기엔 너무 이른 것 같지만 왠지 이런 생각들은 지금 해 놓아야 된다고 생각된다.
20년 후에 내가 어떤 모습으로 되었던 그건 단지 미래일 뿐이다 지금 나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학생이라는 직분을 가지고 학생답게 공부를 열심히 하고 친구들과의 우정도 지속해야 한다는 거다. 지금 나에게 주어진 길을 똑바로 걷는다면 운명도 나의 이런 모습을 보며 나를 흔들어 놓친 않을 것이다. 난 믿고 있다. 내가 바르게만 살고 또 나의 미래를 위해 충분히 노력만 한다면 나의 미래는 항상 밝은 날만 있을 거란 것을.........
20년 후의 내모습
高 3 岇 林 貌
20년 후의 내 모습을 생각하라니. 자꾸 웃음만 나온다. 지금 내 모습과 많이 달라 있겠지. 확실한 내 미래의 모습은 모르겠지만 내가 꿈꾸고 바라는 또 내가 생각하고 있는 내 모습을 써 보겠다.
나는 38살의 나이다. 지금은 2017년. 세월 참 빠르다. 엊그제만 해도 고등학생이었는데 어느새 훌쩍 커서 애 아빠가 되었다. 아참 아직 얘기를 못했군. 우리 집 식구는 나와 나의 사랑하는 아내, 씩씩한 중학생 아들과 귀여운 초등 학생 둘째딸, 그리고 곧 세상에 빛을 보게 될 막내가 있다. 나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년동안 어학연수(미국으로)를 다녀온 뒤 대학 시험을 쳤다. 한양대 전기공학과와 홍익대 건축학과에 원서를 넣었는데 한양대에 붙었다. 그리고 힘들게 졸업해서 직장을 2년동안 다녔고 그 뒤 결혼을 했고 직장을 나와 친구들과 합작으로 회사를 세웠다. 건축과 실내 인테리어를 겸하고 있다. 다행히도 대학에서 부전공으로 배운 건축과 취미로 학원을 다닌 인테리어를 써먹었다.
21세기라서 그런지 상상을 현실화한 건축물이 인기다. 나는 상상력이 뛰어나서 우리 회사 건축물들이 호평을 받고 있다
요즘에는 벌이도 좋고 해서 많이 편해졌다. 그래서 아내와 20년전 계획한 세계 일주를 다녀올 셈이다. 삶이 편하니까 옛날 생각이 난다. 그리고 후회도 조금 든다. 처음부터 열심히 할걸… 그래도 고등학교 3학년 막판에 가서 그만큼 열심히 했다는 게 내 자신이 생각해도 기특하다.
이제 공상은 그만하고 잠을 자야겠다. 내일 화성으로 출장을 가야 하니까.
20년 후의 나
高 3 范 文 一
20년,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니다. 20년 후 나는 과연 어떤 모습, 어느 직장 그리고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나는 이런 문제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해봤다. 어쩜 누구나 다 한번쯤은 생각해 볼 문제일지도 모르겠다.
현재의 나는 그저 평범한 고3 수험생에 불과하고 목표는 치과를 지망하고 있다. 사촌 누나는 약사를 원한다. 그래서 우리는 서로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 20년 후 우리는 모두 성공하여 각자의 병원을 합성하기로 했고 고요한 바다 소리와 거센 파도가 보이는 바닷가 근처에 의원을 열기로 했다. 그리고 모든 환자들을 최선을 다해 치료해 주겠다.
20년 후 나는 동생과 같이 아버지, 어머니를 모시고 가능한 대자연속에 살고 싶다. 그리고 결혼을 하면 능력 것 돈을 벌어 불편함 없는 평화롭고 화목한 가정을 꾸며 보겠다.
20년 후 나는 지금의 고등학교 친구와 같이 서로 연락을 하며 한 달에 한번씩 모임을 가지겠다. 우리의 우정을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영원히 이대로 유지해 나가겠다.
20년 후 나는 나의 꿈을 모두 실현시키겠다. 그리고 이 꿈을 위해서 지금 이 순간부터라도 많은 노력을 하며 최선을 다하겠다.
20년 후의 나
高 3 沈 成 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 했다. 20년이면 강산이 수 없이 변할 거고 그쯤이면 나도 많이 변해 있을 것이다. 아직 20년을 채 산건 아니지만, 만약 20년을 더 살아서 내 나이가 마흔쯤 되어서 내 스스로 내 모습을 본다면 아마 나 자신도 많이 놀랄 것이다.
그때쯤이면 난 아마 한 가정의 가장이 되 있을 것이며, 자상한 아버지가 돼 있을 것이고, 물론 사랑 받는 남편도 돼 있을 것이다. 때론 나 역시 지금의 기성세대들처럼 신세대들의 도움을 받아 최첨단 기계들을 배우면서, 내 스스로 늙었다고 생각도 하겠지. 그러다가 내 아이들이 나 보고 쉰 세대라고 놀려대면 아마 화를 낼 것 같다. 그러면서 난 또 나의 전성기 때를 말해 주겠지 (약간의 거짓말도 섞어 가며). 가끔 아이들을 데리고 시뮬레이션 놀이동산으로 놀러 가겠지, 그때쯤 난 분명히 옛날에 친구들과 함께 갔던 소풍이 생각 날 것이고 솜사탕, 뽑기, 과자, 사이다 등등 많은 것을 떠올릴 것이다.
난 이 다음에 명성이 있는 중소기업을 차리고 싶다. 하지만 능력이 될지 잘 모르겠다. 사업을 한다면 음향 시설이나 오디오 산업에 관련되는 일을 하고 싶다. 그래서 집안을 모두 화려하게 스피커와 우퍼, 앰프로 장식하고 싶다. 그러려면 돈이 많이 필요할 것이다. 그래서 중소기업이 사장이 되어서, 내 맘대로 물건을 갖고 와서 아내와 딸은 감독을 맡고 그들이 원하는 대로 아들과 함께 장식을 할 것이다. 사업에 성공해서 부모님들과 함께 중국을 유람해 보고 싶다. 만리장성도 밟아 보고, 자금성의 그 웅장함도 감상하고, 아버지가 좋아하시는 음식도 마음대로 드시게 하고 나도 먹고, 온 가족이 산해진미를 모두 맛보고 즐거워 할 것이다.
20년 후의 나
高 3 劉 正 義
세월의 흐름은 아무도 막을 수 없기에 나도 그 흐름에 따라 조금씩 변해 가겠지… 20년 후면 세상도 많이 변했을 텐데, 그쯤에 난 어떤 모습으로 무엇을 하고 있을까? 나는 가끔 나의 미래에 대해 생각해 본다. 때론 공허한 웃음이 터져 나와 무심코 지나쳐 버린 적도 많았지만 이젠 그 해답을 찾았기에 서서히 그려 나가야 할 시기가 온 것을 깨달았다.
아마도 그때면 나는 중년을 바라보는 나이가 돼 있겠지, 만약 결혼을 했다면 부인에게는 자상한 남편이, 아이들에게는 자상스런 아빠가 돼 있었으면 좋겠다. 때론 속상한 일이 있을 때 친구들과 같이 술 한잔을 하며 스트레스를 풀고… 상상만 해도 내가 벌써 그 나이쯤 된 것 같다. 그리고 한 가정을 이루려면 직장이 필요할 텐데 직업을 내가 하고 싶던 까페를 운영했으면 좋겠다. 또 가 까페를 운영하면서 돈은 벌면, 서울 근교에 자연과 더불어 꽃과 나무들이 많은 곳에 집을 짓고 그 집에서 가족 모두가 하루하루를 화목하게 보낼 수 있다면 이 세상 그 누구보다도 행복할 것이다.
나는 20년 후의 내 모습을 이렇게 그려본다. 어쩌면 이런 것들이 한낮 꿈으로만 남을 수 있다. 하지만 나는 그 꿈을 이루기 아니 꼭 이뤄지리라 믿고 나의 하루하루를 땀으로 적시겠다.
20년 후의 나
高 3 唐 美 燕
"미연이는 커서 뭐가 되고 싶어?" 어렸을 때 엄마는 곧잘 물어 보시곤 하셨다. 그때는 거의 매일 같이 꿈이 바뀌었었다. 간호사, 선생님, 엄마, 동화책 작가… 무슨 이유에서인지 직업을 가진 모든 사람들이 다 멋져 보였다. 그리고 지금은 "무엇 무엇이 될 거예요"가 아닌 어떻게 내 인생을 설계하고 바라 봐야 할지를 신중히 생각해야 할 나이다.
20년쯤 지나고 나면 난 어떤 사람이 되어 있을까? 불혹을 나이를 앞둔 서른 아홉의 아줌마. 상상이 안 간다. 하지만 아마도 나는 지금의 엄마 같은 모습을 하고 있을 것이다. 이십대의 젊음과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진 않지만 조금은 살찐 몸에 편안한 인상을 가진 아줌마, 웃는 얼굴에서 포근함이 느껴지는 '향기 나는 여인'이고 싶다. 그리고 남편의 넥타이를 매만지며 아이들의 도시락 반찬을 걱정하는 평범한 주부일 것이다. 그러나 난 나이를 먹어서도 나의 일을 갖고 싶다. 출·퇴근 시간이 없는 프리랜서 같은 일 말이다. 아마도 난 영문과를 졸업하고 통역사가 되어 있을 않을까? 생각한다. 이것은 나의 꿈이자 내가 그려보는 20년 후의 내 자신의 모습이다.
길을 걷다가 우연히 아주 편안한 인상을 가진 사람을 보게 될 때 나도 저런 사람이 되어야지 하는 생각을 갖는다. 내가 꿈꾸는 미래의 내 모습을 위해 물론 나는 노력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 여유 있는 웃음으로 내 인생을 회상할 수 있을 때 나는 내 젊은 날의 노력과 투쟁이 헛되지 않음에 감사할 것이다.
20년 후의 나
高 3 孫 德 蘭
20년 후면 난 마흔 살, 그때면 내가 무엇을 하고 어떤 일을 하고 있을 지는 그 누구도, 나 역시도 모르는 일이다. 그저 지금은 20년 후를 상상만 할뿐이다. 그때쯤이면 흔히 말하는 안정될 나이라던데, 길지도 짧지도 않은 이 20년 동안 많은 일들이 일어날 것이란 건 미리 예측할 수 있다.
제일 먼저 사회인이 되어 자신이 원하는 일을 갖게 되겠지. 그리고 자신을 위해 20년 후를 위해 나만의 재산을 모으겠지. 내 스스로 용돈을 마련하고 독립하여 집도 사고, 차도 사고, 멋있게 내 일을 갖고 있는 젊은 여성이 되 있을 것이다. 사람의 심리란 혼자 살수는 없는 것 같다. 우리 집 식구인 고모들만 해도 평생 혼자서 살겠다며 결혼은 하지 않겠다며 일에만, 공부에만 몰두하다 늦은 나이에 좋은 사람을 만나 지금은 언제 그런 얘기를 했냐는 듯 행복하게 살고 계신다. 나 역시도 내 일에 몰두하다 어떤 나이가 되면 내 자신이 아닌 또 한 사람을 위해 살아가겠지.
사실은 난 그리 큰 희망은 없다. 그저 내게 주어진 일을 만족해서 할뿐이다. 가정주부든, 독신자든 아무려면 어떤가. 그저 내게 주어진 한번의 인생을 만족해하고 행복해 한다면 20년 후 마흔 살 땐 내 눈 주위엔 어느새 행복한 주름이 하나, 둘 생기고 그 동안의 노력과 젊은 날의 야망은 20년 후에 결실을 맺어 안정된 삶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20년 후의 나
高 3 任 慶 美
20년 후의 나를 한번 상상해 본다. 키는 지금보다 컸을까? 머리 스타일은 또 어떻게 하고 있으며 어떠한 옷을 입고 무슨 일을 하고 있을까? 아니면 내가 바라던 어학 공부를 마치지 못한 채 한 남자와 사랑에 빠져 결혼은 해서 아들, 딸 낳고 가정주부로 살아가고 있을지… 만약 이것이 나의 20년 후의 모습이라면 난 절대적으로 반대한다. 난 어릴 적부터 타국의 언어와 문화를 공부하여 여러 나라 상호간의 문화의 교류를 이룰 수 있고 보다 진취적이며 시대에 퇴보하지 않는 현대인이 되는 것이 나의 꿈이었다. 사회에서 명성을 얻는 현대 여성만이 정말 내가 바라는 바이다. 하지만 이렇게 되기 위해선 수많은 노력이 필요 할 것이다. 그러나 난 끝까지 최선을 다해 노력할 것이다. 내 꿈을 실현하기 위해…
호랑이가 죽어서 가죽을 남기듯 나는 꼭 이 세상에 내 이름을 남겨야겠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단지 먼 훗날 내 후손들에게 떳떳하며 존경받을 수 있는 내가 되길 원한다. 그러기 위해 난 보다 성실한 삶의 자세와 부단한 노력을 통해 내 삶의 목표를 향해 전진 할 것이다.
21세기
高 1 盧 愛 麗
세상은 끊임없이 돌아가고 끊임없이 개발하고 창조한다. 나는 내 나름대로 21세기를 상상해 보았다. 나무 대신 공기 청정기를 거리에 달아 놓지는 않을까? 세계 일주가 아닌 우주 일주가 유행하고 자동차가 없어지고 초고속 무언가를 타고 다니는 그런 세상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또 영화에서 본 듯이 석유를 다 써서 다시 원시시대로 돌아가진 않을까 하는 여러 가지 생각을 해본다. 21세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컴퓨터일 것이다. 20년 전만 해도 컴퓨터가 뭔지도 몰랐지만 지금 컴퓨터는 필수 조건이 되어 버렸다. 지금은 원칙이 많지만 21세기에는 인공지능이 가능하니, 컴퓨터로 뭐든지 다 하며 원격 진료까지 할 수 있다니 컴퓨터는 참 편리한 물건이다. 사람이 해야 할 일을 기계가 해 주는 건 시간도 절약되고 좋아서 가면 갈수록 전자 제품이 많아지는 것 같다. 그래서 21세기에는 전자파로 인한 질병이 많아지진 않을까 걱정이 된다.
지금 문명이 발달하고 편리해진 게 너무 많지만 잃어버린 것도 많다. 그건 바로 자연이다, 공기 오염, 폐수 오염 등 오염된 세상에 오염된 사람이 많아지고 있다. 아무리 과학이 발달한다 해도 하나님이 주신 것을 인간이 못쓰게 만들어선 안된다. 나는 21세기가 편한 세상 보단 아름답고 사랑이 넘치는 세상이 되길 바란다.
E Q
高 3 于 培 夫
학교에서의 좋은 성적과 높은 IQ가 행복한 인생을 결정하는 것은 아니다. 지금은 이미 높은 IQ만을 갖고 살 수 있는 사회가 아니라고 본다. 즉, 21세기는 EQ와 IQ의 결합을 필요로 하는 시대이다. 그래서 완벽한 현대인은 IQ + EQ로부터 시작한다고 할 수 있다.
유명한 미국의 발명가 에디슨은 "성공은 1%의 천재성과 99%의 노력으로 이루어진다"라고 하였다. 모든 시대의 의학이나 철학, 심리학들은 오성의 작용방식에 대한 연구뿐만 아니라 감성의 근원과 그 작용에 대한 연구 역시 함께 해 왔다.
지나친 스트레스나 불안은 현상태에 대해 도움이 안된다. 자신만 더 약해지게 할 뿐이다. 그래서 높은 EQ가 있어야만 스트레스가 해소되고, 불행속에서도 행복을 느낄수 있다. 예를 들어 프랑스에서 최고의 군대와 영광의 명예를 가진 나폴레옹이 "내 평생의 행복한 날은 6일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그리고 매우 심한 장애를 가진 헬렌켈러는 나는 인생이 참 재미있다"라고 말했다. 사실은 기쁨과 고통은 모두다 자기가 생각하기 나름이다. 그래서 EQ 가 높은 사람은 불행속에서도 행복을 찾는다 미국 제16대 대통령 링컨도 "모든 인간은 기쁨을 결심했을 때 기쁨을 얻을수 있다"고 한다.
많은 사람들은 기분이 나쁘거나 참을수 없을때에는 입에서 저절로 욕설이 나오거나 사람을 때려야만 마음이 편안해진다. 그러나 화가 났을 때 하는 말들은 대부분 생각도 하지 않고, 내뱉은 말이어서 사후에 후회가 될 수도 있고, 평생 되돌릴 수 없는 수치가 될수도 있다. 로만로란 또한 "심한 말은 빨갛게 달군 쇠처럼 사람의 몸을 상하게 할 수 있다. 라고 말했다. 세익스피어는 "너의 혀는 매우 빨리 달리는 말과 같아서 너무 빨리 달리면 힘이 다빠지게 된다."라고 말했다. 이 말은 즉, 심한 말을 빨리 말하다가 잘못하면 오히려 사고를 당한다는 뜻으로 우리는 이것을 기억해야 한다. 그러므로 삶에 있어서 언제나 즐거운 맘과 실천으로 공부도 열심히 해야겠지만, 즐거움 역시 열심히 추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비록 공부가 싫긴 해도 즐거운 마음으로 공부를 하다 보면 어느 덧 지겨운 공부도 재미있는 일로 바뀔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인 생
高 3 唐 忠 華
인생은 얼마나 행복한가?
한 사람이 출생하여 따뜻한 집에 온정을 느끼며, 부모님 품에서 그리고 형제 자매간의 사랑에서 한 걸음씩 성장해 나간다.
사람은 태어나서 한 줌 흙으로 변할 때까지 참 많은 과정을 거쳐야 한다. 우선 언어를 배워야 하고 생활 습관도 길러야 하며 옳고 틀림을 잘 판단해야 한다. 그런 지식을 얻기 위해서는 많은 교육을 받아야 한다. 초등 학교에서 중학교, 고등학교 심지어는 대학교까지. 이런 한 단계 한 단계의 교육은 많은 지식을 얻게 하며, 사람의 도리도 가르쳐 준다. 물론 부모님들이 모든 사랑을 우리에게 베풀어주었기에 우리는 행복하게 성장해 갈 수 있으며, 지식 또한 많은 방면에서 넓힐 수 있다. 이리하여 인생은 얼마나 아름다운 것인가?
가정에서 느꼈던 온정과 학교에서 배웠던 모든 것을 맘껏 발휘할 수 있는 곳이 바로 사회이다. 사회는 누구나 한 번쯤은 거쳐가야 할 길이며, 사람들은 각자 다른 행복과 안전을 위해 열심히 삶을 추구한다. 그러므로 인생은 얼마나 어렵고도 험한 것인가.
우리는 따뜻한 가정에서 성장했으며, 고교생활 또한 즐겁게 하지만 우리의 노력없이 저절로 행복한 생활을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이런 행복한 생활을 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노력과 강한 의지로 자신의 세계를 창조해 갈 수 있어야 할 것이다.
