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마당

21호 2002년 4월



우리들의 이야기

고등학생이 되고 나서

나의 미래

나의 하루

해외 명시

가지 않은 길

중국 문화 산책

단오 - 창포와 쑥

吃醋

韓國漢城華僑中學

韓語韓文敎學硏究會

1 [여는 시] 우리들은 키 큰 나무 / 김신철

2 이별 / 高2-3 梁詩怡

3 겨울 방학에 있었던 일 / 中1-1 權海娜

5 지난 겨울에 남긴 추억 / 高1-3 房雅眞

6 눈 / 中1-1 王其靜

7 개교기념일 / 高2-3 高文政 孫榮振

9 우리 집의 분위기 / 中2-1 王祖平

10 가화만사성 / 中2-1 郭惠蓮

11 건강이 최고지 / 中2-1 王中卿

12 [쉬어 가는 페이지] 고정 관념 / <연탄길>에서

13 세상에서 내가 가장 아끼는 보물 / 中1-3 譚圓熺

14 핸드폰 / 中1-1 孫志旻

14 우리 누나 / 中1-3 孫聖樂

15 우리 언니 / 中1-2 陳才雲

16 우리 동생 / 中1-2 胡英慧

17 신촌에 가면 / 中1-3 조선영

18 나의 하루 / 中1-1 權海娜 焦振梅 中1-3 錢南希

22 사진 / 中1-3 劉延熹

23 [우스개 소리] 선생님을 기절시킨 답안지 / <인터넷 자료>

24 고등학생이 되고 나서

/ 高1-2 馬惠英 孫靜宜 王玉華 張詩幥 張菁芳 鄭丞 鐘莉娜

高1-3 宮嘉鴻 趙立燕 無名氏

33 [해외 명시] 가지 않은 길 / R. 프로스트

34 10년 뒤 내 모습 / 中2-1 于鍾淇 中2-2 簫本君 孫運珍

36 나의 미래

/ 高1-2 馬惠英 鄭丞 陳勝賢 秏嘉鴻 解鴻賓

高1-3 房雅眞 孫詩惠 孫元彬 魏洪莉 李梅蘭 周慧弟

49 [만화] 울 엄마의 교육관 / <생활성서>에서

51 [할 얘기가 있어요] 첫사랑 / 中1-3 無名氏

52 [서평] <역사란 무엇인가> / 高3-3 孫粝容

53 [독서 감상문]

53 <안네의 일기>를 읽고 / 高2-3 梁詩怡

55 <오체불만족>을 읽고 / 中3-3 王書美

56 <마지막 수업>을 읽고 / 中2-1 王聖元

57 [TV 감상문]

57 <갈매기의 세계>를 보고 / 高2-3 徐吉全

58 <다음을 지키는 엄마들>을 보고 / 高2-1 劉玉萍

59 [만화] / <怪怪新村>에서

60 [주제 토론] 한국의 쓰레기 문제점과 그 개선 방법 /中2-2

63 [초대글] 교생실습을 마치고 / 한국어교육 실습생 張天怟

65 [중국 문화 산책] / <중국의 생활 민속>에서

65 단오에는 문앞에 왜 창포와 쑥을 걸어 놓는가

67 어째서 질투를 하면 「식초를 먹었다」고 하는가?

69 [역사의 뒤안길] 미국 각 주의 해괴한 법들 / 林宣希

70 [정보가 있는 페이지] 강아지 건강하게 키워 봅시다

73 [이런 이야기]

73 라면 이야기 / <인터넷 자료>

76 숫자 이야기 / <하늘마음>에서

78 편집을 마치고

[여는 시]

우리들은 키 큰 나무

김 신 철

오월은

섬섬이 머물렀다 간

어머님의 품안 같은 것

그것은 하늘 구름 햇살과 함께

작은 꽃잎 속에서

소소거립니다.

우리들의 마음은

둥둥둥

하늘로 하늘로

음악되어 오르고

가지에 매달린

엷은 미소

멀리 머얼리

파문이 되어 흐릅니다.

오월은

꽃향기

시름 놓으신

어머님의 모습 같은 것

우리들은 저절로

초록빛 잔디 위에서

무럭무럭 자라는

키 큰 나무들입니다.

*편집자 - 이 시는 中1-2 張珉英 학생이 골라 주었습니다.

이별

高 2-3 梁 詩 怡

이별, 이별이란 무엇인가?

이 세상의 모든 것은 만남이 있으면 반드시 이별이 있기 마련이다. 하나의 작은 생명으로 태어나 고난을 겪고, 다시 이 세상이 아닌 저 세상으로 가야만 하는 것이 바로 자연의 이치이다.

이별에는 죽음의 이별과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져야 하는 고통인 애별리고(愛別離苦)가 있다. 이별은 우리에게 아주 견딜 수 없는 슬픔을 가져다 준다. 항상 내 부위에 있었던 그 사람...... 아무것도 변한 건 없는데 왠지 이상하게 마음 한 구석에는 빈자리가 남아 있는 그 느낌...... 겪어보지 못 한 사람은 모를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떠난 사람을 계속 잊지 않고 그리워하며 고통스러워해서도 안 된다. 저 세상으로 간 사람에게는 '아, 더 좋은 세상으로 갔구나......' 위안하며 집착을 해서도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 보낼 때에는 그 사람의 행복을 빌어주며 떠나 보내야 하는 것이다.

난 이별이란 단어가 싫다. 왜 만남이 있으면 이별이 뒤따르는 것일까? 영원히 같이 있을 수는 없는 것일까? 그게 자연의 이치라면 그 것을 바꿀 수는 없을까?

이별...... 단지 이렇게 두 글자로 이루어졌는데, 우리의 가슴을 너무나도 아프게 한다. 마음이 갈기갈기 찢어지듯 쓰라린 아픔, 정말 어떻게 무슨 말로 표현을 할 수 있는지......

누구나 이별을 겪어 보았을 것이다. 하지만 "있을 때 잘 해라." 라는 말과 같이 이별이 먼저 우리에게 찾아오기 전에 그 사람과 많은 추억을 만들고, 항상 기쁜 마음으로 진실하게 잘 해주어야 하며, 후회하지 않게 살아야 한다고, 사람들에게 말

해주고 싶다.

떠나보내고 후회하는 그런 사람들이 가장 어리석은 사람이다. 그러니까 항상 주위 사람들을 많이 생각해 주고, 좋은 마음으로 잘 해 주도록 하는 것이 좋을 듯 싶다. 절대로 인생에서 후회를 남기지 않도록 살자. 그래서 이별 앞에서도 당당히 설 수 있게......












겨울 방학에 있었던 일

中 1-1 權 海 娜

엄마가 어느 날 책 한 권을 사주셨어요. 제 손위에 주어진 책 한 권. 맨 앞표지엔 귀여운 여자 아이 그림과 "열두 살에 부자가 된 키라" 라고 써 있었죠. 밤에 할 일이 없던 전 책을 꺼내어 읽어보았답니다.

시작 부분부터 흥미롭고 여태까지 보았던 책들과는 달랐어요. 이 책의 주 내용은 12살짜리 여자이이가 돈을 버는 이야기랍니다. 겉으로는 쉽고 가벼운 책 같았지만, 읽어보면서 확

다르다는 걸 알았답니다.

책 속에서 키라네 가족은 그리 부유하지 않았어요. 하지만 길에서 다친 개를 만나 개를 치료한 뒤 개의 원래 주인과 만나게 되어 어린 아이들이 돈을 벌면서 주식에 투자하는 얘기입니다.

전 이 책을 읽고 나서 돈을 벌기로 생각했어요. 작은 사업이라고나 할까? 그건 바로 플랜카드를 만들어 가수 팬들에게 파는 일이랍니다. 모든 거래는 넷상에서 이루어지고 있고, 저는 돈을 은행으로 받으면 확인 후 만들어 주는 거예요. 처음에는 3-5명이 신청을 해서 만들어주곤 했는데, 제가 카페를 차렸더니 회원수가 급격히 늘어났고, 요 며칠 전에는 1천명을 돌파하였답니다~

돈을 벌면서 즐기는 기쁨도 있지만, 제가 돈을 벌면서 한 가지 버릇이 생겼어요. 바로 뭐냐하면, 물건을 사기 전에 꼭 가격과 물건을 보면서 자신에게 물어보죠. '저 물건을 사면 도대체 내가 몇 개의 플랜카드를 만들어 팔아야 되는 걸까?' '저 물건이 내게 진정 필요한 건가? 아니면 내가 그저 원하는 것일 뿐인가.' 하고요.^蝡^ 이러면서 충동구매를 자주 하던 저에겐 큰 변화가 생겼죠.^^ 돈을 번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도 확실하게 알게 되었고요~

이번 방학을 통해 이런 기회를 갖게 되어서 정말 기뻤답니다. 또한 책 한 권이 인생을 바꿀 수 있다는 말이 그냥 하는 말이 아니란 걸 알게되었답니다~




지난 겨울 나에게 남긴 추억

高 1-2 房 雅 眞

올 겨울은 나에겐 슬픈 추억이라고나 할까?? 영원히 기억할 만한 추억을 남기는 추운 겨울이었다. 몇 달 전 세상에서 제일 사랑하는 나의 할아버지를 하늘나라로 떠나보냈다! 솔직히 예전엔 할아버지에 대한 소중함을 별로 못 느꼈다!! 할아버지는 우리랑 말을 잘 안 하시는 편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가 항상 할아버지 보러 가는 날엔 어김없이 우리를 기다리곤 하셨다. 할아버지는 무뚝뚝한 사람이었지만... 나는 당신의 행동에서 우리를 사랑하는 맘이 가득한 것을 알 수 있었다. 할아버지는 내가 존경할 만한 분이셨다! 자기 것을 희생하면서.. 남한테 베푸는 선의의 마음을 가지셨다. 그런 할아버지가 자랑스러웠다!! 아무리 다른 사람들이 아니라고 해도.. 내 가슴속에 당신은 나의 자랑이었다. 할아버지를 마지막으로 본 건 영안실이었던 거 같다! 그 모습은 지금도 내 머리 속에 생생이 기억하고 있다. 너무 슬펐지만... 그나마.. 할아버지 얼굴은 편안해 보였기에... 우리들은 안심하고 보내드렸다. 지금 할아버지의 빈자리가 너무 크다. 가끔 가다 후회하고 또 후회한다. 할아버지한테 더 잘 해드릴 걸~~ 아직 해 드리고 싶은 건 많은데.. 왜 이렇게 일찍 돌아가셨나?! 요즘 와서 할아버지가 너무 보고싶다! 저 세상에선 잘 계시는지? 꿈에서라도 할아버질 만나 뵙고 싶다!! 할아버지한테 한 번도 못 해본 말이 있다... 늦었지만 꼭 한번 말하고 싶었던 말... " 할아버지 사랑해요"

하늘나라에서 건강하시고, 항상 저를 지켜봐 주세요!!!



눈

中 1-1 王 其 靜

전 새하얗고 맑은 눈이 내리는 겨울을 좋아합니다. 눈을 볼 때마다 저도 모르게 기분이 좋아집니다. 간밤에 소리 없이 내린 눈으로, 온 세상이 하얗게 눈 덮힌 날은 옷을 따뜻하게 입고 밖으로 나가 놉니다. 그러면 어머니는 감기 들지 말라고 당부하십니다.

눈이 내립니다. 손을 벌려 눈을 맞이하려고 해도, 손에 닿자마자 녹아버리는 눈이 저는 참 얄밉습니다. 눈이 어떻게 생겼는지 궁금하기도 한데, 스키장에 가서는 한 번도 눈을 관찰해 본 적이 없습니다.(정말 눈이 어떻게 생겼는지 궁금하기나 한 건지......)

집에서 창문을 열어놓고 하얗게 내리는 눈을 보면, 소매에 파고드는 찬 겨울 바람이 저의 마음을 바짝 긴장시킵니다. 그래도 저의 정신을 맑게 해주는 눈이 있기에, 전 겨울을 좋아합니다.











개교 기념일

高 2-3 高 文 政

5월 5일은 우리 학교 개교 기념일이다. 올해로 54년째인데, 매 5년마다 한번씩 마스게임이라는 체조를 한다. 난 중1때 겪어서 다행이지만 고1이나 고2들은 참 불쌍하다고 생각한다. 또 개교 기념일이 오면 무용단이나 사자춤 단원이나 춤 단원도 매우 바빠진다, 그들은 우리 학교에 온 귀빈들에게 우리학교를 뽐내기 위해 분주히 노력하고 또 각 서클들도 전시 준비를 하느라 시간가는 줄 모른다 난 아무 써클에도 들지 않았기 때문에 바쁘진 않지만 그래도 기다려진다 나는 또 기다려지는 게 있다 개교 기념일이 지나 바로 오는 봄방학, 비록 짧디 짧은 봄방학이지만, 평소 학교에 빨리 나오느라 진친 몸을 추스리기엔 적당해서 쉬는 보람이 있다.

개교 기념일이 다가오니 많은 생각들이 난다, 벌써 54년째라니, 그럼 6て25가 일어 난 후 바로라는 얘긴데, 참 오래도 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또 내가 여기 온지 5년이 다 됐다니, 시간은 진짜 빨리 흐른다는 생각이 많이 든다, 우리 엄마랑 아빠 모두 이 곳을 졸업했는데 개교 기념일도 지금과 똑같은지 궁금도 하고 또 다른 게 뭔지도 궁금하다.

이제 내년이 되면 55주년이 되니 마스게임과 같이 신나고 재미있는 이벤트가 많이 이루어질 텐데... 나는 고3이니까 그런 여유가 없을 것 같다, 그렇게 생각하면 중1때 왜 그렇게 잘 못 놀았는지 후회스럽기도 하다 비록 내년엔 재미있는 행사에 내가 참석하지는 못하겠지만 그래도 잘 진행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개교 기념일

高 2-3 孫 榮 振

개교 기념일이란 그 학교의 탄생일이다. 흐르는 물과 같이 지나가 버린 시간을 잠시 회상하게 해 주는 날이다. 또한 그 시간이 길면 길수록 학교의 이름과 역사가 빛을 발하며, 그곳에 소속된 모든 이들에게 긍지와 자부심을 심어 준다.

우리 학교 역시 올해로 54주년을 맞이하게 된다. 더구나 다른 학교와는 달리 화교 학교라는 이름 아래 지내온 시간인 만큼, 우리에게 그리고 우리 학교에게 크나큰 기쁨일 수밖에 없다.

이곳에 들어 온 지도 5년째, 즉 화살처럼 흐르는 시간 속에 우린 이 학교와 같이 커왔다. 학교와 우린 하나였으며, 앞으로 남은 일 년 또한 우리 하나일 것이다. 학교가 우리에게 만들어 준 것들은 우리가 한 평생을 갚아도 갚지 못할 선물들이니 친구, 학문, 우정, 사랑 등등, 그래서인지 개교기념일만이라도 학교에 보답하고자 우린 우리만의 행사로 노력하고 준비하고 있다. 물론 그게 성공적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그저 모교에 보답하고픈 마음에서 해본다. 그러나 요즘 들어 느끼게 된 많은 것










들이 날 마음 아프게 한다. 학생들의 감소, 학업과 체력의 부진, 순수함의 상실 등이 그 예이다. 그래서 때로는 5년 전, 아니 10년 전 학교 시절을 생각해 본다. 어른들이 말하는 순수하고 소박했던, 진짜 학교와 모두가 하나였던 그 시절, 그 개교기념일이란 그 시절의 이들을 위해 만들어졌을 테니, 비록 화려하거나 아름답진 않았지만 그저 학교를 알리고자 학교에 조금이라도 보답하고자 하는 생각에서 비롯된 순수한 영혼들의 마음이었을 테니까......

시간이 지나면 꽃은 피고 다시 진다.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다는 이치이다. 난 이 학교의 시작과 끝을 구경하질 못할 것이기에 조금이라도 노력해서 보답하고자 개교기념일이란 날을 위해, 오늘도 열심히 하는 것이다.



