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마당
20호 2001년 12월
우리들의 이야기
90-1 작문 대회 수상작
청소년 사회의 중독 현상
겨울
기획
논산여상 방문기
특집
월드컵 마스코트와 본선 진출국가
韓國漢城華僑中學
韓語韓文敎學硏究會
차 례
<여는 글> 사라져 가는 별 高3-4 裴敬華 1
겨울 中3-3 李昊靜 2
겨울방학 계획 中1-3 譚圓熺 許銀希 3
겨울이면 생각나는 사람 中1-2 顧小素 胡英慧 5
中1-3 孔怜文
付曉, 그리고 크리스마스 中1-1 王崇禮 7
첫눈 中1-1 權海娜 9
크리스마스가 되면 中1-1 王其靜 10
<쉬어 가는 페이지> 침묵 - <산에는 꽃이 피네> 11
<90-1學年度 韓語作文比賽獲奬作>
남녀평등에 대해서 논한다 高3-4 譚秋錦 12
콜라와 햄버거 高2-1 牟德芬 13
추석 高3-4 王莉娜 14
남녀평등에 대해서 논한다 高3-4 裴敬華 高1-3 王祖夫 16
高1-2 王玉華 高2-3 姜念珠
콜라와 햄버거 高1-3 李梅蘭 21
추석 高1-1 盛賢實 22
남녀평등에 대해서 논한다 高2-3 孫振榮 24
아버지 그리고 나 中3-1 孔慶世 25
나의 불만 中3-3 賀常煢 26
우리 아버지 中2-2 姚守芬 29
나의 불만 中1-1 焦振梅 30
점심 시간 中3-1 蓋珍秀 31
우리 아버지 中3-3 周培芸 33
점심 시간 中2-2 徐義國 34
우리 아버지 中3-1 劉文仙 中3-2 鄒美慧 35
미국 뉴욕의 쌍둥이 빌딩 참사를 생각하며 中3-2 楊義甋 38
<海外 名詩> 낙엽 - R.구르몽 39
청소년 사회의 중독 현상 高2-3 高文政 高慧丞 于克偉 40
鍾宜太
서울의 아름다움 高1-1 郭明季 盛賢實 44
<우스개 소리> 학년 알아보기 - 인터넷 자료 47
<기획> 논산여상 방문기 高1-1 郭明季 盛賢實 49
高1-2 陳芳雯 高1-3 劉祥媛
<쉬어 가는 페이지> 민희와 아빠 - 인터넷 자료 57
<잠깐, 우리들의 생각은요> 中2-2 孔世美 61
테러 희생자들을 위해 中2-2 于惠文 62
하수구 中2-1 王聖元 62
오빠가 졸업여행 가 있는 동안 中2-1 秏美娜 63
건강 中3-1 劉靑雲 64
핸드폰 문자 中3-3 張保成 65
우리집 컴퓨터 中3-3 高華鋒 66
중3 한 학기를 보내며 中3-1 牟傳芝 66
피아노 中3-1 劉吉芸 67
공부 열심히 했으나 실망했다 中3-1 王在成 68
나 無名氏 68
내 생각 中3-1 衛懋輝 70
마음대로 中3-1 曾慶有 71
<만화> 내 꿈은 대통령이랍니다 - <외대>교지 72
<할 얘기가 있어요> 中3 無名氏 77
<기행문>
수학여행 高2-1 牟德芬 劉玉景 78
서대문 형무소 역사관을 다녀와서 高2-2 邢黛麗 85
여주 도자기 엑스포를 다녀와서 高3-3 焉眞卿 86
<써클 이야기> 영화토론반 88
<우스개 소리> - 인터넷 자료 90
<과학 상식>
미라 - 동아일보 92
세계서 가장 큰 素數 - 동아일보 93
<월드컵 이야기 2>
2002 월드컵 마스코트 - 인터넷 자료 94
2002 월드컵 본선 진출국 - 대한매일 96
편집을 마치고 97
<여는 글>
사라져만 가는 별
高 3-4 裴 敬 華
하늘에서 흘러내릴 듯 쏟아지는 미리내를 보셨습니까? 밤하늘을 타오르며 가로지르는 별똥별에게 소원을 빌어보셨습니까? 우리가 살고있는 이곳은 우리들의 희망을 담고 있는 별들을 하나 둘 삼켜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전 찬바람 속에서도, 하늘에 있는 별무리를 보고 있노라면 나도 모르게 가슴속이 따뜻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바쁜 일상 속에서도 언제나 그 자리에서 반짝여주는 수많은 별들을 보고 있노라면 마음속이 자연스레 편안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사람이 끊임없이 발전하려는 욕망은 별들을 우리의 시야에서 점점 빼앗아가고, 각박해진 사회는 남아 있는 별들마저 우리들의 기억 저편으로 보내고 있습니다. 과연 여러분들은 시간을 내어 별을 볼 여유가 있으신지요. 하늘의 별들을 하나씩하나씩 잃어갈 때마다, 사회는 점점 더 삭막해져만 가고, 사람과 사람의 사이는 점점 멀어지기만 하는 것 같습니다.
사람이 끊임없이 발전한다는 것에 반대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다만 시간이 흐른 뒤에도 사람들일 별을 잊지 않길 바랄 뿐입니다. 별을 사랑하는 사람이나 또는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게도, 우리에게 따스함과 편안함을 주던 별을 마음껏 감상할 수 있는 기회와 여유가 남아 있길 바랄 뿐입니다. 우리의 사회에 온기와 정이 남아 있길 바랄 뿐입니다.
겨울
中 3-3 李 昊 靜
난 계절 중에서 겨울을 가장 좋아한다. 왜냐하면 눈이 오니까. 왜 눈이 좋으냐고 물어보면 난 확실하게 말할 수 있다. 눈을 바라보고 있으면 마음이 편해진다고...... 더 구체적으로는 말할 수 없다. 그냥 눈이 바닥에 떨어져 녹는 걸 보면, 무엇인가 안 보이는 것이 내 마음속으로 들어와 녹는 것 같은 느낌을 받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들은 정말로 겨울을 싫어한다. 겨울은 정말 추우니까. 하지만 난 아무리 추워도 눈만 온다면 추운 것도 다 용서가 될 거 같다. 그래서 난 내가 늙어서 죽게 된다면 마지막으로 눈을 보게 해 달라고 하나님께 빌고 싶다.
눈을 보고 있자면 겨울에 있었던 자그마한 추억들이 머릿속에서 소용돌이친다. 지금 생각해 보니 내 속에 들어와 녹는 것이 혹시 추억이 아닐까?! 아...... 돌아가고 싶다. 옛날로......
사람들은 대부분 다 겨울을 싫어할 것이다. 나같이 겨울을 좋아하는 사람들도 드물 것이고...... 하지만 난 딴 사람들이 겨울을 싫어하든 말든 신경 쓰기 싫다. 난 귀가 얇아서 변덕이 심하니, 그런 말들을 귀 담아서 듣지 않을 것이다.
겨울방학 계획
中 1-3 譚 圓 熺
우리 학생들이 지금 가장 애타게 기다리는 것은 바로 겨울방학이다. 길고 긴 넉 달 동안의 지겨운 공부를 마치며 쉬는 겨울방학을 우리들은 너무나도 좋아한다.
나의 올 겨울방학 계획은 아직 정확하게 짜여 있지는 않지만 대충 생각은 해 봤다.
첫째, 일단은 열흘 동안 놀고, 먹고, 잠자기.
둘째, 나의 용돈을 벌기 위해 알바[아르바이트]를 하려고 한다. 학교 다니는 동안에 용돈이 너무 부족해서 통장에서 돈을 너무 많이 빼 썼기 때문이다.
셋째, 내가 가장 하고 싶은 것은 바로 이번 크리스마스에도 친구들과 같이 밤새며 얘기하며 놀았으면 하는 것이다. 이번 시험을 잘 봐서 엄마한테 졸라 봐야지! 그런데 과연 엄마가 허락해 주실까? 엄마도 예전 중학교 시절을 생각하시면 이해해 주실 텐데...... 우리 엄마한테는 안 통할 것 같다. 그게 세대차이인가?
이번 방학에는 머리 염색하면 안 되겠다. 여름방학 때 염색과 파마를 열 번 넘게 해서 이번 방학에 또 염색하면 어쩌면 새들이 내 머리가 새둥지인줄 알고 올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앞으로 몇 년 동안은 염색 안 할 거다.
겨울에 눈이 내리면 너무 낭만적이다. 하지만 너무 추워서 얼어 버릴 것만 같다. 어쨌든 이번 방학에도 겨울의 자랑거리, 낭만적인 화이트 크리스마스를 기다려본다!
겨울방학 계획
中 1-3 許 銀 希
벌써 한 학기가 다 지나갔다. 이 학교에 온 지 얼마 된 것 같지 않은데, 금방 겨울방학이 다가왔다.
겨울방학이 되면 나는 일요일마다 학교에 와서 운동을 하고 싶다. 만약 영하 십 도 아래로 떨어지면 집에서 노래를 들으며 엄마와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그러나 겨울방학은 내내 놀 수만은 없다. 왜냐하면 선생님께서 꼭 숙제를 내주시기 때문이다. 내가 만약 선생님이라면 숙제는 절대 안 낼 거다. 겨울방학은 실컷 놀아야지, 왜 공부를 시킬까? 겨울방학에 한국어 공부도 좀 해야 한다. 물론 수학, 영어 공부 따위도 꼭 해야 하지만, 특히 한국어 공부를 더 열심히 해야 한다. 발음 연습, 그리고 쓰기 공부...... 왜냐하면 난 한국어를 잘 못한다. 한국 글씨도 자꾸 잘못 쓰고, 그래서 한국어 공부를 더 열심히 해야 한다.
겨울방학 때 따뜻한 집에서 컴퓨터를 켜고 게임을 노는 게 가장 기분이 좋은 놀이다. 분명 교장 선생님께서 우리 보러 컴퓨터는 게임기가 아니라고 말씀하셨지만, 그래도 컴퓨터 게임을 안 놀면 하루 종일 손이 근질근질하다. 엠파이어도 놀고, CS도 놀 거다. 둘 다 인터넷 게임이다.
저는 겨울방학 계획 속에 놀고, 공부하고, 쉬는 것을 모두 넣고 싶다. 날마다 여덟 시간 동안 자고, 숙제는 아침에 조금씩 하기로 하고, 오후에 나가서 놀고 밤엔 쉰다. 끝으로 이 글처럼 계획이 잘 세워졌으면 좋겠다.
겨울이면 생각나는 사람
中 1-2 顧 小 素
겨울이 되면 생각나는 사람은 고마우신 저희 부모님입니다. 부모님께서는 중국집을 하십니다. 추운 날씨인데도 일찍 일어나셔서 배달을 다니시는 아빠, 어렸을 때 아빠한테 물어 봤어요.
"아빠, 돈 벌어서 뭐 해?"
아빠께서는 돈을 벌어서 저 옷 사주고 신발 사주고 학비 내주신다고 했어요. 그런데 저는 겨울 잠바가 많은데, 아빠는 얇은 거밖에 없어요. 그래서 지금은 너무 걱정돼요. 감기 걸리시면 어쩌지...... 아빠는 아프셔도 병원에 안 가세요. 왠지 모르게...... 지금은 아빠의 뜻을 조금은 알 것 같아요. 아빠한테 하고픈 말,
"아빠, 사랑해요."
엄마도 중국집을 하시는데요, 엄마는 설거지 할 때도 찬물로 해요. 저 보고는 따뜻한 물로 씻으라고 하시고는...... 저 아플 때 잠도 못 주무시고 저 간호해 주시느라 힘드신 엄마의 얼굴을 보았어요. 엄마 너무 힘드시죠?........ 이제부터는 몸 건강하고 공부 열심히 할 게요.
"엄마 아빠 사랑해요!"
겨울이면 생각나는 사람
中 1-2 胡 英 慧
이제 추운 겨울인데, 겨울이면 생각나는 사람은 초등학교 친구들입니다. 나, 소소, 동준이, 그리고 한국 학교 다니는 혜림
이...... 그렇게 셋이서 추억을 많이 만들었는데, 그 가운데에서 가장 생각나는 날이 겨울 때인 거 같아요.
첫눈 오면 같이 놀자고 계획까지 세워서 눈이 오면 나가서 눈싸움하면서 놀고, 미끄러져서 넘어지고, 눈사람도 만들어서 운동장 한가운데에 놔두고 보고 그랬는데...... 추워서 코끝까지 빨개져도 재미있다고 덜덜 떨면서 계속 놀다가 종소리가 울리면 교실에 들어가 난로 앞에서 몸을 녹이고는 수업 시간이 끝나면 또 나가서 놀고 그랬는데, 지금 이 중학교에 와서는 눈이 내린 적이 없네요. 김제와 익산에는 벌써 눈이 많이 내렸다고 하던데...... 방학이 되어 며칠이 지나고 크리스마스가 될 때, 그 때 다시 옛날처럼 놀았으면 좋겠어요. 여기 와서 우정을 잘 쌓지 않은 것 같은데...... 왠지 여기 있으니 추억이 초등학교 때보다 많겠지만 그래도 초등학교 때 추억은 잊을 수가 없어요. 이제 생각하면 유치했던 것 같지만 그래도 재미있었으니까요.
여기 와서도 그렇게 좋은 추억을 만들고 싶어요. 겨울이 되면 딱 생각나게 하는 그런 추억이요......
겨울이면 생각나는 사람
中 1-3 孔 怜 文
겨울이면 생각나는 사람? 뭐...... 난 애인 사귀고 싶은데..... 추운 겨울에 애인이 뜨거운 실론티[홍차)와 커피를 사주면 얼마나 좋을까?
보통 이쯤에 친구들도 애인이 생기기 시작하는데, 딱 나만 애인이 없네? 그래서 난 너무 부러워서 방해도 하기 시작하지.
친한 친구가 애인 생기니까 덕분에 남자애들이랑 많이 친해졌지. 그래도 몇 명은 왜 그런지 나랑 친해지려고 안 해요. 아∼ 나도 애인 사귀고 싶다∼. 크리스마스에도 선물 주고, 화이트데이에도 초콜렛 막 주고받고, 영화도 같이 보러가고, 여러 가지로 좋은 게 많은데....., 난 왜 이 애인이 없을까? 언젠가는 생기겠지!(아니면 평생 안 생길까?)
근데 애들이 자기가 남자 친구, 여자 친구 있다고 잘난 척 할 때가 제일 싫어요. 부러우면서도 질투 나고...... (그런 친구들에게 한마디 : 야! 너 인간이 그렇게 살면 안 돼!!)
그리고 11월, 12월엔 친구 생일이 많다. 그래서 겨울에도 돈 쓸 일이 많네. 蝁蝁.
겨울에 생각나는 사람이 너무 많은데, 어떻게 다 쓰나...... 그냥 여기까지만 쓸 게요......
付曉, 그리고 크리스마스
中 1-2 王 崇 禮
크리스마스가 다 되어간다. 이제 한 삼 주 정도 지나면 크리스마스다. 하지만 오늘은 내 친구 付曉와 지내는 마지막 날이다. 왜냐하면 付曉의 어머니께서 일이 있으셔서 다시 중국으로 돌아갈 거라고 하기 때문이다. 나는 付曉와 같이 크리스마스를 보내고 싶었는데......
付曉는 여기에 온지 몇 달밖에 되지 않는다. 나는 그 동안 付曉와 싸우기도 했지만 정이 많이 들었다. 그래서 더욱 더 付曉를 보내고 싶지 않다. 付曉는 총명하다. 그래서 학급회의 시
간에 의견을 쓸 때 도움이 많이 된다. 어느 학급회의 때는 나와 付曉 둘이 남아서 일지를 여섯 시가 넘도록 쓰는 날도 있다. 付曉의 글씨는 우리가 잘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엉망진창이지만 그래도 나는 그런 付曉가 좋다. 付曉가 가고 크리스마스가 오면 난 付曉를 많이, 아주 많이 그리워할 것이다.
그럼 잠시 이 말은 뒤로 밀고 크리스마스 계획을 말해보자. 나는 크리스마스가 되면 아주 편하게 쉬고 싶다. 왜냐하면 크리스마스 며칠 전이 우리의 지겨운 시험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어서 바로 우리들의 즐거운 방학...... 내가 가장 좋아하는 날은 생일, 그리고 그 다음이 바로 크리스마스다. 내가 크리스마스를 좋아하는 까닭은 바로 겨울이기 때문이다. 겨울이면 날씨가 춥지만 새하얀 눈을 볼 수 있다. 나는 어렸을 때는 산타할아버지가 정말로 있는 줄 알았다. 하지만 지금 이렇게 크고 나니 산타할아버지는 엄마와 아빠가 꾸며낸 연극인 걸 알게 되었다. (물론 그 뒤로도 엄마와 아빠의 선물은 계속 받고 있지만......)
이번 크리스마스가 되면 나는 모든 피곤함을 해소하고 신나게 놀 것이다. 그리고...... 付曉야, 몸조심하고 언젠가 다시 만나자!! 바이 바이!!!
첫눈
中 1-1 權 海 娜
첫눈! 첫눈이 내리는 날은 정말 의미가 깊은 것 같다. 아직 어린 난, 그리 많은 추억을 간직하고 있진 않지만, 때론 어린 나도 첫눈이 오는 날 많은 일들을 하고 싶다!
난 눈 내리는 날을 정말 좋아한다. 어릴 적, 눈만 내린다고 하면 동네 학교 친구들을 모두 불러 큰 눈사람을 만들곤 했던 나였다. 그리곤 눈 내리는 날 정원에 나가 풀밭에 누워서 눈 내리는 하늘을 보곤 했다.
크면 클수록 첫눈에 대한 나의 기대는 점점 커져가고, 점점...... 뭐랄까? 성숙해져 가는 것 같다. 겨울이 되면 첫눈을 기다리는 일 또한 즐겁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많이 한다고 하지만, 나는 실망하지 않는다. 첫눈이 내리면서 내 마음도 더 성숙해지고, 많은 기대를 한 만큼 그에 대한 마음의 보상을 받기 때문이다.
첫눈이 내리는 날 사랑하는 가족과 친구들과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싶다. 그보다 더 좋은 일은 없겠지...... 첫눈을 맞으면서 좋은 추억을 간직하고 싶다.
크리스마스가 되면
中 1-1 王 其 靜
저는 네 철 가운데에서 겨울을 가장 좋아합니다. 특히 크리스마스가 되면 밖에서는 아이들이 시끌벅적하게 떠드는 소리가 좋습니다.
제가 어렸을 때는 크리스마스 이브가 되면, 아버지 어머니께 산타클로스 할아버지가 언제 오시냐고 항상 여쭈었습니다. 그럴 때면 아버지와 어머니께서는 항상 웃으시면서 대답하셨습니다. 산타할아버지는 우리가 잘 때 굴뚝으로 들어와서 우리들 머리맡에 선물을 놓고 가신다고요...... 그때마다 저는 잠자리로 가서 산타클로스 할아버지가 오시기를 손꼽아 기다렸습니다.
어느새 밤이 지나고 잠자리에서 일어나 보니 제 옆에는 아주 큰 선물이 놓여있었습니다. 그 때 어머니께서 제 옆으로 오셔서 말씀하셨습니다. 산타할아버지는 착한 어린이에게만 선물을 주신다고요.
점심을 다 먹고 나면 어머니께서는 제게 두꺼운 옷을 입히시고 밖에 나가서 동네 친구들이랑 놀다 오라고 하셨습니다. 전 그럴 때마다 이웃 여자아이들과 눈사람을 만들곤 했습니다.
세월이 흘러, 벌써 전 중1이 되었습니다. 이제는 산타할아버지가 저희 집에 오시냐고 여쭤보지도 않습니다. 왜냐하면 이제 저희는 산타할아버지를 믿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가끔은 예전으로 돌아가서 아이들과 뛰어 놀고 싶습니다. 어릴 적 내가 산타클로스를 믿었던 그 시절로......
<쉬어 가는 페이지>
침묵
법정 스님. <산에는 꽃이 피네>에서
말이 적은 사람, 침묵을 소중히 여길 줄 아는 사람에게 신뢰가 간다. 초면이든 구면이든 말이 많은 사람한테는 신뢰가 가지 않는다. 나도 이제 가끔 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되는데 말수가 적은 사람들한테는 오히려 내가 내 마음을 활짝 열어 보이고 싶어진다.
