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는 시]

헐거워짐에 대하여

맞는다는 것은 단순히 폭과 길이가

같다는 걸 말하는 게 아닌가 봅니다

오늘 아침. 내 발 사이즈에 맞는

250미리 새 구두를 신었는데

하루 종일 발이 그렇게 불편할 수 없어요. 맞지 않아요

맞는다는 것은 사이즈가 같음을 말하는 게 아닌가 봅니다

어제까지 신었던 신발은 조금도 불편하지 않았어요

맞는다는 것은 어쩌면 조금 헐거워지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서로 조금 헐거워지는 것

서로가 서로에게 편안해지는 것

서로가 서로에게 잘 맞는 게지요

이제 나도 헐거워지고 싶어요

헌 신발처럼 낡음의 평화를 갖고 싶어요

발을 구부리면 함께 구부러지는

헐거운 신발이 되고 싶어요.

- 박상천, 詩人

[특집 - 우리가 느낀 월드컵]

2002 한て일 월드컵

高 2-3 張 心 美

2002년, 21세기 처음으로 그것도 아시아 최초로 한국과 일본이 공동으로 월드컵을 개최하였다. 월드컵을 공동으로 개최하는 두 나라 가운데 돋보이는 건 역시 아직 많이 알려지지 않은 한국일 것이다. 선진국인 일본과는 달리 아직도 성장을 거듭하고 있는 한국은 이번 월드컵을 계기로 많은 사람들에게 깊은 인상을 심어주어 한국의 이미지는 급부상하였다.

세계인들은 먼저 한국의 축구장 시설에 대해 놀라고, 한국 축구와 국민들의 합동 응원에 다시 한 번 더 놀랐다. 이번 월드컵에 주목할 만한 점은 또 한 가지. 바로 예전에 암울한 역사를 갖고 있는 한국과 일본 두 나라가 공동으로 월드컵을 개최하였다는 점이다. 얼마 전만 해도 일본은 고이즈미 총리가 신사 참배를 하고, 일본 교과서에 역사를 왜곡하는 등 두 나라의 관계는 더욱 악화되었지만, 이번 월드컵으로 인해 조금이나마 두 나라 사이의 우호적 관계가 돈독해진 것 같다.

그리고 이번 월드컵에서는 많은 이변이 속출해 세계의 축구 팬들이 즐거워하고 있다. 프랑스, 아르헨티나, 포르투갈 등 우승 후보국들이 예선에서 탈락하고, 처녀 출전국 세네갈과 한국, 그리고 일본 등이 처음으로 16강에 진입해 기적을 일으켜 많은 사람들을 울고 웃게 하였다.

한국과 일본은 이번 월드컵을 통하여 많은 경제적 부가가치를 높일 수 있게 되기를 희망하고 있다. 특히 경기 침체에 빠져있는 일본은 경제가 회복되기를 간절히 바라며 월드컵을 개최하고 있다.

끝으로 이번 한て일 월드컵을 꼭 성공적으로 이끌어 아시아가 세계의 중심이 될 수 있기를 희망한다.

잊지 못할 날

高 2-3 李 偉 賢

6월 13일, 한국 축구사에 영광스런 날이었다. 한국て일본이 동시에 개최하는 월드컵에서 한국이 48년 만에 처음 월드컵 16강에 진출하느냐 못 하느냐가 결정되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그 날 밤 8시 30분,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시합이 시작됐다. 전 세계의 사람들, 특히 한국 국민들은 전 국민이 한마음이 되어 한국을 응원했다. 결과는 한국의 승리. 꿈이라고만 생각했던 16강 진출이 현실로 실현된 것이다.

집에서 텔레비전으로 그 시합을 본 나는 친구들과 같이 신촌으로 달려갔다. 신촌에 도착하기도 전에 신기한 광경을 보았다. 수많은 사람들이 도로에 몰려 있었던 것이다. 모두가 "대-한민국"을 외치며 걷고 있었다. 나와 친구들도 그 속으로 들어가 같이 외치고 놀기 시작했다. 모르는 사람들과 악수도 하고, 포옹도 하고, 얘기도 하며 호흡을 맞춰서 응원도 하고...... 신나게 신촌 방향으로 걸어가던 우리는 버스 위에 올라가서 응원하는 붉은 악마들을 봤다. 우리들도 흥분한 나머지 버스 위로 뛰어 올라가서 붉은 악마들의 응원을 주도했다. 밑에서 사람들이 버스를 미는 건지, 버스 안에서 기사 아저씨가 천천히 차를 모는 건지, 벗는 아주 느린 속도로 신촌으로 갔다.

열심히 응원을 하다보니 버스는 금방 신촌에 도착했다. 버스에서 내려 신촌에서 기다리고 있던 친구들을 만났다. 우리는 그 친구들과 같이 더욱 더 신나게 놀았다. 북도 치고 국기도 흔들고 공도 차고 물도 뿌리고...... 시간은 흘러흘러 금방 새벽이 되었다. 그때까지 붉은 악마들의 응원은 끝나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온 뒤, 흥분이 채 가라앉기도 전에 어찌나 응원을 열심히 했던지 피곤해서 바로 잠들고 말았다. 오늘 이 날, 한국이 월드컵 16강에 진출한 이 날은 내 생애 영원히 잊지 못할 날이다.

붉은 악마

高 2-3 孫 榮 振

2002 월드컵 개최로 인하여 수많은 강팀들이 동방의 등불인 한국으로 모여들었다. 물론 일본과 공동 개최라는 그다지 매끄럽지 않은 시작에 많은 비판과 혹독한 야유가 쏟아져 나왔지만, 지금 '붉은 악마'라는 열 두 번째 선수들로 인해 한국은 전성기를 맞은 것이다.

'붉은 악마', 그들은 화려함과 강인함을 갖춘 의지의 한국인들이다. 그래서인지 세계는 현재 그들에게 많은 관심을 두고 있다. 단결력, 판단력, 창조력에 있어서 다른 팀의 축구 팬들과는 차별된 고유의 스타일을 선보여준다. 그들의 함성은 마치 48년 동안의 기나긴 한을 토해내는 것만 같았다.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이 열 두 번째 선수로서 뛰는 붉은 악마의 응원의 위력은, 열 한 명의 선수들에게 전달되어 때론 강인하게 때론 부드럽게 선수들의 마음을 조절하며 경기를 이끄는 조연 구실을 톡톡히 해내는 셈이다. 너와 내가 아닌 모두라는 이름을 걸고...... 어떤 팀이라도, 그들의 열성팬이라도 이와 같은 일을 해낼 수는 없다고 난 장담한다. 화려함을 넘어 고귀한 외침이라고 난 불러 주고 싶다.

우리 역시 '붉은 악마'에 속해 있을지도 모른다. 물론 국적의 차이는 있겠지만, 그건 붉은 악마라는 이름 아래 우린 하나가 되었기에 응원을 할 것이다. 그리고 승리를 얻길 바라고 있다.




월드컵을 보면서

高 1-1 郭 明 季

4년에 한 번씩 열리는 세계인들의 축제-'월드컵'이 드디어 2002년 한국과 일본에서 열렸다. 월드컵 역사상 처음으로 공동 개최, 게다가 아시아에서 열리는 이번 대회는 다른 어느 때보다 많은 이변이 일어나고 있다. 그 첫 시작은 바로 개막전에서, 첫 출전한 세네갈이 프랑스를 이겼다는 사실이다.

처음엔 그저 우연이라고 생각했지만, 프랑스팀은 계속 부진해서 결국은 3패라는 성적을 안고 탈락하고 말았다. 세상에! FIFA 순위 1위, 언론들이 말하는 예술 축구가 이렇게 처참하게 무너지다니. 1위로 와서 1등으로 돌아간 프랑스팀은 아마 이 사실이 믿어지지 않겠지. 이변은 이것뿐만이 아니었다. 세계 순위 1,2위인 프랑스, 아르헨티나에 이어서 다른 우승 후보 나라들도 탈락한 것이다. 그저 우연이겠지 라고 생각했지만, 여러 경기를 보면서 점점 그 생각이 바뀌어 갔다.

내게 가장 충격적인 사실은 유명한 나라의 대표팀들은 거의 월드컵 준비를 안 하고 출전한다는 것이었다. 각각 프로팀에서 돌아와 손발도 안 맞춰보고 경기에 임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아무리 개인기가 뛰어나도 손발이 안 맞는다면...... 그들의 그 자만이 아무래도 탈락의 가장 큰 원인이 되었던 것 같다. 반대로 한국 선수들을 보면, 그들은 정말 축구에 온 정신을 쏟아부으며 최선을 다해 뛰는 모습이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었다.

이번 월드컵을 통해 난 많은 생각을 했다. 무엇보다 사람이 노력하는 모습이 가장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었고, 지금 나와 비교해보면 너무나도 대조적인 모습이다. 후회도 되며, 반성하게 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자신을 갖는 건 좋지만 자만해선 안 된다' 는 어느 해설자의 말, 이 한 마디는 이번 대회에서 탈락한 우승 후보뿐만 아니라 내게도 필요한 충고이겠다.

월드컵을 보며

中 2-3 김 보 라

월드컵, 전 세계적인 중요한 축제이다. 어쩌면 올림픽보다도 더...... 사람들의 열기, 그 끓는 열기는 그 무엇과도 비교하기가 힘들다.

2002년, 한국て일본 월드컵, 현재 우리나라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다. 한국은 몇 년 전부터 월드컵을 준비해 왔다. 생활 요모조모에서 '월드컵'이란 것을 느낄 수 있다. 신문, 뉴스, 텔레비전 등 거의 모든 부분을 '월드컵'으로 장식하고 있다. 지하철과 전철을 타면 우리나라를 방문한 외국인을 위한 편의시설들이 보인다. 거기에다가 국민들의 응원, 월드컵을 성공적으로 개최하기 위한 정부의 노력 따위도 볼 수 있다. 전국 곳곳에 세워진 멋진 월드컵 경기장, 국민들이 외국인을 대하는 마음, 우리나라를 사랑하는 마음, 서로 응원하는 열기. 이런 것은 바로 월드컵이 아니면 보기 힘든 장면이라 할 수 있다.

월드컵을 보면 우리나라가 한민족, 한가족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더 느낄 수가 있다. 대표적인 응원단 '붉은 악마', 그들은 전 국민을 대표해서 응원하고 있는 것이다. 온 국민이 월드컵을 보기 위해 일찍 귀가하거나 또는 모르는 사람들과 하나가 되어 광장에 모여 같이 축구 중계를 보고...... 곳곳에서 들려오는 국민들의 응원 함성. 우리 대표팀이 다 듣고 있을 거랄 믿는다.

그러나 한편, 월드컵은 우리들만이 아닌 세계적인 축제인 만큼, 세계 여러 나라 사람들도 화합했으면 좋겠다. 졌다고 서로 헐뜯고, 욕하고 하는 그런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 끝으로 이번 월드컵이 늘 평화롭고 열띤 월드컵이 되길 바란다.

월드컵을 보며

中 2-3 王 德 瑜

5월 31일에 개최된 월드컵. 이번 월드컵은 한국에서 개최된다는 것에서 우리에겐 의미가 아주 크다. 텔레비전을 통해 월드컵을 보면 서로가 이기려고 최선을 다하고, 응원하는 사람들도 상대 응원에 기죽지 않으려고 최선을 다한다.

이번 월드컵 본선에는 32개국이 올라왔는데, 한국도 16강에 들려고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 6월 4일 한국과 폴란드 경기에서 한국은 영광스러운 첫 승을 기록했다. 이로써 월드컵 종합 전적 1승 4무 10패. 드디어 한국이 세계의 축구에 자랑스런 첫발을 내딛은 것이다.

텔레비전에서 한국과 폴란드의 경기를 보면서 조마조마하지 않았던 사람은 없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 작은 축구공 하나로 사람들의 마음을 흔들어놓다니...... 한국의 첫 골을 황선홍 선수가 넣은 것은 많은 사람을 감동시켰다. 첫 골이 들어가자 주변 이웃들은 소리를 지르고 노래를 부르고 정말 기뻐했다. 그건 한국의 어떤 사람들도 같은 심정이었을 것이다. '붉은 악마'들도 이에 질 새라 더욱 열렬히 응원을 하고...... 그리고 얼마 뒤 또 다시 두 번째 골이 터졌다. 두 번째 골은 유상철 선수로 폴란드에 2:0으로 이긴 것이다. 이때의 함성이란......

어쨌든 이것으로 한국은 16강으로 향해 첫발을 내디딜 수 있었고, 감독 히딩크도 그의 실력을 인정받았다. 이제 6월 10일 미국과 하는 경기, 한국 선수들은 최선을 다할 것이고 꼭 16강에 들어갈 것이다. 그리고 한국 미래의 축구를 기대할 것이다.

"코리아 화이팅!"

월드컵을 보며

中 2-3 趙 立 雲

드디어 모든 사람들이 기다리고 기다리던 월드컵이 시작되었다. 전 세계 32개국이 참가하는 2002 FIFA 월드컵. 거리의 열기는 대단하다. 모든 국민들이 하나가 되었다. 심지어 한국에 살고 있는 우리 화교들도 모두 하나가 된 듯 열심히 한국팀 선수들을 응원한다.

솔직히 나는 축구를 좋아하지도 않고 축구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한다. 처음엔 월드컵에 전혀 관심조차 없었다. 그런데 모두들 월드컵에 관심을 갖고, 학교에 가도 모두 월드컵 얘기뿐, 그래서 나도 관심을 갖고 보기 시작했는데......

드디어 한국과 폴란드전. 우리는 집에서 텔레비전을 틀어 놓고 긴장된 마음으로 경기를 보기 시작했다. 내가 잠시 딴 짓을 하는 사이, 황선홍 선수가 한 골을 넣고야 말았다. 이제야 점점 재미있어지기 시작했다. 이렇게 1:0으로 전반이 끝나고 히딩크 감독도 기쁨을 감추지 못하는 것처럼 보였다. 다시 시작된 후반전, 침착하게 경기에 임하는 한국 선수들. 유상철 선수가 또 한 골을 넣고 나선 폴란드 선수들은 당황해하며 흥분하는 듯이 보였다.

내 생각엔 황선홍, 유상철 선수도 잘 했지만 그 뒤에 있던 설기현, 이천수, 이을용, 안정환 선수들도 정말 잘 한 것 같다. 이번 월드컵 경기에는 참가하지 못한 고종수 선수도 기쁨을 함께 했을 것이다. 아쉬웠던 건 김병지 선수가 나오지 않았다는 것......

앞으로 더 열심히 해서 미국과 포르투갈 전에서도 좋은 결과가 있었으면 좋겠다. 결국은 16강, 8강, 4강, 우승까지......

"오∼ 필승 코리아!!"

월드컵을 보며

中 2-3 王 敬 祖

2002년 5월 31일, 드디어 기대하고 기대하던 월드컵이 한국에서 개막을 했다. 그 화려한 전야제, 그 화려한 개막식. 아직도 정말 잊을 수가 없다.