우리 집의 분위기

中 2-1 王 祖 平

우리 아빠는 정말 엄하시고 무서운 분이시다. 그런데 아빠가 처음부터 이렇게 엄하신 분은 아니었다. 우리가 유치원을 다닐 땐 아빠와 장난도 치고 그랬다. 그런데 초등학교에 들어가고부터는 아빠가 엄해지셨다.

아빠는 우리가 공부를 열심히 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고 시험 날엔 우릴 데리고 밤늦게까지 함께 공부를 해 주셨다. 그땐 아빠를 가까이 할 수가 없었던 것 같다.

하지만 지금은 우리가 많이 컸다는 생각이 드시는지 지금은 예전처럼 우리와 장난도 치고 대화도 많이 하시고 우리에게

정말 잘해주신다.

우리 엄마는 내가 본 받을 점이 많다. 엄마는 우리에게 늘 이런 말을 해주신다. 사람은 德으로 사는 거라고. 상대방이 나에게 잘 해주지 않아도 내가 그 사람에게 잘 해주면 덕을 쌓는 거라고. 그리고 사람은 지혜와 예의가 있어야 한다고 말씀하신다. 난 이 말들을 잊지 않으려고 한다.

우리 집은 예의와 지혜, 그리고 덕을 중요시하는 집안이다.



家和萬事成

中 2-1 郭 惠 蓮

우리 집 가풍은 가화만사성이다. 집안이 화목하면 모든 일이 잘 성사된다는 것이다.

외할머니는 자주 이 말씀을 하신다. 나도 맞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아침에 일어날 때 화를 내거나 짜증을 내면 야단을 맞았다.

가풍을 보면 그 집안의 내력을 알 수 있다. 우리 외할머니는 차분하면서도 칼 같이 모든 일을 잘 하신다. 할머니를 보면 정말 존경스럽다.

가풍은 그 집안의 약속인 것 같다. 그것을 지킴으로써 임무를 완수하는 것이다. 멋진 일 같다. 나도 이제 우리 집 가풍을 살려 화목한 집안을 만들도록 노력할 것이다.


건강이 최고지

中 2-1 王 中 卿

우리 아빠는 매우 자상하신 분이시다. 항상 우리한테 건강한 모습으로 계신다. 엄마도 매우 밝은 모습으로 우리를 대해 주시고.

엄마, 아빠는 자주 이런 말을 하신다. "사람이 밝으려면 건강이 있어야 한단다." "건강이 없으면 이 세상에서 못 살아간단다." "너희들도 항상 건강한 모습으로 생활해야 한단다." 아빠가 한의사이기 때문에 특히 건강을 중요하다고 생각하시는 거 같다.

아빠는 허리가 조금 안 좋으신 편인데, 우리들에게 먹는 자세, 앉는 자세 등 자세를 강조하신다. 생활 속에서 자세는 매우 중요한 것 같다. 바른 자세로 생활하는 습관을 기르고, 건강을 유지하면서 밝게 살아야겠다.













[쉬어 가는 페이지]

고정 관념

이철환. <연탄길>에서

6살짜리 어린 아이가 목욕탕에 앉아 대야에 발을 담그며 놀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물이 담긴 대야를 들고 아빠에게 갔습니다.

"아빠, 내가 물 떠왔어. 이걸로 세수해."

"영호야, 발 담근 물로는 세수하는 거 아냐."

"왜?"

"발 담근 물을 더러우니까 그렇지."

"아빠, 그럼 이물은 더러운 거야?"

"응, 더러운 물이야. 발을 담근 물이니까."

아이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야에 있던 물을 바닥으로 쏟아버렸습니다. 그런데 잠시 후, 아빠를 한참 동안 바라보았습니다. 아빠가 너무 이상했습니다. 아빠는 여러 사람들이 발을 담그고 있는 탕 속에 앉아서 그 물로 얼굴의 땀을 씻어내고 있었습니다...

인식이 우리의 삶을 설명할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인식 자체가 반드시 길이 되는 건 아닙니다. 버스나 배로는 철로 위를 달릴 수 없습니다.

우리 마음속에 철로를 깔아 놓으면 달릴 수 있는 건 오직 기차뿐입니다.

세상에서 내가 가장 아끼는 보물

中 1-3 譚 圓 熺

난 강아지를 너무 좋아한다. 그래서 우리 집은 세 마리의 강아지가 집안을 시끄럽게 돌아다닌다.

세상에서 내가 가장 아끼는 것은 우리 집 가족과 강아지들이다. 예전에 난 보물이라고 하면 다 뭐 반지나 목걸이나, 그런 건 줄 알았는데, 이제는 알았다!

예전에 내가 키우던 강아지가 있었는데, 생후 딱 한 달 된 강아지였는데, 키운 지 11일만에 죽어버렸다. 그 땐 정말로 마음속 한 곳이 텅 비어버린 것처럼 허전하고 너무도 슬펐다. 그래서 그때부턴 강아지에게 신경을 많이 쓰고 관심이 많아졌다. 만약 얘네들마저 죽어버린다면, 난 정말 미쳐버릴 것 같다.

그래서 내가 세상에서 가장 아끼는 보물, 강아지들이 목숨이 다할 때까지 최선을 다해서 키울 거다!!













핸드폰

中 1-1 孫 志 旻

저는 12월 25일에 핸드폰을 샀습니다. 이유는 아빠가 핸드폰을 사주기로 약속을 하셨기 때문입니다.

핸드폰을 갖기 전에 저는 정말로 핸드폰을 너무 갖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핸드폰을 갖고 나선 정말 내가 왜 갖고 싶어했는지 신기할 정도로 궁금합니다.

12월까지는 그래도 문자도 보내고 게임도 놀았습니다. 하지만 그 후로는 정말 문자도 오지 않으면 안 보내고 게임도 거의 놀지 않습니다. 하지만 어디에 나가든지 집을 나서면 꼭- 손이나 외투주머니, 바지주머니에 넣어야 됩니다. 이유는 저도 모릅니다.

앞으로는 뭐가 사고 싶어지면 꼭 잘 생각해보고 살 겁니다.



우리 누나

中 1-3 孫 聖 樂

우리 누나는 때론 상냥하고, 또 때론 아주 무섭습니다. 하지만 저는 누나가 아주 좋습니다.

어느 날 제가 감기가 심해서 집에 누나랑 있었는데, 제가 라면을 먹고 싶다고 했습니다. 그 때 누나의 나이는 어렸습니다. 그런데도 누나는 용기를 내서 저한테 맛있는 라면을 끓여 주었습니다. 그게 바로 누나가 첫 번째로 만든 라면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매우 기뻤습니다.

그리고 어느새 중학생이 되었습니다. 언젠가 수학 쪽지시험

이 있기 전날이었습니다. 저는 당황했습니다 그땐 저는 수학을 못했습니다. 쪽지시험을 보고 점수가 아주 안 좋았습니다. 아마도 십 몇 점. 그런데 수학 선생님께서 내일 다시 이 문제로 시험을 친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밤에 누나한테 수학문제를 어떻게 푸느냐구 했습니다. 그러자 누나는 저한테 아주 쉽게 설명을 했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날이 왔습니다. 다시 또 시험을 쳤고, 점수가 무려 80점 이상이 나왔습니다. 그 때 아주 기뻤습니다. 그래서 저는 누나한테 고맙다고 하고 맛있는 과자도 주었습니다.

언제나 저를 따스하게 감싸주는 그런 우리 누나가 전 너무나도 좋습니다.



우리 언니

中 1-2 陳 才 雲

우리 언니. 참으로 예쁜 우리 언니. 우리 언니는 고집은 있지만 성격은 좋다!

난 그런 언니와 하루에 수도 없이 싸운다. 창피하게....

하지만 난 우리 언니가 좋다. 난 언니가 없으면 너무나도 쓸쓸하다!!

우리 언니는 목소리가 너무 크다. 하지만 그게 우리 언니의 매력이다. 매력적인 우리 언니, 하지만 난 언니 앞에만 가면 시비를 걸거나 짜증을 낸다. 속으로는 그러고 싶지 않은데......

언니도 내 마음을 알아줬으면 좋겠다!!!

너무나도 사랑하는 우리 언니, 그런데도 언니가 참으로 미울

때도 있다! 엄마는 언제나 언니 편이고...... 그래서 더욱 서운하기도 하다.

하지만 나는 언니가 내 마음을 알아줄 때가 올 거라 생각한다! 언니를 사랑하니까......



우리 동생

中 1-2 胡 英 慧

나에게는 동생이 두 명이 있다. 여동생 한 명, 남동생 한 명. 둘 다 나에게 있어서는 소중한 동생이다.

하지만 어쩔 때 보면 정말 화나게도 한다. 뭐랄까, 내가 갖고 있는 물건이 맘에 들어서 뺏기도 하고...... 그래도 나에게는 없어서는 안 되는 사람인 걸 잘 안다.

가끔 동생들이 없는 하루를 생각해 본 적이 있다.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누구도 내게 언니 누나라고 부를 사람도 없을 테고...... 항상 쓸쓸함만 있을 것 같아서...... 사실 예전 초등학교 시절 때 한 친구가 말했는데, 내게 부러운 점 중 하나가 나한테 동생이 있어서라고 했다. 매일 혼자서 방에 있을 때가 가장 쓸쓸하다고 그랬다. 남들이 이렇게 말할 때면 왠지 동생들이 너무나 존경스럽다는(?) 생각이 든다.

동생이 있어서 좋은 점이 많이 있다고 생각한다. 개구쟁이인 동생들은 내가 뭔가를 안 해 주면 그 귀여운 척 할 때, 정말 귀여워서 볼을 꼬집는다.

나에게 딱 생각나는 말이 있다. 여동생이 어렸을 때 하던 말,

"난 크면 언니랑 엄마랑 결혼해야지." 라고......

다섯 살 된 내 남동생도 지금 그 말을 하고 있다.

"난 크면, 큰누나랑 작은누나랑 엄마랑 결혼할 거야!" 라고!



신촌에 가면

中 1-3 조 선 영

제목부터가 재밌다. "압구정동에 가면 나는 좋다." 라는 말이 왜 떠오르는지 잘 모르겠지만......

강북에 살고 있는 나에게 신촌은 활기차고 사람 많은 곳으로밖에 더 이상 느껴지는 게 별로 없다. 어른들께서는 그 전에 신촌이 대학가였으며, 그런 대로 낭만이 있는 거리라고 기억저편에 접어두고 계시겠지만......

우리가 신촌에 갈 때면 가장 먼저 돈을 넉넉히 챙겨 쥐고 가야 사람 구실 제대로 하고 오는, 지금의 신촌은 '소비의 거리'가 되어 있다.

신촌에 가면 나는 좋다. 무엇이 좋으냐고 물어 보면, 주저 없이 문화와 사람냄새가 나는 그런 곳이 되어서 좋다고 대답하고 싶다.

신촌이 쓰레기 없는 거리로 지정되었으면 하고 바라기도 한다. 무심코 버리는 비양심, 무매너, 몰상식, 이기주의, 그런 사람들을 보니...... 아침마다 곳곳에 얼룩져있는 구토와 가래침 자국으로 몸살을 앓는 신촌 거리를 보면 한숨만 나온다.

나는 오늘도 군중 속에 자폐아가 되어 버린 사람들 물결 속으로 아무 생각 없이 걷는다.

나의 하루

中 1-1 權 海 娜

이번 주에는 정말 행운아가 된 기분이었답니다. 이번 주에 하나는 친구 유모 양과 함께 콘서트를 두 번 갔다 왔어요. 당연히 "god 콘서트"겠죠? 수요일에는 "네모나라god", 토요일에는 god와 신화가 함께 하는 "미아 찾기 콘서트"에 다녀왔어요.

수요일 오전 8시에 친구와 함께 88체육관으로 향한 저. 도착해보니 사람이 그리 많진 않더라고요. 왜냐면 한국 친구들은 모두 수업을 하기 때문에 학교를 땡땡이 친 애들은 30-40명 정도밖에 없는 것 같았어요. 제 번호표는 39번이었답니다. 하지만 시간이 점차 지나자 조퇴를 하고 온 친구들, 또는 친구와 만나서 학교를 땡땡이 치고 온 애들, 무려 3만7천 여명이나 모였답니다.

무려 10시간이나 서 있던 저희는 god오빠들의 차 벤을 보았고, 공연을 구경하기 위해 입장을 하였어요. 전 앞 번호라서 스탠딩이었답니다. 스탠딩은 앉아서 관람하는 게 아니라 서서 관람하는 건데요, 좋은 점이라면 오빠들을 좀더 가까이서 볼 수 있다라는 점인데요, 그것도 앞 스탠딩이어야 잘 볼 수 있거든요!

입장이 시작되고 전 부랴부랴 무대 맨 앞으로 달려갔답니다. 덕분에 맨 첫줄이었어요. 공연이 시작되고 갑자기 god오빠들이 나오자 질서 정연했던 팬들이 흐트러지기 시작하였고 fangod임원 언니들은 팬들을 뒤로 미느라 땀 뻘뻘 흘리고, 저희는 맨 첫줄이라서 언니들을 조금이라도 돕기 위해 처음 보는 친구들과 함께 팔짱을 끼며 뒤에 친구들이 밀지 못하게 언니들을 도왔어요.

녹화방송이라서 NG가 나면 다시 찍고 무대 세트 바꾸느라 장장 5시간의 방송을 마쳤답니다. 집에 돌아오면서 정말 힘들

었지만 오빠들을 바로 1M도 안 되는 사이에서 보다니 정말 믿어지지 않았어요. 예전에도 앞에서 봤지만..3M이하로 가까이 본적이 없었거든요.

그런데 "네모나라god"가 방송되던 날! 더욱 충격적이었던 건 제가 카메라에 무려 4-6번이나 찍혀서 나왔던 것이었어요.

핸드폰은 울리고, 문자가 쉴새 없이 날아오고, 조금은 창피했지만 그 날을 생각하면 정말 기분이 좋답니다.



나의 하루

中 1-1 焦 振 梅

난 매일 같이 똑같은 일만 반복한다. 아마 365일에서 350일은 똑같이 보내지 않나 생각해본다. 나의 일상, 그건 하루같이 다 비슷하다.

아침에 엄마가 나의 잠을 깨우곤 부엌으로 들어간다. 부엌에선 엄마가 아침밥을 차리고 계신다. 그리곤 세수를 한 후에 부엌으로 들어가선 형제들과 아침식사를 한다. 식사를 한 후에 대개 학교에 간다. 학교에 가면 학습을 할 수 있으므로, 대개 아침식사를 하는 동안 그것이 나의 보람찬 하루를 만드는데 첫걸음이라고 생각을 하며 맛있게 먹는다.

하지만 방학 땐 그게 아니다. 남들과 달리 나는 학원에 가기보다는 매일 집에서 신나게 컴퓨터 자판만 두드린다. 나에게 방학이란 평소에 할 수 없었던 스토리가 긴 게임을 모두 마칠 수 있는 행복한 기간이다.

또 행복한 기간인 만큼 괴롭기도 하다. 바로 엄마와 아빠의

잔소리 때문이다. 이 생활이 현명하지 않다고 난 알고 있는데도 그걸 그리 쉽게 고칠 수가 없다. 어른도 나와 마찬가지다. 아빠는 매일같이 담배를 피우신다. 아빠보고 담배를 피우지 말라고 말해본다. 아빠는 알았다고 하신다. 하지만 그 말도 잠시뿐, 아빠는 금방 답배를 가지곤 베란다로 나가신다. '아빠는 날 별로 안 좋아 하니까......' 하는 생각에 아빠가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는 애교만점인 동생을 불러서 시켜본다. 아빠는 내 동생 말은 뭐든지 잘 들으신다. 동생이 뭘 사달라고 조르면 그 즉시 같이 사러갈 준비를 하신다. 그건 내 동생이 어려서 일까? 어쨌든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다. 하지만 이번엔 동생의 말도 듣지 않으신다. 아빠도 그렇듯이..나도 컴퓨터를 하지 않는 것이 불가능한데..왜 그걸 몰라주시는 건지...... 난 컴퓨터로 숙제도 아주 가끔은 한다. 공부 안 하는 딸이 컴퓨터로 숙제를 한다는데 하지 말라고 하신다. 게임을 하는 줄 아시나보다.