행복한 내일을 개척해 나가기 위해 하루하루를 열심히 노력하며 부끄럼 없는 삶을 살아가고 싶다.
인 생
高 3 于 惠 珍
인생. 아직 인생을 얘기하기에는 너무도 부족하고 모자라는 내가 아닐까? 인생이란 단어를 접하게 되면서 많은 생각들이 나의 머리와 마음속을 지배하게 되었다. 우선 죽음을 제일 먼저 떠올렸고 그 다음에는 다가올 미래, 결혼 등을 떠올렸다. 우선 죽음에 대해 적어 볼까 한다 죽음은 누구에게나 두려운 존재일 것이다. 누구나 한 번 태어나 왔던 길로 다시 되돌아가는 순리는 비껴 갈 수 없는 현실인데 많은 이들은 죽음은 어떤 이유에서건 피하려고만 하고 맞서려 하지 않는다. 난 죽음을 담담하게 맞을 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살아가면서 언제 어디서 닥쳐올지 모를 죽음을 준비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만 떠날 때에 많은 후회를 남기지 않을 테니..... 그리고 결혼에 대한 나의 생각을 말해 보려 한다. 많은 이들은 특히 여자들은 결혼에 대한 무한한 환상을 품게 된다. 심지어는 자신의 모든 것을 결혼에 걸게 되는데 난 이런 모습들이 어리석다고 느껴진다. 물론 결혼을 함으로써 여자는 자신의 잠재된 모습들을 찾아가게 되기도 하지만.....
결혼은 인생의 시작이라고도 감히 말할 수 있다. 결혼이 실패하면 그 인생도 실패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불안한 마음을 갖게 되면서도 누구나 아름다운 결혼을 꿈꾸게 된다. 물론 자신만은 행복할 거라는 생각과 더불어..... 난 결혼을 그저 인생을 살아가는데 있어 필요한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미래에 대한 나의 생각이다. 누구나 한 번 쯤은 자신의 미래에 대해 막연한 불안함이나 두려움 따위를 느껴 보았을 것이다. 이제 곧 사회란 곳에 발을 내딛을 채비를 하고 있는 이들이나 포장만 그럴싸한 대학이란 곳에 가기 위해 교과서와 씨름하는 이들이나 모두들 완성된 미래에 화려한 자신의 모습을 꿈꾸며 그토록 발버둥치는게 아닐까?
난 내 미래에 대해 아직 한 번도 신중하게 생각해 본적이 없다. 아니 어쩜 피하고 싶은 것인지도 모른다. 가끔 자신이 없다. 과연 미래에 있는 내 모습을 지금처럼 순수할까? 성공이란 올가미에서 허우적대고 있지는 않을까? 보이지 않는 미래를 생각한다는 것만큼 두려운 건 없는 것 같다. 적어도 나에게는.....
인생이란 쉽게 단정 지을 수 없는 것이다. 언제 어떻게 바뀔지 모르는 인생을 어떤 식으로도 함부로 말할 순 없다. 이 글들을 적어 보면서 조금은 성숙해진 나를 느낀다. 그리고 더 많은 생각들이 또 다시 나를 지배하기 시작했다.
재미있는 경험
高 2 王 霖
나는 길눈이 어두운 편이라서 집을 잘 못 찾는 편이다. 한 번은 친구 집에 놀러 가기로 했는데 그 집은 몇 번 가 봤으니 찾을 수 있을 거라 확신했다. 그래서 친구가 버스 정류장에서 마중 나온다고 했는데 괜찮다 그 정도는 찾을 수 있다고 뿌리쳤다. 골목이 많고 길이 좁고 게다가 내 눈엔 거의 비슷비슷한 집이라서 찾기가 좀 힘들었지만 이 집이 확실하다고 자신을 가졌다. 용감하게 벨을 눌렀는데 사람이 나오지를 않았다. 이 집 저 집을 봐도 이 집이 제일 낮이 익는데, 이 집이 맞는데 잠깐 어디 나갔나 하고 기다렸다. 한시간이 넘었다. '그냥 갈까? 전화 해 봤자 사람은 없을 테고. 얘는 사람을 불러 놓고 어딜 나갔냐?' 하며 혼자 투덜투덜하고 있는데 갑자기 옆집 문이 열렸다. 어느 낯익은 사람이다 바로 애타게 기다리던 그 친구, 친구가 나를 보더니 왔으면 왜 안 들어오고 혼자서 거기 앉아 뭐하냐고 물었다. 갑자기 일어나니 다리가 저려 왔고 차마 옆집 인줄 알았다고 말할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그렇게 큰소리 뻥뻥 쳤는데 머리가 나쁘면 손발이 고생이라더니......
나중에 나는 이 얘기를 그 친구에게 해주었는데 아무 반응이 없었다. 왜 반응이 없냐고 물었더니 너는 52번 버스를 25번으로 타고 가는 애이니 이 정도는 양호한 것 아니냐는 거였다.
나는 애써 그건 실수다 사람이 실수 안하고 사는 사람이 어디 있냐며 펄펄 뛰었다. 이제는 이런 일이 없지만 덜렁대는 면이 없지 않아 있어 힘든 적이 많다, 하여튼 어찌됐든 이 추억은 참 재미있다.
졸업여행
高 3 雷 美 燕
이번 여행은 3박4일로 이루어졌다. 우리가 여행을 가던 날이 4월15일. 이날 아침에는 모두들 기뻐서 어쩔 줄 모르는 표정을 하고 있었다. 버스가 출발했을 때 친구들은 "야호! 드디어 출발하는구나"라고 말했다. 우리는 버스 안에서 요즘 유행하는 노래를 들으면서 차 속에서 친구들과 사진도 찍고 재미있는 게임도 했다. 네 시간이 넘어서야 목적지에 도착했다. 처음에 도착한 곳은 불국사, 하지만 버스 속에 너무 오래 있다 보니 내릴 때 다리가 좀 저렸다. 도착한 시간이 늦어서 불국사만 가고, 숙소로 갔다. 방은 10명,13명으로 나누어졌다. 우리는 열 명씩 한 방을 썼다. 그래도 좋았다. 제일 좋은 것은 마당에 예쁜 조명과 노래 기계가 있었다. 그래서 남자 애들은 노래를 부르면서 춤도 추었다. 우리는 옆에서 보기만 해도 재미있었다.
둘째 날. 보문 단지, 박물관, 포항 제철, 동해 바다에 갔다. 이날은 너무 힘들었다. 하루 종일 차 속에서 있다가 내렸다가 했다. 그래도 우리는 처음으로 철을 만드는 공장을 가 보았다. 공장은 모두 현대화이기 때문에 사람은 한두 명밖에 없고, 모두 기계로 작동했다. 그리고 만드는 과정도 보았다. 우리는 또 바닷가로 출발했다. 오랜만에 파도치는 모습을 봐서 그런지 너무 신났다. 또 오랜만에 파도 소리를 들었다.
셋째 날. 속리산, 법주사에 갔다. 속리산에 도착할 때 처음으로 그런 큰 불상을 보았다. 밤에는 여행하는 마지막 날이라서 파티를 했다. 모두들 열심히 연습한 룰라, HOT 등의 춤을 보여줬다. 너무 재미있었다.
마지막 돌아가는 날에는 에버랜드로 갔다. 우린 가자마자, 무서운 기구만 골라서 탔다. 그런 후에 예쁜 튤립앞, 분수대에서 사진을 많이 찍었다. 그리고 친구들을 많이 불러와서 사진을 찍었다. 사진을 찍을 때 우리가 취한 자세가 너무 웃겼다.
학교에 도착하니 시간은 오후 4, 5시쯤.... 너무 일찍 도착해서 좀 섭섭했다. 이번 여행이 마지막이라서 너무 아쉽다. 여행에서 대부분 차 속에서 잠만 자고 또 힘들었지만 그래도 졸업 여행은 항상 마음속에서 영원히 좋은 추억으로 남을 것이다. 또 이번 기회에 친구들과 우정도 더욱 깊어졌다. 정말 다시 한 번 여행을 가고 싶다.
졸업을 앞두고
中 3 趙 美 花 (現 高 1)
낯설고 무섭기만 했던 이 학교에 들어와서 공부한지 벌써 3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엄마 손을 잡고 입학했을 때가 엊그제 같은데...... 처음에는 낯설고 무섭기만 했던 학교생활도 이젠 익숙해졌다. 자상하시면서도 때론 무서운 선생님들 그리고 내가 힘들고 괴로울 때 언제라도 달려와 주는 내 친구들 세월이 흐른 만큼 우리들의 우정도 더욱 깊어진 것 같다. 그런데 벌써 이별이라니 너무 섭섭하게 느껴진다.
요즘 들어서 무엇인가 날 두렵게 한다. 그것은 다름 아닌 고교생이 된다는 것이다. 고교생이 된다는 것은 그리 쉬운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된다. 고교생이 되면 아무래도 중학생때 보다는 더욱 힘들고 책임감도 더 늘게 될 것이다. 그래서 난 고교생이 되면 무엇보다도 공부에 열중할 생각이다.
앞으로 얼마 남지 않은 중학 생활을 더욱 의미 있고 또 친구들과의 우정도 변함없는 마음으로 보낼까 한다. 마지막을 먼 훗날에 기억해도 후회하지 않을 좋은 추억들을 만들고 싶다.
졸업을 앞두고
中 3 陳 貴 蘭 (現 高 1)
벌써 3년이란 세월이 흘러갔다. 난 이 3년 동안 많은 친구들과 많은 지식을 얻었다. 그래서인지 이런 시간들이 나에겐 정말로 소중하게 느껴진다.
난 이 3년 동안 정말 잊지 못할 그런 추억들이 많이 있다. 나는 친구들과 자주 우리의 옛 추억들을 얘기하며, 웃곤 한다. 왜냐하면? 아주 재미있었던 일과 정말 황당했던 일들이 많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내가 막상 졸업을 한다고 생각을 하니 그 모든 시간들이 정말 아쉽게만 생각된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내가 고1이 된다는 것이 무척 기쁘다. 그래서 난 한가지 다짐을 했다. 그것은 바로 고1에 올라가서는 지금보다 더욱더 공부에 집념을 갖고 열심히 노력을 해야겠다는 것이다.
난 지금까지 있었던 그 모든 추억들을 내가 성년이 되든 무엇이 되더라도 절대로 잊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또 나의 그 다짐을 꼭 이룰 것이다.
졸업을 앞두고
中 3 崔 美 艶 (現 高 1)
중학 생활의 마지막 시간들이 흘러가고 있다. 길게만 느껴졌던 시간들이 지금은 너무 빨리 흘러가고 있다. 이 시간들을 되돌릴 수만 있다면..... 다시 되돌릴 수 없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에 이 시간들이 점점 아쉽게 느껴질 뿐이다.
3년이란 시간을 지내 오면서, 수없이도 많은 일들이 내게 일어났었다. 물론 기쁜 일, 즐거운 일도 많았지만, 슬프고 괴로웠던 일도 많았다. 그럴 때마다 늘 내 주위에서 날 같이 고민해 주고
위로해 주는 건 친구들뿐이었다. 하지만 이제 친구들과 헤어진다는 생각을 하니 마음만 아파 올뿐이다.
중학 시절 나에게는 너무나 많은 추억들이 있었던 것 같다. 1학년 때는 나에게 두 명의 단짝 친구가 있었다. 우리들은 학교 뒷산에 오르는걸 무척 좋아했다. 그래서 뒷산에 오를 때마다 우리는 소원을 빌곤 했다. 공부를 잘 못했던 내 소원은 늘 공부를 잘 하게 해 달라는 거였다. 그 후 나는 공부를 열심히 하게 되었고 취미도 생겼다. 공부를 한 만큼 성적도 많이 올라갔다. 그리고 또 우린 고무줄 놀이를 무척 좋아했다. 쉬는 시간, 체육 시간 할 것 없이 틈만 나면 우린 고무줄을 하고 놀았고 치마를 입고도 펄쩍펄쩍 뛰곤 했다. 지금 생각을 하니 철없던 그때가 너무나도 그립다.
이렇게 옛 생각을 하니 눈물이 날 것만 같다. 그만큼 그 시간들이 나에게는 너무나도 소중했기 때문이다.
중학생활도 이제 몇 주 남지 않았다. 그만큼 난 남은 시간들을 더 의미 있고 알차게 보냈으면 한다. 또 친구들과 추억을 더 많이 만들어야겠다. 그래야만 이 짧지만 즐거웠던 시간들이 내 기억 속에서 영원히 잊혀지지 않을 것 같다.
중학생 시절
高 1 曲 壽 瑩
난 아직도 내가 입학한 날이 생생하게 기억난다. 그 때 난 촌스럽고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아이였다.. 내가 따사로운 햇살을 받으며 중학교에 첫 걸음을 들여놓았을 때, 난 어떻게 할 줄을 몰랐다. 낯선 건물 낯선 선생님 그리고 또 낯선 환경들이 날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3학년이 거의 지난 지금, 나는 벌써 그 낯선 것들에 익숙해져 버렸다.
3년 동안 여기서 난 기쁨과 슬픔을 같이 나눴고 또한 여기서 많은 것들을 배웠으며 많은 것들을 얻어 왔다. 이제 얼마 안 있으면 졸업을 하며 곧 고1이 되는 날도 그리 멀지는 않았다. 어쩌면 9년 동안 공부해 온 우리에게 다시 공부를 시작해야 되는 끔찍한 날이 다가온다고 할 수도 있다. 그래도 난 끔찍한 날보다 새로운 시작의 날이라고 생각하고 싶다. 학교를 떠나는 건 아니지만, 3년 전 그때처럼 새로운 마음으로 새로운 환경을 하지만 예전이 좋은 추억은 간직하면서......
춤
高 3 李 炅 美
요즘 신세대들의 관심 속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은 "춤"이다. 그만큼 춤은 이 시대에서 중요하고, 또 선풍적인 인기를 얻고 있다.
TV를 켜 봐도 길거리를 지나가도 언제 어디서나 춤추는 모습을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주위를 둘러보아도 장래 희망이 백 댄서인 친구들이 상상도 못할 만큼 많이 있다. 도대체 왜 춤이 이렇게 인기가 많은 걸까? 그 이유는 아마도 춤을 추는 동안에는 스트레스를 해소시켜 줄 수 있고, 무엇보다도 흥겹기 때문일 것이다. "춤"은 바로 이 답답하고 삭막한 세상에서 잠시 벗어 날수 있는 탈출구인 셈이다.
사람들이 이렇게 춤의 관심도가 높아지면서 춤의 종류도 점점 다양해지고 있다. 이제 춤은 단지 신세대들만을 위해 존재하지 않고, 다른 세대들에게까지 춤은 끝까지 파고 들 것이다. 이렇게 그림자처럼 어딜 가나 춤은 곳 이 세상 사람들에게선 뗄래야 뗄 수 없는 이 시대에 없어서는 안될 존재가 될 것이다. 앞으로도 춤"은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꿈과 희망을 줄 것이다.
친 구
高 2 杜 立 明
세상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제일로 필요한 것은 친구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이유는 사람은 혼자서 살아 갈 수 없고 누군가의 도움과 격려가 필요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친구란 무엇일까요?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어려운 일이 있을 때 도움을 주고 슬픈 일이 있을 때 같이 그 슬픔을 나눌 수 있고 즐거움을 같이 할 수 있는 그런 친구, 한마디로 슬픔을 나누면 반이 되고 기쁨을 나누면 두 배가 된다는 말처럼 말입니다. 그런 친구는 많이 필요하지도 않습니다. 단 한 명이라도 있다면 그 사람을 성공한거나 다름없습니다. 저에게 아주 많은 친구들이 있습니다. 그 속에 날 정말로 생각해 주는 친구가 있는지 없는지는 아직 모르지만 지금 현재로서는 모두 저의 진정한 친구 같습니다. 저는 저를 사랑해 주는 저의 친구들을 영원히 사랑할 것입니다.
친 구
高 2 崔 美 蘭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은 누굴까요?" 나는 슬픔과 기쁨을 함께 나눌 수 있는 진정한 친구가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런 완벽한 친구를 만난다는 건 매우 어려운 일이다. 나에게는 그런 완벽한 친구는 없지만, 나를 이해해 주고 또 나의 고통을 함께 나눌 수 있는 친구는 많다. 그래서 난 그 친구들이 있어서 정말 행복하다.
친구란? 세상에서 가장 편한 것. 한 명이라도 있으면 성공한 것. 많을 수록 좋은 것. 또한 세상에서 가장 든든한 빽, 그리고 가장 깊숙한 곳에 넣어 둔 낡은 시집 같은 것이랄까? 그만큼 친구란 한 사람의 인생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역을 맡은 조연이라고 할 수 있다. 만일 한 사람의 인생에 친구란 존재가 없다면, 그 사람의 인생은 어떻게 됐을까? 자기 분야에선 성공을 했을지 모르지만. 인간 관계에선 행복한 삶을 살 수 없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늘 옆에서 도와줄 친구도, 자기의 단점을 말해 줄 수 있는 친구도 없었다는 것이고, 제일 중요한 것은 이 험난한 세상을 같이 헤쳐 나갈 친구가 없었기에.....
그래서 우리 곁엔 한 명이라도 좋은 친구가 있어야 한다. 그래야지 우리의 인생의 의미가 있고 정이 있을 것이다.
나는 초등학교 시절때, 친구가 별로 없어서 늘 외톨이였다. 그래서 초등학교의 추억이나 기억이 별로 없다. 하지만 중학교에 올라와서 친구들을 많이 사귀게 되었다. 그래서 내 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는 친구도 생겼고, 또 내 단점을 꾸짖어 주는 친구도 있다. 이렇게 보면 나야말로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사람이 아닌가 생각한다.
친 구
高 2 婁 元 惠
사람들에게는 없어선 안되는 친구가 있습니다. 저도 예외는 아닙니다. 세상에서 제일 아끼고 사랑하는 소중한 친구가 있습니다.
내가 그 애랑 알게 된 것은 국민학교때였습니다. 우리는 정말 우연치 않게 싸우면서 알게 됐습니다. 그런 일이 있고 나서 난 그 애에게 조금씩 관심을 갖게 되고 시간이 좀 지나게 되자 친구가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전 그 애하고 뭐든지 같이하는 단짝이 되고 우리 둘은 서로 이해해 주면서 한 번도 싸우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국민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에 올라와서 정말 없어선 안되는 친구라고 우리는 절실하게 느꼈습니다. 하지만 우리에게도 사건이 터졌습니다, 그건 바로 우리도 싸우게 되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이해할 수도 있었던 것 같은데 그때는 왜 그렇게 자존심을 세우고 싶었는지 정말 지울 수 없는 추억이었습니다.
