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마당

17호 2001년 5월

우리들의 이야기

시, 수필

이번 봄에 내가 하고 싶은 것

TV 감상문

할 얘기가 있어요

쉬어 가는 페이지

아버지

특집

고3 학생들이 본 화교에 대해

韓國漢城華僑中學

韓語韓文敎學硏究會









차 례

<여는 시> 나의 나무 中2-2 徐蕙蘭 1

봄 高2-3 裵敬華 2

이번 봄에 내가 하고 싶은 것 中2-1 無名氏 中2-2 楊義甋 3

中2-3 王小英 周培芸 賀常煢 5

<쉬어 가는 페이지> 아버지 - 책<평교사는 아름답다>에서 9

<시> 봄 中1-3 楊世逸 11

봄비 中1-2 魏晟旭 12

밤하늘 中2-2 鄒美慧 12

여행 中3-1 劉英秀 13

땅은 바보야 中1-1 王祖平 14

교실 中1-2 由善春 15

사랑을 하고 싶다 中1-1 陳信潔 15

자유 中1-3 臧慧珍 16

과거 中2-1 孔慶世 17

자유 中1-1 陶進光 18

인형 뽑기 中1-1 李俊賢 18

사랑하는 아빠 中3-1 王汝眞 19

<우스개 소리> 시험 때, 이런 애들 꼭 있다! - 인터넷 자료 20

소풍을 앞두고 中3-1 王得方 中3-3 李秀珍 22

나의 하루 中3-1 孫小琪 23

오늘 中3-1 無名氏 24

전학 온 뒤 나의 생활 中3-1 衛懋禎 25

지난 화이트 크리스마스를 생각하며 中3-3 劉祥媛 26

일본의 역사 왜곡에 대해 中3-3 郭明季 27













졸업을 앞두고 中3-1 張鈞怟 28

고3 그리고 나의 포부 高3-4 鄒美靜 28

나의 과거와 미래 高3-4 孫玉楗 30

<한국의 名詩 감상> 高3-4 王紀敏 32

<쉬어 가는 페이지> 너에게 - 인터넷 자료 34

<기행문> 태국을 다녀와서高3-4 牟德京 36

<독서 감상문> <허준>을 읽고 中1-2 孔世美 37

<TV 감상문>

<역사 스페셜 "고선지">를 보고 高2-2 李慧萍 38

<피플! 세상 속으로>를 보고 高2-2 李慧萍 40

<문어의 모정>을 보고 高2-2 趙晏莉 41

<짧은 戱曲> 두통 中2-1 孔慶世 43

<할 얘기가 있어요> 이번 봄에 中2-1 無名氏 44

<특집> 고3 학생들이 본 화교에 대해

화교에 대해서 - 그 장점과 단점 譚道經 46

華僑의 弱點 高3-4 姜仁元 46

화교들의 장단점 高3-4 牟永豪 49

화교의 단점 高3-4 呂美蘭 52

우리들의 문제점 高3-4 張菁怡 54

화교의 문제점 高3-4 牟德京 55

화교의 문제점 高3-4 畢鑑龍 57

화교 학생에 대해 高3-4 楊美娥 58

화교의 정체성 高3-4 王暦娟 59

화교의 문제점 高3-4 李在羲 60

화교의 사명감 譚道經 62













<우스개 소리> 할인 슈퍼마켓 - 인터넷 자료 66

<올림픽 이야기> 제27회 2000년 시드니 올림픽 李敬子 67

<과학상식>

광우병이란? - www.today365.net 68

석빙고 - 한국교육신문 70

<이런 이야기>

말(言)의 고향을 찾아서 - 한국4-H신문 71

예절과 문화생활 - 한국4-H신문 73

<역사의 유적을 찾아서> 덕수궁 - 한국4-H신문 75

편집을 마치고 78













<여는 시>

나의 나무

中 2-2 徐 蕙 蘭

햇살로 큰다.

잎으로 푸르름을 말한다.

세월의 흔적으로

하나씩 껍질을 벗는다.

생명의 표현으로

푸르게 일어선다.

나의 나무





봄

高 2-3 裵 敬 華

겨울은 나의 못 다한 소망과 바람 그리고 꿈들과 함께 묻혀지고, 시간은 흘러 일년의 대계를 이루는 봄이 찾아와 나의 숨겨져 있던 희망들에게 또 한 번 기회를 주는 듯 합니다.

봄, 겨울 동안 얼어 있던 모든 사물들에게 생기를 주는 계절. 겨울 동안 식어 있던 모든 열기에 불씨를 심어주는 계절. 봄, 겨울 동안 실의에 차 있던 세상에 용기를 주는 계절. 그런 봄이 지금 소리 없이, 하지만 확실하게 우리의 생활에 스며들고 있습니다. 사람들의 옷차림과 행동에서, 온갖 동물들의 활동과 성장에서, 온갖 빛깔과 온기에서 봄은 역시나 이미 그 큰 발자국을 내려찍은 듯 합니다.

이런 봄이 찾아 왔습니다. 사실 매년 이러한 일은 되풀이되어 왔고 언제나 그러하겠지만, 이것은 단지 자연적인 현상일 뿐이지만...... 사람들은 겨울의 추위를 알고 이미 겪어 봤기에, 이전 봄의 따스함을 기억하고 그리워하기에, 그들은 봄을 기다렸고 이내 봄의 도래에 즐거워하는 거겠죠! 그리고 수많은 곳에서 새로운 각오와 다짐으로 또 새로운 일을 꾸미고, 일을 시작하고, 사회 분위기의 고조에 더욱 더 박차를 가하고 있을 겁니다. 시간이 조금 더 흐르고 나면 이내 여름으로 치달을 것입니다.

봄은 우리에게 새로움을 주고 새로움을 추구할 수 있는 삶은 틈을 줍니다. 언제나 이것을 잘 이용한 사람들만이 봄을 가장 잘 이해하는 사람들이겠죠. 봄이 우리에게 부여한 이 점은 우리가 필요해서 요구해온 것이 아니라 자연의 순리대로 이루어진 것이겠죠. 우린 지금 이 시점을 충분히 이용하고 있을까요?

'춘곤(春困)'이란 말이 있듯이 봄은 사람들에게 기회를 주지만 역시 또한 우리에게 나른함이란 것을 줍니다. 이에 사람들은 봄의 이 점을 무시해 버리기도 하죠. 여기서 '노력'의 소중함을 다시 한 번 느끼게 됩니다. 봄이 우리에게 준 그만큼의 권리만큼 우리도 의

무적으로 '노력'을 행해야 봄의 진정한 의미를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요?

봄은 이제 단지 오고 있다기보다는 이미 왔다고 생각하는 게 좋을 듯 합니다. 그만큼, 우리가 이득을 취할 수 있는 기간이 적어졌단 뜻이기도 하죠. 그러므로 우린 더욱 열심히 일을 해야 합니다. 이에 또한 '노력'이 빠질 순 없겠죠?

단지 몇 주만 더 지나면 여름이 오겠죠? 그리고 사람들은 봄을 잊을 겁니다. 그에게 주어졌던 기회를, 그에게 주어졌던 순간을. 그리고 시간은 더욱 흘러 겨울에 다다르면 사람들은 다시 한 번 봄의 따스함과 편안함을 그리워하며 이미 포기해 버린 자의 고통과 추위 속에서 발버둥치겠죠. 하지만 결국엔 봄은 그들에게 다시 한 번 기회를 줄 겁니다. 그 다음해도, 그 다음해도, 또 그 다음해도...... 영원히...... 봄을 버리고 후회하는 사람이 없을 때까지......



이번 봄에 내가 하고 싶은 일

中 2-1 無 名 氏

나는 이번 봄에 실천할 만한 일을 몇 가지 계획해 봤습니다. 우선 학업에 관해서는, 계획표를 짜서 매일 한 시간 정도 꾸준히 공부해서 성적을 향상시키는 거죠. 저는 매번 시험 땐 "벼락치기"를 하죠. 비록 성적은 잘 나오지만, 그렇게 공부하면 소용이 없죠.

그리고 좀더 많은 친구를 사귀고 싶어요. 그럼 당연히 성격부터 고쳐야겠죠. 저는 잘 화내고, 매사에 꼼꼼한 탓인지 조금만 건드려도 기분이 상하죠. 그래서 좀 털털하게 살고 싶어요.

또 저는 목소리가 큽니다. 말도 많고...... 그래서 수업 시간에

많이 지적을 받지요. "말 좀 그만해라", "소리 좀 줄일 수 없니?" 항상 이런 말을 들었지만 고치기는 좀 힘들군요. 그래서 최소한 수업 시간에는 말을 덜 하려고요.