이 글을 쓰는 동안 난 내 머리 속에 다시 한번 되새겨 본다. 앞으론 게임하는 시간을 줄일 거라고. 그건 다른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닌 나 자신을 위한 것이라고. 언니를 위한 것도, 동생을 위한 것도, 부모님들을 위한 것도 아닌 나 자신을 위한 것이 라고 내가 컴퓨터로 공부를 하는 모습이 아빠 엄마에게 조금이라도 비춰진다면 엄마 아빠도 컴퓨터를 하지 말라고는 안 하실 것이고......

인생은 값진 것이다. 값진 것인 만큼, 또 어차피 한 번 살아갈, 인생 두 번도 아니지 않나? 인생은 나 자신만의 명예를 위해서가 아닌, 나 자신을 위해, 또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기쁘게 해주기 위해 사는 것이라는 기분으로 산다면 보람차게 살수 있을 것 같다.

앞으론 나의 하루에 반성하는 시간을 자주 있게 해야 할 것 같다. 나 자신을 위해.......

나의 하루

中 1-3 錢 南 希

저는 저의 하루가 심심하지도 않고 재밌지도 않아요. 그냥 평범하게 하루하루를 지냅니다. 어쩔 땐 정말 심심한 날이 있었어요. 하루종일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느낍니다.

방학동안 아침엔 항상 늦게 일어나요! 한 11시에 일어나나? ^^;; 헤헤...... 방학이라 푹 자는 게 스트레스 풀리거든요. 아침에 일어나 씻고 가족들이랑 밥 먹고, 밥 먹고 나면 나가서 산책하는 겸 만화책 가게 가서 만화책을 수십 권이나 빌려와요. 전 늘 만화책 때문에 엄마하고 아빠한테 혼나지만, 그래도 만화책이 너무 재미있어서 빌려와요. 그리고 만화책을 빌려오면 만화책 한 번 보고 컴퓨터 한 번 놀고, 하루생활은 늘 그렇죠.

그리고 어쩔 땐 엄마 몰래 간식으로 라면을 끓여 먹죠. 엄마한테 들키면 혼나거든요. 라면에 영양가 없어서 밥 먹으라고. 그래도 라면이 너무 맛있어요. 어쩔 땐 시간 나면 집 청소를 언니랑 같이 해요. 안 하면 언니가 또 뭐라고 하거든요. 청소가 다 끝나면 누워서 과자를 먹으면서 텔레비전을 봐요. 그렇지만 살찔까 봐가 걱정이에요.

장날이 되면 엄마랑 시장에 가요. 시장에 가면 맛있는 것도 먹고 귀여운 동물들도 구경하죠.

그러다가 시간이 지나면 방학숙제가 밀리게 돼요. 그래서 늘 빨리 써야한다고 하면서도 계속 놀기만 해요. 음, 방학 숙제 때문에 신경 쓰여서 스트레스가 자꾸자꾸 쌓여요.

밤에도 전 아주 늦게 자요. 한 1-2시쯤에 자요. 밤이 되면 이상하게 잠이 안 와요. 그렇게되면 엄마하구 아빠한테 또 혼나요. 밤에 늦게 자고 아침에 늦게 일어난다고 하지만 어쩌겠습니까? 방학동안 벌써 이런 게 다 습관이 돼버린 걸요.

이제 개학이 곧 다가와서 숙제도 빨리 써야 돼요. 놀 시간도 없고요. 개학날 준비 계획도 해야 되고요.

저의 하루하루는 이렇게 지나갔습니다.

[시]

사진

中 1-3 劉 延 熹

사진기는 누가 만들었을까?

나에겐 참 고마운 분.

내 추억을 담아준 네모난 종이

내 모습은 변했지만, 네모난 종이 안에 있는

난 언제나 해맑고 웃는 아이로 멈춰 있다.

난 어린 시절을 기억 못 하지만

네모난 종이 안에 내 어린 모습이 담겨 있는걸 보면

머리 속에서 희미하게 비춰지는 내 어린 모습.

사진이란

나만의 추억, 나만의 기억을 지켜주는 또 다른 나.

네모난 종이가 영원히 내 추억을 지켜주기를......









[우스개 소리]

선생님을 기절시킨 답안지

<인터넷 자료>

☆시험문제 채점 중 선생님을 기절시킨 답안지들

1. L중학교 가정 시험

[문제] 찐 달걀을 먹을 때는 ( )을 치며 먹어야 한다.

→[정답] (소금)

[학생] 찐 달걀을 먹을 때는 (가슴)을 치며 먹어야 한다.

2. E여고 중간고사 생물 시험

[문제] 빈 칸 안에 알맞은 단어를 쓰시오.(주관식)

- 곤충은 머리, 가슴, ( )로 나뉘어져 있다.

→[정답] ( 배 )

[학생] 곤충은 머리, 가슴, ( 으 )로 나뉘어져 있다.

3. S초등학교 글짓기 시험

[문제] "( )라면 ( )겠다"를 서서 한 문장을 지어보시오.

→[정답] "(내가 부자)라면 (가난한 사람들을 도와주) 겠다" 등

[학생] (컵)라면 (맛있)겠다.

4. S초등학교 체육 시험

[문제] 올림픽운동종목에는 ( ),( ),( ),( )가 있다.

→[정답] (육상),(수영),(체조),(권투) 등등

[학생] 올림픽운동종목에는 (여),(러),(가),(지)가 있다.

5. S초등학교 자연 시험

[문제] 개미를 세 등분으로 나누면 ( ), ( ), ( )

→[정답] (머리), (가슴), (배)

[학생] 개미를 세 등분으로 나누면 (죽), (는), (다)

고등학생이 되고 나서

高 1-2 馬 惠 英

와! 시간 참 빠르다, 내가 벌써 고등학생이 되었다니, 시간은 나도 모르는 사이에 이렇게나 빨리 지나와 버렸다, 내가 항상 느끼는 점은 세상에서 가장 빠른 건 시간이란 것이다. 초등학교 6년, 중학교 3년이 빨리 지나간 것처럼 고등학교 3년도 역시 빨리 지나가겠지? 나는 지금까지 이렇게나 많은 시간들을 그냥 낭비해왔다, 난 지금까지 쭉 "대충"이란 단어로만 생각하며 일들을 해온 것 같다, 공부 역시도.... 그렇지만 성적은 내가 한 만큼에 비해선 그리 나쁘진 않았다, 하지만 고등학생이 되고 나선 지금까지 내가 생각하고 해왔던 방식은 통하지가 않았다.

난 지금까지 쭉 똑같은 눈으로만 세상을 보았다, 그 이상은 보지도 않고, 생각하지도 않으면서, 쭉 그 식으로만... 그래서 이제부터라도 시야를 넓히기로 했다. 그리고 또 내가 그동안 귀찮아서 하지 않았던 일들도 하면서 조금씩 조금씩 대학에 갈 준비도 하기로 했다, 이런 것들을 고등학생이 되고 나서 겨우 깨달았다는 게 아쉽다, 좀 더 빨리 깨달았다면 고등학교 생활에 더 도움이 되었을 텐데... 이제부터라도 노력하면 대학에 가선 그리 후회하지 않는 생활을 할 수 있겠지!


고등학생이 되고 나서

高 1-2 孫 靜 宜

고등학생이 된지 반년이 다 돼 가는데 아직도 꿈만 같다. 싸이트에 가입할 때도 나도 모르게 직업을 중학생으로 한다. 그

러다 "아차! 고등학생이지.." 하면서 바꾼다. 캬! 세월 참 빠르다... 중1 올라 온지 어제 같은데.. 벌써 고1이라니.. 처음 고등학생이 되었을 땐 좋았다. 후배들이 생겨서... 그것보단 고학년이란 자체가 좋았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가면 갈수록 중압감만 생길 뿐이다, 이제부터 슬슬 진로를 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어떤 대학을 갈 건지, 무슨 과를 정할 건지, 온통 진로에 관한 것 뿐! 나중에 대학교를 졸업해 어떤 일을 해야 되는지... 온통 걱정뿐이다. 중학교 땐 대학 얘길 해도 남의 얘기 같았는데... 지금은 부담이 된다.

고등학생이 된 후 많은 것이 바뀌었다. 부모님 또는 선생님들의 시선, 그리고 내가 생각하는 태도(?) 생각자체가 바뀌었다. 중학생 때는 부모님 또는 선생님들이 뭐라고 하면 나도 모르게 반항심이 생겨서 대들고 완전히 청개구리같이 행동했다. 제일 많이 바뀐 건 뭐니뭐니 해도 어른들의 시선이다. 중학생 때보다 내 말을 많이 들어 주고 조금은 존중(?)해준다. 아직도 부모님 품에서 응석 부리고 싶지만, 이젠 내 스스로 내 일에 책임져야만 한다. 우리 부모님은 또래 애들 부모님보다 나이가 많으시기 때문에 딴 애들보다 출세를 빨리 해야만 한다. 그래야만 딴 또래 애들과 비슷하게라도 부모님을 모실 수 있다. 아니! 딴 애들보다 더 잘 모실 거다! 빨리 출세를 하려면 역시 공부를 열심히 해야한다. 알고 있는데도 공부라는 것이 왜 이리도 안 되는 건지 참.. 그래도 열심히 노력해서 좋은 성적을 받아 좋은 대학에 갈 거다.

고등학교 2년 반 동안 열심히 노력 할 거다. 이번에 친구들이랑 반이 갈라진 것도 꼭 나보고 열심히 공부하라는 뜻 같다. 그 뜻을 감사히 여겨 열심히 공부하고, 친구들과의 우정도 변치 않게 열심히 노력 할 거다, 아무튼 2년 반동안 건강하고 활기찬 고교생활을 보내고 싶다.

고등학생이 되고 나서

高 1-2 王 玉 華

언제부터인지 잘은 모르겠지만, 시간이 너무 순식간에 우릴 스쳐 지나가는 것 같다.. 아직 난 한 게 아무것도 없는데.. 시간은 날 기다려 주지 않았다. 그리고, 지금.. 난 어느새 벌써 고등학생이 되었다.. 처음엔 그냥 늘 그랬듯이 학기가 바뀌니까, 교과서도 바뀌고, 선생님들도 바뀌고, 그리고 반도 바뀌는 것.. 그런 단순한 생각 밖에는 안 했는데.. 막상 그 상황이 되고 나니, 내가 너무 단순했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꼈다. 공부도 예전과 달리 시험 때만 외워서는 어림도 없고, 평소에 조금씩 해둬야지, 예전처럼 해봐야 아예 진도에 따라가지도 못한다. 그리고 이젠 교과서만 의지해선 안되고, 다름.. 교과서 이외의 책이나 지식을 겸비해야 된다고 생각했다.. 2년 뒤를 위해서.. 그 외에 내 개인적으로는 성격상 신경질이 좀 는 것 같다., 짜증도 내고.. 이런 건 안 변해도 되는데...

어쨌든 한 학기를 돌아보니.. 내가 참 많은 것들을 깨달은 것 같고.. 좀 성숙해졌다고나 할까..? 이젠 무슨 일이든지 조심성이 생기는 것 같다. 앞으로 희망이 있다면, 제발 후회할 짓은 그만 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왜냐면.. 시간이 너무 아까우니깐..

고등학생이 되고 나서

高 1-2 張 詩 幥

고등학생.... 왠지 아주 멋있을 것 같고 어른스러운 기분이 듭니다. 고등학생 때와 중학생 때와는 많이 다른 느낌인 것 같

습니다. 중학생 댄 약간 서툴고 실수투성이에 말썽 많은 학생

이었지만, 고등학생이 되고 나서는 욕심도 많이 생기고 앞서가고 싶고 모범을 보여야 되겠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됩니다, 고등학생이 된 후 중학생 때와는 다르게 선생님들도 많이 엄격해지셨고, 수업내용도 중학생 때보다 이해하기 어렵고 많이 힘들어졌습니다, 그리고, 저는 이번에 공부도 열심히 하지 않고 아주 놀기만 해서 등수도 많이 내려갔습니다. 그래서 "2학기 땐 정말 열심히 해야지"하고 생각합니다.

한 학년씩 올라갈 때마다 정말 많은 생각이 듭니다. 동시에 부담도 많이 되고, 고민거리도 많이 생기는 것 같습니다. 특히 저의 진로를 빨리 선택해야 하기 때문에 정말 고민이 많이 됩니다. 고등학생이 되고 나서 약간 힘들긴 하지만, 정말로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리고, 소중한 추억거리도 많이 만들 겁니다.^^ (화이팅!!!)


고등학생이 되고 나서

高 1-2 張 菁 芳

나는 2001년 가을에 고등학생이 되었다. 중학생 시절과 비교하여 너무도 많은 것이 변한 것 같다, 모든 과목도 점점 어려워지고 있고. 집에서도 전과 달리 엄마의 가사도 돌봐주게 되었고, 남동생을 챙기게도 되었다, 내 자신이 점점 성숙해져 가는 것 같다, 그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지금 한 학기가 지났으니, 앞으로 나의 장래를 생각한다면, 공부를 더욱더 열심히 해야 한다는 것이다, 친구들과의 학창시절도 좋은 추억으로 남기

고 싶다, 그러려면 모든 일들을 열심히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2002년 1월 새해를 맞이하여 나는 새로운 결심을 하였다.

새학기가 돌아오면 전보다 공부를 열심히 하여 성적을 올리고, 남은 고등학교 시절에 더욱더 충실하고 나아가서는 좋은 대학에도 진학하여 사회에 나가 필요로 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고등학생이 되고 나서

高 1-2 鄭 丞

어느새 벌써 일년이 지나 우리는 고등학생이 되어 있습니다, 어제만 해도 중학생 시절이었던 거 같은데... 정말 시간이 빨리 지나간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고등학생이 되고 나니, 모든 것이 달라졌다는 느낌이 확실히 듭니다. 공부도 예전에 중학생이었을 때처럼 쉽지가 않고, 생각도 역시 많이 복잡해졌다는 걸 느끼네요. 고등학생이 되고 나면 모든 방면으로 더욱 성숙해졌다는 것도 몸소 느낄 수가 있습니다.

이젠 더 이상 어린 중학생이 아닌 조금은 성숙한 고등학생











으로 모든 사물을 봐가야 한다는 것 제 자신을 절로 부담스럽게 만들곤 합니다. 그리고 앞으로 어떻게 해나가야 할지, 모든 것은 다 제 자신의 선택에 따라야 한다는 것이 저의 어깨를 누르는 것을 느끼어, 가끔은 차라리 중학생일 때가 더 행복하다는 것을 생각나게 합니다, 하지만 시간은 흘러가기 마련, 모든 것은 시감에 따라 순종을 해야하는 것 그래서 그 변화에 따라 제 자신도 변화시켜야 한다는 것을 저는 알기 때문에, 그

대로 제 자신을 변화시켜 갑니다.

앞으로 공부에 대해 더욱 신경 쓰고 많은 것을 고등학생답게 배우고 생각해야 할 것 같습니다, 조금은 힘들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이건 경험이라고 생각하고 적응을 할 것입니다.


고등학생이 되고 나서

高 1-2 종 리 나

고등학생이 되기 전에는 온갖 상상을 많이 했다. 훨씬 더 즐거울 거라고, 훨씬 더 자유로울 거라고...... 하지만 되고 나서 보니 별로 달라진 게 없었다. 그냥 반 친구들이랑 선생님들, 그리고 좀더 어려워진 공부, 거의 그것뿐이다!

고등학생이 되고 나서 가장 안 좋은 것은 바로 용돈이 줄어들었다는 것이다. 예전에는 그냥 달라고 하며 다 주셨는데, 지금은 갈라고 하면, "아직 남았지?", "먼저 네 돈으로 써." 이러신다. 그럴 때만다 황당하다. '예전에는 안 그러셨는데......' 하는 생각이 자주 든다.