사실 인간과 인간의 만남에서 말은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 꼭 필요한 말만 할 수 있어야 한다. 안으로 말이 여물도록 인내하지 못하기 때문에 밖으로 쏟아내고 마는 것이다. 이것은 하나의 습관이다. 생각이 떠오른다고 해서 불쑥 말해 버리면 안에서 여무는 것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그 내면은 비어 있다. 말의 의미가 안에서 여물도록 침묵의 여과기에서 걸러 받을 수 있어야 한다.
불교 경전은 말하고 있다. 입에 말이 적으면 어리석음이 지혜로 바뀐다고. 말하고 싶은 충동을 참을 수 있어야 한다. 생각을 전부 말해버리면 말의 의미가, 말의 무게가 여물지 않는다. 말의 무게가 없는 언어는 상대방에게 메아리가 없다.
<90-1學期 韓語作文比賽獲奬作 - 高中部>
<優秀奬1>
'남녀평등'에 대해서 논한다
高 3-4 譚 秋 錦
지구상의 인류를 두 종류로 분류하면 '남성'과 '여성'으로 나눌 수 있다. 남성과 여성은 생김새가 다르고, 성격이 다르고, 그것에 따른 역할 또한 다르다. 이러한 역할의 분배 속에서 남녀가 평등하기란 쉽지가 않다.
원시 시대부터 남자는 사냥을 하여 가족을 먹여 살리고, 여성은 동굴에서 양육을 도맡았다. 이것이 점점 이어지면서 남자는 집밖에서, 여자는 집안에서 일을 하는 것으로 역할이 정해지게 되었다. 그러면서 사람들의 인식은 남성은 큰 일을 하는 것으로, 여성은 집에서 살림이나 하는 존재로 생각되어지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남성의 권리가 커지고 여성의 존재는 점점 낮아져서 자신의 능력을 제대로 나타내지 못하는 여성들이 많아졌다.
하지만 많은 세월을 참아온 여성들이 평등을 요구해왔고, 유럽의 대부분 국가들로부터 시작하여 남아선호 사상이 최우선인 동양에까지 여성의 권리와 능력이 인정받게 되었다. 지금은 사람들의 인식이 점차 바뀌어가면서 남성과 여성이 동등한 권리를 갖고 여러 면에서 똑같은 대우를 받고 있다.
그렇다고 성차별이 완전히 없어진 것은 아니다. 직장 또는 가정에서 차별대우를 받는 여성들이 아직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렇게 부당한 대우를 받는 여성들을 위해 여러 여성단체들과 정부가 힘을 쓰고 있어서 이제는 여성의 위상이 점점 좋아지고 있다. 사회의 각계 각층에 능력 있는 여성들이 늘어날수록 남성들의 부담스러운 책임이 줄어들고, 남성과 여성의 역할이 공유되면서 남녀평등이 이루어지고 있다.
남성과 여성은 성이 다르기 때문에 각기 할 수 있는 일이 완전히 같을 수는 없다. 이러한 면에서는 남성과 여성이 서로 타협하고, 이해하고, 존중하고, 각자 맡은 바에 충실하게 될 때에 비로소 진정한 남녀평등이 이루어질 것이다. 앞으로도 이런 남녀평등의 문제는 모든 세계의 공통적인 이슈가 될 것이다. 우리 여성들은 여성을 위한 평등에 걸맞은 자격과 능력을 갖추어야만 평등을 논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優秀奬2>
콜라와 햄버거
高 2-1 牟 德 芬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친숙하고, 맛있고, 편리한, 어느 곳에서나 손쉽게 구할 수 있는 식품을 꼽으라면 아마도 "콜라와 햄버거"일 것이다. 물론, 우리의 부모님 세대 중에서는 이러한 서양음식을 즐겨하지 않는 분이 많을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우리는 이런 인스턴트 식품을 선호하고 즐겨 먹는다.
그러나 문제는 바로 거기에 있다. 미래의 이 세상을 이끌고 나가게 될 우리 세대들이 "콜라와 햄버거"를 무척이나 좋아한다는 것, 이건 단순히 비만, 당뇨, 고혈압 등의 성인병 문제를 뛰어넘어 나라 경제와도 직결되는 문제라 할 수 있다, 별 거 아닌 것처럼 보이는 "콜라와 햄버거"에 경제가 숨어있다니, 조금은 오버라 생각 될 수도 있겠지만 사실은 그렇지가 않다.
미국이라는 슈퍼 강대국은 "콜라와 햄버거"라는 파견병을 세계 각국에 배치함으로써 그 나라의 살점을 점점 파고들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될 수 있기까지는 역시 우리의 도움이 크다고 볼 수 있다. 우리를 해치려고 온 것에게 반감은커녕 오히려 쌍수 들고 환영했으니 말이다.
"콜라와 햄버거"중 콜라는 중독성이 강해서 매일 꼭 마셔야하는 중독자가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또 주문만 하면 순식간에 나와버리는 햄버거에 익숙해진 사람들은 성격이 점점 급해지고 참을성도 없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득보다는 실이, 좋은 점보다는 문제점이 더 많은 콜라와 햄버거를 마구 탐식 할 것인가, 찾지 않을 것인가는 앞으로 우리의 선택에 달려 있다.
<優秀奬3>
추석
高 3-4 王 莉 娜
드디어 올해에도 어김없이 즐거운 추석이 돌아왔다. 요즘 사람들은 '추석'하면 '쉬는 날' 또는 '귀찮아∼'를 연발하지만 우리 집은 조금 다르다. 우리 집에는 너무나도 가정적이시고 자상하고 베풀기 좋아하시는 어머니가 계셔서, 매년 추석에는 조촐한 제사와 풍족한 먹을거리가 준비되고, 그리고 즐거운 송편파티가 열린다. 이렇게 화려하지는 않지만 가족적이고 화목한 분위기의 추석을, 그리고 가족애의 소중함을 말해보려 한다.
내가 추석을 좋아하는 이유는 다름이 아니다. 추석 때면 차례 상을 위해 온 식구들이 힘을 모아 차례 상에 올릴 음식들을 준비하며 윗분들에게도 배우고, 칭찬도 받고, 또한 식구들이 매번 즐거운 마음으로 추석 차림에 동참하는 모습들이 있어서 이다. 키가 어느새 훌쩍 커버린 친척 동생들을 볼 때 느끼는 흐뭇함, 그리고 저녁 때면 마루에 친지 가족 모두 옹기종기 모여서 송편을 빚으며 시간가는 줄 모르고 웃고 수다떨 때에 느끼는 편안함들이 바로 또 하나의 이유일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모든 것들은 모두 위대하신 우리 어머니 덕분이다. 어머니는 비록 맏며느리는 아니시지만, 매번 "사람이 할 도리는 해야 한단다"고 하시며 시어머니 모시는 일이나 제사, 그리고 사이가 별로 좋지 않던 작은집까지 모두 챙기신다. 언제나 천사 같은 웃음과 마음씨로 누구에게나 사랑 받는 우리 어머니 덕분에 친지 가족들이 모두 모이면 언제나 화기애애하고 편안한 분위기에서 최고의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다. 게다가 어머니께서는 요리 솜씨가 뛰어나셔서 차례 상을 차릴 땐 모두 어머니 옆에 찰싹 달라붙어 칭찬을 연발하며 배우려고 야단들이다. 이러한 어머니의 노고 속에서 올해엔 나도 어머니의 피곤을 조금 덜어드리려고 설거지와 잔심부름들을 자진해서 했지만 역시 턱없이 부족했던 것 같다. 매년 추석이 끝나면 피곤해서 침대에 쓰러지시는 우리 어머니, 이런 어머니가 너무 안 되어 보이신다. 그래서 앞으론 조금씩 조금씩 더 나아진 나의 음식 솜씨에 우리 어머니의 수고가 조금이라도 덜었으면 좋겠다.
시대가 점점 변해가면서 추석과 같은 명절이 차츰 그 의미를 잃어 가는 것 같다. 나는 한국 사람들이 너무 외국 것만 좋아하지 말고 조금만 더 우리 것에 신경을 쓴다면 더욱 더 밝은 한국의 전통미를 맛볼 수 있을 것 같다.
<優秀奬4>
'남녀평등'에 대해서 논한다
高 3-4 裴 敬 華
인류의 역사를 되짚어보면, 그곳은 언제나 여러 가지의 불평등이 수많은 인류를 억누르는 세상이었다. 군주제가 그것이고, 노예제가 그것이고, 특권이라는 게 그것이었다. 그러나 세상이 차차 현대화될수록 이런 불평등 문제는 하나둘 사람들의 생각이 일치되는 선에서 해결되어 갔다. 그래서 지금은 이미 각자의 자유가 어느 정도 인정되며 농노나 노예 같은 존재는 이미 이 세상에선 인정되질 않는다.
현재 서양에서는 남과 여가 이미 거의 동등한 대우를 받고 있지만, 동양에서는 불과 백 년 전만 해도 철저한 불평등이 존재하였고, 중동권에선 아직도 큰 차별을 두고 있다. 어째서 불평등 대우를 가하고 있는 것일까?
진화론에선 인간은 원숭이에서 진화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계속해서 진화 중이라고 한다. 그리고 더욱 뛰어난 종을 생산하여 종족을 유지하려는, 즉 약자를 도태시키는 진화라는 것은 위험하고 가혹했던 원시환경에서 힘의 논리를 만들어 힘이 상대적으로 강한 자는 약한 자들 위에 군림해 약한 자들을 억눌렀을 것이다. 이것은 불가피했겠지만, 이것은 없어서는 안될 존재였지만, 이것을 계기로 상대적으로 힘이 약한 여자가 불평등한 대우를 받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문명이 뿌리내리면서 이러한 관념도 같이 뿌리내려 몇 천년을 지속하였다.
그러나, 사람들의 이성이 점점 발달되면서 자연환경이 점점 인간의 손아귀 속에서 안정될수록 수많은 진보적인 사람들의 노력으로 여성의 같은 인류로서의 동등한 지위획득이 가능해져왔고, 앞으로도 계속 불평등에 저항하는 사람들에 의하여 모두 평등한 세상으로 갈 것이다. 물론 그 사이에 적지 않은 파
장도 예상할 수 있겠다.
아무 생각 없이 우리가 사는 사회를 둘러보자. 여성은 평등한 대우를 받고 있다. 이렇게 표면적으로 평등이 실현된 듯 하지만 아직도 세상 곳곳에서는 보수적인 사람들이 자신들의 이득을 위해서 여성에 대한 멸시와 차별을 자행하고 있다. 세상이 진보할수록 자신의 불이익을 차단하려는 움직임은 너무나도 필연적인 결과이다.
판단력이 뛰어난 여성과 논리력이 뛰어난 남성, 과연 평등은 어느 선에서 이루어질 것인가? 이것은 세상 사람들의 가치관 문제이고 각자의 입장 문제다. 그 결과가 어찌되었던 간에 하나 확실한 것은 누구든지 자신이 불리한 대우를 받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타협을 보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다. 어느 누구도 자신의 의견이 뒤쳐져버린 상태에서 타협하려 하지 않을 것이다. 진화의 논리에 의하여 최상의 결과를 이루기 위해 남과 여 모두가 인정하는 기준과 관점에서 타협점을 찾아 서로에게 해가 없는 방향으로 세태는 흐를 것이다.
하지만 그 사이에 생길 수많은 변화에 대해 우리들은 잠시라도 쉬이 무시하고 넘겨버려서는 안될 일이다. 남녀평등의 문제는 우리도 꼭 겪어야 할 문제이기 때문이다.
<優秀奬5>
'남녀평등'에 대해서 논한다
高 1-3 王 祖 夫
생애를 추구하는 운명적이고도 아슬아슬한 난자와 정자의 만남. 이 한 순간이 한 사람의 인생을 좌우한다면, 모든 사람들은 불만과 욕구로 가득할 것이다.
남자와 여자, 어느 한 쪽이 더 좋다고 더 나쁘다고는 말할 수 없다. 남자만이 이 세상을 정복하거나, 여자들만이 이 세상을 다 갖는 것보다는, 남자와 여자가 함께 미래를 지향해 나아가는 것이 세상의 발전과 평등에 더 좋을 것이다.
이 세상엔 네 가지의 性이 있다. 남자, 여자, 트렌스젠더, 트렌스터...... 사전에서 남자, 여자라는 단어는 쉽게 찾을 수 있다. 하지만 '트렌스젠더'라든지 '트렌스터'라는 단어는 찾을 수가 없다. 그럼 이런 사람들은 어디에 속하는 사람들일까? 여자도 아니고, 남자도 아닌 사람. 하지만, 이 사람들은 마음만의 성별로도 자신을 가지며 부끄러워하지 않고, 고된 삶이지만 이겨내고 있다. 그 속에서 그 사람들은 자신의 삶을 결코 원망하지 않을 것이다. 세상이 이런 정도로 바뀌었다면 '남녀유별'은 거의 사라질 정도이겠지......
옛날에는 남녀에 대한 말도 많았는데, '남남북녀', '남녀유별', '남녀칠세부동석' 등등....... 지금은 남녀평등에 대한 말들도 많다. 예를 들어 '남녀 동등권', '남녀공학' 등등......
이제 시대는 많이 달라졌다. 군대애도 여군이 점점 늘어가고 있고, 학교도 남녀노소 누구나 다닐 수 있고, 남자도 여자 일을 할 수 있게 되고, 여자도 남자 일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시대는 우리가 개선해 나가는 것이다. 만약 어떤 사람이라도 시대에 순종하기만 하고 반항하지 않는다면, 그건 시대의 노예일 뿐이다.
'남녀유별', 그 일방적인 말은 우리를 답답한 유리창살에 갇혀 있게 할 뿐이다.
<佳作奬1>
'남녀평등'에 대해서 논한다
高 1-2 王 玉 華
예전부터 많은 나라에서 '남녀차별'이라는 단어는 어디서든 흔히 보고 느낄 수 있었다.
'남녀차별', 그것은 무엇일까? 내가 느끼고, 들은 것은 이러하다. 옛날에 여자는 이름이 없었다고 한다. 있어도 귀족들만 있고, 일반 서민들은 거의 이름이 없고, '∼네 딸'이라고 불렸다고 한다. 그러다 나중에 시집을 가면, 그땐 남편의 성을 앞에 내세워 그 뒤에 자기의 성과 씨자를 붙였다고 한다. 도대체 왜 이래야만 하나? 나로선 정말 답답하고 속상하다. 그리고 예전에는 남자들만 서당에 가서 공부를 할 수 있었다고 한다. 여자는 그저 집에서 살림만 배워서 어느 정도 나이가 되면 시집을 가서 아이를 낳아, '현모양처'로 살았다고 한다. 왜 남자들만 학교에 가서 공부를 하고, 여자들은 안 되는 것이었을까? 만약 여자들도 고부를 했더라면, 나라도 더욱 일찍 발전하였을 텐데...... 그밖에도 남녀차별의 예는 아주 많을 것이다.
요즘 각 나라마다 '남녀평등'이라고들 한다. 그렇지만 과연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곳은 정말 완전히 평등하게 되었을까? 내 생각으로는 '자유의 나라' 미국의 발끝도 못 미치는 것 같다. 비록 입으로는 남녀평등이라고 하면서도 아직도 이 사회 곳곳에는 여자들에게 자제되거나, 불공평한 것이 많다. 그런 걸 보면 은근히 이 사회는 아직도 '평등'이라는 말과 타협을 못하는 것 같다. 그리고 더욱 슬픈 건 우리가 이런 사회에 살고 있다는 것......
'남녀평등', 과연 그것은 정말 현실화되기에는 우리가 너무 '무모한 모험'을 하는 것일까? 하지만 우린 '남녀평등'을 훤하고 있다. 그리고 21세기 현재, 우린 아직도 '남녀평등'을 소리 없이 외치고 있다.
<佳作奬2>
'남녀평등'에 대해서 논한다
高 2-3 姜 念 珠
인간의 세계에서는 남과 여, 동물들의 세계에서는 수컷과 암컷이 있다. 그 예전에 아담과 이브가 있었던 것처럼......
서로 다른 성을 가진 그 둘 사이에는 말로 표현하진 못하는 그 무언가가 있는 것도 같다. 그 둘 사이에서는 사랑, 증오, 미움 등과 같이 여러 감정들이 교차한다.
요새 시대에는 많은 여성 단체들이 남녀평등을 주장한다. 그렇다. 한국을 예로 들어보면, 예전에는 '남과 여' 사이에는 아직 큰 벽이 있었던 것도 같다. 어떻게 말하면, 여자로 태어난 그 순간이 곧 불행의 시작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여자가 학교에 다니는 일은 있어서도 안됐고, 한 지아비를 모시며 힘들고 굳은 일들을 다 하였고, 뭐든지 여자라는 이유로 금지되었다. 하지만 남성은 이와는 정반대였다. 태어날 때부터 온갖 축복을 다 받을뿐더러, 남자의 손에는 모든 권리를 다 쥐어 주었다. 가금 우리들의 옛 어머니들을 생각하면 너무나도 안 됐고, 가슴이 메인다.
현재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21세기에는 예전에는 상상할 수도 없을 만큼 정말로 많은 발전과 차이가 있다. 하지만 아직도
'남과 여' 그 둘 사이의 관계는 완전히 평등하지만은 않다고 보이는 점도 있다.
내 생각은 이렇다. 평등이란, 서로가 서로를 얼마나 존중해 주느냐에 달려있다고 본다. 하지만 한국에서만 봐도 소수의 남자들은 여자가 자기 자신보다 약하다는 것을 알고, 무시하고 심지어는 폭력을 휘두르는 일도 생기고 있다.
이제는 여자라고 천대받던 시대는 지났고, 남녀평등에 대하여 논할 시대인 것이다. 그러므로 난, '평등'이란 두 글자에는 항상 '존중'이라는 글자가 먼저 앞서야 한다고 생각한다.
<佳作奬3>
콜라와 햄버거
高 1-3 李 梅 蘭
콜라와 햄버거...... 과연 한 번이라도 안 먹어본 사람이 있을까? 내가 알기론 미국에서 들어온 지 불과 몇 십 년도 채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 햄버거는 한국의 식생활을 바꿔놓고 있다. 글쎄...... 어른들은 모르겠지만 최소한 아이들 또는 10대, 20대에게 햄버거와 콜라는 없어서는 안 될 음식이 되어가고 있다. 물론 나 또한 그렇다. 친구들과 만나면 밥보다는 햄버거를 더 많이 찾게 된다.
콜라와 햄버거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실과 바늘 같은 존재다. 콜라 없이 먹는 햄버거란...... 콜라와 햄버거를 좋아하는 사람이 늘수록 패스트푸드점은 점차 늘어가고 번화가에는 온갖 패스트푸드점들이 줄지어 늘어서 있다. 그곳은 항상 사람들로 붐비고 어쩔 땐 자리가 없어서 기다리기까지 한다.
그렇다면 햄버거와 콜라는 왜 그렇게 사람들이 선호하고 좋
아하는 음식이 된 걸까? 해답은 간단하다. 빠르게, 좀 더 빠르게를 외치는 사회가 그 원인이 아닐까? 햄버거는 손도 많이 가지 않고 빨리 먹을 수 있기 때문에......
햄버거는 비교적 아이들이 많이 좋아하지만 콜라는 나이든 어른들도 좋아하는 기호 식품으로 자리잡은 지 오래다. 콜라에는 많은 당분과 카페인이 들어 있어서 우리 몸에는 좋지 않지만 그래도 갈증이 나거나 하면 많이 찾게 된다. 하지만 나는 햄버거와 콜라는 많이 좋아하진 않는다. 나는 보다 전통적인 음식이 더 좋다.
시대가 점점 변할수록 식생활도 바뀌면서 좀더 빨리, 편하게 먹을 수 있는 패스트푸드를 찾고, 그렇게 변해가고 있지만 전통적인 음식들을 잃지 않게 지켜나가는 것도 소홀히 해서는 안 될 것이다.