음...... 하지만 제가 정말 하고 싶은 건 따로 있어요. 어떤 고1 오빠인데요, 저는 그 오빠를 중1 때부터 알았어요. 한 눈에 반했죠. 하지만 그 오빤 제가 부담스럽다나요! 그래서 그 오빠를 보면 아는 척도 못하겠고. 하지만 이번 화이트데이에 오빠가 저에게 사탕을 줬어요. 너무 고마워서, 너무 기뻐서 정신을 차릴 수 없었어요. 하루 종일 헬렐레하고 다녔어요. 그래서 전 오빠가 그래도 조금은 날 생각하는구나 하고 무지 좋아했죠. 하지만 그 후에도 오빠는 날 보면 모르는 척하고, 그래서 참₀ 슬퍼요. 저는 오빠하고 단 한 번만이라도 아는 척하고 지냈으면 좋겠어요. 저는 오빠가 제 마음을 알아줬으면 좋겠어요.

이상, 제가 이번 봄에 하고 싶은 일들입니다.














이번 봄에 내가 하고 싶은 것

中 2-2 楊 義 甋

하늘도 쨍쨍하고, 풀 향기도 나는 걸 보니, 벌써 봄이 왔나 보다. 이제 겨울을 보내고, 새 봄맞이를 한다.

봄이 되면 나는 공부를 열심히 해 볼 계획이다. 중학교 올라와서 공부를 너무 안 했기 때문이다. 이제부터라도 공부를 열심히 해서 꼭 성적을 올리고 싶다. 옛말에 "一年之計在於春"이란 말이 있듯이, 일년 계획을 봄부터 차근차근 시작하는 게 옳다고 생각된다. 나도 어서 공부를 잘 해서 부모님을 기쁘게 해 드리고 싶다.

하지만, 공부를 열심히 잘 하려면 끈기와 노력이 필요하다. 만약 끈기가 없다면 공부를 쉽게 포기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중에, 나중에......' 하면서 결국 하지 않는 공부, 이게 바로 지금의 내 모습인 것 같다. 노력이 필요한 이유는, 그 사람이 노력한 만큼 그 대가를 얻는 것이기 때문이다. 공부를 같이 했어도, 노력한 사람과 노력 안 한 사람의 결과 차이는 크다. 나도 끈기와 노력을 더해 공부를 열심히 하고 싶다.

봄이 왔다. 날씨도 따뜻하고, 딱 공부하기 좋은 계절인 것 같다. 나도 공부를 열심히 해서, 꼭 새봄 계획을 이루었으면 좋겠다.



이번 봄에 내가 하고 싶은 것

中 2-3 王 小 英

봄이 왔습니다. 추운 겨울은 봄의 향기와 열기에 놀라 달아났습니다.

저는 이번 봄에 하고 싶은 일이 많이 있습니다. 대강 말하면, 봄방학 때 스쿼시, 등산, 공부, 피아노 등을 하고 싶습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가장 하고 싶은 것은 스쿼시입니다.

제 잠버릇으로 미루어 보아, 제가 밤마다 꼭 스쿼시 라켓을 잡고 있는 것처럼 합니다. 사실, 전 작년에 한 달밖에 없는 시간을 투자하여 열심히 스쿼시를 했습니다. 라켓도 못 잡는 이 풋내기가 뭔 스쿼시를 하냐고요? 자 엄마가 시키신 거예요. 하지만 재미있었어요.

이번 봄방학에는 좀더 유익한 시간을 보낼 거예요. 여러 번 이런 계획을 짰지만 모두 수포로 돌아갔어요. 어찌나 아깝던지! 그래서, 난 열심히 좋은 계획을 짜겠어요. 열심히 공부도 하고, <헤리포터> 시리즈도 많이 볼 거예요. 등산, 운동도 빠짐 없이 하면서 여러 새로운 글도 쓸 거예요. 그리고, 누가 봐도 놀라운 소영이가 될 거예요.

언제나 봄은 나에게 이런 생각을 심어주죠. 앞날이 좀 힘들겠지만, 전 끝까지 하고 싶은 일은 하고야 말겠어요!(우히히∼!) 또 수포로 돌아가지 않으려면, 지금 이 순간부터 꾸준하게 해 나갈 거예요. 피곤하겠지만......



이번 봄에 내가 하고 싶은 것

中 2-3 周 培 芸

나는 봄을 좋아한다. 추운 겨울이 가고 조금씩 봄이 온다는 것을 느끼게 하는 그런 따뜻함은, 단지 날씨만이 따뜻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까지 따뜻함과 설렘으로 가득 차게 만든다.

겨울의 날씨는 너무 우중충해 보인다. 날씨가 맑은 적은 거의 없을 정도. 그렇지만 봄은 사람의 사기를 높이고, 일의 의욕을 갖게 하는 무언가 마술이 있는 것 같다. 비록 날씨가 춥다 갑자기 따뜻

해져 수업 시간에 졸린다는 것을 뺀다면 말이다.

나는 제일 먼저 봄에 하고 싶은 일은 야외 소풍, 나들이를 가는 것이다. 예쁘고 향기롭게 핀 들꽃과 잔잔하게 핀 잔디밭에 누워 맑은 하늘을 바라보고 있으면, 정말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할 것 같다. 이런 행복은 산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행복 가운데 하나이다.

그리고, 나는 봄이 되면 살을 뺄 것이다. 여름이 머지 않아 다가올 테니까...... 맞다, 봄에 살을 뺀다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그 식욕을 어찌 다 참겠는가! 그 대신 나는 운동을 할 계획이다. 황사 때문에 피해를 안 볼 운동을 골라서 말이다.

비록 겨울에 따뜻한 오뎅 국물을 먹으며 체온을 높였던 따스한 추억거리들을 또다시 할 순 없겠지만, 나는 그래도 봄이 좋다!



이번 봄에 내가 하고 싶은 것

中 2-3 賀 常 煢

봄...... 새싹이 파릇파릇 돋아나고, 온 세상이 싱그런 봄바람과 따스한 햇살 아래 긴긴 겨울 동안 얼어 있던 몸은 하나 둘 기지개를 폅니다. 그리고, 예전과 같이 봄은 또 "시작"이라는 단어를 사람들에게 되새겨줍니다.

한 학기의 시작인 봄, 일년의 시작인 봄, 만물이 분주하게 움직이는 때인 만큼 많은 사람들이 봄에 대한 기대와 계획을 가지고 봄을 맞이합니다.

제가 올 봄에 하고 싶은 일은... 자연과 가까워지는 것입니다. 요즘 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바쁜 생활 속에서 자연과 거리가 점점 멀어집니다. 길을 걷다가 올려다보면 보이는 파아란 하늘과 갖가지 모양의 구름, 길모퉁이에 핀 작은 꽃......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예쁜 자연의 모습을 우리는 점점 잃어 가는 것 같습니다.

몇 년 전까지 저는 거의 한 달에 한 번씩 할머니 댁에 가곤 했습니다. 강원도에 있는 할머니 댁에서 있었던 모든 일은 아마 제 기억 속에 오랫동안 고이 남을 것입니다. 집 앞에 넓게 펼쳐진 논, 농부 아저씨들의 분주한 손놀림, 닭장에서 들려오는 닭들의 소리, 알록달록 예쁘게 물든 산...... 아! 정말 듣기만 하여도 편안한 느낌! 사촌 언니들과 뒷산에 올라 산딸기를 따먹기도 하고, 이모들과 사촌들 모두 손에 봉지 하나씩 쥐고 냉이 쑥 등 봄나물을 뜯으러 가기도 하고...... 봄만 되면 문득 생각나는 추억들입니다.

음... 할머니 댁에 간지도 꽤 된 것 같네요. 올 봄에 꼭 다시 할머니 댁에 가보고 싶습니다. 날로 발전하는 세상, 더불어 자연과 점점 멀어지는 사람들, 바쁜 일상 생활 속에서도 조금의 여유를 내어 자연과 친해지는 것은 지금처럼 공해 문제가 심할 때 더욱 필요한 일이 아닐까요?















<쉬어 가는 페이지>

아버지

최홍이 씀. 열림원. <평교사는 아름답다>에서

아주 어렸을 때에는 아버지가 최고라고 생각합니다. 초등학교에 입학한 후에는 아버지보다 선생님이 더 높게 보입니다. 중, 고등학교 시절에는 아버지나 선생님보다 친구들이 더 좋아집니다. 대학생이 되고 나면 아버지는 초라해 보이고 항상 시대에 뒤떨어진 분처럼 생각됩니다. 그야말로 아버지는 한없이 '작게' 보이고 자신은 굉장히 '크게' 보입니다.