개막전은 축구의 '절대지존' 프랑스와 아프리카의 강국 세네갈이 경기를 치렀다. 결과는 1:0으로 세네갈이 승리를 거두었다. 정말 예상 밖의 결과였다. 개막전부터 이변이 일어나다니. 왠지 이번 월드컵은 출발이 좋다. 하지만 이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6월 4일, 전 국민의 시선이 부산 아시아드 경기장으로 쏠렸다. 드디어 한국과 폴란드가 경기를 갖게 된 것이다. 경기장은 온통 '붉은 악마' 응원단으로 꽉 찼다. 한국엔 황선홍이 있다면 폴란드엔 올리사데베가 있었다. 경기는 점점 더 재미를 더해 갔다. 전반 20분쯤 황선홍 선수가 설기현의 프리킥을 논스톱으로 차 골인을 시켰다. 그 때 난 정말 흥분해서 말도 나오지 않았다. 그저 소리치고 또 소리를 쳤다. 학교 기숙사는 온통 흥분의 도가니였다. 그렇게 전반전이 끝나고 후반전이 시작됐다. 후반이 얼마나 지났을까? 한국이 승리에 쐐기를 박는 멋진 중거리슛을 성공시켰다. 그 땐 온 국민이 이구동성으로 소리치며 이렇게 외쳤다. "오∼ 필승 코리아!" 나도 정말 한국 축구가 이 정도로 발전하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그렇게 심판이 휘슬을 불자 온 국민은 환호했다. 드디어 온 국민의 숙원이던 월드컵 첫 승을 거둔 것이다. 그 때 쏟은 온 국민의 환호의 눈물이라니...... 이렇게 멋진 승부는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한국이 꼭! 꼭! 꼭! 16강, 아니 8강에 들기를 바란다.

[쉬어 가는 페이지]

펠레의 선택

소금항아리(생활성서 7월호 별책부록)

펠레는 누구나 다 아는 세계적인 축구스타이다. 어느 누구도 그를 두고 '축구 황제'라 부르기를 서슴지 않고, 그가 은퇴한 지 20년이 지났지만 기량이 월등히 뛰어난 선수들에게는 여전히 '제2의 펠레'라는 별칭이 붙여진다. 이러한 명예 뒤에는 사랑하는 축구를 위해 기울인 그이 피나는 노력이 있었다.

그는 1940년 10월 21일 브라질의 테레스 코라코에스에서 태어났다. 그의 부친 역시 프로 축구 선수였다. 펠레는 축구선수로서의 전성기인 16세부터 34세까지 무려 18년간 브라질 산토스에서 뛰었으며, 이후 2년간은 미국의 코스모스 팀에서 미국 축구의 발전을 위해 선수생활을 하기도 했다. 열일곱 살로 월드컵 본선에 출전하여 최연소 득점기록 보유자가 된 펠레는 세 차례 월드컵 우승을 차지하여, 브라질에 줄리메 컵을 영원히 안기기도 했다. 은퇴 이후 펠레에게 브라질 체육부장관이라는 중요한 직책이 맡겨졌다. 하지만 얼마 되지 않아 그는 장관직을 스스로 그만두었다. 축구경기 해설을 하기 위해서였다. 우리 눈으로 보았을 때도 장관직과 축구해설가는 그 직책이나 영향력 면에서 많은 차이가 있다. 하지만 펠레가 선택했던 것은 명예나 영향력보다는 자신이 좋아하는 축구경기의 현장에 있는 것이었다.

우리는 인생을 살아가다 보면 수많은 선택의 순간에 놓이게 된다. 대개는 그 선택에 앞서 여러 가지 주변의 조건들을 놓고 따지고 저울질을 한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그 일을 하면서 진정 행복을 느낄 수 있는 것, 그것이 바로 자신을 사랑하는 일이다.

댄서

高 2-3 顧 大 良

한국에서 댄서라는 것은 사람들에게 직업으로 잘 인정받지 못한다. 흔히 부모님이 자기 자식에게 "넌 커서 뭐가 되고 싶니?" 하고 물을 때 만약 댄서가 되고 싶다고 얘기하면 부모님에게 매를 들게 할 수도 있다.

사람들은 왜 댄서라는 것을 좋은 눈으로 보질 않고 고정 관념에 박혀 딴따라라는 쓸데없는 말로 비하시키는 것인지 정말 이해가 안 간다. 댄서라는 것은 자기가 듣는 음악에 맞춰, 또 그 음악의 흐름과 분위기 등에 자기의 영혼을 쏟아 부어 표현하는 사람이다.

사람은 누구나 춤을 출 수 있는 것을 본능적으로 다 갖고 있다. 사람이 기쁘면 저절로 춤을 추게 되는데, 춤은 단순히 몸을 흔들어대는 게 아니다. 음악이 있어야 춤이 있고, 춤이 있으면 음악이 있다. 춤도 하나의 예술이고, 그것을 더욱 발전시켜 자기만의 댄스를 만드는 것이 바로 댄서인 것이다.

사람들에게 "댄서가 어떻게 돈을 버는지 알아?" 하고 물으면, 가수 뒤에서 춤을 추면 돈을 받겠지 라고 쉽게 얘기한다. 백댄서도 그들에게는 소중한 직업이고, 자부심을 갖는 하나의 직업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전혀 그것을 이해 못하고 무조건 댄서라는 게 별 볼일 없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닌지......

나는 스트릿 댄서이다. 쉽게 말하면 거리 댄서라고 한다. 가수 뒤에서 추는 춤이 아닌, 각 댄스의 장르마다 음악을 몸으로 표현하는 것이 스트릿 댄서이다. 우리들도 외국 댄서들과 교류를 하고 서로 정보 교환도 하며 춤을 즐긴다. 현재 한국에서는 댄서를 하는 것이 힘들기 때문에 나는 나중에 다른 일을 하면서 춤을 즐길 것이다.

일본 같은 경우는 클럽 문화가 발달되어 클럽에 들어서면

한국에선 볼 수 없는 광경이 나타난다. 바로 30-50대도 스트릿 댄스를 즐긴다는 것이다. 한국에서는 과연 가능한 일인가? 한국 사람들은 한 30살까지 춤을 추고 나면 "너도 이제 그만 끝날 때가 됐지. 나이 그렇게 먹었는데 춤은 무슨 춤이야......" 하고 흔히들 말한다. 춤은 나이가 들수록 더욱 깊이 있는 춤을 출 수 있다. 음악을 더욱 많이 이해하고, 또 자기만의 오랜 경험과 장인 정신 같은 깊이를 가질 수 있다.

어쨌든 앞으로, 내가 설사 좋은 환경에서 춤을 출 수 없더라도, 나중에 댄서를 꿈꾸는 후배들이 더욱 좋은 환경에서 그리고 그들이 정말 행복하게 춤을 출 수 있도록, 지금 선배들과 같이 나도 노력할 것이다.


아쉬운 高2 생활

高 2-3 梁 詩 怡

벌써 "高2"라는 단어가 우리 곁에서 멀어져만 가고 있다. 고2가 된지 얼마 안 된 것 같은데...... 새로운 선생님들, 새로운 친구들, 새로운 환경들, 이젠 많은 정이 들었건만......

고2가 된 뒤, 정말 많은 일들이 있었다. 내가 소망했던 선생님들을 만난 것은 물론, 친구들하고도 많이 친해졌다. 그리고 내 사랑하는 남자 친구와 가졌던 소중한 추억들, 대학에 대한 나의 새로운 목표들, 그리고 또 무엇보다도 중요한 건 2002년 월드컵이 한국에서 개최된 일 등등......

고2, 그저 하루 빨리 고3이 되고, 빨리 졸업해서 대학에 들어가고 싶은 마음이지만, 그래도 왠지 모르게 가슴 속 어딘가에 아쉬움이 남아 있다. 이번 2학기 때에는 성적도 많이 떨어

졌다. 열심히 했다고 생각했는데 성적이 그만큼 안 나올 땐 정말 모든 걸 포기하고 싶고 대학 들어가는 것도 두렵고 무서웠다. 하지만 지금 나에겐 아직도 1년이란 고3 생활이 남아있다. 그 시간만큼은 낭비하지 말고 열심히 공부를 해서 성적을 많이 올려야지......

지금 내가 가장 아쉬워하는 것은 우리 담임 선생님과의 헤어짐이다. 고3이 되어서도 화학 선생님이시지만 그래도 너무 아쉽다. 그리고 고3이 되면 지금 우리 한국어 선생님이 담임이었으면 하는 소망도 있는데......

고2 생활에 있었던 나쁜 일들은 모두 잊고 앞으로는 좋은 일만 생겼으면 좋겠다. 지금 군대에 가 있는 남자 친구한테도 보고 싶다고, 힘내라고 말하고 싶고, 그리고 나를 알고 있는 모든 사람들이 항상 즐겁고 행복했으면 좋겠다.

남은 고2 생활, 열심히 하고 앞으로의 미래를 위해 파이팅!!

高2가 되고서 나타난 변화

高 2-3 孫 孝 民

고2가 되고서 저에게는 많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우선 제 자신이 변화하게 된 이유는 저의 미래와 가족들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기 위해서이며, 또한 학교 담임 선생님과 한국어 선생님이 저에게 힘이 되어주셨기 때문입니다. 특히 담임 선생님은 저를 처음으로 신경 써 주신 분이십니다.

여태껏 저에게 많은 말씀을 해 주시고 잘못된 것을 진정으로 꾸짖어주신 분은 저희 담임 선생님뿐이셨습니다. 또 한 분, 저의 학교 생활을 가장 많이 바꾸어 놓으신 선생님인 한국어

선생님께서는 지금까지 칭찬이라는 것을 받아 보지 못했던 저에게 아낌없는 칭찬을 해주셨습니다. 저는 그 선생님께 또 칭찬을 받고 싶어서 그 수업시간 때는 더 열심히 듣고 잠도 안 자고 하였습니다. 수업에 열중한 결과 매번 낙제하던 저의 한국어 점수는 많이 올랐습니다. 두 분 선생님 덕분에 저는 제 학교생활에 변화를 가져올 수 있었고, 지금도 감사 드립니다.

작은 것에 이렇게 내가 바뀔 수 있었다니, 저는 지금 이런 생각도 해 봅니다. '좀 더 일찍 내게 신경을 써 준 사람이나 선생님이 계셨다면 내가 좀 더 빨리 정신 차렸을 텐데......'

저는 앞으로 제 자신을 좀더 변화시키고 발전시켜서, 저를 불량학생으로만 보셨던 다른 선생님들께, 그리고 저의 변화를 도와주신 분들께 더 나은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습니다.


중학교 1학년을 다니면서 느낀 점

中 1-2 顧 小 素

저는 1학년을 다니면서 느낀 점이 많아요. 저는 원래 익산 화교초등학교를 마치고 중학교는 한국 학교로 다니려고 했어요. 그런데 초등학교 선생님이 화교중학교에 한 번 다녀보는 것도 괜찮을 거라고 하셔서 여기에 오게 되었어요.

처음 들어올 땐 많이 힘들었어요. 학비도 만만치 않고, 기숙사비도 내야하고, 너무 많은 돈이 들었어요. 우리 집은 부자도 아니에요. 그래서 너무 부모님한테 죄송했어요. 1학기를 다니면서 공부는 안 하고 놀러만 다녔어요. 부모님이 많이 실망하셨을 거예요. 2학기엔 자꾸 나쁜 길로만 빠져들었어요. 그래서 더 더욱 죄송해요. 다시는 이런 일 없을 거예요. 전 담임 선생

님하고 약속했어요. 다시는 이런 길로 빠져들지 않겠다고......

전 너무 미안하고 죄송하고, 너무 많은 사람들을 실망시켰어요. 옛 생각을 하면 나도 모르게 자꾸 눈에 눈물이 고여요. 나도 내 자신이 싫을 정도로 짜증이 나요. 난 이러고 싶은 게 아닌데, 자꾸 똑같은 곳에서 맴돌고 있는 거 같아요.

이번에는 공부 열심히 하고 착한 제가 되고 싶어요. 그래서 많이 노력하는 중이에요. 나쁜 버릇은 아직도 안 고쳐졌지만요. 제 속마음을 다 말하고 얘기하고 싶지만 이 종이로도 모자랄 거예요. 비록 나이는 어려도 부모님에게 효도할 거예요. 이젠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 받을 수 있게 노력할 거예요.


우리 집 가풍

中 2-3 김 보 라

우리 집은 특별히 잘 살지도, 가난하지도 않다. 우리 집은 아주 평범한 집이다. 우리 아버지는 평범한 회사원이시고, 어머니도 작은 일을 시작하셨다. 또 연년생인 나와 동생은 유난히 평범하게 학교를 잘 다니고 있다.

우리 집은 어머니가 주도권을 잡고 계신다. 어머니가 아버지보다 "강"하시기 때문이다. 내가 존경하는 분 제1호가 바로 우리 어머니이시다. 우리 아버지는 마음이 여리셔서 무슨 일 하나를 할 때 쉽게 결정을(바로 화끈하게) 못 하신다. 그 대신 우리 어머니께서 한 방에 일을 끝내신다. 우리 어머니가 한 일이 나쁜 쪽으로 된 적은 드물다. 아버지는 우리 어머니를 많이 사랑하셔서인지 어머니를 믿으신다. 어머니가 무엇을 하실 때에는 아버지께서 적극적으로 밀어주신다. 그래선지 우리 집 가

풍은 어머니의 성격을 닮아 "모든 일을 당당하게!" 인 것 같다.

모든 일을 당당히 하려면 사전에 그 일에 대한 노력이 필요하다. 노력 없이 그 일을 당당히 하기는 힘들다. 당당하게, 자신 있게, 한 사람이 만약 이런 자신감을 갖고 있다면, 어떤 위험이든, 힘든 일이든 굳은 의지로 이겨 낼 수 있을 것이다.

난 우리 집 가풍이 너무 마음에 든다. 모든 일에 자신 있게 행동하는 것, 나에게 용기를 주고, 또 다른 희망을 준다. 앞으로도 우리 집 가풍이 변함 없길 바란다.


과소비 문화

高 1-1 王 姸 楆

조금씩 과소비에 익숙해지고 있다고 해야 하나? 다른 사람의 심한 과소비에 얼굴을 찌푸리는 경우가 점점 줄어드는 것 같다. 쓸 데 없는 것에 대한 욕심이 많아지고, 또 그걸 억누르려는 생각도 들지 않은 채로 돈을 쓰는 것 같아 씁쓸하다.

과소비가 많아진 이유에 신용카드가 많이 보편화 한 것도 한 몫 한다고 생각한다. 오랜 할부가 되다보니, 이것저것 마구 사놓고, 돈이 모자라면 다른 카드사에서 대출 받아 막는 식으로 카드를 사용하는 사람이 많다고 한다.

또 빈부 차가 큰 것도 과소비 이유 가운데 하나라고 생각하는데, 일반 직장인의 몇 달치 월급이 일부 갑부에게는 옷 한 벌 값, 또는 구두 한 켤레 값으로 순식간에 쓰이는 걸 보면서, '내일 일은 내일 생각하자' 라는 생각으로 잔뜩 사는 사람도 많다. 재벌 2세로 태어나지 못한 사람들은 그들을 보면서 마냥 부러워해야만 하는 걸까?

요즘은 '홈쇼핑 중독증'에 걸린 주부들이 많다고 한다. 꼭 홈쇼핑뿐만이 아니라, 백화점 세일 기간에도 과소비의 유혹은 끊이질 않는다. "마지막 기회" 라는 말만 들으면 수화기에 손이 간다는 주부도 있다고 들었다.