그런 일이 있고 나서 저에게 또 아픈 상처가 왔습니다. 그 애가 떠난다는 소리를 듣자 아주 슬펐습니다. 솔직히 전 그 애가 안 갔으면 하는 생각에 몇 번이나 가지 말라고 했지만 그건 그 애 뜻대로 할 수 없다는 걸 전 알게 되자 그 애에게 열심히 공부해서 만나자고 그랬습니다. 그 애가 떠나던 날이 정말 살아간 동안 제일 많이 흘린 눈물이었습니다. 그리고 나선 전 친구들이랑 친해지고 그 애도 미국에서 열심히 공부한다는 소식을 듣고 마음이 편했습니다. 그리고 3년이 지나자 그 애의 가족들이 한국으로 돌아온다는 소식을 듣고 정말 기뻤습니다. 그리고 며칠이 지나자 그 애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를 타고 정말 그 기분은 말로 표현 못하게 기쁘고 행복했습니다. 그런데 그 애가 나랑 같은 지역이 아니라는 걸 알자 조금은 서운했지만 그래도 우리는 서로 열심히 공부하고 그리 많이 보지는 못하지만 서로 마음이 통하고 진정한 친구라는 걸 전 그 애에게 처음으로 느꼈습니다. 전 그 애를 영원토록 사랑할 것입니다.
친구야 안녕
高 1 王 紀 莉
지금은 내가 안녕 이라며 널 보내지만, 나중엔 네가 안녕 하며 날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친구에게
친구야 너와 나랑 알고 지낸지 벌써 3년이 다 되어 가는구나. 중1때는 우연히 내 짝꿍이 되어 자연히 친하게 된 것뿐이었는데...... 그래도 넌 하숙생이면서도 내겐 너무 좋은 짝꿍이었던 것같에 같아. 공부하고 좋은 건 아니지만 시험 볼 때 서로 알려주기도 하고 고민도 털어놓고, 정말 둘도 없는 친구였었는데 중2가 되어서 나와 점점 멀어져서 혹시 네가 나와 이젠 더 이상 친한 친구가 될 수 없는 건지 걱정도 했는데, 지금은 예전만큼 친하진 못해도 넌 여전히 착한 것 같아. 단지 나와 거리가 조금 멀어진 것뿐이지...... 난 네가 나와 3까지도 같이 있을 수 있는 줄 알았는데 뜻밖에 네가 이민 간다는 말을 듣고 얼마나 가슴이 아팠는지 몰라. 정말 네가 농담하는 줄 알았어. 믿을 수가 없어서 며칠 동안이나 계속 울고 있었어. 정말로 가냐고 나는 물어 보았어. 하지만 다른 친구들은 멀쩡했는데 왜 나만 슬퍼하는 건지...... 눈물도 나오지 않았지만 정말 울어 버리고 싶었어. 이럴 줄 알았으면 중2때도 너한테 관심을 더 가져 줄 걸 그랬어. 지금 와서 잘 해주는 것도 늦었는지 모르겠지만 이젠 정말 너에게 잘해 주고 싶어.
너 기억 나니? 내가 무용단 했을 때, 다음날에 논산여상에 가는 이유로 집에서 못 자고 너의 침실에서 잔 것. 처음으로 친구들끼리 단체로 가는 거라 너무 좋았던 것 같아. 친구들이 자기 전에 다 잘 자라고 해주고, 깼을 댄 다 잘 잤냐고 궁금해하고, 그리고 내가 네 옆에서 잤잖아. 이불도 따뜻한 침대에 두 사람이 자는 것도 좁진 않았던 것 같아. 방금 눈을 감았는데 깼을 땐 겨우5분밖에 못 잔 기분이더라. 그걸 잘 잤다고 해야 할지, 못 잤다고 해야 할지. 그땐 홍선이가 나랑 제일 일찍 일어났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다시 한 번 너랑 자고 싶어. 이젠 그럴 기회도 없겠구나...... 지금도 나한테는(물론 너한테도) 친한 친구가 많지만, 그 친구들 중에 너를 포함해서 한 명이라도 떠나길 바라지 않았었는데. 네가 갑자기 떠난다니까 내가 어떻게 대해 줘야 할지 모르겠구나. 내가 할 수 있는 건너와 이야길 좀 많이 나누는 것밖에 없는 것 같아. 네가 고2때 다시 돌아온 댔지? 꼭 돌아와. 고1이든 고2든 고3이든 꼭 알았지? 설사 가서 안 돌아온다 해도 절대 나를 잊지마. 편지 꼭 하고...... 혹시 나만 이렇게 크게 걱정을 하는 건 아닌지 몰라도 정말 넌 너무 좋은 친구였어. 마치 있을 땐 모르고 잃고 나서 그 소중함을 아는 사람같지? 하지만 이제야 알았는걸 어떻게 해. 내가 바보 같지? 네가 이해해 줘.
고평아! 싱가풀 가서도 공부 열심히 하고 우리 반 너를 좋아했던 친구들도 가끔씩 보고 싶어하길 바래. 저기서 좋은 남자 친구 사귀면 꼭 연락하고. 알았지? 그리고 거기 가서 더욱 더 성숙해진 모습으로 나중에 다시 만나자. 너를 보는 게 졸업식 때가 마지막이겠구나. 그동안 몸 건강하고 끝으로 너에게 남길 수 있는 말이 이것밖에 없다. 사랑해 , 몸 건강히...... 안녕!!
친구 기리가
97 5. 20
편 지
中 2 宋 樹 林
사랑하는 김지호 누나에게
안녕하세요? 전 한성화교 중학교에 다니는 송수림입니다. 저는 지호누나 펜이에요.
TV, CF를 볼 때 누나만 나오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게 되요. 특히 CF광고 중에 "아모레"라는 광고가 너무 예쁘고 깜찍해요.
저희 집엔 지호누나 포스터, 사진, 비디오, 엽서 등으로 꽉 찼어요. 아침에 학교 갈 때 한번보고 누나 사진 지갑에 넣고 다니면서 보고 또 보고 학교 끝나고 집에 와서 누나 포스터보고 아무리 봐도 싫증이 안나요. 저는 치아가 옛날부터 노랬어요. 그런데 지호누나를 보고 중3때 "TV데이트 나가서 누나 만나야지"하고 중1부터 온 힘 다해 치아를 닦았어요. 아침, 점심, 저녁 맨날 이빨을 닦아서 지호누나처럼 하예져야지 하고 상상해요. 하지만 키가 너무 작아서 TV데이트에 못 나가요. 제가 이빨도 하예지고 키도 크면 TV데이트에 나가서 누나하고 TV데이트 할거예요. 설령 못 나간다 해도 이빨이라도 하예질 거예요. 그리고 남부럽지 않게 웃을 거예요. 그럼 이만 줄여요. "누나" 답장 꼭 해주세요.
누나 안녕히 계세요.
송수림 올림
편지
中 2 孫 效 蓉
강릉초등학교에 계신 양선생님께.
양선생님, 안녕하세요? 저는 초등학교 당시 선생님의 제자인 손효용입니다. 참으로 오랜만에 선생님께 편지를 쓰는군요. 요즘 어디 아프시고 불편한 데는 없으신지요? 학생들은 선생님 말을 잘 듣고요?
선생님, 제가 펜을 든 이유는 문득 선생님의 생각이 나서입니다. 비록 지금은 중학생이라 바쁜 몸이지만, 그래도 초등학교때 저에게 많은걸 가르쳐 주신 선생님께는 편지로 연락을 많이 하는 편이 좋겠죠? 초등학교 때 어려운 일이나 슬픈 일이 있을 때 선생님과 얘기를 하는게 참 즐거웠어요. 지금 생각해보니 그 시절이 그립네요. 친구들과 선생님과 함께 저 먼 시냇가에 가서 선생님하고 친구들하고 물장구를 치고 곤충채집, 꽃심기, 나들이, 경포대에가서 벚꽃구경, 신사임당 동상을 보고 우리들에게 많은 이야기를 해 주시고 바닷가에 가서 풍경화도 그리고 정말 재미 있었지요?
하지만 제일 추억에 남은건 제가 6학년때 학교에 함박눈이 펑펑 내려 수업시간이 끝나고 얼른 밖에 나가 눈위에 이리 뒹굴 저리 뒹굴, 한때는 눈속으로 엎드려 얼어 죽을뻔 했죠? 그날 밤부터 독감에 시달려서 쩔쩔매던 때가 생각나요.
선생님, 지금 강릉초등학교는 그 자리 그대로 있죠? 사람이 자꾸 줄어 학교를 폐쇄시켜야 된다는 말을 듣고 당시 얼마나 놀랐는지 아세요? 폐쇄시켜야 된다는 소리 때문에 삼성전자에서 준 장학금 50만원을 기부했잖아요. 그리고 거긴 나와 친구들과 선배들이 추억이 가득한 곳이예요. 만약에 학교를 부셔버린다면, 우리들의 가슴은 얼마나 아프겠어요!
선생님 가끔 편지 보내주세요. 선생님의 소식을 듣고 싶거든요. 그럼 이만 펜을 놓을께. 선생님 항상 건강하시고 선생님의 그 웃음을 항상 간직하세요. 그럼 제자는 이만 물러 갑니다.
ps: 단오절 재밌게 보내세요
제자 효용 올림
1997년5월16일
편 지
中 2 高 華 春
나의 친한 친구 짝꿍에게.
안녕? 난 너의 짝꿍 화춘이야!
요즘 학교생활에 익숙해 진 것 같구나. 이제 좀 있음 중2인데......
지금은 중1의 짝꿍인데, 중2가 되서라도 같이 앉고 싶어. 난 매일 학교에서 너의 그 농담 한마디에 삐치곤 했어. 하지만 넌 내가
그런 성격인 줄도 알면서 자꾸만 농담을 했어. 그땐 꾹 참고 있었지. 왜냐고? 그건 네가 나의 제일 친한 친구이기 때문이야. 앞으로도 잘 지내자. 이제부터 화 안내고 삐치지 않을게. 공부도 열심히 하고. 그럼 이만 펜 놓을게.
안녕 나의 짝꿍 진취야.
고화춘 씀.
1997. 5. 15일
편 지
中 2 李 慧 萍
인자하신 할아버지께
하늘나라에서 잘 지내고 있지요? 저는 할아버지가 무척 보고 싶습니다. 옛날에 어린 저를 학교에 데려다 주시고, 제가 일등 할 때 친구 분들께 자랑하시던 모습이 생각납니다. 또 할아버지가 문제 물을 실 때 짜증내며 답했던 내가 지금 와서 정말 정말 밉습니다. 그러나 할아버지는 화도 내시지 않고...... 이젠 비로소 후회가 됩니다.
몇 년 전 할아버지께서 중풍에 걸려 오른팔이 불편하게 되고 그후 나 혼자 학교에 갔지요.
어느 날 우리가 이사갈 때 할아버지를 큰아버지 집으로 모시게 되고 그날 다음 저는 전화도 많이 안했습니다. 그런데 금년 설날이 지난 다음날 돌아가셨습니다. 그때, 저는 얼마나 많이 울었는지 아세요? 비록 지금 내 곁에 계시지 않지만, 저는 할아버지의 소망에 어긋나지 않게 열심히 공부해서 훌륭한 사람이 되겠습니다.
그럼 하늘나라에서 저를 지켜 주세요!
혜평 올림
1997년 5월15일
편 지
中 2 湯 宇 隆
효경에게
네가 대전을 간지도 벌써 2주일이 다 되간다. 요즘은 네가 없으니 좀 허전한 것 같아. 썰렁....
우리 4인방은 영복, 의학, 나하고 너였는데. 어쩌다가 오락실에 가면 네 생각이 자꾸 든다.
나는 네가 한말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네가 한말은 "대만에 가서 오락을 재패하고 오겠다" 또는 "편지는 물론 전화도 자주 할께" 나는 다시는 널 볼 수 없을까 걱정이 되었다.
몇 달 전 네가 대만으로 전학 간다고 할 때 난 솔직히 기쁘지 않았다. 네가 제일 만만해서 그럴지 몰라도 네가 가 버리면 만만한 상대가 없어지니까. 그리고 너는 우리들이 오락의 왕자님이었는데. 오락이면 효경이고 효경이면 오락이고 너는 오락면에서는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거라 생각한다. 혹시 공부를 그만큼 하면 1등도 문제가 없을걸?
대만에서 아이들과 잘 어울릴지, 또는 공부를 잘할지 걱정이 된다. 너는 너무 순진해서 나쁜 아이들과 어울리면 큰일인데. 하긴 너의 배치기가 있으니 걱정은 안하겠다. 뚱뚱하고 멍청하게 생긴 너지만, 우리는 너를 제일 좋아한다. 그럼 안녕!
편 지
中 2 沙 維 利
영원한 친구 형필 보아라!
형필아! 우리 옛날엔 참 친했는데...... 무엇이 우리 사이를 갈라놓았는지...... 요즘 공부 잘하고 있니? 몸은 건강하고? 나는 잘 있어 덕분에! 근데 요즘 너 얼굴에 웃음이 있는 것 같아서 나도 좋다. 몇 주일 만 지나면 시험이다. 시험 공부했니? 난 요즘에서야 공부하는데.
옛날엔 너랑 나 땔래야 땔 수 없는 단 한 명의 good-friend였는데. 하지만 지금도 만만치는 않아.
다시 옛날처럼 돌아갈 수 있게 노력하면 돼!
지금 너를 보니까 너도 옛날처럼 돌아가고 싶은 것 같다. 정말 그런거니? 나도 지금 노력하는 중이야. 시간이 없다. 그럼 이만 줄일게.
친한 친구 유리가
편 지
中 2 權 志 慧
엄마께
엄마, 먼저 제가 이 세상을 볼 수 있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우리가 개학을 하던 날, 외할아버지는 교통사고로 중환자실에 누워 계시고, 몇 달 후에 서울 중앙 병원으로 옮겨왔지만, 여전히 중환자실에 누워 계십니다. 매일 3번씩이나 병원을 왔다 가야 하시고, 또 집안일 하시랴, 할아버지 돌봐 드리시랴, 너무 많이 힘드시죠? 그리고 제가 너무 엄마께 짜증만 내고 죄송해요.
한번도 엄마 어깨 주물러 드리지도 못하고...... 할아버지도 중요하지만, 엄마 몸도 좀 생각하셔야지요. 매일 엄마의 창백한 얼굴 보자하니 제 마음도 아파요. 지금 엄마의 지극한 정성으로 할아버지도 많이 좋아지셨잖아요. 다음부터 엄마 말씀도 잘 들을께요. 걱정끼쳐 드려서 죄송해요.
딸 지혜 올림
편 지
中 2 鞠 文 卿
이 세상에서 제일 좋은 친구 옥결에게
옥결아, 안녕! 나 문경이야. 참 오랜만에 너한테 편지를 띄우는 구나. 그 동안 잘 있었니? 요 며칠 못 본 사이에 살도 많이 빠지고, 공부 때문에 무척 힘들어하는 것 같던데 괜찮겠지? 넌 워낙 강하니까! 근데, 내가 생각해도 넌 참 대단한 것 같아. 왜냐하면 지난 학기 때 네가 우리 학교 안 다니고, 미국에 갔다 와서 요번 학기의 공부를 따라 가지 못할 줄 알았는데 반대로 나보다 더 잘하다니 놀랐어. 내가 널 너무 얕본 것 같애. 그리고, 너한테 너무 고마워. 항상 내가 힘들 때 도와주고, 고민 있을 때 들어주고 비밀도 지켜 주고 제일 고마운 건 내가 잘못을 했을 때 날 이해하고, 용서해 주는 거야. 난 정말 너한테 빚을 너무 많이 진 것 같아, 이 빚은 나중에 내가 꼭 갚을게. 그럼 마지막으로, 우리 우정 변치 말고, 항상 건강하게 잘 있어. 편지 또 쓸께. 안녕!
-너의 영원한 친구 문경이가-
1997.5.16
편 지
中 2-1 趙 英
사랑하는 아빠에게
아빠! 저는 아빠의 사랑스런(?) 첫째 딸 영이예요. 아빠 기억나세요? 6년 전 에 아빠의 맹장이 터져서 병원에서 나랑 엄마가 얼마나 걱정하고 얼마나 고생 한줄 알아요? 그리고 또 하나! 내가 2학년 때 동생을 미국에 가서 낳겠다고 나를 데려 가시려던 엄마를 따라 가려다가 미국 가던 날 나와 아빠의 울음 작전으로 결국 동생을 한국에서 낳고 엄마는 그 일을 바탕으로 나를 약올리고 있는 것 아빠는 알기나 해요? 그리고...... 아빠는 왜! 도대체 왜 친구한테 전화만 오면 '너 남자 친구 생겼지?'라고 나를 황당하게 만드는 거예요? 진짜 딸 마음을 이렇게도 황당하게 만드는 우리 귀여운 아빠! 도대체 종잡을 수 없는 아빠의 행동에 아빠의 딸은 두 손 두발 다 들었어요. 근데 아빠...... 아빠는 나에게 매일 '공부해! 책 봐!'하면서 왜 아빠는 한 권의 책을 보려면 그렇게도 어렵게 책을 꺼내요? 이 딸에게 미안하지도 않아요?
아빠! 어떻게 해도 아빠는 나에게 하나뿐인 아빠니까, 그만 따질께요. 아빠 나는 아빠를 사랑해요! 그러니까, 아빠도 건강하게 열심히 사세요. 착한 딸이 아빠에게 한마디.
I LOVE YOU! FATHER !!!
착한 딸 조영 올림
편 지
中 2 馬 慧 珍
예쁘고 착한 인경 언니께
언니, 안녀-엉, 나야. 언니한테 편지를 많이 썼지만, 이렇게 특별한 건 처음이다. 난 항상 언니한테 고맙게 생각하고 있어. 내가 고민이 있으면 잘 들어주고 항상 내 생각 먼저 해 주니까. 그래서 내가 해준 건 없지만, 오늘은 이 시간을 비롯해서 언니 생각하며 편지를 써 .
언니 맨 처음에 우리 반 들어 올 때 기억나? 내가 우리 선생님한테 언니랑 같이 앉게 해 달라고 해서 앉았지만, 결국엔 둘이 너무 떠들어서 또 다시 떨어지게 됐잖아. 그때 우린 안된다고 죽어도 같이 앉아야 된다고 떼를 썼지만 소용이 없었어, 그치? 지금 생각하니까 되게 웃긴다. 언니는 지금 쯤 누구한테 편지 쓸지 무척 궁금하다. 나한테 쓰고 있는 거면 참 좋겠다.
언니 지금 나 너무 웃긴 것 봤다. 유민이 거울한테 편지를 썼는데 이런 말이 들어가 있어. "거울아, 넌 참 고마워. 나같이 예쁜 얼굴을 비춰 주니까" 너무 웃긴 거 있지. 역시 유민이는 아무도 못 말린다니까!!!
