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마당

18호 2001년 6월

우리들의 이야기

졸업을 앞두고

친구에게 띄우는 편지

자기 소개서

기획

자매학교 학생과 함께 한 Home Stay 활동

특집

졸업을 앞둔 高3 社團 단원들과 인터뷰

신촌문화축제 응모 작품




韓國漢城華僑中學

韓語韓文敎學硏究會









차 례


<여는 시> 버릴 것이 없는 삶 中3-3 劉祥源 1

졸업을 앞두고 高3-4 王暦娟 高3-2 陳雅貞 2

고3을 마치며 高3-2 孔慶民 5

고3 졸업을 앞두고 高3-2 董遠平 6

졸업을 앞두고 中3-1 李梅蘭 7

중3을 졸업하며 中3-2 無名氏 9

<시> 봄 中2-2 徐蕙蘭 10

자신 中3-1 王祖夫 10

감정 中2-1 孔慶世 12

<우스개 소리> 우리가 공부를 못 하는 이유 - 인터넷 자료 12

<편지글>

친구들에게 中1-1 張國鼎 15

꾸딩에게 中1-1 于鐘淇 16

伊娜에게 中1-3 卜彦之 16

정은이에게 中1-3 楊世逸 18

상미에게 中1-3 孫知秀 19

<논설문> 유행의 장단점 高3-3 王紀敏 20

<독서감상문> ≪그리이스 로마 신화≫를 읽고 中3-1 潘昊敬 21

<자기소개서> 高3-3 王紀敏 臧維俊 23

<기획 - 자매학교 학생들과 함께 한 Home Stay 활동>

논산여상 학우들과 함께 한 홈스테이 활동 高2-4 譚秋錦 28

논산여상 학생들과 2박3일 동안의 홈스테이 高2-4 王莉娜 30

논산여상 학우와 함께 홈스테이를 高1-3 董先雯 32
















<자매학교 학생작품>

한성화교중고등학교 방문기 논산여상 高3-5 강은정 34

한성화교중고등학교를 다녀와서 논산여상 高3-2 이영주 39

<특집 1 - 졸업을 앞둔 고3 社團 단원 인터뷰>

인터뷰 1 - 한글문예반 44

인터뷰 2 - 樂隊 49

인터뷰 3 - 의상디자인반 56

<특집 2 - 신촌문화축제 응모작품> 60

<정보가 있는 페이지> 재미난 핸드폰 연주 - 인터넷 자료 65

<올림픽 이야기 3> 제27회 2000년 시드니 올림픽 李敬子 66

<이런 이야기>

최고령 나무 - 문화일보 67

예절과 문화생활 2 - 호텔 이용법 - 한국4-H신문 68

<역사의 유적을 찾아서>

창덕궁 - 한국4-H신문 71

보신각종 - 한국4-H신문 72

편집을 마치고 73




버릴 것이 없는 삶

中 3-3 劉 祥 媛

버릴 것이 없는 삶,

사람들은 자신이

얼마나 큰 행운을

누리고 있는가를 깨닫지 못한다.

욕심이란 이름 아래......

버릴 것이 없는 삶,

사람들은 자신에게서

감사할 조건이 많음에도

그것에 대해 감사할 줄 모른다.

욕심이란 이름 아래......

버릴 것이 없는 삶,

그것을 누릴 수 있는 자는

자신의 삶에 모든 것을 감사할 줄 아는 자

욕심이란 적을 뿌리친 채......











졸업을 앞두고

高 3-4 王 暦 娟

이제 막 더위가 기승을 부릴 시기에 우린 졸업을 하게 됩니다. 아직은 실감도 나지 않은 상태이고 덤덤한 기분만이 나를 사로잡고는 있지만 조만간 이런 기분마저 사라져 버릴 것만 같습니다.

6월 9일, 이 날은 제가 평생 잊을 수 없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저희 학년의 마지막 수업 날이었지요. 다른 반들은 파티다 하고 놀았지만 고3-4반, 한국 대학 진학반 그 어떤 반보다 성적에 관해 경쟁심이 치열했던 반이었기에 그 날도 저희 반은 이 틀 후에 있을 졸업시험에 대비한 생각들로 시험문제 유형과 책들과 씨름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인지 마지막 수업 날이란 느낌도 오지 않았습니다. 3교시 수업이 끝나고 누군가가 "석별의 정"이란 노래를 틀어 놓았더군요. 그제서야 이제 정말 마지막이구나 라는 생각만이 들었습니다. 마지막 수업시간은 담임선생님 시간이었고 그 시간에도 저흰 영어시험에 대한 얘길 했습니다. 마지막임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시간은 흘러 마지막 종례였습니다. 조지형 선생님께서 그 동안 고마웠다며 좋은 얘기들을 많이 해 주셨습니다. 그 순간 왜 그리 서글퍼지던지.. 아마 모두들 그런 기분을 느끼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습니다. 그리고 하나 둘 자리를 일어나서 교실 문을 나가고 전 친구를 기다리기 위해서 교실 안에 있을 때.. 여자애들부터 하나 둘 울기 시작하더군요 그러다가 남자애들도 눈시울이 붉어지고.. 누군가가 그러더군요, "앞으로 얘들 보고 싶음 어떻게 해?!"라고. 친한 사이라면 몰라도 그렇지 않다면 보기 힘들 거란 것을 알기 때문에.. 다신 보기 어려울 것을 알고 있었기에 그 말에 가슴이 너무 아팠습니다. 그러다 저희 담임선생님을 보게 되었습니다. 묵묵히 책상을 정리하고 계시더군요.. 순간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떠나가는 우리보다 남는 선생님이 더 힘들고 허전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 말입니다. 그 모습을 보고 있는데 왜 그 동안 좀 더 잘해 드리지 못했을까 하는 죄책감마저 들었습니다. 이젠 내게 다시 기회가 없을 테지만...

6월 12일, 마지막 시험 날.. 졸업시험이 다 끝나고 저희 반은 저희 반 나름대로의 파티를 열었습니다. 마침 M.T도 취소되어서 다들 서

운해하고 있을 때라서 모두 성의껏 합심해서 준비를 하고 우리의 마지막을 기념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선생님께 "스승의 은혜"를 불러드리고요.. 그 전에는 그 노래의 가사에 아무런 느낌이 없었지만 내가 졸업이란 것을 앞두고 나니 너무나 가슴에 와 닿더군요.

이젠 정말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한성화교 학생이란 신분으로 있는 것도, 이젠 어엿한 성인이 되었으니까요. 앞으로 해야 할 일들 겪어 나가야 할 과정들이 너무나도 많이 남아있지만 그렇다 하여도 인생에서 가장 소중하다는 학창시절을 이 학교에서 좋은 친구들과 함께 보낸 것에 너무 행복하고 만족스러울 뿐입니다. 그 동안 같이 공부를 했던 친구들 좋았던 기억 나빴던 기억 모두가 이젠 좋은 추억으로 내 기억 속에 남게 될 것임을 아기 때문에 그 기억들이 더 소중하게만 느껴집니다. 6년이란 시간동안 저희들을 가르쳐주신 많은 선생님들과 가장 중요한 고3시절에 저희를 많이 배려해 주신 조지형 선생님께도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더 나은 모습으로 다시 이 학교에 찾을 저희들을 잊지 말아주셨음 좋겠습니다.














졸업을 앞두고

高 3-2 陳 雅 貞

시간을 걷잡을 수 없이 빠른 것 같아요. 5년이라는 시간이 이렇게 빨리 허탈하게 지나가 버리다니....... 지금 생각하면 좋은 추억도 후회도 참 많았어요.

학교 처음에 들어왔을 때 모든 게 낯설고 언니 오빠도 무섭고 친구들도 잘 몰랐는데 그 시간들은 어제 그랬냐고 묻는 듯 벌써 졸업이라니 5년이라는 시간은 짧으면서도 긴 거 같아요. 전 이 학교에서 수많은 친구들을 사귀고 우정을 나누고 기쁨과 슬픔, 많은 추억이 있고 미운 선생님, 좋은 선생님 모두 정을 나누었는데... 고2 때만해도 선생님들과 학교가 지겨워 오기 싫어했는데 막상 졸업을 하려고 하니 시원섭섭하면서도 미련이 남네요.

졸업을 앞두고 저는 또 하나의 고민에 빠졌어요. 그것은 바로 "대학" 이라는 것. 저도 저의 학교가 다른 학교보다는 수준이 낮다는 걸 알아서 대학을 특차로 들어가도 따라가기 힘들다는 거 알아요. 그러는 만큼 저에게도 그리 만만하지는 않네요. 솔직히 두려워요. 대학은 사회로 가는 한 발짝의 길인데 홀로서기를 시작하는 장소인데... 어떻게 혼자 할 수 있을지... 저는 고3에 올라와서 없었던 꿈이 생겼어요. 처음엔 뭐할까? 많은 고민을 했지만 어는 순간 "난 이게 하고 싶어" 하는 생각에 다른 고민하지 않고 그쪽 분야로 가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리고 전 스스로에게 다짐을 했어요. 후회 따위는 하










지 않고 두려워도 하지 않고 당당히 저의 꿈을 위해 노력하기로.... 좀 철이 들었죠!! 가끔은 이런 진지한 제 모습에 저도 놀래요.

시간이 흐른다는 것, 졸업을 한다는 것, 저도 모르게 마음속 깊은 곳에 고민과 생각으로 저를 성숙하게 만드는 것 같아요.

"선생님!!! 응원해주세요!!"

가고싶은 대학 갈 수 있게 부탁드려요!!!




고3을 마치며

高 3-2 孔 慶 民

졸업을 앞두고, 지난 6년 동안의 학교 생활을 뒤돌아 한 번 생각해 보았다. 후회했던 일도, 재미있었던 일들도 많았는데, 나에게는 학교 생활이 그다지 원만하지만은 않았던 것 같다. 고3에 올라와서는 방황도 했었고, 수업도 많이 빠지고, 학교 생활에도 그다지 성실하지 못했다. 그런 일이 지금 졸업을 앞둔 나에게 무거운 짐이 된다.

처음에 고3에 올라왔을 땐 너무 기뻐 들뜬 마음을 감출 수가 없었다. 하지만 1년만 있으면 졸업이구나 하는 생각에 왠지 서운함과 아쉬움 또한 두 배가 될 것 같기도 했다. 친구들과 헤어져야 한다는 생각에 졸업이 두려워지기도 하였지만 자신들의 꿈을 생각하면 어쩜 헤어지는 것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고3을 마치면서 옛일을 생각해 보면 왜 그렇게도 우습던지, 선생님들한테 맞던 기억과 혼났던 생각에 정말 웃음밖에 안 난다. 그 땐 왜 그렇게 말썽만 피웠는지, 지금 생각하면 그 때는 정말 철이 없었던 거 같다.

요즘 들어 졸업이 점점 가까워지자 이런 저런 생각에 밤잠을 이루기 또한 쉽지 않다. 조금만 더 학교 생활에 충실했더라면 이렇게 학교에 대한 미련은 많지 않았을 텐데 하는 생각도 해본다. 이 학

교를 졸업하고 많은 시간이 흐르면 나는 지금의 나를 생각하면서 웃음을 짓고 있을 지도 모른다. 그 어떤 생활보다 내 기억 속에서 나의 고3 생활은 영원히 잊혀지지 않을 기억으로 남을 것이다.

이 학교 생활을 졸업하고 몇 십 년이 지나도 난 이 학교에서의 생활을 영원히 간직할 것이다.







고3 졸업을 앞두고

高 3-2 董 遠 平

우선 고3 졸업을 앞두고, 대학 갈 준비를 해야할 것 같다. 그리고 앞으로 해야 될 일을 생각해 보아야겠다.

난 고3을 졸업하자마자 미용학원을 알아보러 갈 거다. 아참! 내 꿈은 바로 헤어디자이너가 되는 거다. 조금은 부끄럽기도 하지만 난 내 꿈을 그렇게 쉽게 포기하고 싶지는 않다. 그리고 난 학원을 다니면서 대학을 알아볼 것이다. 지금 난 강원도 쪽으로 전문대를 하나 알아봤다. 거기에 헤어다자이너 학과가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또 경기도 쪽으로도 다시 알아볼 것이다. 왜냐하면 이제 부모님도 서울로 이사를 하신다고 해서이다.

난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할 것이다. 그리고 열심히 노력해서 한국뿐만이 아니가 여러 국가에서도 내 이름 석 자를 헤어디자이너라는 직업으로 널리 알릴 것이다.

졸업을 앞두고 마음을 잡고 내게 주어진 일들을 열심히 하고 싶다. 그런데 그게 쉽지만은 않다. 왜냐하면 고3 일학기가 끝나고 겨울 방학 때 할 일이 없어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는데 그게 문제가

된 것이다. 이제 그만 두어야 되는데 그게 또 쉽지가 않다. 거기에선 사람이 없다고 아르바이트생이 많이 확보되면 그때 그만두라는 바람에 지금까지 하고 있다. 그리고 일하는 동안 많은 정이 들어버린 것이다. 보기 싫어도 출근시간이 되면 어쩔 수 없이 가서 봐야되는 얼굴들과 보고 싶어서 출근시간을 기다리는 얼굴들...... 하지만 지금 고3 졸업을 앞두고 너무 큰 걱정이 되어 버린 것이다. 정 때문에 그만 두고 싶어도 그만 둘 수가 없게 된 것이다.

하지만 이젠 정 때문에 내가 하고 싶은 나의 꿈을 버릴 수는 없다. 그래서 조만간 일을 그만두고 학원을 알아볼 것이다. 그리고 난 나의 길을 개척해 나가야 할 것이다. 그리고 나의 인생을 멋지게 한 번 살아볼 것이다. 아무런 후회 없이...... 그리고 난 꼭 나의 이름을 알리는 그런 헤어디자이너가 될 것이다. 헤어겼을 차려서 내 실력을 믿고 머리를 맡기러 오는 사람들을 실망시키지 않게 정성껏 자신만의 스타일을 만들어 줄 것이다.

앞으로 십 년이 걸릴지 이십 년이 걸릴지는 모르겠지만 절대 포기 못 할 것이다. 난 내 꿈을 버리지 않을 것이다!



졸업을 앞두고

中 3-1 李 梅 蘭

나는 지금 졸업을 앞둔 중3이다. 졸업하기 몇 달 전에는 졸업한다는 게 굉장히 기쁘고 좋기만 했는데, 졸업을 일주일 남긴 지금 마냥 좋지만은 않다. 뭐랄까...... 시원섭섭하달까?

처음 중1이 되었을 때는 언제 3년이 지나 졸업을 하나 하고 생각했는데 중3이 되고 보니 3년이란 시간은 정말 빨리 지나간 것 같

다. 3년 동안 있었던 많은 즐겁고 재밌고 슬펐던 일이 내가 사회에 나가서 어른이 되어도 잊혀지지 않겠지? 좋은 친구들을 만난 게 3년 동안에 내가 얻은 최고의 선물이다. 좋은 친구들과 좋은 추억을 많이 만들어서 정말 행복하다.

이제 곧 친구들과 헤어질 것이다. 그렇지만 우리 학교는 졸업해도 학교가 달라지지 않으니까 다시 볼 수 있어 정말 좋다. 이것만은 정말 좋은 것 같다. 그래도 반은 달라지니......蝁_蝁 같은 반이 되었으면 좋겠다.

아직 졸업을 하려면 우리에겐 많은 고난(?)과 시련(?)이 있지만...... 재시험, 바로 그게 문제다. 통과 못하면 졸업을 못하니...... 다행히도 난 하나도 없어서 좋다. 이제 실컷 놀아야지! 내 좋은 친구들아, 너희들도 재시험 잘 보고 고1 올라가서도 잘 지내자!
















중3을 졸업하며

中 3-2 無 名 氏

중3을 졸업하면서 나는 친구들이랑 같이 영어 학원에 다니기로 했다. 근데 졸업할 수 있을지가 당장 문제이다. 노력해서 공부해 보려고 했지만 몸이 말을 잘 안 듣는다. 일단 재시험은 하고 있지만 너무 어렵다. 지금 한국어를 통과하려고 작문을 하고 있다. 선생님이 7장을 써 오랬지만 왠지 7장은 힘들 거 같다. 친구들은 힘들 것 같다고 나를 위로해 주었다. 그래도 7장을 다 써오려면 친구들이 도와줘야 할 것 같다.

우리 누나는 매일매일 공부 공부하라고 구박한다. 그래도 나는 공부는 이따가 한다고 해도, 우리 누나는 매일 나를 때린다. 우리 담임 선생님은 매일 나랑 친구들한테 재시험 잘 보라고 하신다. 그래서 나는 매일 공부하려고 하지만, 다른 숙제 때문에 공부를 못하고 오늘도 하루가 지나간다.

이제 며칠 있으면 졸업시험을 보게 된다. 그 때까지 열심히 공부해야 할 텐데, 정말 미치겠다. 난 여태까지 놀면서 3년을 지낸 것이 후회된다. 지금은 기초가 없어서 지금부터 노력해도 잘 될지 모르겠다. 특히 수학은 너무 어렵다. 다른 것은 대충 외우기만 해도 되지만 수학은 그런 식으로 해서는 안 되니, 이거야 원......

그렇지만 나는 역시 오늘도 친구들이랑 놀고 있다. 그래서 미칠 것 같다. 나는 이제부터는 친구들이랑 놀면 안 되겠다. 우리 식구들은 매일 나한테 공부하기 싫으면 하지 말라고 한다. 난 매일 아빠한테 공부하겠다고 얘기하지만 아빠는 또 잔소리하시고......