조금만 시선을 멀리 두어 넓게 본다며 과소비는 조금 줄어들지 않을까 하는 게 내 생각이다.

물건을 사기에 앞서 주머니부터 확인해 보자!!


이 세상에서

가장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세 가지와 그 이유

中 2-3 曲 守 玉

이 세상에서 우리가 필요한 것은 아주 많다. 생활 속에서 찾아보면 아주 여러 가지가 있다. 그 가운데 내가 가장 중요시하는 것은 바로 사람과 사람 사이의 "정"이다. 난 이 정을 아주 중요시한다. 정은 사람들 사이에 없어선 안 되는 존재이다. 이웃 사이의 정, 친구 사이의 정, 정이 있어야 사람과 감정이 생기고, 정이 없으면 인생에 살아가는 재미가 없어질 것 같다. 이것이 내가 첫 번째로 중요하게 생각하는 거다.

내가 또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바로 사랑이다. 사랑이 어떻게 생겼는지는 모르겠다. 사람들은 심장이 쿵당쿵당 뛰면 사랑이라고 한다. 그런데 난 이유 없이 사랑이 좋다. 아! 사랑을 하면 그 사람의 감정이 풍부해지는 것 같다. 지금 내가 사랑은 아니지만 조금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 그 사람만 생각하면 기분이 마냥 좋아지고 행복해진다. 사랑은 정말 기분이 좋아지게 하는 마법의 약 같다. 나도 언젠가 이 마법에 걸리겠지 하는

생각을 하며 잠이 들곤 한다.

그 다음엔 지식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한 사람이 지식이 없으면...... 살아가기 힘들 것 같다. 지금 이 세상은 지식이 없으면 안될 만큼 지식은 큰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때문에 지금 청소년들은 지식을 쌓아가고 있다. 지식이 차츰 쌓여 가면 누릴 수 있는 행복이 있다. 난 아직은 잘 모르지만 언젠가는 꼭 알 것이다. 난 지금 그 행복을 찾아가고 있으니깐......행복 안에 여러 가지가 있는 게 눈 앞에 보인다. 난 언젠가 그 행복을 누릴 것이다.


나의 하루

中 1-3 劉 日 方

나의 하루는 세 단계로 나누어진다.

아침 : 아침 여섯 시쯤 일어나서 첫 번째로 하는 행동은 바로 먼저 화장실에 간다. 화장실에서 돌아와서는 안경을 먼 저 낀다. 다음엔 전깃불을 켠다. 그리곤 제일 편한 자세로 앉는다, 그리고 게임을 한다.(약 한 시간쯤…)

점심 : 열 두 시쯤에( 배가 고프면….)밥을 먹는다. 다 먹고 또 논다.(혹은 낮잠을….) 숙제도 좀 한다.

저녁 : 숙제를 끝낸다. 일곱 시쯤에 밥을 먹는다. 그리고 자기 전에 또 게임을 한다. 10시 이후에는 엄마의 파워(일명 아줌마 파워) 에 억눌려 순순히 잠자리에 든다.

이런 생활이 거의 매일 계속 반복된다, 방학 동안 쭉-----^_^;; .

자연과 나

高 2-3 張 惠 麗

사람은 자연에서 태어나는 것이다. 그렇다고 내 자신이 자연이라고 할 수는 없다. 사람은 항상 어머니의 따뜻한 사랑 속에서 태어난다. 모든 사람이 그렇고, 나 또한 그런 사람이다!

자연은 항상 세상에 맑은 공기를 공급한다. 그 공기를 마시며 내가 있는 것이다. 그래서 난 한 번 더 생각해 본다. 사람과 자연은 공통된 신비 그 자체라는 것을...... 그리고 나는 자연을 본다. 그리고 피부로 느낀다. 이건 사람과 자연의 소통이다. 내 자신도 그러하다. 내 자신은 자연과 함께 한다. 나와 자연, 사람들과 자연...... 이것은 원래 하나였던 자연과 세상이다.

우리가 상한 음식을 먹으면 아파하듯이, 자연 또한 오염된 물과 공기, 사람들이 버린 쓰레기로 인해 아파한다. 이렇듯 자연과 사람은 항상 공통된 보이는 생물과 보이지 않는 생물이다.

과연 우리는 어떻게 대처해야 하나? 우리는 이런 현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우리와 같은 사람이라면 과연 그럴 수 있을까? 나는 내 자신을 돌아다본다. 나는 사람이다. 자연은 보이지 않는 사람이다. 그러니 내 자신과 같은 사람을 병들게 해야 하나?

난 이렇게 생각한다. 내 자신만을 생각하기보다는 맑은 공기, 깨끗한 강, 그리고 참새와 다람쥐들이 춤추는 소리를 듣기 위해서는 나부터라도 우선 자연을 가꾸어야겠다. 물론 나만 한다고 해서 되지는 않겠지만 언젠가는 모두들 자연이라는 생명을 알게 될 것이다.


지금은 TV 시대

高 1-1 郭 明 季

한국은 유난히 연예인이란 직업이 사람들의 눈에 최고의 직업으로 보이는 것 같다. 연예인만 되면 부와 명예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들의 성공엔 얼마나 많은 땀과 눈물이 들어있는지 전혀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

TV 시대가 된 뒤로, 매체는 점점 더 많은 스타를 만들어 내고 있다. 방송과 광고계의 활성화가 도시의 화려함과 발전을 더욱 돋보이게 하지만, 한편으론 사회에 많은 악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걸 어른들은 알고 있을까? 청소년들 사이의 화제는 이제 온통 연예계에 대한 얘기뿐이고, 가수와 배우를 지망하는 아이들은 더욱 늘어나고, 패션과 유행을 따라가느라 다들 정신이 없다. TV 방송은 그만큼 우리들에게 영향을 끼치고 있는데 청소년을 위한다는 어른들은 우리들을 위해(?) 쇼와 오락 프로만 더 많이 만들고 있는 것 같다.

최근에 내가 즐겨보는 프로는 '!(느낌표)'라는 프로다. 이 프로에 <책을 읽읍시다> 라는 코너가 있는데, 놀랍게도 이 방송이 시작된 뒤로 내 주변에 책을 읽기 시작한 친구들이 많아졌다. 그때서야 난 방송의 막대한 영향력을 깨달았다. 그토록 TV는 사람들의 생활에 빠질 수 없는 것이고, 일부가 된 것이다. 이 사실이 난 신기하고 두렵기도 하다.

사람들은 가수들이 기획사의 상품이라 하는데, 그렇다면 우리가 좋아하는 스타들이 출연하는 쇼나 오락 프로그램도 방송과 광고계의 상품이지 않은가? 이미 많은 사람들이 이 사실을 알고 있었겠지? 내가 이 얘기를 꺼내면 분명히 다들 '지금 알았니?' 하는 말투로 날 대하겠지? 어쨌든 난 정말 이 사실에 실망하지 않을 수가 없다.

꼭 방송국을 탓하지 말고, 우리가 이 상황을 개선해야 한다. 우리의 관점을 바꿔, 다들 함께 할 수 있는 순수하고 사회에 이익을 가져다 줄 수 있는 방송 시대가 올 수 있도록......

[쉬어 가는 페이지]

텔레비전 안 보기 운동

생활성서(2001년 4월호)

"독서는 더 많이, 텔레비전 시청은 더 적게." 이것은 미국의 '텔레비전 끄기 네트워크'(www.tvturnoff.org)라는 단체의 슬로건이다. 이 단체가 매년 실시하는 '텔레비전 안 보기 주간' 운동에는 지난해 600만 명을 비롯해 1995년이래 1,800만 명이 동참했다. 이 단체는 평소에 텔레비전을 시청하지 않고도 잘 지낼 수 있게 가족 간의 대화, 놀이, 독서, 낚시, 산책에 관한 정보들을 폭넓게 제공하며 '텔레비전에서 벗어나기'에 앞장서고 잇다. 텔레비전이 공격적이고 참을성 없는 행동과 위험한 성 태도, 음주, 과소비, 성 및 인종차별, 비만 등을 조장하는 주범이라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정부와 의학계가 이 운동에 더욱 적극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지난 4월 이 운동 주간에 미국 공중위생부 데이빗 새처 장관은 "아이들을 가장 건강하게 활동하게 하는 주간"이라고 환영했고, 미국소아과학회와 미국의학협회, 미국가정의학회, 어린이와 청소년 정신의학회 등도 후원에 나섰다. 이런 전국적인 운동 외에도 미국에선 유아원과 학교, 도서관, 지역하회에서 텔레비전 안 보기 운동이 활발하다. 운동 전개 방식도 '가족 모두 안 보기', '혼자서는 안 보기', '주중엔 안 보기' 등 다양하다.

유럽에서도 텔레비전 안 보기 전통이 뿌리깊다. 영국 런던 남동부 서식스의 브루더호프 공동체 마을에는 250명의 주민들이 사는데도 텔레비전이 없다. 부모와의 깊은 대화와 독서로 밤을 보내는 이곳 청소년들은 이미 십대에 이웃 마을의 어른 못지 않은 판단력과 사고를 갖게 된다. 옥스퍼드 및 케임브리지 대학 진학률도 영국내 최고 수준이다.

[편지]

하늘 나라에 있는 우리 짠돌이에게로

中 1-2 楊 秀 芳

안녕! 우리 멍멍이 짠돌아?

내가 기억하기로는 네가 두 살 때 우리 집에 왔어. 처음으로 만난 네가 난 조금 낯설었어. 너도 그랬겠지? 내가 이사를 가기 전까지는 너랑 매일 같이 놀았는데, 이제는 모두 옛날 일이로구나.

할머니한테 들었어. 네가 날 아주 많이 그리워하고 있었다고. 날마다 대문 소리만 울리면 너는 힘차게 문 앞으로 뛰어가 왈왈왈 꼬리를 흔들면서 누가 왔는지 궁금해서 그랬다지? 하지만 넌 내가 아니면 그냥 자기 방으로 쓸쓸히 돌아갔다고 들었어.

저번 주 일요일에 엄마가 할머니 집에 간다고 해서 나도 간다고 그랬지. 왠지 아니? 이사간 뒤로 너를 한 번도 못 찾아가서 미안한 마음으로 널 보러 가려고 했지. 보고 싶기도 하고 그래서...... 그런데 할머니가 그러시더라. 네가 3년 전에 벌써 죽었다고. 난 그 말, 아니 그 한 마디를 들은 후 한참동안 울었어. 이제껏 너에 대한 기억이 하나같이 모두 잊혀져버리는 것 같았어. 이럴 줄 알았으면 네 사진 한 장이라도 좀 찍어 놓을 걸 후회가 되었지. 그랬더라면 내 기억 속에서 생생히 남길 수 있었을 텐데......

아마 넌 하늘에서 내가 무엇을 하는지 보고 있겠지? 나 진짜 오래 전부터 너한테 하고 싶은 말이 있었어. 지금 말 해 줄 게. 사랑해, 그리고 미안해.

2002년 6월 어느 날

수방이가

사랑하는 엄마, 아빠에게

中 1-2 胡 英 慧

엄마, 아빠!

이 편지가 두 번째로 엄마 아빠한테 쓰는 거겠지? 요새 기숙사 생활 때문에 엄마 아빠 얼굴 보기 힘들잖아. 그래서 전화를 해야지 목소리라도 들을 수 있고. 엄마 아빠 얼굴 정말 보고 싶어. 그런데 거기까지는 나도 내 마음이 이해가 되는데 가끔 내가 짜증낼 땐 왠지 그런 내가 정말 미운 거 있지.

이렇게 날 잘 키우려고 힘들게 일하시는데, 엄마랑 아빠가 나한테 용돈 줄 때는 너무 미안해. 그래서 방학 때 집에 가면 밤에 가끔 울기도 해. '엄마랑 아빠는 힘이 드는데, 난 뭘까? 도움도 안 되고......' 이런 생각을 하다 보니 갑자기 눈물이 나. 엄마는 하루 종일 일하잖아. 아침 일찍 일어나서 청소하고 저녁까지 일하고, 밤에는 또 집 정리하고, 너무 미안해. 허리 아프다고 하면서, 내가 "어디 아파?" 하고 물으면 아니라고만 말하잖아. 마음먹고 안마라도 해 주려고 하면 그냥 공부 열심히 하라고, 나쁜 길로만 가지 말라고...... 아빠는 병 때문에 몸도 안 좋은데, 나 공부하라고 돈 보내주고 그러는데...... 가끔 아빠는 힘들다고 담배나 술 하잖아. 아빠한테 효도하려고 공부 열심히 하는데도 성적이 잘 안 올라가. 그리고 저번 시험 볼 때는 작문 제목으로 아빠에 대해서 쓰는 것이었는데 눈에 눈물이 고였어.

기억해? 아빠가 나 의대 보내고 싶다고 그런 거. 내 인생은 내 인생이니까 기죽지 말고 하고 싶은 거 다하라고 얘기했던 거...... 그런데 나 정말 공부 열심히 해서 의대 갈래! 의대 가서 돈도 많이 벌고 효도도 할래! 지금은 어리니까 크면 그때는 지금 못해준 거 다 해줄 거야.

엄마, 아빠! 이 딸 열심히 꿈 키울 테니까 건강해야 되! 그리고 사랑해!

2002년 6월 26일

사랑하는 딸 영혜가

혜진이에게

中 1-1 王 其 靜

혜진아, 안녕!

나 기정이야. 잘 지내니? 난 그럭저럭...... 너한테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어서 편지를 쓴다. 짝궁은 아니지만, 내 옆자리에 않는 전 나랑 가장 가까운 셈이지. 그래서 네가 날 더 이해해주고, 챙겨주고 하는 것 같구나.

내가 사소한 일로 너랑 티격태격 거리며 싸운 적이 있지. 그땐 네가 잘못한 것도 아닌데, 내가 일방적으로 삐져버리고. 그런데 얼마 안 되어서 우린 화해를 했지 아마.

내가 고민이 있으면 너한테 가장 먼저 말하곤 하는데, 넌 그때마다 기쁜 일이면 같이 웃고, 슬픈 일이면 날 위로해주곤 했잖아. 그럴 때마다 난 항상 너한테 고마웠어. 내가 아파서 수업시간에 울로 있으면 옆에 와서 괜찮으냐고 물어 보고, 약 갖다 준다면서 뛰어갔다 오고...... 그럴 때마다 난 고마워서 어쩔 줄 모르겠어. 난 너한테 해 준 것도 별로 없는데...... 앞으론 더 잘 할 게. 꼭!

그리고 너도 고민이 있으면 망설이지 말고 나한테 와. 내가 별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널 위한 거라면 뭐든지 다 할 수 있으니까, 알겠지!

그럼 몸 건강하고, 네 옆엔 항상 내가 있다는 걸 기억해 줘! 안녕, 바이바이......

2002년 6월 26일

기정이가



내 사랑하는 예삐에게

高 1-1 盛 賢 實

예삐에게

너에게 이렇게 편지를 쓰는 게 두 번째인 거 같네! 그때도 한 번 작문 숙제로 너에게 썼었지. 벌써 2년이 지났네. 넌 우리 집에 온지 5년이 다 되어가고......