<佳作奬4>
추석
高 1-1 盛 賢 實
추석이 되면 온갖 맛있는 냄새와 소리가 내 코와 귀를 즐겁게 한다. 그 날이 되면 떨어져 있던 친척들이 모여 앉아 이야기 보따리를 푼다. 추석은 한국뿐만이 아니라 중국에서도 아주 큰 명절 가운데 하나다. 중국은 중추절이라 해서 온 가족이 둘러앉아 달을 보며 '월병'이란 과자를 먹는다. 한국도 달을 보는 풍습이 있는 것 같다.
추석이 되면 왠지 가슴이 설렌다. 왜냐면 첫째로 학교를 안 가서 좋고, 두 번째로 그동안 보고 싶었던 친척들과 함께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왕창 쏟아진다. 세 번째로 추석은 내가 가
장 좋아하는 계절 가을에 있는 명절이다. 시원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달구경하는 것도 멋지다.
추석 하면 떠오르는 웃긴 얘깃거리 하나가 생각난다. 내가 어렸을 때 추석이든 설날이든 무조건 어떤 명절이든지 모두 세뱃돈을 받는 줄 알고 세배를 하고 돈을 달라고 했던 적이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웃기기도 하지만, 순수했던 옛날이 그립기도 하다.
이번 추석에는 예전과 다를 바 없이 친척들과 지냈다. 그러나 식구들이 부침과 송편, 그리고 다른 맛있는 요리를 손수 만드셔서 특별했다. 남은 음식은 집에 가져가서 배불리 먹었다.
매년 추석마다 나는 여운이 남는다. 해마다 후회도 많다. 특히 요즘 엔 식구들이 모여 앉아 이야기 할 수 있는 날이 적어서인지 난 추석이나 설이 더욱 더 소중하고 기대가 된다. 다음 해엔 더욱 더 멋진 추석을 기대하며 그렇게 또 오늘 하루도 보낸다.
<佳作奬5>
'남녀평등'에 대해서 논한다
高 2-3 孫 振 榮
21세기를 맞는 세계에서는 '평등'이라는 단어가 끊임없이 말해지고 있다. 평등이란, 태어나면서부터 주어지는 '선천적 평등'과 그와는 다소 달리 직위나 학식 등에 따라 주어지는 '후천적 평등'이 있다. 그러므로 '평등'이라는 단어만으로도 수십, 수억의 인구가 변화하고 그 기준에 맞추어 생의 길을 걷는 것이다. 오늘 난 이 '평등'이란 전제 조건을 가지고 '남녀평등'에 대하여 논할 것이다.
우선 '남녀평등'이란 구호가 생기기 전까지는 '절대 지배자'에 속하는 남자와 '절대 복종자'에 속하는 여자가 존재하였다. 모든 사람들의 의식 속에서 남자란 가정을 이끌고 사회를 부흥시키는 존재이고, 여자란 단지 자손을 잇기 위해서만 존재하는 것으로 사회에서 배제, 또는 매장 당하는 그런 존재로 인식되었다. 이러한 편협한 사상들로 인하여 '남녀불평등'이라는 사상이 무의식 속에 잠재되고 있다. 그래서인지 아직도 그 사상 속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이들이 많다는 걸 몸소 실감할 수 있다. 특히 동양 사상은 주로 유교 사상에 바탕을 둔 것으로 불평등은 마치 평등이고 미덕인 것으로 여겨져 왔다.
이러한 세계에서 여자란 극히 살아남는 것이 어렵다는 게 실로 증명이 되었다. 허나 이러한 위와 같은 추세가 계속 진행된다면 오히려 미래는 여자가 인정받고 대우받는 존재가 될 것이다. 그 이유는 생식 면에서 남자는 급속도로 증가하며 여자는 현저히 감소할 거라는 여러 추측 때문이다. 결국 때가 되지 않는 이상 그에 대한 해답은 나타나지 않을 것이다.
내 결론은 이러하다. '남녀평등'이라는 구호만으로는 절대 모든 사람의 사상을 바꾸지 못할 것이다. 그러므로 '평등주의자'
들이 정부 또는 일반인들에게 자연스레 평등의 활주로로 나설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는 역할을 해야 할 것이다. 이론적으로는 자아가 만족하여 새로운 사상을 추구하는 것이야말로 불평등을 평등으로 바꿀 수 있다고 보나, 현실은 그리 이상적이지 않으므로 '남녀평등'이란 구호는 오늘날 이 시점에서도 끝없이 계속될 것이다.
<90-1學期 韓語作文比賽獲奬作 - 初中部>
<優秀奬1>
아버지, 그리고 나
中 3-1 孔 慶 世
내가 갖고 있는 아버지의 기억은 그다지 많지 않다. 아버지께서 어릴 적 세상을 떠나셨기 때문이다. 다만 아주 작은 기억의 한 부분에 묻혀있는 아버지를 떠올릴 뿐이다.
아버지께서 돌아가시던 날, 우리 집에 전화가 왔다. 우리 식구는 아버지가 일하시는 곳과 아주 멀리 떨어져 있었기 때문에 우리 어머니는 아주 긴장한 듯 보이셨다. 아버지께서 돌아가셨다는 게 실감이 나질 않았다.
난 그날 눈물 한 번 보이지 않았다. 지금 생각하면 그렇게 후회가 될 수 없다. 아버지가 없어서 운 적도 많다. 요즘은 좀 외롭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아버지의 빈자리가 크게 느껴진다. 생활 형편도 예전에 비해 많이 나빠지고 어머니께서 힘들어 보이실 때가 허다하다. 난 요즘 외롭다. 뼈 사무치게 외롭다.
내가 어릴 적 어머니와 아버지께서는 자주 다투셨다. 그런데
아버지의 관을 옮기실 때 관을 잡으시는 어머니의 모습을 보니 슬펐다. 지금은 아버지의 얼굴이 생각도 안 난다. 기억하지 못하는 날 아버지께서 용서해 주실까?
난 요즘 방황을 한다. 어떤 결단을 내릴 때 나 자신을 믿지 못한다. 나를 의심한다는 건 정말 괴로운 일이다. 친구나 부모가 나에게 짜증을 내거나 화를 내면, 왠지 아버지가 생각난다. 그리고 눈물을 흘린다.
얼마전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셨다. 왠지 날 사랑해주던 사람들이 하나 둘 떠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고, 그것을 인정할 수가 없다. 난 지금 마음의 문을 닫고 있다. 하지만 내가 마음의 문을 열 때가 있다. 글을 쓸 때 난 마음의 문을 연다. 그래서 글쓰는 게 왠지 기분이 좋다. 나 자신을 아는 것 같은, 그런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즐거움이 있다.
난 지금 방황하고 있다. 내 마음은 지금 서로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혼돈 속에서 질서를 지키지 않고 있다. 하지만 이런 말을 듣고 깨달았다. 조화와 혼돈은 둘 다 존재해야 한다고......
난 이제 날 믿을 것이다. 그래야 내가 편할 테니까. 난 이제 모든 걸 인정하고 아버지를 받아들여야 한다.
<優秀奬2>
나의 불만
中 3-3 賀 常 煢
세상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들은 아무리 모든 걸 충분히 갖춘 사람이라 해도 적어도 한 가지씩의 불만은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 나보다 남에게 맞춰야 할 상황이 더 많고, 사람들의 끝없는 욕구도 다 채울 수는 없는 것이기에 그만큼 불만도 많을 거라 생각합니다.
저도 불만이 많은 편에 속합니다. 학교, 선생님, 가족, 친구, 사회...... 모두 제 불만의 대상이 되곤 하지요. 저의 가장 큰 불만은 바로 '어른들'에 대한 불만입니다. 어른들은 항상 아이들을 그 답답한 어른들의 틀 안에만 가두려고 합니다. 어릴 적, 미술학원에 다닌 적이 있는데, 선생님께선 항상 물건을 가져다 놓고는 조금도 다르지 않게 똑같이 그리라고 하셨습니다. 아이들의 행동은 어른들에게 바로 충분히 묶여왔습니다. 하지만 왜 상상력마저도 묶여야 하죠? 아이들만이 지니고 있는 순수함과 무궁무진한 상상력은 아이들만이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어른들은 그것을 유지시켜주지는 못할망정 오히려 없애려고 듭니다.
이러한 경우는 특히 한국을 비롯한 몇몇 동양 국가에서 더 많이 나타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어디에서 들은 건데, 이런 말도 있더군요. "아인슈타인이 한국에 있었다면 발명가가 아닌 바보였을 것이다."
그리고 또, 어른들은 자신들의 행동은 옳다고,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어떤 엄마는 자신의 아이들에게 함부로 길에 쓰레기를 버리지 말라고 하면서도 정작 자기는 그 아이들이 보는 앞에서 버젓이 쓰레기를 길에 버립니다. 비록 아무리 그 아이들에게 수 십 번, 수 백 번 하지 말라고 했어도 아이들은 자기 엄마가 하는 것을 직접 보았기 때문에 '길에 쓰레기를 함부로 버려도 되는구나' 하는 생각이 더욱 강할 것입니다. 몇몇 어른들이 그러시더군요. 아이들은 점차 자라면서 나빠진다고...... 그런데 그 아이들은 나쁜 행동을 어디서 배웠을까요?
청소년들에게도 어른들의 생각은 강요됩니다. 어른들은 오로지 "공부, 공부, 공부!!!" 공부만을 강요하는데, 이렇게 우리들에게 공부만을 고집하신다면 청소년들은 공부가 아닌 다른 여가활동에서 배울 수 있는 공부보다 더 귀중할 수도 있는 많은 것들을 그냥 지나치게 되겠죠. 더 심한 경우에는 부모가 아이들의 생각과 재능은 모두 무시한 채 "너는 무슨 학원, 어느 학원, 또 저런 학원을 다녀야 하고, 나중에 커서는 꼭 무엇이 되어야 한다"는 식으로 미래까지 맘대로 정해버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또 집안의 반대로 자신의 꿈을 펼치지도 못한 채 접어야 하는 사람도 있고요.
이렇듯 많은 아이들과 청소년들은 어른들의 고지식하고 일정한 틀 안에 갇혀 자신들의 날개는 펼치지도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것은 사회나 국가적으로도 얼마나 큰 손해입니까? 아이들과 청소년들이 잘못된 부분에선 충분히 어른들의 따뜻한 충고를 귀담아듣고 따라야 합니다. 하지만 제가 바라는 건 '어른들이 조금만 더 우리들의 상상력과 재능을 살려줬으면......'하는 것입니다.
<優秀奬3>
우리 아버지
中 2-2 姚 守 芬
정말 "아버지"하고 부를 때 가슴 한 곳에서는 애절한 느낌이 듭니다.
아버지는 정말 위대하고 존경할 만한 사람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떼쓰고 나쁘게 대해도 아버지는 모든 걸 다 용서합니다. 아버지는 매일 매일 힘들게 일하시고 돌아와 우리를 따뜻하게 보살펴 줍니다. 저희는 그것도 모른 채 아버지께 불효를 했습니다. 이렇게 좋으신 분께요.
저는 정말 나빴습니다. 저는 언제나 아버지 뜻을 거슬렀습니다. 하지만 아버지는 단 한 번도 저에게 화를 내시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아버지는 항상 저의 편이셨죠. 엄마와 내가 말다툼을 했을 때, 아버지는 단호하게 엄마가 잘못했다고 하셨습니다. 사실은 제가 잘못한 건데도, 이렇게 아버지는 저를 감싸주셨습니다.
제가 아버지를 볼 때 아버지의 옷차림은 항상 같았습니다. 여름엔 두 벌의 파란 셔츠와 회색 바지, 겨울엔 검은색 코트와 정장, 너무도 초라해 보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아버지께 여쭈었습니다. 아빠는 왜 옷이 별로 없냐고...... 그러자 아버지는 이게 좋다고 하셨습니다. 그 때까지만 해도 저는 믿었습니다. 하지만 지금 저는 깨달았습니다. 아버지가 그렇게 말씀하셨던 건 진실이 아닌 거짓말이란 것을...... 저는 가슴이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아버지의 사랑을......아버지는 항상 저희에게만 좋은 것을 해주시고 정작 아버지 자신에게는 콩알만큼도 신경을 쓰지 않았습니다. 바로 아버지는 이런 분이셨죠.
요즘 저는, 저도 모르게 아버지와 대화할 수 있는 시간을 갖지 못했습니다. 아버지가 저에게 말을 건네실 때는 저는 귀찮
다는 핑계로 신경 쓰지 않았습니다. 매번 아버지를 볼 때마다 너무 죄송했습니다. 정말 진심이 아닌데도 화를 내게 되고, 정말 제 자신이 싫습니다. 그리고 저는 건망증이 심해서 누가 옆에서 챙겨주지 않으면 매번 실수를 합니다. 그럴 때마다 아버지는 저를 챙겨주셨습니다. 게다가 저는 아침밥을 먹지 않아 항상 아버지는 걱정하셨습니다. 혹시 솔이라도 버리지 않을까 하고요......
이토록 저는 아버지께 너무나도 많은 잘못을 했습니다. 이 죄를 어떻게 해야할지, 그리고 아버지의 사랑과 관심을 어떻게 보답해야할지, 정말 앞이 막막합니다. 아버지가 살아 계실 때 정말 효도를 다 하겠습니다. 다시 한 번 아버지의 사랑을 느꼈습니다. 지금 저는 "아버지"하고 크게 외치고 싶습니다. 그리고 다시 한 번 감사하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아버지, 사랑해요!"
<優秀奬4>
나의 불만
中 1-1 焦 振 梅
저희 아버지께서는 의사이십니다. 아버지께서 의사라는 이유로 저희 어머니께서는 저에 대한 기대가 매우 크신 것 같습니다. "언니가 성적이 좋으니 너도 언니를 닮아야 한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도 맑다. 네가 잘 해야 네 동생들도 널 보고 배울 것 아니냐"라는 말씀으로 저에게 부담을 주십니다. 그 부담 때문에 공부는 점점 더 하기 싫어지기도 합니다. 언니는 성적이 좋아서 부모님들에게 칭찬을 듣고, 전 비교 대상밖에 되지
않는 것 같아서 기분이 좋지 않습니다. 어쩔 때는 집에 가지 않을까도 생각합니다. 부모님들께서 저와 언니를 비교하시는 것이 싫어서......
요즘엔 언니도 저에게 좋은 소리를 하질 않습니다. 언니까지도 무심하게 저에게 "이것도 못 해?", "또 시험 망쳤지?"라는 따위의 말들로 제 기분을 상하게 합니다. '어머니께서 뭐라고 하시더니, 이제는 언니까지도......', '차라리 말하지 말지......', '위로 좀 해 주었으면......'하는 바람입니다.
이제 여덟 살밖에 안 된 동생 입에서까지도 "누나는 이런 것도 못해?"하는 소리가 나옵니다. 날이 갈수록 제 자신이 한심하게 여겨집니다. 불만도 많아지고, 그렇다고 반항하면 집에서 쫓겨 날 것 같고...... 전 남들에 비하면 불만이 두 배 정도 되는 것 같습니다. 성적도 별로 좋지 않아서 어머니께서 다 제가 잘 되라고 그러시는 것인지 잘 알면서도 자꾸 어머니께 짜증만 냅니다. '이러면 안 되는데'하고 생각한 적이 벌써 여러 번이지만......
앞으로는 불만을 모두 없앨 것입니다. 이제부터는 화도 잘 안 내고, 공부도 더욱 열심히 하고 반성의 시간을 많이 가질 것입니다. 두고 보세요!
<優秀奬5>
점심 시간
中 3-1 蓋 珍 秀
나는 점심 시간 하면 생각나는 것이 바로 밥 먹는 것이다. 점심 시간이 되면 나와 모든 사람들이 일제히 의자에서 일어
나 밥을 먹으러 간다. 아주 오래 기다리기라도 했다는 듯 모두들 굉장히 급하게 교실 문을 나선다.
점심 시간을 기다리는 것은 그 시간 때뿐만 아니라 3교시부터 4교시, 심지어는 2교시부터이다. 우리들은 바로 그 즐거운 점심 시간을 기다리는 것이다. 드디어 종이 치고 그렇게도 기다렸던 밥 먹는 시간이 되면, 우리들은 모두 얼굴에 꽃이라도 핀 듯이 환하게 밥을 먹기 시작한다.
배가 불러온 뒤 우리들은 또 한 바탕 소란을 일으킨다. 소화라도 시킬 겸 왔다갔다 돌아다니면서 열심히 논다. 점심 시간은 이렇게 아주 짧게 후딱 지나가 버린다. 정말 점심 시간이 너무 짧다는 생각을 거의 날마다 하면서......
점심 시간은 수업 때문에 지친 우리들에게 많은 힘을 준다. 아침부터 연속으로 4시간을 공부하면서 우리들은 점심 시간을 기다리는 그 힘 덕에 남은 수업 시간을 잘 지내간다. 점심 시간은 곧 우리의 힘인 것이다. 이렇게 점심 시간은 참 고마운 것인데 사람들은 그걸 모른다. 아무렇게나 그냥 시간을 낭비해 버리는 것 같다.
그리고 우리는 점심 시간에 써클 활동을 하는데, 밥도 먹고 써클 활동도 하면 시간이 너무 촉박한 것 같다. 나는 학교에서 학생들을 위해서 충분한 점심 시간을 만들어 주었으면 좋겠다. 그러나 또 생각해보니 학교에서 시간을 늘려주면 우리들은 아마 조금은 지루한 점심 시간을 보내야 할 것도 같다. 시간이 많으면 지루할 것도 같으니...... 그러고 보니 점심 시간이 그렇게 짧은 것만은 아닌 것도 같고. 밥 먹고, 휴식 시간까지...... 단지 써클 활동이 있는 날이면 조금 모자르기도 하지만...... 모르겠다.
결국 결론은 점심 시간은 우리에게 많은 도움을 주면서 그것으로 우리는 많은 힘을 얻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제 점심
시간에 놀지만 말고, 공부도, 복습도 해 보고, 다른 과목 준비도 잘 하는, 그런 필요한 점심 시간을 가져 보아야겠다.
<佳作奬1>
우리 아버지
中 3-3 周 培 芸
저희 아버지께서는 정말 따뜻하신 분입니다. 다른 사람을 잘 배려해 주시고, 정도 정말 많으신 흔치 않은 분이십니다. 항상 모든 것을 일에 앞서 걱정과 염려를 하셔서 때문에 많은 짜증을 부릴 때도 있는 저이지만, 전 알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당신께서 지난 날 겪어 오셨던 안 좋았던 경험들을 우리가 되풀이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라는 것을......
어려웠던 시절, 아버지께서는 고등학교 졸업을 앞두고 가정 형편 때문에 다니시던 학교를 포기하셔야 했습니다. 비록 고등학교 졸업을 못하셨지만, 제가 보아도 저희 아버지께서는 공부를 계속 했더라면 정말이지 큰 학위를 따셨을 거란 생각을 들게 할 만큼이나 영명하시고 센스도 높으신 분입니다. 정말 한 나라에서 이런 인재를 놓친 것이 아까울 따름입니다. 자퇴하신 뒤로는 하고 싶은 것도 많았을 나이에, 꿈을 펼칠 수 있었던 기회의 날들에, 가장 열정적일 나이에, 인생의 꽃이라고 불리는 나이에, 아버지께서는 모든 것을 포기하시고 한 사람의 몫이라도 벌어보려는 마음으로 할아버지께서 경영하시고 계시던 중국집 주방에 들어가 일을 도우셨습니다. 그러기에 아름다운 청춘을 집안 울타리 속에서만 보내셔야 했던 아버지, 이렇게 사회와 접촉을 하지 않으며 근 십 년을 보내셨지요.
할머니께서 돌아가신 뒤로 저의 아버지께서는 어머니를 만나 한 가정을 꾸리셨지요. 지금 이 날에 이르기까지 비록 많은 시련도 있었고, 어려운 날들도 많았지만, 그것을 이겨낼 수 있었던 것은 아버지를 사랑하는 마음이 있었기에 모든 것을 헤쳐나갈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전해 드리고 싶어요.
"아빠, 건강하시고, 항상 우리 아빠를 부끄럽게 하지 않는 딸이 될 게요. 정말 사랑해요!"
<佳作奬2>
점심 시간
中 2-2 徐 義 國
모든 사람들은 점심 시간이라는 단어를 가지고 있다. 점심 시간은 모든 사람들의 축복이다. 점심 시간이 없다면 일하는 사람들도 일을 하다 힘이 빠져 일을 못하게 되고, 공부하는 학생들은 배가 고파서 공부를 못하게 될 수도 있다.