고등학생이 되고 나서 좋은 점은 내 방이 생긴 것이다. 그 전에는 내 방이 아니어서 예쁘게 꾸미지도 못하고 잠만 잤는

데, 드디어 내 방이 생겼다. 생긴 다음에 한 일 주일은 무진장 행복했다. 내 방은 2층인데, 왠지 자유로운 거 같고, 좋았다. 하지만 점점 있다보니 좀 심심한 것도 같고, 무엇보다 가장 힘든 것은 바로 계단을 오르내리는 것이었다. 하루에 한두 번도 아니고 수십 번 왔다갔다하다 보니 다치기도 많이 했다. 내 다리에는 멍도 많이 들고...... 그러다 보니 좀 후회도 된다. 힘들게 졸라서 내 방이 생겼는데, 그렇다고 엄마한테 말하면 혼나니깐, 혼자 답답하고 너무 힘들다.

시간이 참 빠른 것 같다. 이젠 몇 달만 있으면 또 고등학교 2학년이 된다. 아직까진 뭐 제대로 한 것도 없는데, 후회하는 일도 참 많지만, 이제부터라도 열심히 살아야겠다.


고등학생이 되고 나서

高 1-3 宮 嘉 鴻

고등학생이 되었다. 어느덧 장난꾸러기 초등학생 시절을 마치고... 철부지 중학생 시절도 마치고.. 어엿한 고등학생이 되었습니다!!

고등학생이 되고 나니 여러 가지 적응이 필요한 문제들이 많더군요 그중 담임선생님이 바뀌게 된 것이 제일로 저를 힘들게 한 것 같아요. 솔직히 말하면 저는 그런 선생님이 맘에 들지 않을 때도 많고 이해가 안 갈 때도 많았지만, 이제 점점 적응도 돼가고 의외로 저희를 많이 생각하고 관심을 가져주시는 거 같아서 저도 이젠 선생님을 잘 따르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고등학생이 되고 나니 선생님들이 매를 드는 모습이 줄어든 거 같아요 예전에 저는 줄곧 많은 선생님들의 매에 혼쭐

났는데, 이것은 분명 저희들이 이젠 다 컸다고 생각하며 스스로 잘 할 거라 선생님들이 저희들을 믿기 때문에 그런 것이라 생각하며 잘하고 있죠. 이렇듯이 새로운 상황, 새로운 일들 속에서 저는 수많은 친구들과 적응을 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고등학교 2년이 더 남았는데 그동안 저는 나중에 기억될 만한

좋은 추억들을 만들 것이고 나중에 후회하지 않도록 학업에도 충실할 것입니다!!


고등학생이 되고 나서

高 1-3 趙 立 燕

고등학생이 되고 나서 나의 일상 생활은 많은 변화가 있었다.

우선 중학교 시절보단 더 바빠졌고 공부도 어려워졌다. 게다가 반을 나눠서 친한 친구들과 떨어지게 됐고, 처음에 고등학생이 되고 우리 고1-3이 어찌나 어색하던지, 그냥 모든 것이 다 서먹서먹했다. 그래서 학교 다니는 게 그리 즐겁지만은 않았다. 수업 끝나고 종이 울리면 난 바로 내 친한 친구가 있는 1반으로 달려가 종칠 때까지 내내 거기 있다가 온다. 하지만 몇 주 후엔 우리 반이 점점 익숙해지면서 우리 반에 있는 시간이 더욱 많아졌다.(^-^)

그리고 고등학생이 되니깐 공부가 많이 어려워졌다. 중학교까지는 과외를 했지만 엄마가 과외비 못 내겠다면서 그만 두라고 하는 바람에 초등학교 이후로 처음으로 혼자 공부를 하였다. 하지만 처음엔 요령을 잘 몰라서 첫 시험은 완전히 망했다 게다가 처음엔 고등학교 시험을 너무 만만하게 보았다. 맨날 놀다가 시험 바로 전날에 벼락치길 했지만 성적은 정말 엉

망이었다!! 성적표가 나온 후로 엄마에게 엄청나게 꾸중을 듣고 나서야 정신을 차렸다. 그 후로 집에 와서 컴퓨터나 만화책만 보는 일은 없었다. 가끔 공부를 하기도 했다. 그리고 시험 전 1주일을 열심히 준비했더니 시험 점수가 꽤 잘 나온 것이다. 중학교 때 과외 할 때의 평균과 비슷했으니 나 혼자 한 것 치곤 무지 잘한 것!! 이렇게 나 혼자 감탄하면서 행복해 했다.

고등학생이 되니 모든 게 어렵기만 했다. 어려울수록 노력을 해야하는데, 난 지금 또 띵까띵까 놀기나 하니......

다음 학기부터는 분발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후훗......


고등 학생이 되고 나서

高 1 無 名 氏

세월이 흐르는 물과 같더니 벌써 내가 고등학생이 되었다. 고등학생이 되고 나니 중학생에 비해 많은 차이가 있었다. 학교 선생님들은 어른 대접도 해주시고, 친구들도 어느새 나름대로 자기 장래를 심각하게 생각 할 줄도 알고, 미래를 설계하며 토론을 하기도 한다, 그리고 집에서는 부모님께서, 이제 나도 어른이 되어가지 자주 나에게 인간의 도리나, 삶의 이치, 의무 밑 권리 등등을 이야기 해주신다. 아직은 다 이해가 되지 않지만 어느새 나도 성장하고 있구나, 생각이 성숙되어 가는 느낌을 받는다.

고등학생이 되고 나서는 더 많은 것을 배우고 싶다는 의욕이 생겼다, 중학생일 때는 취미 생활은 거의 오락 위주인, 반면 고1 올라와서는 학습위주로 바뀌기 시작했다, 지금도 열심히 배우고 있으며, 아울러 학교 생활이나, 과외 활동도 열심히 하여 멋진 어른이 되도록 노력할 것이다.

[海外 名詩]

가지 않은 길

R. 프로스트(미국. 1874-1963)

노란 숲 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나니

안타깝게도 나는 두 길을 갈 수 없는

한 사람의 나그네라 오랫동안 서서

한 길이 덤불 속으로 꺾여든 데까지

바라볼 수 있는 만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아름다운 다른 길을 택했나니

그럴 만한 이유가 잇는 것은 거기에는

풀이 더 우거지고 밟힌 자취 적었으나

결국 그 길을 걸음으로 해서

그 길로 거의 같아질 것입니다만,

그 날 아침 두 길에는 아무에게도

더럽혀지지 않은 낙엽으로 덮여 있었습니다.

아, 나는 뒷날을 위해 한 길은 남겨 두었습니다!

하지만 같은 길에 이어져 끝이 없으므로

내가 다시 돌아올 일은 의심스러웠습니다.

멋 뒷날 나는 어디에선가

한숨을 쉬며 이 이야기를 할 것입니다.

숲 속에 뒤 갈래 길이 갈라져 있었더니라-

나는 사람이 덜 다니는 길을 택하였느니

그것으로 해서 모든 것이 달라졌더니라고.

10년 뒤 내 모습

中 2-1 于 鍾 淇

장래 나의 직업에 대한 생각은 많은 변화가 있었다. 어렸을 때는 멋있는 영화배우, 좀 자랐을 때는 의사. 하지만 지금은 운동선수가 되고 싶다.

난 운동 중에서 축구와 농구를 가장 좋아한다. 그래서 축구선수나 농구선수가 되고 싶다.

우선 운동선수가 되면 조국을 위해 이 한 몸 아낌없이 바칠 것이다. 그리고 운동선수가 돼서 좋은 것은 유명해지기도 하고 수입도 많아지고, 일석이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기 위해선 실력이 좋아야 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열심히 체력을 단련하여 유명한 선수가 되도록 노력할 것이다.


10년 뒤 내 모습

中 2-2 孫 運 珍

2018년 나는 지금 30살이다. 난 지금 미국의 어느 대학을 졸업한 변호사이다. 나는 법에 관한 일을 하는 걸 좋아한다.

나는 변호사란 내 직업이 마음에 든다. 내 적성에도 잘 맞고 그리고 몸이 아닌 머리로 승부하는 직업. 그것이 제일 마음에 든다.

내가 변호사가 된 이유는 크게 두 가지이다.

첫째, 이 세상에서 惡이란 단어를 없애기 위해서.

둘째, 나의 적성과 잘 맞기 때문에.

나는 지금 나의 어릴 적 꿈을 이루어서 너무 행복하다. 앞으

로 더욱 노력하여 세계가 인정하는 국제변호사가 될 것이다.


10년 뒤 내 모습

中 2-2 蕭 本 君

10년 후.

나는 나의 아버지처럼 해물 장사를 하고 싶다. 아버지는 반대하신다. 아버지는 해물장사보다는 사회적 지위도 높고 존경받는 의사가 되라고 하신다. 하지만 난 아버지의 일이 좋다. 힘든 아버지의 일을 아들이 이어받는 것이 아버지는 싫으신 거 같다. 어머니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라고 하신다. 그래도 아버지는 의사가 되길 바라신다.

나는 대학에 가기 싫다. 부모님은 대학은 꼭 가야 한다고 하시지만, 난 나의 생각과 꿈이 확실하다면 대학에 가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한다. 이런 이야기를 아버지께 하면 혼이 나기도 하지만, 난 꼭 대학에 가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난 내가 좋아하는 아버지처럼 아버지의 일을 하고 싶다.








나의 미래

高 1-2 馬 惠 英

나의 미래, 난 커서 하고 싶은 게 참 많다. 수의사, 치과의사, 소아과의사, 디자이너, 호텔 경영 등등... 그래서 요즘 고민이다, 도대체 어떤 것이 내가 정말 하고 싶은 것인지, 그리고 어떤 것이 내가 하기에 제일 잘 맞을 까, 어떤 게 하기가 쉬울까, 어떤걸 해야 내가 정말 성공할 수 있을까... 난 네가 대학을 나온 후 무엇을 하든 난 친구와 같이 동업해서 하고 싶다. 왜냐하면 둘 다 처음이지만 서로 같이 일하며 모르는 점이 있으면 알려주고, 힘든 일이 있으면 도와주고, 서로의 부족한 점을 조금씩 메워 나가며 최고가 되어서 성공하고싶다. 혼자서 시작하는 것보다 둘이서 시작하는 것이 더 유리한 것 같다고 생각한다.

난 돈 욕심이 크다. 그래서 커서 꼭 성공해서 돈을 많이 벌고싶다. 난 돈에 대해서 이렇게 생각한다. 사람들은 누구나 다 이렇게 말한다. 돈이 최고가 아니라고, 돈이 최고이기 전에 사람이 최고라고, 하지만 실제로 지금 세상은 돈이 최고이다. 돈 때문에 죽는 사람이 있고, 돈 때문에 아파하는 사람이 있다. 돈 때문에 죄를 지은 사람도 수없이 많다, 돈만 있으면 해결 안 되는 게 없다. 그래서 난 돈을 많이 벌어서 아파하지 않고, 슬퍼하지 않으면서 잘 살고 싶다.

나의 미래

高 1-2 鄭 丞

저는 어렸을 때부터 꿈 꿔왔던 한 가지 꿈이 있습니다. 바로 에디슨 같은 과학자가 되는 것이죠. 듣기에는 무지 유치한 것

같죠? 하지만 저는 이 꿈을 실현하기 위해서 노력하고 또 노력합니다. 미래에 정말 에디슨 같은 훌륭한 과학자가 되어 수 많은 발명품을 만들고 사람들에게 행복을 남겨 주고, 모든 사람들이 편리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하고 싶을 뿐입니다.

그런데 아직도 그 꿈엔 변함이 없지만, 요즘은 공부하기가 너무 힘들어 꿈을 실현시킬 수 있을지가 걱정입니다. 물론 저의 미래도 걱정이 되고, 결국은 나 같은 사람은 무엇이 될 건지, 어떻게 살아갈 건지 벌써부터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랍니다. 어떻게 해야 공부를 더 잘할 수 있을지, 어떻게 해야 공부한 것이 머리로 들어올지, 정말 생각하면 할수록 더욱 걱정이 늘어갑니다. 결국은 저의 꿈이 이뤄지지 않는 걸까요? 정말 저의 미래가 두렵기도 하네요.

저는 정말 바랍니다. 저의 미래가 꼭 경제적으로 풍요롭지 않아도 제가 바라는 모든 것이 뜻대로 되길 빌고, 정말 제 꿈이 이루어졌으면 합니다. 물론 모든 것은 지금부터 해야 하지만 정말 말대로 실천으로 옮길 수 있었으면 합니다.



나의 미래

高 1-2 陳 勝 賢

미래, 미래는 꿈을 말하는 거 같다. 그래서 남들이 "너의 미래가 뭐니?" 하고 물으면 되고 싶은 것들이 쭉 나온다. 남들이 매번 물을 때마다 난 항상 바뀌고 바뀐다. 매년, 아니 매달 바뀌고 있다. 이걸 보면 이것, 저걸 보면 저것, 내가 생각해도 난 정말 변덕쟁이다. 하지만 내가 생각하기에 꿈은 많은 게 좋은

거 같다.

아주 어렸을 적엔 어린 아이들의 절반이 "엄마가 되고 싶어요." 라고 했을 것이다. 왜냐면 나 역시 그랬고, 항상 '엄마는 나보다 높다.' 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학교를 다닌 후부터는 선생님이 되고 싶다고 했다. 사춘기라고 해야 하나? 한참 TV에 정신이 팔렸을 때엔 탤런트나 가수였다. 이 같은 생각을 안 해 본 사람은 없을 거 같다. 요즘 어린아이들 중 조폭이 되고 싶다는 말을 하는 아이들이 있다. 나도 보고 들었다. 그만큼 사회나 TV가 미치는 영향이 큰 것 같다. 하지만, 꿈은 항상 바뀌는 거기 때문에 나는 웃어버린다.

점점 커 가면서 아버지나 사회 사람들의 어려움이 나에게도 들리고 보인다. 뭐랄까? 내 나이도 그리 어린 나이는 아니기 때문이다. 이젠 이리저리 헤맬 때가 아니다 나의 재능이나 특기를 찾고 있다. 거기에서 꿈은 아주 큰 노릇을 한다. 지금 내가 알고 있는 건 그래도 나에겐 꿈이 있다는 것이다.

나의 미래는 대학교수가 되어 내가 알고 있는 지식이나, 그 밖의 모든 것들을 남들에게도 알리고 싶고. 나 또한 그들을 통해 또 다른 것을 배우고 싶다. 난 이것말고도 또 많은 꿈들이 있다, 하지만, 이 한 몸으론 역부족이다. 이것저것 다해 보려면, 아니, 자기 꿈을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게 하려면 지금의 임무를 잘 수행해야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난 지금 나의 임무를 열심히 수행 중이다. 열심히 공부하는 것! 왜냐면 난 아직 학생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지금 충실히 실행 중이다. 그래서 나의 미래를 좀더 나은 모습으로 꾸며나갈 것이다.


나의 미래

高 1-2 秏 嘉 鴻

나는 지금까지 되고 싶었던 꿈이 두 가지가 있었다... 하나는 초등학교 때 공부는 못했지만... 운동은 잘했다... 운동회 때도 달리기는 1등만 했다... 공부 잘한다는 칭찬은 못 들어봤지만... 운동 잘 한다는 칭찬은 많이 들었다... 체육시간에도 열심히 운동을 했다... 괜히 더 빨리 뛰고... 그때는 운동 잘한다는 칭찬이 기분 좋아, 나중에 크면... 꼭 운동선수가 되겠다고 다짐을 했다... 하지만 중학교에 들어와... 꿈이 바뀌었다... 초등학교 체육시간에는 많이 뛰고... 쉬는 시간마다 나와 고무줄도 하고 해서... 몸이 안 뻣뻣했는데... 중학교 올라와서는 몸이 좀 뻣뻣해지고... 뛰는 게 좀 싫어졌다... 그러고 한 동안 나의 꿈을 정하지 못했다... 그런데... 한 학년 한 학년 올라갈 때마다 작문 쓸 때는 나의 미래라는 제목이 꼭 있었다... 그럴 땐... 되고싶은 꿈도 없이 어떻게 살까~?? 라는 생각을 하면서... 내가 너무 한심했다... 그런 제목이 나오거나 누가 물어보면... 전에 하고싶었던... 운동선수라는 말을 쓰며 대충 지나갔다... 한 중2 때쯤부터... 갑자기 유치원 선생님이 되고싶었다... 좀 힘들긴 하지만... 가끔은 좀 귀찮을 때도 있다... 방학마다 이모네 놀러가 동생을 봐주는 게 좀 싫을 때도 있다... 나도 이제 고1인데... 나도 방학 때 친구들과 돌아다니고... 놀고 싶은데... 방학만 하면... 이모들이 나를 찾아 좀 귀찮을 때도 있다... 어느 날... 이모가 "넌 나중에 뭐가 될래???" 라는 질문을 했다... 그때 난 유치원 선생님이 되고 싶다고 했다... 근데 유치원 선생님은 되기가 좀 힘든 직업이다... 이모가 말하기를... "넌... 학교 졸업한 다름에... 대학 가기엔... 좀 어려우니깐... 졸업하면... 일년 내내 죽어라 돈 벌면서... 학원도 다니면서... 자격증을 딴 다음에... 유치원 선생님 좀 하다가... 돈 많이 벌면... 네가 유치원 지어

서 해..." 라고 말했다... 그 말을 듣고... '내가 진짜 이렇게 할 수 있을까??' 라는 생각도 많이 했다... 하지만... 꿈을 갖고 살면...뭐든지 다 열심히 할거라고... 믿고 있다... 이런 생각도 했다... 지금 내가 되고 싶은 일을 다 정해놨는데... 나중에 또 다른 걸로 바뀌면 어쩌나 하는 생각을... 하지만.. 나중에 바뀌더라도... 그 꿈을 위해 열심히 할 거다... 하지만... 제발 이 꿈이 안 바뀌길... 내가 바라는 꿈을 꼭 이룰 수 있길... 기도하며...