언니. 언니는 날 어떻게 생각해? 내가 생각해도 언니한테 좋게 대해 주지 못한 것 같에. 나보다 1살 위니까 괜히 자꾸 기대고 싶은 것 있지. 그건 언니가 이해해 주라! 그리고 다시 한 번 말해서 언니가 참 좋아, 그리고 앞으로도 잘 할 거야! 언니가 나한테 잘 해 주는 것 보다 더-어 많이!!
그럼 언니 또 쓸께. 줄인다.
1997년 5월 15일 한국어 시간 때
언니를 무지무지 좋아하는
혜진이가 씀
.
편 지
中 2 張 世 美
세상에서 제일 소중한 친구 상령이 에게
안녕 나 세미야! 언제나 너의 단짝 친구 세미 알지?
난 처음에는 친구란 의미를 잘 몰랐지만, 너랑 친구하고부터는 잘 알게 되었어. 정말 고마워! 이런 말 하긴 좀 그랬는데 편지에 쓰니 기분은 좋다.
상령아! 난 친구란 말이 너무 좋아. 친구라......
친구는 그가 언제 위험에 처해 있을 때, 아니면 고민이나 아팠을 때 등 친구를 도와주고 위로해 주는 것이 너무 좋아. 바로 너와 나 사이를 말하는 것 같지 않니?
상령아! 너랑 나랑 처음에는 친하지 않았지만 이렇게 친해진 것 보면 웃기지 않니? 참 우리는 전생에서도 가장 친한 친구였을 거야. 넌 그렇게 생각 안하니?
상령아! 난 너에 대해 알고 싶은 게 진짜 진짜 많아. 너의 집은 어떤 모양일까? 네 방은 어떻게 꾸며 있을까? 네가 집에 있으면 무얼 하는지 너무 궁금해. 너의 집은 분명 밝은 색깔로 된 집일거야. 꼭 환한 네 웃는 얼굴처럼...... 너의 방은 분명 벽은 분홍색 또 그 방안에 잔득 인형들이 있을 거야. 꼭 착한 마음을 가진 너의 마음처럼......
넌 집에 있으면 활발하게 놀고 있을 것 같다. 꼭 너의 발랄한 모습처럼.
상령아 난 그런 친구를 가진 게 너무 자랑스러운 것 같아. 다른 사람들 앞에서 너의 자랑을 하고 싶은 게 내 심정이야. 그만큼 네가 소중하다는 거야!
상령아, 우리 앞으로 고3까지 잘해 보자. 아주 친한 친구로 영원히 ......
그럼 이제 펜을 놓을게. 시험 별로 안 남았으니까 공부 열심히 하고 날씨가 좀 이상하니깐 감기 걸리지 않게 조심해!
안녕 !
친구 세미가
1997. 5. 16
편 지
高 2 孫 德 美
보고 싶은 할머니와 할아버지
전 우리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얼굴조차 한 번도 못 보았습니다. 저의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제가 태어나기도 전에 돌아가셨습니다. 단 한 번만이라도 두 분의 얼굴을 보았으면 합니다. 만약 지금 두 분이 살아 계셨더라면 얼마나 저한테 자상하고 인자하신 분이었을 것이겠습니까. 정말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중국땅에서 태어나 고생하시다가 돌아가셨다는 우리 아버지의 말씀이 기억에 남습니다. 할아버지 할머니 조금이라도 아니 지금까지라도 살아 계셨다면 전 정말 잘 해 드리고 싶었는데...... 그렇게 안됐습니다. 할아버지 할머니 지금 어디인지도 모르는 곳에 있죠? 하지만 두 분은 착하셔서 분명 하늘나라에 있을 거라고 전 믿습니다. 분명 두 분은 하늘나라에서 절 지켜보고 계시겠죠? 정말 그러시다면 전 두 분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열심히 공부하겠습니다. 다음엔 꼭 두 분의 산소를 찾아 뵙고 큰절을 올리겠습니다.
그럼 하늘나라에서 편안히 쉬세요.
1997. 5. 15
덕미 올림
편 지
高 3 唐 美 燕
때로는 짧은 몇 마디의 말들이, 작은 시구가 사람의 마음을 감동시킬 때가 있다. 편지는 바로 이런 힘으로 사람들의 마음과 마음을 이어주는 연결 고리가 되곤 한다. 편지 속에 담겨 있는 건 글씨체 그 이상의 정과 그리운 마음이기 때문이다. 첨단 과학에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들이 아직도 편지로 통신을 하냐는 생각도 할 수 있겠지만 밤새 잠을 설치며 그리움으로 편지를 써 보았던 사람이라면, 작은 한 통의 편지로 베개 밑을 적셔 보았던 사람이라면 딱딱한 수화기 안에서 들려 오는 목소리 보다 더한 감정이 벅차 오르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며칠 전 친구로부터 편지 한 통이 날아왔다. 국민학교때 미국으로 이민을 간 그 친구는 아직도 매년 내 생일이 돌아올 때쯤 어김없이 생일 카드를 보내 주곤 한다. 이렇게 시간이 흐른 지금도 여전히 날 걱정해 주고 신경을 써 주는 것이다. 비록 한 장의 작은 카드일 뿐이지만 먼 이국 땅까지 그 마음을 전해 주는 따뜻한 "정". 언제나 내 생활에 사랑이 가득 차길 바라고 진심으로 생일 축하한다는 글을 읽을 때쯤엔 코끝이 찡하고 마음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얼마만인가 이런 감정을 느껴 보는 것이. 한참동안 카드를 들고, 나오는 눈물을 억누르느라 애를 먹었다. 어서 답장을 해야겠다 너무 고맙다고 이미 최고의 생일을 맞고 있다고......
한 여론 조사 통계에 의하면 1년에 한 통의 편지로 쓰지 않는 사람이 상당수를 차지한다고 한다. 많은 사람이 번거롭다는 이유로 편지를 쓰지 않는 것이다. "편지"는 자신의 마음을 전하는 가장 좋은 방법으로 서로의 마음을 열 수가 있다. 만약 감사한 마음을 전하지 못한 분이 있다면 편지를 써 보자. 멀어진 친구가 있다면 편지는 그 거리를 좁히는 큰 힘이 될 것이다.
행 복
李 宣 和
사람은 항상 행복을 추구한다. 누구나 행복을 꿈꾸고 또 바라고 있다. 친구가 있기에 행복하고 따뜻한 가족이 있기에 행복하다. 꼭 물질적으로 만족하는 행복이기보다 작은 일에서도 큰 행복을 느끼는 것이 참다운 행복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행복" 이란 두 글자를 보면 왠지 모를 미소가 번진다. 나이에 따라 행복의 기준도 바뀌는 것 같다. 어렸을 땐 맛있는 음식을 먹거나 사고 싶은 인형을 가졌을 때 행복을 느끼고 좀 커서는 친구들의 우정이 있기에 행복하다. 어른이 되면 물질적으로의 행복을 더 추구하는 것 같다, 삶의 욕심이란 정말 한도 끝도 없는 것 같다. 저마다 지금 느끼고 있는 행복에 만족치 못하고, 더한 행복을 원한다, 더러 그 행복을 위해 범죄를 저지르는 일도 번번이 일어나고 있다.
행복이 있기에 우정도 있고 사랑도 있다. 행복하지 못한 사람은 늘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며 산다. 그리고 그 사람들의 얼굴에는 항상 밝은 미소가 있다. 우리는 행복을 늘 바라기 보단 자신이 스스로 행복을 개척해 나가는 삶이 되었음 좋겠다.
행 복
高 3 孫 如 娜
행복은 사람에게 있어, 항상 필요한 것이다. 일상 생활에 있어 행복이 없다면 우리에겐 불행만 있을 것이다. 행복이 있기에 웃음이 있고, 아름다움이 있다. 또한 우리에게 행복을 보여준 부모님에게 꼭 감사를 드려야 한다, 때문에 나는 커서 부모님에게 항상 웃음과 행복을 가져다 그리고 싶다.
현재의 내가 가장 행복하다고 느낄 때는 친구들이 항상 나에게 있을 때 또 가족과 함께 있을 때와 전철이나 길거리에서 불쌍한 사람을 도와 줄 때 그리고 시험 성적이 올랐을 때가 가장 행복하다.
나는 항상 이런 생각을 한다. 지금 상황에 행복이 없다면 우리도 역시 태어나지 않았을 뿐더러 불행만이 있을 것이다. 불행만이 있다면 이 세상은 처음부터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행복은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항상 필요한 존재이며 우리 옆에 항상 있어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항상 웃고 밝게 살아야 행복할 수 있다.
행 복
高 3 武 代 運
사람들이 살아가면서 "행복" 이란 단어가 없다면 얼마나 삶이 허무할까? 그렇지만, 그 행복이란 단어를 찾기에는 아주 쉬울 수도 있고 또 어려울 수도 있다. 내 생각에 행복은 항상 즐겁게 모든 일을 하는 것이 아닐까?
나는 힘든 일이 있어도 언제나 그것을 반대로 생각하고 잘 이겨낸다면 이처럼 큰 행복은 없을 것이다. 그런 면으로 보아 나는 참 행복한 인생을 살고 있는 것 같다. 나에게는 부모님과 가족들이 있고, 살집과 음식 또 학교도 다니고 친구들도 있고 더 많은 것들이 나의 행복을 증명해 주고 있다. 하지만 이것들이 진정한 행복이 아닐 수도 있다. 이것들은 단지 겉으로만 보이는 행복이 아닌가 싶다. 이런 것들이 없어도 행복한 사람은 셀 수 없이 많다. 또한 이런 것들이 있어도 불행한 사람이 있다. 그렇다면, 진정한 행복이란 어떤 것일까? 아마도 마음으로 느껴지는 행복이 진정한 행복인 것 같다. 아주 사소한 일에도 행복을 느끼고, 항상 자신이 행복하다고 생각하면, 그것이 바로 진정한 행복일 것이다.
행 복
高 3 沈 成 勤
인간은 태어나서 많은 역경과 고통을 겪을 것이다. 언젠가 난 이런 말을 들어 본 적이 있다. "인생은 끝없는 고통"이란 말. 인간이 고통이라는 늪에서 헤어날 수 없으면서도 생활 할 수 있는 것은 아마 행복이라는 것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행복이라는 것은 참 웃기다. 우리가 슬플 때도 지쳐 있을 때도 항상 우리 주위를 빙빙 에워싸고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미워해서는 절대 안될 놈이다. 언제나 내 곁에 있기를 모두들 원하기 때문이다. 그놈이 없었다면 우리의 삶은 정말 지옥과 같았을 것이다. 이 놈은 우리를 들뜨게 하고, 웃게 하고, 낙관적으로 하고 그리고 우리를 착하게 한다 참 고마운 놈이다.
내가 생각 할 때, 행복이라는 놈은 분명 친구가 있을 것이다. 아마 그 친구들은 좋은 추억, 좋은 감정, 좋은 물건 등일 것이다. 모두 좋은 쪽하고 연관된다. 예를 들어보자. 배고픈 아이가 좋은 음식을 배불리 먹으면, 그 아이는 분명 행복을 느낄 것이다, 또 한 중년의 부인이 옛 추억을 떠올린다면, 그녀는 분명 행복 할 것이다.(아마, 그날 저녁밥은 푸짐하고 맛있을 것이다) 이렇듯 마음속에 행복이 깃들이면 모든 이는 좋은 쪽으로 변해 간다. 하지만, 행복은 우리들 곁에 그리 오래 있지만은 않는다. 우리의 노력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그 놈은 잠깐 지나가는 나그네, 혹은 바람 또는 계절과 같은 존재일 것 같다. 왜냐하면, 우리가 행복한데도 행복을 느끼지 못하고, 고마워하지 못하면, 행복은 당장 우리를 떠나 버린다. 참 얄미운 놈이다.
어쨌든 행복은 참으로 좋은 것이다. 마치 우리의 부모처럼 말이다. 사실 행복을 말하자면, 정확한 말은 할 수 없겠지만, 나의 작은 생각을 적어 봤다. 끝으로 행복이라는 것은 우리 삶을 좀더 여유 있고 풍족하게 하는 최고의 요소인 것 같다.
행 복
高 3 雷 美 燕
사람들은 행복하려면 명예와 돈이 많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부자들은 대부분 남을 도와주지 않고 자신밖에 모른다. 오히려 가난한 사람들이 서로 도와주고 아껴 주는 것이 행복이라고 생각된다.
난 몇 주전 TV에서 고아들을 보았다. 고아들은 하루라도 같이 놀아 주는 사람이 있을 때 단지 조그만 것에서도 아이들은 행복해 한다.
나는 그에 비해서 정말 행복하다. 우리 집은 부자가 아니지만, 따뜻한 집이 있고 또 엄마의 사랑이 있는 게 너무나 행복하다.
우리는 자신의 외모에 대해서 불만이 많지만 장애인을 보면 생각이 바뀐다. 지체 장애 때문에 자신이 하고 싶은 일도 못하는걸 보면 몸이 건강한 우리는 정말 행복한 것이다.
사람들은 자신의 미래에 더 많은 행복을 바란다. 내 생각으로 자신이 행복은 기다린다고 오는 것이 아니다. 자신이 설정한 미래의 목표에 아무리 큰 어려움이 있더라고 꾸준한 용기와 노력을 한다면 그 보다 더 행복한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
행 복
高 3 張 莉 花
『행복』이란 자기 스스로 만들어 가는 것 같다. 자지가 스스로 행복하다고 생각하면 행복해 지고, 불행하다고 생각하면 저절로 불행해지는 것 같다. 이건 내 생각일 뿐이지만......
사람마다 행복의 기준이 틀리다. 어떤 사람은 돈이 많으면 행복하다고 하고, 또 어떤 사람은 사랑하는 사람이 있어 행복하고, 난...... 자세히 생각해 보니 잠자는 게 제일 행복하다, 난 어렸을 때부터 잠이 많았다. 피곤한 건 너무 싫고 짜증이 난다. 잠을 푹 자고 나면 행복하다. 졸리면 아무일도 못 한다. 다른 사람이 웃을지 모르겠지만 난 잠자는 시간이 제일 행복한 순간이다.
한 사람이 살아가면서 행복한 일, 슬픈 일 등등 많은 일들이 있었을 것이다. 그래도 옛 생각을 더듬어 볼 때면 당연히 행복한 순간만 떠올리게 된다. 그러니 이제부터라도 행복하게 삽시다! 웃고 삽시다! 외국의 어느 전문가가 연구한 결과 '웃음'은 만병의 통치약이라고 하면서 항상 웃고 살자고 하였다. 이 말이 맞는 것 같다. 모든 일을 나쁘게만 생각하지 말고 자꾸 좋은 쪽으로 생각하면, 일이 더 잘 풀릴 것이다.
'행복' 너무 형용하기 어렵다. 어떤게 행복한 것일까? 다 자기 나름대로 다르겠지만 자기 일에 최선을 다하고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살면 이런 것이 보통 사람들의 행복이 아닐런지요?
행 복
高 3 孫 德 蘭
무엇이 행복일까?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이 행복은 우리에게 큰 의미를 가져다준다. 흔한 말로 "돈으로도 살 수 없는 것", "마음에서 우러나는 것", "함께 나눌 수 있는 것"이라고 사람들은 말로 표현한다. 그 말들은 행복을 피상적으로만 설명한 것에 불과 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이미 경험한 작은 행복들이 비록 사소하게 느껴지겠지만, 그 작은 행복들은 큰 행복의 기틀이 된다고 생각한다.
세상에 태어나 살면서 난 크고 작은 행복을 느낄 수 있었다. 건강하게 걷고 주위를 살펴보고, 소리를 듣고, 모든 걸 다 할 수 있는 정상적으로 태어난 것에 대해 나는 행복하게 느낀다. 나는 이보다 더 큰 행복은 우리를 키우시면서 닦아 주고 입혀 주고 재워 주고 혹시 모자라는 것이 없을까 하고 걱정해 주신 부모님들이 계시다는 것이다. 그분들은 성장한 우리들을 바라보면서 기쁨 미소를 짓고 계실 것이다. 그 미소는 평범하지만 때로는 마음을 흡족하게 할 정도로 아주 큰 행복이 아닐 수가 없다.
일반적인 사람들은 대부분 큰 것만을 바라고 찾는다. 작은 것은 시시하게 느껴진다는 것이다. 난 내 자신을 돌아보며 작지만 의미를 지닌 것들을 찾고 있다. 그러한 것들은 굳이 헤매서 찾을 필요도 없이 우리 주위에 산적해 있다. 또한 그걸 의미를 부여하고 어렵게 해석할 필요도 없다. 행복은 자기 자신이 만들어 내는 것이기 때문에 항상 자신과 주위를 위해서 최선을 다한다면 행복을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행 복
高 3 任 慶 美
사람들은 늘 행복하다. 하지만 반면에 불행한 사람도 있기 마련이다. 행복한 사람은 표정이 밝다. 그래서 사람의 행복한지 여부는 그 사람의 겉모습을 보면 알 수 있다. 나는 생각한다. 과연 어떤 것이 행복일까?
우린 일상생활에서부터 행복을 접할 수 있다. 사람이 태어나서 처음으로 부모, 형제를 만나 화목한 가정을 이루며 살 수 있다는 것 . 이것도 행복일 것이다.
행복은 어느 누구에게도 있다. 하지만 우리 주위엔 행복 속에 살고 있으면서도 깨닫지 못한 사람들이 많다.
저기 먼 아프리카 쪽에선 식량이 부족해 막 태어난 신생아들이 엄마의 젖을 먹지 못한 채 죽어 가고 있다. 반면에 우리는 이렇게 먹고 싶으면 먹을 수 있는 이런 부유한 환경에 살고 있다.
우리들은 그들과 비교하면 너무나 행복한 곳에서 태어나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우리 사회가 낭비가 심하게 변해 가는 현실을 가만히 지켜볼 수만은 없다. 빵 하나를 먹어도 아프리카 난민들을 한번씩 생각하면서 자신이 행복하다는 걸 느껴 보는 것도 참된 행복 중에 하나일 것이다.
행복하기 위해선 먼저 작은 일부터 실천하자. 작은 행복이 바로 큰 행복이다. 그러기 위해선 우선 자신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자기 자신을 먼저 사랑할 수 있어야 남을 사랑할 수 있다. 또 모든 일에 항상 열심히 밝은 마음으로 시작하면 행복은 모두 우리의 마음속에 존재하고 있을 것이다.
이렇게 바쁜 사회에서 점점 사라져만 가는 우리들의 웃음들 우리 모두 한번씩 생각하여 바로 눈앞에 있는 행복을 찾아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행 복
高 3 李 高 儀
행복은 많은 사람들이 추구하고 있다. 그런데 행복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모두다 행복한 것은 아니다.