이러한 환상과 착각은 결혼하여 자녀를 키우면서 흔들리기 시작합니다. 나이가 들면 들수록 아버지가 크게 보이고 위대하게 생각됩니다. 부끄러웠던 아버지가 마침내는 자랑스럽게 느껴집니다. 멀리했던 아버지가 사랑스런 분으로 느껴지며 더욱더 가까이하고 싶어집니다. 이렇게 달라지는 것은 그 동안 아버지가 변했거나 발전했기 때문이 아닙니다. 다만 아버지를 보는 자녀의 눈이 달라진 것뿐입니다. 젊었을 때는 교만함이 깨져 겸손해지고 보니 아버지가 완전히 새롭게 보이는 것입니다. 다음은 네덜란드의 어느 잡지에서 뽑은 것입니다.

나이에 따라 달라지는 아버지

4세 때의 아버지 : "우리 아버지는 뭐든지 할 줄 알아."

7세 때의 아버지 : "우리 아버지는 꽤 많이 알고있어."

8세 때의 아버지 : "우리 아버지는 아는 게 그리 많지는 못해."

12세 때의 아버지 : "우리 아버지는 아는 것이 별로 없어."

14세 때의 아버지 : "우리 아버지 말씀이군요! 그분은 지나칠 정도

로 구식이라고요."

21세 때의 아버지 : "아 그 양반 말씀이시군요! 그분은 약 1세기쯤

시대에 뒤떨어진 분이랍니다."

25세 때의 아버지 : "우리 아버지는 아는 것이 많지는 않지만 그래

도 어느 정도는 알고 계신 것 같아요."

30세 때의 아버지 : "아버지께서 이 일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고

계신지 알아봐야겠어요."

35세 때의 아버지 : "결정을 내리기 전에 우선 아버지와 한 번 의

논하고 싶어요."

50세 때의 아버지 : "만약 아버지께서 내 입장이라면 어떻게 하실

까?"

60세 때의 아버지 : "우리 아버지는 정말로 모르는 것이 하나도 없

는 분이셨어!"

65세 때의 아버지 : "만약 아버지의 말씀을 다시 한 번들을 수 있

다면 참 좋으련만....."



<시>

봄

中 1-3 楊 世 逸

봄은 다시 우리 곁으로 돌아왔습니다.

파릇파릇한 새싹

따뜻해진 날씨

겨울잠을 자던 모든 동물들도 봄이 되면

모두 깨어나게 됩니다.

난 봄이 되면 파란 하늘이 제일 좋습니다.

파란 하늘에 날아다니는 새처럼

새로 시작하는 마음으로

봄을 맞이합니다.

봄은 언제나 우리 곁에서 맴돌고 있습니다.

삼 백 육 십 오일이 지나면 봄은 다시 옵니다.

난 이번 봄이 지나면 또 기다릴 것입니다.

또 다른 봄을......









봄비

中 1-2 魏 晟 旭

이슬이슬 내리는 봄비

와글와글 소리에

겨울잠을 자던 동물들이

이 소리를 듣고 일어났습니다.

꽃봉오리도 이 소리를 듣는 듯

꽃봉오리를 터트렸습니다.

이젠 겨울의 추운 날씨는

비와 함께 사라졌습니다.

따뜻한 봄이 왔습니다.




밤하늘

中 2-2 鄒 美 慧

어느새 하늘이

보랏빛으로 물들고......

나는 밤하늘을 보며

하루를 정리한다.

밤하늘을 보며 복잡한

마음을 정리하고......

하늘의 별을 보며 내일을 약속한다.

여행

中 3-1 劉 英 秀

시험이 끝나고 소풍을 갑니다.

소풍 가는 날이 멀지 않았습니다.

가슴이 두근거려요.

소풍 가는 전날에는 잠이 안 올 것 같아요.

너무 기대돼요.

친구들과 같이 모여서 놀면 너무 재미있을 것 같아요.

버스 안에서도

노래 부르고 춤추면 너무 재미있을 것 같아요.

점심 시간엔 맛있는 도시락을 먹으면......

빨리 소풍 가는 날이 왔으면......

소풍 간다고 생각하면

너무도 두근거리고

자꾸 웃음이 나요.

재미있는 상상을 해요.

친구들과 사진도 찍고

같이 놀이기구도 타고......

이런 상상을 하면

자꾸 웃음이 나와요.

너무 기대가 돼요.

졸업여행 갈 때만큼의 설렘......

기대 반 설렘 반이에요.

빨리 소풍 가는 날이 왔으면

아니 내일이 소풍 가는 날이었으면

정말 좋을 텐데......

땅은 바보야

中 1-1 王 祖 平

땅은 바보야

우리가 아무리 짓밟아도

우리가 아무리 침을 뱉어도

가만히 있기만 하니까......

땅은 바보야

더러운 쓰레기가 올라와도

더러운 음식물이 올라와도

가만히 있기만 하니까......

하지만 나는

아무리 짓밟아도

아무리 침을 뱉어도

더러운 쓰레기가 올라와도

더러운 음식물이 올라와도

가만히 있는 바보 같은 땅이 좋다.

바보 같은 땅이 없으면

우리는 이 세상에 살 수 없을 것이다.

나는 언제나

바보 같은 땅을 사랑할 것이다.

교실

中 1-2 由 善 春

교실은 학생의 존재를 알리는 곳

교실은 학생의 쉼터이기도 한 곳

교실은 학생을 심심하지 않게 하고, 공부할 수 있게 하고,

교실은 그런 곳이다.

교실에서 보내는 시간은 평생 잊지 못 하는 시간이다.

교실은 학생의 꿈과 희망이 담겨 있다.

어쩔 땐 울고, 웃고, 싸우고, 힘들 때...... 교실은 작은 테두리가 되어 줬다.

교실은 그런 곳이다.

교실의 낡은 의자, 오래된 책상 모든 것이 나에겐 소중하다.

친구들과 선생님 모든 사람들은 다 교실에서 첫 만남을 가진다.

교실은 그래서 편한 곳이다.

교실은 그런 곳이다.



사랑을 하고 싶다

中 1-1 陳 信 潔

노을이 떠오르는

한강에

사랑하는 사람과 같이

노을을 구경하면 하는 생각......

나는 당장 거리로 나가

내가 좋아할 만한 사람을 구해

한강의 노을을 구경하고 싶다.

하지만 내 나이 겨우 열 네 살

어디에서 그런 남자를 만날 수 있는지......

겨우겨우 찾아내도 나보다 큰 나이......

나는 날마다 혼자서 노을을 구경해야 하나?

나도 사랑을 하고 싶다.

그래서 노을을 함께 구경하고 싶다.



자유

中 1-3 臧 慧 珍

우리는 언제나

자유를 원한다.

교실에서도

이곳에서도

나가고 싶어한다.

그래서

우리는 한 마리의 아기새처럼

자유롭게

파란 하늘을 날고 싶어한다.

그리고

자유로워지기를 바란다.

언제나.


과거

中 2-1 孔 慶 世

사람은 오래 살면 살수록

죄를 짖게 된다.

사람의 생각은

모두 과거가 지배하게 되는데

사람이 다른 이유도

살고 있는 과거가

다르기 때문이다.

사람이 과거를

모두 이해하고 받아들일 때......

죄를 회개할 수 있지 않을까

자유

中 1-1 陶 進 光

나는 자유로워지고 싶다.

다른 사람들도 한 번쯤 자유로워지고 싶다고 한다.

엄마가 잔소리를 하면 또 생각이 난다.

선생님이 때릴 때도 생각이 난다.

시험을 볼 때도 생각이 난다.

이럴 때만 되면 너무나 짜증이 난다.


인형 뽑기

中 1-1 李 俊 賢

난 인형 뽑기를 좋아한다.

왜?

통 안에 있는 인형을 뽑는 것이 좋다.

하지만

아무도 이런 생각은 하지 않는다.

무슨 생각?

통 속에 있는 인형에게는 자유가 없다.

그게 왜?

왜냐하면 마치 우리와 같기 때문이다.

우리는 인형 뽑기 통이 아닌

공부의 통 속에 빠져있다.

사랑하는 아빠

中 3-1 王 汝 眞

불룩 나온 배, 하얀 머리, 얼굴엔 주름살이 가득한 우리 아빠. 우리 아빠는 배가 수박처럼 큽니다. 일명 "아저씨 배". 전 그런 아빠를 보면 놀리지만 맘속으로는 그 배가 너무나도 좋습니다.

그 뜨거운 주방에서 일하시며 16년 동안 이 못난 딸을 키워오신 우리 아빠. 요새는 너무 힘이 드시는지 흰머리와 주름살이 늘었습니다. 예전엔 검었던 머리가 지금은 흰머리만 보입니다. 그런 아빠를 보면 너무나도 마음이 아픕니다. 또 요즘 들어 아빠의 손엔 상처가 더 많아졌습니다. 그런데 전 언제나 투정부리고 떼쓰고 약 하나도 못 사드리는 딸입니다.