나의 미래

高 1-2 解 鴻 賓

어떤 사람이든 자기가 생각하고 있는 근사하고, 화려한 미래가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나도 그런 사람들과 마찬가지다... 지금 이 나이면 한번쯤 고민하게 된다... 난 어떤 대학을 가서 살아가야 할지... 한참 장래의 진로를 생각하고 고민을 해야하는 시기인 것 같다.

나의 미래.. 생각하면 가슴이 두근거린다... 과연...미래의 나의 모습은 어떤 모습이며. 또한, 나는 어떤 일을 하고 있을까? 과연, 부유하게 잘 살 수 있을까? 아니면, 가난하게 살고 있을까? 우선 사소한

것 에 대해 걱정이 많이 되곤 한다. 비록, 학창시절에 공부는 잘 하지 않았지만... 성공한 사람들이 많다고들 한다. 하지만... 난 그런 말을 믿지 않는다. 세상에 노력 없이 얻어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한다... 난 공부를 그다지 잘 하지 못 한다. 하지만, 난 내가 못하는 거라고 생각 안 한다. 그저 네가

노력을 안 할 뿐... 나의 미래를 생각할수록 참 많은 것을 고민하게 된다. 학교 생활을 해가면서 오늘처럼 대학이 중요하다고, 지금 나의 꿈이 중요하다고 느낀 것은 처음이다. 찬란한 미래가 있으려면 우선은 노력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지금처럼 해서는 나의 미래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돈데... 어떤 것부터 해야할지 모르겠다...

난 나의 미래를 상상해보라고 하면... 의사가 되는 것을 상상하곤 한다... 하얀 가운을 입고, 환자들이 누워있는 입원실을 하나하나 지나쳐서.. 여러 아픈 꼬마들과 아픈 사람들을 치료해주는 그런 정다운 모습... 참으로 보기 좋을 것 같다. 항상... TV에서도 나오듯이 의사라는 직업이 참 멋있어 보인다. 누구나 한 번쯤은 의사가 되고 싶어 할 거라고 생각한다... 의사가 되려면 참 많은 땀과 노력이 필요하다고 주위 사람들이 말을 해주곤 한다. 생각해보면... 의사가 되는 길도 험하다고 한다. 꿈은 클수록 좋은 거라고,, 아무리 힘든 길이라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무엇이든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난 지금부터 힘들더라도 하나하나 노력해 나갈 것이다... 나의 꿈, 나의 미래를 위해...











나의 미래

高 1-3 房 雅 眞

예전엔 미래를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냥 되는 대로 되라는 듯이 생각하고 있었는데...요즘 따라 나의 미래를 차차 걱정하고... 생각하곤 한다! 이제 나도 2년만 있으면 대학을 간다는 생각을 하면.... 아피 캄캄할 정도로 걱정이 태산인데.... 공부는 더욱 열심히 해야하는데... 뜻대로 잘 안 돼서 너무 걱정이다-- 계속 이렇게 지금처럼 가면 ... 아마 나의 환상 적인 미래는 그저 꿈뿐일 거 같다! 나는 커서 소아과 의사가 되고싶다. 그런데... 지금 나로서는 아주 많이 부조간 걸 알고 있지만.... 나는 내 꿈을 차마 저버리고 싶지가않다. 그러므로 열심히 공부하는 것이 최대한 좋은 방범인 거 같다.

사람마다 각각 자기의 미래를 꿈꾸곤 한다. 하지만... 그건 꿈만은 아닌 것을 알고 있어야 한다!!! 내 미래를 펼치기 위해... 나는 항상 어디서든지 노력하는 사람이 되고자 한다. 아무리 어렵고 험한 길이라 해도...절대로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나의 미래

高 1-3 孫 詩 惠

사람들은 살아가면서 분명 자신의 삶의 목표가 적어도 한 가지씩은 있을 것이다. 앞으로 미래의 목표를 향해 현재 많은 사람들이 분주하게 자신의 일을 하며 달려가고, 그 꿈을 달성하기 위해 온갖 기쁨과 상처를 겪었음으로 우리는 자신의 목표가 이루어졌을 때 더욱 빛을 발하고 기문이 남다를 것이다.

난 어렸을 적부터 꿈이 참 많은 아이였던 것 같다. 사람들에

게 아름다운 스타일을 만들어주는 미용사, 당시 많은 학용품과 장난감을 모두 가질 수 있다고 생각했던 문방구 주인, 맛있는 과자와 아이스크림을 마음껏 먹을 수 있다고 생각했던 슈퍼주인, 아픈 사람들을 치료해 주는 의사, 한의사 등... 지금 생각 해보면은 웃음이 절로 나게 만드는 꿈들도 몇 가지 있었지만, 참 순진했던 기억이었고, 그 중 한의사는 현재까지도 내 꿈이 되어버렸다. 한의사가 내 꿈이 된 가장 큰 이유는 아빠가 한의사이시기 때문이다. 어릴 때부터 아빠가 아픈 사람들을 치료해 주시고, 또 그 사람들이 다 나아서 건강해지는 모습을 보면 참 보람 있는 직업인 것 같았고, 나중에 커서 나도 꼭 아빠처럼 경제적으로 여유가 많지 않은 아픈 사람들을 치료해주고 그 외의 다른 많은 사람들도 치료해주고 싶다는 생각을 늘 했다.

나뿐만 아니라 이처럼 의미 있고 보람 있는 직업이 꿈인 사람들은 많을 것이다. 내 생각에는 그런 의미 있고 중요하겠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아무래도 자신에게 어울리는, 한 마디로 적성에 맞는 그런 일을 염두에 두고 자기만의 미래를 계획해나가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생각인 것 같다.

나는 인제 고1이 된 학생이다. 지금부터 내 꿈을 향해 열심히 공부하고, 최선을 다 할 것이다.


나의 미래

高 1-3 孫 元 彬

우리는 항상 자신의 미래를 꿈꾸며 살아가고 있다. 그 미래가 어떤 것인지 알 수 없지만 나는 이 길을 걸어가고 있다. 자신이 믿는 것을 향해서 끝없이 걸어가고 싶다...

우리가 목표로 삼는 이 길들이 어떤 미래인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내 생각에는 사람의 미래란 정해진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피와 땀으로 만들어 가는 것이라고 믿고 있다. 만약 우리의 삶이 정해진 것이라면 삶을 사는데 의미를 느낄 수 있을까? 나는 그런 정해진 삶을 사느니 차라리 죽는 것이 나을지도 모른다는 말을 감히 내뱉어 본다. 나는 아직까지 나의 미래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 본 적은 던 거 같다.

드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추구하는 미래는 모두 부와 명예를 생각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또한 자신의 이상만을 추구하는 사람도 적지 않을 것이다. 그 미래를 이루기 위해서는 많은 노력을 해야 한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지만, 하지만 사람들은 너무나도 쉽게 포기를 하고 만다. 내 미래는 적어도 쉽게 포기하고 후회만은 남기지 않는 그런 미래를 이루고 싶다.

무엇이 우리에게 진정한 기쁨을 주는지, 돈? 명예? 아니면 자신의 이상? 그것은 알 수가 없다. 자신 있게 이 길이 내 미래라고 믿고, 또 말하고 싶지만 난 아직 자신이 없다, 나의 이상... 그것은 비록 꿈 같은 얘기로 들릴 지도 모르지만, 나는 그런 꿈같은 얘기가 지금처럼 돈과 명예만을 위해 삭막한 사회 속에서는 오히려 따뜻하고 좀더 나은 미래로 만들어 줄 것만 같다.


나의 미래

高 1-3 魏 洪 莉

과거의 등에 떠밀려 흘러가는 미래를 사람들은 "두렵다" 혹은 "기대한다" 라고 말을 합니다. 그러나 그 막연한 미래에 자

신의 앞을 확신에 담아 바라보는 사람은 의외로 적습니다.

오늘과 내일 다시 오늘 그리고 내일, 떠오르는 것은 어제, 바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보장할 수 있는, 착하게 답할 수 있는 내일의 연속이란 "오늘"이 될 내일 후로 외엔 불가능한 것입니다.

세기말로 분주했던 99년, 그리고 이젠 전 어제가 된 2000년이 지나고 이제 사람들은 다시 숫자의 "새로움"을 자신의 허물을 벗는 것으로 새롭게 기분을 다지고 2002년이 되었습니다.

한국에는 '2002년 월드컵'으로써 의미 깊은 2002년입니다만, 저 자신에게 어떤 의미가 될지 저로선 아직 알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나의 미래란 아직 나에게 "가능성" 그리고 앞으로 나의 (어제가 될) "시간" 일 뿐입니다.

제가 되고 싶은 건, 제가 향하고 싶은 미래는 아직 저의 오늘 이후인 "내일" 에 있습니다. 다만 생각하는 것입니다.

앞으로도 오늘이 가는 것과 내일이 오는 것. 어제가 되어버리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너무 먼 곳을 디디려다 중간 디딤돌 사이에 넘어지지 않는 것.

바로 내 무릎 앞에 놓인 것도 소중한 미래라는 것입니다.



나의 미래

高 1-3 李 梅 蘭

내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 과연 내가 원하는 일을 하면서

살고 있을까?? 난 무슨 일을 하면서 살고 있을까??

음... 일단 난 당당한 커리우먼이 되고 싶다. 자신만의 일을 가지고 있는... 그리고 한 가정을 꾸려나가는 주부도 되고 싶고... 우와~내가 아이들의 엄마가 돼 있을 거라니... 상상이 잘 안 되는 걸...

10년이 지나면... 아마도 난 호텔리어나 한의사 둘 중에 하나는 돼있을 것이다. 호텔리어... 이건 내가 제일 하고 싶은 일인데, 세계 최고의 일류호텔 총지배인이 바로 내 꿈이다. '글쎄...과연 내 이 소심하고 낯가리는 성격으로 잘 할 수 있을까??' 하고 생각도 하지만, 뭐... 꿈은 크게 가질수록 좋은 거라 했으니... 상관없겠지? ^^; 친구들은 호텔리어가 나한테 잘 어울린다고 한다.

하지만 엄마랑 아빠는 반대하신다. 굳이 반대한다고 하진 않아도 별로 좋게 생각하진 않으신다. 나한테는 어울리지 않는다나??? 칫! 그런 아빠랑 엄마가 원하시는 건 한의사다. 으으~~한의사... 난 한의사는 별로인데... 공부도 많이 해야되고 침도 놔야하고.....

아빠는 가끔 나에게 이렇게 말씀하신다... "화교는 직업의 폭이 좁으니 전문직이 제일 안전하고 좋아..." 학년이 올라가고 나이를 먹을수록 말씀하시는 횟수가 점점 늘어난다. 그리고 이런 말을 덧붙이신다.."아빠랑 엄마가 아플 때 네가 약도 지어주고 진찰해주면 얼마나 좋겠니??"라고... 글쎄...나도 그럼 좋기는 하겠지만...

난 사람은 누구나 자기가 좋아하고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싶지만 요즘 들어 부쩍 말라버린 아빠를 보면 마음이 흔들린다... 하나밖에 없는 딸에게 거는 기대가 얼마나 클까?? 하는 생각을 하면 쉽게 생각할 수 가 없어진다...

나의 미래... 아직은 아무것도 결정된 것도 없고 깜깜한 동굴

속 미로 같지만... 하나하나 계단을 밟듯 조심조심 가다보면 내가 원하는 미래가 날 기다리고 있겠지??? 호텔리어가 될지.. 한의사가 될지 아님 다른 곳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그저 난 나의 미래를 위해 열심히 노력하는 수밖에 없다.


나의 미래

高 1-3 周 慧 弟

나의 미래..... 과연 나의 미래의 모습은 어떨까? 뭐 무엇을 하고있을까? 그건 다 지금 자기 하기 나름 아닌가..?

나의 꿈은 치과의사다. 어려서는 그저 돈을 많이 벌려고 의사가 되고 싶었다. 의사 되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닌 줄 알았다. 하지만, 이제야 의사가 얼마나 어렵게 되는 것인지, 얼마나 힘든 직업인 지를 알게 되었다. 의사가 되려면 보통 10년이 걸린다고 한다. 의사가 되고 나서도 생명을 다루는 일이라서 작은 실수 하나도 용납이 안 된다. 나는 어려서부터 치과에 자주 다녔다. 충치가 얼마나 많은지... 의사선생님께서 나랑 언니의 치아는 기형이라고 했다... 우리 엄마, 아빠도 이가 튼튼한 것은 아니라서, 우리도 그 영향을 많이 받은 거 같다. 그만큼 이가 빨리 썩는다는 얘기다... 한번 갈 때마다 치료비가 어마어마하다... 치과는 얘들이나 어른이나 다 무서워하는 곳이다. 치과에는 치과만의 냄새가 나고, 보기만 해도 무서운 기구들, 또 치료할 때 나는 그 소리들... 정말 무섭다... 나는 꼭 의사가 되어서 그런 무서운 것들을 확 바꿔버리고 싶다... 향도

달콤한 행이 나게 하고, 그 도구들도 예쁜 모형으로 바꿀 것이

고, 소리들도 예쁜 새소리 같은 것으로 바꿀 것이다. 그리하여 치과가 더 이상 공포를 느끼게 하는 곳이 아니게 만들고 싶다. 예쁜 하얀색 의사가운을 입고 사람들의 치아를 치료하고 있는 모습. 이게 내가 바라는 나의 미래의 모습이다. 나는 지시도 그리 많지 않고, 공부도 그리 잘 아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친척들은 내가 성적이 조금 좋다고 나를 너무 믿는 거 같다... 항상 "너는 어느 과에 갈거니? 너라면 할 수 있을 거야!" 그 분들은 그냥 하는 말이지만, 나는 부담을 느낀다... 우리 부모님들은 고생을 많이 하셨다. 나는 그분들을 위해서라도 꼭 성공해서 아빠, 엄마를 호강시켜 드리고 싶다...

지금부터라도 열심히 하지 않으면 미래의 내 모습은 멋지게 되지 않을 것이다.

나는 나중에 후회하지 않게 지금부터 열심히 해서 꼭 치대에 들어가고 싶다!

내 미래의 모습! 바로 치과의사가 되는 것이다! 꼭 이루고 말 것이다!!










[만화]
























































[할 얘기가 있어요]

첫사랑

中 1-3 無 名 氏

언제부턴가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어요. 그런데 그 사람과 같이 있지 못한다는 것은 생각도 못했죠.

그 애가 학교에 안 오면 어디 아픈가 하고 걱정이 되고, 싸움을 하면 어디 안 다칠까 걱정이 되고, 선생님한테 혼나면 때리지 말라는 말도 하고 싶고, 그 애가 하는 일이라면 모든 게 걱정이 돼요!