이제부터는 어떻게 졸업을 할까 고민해 봐야겠다. 만약에 유급을 하면 난 분명 자퇴를 할 것 같다. 아니면 중국으로 전학을 갈 거 같다. 정말 공부를 열심히 해야하지만, 공부를 하려고 하면 자꾸 잠이 온다. 아빠의 잔소리가 있으면 더더욱 공부가 싫어진다.

제발 이번 학기가 중학교의 마지막 관문인데, 부디 신이시여, 제발 이 불쌍한 어린양을 성공으로 가게 해 주이소!!!

<시>

봄

中 2-2 徐 蕙 蘭

따뜻한 봄바람에 창문을 여니

지난 겨울 말랐던 가지가

무얼 먹고 살이 쪘을까?

향긋한 봄 냄새를 맡고 창 밖을 보니

지난 겨울 입었던 까만 옷을

울긋불긋 분홍 노랑 갈아입었네.

길가는 사람들은 움츠렸던

어깨를 펴고

굳었던 얼굴은 활짝 피었다.

새들도 따뜻한지

지난 겨울보다 크게 웃는다.



자신

中 3-1 王 祖 夫

자신의 몸이 깨끗할 때

더러운 물질이 치명적으로 더러워 보입니다.

자신의 몸이 깨끗하지 않고 몹시 더러울 때

더러운 물질이 자신과 똑같이 더러워 보입니다.

이런 것처럼

자신의 위치가 높다면

모든 이들이 낮게 보이고,

자신의 위치가 낮다면

모든 이들을 자기와 똑같이 보고

어떤 사람은 모든 이들을 위로 쳐다보게 됩니다.

자신을 높게 보는 자, 자신에게 피해가 되는 일은 전혀 없지만,

남들에게 주는 피해의식이 너무나도 큽니다.

자신을 낮게 보는 자, 자신에게 피해가 되는 일은 많지만,

남들에겐 피해를 전혀 주지 않습니다.

이 사회 속에, 또 사춘기 시절 이 학교 안엔

자신을 몹시 높게 보고 자신밖에 모르는 이들이 너무 많습니다.

이런 야심적인 마음을 가진 사람은 동화 속 악마를 현실로 옮긴

그 악마입니다.

이런 야심적인 사람을 상대하는 자는 천사나 다름없습니다.

당신은 자신이 천사라고 생각합니까?

악마라고 생각합니까?......







감정

中 2-1 孔 慶 世

슬플 때는

마음껏 울어보자

마음의 감정을

숨기지 말고

눈물 흐르는 대로

슬퍼하면

감정이 좋아질 거야





<우스개 소리>

우리가 공부를 못하는 이유.....^^;;

인터넷 자료

★ 1년은 365일이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며칠을 공부 할 수 있을 거 같냐?

자... 계산을 해보자꾸나..

★ 일년에 365일...

그 중에 일요일이 52일이다

일요일은 쉬는 날이다..

이제 313일 남았다..


★ 여름방학 (대학이랑 초중고를 평균으로 놨을 때)

25일..

여름... 너무 덥다.. 공부 절대 못한다..

이제 288일 남았다..

★ 하루에 여덟 시간의 수면

122일..

잠은 자야하잖아..

이제 166일 남았다.

★ 하루에 한 시간의 운동 및 다른 행사..(변, 차 마시기, 뉴스 보기..등등)

15일..

똥도 싸야하고 차는 안 마시더라도 세상이 돌아가는 건 알아야 하잖아...

이제 151일 남았다..

★ 2시간 동안의 식사 및 군것질 시간

30일..

금강산도 식후경이다.. 배고파 죽으면 무슨 소용이냐.

이제 121일 남았다..

★ 평균 시험기간

30일..

원래 공부는 이때 하는 게 아니다. 시험은 평소 공부 한 걸로 보는 거다..

이제 91일 남았다..

★ 겨울방학 (초중고랑 미국 대학을 합친 거다.. )

60일..

겨울에 난방비 아깝다고 정부에서 쉬라고 정해줬다..

이제 31일 남았다..

★ 공휴일 20일..

일요일과 더불어 노는 날이다..

이제 11일 남았다..

★ 아파서 미치는 날(여기에 마법 걸리는 기간이 끼는구나.. 미 안하다..)

8일..

아픈데 쉬어야지.. 무슨 공부냐..

이제 3일 남았다..

★ 성적표 나오는 거 기다리는 기간..

3일..

공부한 적 없다.. 엄마 아빠가 알면 죽는다.. 성적표 낚아 채야 한다..

그렇다. 남은 날이 0일이다..


만약 일년에 하루도 안 아픈 천하장사 만만세를 제외한 나머지는

공부 할 시간이 없다.

암튼 이제 우린 떳떳하다.. 빨리 가서 부모님들에게

왜 공부를 못하는지 말해줘야겠다..






<편지글>

친구들에게

中 1-1 張 國 鼎

친구들에게

친구들아~ 나다, 국정이. 항상 도움이 돼주어서 너무너무 고맙다. 이제 한 달 후 정도면 내가 중국으로 가는구나. 그 동안 너희들 덕분에 중국 가서도 안 쓸쓸할 것 같다.

항상 모르는 것을 가르쳐주고 나의 첫 친구이자 나의 영원한 친구인 종기......

항상 우리에게 즐거움이 아닌 악몽(?)과 갖가지 이상한 기술을 선사하던 증휘......

항상 나의 고민을 들어주고 날 달래주지만 가장 왕자병이 심한 유군......

항상 웃고 항상 장난만 하는 전영......

항상 꼴등만 하지만 오락만은 일등인 화성이......

항상 깨끗하고 멋있었던 나의 첫 키스(?) 상대인 명시......

그밖에도 많은 친구들이 있지만 페이지가 모자라 이렇게만 쓴다.

얘들아!

너희들 덕분에 즐거웠고, 너희들 덕분에 일어설 수 있었고, 너희들 덕분에 떠들 수 있었어! 그러니까 중국에 가서도 너흰 못 잊을 거야......

얘들아!! 사랑한다~








꾸딩에게

中 1-1 于 鐘 淇

꾸딩에게

하이! 나 쫑기다. 아마 내가 처음으로 너한테 정식으로 편지 쓰는 것 같아 점 어색해. 히히히......

내가 널 만난 건 어제 같은데, 벌써 칠 년이 돼 버렸어. 이 칠 년 동안 슬픈 일도 많았고, 기쁜 일도 많았지. 잘 생각해보면 넌 나한테 많은 일을 가르쳐 주고 도와주었지만 난 너한테 해준 일이 아무 것도 없는 것 같아서 너무 슬프다.

몇 달 후 넌 중국으로 공부하러 간다고 그랬지. 속으론 슬프지만 겉으로 표현하면 너도 마음 아파할까 봐(물론 그런 일은 없겠지만) 얘긴 못했지만 너무 허전할 것 같다. 우리 반 여자애들도 많이 슬퍼하겠지? 쿠쿠쿠......

비록 네가 중국으로 가도 우리 둘 사이의 우정은 변함 없는 거지, 응응응~. 울고 싶어라~. 정확히 네가 언제 갈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최대한 잘해 줄 게. 선물은 안 줘도 되지. 하하하...... 가기 전에 진짜 아주 아주 좋은 추억 우리가 만들어 줄 게.

그리고 중국 주소 꼭 가르쳐 줘. 그래야 편지를 보내지. 마지막으로 거기서도 활발하고 말 잘 듣고 공부 잘해야 돼!! 안녕!



伊娜에게

中 1-3 卜 彦 之

To : 伊娜

요즘 어때? 난 너 믿어. 네가 잘 참고 있다는 걸...... 우리는 이렇게 두 지역에 떨어져 있지만, 그래서 편지 쓰는 방법으로밖에 연락을 할 수 없어. 아쉬운 건 우리가 얼굴을 못 보는 것이야.

거기서 스트레스가 크지? 내 생각에도 그럴 것 같아. 여기서 친구들이랑 잘 지냈었지? 이번에 너 중국 가서, 몇 년 동안 못 본 친구들을 만났겠지? 하지만 거기 애들은 성적이 아주 높잖아. 많이 노력해야겠다. 그래도 이건 꼭 알아야 돼~ 언지는 영원히 너의 곁에서 도와 줄 테니까. 그리고 옛날 여기 친구들은 모두 널 보고 싶어해!

휴! 시간 참 빨리 간다. 한 순간에 모두들 다 커 버렸어. 내 생각에는 네가 다시 한국에 올 확률은 참 작은 것 같아. 당연히 나도 중국에는 못 가지.

伊娜야, 너랑 같이 반년밖에 있지 못했는데, 넌 아주 편하게 기댈 수 있을 만큼 네가 좋았어. 내 느낌으론 내 자신이 많이 행복한 것 같아. 왜냐면 너 같은 아주 좋은 친구를 사귈 수 있었으니까. 아무리 우리가 자주는 못 만나도......

伊娜야, 대답해 줄래?? 나는 영원히 영원히 너의 소중한 친구란 걸......

From : 좋은 친구 언지가











정은이에게

中 1-3 楊 世 逸

정은이에게

안녕! 나 아직 기억나지??? 세일이~ 우리가 헤어진지도 벌써 4년이 됐다. 요즘 잘 지내지? 영국에 가니까 어때? 좋아? 난 잘 지내고 있어. 막상 편지 쓰려니까 무엇을 써야될지......

너 떠난 뒤로 참 많은 일이 있었지. 그걸 다 글로 쓰려면, 휴! 며칠 전에 기사 아저씨 봤는데, 내가 안부 전해 달라고 했는데, 전해주셨니? 너 참 밉다! -.- 편지도 안 써주고, 전화번호도 알면서 전화도 안 해 주냐? 내가 너 이사간 전화, 아니 주소만 있어도 언제든지 편지 쓸 텐데......

편지 쓰면서 막 옛 생각이 난다. 유치원 때 내가 넘어졌는데, 네가 나보다 더 걱정해주고, 심지어 울기까지 했잖아! 그 상처 아직 무릎에 남아 있다. 너랑 찍은 사진이 좀 많았으면 좋았을 텐데, 너랑 찍은 사진이 딱 한 장밖에 없어서...... 그것도 며칠 전에 잃어버려서 지금은 한 장도 없어! 나랑 찍은 사진은 전부 네가 가지고 갔으니까~!

이제 종이가 모자란 것 같아~ 이제 그만 펜을 놓을 게. 잘 지내고, 만날 수는 없지만 마음은 늘 항상 같이 있다는 걸 잊지마~~ 이 편지는 네가 볼 순 없지만, 내 마음은 언제나 너와 같이 있을 거야~!

6월 9일에 세일이가








상미에게

中 1-3 孫 知 秀

To : 상미-♡

상미야 안녕! 잘 지내지?? 보니까 잘 지내는 것 같다.--; 난 아주 잘 지내는데,^^ 휴~ 너랑 같이 있는지도 벌써 일 년이 다 되어 간다.

난 이제 곧 널 떠나야 하는데...... 전학이라는 것, 참 슬픈 것 같다. 여기 학교 와서 널 만난 건 나에게 정말 큰 행운이었어. 이렇게 소중한 친구를 만난 건 처음이었거든. 너를 만난 뒤로 참 재밌었어. 이제 곧 떠나야 하다니, 말도 안 된다, 그치? 차라리 이 학교에 오지 말 걸, 아니면 널 만나지 말 걸, 헤어질 때 얼마나 슬플까! 소중한 친구 하나를 잃는다는 건 아주 마음 아픈 일인 거 같아. 나에게 하나뿐인 친구 곁을 떠난다니...... 너랑 친해지고 나서 난 너에게 잘 해주고, 넌 나에게 잘 해주고, 정말 이만큼 행복한 적은 없었는데...... 때로는 싸워도 우리는 금방 화해해서 같이 웃고 그랬잖아.

이제 그게 나에게는 추억이 되었어. 지금 우리 하는 행동 하나 하나가 다 추억이 될 것 같은데, 이제 너와 나의 시간이 추억으로 남는다니...... 정말 빠르다. 지금 이대로 시간도 가지말고, 너랑 같이 영원히 함께 하고 싶다. 나 전학 가서도 너 자주 찾아올 게.

상미야, 있잖아~ 소원이 있는데, 나 절대 잊지 말아줘! 나도 너 절대 잊지 않을 게. 그리고 이것도 알아줄래? 난 너의 하나뿐인 소중한 친구란 걸! 안녕......

From : 지수[6/9]



<논설문>

유행의 장단점

高 3-3 王 紀 敏

유행의 사전적 정의를 살펴보면 풍습이나 관습에 대하여 일정 기간 상당수의 사람들이 어떤 행동 양식을 자유로이 선택, 채용, 폐기함으로써 생기는 광범위한 사회적 동조행동현상을 말한다. 그렇다면 유행이 우리에게 미치는 장점과 단점은 무엇일까?

우선 유행은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구성원 사이에 아이디어나 이노베이션(혁신)이 전파되어 하나의 흐름으로 자리잡는 것을 말하는데 일반적으로는 사소한 것으로부터 생겨나며, 그것은 일시적인 현상이지만 사람들의 눈에는 무시할 수 없는 변화로 느껴진다. 이를 받아들이거나 거부하는 것은 개인의 자유지만 관습이나 규범과는 달리, 사회적인 통제나 제재가 따르지 않는다. 즉, 다른 사람의 눈을 의식하는 데서 성립하며, 가치의 변화를 포함하고 있고 별도의 제재는 크게 없다는 말이다.

이러한 유행의 장점은 사회 구성원 개개인 사이에 유대감을 형성하여 동질감을 느끼게 하고 더 나아가서 사회 결속력을 강화해 준다. 개개인의 새로운 것에 대한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서는 새로운 제품을 생산하게 되고, 더 나아가 새로운 산업분야도 생기게 되므로 경제적으로 발전하게 된다. 또 구성원들의 욕구를 반영한 새로운 문화를 창조하게 되므로 문화변동을 촉진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게 된다. 한 단계 더 나아가 문화적으로도 다양성을 반영하게 되므로 문화 전반에 윤택함을 주게 된다. 한 마디로 유행은 무형의 욕구(무엇인가 하고 싶은 것, 갖고 싶은 것)를 구체적으로 만들어 주는 역할을 한다. 그것이 유행의 가장 큰 장점이라 하겠다.

반면에 유행이 가지는 단점은 무엇일까? 유행을 맹목적으로 쫓다보면 개성이 상실된다. 모두가 똑같은 것을 입고 쓰고 먹는다면 누가 누구인지 구별해주는 특성이 사라지게 된다. 또한 유행이 저질문화로 변질되면 구성원들의 가치관도 나쁜 쪽으로 바뀌게 될 것이고, 구성원 사이에 갈등도 유발시켜 사회를 혼탁하게 만들 것이다. 가치관이 제대로 정립되지 않은 채 유행을 쫓다보면 유행에 필요한

돈을 얻을 목적으로 남에게 피해를 주는 것을 정당화하는 일도 발생할 수 있고, 유행 자체를 기업화 상품화하여 이윤 추구를 위해 악용하는 것 또한 문제점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유행의 장점을 최대한 살리면서 단점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어떠한 방법이 있을까? 무엇보다도 자기 스스로 올바른 가치관을 가진 상태에서 유행을 따라야 할 것이다. 그것은 자기 자신의 생각 없이 유행을 쫓아서도 안되고 개성을 살리면서 유행을 즐기자는 말이다. 시대에 따라 유행은 변한다. 그러한 유행이 변할 때마다 자기 자신도 한 단계 더 성숙해질 때 우리는 유행을 알맞게 즐기며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독서 감상문>

<<그리스 로마 신화>>를 읽고

中 3-1 潘 昊 敬

흠...... 그리스 로마 신화라...... 참 좋은 책이다. 그러나......

전에는 한 번도 안 읽어봤다.

나도 읽어보려고 애는 썼다! 어느 날 엄마랑 백화점에 가서 마음에 드는 책-그리스 로마 신화-을 사달라고 그랬는데 엄마가 책이 너무 비싸다면서 그냥 빌려 보라고 하셨다. 물론 난 사고 싶었지만 책이 워낙 비싼 것도 사실이기 때문에 눈물을 머금고 그냥 집에 왔다.

그래서 자꾸 숙제를 미루다가 책방에 가서 책을 찾아보니 아무리 봐도 안 보이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대로 물러날 내가 아니었다. 한 1시간쯤 찾은 결과 겨우 하나를 건졌다. 하! 지! 만!

그 책은 두꺼웠다. 글씨도 무지 작으면서 빽빽하게 차 있는 게......

나의 거부감을 발생시켰다.-.-;;

그러다 결국 단 한 글자도 읽지 못했다. 蝁蝁

흠...... 지금까지 쓴 게 감상문이라기보다는 핑계에 가까운 것 같지만 워낙 읽은 게 없기 때문에 하는 수 없다. 설마 점수를 깎기까지야......^^;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감상문을 써야겠다.

난 이 신화가 여러 모로 이해가 가지 않는다.

이런 점 다섯 가지만 적어보겠다.

첫째로 그 신들은 누가 만들었으며,

둘째로 제우스의 아버지인 크로노스는 자식을 삼킬 거면 차라리 안 낳으면 될 것을 가지고 계속 낳다니 아마도 무언가(?)를 꽤나 밝혔거나 아님 배가 무지하게 고팠나보다.

셋째로 무엇을 다스리는가를 결정하는데 제비뽑기를 하다니 참 어린애도 아니고 아마도 지능이 좀 낮았나보다.