우리 주위 사람들을 살펴보면 밝은 표정을 짓고 길거리를 걸어다니는 사람, 남한테 잘 대해 주는 사람, 또 웃음이 넘치는 사람. 그런 사람에게는 행복이 반드시 스스로 찾아 간다. 반대로 우울하고, 사람들한테 못되게 구는 사람. 그런 사람한테 행복은 접근하지도 않는다.
나는 내가 기억하고 있는 옛 추억 속에서 제일 행복했던 일들을 생각해 본다. 엄마와 다리 위에 누워서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을 때, 또 엄마가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주셨을 때. 그때 행복했던 느낌은 내 마음속에 깊이 새겨 든다. 영원히 잊을 수 없다.
행복은 모든 사람들이 추구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지금 행복을 만들고 있다. 행복을 만들 때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또 행복이 왔을 때 당신들은 반드시 잘 이용해야만 한다.
행 복
高 3 楊 書 賢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면서 가장 흔히 얻을 수 있는 것은 기쁨, 슬픔, 행복, 고통들이라 말할 수 있다. 그 중에 행복은 자신이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이다. 자신의 일이 성공하거나 자신이 최선을 다해서 이루어진 것은 항상 행복이 따른다. 또한 행복 곁에는 웃음이 늘 같이 한다. 그리고 행복은 늘 어디든 있지만 우리가 어떻게 행복을 느낄 수 있느냐가 중요하다. 만약 어떤 사람이 일을 잘하고 있고 또 잘했었는데 사소한 실수 하나로 '다 된 죽에 코풀기'식으로 도루묵이 되어 버린다면 행복은 저기 먼 곳에서 바라보고만 있을 것이다. 또한 실패했다고 자신감을 잃게 되면 영원히 행복을 다시 맛볼 수 없을 것이다.
사람이 있고 인생을 즐기고 삶을 살고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행복이 숨어 있다. 그러나 과연 행복을 찾아서 이것을 즐기고 맛볼 수 있느냐가 문제이다.
이 문제의 답과 힌트는 그 어느 누구도 알려 줄 수 없는 것이다. 이런 것은 자기 자신이 혼자의 힘으로만 얻을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옆 사람이 웃긴 말을 했다고 해서 행복을 얻는 것은 행복이 아니라고 생각된다. 이런 것은 단지 그 상황 상황마다 대치하는 것이라고만 생각된다. 왜냐하면 잠시 웃고 즐기고만 할뿐이지 행복이라고는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우리는 이렇게 정의해야 한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행복만을 맛볼 수는 없다. 행복을 어느 만큼 만끽했다면 어느 정도의 고통과 슬픔도 느꼈을 것이다. 하지만 기억에 남는 것은 슬픔과 고통을 느낄 때 일뿐 기쁠 때와 행복할 때는 기억에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그 이유는 고통을 받고 그것을 이기기에 너무 힘이 들었고 지루해서 다신 똑같은 고통을 받지 않기 위해서이다. 그래서 우리는 살아가면서 꼭 잊어선 안될 행복 몇 가지만을 기억하면서 살아갈 것이다. 그래서 행복은 우리에게 없어선 안될 인생의 한가지 재료이다.
행 복
高 3 賀 明 華
전세계 수 십억 인구 중에 행복한 삶을 사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 나는 과연 성공된 삶을 살수가 있을까? 나는 간혹 이러한 생각을 해 보곤 한다.
성공한 삶을 산 사람은 많이 있다. 그들이 사업에 성공해서 그럴 수도 있고 비록 돈은 없지만 아름답고 단란한 가정을 통해 얻는 행복때문일 수도 있다. 그밖에도 많이 있을 것이다. 돈이 많다고 다 행복한 것은 아니다. 돈이 많은 사람은 그 재산을 지키려고 안간힘을 쓸 것이다. 그리고 그의 재산을 노리고 접근하는 사람들. 친구로서나 애인으로서 그들은 그의 돈을 노릴 것이다. 그렇게 되면 그 부자는 진정한 행복을 얻었다고 할 수 있을 까?
돈이 너무 없어도 행복할 수 없다. 돈이 없으면 삭막한 생활고에 시달리고 결국은 가정 파탄에 이를 것이다. 그러므로 돈과 행복은 밀접한 관계다. 지금은 물질 만능주의 시대, 돈이 없으면 마음으로부터 오는 행복을 느낄 수 없다.
나의 미래는 과연 어떨는지? 부자가 될까? 가난한 자가 될까? 아니면 보통 사람? 노력은 행복의 척도라고 한다. 나는 나의 인생의 행복을 위해서 지금부터 노력할 것이다. 공부를 열심히 하고 필요한 기술을 익혀감으로써 나의 미래의 행복을 위해 행복의 씨앗에 물을 주어야겠다.
행 복
高 2 孫 善 娜
행복이란 무엇일까요? 돈 많고 먹을 걱정을 하지 않는다면 그것이 행복일까요? 돈이 많다고 해서 과연 행복감을 누릴 수 있을까요? 세상엔 돈으로도 살수 없는 것이 많습니다. 행복한 가정에서 받는 부모의 사랑, 친구와의 우정 어린 추억들, 이 모든 것들이 돈으로는 살수 없는 것입니다. 돈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려는 사람들의 사고 방식에 저는 가끔 의문을 느낍니다.
전 지금 행복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비록 재벌처럼 돈이 많은 것도 아니고, 내가 원하는 것을 다 가질 수 있는 건 아니지만, 그 무엇보다도 소중하고 귀중한 두 가지를 지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바로 건강한 나의 몸과 화목한 가정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생활 환경에 얽매여 많은 것을 포기합니다. 해보지도 못하고 포기하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저는 슬픔을 느낍니다. 이 사람들은 하고 싶어도 못한 채 포기해야만 하기 때문입니다.
행복은 자기 자신이 천천히 만들어 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세상의 많은 사람이 행복을 포기한 채 산다면 이 세상은 회색 빛으로 변해갈 것입니다. 반대로 처음부터 행복을 누린다면 막상 불행이 닥칠 때면 어찌 대처해야 할지 모르겠지요.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환경을 책망하며 자기의 행복을 포기합니다. 하지만 많은 삶들이 그렇지 않고 꿋꿋이 살아갈 수 있는 것은 언젠가 다른 이처럼 행복을 누릴 수 있으리라는 믿음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불행한 자신의 환경에 책망하지 말고 앞을 보며 나아가야 합니다.
사랑과 희망, 이 모든 것은 우리가 행복 속에서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과 생각이 새하얀 흰색처럼 맑고 깨끗하다면, 이 세상의 모든 사람이 행복을 누릴 수 있는 겁니다.
아무 모양과 색이 없는 행복은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 쟁취해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괴롭고 슬펐던 일들, 웃고 즐거웠던 일들, 이 모든 것이 내가 성장해 나가며, 또 다른 행복을 찾기 위해 겪어야 할 일 들인 것 같습니다.
행 복
高 2 呂 序 麗
행복. 행복이란 무엇인가? 누구나 생각해 보기 마련이다. 행복은 우리의 삶 속에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사랑이 있어야 행복도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행복한 사람들을 볼 수 있다. 부유한 자만이 행복을 느낄 수 있는 것만은 아니다. 남의 행복한 것을 보며 나는 불행하다고 느낄 때가 있을 것이다. 나의 불행은 부모님 탓이며 다른 사람 탓을 할 때가 있다. 우리는 우리의 행복이 가까이 있는 것을 느끼지 못하고 난 불행하다면 스스로 절망하는 사람들을 많이 볼 수 있다. 진정한 행복이란 나의 곁에, 나의 삶 속에 있는 것이다 난 지금 생각해 본다. 난 행복한 사람인가 불행한 사람인가 아마도 행복한 것일 것이다.
예전엔 내가 정말 행복하다는 것을 느끼지 못하였다. 이 문장을 쓰며 이제서야 난 정말 행복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 주위엔 나보다 못한 사람들이 있다. 그들과 이야기를 해보면 겉보기엔 불행한 사람인 것 같지만 내면 세계에서는 정말 행복이란 이런 곳에서 오는구나 하고 느꼈다.
행복은 우리가 찾아서 얻는 것이다. 자기 자신이 행복을 느껴야만 행복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행복을 느끼자 못한다면, 누구든지 자기가 행복하다고 생각하지 못할 것이다. 누가 나한테 오늘날까지 행복했었냐고 묻는다면 난 행복했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사랑과 행복은 일치한다. 행복은 사람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이다. 사람들은 무엇을 얻어야만 행복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사람들의 이런 고정관념을 깨고 바꾸어 주고 싶다. 행복은 자기만이 느낄 수 있는 것이며 자기의 내면세계에서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행복을 찾는 것은 어느 누구에게나 소중한 일일 것이다.
행복과 불행
高 2 梁 在 英
행복과 불행, 이 두 가지는 생각하기에 달린 것 같다. 자기가 자신을 보았을 때, 생각하기에 따라 행복하다고 할 수도 있고 불행하다고 할 수도 있다.
나는 어느 날인가, 집에서 TV를 보는데 어느 프로그램에서 소년 소녀 가장에 대한 이야기를 드라마로 엮은 프로그램을 보고 있었다. 거기에서 나오는 주인공들은 전부다 부모님이 돌아가시거나, 부모님이 많이 편찮은 사람들이였다. 그들은 학교에 다니면서 집안 일을 도맡아서 하고, 신문을 돌리기도 하고, 할머니나 부모님의 일을 도와주는 것이다. 하는 일들이 모두 힘겨워 보였지만, 그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았다. 자신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하면서, 자신은 행복하다고 한다. 부모님이 안 계시지만, 할머니나 동생들이 건강하게 같이 사는 것이 얼마나 즐거운지 모른다고 한다. 나는 그들을 보면서, 생각해 보았다. 그들은 생활이 어렵지만, 낙망하지 않고 불평하지도 않고, 자신의 일을 꿋꿋이 해 나가는 것을 보았을 때, 그것이 나는 얼마나 행복인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많은 사람들은 이 세상에서 물질이나, 명예 이런 것이 행복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러나 그런 것들은 영원하지 못하다. 돈이란 있을 때도 있고 없을 때도 있는 것이다. 명예도 마찬가지다. 높을 때가 있으면 낮을 때가 있는 것이다. 만약에 돈이 있는 것이 행복이라면, 이런 가정은 어떠한가.... 2,30년 전, 서울도 아스팔트가 아닌 농사를 짓는 논이나 밭들이 많았다. 어느 땅콩 밭을 하는 가정이 있었다. 그들은 어렵지만 가정이 오순도순 화목하게 살고 왔었다. 말 그대로 행복했던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도시개혁 바람이 일어나서 그 땅콩 밭의 땅값이 오르게 된 것이다. 상상도 못할 만큼 엄청나나 부자가 된 이 가정은 좋은 집으로 이사를 가고, 차도 사고, 편하게 살았다. 그러나 이들의 생활이 변하기 시작했다. 아버지는 갑자기 돈이 많아지자, 어떻게 써야 할 줄을 몰랐다. 매일 술집을 가서 골든 벨을 누르고 돈을 펑펑 쓰기 시작했다. 옛날에는 그 다정한 아버지가 집을 안 들어오는 날이 생기고 외도를 하기 시작했다, 어머니는 아버지가 그렇게 하는걸 보시고는 나라고 못하냐? 는 식으로 같은 생활을 하기 시작했다. 아들은 날라리가 되어 담배, 술, 본드, 가스 심지어는 마약까지 손을 대기 시작했다. 어느 날, 어머니가 바람을 피운걸 알은 아버지가 그 현장을 찾아가서, 그 어머니를 총으로 쏴 죽였다.
그 아버지도 구속되고 아들도 마약으로 구속됐다. 이 가정은 어떠한가. 그토록 돈이 많았지만, 그들의 인생을 책임져 주지는 못했다. 그 화목한 가정을 돈이 하루아침에 을 낸 것이다. 이처럼 돈은 인생의 목표가 아니다. 없어서는 안되지만, 너무 집착하는 것은 안되는 것이다.
결론을 내고자 한다. 행복... 모든 사람들이 원하는 것이다. 불행을 바라는 사람이 있겠는가? 그럴 리는 없다. 나는 행복을 이렇게 생각한다, 자신을 보고 자신의 인생의 목표가 올바른지 그릇되지는 않았는지, 만약 올바르다면, 그것을 달성했는지, 지금의 상태는 어떠한지, 자신을 포기하지 말고 계속 노력해 가며, 목표를 향해서 가는 것이 인생이 참 행복인 것 같다.
호주의 휴양지 케인즈(CAIRNS)
高 1 焉 保 喜
작년 성탄절 난 가족과 함께 호주로 여행을 갔다. 하지만 우리는 즐거운 성탄절을 안타깝게 비행기 안에서 보내야만 했다.
호주는 한국과 정 반대로 12월25일, 우리에겐 추운 겨울이지만 그들에게는 더운 여름이었다.
이튿날 드디어 내가 기대했던 호주에 도착했다. 처음 보는 집, 나무 모두다 내 눈에는 신기할 뿐이다. 첫번째로 도착한 곳은 아주 조그만 휴양지에 불과한 케인즈였다. 우리들은 우선 비치 헛(Beach hut)에 가서 맛있는 아침 식사를 했다. 처음 느끼는 맛, 향 그리고 즐거움. 비치 헛 옆에는 아주 큰 갯벌이 있었다 그들은 갯벌에 있는 조개 등을 잡지 않고 자연 그대로 살려 둔다고 한다. 아침 식사를 마친 후 우리는 기차를 타고 쿠란다 마을로 갔다. 기차는 아주 구형이었다. 그래서인지 새로운 느낌을 주었다. 약20분 후 우리는 산으로 올라갔다. 이곳에는 며칠 전 비가 왔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풀 냄새가 무척 향기로웠다. 온 산들이 다 초록색으로 덮여 있었고 나무 열매들도 달콤하게 잘 익었다. 한시간 후 우리는 쿠란다 마을에 도착했다. 우리는 '레인 포리스트 스테이션'에서 부메랑 던지는 곳을 갔다. 부메랑을 만드는 원료는 '불태 웨늘'이란 나무다. 부메랑을 던질 줄 아는 사람은 던진 후 다시 돌아온다고 말했다. 부메랑은 아주 크고 탄탄했다. 처음으로 잡아 보는 부메랑은 왠지 어색했다. 던진 후 과연 결과는 꽝! 조금도 못 가서 떨어지고 말았다. 그 곳에서 가장 인기를 끄는 동물은 코알라 캥거루 악어 등이며, 그것들을 모두 보았다. 코알라는 하나같이 모두 잠만 자고 있었다. 실망은 컸지만, 그 모습은 무척 귀여웠다. 캥거루는 깡충깡충 뛰어 놀고 있었다. 그리고 한 4, 5백kg정도의 무게가 나갈 것 같은 악어, 정말 굉장했다.
우리는 야생 열대지방이라 불리는 아마덕으로 출발했다. '그레이트 배리어리프'보다 더 다양한 생물이 존재하는 호주의 열대 지역, 곤충류보다 더 다양한 어물, 산호초, 달팽이 등의 생물들이 존재하고 있다. 이 지역은 200여 가지의 새가 있으며 호주에 곤충류의 60%가 존재하고 있다. 이 지방은 7.5m 되는 뱀 아니면 15cm가량의 개구리, 25cm크기의 나방 등이 이 지역의 특이 생존물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가 들어간 곳은 열대 우림. 그곳에서 우리는 '판다녀스 우터몬라'(두 성분의 날카로운 잎새를 가지고 있으며 때론 원주민들의 식량으로도 쓰인다) 그밖에도 '북퀸슬랜드 팬팜'과 생전 처음 눈앞에서 자라를 봤다. 운전기사 아저씨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설명해 주었다. 그는 나무 막대기를 가지고 강을 저었다. 우리는 무슨 영문인진 몰랐지만 자라는 사람의 손을 좋아한다고 했다. 과연 자라가 물 속에서 고개를 들었다 이름은 '이스턴 소백 스邜핑 자라'다. 약 30cm길이의 자라는 과일과 곤충을 먹고산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원주민의 춤을 관람하였다.. 그 중에서도 가장 인상깊은 것은 '팜아기리' 였다. 그들은 그 춤으로 그들이 삶을 표현한다고 했다.
다음 날 우리는 배를 타고 바다로 갔다. 도착지는 '케인즈' 바로 옆에 있는 '그린 섬'이었다. '그린 섬'에 대한 나의 첫인상은 꼭 무인도 같았다. 영화처럼 나무들이 무성하고 위험한 동물이 갑자기 뛰어 나올 것만 같았다. 하지만 내 생각과는 달리 그린 섬은 그림 같은 풍경 속에 상냥한 사람들 그리고 즐겁게 노는 물고기들이 가득 차 있었다.
나는 아직 환경오염에 물들지 않고 대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지닌 호주를 내 기억 속에 영원히 간직하기를 바라며 이 여행기를 끝마치겠다.
하교길
高 2-1 張 瑛 坢
방과후의 하교길은 우리들의 발걸음을 가볍게 한다. 그만큼 마음이 가볍기 때문이다. 보통 우리들은 버스를 이용하기 보단 몇 명 친구들과 걸어서 집으로 향하는걸 좋아한다. 학교부터 집까지의 그 시간은 친구들과 보낸다. 우린 길에서 가끔 과자나 먹을걸 들고 서로 학교에서 일어난 재미난일 혹을 기분 나뻤던 얘기들을 주로 한다. 또 어쩔땐 우리가 관심 있는 것들이 길에서 눈에 띄면 거기서 한참을 구경하곤 한다. 먹을 것도 예외는 아니다. 떡볶이나 순대 등을 파는 분식점을 보면 어찌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날 수 있겠나? 또 거기서 군것질을 한다. 그래서 나의 하교길은 아주 많은 추억을 내게 남겨준다. 아마도 그렇기 때문에 더욱 잊혀지지 않는다. 누구에게나 자기자신이 가지고 있는 아름다운 하교길의 추억이 있을 것이다. 그것이 시골이든 대도시이든 모두다 아름답게 남아 있을 것이다. 우리가 커서 어른이 되어 또 아이의 부모가 되어도 우리들의 아이들에게 이미 없어질 자기 자신의 하교길 추억대신 부모세대의 하교길 이야기를 들려줄 때가 있을 것 같다.
<童話의 世界>
한 편의 동화
'삶이 아름다운 열 네 가지 이유'에서
옛날 정원사가 살고 있었다. 하루는 정원사가 아내의 손을 잡고 말했다.
「여보, 우리 오늘 나무 한 그루 심읍시다.」
정원사의 아내가 대답했다.
「당신이 나무를 심고 싶다면 그래야지요.」
정원사 부부는 정원에 나가서 묘목을 한 그루 심었다.