네가 이걸 읽을 수 없는 건 알지만, 너에 대한 나의 사랑을 알아줬으면 해. 널 생각하면 웃음과 행복과 눈물이 한꺼번에 몰려오는구나. 네가 내 곁에 있는 게 얼마나 고마운 줄 아니? 네가 없어진다는 생각, 정말 하기 싫구나. 어쩌다 네가 죽는다는 생각에 청승맞게 운 적도 많다. 그래도 네가 영원히 내 곁에 있게 해 달라는 건 지나친 욕심 같겠지?

옛날에는 누가 오든지 반기던 네가 이젠 아빠가 올 땐 빼고 그렇게 반기지 않는구나. 네가 늙었다는 증거인가? 이런 생각을 하니 가슴이 메인다. 어쩌다 내가 너한테 뽀뽀를 하면 사람들은 병에 걸린다고 하는데, 이게 내 애정 표현이고 보니 어쩔 수도 없고, 또 너 아닌 다른 동물한테는 그런 짓 안 해.

네가 우리 식구가 된지 5년이 지나가지? 한 몇 년 전부터 우리 식군 널 애완견으로 보지 않게 됐지? 널 보고 있으면 꼭 사람 눈을 보고 있는 거 같아. 나랑 동생이 "예삐 꼭 사람 같아!!" 한 적이 쉴 수도 없이 많아. 한 며칠 어디로 여행을 가도 네가 안 가면 나도 가기 싫고, 설날이나 명절 때 친척 동생들이 우리 집에 와서 널 괴롭힐(?) 땐 동생들이 그렇게 미워 보일 수가 없더구나. 동생들 딴엔 널 예뻐한다고 해도 내 눈엔 가시처럼만 보이고......

네가 우리 아빠를 제일 좋아하지? 아빠가 온 걸 무슨 레이더를 단 것처럼 알아서 문 앞에서 꼬리를 흔들고 좋아할 땐, 나도 더 없이 기쁘더구나. 네가 아빠 목에 짝 달라붙어 짓는 얼굴 표정을 보면 웃음이 나온단다.

너에 대한 사랑을 글로 다 쓰려면 끝이 없구나. 그럼 난 여기서 그만......

2002. 4. 16

널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현실이가

[주제 토론]

청소년

만화책 보기

中 1-3 왕시애, 우가령, 허은희, 조흥주, 공영문

사회자(은희) : 오늘의 주제는 청소년이 만화책을 보는 것 에 대해서인데, 너희들의 많은 의견 부탁한다. 먼저 가 령이부터!

가령 : 난 청소년이 만화책을 보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생각해. 왜냐하면, 맨날 공부만 하는 우리들에게 만화 책을 보면서 휴식을 취하는 게 얼마나 좋은데! 만화책 을 많이 안 본 너희들은 그 재미를 모른단다. 특히 학 교에 가져와서 보는 만화책은 얼마나 재밌는지...... 물론 수업시간에는 절대 안 보지. 아무튼 난 만화책을 보는 것은 무조건 찬성!

시애 : 나도 역시 찬성이야. 커서 나처럼 만화가가 되고 싶 은 아이들은 만화책을 안 보면 그림 공부가 잘 안 돼. 이건 비밀인데, 내 친구 중에서 만화책을 본 덕분에 한 글을 알게 된 친구도 있어. 믿어지지 않지? 그런데 어 른들은 왜 이렇게 재미있는 만화책을 못 보게 하는 걸 까? 어른들에게 그 이유를 물어보면 그 이유는 또 얼마 나 많은지......

영문 : 난 반대! 그 이유는, 만화책을 보면 학교 수업시간에 전혀 집중이 안 돼. 자꾸 다음 편이 보고 싶어서 미칠 것 같기도 하고. 나도 에전엔 많이 봤는데, 돈도 엄청 나게 많이 들더라. 나 같은 경우에는 한 달 용돈을 만 화책 보는 데 몽땅 투자했어. 그 날 난 엄마한테 굉장 히 혼났지. 그 후로 이제 자제하고 있어. 봐도 아주 가 끔씩 보고. 만화책을 안 보니까 수업 때 집중이 잘 되 는 것 같고, 돈을 안 써도 되고, 엄마한테도 혼날 일이 별로 없고, 여러 모로 아주 좋아!

흥주 : 내 생각에는 만화책을 봐서 나쁠 건 없지만, 그래도 많이 보는 건 안 좋은 것 같아. 휴식 시간에 조금씩 보 는 정도로 했으면 좋겠어. 너무 많이 봐 봤자 우리에게 큰 이득이 될 만한 게 없잖아. 시간 낭비지, 돈 낭비 지. 차리리 그 많은 만화책 보는 시간에 다른 일도 할 수 있잖아. 안 그러니? 많이 보던 조금 보던 다 자기 자신에게 달려있지만 그래도 정 보고 싶으면 자기 혼자 서 자제를 해가면서 봐야 한다고 생각해.

은희 : 얘들아. 너희들 각자 자기 생각대로 잘 말해 주었고, 마지막으로 만화책은 봐도 되지만, 우리공부에 방해되 지 않을 정도로만 보면 될 것 같아.




[쉬어 가는 페이지]

종달새의 최후

소금항아리

(생활성서 7월호 별책부록)

한 마리의 종달새가 있었습니다. 어느 날 이 종달새는 저 아래서 조그만 숲길을 따라 작은 물체가 움직이는 것을 발견하고는 호기심이 발동하여 다가갔습니다. 그건 고양이가 끌고 가는 작은 수레였습니다. 그 수레에는 이렇게 씌어 있었습니다. "신선하고 맛있는 벌레 팝니다." 종달새는 그 벌레들을 보고 싶은 호기심도 있었고, 입맛도 당겨서 고양이에게 다가가 물었습니다.

"벌레 한 마리에 얼마예요?"

고양이는 종달새 깃털 하나를 뽑아주면 맛있는 벌레 세 마리를 주겠다고 했습니다. 종달새는 망설임도 없이 그 자리에서 깃털을 하나 뽑아주고 벌레 세 마리를 받아 맛있게 먹었습니다. 깃털 하나쯤 뽑았다고 해서 종달새가 날아다니는 데는 아무런 지장도 없었습니다.

한참을 날다 또 벌레가 생각났습니다.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애쓰게 벌레를 잡으려 할 필요도 없고 그냥 있는 깃털 몇 개 뽑아주면 배부르게 맛있는 벌레를 먹을 수 있다는 게 종달새에게는 너무나 편하고 좋았습니다. 종달새는 이러기를 수십 차례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하늘을 나는 게 숨이 차다는 생각이 들어 잠시 풀밭에 앉아 쉬고 있는데, 그 고양이가 갑자기 덮쳤습니다. 평소 같으면 달려드는 고양이를 피하는 일쯤은 아무것도 아니었는데 듬성듬성한 날개로는 재빠르게 움직일 수 없었습니다. 결국 종달새는 고양이의 먹이가 되고 말았습니다.

[海外 名詩]

이니스프리 호수섬

(The Lake Isle of Innisfree)

W.예이츠(William Butler Yeats)

(영국. 1865-1939)

나는 이제 일어나 가리라, 이니스프리로 가리라

거기서 나뭇가지 엮어 진흙 발라 오두막을 지으리라.

아홉 개의 콩 이랑 만들고, 꿀벌집도 가지리

벌의 날개 짓 소리 높은 숲 속에서 홀로 살리라.

거기서 나는 평화를 느끼리니, 평화는 천천히 방울져

아침 베일로부터 귀뚜라미 우는 곳으로 떨어지는 것.

거기는 한밤이면 전체가 흐릿한 빛이요 대낮은 보랏빛으로 빛 나며

저녁이면 붉은 방울새의 날개로 가득 차는 곳.

나는 이제 일어나 가리라, 밤낮 없이 호수의 물이

나지막이 기슭을 때리는 소리 들리기에 나는 가리라.

넓은 길 위에 서 있어도 회색으로 포장된 길에 있어도

내 가슴 깊이 그 물소리 들리노라.




[초대글]

교생 실습을 마치며....

교육 실습생 박윤주

(인하대 중어중문학과 4년)

5월의 따뜻한 봄날, 정말 오랜만에 중학교에 다시 올 수 있었다. 예전에는 학생으로서만 다니던 학교를 이제는 교생이 되어서 오게 된 것이다. 대학 4학년이 되면 당연히 나가는 것으로 생각했던 교생실습이었지만, 그래도 무척 설레고 떨렸다. 한 달이라는 결코 길지도 짧지도 않은 시간 동안에 어떻게 잘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만이 머리 속에 가득했다. 첫날, 학생들과 처음 만났을 때의 느낌은 너무 새로워서 잊을 수가 없다. '학생들 앞에서 많이 떨면 어떡하나' 하는 나의 걱정을 학생들이 말끔히 씻어주었기 때문이다. 정말 사촌 동생들 같은 편한 느낌이었다.

내가 대학에서 중국어를 전공하고는 있지만, 화교 학생에게 중국어를 가르치는 일은 무리여서 한국어 수업을 참관하게 되었다. 수업 분위기는 내가 학교 다닐 때와는 사뭇 많이 달라져 있었다. 일단은 학생 수가 많이 줄었고, 남녀 공학이라 그런지 남학생과 여학생간에 교류가 활발함을 볼 수 있었다. 여중과 여고를 졸업한 나는 당시 남녀공학을 많이 부러워했었다. 또한 가장 크게 다른 점은 학생과 선생님의 관계의 변화이다. 난 겨우 선생님께 인사만 했지 인사 이외의 말은 거의 하지 않았었는데, 지금은 그렇지가 않았다. 나에게는 마냥 어렵게만 느껴졌던 선생님이었는데 지금 학생들은 선생님과 많이 친한 것 같았다. 쉬는 시간에도 선생님께 찾아와서 얘기하고 수업관계 이외의 질문도 서슴없이 하는 모습에서 사제 관계가 정말 많

이 가까워졌음을 알 수 있었다. 처음에는 학생들의 이러한 행동이 약간은 버릇없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했지만, 선생님을 어려워하기보다는 편한 분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면 학생들에게 더 좋은 영향을 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전에 좋은 선생님의 조건을 꼽는다면 아마도 '얼마나 담당 과목을 잘 가르치느냐' 하는 것이었다. 이것은 지금도 중요하지만 결코 간과할 수 없는 또 하나가 바로 '친구 같은 선생님'이다. 학생들이 현재 직면한 상황에 대해 같이 공감할 수 있는 그런 선생님을 믿고 따를 수 있기 때문이다. 아이들과 같이 호흡할 수 있는 '젊은 선생님', 즉 사고 자체가 젊고 생기 넘치는 선생님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점이 바로 이번 실습을 통해서 얻은 가장 큰 소득이다. 앞으로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학생들과 같이 호흡하기 위해서는 정말 많은 노력이 필요할 같다. 교생실습은 내가 교사라는 직업에 대해 이론적으로만 가졌던 것을 현실로 직접 체험할 수 있게 해준 좋은 기회였다. 그러나 기간이 짧아서 반 아이들과 많이 친해질 수 없었던 점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다행히도 학생들의 생활일기를 매일매일 보면서 조금이나마 학생들에 대한 이해를 할 수 있어서 좋았다.

내가 교사가 된다면 학생들의 변화에 발맞추어 나갈 수 있는, 더 나아가 결국에는 학생들을 앞서서 이끌어 줄 수 있는 그런 교사가 되고 싶다. 이번 실습을 통해서 바로 '내가 되고 싶은 교사의 모습'을 찾았다. 좋은 기회를 제공해 주신 한성화교학교와 그리고 학생들, 지도교사 선생님과 학교에 계신 모든 분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독서 감상문]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을 읽고

高 3-3 孫 粝 蓉

셰익스피어는 영국의 시인이자 극작가이며 르네상스기에 활약하며 36편의 희곡과 시 등을 남긴 문호이다. 처음에는 밝은 분위기의 작품을 많이 썼었으나 갈수록 그의 마음은 어둡고 침울해졌다. 그의 변화는 〈오셀로 1604〉〈리어왕 1605〉〈맥베스 1606〉에서 분명해졌다.

그의 작품에서 엿볼 수 있는 이 같은 변화의 원인은 여러 가지로 규명해 볼 수 있으나 가장 확실한 것은 첫째로 당대의 연극적 유행의 변화를 들 수 있다. 관객들은 당시의 낭만적 희극과 역사극에 식상한 나머지 사실적, 풍자적인 희극작품과 인간존재의 궁극적 가치의 문제를 다루는 비극작품을 선호하게 되었다. 둘째로 지적될 수 있는 것은 셰익스피어 자신의 예술적 각성이다. 그는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르네상스 문화 저변에 깔린 비극적 실상을 깊이 인식하게 되었다. 그는 비극적 원천이 악이 저지르는 폭력 속에 있음을 알게 되었다. 악의 막대한 위력 앞에 善이 참패하는 절망적 상황을 그는 체험하게 되었다.

악과 선의 관계를 파헤치고 해명하는 것이 인간존재의 의미와 목적을 정립하는 일이라고 그는 단정하였을 것이다. 그는 이런 엄숙하고 장엄한 주제를 다루는데 있어서 비극의 형식이 가장 효과적인 극 형식이 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1590년대 초에 극계에 진출한 셰익스피어는 약 10년 간 사극과 희극에 중점을 둔 창작생활을 해왔는데 1600년을 경계로 그의 희곡세계는 큰 전환점을 마련하여 어두운 인생의 뒤안길과 인간의 고뇌, 절망, 죽음 등의 주제를 주로 다루는 비극의 시대로 돌입하게 된다.

사랑과 믿음에 근거한 인간의 행복, 기쁨, 사회적 유대감 등을 그는 희극세계 속에서 주로 다루었는데 비극세계에 이르면 햄릿의 대사처럼 "숭고한 이성, 능력, 모습, 거동의 무한한 가능성, 틀림없는 놀

라운 행동력, 천사 같은 이해력, 신처럼 보였던" 인간이 "먼지덩어리로 보이는" 상황에 이르게 된다. 낙천적인 인생이 염세적 인생관으로 희망적 세계관인 절망적 세계관으로 바뀐 것이다.

존경하는 아버지를 잃은 햄릿은 사랑하는 모친의 도덕적 타락과 인간적 배신 그리고 숙부의 배신, 어지러워진 나라 사정, 오필리어의 죽음 등으로 깊은 절망감에 빠져 비통한 최후를 맞는다.

이아고의 간계에 빠진 오셀로 장군은 질투에 미쳐 선하고 착한 데스데모나를 살해한다. 딸들의 불효에 분노한 리어왕은 광야를 헤매고 효심이 지극한 코델리아는 그녀의 선량한 의지 때문에 가련한 죽음을 당한다. 맥베스장군은 마녀들의 꾀임에 현혹되어 끔찍한 살인행위를 범함으로써 스스로 치욕적인 죽음을 택한다. 거대한 악의 힘에 의하여 선한 의지와 행위가 무참히 파괴당하는 비극세계 앞에 우리는 어둡고 침울한 비애감을 느끼기 마련이다.

셰익스피어의 작품에는 <리어왕>, <맥베스>, <오셀로>, <햄릿> 등 4대 비극이 유명하다. 그 중에서도 <햄릿>이란 작품이 널리 알려져 많은 사람이 그 줄거리를 대략 알고 있다. <햄릿>은 <원형햄릿>이라는 복수극으로 존재했었는데 지금 그 작품이 전해지진 않으나 셰익스피어가 이 작품을 소재로 하여 〈햄릿〉을 썼다는 이야기가 있다.