그 애가 다른 여자 애들이랑 놀면 괜히 화가 나고, 그 애가 누굴 좋아한단 소릴 들으면 마음이 아프죠. 그 애 말만 하면 가슴이 두근거리고, 그 애 이름만 들어도 가슴이 두근거리죠. 신촌, 이대...... 어딜 가도 그 애가 바로 앞에 나타날 것 같고, 그 애 비슷하게 생긴 애가 지나가면 깜짝 놀라요!

그 애 옆에 있고 싶고, 그 애랑만 놀고 싶고, 그 애랑 하루 동안 같이 있고 싶고, 이야기도 나누고 싶어요!

하지만 어쩌죠! 상상일 뿐이에요!










[서평]

E.H Carr의 <역사란 무엇인가>

高 3-3 孫 粝 容

역사라는 단어처럼 오랫동안 많은 사람들에게 회자되어 온 말도 드물다. 다양한 계층에게 쓰이고, 또한 다양한 의미로 쓰인다. 이처럼 '역사'는 우리에게 친숙한 단어이지만, "역사란 무엇일까요?"라고 물으면 명확하게 대답해주는 사람은 드물다.

E.H Carr의 <역사란 무엇인가>는 역사의 본질에 대해 가장 기본적이면서도 명확한 주장을 펼친다.

이 책은 역사의 본질, 성격에서 시작하여 역사의 목적과 방향까지 합리적인 근거와 논거를 제시하여 그로부터 한 세대가 지난 지금까지도 역사 연구의 근간을 제공한 탁월한 역사관을 확립하였다. 그는 자신의 사상을 <역사란 무엇인가> 라는 이 책 한 권에 집약함으로써 새로운 시작 즉 전환점을 만들고 역사인식의 구심점의 역할을 수행하려 하였다는 데 의미가 크다.

이 책은 '역사가와 사실', '역사와 과학과 도덕', '역사에서의 인과관계', '진보로서의 역사', '넓어지는 지평선'의 여섯 개의 소주제로 구성되어 있으며, 주제의 구성을 보면 역사의 대상이 되는 역사적 사실에 대해 먼저 언급하고 이러한 사실을 기초로 하여 역사를 해석해 가는 과정에 나타나는 중요한 문제들을 하나하나 이야기하면서 최종적으로 균형 잡힌 미래의 전망을 하도록 역사가에게 요구하고 있다.

Carr의 역사관은 학문추구만을 위한 경직된 역사관이 아니라고 생각된다. 그것은 옮긴이의 서문에서도 나타나듯이 폭 넓은 현장체험을 통해 참신하면서도 유연한 역사관을 체득함으로써 일정한 틀에 갇힌 역사가들과는 다른 참신한 역사관을 제시했다는 것이다. 그것은 역사학을 한 가지로 규정하기보다 역사란 역사가와 사실과의 대화이고, 현재 사회와 과거 사회와의 대화이며, 역사가와 원인과의 대화이

고, 지난날의 제 사건과 미래에 출현하게 될 여러 목적과의 대화로서 진보하는 과학인 것이라고 주장하여, 역사를 한 가지 고정된 원리가 아닌 살아 움직이고 변화하는 생동감 있는 상태로 바라봄으로써 개인적으로는 그의 사람에 대한 신뢰까지도 엿볼 수 있게 하였다.

하나로 경직되지 않고 사물과 역사를 살아 움직이는 상태로, 능동적인 상태로 바라보는 시각은 역사를 고민하는 사람뿐 아니라 역사라는 단어를 알고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물음과 답을 주기에 충분한 논지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주장이 한세대가 지난 현대에서도 읽는 이에게 역사에 대한 화두로 다가오지 않았나 자문해 본다.


[독서 감상문]

<안네의 일기>를 읽고

高 2-3 梁 詩 怡

이 책을 보게 된 동기는 예전에 친구가 읽는 것을 보고 호기심이 생겨 보게 되었습니다. 안네는 한창 뛰어 놀아야 할 시기에 좁고 좁은 방세서 숨소리 조차 내지 못하고 지내야 했습니다. 우리들에게는 당연한 일인 친구들과 어울리며 놀이터에서 신나게 뛰어 노는 것이 이 가여운 소녀에게는 간절한 소망이자 소원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안네는 가족들은 결국 나치들에게 붙잡혀 언니와 엄마는 가스실에서 죽음을 맞고, 안네는 영양실조로 꽃다운 나이에 한번 피어 보지도 못하고 생을 마감하고 만 것입니다. 불과 전쟁이 끝나기 단 몇 주전에... 안네의 가족은 꽤 부유한 축에 드는 살림을 살고 있었습니다. 안네의 가족만 그런 것이 아니라 거의 모든 유태인들은 잘 사는 편이었던 것입니다 2차 세계대전이 터지기 전에는 안네도 학교에 다니며 친구들과 즐겁게 뛰어 놀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2차 세계대전이 터지자 안네

의 가족들은 바로 옆 중립국인 폴란드로 망명을 갔지만 히틀러는 순식간에 폴란드를 침략해서 차지하고 말았습니다. 안네의 가족은 미처 피하지 못하고 유태인 학살을 피해 숨어사는 생활을 해야만 했습니다. 낮에는 죽은 듯이 지내야 했고, 창문마다 두꺼운 커튼을 쳐놔야만 했습니다. 밤에도 꼭 필요한 일이 아니면 불을 켜선 안되고 , 샤워를 할 때도 물소리가 나지 않게 쪼그려 앉아서 물을 써야만 했습니다. 이때부터 안네는 키티라는 가상 인물을 만들어 일기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아무 죄도 없고 잘못한 일도 없는데 단지 유태인이라는 이유 하나로만 죽음을 당하는 것을 보기에는 숨막히는 어둡고 갑갑한 공간에서 말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숨어 지내기에는 안네의 나이가 너무 어렸기에 더욱 더 힘들었을 것입니다. 늘 써가 일기도 그녀가 간절히 바랬던 소망은 결코 이루어지지 못했습니다. 어느 날, 안네의 가족이 숨어살던 은신처에 나치 헌병대가 들이닥쳐 다른 가족들도 모두 강제로 끌고 갔습니다 거기서 안네의 소중한 언니와 엄마가 가스실에서 숨을 거두고, 아버지와는 헤어지고, 슬픔을 이기지 못한 안네는 결국 영양실조로 생을 마감했습니다. 그러나 그녀의 아빠는 살아 남아 집에 돌아와 짐을 정리 하다가 일기장을 발견했습니다. 그 뒤, 안네의 아빠는 이 일기장을 출판해서 지금 전 세계에 번역되어 읽히고 있습니다.

안네의 죽음으로부터 배울 수 있는 것은 전쟁은 다신 벌여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전쟁으로 인해 죽어버린 무고한 생명들이 다신 나타나선 안됩니다. 지금 우리 마음껏 누리고 있는 자유로 놀고 싶을 때 마음껏 뛰어 놀 수 있다는 점을 감사히 여겨 일분일초라도 헛되이 보내서는 안됩니다. 비록 2차 세계대전은 연합국의 승리로 끝이 났지만 우린 아직까지 2차대전의 아픔을 잊지 못하고 있습니다. 만일 살아있다면 아리따운 처녀가 되어있을 안네를 상상해보고, 아직도 전쟁 휴전국인 한국도 빨리 통일을 이뤄야만 한다고 생각합니다...

<오체불만족>을 읽고

初 3-3 王 書 美

오체란 인간의 온몸, 즉 머리와 사지를 가리킨다. "오토다케", 그는 오체가 불만족인 아이로 태어났다. 불만족은 커녕 오체 가운데 사지가 없다, 그러나 그는 언제나 "장애가 있긴 하지만 나는 인생이 즐거워요."라고 한다. 그는 장애를 자기의 단점이 아닌 장점으로 바꿔 인생을 살아가고 있다. 나는 이 책을 읽고 언젠가 한번 꼭 이 분을 만나겠단 결심을 했다. 또한 이 책을 읽으며 나는 내 자신을 다시 돌아볼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었다.

그의 어린 시절 별명은 "휠체어의 왕자", "나폴레옹"이었다. 주눅 들기는 커녕 골목대장 노릇을 해서 붙여졌다고 한다. 그는 고등학교 시절 학원을 찾으러 다닐 때야 비로소 장애를 깨달았다고 한다.

나는 오토다케 그 자신만의 힘으로 장애를 장점으로 바꿨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의 곁에는 언제나 자상하신 부모님과 친구들, 그리고 선생님이 계셨다. 부모님은 오토씨를 장애아가 아닌 그냥 보통의 한 아이로 키우셨고, 그의 부모님 덕에 일반 학교에 입학해 수많은 친구와 선생님을 만날 수 있었다. 내 생각에 그는 정말 행운아인 거 같다.

그의 초등학교 시절의 담임선생님은 오토다케의 인생의 스승님이라 하여도 과언이 아니라 생각한다. 그분은 학교에서 전동휠체어를 금하였고, 체육 시간, 마라톤, 수영 대회, 등산 등 모든 활동에 참여시키는 등, 보호보다는 자립의 측면에서 그를 이끌어 주셨다, 그분이 아니셨다면 나는 감히 오토다케, 그가 이 세상에 존재 할 수 없었다고 생각한다.

그는 재수를 하여 와세다대학이라는 명문대에 입학해 영어웅변대회에 나가 당당하게 1등을 하는가 하면, "생명의 거리 만들기"라는 중요한 활동의 실행위원이 되어 수많은 곳에 가 강연을 하였다.

나는 그의 인생을 존경한다. 그는 이미 또 한 권의 책을 내어 바쁘게 살아가고 있다. 그는 자신의 책을 통해 "장애는 불편하지만 불행

하지 않다"는 교훈과 함께 소외 받는 사람들에게 희망과 용기, 감동을 건네준다.

나는 소망한다, 모든 장애인들이 오토다케 같은 희망과 용기를 잃지 않기를......


<마지막 수업>을 읽고

中 2-1 王 聖 元

<마지막 수업>, 이 단편을 읽은 후 나는 참 슬펐다. 그리고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알퐁스 도데는 <별>이라는 소설도 쓴 작가인데, 어쩌면 이렇게 느낌이 다를 수 있을까? <별>이란 소설은 순수하고 아름다운 느낌의 소설이었는데, <마지막 수업>은 굉장히 슬픔을 느끼게 하는 소설이었다. 역시 알퐁스 도데는 훌륭한 작가라고 생각된다.

이 소설의 배경은 프랑스가 독일의 점령을 받고 있을 때이다. 또한 주인공은 수업하기를 싫어하는 평범한(?) 학생이다. 그는 마지막 수업인지도 모르고 여느 때와 같이 늦은 시간 허둥지둥 학교에 갔다. 하지만 학교의 분위기는 평소와는 다르게 조용하고 침울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선생님의 말씀을 통해서 오늘의 수업이 프랑스어로 하는 마지막 수업임을 알게 되었다.

그는 이제서야 도대체 왜 평소에 그렇게 공부를 하기 싫어했을까 하고 후회가 들었다. 이제 자신의 모국어로는 수업을 받을 수 없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사람은 지나고 난 후에야 후회를 가게 되는 것 같다. 선생님은 "이제 끝났다. 모두들 돌아가거라." 하고 힘없이 말씀하시고는 마지막으로 칠판에 "프랑스 만세" 라고 쓰셨다. 이 부분을 읽었을 때 가슴이 뭉클해짐을 느꼈다.

어느 날 갑자기 자신의 모국어를 말하지도 쓰지도 못하게 된다면 얼마나 황당할까? 나도 이제부터는 모국어를 열심히 공부해야겠다고 생

각했다.

그리고 이 책은 공부하기 싫어하는 학생에게 주면 공부하고 싶은 마음이 생길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TV 감상문]

<갈매기의 세계>를 보고

高 2-3 徐 吉 全

오늘 나는 EBS시청을 대신하여 National Geography의 <동물의 세계>를 재미있게 보면서 한 시간을 보냈다. 오늘의 주제는 "야생조류"였다. 평소에 새한테 별 관심조차 갖지 않던 나에게 이 프로그램은 날 조류의 세계로 데려다 주었다. 관람한 후부터는 나도 모르게 텔레비전이나 인터넷, 또는 라디오에서 새에 관한 얘기들이 나오면 꼭 한 번씩은 보거나 듣고 지나가게 되었다. 오늘 갈매기, 거위, 기러기, 비둘기, 원앙, 제비, 오리, 참새 그리고 닭의 친척들을 보았다. 그 가운데 인상이 가장 깊었던 것은 갈매기였다. 그 이유는 내가 바다를 좋아하기 때문이다.

갈매기는 해면 가까이 낮게 날면서 먹이를 찾는다. 보통은 두 다리를 배에 착 붙이고 날아다니면서 머리만 좌우로 움직이며 물 위에서 먹이를 찾지만, 때로는 물 위에 앉아 헤엄치면서 먹이를 찾기도 한다. 갈매기는 바람 부는 쪽을 향해 한 쪽 발로 서서 몸통을 웅크리고는 머리를 뒤로 돌려 깃털 사이에 부리를 묻고는 잠을 잔다.

갈매기과는 온 세계에 여든 다섯 종쯤 서식하고 있다는데 현재 한국에는 갈매기가 열세 종이 서식하고 있다. 그러나 전문지식이 없는 우리들이 야외에서 볼 때에는 괭이갈매기, 재갈매기, 큰재갈매기,

흰갈매기가 거의 모두 비슷해서 분간하기가 힘들다. 그러나 대표적인

갈매기는 괭이갈매기이다.

지금 나는 갈매기를 키우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갈매기의 세계에 푹 빠져들었다. 그러나 이것 또한 야생 세계에 대한 인간 이기심의 발로라는 것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다음을 지키는 엄마들을 보고 나서

高 2-1 劉 玉 萍

"어머니는 여자보다 강하다." 라는 말, 이 말을 들었을 때 무척 내 마음속에 와 닿았다. 그렇다. 어머니는 여자보다 강하다. 이 다큐의 내용은 엄마가 자기 아이들을 생각하는 마음을 표현한 것 같다.

우리가 먹는 음식 중 채소는 농약을 10번 이상 뿌리고, 우리 근처에 접해있는 가공식품들은 549종의 식품 첨가물이 첨가되어 있다고 한다.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우리가 항상 접하는 밥상과 아이들의 먹거리는 유해 환경 속에 그대로 방치되고 있는 것이다. 속속들이 그 실상을 알고 나면 차라리 내 아이들을 굶기는 것이 낫다고 하는 세상...... 그런데 이 식생활을 바꾸는 엄마들이 있다고 한다. 이 엄마들은 자기들 혼자 직접 무공해 음식을 만든다고 한다. 비지전과, 두부 등, 어떻게 보면 아이들이 싫어 할 것 같지만, 식생활습관은 엄마가 만드는 것. 이렇게 습관이 되면 오히려 아이들은 이런 음식들이 맛있다고 느낄 수 있게 된다고 한다.

요즘 젊은이들 사이에서 유행하고 있는 서양 음식.. 맛은 있지만 그래도 엄마가 만든 음식보다는 성의도 사랑도 정도 없을 것이다. 이렇게 엄마들은 우리들을 생각하고 또 사랑한다.

[만화]

中 3-1 郭 璟 儀 제공/ 中 3-3 萬 愛 娜 번역

1)어머나!! 나 거기에 털 났어. 2)아니야, 넌 몰라! 정말 더러워!

징그러워! 저질이야! 나 죽고 싶어... 넌 정말 모를거야!







괜찮아!! 청소년기 남자 여자 야! 정말 괜찮은 거야. 우리

애들은 다 나. 너네 선생님도 엄마 아빠도 났어.

가르쳐 줬겠지! 봐봐!! 나도 조금 났어!



3)달라, 달라! 나 진짜 달라!! 4)봐봐!! 너 이런 거 난 것 본 적

나 죽게 내 버려 둬!! 있어? 본 적 있어?







됐어, 됐어! 너무 흥분하지마! 이... 이...