난 점심 시간이 되면 우선 달리는 버릇이 있다. 왜냐하면 빨리 먹고 친구들과 놀아야 하기 때문이다. 난 하루하루가 참으로 즐겁다. 그리고 점심 시간 때 선생님들께서 점심을 드시고 계실 때 보면 정말 고마운 생각이 든다. '선생님들께서는 우리를 가르치실 때 얼마나 힘 드실까'하고 가끔 선생님들의 입장이 되어 생각해 보기도 한다. 이렇게 고마우신 선생님들께 해 드릴 수 있는 것은 공부를 열심히 하는 것이겠지......
부모님들께서도 점심을 드실 때마다 우리를 생각할 것이다. 학교에서 공부는 잘 하는지, 말썽 같은 것은 피우지 않는지 걱
정하고 계실 거다. 일하시는 부모님들이 우리를 낳아 주시고 키워주셔서 정말 감사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 은혜를 꼭 갚아드려야 한다. 지금은 학생의 신분이니 공부를 열심히 하여 부모님과 선생님들께 실망을 드리지 말도록 하자.
점심 시간을 잘 활용하여 놀 때는 실컷 놀고, 공부할 때는 열심히 공부하며, 다른 사람들에게 예의를 갖추면서 하루하루 즐거운 점심 시간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佳作奬3>
우리 아버지
中 3-1 劉 文 仙
우리 아버지께서는 어머니와 함께 조그마한 중화요리집을 운영하고 계시는 아주 평범한 요리사이십니다. 그래서 저는 집에 있는 날에는 중화요리를 원 없이 먹어서 다른 친구들이 부러워들 하지요. 하지만 우리 아버지께서는 일하시면서 많이 힘드시고 스트레스도 많이 받으실 거예요.
어느 날이었습니다. 제가 초등학교 3,4학년에 다니고 있을 때였습니다. 제가 학교에 가기 싫어하고 아버지 어머니 속만 태우니까 처음으로 아버지한테 그렇게 맞아보았습니다. 하지만 저녁이 되자, 아버지께서 약을 사 오시더니 저의 상처에 하나하나 발라 주시는 거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때 눈물을 삼키며 후회를 했습니다. '저만 안 그랬더라면 아버지와 어머니께서는 화를 내시지 않으셨을 텐데......' 그 뒤로 저는 학교에 열심히 다녀서 지금 이 학교에 재학 중입니다.
저와 아버지는 닮은 곳이 많습니다. 우리 집안에서 저와 우
리 아버지의 눈만 큽니다. 그래서 다들 부러워하지요. 그리고, 아버지께서 장염에 잘 걸리셔서 저도 장염에 잘 걸린답니다. 이런 것도 유전이라고 하나요?
저는 아버지께서 요리도 하시고 배달도 하시는 모습을 보면 가슴이 찢어지는 것만 같습니다. 안 그래도 우리 아버지께선 다리가 조금 불편하셔서...... 제가 빨리 커서 성공을 해서 효도를 해야 하는데......
우리 아버지의 보물 1호가 있답니다. 그건 바로 "술"입니다. 그래서 우리 아버지께서는 술을 자주 마시고 집에 오십니다. 저의 어머니께서는 그런 아버지의 모습을 싫어하시지만요...... 그 때문에 자주 말다툼을 하시기도 하지요.
마지막으로 저의 소원이 하나 있습니다. 아버지께서 술을 끊으시고, 일하실 때에도 몸 생각을 하시고, 아버지께서 빨리 다리 수술을 받으시길......
<佳作奬4>
우리 아버지
中 3-2 鄒 美 慧
우리 아버진 약사예요. 무섭게 생기셨지만 모든 일에 진지하시고 겸손하실 줄 아시는 사람이에요. 모든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너무 진지해서 거짓말을 하셔도 아버지께서 먼저 말씀하시기 전에는 어머니 빼고는 아무도 몰라요. 그래서 그런지 그런 아버지가 좋고, 사랑이 느껴진다고 할까요?
제가 어릴 땐 아버지께 이런 말을 자주 했대요. "다음에 어른이 되면 아빠랑 결혼할 거야." 제가 어릴 때는 아버지를 친
구처럼 느꼈던 것 같아요. 하지만 초등학생이 되고 난 뒤부터는 모든 생활 때문에 아버지께 느끼는 느낌이 많이 달라졌어요. 말하자면 공부 때문에 어머니에게 혼이 날 때 아버지께서 도와주곤 하셨고, 모르는 문제가 있을 때는 알려주곤 하셨죠! 그래서 그때부터는 아버지가 "신" 같은 존재로 느껴졌어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 아버지가 정말 왕처럼 그런 것도 아니예요. 종종 시간이 나면 어머니 대신 밥도 해 주세요. 어쩔 때 보면 아버지께서 어머니보다 살림 같은 것을 더 잘 하시는 것 같아요. 그리고 식구가 한 자리에 앉아 밥 먹을 때 아버지께서는 종종 우리들에게 좋은 이야기와 교훈이 될 만한 것들을 알려주세요. 아버지께서 말씀해주신 교훈 가운데에서 가장 많이 생각나는 것은, "사람은 네 가지 사람이 있다. 첫째, 자기 일도 못 하는 사람. 둘째, 자기 일도 못 하면서 남의 일만 상관하는 사람. 셋째, 자기 일 잘 하는 사람. 넷째, 자기 일 잘 하면서 남의 일도 도와주는 사람."이라는 얘기예요. 아버진 저희보고 먼저 자기 일부터 잘 하는 사람이 되라고 하셨어요.
끝으로 전 이렇게 가끔 농담도 하시고, 종종 어머니도 도와주시고, 저희에게 재미있는 얘기도 해 주시는 우리 아버지가 가장 좋아요.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요......
<佳作奬5>
미국 뉴욕의 쌍둥이 빌딩 참사를 생각하며
中 3-2 楊 義 甋
2001년 9월 11일 아침 9시 30분쯤, 미국 뉴욕시에 큰 테러사건이 터졌다. 테러사건이 벌어졌던 곳은 미국 뉴욕에 있는 세계무역센터 '쌍둥이 빌딩'이었다. 테러범들이 탑승한 총 4대의 여객기에 의하여 발생한 이 사건은, 많은 희생자를 만들고 여러 가족들에게 슬픔을 주었으며, 우리에게도 큰 충격을 안겨주었다.
미국 테러 참사가 있은 뒤로 한 달이 지난 지금, 두 대의 항공 여객기가 빌딩을 향해 충돌한 지금 그 자리에서는, 사망자를 찾는 작업을 계속하고 있다. 그러나, 겨우 찾은 사망자들은 총 360여 명 정도이다. 앞으로 오 천 명 정도의 사망자를 찾으려면 약 일 년의 세월이 필요하다고 미국이 보도하였다.
우리는 이 테러사건의 범인 '빈 라덴'을 주목할 수밖에 없다. 이 사건으로 인하여 미국 부시 대통령은 엄청난 복수의 '전쟁'을 계획 중이다. 왜 이런 나쁜 사건이 일어나야 했는지, 피해자들은 그저 슬픔을 가슴에 안고 고통받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우리들이 아직 그런 사건에 대한 이해력이 조금 모자란다고 해도, 피해자들을 공감하고, 앞으로 온 세계가 평화롭고 서로 미워하지 말기를 바란다. 비록 지나간 시간들을 되돌릴 순 없다 해도, 모두 서로 평화롭게 지내며 다시는 그런 테러범들이 범죄를 저지르지 않았으면 좋겠고, 서로 다른 나라의 '심장'을 찌르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는 이 사건을 통하여,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충격도 컸지만, 무엇보다도 한 나라의 근본이 중요하다고 느끼게 되었다. 나라가 건강해야 그 나라 사람도 건강한 몸과 건강한 생각을 하는 법! 나도 이제 가까이 있는 친구들, 가족과 평안히 지내고, 서로 사랑하며 살아가고 싶다.
'미국 테러 참사', 빨리 그 사건이 해결되었으면 좋겠다.
<海外 名詩>
낙엽
R. 구르몽
(1858-1915. 프랑스)
시몬, 나무 잎새 져버린 숲으로 가자.
낙엽은 이끼와 돌과 오솔길을 덮고 있다.
시몬, 너는 좋으냐? 낙엽 밟는 소리가.
낙엽 빛깔은 정답고 모양은 쓸쓸하다.
낙엽은 버림받고 땅 위에 흩어져 있다.
시몬, 너는 좋으냐? 낙엽 밟는 소리가.
해질 무렵 낙엽 모양은 쓸쓸하다.
바람에 흩어지며 낙엽은 상냥히 외친다.
시몬, 너는 좋으냐? 낙엽 밟는 소리가.
발로 밟으면 낙엽은 영혼처럼 운다.
낙엽은 날개 소리와 여자의 옷자락 소리를 낸다.
시몬, 너는 좋으냐? 낙엽 밟는 소리가.
가까이 오라, 우리도 언젠가는 낙엽이니
가까이 오라, 밤이 오고 바람이 분다.
시몬, 너는 좋으냐? 낙엽 밟는 소리가.
청소년 사회의 중독 현상
高 2-3 高 文 政
사회에는 중독 현상 때문에 골치 아파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술과 담배, 그리고 마약은 이미 오래 전부터 공공연하게 퍼져가고 있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아무런 방안도 마련하지 못했다. 그래서 이젠 청소년에게까지 영향이 미치고 있다.
청소년 사회에도 이미 많은 중독 현상이 발견됐다. 술과 담배는 물론 컴퓨터 중독이란 희귀한 것까지 나왔다. 나도 이미 컴퓨터 중독에 빠져 있다. 집에만 가면 곧바로 컴퓨터 앞에 앉아서 게임하기에 바쁘다. 그래서 밥 먹는 것도 잊은 채, 컴퓨터만 끼고 앉아서 내 할 일은 하나도 하지 못했다. 결국은 어머니께서 나서셔서 날 말려주셨다.
중독이란 것은, 좋아하는 게 지나치면 집착이 되는데, 그 집착이 강해지면 중독이 되는 게 아닐까 싶다. 요즘은 먹는 음식에서도 중독현상을 볼 수 있다. 콜라 중독, 초콜렛 중독, 이런 군것질 음식까지 중독이 되고, 또 피자, 햄버거 등 서양음식들이 들어오고 나서부터 중독은 광범위하게 확산되고 있다.
학생들은 유난히도 많은 중독에 시달리는 것 같다. 매일 규칙적인 생활도 좋지만, 너무 오래가다보니 권태로워지기 때문에 뭔가 자극적인 걸 원하게 되고, 또 호기심으로 하다가 드디어는 중독 상태에까지 오게 되는 것은 아닐까? 중독 상태에 이르면 좋든 싫든 삶이 아주 고단해진다. 끊으면 금단 현상이 일어나 제 정신이 아니게 되니 하루아침에 끊는다는 것은 정말 보통 쉬운 일이 아니다.
중독에서 빠져 나오려면 중독 초기에 잡아야 하고, 규칙적인 생활 습관을 길러야 한다. 많은 사람들은 아직도 중독의 심각성을 모르고 있지만, 나는 중독이 그 어떤 병보다 우리 마음을 멍들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중독을 너무 하찮게 여겨선 안 된다.
청소년 사회의 중독 현상
高 2-3 高 慧 丞
무언가를 꾸준히 열심히 한다면 취미가 될 수 있지만, 도가 지나치면 그것은 바로 중독이란 무서운 것으로 변한다. 요즘 청소년들은 쉽게 중독에 빠지게 된다. 담배니 술, 컴퓨터 채팅, 게임, 핸드폰 등등...... 사람이라면 누구나 새로운 사물을 접했을 때 호기심을 억제하기는 힘들지만, 해롭다는 것을 알았을 땐 자기 스스로 빠져 나와야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런 능력이 부족한 우리 청소년들은 뭐든지 쉽게 빠져드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 중에서 핸드폰 중독은 청소년이 가장 쉽게 빠져드는 것 같다. 핸드폰이 없는 사람이 거의 없을 정도로 핸드폰은 우리 청소년의 생활 필수품이 되어가고 있다. 기종도 여러 가지일 뿐만 아니라 요즘은 TV 같은 칼라식 핸드폰도 등장하고 있다. 중독에 쉽게 빠져드는 이유는 일단 핸드폰은 소지하기도 편하고, 문자라는 채팅과 비슷한 글자로 대화할 수 있는 기능이 있기 때문인 것 같다.
수업 시간이나 전철, 버스를 타면 벨소리를 진동으로 하라는 광고를 볼 수 있다. 그리고 더욱 자세히 본다면 젊은 층의 사람들은 저마다 자신의 핸드폰을 만지느라고 정신이 없다. 사이버시대에 걸맞게 핸드폰으로 인터넷도 할 수 있고, 수많은 정보도 들을 수 있으니 철없는 우리들은 중독이 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핸드폰의 용도는 결코 심심풀이로 삼아 시간 때우라고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잠시 핸드폰의 진정한 용도를 잊고 있는 것 같다. 핸드폰은 바쁜 사회인이나 샐러리맨, 사업가들이 급히 연락할 수 있는 줄 없는 작은 전화기인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너도나도 하나씩은 갖고 있기 때문에 정확한 용도도 모른 채 부모님이 힘들게 버신 금쪽 같은 돈을 하루에도
몇 장씩 날리고 있다.
이젠 막을 수 없을 만큼 핸드폰 중독은 널리 퍼져가고 있다 주머니 속에 없으면 불안하고 아무런 소리도 안 나는데, 삐빅거리는 환청도 들려오고 가면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 편의점이나 길거리를 가다가도 핸드폰 급속 충전기를 볼 수 있고, 많은 통신 회사에서는 청소년들을 위한 스쿨 요금제까지 도입했다. 악세사리 가게에서는 핸드폰 집, 고리, 스티커들이 판을 치고 있다. 이러니 안 사려고 자제를 하다가도 이런 물건들 때문에 유혹을 뿌리치기란 쉽지 않다. 이러한 유혹의 덫이 우리에게는 너무 많아 뿌리칠 수 없는 게 현실이다.
그럼, 이제 우리는 어떻게 해야하는가가 바로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숙제이겠다.
청소년 사회의 중독 현상
高 2-3 于 克 偉
현대 청소년은 심각한 중독 사회에서 아무 느낌 없이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청소년들이 가장 쉽게 접할 수 있는 중독으로는 음주, 담배, 그리고 컴퓨터 게임과 음란물을 우선 손꼽을 수 있다. 최근 아주 심각하게 일어난 학생들의 음주 중독을 보면, 십 대의 청소년 가운데 대부분은 술을 취하도록 마셔본 경험이 있을 정도이다. 이것은 현대 사회에서 더 이상 술은 어른들만이 전유물이 아니란 걸 증명한다. 주말이 되면 대학가 주변 술집은 십 대들로 메워지다고 해도 이제는 과언이 아니다. 아무 죄책감 없이 술집을 드나들고, 담배도 술집에서 쉽게 구입할 수 있어서 또 다른 중독에도 빠지기 쉽다. 흡연도 남자들만의 중독이 아니다. 날이 가면 갈수록 여성 흡연자도 급속히 늘어나는 현상이다. 이제는 어느 곳을 가든 여성 흡연자를
쉽게 접할 수 있고, 여성들도 담배를 아무 거리낌없이 피우고 있다. 이것들보다 더 문제가 되는 것은 십 대들도 이런 생활을 하고 있고, 음주와 흡연을 어른들 못지 않게 많이 하고 있다는 심각성에 있다. 보다 못한 정부는 청소년 음주 흡연을 방지하기 위해 관련법을 제정하였지만 그것도 역시 잘 지켜지지 않는 현실이다.
이대로 십 대들의 음주와 흡연 중독이 지속될 경우 현대 사회는 매우 혼란해 질 것이며, 사회 발전을 저해하는 심각한 국가의 손실의 한 부분이 될 것이다. 현대 청소년의 중독은 스트레스가 가장 큰 이유이다. 그러므로 어른들은 학생들에게 스트레스는 운동과 취미 생활로 해소하는 방법을 몸소 체험하게 해주어야 한다. 그래야만 심각한 청소년 사회의 중독을 막을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우리들도 이러한 중독에 빠져들고 있는 건 아닌지 늘 경계해야 할 것이다.
청소년 사회의 중독 현상
高 2-3 鍾 宜 太
만약, 어린 왕자가 사막에 떨어지지 않고 서울의 압구정동이나 홍대 앞 같은 번화가에 떨어졌으면 어떻게 됐을까 생각을 해본다. 그 호기심 많은 어린 왕자도 지금의 청소년들과 같이 중독현상에 빠져들지 않았을까? 압구정동이나 홍대 앞 같은 거리를 걸어본 사람들은 아마도 내 생각에 고개를 끄덕일 수 있을 것이다.
점점 더 심각하게 늘어가고 있는 청소년 문제, 술, 담배, 마약, 본드 등은 이제 더 이상 어른들의 몫이 아니다. 호기심 많고 뭐든 빠져들기 쉬운 십 대. 기성 세대들이 만들어 놓은 세상에 적응하지 못하고 방황하는 청소년들. 방황의 끝은 결국
마약이나 본드 등이다. 그런데도 어른들은 자신들이 만들어 놓은 세상은 전혀 돌아보지 않고 거기에 빠져드는 청소년들만 탓하고 있다. 밤거리 끊임없이 널려 있는 휘황찬란한 모습들, 도저히 십 대의 심리를 자극하지 않을 수가 없다.
'청소년 사회의 중독현상'을 생각해 보면서 내가 느낀 것은 황당함과 혼란스러움이다. 그러나 난 이것 한 가지는 느낄 수 있었다. 새장 안에서 부르는 새의 노래는 노래가 아니라 울부짖음임을.
중독에 빠져든 청소년들에게, 또는 빠져들려고 하는 청소년들에게 난 말하고 싶다. 지금이라도 어둡고 음습한 구석에서 벗어나 밝고 열린 공간으로 자기 자신을 드러내라고. 명심해라. 모든 중독현상은 결국 자신의 존재까지 내어주는 몰입임을. 그 바보스러움이, 꽃필 미래와 자신을 희생시킴을......
서울의 아름다움
高 1-1 郭 明 季
서울에서 생활하는 게 올해로 삼 년째다. 이젠 겨우 적응했지만, 처음엔 너무나도 힘들었다. 전혀 다른 도시에서 서울로 왔고, 사용하는 언어랑 생활이 달라 가장 불편했다.
길가에 걸어가면 온통 내가 모르는 건물뿐, 그땐 서울이란 곳이 너무나도 차갑고 크게 느껴졌다. 다행히도 내 곁엔 엄마와 날 걱정해 주시는 친척 분들이 계셨다. 그분들은 나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주셨다. 하지만 의사소통이 안 되어서 처음엔 그저 가만히 앉아 바깥 풍경을 바라보기만 했다. '서울이란 곳은...... 어떤 곳일까?'하며...... 가끔씩 내가 혼자 상상을 하면 머릿속에 서울의 그림을 그려보기도 했다.
실제로 서울은 내가 상상했던 것과 별로 차이가 없는 것 같
았다. 큰 도시, 인구가 많고, 상업이 발달되어서 상점이 만은 곳, 화려하면서도 세련된 곳이라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내가 이곳에서 살아가면서 점점 생각이 바뀌었다.
사계절이 분명해 낙엽이 떨어지는 것만을 봐도 계절이 바뀌는 걸 알 수 있다. 봄이 되면 푸른 나무들과 활짝 핀 꽃들이 서울을 더욱 아름답게 장식하며 보는 사람까지 기분이 좋아지게 만든다. 날씨뿐만이 아니라, 더 많은 것들이 나를 놀라게 했다. 화려하고 발전된 도시라고만 생각했던 서울 한 복판에 오래 전부터 내려온 역사를 엿볼 수 있었던 것이다. 경복궁, 광화문을 보면서 한국의 전통미를 느끼게 되었고, 많은 흥미로운 역사가 더욱 이곳을 신비롭게 만들었다.
이토록 과학이 발달하고, 전통미가 풍기는 곳에서, 내가 느끼는 가장 아름다운 것들이 있다. 바로, 이곳에 사는 '사람'들...... 아직 채 서울에 대해서 아무 것도 모르고, 모든 것이 서툴었던 나에게, 이곳의 사람들은 너무나도 큰 힘이 되었다. 한 분 한 분이 내게 보여주셨던 미소, 나는 아직도 간직하고 잇다. 다정하신 분들이 내게 준 도움으로 나는 이렇게 많이 성장할 수 있었다.