전 아빠에게 한 번도 "아빠, 힘들지"하는 말을 해 본 적이 없습니다. 그래서 전 이 글을 통해 아빠에게 말하고 싶습니다. 이젠 더 이상 아빠의 주름살과 흰머리가 늘지 않게 하겠다고 말입니다. 너무나도 사랑하는 우리 아빠, 힘들어도 힘드시지 않은 척 웃으시는 아빠의 모습을 보면 너무나도 슬픕니다.

항상 제 힘이 돼 주시는 아빠, 이젠 그런 아빠에게 제가 힘이 되어야겠습니다. 이제 더 이상 힘드시지 않도록 아빠 말씀 잘 듣고, 자랑스런 딸이 되겠다고 약속드립니다. 이 세상에서 제일 사랑하고 존경하는 우리 아빠, 정말 감사하고 존경합니다. 그리고... 정말 사랑합니다.



<우스개 소리 - 웃으며 살아요>

시험 때, 이런 애들 꼭 있다!

인터넷 자료

1위 : 시험 때만 되면 교육 현실 비판하는 애

2위 : 틀린 답 서로 맞춰 보며 좋아하는 애

3위 : 계획만 짜다가 밤 꼴딱 새는 애

4위 : 자기 등수보다 반 등수에 더 신경 쓰는 애

5위 : 누가 빨리 쓰고 나가나 시험하는 애

6위 : 잽싸게 시험지 내고 복도에 나가 친구 이름 고래고래 부르 는 애

7위 : 당일치기로 밤샜는데, 시험 일정 잘못 알아서 그 다음날 것 공부해온 애

8위 : 어디까지 진도가 나갔는지 몰라서 다음 단원가지 공부한 애

9위 : 컨닝 페이퍼 밤새도록 만들고 아침에 책상에 두고 온 애

10위 : 자기(50등)랑 똑같은(49등) 답안지 컨닝하고, 보여줘서 고

맙다고 떡볶이 사주는 애

11위 : 반에서 1등한 애한테 공부 잘하는 비결 물어보고, 그 애랑

똑같이 잘 것 다 자고, 교과서 중심으로 공부하고, 수업에 만 충실하다가, 그 애는 또 1등하고 자기는 성적 떨어져서 비판하는 애

12위 : 자기 성적은 기억도 못하면서 다른 애들 성적은 줄줄이 외 고 다니는 애

13위 : 책에다 온갖 색깔의 형광펜에다 포스트램까지 붙여가며 공 부하고, 손에 색연필 4자루 들고 바꿔가며 줄치고는 막상 시험 때 글자는 생각 안 나고 색깔밖에 기억 못하는 애

14위 : 공부 못한다고 꾸중하는 부모에게 요즘 비관 자살하는 애들 이 얼마나 많은 줄 아느냐고 외쳤다가 부모님께 더 두들겨 맞는 불쌍한 애

15위 : "넌 원래 머리가 좋은데 친구를 잘못 사귀어서 그렇다"는 엄마 말씀 듣고 괜히 잘 지내던 친구들이랑 절교했다가 성 적 더 떨어져서 비관하는 마마보이









소풍을 앞두고

中 3-1 王 得 方

으아, 이게 뭐야! 일기예보를 보니 금요일에 '반가운' 비가 온다고 기상캐스터가 말했다. 백화점에 가서 새 옷, 새 바지까지 샀는데...... 소풍 도시락을 준비하려고 계량컵, 스푼을 사서 유부초밥, 계란초밥, 김밥을 만들려고 했는데 한 번에 물거품이 됐다. 도시락을 맛있게 예쁘게 만들어서 친구에게 자랑을 하고 싶었는데, 이게 뭐야!

하느님께 "제발 비 오지 말게 해 주세요!"하고 기도하는 게 최상이다. 누가 알아? 그 날 갑자기 맑아져서 즐겁게 놀 수 있을지......

비가 안 오면 친구들이랑 같이 놀이 기구를 신나게 탈 수 있는데...... 산책하면서 튤립을 보고, 몸살 날 정도로 놀 수 있는데, 하늘이 협조를 안 하는구나......

4월 20일에 한반도에 있는 비구름이 방향을 바꾸었으면 좋겠다.



소풍을 앞두고

中 3-3 李 秀 珍

며칠만 지나면 봄 소풍이 다가옵니다. 중학교에서 마지막 소풍이라 더욱 더 기대가 됩니다. 이번 소풍의 목적지는 에버랜드입니다. 그래서 반 친구들은 다들 좋아하면서 소풍이 올 때만을 기다렸습니다. 아쉽게도 몇몇 친구들은 가지 않습니다. 사실 저도 처음엔 가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너무 피곤하고 별로 재미도 없을 것 같아서요. 계속 생각해보니 이번이 중학교에선 마지막 소풍이라서 가기로 결정했습니다.

소풍도 이제 며칠 안 남았습니다. 그래서 친구들도 소풍에 입고

갈 옷을 사려고 며칠 전부터 돈을 모으기 시작했습니다. 저도 마찬가지로..... 빨리 소풍이 다가왔으면 좋겠습니다. 그 때가 되면 모두들 기분 좋은 얼굴로 볼 수 있으니까요.

시험이 끝난지도 약 1주일이 됐는데, 이번 소풍을 가면 긴장도 풀리고 모두들 기분 좋게 돌아 올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근데 오늘 별로 좋지 않은 소식을 들었습니다. 친구들이 소풍가는 날 비가 올 수도 있다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음, 물론 그럴 일은 없겠지만 그래도 사실이 아니길 바랄 뿐입니다.

아무튼 이번 소풍에서 친구들과 즐겁게 놀고 좋은 추억도 만들고 싶습니다.



나의 하루

中 3-1 孫 小 琪

나의 하루는 기숙사에서 시작된다. 아침 6:00시면 기상시간, 일어나기 싫어도 시끄러운 음악소리 땜에 일어나야 한다. 늦잠 자길 좋아하는 나에겐 좀 힘든 일이다. 다 씻고 나면 옷을 입고 나갈 준비를 한다. 어쩌다 늦으면 재수 없게 맞을 수도 있다. 학교에 오면 친구들과 노닥거릴 시간도 없이 숙제를 쓴다. 거의 기숙사에서 쓴 적은 없다. 그리고 12:30분이 되면 밥을 먹으러 간다. 별로 맛은 없지만 할 수 없이 먹는다. 학교가 끝나면 기숙사에 간다. 밥을 먹었는데도 배가 고프다. 그래서 대충 과자나 라면을 더 먹는다. 그리고 5:00시가 되면 자습시작. 6:30분이 되면 밥을 먹으러 가는데 안 갈 때도 많다. 좀 미안하지만 너무 맛없다. 그리고 자습이 끝나면 친구들과 수다를 떤다. 거의 다 먹는 얘기, 삼겹살이 먹고 싶다는 둥~ 곱창이 먹고 싶다는 둥...... 거의 다 여자들이 좋아하는 게 아닌 음식들...... 그래도 기숙사에 오면 싫어하던 것도 너무

먹고 싶다. 하지만 할 수 없이 또 라면을 먹는다. 그것도 봉지 째로. 가끔 내 짝꿍이 기숙사에 놀러오면 많이 놀란다. 이상한 눈빛으로 쳐다보기도 하고...... 9:00시가 되면 자야하는 시간이지만 거의 대부분의 아이들은 잘 생각도 안 한다. 드라마가 다 끝날 때까지 다보고 잔다. 기숙사에 있으면 제일 생각나는 게 무엇이냐고 묻는 사람이 꽤 많다. 거의 '엄마'라고 대답하지만 사실은 먹는 게 제일 생각난다. 학교 밥은 입에 맞지도 않는다. 밥 먹을 때 떡볶이가 나오질 않나, 국은 완전......

나의 하루는 좋은 일이 없는 것 같다!~ 매일 배고프고, 매일 힘들고, 그래도 난 매일 즐겁게 지내려고 노력을 한다.



오늘

中 3-1 無 名 氏

오늘 난 너무도 우울한 날이었습니다. 아침부터 버스를 잘 못 타서 지각을 하고, 학교에 오자마자 선생님한테 종아리 세 대를 맞았습니다. 교실에 와 보니 제가 좋아하는 친구가 얼굴에 상처가 있어 마음도 아프고 걱정도 되고 별 생각이 다 들었습니다. 아마 친구랑 싸워서 그런 거 같습니다. 내일 꼭 후시딘을 사 줘야겠습니다.

오늘 난 온몸이 다 멍투성이였습니다. 왜냐하면 어제 목욕을 하다 수도꼭지에 박아서 멍들고, 선생님한테 맞아서 멍들고, 문에 부딪혀서 멍들고...... 오늘처럼 재수 없는 날이 또 있을까요? 그래서 난 오랜만에 기도를 했는데 아무 효과가 없었습니다. 교회도 잘 다니고, 학교 생활도 잘 하는데, 정말 모든 게 다 실망스럽기만 합니다. 하긴 좋은 날만 있을 수 없으니까요...... 오늘 하루 나도 모르게 입에서 욕만 나왔습니다. 그래서 짝궁에게도 미안하고, 만약 내일 좋은 일이 있으면 친구들에게도 꼭 사과를 해야겠습니다.