얼마 안 가 묘목에서 부드러운 초록잎 하나가 고개를 쏙 내밀었다. 어린 나무는 처음으로 똑바로 고개를 들어 해님을 바라보았다. 잎 구석구석에 해님의 따스한 손길이 느껴졌다. 나무는 해님을 향해 몸을 쭉 펴며 기지개를 켰다. 그리고 자기 방식대로 해님에게 인사를 했다. 해님의 따스한 빛을 받으니 행복했다. 아름다운 세상에서 쑥쑥 자란다는 것이 참으로 멋진 일로 생각되었다.
정원사는 나무를 바라보며 아내에게 말했다.
「자, 보오. 우리가 심은 이 나무, 귀엽지 않소?」
그러자 아내가 말했다.
「그래요, 당신 말대로 정말 예쁜 나무예요.」
나무는 점점 자라나 해님을 향해서 쭉쭉 뻗어 나가기 시작했다. 살랑이는 바람, 촉촉이 내리는 단비, 뿌리를 감싸고 있는 따스하고 굳건한 땅, 나무는 행복했다. 그리고 정원사 부부가 와서 자기를 바라보고, 물을 주어 갈증을 달래 주며 아름다운 나무라고 칭찬해 줄 때면 매우 기분이 좋았다. 자기를 좋아하고 보살펴 주며 보호해 주는 사람이기 때문이었다. 나무는 참으로 기뻤다. 그래서 사는 것, 자라는 것, 바람과 비를 즐기고 흙과 해님을 느끼는 것, 사랑 받고 또 남을 사랑하는 것 말고는 다른 소원이 하나도 없었다.
어느 날, 나무는 약간 왼쪽으로 자라는 게 좋다고 생각했다. 그러면 잎이 햇빛을 더 많이 받을 수 있을 테니까. 그래서 나무는 약간 왼쪽으로 자라기 시작했다.
정원사가 아내에게 말했다.
「여보, 이리 와서 이것 좀 보시오. 우리 나무가 삐뚜로 자라고 있소. 대체 언제부터 나무들이 이렇게 자라게 되었지? 그것도 딴 곳도 아닌 우리 정원에서, 다른 나무도 아닌 우리 나무가! 하느님이 나무를 창조하실 땐 삐뚤어지게 자라라는 건 아니셨소, 그렇지 않소?」
언제나 그렇듯이 정원사의 아내는 남편의 말이 옳다고 인정했다.
「당신은 하느님을 두려워할 줄 아는 현명한 여자요. 자, 가서 가위를 가져오구려. 우리 나무를 똑바로 잘라 줍시다.」
나무는 눈물을 흘렸다. 이제까지 자기를 그토록 사랑하고 가꾸어 주던 사람들, 그래서 그가 당연히 믿었던 사람들이 해님 가까이 난 가지들을 가차없이 잘라 버린 것이었다. 나무는 말을 할 수가 없었기 때문에 왜 그렇게 한 것인지를 물어 볼 수도 없었다. 나무는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더 이해할 수 없는 일은 그렇게 해 놓고도 그들이. 나무를 사랑하기 때문이며 나무가 잘 자라도록 한 일이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또 올바른 나무라면 곧게 자라야 한다고 했다. 삐뚜로 자라는 나무는 하느님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아마도 그 말이 맞겠지. 나무는 이제 해님 쪽으로 자라지 않게 되었다.
「우리 나무 정말 착하지 않소?」
정원사가 아내에게 물었다.
「당신 말은 언제나 옳아요. 우리 나무는 착한 나무에요.」
정원사의 아내가 대답했다.
나무는 이제 이들 정원사 부부의 마음을 알 것 같았다. 나무에겐 즐겁고 기쁜 일이 정원사 부부에게는 못마땅하고 못난 행동이 되는 것 같았다. 정원사 부부가 바라는 대로 행동할 때만이, 착한 나무가 되어 사랑을 받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무는 이제 똑바로 위를 향해서만 자라났다. 삐뚤어지지 않도록 신경을 곤두세우고 말이다.
「여보, 여기 좀 보오. 우리 나무가 너무 빨리 크지 않소? 제대로 된 나무라면 이래서 되겠소?」
어느 날, 정원사가 다소 호들갑스럽게 아내에게 말했다. 아내가 대답했다.
「아니오, 물론 그래선 안 되지요. 하느님은 나무가 천천히 느긋하게 자라길 바라시거든요. 그리고 이웃집 사람들도 말했어요. 나무는 모름지기 겸손해야 한다구요. 이웃집 나무도 천천히 자란다구요.」
정원사는 이제야 나무에 대해서 눈을 뜨게 된 아내를 칭찬했다. 그리고는 가위를 가지러 보냈다. 나무의 가지를 치려는 것이었다.
그날 밤, 나무는 혼자 오래도록 울었다. 정원사 부부는 왜 자기들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가지를 그냥 잘아 버리는 것일까? 재미있는 일은 모조리 금해 버리셨다는 정원사 부부의 하느님은 대체 어떤 분일까?
「여보, 이리 와서 좀 보오. 우리 나무 참으로 근사하지 않소?」
정원사가 말했다. 정원사의 아내는 언제나 그렇듯이 남편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나무는 화가 났다. 좋다, 위로 자랄 수 없다면 옆으로 자라자! 저들이 무슨 짓을 했는지 똑똑히 알게 해줄 테다. 나무는 어쨌든 자라고 싶었다. 해님과 바람, 흙을 느끼며 기뻐하고 또 남도 기쁘게 해주고 싶었던 것이다. 나무는 무조건 자라는 것이 올바른 일이라는 확신이 있었다. 그래서 이번엔 옆으로 자라났다.
「도무지 알 수가 없는 일이야.」
정원사가 화가 나서 가위를 가져왔다. 그리고 아내에게 말했다.
「여보, 이 모양을 좀 보구려. 우리 나무가 이젠 아주 옆으로만 자라는구려. 차라리 그라는 것이 어울릴지도 모르지. 나 원함, 정말 옆으로 자라는 데 재미가 든 모양이오. 이건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일이야.」
그러자 정원사의 아내가 맞장구를 쳤다.
「저렇게 자라도록 내버려둘 순 없어요. 다시 똑바로 가지를 쳐주어야겠어요.」
나무는 이제 울 수조차 없었다. 눈물이 말라 버린 것이다. 나무는 자라는 것을 멈추었다. 사는 게 아무런 재미도 없었다. 그러나 어쩠든 정원사 부부의 마음엔 꼭 들게 되었다. 만사가 시들해져 버렸지만, 사랑만큼은 받게 되었군. 나무는 체념하듯 그렇게 생각했다.
몇 년의 세월이 흘렀다. 작은 소녀가 아버지와 함께 그 나무 곁을 지나게 되었다. 그 동안 나무도 나이가 들었고 정원사 부부는 나무를 자랑스러워하게 되었다. 올바르고 점잖은 나무가 되었기 때문이다.
작은 소녀는 나무 앞에 멈춰 서서 아버지에게 물었다.
「아빠, 여기 이 나무가 어딘가 슬퍼 보이지 않으세요?」
「잘 모르겠구나. 나도 너만할 때에는 나무가 슬퍼하는지 기뻐하는지 알 수 있었지. 그런데 이제는 모르겠어.」
「이 나무는 정말 슬퍼 보여요.」
작은 소녀는 나무를 가여워 하는 눈길로 바라보았다.
「아무도 이 나무를 제대로 사랑하지 않는 게 분명해요. 이 나무가 얼마나 곧게 자랐는지 한번 보세요. 지금과는 전혀 다른 모양으로 자라고 싶었지만 그렇게 할 수 없었던 게 분명해요. 그리고 그 때문에 지금 이렇게 슬퍼하는 것 같아요.」
「그럴지도 모르지. 그러나 누구들 자기 마음대로 자랄 수 있겠니?」
아버지는 생각에 잠겨 말했다.
「그건 왜 그런가요?」
소녀가 물었다.
「나무를 진정 사랑한다면 나무가 자라고 싶은 대로 자라도록 놔둬야 하지 않나요? 제멋대로 자란다고 해서 나무가 무슨 해를 끼치진 않잖아요?」
아버지는 깜짝 놀랐다. 순간 마음이 섬뜩해져서 소녀를 바라보며 말했다.
「얘야, 누구도 자기 마음대로 자랄 순 없단다. 자기 마음대로 자란 사람들이 그 사실을 알아차리게 될 테니까 말이다.」
「아빠, 아빠 말씀을 이해할 수가 없어요!」
「그렇게지, 너는 아직 알 수 없을 게다. 너도 네가 바랐던 것처럼 늘 그렇게 자라진 않았단다. 너도 그럴 수가 없었어.」
「그건 또 왜지요? 아빠는 저를 사랑하시고 엄마 또한 저를 사랑하시잖아요?」
아버지는 생각에 잠겨 한동안 딸을 바라보다가 말했다.
「물론 우리는 너를 사랑한단다.」
소녀와 소녀의 아버지는 천천히 걸어갔다. 그렇지만 작은 소녀는 아버지와 나눈 대화와 그 슬픈 나무에 대해서 오랫동안 곰곰이 생각했다.
나무는 소녀와 소녀의 아버지가 주고받았던 이야기를 주의 깊게 들었다. 그리고 한동안 곰곰이 되씹어 보았다. 나무는 그 부녀가 보이지 않게 된 뒤에도 오래오래 그쪽을 바라보았다. 그제야 나무는 알게 되었다. 그래서 거리낌없이 소리내어 울기 시작했다.
<歷史 漫談>
[KBS 대하사극 '용의 눈물'통해 본 言官]
중앙일보 (97/09/30)
최근 KBS1 대하드라마 '용의 눈물' 의 핫 이슈는 수창궁 재건을 둘러싼 태종과 대간 (臺諫) 간의 첨예한 대립이다.
수창궁에 불이 나자 태종은 왕실의 위엄을 위해 훨씬 더 크게 궁을 재건하라고 명하고 이에 대간들은 가뭄이 극심한데 백성들에게 공역을 시켜 궁을 짓는다는 것이 말이나 되냐며 옥에 갇혀가면서까지 공사를 중지해 달라고 읍소했다.
드라마 속에서 이들 대간은 당시 신과도 같은 존재인 임금의 용포를 붙잡고 애원하며 왕에게 발로 걷어차이면서까지 공사를 중지해달라고 탄원했다.
과연 이같은 일이 가능했을까? 또 대간들은 누구이길래 이같이 목숨을 건 간언을 했을까? 대간은 언관 (言官) 이라고도 불렸는데 언관이란 사헌부 (司憲府) 와 사간원 (司諫院) 의 관원 (官員) 을 통칭하는 말이다.
신문.방송등 많은 매체가 있는 오늘날의 언론과 달리 조선시대의 언론은 그리 발달하지 못해 백성의 소리를 임금이 듣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따라서 언론의 역할을 했던 언관이 어떤 내용을 어떻게 왕에게 간언했느냐가 정치를 바꿔놓을 수 있는 중요한 관건이 되었던 것이다. 역할이 컸던 만큼 언관들은 때로는 파직되고 하옥되는 수난을 겪으면서도 사명감을 가지고 충정어린 간언을 했다.
물론 왕권의 강약정도, 군주의 인품, 정치적 분위기, 언관의 자질과 사명감의 충실여부에 따라 언관의 언론활동은 크게 달라졌다.
우리가 흔히 성군 (聖君) 이라고 생각하는 세종대에도 언관을 좌천시키거나 하옥한 경우가 있었다. 그렇다면 태종은 어떠했는가. 태종은 언관에 대해 강경.탄압으로 일관했던 왕으로 기록돼 있다.
태종 8년에는 언관들이 모두 하옥된 일이 있었고 태종 15년에는 언관 전원에 대해 매를 내리는등 일일이 열거하기 힘들 정도라 '용의 눈물' 에서 태종은 언관들을 일단 풀어 주기는 하지만 앞으로도 잦은 마찰을 빚을 듯하다.
그러나 대간들이 과연 용포를 붙잡았는지, 왕이 이들을 걷어찼는지등의 세부적인 내용은 지금으로서는 알 수 없다.
학계 전문가들에 따르면 조선왕조실록이 일반인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세세한 내용까지 기술하고 있지는 않다는 것이다. 따라서 드라마 연출을 위한 극적 상상력이 더해져 이같은 장면을 만들었다고 보는 것이 바람직하다.
다만 태종실록은 위의 사건을 이렇게 기술하고 있다.
'토목지역 (土木之役) 을 정지할 것을 청하는 상소를 보고 태종이 이르기를 "궁실을 헐 때에 경등 (卿等) 은 말이 없다가 지금은 공역을 중지시키고자 하니 경등은 나를 노숙시키고자 하는가…" 대신들이 왕의 노여움을 풀고자 했으나 왕은 도리어 간관들을 순군옥에 가두었다…공신과 대신들의 읍간 (泣諫)에 못이겨 간관들을 용서하게 되었다.
<生活 落穗>
행복의 조건
문화 일보<97/07/12>
<숨결말결>에서
[행복]이라는 말속에 [집]이 차지하는 공간은 얼마쯤 될까. 아니 삶의 유복함이나 그 질도 [집]을 빼놓고 말할 수 있을 것인가. 달속의 계수나무를 은도끼 금도끼로 베어 초가삼간 집을 짓겠다는 염원도, 짓겠다는 유행가 가사도 [집]이 행복을 위한 밑자락을 펴는 것임을 가르쳐 준다. 그래서 행복의 개념에서 집은 빠질 수 없다. 갓 결혼한 커플은 제일 먼저 [내 집 마련]의 계획을 세우는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인간에게 가장 이상적인 집이라면 아무래도 언덕 위의 집은 양지바르고 전망도 좋다. 내려다보이는 숲에서는 새들도 노래를 들려준다. 버지니아 바튼이라는 미국 여성이 그린 [작은 집]이란 그림집은 양지바른 언덕 위의 행복했던 집이 도시화에 의해 어떻게 불행한 집으로 변해 가는가를 그려내고 있다. 집 앞에 도로가 생기고 자동차 왕래가 빈번해지면서 이어서 주변에는 집들과 드디어는 빌딩 숲이 들어선다. 행복했던 [작은집]은 고층 빌딩의 그늘 속에 잠기고 소음으로 인해 새소리는 들을 수도 없다. 대기오염 역시 견딜 수 없는 지경에 이른다. 도시의 성장은 꿈같은 전원이 아름다운 언덕 위의 작은 집을 삼켜 버려 불행한 집을 만들고 만다.
도시의 황폐함은 여기서 시작된다. 사람의 주거는 자연과 적당한 조화를 이루어야 행복의 터전을 보장한다. 아무리 겉은 화려해도 도시에는 생명력이 부족하다.
서울은 어떨까. 이 같은 도시 주거의 모든 악조건에 부실이라는 또 하나의 오명이 우리를 위협한다, 삼풍백화점 참사 이후 도시 아파트에 둥지를 튼 사람들은 부실의 불안에 새삼 시달리고 있다. 불안한 아파트 속에서 [잠깨면 벽만 살핀다]는 주부들의 마음을 우리는 쉽게 헤아릴 수 있다.
언젠가부터 정부에서는 한국의 선진국 진입을 요란하게 선전해 왔다. 그러나 성장에는 갖추어야 할 요건이 있는 법이다.
식물도 성장에는 기본적으로 세 가지 영양소를 필요로 한다. 그러나 그 세 가지 영양소 가운데 다른 두 가지 영양소가 아무리 많다 해도 나머지 하나가 적으면 그 적은 영양소의 양 이상으로 식물은 자라지 않는다. 우리 삶의 질이나 풍족함도 의, 식의 해결만으로는 이야기 할 수 없다. 얼마나 안전한 집을 지어 살수 있는가의 뒷받침이 있어야 질 높은 삶의 행복은 보장된다. 어찌 어찌해서 마련한 집도 와르르 무너지면 행복도 무너지는 것이다.
오늘은 좋은 날
조선일보 (97/10/18)
('一事一言'에서)
옛날 어느 왕이 현자에게 물었다. {세상에서 가장 성질이 나쁜 동물의 이름이 뭔가?} 현자가 말했다. {거친 녀석으로는 폭군이요, 점잖은녀석으로는 아첨꾼입니다}. 사나운 동물 이름이 나올 줄 알았는데 인간을 동물이라는 범주 안에 넣고 넌지시 왕과 왕의 주변을 꼬집는 그는 진정 현자였다.
사람의 성격에 대한 평가는 이렇듯 지극히 상대적이다. 똑같은 사람이 똑같은 말과 행동을 해도 어떤 때는 폭군이 되기도 하고 어떤 때는 아첨꾼이 되기도 한다. 특히나 보통 사람들의 경우 서로의 위치가 현저한 차이를 내는 관계에 있을 때 낮은 지위에 있는 사람이 조그마한 잘못을 했어도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이 공연히 화를 내서 폭군의 성격을 드러내기도 한다. 하지만 화를 낸다는 것과 꾸짖는다는 것은 여러점에서 다르다.
무엇보다 화를 내면 말하는 사람의 표정이 벌겋지만 꾸짖는 사람은온화하거나 근엄하다. 화를 내는 것은 즉각적이어서 한 치 앞도 계산하지 못하나, 꾸짖으려면 어떤 점을 타이를까를 미리 준비한다. 화를 내면 듣는 사람이 속으로 억울해 할 수 있으나, 타이르면 듣는 이가 고마울 수 있다. 화는 불쾌한 감정의 표현이나, 꾸짖음은 애정의 발로다. 화를 내는 사람은 자기 입장만 생각하는 것이고, 꾸짖는 사람은 상대방 입장에서 생각하는 것이다….
남자든 여자든 누구나 성격은 변하는 법이다. 성격은 그 자체가 움직여 육체처럼 건강해지기도 하고 병들기도 하면서 변한다. 엊저녁에도나는 조용히 타일렀으면 더 좋았을 일에 또 화를 내고 말았다.
언젠가 영국의 이층버스 모범운전사가 승객들을 위해서 브레이크를 한번도 안밟은 날을 기록해 둔다는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다. 오늘은 정말 내 성격을 다스려서 화를 내지 않는 좋은 날로 기록 한번 해 둘수 있으려나.
<행복이 가득한 집 발행인>
<韓國의 風俗>
지신밟기
한국4H신문 (1997.02.01)
지신(地神)을 위로하는 민속놀이로 하는 지신밟기는 말 그대로 땅의 신을 위로하여 집안이 평화와 복(福)을 부르는 놀이로 알려져 있다.
이 지신밟기는 어찌 보면 미신적, 주술적인 놀이로 보일 수 있으나 우리네 조상들은 때가 되면 당연히 즐기는 놀이의 한 형태로 여겼던 것이다.
자연과 일체된 사고방식으로 인한 놀이 문화가 형성된 것으로 볼 수 있다.
먼저 지신밟기를 시작하기 전에 마을 청장년들이 모여 사대부(士大夫), 구대부(九大夫), 포수(砲手)등 3개의 무리로 나누어 역할을 확인한다.