정다운 사람들로 인하여 서울은 더욱 빛나는 게 아닐까? 이렇게 발전하면서도 민족성과 역사를 잃지 않는 서울에서, 인정미는 내가 느낀 최고의 아름다움이라고 생각한다. 사람들의 환한 미소가 사라지지 않는 한, 서울은 영원할 것이다!
서울의 아름다움
高 1-1 盛 賢 實
우리가 사는 이 서울에는 온갖 풍경들이 눈앞에 펼쳐져 있다. 시장에 나와 옷을 파는 아줌마부터, 값을 조금만이라도 더
깎아달라고 실갱이 하는 손님과 가겟집주인, 아빠 엄마 손잡고 나들이 나온 어린이들하며, 길거리를 방황하는 청소년까지......
여기 한국은 '살기 좋은 나라'라고 많이 불리고 있다. 사계절이 모두 있고, 지진과 태풍도 적은, 한 마디로 살기 좋은 나라이다. 그 중에서도 수도 서울은 1200만 명이 모여 사는 한국인구의 사 분의 일이 사는 큰 도시이다. 이러한 서울의 아름다움을 말하라 하면 나의 대답은 바로 '정'이다.
그러나 서울은 일부 자기만 생각하는 사람 때문에 많은 욕을 듣기도 한다. 부모를 죽이는 자식들, 초등학생을 범하는 파렴치한 어른들, 마약을 하는 연예인 등등...... 모두 이 서울을 더럽히는 일들이다.
하지만 그 어두운 곳에서도 빛을 밝혀주는 사람도 분명히 있다. 텔레비젼을 보면 집 없고 불쌍한 아이들을 데려다가 키우는 정 많은 부부가 소개되기도 한다. 아무리 그 부부의 형편이 어려워도 언제나 웃는 얼굴을 잃지 않기에, 늘 행복이 따라 다니는 것 같다. 그런가 하면 남편은 전신마비로 거동을 할 수 없고, 시어머니는 연로하셔서 집에서 누워 계시는 한 집안에, 매일 남편을 업고 차에 실어 일을 하는 한 여자 분도 있다. 이런 악조건 속에서도 불평 한 번 안 하고 사시는 것을 보면 서울 사람들은 참 따뜻하다고 느낀다. 외국인들이 서울에 다녀가면 이구동성으로 서울 사람들은 친절하다, 인정 많다고 말한다. 그런 것을 보면 내가 지금 이 서울에서 사는 게 너무도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정이 많은 서울, 물론 사람들의 정말고도 서울을 얘기할 수 있는 것은 많다. 남산 타워에서 보는 붉게 물든 저녁 노을이나, 63빌딩에서 내려다보는 한강이며...... 그러나 그 무엇보다도 우리를 푸근하게 해주는 이 정이야말로 다른 것에 앞서는 바로 서울의 큰 자랑거리요, 서울을 대표하는 아름다움이 아닐까싶다! 어쨌든 서울의 아름다움이 오래오래 간직되었으면 한다.
<우스개 소리 - 웃으며 살아요>
학년 알아보기
인터넷 자료
1.운동장 조회 때
중1 : 군인 못지 않은 열중 쉬어 자세로 교장을 쳐다본다.
중2 : 친구들과 즐겁게 이야기하며 가끔 교장말도 들어준다.
중3 :“아∼쒸! 드럽게 덥네!” 하며 땅바닥을 질질 끌며 교
장을 째려본다.
2.점심시간
중1 : 친구들과 이야기하며 맛있게 먹는다.
중2 :“야∼,오늘은 나가서 먹자∼.” 등 돌출행동도 한다.
중3 : 젓가락만을 들고 교실을 휘젓는다.
3.성적표가 나오면…
중1 : 엄마에게 혼날 생각하면 두려워 몸서리를 친다.
중2 : 어떻게 해야 장롱 속의 도장을 몰래 뺄 수 있을지 고민 한다.
중3 : 찢어버린다.-_-
4.아침 자습시간
중1 : 조용히 독서, 공부를 한다.
중2 : 밀린 숙제를 하거나 수다로 재미있는 시간을 보낸다.
중3 : 잔다.-_- ZZZ.
5.복장
중1 : 윗단추까지 꼭∼ 잠그고 반듯하게 입으려 애쓴다.
중2 : 넥타이가 약간은 느슨해지고 바지도 내려 입는다.
중3 : 넥타이는 온데간데없고 바지는 엉덩이에 걸쳐져 있다.
6.쉬는 시간
중1 : 다음 교과를 예습한다.
중2 : 복도에서 친구 때리고 튀는 유치한 놀이를 한다.
중3 : 운동장서 축구를 재밌게 하고 한 30분 후에 들어온다.
7.수학여행
중1 : 문화유적 사진 찍기에 바쁘다.
중2 : 카드놀이로 밤을 지샌다.
중3 : 술 먹고 뻗은 지 오래다.
8.교무실에서 담임선생님이 부를 때
중1 :“헉! 난 잘못한 게 없는데??"하고 두려움에 떤다.
중2 :“에이…,유리 하나 깬 게 뭐 그리 잘못이라고….”
중3 :“아∼쒸! 이번엔 또 모야!"하며 그냥 천천히 간다.
9.시험기간
중1 : 내신에 열중하며 밤을 새워 공부해 피곤해 보인다.
중2 : 가끔 가다 선생님의 협박에 못이겨 공부할 때도 있다.
중3 : 시험 끝나는 날에는 일찍 간다는 생각에 마냥 흐뭇하다
<기획>
논산여상 방문기
高 1-1 郭 明 季
시험이 끝나면 갑자기 부담이 없어져서, 항상 며칠 동안 할 일을 못 찾아, 멍하게만 지냈다. 하지만 이번은 달리, 오직 시험이 끝나기를 손꼽아 기다리고 있었다. 이번 가을에 자매학교인 논산여상을 방문하기 때문이었다.
마치 소풍가는 아이들처럼 설레고, 기대가 컸다. 선생님들께서도 우리들이 편히 갔다 올 수 있도록 많은 신경을 쓰셨다. 출발하는 날 아침, 좋은 경험을 많이 쌓고 오라는 부모님의 응원을 얻어, 나는 기쁜 마음으로 논산행 기차를 탔다.
산을 넘고 강을 건너 빌딩 숲이 넓은 평지로 바꾸면서 아직도 단풍잎으로 성장한 나뭇가지들이 자태를 뽐내고 있는 대자연의 조화를 감상하면서 논산역에 도착했다.
기차에서 내리는 순간 공기가 너무 맑아, 내 머리와 몸까지 맑아지는 것 같았다. 심호흡을 하면 맑은 공기가 온몸에 퍼진다. 아! 이게 바로 논산의 공기! 서울과는 달리 논산은 대도시가 아니었다. 하지만 그곳을 점점 좋아하게 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논산여상에선 기대 이상으로 우릴 너무 반겨주었다. 우리는 환영을 받으면서 방문단 활동에 들어갔다. 모두들 첫 만남이라 무슨 말을 해야될지 모르고 많이 어색했다. 하지만 인사를 해가면서 말을 트기 시작하고, 파트너의 도움으로 학교참관을 하다보니 어느새 우리는 가까워졌다.
환영회는 너무나도 멋졌다. 써클들의 화려한 발표는 무대를 가득 차게 하였다.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보기가 좋았다. 항상 웃으면서 우리를 따뜻하게 반겨주시는 선생님과 학우들, 그림처럼 아름다운 학교 교정, 이러한 것들이 나로 하여금 점점 잘
왔다 하는 생각이 들게 하였다.
학교측에선 우리에게 빡빡한 스케줄을 짜주셨고, 우리는 시간이 가는 줄도 모르고 즐거웠다. 대둔산, 엑스포에서 단체 활동이 있었고, 나는 그 날 선생님들이 우리들을 얼마나 신경 써 주셨는지 알게 되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선생님들은 우리에게 너무나도 자상하게 대해주셨고 모든 일정을 우리들과 함께 하셨던 것이다.
저녁에는 홈스테이를 했다. 파트너의 부모님께서 너무 잘 해 주셔서 너무나도 편한 느낌이었다. 가족들은 내가 있어 불편을 느끼셨겠지만, 전혀 내색을 안 하시고 오히려 반겨주시기만 했다. 색다른 생활방식을 배우면서 적응해 가는 과정이 나에게는 너무나도 좋은 경험이었다.
2박3일은 금방 지나가고, 아쉽게도 다음에 또 만나기를 약속하며 정들었던 친구들과 작별 인사를 해야했다... 우리에게 따뜻하게 대해주셨던 논산여상의 선생님, 학우, 파트너의 가족, 그리고 나의 착한 파트너 '하나', 나에게 좋은 경험을 할 기회를 주시고 소중한 추억을 간직할 수 있도록 도와주신 모든 분들에게 감사한다.
활동기간에 집에 가고 싶단 생각도 있었지만, 막상 그곳을 떠나려고 하니 무척 아쉬웠다. 학교를 대표하는 방문단원, 방문하기 위한 준비활동, 자매학교에서의 활동, 파트너와의 만남, 우리들에게 소중한 추억을 만들어 주기 위해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최선을 다했다는 것을 느꼈다. 우리를 위한 그 분들의 마음과 노력이 헛되지 않게, 더 많은 학생들이 졸업을 하기 전에 한 번이라도 교류활동에 참여하여 값진 추억을 간직할 수 있도록 교류를 확대했으면 좋겠다.
아쉬움을 뒤로 남긴 채, 서울로 가는 기차는 나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였다.
논산여상 방문기
高 1-1 盛 賢 實
중간고사가 끝났다. 홀가분한 마음으로 논산여상 방문을 준비할 수가 있었다. 그러나 처음으로 방문활동에 참가하게 되어 마음은 흥분과 긴장이 함께 했다.
논산역에 도착하니 논산여상 선생님과 학생회장이 우리를 반겨주었다. 학교 정문 양쪽에는 꽃과 나무들이 잘 조화를 이루고 있어서 보기에 정말 아름다웠다. 정문에 들어서자 밴드부의 환영연주와 함께 선생님들께서 우릴 맞아 주셨다.
파트너와 대면식을 마치고 대강당으로 가서 환영학예발표회를 보았다. 정말 멋있었다. 모두 열심히 하는 것이 보기 좋았다. 점심을 먹고 파트너와 함께 자유활동시간을 가졌다. 이리저리 교정을 돌아다니면서 느낀 점이 많았다. 온갖 나무와 꽃들이 조화를 이룬 학교가 너무 아름다웠다.
내 파트너는 방송반원이었다. 나는 방송실을 구경하면서 우리 학교에 없는 첨단 방송시설을 보고 정말 부러웠다. 우린 방송실에서 담소를 나누면서 금방 친해졌다. 파트너가 이것저것 설명해 주고 잘 챙겨 주었다. 그의 세심한 배려에 너무 고마웠고, 다음에 오면 꼭 잘 해줄 것을 내심으로 다짐했다.
저녁에 우린 학부모님들과 대면식을 가졌다. 파트너가 토요일에 방송발표회가 있어 오늘 리허설을 하러 간다기에 나도 청소년 문화회관에 따라 갔다. 나는 거기선 학교 공부가 아닌 다른 세계를 볼 수 있었다.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는 그 아이들의 모습이 너무 멋있었다.
리허설이 끝나고 집으로 갔다. 부모님들께서 친절하게 잘 대해 주셨기에 우리집처럼 편한 마음이 들었다.
다음날 아침, 우린 대둔산과 대전 엑스포 개최지에 간다기에 많은 기대를 하였다. 관광버스를 타고 대둔산에 도착하고 케이
블카를 타고 구름다리 있는 쪽으로 갔다. 올라가며 주위를 살펴보니 경치가 너무 아름다웠다. 각양각색의 자태를 뽐내면서 단풍잎으로 치장한 나무들이 예뻤다. 우린 구름다리까지 가기 위해 긴 계단을 올라가야 했다. 팍팍한 허벅다리를 두들기면서 올라갔다. 힘들었던 만큼 구름다리를 지나갈 땐 한층 더 기분이 좋았다.
다음 코스로 대전 엑스포에 도착했다. 우린 놀이기구를 타고 싶어서 꿈돌이 동산으로 갔다. 하지만 난 놀이기구를 타지 못하기 때문에 구경만 해야 했다. 내 파트너와 같이 못 탄 게 아쉽고 미안할 뿐이었다.
마지막 날, 우린 시내에 놀러나갔다. 사진도 찍고, 언니가 선물도 사주었다. 남은 시간이 아쉬워 이리저리 돌아다녔다. 그러나 헤어지는 시간이 점점 다가오자, 우린 갑자기 어색해져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생각이 나지도 않았다. 그저 헤어지기 싫을 뿐...
역전에 모인 단원들은 해어짐이 아쉬웠던지 하나둘씩 울기 시작했다. 나는 울지 않으려고 꾹 참았다. 왠지 울기 시작하면 울음보가 터져 끊이지 않을까 봐 꾹 참았다. 그러나 마음속으로는 누구 못지 않게 아쉽고 가슴 아팠다.
내 파트너 부모님이 이것저것 많이 싸주셨다. 조금이라도 더 주시고 싶어서 노력하시는 마음은 꼭 우리 어머니와 같았다. 그땐 정신이 없어 인사를 제대로 드리지 못했다. 나중에 찾아 뵙고 고맙다는 인사를 드려야겠다.
나는 지금 빨리 다음 학기가 되었으면 하고 하루에도 몇 번씩 생각한다. 맺어진 인연을 소중히 간직하고 발전시켰으면 한다. 아예 이번 겨울방학 때 다시 한 번 만나기로 계획을 짤까? 오늘도 짧았던 만남을 생각하며 또 하루를 보낸다.
논산여상 방문기
高 1-2 陳 芳 雯
우리가 고대하고 기대했던 논산여상을 방문하는 날이다. 전날 선생님께서 여러 가지 주의사항과 함께 내일 집합시간을 알려 주셨다. 이제는 정말 가는가 하고 생각을 하니 아침에 일찍 일어나 설레는 마음으로 옷매무새부터 시작하여 이것저것 특별히 신경을 써야했다. 나는 부푼 마음을 안고 서울역에 갔다. 친구들과 같이 기차를 기다리는 동안 친구들과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며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기차를 타고서도 우리의 궁금증은 더해만 갔다. 이것저것 생각하다가 잠이 들었다.
논산역이다. 드디어 우리가 기대했던 우리의 목적지--논산에 도착한 것이다. 논산여상의 악대가 연주하면서 우리를 반갑게 맞아주었다. 기분이 아주 좋았다. 우리 무용단원들은 오늘 환영식장에서 발표를 잘하는 것으로 보답을 하자고 결심을 하며 이것저것 신경을 쓰면서 분장을 하였다. 그러나 우리가 분장하는데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려서 논산여상에서 준비한 환영 공연을 놓치고 말았다. 친구들이 굉장히 재밌다고 해서 매우 아쉬웠다. 환영회가 끝나고 우린 파트너와 함께 식당에 밥 먹으러 갔다. 식당 밥은 정말 맛있었다. 밥을 먹으면서 우리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식사 후 파트너가 학교구경을 시켜주었다. 우람한 건물, 아름답게 꾸민 정원, 정서적으로 상당히 안정되었다. 새삼스럽게 우리 학교의 환경이 생각난다. 우리도 잘 가꾸었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오후의 '한국 전통 악기 체험' 시간에 나는 꽹과리를 택했다. 선생님께서 가르쳐 주신대로 열심히 했다. 너무 재밌었다. 다목적 컴퓨터실에서는 논산여상 홍보비디오를 보았다. 우리는 친구들에게 이메일을 보내면서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환영 만찬시간이 되었다. 우리가 도착한 음식점에 파트너들
의 어머님들도 참석하셨다. 자기소개 등 친교 시간을 가졌다. 파트너 집에 도착하고 좀 놀다가 피곤해서인지 일찍 잤다.
이튿날 아침, 학교에서 모여 관광버스를 타고 대둔산에 갔다. 케이블카를 타고 산에 올랐다. 가을의 향연이 아직도 벌어지고 있었다. 구름다리 부근의 경치가 정말 아름다웠다. 자연을 감상하면서 친구들하고 사진 찍기에 바빴다. 원래 정상까지 가려고 했으나 힘들어 올라가지 않고 바로 내려가기로 했다.
산에서 내려온 뒤, 우리는 대전엑스포 개최지에 견학을 가기로 했다. 이것저것 구경하다가 우리는 놀이기구에 눈이 쏠려 이것저것 닥치는 대로 타고, 또 타고 싫증이 날 때까지 탔다. 너무 많이 탄 탓에 그 다음 날 몸이 너무 아프고 쑤셨다. 이곳저곳 멍도 들고, 조금만 탈걸 너무 욕심부린 것을 후회하였다. 그러나 파트너와 함께 즐거웠던 시간을 생각해보니 '아니야, 좋은 추억을 만들었는데, 뭘 이까짓 신체적인 아픔이야...'하면서 다시 기분이 좋아졌다.
마지막 날은 자유시간이었다. 우리는 시내로 갔다, 거기서 밥도 먹고 사진도 찍고 파트너가 선물도 사줬다, 너무 늦게 일어난 탓에 놀 시간이 별로 없어서, 정말 아쉬웠지만, 다음의 만남을 생각하고 논산역으로 갔다.
역으로 향하는 발길은 무거웠다. 정들자 이별이라더니, 활동시간이 짧은 것이 너무 아쉬웠다. 논산역에 도착하고 보니, 몇몇 친구가 해어짐을 아쉬워하면서 울고 있었다. 나도 눈물이 나려고 했지만, 꾹 참았다. 파트너랑 다음의 만남을 기약하면서 기차에 올라탔다.
집으로 가는 차 속에서 방문활동을 돌이켜보니, 비록 파트너랑 같이 지낸 시간이 짧았지만 정이 들어서 인지 헤어짐이 아쉬웠다. 추억들이 영화의 한 장면과 같이 순간순간 내 머리 속을 스쳐지나갔다. 불가에서는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는데, 맺어진 인연을 소중히 해야겠다고 다짐하면서 집으로 향했다.
논산여상 방문기
高 1-3 劉 祥 媛
11월 14일, 유난히 잠이 많아 학교에 갈 때면 지각하곤 했는데, 우리 학교와 자매결연을 맺은 "논산여상"을 방문하는 날이기에 아침 일찍부터 일어나 나갈 준비를 하였다.
들뜬 마음으로 서울역에 모여 간단한 점호를 마치고 바로 기차에 올라탔다. 기차에 타자마자 배고팠던 탓인지 선생님께서 나눠주신 도시락을 게눈 감추듯이 먹어치워 버렸다. 정말 맛있게 먹었다. 얼마나 갔을까? 창 밖은 크고 높은 빌딩대신 넓은 논밭이 펼쳐져 있었다. 가을의 향연이 펼쳐진 대자연을 감상하는 사이에 논산역에 도착했다.
논산여상 선생님들과 학생들이 역 앞에서 우리 방문단을 따뜻하게 환영해 주었다. 계절의 변화여서인지, 들뜬 마음 때문인지 지난 5월 목련제에 참가하면서 보았던 학교건물의 모습은 또 다른 느낌을 안겨다 주었다.
떠들썩한 와중에 나의 파트너 미선이와 첫 만남을 가지게 되었다. 새로운 친구와 사귀게 되어 기뻤다. 미선이는 가야금부에서 활동하고 있었는데, 덕분에 늘 TV에서만 보았던 '가야금'을 만져 보게 될 수 있었다. 신기하고 재미있었다.
피곤했었던 하루가 저물어 가고 있을 무렵, 학부모님들과 대면식을 마치고, 드디어 홈스테이의 첫째 날이 시작되었다. 집으로 향하는 길목에서 무심코 하늘을 보았는데 서울에서는 한 두 개도 찾아보기 힘들었던 예쁜 별들이 김에 소금이 묻어 있기라도 한 듯 촘촘히 박혀 있었다. 같은 나라 하늘인데도 이렇게 다를 수가 있다니... 서울의 오염이 얼마나 심한지를 직접 눈으로 확인하게 되었다. 앞으론 내 주위의 환경을 조금 더 아끼고 보호해야지......