오늘 난 눈물 많은 하루였습니다. 내가 너무 불쌍한 것 같아 하루 종일 눈에 눈물만 고였습니다. 아마 쟤도 오늘 하루 힘없는 걸 보니 나랑 똑같은 하루인 것 같습니다.

내일 하루는 정말 오늘처럼 재수 없는 날이 아니었으면 좋겠습니다.



전학 온 뒤 나의 생활

中 3-1 衛 懋 禎

나는 중국인이지만 초등학교 2학년까지만 화교학교에 다니다가 한국학교로 전학 가서 초등학교 2학년부터 중학교 3학년까지 졸업하고 나서 바로 이곳 한성 화교중학교로 전학 왔다. 원래대로라면 고1 2학기지만 여러 가지 사정으로 중학교 3학년 2학기부터 다시 다니게 되었다.

처음엔 낯설고 외톨이 같고 그랬지만 며칠이 지나자 반 애들과 자연스럽게 친해지게 되었다. 지금은 중국어를 못 알아듣는 것과 시험 보는 것들만 빼면 지금으로서는 그리 어려운 점은 없는 것 같다.

요즘은 토요일이나 일요일에 전에 같이 학교를 다니던 한국 친구들과 이메일을 통해 만나고 있고, 저번에는 화상 채팅으로 애들끼리 만나서 놀기도 했다. 또 컴퓨터 게임을 통해 놀기도 했다. 목소리는 들리진 않지만 그 나름대로 재밌었다.

나는 중국어를 못 알아들어서 친구들이 옆에서 일일이 통역을 해주어야 한다. 빨리 중국어를 배워서 남들이 중국어로 말하는 것을 알아들었으면 좋겠다.

지난 화이트 크리스마스를 생각하며

中 3-3 劉 祥 媛

춥디춥고, 곳곳에 하얀 눈이 사뿐히 내려앉았던 2000년의 첫 화이트 크리스마스...... 난 매년 크리스마스 때마다 계획만 거창했을 뿐, 늘 집에서 크리스마스 특집프로를 보는 게 전부였다. 이런 나를 자책하며 올해엔 무언가 내 머리 속 한 켠에 추억을 만들고 싶었다. 그래서 찾아간 곳은 욕심이란 것이 없을 것 같은 작고 아담한 교회였다. 내가 교회에 발을 디딘 건 거의 오 년 남짓한 시간이 흐른 뒤였다...

아주 어렸을 때에는 곧잘 가곤 했지만, 어린 나이였기에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일은 무척 힘든 일이었다. 그래서 발길을 끊은 지 5년이란 시간이 흐른 것이었다. 내가 찾아간 교회는 예전에 모습과는 많이 달랐다. 따뜻하고 친절하신 목사님, 늘 나를 아껴주셨던 우리 전도사님, 그리고 사랑하는 친구들...... 모두 새로운 모습으로 자리잡고 있었다. 내가 교회의 문을 열고 들어갔을 때 어딘가 귀에 익은 찬송가들이 흘러나오고, 낯익은 풍경들과 말씀들이 나의 눈과 귀를 간지럽혔다. 예수님의 고난과 유대인 바라바의 얘기를 듣고 나의 모습을 돌아보기도 하였다. 또한 감사할 조건들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감사할 줄 모르고, 욕심만 늘어가는 내가 한심하게만 느껴졌다.

앞으로도 난 따뜻하고 아담한 그 곳에서 많은 것을 배우고 느낄 것이다. 그리고 내가 느끼고 배운 것을 다른 사람에게도 전할 것이며, 이 세상이 사랑으로 깃들여 지길 바랄 것이다.







일본의 역사 왜곡에 대해

中 3-3 郭 明 季

요즘에 이 뉴스가 온 국민 사이에서 화제거리가 됐다. 뉴스 언론에서부터 초등학생 애들까지 모두 이 일에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사실 한국인뿐만이 아니라 많은 나라들이 이번 사건에 대해 불만이 많을 것이다. 대만과 중국도 예외는 아니다. 일본이 2차 세계대전에서 많은 악행을 한 것은 모두가 아는 사실이고, 아직도 일제시대 때 받은 고통에서 벗어나기 힘든 가족들이 많다.

일본은 뭘 위해 자기들의 역사를 감추려 하는 걸까? 그저 단지 새로 태어난 아이들에게 조상들이 한 짓을 알려주기엔 부끄러워서, 또는 자기네들 자존심이 상할까봐 그런 걸까?! 분명 그 속엔 더 많은 뜻이 담겨져 있을 지도 모르지만 내 생각은 그렇지 않다.

일본 아이들에게 정확한 역사를 가르쳐주고, 역사에 많은 불행한 일이 있었던 것도 다 밝혀야된다고 생각한다. 물론 많은 아이들이 이 부분을 알면 자기 나라에 대한 실망도 크겠지만, 그래도 난 다 알아야된다고 생각한다. 역사 선생님들이 신경을 써서 이 역사를 이야기하면서 조상들이 행한 일에 대해서 지적을 하고, 잘못임을 알리고 자신들의 생각을 밝혀야 되지 않을까?!

만약에 지금 이대로 바르지 않은 역사를 일본 아이들에게 가르치면, 지금은 그 애들이 아무 것도 모른 채 그저 책에 있는 내용만 읽고 믿었다고 해도 커서 언젠가는 다 알게 되어있다.

역사적인 문제는 숨길 수 없다. 세계가 다 아는 사실을 뒤늦게 아는 일본인들은 얼마나 당황해 할까? 한편으로 이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 하고, 언젠가는 또 국제적인 문제가 생기겠지......


졸업을 앞두고

中 3-1 張 鈞 怟

드디어 졸업이 코앞에 다가왔다. 그러나 내 심정은 점점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있는 것 같다.

나는 선생님들한테서 졸업할 조건을 많이 들었다(시험에서 다 60점 이상으로 합격해야 졸업을 할 수 있다고). 난 그 말을 듣고 마음이 점점 무거워지는 것 같았다. 나는 보통 시험 때 한 번도 아홉 과목을 다 60점이상 통과 한 적이 없었다. 잘 해도 한 두 개 합격, 나머지는 다 30점, 25점, 7점 등등이었다.

앞으로 남은 중3 시절을 어떻게 이용해야할지 나도 잘 모르겠다. 또 난 놀고 있어도 수업을 하고 있어도 마음이 졸업시험 문제 때문에 안절부절 한다. 나는 과연 졸업을 할 수 있을 것인가? 아니면 못 할 것인가? 매일 매일 이런 생각이 내 머리 속에서 돈다. 만약 매일 매일 공부를 하면 졸업시험을 이겨낼 수 있을까? 하지만 매일 매일 공부를 하는 것도 나한테는 어려운 일이다. 그런 결정을 내리기도 힘들 것이다.

하지만 나는 한 번 도전해 볼 거다. 이제부터라도 남은 시간을 잘 이용해서 이번 졸업시험을 꼭 이겨내서 졸업을 할 것이다.



고3 그리고 나의 포부

高 3-4 鄒 美 靜

"어머~ 벌써 고3이니?". "어느 대학 갈거니?". "고3이니...이제 공부 열심히 해라!". "오빠도 좋은 대학 갔으니 너도 좋은 대학 가야겠구나!?" 언제부턴가 이런 말들은 내 꼬리표처럼 날 따라다니기 시작했다. 처음 고3에 올라왔을 땐 너무 흥분되었다. "내가 고3이라니......' 철없이 허구한 날 친구들과 이대를 돌아다니며 떡볶이 사먹던 시절이 바로 엊그제 같은데, 벌써 내가 고3이 되다니, 하하

하." 기분이 묘했다.

고3이 되고 난 후, 난 내가 조금씩 변해가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고3이 된 후, 마음속으로 난 작은 "책임감"이 생긴걸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동시에 아주 큰짐이 내 어깨에 짊어지게 되었다는 걸 난 알았다. 솔직히 고3이 된 후 겉으론 변한 게 거의 없다. 역시나 예전처럼 수업시간에 딴 짓하고, 친구랑 수다떨고, 매일 시험전날 번개 치고, 사실 자랑은 아니다. 지금 다시 돌이켜보니 정말 후회되고 부끄럽다. 고3이 되었어도 철은 덜 들었나보다. 사랑은 왜 항상 후회 할 것을 알고도 그렇게 행동하는지 인간이란 정말 알 수 없는 동물이다.