이 작품을 읽으면서 햄릿이 강해 보이나 의외로 우유부단한 면이 있음을 느꼈다. 이것을 하려다 망설이고, 저것을 하려다 망설이고, 선생님의 말씀으로는 사람이 생각이 깊으면 쉽게 행동으로 옮기지 못한다고 하셨는데, 그 말도 일리가 있고 동감이 간다.

햄릿을 보고 있노라면 마리 한 마리의 야생동물 같다. 주체를 하지 못하고 날뛰는 하지만 어째서 햄릿은 복수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는데도 과감히 실천을 못 한 것에 대해서는 의문이 간다. 우유부단한 성격 때문에? 삶을 너무 비관적으로 보기 때문에? 개인적 복수보다는 나라가 먼저라는 생각 때문에?

여기서 나는 복수라는 행위를 과제로 삼고 있으면서도 수행해내기

힘겨워하는 한 인간의 정신이 더듬는 고뇌의 역정과 그 과제에 대한 정신적이며 육체적인 의식적 반응을 보여준 햄릿을 볼 수 있었다.

정말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읽노라면 그의 인간 성격묘사와 심리 묘사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16세기 말부터 17세기 초 영국에서는 '가정비극'이라고 불리는 작품이 성행했다. 그 동안 비극들의 주인공 대부분이 왕후귀족이나 역사상의 인물들이었는데, 이 '가정비극'에서는 중산층의 인간을 주역으로 하고 그 당시 상황을 그 시점에서 수용하여 주로 가정 내에서 일어나는 살인 사건을 다루고 있었다.

<오셀로>도 가정비극이며 셰익스피어는 이 작품의 소재를 이탈리아인 지란디 친 지오의 <백 개의 이야기>에서 얻어왔다고 한다. 그저 '악' 자체를 즐기며 오셀로를 조종해 자신의 아내조차 믿지 못하여 죽이는 장면을 보니, 서로에 대한 불신의 결과는 항상 파멸에 이르고 만다는 단순한 진리를 깨닫게 해 주었다.

내가 개인적으로 두 번째로 마음에 드는 작품은 <리어왕>이다. 아마도 1605년에 쓴 것으로 추정된다. 리어왕은 영국의 전설적인 국왕으로 16세기의 영국문학에서도 가끔 등장하는데 셰익스피어는 그와는 달리 독자적으로 다루었다.

처음엔 이 작품의 서두를 보며 집에 있는 예쁜 동화책 같은 이야기처럼 행복한 결말이라 생각했었다. 하지만 결말을 보았을 때 착한 코델리아 공주마저 죽어버려서 상당한 충격이었다. 내 뇌리에 박힌 '착한 사람은 살고 나쁜 사람은 결국 불행해진다.'는 勸善懲惡의 동화적 고정관념을 여지없이 깨버렸다.

리어왕은 진실을 알지 못하고 그저 듣기 좋은 소리만 쫓아 불행히 닥쳐왔으므로 나는 이 작품으로 하여금 사람은 귀가 얇으면 안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 말은 예전부터 많이 들어왔지만 실행시키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닌 것 같다.

<맥베스> 작품을 단연 최고라 꼽고 싶다. 비교적 짧은 분량과 빠른 장면전환, 등장인물들의 훌륭한 성격묘사 등 여러 가지 요소가 비극으로

서의 극적 효과를 효과적으로 표현하였다. <맥베스>를 읽노라면 꼭 무슨 환타지 소설류 같았다. 만약에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이라는 말만 없었어도 많은 사람으로 하여금 재미있게 읽혀졌을 것 같다.

가장 인상깊은 장면은 남편이 왕이 된 후로 던컨왕을 살해한 죄의식에서 매일 밤 손을 씻는 듯한 행동을 하며 "피가 안 지워진다."는 맥베스 부인의 대사이다. 한 번의 잘못된 선택으로 괴로워하는 그들의 생활이 불쌍하게 느껴졌다.

이 모든 작품들을 다 읽고 나서 많은 생각이 들었다. 4작품은 모두 5막으로 되어 있는데 모든 작품이 착한 사람과 악한 사람이 등장하여 악인의 야욕과 욕망으로 주인공은 모두 파멸하게 된다는데 안타까움을 느꼈다. 결국에는 착한 사람들을 파멸시킨 악인들도 비극적 최후를 맞이하지만 모두가 다 비참한 최후를 맞으니 좀 안타까운 느낌이다.

악인은 나중에 가서는 반드시 그 악한 행동이 드러나서 파멸을 맞이하니, 勸善懲惡이라고는 할 수 있겠으나 주인공들도 악인과 함께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니 분명한 비극이라는 것을 느낀다. 비극은 부정적인 고통을 이겨내라는 뜻에서 있는 것 같은데, 읽은 이 작품들을 거울삼아 매사에 더욱 조심하고 고통에 굴하지 않으며 떳떳하게 살도록 노력해야겠다.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을 읽고

中 2-2 李 傳 禧

리어왕

리어왕에게는 고네릴, 리건, 코델리아라는 3명의 딸이 있었다. 리어왕은 너무 늙어 딸들에게 국토를 나누어주기로 결정하고 딸들이 자신을 얼마나 사랑하는가를 물어본다. 고네릴과 리건은 그들의 사랑을

과장하여 표현하였으나 코델리아는 자식으로서 효성을 다할 뿐이라고 덤덤하게 대답하였다. 이에 화가 난 리어왕은 코델리아를 추방하고 국토를 두 딸에게만 나누어주었다. 그러나 국토를 물려받은 두 딸은 아버지를 구박하였고, 딸들의 냉대를 견디다 못한 리어왕은 켄트와 어릿 광대를 데리고 궁전을 나와 폭풍우가 몰아치는 황야를 헤매면서 두 딸을 저주한다. 이윽고 리어왕은 왕도 한 인간에 불과하며 인간은 한낱 동물에 지나지 않음을 깨닫는다.

프랑스의 왕비가 된 코델리아는 부왕의 말을 전해 듣고 아버지를 구하기 위해 군대를 이끌고 영국으로 진격하였으나 싸움에 지고 아버지와 함께 포로가 되어 코델리아는 병사의 손에 교살된다.

리어왕은 죽은 딸의 시체를 안고 슬픔에 못 이겨 절망한다. 겉으로 보이는 표현만을 보고 판단한 리어왕의 어리석음으로 딸들에게 구걸하는 모습이 너무 안타깝게 보였다. 아버지를 쫓아낸 딸, 그리고 그런 딸을 원망하며 저주하는 아버지. 이들에게 처음부터 사랑은 없었던 것 같다. 하지만 코델리아는 욕심을 위해 거짓말을 하지도 않았고, 비록 자신을 냉정하게 버렸던 아버지지만 목숨까지 바쳐 끝까지 효도했다. 난 그런 모습을 보며 아무리 잘 못 해도 다 받아주시며 사랑해주시는 부모님을 그녀의 효심보다 더 부모님을 소중히 생각하고 효도해야겠다고 느끼게 되었다.

맥베스

스코틀랜드의 맥베스 장군은 전쟁이 끝난 후 돌아오는 길에 광야에서 마녀 셋을 만난다. 마녀들은 맥베스가 코더 영주가 되고 왕이 될 것이라고 말했고 밴쿠오에게는 맥베스보다 못하나 왕을 낳을 것이라고 말한다.

두 장군은 돌아온 후에 마녀들의 말처럼 맥베스는 코더영주가 된다. 그러나 이에 맥베스는 왕과 그 일족을 죽이고 자신이 왕이 되려는 음모를 꾸미고 부인과 함께 왕을 죽이고 왕의 자리에 오른다.

맥베스는 마녀들의 말이 염려되어 밴쿠오의 자손이 왕이 될 것이라는 말이 마음에 걸려 밴쿠오를 죽일 작전을 세운다. 밴쿠오는 죽지만 아들 플리언스는 도망친다. 맥베스는 왕위를 빼앗긴 던컨 왕의 태자가 영국 에드워드 왕에게 몸을 의지하고 도움을 받아 구원을 얻어 사직을 되찾으려 하고 있다는 소문을 듣고 전쟁을 준비한다.

마녀를 다시 만난 맥베스는 맥더프 영주를 경계하라는 얘기를 듣고 그의 아들과 부인을 죽이고, 맥더프는 영국으로 망명하여 맬컴왕자와 나라를 다시 찾을 것을 협의한다. 그때 역시 망명한 스코틀랜드의 귀족인 로스가 나타난다. 맥베스는 전쟁준비를 하고 그의 부인은 병세가 깊어지기 시작한다. 싸움에서 밀린 맥베스는 맥더프와 결투를 벌이게 되고 그에게 목을 잘리고 맥베스 부인은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을 읽으면서 난 작가가 이상한 사람이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들었다. 왜 이렇게 잔인한 이야기만 쓰는 것인지. 세상에 정말 그런 마녀가 있다면 모든 사람들이 다 맥베스 같이 될 것도 같다. 사람은 너무 많은 욕심이 있으면 안 될 것 같다. 욕심이 많아지면 그만큼 잔인해지는 것인지도 모른다. 나도 이제부턴 쓸데없는 욕심을 버리고 살아야 할 것 같다.

오셀로

베니스 시내. 고관인 브러밴쇼의 외동딸 데스데모나를 차지하고 싶어하는 로더리고와 오셀로가 지휘관에 임명된 것을 시기하는 이아고는 오셀로를 없앨 계획을 세운다. 오셀로의 결혼과 전승 축하의 밤에 부관인 캐시오는 이아고의 권고로 마실 줄 모르는 술을 마시고 칼을 휘두르는 사태를 일으키게 되었다.

그 자리에서 신분을 박탈당한 캐시오에게 이아고는 데스데모나에게 간청하라고 이르고 두 사람이 만나는 것을 본 오셀로는 의혹과 질투를 갖게 된다. 이아고는 데스데모나의 손수건을 캐시오의 방에 감추고 오셀로에게 이를 보여주자, 오셀로는 이아고에게 캐시오를 살해하라고

명하고 자기는 아내를 살해하기로 결심한다. 로더리고의 충동에 캐시오를 살해하려던 이아고의 음모는 밝혀지지만 오셀로는 그것을 모른채 아내를 살해하고 만다. 뒤늦게 모든 사실을 알게 된 오셀로는 자신의 잘못을 탓하며 자살한다.

사람을 의심해서도 안되지만 너무 믿어서도 안될 것 같다. 믿음직한 사람인 것 같아도 그에게 모든 걸 의지하고 이야기 해주고 그러기 전에 신중히 생각해봐야겠다. 과연 믿을 수 있는지. 그리고 남의 감정을 노리고 이용하는 사람은 정말 나쁜 것 같다.

햄릿

햄릿의 아버지. 형을 죽이고 왕이 된 클로디어스 삼촌. 이런 사실은 아버지의 망령으로부터 알게 되었고 사느냐 죽느냐의 기로에 서서 왕의 살해 사건을 재연시켜 가는 과정 속에서 벌어지는 여러 사건들.

햄릿이 오필리어를 너무 사랑한 나머지 상사병으로 머리가 미쳤다고 생각한 플로니어스는 아들 레이티즈를 멀리 보내고 햄릿을 오필리어와 떼어놓으려 애쓴다. 그 와중에 햄릿은 아버지의 원수를 죽이기 위해 준비하고 그러던 중 실수로 플로니어스를 죽이게 된다. 그 충격으로 오필리어가 실성하였다가 죽음을 맞이하고, 레이티즈가 돌아와 클로디어스에게 햄릿을 죽이겠다고 하자, 둘은 꾀를 써서 작전을 짜고 거트루트 왕비도 함께 휘말리게 된다. 레이티즈와 햄릿이 대결을 하다가 거트루트왕비가 독배를 마시고 그 사이 레이티즈가 햄릿을, 햄릿은 레이티즈를 독이 묻은 칼로 찌르게 된다. 이것이 모두 클로디어스와 자신의 음모였던 것을 밝히고 쓰러진 레이티즈는 죽고 그 말을 듣고 햄릿은 왕을 죽이고 호레이셔에게 유언을 남기고 자신도 죽음을 택한다.

이 글을 읽고 나는 아무리 힘들고 어려운 일이 있더라도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선 간단하고 위험한 방법보다는 어렵더라도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안전한 방법을 선택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빌 게이츠의 <미래로 가는 길>을 읽고

高 3-1 曹 晴 雲

책을 덮으면서 뒤 표지에 그려진 고속도로를 보았다. 그리고 저 지평선 너머 무엇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 하고 생각해 보았다.

나뿐만 아니라 인간은 그러한 호기심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가보지 않은 길에 대한 인간의 호기심은 끊임없는 탐구를 하게 하였고, 오늘날의 사회를 이루었다.

불의 발견으로 인류는 정착생활을 시작했고, 문자의 발명으로 문명생활을 영위하였으며, 인쇄술의 발전으로 지식의 전파가 가능해졌다. 끝없는 탐구와 호기심이 이러한 모든 것을 이루어 내게 했으리라.

21세기, 지금 우리는 정보산업 사회에 살고 있다. 빌 게이츠는 참으로 위대한 사람이다. 세계에서 가장 많은 부를 축적한 사람으로 허름한 창고에서 출발하여 세계 제일의 기업을 일궈 낸 사람. 그러나 그의 그런 외면적인 것보다 그 사람의 내면적인 창의적인 사고와 냉철한 예지가 정말 부럽다.

대형 컴퓨터에서 개인용 PC로 넘어가는 시장의 흐름을 예측하여 컴퓨터의 일반화를 주도했고, 이제는 미래를 향한 비전을 제시하니 그의 생각은 도대체 어디까지일까?

사람이란 존재는 항상 진보를 추구해 왔다고 할 수 있다. 책을 읽어 나가면서 그것은 편안함을 추구한 결과라는 생각이 들었다. 도구를 사용한다는 것 자체가 편리를 추구하는 것이 아닌가. 지금의 현대 사회가 이전 보다 훨씬 더 편안한 삶을 향유하는 것과 같이 미래의 사회는 지금의 사회보다 더 편하게 생활할 수 있도록 변화할 것이다. 정보고속도로는 바로 그것을 위해 구축된 것이며, 그것을 통해 수많은 일과 서비스가 사람들의 손과 발에 자유를 줄 것이다.

미래 사회가 이렇게 변화되면 집안에서만 생활하게 되어 외부와 단절된 생활이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가 집에서 TV와 VTR을 보면서도 밖에 나가 멋진 영화를 보고 싶어하는 것처럼 그런 단절은 생

겨나지 않을 것 같다. 앞으로 경계해야 할 것은 주어질 편안함과 안락함이 가져 올 폐해이다.

지금 보다도 훨씬 편한 생활을 할 미래의 사람들은 시간적 여유가 더욱 많아 질 것이다. 그 시간들은 자기 계발 등의 건전한 생활로 발전시켜야 할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그 시간에 엉뚱한 생각을 한다면 지금의 공상 과학 영화에서 보여주는 미래의 모습대로 폭력과 살인이 난무하고 기계들이 주도하는 삭막하고 오염된 사회로 가는 가능성이 보다 높아 질 수 있다. 앞으로의 사회가 계속 편안함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진행된다고 해서 그것에 섣불리 동참하여 일신의 편안함만을 생각한다면 좋지 못한 결과가 있을 수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한국의 교육열은 다른 어떤 나라보다 월등히 높은 만큼, 빠른 시일 안에 보다 많은 컴퓨터의 보급과 도시는 물론 농어촌 지역까지 통신망이 연결되어 앞으로 다가올 정보 고속도로에 대처할 수 있는 교육이 뒷받침되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바른 정신교육과 함께.