포수는 짐승털로 만든 모자를 쓰고 총을 메며, 등뒤에 멘 망태기에는 꿩을 잡아넣은 후 총 쏘는 시늉을 한다.
사대부와 구대부는 관을 쓰고 긴 담뱃대를 물고 위용을 보이며 점잖게 행렬의 앞에 간다
이때 꽹과리, 장구, 북, 장구, 태평소 등 여러 종류의 악기를 연주하며 흥을 돋군다.
마을을 돌아다니다 어느 대문 앞에 가서 [주인! 주인! 문여소, 나그네 손님 들어가오]라 말하고는 일행이 문안으로 들어가 농악을 울리면서 마당, 뒤뜰,.부엌, 광을 돌아다니며 춤을 추고 지신을 밟아 준다.
그러면 집주인은 답례로 술과 떡, 과일 또는 돈을 건네준다. 이때 받은 돈과 곡식을 모았다가 마을 공동의 기금으로 삼아 지역사회의 공익사업으로 사용하였다.
요즘에도 중소도시에서는 간혹 농악소리가 울린다. 커다란 고깔모자를 쓴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농악을 울리며 집집마다 찾아다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나마 우리의 전통 놀이가 이어져 가고 있는 현장인 것이다.
한 해가 시작되는 정월 초순부터 시작하여 보름날에 절정을 이루는 놀이에서 마을의 공동 관심사가 논의되고 결행되는 기능도 겸하고 있다.
지신밟기 놀이는 대부분 서두에서 잡귀 잡신은 물 아래로 물러가고 천복 만복은 이 집으로 오라고 축원하는 말을 하며 노래를 부른다.
제주 지방에서 행해졌던 지신밟기 노래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제비원이나 받은 솔씨
영평대평에 솔씨를 빌어
솔씨접접 가려나니
도리지둥 되었구나
대포소포 되었구나
이집지성 3년만에
아들랑낳건 효자(孝子)로 낳고
딸랑낳건 열녀(烈女)로 낳라
쇠랑낳건 황쇠로 낳고
말랑낳건 청총매 낳라.
이렇듯 지신밟기는 모두가 고루고루 잘살기를 기원하는 것이다.
악함을 물리치고 옳은 일을 되새기며 한해가 시작되는 정초에 한 마을이 한뜻으로 지신을 밟는다.
이것은 하나의 원초적 주술적 놀이이기도 하다. 밟아야 할 악신을 힘껏 내리 밟는 다리와 다리에서 뿌듯한 공동체의식이 솟아나 개인은 물론 마을 전체의 평화와 행복을 함께 나누는 기쁨을 맛볼 수 있다.
<動物이야기>
제 비
문화 일보 1997.04.30.
요즘 제비가 급격히 줄고 있다. 지난 20년 동안 무려 90%이상이 감소했다. 원인의 하나는 우리 농가의 이농 현상이 늘어가면서 제비가 집 지을 곳이 없기 때문이다. 제비는 원래 사람이 사는 집에 둥지를 짓는 습성을 갖고 있다. 빈집에는 뱀과 쥐가 들끓기 때문에 새끼들의 안전을 위해 사람이 사는 집을 택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또 주택 개량도 제비 감소의 원인에 한몫을 하고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제비의 수를 감소시키는 원인은 충분히 번식할 수 있는 먹이 확보에 비상이 걸렸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농약과 살충제의 대량 살포로 식량 증산에 성공을 거두었지만 동물들은 그 농약과 살충제로 새끼를 키워 낼 먹이 부족에 시달리고 있다. 이는 몇 해 동안의 관찰 결과 확인됐다. 어미 제비가 노란 색 입을 크게 벌리는 새끼 제비들에게 16시간 동안 무려 6백33회나 먹이를 물어다 준 경우도 있었다. 그것은 1분30초에 한 번 꼴로 먹이를 물어다 준 셈이다. 대개는 2-3분에 한 번 꼴로 먹이를 물어다 주는 것이 보통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물어 오는 먹이에는 평균 18마리의 벌레들이 들어 있다는 사실이다.
제비 부부가 하루에 대략 7천 마리의 벌레를 잡는 셈이다. 약 3주 동안 어미가 새끼를 돌보는 기간을 따지면 무려 15만 마리에 해당하는 엄청난 양의 벌레를 잡아 허기진 새끼들의 뱃속을 채우고 있는 것이다.
어미 제비는 조류 세계의 기본 규칙대로 입을 가장 크게 벌려 강한 자극을 주는 새끼에게 먼저 먹이를 넣어 준다. 그런데 여기서 먹이가 부족해지면 큰 문제가 생겨난다. 금방 먹이를 받아먹었던 놈이 어미가 부족한 먹이를 찾느라 지체된 시간 동안 그 먹이를 벌써 다 소화해 버리고 다시 다른 형제보다 큰 입으로, 지금 막 먹이를 가져온 어미를 유혹한다. 결국 새끼 제비들 가운데 입을 가장 작게 벌릴 수밖에 없는 놈들은 굶주리게 된다.
최근에 관찰한 결과, 6마리의 새끼 가운데 겨우 2마리만이 살수밖에 없었던 것도 이 때문이었다. 이 어미들이 먹이를 날아온 시간의 간격은 정상적인 시간대인 2-3분을 훨씬 넘은 7-8분 정도나 걸렸다. 먹이가 없어 강남간 제비가 다시 돌아오지 않는 날이 올까 두렵다.
<科學 常識>
화성 내부구조 지구와 동일 증거 확보
경향신문 (97/10/09)
화성의 내부구조가 지구와 비슷하다는증거가 사상 처음 확보됨으로써 화성 생명존재설이 다시 강력히 부각되고 있다.
美항공우주국(NASA)은 8일 무인 화성탐사선 패스파인더가 보내온 신호 분석결과 화성의 내부구조가 지구처럼 지각, 맨틀층, 중심핵(iron core)등으로 구성됐을 수도 있다는 강력한 증거를 확보, 화성에 한때 물이 있었으며 생명체가 존재했을 가능성이 매우 높아졌다고 밝혔다.
NASA의 화성탐사관련 과학자들은 화성이 자전하는 가운데 패스파인더가 보내온 무선신호의 변화를 측정, 화성이 단순히 단단한 원형 바위가 아니라는 첫 증거를 얻었다고 말했다.
이들 과학자에 따르면 패스파인더가 지난 7월 화성에 착륙한 이후 수신된 신호를 70년대 착륙한 화성에 착륙한 우주선 바이킹이 보내왔던 신호를 비교한 결과 화성의 내부구조에 관한 추정이 가능했다는 것.
이로써 화성이 단순히 고체 덩어리가 아니라 분명한 층을 형성하고 있다고 하는것은 층 형성에 충분한 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 화성이 지구와 같이 한때 생명체 진화에 충분할 정도로 따뜻하고 물기가 있었다는 이론에 무게를 더해주고 있다고 이들은 평가했다.
또한 화성에 물이 존재했을지도 모를 또 다른 단초로서 물의 작용을 통해 형성됐을 가능성이 매우 높은, 조약돌 및 작은돌의 결합체인 바위덩어리가 발견됐다고 이들은 밝혔다.
NASA의 제트추진연구소 윌리엄 포크너 연구원은 과학자들이 화성 내부에 있을 가능성이 있는 중심핵이 고체인지 아니면 지구와 같이 액체인지는 아직 모르고 있다고 말했다.
과학자들은 그러나 화성의 중심핵이 반경 1천2백80~1천9백95km 사이 어딘가에 존재하며 지구보다 크기가 더 작을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화성의 총반경은 3천3백81km이다.
행성의 중심핵이 녹은 형태를 띠는 것은 全행성중에서도 지구와 수성만이 중심핵이 녹아 있을 정도로 매우 드물다. 이 점은 생명체 형성 여부에 상당히 중요한 역할을 하는데 가령, 지구 중심핵내 액체 금속의 움직임은 지구 주위에 자기장을 형성함에 비해, 달의 경우 고체로, 따라서 「죽은」 형태로 남아 있는 것이다.
한편 기술적 문제로 지난달 27일 이후 패스파인더로부터의 신호를 잡지 못하다 7일 교신에 성공, 패스파인더가 아직 지상 관제소의 명령에 따르고 있음을 증명했다고 NASA는 8일 밝혔다.
달, 화성 두배짜리가 충돌해 형성
한겨레 신문 (97/10/15)
달의 기원에 대한 학설은 여러가지가 있다. 분리설·포획설·충돌설 등이 그것으로 현재 과학자들은 80년대에 가장 늦게 등장한 충돌설을 유력한 이론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이 이론은 대략 화성 크기만한 천체가 지구와 충돌하면서 달이 만들어졌다고 설명하고 있다. 그렇지만 정말 이 주장이 옳은지에 대해서는 의문의 여지가 많았다.
최근 영국의 과학전문지 <네이처>는 도쿄공업대학 시게루 이다와 미국 콜로라도대 로빈 커누프, 글렌 스튜어트 교수가 충돌설에 근거해 달의 형성 과정을 정밀하게 컴퓨터로 모의실험한 결과를 소개했다.
이 논문은 달이 지구와 일정 거리를 유지하면서 형성되려면 화성 두배 만한 천체가 원시 지구에 충돌해야 하는 것으로 분석했다. 이 거대한 천체는 약간 빗나가게 지구와 충돌했고, 이 충돌로 인해 지구의 맨틀이 찢겨나가면서 엄청난 양의 먼지와 암석이 지구 주위를 돌게 됐다는 것이다.
이 회전 디스크 속에서 암석과 먼지가 서로 뭉쳐서 달 크기만한 위성이 만들어지는 데는 대략 한 달에서 1년 정도가 걸린다는 계산이 나왔다. 또 충돌한 천체의 크기도 종전에 생각했던 것처럼 화성만한 것으로는 부족하고, 화성 두배 정도의 부피는 돼야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화성은 지름이 지구의 절반이며, 부피로는 약 10분의 1정도이다.
미국항공우주국 에임즈연구센터의 잭 리사우어 박사는 “이론에 따르면 우리 은하계에는 수십억개의 행성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며 “그렇지만 이처럼 거대한 충돌을 겪고 달만한 크기의 위성을 갖게 된 행성은 그렇게 많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달은 태양계에서 가장 특이한 천체 가운데 하나이다. 달은 지구 질량의 1%를 약간 넘는다. 명왕성을 도는 카론을 제외하면 태양계에서 위성 대 모행성의 질량비가 이렇게 큰 위성은 없다. 다른 위성들은 질량이 모행성의 1%의 40분의 1에도 못미친다. 달은 지구의 행성이라기보다 형제 행성이라고 보아야 한다고 말할 정도이다.
더욱이 달의 성분은 아주 특이하다. 달은 극도로 건조해 물과 휘발성 물질이 거의 없다. 고온에서 응결된 태양계의 천체들이 대부분 밀도가 높은데 반해, 달은 철을 빼앗겨 밀도가 매우 작다. 달의 밀도는 ㎤당 3.32g으로 5.52g인 지구보다 훨씬 가볍다.
아폴로 우주선의 탐사를 통해 밝혀진 달의 이런 특성은 19세기 이후 제기됐던 분리설·포획설을 몰락시키고, 충돌설이 가장 유력한 이론으로 등장하는 데 중요한 배경이 됐다.
폐타이어에서 레몬성분 추출
중앙 일보 ( 97. 06 24 )
'폐(廢)타이어에서 레몬쥬스를. '뚱딴지같은 얘기가 아니다. 미국 북(北)아이오와대(大)의 커크 맨프레디박사팀은 최근 페타이어에서 진짜 레몬 오일을 '짜내는데'성공, 폐타이어 재활용의 새 장을 열었다.
물론 폐타이어 레몬 오일이라고 해서 천연 레몬 오일과 향이나 맛이 다를 수는 없다. 그가 뽑아 낸 레몬 오일 역시 화학식으로는 천연과 똑같은'리모넨'인 것으로 분석됐기 때문이다.
커크박사는 2단계의 공정을 거쳐 폐타이어 레몬 즙을 만들었다. 먼저 폐타이어를 섭씨 4백 도 가량의 반응로에 집어넣어 '폴리이소프렌'으로 변화시켰다. 이어 이 소프렌이 자연적으로 리모넨으로 변화토록 유도한 것이다.
커크박사는 "온도와 기압, 썰어 낸 폐타이어 조각의 크기 등 3박자가 어우러져야 제대로 리모넨을 만들 수 있다."고 비결을 말했다. 연구 초기인 현재로서는 전체 폐타이어의 무게의 단 2%의 레몬 오일만을 뽑아 내는 정도지만 장차 10%까지는 무난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이들의 당장 용도는 레몬 향의 비누나 화장품 정도지만 불순물만 완벽하게 걸러진다면 레몬쥬스의 원료로 손색없다는 게 연구팀의 주장. 그래도 폐타이어에서 나온걸 알고 먹기는 좀 찜찜할 듯.
가장 오래된 벼씨
중앙 일보 ( 97.06.24)
충북대박물관(관장 李隆助)은 지금까지 출토된 볍씨 가운데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것으로 추정되는 중국 하남(河南)성 지아후 지역에서 나온 볍씨중 9개를 지난 23일 하남성 문물고고 연구소로부터 기증받았다고 24일 발표했다.
87년 출토된 이 볍씨는 연대측정 결과 신석기 시대인 8천5백년전 것으로 판명됐다.
한국에서는 경기도 고양에서 5천년전의 볍씨가 출토된 적이 있다. 중국 문물고고 연구소 관계자는 볍씨 기증과 함께 열리는 학술발표대회에서 "5천년전 중국의 볍씨가 산뚱반도를 통해 한반도에 전래됐다"고 주장했다.
딸기
한국 4H 신문(97.05.15)
딸기의 아름다운 붉은 색과 사랑스러운 모양은 아이들뿐 아니라 어른에게 동심으로 돌아가게 하기에 충분하다.
우리 나라에는 야생 딸기인 산딸기가 여름이면 산언덕을 붉게 물들일 정도로 풍성했지만 밭에 심어서 가꾸는 서양 딸기가 일반화 된 것은 얼마 되지 않는다.
풀딸기에 속하는 뱀딸기는 장미과에 속하는 다년초이다. 독이 있는 것으로 구전되고 있으나 맛이 없는데서 생겨난 말일 것이다.
양딸기도 장미과에 속하는 다년초로 봄에 흰 꽃이 피는데 열매는 장과(수분과 살이 많고 속에 씨앗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양딸기는 남미가 원산지이고 품종에 따라 모양과 빛깔이 달라 세계 각지에서 널리 재배되고 있다.
알칼리성 식품인 딸기는 과일 중에서도 비타민C가 가장 많은 것에 속한다. 비타민C라면 흔히 귤을 손꼽게 되나. 실제로는 딸기보다 훨씬 떨어진다.
귤에는 일반적으로 35mg%정도 비타민C가 들어 있는데 딸기에는 2배나 되는 80mg%나 들어 있다.
큰 딸기는 한 개가 15g가량이므로 4-5개만 먹으면 성인이 하루에 필요로 하는 양을 해결할 수 있다. 비타민C는 감기나 세균성 인후염, 편도선염 등에 특효가 있다고 알려져 있다.
연탄가스 중독에 비타민C의 치료 효과가 인정되고 있으며 피부 미용 효과와 병후 회복, 수술 후 상처 치유 기능도 있다.
적극적으로 신체의 저항력을 기르고 스테미너를 축적하기 위해서는 매일 2백-3백mg의 비타민C를 섭취하면 효과적이라고 전문가들은 주장하고 있다. 비타민 정제보다는 천연 식품에서 섭취해야 효과적임은 더 말할 나위도 없다.
여러 가지 성인병이나 동맥경화, 암 등의 발생 요인으로 알려진 과산화지질에도 비타민C는 그 피해를 덜어 주고 있다.
사람들의 안구에는 비타민C가 매우 많이 들어 있다. 그것은 안구에 과산화물이 만들어지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다. 비타민C가 부족해서 안구 내의 과산화물이 증가하면 백내장이나 녹내장이 생기는 사실을 보아도 비타민C의 중요성을 짐작할 수 있는 것이다.
딸기가 신맛을 내는 것은 유기산이 0.6-1.5%로 들어 있기 때문인데 구연산, 사과산, 주석산이 주체가 되어 있다.
이 산들은 미각을 돋구어 주므로 식욕 증진 효과도 크다. 또 딸기는 신경통이나 류머티스에 특효가 있다. 딸기에는 메칠살디레이트라는 성분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딸기의 독특한 향기 성분은 여러 가지 에스테류등 1백60가지나 되는 화합물이 혼합해서 나오는 미묘한 것이다.
건강하게 오래 사는 장수자들의 식생활 조사에 따르면 유기산을 많이 가지고 있는 식품을 많이 먹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딸기가 신맛을 내는 것은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유기산인 구연산, 사과산, 주석산이 들어 있다. 따라서 딸기는 장수식품으로도 한몫을 하고 있는 것이다.
신 것을 싫어하는 사람 중에는 흔히 설탕을 듬뿍 쳐서 먹는 경우가 있는데 그것은 스테미너를 위해서는 좋지 않다고들 한다. 그래서 딸기의 영양가를 체내에서 손실 없이 섭취하기 위해서는 설탕을 안 쓰고 꿀과 우유, 요구르트와 곁들여 먹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다.
딸기는 첫눈에 싱싱한 것을 구별할 수가 있다. 하루가 지나고 변질되기 쉬우므로 물 좋은 것으로 사야 한다.
딸기는 잼이 잘 만들어지므로 가공을 하면 1년 내내 두고 먹을 수 있다. 딸기를 씻을 때에는 물에 1%가량의 식초를 섞고 물에 헹구면 효과적이다.
[논술길잡이]
논술에도 정답은 있다
중앙일보 ( 97/10/15)
"논술에 답이 없다고 하니까 아무렇게나 써도 괜찮은 것으로 학생들은 이해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97학년도 입시 서울대 논술시험 채점에 참여한 한 교수가 한 말이다.
현대사회의 익명성을 치유하기 위한 개인의 노력을 사회 전체의 노력에 대비해 설명하라는 서울대 논제에 대해 '명찰을 달고 다니자', '목욕탕에서 만나듯이 발가벗고 만나자' 등과 같은 기상천외한 답안이 나왔기 때문이다.
논술을 대학입학시험에 도입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오해한 것이 있었다. 글을 쓸 수만 있으면 누구가 논술을 쓸 수 있다는 생각이 그 것이었다.
그러나 이것은 큰 오해다. 시장에서 셈을 잘한다고 해서 수학을 잘 하는 것이 아니다.