미선이네 아버지 어머니께서는 다정다감하신 분들이시라 친
절하게 대해주셔서 아무 불편 없이 지낼 수 있었다. 감사하는 마음을 금할 수가 없어서 다음에 미선이가 서울에 올 때 더 잘 대해 주자는 마음을 다짐 또 다짐하였다.
방문 활동 중, 가장 기억에 남았던 것은 놀이동산에 갔던 일이라고 생각이 된다. 선생님은 한사코 과학공원에 가길 원하셨지만 우린 아직 철이 덜 들어서인지 과학공원보다는 놀이공원에 더 마음이 갔다. 신나는 바이킹, 롤러코스터 등... 정말 많이 탔다! 탔던 것 또 타고 또 타도 어쩜 그렇게 재미있는지... 너무 신나게 놀았던 탓일까? 나는 다음날 온몸이 쑤시는 듯 했다. 선생님들은 괜찮으셨을까?
저녁에는 미선이와 함께 완영이네 파트너에 집에서 자기로 하였다. 그 날 맘씨 좋으신 아주머니 덕분에 삼겹살에 포식하고, 난생 처음 송편을 만들어 보기도 하였다. 어른들 말씀에 송편을 예쁘게 만들면 예쁜 딸을 낳는다던데 아마 나는 아주 못생긴 딸을 낳으려나보다. 나중에 우리가 만든 송편을 쪄서 먹기도 하였는데, 모두들 내가 만든 송편만 요리조리 피해서 골라먹다니... 보기 좋은 떡이 맛도 좋다고, 아무래도 내가 만든 송편에는 손이 가질 않는 모양이다.
마지막날, 우린 우리끼리 요리를 만들어 먹고 아주머니네 가게에 가서 한국식 잡채로 포식도 하였다. 이것저것 먹고 보고 만지는 사이에 시나브로 오후4시가 다 되었다. 논산역에서 집합할 시간이다. 부랴부랴 짐을 정리하고 역으로 갔다. 조금만 있으면 우리는 기차를 타고 서울로 가야한다. 이별의 시간이 다가오자, 갑자기 하나둘 눈물을 터뜨리며 작별을 아쉬워했다. 나 또한 미선이와 헤어지는 것이 너무 아쉬웠고, 앞으로 1년 뒤 다시 만날 날을 약속하며 기차에 올라탔다.
미선아! 잘 지내고 있니? 보고싶구나! 홈스테이 기간에 좋은 추억을 만들어 주어서 고맙다. 나중에 놀러오면 더 재미있고 아름다운 추억을 같이 만들자. 사랑한다 친구야!!
<쉬어 가는 페이지>
민희와 아빠
인터넷 자료
"민희야, 밥 먹어야지~!"
오늘도 아빠의 잔소리는 시작이다. 꼭 엄마 없는 티를 저렇게 내고 싶을까? 정말 창피해서 같이 못 살겠다... 라는 생각을 항상 해왔다. 집에 오면, 항상 앞치마를 매고 있는 아빠 모습이 정말 지긋지긋하기도 하고...
우리 엄마는 내가 3살 때 돌아가셨다고 한다. 얼굴하나 기억 못 한다. 난 그리고 쭉 아빠와 살아왔다.
난 아빠가 싫다. 언제나 잔소리만 하고, 눈 한 쪽 시력을 잃은 장애인이라고 생각해왔던 그런 아빠가 너무 지긋지긋하다. 여건만 된다면 나 혼자 살고 싶다. 우리 집은 무척이나 가난하기 때문에, 난 그 가난을 만든 아빠... 그래서 아빠가 더 싫은가 보다. 방도 하나라서, 내가 방을 쓰고 아빠는 거실에서 주무시고, 생활하신다. 20평도 안 되는 우리 집... 난 너무 창피하다. 아빠도 너무 창피하다.
어느 날부턴가, 아빠께서 자꾸 속이 쓰리신다고 하신다. 난 그럴 때는, 그냥 모른 채 해왔다...
3년 뒤...
그날도, 어김없이 아빠와 아침부터 티격태격하였다. 아니, 나 혼자 일방적으로 화내고, 아빠께 함부로 대했다. 그래놓고, 나 혼자 화내면서 밖으로 뛰쳐나왔다.
그런데, 그 날.. 학교에 전화가 왔다. 아빠가 병원에 계신다고... 난 병원으로 갔다. 놀라서 뛰어가는 것도 아닌, 그냥 보통 걸음으로 천천히... 느릿느릿... 그렇게 병원으로 향했다. 귀찮게만 느껴졌다. 아빠가 병원 다니시는 건 많이 봐온 일이니까. 항상, 몸살에 감기에... 맨날 병원신세만 지셨다. 한, 3-4년이란 시간들을...
난 간호사에게 아빠이름을 대고, 입원실을 물어보는 순간, 간호사의 말에 너무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돌아가셨다니... 그리고 뒤를 이으며 말씀하셨다.
"민희가 누구예요? 자꾸 민희 이름만 부르시면서, 그러시더라고요... 참 안타까웠죠."
"민희요? 저예요, 저~! 바로 저라고요!!!! 저요!!하고, 아빠한테 말씀 좀 해주세요"
난 너무 흥분해서 소리를 질렀다. 어느새 내 얼굴은 눈물로 엉망이 되 있었다. 하지만 소용없는 일이었다.
난 집으로 돌아왔다... 그날, 밤을 새면서 아빠 유품 정리에 바빴다. 거실... 아빠 옷 사이에 끼어 있는 작은 노트... 3년 정도 전부터 쓰여진 걸로 보였다. 그렇게 해서, 공책 8권..
"민희야, 오늘병원에 갔었거든?
그런데 암이란다. 암... 괜찮겠지? 민희야... 아빠 괜찮겠지?
아빠 낫고 싶어.. 아빤 너와 함께 이렇게 한 집에서 살고 싶어 민희랑..."
"민희야, 오늘 병원에 갔었거든?
그런데 빨리 수술을 해야한데...
수술비도 어마어마하다고 한다...
민희는 고등학교 사립으로 가는 게 소원이지?
공부도 잘 하니까, 우리 민희는...
하지만 아빠가 수술하면 그 꿈도 무너지겠지.
우리 민희의 소중한 꿈이...
아빤, 그냥... 수술하지 않기로 했어.
조금의 아픔은 있겠지..
하지만.. 아빤 민희 곁을 떠나지 않아..."
"민희야, 아빤, 널 정말 사랑했어...
아빠 통증이 너무 심해져가고 있는 것 같아...
너무 아파, 민희야.
하지만 우리 민희를 보며 견뎌내야지.
아빠가 세상에서 제일 사랑하는.....
우리 딸 민희를 위해서 말이야.
민희야 넌 아프지 말아라...
그리고 그 동안 이 못난 아빠...
그것도 아빠라고 생각해 주면서 잘 따라줘서 고맙고,
미안해, 아빠가..."
"민희야, 아빤 이제 남은 시간이 별로 없는 것 같아.
민희 아침밥 항상 안 챙겨 먹지?
아빠 없어도 아침밥은 먹어야해.
그래야 하루가 든든하지. 그리고 도시락...
민희가 조금만 일찍 일어나자!
그래서 꼭 싸 가지고 가라. 응?
또, 밤엔 집 문 걸어 잠그고 자구
너 혼자 이 넓기만한 세상에 두고 가야해.
아빠... 너무 미안해...
민희야, 못난 아빠를 용서해 달라는 말은 하지 않을 게.
그냥... 행복해라, 민희야.."
"아빠, 청바지 주머니 뒤져보면 봉투가 있을 거야.
거기에 너 고등학교 3년 동안 다닐 수 있는 진학서 끊어놨고
또 대학교도 이 돈들로 충분히 네가 원하는 대학을
갈 수 있었으면 좋겠어...
얼마 되진 않지만...
아빠가 그래도 하느라고 해서 모은 거니까
그냥 받아줬으면 좋겠다....
아빤 민희 지켜 볼 거야... 사랑한다, 민희야!"
나만 위해주고, 나만 지켜보고... 그러시던 아빠인데... 내가 너무너무 못되게 굴어도, 너무너무 밉게 굴어도 다 받아주시고, 웃기만 하시던 그런 아빠인데...
이젠, 어떻게... 난 이제 어떻게 해. 아빠가 숨쉬지 않는 이 세상... 나에게도 의미가 없어.
"아빠, 그곳에서 지금 행복하시죠?
그곳에서는 병원 다니세요...
그곳에서는 아프지 마세요...
그곳에서는 나 같은 딸, 짐승보다 못한 나 같은 딸,
잊어버리세요... 그리고 편히, 행복하게 쉬세요...
사랑해요..
아니 이 말도 아빠에겐 너무 부족한 말이죠...
나 웃으면서 살 거예요.
나도 행복할 거예요... 근데..
아빠... 나 자꾸 눈물이 흘러요...
나도 자꾸 아파와요...
난 너무 무섭고 두렵기까지 하는데... 어떻게 해야해요?
전처럼..
웃으면서 그렇게 내 옆에서 있어줄 수는 없는 거예요?
정말 그런 거예요? 나 웃을 수가 없단 말이야...
나 갈 때까지, 기다려요 아빠...
내가 가면, 더 좋은 딸 될 게요...
착한 딸 될 게요...
내가 세상에서 젤로 좋아하고 사랑했던 우리 아빠...
꼭 기다리세요, 아빠...."
<잠깐! 우리들의 생각은요......>
교복 자율화에 대하여
中 2-2 孔 世 美
한국어시간에 조별로 교복자율화란 주제로 토론을 했습니다.
그런데, 거의 만장일치이다시피, 교복에 대하여 찬성의 의견이 나왔답니다.
교복 찬성의 이유는 대강,
1. 외면적 이유 - 학교예절, 동질감, 단정한 모습
2. 경제적 이유 - 부모님의 사복에 대한 부담 절감, 유명 브랜 드에 대한 부담 절감, 가정형편의 차이 극복
3.학생으로서의 자부심- 학교 구별, 학교의 상징
4.청소년 범죄의 예방
5.기숙사 학생들의 빨래에 대한 부담 감소
등이었습니다.
등교를 위해 교복을 챙겨 입고 학교로 향하는 우리들의 모습을 보면 처음 교복을 입었던 중1 때가 생각납니다. 처음 교복을 입으며 중학생이 된 것을 실감할 수 있었던 그 때.
교복이 학생들의 개성과 창의성을 말살하고, 모든 학생을 획일화시킨다는 비판의 의견도 있지만, 저희 반 친구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우리 반 친구들, 우리 학년, 우리 학교, 우리 선생님...... 우리라는 생각은 처음 외적인 것에서부터 시작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들이 한성화교중학의 교복을 입고, 이 학교에 등교하기 시작한 날부터, 우리는 이미 우리라는 동질감을 느낄 수 있었던 거죠.
여러분! 지금 입고 있는 자랑스런 학교의 교복을 한 번 쓰다듬어 봅시다. 일 학년 후배들의 넉넉한 교복바지와 키가 훌쩍 커 버린 삼 학년 선배들의 잘록한 바지가 왠지 정감 있게 느껴지지 않습니까?
교복사랑, 학교 사랑, 넘쳐나는 우리 사랑!
테러 희생자들을 위해
中 2-2 于 惠 文
2001년 9월11일 미국 뉴욕에서 일어난 대 참사를 보고 정말 충격이었습니다. 이번 테러 사건으로 죄 없이 희생당한 사람들을 보면서 정말 마음이 아팠습니다. 정치적인 이유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지만, 승객이 타고 있던 비행기를 이용해 테러를 하다니......
18분이라는 비극의 순간, 만일 우리 가족 중 누군가가 그 건물 안이나, 그 비행기 안에 있었다면..... 생각만으로도 정말 끔찍합니다.
세상에 왜 이런 일이 생겨서 우리들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지...... 우리 모두 더 이상의 테러가 지구상에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번에 희생된 많은 이들에게 깊은 조의를 보냅시다.
하수구
中 2-1 王 聖 元
저는 예전에 하수구를 보고 '이것이 무엇인가'하고 굉장히 궁금하여 많은 생각을 하였습니다.
동그란 뚜껑을 열면 길고 긴 통로가 있고, 너무 깜깜해서 무엇이 있는지도 보이지 않는 굉장히 신비로운 공간으로 생각되었습니다. 가끔 돌을 던져보면 '풍덩'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으로 보아 하수구 안에는 물이 있구나하고 깨달았지요.
그러던 어느 날 본의 아니게 전 하수구에 들어가 보았습니다. 할아버지 집 마당에서 놀다가 발을 헛디뎌 그만 그 안을
탐험하게 되었지요. 그 안은 생각보다 좀 더러운 물이 많이 있었고, 좁고 어두웠습니다. 느낌은 꼭 동굴 안에 갇혀버린 것과 같았습니다. 주위에 벌레들도 많더군요.
지금은 거리를 가면서 하수구 뚜껑을 보면 절대 다시 들어가고 싶다는 생각은 안 듭니다.
오빠가 졸업여행에 가 있는 동안
中 2-1 秏 美 娜
오빠는 고2여서 졸업여행을 갔다. 처음엔 오빠가 가지 않는다고 했다.
난 오빠를 협박시켜서 졸업여행을 보냈다.
오빠가 졸업여행을 가 있는 동안 나에게 평화가 찾아왔다.
오빠가 집에 없으니까 좀 허전하기는 했다. 나에게 잔소리하는 사람이 없어서.
하지만 오빠가 집에 없어서 모든 걸 내 마음대로 할 수가 있었다.
이대로 오빠가 안 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봤다.
하지만 그래도 내게 하나밖에 없는 오빠가 없으면 좀 외로울 것 같았다.
그래서 단 며칠씩만 집에 없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
건강
中 3-1 劉 靑 雲
중학교 생활을 시작한 지 어언 삼 년이 다 되어가려 합니다. 이 긴 기간 동안 저의 고민은 수도 없이 많았습니다. 물론 이들 중 해결책을 찾은 것도 많습니다. 하지만 최근까지 단 한 가지만은 그 해결책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아니, 해결책을 찾기는 찾은 것 같은데 그걸 행동으로 옮기기가 어렵습니다. 그것은 공부도 아니고, 자유도 아닙니다. 바로 "건강"이라고요!
"건강"이 고민이라...... 어떻게 들으면 우스운 얘기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저에게만은 아주 심각한 고민거리이지요. 처음에는 그냥 간단하게만 생각했었는데, 지금은 아주 심각해졌습니다. 예전부터 조금이나마 신중하게 생각하고 보살폈더라면 이렇게까지 고민은 되지 않았을 텐데, 때로는 무척 후회합니다. 하지만 시간은 이미 흘렀고, 다시 되돌아 갈 수도 없잖아요! 그래서 전 여러 번 다짐했습니다. 하루라도 빨리 이 고민에서 탈출하자고......
굳게 다짐한 결과, 지금은 제 건강을 되찾았습니다. 물론 다 찾았다고 하기에는 좀 부족하지만, 그래도 몇 주전보다는 많이 나아졌습니다. 살도 약간 찌고, 취침 시간도 많이 늘었습니다. 하루에 열 시간은 족히 자니까요! 그래도 항상 잠이 모자랍니다. 이러다 잠보가 되는 것은 아닌지......
하지만 전 지금 기분이 굉장히 좋습니다. 그리고 하루라도 빨리 제 예전의 건강하고 씩씩했던 모습으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지금 노력 중이에요!!!
핸드폰 문자
中 3-3 無 名 氏
난 밤만 되면 문자를 씁니다. 문자를 안 쓰면 뭘 해야 할지 모르니까요.
핸드폰이 잠시라도 없으면 뭔가 허전합니다. 핸드폰이 없었을 때는 이렇지 않았는데......
문자를 쓰면서 친구들과 형들이랑 더욱 친해진 것 같습니다. 또 문자가 있으니까 편한 것들도 있고요......
그러나 문자비가 나올 때마다 난 긴장이 됩니다. 문자비가 많이 나오면 문자를 다시는 못 쓸 수도 있으니까요. 왜냐면 엄마 아빠가 핸드폰을 끊을 수도 있으니까요......
문자는 쓰면 쓸수록 더욱 재미있어집니다. 꼭 중독된 것처럼......
이제는 문자를 조금이라도 아껴 써야 하겠습니다. 문자를 쓸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참을성이 더욱 없어지는 것 같습니다. 문자는 전자파도 나오니까 될 수 있으면 덜 써야겠습니다.
우리 집 컴퓨터
中 3-3 高 華 鋒
우리 집 컴퓨터는 하루 종일 쉴 틈이 없다. 아침에 일어나면 누나가 먼저 하고 있고, 우리가 학교 가면 엄마가 하고 있고, 엄마가 끝나면 큰누나가 하고, 학교가 끝나면 먼저 집에 도착하는 사람이 컴퓨터를 한다. 이런 식으로 우리 집 컴퓨터는 하루 종일 켜 있어야만 한다.
한 번은 우리 집 컴퓨터가 망가졌을 때가 있었다. 우리 누나가 컴퓨터를 밤새며 하다 모니터가 나간 것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며칠을 컴퓨터 없이 살아야 했다.
컴퓨터가 없는 생활은 정말 심심하다. TV가 있기는 한데 채널이 몇 개 안 된다. 그럼 나는 우리 집 오락기인 '플레이 스테이션'을 한다. 하지만 역시 재미없다.
몇 주 뒤에 우리 컴퓨터가 다시 돌아왔다. 정말 기뻤다. 그렇지만 우린 변함없이 밤을 새며 컴퓨터를 했다. 불쌍한 우리 짐 컴퓨터......
중3, 한 학기를 보내며
中 3-1 牟 傳 芝
어른들이 세월은 잘도 간다고 하더니 정말 너무나 빠르다. 벌써 삼 학년 일 학기가 얼마 남지 않았고, 2001년도 별로 남지 않았다.
새 학기가 시작될 때마다 늘 마음먹고 다짐하고 한다. 많이많이 노력해서, 성적이 올라서 부모님 얼굴에 활짝 핀 함박꽃이 만발하고, 내 얼굴도 스마일이 되길......
내가 노력하면 꼭, 꼭 이리 될 거라 믿고, 노력이란 또 희망이랑 같이 달려가야지, 그러다 보면 성적이 많이많이 올라가겠지......
그리고 담임 선생님, 또 나를 가르치시는 다른 선생님들, 늘 건강하시고 희망찬 새해 맞으시길......
피아노
中 3-1 劉 吉 芸
난 악기 중에 가장 자신 있는 건 피아노다. 초등학교 다닐 때부터 중1까지는 피아노를 배웠는데, 중2부터는 친구들과도 놀고 싶고, 그래서 어쩔 수 없이 피아노를 포기했다. 하지만 지금은 많이 후회하고 있다.
한 번은 대회에도 나가 봤는데, 그 땐 나보다 잘 하는 사감이 많아서 못 붙었다. 아직도 그 생각하면 다시 배울까 하고 생각도 하는데, 그게 내 마음대로 잘 될 수 있으려나?
그래서 이번 방학은 내가 배웠던 집에서 다시 배우려고 하는데, 집에는 피아노가 아직 없어서 잘 배울 수 있을까 걱정이다. 계속 배우면 점점 어려워지고 포기하기도 쉬운데...... 그래도 이번에는 누구보다 더 열심히 해서 피아노도 사고, 뭔가 보여주고 싶다. 그리고 나도 한 번쯤은 아이들한테 피아노도 가르쳐주고 싶다.
내가 얼만큼 피아노를 열심히 배울까가 걱정이다. 그렇지만 만약 나에게 피아노랑 컴퓨터 둘 중에 하나만 배우라고 하면 난 아무래도 피아노를 배울 것 같은 느낌이다.
공부 열심히 했으나 실망했다
中 3-1 王 在 成
요번 학기에 내 자리 앞에 모범생 아이들이랑 좀 더 많이 친해졌다. 친구들은 착하고, 나하곤 말도 잘 안 하던 친구들이 나한테 잘 해준다. 예를 들어 내가 모르는 수학 문제도 아주 자세하게 가르쳐준다.
지난번에 모범생 친구들과 어울려 다니면서 친구들이 공부를 열심히 한다는 것을 느꼈다. 그래서 지난번에는 나도 공부를 열심히 했다.