이처럼 인류는 계속 번성할 것이며 더욱 많이 변화할 것이기에 우리 청소년들은 다가올 시대를 우리의 시대로 만들기 위해서는 무기 없는 전쟁을 치르지 못하듯이 강인한 정신력과 각자의 적성에 맞는 기술로써 능력을 키워나가야 할 것이다.


<로마인 이야기>를 읽고

- 로마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다 -

高 2-2 謝 愼 珍

처음 방학 숙제로 <로마인 이야기>를 읽어오라는 선생님의 말씀에, 나는 솔직히 선뜻 내키지는 않았다. 우선 굉장히 서술이 많아 복

잡한 것도 그렇고, 또 나는 '로마'에 대해 좋은 인상을 가지고 있진 않았기 때문이었다.(선입견이랄까) 읽는 도중에도 답답해서 책을 닫곤 했다. 그러다 점점 '로마'라는 나라에 흥미를 갖기 시작하였다.

로마는 많은 나라와 전쟁을 치러서 승리했음에도 불구하고 결코 거만하게 굴지 않았으며, 오히려 패배한 국가들을 관대하게 대해주고 고마 시민권까지 주었다고 한다. 다른 나라와 반대로 자기 나라에 동화시키는 방식을 택했던 것이다. 이 방식은 후에 '로마 연합'에까지 이르렀다 한다. 그러면서 로마는 점점 강대국이 되어간 것이다. 나는 이 독특한 방식과 로마의 끈기와 신중함을 격찬하지 않을 수 없었다. 또한 타국과는 달리 노예들에게도 자유를 되찾을 권리도 쥐어 주었다. 로마는 그 시대와는 달리 꽤나 민주적인 국가였던 것 같다.

하지만 내가 로마에 대해 가지고 있었던 좋지 못한 선입견은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로마 시대를 거쳐오는 이야기들 중에, 나에게는 추잡하고 더럽게 보이는 역사가 많았기 때문이다. '역사'는 깨끗하기만은 할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예를 들면, 로물루스가 후세를 넓히기 위해 이민족 여인들을 강탈한 일이나, 자신의 야망을 위해 연인을 구슬려 자기의 친아버지인 세르비우스를 살해한 일, 또 친척인 콜라티누스의 아내를 사랑해서 간밤에 그녀를 욕보이게 한 섹스투스 등등. 그 당시의 나라가 아직 혼란스러워 있을 법도 한 일인지도 모르겠지만, 로마에 대한 실망감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로마에는 수많은 영웅들이 살았다. 그 중 가장 감명 깊게 읽었던 영웅 이야기는 '무티우스'라는 로마인 청년의 용맹함과 담대함

에 대한 이야기였다. 그는 적진에 붙잡혔음에도 불구하고, "오직 겁쟁이만이 일신의 안녕을 염려하는 법이다!!" 라고 외쳤을 때, 나는 무티우스가 자기 나라에 대해 가지고 있는 충성심에 깊이 감동 받았다. 이렇듯 로마엔 그뿐만 아니라 많은 영웅들이 있었다. 어쩌면 로마가 여러 나라와 동맹을 맺고, 여러 나라와 접해 있었기 때문에 수많은 인재들이 탄생했던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켈트족 침입 때, 로마는 잊지 못할 굴욕을 당하였다. 평민들의 어리석음으로 훌륭한 인재인 카밀루스를 쫓아내지만 않았어도 켈트족의 침입을 막을 수 있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평민들은 그를 내쫓았고, 곧 로마는 건국 이래 처음으로 굴욕을 맛보아야 했다. 그래도 로마인은 다행히 좌절하지 않고 오히려 그 굴욕을 교훈으로 삼아 로마는 더욱 더 강대한 국가로 성장하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기억에 남는 것은, 그리스의 병법의 천재 피로스와 그의 측근인 키네아스의 대화이다. 작자 시오노 나나미는 그들의 대화를 유쾌한 에피소드라고 표현했지만 나는 왜 그것이 '유쾌한' 건지 모르겠다. 키네아스는 피로스에게 전쟁이 끝나면 어떻게 할 거냐고 물었고, 피로스는 더 큰 야망에 대해 늘어놓았다. 또 그 후엔 어쩔 거냐고 묻자, 그는 "날마다 술을 마시면서 보내겠다"고 대답한다. '곤드레 만드레 취해서 지나간 싸움들을 즐겁게 회상하며 지내는 것이 어떠냐?' 나는 이 부분을 읽으면서 솔직히 허무함밖에 느끼지 못했다. 승리한 뒤에 결국 그렇게 진탕하게 놀려고 수많은 전쟁을 치르며 많은 사람을 죽인 것인가? 지나간 싸움을 회상하는 것이 즐거울까? 썩어 문드러진 시체더미를 헤집고 다니며 죽이고 죽이는 일이...... 내가 너무 이상만을 추구하는 것일지도, 또는 내가 피로스의 진면목을 파악하지 못해 제멋대로 흥분한 걸지도 모른다. 그래도 난 납득이 잘 안 되었다. 분명 모든 나라들이 그렇게 전쟁을 치르며 비로소 나라가 된 것일 테지만...... '꼭 다른 나라를 침범하면서까지 야망을 충족시켜야 했을까, 서로 공존하며 살 수는 없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로마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다.' 당연하다. 수많은 영웅들과 사람들의 노고와 끊임없는 야망이 이어져가며 나라는 완성된다. 결코 하루아침에 이뤄질 리가 없는 것이다......


<할머니, 군 위안부가 뭐예요?>를 읽고

中 3-3 賀 常 煢

일본은 1930년대 초부터 일본 육て해て공군 부대 전체에 위안소를 세우고 식민지와 점령지에서 강제로 여성을 끌고 가 군인들의 성 노예로 사용했다가 전쟁이 끝난 뒤 전쟁터에 버리고 돌아왔다.

위안부들의 위안소 생활은 감옥보다도 못했다. 위안소는 부대 근처에 건물을 지어 군의 철저한 통제 아래 민간인 업주가 운영해 왔으며, 위안부의 생활과 군인들의 이용 요금 등에 대한 규정이 확실했다. 위안부들은 월 2회 각 부대의 군인에게 성병 검진을 받았고, 필요한 최소한의 물자를 지급 받았으나 생활은 철저하게 억압, 통제되었다. 뿐만 아니라 부대가 이동할 때에는 위안부도 끌고 다녔다. 그밖에 위안부 여성들을 부대로 끌고 가 강간하기도 했다. 위안부들은 모든 인권을 무시당한 채 위안부 노릇뿐 아니라 군인들이 필요로 하는 모든 분야에 이용되었다.

위안부들이 전쟁터에 끌려가게 된 경위는 다양하다. 납치, 강제, 협박, 사기, 심지어 친일 세력 언론에는 위안부 모집 광고도 있었으며, 친일 세력 여성들도 한 몫 하였다. 전쟁이 끝난 뒤 많은 위안부들은 일본군에 의해 여러 가지 방법으로 죽여졌다. 주위의 조선인이나 현지인의 도움을 받아 귀국할 수 있었던 사람들도 있었지만 그 숫자는 극히 소수일 뿐이었다.

이런 위안부들의 생활을 본격적으로 거론하기 시작한 것은 불과 10여 년 전부터이다. 직접 위안부들의 증언을 들을 수 있었던 것도 최근 들어서이다. 내가 이 책을 읽게 된 동기는, 작년에 이 책을 엮은 분 가운데 한 분을 뵙게 되었는데 바로 그 분한테서 책을 받게 되어서이다. 처음엔 별 생각 없이 읽었지만 책 마지막 장까지 읽고 난 뒤, 내 마음은 일본에 대한 분노로 가득 찼다.

사람이 어떻게 다른 사람의 인권을 그렇게까지 짓밟을 수 있을까? 그 위안부들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그런 기억조차 하기 싫은 일들을 다

시 말했을 때는 도 어떠했을까? 자신이 받은 모욕과 고통을 밝히기까지 얼마나 힘들었을까? 정말 많은 의문들이 사라지질 않는다.

위안부였던 사람들은 전쟁 뒤에도 하루도 편히 생활하지 못했다고 한다. 하루에도 여러 번씩 그 당시 악몽에 시달리고, 과거 위안부였다는 사실에 결혼도 못하고 홀로 세상과 등진 채 살고 있는 사람들도 있고, 아무에게도 말못하고 모든 것을 마음 속에 묻은 채 수십 년을 혼자 가슴앓이 하면서 지내온 사람들도 있고...... 정말 생각할수록 가슴 아프다.

더욱 화가 나는 것은 일본 교과서에서는 이를 "종군위안부(從軍慰安婦)"라고 소개했고, 위안부 문제에 애해 일본 정부에서는 부인하려 하며 아무런 대책도 세우지 않는다는 것이다. "종군 위안부"에서 "종(從)"은 "자진해서"라는 뜻이 담겨 있다. 가족들을 죽이겠다는 협박에 못 이겨서, 이런 저런 꾀임으로 끌려갔는데 어찌 조금이라도 "자진해서"라는 표현을 쓸 수 있는가? 또 한편, 옛날 여성들의 권리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되었다. 일본군이 전혀 잘못이라는 생각이나 부끄러움 없이 여성을 그저 장난감으로 썼다는 점에서 여성의 존재가 그 정도에 불과했었다는 사실에 참 화가 났다.

아무리 부인하여도 역사는 모든 것을 말해주고 있다. 일본이 과거 위안부들 중 지금 살아있는 사람들에게만이라도 진심으로 사과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앵무새 죽이기>를 읽고

高 3-4 譚 秋 錦

<앵무새 죽이기>, 이 책의 제목을 처음 들었을 때 재미가 없을 것 같아 별 기대 없이 읽기 시작했다. 그러나 읽어 나갈수록 책이 주는 세상에 대한 시각이 나로 하여금 많은 생각을 할 수 있게 해 주었다. 이 책에서는 작은 마을에서 사람들 사이에 벌어지는 사건이나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데, 꼭 모든 사회를 압축시켜 놓은 듯하다.

여기서 '앵무새'는 미국에서만 사는 앵무새로 인간에게 해를 끼치지 않고 노래만 불러주는 새를 말한다. 그리고 작가는 그 앵무새를 다른 관점에서 다르게 생각했다. 인간에게 해를 끼치지 않으면서 인간을 즐겁게 해주는 것, 즉 인간에게 이로운 것을 죽여버리고 있는 세상을 비판하고자 이러한 제목을 쓴 것 같다. 하지만 나는 이 뜻을 알고 나서도 왜 앵무새가 꼭 그 뜻을 나타내는 것인지 생각해야만 했다. 아마도 그때 난 앵무새가 흑인을 의미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 같다.

1930년대, 어린 여자아이 스카웃의 관점에서 일곱 살부터 열 살까지의 이야기가 서술되는 이 책에는 톰 로빈슨이라는 흑인이 나온다. 톰은 억울한 누명을 쓰고 교도소에 갇혀 있다가 스카웃의 아버지에 의해 공개 재판에서 죄가 없다는 것이 증명되지만 그 재판의 배심원들은 톰을 아니 흑인을 유죄라고 판정한다. 죄가 없다는 것은 알지만 그 배심원들은 흑인을 무죄라고 하기엔 용기가 없었다. 흑인을 무죄라고 한다는 것은, 그때까지 흑인이 백인보다 아래라는 인식을 깨뜨려버리는 것이었기 때문이 아닐까? 그리고 그것을 깨뜨리기에는 그들은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그리고 톰은 상소가 남아있었는데도 자살을 하고 만다. 이렇듯 그 시대의 흑인이란, 자유는 있었지만 평등은 없었던 것이다. 그렇기에 난 이 책의 주제를 인종차별을 없애는 것이라고도 생각하게 되었다. 물론 그것도 주제에 포함되는 비중이 크긴 하지만 진짜 주제는 좀 더 포괄적인 것이었다.

메이컴이라는 변화가 전혀 없는 평온한 마을에서 꼬마 말괄량이 숙

녀 스카웃과 여러 가지 생각을 가지고 사춘기를 겪는 그녀의 오빠 젬, 스카웃과 결혼하겠다는 개구쟁이 딜이 겪는 삼 년 남짓한 일들은 굉장히 심오하지만 우리에게 별로 어렵지 않게 다가온다. 그리고 그 이야기들은 각자 자신들의 어린 시절 추억과 하늘빛 같은 웃음을 떠올리게 하며 인생에 대한 많은 교훈들을 안겨준다. 청소년들에게는 어른들의 삶, 사회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자연스럽게 느끼고 잘못된 점은 고쳐나갈 준비를, 그리고 어른들에게는 어린이와 청소년들에게 부끄럽지 않게, 그리고 그들에게 올바른 정의를 가르쳐줘야 할 의무를 가르쳐준다.

이 책은 사회 변화에 대한 이야기는 아무 것도 없다. 책 처음 부분이나 끝 부분이나 메이컴 마을은 똑같아 보인다. 하지만 그 속에서 우리는 메이컴 사람 각각의 마음에 자신도 알지 못하는 얕은 파도가 이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사회의 커다란 변동은 갑작스럽게 이뤄지는 것이 아닌, 조금씩 조금씩 이루어져 완성된다는 것을 암시하는 것이다.

이 책을 읽는 내내 나는 나와 떨어져 있는 오빠 생각이 많이 났다. 스카웃과 젬이 서로 지내는 모습이 우리 남매 어릴 적과 매우 비슷했기 때문이다. 둘은 서로 싸우기도 하지만 스카웃은 젬의 방황을 잘 지켜 봐주고 젬은 어린 스카웃을 잘 돌봐준다. 그 모습들 때문에 딱딱한 이 소설이 마음 따뜻한 소설이 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제목은 '앵무새 죽이기'이지만 작가는 앵무새를 죽이면 안 된다는 것을 우리에게 가르쳐주고 싶었을 것이다. 앵무새는 우리에게 전혀 해를 입히지 않고 고운 노래를 들려주는 그런 새이니깐 말이다.

마지막으로 이 책에서 가장 마음에 와 닿는 것은 바로 '잘못된 것을 인정하는 용기의 참 모습'이었다. 이것은 우리 사회에서 보기 드물지만 없어선 안 되는 것이고, 앞으로 점점 더 많아져야 할 것이다. 나도 스카웃의 아버지 같은 현명하고, 정직하고, 아이들뿐만이 아니라 모든 사람한테 더 없이 따뜻한 사람이 되고 싶다.

<앵무새 죽이기>를 읽고

高 3-4 冷 宜 學

이 소설은 어린이의 관점으로 쓰여진 형식의 소설이다. 소설의 내용은 훌륭한 아버지 밑에서 자라난 소녀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이야기다. 소녀는 메이컴이란 마을에서 자라났으며, 메이컴에서는 여러 가지 자신이 이해 못 하는 일들이 일어나고 그것을 풀어나가게 된다.