그래도 고3이 되어서 전혀 변한 곳이 없는 건 아니다. 마음속에 아주 작은 변화가 있었다. 고3이 된 후 마음속으로 항상 내 진로에 대해 내 꿈에 대해 많이 고민하게 되었다. 또, 그것으로 인해 많은 스트레스도 받았었다. 여기저기 정보를 얻으며, 또, 직접 선배한테 전화해서 물어보기도 했다.

고심 끝에 난 '디자인' 공부하기로 결정을 하였다. 정말 어려운 결정이었다. 솔직히 난 공부에 별 흥미가 없다. 딱딱하게 책상 앞에 앉아 '나중에 과연 쓰일 일이 있을지도 의문인 수학공식, 화학에너지 같은 걸 꼭 배워야하나..'하고 항상 불만이었다.

평소에 나는 상상을 자주 하곤 했다. 일상용품에 작은 것이라도 어떻게 하면 좀더 예쁘고 획기적이게 만들 수 있을지 가끔 새로운 아이디어가 마구 떠오를 땐 정말 너무 즐겁다. 그래서 디자인과를 택하게 됐다. 디자인이라면 나의 직성에도 맞을 것 같고, 또, 이제 더 이상 상상만 하다 끝내기보단 좀 더 적극적으로 나아가, 그것을 현실에 옮기고 싶다. 비록 조금 늦은 감이 잇지만, 지금부터라도 학원을 다닐 것이다. 그리고 열심히 노력해서 홍익대학교의 산업디자인학과, 또는 경희대의 의류디자인학과에 들어가서 열심히 기술과 지식을 익히고 싶다.

그리고 졸업 후, 난 해외로 나가 좀 더 시야를 넓히기 위하여 디자인공부를 할 것이다. 그리고 아버지 회사에 취직하여 아버지의 일을 도와드리면서 우리 회사를 세계 유명 브랜드와 나란히 슬 수

있을 정도로 멋진 브랜드를 개발하는 것이 바로 나의 꿈이자 소망이다.

아마 이 꿈은 엄청 힘들고 고달플 것이다. 그래도 난 결코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지금의 나의 꿈이 어쩜 너무도 철없는 아이의 달콤한 꿈일 뿐이라 생각될 지라도, 난 이 달콤한 꿈을 기필코 내 의지로 이루고 말 것이다! 그리곤 먼 훗날 지금의 날 회상하며 멋쩍은 미소를 지을 것이다.




나의 과거와 미래

高 3-4 孫 玉 楗

저는 저 나름대로 아주 힘겨운 생활을 해왔습니다. 방황도 많이 했고, 실수도 많이 했고요. 그러나 내 자신의 실수나 휴학했던 과거에 대해서 후회는 하진 않아요. 다만 아쉬운 것이 있다면 좀 더 알차게 못 보냈다는 거죠......

아르바이트하면서 참 많은 걸 깨닫고 많은 걸 배웠어요. 살아가는 방법, 세상이 결코 내가 생각한 것처럼 그렇게 만만하지만은 않다는 것, 세상에 믿을 사람은 나 하나라는 것, 자기 자신을 좀더 강하게 단련해야겠다는 생각뿐이 안 들었어요.

그런데 이년 동안 공부라곤 조금도 하지 않아서, 여기 한국에 돌아와서 갑자기 공부라는 걸 하려니까 너무 힘이 들었어요. 그래도 제 곁에 날 사랑하는 가족이 있다는 게 얼마나 행복하던지...... 엄마가 곁에 있어서 저는 너무 너무 행복하고 힘이 되는 거 있죠. 물론 모든 아이들도 자신의 어머니를 많이 사랑하겠죠. 그러나 그걸 알면서도 저는 감히 이렇게 말하고 싶네요. "나처럼 엄마를 사랑하고 생각하는 딸은 없을 거라고......" 이렇게 든든한 엄마가 곁에 있는데 뭐가 두렵겠어요! 뭐든 열심히 해서 엄마를 실망시키지 않는 일밖엔......

저는 지금 '수의사'라는 아주 큰 목표를 세우고 열심히 앞으로 향하고 있어요! 물론 쉽진 않겠죠. 열심히 하는 방법밖에 없는 것 같군요^^;. 수의사가 되기 위해선 지금 제가 할 일이 너무나도 많은 것 같군요. 열심히 영어 공부를 하고, 또 습관적으로 매일 매일 해야겠고!

지금부터 졸업까지 정말 몇 달밖에 안 남았네요. 정말 너무 아쉬워요. 고2 때까지만 해도 언제 졸업하나, 언제 대학가나, 이런 생각밖에 안 했었는데^^; 좀더 알차게 못 보냈다는 점이 너무 후회스럽네요!! 졸업할 생각하니까 벌써부터 친구들이랑 선생님들이 보고싶어지네요. 각자 가는 길이 다르니까, 각자 자기의 꿈이 있으니까 헤어지는 것이 어쩜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겠군요.

이 다음에, 아주 이 다음에 다들 성공해서 다시 만나면 지금 이런 이야기들이 너무나도 그리운 시절이 되었겠죠?! 저는 요~ 꼭 수의사로서 성공하고 말 거예요. 사람들보다는 동물들이 저를 많이 필요로 할 것 같거든요^^. 말을 할 수 없으니까, 어디가 아프다고 얘길 못 하니까, 저처럼 동물을 많이 사랑하는 사람이 인내심을 갖고 잘 치료해 주고 많이 예뻐해 주고 그래야 하거든요(물론 내 혼자만의 생각일 뿐이지만).

옥애 많이 지켜봐 주세요!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선생님, 그리고 엄마, 친구들, 저 잘 할 거예요! 그러니깐 꼭 지켜봐 주세요!!!










<한국의 名詩 감상>

高 3-4 王 紀 敏






















































<쉬어 가는 페이지>

너에게

인터넷 자료

세상에서

가장 행복할 때는

친구를 사랑하는 맘이 남아 있을 때이고

세상에서 가장 울고 싶을 때는

친구가 내 곁을 떠나갈 때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미워하고 싶을 때는

친구가 점점 변해 갈 때이고

세상에서 가장 두려울 때는

친구가 갑자기 차가워 질 때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웃고 싶을 때는

친구가 즐거워하는 모습을 볼 때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고마울 때는

친구가 나의 마음을 알아줄 때이고

세상에서 가장 편안할 때는

친구가 내 곁에 머물러 있을 때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믿고 싶은 것은

친구가 날 사랑하는 마음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친근하게 느낄 때는

친구의 손을 꼭 잡고 마주 앉아있을 때이고

세상에서 가장 외롭다고 느껴질 때는

친구가 내 곁에 없다고 생각될 때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바라고 싶은 것은

친구의 맘속에 내가 영원히 간직되는 것이며

마지막으로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것은

바로 내가 사랑하는 나의 친구입니다.











<기행문>

태국을 다녀와서

高 3-4 牟 德 京

가족과 함께 계획된 태국 여행, 솔직히 난 유럽이나 미주여행을 원했던 터라 태국엔 별다른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더군다나 제일 먼저 태국에 도착한 후 느낀 것은 너무 덥다는 것과 공기가 많이 오염됐다는 것. 아직 덜 된 개발로 인해 교통 체증과 거리의 청결 상태도 심각하였다. 하지만 태국이 주요 관광 국가가 된 것에는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다는 것을 금방 알 수 있었다.

위에 소개한 왕궁이나 수상시장 이외에도 새벽사원, 미니시암, 농눅빌리지 등 태국은 참 많은 볼거리가 있는 나라이다. 또 태국엔 에메랄드 빛 바닷가와 산호로 가득한 섬이 있었고, 평소 쉽게 접할 수 없는 바다 요리와 열대 과일 또한 맘껏 맛 볼 수도 있었다. 그리고 태국엔 아름다운 보석이 많아 비교적 낮은 가격으로 보석 구입이 가능해서 단지 보석을 이유로 관광을 온 사람도 참 많다고 하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자랑스러운 일이 한가지 있다면, 태국의 경제를 우리 중국인들의 손에 의해 세워졌다는 것이다. 실제로 거리 곳곳에 쉽게 화교들의 간판을 볼 수 있었고, 내가 묶은 호텔의 사장 역시 우리와 같은 화교였다.

후진국이란 이유로 분명히 지저분하고 볼거리 역시 저속할 것이라 생각했고, 그런 나라에 사는 사람들 역시 가난으로 불행할 것이라 생각했다. 거스름돈을 줄 때에도 3번 이상 계산기를 두드리는 태국인들의 느릿함. 꽃으로 만든 예쁜 목걸이를 걸어주는 소년과 손수 만든 지갑을 들고 "예뻐요, 싸요!"를 말하는 할머니. 그들의 모습이 다소 답답하긴 했지만 순박해 보였다. 비록 배불리 못 먹는 날이 더 많은 그들의 웃음엔 우리에게선 찾을 수 없는 여유가 있었다. 어쩌면 바쁜 일정에 쫓기는 우리가 더 불행할지도 모른다.