넷째로 '크로노스는 아버지의 생식기를 자르고 세계의 지배권을 차지한다."라고 써져있는데, 왕권을 차지하는데 그 일이 꼭 필요한가? 아마 그는 여자였었나 보다.

마지막으로 이렇게 써져있는데, 제우스 왈 "어떠한 신이나 여신도 나의 뜻을 어겨서는 안 된다. 만약, 내 뜻을 어기는 자가 있다면 그 자를 붙잡아 캄캄한 타르타로스에 던져버릴 것이다. 그때서야 그자는 내가 다른 어느 신들보다 얼마나 힘이 센가를 깨닫게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는데, 이런 말이 꼭 어울릴 것 같다. '무식한 게 힘만 세다!'

어쨌든 이걸 보면서 위대하다기보다는 좀 웃긴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0^ 깔깔깔~

하여간 기분 전환하기에는 좋은 책이었다. 훌륭한 글이다!!^^;

앞으로는 방학 때 소설 좀 많이 읽어야겠다.


<자기 소개서>

자기 소개서

高 3-3 王 紀 敏

남에게 저 자신을 소개한다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닙니다. '나는 누구인가'라는 물음은 제 자신에게도 항상 고민하는 문제 중의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글로 모든 것을 표현할 수는 없지만 지금부터 저 왕기민을 소개 올립니다.

저는 화교입니다. 정확히 말해 한국 전쟁을 거치고 태어난 화교 4세입니다. 증조부께서 80여 년 전 한국에 오신 이후 저희 집안은 대부분 이곳에서 태어나 살고 있습니다. 세 살 때 서울로 이하를 왔고, 그때부터 부모님은 맞벌이를 시작하셨습니다. 그런 와중에도 어머니께선 한 번도 저희 남매를 소홀히 하시지 않으셨습니다. 따뜻하게 보살펴주신 어머니 손길 덕분에 비록 가난했지만 구김살 없이 자랐습니다. 부모님께서는 열심히 일하셨고 지하실 생활에서 벗어나 점점 생활이 여유가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드디어 우리 집이 생기고 큰 근심 없이 고등학생이 되던 해, 갑자기 어머니께서 돌아가셨습니다. 너무나도 많이 힘들었고 방황도 했지만 어머니와 했던 "대학에 가서 훌륭한 사람이 되겠다"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저는 부모님을 참 많이 닮았습니다. 어머니께서는 항상 남에게 베풀기를 좋아하셨습니다. 남의 어려움을 내 일처럼 여기며 살아오셨습니다. 그런 어머니를 닮아 저는 초등학교에서부터 십 년 동안 걸스카우트 활동을 하며 학교에 봉사활동에도 참여하였고, 어려운 이웃을 도와주는 일은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하며 자랐습니다.

아버지께서는 어릴 적부터 기계 만지는 것을 좋아하셨습니다. 할아버지께서는 어떤 기계라도 다 고쳐내는 능력을 가지셨다고 합니다. 저도 그 피를 이어받아선 지 그림 그리기, 만들기, 디자인 등 은 물론 손재주가 좋아 디자인 써클 반장으로 활동하고 있고, 컴퓨

터를 통한 인터넷 정보 검색을 좋아합니다. 공부에 흥미를 가지게 된 것도 컴퓨터 덕분이었습니다. 모르는 것을 인터넷을 통해 찾다보니 공부도 자연스럽게 열심히 하게 되었습니다.

저에게는 세 가지 인생 목표가 있습니다. 첫째 목표는 대학에서 열심히 공부하여 동시통역사가 되는 것입니다. 동시통역을 하며 중국과 한국, 그리고 대만 사이의 경제, 문화, 정치적 교류를 활성화하는 데 기여하고 싶습니다. 두 번째 목표는 좋은 아내와 어머니가 되는 것입니다. 전 일도 중요하지만 가정에도 충실한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인생의 성공 기준이 많겠지만 가족들과 화목하게 사랑을 나누는 삶 또한 인생에서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세 번째 목표는 사회 봉사자가 되는 것입니다. 물론 제가 경제적으로 어느 정도 돼야겠지만, 그것보다도 남을 위해 헌신하려는 마음가짐에 가식이 없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전 어릴 적부터 비구니인 이모로부터 불교사상에 대한 많은 것을 배워왔습니다. 이모는 항상 작은 것에 감사할 줄 알며, 남에게 베풀 줄 알아야 한다고 가르치시고, 욕심 또한 과해서는 안되며, 가진 자를 부러워하지 말고 어려운 자를 살피라고 가르치셨습니다. 그 말씀처럼 전 남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삶을 살고 싶습니다. 저의 세 가지 목표들이 모두 힘든 것이지만 항상 노력하며 최선을 다하면 언젠가 반드시 이루어지리라 믿습니다.

비록 학업 성적은 남들보다 뛰어나지 못하지만 하나하나 차근차근 노력하여 대학에서만큼은 제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겠습니다. 돌아가신 어머님께 부끄럽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절 지켜봐 주십시오. 그리고 기회를 주신다면 결코 실망시키지 않겠습니다. 끝까지 읽어 주셔서 감사드리며, 이만 마칩니다.

자기 소개서

高 3-3 臧 維 俊

저희 집은 아버지와 어머니, 활발한 우리 누나, 그리고 나의 귀여운 일곱 살 난 어린 동생으로 이루어진 화목한 가정입니다. 저는 용산에 있는 외할머니 댁에서 태어났습니다. 부모님께서는 막 시작하신 장사라 저를 아끼고 보살펴주실 겨를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외할머니 댁에서 자랐고, 외할머니의 따뜻한 사랑과 가르침 속에서 성장했습니다. 저는 자주 가게에 가서 이리저리 돌아다니면서 손님의 단무지를 집어먹고 자장면에 손도 집어넣는 아주 개구장이였답니다. 이로 인해 저는 여섯 살 때 유치원에 가게 됐고, 워낙 바쁘신 부모님은 저를 학교에 데려다 줄 수도 없었고 마중 나오실 수도 없었습니다. 가끔은 친구들을 보며 부러울 때도 있었습니다. 항상 어머니가 마중을 나오는 그런 친구들을 보며 눈물을 글썽일 때도 있었고요. 그리고 졸업식 날, 이날 저는 늘 그랬듯이 혼자 보내야만 할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부모님께서 가게 문을 닫고 저의 졸업식을 보러와 주셨습니다. 저는 울고 싶었지만 울지 않았습니다. 어머니께서 속상해 하실 것 같아서죠.

저는 어릴 적부터 말을 더듬는 습관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학교에서는 놀림을 당할까봐 많은 얘기를 하지 않았습니다. 아마도 이 일 때문에 제 성격이 내성적이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저희 가게는 종로에 자리를 잡고 있어서 명동에 있는 화교학교에 다니게 되었습니다. 저는 말이 많이 않아서 친구를 사귀기가 힘들었습니다. 이 학년쯤에야 비로소 함께 이야기를 나눌 친구도 생겼고, 같이 집에 갈 친구도 생겼습니다. 저는 반 친구들보다 한 살 적은 탓인지 수업을 따라 갈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어머니께서는 일 년 쉴 생각도 하셨지만 그리 하지는 않았습니다. 삼 학년이 되자 저는 담임 선생님께 과외지도를 받았습니다. 그때야 비로소 학업에 열중하고

공부에 흥미를 느끼게 되었습니다. 육 학년 때는 점점 공부가 어려워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하지만 또 다른 흥미와 재미를 느낀 것은 바로 수학이었습니다. 저는 다른 과목은 좀 뒤떨어져도 수학만큼은 남 못지 않게 했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이제 나도 중학생이구나 하는 생각이 나를 설레게 하였습니다. 중학교에 입학하고 얼마 안 지나서 아버지께서 교통사고로 입원하셨습니다. 이런 생활의 불안정으로 저는 이때 무척이나 외로움을 탔던 것 같습니다. 항상 집에는 저와 누나뿐이었고 외할머니와 어머니는 병원에서 살다시피 하셨습니다. 아버지께서는 일 년 반 뒤에야 비로소 건강하고 활기찬 얼굴로 우리를 맞이할 수 있으셨습니다.

저는 다시 공부에 열중했고 중학교를 졸업했습니다. 고등학생이 되기 전이 제겐 가장 힘들었던 것 같습니다. 고등학교에 들어오고 나서부터는 열심히 학업에 충실했습니다. 하지만 중학교 때 배워야 할 것들을 배우지 못해 기초가 터무니없이 부족했습니다. 그래서 다시 중학교 책들을 꺼내어 기초에서부터 다시 차곡차곡 공부했고, 그러고 나서야 진도를 따라 잡을 수 있었습니다.

어머니는 항상 저에게 하시는 말씀이 있습니다. "넌 꼭 대학에 가야 한다. 아버지 뒤를 따를 생각은 하지 마라!" 처음에는 그 말뜻을 잘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저는 한국 대학을 가기로 결심하고 이과반을 선택했습니다. 그러나 물리, 화학과 그리고 생물에서 도저히 높은 점수를 받을 수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열심히 해야겠다는 집념으로 저는 평균 70점을 유지하려 애썼습니다. 고2 때 배우는 공통수학에 저는 많은 관심과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그만큼 좋아했었던 것이었겠지요. 방학 때에는 누나가 저에게 부족한 과목을 보충해 주었습니다. 고3이 되자 저는 또 한 번 단단한 마음가짐으로 학업에 임했고, 친구들과의 관계도 더욱더 친근해져 갔습니다.

수학 문제에 문제가 있으면 친구에게 상의하고 고민이 있을 때도 친구에게 가장 먼저 갔던 것 같습니다.

지금 저는 대학 진학을 앞두고 있습니다. 저는 컴퓨터 세계에 대해 관심을 가진 적이 많습니다. 그래서 저는 컴퓨터 관련 학과를 선택했고, 앞으로 많은 노력과 관심을 기울이겠습니다. 졸업 후에는 컴퓨터에 관한 일들을 하고 싶습니다. 무언가 새로운 것을 창조하고 개발해내는 그러한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그리고 저를 위해 여지껏 고생하신 부모님께 보답해 드리고 싶습니다.

저의 취미는 음악 감상과 농구, 컴퓨터 응용입니다. 게임을 좋아하기는 하지만 공부와 컴퓨터 게임의 선을 지킬 줄 압니다. 제가 유난히 좋아하는 과목은 수학입니다. 수학이라는 과목에 대해 관심이 많습니다. 수학은 앞부분을 모르면 뒷부분은 못 풀어 나갑니다. 저는 수학이 모든 지식을 동원하여 풀어야 한다는 점이 좋습니다. 그러나 저는 영어에 대해 부족함을 느낄 때가 많습니다. 이를 보충하며 노력하는 학생이 돼 보이겠습니다.

귀교에서 제가 공부하고 싶은 학과를 다닐 수 있다면 여지껏 제가 습득했던 지식을 총동원하여 장차 사회에 나아가서 부끄럼 없는 지식인으로서 저의 꿈을 펼쳐 나가겠습니다.









<기획 - 자매학교 학생들과 함께 한 Home Stay 활동>

논산여상학우들과 함께 한 홈스테이...

高 2-4 譚 秋 錦

며칠 전 논산여상의 방문단이 우리 학교를 방문하여서 나를 비롯한 우리 학교에서 선발된 학생 대표 15명이 각자의 가정을 홈스테이 활동 장소로 제공했다. 나의 짝은 지난 학기에 내가 논산여상을 방문했을 때 나의 파트너였던 은정이였다. 은정이를 다시 만나게 돼서 참 반가웠다. 이번에는 우리 집에서 2박 3일 동안 묵게 되어서 나와 나의 식구들은 더욱 신경을 많이 썼다.

첫째 날, 오전부터 우리들의 일정은 시작되었다. 서울역에서 재회한 우리들은 학교로 와서 종이 오리기를 하고 이어서 논산여상 학생들을 환영하는 우리 학교의 학예발표회가 있었다. 학예발표회에서 내가 사회를 보게 되었는데 준비가 부족해서 실수를 연발했다. 참 아쉬웠다. 우리 학교에선 무용단의 공연으로 시작해서 사자춤, 음악써클, 밴드부의 무대가 있었고, 논산여상에서는 이번에도 다양한 무대를 선보였다. 우리 학교의 교가로 시작해서 가요, 합기도, 댄스에 이르기까지 논산여상의 노력이 돋보이는 무대였다.

이어서 우리는 바로 환영만찬이 이루어질 장소로 이동하여 학부모들과의 만남을 가졌다. 맛있는 음식들도 아주 많이 먹었다. 그리고 나서 나는 엄마, 아빠와 함께 내 파트너를 집으로 데리고 왔다. 우리 아버지께서는 대만을 소개하는 비디오를 꺼내서 내 파트너에게 보여주었고, 사진들도 보여주었다. 그리고 나서 내일의 일정을 위해 우리 둘은 잠을 청했다.

둘째 날, 우리 집에서는 아침밥을 준비하느라 분주했다. 내 파트너에게 더 많은 중국 문화체험을 시켜주기 위해 나의 부모님은 많은 중국음식을 선보이셨다. 콩국(豆漿), 길다란 막대기 모양의 밀가루 튀김(油條), 죽(稀飯), 속을 넣지 않은 찐빵(包子), 꽃빵(花捲) 등을 비롯하여 중국 아침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요리들을 준비했다. 배불리 먹고 우리는 학교에 도착해서 조회에 참석하고 과천으로 향했다. 원래의 일정은 국립현대미술관과 동물원을 견학하고 서울랜드에 가서 노는 것이었는데, 시간 때문에 동물원이 생략

되고 미술관과 서울랜드만 갔다. 거기서 우리들은 무더운 햇볕이 내리 쬐는데도 열심히 돌아다니며 재미있게 놀았다. 집에 올 때쯤에 는 거의 녹초상태였지만 우리는 씻고 이어서 엄마가 만들어 주신 맛있는 춘병(春餠)을 먹었다. 여러 가지 요리에 싸먹는 춘병이 맛은 허기졌을 때 먹어서 그런지 더욱 맛있었다.

그리고 우리는 다른 친구들과 합류하여서 노래방에 가서 놀다가 집에 들러서 중국 옷들을 갖고 莉娜네 집에 놀러가서 우리가 지난 학기에 논산에 가서 몸빼바지를 입고 사진을 찍은 것과 같이 논산여상 학생들에게도 중국 옷을 입혀주고 사진도 찍어주었다. 그리고는 우리 네 쌍의 학생들은 모두 莉娜네 집에서 밤새 수다를 떨며 밤을 지냈다.

마지막날, 둘째 날에 너무 무리를 해서인지 모두들 녹초가 되어 있었다. 우리는 마지막 기력을 다해 학교에서 만두를 쌌다. 논산여상 학생들은 우리들 중국인만의 특유한 만두 만드는 법을 보고 신기해했고, 열심히 따라해 주었다. 마지막에 나온 만두의 모양은 각양각색이었지만 참 좋은 경험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 점심밥으로 우리는 우리가 손수 만든 만두와 맛있는 반찬들을 곁들여 재미있는 만두 모양들을 보며 참 맛있게 먹었다.

아쉽게도 헤어져야 할 시간이 다가왔다. 우리는 학교에서 잠시 쉴 동안 사진도 많이 찍고 곧바로 서울역으로 출발했다. 헤어질 때 아쉬워서 눈물을 흘린 친구들도 많았지만 나는 그렇지 않았다. 앞으로도 또 볼 기회가 있기에...... 마음속으로 우리들의 이 소중한 인연이 2박 3일이 아닌 영원히 지속될 수 있기를 바라면서 아쉬운 작별을 해야만 했다.

논산여상과 우리 학교 사이의 이러한 교류는 두 학교 사이의 우의를 다질 뿐만 아니라 학생들에게도 좋은 기회가 되었다. 논산여상 학생들은 화교들의 생활을 체험함과 동시에 서울 생활도 체험할 수 있었고, 우리들은 더 나은 인간관계를 위해 무엇을 해야하는지를 배웠다. 이번 홈스테이를 통해서 우리는 많은 것을 얻게 되었고, 그 중에서도 대표적인 것은 바로 좋은 친구를 얻었다는 것이다. 앞으로도 이런 활동이 계속 되어서 두 학교의 우호관계가 더욱 발전하고 학생들에게도 좋은 영향을 미쳤으면 좋겠다.^^

논산여상 학생들과 2박3일 동안의 홈스테이

高 2-4 王 莉 娜

이번 6월 7일부터 9일까지 2박3일 동안 논산에서 온 친구들과 함께 서울 생활을 통해 친분도 쌓고 서로의 문화도 체험하게 되었다.

작년 11월에 나와 몇몇 친구들은 논산여상을 방문했었다. 그때 논산에 있는 친구들이 너무나도 잘 대해 주었고, 또 몸빼바지를 입고 농사일도 하고, 시내 구경도 시켜주었다. 그 중에서도 가장인상에 깊이 남는 것은, 마지막날 밤에 내 짝의 어머니께서 트럭을 몰고 그 뒤에 10명이 넘는 친구들이 함께 별이 반짝이는 시골 밤하늘을 이불을 꼭 덥고 드라이브(?) 한 것이다.