수학을 잘 하기 위해서는 '수 (數)' 에 대한 근본적인 인식이 필요하다. 마찬가지로 논술을 잘 쓰기 위해서는 그냥 글을 쓸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논술에 요구되는 기본적이고도 원칙적인 훈련이 필요하다. 이런 오해의 바탕에는 논술에 정답이 없다는 잘못된 인식이 깔려있다.
실제로 많은 학생들이 오자 (誤字).탈자 (脫字) 없이 문법적으로 맞는 문장만 쓰면 일정한 점수를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하나의 답안이 나오도록 출제하지는 않지만 예상할 수 없는 무한히 많은 답이 나오도록 출제하지도 않는다. 무한히 많은 답이 나올 수 있는 경우 변별력있는 채점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제시문과 다양한 조건을 제시해 사실상 수험생이 선택할 수 있는 답안은 2~3개로 제한된다.
연세대가 지난달 23일 '유행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밝히라' 는 97학년도 입시 논술시험 답안중 찬.반 입장을 대변하는 우수답안 두가지 유형을 공개했다.
〈본지 9월24일자 21면 참조〉연세대가 두가지 답안을 공개한 것은 이 논제에 대해 수험생이 답할 수 있는 방법이 크게 두가지임을 간접적으로 말해주는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실제로 수험생이 선택할 수 있는 답의 유형은 2~3가지 정도이다. 만약 논제를 정독하고 출제자가 요구하는 답의 유형이 2~3개로 잡히지 않는다면 아직 논제의 의도가 정확히 파악되지 않았다고 본다면 틀림없다.
요구하는 답의 유형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은 논제가 문제삼고 있는 쟁점, 그리고 그 쟁점을 둘러싼 견해들이 어떻게 전개되고 있는가를 알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지만 이것만으로 좋은 논술을 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2~3개의 답안 유형들은 각각 어떤 배경지식을 동원해야 하며 이를 어떻게 논리적으로 배치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나름의 기준이 있다.
연세대가 발표한 답안유형처럼 유행에 반대할 경우 꼭 필요한 배경지식이 무엇이며 그것을 어떤 방식으로 엮어내야 한다는 기준이 있으며 찬성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그렇다고 모범답안을 외워 써도 좋다는 식으로 이해해서는 곤란하다. 주제는 비슷하더라도 출제 기술에 따라 요구하는 답의 유형은 매우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이런 점을 고려하지 않고 외워온 답을 옮겨 쓸 경우 논점을 벗어나 많은 감점을 각오해야 한다.
연세대 지난해 논술시험 문제
문화일보 (97/09/24)
연세대는 23일 지난 97학년도 입시에서 논술시험의 우수답안과 평가내용을공개했다. 다음은 논술문제와 우수답안및 평가요지.
다음은 두 학생이 유행에 대해서 각기 자신의 입장을 밝힌 글이다. 두 사람은 개인적인 이유에서뿐만 아니라 사회적인 이유에서도 각기 자신의 견해를 정당화하고 있다. 두 입장중 하나를 선택하여, 유행이 사회에 끼치는 영향을 중심으로 자신의 주장을 1500자 안팎으로 논술하시오.
<유의사항:유행이 사회에 끼치는 영향을 경제, 사회, 문화 등 여러 측면에서 고려할 것>
가) 나는 유행에 따라 옷이나 신발을 바꾸기 좋아한다. 유행은 새로운 경향이나 흐름을 반영하기에 유행을 따르면 시대를 앞서갈 수 있다. 새로운 것을 좋아하고 따르는 것은 인간의 아주 자연스러운 속성이 아닌가. 유행은 또한 계속 바뀌기 때문에 단조로운 우리의 생활에 변화와 활력을 가져다준다. 자신의 취향에 맞는 유행을 따르는 것이 개성을 살리는 일이기도 하다. 사회적으로도 유행은 새로운 제품의 개발을 촉진하여 우리 경제를 활성화시킬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 외에도 많은 이유들이 있다. 그래서 유행을 따르는 것이 우리에게 좋은 결과를 가져온다고 생각한다.
나) 나는 옷이나 신발을 유행에 따라 바꾸지는 않는다. 유행은 인위적으로 만들어낸 것이므로 유행을 따르지 않는 것이 내나름의 개성을 지키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유행이 새롭다고 하지만 실상은 돌고 돌지 않는가. 나는 또한 다른 사람들과 같아지는 것도 싫고, 끊임없이 유행에 신경쓰는 것도 싫다. 새롭고 낯선 것보다는 친숙한 것을 나는 좋아한다. 유행이 바뀔 때마다 새로운 상품을 계속 만들어내야 하므로, 사회적으로도 유행은 자원의 비효
율적 사용을 초래한다. 그외에도 많은 이유들이 있다. 그래서 유행을 따르는 것이 오히려 우리에게 좋지 않은 결과를 가져온다고 생각한다.
< 延大 97 수능 논술 우수 답안 1 >
인간의 역사는 노동을 통해 재화와 용역의 생산량을 증가시키면서 발전했다. 오늘날 우리는 과학기술에 힘입어 생산량을 극대화시키고 있다. 그에 따라 상품은 소비자에게 팔리기 위해 심리적인 외형을 갖게 되었고, 이는 주기적으로 변동한다. 이렇게 형성된 유행은 기업의 입장에서는 수요의 창출, 소비자에게는 심리적 만족감을 가져왔다. 그러나 유행은 위와 같은 긍정적 효과만을 가져오지 않았다. 유행은 경제, 사회, 문화 등의 다방면에 긍정적 영향보다 더 많은 악영향을 가져왔다. 따라서 유행에 대한 사회적 인식의 재고가 필요한 실정이다.
유행이 사회에 끼치는 영향은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측면으로 나눠 생각할 수 있다.
먼저, 경제적 측면에서 유행은 가치관이 반영되지 않은 수요에 막대한 영향을 끼친다. 따라서 유행은 필요 이상의 과다한 수요를 창출하게 되고, 이것은 다시 사치와 과소비를 야기시킨다. 또한 유행의 변화에 따라 새로운 상품을 만드는 엄청난 비용과 유행이 지난 재고품의 처리와 같은 자원의 비효율적 사용을 야기시킨다. 소비자의 주체적이고 경제적인 소비 의식이 형성되지 않은 사회에서 유행은 그 사회의 경제 질서를 무너뜨릴 수 있다.
다음으로 유행이 심미적인 것을 추구함으로 인한 사회적 문제가 있다. 유행은 시장경제에서 살아남기 위해, 즉 팔리기 위해 심미적인 외형을 가지고 있다. 이것은 상품의 교환가치를 사용가치보다 우선시하는 사회적 경향을 가져온다. 이런 경향은 인간의 노동시장에 그대로 반영되어 인간이 자신을 팔기 위해 내면적 가치보다 외형적 가치를 중요시여기는 인간의 상품화 현상을 야기시킨다. 그리고 인간의 상품화 현상은 인간 소외를 야기시킨다. 이와같이 교환가치를 중요시하는 유행은 인간소외 현상을 가져올 수 있다.
또한 유행은 문화적 측면에도 많은 영향을 끼친다. 요즘 X세대, 신세대라는 용어는 보편화되어 있다. 이 X세대, 신세대는 70,80년대의 물질적 풍요와 사회의 민주화 과정에서 자란 이들을 가리키는 용어다. 그런데 모회사 화장품 광고는 X세대, 신세대란 용어를 TV에 등장시켜 이들의 문화행태를 가시화시켰다. 그러나 이 용어의 등장배경이 상업화된 자본에 의한 것이었기 때문에 용어가 지닌 본래적 의미를 상실하고, 개성을 위해 소비만을 부추기는 문화 행태를 유행시켰다. 이같은 유행은 급속도로 번져나가 우리 사회에 왜곡된 의미의 신세대 문화를 정착시켰다. 이와 같이 유행은 문화의 본질 자체를 왜곡시킬 수도 있다.
유행은 인간의 필요를 넘어서 욕망을 부추기는 형태의 문화 양상이다. 요즘 경제성장률의 저하, 경상수지 적자,과소비의 만연 등의 사회적 병폐를 야기시킨 주원인 중 하나가 유행이다.
이와 같은 현실에서 개성을 위한다는 이유로, 그리고 다른 사람들에게 뒤떨어진다는 이유로 유행을 따른다는 것은 근시안적인 생각이다. 참된 유행의 본질은 사회 정의를 실현시킬 수 있어야 하며, 생산을 재창출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 延大 97 수능 논술 우수 답안 2 >
인간은 끊임없이 변화를 추구한다. 인간이 행하는 모든 행위는 각 분야 나름대로의 성격에 알맞게 변증법적으로 변화하고 있으며, 우리는 이런 변화의 일관된 흐름을 유행이라고 부른다. 따라서 인간이 사회에 속해 있는 한 유행의 영향을 받지 않을 수는 없다. 문제는 이러한 유행에 의하여 야기되는 변화가 과연 인간 생활 각 분야에 어떠한 영향을 끼치느냐 하는 것이다.
나는 여기서 유행이 사회 각 분야에 끼치는 긍정적 영향에 대해 논술하겠다.
우리나라는 유교 문화권 국가이다. 어려서부터 자기 자신의 개성보다는 남의 시선과 사회의 일반적인 시각에 맞추어 생활해 왔다. 그리하여 자신이 자신과 비슷한 대중속에 위치하고 있을때야 심리적 안정감을 느낀다. 이런 우리 사회의 특수성을 고려해 볼 때 유행이야말로 대중사회에 안정감을 제공할 수 있는 사회적 역할을 수행한다.
예를 들어 서양의 경우에는 남보다는 자신을 중요시하여 개성을 드러낼 수 있는 개인적 유행이 흔한 반면, 우리나라에서는 유행을 따르더라도 대중의 일반적 흐름과 일치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비롯되는 ‘대중적 유행’이 흔한 현상임을 볼 수 있다. 이렇듯 한국 사회라는 특수한 상황에서 유행은, 변화는 추구하되 유별나지 않고 싶은 대중의 심리를 충족시켜주는 사회적 역할을 수행한다.
우리 사회는 선성장 후분배정책의 일관된 추진으로 단기간에 효과적인 경제 성장을 이룰 수 있었다. 하지만 선진국 진입에 다다른 시점에서 이제는 생산 못지않게 소비의 중요성이 인식되고 있다.
생활수준의 향상으로 소비자의 취향이 다양해지고 있다. 이제는 소비자가 상품에 적응해야하는 경제가 아닌, 상품이 소비자의 기호에 적응하고 요구를 수용해야 하는 경제체제가 성립된 것이다. 이 시점에서 기업은 수많은 소비자의 요구를 골고루 수렴해야 하는 어려움을 안게 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유행은 기업의 생산지표로서 활용된다. 가령 컴퓨터를 만드는 회사에서 XT부터 펜티엄까지를 모두 생산해 적자를 보고 있다면 이 회사에서는 소비자들의 유행 구매 모델을 선택해 이 제품에 집중 투자함으로써 기업의 이윤을 볼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유행의 영향을 받는 시장경제체제하에서는 비슷한 유행적 상품을 생산하는 기업들이 더 많은 이윤을 얻기 위한 경쟁을 벌이게 되므로 결과적으로 소비자들에게도 이득이 된다. 이렇듯 유행은 시장경제체제하에서 기업과 소비자 모두에게 이익이 돌아갈 수 있는 역할을 수행한다.
60년대부터 문민정부 직전까지 실시되었던 군사독재로 우리 문화는 획일적 가치를 추구해 왔다. 힘과 권위에 억눌려서 진정한 가치를 추구하고자 하는 기본적 자세마저 무감각해진 현실에서 유행은 좀 더 자유로운 문화를 표현하고자 했던 대중의 감성을 재생시킨다. 그래서 한때는 표현하지 못하고 억눌렸던 문화의 자유를 대중에게 되돌릴 수 있는 실마리를 유행은 제공할 수 있는 것이다. 무시되었던 노동자들의 권리, 장발, 미니스커트 등은 좋은
예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유행은 사회 변화의 특정한 흐름이며, 그 영향은 사회, 경제, 문화 등 인간의 활동영역에 큰 영향을 끼친다. 물론 이런 변화가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면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인간의 모든 변화는 변증법적으로 발전하게마련이다. 正(정)에서 시작된 변화를 얼마나 反(반)을 줄이고 合(합)으로 발전시키느냐에 우리는 관심을 두어야지 그 변화 자체를 무시해서는 안된다 이러한 작업의 몫은 우리 모두의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 延世大 논술 우수 답안 공개 >
인간의 역사는 노동을 통해 재화와 용역의 생산량을 증가시키면서 발전했다. 오늘날 우리는 과학기술에 힘입어 생산량을 극대화시키고 있다. 그에따라 상품은 소비자에게 팔리기 위해 심미적인 외형을 갖게 되었고, 이는 주기적으로 변동한다. 이렇게 형성된 유행은 기업의 입장에서는 수요의 창출, 소비자에게는 심리적 만족감을 가져왔다. 그러나 유행은 위와 같은 긍정적 효과만을 가져오지 않았다. 유행은 경제, 사회, 문화 등의 다방면에 긍정적영향보다 더 많은 악영향을 가져왔다. 따라서 유행에 대한 사회적 인식의 재고가 필요한 실정이다.
유행이 사회에 끼치는 영향은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측면으로 나눠 생각할 수 있다.
먼저, 경제적 측면에서 유행은 가치관이 반영되지 않은 수요에 막대한 영향을 끼친다. 따라서 유행은 필요 이상의 과다한 수요를 창출하게 되고, 이것은 다시 사치와 과소비를 야기시킨다. 또한 유행의 변화에 따라 새로운 상품을 만드는 엄청난 비용과 유행이 지난 재고품의 처리와 같은 자원의 비효율적 사용을 야기시킨다. 소비자의 주체적이고 경제적인 소비의식이 형성되지 않은 사회에서 유행은 그 사회의 경제질서를 무너뜨릴 수 있다.
다음으로 유행이 심미적인 것을 추구함으로 인한 사회적 문제가 있다. 유행은 시장경제에서 살아남기 위해, 즉 팔리기 위해 심미적인 외형을 가지고있다. 이것은 상품의 교환가치를 사용가치보다 우선시하는 사회적 경향을 가져온다. 이런 경향은 인간의 노동시장에 그대로 반영되어 인간이 자신을 팔기 위해 내면적 가치보다 외형적 가치를 중요시 여기는 인간의 상품화 현상을 야기시킨다. 그리고 인간의 상품화 현상은 인간 소외를 야기시킨다. 이와같이 교환가치를 중요시하는 유행은 인간소외현상을 가져올 수 있다.
또한, 유행은 문화적 측면에도 많은 영향을 끼친다. 요즘 X세대, 신세대라는 용어는 보편화되어 있다. 이 X세대, 신세대는 70∼80년대의 물질적 풍요와 사회의 민주화과정에서 자란 이들을 가리키는 용어다. 그런데 모회사 화장품 광고는 X세대, 신세대란 용어를 TV에 등장시켜 이들의 문화행태를 가시화시켰다. 그러나 이 용어의 등장배경이 상업화된 자본에 의한 것이었기 때문에, 용어가 지닌 본래적 의미를 상실하고 개성을 위해 소비만을 부추기는 문화행태를 유행시켰다. 이같은 유행은 급속도로 번져나가 우리사회에 왜곡된 의미의 신세대 문화를 정착시켰다. 이와같이 유행은 문화의 본질 자체를 왜곡시킬 수도 있다.
유행은 인간의 필요를 넘어서 욕망을 부추기는 형태의 문화양상이다. 요즘 경제성장률의 저하, 경상수지 적자, 과소비의 만연 등의 사회적 병폐를 야기시킨 주원인중 하나가 유행이다. 이와같은 현실에서 개성을 위한다는 이유로, 그리고 다른 사람들에게 뒤떨어진다는 이유로 유행을 따른다는 것은 근시안적인 생각이다. 참된 유행의 본질은 사회정의를 실현시킬 수 있어야 하며, 생산을 재창출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 답안에 대한 평가 >
연세대 閔庚燦(민경찬) 입학관리처장은 이날 『공개하는 이 답안은 실제 응시생이 작성한 것으로 글의 구성이 짜임새있고 내용이 간결해 좋은 점수를받았다』고 말했다. 지난해 연대의 논술가중치는 총점 1만점중 10인 1백점이었다.
(답안Ⅰ) 형식과 내용 모두 탄탄한 구성을 가지고 있으며 논리력과 창의성을 잘 갖추고 있다. 사물이나 사회현상의 분석에 단순한 관찰이나 인상보다는 독서나 학교교과목을 통해 배운 지식을 논지 전개에 적절히 활용했다. 단지 유행에 대한 분석을 경제, 사회, 문화적 측면이라는 다소 진부하게 접근해 아쉬움이 있다.
(답안Ⅱ) 유행이 사회에 끼치는 긍정적인 영향을 자신의 관점에서 다양한 분석을 바탕으로 적절하게 설명한 독창성이 돋보인다. 특히 도입부에서 유행과 사회와의 연관성을 개인의 취향보다는 사회-문화적인 측면에서 분석, 설명한 것은 논제의 핵심을 잘 파악한 것으로 평가된다.
편집 후기
'한글 마당'이 벌써 6호가 탄생하게 되었다. '초지일관'이란 말이 있듯이 비록 볼품은 없지만 그래도 꾸준히 노력을 하다보니 원고가 넘치기 시작하고, 학생들의 수준도 향상되어 기쁘기 한이 없다. 또한 학교 당국의 배려로 앞으로는 페이지 수의 제한이 없어져서, 지난번에 게재하지 못한 원고도 이번에 모두 실을 수 있게 되었다.
이번 호부터는 '참고 자료 모음'란의 페이지 수도 많이 늘렸다. 여러분들에게 도움이 되는 것이라면 비록 토막 상식이라 할지라도 가능한 많이 수집해서 게재하려고 한다.
'한글 마당'은 원래 한 학기에 한 권 발간하는 것으로 되어 있는데 이번 학기부터는 두 권 발간할 것이다. 이것 또한 여러분의 성원에 힘입음과 학교 당국의 큰 배려로 생각된다. 앞으로 더욱더 발전할 수 있도록 여러분들이 많이 사랑해주길 바란다.
끝으로 이번 '한글 마당' 제 6 호가 나오기까지 수고해주신 많은 분들께 심심한 사의를 표하며 많은 지도와 편달을 바라는 바이다.
1997. 10. 31.
編輯者 올림
한글 마당 6
發 行 者 : 韓國漢城華僑中學
編 輯 者 : 韓語韓文敎學硏究會
主席 譚道經
委員 李賢玉 金英姬 李敬子 權相基
總 編 輯 : 譚道經
揷 畵 : 金鮮美
打 字 : 金榮柱 許允美
發行號數 : 86-2(通卷 第 6 號)
聯 絡 處 : 서울 西大門區 延禧 3 洞 89 - 1
印 刷 者 : 新興企劃
發 行 日 : 中華民國 86年 10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