유명한 관광지를 돌아보는 것만은 진정한 여행이 아니라고 한다. 그 속에서 그들의 생활 방식과 생각을 느끼는 것이 여행의 목적일 것이다. 난 태국의 왕궁이나 여러 불상을 보면서, 아름다운 자신의 문화에 대한 긍지와 그것들을 지키기 위한 노력을 볼 수 있었다.

단 며칠의 짧은 여행으로 태국인들의 생활 방식 모두를 알 순 없겠지만 가끔은 이렇게 나와 사뭇 다른 사람들의 생활을 잠깐 엿보는 것만으로도 나에게는 큰 자극이었고 많은 것을 느끼게 해주었다. 나에겐 정말 색다른 경험이었다.



<독서 감상문>

<허준>을 읽고

中 1-2 孔 世 美

허준은 조선 제 14대 임금인 선조 때 내의원 의관으로서 그 명성이 자자하였던 의학자입니다. 원래 양반 가문 출신이었으나, 서자로 태어났기 때문에 어렸을 때부터 설움과 냉대를 받으며 살아야 했습니다. 남달리 총명하고 학구적이었지만, 과거 시험을 볼 수도 없는 신분이었습니다. 그 당시 신분 사회의 비극이라 아니 할 수 없었습니다.

다행히 허준은 당시 기인(奇人)이요 의원으로서 이름이 높았던 유의태의 제자가 될 수 있었고, 그로부터 의학 공부에 매진하게 됩니다. 이윽고 의과 시험에 합격하여 내의원 의관이 되었으며, 이후 임금과 왕실의 건강을 지키는 데 성심을 다합니다.

사랑의 의술을 베푼 조선의 명의(名醫) 허준, 나는 허준의 전기를 읽고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나는 허준의 뛰어난 의술에 감탄하였습니다. 나도 그처럼 뛰어난 의술을 닦아, 병으로 고생하는 사람들을 치료해 주고 싶습니다(참고로 내 장래 희망은 의사). 그런데 의술이 뛰어난 사람이 되려면, 기술과 재주만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고통받는 사람들을 도우려는 사랑의 마음과 정성이 있어야만 합니다. 허준은 바로 그런 사랑과 정성을 가지고 꾸준히 노력했기 때문에 훌륭한 의원이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허준은 스물 다섯 권이나 되는 <동의보감>을 완성하였습니다. 동양 의학의 보배라고 하는 <동의보감>에는 이처럼 허준의 피땀어린 노력과 사랑의 마음이 담겨 있습니다.

사람의 목숨을 구하는 일은 매우 고귀한 일입니다. 돈이나 높은 지위를 바라지 않고, 불쌍한 백성들을 위해 묵묵히 의학을 연구했던 허준의 일생을 나도 본받아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TV 감상문>

KBS 신년 특집 <역사 스페셜 "고선지">를 보고

高 2-2 李 慧 萍

KBS 역사 스페셜에서 신년 특집으로 "고선지"에 대하여 6일, 7일 이틀에 걸쳐 1,2편으로 방영을 했다.

천 이 백 년 전, 죽음의 준령이라 불리는 "파미르고원"을 정복하려는 당(唐). 군사 모두 두려워 진군하지 못하고, 감독관마저 주저했던 원정. 그 때 한 점 주저도 없이 군사 일 만을 데리고 출정한 장수가 있으니, 다름 아닌 "고선지"였다.

"고선지" 그는 과연 누구인가? 멸망한 조국에서 강제로 끌려간 포로의 아들, 파란만장한 삶을 산 고구려 유민의 2세, 그는 망국민인 것이다.

그가 자신의 가장 찬란한 업적이었던 북부 파키스탄 원정을 마치고 안서도호부로 돌아왔을 때, 그가 들은 말은 "개똥같은 고구려 노예"라는 욕설뿐. 그는 몇 차례의 대원정을 성공하자 747년, 당시 당나라에서 가장 거대한 지역을 통치하던 안서대도호부의 안서절도사에까지 오른다. 포로의 아들은 실크로드의 천산남로, 천산북로, 서역남로의 세 길을 모두 장악한 실크로드의 지배자로 떠올랐다.

세계문명사를 뒤흔든 종이전파의 시작이 바로 이 고선지의 "탈라스전투"인 것이다. 서기 751년, 동진하던 이슬람제국의 30만 사라

센군대와 중국의 고선지군이 중앙아시아와 실크로드의 패권을 두고 카자흐스탄공화국 탈라스 평원에서 정면으로 맞붙었다. 세계 전사에서 중앙아시아의 운명을 결정한 대전투로 기록되고 있는 탈라스전투가 바로 그것이다. 5일 동안의 전투, 그러나 고선지는 예하의 돌궐족의 반란으로 처음으로 패배했다. 이 때에 중국의 제지술이 최초로 서방으로 전해졌던 것이다. 파피루스와 양피지에 글을 쓰고 있던 서방은 비로소 종이 문명을 접하게 된 것이다. 고선지의 패배는 아랍과 서양의 학문을 일으키고 오늘날의 서양 종이 문명이 있게 한 밑거름이 된 문명사의 큰 전기였다.

서기 755년 안녹산이 반란을 일으키자 정토군 부원수로 출전, 선발군으로 나가, 패전한 우군을 구원하기 위해 방어 담당지역을 무단으로 이동한 사실에 대하여, 평소 사원(私怨)을 품고 있던 부관이 과장하여 밀고함으로써, 진중에서 참형되어 생을 마감하였다.

서양의 학계에서는 "내 사전에 불가능은 없다"라는 말로 유명한 알프스 원정의 나폴레옹보다 더 뛰어난 전략가로 고선지를 언급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 학계에서는 그가 당나라 장수였다는 이유로 별다른 조명을 받지 못하고, 또한 그에 대한 서적과 제대로 된 연구조차 없다. 일부 사람들의 평은 더 냉혹한 것도 있다. "고선지가 한국을 위해 싸운 것은 아니지 않은가?", "잔인하고 탐욕스런 장수", "누가 영웅이라고 했는가?" 등등......

그렇다! 고선지는 고구려 부흥운동은커녕 자신을 망국민으로 만든 나라를 위해 싸웠다. 하지만, 그 때의 역사를 우리가 알 수 없듯이, 어쩜 고선지도 고구려의 계몽항쟁을 갈망했는지 모른다.

솔직히 역사적 배경으로 봐서 그 당시 그가 그럴 수 있었을까? 나라가 망했어도 끝끝내 당나라에 대항했던 고구려 유민들이 두려웠던 당나라는 이들을 강제로 사막으로 이주시켰다. 이런 당나라가 어찌 감시를 소홀히 할 수 있었겠는가? 또 고선지는 한반도에서 멀리 떨어진 서역 일대에 있었는데, 과연 그 먼 곳에서 고구려 부흥운동을 일으켰다면 세력을 구축하고 성공할 수 있었을까? 고구려가 망한지도 수십 년의 세월이 흐른 상황에선 아무런 기반도 없이 머나먼 이국땅에서 고구려 부흥운동은 뜬구름 잡기와 같은 일인지도

모른다.

아무튼, 그가 누구를 위해 싸웠건, 그가 완성한 위대한 업적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예를 들어, 외국에 사는 한국인이 어떤 대단한 일을 해냈는데, 과연 우리는 그의 공로를 무시하고 부인할 수 있겠는가? 이와 같이, 고선지는 역사적으로 세계사를 바꾼 실크로드의 영웅이다!

오늘날, 한국 민족의 뿌리가 고구려, 신라, 백제가 맞는다면 "고선지" 그는 분명 한국의 선조로 영원히 기억되어야 한다! 당나라 장수가 아닌......



<TV 감상문>

설 기획 <피플! 세상 속으로>를 보고

高 2-2 李 慧 萍

세 가지 이야기로 '우리 사회를 지탱해 주는 아름다운 가족'이란 주제를 연출했다.

첫 번째 이야기.

남편의 급작스런 죽음으로 홍XX 아줌마는 어린 세 남매와 엄청난 빚더미에 앉았다. 그 날 이후, 홍 아주머니는 억척스럽게 생활을 꾸려 나갔다. 하루하루 고되고 힘들지만, 홍 아주머니는 세 남매가 있어 행복했다고 한다. 이들 세 남매와 어머니 홍씨가 살아가는 모습을 통해, 난 어려움 속에서도 서로 아껴주고 배려하는 따뜻한 가족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하지만, 난 부럽지 않다. 우리 가족도 그들 못지 않게 서로 아껴주는 행복한 가족이기에......

두 번째 이야기.