그 날 밤이 너무나도 인상에 깊은 나머지 나는 다음에 내 짝이 논산에서 온다면 마지막날에는 우리 집에서 많은 친구들과 함께 보내기로 결심했다.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6월 7일이 왔다!! 하지만 오전 두 시간은 수업을 해야만 했다. 선생님께 죄송한 얘기지만 그 날 수업은 정말 흥분되어 잘 들어오지도 않았다.^^;; 드디어 서울역으로 마중 나가는 시간, 후~ 너무 기대되었다. 기차는 도착하고 양손으로 들어도 모자라는 선물 꾸러미들. 나와 나의 짝 효선이는 너무 반가운 나머지 얼싸안고 반가워했다. 우리는 오래된 친구처럼 아무 스스럼없이 많은 얘기를 나누었다. 가족 얘기, 학교 얘기, 친구 얘기, 우스개 소리 등등, 너무 좋았다.*^^*

나중에 나와 친구들이 일정표를 본 결과 너무 짧고 자유시간이 충분하지 못한 것 같아 우리들 나름대로 계획을 짰다. 첫째날 밤에 우리는 친구들에게 짧은 시간에 더 많은 것을 구경시켜 주자는 의미에서 동대문 야시장에 갔다. 우리 어머니께서 참 고마우신 것이 우리가 밤늦게 나가는 걸 믿고 허락해 주셨다. 그리고 필요한 것이 있으면 사라고 효선이와 나에게 용돈까지 주셨다!!

그리고 둘째 날에는 학교에서 서울랜드로 놀러갔다. 날씨가 너무 더웠던 것만 빼고는 너무너무 재밌었다.*^^* 서울랜드에서 돌아와서 집에서 씻고, 옷을 갈아입은 뒤 친구들과 이대 앞에서 만나기로 약속했다. 친구들에게 이대 앞과 신촌을 구경시켜주기 위해서이다.

우선 이대 앞에 있는 팬시점, 악세사리점은 다 가본 것 같다. 그리고 '스타샷'이란 곳에 가서 여섯 명이 같이 프로필 사진을 찍었다. 저녁은 '베니건스'에서 타코식으로 먹었다. 논산 친구들이 특이하고 신기한 맛이라고 연발했다! 마지막으로 노래방에 갔다. 우리는 그곳에서 참 재미있었다. 노래방에서 나올 때쯤 우리는 모두 녹초가 되었지만 아직 끝나지 않았다. 모두들 우리 집으로 향해서 차이나복을 입고 땀을 뻘뻘 흘리며 독사진과 단체사진을 찍었다. 이제 더 이상 놀 힘이 없을 뻔했지만 우리 여덟 명은 새벽 두 시까지 수다를 떨며 놀았다. 정말 잊을 수 없는 또 하나의 추억이 될 것 같다.

다음날 아침 우리 여덟 명은 우리 어머니의 정성스런 아침 식사로 시작했다. 내가 전날 밤에 시계를 맞춰두고 아침에 일어나서 어머니를 도우려고 마음먹었지만 전날 밤에 너무 무리한 나머지 일어나 돕지 못해 아쉬웠지만...... 어머니, 고마워요!!!

오후 2시 30분쯤에 우리는 서울역에서 헤어져야만 했다. 헤어질 때 내 짝의 눈에 고인 눈물을 나는 잊을 수 없다. 눈물이 나지 않다가 막상 나의 짝이 역 안으로 들어가니 갑자기 눈에서 눈물이 펑펑 쏟아져 내렸다. 우리가 이제 떨어진 것이 실감이 났다.

내 짝궁 효선이와 얘기를 나누었던 것 중에 나는 크게 기억이 나는 일이 있다. 내가 효선이에게 "효선이는 꿈이 뭐야?"하고 물어봤는데, 효선이는 "음, 꿈은 피아노 선생님이지만 이루어질 수 없는 꿈이야."하고 했다. 궁금한 나는 "왜"하고 되물었다. "음, 취업해야지~! 요즘에 취업이 잘 안 되어서 걱정이야......"하고 대답했다. 효선이의 아버님은 건강이 안 좋으시단다. 어머니께서 농사일을 하시는데 어머님마저 뇌종양에 걸리셔서 농사일도 잘 못하시고...... 그리고 효선이 밑으로 동생이 두 명이 있다. 그래서 맏딸인 효선이의 어깨가 참 무거운 것 같다.

그런 와중에도 효선이는 논산에서 올 때 방울토마토 한 상자와 어머니께서 직접 만드신 딸기 쥬스를 가져왔다. 너무나도 고마운 효선이......

효선이가 논산에 도착한 뒤 집으로 안부 전화를 했다. 효선이 어

머니와 우리 어머니께서도 아주 반갑게, 그리고 서로 감사하는 맘으로 말씀을 나누셨다.

이번 홈스테이는 단순한 학교 활동이 아니라 나에게 감동과 정과 많은 것을 일깨워주게 한, 참으로 알차고 보람 있는 활동이었던 것 같다. 앞으로도 계속 우리 학교와 논산여상의 이런 너무나도 좋은 교류가 이루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



논산여상 학우와 함께 홈스테이를

高 1-3 董 先 雯

이번에 논산여상 학생 대표 15명과 교감선생님, 그리고 몇몇 선생님들께서 우리 학교를 방문했다. 그래서 며칠 전부터 떨리고 기뻤다. '혹시 오자마자 실수하면 어쩌지?'하는 걱정도 했다.

첫째 날, 드디어 논산여상 학생들이 오는 날. 우리 학교 학생 대표 15명과 선생님들께서 마중 나갔다. 우리는 각자의 파트너를 찾아 짐을 들고 버스를 타고 다시 학교로 돌아왔다. 나는 너무 기뻐서 웃음이 떠나질 않았다. 학교에 도착한 후 우리 학교 밴드부의 환영이 있었고, 이어서 회의실에서 두 학교 교감선생님의 말씀이 있었다. 그 다음은 서로의 파트너를 데리고 학교 구경을 하고 중국 음식으로 점심 식사를 했다. 식사 후, 생물실에서 학습시간으로 종이오리기(剪紙)가 있었는데, 모두 다 열심히 예쁘게 잘 한 것 같다. 여기서 논산 학생들 중 제일 잘한 세 명에게는 상도 주어졌다. 오후에는 대강당에서 환영회가 있었다. 우리 학교 무용단의 山地舞와 舞獅 써클의 사자춤, 논산여상 학생들이 부른 우리 학교 교가, 그리고 우리 학교의 독창, 독주, 밴드부의 공연 등이 있었다. 저녁에는 학부모님들과 환영만찬이 있었는데, 논산여상 학생들이 중국

음식이 입맛에 잘 맞았는지 모르겠지만 모두 맛있게 먹는 것 같았다. 이제는 홈스테이 시간, 나하고 엄마는 내 파트너 은정이 언니에게 중국에 관한 몇몇 이야기를 했고, 엄마는 중국 팔찌를 선물로 주셨다. 이렇게 하루가 지났다.

둘째 날, 아침 식사를 하고 파트너 은정이 언니랑 하교로 향했다. 조회를 마치고 우리는 버스를 타고 현대미술관과 서울랜드로 갔다. 도착한 뒤 먼저 미술 전시회를 보았고 이어서 서울랜드로 갔다. 모두들 신이 났는지 걸음이 빨랐다. 서울랜드에서 모두 즐겁게 놀고 사진도 찍었다. 5시에 다시 학교로 돌아와 은정이 언니와 함께 집에 가서 옷 갈아입고, 친구들을 만나 같이 놀러 갔다. 이날도 엄마는 은정이 언니한테 중국의 수박씨(瓜子)와 젓가락을 선물로 주셨다.

마지막날, 이날은 중국 음식-물만두를 직접 만들어 먹기도 했고, 중국 음식에 관한 비디오도 보았다. 그러나 이제 헤어져야 했다. 정말 아쉽지만, 2박3일 짧은 기간 동안 정말 즐거웠다. 무엇보다 사진을 많이 못 찍고 별로 잘 해주지 못한 것 같아 더욱 아쉬웠다. '만약 시간이 더 길었다면......'하는 생각도 해 보았다. 그러면 더욱 잘해주고 좋은 추억도 많이 만들 수 있었을 텐데...... 우린 서로 자주 연락하자고 약속을 했고, 그렇게 우리의 2박3일은 끝났다.

이번 경험이 논산 여상 학생들에게 좋은 경험이 되었으면 좋겠고, 중국의 문화와 교육, 생활양식도 많이 배울 수 있었던 기회가 되었길 바란다. 그리고 2박3일이 영원히 좋은 추억이 되었으면......



<자매학교 학생작품>

한성화교중고등학교 방문기(추억의 이름으로......)

논산여자상업고등학교

3학년 5반 강은정

작년 11월 깊어 가는 가을 하늘 아래에서 볏단을 묶고 과일을 따고 하며 논산을 방문한 파트너들과 농촌 생활을 체험하는 시간을 가지던 때가 엊그제만 같은데, 벌써 한해가 지나 우리들이 서울 파트너의 집에 가 중국의 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가슴 설레는 시간이 다가왔다.

바로, 2001년 6월 7일~9일(2박3일)까지 교감선생님과 두 분의 선생님, 그리고 15명이 방문단이 되어 서울의 한성화교중고등학교(아래부터 한성화교학교:편집자)로 향했다. 모든 친구들과 이 날을 기약하며 헤어진 때가 얼마 지나지 않은 것 같은데 벌써 다가와 요 며칠은 서울에 갈 일로 마음이 허둥대었다.

푸르른 신록이 바람에 넘실거리는 6월의 햇살을 받으며 부푼 마음을 기차에 싣고 드디어 서울역에 도학한 순간, 한성화교학교 교장선생님을 비롯하여 학생 대표와 파트너들이 줄을 서서 우리들을 반겨주는 모습에 너무나 행복했다. 특히 나의 파트너인 추금이의 아버지는 한성화교학교의 선생님으로서 인자하고 자상하신 모습이셔서 2박3일이 새로운 가족을 만난 것처럼 포근한 느낌이 들 것 같았다. 20분 가량 차량을 타고 학교에 도착하니 우리와 같이 밴드부의 연주가 우렁차게 우리 방문단을 환영해 주었다. 우리는 그곳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회의실에서 각자 소개를 하였다. 논산에 온 파트너 6명이 기숙사생으로 홈스테이 활동이 어려워 6명이 바뀌었지만, 새 친구들도 한결같이 바르고 단정한 모습으로 우리를 맞아주었다.

우리는 회의실에 짐을 두고 한성화교학교에서 준비한 프로그램대로 학습시간을 가졌다.

먼저 '중국 종이오리기 공예' 수업을 받게 되었는데, 이것은 민

간 예술로 종교의식과 장식, 조형예술 등 여러 방면으로 사용되어 왔다고 한다. 섬세하고 치밀하게 도안을 따라 칼로 하나하나 오려내면, 모습을 서서히 드러내는 종이오리기는 그야말로 중국인들의 수공예 진수를 보는 것 같았다.

첫 번째 학습시간이 끝나고 강당에서 우리 방문단을 위한 환영식이 있었다. 우리의 학습발표회와 같은 것으로 중국의 전통을 엿볼 수 있었는데 특히, 추금이 오빠가 부른 성악을 비롯하여, 사자춤, 밴드부의 연주 등이 기억에 남는다. 네 번째 순서로 우리 방문단이 공연할 시간이 돌아왔다. 새로운 사람들 앞에서 공연을 한다는 것이 마음을 두근거리게 하였지만 마음을 가다듬었다.

한성화교학교 교가와 가요, 댄스, 합기도를 우리는 떨리는 가슴에 실수나 하지 않을까 하는 두려운 마음으로 무대에 올라섰지만 작은 실수가 있었음에도 함께 노래를 불러주는 화교 친구들이 있어 뜻깊은 만남의 시간이었다. 하지만 더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 것에 아쉬운 마음을 간직한 채 결연 학부모님들과 저녁 식사도 하고 대면식을 갖는 환영만찬의 시간을 가졌다. 나를 환영해 주는 추금이 어머니 역시 친절하셨다. 저녁 식사에 나오는 음식마다 먹음직스럽고 독특한 풍미를 간직한 음식에 혀끝에서 부드럽게 녹는 맛이 일품이었다. 중국 요리는 큰 접시부터 나온다는 것과 국물이 적은 것부터 나온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전채부터 시작하여 볶음요리, 조림요리, 기름에 튀긴 요리, 탕요리 등의 저녁 식사를 마친 뒤 우리는 홈스테이 활동을 시작했다.

추금이의 집은 연희동에 위치하고 있었다. 추금이의 아버지와 어머니, 추금이와 함께 집에 가는 느낌은 친척집을 방문하는 것처럼 편안한 느낌이 들었다. 집에 도착하니 성악을 취미로 하는 오빠를 만날 수 있었고, 할아버지도 뵐 수 있었다. 눈으로 보이는 중국 특유의 분위기는 느낄 수 없었지만, 아버지께서 준비해 주신 요리에 대한 비디오 시청을 통해 대만의 한 문화생활인 요리에 대해 알 수 있게 되어 유익하고 뜻깊은 시간이었다. 쌀과 밀가루로 만든 음식이 균형을 이루고 다양한 요리를 중국 대륙의 거의 모든 지역에서

대만으로 건너온 사람들은 이들 지역의 요리 솜씨를 그대로 발휘하고 있다고 하니 '요리 역시 예술이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비디오를 보면서 아버지께서는 가족 앨범과 추금이의 앨범을 보여주셨는데, 가족의 추억이 담긴 앨범을 보면서 화목하고 따뜻한 가정이라는 것을 새삼스레 느낄 수도 있었다. 피곤함에 지쳐 아담한 추금이의 방은 안락한 휴식을 취하는 데에 충분했다.

어제와 다른 또 다른 아침인 6월 8일

아침의 상쾌함을 생수가 아닌 우롱차를 끊여 마시는 것은 추금이 가정의 전통으로 기분을 푸는 마음은 새로웠다. 그리고 아침에 일어나면 웃어른께 공손히 문안인사를 드리는 추금이의 가정을 통해 한국에서 중시되는 정신인 웃어른에 대한 공경을 배울 수 있었다. "공경과 효"는 세계 어디서나 중요한 덕목일까?

어머니께서 정성스레 만들어 주신 왕만두와 쌀가루로 찍어 먹는 빵, 그리고 중국의 밑반찬 등 새로운 음식을 맛보았다. 또한 쌀밥을 먹지 않고 죽을 끓여 먹는 밥이 신기했다.

학교에서 우리는 관광버스를 타고 과천에 있는 현대미술관으로 출발하였다. 미술관에서는 여러 장르의 미술작품들을 감상하고, 예술 작품을 이해하는 좋은 기회였다. 그리고 우리는 서울랜드를 자유롭게 유람했다. 서울랜드에 들어서자마자 들뜬 기분에 추억의 사진도 찍고, 여러 친구들과 함께 놀이 기구를 타며 우정도 돈독히 해 나갈 수 있었다. 시간을 절약하여 최대의 아름다운 추억을 만들기 위해서 빠른 걸음으로 움직인 만큼 여러 놀이 기구도 탈 수 있었고 여러 가지 구경도 할 수 있었다. 서울랜드의 즐거움을 뒤로한 채, 저녁이 되어 우리는 추금이의 집에 도착하였다. 노는 것이 더 힘들다고 집에 도착하니 곧바로 잠에 쓰러지고 싶을 정도였다. 저녁 식사 역시 어머니께서 중국 전통요리를 해 주셨는데 너무나 맛있게 음식을 먹은 탓인지 그 감미로운 맛은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식사를 하고 추금이는 이화여대거리를 구경시켜 주었다. 복잡한 거리에서 이것저것 구경하며 대도시에서 볼 수 있는 볼거리는 한 마디로 '서울구경'이라고 할 수 있었다. 이곳에서 추금이 친구

들을 만나 노래방에 갔다. 노래방으로 가서 친구들의 노래 솜씨를 들으며 늦은 밤에 우리는 추금이의 친구인 리나의 집에서 자기로 했다. 리나의 집에서 네 팀의 친구들이 모였다.

친구들이 한 곳에 모여 추금이는 우리에게 전통 중국 의상인 '치파오'를 입혀주며 사진도 찍어 주었다. 비단결 옷감의 직감에 아름다운 무늬의 조화가 화려함과 우아함으로 내 모습에 이것저것 맞춰보면서 매력을 느끼게 하는 고유의상은 너무나 예뻤다.

중국에는 '치파오'가 있다면 한국에는 '한복'이 있는 것처럼, 한국의 전통의상 한복이 생기와 멋을 불어넣는 선의 아름다움으로 단아하고 정숙한 멋을 풍긴다면 중국의 치파오는 여성의 몸매를 잘 드러내 주는 우아하고 품위 있는 의상이라고 할 수 있었다.

오늘 여행의 흥분과 꽉 짜인 시간 때문일까? 몹시 피곤했다. 하지만 잘 수가 없었다. 우리에게 주어진 짧은 시간 동안 소중히 기억될 추억들을 가득 채워야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몸은 마음대로 따라주지 않았고, 오늘보다 내일을 위해서일까?

마지막날의 3일째 되는 날도 시간에 맞추어 잠을 깼다. 리나의 어머니께서 정성스레 음식을 대접해 주시고 추금이와 나는 추금이의 집에 도착하여 어른들에게 인사드렸다. 관대하게 대해 주시는 할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오빠에게 감사함을 전하며 대문을 나서는 내 발걸음은 너무나 무거웠다. 선물로 배려해 주시고 음식으로 정성스레 대접해 주신 가족들 덕분에 2박3일을 내 마음 속 깊이 간직하여 따뜻한 마음은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다.

가족들의 고마움을 간직하며, 학교에 도착하여 만두 빚기 실습을 하였다. 정성껏 두 팔을 걷고 옆에서 도와주시는 선생님들의 손길에 맛있는 물만두가 완성되었다. 더욱이 나의 파트너인 추금이는 만두 빚는 솜씨가 다른 학생들과 달리 뛰어남을 보여주었는데, 추금이는 어려서부터 혼이 나며 할아버지께 배웠다고 하니 그 나라의 전통을 계승하고 보존하는 한 가정의 모습도 엿볼 수 있었다.