나는 이 소설 중에서 가장 흥미진진하고 감명 깊었던 부분은 바로 아버지가 변호사로 나오는 재판 장면이었다. 억울하게 누명을 쓴 한 흑인은. 아버지가 온 힘을 다하여 그 진상을 밝혀내고 누명을 풀어나갔지만, 결국은 흑인 이 재판에서 이긴 적은 한 번도 없다는 그런 관례와 사회적인 차별 앞에서 좌절하고 만다. 결국 흑인은 교도소로 끌려가게 되고, 탈출하려다가 총살을 당하게 된다. 주인공 스카웃과 그의 오빠 젬은 이것을 보고 분노를 느낀다. 그들은 자신의 가정부인 흑인 여자와 항상 한 가족처럼 지냈으며, 그의 아버지로부터 항상 공평하고 올바른 것만 배워왔다. 당시 사회에 있었던 심각한 인종차별, 즉 흑인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천대를 받으며 멸시를 당하던 그 때, 순수한 아이들의 관점으로는 이것은 올바르지 못한 것일 뿐만 아니라 이해조차도 할 수 없는 것이었다.

이 소설에서 또 다른 중요 장면은 아마도 부 래들리에 관한 것일 거다. 부 래들리란 사람은 항상 메이컴이란 마을에서 괴물 취급을 받았으며, 사람들은 언제나 그를 무서워했다. 그러나 스카웃과 그의 오빠는 부 래들리에게 언제나 많은 도움을 받았으며, 마지막으로 부 래들리는 그들의 목숨마저 구해준다. 그로 인하여 스카웃은 그 사람이 소문과는 정반대로 따뜻한 사람인 것을 느끼며 그와 친구가 된다. 이 사건 역시 차별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상대를 제대로 알지도 못 한 상태에서 남을 헐뜯고 비난하는 일은 결코 옳지 못한 것이 아니던가?

나는 이 책 속의 여러 가지 사건들을 통하여 자신을 일깨우고 다시 한 번 반성하는 계기를 갖게 되었다. '나는 혹시 사람들을 차별하지

않았을까? 내가 혹시라도 마음 속에 우월감을 갖고 교만에 빠져있지는 않을까? 사람을 겉모습으로만 판단하고 대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끊임없이 떠올랐다. 진정으로 공평하고 평화로운 사회를 살아가고 싶으면, 우선 자신부터 반성하는 것이 좋을 듯 싶다.

끝으로 모든 사람들이 이 소설의 스카웃이나 젬처럼 언제나 올바르고 공정하며 순수한 마음을 갖게 되는 날이 온다면 이 사회는 더 이상의 차별이나 의심, 또는 비난 같은 부질없는 것들은 업어질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쉬어 가는 페이지]

가장 값진 선물

<생활성서>(1997년 1월호)

몇 년 전, 초등학교 교사인 옛 친구가 내게 들려준 이야기입니다.

내가 6학년 담임을 할 때였어. 그 학생은 처음 보았을 때부터 졸업할 때까지 늘 허름한 차림이었어. 나는 다른 학생들에게 하듯이 그 애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그대로 인정해 주었지. 그 애는 유리창을 깨끗이 닦았고, 누가 보든 안 보든 물걸레를 깨끗이 빨아 책걸상을 닦았어. 비 오는 날 찢어진 우산으로 친구를 바래다주었고, 수업 시간에 반짝이며 들었어. 당당하고 따뜻했어. 그는 보석처럼 빛나기 시작했지. 학교에 입학해서 6년 만에 처음으로 반장 후보가 된 거야. 62명 중 52명의 표를 얻어 반장이 되었어. 그의 순수함은 주위 친구들을 순수하게 만들었지. 전교 학생회장이 되었어. 5학년 때 담임 선생님은 그 학생의 변화를 못 믿겠다는 투로 바라봤지. 내 경험으로 당연한데 말이야. 졸업식 날 그 애는 전체 수석을 했어. 졸업식을 마치고 그 학생의 부모님께서 나를 찾아오셨어. 6년 동안에 학교 오는 일이 처음이래. 그분들이 내게 인사를 했어. "선생님 인사할 줄도 모릅니다. 고맙습니다. 그저 고맙습니다. 선생님, 부끄럽지만 저희들의 작은 정성입니다." 그분들은 허름한 포장지로 싼 선물을 주고 가셨어. 난 고마운 마음에 그냥 받았지. 텅 빈 교실에 앉아 조심스럽게 포장지를 펼쳤지. 포장지 안에 들어 있는 선물, 그것은 라면 두 봉지였어. 주르륵 내 눈에서 눈물이 흘렀지. 난 가난을 알지. 그리고 그 가난 속에서 사랑이 꽃핀다는 사실을 알지. 그것은 내가 받은 선물 중에, 또 내가 받을 선물 중에 가장 값진 선물이란 걸 나는 알았지.

[영화 감상문]

<집으로>를 보고

高 3-3 崔 勇

영화 「집으로」는 이정향 감독의 두 번째 작품이다. 이정향 감독의 특유의 여성으로서의 섬세함이 엿보이는 작품이다. 그녀의 이전 작품인 「미술관 옆 동물원」에서도 느꼈던 그녀만의 독특한 작품 세계를 보여주었다.

주요 내용은 시골에 계신 외할머니와 도시에서 살다 온 외손자와의 사랑으로 할머니의 내리사랑을 정감 있게 다루었다. 지금의 초대형의 초호화 캐스팅의 스타 시스템인 영화화는 사뭇 다르다. 주인공을 제외한 모든 출연진이 전문 배우가 아닌 마을 주민들로서 더욱더 소박하고 때묻지 않은 순수함을 느낄 수 있었다.

할머니와 손자의 동거는 처음부터 어긋났다. 햄버거와 후라이드 치킨으로 대표되는 인스턴트식품세대인 손자는 두메산골에서도 인스턴트 식품을 내놓으라고 할머니를 다그쳤고, 할머니는 손자를 위해 닭백숙을 하고, 배고픔에 지친 손자가 맛있게 먹는 모습에서 처음과는 달리 서로 어울릴 수 있음과 융합의 가능성을 보여 주었다.

손자를 위해 초코파이를 사는 할머니. 발이 커져서 작아져버린 신발을 보며 새로 운동화를 사주는 할머니. 머리를 잘라 주는 할머니의 손길에서 맑고 아름다운 사랑을 느낄 수 있었다.

영화를 보면서 나는 나의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손자의 철없는 행동을 보며 나의 어린 시절만 같아서 눈시울이 뜨거워짐을 느꼈다. 나도 어린 시절에 외할머니 손에서 자랐다고 한다. 그런데 지독스럽게 할머니의 말씀을 잘 듣지 않았다고 한다. 왜 그랬는지,......

영화는 계속 맑은 수채화 같은 느낌으로 고향의 정을 느끼며 향수에 젖게 하였다. 조부모를 여읜 사람들에게나 부모를 여읜 사람들에게 다시 한번 그들의 뿌리를 생각하게 해 주었다고 생각한다. 부모 없는

자식 없듯이 잔잔하게 그려지는 할머니의 사랑은 우리가 평소에 느끼지 못했던 부모님의 사랑을 가랑비에 옷 젖듯이 그렇게 느끼게 해주었다. 무언가 특별함 없이 순차적 시간 배열로 구성되었으며 비슷한 구조가 반복되지 않으면서 부담 없이 감동을 느낄 수 있는 영화였다.

기회가 되면 이 영화를 한 번 더 보고 싶다. 못 보고 지나친 장면은 없는지 다시 한 번 이정향 감독의 분위기에 젖어 보고 싶다.



<소림 축구>를 보고

高 2-2 徐 彦 中(영화토론반 회장)

감독:주성치 / 주연:주성치,조미,오맹달

이 영화는 주성치의 최근 개봉작으로 전체적인 분위기는 역시 코믹스럽다. 물론 유치하다고 욕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하지만 진정한 주성치의 팬이라면 또는 그의 영화의 팬이라면 꼭 봐두어야 할 것이다. 주성치 그는 정말 대단한 사람이다.

그는 그만의 영화를 만드는데 성공했고 그만의 영화는 이미 굉장히 많은 매니아층을 구성하고 있다. 그의 영화는 대개 일반인들이 상상하지 못한 것들로 이루어져있고 언제나 사람들을 황당하게 만든다. 하지만 그가 그 자리까지 가기 위해 굉장히 힘들게 자신만의 영화를 만들어 왔다는 것은 주성치 영화를 봐왔던 사람들이라면 누구라도 알 수 있을 것이다.

영화의 전반적인 내용은 이렇다.

다리를 절뚝거리면서 퇴물취급을 받는 오맹달...그는 축구코치가 되고 싶어 하지만 어느 구단에서도 그를 받아 주지 않는다. 어느 날 그는 주성치를 만나게 된다. 주성치는 소림사에서 무적금강퇴를 배운 무쇠다리였는데 사부가 돌아가신 뒤론 줄곧 할 일 없이 지내 곤했다. 오맹달도 처음엔 그저 거짓 인줄 알고 모른척하며 지내다가 우연히 그의 다리가 보통 다리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곤 오맹달은 축구팀을 결성하기로 결심하고 주성치는 곧 자신들의 옛 사형들과 사제를 찾아 “소림 축구단”을 결성하게 된다.

홍콩 영화계는 소재의 고갈로 90년대 중반을 맞이하면서 회복하기 힘들 정도의 침체기를 겪었다. 그런데 그 침체기를 홍콩 영화계는 세기가 바뀐 지금 전성기로 바꾸려고 하고 있다. 그 첫 번째 신호탄이 바로 주성치가 감독하고 주연을 맡은 소림 축구일 것이다. 일단 주성치라고 하면 대부분의 관객들이 질색을 하는 것이 사실일 것이다. 물론 매니아들이 주성치의 영화를 꾸준히 보아 준 것은 사실이지만, 그 이외의 관객들은 주성치의 과장된 몸짓과 연기를 즐기기에는 불편한 심기가 작용했기 때문이다. 헐리웃의 짐 캐리 못지 않은 슬랩스틱 코미디가 일반 관객들에게는 웃음을 주기보다는 혐오감을 주었으며, 주성치 영화는 비디오용이라는 편견을 낳게 한 것이다.

그러나 소림 축구는 다르다. 관객들에게 웃음을 제공하지만 주성치가 관객들을 불편하게 할 만한 슬랩스틱 코미디는 연출되지 않는 것이다. 그것보다는 축구를 통해서 주성치를 비롯한 세상에서 인생에 낙이 없는 동료들을 하나로 뭉치게 하고, 관객들에게 소림 무술과 축구가 하나 되는 하나의 쇼를 보여주는 것이다. 축구 경기가 진행되는 모습은 헐리웃 작품 못지 않은 CG와 특수효과를 보여준다. 공이 날아가면서 불꽃이 일고, 잔디가 공의 바람 때문에 뽑히는 장면 등은 특수효과의 승리이면서 소림 축구가 침체되어 있던 홍콩 영화계를 살려놓는데 일등

공신이라는 것을 입증하는 셈이다. 이로써 주성치는 대중에게 한발 더 다가갈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였고, 일부 관객들에 자신의 대한 편견을 제거하는 성과를 올렸다.



<스파이더맨>을 보고

高 2-2 程 丕 文

장르: 액션

감독: 샘 레이미

주연: 토비 맥과이어, 윌리엄 데포

평범하고 내성적인 고등학생 피터 파커, 그는 우연히 방사능에 감염된 거미에 물린다. 그 후, 피터는 손에서 거미줄이 나오고 벽을 기어오를 수 있는 거미와 같은 능력을 갖게 된다. 무엇보다 자신에게 닥칠 위험을 감지할 수 있는 본능적 감각과 엄청난 파워를 소유하게 된 것이다.

처음에 피터는 자신도 모르게 생긴 초능력을 돈을 버는데 사용한다. 그러다 사랑하는 벤 아저씨의 죽음을 계기로 그 힘을 악의 세력에 대항하는데 쓰기로 결심하는데...

한편, 피터의 이웃집 아저씨이자 과학자인 노만 오스본은 실험 도중 가스에 중독되어 초강력 파워를 가진 악당 그린 고블린으로 변해 지상의 질서를 어지럽히며 스파이더맨과 운명적 맞대응을 시작한다.

세상의 파워를 지배하는 남자 스파이더 맨. 특종을 포착하는 기자로서, 사랑에 빠지는 평범한 남자로서, 악당에 맞서 싸우는 영웅으로서 세계는 비로소 기다려왔던 진정한 영웅을 만나게 될 것이다.


원작이 있는 영화가 제작되어질 때 가장 먼저 선택의 갈림길에 서게되는 건 '원작의 충실한 재현'을 할 것이냐 아니면 '영화로만 느낄 수 있는 원작의 각색'을 시도 할 것이냐 일 것이다.

스파이더맨은 이러한 선택의 갈림길에서 '영화로만 느낄 수 있는 원작의 충실한 재현'을 선택한 작품이다. 그린고블린이라는 원작에서의 맞수와의 대결뿐만 아니라, 피터와 그 주변 인물들간의 관계까지 원작에 아주 가깝도록 연출함으로써 원작을 아는 이들에게 반가움을 선사해주고 있으며, 만화나 애니매이션으로는 느낄 수 없는 스파이더맨의 역동적인 움직임을 통해서 영화로서의 스파이더맨의 장점을 최대한 부각시켜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장점이 한편으로는 단점이 되기도 한다. 권선징악이라는 예스러운 주제나 '힘을 가진 자는 그 힘에 대한 책임이 따른다'는 교훈적인 이야기는 다른 한편으로는 스토리에 단조로움을 가져오고 있으니 말이다.

스파이더맨은 판권문제로 오랫동안 영화화되지 못했다, 그로 인해 팬들을 오랫동안 기다리게 했던 스파이더맨은 확실하게 팬들의 기대 이상을 보여 주었다. 광대한 스크린에 펼쳐지는 어느 누구도 아닌 그만의 리드미컬한 액션을 통해서, 관객들을 기쁘게 했다.

마지막으로 내가 스파이더맨을 꽤 좋아함에도 영화 속에서 아쉬웠던 장면이 2가지 정도 있었는데, 첫째는 9.11테러이후 쌍둥이 빌딩 장면을 삭제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영화 속에서 화재 장면 중에 아이를 구출하는 장면은 9.11테러이후 삽입한 장면이라고 한다. 구하지 못한 목숨에 대한 애도의 뜻이 담겼다고나 할까... 그리고 또 한가지 영화 마지막 부분에 미국 성조기에 매달려있는 스파이더맨은 꼭 미국인이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는 것 같다.




[이런 이야기]

재물에 관한 지구촌 속담

생활성서(2002년 6월호)

♠부자 아내를 가진 것은 주인을 가진 것이지 아내를 가진 것이 아니다.