친구 경세가 나한테 이야기 한 적이 있다.
"요즈음 너 공부 열심히 하네. 사람이 안 하던 짓 하면 죽는다던데 넌 죽지 않겠지?"
하지만 난 열심히 공부했는데도 성적은 안 올랐다. 첫 번째 시험 평균 49점. 이때 정말 실망했다.
두 번째 시험 때는 좀 더 잘 보기 위해 공부 잘하는 친척 서미네 집에서 공부를 했다. 두 번째 시험 둘째 날까지는 아주 만족스러웠다. 하지만 그날 오후부터 배가 많이 아팠다. 토하고 그래서 공부를 못했다. 그래서 시험은 망치고......
요즈음에도 집에서 공부를 조금씩 하는데, 시험을 또 망치면 어떻게 하나 하는 걱정이 생긴다.
나
無 名 氏
나는 내가 너무 싫다. 아무리 생각하고, 또 생각해봐도 단점 투성이인 나. 그런 내가 요즘 점점 더 싫어진다.
나는 의지력이 너무 약한 것 같다. 지금까지 총 지각 횟수만 서른 한 번. 선생님께도 죄송하고, 우리 반 질서 점수, 내 품행 점수에도 영향이 큰데, 아직도 이 나쁜 버릇을 고치지 못하고 있다. 사실 집이 멀어서 운 나쁜 날이면 차 막혀서 지각하는 경우도 있지만, 다 핑계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 집이 멀고 차가 막히는 걸 알면 일찍 일어나면 되는데...... 나도 지각하는 게 좋아서 하는 것도 아니고, 선생님께 너무 죄송스럽다. 우리 선생님께선 날 절대 안 혼내시는데...... 정말 어쩔 때는 차라리 막 혼내시고 때려주셨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지각 안 하려고 자기 전에 몇 번이고 "지가 안 하게 해 주세요"하고 기도하고, 자명종도 세 개씩 준비해놔도 다 무용지물이다. 아침에 지각하면 나한테 너무 화가 나고 내가 너무 밉고, 그렇다고 내가 나를 어떻게 하지도 못하니 엄마한테 괜히 짜증부리고...... 정말로 이런 내가 너무 싫다. 내 잘못을 알고도 고치지 못하는 이런 정신으로 무슨 일을 하겠다는 건지, 내가 봐도 한심할 따름이다.
난 친구들하고 잘 어울리지 못하는 편이다. 항상 둘씩 다니는 애들을 보면 너무 부럽다. 이렇게 된 이유야 당연히 나한테 있겠지만, 지금 깨닫고 고치려 해도 너무 어려운 것 같다. 다들 끼리끼리 어울려 다니는데 그 틈에 끼려니 괜히 소외당할 것 같기도 하고, 분위기 깰까봐 미안하기도 하고......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게 친구가 없다는 것은 아니다. 그냥 심심할 때 부담 없이 전화할 수 있는, 학교에서 매일 만나는데도 전화하면 기본 한 시간 나오는, 그런 단짝 친구...... 친구란 단어를 들으면 언제나 마음이 이상하다.
나에 대한 불만, 이밖에도 정말 셀 수 없이 많다. 정말 고치려고 노력도 했지만, 그냥 노력에 불과한 것도 있고...... 그럴 때면 나한테 화가 나서 괜히 다른 사람 탓하게 되고, 정말 이젠 바뀌고 싶다. "나"를 돌이켜 볼 때 단점밖에 보이는 게 아니라 적어도 한 가지의 장점이 나 올 수 있도록 바뀌고 싶다.
내 생각
中 3-1 衛 懋 輝
나는 요즘 전학 가고 싶은 생각이 든다. 인천은 좋지 않지만 사이좋게 지낼 수 있는 친구가 있는 학교라고 들었다. 전학 가고 싶지만 밴드부에서 배운 게 좀 되니깐 또 망설여지기도 한다.
그렇지만 전학을 가야 공부도 할 수 있을 것 같고, 왜냐면 이 학교에서 공부한다는 게 여러 가지 환경 때문에 공부를 할 수가 없다. 될 수 있으면 휴학도 해 보고 싶고, 내게 맞는 게 공부가 아니라면 빨리 다른 걸, 내게 맞는 걸 찾고 싶다.
하지만 부모님 생각이 달라 내 맘대로 할 수가 없다. 어느 때는 또 전학 가기 싫은 적도 있기도 하지만...... 정말 힘들다. 여느 친구들은 나와 같은 상황에 처해 있어도 시간이 해결해 준다고 믿으며 걱정하지 않는데......
우리형은 여기로 전학을 와서 친구들도 사귀고 비교적 안정적인 생활을 하고 있지만, 나는 아직 안정적인 생활을 찾기 위해 떠도는 떠돌이 수준밖에 되지 않아 내 자신이 한심스럽다.
마음대로
中 3-1 曾 慶 有
이 세상이 내 마음대로 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내가 원하는 대로 세상이 움직이고, 하지만 이 세상은 그리 만만치가 않다.
하긴 자신이 원하는 대로만 하면 세상은 어려워지겠다. 하고 싶은 욕심도 더 많아지겠고, 사람들에게 노력이라는 말이 없어지겠다.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되니깐 당연히 노력을 안 하겠지......
이제부터라도 이런 생각을 접고 노력하면 되는 걸 보여주면 좋겠다고 생각도 해 본다. 노력은 자신이 만드는 거지 암한테 바라는 게 아니니 힘은 들겠지만......
나도 내 마음대로 하고는 싶지만 역시 사회는 마음대로만 될 수는 없는가 보다. 내 경우에는 지금 부모님이 대만으로 가라고 하시는데, 지금 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정말 가서 잘 될 수는 있는지도 걱정이고, 가서 내 마음대로 된다면 정말 좋겠지만, 노력해도 안 되는 게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여자 친구도 가지 말라고 그러는데......
이런 거 보면 참 내 맘대로 안 되는 걸 느낀다. 내 맘대로 돈이라도 생기면 얼마나 좋을까? 아-!
<만화>
<외대> 2001 겨울 49호에서
<할 얘기가 있어요>
점점 남남이 되어가려는 우리들 사이
中 3 無 名 氏
저는 어떤 오빠를 아주 좋아합니다. 그 오빠도 당연히 제 마음을 알고요. 하지만 오빠를 좋아하는 게 듯대로 쉽진 않은 것 같네요.
저는 처음 오빠를 봤을 때 '정말 내 이상형이다, 꼭 내 남자로 만들 거다'하고 그렇게 다짐 또 다짐해 봤는데, 오빠를 내 남자로 만드는 게 정말 어느 무엇보다 많이 어려웠어요. 근데 어느 한 때 오빠한테 전화도 오고 만나면 아는 척도 하는 사이였는데, 지금은 그것들이 한 순간에 물거품이 돼 버렸어요.
한 학기 전쯤인가요? 그때쯤 정말 오빠도 제게 이렇게 말했어요. 조금만 지나면 사귀자고, 아직은 내가 어리니깐 시간이 조금 지나면 사귀자고, 하지만 그런 게 난 오빠의 진심인 줄 알았는데, 모두 거짓인 것 같아요.
저는 가끔씩 이런 생각을 해요. '차라리 생판 모르는 사람이면, 그러면 이런 고통도 없었을 텐데'하는...... 하지만 이게 제 운명인가 봐요. 그리고 저도 오빠를 잊어보려는 시도는 많이 해봤죠. 하지만 그 모든 게 제 맘대로 잘 안 되네요. 주위에서도 나만 보면 제발 잊으라고, 너만 고생한다고, 그런 사람 정말 나쁘다고 얘기해요. 저도 잊고 싶죠. 저도 고생하는 게 고통스러운데...... 그런데 정말 마음이 따라주지 않네요. 오빠는 나를 조금이라도 걱정해주지 않는데, 나만 혼자 애태우고, 지금 이 글을 계속 쓰다보니까 눈물이 나려하네요. 전 혼자 울어본 적도 아주 많아요. 그런데 오빠는 제 마음도 모르고......
이런 오빠를 정말 잊어야 하는데, 꼭 잊어야 하는데 잊질 못 하네요. 이런 절 어떻게 해야 되죠? 마지막으로 오빠한테 한 마디 할 게요. 예전부터 오빠를 좋아했지만...... 지금도 마음 속 오빠를 계속 좋아할 거야! 오빠 정말 사랑해!!!
<기행문>
수학여행
高 2-1 牟 德 芬
그 날도 우리는 여행기에 오르기 전 의례 치러지는 교장선생님의 훈화말씀을 들어야 했다. 빨리 떠나고 싶은 급한 마음 때문이었을까, 평소 교장선생님의 실력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짧았던 그 훈화가 유달리 길고 지루하게 느껴졌다. 드디어 버스에 올라타라는 명령(?)이 내려지고, 우리는 조금이라도 더 좋은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몸부림쳤다.
버스가 출발하기도 전에 먹을 것들이 등장했고, 버스 안은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 모두들 마치 이 순간을 기다려왔다는 듯이 처절하게 먹어댔다. 얼마나 지났을까, 너무 열심히 먹어서 지쳐있을 즈음 우리는 독립기념관에 도착했다. 버스에서 내려 적당한 자라에서 우리는 들고 다니기가 몹시 불편한 학교에서 받은 도시락을 해치워야만 했다. 그 다음으로는 일명 코끼리 열차라 불리는 순환버스를 거금 오백 원을 들여 탔다. 우리 바로 뒤칸 자리에는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한 무리의 아이들이 있었는데, 그 아이들은 몇 번씩이나 기사아저씨의 눈을 피해 다리를 차 밖으로 뻗으려 시도했다. 역시 아이들은 철이 없다. 문득 어른이 되어서 해야하는 고된 일들은 어렸을 적 철없음에 대한 벌이라는 말이 떠올랐다. 그렇게 독립기념관에서 관람을 마치고 나는 벌써 피곤해질 낌새를 보이는 몸을 이끌고 숙소로 향했다. 설마 했던 것이 역시 맞아떨어지는 순간이었다. 눈앞에 우뚝 서 있는 시설 좋게 생긴 호텔을 놔두고 허름한 모텔로 들어갈 수밖에 없는 그 심정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여행이라는 들뜬 마음 때문이었을까, 밥 먹고 씻고 옷 갈아입고 하는 일상적인 것들이 그곳에서만큼은 신선하게 느껴졌다. 그 넓지 않은 방에 열 명이 넘는 사람들이 잔다고 생
각하면 지금도 끔찍하지만, 나는 수학여행만의 특별한 묘미라며 자기 최면을 걸고, 그래도 내일이면 숙소를 옮긴다는 사실을 위안으로 삼으며 잠을 청했다.
둘째 날 우리는 아침부터 분주하게 움직였다. 힘겨운 꽃단장을 끝내고, 가볍게 아침식사를 마친 후 우리는 속리산으로 향했다. 그곳은 그야말로 살아 숨쉬는 대자연이었다. 세월의 흔적이 벤 아름드리 나무와 한껏 물오른 단풍나무가 곳곳에 있었다. 우리는 그곳에서 자기 나름대로 멋진 포즈로 사진 몇 장을 찍고 다시 터덜터덜 숙소로 돌아왔다. 숙소에서의 지루한 시간이 흘러가고 우리는 주섬주섬 짐을 챙기기 시작했다. 숙소 옮기기 대장정이 시작된 것이다. 우리는 만만찮은 무게를 자랑하는 짐 가방을 들고 다시 버스에 올라탔다. 버스 안은 그 전날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였다. 풍성한 멀거리 대신 숨 고르는 소리만이 울려 퍼졌다. 이윽고 도착한 곳은 보문단지. 그곳은 아주 예쁜 호수 경치를 자랑하는 곳이었다. 호수를 배경으로 또 사진 몇 장을 찍고 근처에 밀집해 있는 자전거 대여소 중 한 곳을 골라 자전거를 빌렸다. 자전거의 페달을 힘껏 밟으며 두 볼에 스치는 상쾌한 바람을 만끽했다. 집합 시간이 임박하자 나는 아쉬운 마음을 뒤로한 채 자전거를 반환하고 버스로 향했다. 땅거미가 질 때 즈음 도착한 우리의 두 번째 숙소. 그곳을 본 순간 그전까지의 내 희망은 송두리째 무너졌다. 남녀공용으로 만들어진 화장실과 불편하기 짝이 없는 8인용의 샤워실, 그리고 그 흔해빠진 매점조차 없는 그야말로 최악의 시설이었다. 그나마 그전보다 나은 것이 있다면 다시는 열댓 명이 한 방에서 구르지 않아도 된다는 것, 그것 하나뿐이었다. 저녁 식사를 마치고 잠들기까지의 시간, 만약 친구가 가져온 카드라도 없었다면 우리는 그 텔레비젼조차 없는 방에서 지루해 미쳐버렸을 것이다.
셋째 날, 이날은 전체 여행에 있어 가장 바쁘고 고단한, 하지만 풍성한 하루였다. 아침 일찍 불국사로 향한 우리는 그곳에서 가이드 아저씨의 도움을 받아 이곳저곳을 둘러보았다. 또 다보탑과 석가탑에 얽힌 설화도 들을 수가 있었는데, 그것은 참 감동적이었다. 발길을 돌려 석굴암에 도착한 우리는 힘든 산행 끝에 이마에 엄청나게 큰 다이아몬드가 아닌 큐빅이 박힌 불상을 볼 수 있었다. 구 웅장한 모습을 카메라에 담을 수 없다는 것이 아쉬울 뿐이었다. 또 다시 발길을 돌려 도착한 곳은 포항제철이었다. 그곳은 정말로 엄청나게 넓었다. 차로 이곳저곳을 헤집고 다니며 설명을 들은 우리는 버스에서 내려 강철 덩어리가 어떻게 얇은 철판으로 변하는 지의 과정을 비교적 가까운 거리에서 볼 수 있었다. 그것을 보고 난 후 나는 한동안 진정할 수가 없었다. 다시 한 번 더 자세히 보고 싶다는 마음만이 간절했다. 다시 버스로 달리기를 몇 십 분, 비릿한 바다 내음이 코끝을 간지럽혔다. 경치 좋은 바닷가라서 그런지 그곳에선 참으로 희한한 포즈들이 연출됐고, 여기저기서 셔터 누르는 소리가 요란했다. 다시 숙소로 돌아가는 버스 안에서 모두들 골아 떨어졌고, 간간이 창문에 머리를 박는 소리도 들려왔다.
숙소로 돌아와 저녁 식사를 마치고 우리는 파티 시간이 되기만을 기다렸다. 드디어 두 MC가 무대로 나와 "大家好∼!"를 외치는 순간 파티가 시작되었다. 평소 보지 못했던 친구들의 멋들어진 노래와 선생님의 화끈한 막춤과 중3 애들의 어설프고도 깜찍한 공연이 끝나고 최고의 하이라이트인 미스 여장 남자들이 등장했을 때 파티는 절정에 다다랐다. 곧이어 미스 여장 남자들의 섹시춤이 이어지고 한 바탕 난장판도 수습되어 갈 즈음, 사람들이 하나 둘씩 자리를 뜨기 시작했다. 그리고 내 마지막 고등학교 수학여행의 마지막 밤도 그렇게 저물어
갔다.
수학여행 마지막 날, 우리는 아침부터 헤비급 무게를 자랑하는 짐을 들고 끙끙대며 주차장으로 향했다. 얼마나 달렸을까, 우리가 도착한 곳은 천마총이라는 왕릉 밀집지였다. 올록볼록 솟아있는 왕릉들을 보고 있노라면 자꾸만 낙타의 등이 생각나는 건 왜인지...... 왕릉을 뒤로 학 우리가 간 곳은 박물관이었다. 그곳에서 보았던 것 중 주사위 비슷한 모양을 한 옛날 사람들이 술자리에서 던지면서 놀았다는 장난감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그리고 그곳엔 크고 작은 불상이 아주 많았는데, 건물 밖 잔디에 놓여진 큰 불상들은 대부분 목이 잘린 것들이어서 어떻게 하다가 그렇게 됐을까 하는 궁금증을 불러 일으켰다. 그렇게 마지막 여행지를 뒤로하고 우리는 서울로 향했다.
서울로 돌아오는 버스 안의 우리들은 첫째 날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지친 모습이었다. 물론 몸은 많이 지쳤겠지만 우리의 마음에는 한 아름씩 아름다운 추억들이 담겨있을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리고 여행지 곳곳에서 찍었던 사진들은 우리 추억의 소중한 증거가 되어줄 것이다.
수학여행
高 2-1 劉 玉 景
수학여행가는 첫째 날에 나는 부푼 마음으로 다시 한 번 가방 속을 확인 또 확인했다. 중3 때 수학여행을 못 가서 그런지 다른 애들보다 세 배 아니 열 배는 더 떨리고, 기대됐다. 설레는 맘을 갖고 나는 아침 일찍부터 친구와 학교로 향했다.
드디어 차는 출발하고 차안에서 우리 반 모두는 조촐한 "먹
자 파티"를 열어 함께 즐겼다! 긴 시간을 우린 차에서 심심하게 보내고 나서 먼저 독립기념에 도착했다. 나는 독립기념관에서 여러 종류의 전시실을 구경했다. 그 중에서 내가 가장 마음 아프고, 놀란 전시실이 있었다. 그건 바로「고문전시관」이었다. 옛날 일본군이 한국사람들을 잔인하게 고문한 모습을 재연해서 보여준 그 장면들을 보고 나는 내심 한숨을 쉬었다. 그 이유는 내가 지금 이 시대에 태어나 살고 있다는 사실이 다행스러웠고, 또 너무 행복했다!
그 다음으로 우리는 속리산에 있는 숙소로 향했다. 다 저녁이 되어 우리는 숙소에 도착했다. 나는 숙소에 도착하면 편안한 시간이 될 줄 알았는데... 차에서 내린 순간부터 고생이 시작됐다! 주차장에서 우리 숙소까지의 거리는 예상조차 못했던 거리였다! 우리는 짐 가방을 들고 그 정체 모를 숙소로 향해 돌진하였다! 숙소 문 앞에 도착한 후 우리 모두는 마치 미리 짰다는 듯 함께 고함을 지르며 입을 다물지 못했다! 어떤 아이들은 우리 학교는 역시 우리의 예상을 깨지 않았다는 표정으로 무덤덤하게 있었다! 우리들이 더 괴로웠던 이유는 우리 숙소 앞에는 번듯한 호텔이 떡 하니 우리를 마주 대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첫째 날은 슬픔을 감추고 아쉬움으로 하루 밤을 보냈다!
둘째 날 아침에 숙소의 "기상알림"에 모두 함께 눈을 뜨고, 속리산에 오를 준비를 하였다! 속리산에는 나무가 많아 공기가 참 맑았다. 풍경 또한 더없이 아름다워 사진을 찍을 때 많은 풍경들을 사진 속에 담을 수 있었다!
우린 또 정처 없이 짐들을 챙기고 "동쪽" 너머에 있는 주차장으로 향했다. 차안에서는 예상외로 아이들이 녹초가 되어 달콤한 낮잠을 청하고 있었다! 잠에서 깨보니 어느새 우린 경주에 있는 숙소 근처 공원에 도착해 있었다. 우린 차에서 내려
나는 난생 처음으로 2인용 자전거를 타고 신나게 달렸다. 정말 요즘 말로 "짱"이었다! 그리고는 기대에 찬 마음으로 경주에서 지낼 숙소로 향했다. 그런데 도착 후 우린 눈물을 감출 수 없었다. 공동 샤워실, 공동 화장실, 거기다... 샤워실엔 물도 잘 안 나오고 목욕을 하다 중간에 물이 끊겨 얼어죽는 줄 알았다. 밖에는 얘들이 줄을 서고 기다리는데 물은 안나오고 민망 그 자체였고, 정말 아찔한 순간이었다~
셋째 날, 항상 그랬듯이 우리는 아침 기상소리에 잠에서 깨고 너나 할 것 없이 샤워실로 향했다. 샤워 후 내 맘을 달래주는 식사시간이 다가왔다. 이 시간만은 참 행복했다. 어제 샤워실에서 있었던 그 설움도 군침이 절로 도는 아침 밥상 앞에서는 말끔히 잊혀져 갔다. 오늘의 스케줄은 불국사와 석굴암, 바닷가, 포항제철이었다. 그렇게 우리는 심심하지 않게 석굴암으로 향했고, 정말 기대되는 순간이었다! 그 유명한 석굴암에 대한 기대는 컸지만, 그 날 따라 여기 저기에서 단체로 온 학교가 많아서 자세히 석굴암을 관찰해보지 못해 아쉬웠다.