학교에서 준비한 시간은 마무리되고 이제는 돌아가야 할 시간이 되었다. 그래서 얼마 남지 않은 시간 동안 교정을 돌아다니며 추억의 사진도 찍었다. 시간에 맞추어 서울역으로 출발할 차량을 타고 우리들을 위해 애쓰신 선생님들의 노고와 우리들을 환영해 준 한성화교학교 학생들의 친절함을 피부로 실감하며 논산으로 향하는 기차 안에 몸을 실었다.

이번 한성화교학교 방문은 나에게 좋은 경험으로 많은 것을 배우게 해 주었고 많은 교훈을 얻을 수 있었다. 서로 다른 환경의 사람들이 만나 그 환경에 맞게 적응하여 인간관계 시 유의할 점과 지켜야 할 예절, 그리고 한 학교의 대표학생으로서 자세 등 내 자신의 행동에 대해서 생각해 보게 되었다.

그리고 나의 파트너, 담추금.

꿈과 미래를 향해 달려가는 친구, 성숙하고 생각이 깊은 친구, 유행을 알고 현실을 개척해 나가는 똑똑한 친구, 이 친구를 통해 나는 배워야 할 점이 너무나 많다는 것을 또한 느낄 수 있었다.

2박3일 동안 짧은 시간들이 빠듯한 일정으로 만남을 통해서 배운 것도 느낀 것도 많은 아름다운 시간이었다. 국제화 시대에 부응해 '한국인, 중국인'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세계는 하나'라는 인식을 갖추는 것도 필요하지 않을까. 좁은 세상을 넓은 마음으로 감싸며 살아가는 여유를 느끼며 사는 것이 21세기의 중요한 교육이 아닐까? 셋P 어디에 살든지 따뜻한 마음을 가진 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좋은 일이고, 그 아름다운 만남은 마음 속에서 꽃으로 피고 잊지 못할 노래로 간직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아무 사고 없이 즐겁고 안전한 방문이 될 수 있도록 지도해 주신 한성학교의 여러 선생님들께 감사드리며, 이 한성화교학교 방문이 좋은 기억으로 남게 되길 빌며, 이제는 추억의 앨범에 곱게 간직하고 싶다.


한성화교중고등학교를 다녀와서

(학교간의 만남에서 잊지 못할 우정까지...)

논산여자상업고등학교

3학년 2반 경영정보과 이영주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한성화교 친구들과의 홈스테이를 하는 날이 확정되었다. 정말 많이 기다려 왔던 만큼 기대도 무척 컸다. 왜냐하면, 이번 우리 방문단이 처음으로 실시하는 정식 홈스테이라고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마 걱정도 되고 긴장까지 되었다.

시간은 흘러 흘러 드디어 내 파트너인 설혜네 집에 가는 날이 다가왔다. 세 분의 선생님과 학생들 15명이 방문단이 되어 기차를 타고 서울로 올라가면서 그 동안 한성화교 친구들이 얼마만큼 변했나 궁금하기도 하고, 기분이 좋아서 그런지 바깥 풍경들까지 좋게만 보였다.

나는 지난 겨울방학 때 서울을 방문했었는데도 불구하고, 설혜를 보는 것이 떨리기까지 했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벌써 서울역에 도착한다는 안내방송이 나왔다. 저 멀리에 보이는 한성화교 친구들이 우리가 탄 기차를 보며 서로의 파트너를 찾느라 움직이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서울역에 우리가 도착했을 때, 한성화교 친구들이 환영의 박수로 우리들을 맞이해 주었다. 정말 오랜만에 보는 얼굴이라서 너무나도 반갑고 기쁨을 어찌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텔레비전에서 보았던 이산가족의 상봉과도 흡사했다.

반가움을 뒤로하고 드디어 한성화교 친구들이 다니는 학교에 도착했다. 학교에 들어섰을 때, 학교 건물은 그리 좋아 보이지는 않았지만 화단에 핀 꽃들과 그 주위 풍경들과 높이 위치해 있어서 탁 트인 느낌을 받았다. 우리 방문단은 한성화교학교 밴드부 친구들의 환영을 받으며 친절히 맞이해 주신 선생님들과 기념 촬영도 했다.

우리들은 곧바로 회의실에 모여서 한성화교학교 교장선생님의 환영사를 듣고 친구들과도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리고 학교에 있는 식당에서 특별한 날이나 먹는 탕수육 등으로 점심식사를 하고 학교 이곳저곳을 구경하였다. 그리고 나서 일정에 따라 생물 실험실에 가서 '중국 종이오리기 공예'를 배웠다. 종이오리기는 중국에서 유행하는 민간 예술 가운데 하나로, 자료에 따르면 그 역사는 서기 6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러나 민간인들이 종이오리기를 실제로 하기 시작한 것은 그보다 몇 백년이 앞선다고 생각한다. 종이오리기는 종교 의식과 장식, 조형예술 등의 방면에서 사용된다고 하셨다. 종이오리기는 죽은 사람들의 명복을 빌기도 하고 벽, 문, 창분, 기둥, 거울 등과 초롱 등을 장식하는 데 많이 사용된다고 하셨다.

우리들은 그곳에서 날카로운 칼로 세심하게 종이를 파다보니 땀도 나고, 필이 아프기도 하였다. 그러나 장인들은 그것을 가위로 한다고 했다. 아주 세심한 부분까지도 가위로 다 하신다고 하여 탄성이 나왔다.

작품을 완성시킨 후 선생님의 평이 있었는데 내가 만든 착품이 잘한 작품으로 뽑혀서 정말 뿌듯했다. 그렇게 잘하지는 못했지만 정말 열심히 했기에 더욱 기분이 뿌듯했다. 이렇게 학습시간이 끝난 뒤에 강당에서 환영식이 있었다.

환영식 때 한성화교학교 친구들의 사자춤과 전통춤, 피아노 연주, 성악, 밴드부의 연주 등을 아주 멋있게 보여주셨다. 그 중간 중간에 우리 학교 아이들도 한성화교학교 교가와 가요 한 곡, 그리고 댄스도 보여주었다. 미흡한 점이 많은 우리에게 큰 박수와 격려를 해 주셔서 너무나도 감사했다. 이렇게 환영식이 끝나고 우리들의 방문을 축하하는 환영 만찬을 하러 갔다.

정통 중국음식을 먹을 수 있다는 생각에 정말 떨리고 기대됐다.

한성화교학교 선생님들께서 우리들이 조금이라도 불편해 할 까봐 너무너무 잘해주셔서 아주 맛있고 편안하게 환영만찬을 들었다. 손바닥을 쫙 펴서 두 개를 다 대어도 남을 만큼의 큰 접시에 여러 가지 중국 정통 음식들이 나오는데 정말 군침이 돌았다. 그래서 교장선생님의 인사말씀이 정말 길게만 느껴졌다. 눈에 보기 좋은 떡이 맛도 좋다는 말이 있듯이 그 음식들의 맛이란 정말 이루 말할 수 없이 맛있었다. 또 우리들을 깊이 생각하시는 마음이 눈에 보였다.

드디어 우리의 목적인 홈스테이를 하는 시간이다. 저녁 만찬을 하기 전에 설혜 아버님을 뵈었을 때 정말 인자하게 생기셨다는 생각을 했다. 정말로 설혜 아버님께서는 가족에게 인자하신 아버님 같았다. 정말 중국 정통 음식을 마음껏 먹고 우리들의 환영식은 아쉽게도 끝이 났다.

그리고 내 파트너인 설혜네 집에 갔다. 설혜네 집은 학교에서 조금 많이 떨어진 경기도 파주시에 살아서 집에 가는데 조금 시간이 걸렸다. 그 동안 설혜 아버님께서 이런저런 이야기도 해 주시고 서울 시내도 설명해 주셨다. 정말 자상하신 아버님이셨다. 그러는 동안 벌써 설혜네 집에 도착하게 되었다. 너무나도 기대를 했기에 시간이 어찌 가는 줄도 몰랐다. 드디어 설혜네 집에 도착했다. 설혜네 짐은 중국집을 하기 때문에 일층은 식당이었고 2층이 집이었다. 설혜네 집에 들어서는 순간 어머님께서 너무 반갑게 맞이해 주셨다. 정말 어찌 반갑게 맞이해 주시는지 내가 몸둘 바를 몰랐다. 그리고 어머님께서 간단하게 과일을 깎아다 주셨다. 그것을 먹으면서 설혜에게 팔지 만드는 법을 배웠다. 그 팔지는 단오 날이 되기 전(6월 25일)전에 비오는 날에 끊어서 빗물에 같이 띄어 보내는 것이라고 했다. 그것은 중국의 전통 풍습 같은 것 같았다. 그렇게 하면 자기 몸에 있는 병균들과 한해의 건강을 기원하는 것이라고 했다. 이런저런 이야기도 나누고 팔지도 만들고 하니 벌써 2시가 넘어가

고 있었다.

그렇게 아쉽게 하룻밤을 보내고 아침에 일어나서 아침식사를 하는데 김이 모락모락 나는 만두와 아침에는 입맛이 없다고 죽을 끓여주셨다. 정말 너무나도 세심한 배려에 정말 눈물이 났다. 아침식사를 마치고 설혜네 집에서는 학교가 많은 먼 관계로 아버님께서 학교까지 태워다 주셨다.

너무 편히도 학교에 도착했다. 한성화교학교에서는 일 주일에 세 번 아침조회를 한다고 했다. 월요일 수요일 금요일 이렇게 삼일 동안 아침조회를 한다고 했다. 그래서 금요일이기에 아침 조회를 하고 교장선생님께서 우리 방문단을 단상위로 올라오라고 하셔서 학생들에게 인사를 했다. 그리고 나서 조회가 끝난 뒤 과천에 있는 현대미술관에 갔다. 미술관에는 여러 가지 미술 작품들이 있었는데 정말 예술의 세계는 내가 생각하기에는 정말 어려운 것이라고 미술관을 견학하면서 다시 한번 느꼈다.

견학을 하고 바로 옆에 있는 서울랜드에 가서 이런 저런 놀이기구도 타고 유람도 하였다. 놀이기구를 너무 신나게 탄 나머지 온몸이 피곤했다. 버스를 타고 학교로 오는 내내 잠에 빠져 있었다.

이제는 다시 집으로 돌아가야 할 시간 어머님 아버님께서 너무 잘해주셔서 죄송하기까지 했다.

저녁에는 서울구경을 했다. 이대 앞에서 이런저런 것들도 구경하고 시내를 돌아다녔다. 시내를 돌아다니면서 저녁식사는 양식을 먹었다. 정말 너무 잘해주셔서 부담스럽기까지 했다.

남들이 그분들 사시는 모습 보는 것을 별로 탐탁치 아니하신다는 말씀을 들어서 걱정을 많이 했었는데 너무 친절히 잘해주셔서 정말 감사했다. 정말 나는 아빠와 그리 다정다감한 대화를 나눈 지 꽤 오래된 것 같아서 너무나도 부럽고 보기 좋았다.

그렇게 아쉽게도 마지막 밤이 흘러갔다. 이제는 너무나도 아쉬운

하루 학교에서 만두를 만들어 먹었다. 우리가 직접 만두피를 만들고 만두도 만들었다. 중국 전통음식인 만두를 만들어서 여러 사람들과 나누어 먹는다는 것이 정말 유익한 시간이었다.

그렇게 유익한 시간들이 흘러가고 헤어짐의 시간은 어김없이 오는 법 우리는 기차를 타기 위해 다시 버스에 올라탔다. 만남의 시간은 정말 짧은 법 만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것 같았는데 벌써 헤어져야 한다니 눈물이 나기는 하나 꾹 참기로 했다. 가차역에서 겔러리아 백화점을 둘러보고 집에 가져갈 이런저런 선물들도 샀다. 설혜에게는 우리들이 이대를 돌아다니면서 찍은 사진을 잘 보관할 수 있게 액자를 하나 선물했다. 정말 헤어짐의 시간은 너무도 빨리 오는 법 이제는 정말 기차를 타러 가야하는 시간이다. 기차역에서 아쉬움을 뒤로하고 한성화교학교 친구들과 마지막 인사를 나누었다. 정말 눈물이 나기는 하나 여름 방학 때 다시 한번 보기로 약속을 하고 이제 기차로 향했다. 부모님들도 너무 잘해주셔서 너무나도 감사했고 죄송하기까지 했다. 폐를 끼치지는 않았는지 정말 너무나도 감사드린다.

기차에서 논산으로 오면서 가슴이 너무 뿌듯했다. 정말 친가족처럼 너무 잘해주셔서 정말 잊지 못할 것이다. 홈스테이를 많이 해보지는 않았지만 정말 할 때마다 느끼는 것 이런 두 학교 사이의 교류가 끊어지지 않고 계속 유지해 나아갔으면 한다. 또한 우리 후배들도 이러한 경험을 했으면 한다. 정말 작으면 작은 학교와 학교간의 만남이지만 크다면 큰 중국과 한국의 만남이 기도 하다. 이렇듯 우리들이 다시 한번 가슴 뿌듯한 시간들을 만들었으면 한다. 또한 계속 유지시키는 것 또 한 중요하다. 다시 한번 이런 경험을 할 수 있게 해주신 선생님들과 한성화교학교 선생님들께 갚은 감사를 드린다. 또한 우리 논산여상 친구들과 한성화교학교 친구들의 우정은 영원할 것이다.

<인터뷰 1 - 한글문예반>

누구를 : 고3 한글문예반

이혜정 장유진 진실희

누 가 : 중2 한글문예반

성옥방 유청운 왕문기 진재영

언 제 : 2001년 6월 9일

어디서 : 학교 福利餐廳

우리는 인터뷰 안 해 주냐고 고3 언니들의 무언의 압력(?)이 없었던 건 아니지만, 어쨌든 이렇게 만나 인터뷰를 하게 되니 새삼스러웠다.

문예반 : 먼저 문예반 언니들의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이혜정 : 나는 고3-2반이고, 이름은 이혜정이야. 3년 동안 한글문예반 회장을 했지.

진실희 : 나는 같은 반 진실희고, 한글문예반에서 아무런 감투도 쓰지 않은 채 3년 동안 버텨온 그런 비중이 큰 인물이지!

장유진 : 나도 같은 반 장유진이고, 한글마당 그림 담당이지. 3년 동안 꾸준히 잘 버텨왔어.(안 쫓겨나고)

문예반 : 이 문예반을 하게 된 계기가 무엇이었는지?

이혜정 : 이 써클 처음에는 소연이가 들어가자고 유인했다, 근데 나는 별로 들어가고 싶은 마음이 없었어, 그때는 인원수가 너무 작았어, 근데 나중에는 소연이 말듣고, 선생님 말듣고 들어오게 됐고, 한글마당 편집하면서 재미있으니까... 그게 내가 들어온 계기 인 것 같아!

진실희 : 나 같은 경우에는 그때 우리 담임선생님이 학교에 안 오셨어, 그래서 권상기 선생님이 代課하러 들어왔을 때 그때 문예반 얘길 하시더라고, 평소에 낙서하는 걸 좋아하는 터라... 그리고 마음에도 들고 그래서 들어오게 됐어.

장유진 : 나도 소연이가 유인했어, 뭐든 원인은 쟤야!!

문예반 : 힘들었던 일 또는 기억에 남는 일은 무엇인지???

이혜정 : 힘들었던 일은... 인터뷰 한 걸 편집하는데 헤드굛 끼고 이어폰 끼고 정말 밤새도록 편집했던 일 또... 여러 가지로 얘들한테 많이 알려지고 싶으니까, 또 실어야 할 내용 같은 것도 알아보고 조사해오고, 그랬던 게 가장 힘들었던 것 같아.

진실희 : 나는 힘들었던 일이라 하면... 그때 혜정이가 편집한 걸 갖고 책 순서를 편집했거든.. 그 날은 학교가 쉬는 날이었는데 학교 가서 선생님들 책상에 앉아 편집하고, 그때 날씨가 더웠거든, 편집하면서 막 꾸벅꾸벅 졸고 그랬던 거, 그게 가장 힘들었던 것 같고, 그렇게 해서 한글마당이 나왔는데 반응이 되게 좋았어. 맨 처음에 하늘색인가.....? 그게 가장 기억에 남아.

장유진 : 기억에 남는 거라면 진짜 밤늦게까지 그림 그렸던 거.. 혼자 새벽 2시까지 꾸벅꾸벅 졸면서 한글이랑 마당이 탄생시키려고 얘들이랑 투표했던 거, 그래서 결국 뽑힌 게 지금의 한글이와 마당이야!

문예반 : 한글마당을 만든 후 느낀 점은....?

이혜정 : 한글마당이 나오면...앞에 순서가 어떻게 됐나, 표지는 우리가 원하는 색깔로 나왔나 또 앞에 제목 배열이나 이름 반은 틀리지 않았나, 이런 걸 기본 적으로 보게 되고, 다음에는.. 얼마나 재미있나 그러고 나가면 주위에서 이번에는 좀 그랬다 하면 얘들이랑 모여서 얘기해봐. 이번에 우리가 좀 신경을 안 썼으니까 다음에는 좀 더 열심히 만들자 뭐 이런. 마지막으로 비교해봐, 지금까지 한글마당이랑 얼마나 차이가 나는지...