어디 보자. 어디가 다른데? 진짜 다르네

[주제 토론]

한국의 쓰레기 문제점과 개선방법

中 2-2(유선춘, 요수분, 마현주, 손운진, 범수연,

시애리, 유세인, 송수지, 하업홍, 서의국)

1. 쓰레기의 종류

①음식물 쓰레기

현재 한국에서 가장 심한 쓰레기는 음식물 쓰레기라고 합니다. 가정에서 내놓는 쓰레기의 약 50%가 음식물 쓰레기이고 음식점에서는 약 75.8%가 음식물 쓰레기라고 합니다. 그 중 채소류가 53%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고 합니다.

버려지는 쓰레기를 돈으로 환산하면 연간 수 조원에 이르고, 쓰레기를 처리하는데 4천억 원 이상의 비용이 든다고 합니다. 음식물 쓰레기를 줄이면 연간 수 조원의 경제적 이익을 얻을 수 있을 뿐 아니라 그것을 관리하는 행정 수요도 줄일 수 있을 것입니다. 한국에서 한 해에 버려지는 음식물 쓰레기의 가치가 14조원이 넘는다고 하는데, 이것은 1988년 8조원에 비해 2배 가까이 늘어난 수치입니다.

한국 국민 1인당 하루 음식쓰레기 발생량은 0.32㎏

하루 발생 음식 쓰레기 양은 1만 1천 톤

음식 준비과정에서 생기는 쓰레기 75.4%

사다 놓고 미처 쓰지 못하거나 못 먹은 식품쓰레기가 17.7%라고 합니다.

②폐기물

폐기물은 재활용이 안 되는 물품들입니다.

폐기물 분해기간

종이 : 2∼5개월

오렌지껍질 : 6개월

우유팩 : 5년

플라스틱팩 : 10∼12년

나무젓가락 : 20년

일회용 컵 : 20년 이상

가죽구두 : 25∼40년

나일론 천 : 30∼40년

플라스틱 용기 : 50∼80년

알루미늄 : 80∼100년

칫솔 : 100년

일회용 기저귀 : 100년 이상

플라스틱 병 : 100년 이상

스티로폴 : 500년 이상

알루미늄캔 : 500년 이상

위의 것들은 모두 일상생활에서 우리가 쓰는 물품들입니다. 특히 우유팩이나 알루미늄캔 등은 점심시간 때 흔히 마시고 버려지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무심코 버린 것이 500년 동안 없어지지 않는 다니, 정말 놀라운 일입니다.

2. 음식물 쓰레기의 문제점

날마다 우리가 먹는 식량의 약 70%를 외국으로부터 수입해 온다고 합니다. 더욱이 가정 형편이 어려워 끼니를 제대로 잇

지 못하는 '결식 아동'이 전국적으로 16만 명에 이를 정도로 어려움을 겪는 사람이 많다고 합니다. 한편에서는 먹을 것이 없는데, 다른 한편에서는 막대한 돈을 들여 만든 음식이 그대로 버려진다는 것은 큰 문제임이 틀림없습니다.

음식물 쓰레기는 50∼80%정도가 수분이어서 그대로 버리면 물기와 썩는 냄새로 사람들을 고통스럽게 할 뿐만 아니라, 건조하는 과정에서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기 때문에 처리비용이 늘어난다고 합니다. 또한 쓰레기에서 나오는 침출수는 하천이나 지하로 흘러 들어가 땅과 물을 오염시킵니다.

한국 음식 쓰레기가 북한 주민들의 주식 소비량보다 많다고 집계가 되었다고 합니다.

3. 개선방법

먹을 수 있을 만큼만 만들고, 푸짐해야 좋은 상차림이라는 생각을 바꿔야 할 것 같습니다. 가능하면 음식물 쓰레기는 물기를 제거하고 버리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초대글]

교생실습을 마치며

한국어교육 실습생 張 天 怟

(外大 한국어교육과 4년)

교생실습을 나온 지 벌써 마지막 날이 되었다. '세월이 참 빠르구나.' 라는 생각밖에 안 들었다. 교생실습을 나오기 전에 고민을 무척 많이 했다. 일 주일 동안 잠도 잘 못 잘 정도로 내가 불면증에 걸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특히 내가 한국말을 잘 하는 중국 학생 앞에서 한국어를 어떻게 잘 가르쳐 줄 수 있느냐가 가장 걱정되었다. 다행인 것은 여기 와서 좋은 지도교사와 학생들을 만난 것이었다. 한 달 동안 지도교사 선생님을 따라 여러 가지 참관 수업을 통하여 많은 견문을 얻었다. 이제서야말로 학생을 가르치는 것은 정말 보통 일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교생실습 첫째 주는 마음이 조마조마하면서 학교에 갔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것이 가장 힘든 일이며, 게다가 집에서 학교까지 1시간이 걸렸는데, 특히 출근 시간에 지하철을 타는 사람이 너무 많아서 꼼짝도 못 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래서 첫째 주는 아주 정신 없이 지냈다.

교생실습 둘째 주는 애들의 중간고사 기간이었다. 어떤 학생은 열심히 준비하였고, 어떤 학생은 공부하지 않고 맨날 선생님한테서 야단을 맞기만 했다. 그렇지만 애들을 보면 참 순진하고 귀여웠다. 그 동안 내가 여러 가지 참관 수업을 통하여 학생의 마음과 생각을 조금은 알게 된 것 같았다.

교생실습을 할 때 힘든 것은 수업 시간에 떠들썩한 애들을 어떻게 조용하게 시키느냐는 것과 장난을 심하게 치는 애들을

야단을 쳐도 나를 미워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 어떻게 하면 애들과 사이 좋게 지낼 수 있는가 하는 것이었는데, 고민을 많이 해봐야 할 문제이다.

교생실습 마지막 주는 내가 연구 수업을 직접 하는 것이었다. 학생들을 처음 가르치게 되니 긴장을 많이 하기도 하고 고민도 많이 했다. 특히 중국말과 한국말에 대한 차이점을 어떻게 설명해야 학생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느냐 하는 문제는 참 어려웠다. 또 수업을 하면서 내 한국말이 아직도 부족한 점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며, 앞으로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특히 수업을 재미있게 하기 위해 그림을 그리고 게임까지 준비해왔는데, 내가 좀 '오버'하지 않는가 하는 생각도 가끔 들었다. 이번에 연구 수업을 통하여 내가 학생들을 위해 더 노력해야겠다는 욕심도 생겼다.

교사의 가장 큰 행복은 아마 학생들을 위한 일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중1 학생들이 수업을 잘 해줘서 아주 고마웠고, 여러분의 도움을 통해서 수업도 원만하게 마쳤다.

그 동안 나를 받아들인 학교에 먼저 감사 드리며, 다른 한국어 선생님들께도 감사 드리고 싶다. 참관 수업을 많이 들어가지는 못 했지만 선생님들의 좋은 말씀과 가르침을 잘 배웠다. 또 그 동안 같은 교무실에서 지켜봐 주셨던 여러 선생님들께도 감사 드린다. 나한테 편하게 대해 주셔서 참 감사하다.

이제 선생님들과 애들과 드디어 헤어지는 시간이 되었다. 마음이 아주 섭섭하지만 그동안 나한테 있었던 추억을 평생 잊지 않을 것이다. 앞으로는 좋은 교사가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 하겠다고 약속을 드려야겠다.

[중국 문화 산책] 1

단오(端午)에는 문 앞에 왜 창포와 쑥을 걸어 놓는가

집문당. 김인옥. <중국의 생활민속>에서

해마다 단오절(음력5월5일)이 되면 중국의 많은 집들에서는 대문에 창포(菖蒲)와 묵은 쑥(陳艾)을 걸어 놓는 습관이 있다.

당(唐)나라 말기, 희종(僖宗) 년간에 황소(黃巢)는 반란을 일으켜 부자 놈을 죽이고 가난한 자를 구제하러 나섰다. 관청에서는 군사를 파견하여 진압하는 한편 인심을 혼란시키는 나쁜 소문을 퍼뜨려 백성들을 속였다. 황소 반란군은 승승장구하여 하남(河南)까지 밀고 나왔다. 군사가 등주성(登州城) 아래에 이르니 속은 백성들이 한창 성밖으로 피난하고 있었다. 한 여인이 아이 둘을 거느리고 피난하고 있었는데 큰 아이는 안고 작은 애의 손을 잡고 걸었다. 황소(黃巢)가 하도 이상하여 그 여인의 앞에 다가가 물으니, 큰 아이는 부모가 다 죽은 이웃집 아이고 작은 아이는 자기의 친아들이라고 하였다. 이 광경을 본 황소(黃巢)는 너무나 감동하여, "아주머니 무서워하지 마시오, 황소는 부자놈들과만 맞서 싸웁니다. 아주머니가 이웃집 아이를 사랑하는 것처럼 황소는 천하의 백성을 사랑합니다.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을 간직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절대 죽이지 않습니다.”고 말하면서 길옆에 무성하게 자란 쑥과 창포 두 대를 뽑아 주면서 “쑥(쑥 艾자는 사랑이란 愛자와 음이 같음, 그러므로 사랑을 상징한 것임)이 있으면 죽이지 않겠습니다! 아주머니 빨리 성안으로 되돌아가 가난한 집들에게 문에 창포와 쑥을 걸라고 조용히 알려 주십시오. 창포와 쑥이 걸려 있으면 해치지 않을 것입니다.”라고 말하였다. 이 여인은 바로 성안으로 돌아와 알렸는데, 그 날 저녁으로 가난한 집들에서는 모두 창포와 쑥을 문 앞에 걸어 놓았다. 그 이튿날은 마침 5월 단오절이었다. 반란군은 등주성으로 진공하여 탐관오리(貪官汚吏)들과 토호열신(土豪劣紳)들을 죽이고 창고를 털어 백성들에게 식량을 나누어줌으로써 백성들의 환영을 받았다. 그 때부터 창포와 쑥을 문 앞에 걸어 놓는 것은 하나의 풍습으로 되었다고 한다. 또한 이 사실은 명(明)나라 말기에 발생되었고, 쑥을 걸어 놓으면 살해하지 않는다고 하였다는 말은 장충현(長忠縣)이 한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런데 단오절에 백성들이 대문에 창포와 쑥을 걸어 놓는 풍습은 선진(先秦) 시기에 벌써 있었다. 굴원(屈原)의 『초사(楚辭)』를 보면 단오절의 많은 풍습은 일찍이 굴원의 생존시대 전에 이미 민간에서 유행되었다는 것을 설명한다. 아울러 “청명(淸明)에는 버들을 꼽고 단오에는 쑥을 꼽는다”는 속담이 있다.

민간에서는 창포와 쑥을 걸어 놓는 것을 단오절의 중요한 풍습의 하나로 삼고 있는 바, 오월 달은 초여름이기 때문에 비가 많이 내리고 습기가 많으므로 세균이 빨리 번식한다. 그러므로 창포나 쑥의 약 냄새로 모기를 쫓고 공기를 맑게 하기 위한 까닭도 있었을 것이다. 『형초세시기』에서는 5월5일이 되면 사람들은 함께 풀밭에서 갖가지 풀들을 밟았으며, 또한 백 가지 풀로 유희를 벌렸다고 한다. 쑥을 뽑아 문에 걸었는데 이로써 독기를 제거했다. 고증에 따르면 굴원(屈原)의 생존시대 이전에는 5월5일을 악성적(惡性的) 명절, 혹은 무당절이라고 했다고 한다. 창포나 쑥은 모두 다년생 초본(本草) 약용식물로서 창포는 휘발성 방향유(防香乳)를 함유하고 있어 정신을 맑게 하고 살균한다. 묵은 쑥을 약에 넣으면 냉기를 제거하고 이질을 멎게 한다. 마른 쑥은 불에 태우면 그 냄새로 모기를 쫓고 쑥 잎 가루는 침구에서 없어서는 안 되는 약재이다. 그리하여 단오절이 되면 사람들은 대문에 창포, 쑥을 걸어 놓게 되었으며 나중에는 그것이 세세대대로 내려온 풍속으로 되었다.

[중국 문화 산책] 2

어째서 질투(嫉妬)를 하면

「식초를 먹었다(吃醋)」고 하는가

집문당. 김인옥. <중국의 생활민속>에서

일상생활 가운데서 사람들은 질투를 하면 「식초를 먹었다[吃醋]고 한다. 한완(韓浣)의 『어사대기(御使臺記)』에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실려 있다.

당태종(唐太宗) 때에 임완이라는 대신이 있었는데 특별히 공을 많이 세웠다. 당태종은 이 공신에게 고맙다는 뜻으로 궁녀 2명을 하사하였다. 그러나 평소에 아주 위풍이 당당한 대신에게는 아내를 두려워하는 약점이 있었다. 그는 다른 사람에게 자기는 아내가 두렵다고 말한 적이 있는데, 즉 부인을 상대하여 세 가지가 두렵다는 것이었다. 그는“금방 결혼했을 때에는 모든 일에서 예의범절을 지키고 규칙대로 하여 보살(菩薩)과도 같았던 바, 보살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이 어디에 있는가? 아이를 낳은 다음에는 호랑이처럼 사나워졌는 바, 호랑이를 무서워하지 않는 사람이 어디에 있는가? 늙은 다음에는 얼굴에 온통 주름살이 져 마치 깡마른 귀신과도 같으니 귀신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이 어디에 있는가?”라고 말하였다. 당태종은 임완이 아내를 두려워하는 약점을 알고 있었다. 그의 근심을 덜어주기 위하여 당태종은 임완의 부인을 궁중으로 불렀다. 당태종은 내시(內侍)더러 '독주(毒酒)' 한 병을 가져오게 하고 임완의 부인에게 질투하는 버릇을 고치라고 훈계하였다. 그리고는 앞에 놓인 '독주'를 가리키면서 만약 부인이 고치겠으면 이 술을 마시지 않아도 되지만 고치지 않겠으면 당장에 이 술을 마셔야 된다고 하였다. 원래 성격이 강인한 임 부인은 위협해도 굴하지 않았다. 성지(聖旨)를 다 들은 다음 임 부인은“이 독주를 마실지언정 남편이 다른 아내를 맞는 것을 동의할 수 없습니다.”고 말하고는 그 술을 단숨에 다 마셨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임 부인은 '독주'를 마셨는데 고통스럽게 아픈 것이 아니라 도리어 더 정신이 났다. 그는 남편과 한바탕 드잡이를 하려고 벼르면서 궁중에서 나와 집으로 돌아왔다고 한다.

원래 이세민(李世民)이 임 부인에게 하사한 술은 독주가 아니라 궁중 안에 오래 저장해 두었던 식초였다. 임 부인에게 식초를 마시는 괴상한 습관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당태종은 이른바 '독주'로서 질투하는 버릇을 고치려고 하였다고 한다. 그 후로부터 사람들은 식초를 질투의 동의어로 여겼다.

임부인의 이야기는 사람들로 하여금 다음과 같은 문제를 심사숙고하게 한다. 일부일처(一夫一妻)제를 수호하기 위하여 임금의 뜻도 두려워하지 않고 목숨을 내걸고 식초를 마신 임부인의 이야기는 원래 매우 자랑스러운 이야기다. 그러나 '남존여비(男尊女卑)'가 심했던 봉건사회에서는 도리어 하나의 웃음거리로 되었다. 남편은 외박하고 기생놀이를 하고 첩을 얻는 것은 당연하였지만 여자가 반대하면 곧 질투한다고 하면서 죄악으로 치부하였다.

질투하는 것은 본래 옳지 못한 행위이다. 그러나 그런 불평등한 사회에서 여자들의 질투심은 모종의 의미에서 이야기할 때 인간성의 강한 자아표현으로서 부귀압박(富貴壓迫)에 대한 일종의 반항이었다고도 할 수 있다.







[역사의 뒤안길]

미국 각 주의 해괴한 법들

역사 교사 林 宣 希

한 사회의 법은 그 당시 시대상을 반영한다. 세월이 흐른 뒤에는 이해할 수 없기도 하고 우습기도 한 조항도 제정했을 때는 그러한 법이 필요했을 것이다.

다음은 미국에 실제로 존재했던 각 주의 법이라고 한다.