석굴암을 둘러보고 우리는 바로 포항제철로 향했다! 버스 안에서 포항제철을 구경했고, 차안에서는 안내원 언니가 우리들에게 포항제철에서 하는 일들을 쉽게 설명해 주었다! 또 중간 중간에는 퀴즈를 내 선물도 줬다! 우리는 포항제철 안을 보고는 입을 다물 수 없었다! 모든 게 너무 신기하고 커 보였다. 중간에 우리들은 차에서 내려 철 만드는 공장 안을 견학했다! 공장 안의 열기는 꼭 한여름 같았다. 그리고 우리는 버스로 돌아가 바다로 향했다.
바다에 가서 우리는 단체사진을 찍었다. 바람이 너무 세서 우리들은 모두 스타일이 망가진 채 사진을 찍었다. 바다의 출렁이는 파도는 참 아름다웠다! 그리고는 피곤한 몸을 이끌고 숙소로 돌아왔다.
넷째 날, 오늘이 마지막 수학여행 날이다! 조금은 아쉽다는 맘은 들지만 집으로 돌아간다는 사실에 벌써부터 맘이 편안하다! 오늘은 신라의 왕릉에 갔다! 이곳은 왕과 왕비 또 왕의 여러 후궁들을 모신 무덤이었다! 이어서 우린 경주국립박물관에 갔다. 박물관에 도착하자마자 나는 몇몇 친구들과 함께 화장실을 찾아 헤맸다. 화장실은 참 깨끗했다. 기분이 너무 좋았다~ 가뿐한 마음으로 우린 박물관 근처에서 사진을 찍고 차로 돌아가 점심으로 도시락을 친구들과 사이좋게 먹었다!
차는 출발하고 이제 서울로 향했다. 가는 길에 휴게소에 들러 맛있는 아이스크림을 먹었다~ 서울에 도착 할 때까지 집에 간다는 그 기분에 멍하니 창문만 바라보고 있었다. 어느덧 "서울"이라는 표지판을 보니 꼭 고향으로 돌아오는 기분이었다. 그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나는 바로 부모님께 제일 먼저 전화를 했다. 집 떠나면 고생이라 했던가, 역시 집이 최고다! 하지만 이번 여행을 후회하거나 원망하진 않는다. 내가 커서도 두고두고 내 머리, 마음 속 깊이 항상 기억 될 것 같다!
<기행문>
서대문 형무소 역사관을 다녀와서
高 2-2 邢 黛 麗
10월 6일 토요일 방과후에 우리 역사반 모임은 서대문 형무소 역사관으로 향하였다. 기쁨과 환희는 온 데 간 데 없고 슬픔과 원한만으로 가득 차서 더욱더 음침한 곳 - 서대문형무소 역사관!
불과 몇 십 년 전만 해도 그곳은 진짜 죄인들을 수용하는 형무소였다. 형무소였던 당시 죄인과 간수는 뒤바뀌어 있었다. 정작 남의 땅을 멋대로 빼앗아 버린 일본은 한국인들을 멸시하고, 오히려 한국인들을 그 곳에 가두어버렸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한국인들은 아직도 일본인들을 미워하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서대문 형무소 역사관에 들어서자, 여느 역사관에서처럼 볼 수 있는 사진과 역사 유물이 전시되어 있었다.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의 사진, 사실 이런 것들은 나의 눈길을 그리 끌지 못하였다. 그래도 그 중에서 인상깊었던 사진은 매국노 몇 명의 사진이었다. 자신의 조국, 수많은 동포들을 팔아버린 사람들.
2층의 전시실을 본 후 지하 감옥 전시실로 내려갔다. 그 곳은 밀랍인형으로 일본에 의해 저질러진 고문 장면을 그대로 재현해 놓은 곳이다. 음향효과까지 있어 정말 섬뜩한 느낌이 들었다.
그곳을 나와 감옥으로 들어간 순간 나는 까닭 모를 한기를 느꼈다. 아마 그것은 수 십 년 동안 억울한 한을 간직했던 사람들의 기운이 남아있음일 것이다.
다른 답사지와는 달리 우리는 사진 찍을 생각도 하지 못했다. 사형장으로 가는 곳에서는 공익근무요원이 자세히 그 곳에 대하여 설명해 주었다. 사형장 입구에 있는 '통곡의 미루나무',
조국의 광복을 보지 못하고 죽어야 했던 한국의 민족 독립운동가들이 너무나 원통하여 그 나무를 붙잡고 통곡해서 붙여진 이름이었다. 이 나무가 간직하고 있는 수많은 사연 때문인지 고요한 슬픔이 느껴졌다. 사형장 문안 의 '한 맺힌 미루나무',통곡의 미루나무와 같은 날 심어진 나무라고 하는데, 성장에서 많은 차이가 있었다. 그 또한 사형장에서 죽어간 이들의 한과 절규를 목격한 증인으로서 가슴앓이를 한 탓이리라.
독립문 바로 옆에 있는 서대문 형무소 역사관. 이 곳은 한국 역사의 아픔과 시대의 고통을 간직하고 있는 곳이었다.
그 곳 바깥의 햇살은 참으로 따스했다.
여주 도자기 엑스포를 다녀와서
高 3-3 焉 眞 卿
한국에서 도자기를 주제로 하여 처음으로 연 국제행사가 이번 여주-이천-광주 도자기 축제였다. 이 세 곳은 각기 다른 주제를 가지고 있었고, 우리 역사반 모임은 여주 생활도자기관을 방문했다.
전 세계 각 국의 국보급 유물에서부터 현대 도자기까지 도자기의 과거, 현재, 미래의 과정을 한 눈에 볼 수 있었다. 평소에는 볼 기회가 없었는데, 이번 기회로 흥미롭게 볼 수 있었다.
이번 행사의 백미는 '전통가마 불지피기'이다. 장인들이 뜨거운 가마 앞에서 도자기가 완성되는 과정을 재현하였는데, 특히 한국적인 것을 찾은 외국인들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하였다. 또한 흙 체험 행사, 각국 문화예술단의 예술공연, 세종대왕과 명
성황후의 업적 재현 등 많은 볼거리가 제공되었다.
여주에서 버스를 타고 얼마가지 않아 목아 불교박물관이 있다. 목아 불교박물관은 목아 선생이 한국 전통 목공예와 불교 미술의 계승과 발전을 위해 세운 것으로 전시시설은 본관 1개 동과 야외조각공원, 유물관리 사무실을 별도로 두고 있다. 전시관은 벽돌 건축으로 외관은 인도의 석굴사원에 착안하여 창이 많은 형태이고, 건물의 중앙과 좌우에 둥근 계단을 설치하여 불교에서 말하는 불법승의 삼보를 상징한다고 했다. 내부의장은 전통 한옥의 양식을 추구하여 한지 창문으로 하였다. 야외전시장에는 초립을 쓰고 나무하러 가는 아이를 지장보살로, 수건을 두르고 아기를 업은 채 빨래터로 향하는 아낙의 형상을 관음보살로 하여 이미지화한 미륵삼존대불과, 모든 어린이들에게 밝은 웃음을 준다는 자모관음상, 비로자나불상, 삼층석탑 등 많은 불교조각 작품을 감상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옛 선인들의 기술과 장인정신을 배울 수 있었다.
이렇게 하루 일정을 마치고 우린 조금이나마 한국 문화의 예술성과 잊혀져 가는 것을 보존하는 게 후손들에게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배울 수 있었다.
<써클 이야기>
우리가 본 영화들
영화토론반
[武士]
한국영화에서 처음 시도된 특수촬영이 돋보인 영화랍니다.
미세한 모래 입자며, 물 입자를 화면에 담아놓았더군요.
감독의 의도는 잘 모르겠지만, 무언가 굉장히 많은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거 같습니다.
병사들의 다양한 사투리, 비슷한 가족사를 느낄 수 있는 중국인들.
왜 그토록 명의 공주를 구하려고 하는지, 정말 궁금하더군요.
그리고, 정우성!
고려시대에 노비의 역할이 그렇게 큰 줄 몰랐습니다.
/H3-3 최 용/
[A.I]
미래에는 원하면 아이를 사 올 수 있다!
좀 소름끼치기도 합니다만, 피노키오 동화를 미래화 시킨 점이 독특합니다.
좀 어렵고 우울한 기분이 들지만, 역시 사람에겐 엄마가 소중한 존재라는 걸 느꼈습니다.
/H2-2 서언중/
[아마겟돈]
역시 미국영화라는 생각입니다.
세상에서 제일 잘난 건 미국, 잘 난 사람은 미국인,
그래도 영화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게 영화는 잘 만드는 것 같습니다.
지구의 미래는 과연 어떨런지...
/H3-3 장형전/
[러시아워2]
역시 성룡은 우리에게 유쾌한 웃음을 줍니다.
몸을 아끼지 않는 프로 정신.
그러나 많이 늙었더군요.
'武士'에서의 장쯔이와 '러시아워2'에서의 장쯔이는 정말 다릅니다.
또한 마지막 N.G장면은 여전히 재밌습니다.
/H3-4 우국성/
[포레스트 검프(FORREST GUMP)]
하얀 깃털 하나가 바람에 날리어 주인공에게 내려앉는 모습이 인상적인 영화.
"바보는 지능이 좀 낮은 것일 뿐이다."라는 대사가 기억에 남습니다.
또한 미국의 근현대 대통령들이 다 나오더군요.
비틀즈의 존 레논도.
포레스트와 같은 순수함을 간직하며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H3-3 유성곤/
[마지막 황제]
중국의 마지막 황제 푸이~ 넘 불쌍하다.
역시 역사공부를 열심히 해서 세상을 보는 안목을 갖도록 해야겠다.
/H3-3 황세명/
[리멤버 타이탄(REMEMBER TITAN)]
흑백 갈등이 있던 시절의 미국 축구부의 실화.
정말 감동적입니다.
인간은 피부색을 초월해서 평등한 것임을 다시 한 번 생각했습니다.
/H3-3 이후정/
<우스개 소리 - 웃으며 살아요>
우리 세대 속담 패러디
인터넷 자료
1. 못 올라갈 나무는 사다리 놓고 올라라
2. 작은 고추는 맵지만 수입 고추는 더 맵다
3. 버스 지나간 뒤 손들면 백밀러로 보고 선다
4. 젊어서 고생 늙어서 신경통이다
5. 예술은 지루하고 인생은 아쉽다
6. 육군은 산에서 죽고 해군은 바다에서 죽고 공군은 하늘에 서 죽고 방위는 쪽 팔려서 죽는다
7. 호랑이한테 물려가도 죽지만 않으면 산다
8. 윗물이 맑으면 세수하기 좋다
9. 고생 끝에 병이 든다
10. 아는 길은 곧장 가라
11. 서당개 삼 년이면 보신탕감이다
12. 가다가 중지하면 간만큼 이득이다
13. 동두천 개 삼 년이면 팝송을 듣는다
이런 방법
여대생들이 성 관련 수업을 듣고 있었다
그날은 성폭행에 관한 내용이었는데 '성폭행을 당할 위기에 닥쳤을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할 것인가'하는 것이었다
발표에 들어가자 한 학생이 벌떡 일어났다
"우선 주위에 있는 쓰레기나 개똥을 집어들어요!"
"오~"
학생들은 그걸 성폭행 하려는 사람에게 던지려는 줄 알고 탄성을 질렀다
"그리고 그걸 몸에 발라요"
짧은 물음과 이상한 대답
1. '화장실이 어디 있습니까?'를 중국어로 말하면?
2. 운전과 관련하여 4개 국어를 동시에 사용하면?
3. 'ILL HY HL'은 어느 나라 말인가?
4. 간첩, 신창원, 국회의원의 공통점은 무엇인가?
5. 나의 울음으로 시작해서 남의 웃음으로 끝나는 것은?
[정답]
1. 워따 똥싸
2. 핸들 이빠이 꺾어 바!('바'는 중국어로 硪)
3. 한국말(한글-거꾸로 놓고 보면 안다.)
4. 있는 건 확실한데 어디서 뭘 하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5. 인생
이런 대화
[1]
아이 : 아빠, 아빠는 불끄고 글씨 쓸 수 있어?
아빠 : 응, 물론이지.
아이 : 그럼, 불끄고 여기 성적표에 싸인 좀 해주세요.
[2]
교사 : 또 왜 이렇게 늦었어?
학생 : 표지판에 "학교 앞, 천천히 가시오."라고 써 있어서요.
<과학 상식>
미라
동아일보(2001/12/11)
죽은 사람의 모습을 원형에 가깝게 보존하는 미라(mirra·mummy)의 풍습은 기원전 3000년경부터 고대 이집트 중남미 등에서 성행했다. 당시 사람들은 내세(來世)에 영혼이 잠들 육체가 있어야 된다는 신앙을 가지고 있었다. 죽음과 함께 육신에서 떠나간 영혼을 다시 불러들임으로써 영생(永生)을 이룰 수 있다는 것이다. 또 뛰어난 인물의 주검을 보존하면 그의 힘이 사후에도 머물러 자신들을 지켜줄 거라고 믿고 있었다.
▷미라는 여러 과정을 거쳐 만들어진다. 먼저 주검에서 뇌와 내장을 꺼낸 다음 그 안에 톱밥 헝겊 송진 등을 채워 몸의 형태를 유지시킨다. 이어 온몸에 소다석을 발라 습기를 완전히 제거한 후 몸에 넣었던 것들을 빼내고 방부처리한다. 마지막으로 몸에 붕대나 포를 감싸 보존한다. 이 과정에서 미생물과 수분 침투를 막기 위해 각종 식물성 기름과 수지, 동물성 지방, 밀랍 등이 사용됐다.
▷현대 들어 과학 의학자들은 미라를 통해 신체해부, 방부처리, 질병, 치아, 발육, 수명, 피부조직 등 수많은 연구를 하고 있다. 인종이나 종교연구도 빼놓을 수 없다. 실제로 죽은 사람을 미라로 만들어보는 작업을 하는 학자들도 있다. 죽음 속에 생명의 모습을 되살리는 미라가 각종 과학, 의학, 인종 연구에도 생명력을 불어넣어 주고 있는 것이다. 사회주의 국가에서 죽은 지도자를 방부처리해 유리관 속에 안치하는 것도 어쩌면 이 같은 미라 풍습의 변형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세계서 가장 큰 素數 발견
- 400만 자리 넘어 쓰는 데 3주 -
동아일보(2001/12/07)
‘2의 1346만6917제곱 -1’
인터넷 메르센 소수연구(Gimps)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는 캐나다 출신의 마이클 캐머론(20)이 발견한 세상에서 가장 큰 메르센 소수(素數)다. 이 수는 405만3946자리의 수로 보통사람이 쓸 경우 3주 동안이나 걸릴 정도로 큰 수라고 영국의 BBC방송이 5일 전했다.
메르센 소수는 수 이론의 핵심으로 기원전 350년 유클리드에 의해 처음 논의됐고 중세 프랑스의 승려 마린 메르센이 처음으로 명명했다. 캐머론이 발견한 이 소수는 39번째 메르센 소수다. 종전까지 가장 큰 메르센 소수는 2년 전 발견된 ‘2의 697만2593제곱 -1’이었다.
캐머론은 대형 컴퓨터를 3주간이나 돌려 이 수를 확인했다. 소수연구팀의 창립자인 조지 월트먼은 “2년 동안 쉼 없는 작업을 통해 얻은 이 소수의 발견은 우리의 가장 인상적인 업적”이라고 말했다. Gimps는 96년 메르센 소수 발견을 목적으로 창립됐으며 소수발견을 위한 프로그램을 무료로 나눠주고 있다.
소수란 ‘2, 3, 5, 7, 11…’처럼 1과 자신만으로 나눠지는 수이고 메르센 소수는 소수이면서 ‘2의 몇 제곱 -1’ 형태의 것으로 ‘3, 7, 31, 127…’로 이어진다. 메르센 소수는 암호를 개발하는 데 중요하게 쓰인다.
<월드컵 이야기 2>
2002 월드컵 마스코트
인터넷 자료
[니트. NIK]
머리가 좋고 영리하며, 학구열에 불탑니다. 경기 시작부터 골을 넣어 크게 이기고 싶은 욕망이 강합니다. 몸이 빠르고 터프한 것이 강점이라면, 지나치게 생각을 많이 하는 것이 약점이기도 합니다.
[아토. ATO]
마스코트들의 리더이자 정신적 스승, 재미있고 다재다능하며, 인생경험도 풍부합니다. 약간 우쭐대는 면도 없진 않지만, 그는 모든 마스코트들로부터 존경받는 존재이며 좋은 집안 배경을 갖고 태어났으면서도 그것에 의지하지 않는 자수성가형입니다.
[케즈. KAZ]
이것저것 꿈이 많아, 세상 돌아가는 일에 관심이 많고 몽상가 기질도 강하지만 매사에 사려가 깊습니다. 이번 2002 FIFA 월드컵™ 경기에서 멋진 헤딩슛을 한 방 날리고 말겠다는 야무진 꿈을 갖고 있습니다.
◆ 배경 이야기 ◆
우리는 먼저 2002 FIFA 월드컵 개막식부터 폐회식까지 모든 축구팬들이 즐겁고 흥겨운 마음으로 경기를 관람할 수 있도록 재미있는
스토리를 만들었습니다. 최첨단 3차원 영상 기술을 통해 만든 이 이야기 속에는 모든 경기에서 그 모습을 볼 수 있는 재미있는 귀여운 캐릭터들이 등장합니다.
이 이야기는 우리들의 모든 감정, 특히 축구를 볼 때 즐겁고 신나는 감정들을 우러나게 하는 상상의 존재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스포츠는 축구입니다. 왜냐하면 가장 즐겁고 신나는 감정이 솟아나는 것이 축구를 할 때이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하늘 높은 곳에 있는 '아트모존(Atmozone)'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 곳에서 그들은 아트모볼(Atmoball)이라는 자기들만의 축구 경기를 즐기며, 어떻게 하면 최고의 분위기를 만들 수 있는지에 대해 배우고 공부합니다.
모든 이들의 존경과 사랑을 받는 '아토'는 아카데미의 교장이자, 아트모존의 왕인 일렉트로(Electro) 대왕의 아들입니다. 어느 날, '아토'는 아버지인 일렉트로 대왕으로부터 지상으로 내려가 2002년 FIFA 월드컵 축구대회의 축제 분위기를 고조시키라는 중대한 임무를 맡게 됩니다. 그래서 '아토'는 몇 명의 수제자들만을 데리고 지상으로 내려가게 됩니다.
한편, '니크'와 '케즈'라는 어린 말썽꾸러기들은 자신들이 발탁되지 못한 것에 매우 실망하고, 둘이서 몰래 아트모존을 빠져나가 2002년 FIFA 월드컵 축구대회로 향한 '아토'의 뒤를 따라 가기로 결심합니다. 그러나, 곧 그들은 길이 엇갈려 헤어지게 되고...
이 이야기는 '니크', '케즈'가 그들의 목적지인 2002 FIFA 월드컵 결승전까지 가는 동안 겪게 되는 온갖 사건과 모험들을 담고 있습니다. 이 흥미진진하고 환상적인 모험 이야기는 축구를 사랑하는 모든 팬들에게 커다란 즐거움을 줄 것입니다.
2002 월드컵 본선 진출 국가 경제 및 사회문화 비교
스무 번째 <한글마당>을 마치고 나서
추운 밤 불을 켜고 학생들 글을 읽습니다. 글 속에는 평소와 다른 아이들도 있고, 아 이건 누구 것이로구나 하는 것도 있습니다. 글을 통해 보는 아이들의 모습이 늘 우리 마음을 적셔주었으면 합니다.
겨울, 따뜻한 마음으로 보내시기를 빕니다.
- 權
韓國漢城華僑中學 <한글마당>通卷20號
發 行 . 漢城華僑中學 韓語韓文敎學硏究會
總編輯 . 權相基
編 輯 . 한글문예반
그 림 . 高華春
發行日 . 中華民國 90年 12月
住 所 . 서울 서대문구 연희3동 89-1
印 刷 . 正元文化社