진실희 : 나 같은 경우는 한글마당이 처음 나오면 먼저 쭉 훑어 봐서 지루할까 안 할까 그거부터 봐. 딱 보면 아무리 좋은 글이라도 읽기 싫은 글이 있잖아! 근데 항상 그래. 만들고 나면 후회돼. 더 잘 할 수 있었는데... 여기는 왜 이렇게 했을까? 저기는 왜 저렇게 했을까? 조금만 더 열심히 했으면 됐을 걸... 그리고 한글마당에 실린 내 글을 보고 난 왜 이렇게 이상한 글을 냈을까? 그런 내 글이 참 미흡한 거 같아.

이혜정 : 한글마당에 자기가 쓴 글을 봐도 아주 웃긴 게, 딱 보고 "어 이 문장 배열이 이상해"라고 다시 한 번 느끼게돼. 근데

그런 걸 보면 그래도 책 나왔다는 거 하나만으로도 되게 기쁘고 뿌듯해!!^^

장유진 : 나는 처음에 똑같은 제목이 겹치지 않았나, 그리고 옛날에 나왔던 사람들이 나오진 않았나, 그런 걸 보게 되. 역시 나와서 제일 먼저 느끼게 되는 건 "뿌듯함", "아! 해냈다" 이런 느낌인 거 같아!!!

문예반 : 만약에 한글마당을 사람들이 다 버린다면 어떻게 하시겠어요?

이혜정 : 만약에 버린다면 우선 주워야지. 다 주운 다음에는 누가 버렸는지, 나는 지구 끝까지 쫓아간다. 근데 애들이 버리는 이유가 뭐겠어?! 재미있으면 안 버리고 놔 뒀다가 나중에 자기 친한 친구 오면 "야 이거 읽어봐, 이거 재미있어"라고 할 수도 있을 텐데, 거기서 우리의 부족함이 딱 나타날 때 가장 마음이 아파...

문예반 : 회장 자리를 고 1에게 물려준 후의 심정?

이혜정 : 나는 솔직히 건정이한테 물려주고선, 아무리 못해도 글을 못 써도 맞춤법 틀려도 책임감만 있다면 할 수 있다고 봐. 정말 나도 지금껏 그래왔어. 무슨 일이든지 내가 추진해야겠다 그러면 애들한테 다 얘기해. 만약 애들이 안 간다, 그럼 나 혼사서라도 가. 왜냐면 내가 책임지지 않으면 애들이 다 흐트러지잖아. 그러 니까 애들을 조이고 그래야 돼. 근데 이번에 건정이한테 물려줬는데 솔직히 좀 불안하고 속상해. 왜냐면 건정이는 열심히 어떻게 해야하는지 그 자체를 모르는 거 같아! 그래서 열심히 한다면 할 수 있지만 안 하는 거 같아서 많이 걱정돼!!!

문예반 : 후배들에게 좋은 책을 추천한다면???

이혜정 : 내가 가장 추천해주고 싶은 책은 "탈무드", "홍당무","아낌없이 주는 나무"랑 "꽃들에게 희망을" 등이야. 깊이 생각해 보면 정말 좋은 책이야, "어린 왕자"도 그렇고.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이라는 책도 되게 좋아. 시집이라면... 윤동주 시집이 있어, 그거 한 번 읽어봐. 하여튼 좋은 책들이 너무 많아, 근데 많은 얘들이 그런 책들을 안 봐!

진실희 : 나 같은 경우는 법정 스님의 "무소유"라는 책이 있거든, 읽기도 편해. 그 책은 다 읽고 나중에 또 생각나는 그런 내용이야. 내가 그거 고1때 봤거든, 근데 아직까지도 그게 마음을 정리해주는 책이랄까? 또 이상 시집이나 이상 소설집을 봐봐. 그게 사람마다 해석하기 나름이야. 자아의 세계에 빠지고 싶은 사람은 이상 시집을 읽어봐!!!

문예반 : 가고 싶은 대학은???

이혜정 : 나는 홍대 동양화과 가서 사람들한테 그림이 얼마나 좋은 건지, 색깔이 얼마나 사람들한테 힘을 주는지 알려주고 싶어^^

진실희 : 나는 외국어대를 가고싶어. 외국어대를 가서 중문학과를 지원하고 그 정도로 영문을 하고, 이게 상당히 흔한 것 같지만 나는 옛날부터 그게 하고 싶었거든... 그래서 그렇게 하고 싶어!

장유진 : 나는 성대 사학과 가고싶어. 근데, 나도 일단은 지금 만화라는 그림을 그리고 있는데 생각해보니까 내가 과연 그걸 잘 할 수 있을까도 걱정이고 일단은 사학과를 나와서 나중에 뭔가를 하려고 하는 생각을 하기 때문에...

문예반 : 새 회장에게 바랄 게 있다면???

이혜정 : 뭐든지 다 욕심을 내면 잘 되거든. 그러니까 욕심 좀 냈으면 좋겠어. 그 다음에는 한글마당이 내 책이라 생각했으면 좋

겠어. 내가 만드는 책임만큼 내 책이란 생각과 내가 애들 다 관리 할 수 있고 통솔할 수 있는 능력, 그런 능력 하나쯤은 있어야 돼.

문예반 : 마지막으로 후배들에게 하고 싶은 말...^^

이혜정 : 써클 후배들한테는 항상 내가 얘기하는 거지만 "한글마당"을 자기 스스로 펴낸 책이라고 생각하고, 소중하게 한글마당을 모을 줄 알고, 또 책 많이 보고 느끼고 읽고, 내가 정말 이 책을 읽어 봐야 한다고 생각했을 때 비로소 그걸 딱 하는 거야.

진실희 : 나는 문예반 후배들한테 하고 싶은 말은... 한글마당도 그렇고 우리 써클 후배들이 많이 사랑해줬으면 좋겠어. 정말 기다려지는 써클을 만들었으면 좋겠어. 그리고 너희들이 후배들에게 많이 물려주고, 그런 다음에 아주 역사가 깊은 써클이 됐으면 좋겠어. 내가 후배들한테 해주고 싶은 말은 영어 공부를 열심히 했으면 좋겠어!!!

장유진 : 나는 너희가 많이 놀았음 좋겠어. 지금 하고 싶은 거 다하고 공부는 고1 때부터 해. 고1 때부터 해도 충분해. 젊었을 때 하고 싶은 거 다 했으면 좋겠어.^^

이렇게 인터뷰를 잘 마쳤다. 어떤 말들은 마치 우리를 보고 하는 말 같아 찔끔했다. 언니들, 부디 건강하세요. 우리도 좋은 한글문예반 만들어 볼 게요!!






<인터뷰 2 - 樂隊>

누구를 : 고3 樂隊 당충지 동원평 양응보

누 가 : 중2 한글문예반

여서진 정언운 초진련

언 제 : 2001년 6월 9일

어디서 : 학교 福利餐廳

평소 관심(?) 있는 樂隊 오빠를 인터뷰하게 되어 무엇보다도 설레었다. 잘 할 수 있을까 하는 마음도...... 어쨌든 시작해보자.

문예반 : 각자 자신에 대한 소개를 해주세요.

당충지 : 난 고3-2반 당충지라고 해.

동원평 : 난 동원평이야.

양응보 : 난 고3-2반 양응보야...

문예반 : 樂隊를 들어가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는지??

동원평 : 우선은 밴드부가 멋있게 보였고, 그리고 나도 악기를 하나쯤 다룰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들어갔어. 그리고 나는 樂隊를 중2 때 들어갔어. 또 친구가 있어서 들어가고 싶었고. 그리고 나는 중1 때부터 기숙사생이었어. 매일 할 일이 없는 거야. 매일 自習하는 게 지겹고, 그래서 樂隊를 하면서 시간을 보냈지.

당충지 : 중1 때 新生訓練할 때 선배들 연주하는 게 멋있게 보이는 거야. 그래서 나도 한 번 해볼까 하는 생각에 들어갔어.

양응보 : 난 말이야, 중2 때 친구가 꼬셔서 들어갔어. 공부도 하기 싫고. 公假도 많이 나오니까 들어갔어.

문예반 : 樂隊를 하면서 생긴 에피소드나 실수는 없었는지??

양응보 : 난 기억이 안 나는데...

동원평 : 아~~ 진짜 많은데...

문예반 : 그럼 동원평 손님께서 다 말해 주세요^^

동원평 : 우리 선배 중에 별명이 썸범이라는 선배가 있어. 그 형이 악기를 하다가 많이 고장을 냈어. 트럼펫 마우스피스가 꽉 끼면 마우스피스가 잘 안 빠지거든, 트럼본 마우스피스가 조금 커. 그것 갖다 툭툭 치면 그게 떨어진다. 그런데 그걸로 막 치다가 완전히 부러진 거야. 그래서 그 선배가 장난 아니게 맞은 적이 있었지. 그리고 또 칼을 뽑아라 라고 있어.. 트럼본 알지?? 그 속에 긴 줄 두 개가 있어.. 한 쪽이 부러진 거야. 옆으로 휘어 가지고... 근데 계속 그걸로 불었어.. 한동안 안 걸렸다... 그 큰형이 두목 원숭이야... 그 꺼거가 "이게 뭐야?? 칼을 뽑아라야??" 하는데 진짜 재미 있었어... 그런 일도 있었고... 그리고 또 연습하다가 쉬는 시간이 있었어... 나하고 내 친구하고 같이 기숙사에서 라면을 부셔 먹고 있었어... 그런데 형이 불렀다... 우린 아직 다 못 먹어서 더 먹고 가려고 안 갔어... 근데 형이 또 부르는 거야... 올라갔다... 갑자기 빠따를 들고 오는 거야. 다 엎드려 뻗치래... 형 두 명이 때리는 거야... 진짜 아프잖아. 그래서 그 날 엉덩이 부어 가지고 서서 연습했어..

당충지 : 우리 중3 때 기숙사생끼리 돈 모아서 술 마시러 갔어.. 홍대에 XXX라는 데가 있어... 내가 그때 좀 착했어. 경찰 올 까봐 긴장하고 있는데, 딱 맞게 경찰이 왔어. 선배들하고 경찰서에 끌려갔어. 진술서 쓰래. 술 마신 사람 눈감고 손들래(옆에 있는 동원평을 가리키면서). 근데 얘는 손을 안 들었어. 그래서 경찰이 음주 측정기가 있으니까 손들라고 계속 그러는 거야. 그래서 옆에 있는 선배가 옆구리를 쿡쿡 찌르니까.. 들까 말까 고민하다가 들었어... 그래서 진술서 썼는데 또 썼어. 그래서 많이 혼났어..

문예반 : 밴드부를 하면서 가장 만족스러웠던 적은 언제인지???

양응보 : 우리가 연주회를 다하고 사람들이 박수 쳐주고 우리를 알아줄 때.. 그때가 제일 만족해..

동원평 : 나는 연주 할 때 보는 악보 있지. 그거 매일 똑같은 건

할 수가 없으니까... 메일 새로운 악보를 줘.. 못하면 못하는 건데.. 할 수 있으면 정말 기뻐.. 난 그때 가 제일 만족스러웠던 거 같아..

당충지 : 난 별로 만족한 적이 없었어... 잘 한 적이 없었으니까.. 만족했던 적이라면 행사 할 때가 참 만족스러워..

문예반 : 그럼 가장 힘들 때는 언제였는지?

동원평 : 처음 악보를 나누어 줄 때 우선은 처음 보는 거고 연습도 해야 하고 안 되는 것도 많고 그때가 힘들었어. 물론 지금은 쉽지. 그리고 내 위에 있는 선배들도 졸업하고 내 파트너들도 졸업하니까 나 혼자잖아. 혼자서 책임을 다져야 하니까 많이 힘들었어.

당충지 : 나는 樂隊隊長이다 보니까 많이 힘들었던 것 같아. 그리고 우리 級이 제일 많거든. 의견도 안 맞고 후배들이 협조를 안 하니까 많이 힘들었어. 그리고 특히 맞을 때 참~~ 많이 힘들었어.^^;

양응보 : 연주회 하기 전에 연습을 많이 해야 되거든. 그때가 제일 힘들었어.

동원평 : 난 樂隊 들어가기 전에 입술이 진짜 예뻤어. 정말 앵두 입술이었고 그랬는데, 근데 樂隊 들어오니까 이렇게 됐어^^

문예반 : 연주를 하면서 가장 긴장될 때는 언제였는지??

양응보 : 그건 맞는 말이지. 연주회 하면 당연히 긴장되지. 누구나 다 똑같지 않냐???

동원평 : 우리 12월 달에 연주하잖아. 우리 연주를 들으러 오는 사람이 많으니까 긴장되지. 만약 사람이 없으면 긴장 안 하지. 솔로 할 때도 사람 없으면 긴장 안 하는데, 실수해도 실전이 아니니까 괜찮다. 근데 밑에 사람이 많잖아. 기회도 한 번밖에 없으니까 실수하면 안 되잖아. 그래서 많이 긴장돼.

당충지 : 나도 마찬가지야.

문예반 :공연을 자주 하는데 매 번 시작 전에 드는 생각은???

양응보 : 이건 다 똑 같아. 잘하자. 연습 한 만큼만 하자..

동원평 : 나도 그 생각밖에 안 해.. 잘하자.. 뭐.. 그 정도..

당충지 : 나도 그 정도...

문예반 : 그럼 공연이 끝난 후에 드는 생각은??

동원평 : 좀 더 연습할 걸..

양응보 : 후회하지.. 근데 뿌듯하지.. 사람들한테 우리 연주를 들려 줬으니까...

당충지 : 다 똑같은 것 같아..

문예반 : 공연이 끝난 후에 무얼 하는지??

양응보 : 보통 거의 다 집에 가...허무해.. 학교에서 파티 안 해 주면 우리한테 파티는 없어..

문예반 : 후배들이 대견해 보일 때는 언제였는지??

양응보 : 이것도 다 똑같아..고3이 빠지잖아..근데 걔네들끼리라도 한 곡을 훌륭하게 해낼 때 대견스럽지..

당충지 : 우리가 없어도 되는구나..많이 컸구나...

문예반 : 후배들이 안쓰러워 보일 때는 언제인지??

양응보 : 이것도 다 똑같아.. 週會 때, 開會 때 . 특히 週會 때 애들이 협조를 안 해. 사람이 별로 안 나와. 그때 애들 표정 보면 정말 안쓰러워. 원래 고3 第二學期 되면 안 나오는데 사람이 없어서 계속 나오는 거야..

문예반 : 선, 후배 사이는 어떤지??

양응보 : 사이 좋지~~ 학교처럼 사람이 많지 않으니까.. 더 챙겨 주고..

동원평 : 다만 후배들이 사랑스러울 뿐이야..

문예반 : 서클 선생님에 대한 추억이 있다면...??

동원평 : 선생님 집에 놀러 간 거랑, 합숙 훈련..

당충지 : 우리가 고2쯤에 선생님 집에 많이 갔어..그 근처에 호수 공원이 있어.. 거기서 놀고. 밥도 많이 사주시고...

동원평 : 음악회도 많이 갔지...

양응보 : 다른 학교 음악회 하는 것도 많이 갔어.. 선생님 집에 놀러간 것도 기억나고...

문예반 : 우리 동기 중에 呂.., 陳.., 劉.., 王.., 가 있는데 평소에는 공부도 안하고 학교에 놀러 오는데.. 이번 공연은 참~열심히 하던데.. 선배님께서는 어떻게 보는지??

당충지 : 중2 쟤네 있잖아.. 누돌푸...맞지??

양응보 : 열심히 해... 흠 같은 것도 없고.. 나쁜 점도 없어.. 지금 선생님들이 공부 못하는 애들이 밴드부 들어간다고 하잖아.. 근데 나는 밴드부도 하나의 공부라고 봐.. 쟤네들은 이게 더 적성에 맞을 수도 있어.. 밴드부를 하면 머리가 좋아져.. 왜냐면 악보 같은 걸 빨리빨리 봐야 하니까.. 보통 사람들은 음악 교실에 가 가지고 (박자 맞추는 것) 그것하고 그러잖아. 우리는 그걸 하나하나 빨리 손가락으로 다 하니까 오히려 쟤네들은 더 잘 할 거야.. 그리고 열심히 해...

문예반: 졸업이 얼마 안 남았는데..후배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양응보 : 사랑한다 얘들아~~~~~

동원평 : 열심히 해라~~~

양응보 : 그게 아니고...우리가 없더라도 열심히 이끌어 나갔으면 좋겠고.. 이건 전통적인 건데 말이야.. 위에 위에 위에서부터 아래까지.. 다 그 말하면서 끝냈어.. 나는 밴드부를 일으켜 세우지 못했지만.... 일으켜 세우지 못했지만 너희가 일으켜 세우라고.. 지금 우리 級가 제일 많아.. 우리 나가면 거의 심각하다.. 우리 없다고 기죽지 말고 더욱더 열심히 했으면 좋겠다..

동원평 : 우리 12월 달에 연주회 잘하면 나온다~~ 아마도 나올

거야...

당충지 : 난 나올 거야..

양응보 : 12월 달에 우리가 와서 연주해 줄 거야.. 졸업하더라도 사람이 없으니까 우리가 와서 해줄 거야.. 열심히만 해주면은..

문예반 : 학교에 바라는 점이나 하고 싶은 말은 무엇이 있는지??

동원평 : 두발자유화~~~ 두발자유화!!