알래스카 - 곰을 총으로 쏘는 것은 합법이지만 사진을 찍을 목적으로 잠자는 곰을 깨우는 것은 위법

애리조나 - 선인장을 자르면 25년형

아칸소 - 남자는 아내를 합법적으로 때릴 수 있으나 한 달에 한 번 이상 때리는 것은 위법

일리노이 - 몸에 최소한 1달러를 소지하지 않았으면 방랑자로 규정되어 구금될 수 있다.

아이오와 - 5분 이상 키스하는 것은 위법

캔자스 - 맨손으로 물고기를 잡는 것은 위법

루이지애나 - 물총으로 은행을 터는 것은 위법

매사추세츠 - 침실 창을 닫지 않고 코를 고는 것은 위법

미시간 - 여자가 남편의 허락 없이 머리를 자르면 위법

미네소타 - 나체로 잠을 자는 것은 위법

몬태나 - 미혼 여성이 혼자 낚시질하는 것은 위법

뉴저지 - 경찰에게 얼굴을 찌푸리는 것은 위법

노스캐롤라이나 - 음정에 맞지 않는 노래를 하는 것은 위법

오하이오 - 다섯 명 이상의 여자가 한집에 사는 것은 위법

오클라호마 - 다른 사람의 햄버거를 베어먹는 것은 위법

유타 - 남편이 앞에서 여자가 저지르는 범죄는 남편 책임

워싱턴 - 부모가 부자인 것처럼 허풍을 떠는 것은 위법

위스콘신 - 기차 안에서 키는 하는 것은 위법

[정보가 있는 페이지]

강아지, 건강하게 키워 봅시다

<인터넷 자료>

*편집자 : 요새 학생들 사이에서 애완견이 많은 인기를 얻어 이번 <한 글마당>에서는 특별히 강아지에 대한 내용을 싣습니다. 관 심있는 분들은 참고하셔서 예쁜 강아지 잘 키워보세요.

건강한 강아지 고르는 법

1. 안아봅니다.

성질이 좋은 강아지는 두 손으로 안아 올려주면 좋아합니다. 체격에 비해 무거운 놈은 몸이 단단하다는 증거이기도 하고, 사지가 유연하고 아픈 모습을 보이지 않는 게 좋습니다.

2. 귓밥과 귓속을 점검합니다.

귓바퀴를 들어올리고 귓구멍을 잘 관찰해야 합니다. 귓구멍은 건조하고, 청결해야 합니다. 귓속에 부스럼 딱지가 있거나 끈적거리는 분비물이 붙어 있어서는 안됩니다. 또한 귀에서 나쁜 냄새가 나도 안됩니다.

3. 코와 이빨을 관찰합니다.

콧등은 촉촉해야 합니다(건조하거나 콧물이 흐르면 질병의심). 혀와 잇몸은 혈색이 밝은 분홍색이어야 건강하다는 증거입니다. 이빨은 정상교합인지 살펴봅시다.(일부 품종은 제외)

4. 눈은 건강의 척도입니다.

눈은 맑고 빛나는 것이 좋으며 눈꼽, 눈물 흘림, 눈동자의 불투명한 부분이 있어서는 안됩니다. 품종에 따라 눈의 크기는 다르지만 최대한 크게 뜨고 있는 모습이어야 합니다.

5. 개의 털은 사람의 피부와 같습니다.

탄력이 있고 윤기 있는 털인지 보시고 털을 상하좌우로 쓰다듬어 피부에 종기, 딱지, 기생충의 분변 등이 있는가 살펴보고 털이 빠진 부분이 있는지 세밀히 관찰합시다.

6. 개의 항문과 고환을 관찰합시다.

항문주위가 깨끗한가 살펴봅시다(설사여부확인). 항문근육이 탄탄한지도 살펴보고 수놈의 경우 고환이 2개인지도 잘 살펴보아야 합니다. 또한 배꼽주위가 심하게 돌출 되었거나, 배에 종기, 딱지가 있는 경우는 구입을 삼가고(탈장 유무 확인) 번식을 위한 암놈의 경우 젓꼭지 배열과 숫자가 일정한지 자세히 관찰하여 구입해야 합니다.

강아지가 좋아하는 먹이 / 강아지에게 먹이 주기

사람들이 강아지를 기를 때 저지르는 실수 중에 하나가 강아지 먹이 선택입니다. 가장 잘못된 경우는 애견에게 특별한 먹이를 따로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가정에서 강아지에게 고기만 주거나 사람이 먹는 음식을 주면 강아지 입맛이 까다롭게 되어 잘 먹지 않게 됩니다. 또한, 강아지의 잘못된 식사습관은 각종 소화기 병이나, 비만 등의 원인이 되기도 합니다.

강아지에게 가장 좋은 음식은 애견전용식품입니다. 강아지는 자라는 속도가 사람보다 8배나 빠르다고 합니다. 따라서 애견전용식품 이외의 것을 먹이게 되면 애견의 성장에도 막대한 악영향을 끼칠 뿐만 아니라 까다로운 입맛으로 가정의 골치덩어리가 되기도 한답니다. 강아지의 성장과 건강을 최대한 생각하여 수의사에게 물어서 한 가지를 선택하도록 하고, 한번 선택한 먹이는 자주 바꾸지 마시고 꾸준히 주도록 합니다.

강아지 식사 습관

강아지의 식사는 정해진 시간과 장소에서 하도록 하세요. 식사시간은 가족의 식사시간과 함께 하는 것이 좋습니다.

실내에서 함께 생활하는 강아지들은 사람의 음식을 먹을 기회가 많답니다. 사람의 음식에 조금씩 익숙해져 가면 음식을 달라고 보채고 조르기도 하지요. 특히 식탁의 주변에서 지나치게 음식을 보채게 되면 보기에도 좋지 않고 주인도 무척 힘들겠죠? 이런 경우에 흔히 때리면 되겠다고 생각하겠지만 때리는 것은 별로 좋은 방법이 아니랍니다. 음식을 보채는 것은 강아지뿐만 아니라 모든 동물의 본능입니다. 이런 경우에 매섭게 때리거나 벌을 주면 강아지의 올바른 성격 형성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기 때문이에요. 강아지가 식탁 주변에 와서 음식을 조르거나 보채면 음식 대신 가볍게 쓰다듬어 주고 애견용 간식을 조금 주는 것이 좋답니다.

강아지에게 해로운 음식

강아지에게 주면 안 되는 음식물은 생각 보다 많답니다. 애견전용식품으로만 키우시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지만 가정에서 키우다 보면 본의 아니게 다른 음식물을 주는 경우가 생기곤 하지요. 특히 손님들이 귀엽다고 해서 일반 음식을 주는 경우가 있는데, 조심해야 합니다. 다음은 강아지에게 해로운 음식물입니다.

☞ 생강, 후추, 고추, 겨자와 같은 자극성 음식물

☞ 알사탕, 쵸콜릿 같은 당분이 많은 단 음식

☞ 문어, 마른 오징어, 쥐포, 게, 조개 같은 어패류

☞ 닭뼈, 생선뼈의 날카로운 뼈

☞ 양파 및 파는 빈혈을 초래하고 강아지에게 특히 해로움.

☞ 너무 뜨겁거나 차가운 음식

[이런 이야기]

라면의 유래와 역사

中 3-3 陳 柏 廷 제공.

<인터넷 자료>

라면이란 면을 증숙(蒸熟)시킨 후 기름에 튀긴 것 또는 기름에 튀기지 않은 건면(乾恪)에 분말 스프를 합친 것을 일반적으로 라면이라고 합니다. 라면은 조리가 간편하고 가격이 저렴하다는 특성이 있기에 '제2의 쌀'이라고 불려지고 원조(元祖)는 일본입니다. 혹 중국이 원조라는 설도 있지만 지금과 같은 라면은 일본에서 처음 생산되었습니다.

1958년 "안도우 시로후라"라는 일본인이 술집에서 튀김요리과정을 유심히 관찰하던 중 라면제조법을 생각해냈다고 합니다. 즉 밀가루를 국수로 만들어 기름에 튀기면 국수 속의 수분은 증발하고 국수는 익으면서 구멍이 생기는데 이 상태로 건조시켰다가 필요할 때 뜨거운 물을 부으면 작은 구멍에 물이 들어가면서 본래의 상태로 풀어지게 된다는 점을 이용한 것입니다. 그 해 가을 일본의 일청(日淸)식품이 국수발에 간단한 양념국물을 가한 아지스케면[味附麵]을 '끊는 물에 2분'이라는 캐치프레이즈로 시판한 것이 그 효시이고, 1959년 에스코크, 1960년 명성식품에서 치킨라면을 잇달아 내놓으면서 라면이 본격적으로 등장했습니다. 당시 라면은 아지스케면[味附麵]으로서 면 자체에 양념을 가한 것으로 시일이 경과되면 쉽게 변질되는 단점이 있어 1961년 명성식품에서 현재와 같은 스프를 분말화하여 별첨한 형태의 라면을 생산하게 되어 오늘에 이어지고 있습니다.

일본이 챙긴 중일전쟁(中日戰爭)의 또 다른 전리품을 라면이라고 말씀드릴 수 있겠습니다. 근대적인 의미의 라면은 1937년에 일어난 중일전쟁 때 처음 일본에 전래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일설에 의하면 라면은 이때 중국군의 전투비상식량으로 사용되었는데, 일본군에게 생포 당한 중국군 포로

들의 짐꾸러미에서 라면이 발견되었다는 것입니다. 중국에는 예로부터 기름에 튀김 요리가 발달하였으므로 그들은 식품을 튀기게 되면 식품이 건조되어 저장성이 좋아진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라면이 중국 군인들의 비상식량으로 사용된 것은 수분이 적어 가볍기도 할 뿐더러 기름을 함유한 고칼로리 식품인 데다 급할 때는 끓이지 않고 과자처럼 먹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일본인에게 전해진 것인데, 이렇게 하여 초보적인 튀김라면은 비상식량, 전쟁식량으로서의 가치를 인정받으며 일본으로 전파된 것으로 추측됩니다. 한편 중국에는 伊府麵이라는 것이 있는데, 밀가루와 계란을 튀긴 것으로 제조원리는 인스턴트 라면과 같으나 상용화되지는 않았습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일본은 현대 사회에 들어오면서 편리성, 신속성, 경제성을 요구하는 소비자들의 요구에 따라 종래의 라면을 개량 발전시켜 인스턴트 식품화했고 이 과정에서 라면은 "안도우 시로후쿠"가 즉석라면으로 상용화했는데 그는 일본인들이 즐겨먹는 (생)라면을 가정에서도 편리하게 먹을 수 있게 할 방법을 연구하다가 튀김요리에서 제조방법 힌트를 얻었고, 이렇게 시작된 것이 즉석라면(인스턴트 라면)이라고 하여, 재래의 라면과 구별하는 것이 되었습니다.

라면의 어원(語源)을 찾아서

오늘날 흔히 쓰이고 있는 "라면"이라는 말은 어디에서 유래한 것일까요?

라면이라는 용어가 출현한 것은 20세기라는 것이 정설입니다. 일본의 라면은 손으로 가늘고 길게 늘이는「데노베 라면」으로 흔히 납면(拉麵)으로 불렸는데, 이것이 일본어의 「라멘」의 어원인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밖에 라면의 어원에 대한 믿거나 말거나 하는 얘기들이 있는데 몇 가지를 말씀드리면 다음과 같습니다.

*** 라면의 어원에 대한 믿을 수 없는 이야기들

첫째, 일본어사전에 노면(老麵)이란 말이 있습니다. 중국어사전에는 없는 말이지만, 老麵(노멘)이란 일본발음이 「라면」의 어원이라는 설이 있습니다.

둘째 가장 믿을 만한 설입니다. 1줄→ 2줄→ 4줄→ 8 줄→16줄→……이런 식으로 면을 늘려 빼는 제법을 중국에서 납면(拉麵)이라 한다. 납면의 중국발음이 「라미엔」인데 이것이 굳어 「라-면」이 되었다는 설입니다.

한국 라면의 역사

한국의 라면의 생일은 1963년 9월 15일입니다. 식량부족으로 절대 빈곤에 처해 있던 1963년 9월 삼양식품이 일본으로부터 기술을 도입하여 "치킨라면"을 선보이면서 시작되었고, 그 후 2년 뒤인 1965년 롯데공업(주)[현재 농심]에서 롯데라면을 생산하면서 국내 라면시장이 활성화되었습니다.

뒤이어 신한제분이 닭라면, 동방유량의 해표라면, 풍년식품의 뉴라면, 풍국제면의 아리랑라면 등이 생산되면서 메이커들의 난립상을 보였으나, 1969년 이르러 농심과 삼양의 2개사 체제로 압축되었습니다.

1983년까지 농심과 삼양의 2개 사에 의해 14년 동안 주도되어 오던 라면업계에 1983년 한국야쿠르트, 1986년에 빙그레, 1987년 12월에 오뚜기라면이 라면시장에 참여함으로써 현재 5개사가 약 1조 2천억 원의 시장을 형성하고 있습니다. 현재와 같은 방대한 시장이 형성되게 된 요인으로는 당시 식량부족에서 온 "절대빈곤 해소기여"라는 기업인들의 의지와 정부지원의 뒷받침이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또 50년대에서 70년대로 이어지면서 급속한 경제발전에 힘입어 국민소득향상), 이에 따른 레저생활 증가, 영양을 고려한 주식 및 간식용으로 수요가 계속 늘어난 것이 주요인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숫자 이야기

<하늘마음>에서

죽음의 숫자 四, 死

중국 글자인 죽을 사(死)자와 연관지어 숫자 4를 "불행의 숫자"라고 하는데요. 한 회사에서 설문조사를 한 결과 숫자 3을 행운의 숫자로 꼽았다고 해요. 이유는 균형 상태의 삼각형을 연상시켜 안정감을 주고 길일(吉日)에 자주 등장해 행운을 예감하기 때문이라고 하는데요. 안정감과 균형, 3보다는 4가 안정적이고 편하지 않나요? 4계절, 4다리 상, 4바퀴 달린 자동차, 4글자 한.글.마.당^^;

숫자와 단위를 나타내는 순 한국말

순 한국말. 몇 가지만 여러분께 살짝 가르쳐 드릴 게요.

*알 : 둥근 물건을 세는 단위

*연 : 종이 전지 500장

*토리 : 둥글게 실을 감은 뭉치.

*장 : 무덤을 헤아리는 단위(오싹하죠?)

이 밖에도 아주 예쁜 한국말이 많답니다.

13일의 금요일

숫자 13 공포증이 본격적으로 형성되기 시작한 것은 17세기부터라고 합니다. 예수를 팔아먹은 배신자 가롯 유다가 최후의 만찬에서 13번째 손님이었다는 사실과 13이란 숫자는 완벽한 수(?)인 12에다 쓸데없이 1이 덤으로 붙어 완벽한 상태를 파괴한다는 미신적 의미로 해석하여 왔대요. 여기에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날이 금요일이기에 13일과 금요일이 합쳐진 날을 불행의 정도가 훨씬 크다고 생각한 거죠. 결

국 우리들이 만들어낸 미신이랍니다.^^;

올 2002년 9월, 12월을 보면 13일이 금요일이에요. 설마 한글마당 여러분 불행의날이라고 찍어 두는 건 아니죠? 불행보다는 행복을 가져다주는 숫자를 찾아보는 건 어떨까요? *^^*






















편집을 마치고

어느덧 봄이 가득합니다. 오랫동안 비 한 방울 없이 가물더니 요 며칠 새 봄비가 촉촉히 땅을 적시어 주었습니다.

<한글마당>도 어느덧 21호가 되었습니다. 아이들의 글이 봄비처럼 우리들 마음을 적셔주었으면 합니다.

이번 호에서는 특히 畢선생님이 아이들이 볼만한 글을 세 편이나 직접 정리해 주셨습니다. 이 글을 빌어 평소의 관심에 감사드립니다.

모두에게 좋은 봄, 봄방학, 그리고 <한글마당>이 되었으면 합니다.

- 權

韓國漢城華僑中學 <한글마당>通卷21號

發 行 . 漢城華僑中學 韓語韓文敎學硏究會

總編輯 . 權相基

編 輯 . 한글문예반

그 림 . 高華春

發行日 . 中華民國 91年 4月

住 所 . 서울 서대문구 연희3동 89-1

印 刷 . 正元文化社