- 그리스

♠하느님보다 좋은 친구도 없지만 돈보다 더 좋은 친척도 없다. - 멕시코

♠재산은 건강을 가져오지 않고 오히려 가지고 사라진다. - 불가리아

♠가난한 사람은 돈만 생기면 행복할 거라 생각하고, 부자는 위궤양만 나 으면 행복해질 거라 여긴다. - 서양 속담

♠부호의 잘못은 돈으로 덮을 수 있고, 의사 잘못은 흙으로 덮을 수 있다. - 영국

♠위대한 사람의 좋은 음식은 가난한 사람의 눈물이다. - 영국, 미국

♠돈이란 악함도 저주도 아니며, 인간을 축복하는 것이다. - 이스라엘

♠돈이란 인정 없는 주인이기도 하지만, 반면 유익한 심부름꾼일 수도 있 다. - 이스라엘

♠돈이 말하면, 세상은 침묵한다. - 독일

♠부자와 담배꽁초 통은 쌓일수록 더럽다. - 일본

♠사람은 횡재가 없으면 부자가 되지 못하고, 말은 밤에 풀을 먹이지 않으 면 살찌우지 못한다. - 중국

♠돈 있는 사람은 옷 입기 귀찮다고 겨울을 원망하고 가난한 사람은 입을 옷이 없다고 겨울을 원망한다. - 중국 소수민족

♠돈을 위해서는 개도 춤추고 빵을 주면 그대도 춤춘다. - 콜롬비아

♠부자가 넘어지면 재난이라고 말하고, 가난한 사람이 넘어지면 술에 취했 다고 한다. - 터키

♠부자는 수탉도 알을 낳고, 가난뱅이는 암탉마저 알을 낳지 않는다. - 핀 란드

♠돈만 있으면 개도 명첨지라. - 한 국

[중국 문화 산책] 3

왜 중국의 누룽지탕을 ‘천하제일 요리’라고 하는가

집문당. 김인옥. <중국의 생활민속>에서

국(湯)은 중국의 수많은 요리 가운데서 없으면 안 되는 요리 중의 하나이다. 서양요리의 첫 요리가 바로 국이다. 중국 미식가(美食家)들도 “연극을 보고 노래를 들으면 요리와 국을 맛본다네”라고 말한다. 그러면 어떻게 해서 수많은 맛 나는 요리 가운데서 사람들이 그닥 눈길을 돌리지 않게 되는 누룽지탕이 '천하제일 요리'로 되었는가? 여기에는 한 단락의 평범(平凡)하지 않은 내력(來歷)이 숨겨져 있다.

명(明)나라 정덕(正德) 연간(年間)에 고정신이라고 부르는 한 재상(宰相)이 있었다. 어느 한번 그는 사복(私服)을 하고 곤산(崑山) 임가장(林家莊)으로 왔다. 그날따라 날씨가 어찌나 무더운지 햇빛이 정수리를 비추는 데다가 갈증(渴症)도 나고 배도 몹시 고픈데 마침 당지(當地)의 수재(秀才)인 임자문(林子文)의 아내 육부인(陸夫人)을 만났다. 육부인은 이 사람의 행동거지가 점잖고 말도 속되게 하지 않는 것을 보고 그를 집 안으로 모시고 밥 한 끼를 대접(待接)하였다.

시골 초가집에서 사는 신세(身世)라 손님을 대접할 맛나는 음식이 없었다. 육부인은 농촌(農村)에서 늘상 먹은 시금치볶음과 콩짜개두부볶음, 이 두 가지 요리를 만들었다. 그는 두 가지 요리로 손님을 대접하자니 어쩐지 속에 내려가지 않아 고심(苦心) 끝에 요리 한 가지를 더 만들었다. 집에서 밥을 하고 가마 밑에 붙었던 누룽지를 기름에 튀김 다음 신선(新鮮)한 남새국을 그 위에 담아 밥상에 올렸다. 산해진미(山海珍味)만 맛보던 고정신은 입맛을 돋우는 붉은 색이 살짝 드리운 파란 시금치 요리와 두부에 콩짜개를 볶은 요리 그리고 구수한 냄새가 코를 찌르는 '누룽지탕'을 보고는 연신(延伸) 찬탄(讚嘆)을 아끼지 않으면서 "이것은 무슨 요리입니까?"하고 물었다. 육부인은‘이 사람은 이런 것도 모르는 걸 보아 한심(寒心)한 책벌레이구나’혼자 속으로 웃으면서 되는 대로 "이 요리는 빨간 입 파란 앵무(鸚鵡)이고 저것은 금빛 백옥(白玉)반 요리입니다."고 대답(對答)하였다. 되는 대로 말하고 보니 정말 노란 콩짜개 흰 두부볶음은 마치 금에 백옥(白玉)같았고 파란 시금치에 살짝 비친 빨간 점은 마치 붉은 주둥이를 가진 앵무새와 같았다. 고정신은 또 이 신선하고도 구수한 탕은 무엇인가고 물었다. 육부인은 속으로 웃으면서 어쩔 방법이 없어 누룽지에 탕을 부어 만든 것을 어찌 요리라 부르겠는가 생각하다가 농담(弄談)조로 "당신께서 세상(世上)에서 처음으로 제가 만든 이런 요리를 맛보셨으니 '천하제일 요리'라 부르는 것이 어떻습니까?" 라고 말하였다.

관청(官廳)으로 돌아온 고정신은 육부인의 집에서 맛본 그 한끼의 밥과 요리 맛을 잊지 못해 자기의 관아(官衙)에서 매일 만들어 먹었고 또 손님이 오면 이것을 대접하기도 하였다. "모여 살면 서로 비슷해지고 시간이 오라면 습관(習慣)으로 된다."는 속담(俗談)이 있듯이 그 때로부터 이 '누룽지탕'이 널리 퍼져 관리(官吏)집들의 연회석(宴會席)에 늘 오르는 명요리(名料理) 되었다. 명나라 말기(末期), 청나라 초기(初期)에 이르러 곤산의 이 요리가 소주(蘇州)에 전해졌는바 요리사(料理師)들은 이 요리에 고급 조미료(調味料)를 정성(精誠)껏 배합(配合)하여 지금의 새우(蝦), 닭고기(鷄肉), 누룽지탕으로 만들었는데 색깔이 곱고 맛이 신선하고 특이(特異)하여 사람들의 입맛을 돋우고 있다.

기실(其實) 위에서 말한 전설이 있어서 누룽지탕이 천하제일(天下第一) 요리로 불리게된 것이 아니라 누룽지탕 자체(自體)가 특색(特色)이 있기 때문이다. 세상의 모든 요리들은 모두 색깔(色彩), 향기(香氣), 맛(口味)을 고려(考慮)하여 만든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바이다 . 누룽지탕은 색깔, 향기, 맛 등이 구전(俱全)한 외 또 '소리(聲)'를 가지고 있다. 누룽지 외에 세계상의 거의 모든 요리가 '벙어리요리'이다. 소리가 좀 나는 것도 있기는 하지만 누룽지처럼 '까닥까닥'하는 소리가 나지 않는다. 맛나는 요리의 색깔은 '눈이 먹고', 향기는 '코가 먹으며', 맛은 '혀가 먹고', 소리는 '귀가 먹는다'는 말이 있다. 누룽지탕이 기타 요리와 다른 특색이 있기 때문에 미식가(美食家)들도 전설에 순응(順應)하여 '천하제일 요리(天下第一料理)'라고 부르게 되었다.

[중국 문화 산책] 4

어째서 중국인들은 붉은 색을 상서로움(吉祥)과 경사로움(喜事)의 상징으로 여기는가

집문당. 김인옥. <중국의 생활민속>에서

중화민족(中華民族)은 황색(黃色)을 고귀(高貴)하고 신성(神聖)한 권위(權威)의 상징(象徵)으로 여긴다. 이와 함께 또 붉은 색[赤紅]을 상서로움과 경사로움의 상징으로 여긴다.

이를테면 옛날에는 중국을 '구주(九州)'라 불렀으면 또한 '적현신주(赤縣神州)'라고도 불렀다. '적조(赤鳥)'를 길조(吉鳥)로 보고 그것을 태양의 별칭으로 불렀으며 순결(純潔)하고 선량(善良)한 효자를 '적자(赤子)'라고 불렀다. 여성들의 화려(華麗)한 화장을 홍장(紅粧)이라 부르고 미인을 상징하였다. 또한 홍안(紅顔)은 여성들의 아름다운 얼굴을 가리키는 동시에 미인을 가리키기도 하였다. 그리고 민간(民間)의 생일, 수연(壽宴), 결혼 등 때에는 붉은 것으로 실내를 장식(裝飾)하여 기분을 돋우

어 주는데 이를 붉은 경사라고 부른다. 붉은 색은 중국의 전통적(傳統的)인 명절색채(名節色彩)이다.

중화민족이 붉은 색을 숭상(崇尙)하는 習性(습성)과 심리(心理)는 민족(民族)의 문화역사적(文化歷史的) 연원(淵源)을 가지고 있다.

인류가 시초(始初)에 사용한 색깔은 붉은 색과 검은 색이었다. 제일 먼저 나온 색깔의 이름은 적색(赤色)이었다. 고고학(考古學)의 발견(發見)에 의하면 1만8천년 전 구석기시대(舊石器時代)의 북경원인(北京猿人)들은 적철광가루[赤鐵圓粉末]로 물들인 붉은 돌 보석을 좋아하였으며, 붉은 색으로 물들인 구멍이 뚫린 조약돌과 짐승의 이빨, 고기뼈 등으로 만들어진 장식품(裝飾品)을 좋아하였다. 특별히 원시인(原始人)들은 자연과 싸우며 인간이 서로 싸워 피를 흘리고 죽이는 것을 목격(目擊)하는 가운데서 점차(漸次) 시체(屍體) 가운데 붉은 색 혈액(血液)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장기적(長期的)이고 거듭되는 실천(實踐) 가운데서 붉은 색 물질(物質)에는 생명력이 숨어 있으므로 이런 붉은 색 액체(液體)를 보충(補充)하기만 하면 생명을 연장(延長)할 수 있다는 관념(觀念)이 생겨나게 되었다. 이렇게 붉은 색은 생명과 연계(連繫)된다는 인식(認識)을 갖게 되었다. 그들은 죽은 사람을 파묻을 때 붉은 색 물감을 시체의 밑 그리고 시체 주위(周圍)에 뿌림으로써 그것으로 죽은 사람에게 영양(營養)을 보충한다고 여겼다.

붉은 색은 피와 생명과 밀접(密接)히 연관(聯關)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불과도 밀접히 연관되어 있다. 원시인들은 자연과 싸우는 가운데서 우레가 울고 번개가 치고 산림화재(山林火災)가 발생하는 현상(現像)을 목격(目擊)하는 가운데서 불에 대한 공포심리(恐怖心理)가 생겨나게 되었다. 후에 불이 사용되고

생산이 발전되고 종교관념(宗敎觀念)이 생겨남에 따라 공포심리가 전환(轉換)되었고 붉은 색이 원시인들이 신봉(信奉), 숭배(崇拜)하는 색깔이 되었다. 이밖에도 원시적 종교관념에는 붉은 색에는 액을 막고 위험에서 벗어나 안전하게 한다는 정감적(情感的)의미가 부여(附與)되었다. 하여 상고시대(上古時代) 사람들은 붉은 색을 야수(野獸)를 쫓고 자신을 보호(保護)하는 색으로 보았다.

원시문화(原始文化) 가운데서의 붉은 색의 가치(價値)와 그것의 상징적(象徵的) 의미(意味)는 민족심리 심층에 오fot동안 적시되어 중화민족으로 하여금 세세대대(世世代代)로 붉은 색에 대한 일종 특수한 감정을 지니게 하였다. 따라서 각종(各種) 경축행사(慶祝行事)에서 붉은 색으로 장식하는 풍속이 지금까지 계속(繼續)되었다.














편집을 마치고

월드컵 열기로 여름이 온 줄도 모르고 있었습니다. 올 여름은 이렇게 시작되는군요. 바깥은 들떠 있고, 마음도 덩달아 붕 떠오릅니다. 그러다 졸업을 맞아 또 학교를 떠나는 아이들을 봅니다. 함께 했던 날들이 그리워집니다. 그러다 한 모퉁이에 남아있는 아이를 봅니다.

글은 생활에서 시작합니다. 많은 생각과 경험이 좋은 글을 만드는 건 당연하겠지요. 방학, 몸이 많이 움직이는 시간이었으면 합니다.

- 權

韓國漢城華僑中學 <한글마당>通卷22號

發 行 . 漢城華僑中學 韓語韓文敎學硏究會

總編輯 . 權相基

編 輯 . 한글문예반

發行日 . 中華民國 91年 6月

住 所 . 서울 서대문구 연희3동 89-1

印 刷 . 正元文化社


한글마당

22호 2002년 6월


특집

우리들이 느낀 월드컵

편지

우리들 마음을 띄워보내며

독서 / 영화 감상문

중국 문화 산책

누룽지탕

붉은 색

韓國漢城華僑中學

韓語韓文敎學硏究會


[여는 시]

1 헐거워짐에 대하여

[특집 - 우리가 느낀 월드컵]

2 2002 한て일 월드컵 / 高2-3 張心美

3 잊지 못할 날 / 高2-3 李偉賢

4 붉은 악마 / 高2-3 孫榮振

5 월드컵을 보면서 / 高1-1 郭明季

6 월드컵을 보며 / 中2-3 김보라 王德瑜 趙立雲 王敬祖

[쉬어가는 페이지]

10 펠레의 선택 / <소금항아리>에서

[우리들의 이야기]

11 댄서 / 高2-3 顧大良

12 아쉬운 高2 생활 / 高2-3 梁詩怡

13 高2가 되고서 나타난 변화 / 高2-3 孫孝民

14 중학교 1학년을 다니면서 느낀 점 / 中1-2 顧小素

15 우리 집 가풍 / 中2-3 김보라

16 과소비 문화 / 高1-1 王姸楆

17 이 세상에서 가장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세 가지 / 中2-3 曲守玉

18 나의 하루 / 中1-3 劉日方

19 자연과 나 / 高2-3 張惠麗

20 지금은 TV 시대 / 高1-1 郭明季

[쉬어 가는 페이지]

21 텔레비전 안 보기 운동 / <생활성서>에서

[편지]

22 하늘 나라에 있는 우리 짠돌이에게로 / 中1-2 楊秀芳

23 사랑하는 엄마, 아빠에게 / 中1-2 胡英慧

24 혜진이에게 / 中1-1 王其靜

25 내 사랑하는 예삐에게 / 高1-1 盛賢實

[주제 토론]

26 청소년 만화책 보기 / 中1-3 왕시애 우가령 허은희 조흥주 공영문

[쉬어 가는 페이지]

28 종달새의 최후 / <소금항아리>에서

[海外 名詩]

29 이니스프리 호수섬 / W.예이츠

[초대글]

30 교생 실습을 마치며 / 교육 실습생 박윤주

[독서 감상문]

32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을 읽고 / 高3-3 孫粝蓉

35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을 읽고 / 中2-2 李傳禧

39 빌 게이츠의 <미래로 가는 길>을 읽고 / 高3-1 曹晴雲

40 <로마인 이야기>를 읽고 / 高2-2 謝愼珍

43 <할머니, 군위안부가 뭐예요?>를 읽고 / 中3-3 賀常煢

45 <앵무새 죽이기>를 읽고 / 高3-4 譚秋錦 冷宜學

[쉬어가는 페이지]

49 가장 값진 선물 / <생활성서>

[영화 감상문]

50 <집으로>를 보고 / 高3-3 崔勇

51 <소림 축구>를 보고 / 高2-2 徐彦中

53 <스파이더맨>을 보고 / 高2-2 程丕文

[이런 이야기]

55 재물에 관한 지구촌 속담 / <생활성서>

[중국 문화 산책] / <중국의 생활민속>에서

56 왜 중국의 누룽지탕을 ‘천하제일 요리’라고 하는가

58 어째서 중국인들은 붉은 색을 상서로움과 경사의 상징으로 여기는가

61 편집을 마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