양응보 : 누구나 학교에 바라는 점이야 많을 텐데.. 원래 밴드부 는 예술이거든.. 예술을 하는 사람이야.. 이건 말이 되는지 안 되는지 모르겠는데, 밴드부 하는 사람은 머리를 기르게 해줘야 된다고 생각해.. 그렇다고 해서 내가 머리 기르겠다는 게 아니라. 근데 初中 때는 다 머리 기르고 싶어 하니까.. 원래 예술을 하는 사람들은 다 머리가 길잖아, 하하하.

동원평 : 철학자는 막 머리도 안 감고..

양응보 : 그리고 악기 좀 바꿔 줬으면 좋겠어. 악기가 너무 후져 가지고 애들이 안 들어오려고 그래.. 처음에 들어오면 정말 찌그러진 것 가지고 연습해.. 한 명이 나가면 그때서야 반짝반짝한 악기를 손에 넣을 수 있어.. 그것도 순서대로 내려오지..

동원평 : 난 4년 만에 반짝반짝한 악기를 손에 넣었어...

양응보 : 나도 1년. 그러니까 악기 좀 많이 사줬으면 좋겠고.. 왜 舞龍, 舞獅, 舞蹈 그런 社團 보면은 公假도 잘 내준다.. 솔직히 그거 公假 많이 내줘야 된다고 쳐도.. 樂隊 같은 경우는 많이 내주면 내줄수록 좋은데.. 애들이 公假 때만 나오고 딴 때는 안 나오 려고 해. 樂隊도 다른 써클이랑 똑같이 公假도 많이 내주고.. 그렇게 해야 한다고 건의하고 싶어..

동원평 : 못해도 일주일에 한번 정도는 내줘야지...

양응보 : 舞獅 뭐..그런 社團은 무슨 행사 때만 모이잖아.. 근데 樂隊 같은 경우는 월요일, 화요일, 금요일 또 따로 연습을 해.. 매일.. 기숙사생 같은 경우는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아~~수요일 빼고.. 연습해.. 樂隊가 제일 심하게 연습한다.. 그런데도 公假 때

보면은 다른 써클 애들도 수업 끝나고 연습해도 되는데.. 하필이면 公假 내주고.. 다 公假 좋아하는데.. 그러니까 우리도 좀 그렇게 해줬으면... 야!! 내가 다 말했지??? 근데 내 말이 맞지 않냐??

당충지 : 그래.. 니가 다 말했어..

문예반 : 서클 홍보한다면 어떤 점이 있는지??

동원평 : 우선 악기 배우면 좋지..우리 선배 중에 대학 들어간 선배도 있고 안 들어간 선배도 있다.. 대학 들어가서 밴드부를 했다.. 악기를 불 줄 안다 하면 여기 저기에서 너 악기 했어?? 그러고 교수님도 뭐라고 할까?? 특별 대우하나?? 아무튼 그래..대학 들어 갈 때도 편하고..

앙응보 : 나 같은 경우는 음악 거의 다 빵점 맞았다.. 樂隊를 하면서 다 했어.. 왜냐면 악보를 봐야 되니까 하나하나 배워야 되.. 나도 그 콩나물 보는 거 있잖아, 그거 진짜 못했어. 안 들어오려고 했는데. 막상 樂隊 들어오면 어쩔 수 없이 그걸 다 알게 된다.. 야..정말 거짓말 안하고 머리가 좋아져 확실히.. 여러 가지 악기 많으니까 개성대로 할 수 있어.. 여자들도 다 할 수 있고.. 樂隊 보면 평소엔 별 볼일 없지만 막상 연주회 같은 것 하면 애들 와 가지고 환호성 지르고.. 재미있잖아.. 그런 게 우리도 만족하고,,홍보한다 면은 머리 좋아지고 선생님들도 좋아해.. 음악 조금 못해도 樂隊 라고 하면은 그냥 시켜주고.. 애들 음악 같은 경우 不及格 많잖아.. 근데 선생님한테 선생님 저 樂隊예요 하면은 조금 틀리면 그게 아니지 하면서 가르쳐 주셔..

모두 끝냈다. 여학생 부대장 언니는 수업 때문에 인터뷰에 참가하지 못했다. 그 점이 아쉬웠고, 오빠들이 너무도 잘 말해 주어서, 고마워요~~, 오빠!!



<인터뷰 3 - 의상디자인반>

누구를 : 고3 의상디자인반

왕기민 후유림 두경애 이세령

누 가 : 중2 문예반 소유영 왕가문 위홍이

언 제 : 2001년 6월 9일

어디서 : 2층 導師辦公室

바쁘게 준비하여 힘들었지만 언니들과 함께 인터뷰를 시작했다.

문예반 : 언니들 소개 좀 해주세요.

디자인반 : 음..난 디자인반 회장, 나는 무용반도 맡고 있어, 나는 후유림, 나는 이세령.

문예반 : 디자인반에 들어오게 된 계기는요?

디자인반 : 나는 처음에 들어오기 싫었는데, 선생님이 해야 된다고, 대학가서 다해야 하는 것들이라고 그래서 들어왔는데..잼있어

나는 짝꿍이 옆에서 십자수를 하는데 잼있어 보여 가지고 너무 하고 싶어서 들어온 거야. 그리고 바느질에도 관심 있고 해서..

나도 선생님이 하라고 해서 했고, 기숙사에서 할 일도 없고 소질도 있고 하니깐 기타 등등 ..

나도 선생님이 들어오라고 했고 얘들 하는 거 보니깐 잼있을 거 같아서 하고 싶었어 .

문예반 : 디자인반의 선후배 사인 어떤지?

디자인반 : 우리 서클 안엔.. 고3이랑, 중1밖에 없어. 그리고..중1 애들이 너무 내성적이라 우리를 아주 무서워해. 그래서 그거 외엔 뭐 선후배 사이 나쁜 건 없어. 우릴 좀 안 무서워했으면 좋겠어

문예반 : 지도해 주시는 선생님은 어떠신지요?

디자인반 : 선생님... 좋아~ 먹을 것도 사주시고 우리 선생님은 뭐든지 다 빨리빨리 하시는 거 같아. 그때 정하면 그때그때 다 해놓는 거 같아. 그리고 선생님이 계획하신 일에는 항상 충실히 다 하시는 것 같아. 일을 미루신 적이 없으셔. 준비물도 다 챙기시고. 근데... 첫인상은 무서우셔(?) 근데 같이 지내다보면 시원시원하시고, 잼있고 좋아~~

문예반 : 5월5일 행사 때 힘들었던 점은요?

디자인반 : 음... 시간이 너무 빡빡해서 준비를 해야 하는데 고3이니깐 공부할 것도 많고, 그때마다 시험이 있거나 그럴 때 좀 힘들었어 당일은 힘들 게 별로 없었어

문예반 : 행사 때 기억나는 일은요?

디자인반 : 많지~~ 애들이 많이 사주고~~ 우리가 졸라서 사주고, 같이 만들고 행사 끝나고 디자인반끼리 밥도 먹으러 갔어 남은 거 하나씩 갖고 잼있었어

문예반 : 행사 때 돈은 얼마나 벌었는지요?

디자인반 : 그거는 국가비밀이야 솔직히 우리도 잘 몰라 그리고 뭐 돈 벌려고 한 것도 아니고... 우리도 본전 빼면 얼마 못 벌었어

문예반 : 남은 돈은 어디다가 썼는지요?

디자인반 : 재료값하고 뭐 밥값 같은 거에 썼어 우린 재료비 가 비싸니깐 다 그런데다가 썼어 .

문예반 : 십자수 말고 해보고 싶은 건 없는지요?

디자인반 : 음... 치마 만드는 거 우린 아직도 소품 같은 거 밖에 안 만들어 봤어 지갑이나, 바느질 그런 거밖에 못했거든..그리고 시간이 별로 없어서 못했어


문예반 : 새로 될 회장에게 하고싶은 말..?

디자인반 : 자기가 맡은 일은 충실히 다 하고 그리고 꼬박꼬박 서클에 참가하고 선생님 말씀도 잘 듣고

문예반 : 후배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디자인반 : 우리 너무 무서워하지마~~ 선생님도 좋으신 분이니까 편하게 대해. 어렵게 대하면 대할수록 선생님이랑 친해지기 힘드니깐..

문예반 : 써클 하다가 짜증나는 일이 있으면 어떻게 하는지 궁금해요.

디자인반 : 안 해 그냥 안 해 버려 정말 할 일이 없으면 하는데... 근데... 하다보면 십자수는, 하다보면 거기에 빠져서 시간 가는 줄 몰라 2~3 시간씩 금방이니깐

문예반 : 서클에 대한 바람이 있다면요...

디자인반 : 뭐가 있을까...? 음... 앞으로 더 많은 발전이 있었음 좋겠고, 애들도 좀 많이 들어왔으면 좋겠어. 그렇다고 너무 많이 들어오면 선생님이 힘드시니깐. 그리고 열심히 안 할 거면 아예 들어오지 말고 열심히 할 사람만 들어 왔음 좋겠어

문예반 : 학교를 떠나는 심정은요?

디자인반 : 음... 시원섭섭 시험 보면서도 학교 떠나면 다시 학교에서 수업 못 하니깐. 그리고...아직 안 믿겨. 꼭 방학하는 거 같아 그리고 교복 입는 것도 얼마 안 남았고..학교 다니면서..못해본 것도 많고

문예반 : 앞으로 계획은요?

디자인반 : 대학에 가서 얼굴에 먹칠하지 않는 그런 화교가 될 거야 대학도 꼭~~꼭~~ 졸업해야지

문예반 : 지금 서클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요?

디자인반 : 서클은 월,화,수 점심 때 선생님이랑 같이 모여서 하

고 선생님이 내주는 숙제 해오고... 뭐 숙제라고 하긴 그렇고... 자기 취미지~ 나중에도 자기 심심풀이로 할 수도 있고, 돈도 벌 수 있고, 옷도 만들어 입을 수 있고, 쿠션 같은 것도 만들고... 만약 대학가서 디자인과 들어갈 사람이면 디자인반에 들어와야 돼~~

문예반 : 마지막으로, 고2때까지만 해도 공부를 안 하던 언니가 이 써클 활동은 아주 열심이라고 하던데요?

디자인반 : 그게 고3이 되면 자기 책임감이 있으니깐... 대학에 가려면 자기 행동 하나하나에 최선을 다해야 돼. 그러니깐 열심히 하는 거야... 그리고 선생님도 무서우니깐

이렇게 한 시간 정도의 인터뷰를 마쳤다. 처음 해보는 인터뷰라 어색도하고 했지만 언니들이 잘 해주어서 제대로 끝낼 수 있었다.

언니들, 고마워요!! 그리고 졸업 축하해요!!














<특집 - 신촌문화축제응모작품>

- 이 작품들은 이번 5월에 있었던 신촌문화축제의 활동 중 '신촌문학상'의

번외 공모 부분인 '6행시'부문에 응모한 작품입니다. - 편집자

高 2-2 車 玉 潔

신 : 신한국에 거주하는 화교로서 한 마디 하련다!

촌 : 촌스럽다. 이놈들아! 한국과 중국의

문 : 문화와 역사를 그런 식으로 왜곡하다니......

화 : 화가 난다. 내가 봐도......

축 : 축배를 들자! 일본 상품 타도를 외치며

제 : 제국주의 일본은 역사 앞에 반성할지어다.

高 2-2 呂 秀 美

(최고 득표 작품)

신 : 신창원이다!

촌 : 촌스럽지만 꽤 예쁜 티를 입었네!

문 : 문정동에서 샀어? 신촌에서 샀어?

화 : 화장도 했네?

축 : 축하? 잡혔어도 마음은 편할 걸?

제 : 제 아무리 홍길동 신창원도 죄 짓고는 할 수 없구먼!

高 2-2 王 培 盟

신 : 신촌에서 문화축제를 합니다. ^.^

촌 : 촌에서 축제한대요. 빨리 오세요.

문 : 문화의 차이를 보여드리겠습니다.

화 : 확실하게 보여드리겠습니다.

축 : 축하해 주세요!

제 : 제일 재미있고 기억에 남는 날이 될 것을 확신합니다.

高 2-3 李 東 優

신 : 신이시여!

촌 : 촌티 안 나고 예쁜 여자

문 : 문제가 있어도 사랑할 수 있는 여자

화 : 화장을 안 해도 예쁜 여자. 같이 있으면

축 : 축복을 받을 수 있는 그런 여자를 저에게

제 : 제발 보내 주세요~~~

高 2-3 張 煥 文

신 : 신이시여!

촌 : 촌에 살고 있는 촌닭인 나를

문 : 문화적이고

화 : 화려한 신촌문화

축 : 축제에

제 : 제발 데려다 주~~우

高 2-3 裴 敬 華

신 : 신령님도 행차허시는구먼유~~~

촌 : 촌놈도 나가는구먼유~~~

문 : 문란함과는 거리가 멀구먼유~~~

화 : 화려한 거리에서 눈이 어지럽고도 행복하구먼유~~~

축 : 축복 받은 축제구먼유~~~

제 : 제 아무리 귀신이라 할지라도 이 젊음의 열기를 말을 수는 없

을 것이구먼유~~~

高 2-3 欒 世 章

신 : 신촌에서 아름다운 그녈 만났네

촌 : 촌놈 같은 나를 보고 웃어주었네

문 : 문득 그녀의 마음을 알아버렸네

화 : 화사한 내 얼굴이 활짝 피었네

축 : 축복이라도 하듯이 하늘에선 눈이 내렸네

제 : 제기랄! 눈길에 미끄러졌네......

高 3-4 呂 嘉 媛

신 : 신나게 뛰어 놀지 못하는 꿈 많은 얌전한 소녀가 있었습니다.

촌 : 촌에서 자란 그녀는 몸이 약해서 늘 꿈 얘기만 했습니다.

문 : 문제들은 하나하나 잘 풀어주며 아이들을 가르치는 선생님이 되는 꿈

화 : 화가가 되어 이곳저곳 아름다운 풍경들을 작은 스케치북에 담 고 다니는 꿈

축 : 축제에 가서 멋진 왕자님을 만나 결혼해서 행복하게 사는 그 런 유치한 꿈... 오 하느님

제 : 제발 그 소녀의 꿈들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高 3-4 高 曏 雯

신 : 신기한 물건들이 모여 있는 곳!

촌 : 촌스럽게 옷을 입어도 개성으로 여겨지는 곳

문 : 문화인들도 즐겨 찾는 곳

화 : 화교들의 만남의 장소

축 : 축제의 분위기로 항상 열려 있는 곳

제 : 제대로 만들어 낸 곳, 그 곳은 바로 신촌입니다.

高 3-4 王 姿 煢

신 : 신촌문화 축제가 열린답니다.

촌 : 촌에서도 사람들이 모여들지요.

문 : 문화축제가 열리는 날엔

화 : 화창하게 날씨도 좋습니다.

축 : 축복 받은 어린양처럼 사람들은

제 : 제일 행복해 보입니다.

高 3-4 韓 仁 賓

신 : 신나게 춤을 춰요

촌 : 촌스런 옷을 입어도 괜찮아요.

문 : 문을 활짝 열어 놓을 게요.

화 :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

축 : 축제가 시작됐으니

제 : 제대로 한 번 즐겨 봐요.

高 3-4 姜 仁 元

신 : 신선한 공기와 따뜻한 햇빛이 모여 있는

촌 : '촌마을'이란 이미지를 가지고 있지만

문 : 문득 다시 살펴보니, 현란한 도시의 거리

화 : 화합이 잘 이루어져 있는 거리

축 : 축복 받은 시민들의 거리

제 : 제일로 소중한 만남의 장소이다.

高 3-4 牟 德 京

신 : 신선함과 순수함이 있던

촌 : 촌스러운 옛 모습을

문 : 문득 떠올려 얘기 나누며

화 : 화기애애한 분위기에 웃을 수 있게 해준 그들

축 : 축 늘어진 어깨에 힘이 되어 주는

제 : 무엇보다도 소중한 친구들입니다.

高 3-4 孫 玉 楗

신 : 신나고 즐거운 추억들만 기억해요

촌 : 촌도 아닌 신촌의 거리를 헤매던 시절도 같이 기억해요

문 : 문제 생기지 않고 언제나 HAPPY하게 보낸 학창시절...

화 : 화려하진 않지만

축 : 축제 같은 분위기이었던 우리들의 추억들

제 : 재밌고 즐거웠어, 친구들아 사랑해

高 3-4 蓋 珍 雯

신 : 신기하게도 한 번 두 번 자꾸 마주치게 됩니다.

촌 : 촌스러움의 이미지를 지니고 있는 그이.

문 : 문득 생각이 날 때면

화 : 화가 나고, 인상을 쓰고 우울해질 때도

축 : 축 쳐진 기분임에도 불구하고 다시 웃곤 합니다.

제 : 제 마음을 좌우하는 사랑하는 마음

<정보가 있는 페이지>

재미난 핸드폰 연주!

인터넷 자료

먼저 핸드폰이나 전화를 준비하시고 그대로 따라해 보시기 바랍니다. 옆에 선생님이 있는데도 수업시간에 하면 책임 못집니다.

1. 텔레토비

9939~~ (보라돌이~~) #6~~ (뚜비~~) 93~~ (나나~~) 1~~~ (뽀오~)

9939~~ (텔레토비~~) ##6#~~~ (텔레토비~~)

여기까지 한 다음에 귀여운 목소리로, "친구들 안녀~~엉~~"

2. 개나리

93939#3 3931232 93939#9 *321231

3. 주먹 쥐고~

33211 22 321 99633 21231 33699 ## 963 33699 ##9 33211 22 321 99633 21231

4. 무엇이 무엇이 똑같을까~

139 139 ###9 666 333 2221

5. 퐁당퐁당 돌을 던지자~

1233 139#9 1233 139#9 #93 2212 399 ##9# *** 99 321 2313 999 236 321

6. 따르릉 따르릉 비켜나세요~

399 399 ##### 9999 6666 33333 3999 399 ##339 6666 3333 22991

7. 잘자라 우리 아가~

363 2121 166 69#9 215 215 6 3 3 6369 ####9#* 9 9 9969* 9#9 3692...

8. 학교 종이~

99##993 99332 99##993 93231

<올림픽 이야기>

제27회 2000년 시드니 올림픽 - 세 번째

체육 교사 李 敬 子

[체조] 예외 없는 규칙 적용 I.O.C 反도핑 의지 재확인

감기약 때문에 날린 '비운의 체조 요정' 안드레아 라두칸(16.루마니아)의 금메달은 譻내 돌아오지 않았다.

라두칸의 이의 신청에 따라 소집된 IOC 산하 스포츠 조정위원회는 이틀 동안의 논의 끝에 IOC의 결정을 지지하기로 최종 결정했다. 조정위원회는 "라두칸이 고의로 금지 약물을 복용하지는 않았지만 약물에 대한 규칙은 전 선수에게 공평하게 적용돼야 한다는 점과 IOC의 강력한 反도핑 의지를 알린다는 측면에서 IOC를 지지한다"고 설명했다.

이로써 IOC는 여자 체조 개인 종합 경기 직후 받은 약물 검사에서 흥분제인 슈도에페드린이 검출된 라두칸의 금메달을 박탈하기로 결정한, 3일 동안 지속된 논란에 마침표를 찍었다.

옥타비안 벨루 루마니아 팀 코치는 "감기약 한 알 때문에 금메달을 박탈한 결정은 지나쳤다"고 불만을 표시했다.









<이런 이야기>

서울 '최고령' 1010세 굴참나무 공해 속 생명력 꿋꿋한 '神木'

문화일보(2000/03/13)

우리나라 국보 제1호가 서울 남대문(옛 숭례문)이라면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나무 1호는 어디일까. 이른바 서울 시민을 지켜주는 신목(神木)의 '연세'는 어느 정도이고, 도심 환경오염에도 불구하고 생명력은 어느 정도인가.

서울시와 자치구가 지정한 보호수현황을 조사한 결과 관악구 신림동 산 112-1에 있는 굴참나무(천연기념물 제271호)가 수령1010년으로 최고령을 기록했다. 이 굴참나무는 둘레 296cm에 수관 폭 20m, 수고 18m달한다. 1000년 전 고려의 강감찬 장군이 이곳을 지나다 짚고 다니던 지팡이를 꽂아놓은 것이 자라서 우리 최고의 나무가 됐다는 전설이 전해오고 있다. 이 나무를 보고 있노라면 생명에 대한 경외감을 새삼 느끼게 된다. 관악구는 새 천년을 맞아 굴참나무를 보존하고 홍보하기 위해 이 나무의 종자와 꺾꽂이순을 채취, 양묘장에서 증식한 후 시내 공원 등에 보급할 계획이다.

최고령 2위는 서울 종로구 삼청동106 총리공관 내에 있는 등나무. 천연기념물 제254호인 이 나무는 수령이 920년으로 추정됐다. 나무 밑동의 지름은 60cm, 길이는 16m인데 총리공관 뜰에서 자라 일반인들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았다.

3위는 서울시 지정보호수 제1호인 도봉구 방학동 546의1 은행나무와 금천구 시흥동 836-24 은행나무, 서초구 서초동 1748-10 향나무로 조사됐다. 이들 나무는 수령이 모두 830년 정도로 추정되는 보호수들이다. 방학동 은행나무는 높이 24m, 둘레 9.6m의 거목으로 인근 원당마을 주민에게 '추앙'받는 신성한 상징물. 마을 주민들은 해마다 이 나무 아래에서 떡과 음식을 차려놓고 마을의 안녕과 번영을 기원하는 '제사'를 지낸다. 이밖에 중구 정동의 회화나무, 강남구 도곡동 느티나무 등이 수령 825년, 730년으로 뒤를 이었다.

살아있는 나무를 베지 않고 어떻게 나이를 알 수 있을까. 임업전문가들에 따르면 살아있는 나무의 나이를 잴 때 '상징추' 라는 드릴을 사용한다. 이 드릴로 나무를 뚫게 되면 젓가락 굵기 정도의

나무심이 드릴의 빈 공간으로 뽑아져 나온다는 것. 아무의 크기에 따라 직경 4.3mm와 5.15mm의 드릴 2종류를 많이 쓴다. 나이가 많아 나무 속이 비어있는 경우에는 역시 드릴로 나무를 뚫어 비어있는 곡선의 크기를 잰 다음 비슷한 환경에서 자란 나무의 나이테를 비교해 추정해낸다. 나이테가 잘 구분되지 않거나 일정하게 형성되지 않은 나무는 '연륜연대학적 기법'을 이용하기도 한다.

충북대 임학과 박원규 교수는 "나무의 나이테는 환경과 역사의 기록"이라며 "다양한 계산기법을 이용하면 1년 단위 또는 계절 단위에서 수 천년까지의 연대 측정도 가능하다"고 밝혔다. 특히 환경전문가들은 이들 신목의 생명력에 대해 "도심 환경오염이 큰 영향을 미치지만 인간들이 조금만 신경 써 관리한다면 앞으로도 상당기간 장수 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진단했다.


<이런 이야기>

예절과 문화생활 2 - 호텔 이용법

한국4-H신문(2001/03/15)

곧 여름 방학이다. 여름 방학을 맞아 해외 여행도 많아질 때이다. 해외 여행을

할 때 알아두어야 할 호텔 이용법을 적어 본다. - 편집자

예약에서 투숙까지

여행을 떠나기 전에 호텔을 예약해두는 것이 안심도 되고 경비면에서도 이익이다. 예약 없이 호텔에 도착해서 방을 요구하면 규정 요금을 다 받는 경우가 많기 때문. 그래서 여행을 많이 다니는 사람들은 불가피하게 사전 예약을 못했을 때 호텔에 도착하기 2~3시간 전에라도 전화로 예약을 하고, 그동안 다른 볼 일을 보다가 투숙하기도 한다.

외국의 고급호텔에서는 비록 체크아웃시 투숙료를 현금으로 받더라도 체크인할 때에는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신용카드 제시를 요구

하는 경우가 많다. 이는 요금지불에 따른 문제를 미연에 방지하려는 것. 따라서 해외여행에는 반드시 신용카드를 지참하는 게 좋다.

호텔에 도착하면 일단 프런트에서 등록카드를 작성한다. 이름과 국적, 여권번호, 주소 등을 적도록 되어 있는데, 특히 주소는 자세히 적는 것이 좋다. 호텔 체크아웃 후에 배달된 서류나 우편물을 받기 편하기 때문이다.

호텔에서의 기본 에티켓

⊙ 체크 인이 늦어질 경우에는 사전에 연락해 둔다.

⊙ 체크 아웃은 오전 11시에서 정오 사이에 한다. 시간을 초과

하면 요금을 더 내는 수가 있으므로 주의한다.

⊙ 복도, 로비, 레스토랑 등 공공장소에서 큰 소리로 떠드는

것은 금물, 특히 로비는 여러 나라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므

로 특히 언행에 주의한다.

⊙ 엘리베이터를 타거나 내릴 때 다른 사람을 밀치는 행위는

결례다. 여성이 있을 경우 "After you, please"하면서 양보

한다.

⊙ 객실에서 라면 등 취사는 금지돼 있다.

⊙ 객실에서 여러 사람이 모여 화투나 카드놀이는 제발 참아주

세요.

⊙ 리조트 호텔을 제외하고 일반 호텔에서 잠옷이나 반바지,

슬리퍼 차림으로 복도를 활보하는 것은 스스로 비문화인이

라고 광고하는 행위.

⊙ 사용한 침대는 대충이라도 정리해두는 게 예의다.

⊙ 욕조를 사용할 때에는 커튼을 욕조 안쪽으로 넣은 상태로

쳐서 물이 밖으로 튀지 않도록 한다. 외국 호텔의 욕실에는

물이 빠지는 하수구가 아예 없는 곳이 많으므로 특히 주의

해야 한다.

⊙ 욕실에는 보통 세 종류의 타월이 비치돼 있다. 작은 타월은

손이나 얼굴을 간단히 씻을 때, 중간 타월은 샤워 후 몸을

닦을 때, 큰 타월은 샤워 후 몸을 감쌀 때 쓴다.

호텔 서비스 이용법

⊙ 캐셔(Cashier): 호텔에서 환전은 24시간 가능하고 공휴일도 이용할 수 있지만, 수수료는 시중 은행보다 바싼 편이다.

⊙ 귀중품 보관함(Safety Box): 호텔은 객실 도난사고에 대해 일 절 책임지지 않는다. 따라서 고가품이나 귀중품, 현금은 맡겨 두는 것이 안전하다.

⊙ 룸 서비스: 객실로 음식을 주문하는 룸 서비스는 레스토랑보 다 10~15%정도 비싸다. 식사 후 식기는 냅킨으로 덮어서 문밖 에 내놓는다.

⊙ 행거 메뉴: 아침 일찍 식사를 하고 싶을 때에는 전날밤에 행 거 메뉴(Hanger Menu)에 미리 주문을 해놓고 객실문 바깥쪽 손잡이에 걸어두면 지정된 시간에 음식을 가져온다.

⊙ 미니 바(Mini Bar): 객실 냉장고와 선반에는 음료와 주류, 스 낵류 등으로 미니바가 갖춰져 있다. 미니바를 이용하면 비치 된 계산서에 직접 표시해 놓고 체크아웃 시에 계산한다. 미니 바는 호텔 밖 상점에서 비해 값이 무척 비싸므로 너무 많이 사용하지 않는 게 낫다.

⊙ 모닝 콜 서비스: 교환에게 객실 번호와 아침에 일어나야 할 시간을 알려주고 전화로 깨워달라고 요청한다. 전화를 받으면 감사를 표한다.

⊙ 메이크 업(Make up)서비스: 외출시 청소를 해주고, 저녁에는 오픈 베드 서비스를 해주는데, 방해받고 싶지 않을 때에는 DD(Do not Disturb)카드를 객실 문 손잡이에 걸어둔다.

⊙ 세탁(Laundry)서비스: 세탁물을 주머니에 넣고 의뢰서에 의류 표시, 성명, 객실번호, 일자 등을 써둔다. 오전 10시 이전에 부탁하면 다음날 아침에 배달 받을 수 잇다. 급할 때에는 의 뢰서에 Express 혹은 Sameday Servive라고 표기하면 된다.

⊙ 콘시어지(Concierge): 호텔 프런트 데스크 주변에 있는 콘어 지 데스크에는 관광명소, 교통편, 주변 식당정보 등 고객의 웬만한 문의사항을 처리해 주는 안내인이 별도로 있다. 현지 사정에 어두워 도움이 필요하거나 문제가 발생한 경우 콘시어 지에게 요청하면된다.

<역사의 유적을 찾아서>

창덕궁

한국4-H신문(2001/03/15)

조선시대 궁궐. 사적 제 122호인 창덕궁은 종로구 와룡1동에 위치하고 있으며 조선 제3대 태종이 1405년 한성의 향교동(鄕校洞)에 지은 궁궐로서, 그 뒤 여러 임금들에 의해 보완공사가 계속되어 1412년에는 돈화문이 건립되었고 세조9년(1463)에는 약 62,000평이던 후원을 넓혀 총 150,000여 평에 달하는 규모가 되었다. 인정전(仁政殿), 선정전(宣政殿)등 많은 전당을 짓고 12년에 돈화문(敦化門)이 준공되어 궁궐의 면모를 갖추었다.

선조 25년(1592년) 임진왜란으로 소진되었던 것을 선조40년(1607)에 중건하기 시작하여 광해군 2년(1610)에 공사가 끝났으나, 다시 1623년 3월 인조반정 때 인정전을 제외한 대부분의 전각이 소실되어 인조 25년(1647)에 복구가 완료되었다.

조선왕조 500년의 5대 궁궐 중 가장 잘 보존되어 온 궁궐이 창덕궁이다. 오랜 세월 왕궁이었던 까닭에 이곳에서는 많은 정변이 일어났었다.

세조 즉위로 인하여 생긴 사육신의 참형을 비롯해 광해군에 대한 인조반정, 사도세자의 애닮은 죽음, 최근세의 1882년 임오군란과 1884년 갑신정변, 일제침략으로 우리 주권이 날로 침해되자 1907년 만국평화회의 장소인 헤이그에 밀사를 파견하자 일제가 강제로 고종을 순종에게 양위케 한 사건 등 망국의 비통을 겪었다. 조선왕조 최후의 임금 순종(1907~1910년)은 1926년에 승하할 때까지 창덕궁에서 거처했으며 1965년 순종비 윤비도 이곳 낙선재에서 세상을 떠났다. 노환의 몸으로 60여 년만에 일본으로부터 환국한 영친왕도 낙선재에서 운명했다.

창덕궁은 조선왕조 후기의 대표적 구조양식을 지닌 인정전, 임금과 왕비의 거처로서 용마루가 없이 지어진 대조전, 그밖에 낙선재, 자정당, 취운정, 희정당, 금천교, 낙국, 어차고와 기타 정원수, 비원 등이 잘 보존되고 잇다.

1405년에 경복궁 다음으로 건립된 별궁이었으나 제9대 성조

(1470~1494년)때부터는 역대임금이 거처함으로써 본궁이나 다름없는 궁궐이 됐다.

창덕궁은 광해군 때 정궁으로 쓰게 된 뒤 약 300년 동안 역대 제왕이 정사를 보살폈으며, 지금도 인정전과 그 주위의 무랑을 비롯하여 대조전과 낙선재 등 궁내의 주요 전각들이 남아있는데, 창덕궁 내에 13동, 비원 내에 28동, 모두 41동이 현존하며, 다만 인정문 앞의 회랑과 인정전, 그리고 대조선 사이의 부속건물 및 낙선재 앞 건물들이 없어졌을 뿐, 왕궁의 장중함과 그 규모가 잘 보존되어 있다.

창덕궁도 경복궁과 같이 1592년의 임진왜란 당시 소실되고 많은 병화를 당했으나 19년 후인 1611년에 광해군에 의해 중건돼 1910년 한일합방 시까지 295년간 왕궁으로 사용됐다.


보신각종

3.1절과 광복절에 33번 종소리를 울려주는 보신각종은 종로 네거리 바로 동남쪽에 자리잡고 있는 서울 명물의 하나이다.

84년 제야의 종소리를 마지막으로 500여 년 동안 타종되었던 보신각종은 둘레에 금이 가 박물관에 옮겨진 종은 구경 2.47m, 높이 4.12m인데 이 큰 종은 세조 원년(1455년)에 주조된 것이다. 이보다 앞서 태조 7년(1398년), 임금이 권중화란 사람에게 명하여 경기도 광주에서 주조된 종이 있어, 군사 1,300명을 동원시켜 이것을 운반하여 지금의 종로 운종가에 종루를 짓고 그 안에 걸어 놓았었다.

조선시대 궐내에는 금루관(禁漏官)이 있어 누각을 관장하여 경점군사(更點軍士)가 종루에 시각을 알리면 종각군사는 종을 울려 성문의 폐쇄를 알렸으며 통행금지가 시작되는 것이다. 이것을 인정(仁政)이라고 불렀는데 인정종은 초경(初經.밤10시)에 28번 쳤고 이에 따라 4대문이 굳게 닫혀졌었다. 동시에 남산의 봉수대(烽燧臺)는 횃불을 오려 성내와 근교 주민이 횃불을 보고 성문이 닫힘을

확인토록 했었다. 인정 후 성밖에서 서울 성내로는 공무이외의 통행이 금지되었다.

새벽 오경(五更.4시 경)에 울리는 종은 파루(罷漏)라고 하여 33번 울려 각 성문이 일제히 열렸고 통행금지가 해제되며 교통이 시작되었다. 이와 같이 몇 백년동안 시민들에게 쉬는 시각을 아려주던 곳이다. 보신각이란 명칭은 고종 32년(1895년) 3월 15일 동명의 편액을 걸게된 이후 생긴 것이며 1915년부터 6.25사변 전까지는 현재의 위치보다 약간 앞쪽에 나와 있었다.

종각은 대지 492㎡에 건물면적 48㎡이다. 보신각종이 균열되어 영구보존이 어려워짐에 따라 보신각종은 박물관에 두고 새로운 종을 만들어 이곳에 걸어두어 타종한다.








열 여덟 번째 <한글마당>을 마치고 나서

졸업을 앞둔 고3들을 인터뷰한다고 중2 애들이 무얼 물어볼까 서로 머리를 짜내는 모습이나, 바쁘게 다니는 모습들이 보기 좋았습니다. 처음인데도 이만큼 잘 해 주었는데도 혹시라도 모자랐던 모습이 보이면 너그러이 대해주지 못한 게 지금에서야 마음이 아픕니다. 너무도 애썼다고 칭찬해 주고 싶어요.

모두들 기말고사 잘 보고 좋은 방학 보내길 바랍니다.

- 權







韓國漢城華僑中學 <한글마당>通卷18號

發 行 . 漢城華僑中學 韓語韓文敎學硏究會

總編輯 . 權相基

編 輯 . 한글문예반

그 림 . 劉靑雲

發行日 . 中華民國 90年 6月

住 所 . 서울 서대문구 연희3동 89-1

印 刷 . 正元文化社