평범한 주부 변XX씨는 지난 99년 4월 백혈병을 선고받고 힘든 투병 생활을 시작했다. 다행히 유일한 희망인 골수이식의 조건이 아주머니 일곱 남매 중 막내 동생과 같았다. 그의 가족과 그 아주머

니가 병과 투쟁하는 모습을 통해, 난 가족의 의미를 생각해 본다.

세 번째 이야기.

정 할아버지는 일흔이 넘어선 연세에도 불구하고 고깃배를 타신다. 평생 바다에 의지해 여덟 남매를 키우신 정 할아버지. 가난했던 시절, 큰아들 공부시키느라 초등학교밖에 못 보낸 딸이 가슴에 앙금으로 남으셨다는 할아버지. 아직 자식들에게 손 내밀 때가 아니라며 여전히 배를 타고 그물을 잡는 정 할아버지. 할아버지의 모습을 통해 강하면서도 따뜻한 내 아버지의 자화상을 그려보았다.

'핵가족화', 정보화되고 산업화되어 가는 오늘 우리의 사회상이다. 설날을 맞아 방영된 <피플! 세상 속으로>, 각박한 현대인들에게 고향과 가족의 의미를 되새겨 볼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해 주었고, 새삼스럽게 가족의 소중함을 깨닫게 한 시간이었다.



<TV 감상문>

자연 다큐멘터리 <문어의 모정>을 보고

高 2-2 趙 晏 莉

4월 제주도의 "문섬"에서는 문어들이 짝짓기 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짝짓기는 보통 4시간이 걸리는데, 다른 물고기에 비해 격렬하지 않으며, 수컷 문어는 자신의 발 한 쪽을 암컷에게 주며 그것을 통해 암컷은 수정을 한다. 단 그뿐이다. 짝짓기가 끝나면 암컷 문어는 바위틈에 대략 10만 개의 알을 낳으며, 천장에 매달린 알은 마치 포도송이 같다. 문어 암컷은 모성애가 강해서 새끼 문어가 알에서 깨어나기 전까지 50일 동안 아무 것도 안 먹고 알을 지킨다. 알을 먹으려는 물고기를 막기 위해 도로 방호벽을 만든다. 새끼 문어는 알에서 7일째부터 빨간 눈이 생긴다. 15일째부터는 몸에 빨간 점이 생기며 45일째부터는 알속에서 몸을 움직이고 위장술(변색)도 연습한다. 알이 노래지면 부화할 때가 다가왔다는 것이다. 6월이

되면 새끼 문어는 부화가 시작되며, 부화의 시간은 2시간 또는 그 이상이다. 어미 문어는 부화된 새끼 문어를 빨리 수면 위로 올라가게 하기 위해 아기들을 자신의 출수구로 빨아들인 다음 다시 내뿜어 보낸다. 어미 문어가 아기 문어를 수면 위로 급히 보내려는 이유는, 수면에는 빛이 있기 때문에, 아기 문어들은 빛 덕분에 다른 물고기들에게 잡혀 먹히지 않고 살 수 있다. 그래도 생존율은 10% 남짓. 가끔 알을 먹으려는 물고기(돔) 때문에 어미 문어는 할 수 없이 아직 부화 시기가 되지도 않은 새끼 문어를 한 마리라도 살리기 위해서 알을 불어내서 강제로 부화시킨다. 그러나 생존율은 아주 낮다. 부화기가 끝난 문어 어미는 먹이 사냥을 나선다. 하지만 50일 동안 아무 것도 안 먹어서 그런지 사냥에 능숙한 문어 어미라도 거의 사냥도 제대로 못하고 죽고 만다. 다른 물고기의 밥이 되어서......

정말 아름답고 위대한 모정이 아닐 수 없다. 문어는 수중 동물 중에서도 지능이 높은 동물이며 사람 빼고는 천적(天敵)이 없다고 들었다(가끔 멍청한 문어는 말미잘에게 죽음을 당하긴 하지만). 그런 어미 문어가 자신의 사냥감에 의해서 죽게 되다니...... 자신의 새끼를 위해 얼마나 많은 힘을 썼는지 알 수 있다.

이런 걸 보면 사람 중에서도 정말 문어만도 못한 사람을 아주 많이 볼 수 있다. 예를 들자면, 보험금을 받기 위해 아들의 손가락을 자르는 아버지, 남자에게 버림받아 자신도 덩달아 아이를 버리는 미혼모, 아기가 자신을 안 닮아 부인이 바람을 피워 난 아이라고 생각한 한 아버지가 아기를 죽이는 등 정말 어처구니가 없는 사건이 지금 이 순간에도 정말 많이 일어나고 있다. 만물의 영장인 우리가 문어만도 못한 것이 정말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젠 다시 그런 일이 안 생기길 바라며, 문어를 본받아(?) 아이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부모가 되길......



<짧은 戱曲>

두통

中 2-1 孔 慶 世

[등장 인물]

김동호

의사 후배

[줄거리]

주인공 김동호는 20년 동안 앓았던 두통을 고치기 위해 신경과 전문의인 후배를 찾아가는데......

의사 : 얼마 동안 앓았습니까?

동호 : 네, 한 20년 앓았습니다.

의사 : 아프면 어떻게 합니까?

동호 : 아스피린 먹고 잡니다.

의사 : 별 것도 아니네요. 그 병 못 고쳐요. 그냥 아스피린 먹고 자요.

주인공은 실망한 표정으로 아무 말도 안 한다.

의사 : 선배님, 내가 이래 보여도 명의입니다. 두통의 원인이 만 가지가 넘기 때문에 그 원인을 찾는다는 게 힘들어서 그 병 이 죽을병인지 아닌지부터 밝히는데, 선배님은 죽을병 아닙 니다.

동호는 의아한 표정으로 의사를 바라본다.

의사 : 내가 물어봤잖아요. 얼마 동안이나 아팠냐고......

동호 : 예~~

의사 : 20년이나 아팠는데 안 죽었으면, 안 죽어요. 두통보고 그러 세요. 내가 너 쫓아내지 않을 테니까 친하게 지내자고......

동호는 그렇게 치료를 받았다. 두통이 치료된 건 아니지만 두통하고 사이좋게 지내기로......



<할 얘기가 있어요>

이번 봄에

中 2-1 無 名 氏

지금이 바로 봄이죠. 저는 이번 봄에 꼭 해야 할 일이 한 가지 있습니다. 이번 봄에 졸업을 하는 어떤 오빠가 있습니다. 물론 제가 좋아하는 오빠겠죠! 그 오빠는 고3이라서, 그리고 回國班이라서 졸업을 좀 더 빨리 합니다. 저는 그 오빠가 떠나기 전에 한 번만이라도 같이 놀러가고 싶습니다. 그게 제가 이번 봄에 하고 싶은 일입니다.

하지만 그 오빠는 저와 놀러갈 생각을 한 번도 하지 않는 것 같

습니다. 나만 혼자 놀러 가는 걸 꿈꾸는 걸까요? 이번 글짓기는 제 마음을 표현하라고 준 제목 같습니다. 이 글짓기로 저는 말하고 싶은데......

그 오빠는 너무도 멋있어요. 항상 웃는 얼굴로 있으니까요! 저는 중1 때부터 그 오빠를 좋아했어요! 물론 지금은 내 오빠지요. 그 오빠가 떠나기 전에 정말 해 주고 싶은 거 너무 많은데...... 졸업 선물은 물론이고, 놀러가고도 싶고, 밤마다 전화도 하고 싶고요...... 과연 이런 일이 될까요?

이제 그 오빠가 졸업하는 날은 한 달 그리고 며칠밖에 안 남았어요. 정말 너무 슬퍼요...... 제발 저의 소원을 누가 들어 줬음 너무 좋을 텐데......

저는 오빠를 너무도 좋아합니다!















<특집>

화교에 대해서 - 그 장점과 단점

譚 道 經

우리는 한국에서 살고 있는 화교들이다. 언제부터인가 우리는, 너무 사회와 동떨어진 우리들만의 세계에서 살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움추려 있으면서 새로운 세계에 대한 도전은 생각하지 않는다. 항상 변함이 없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 과연 좋을까? 할아버지와 아버지로 이어지는 삶의 방식으로만 살아갈 수밖에 없을까? 이러한 삶이 전통의 계승이라고 생각해야 하는 것일까?

아주 많은 의문이 뇌리를 스쳐 지나간다. 과연 우리들은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그렇다. 그것은 오직 반성과 철저한 자아비판으로 우리 자신을 되돌아보며 우리의 장점은 살리고 문제점은 용감하게 개선해야 할 것이다.

나는 우리들의 문제점을 바로 보고 발생한 원인을 찾아 해결하고 보완을 한다면 우리가 새롭게 발전할 수 있다고 생각하여, 이 문제를 학생들의 발표수업의 과제로 주어 같이 고민할 기회를 갖기로 했다.

학생들에게 발표할 기회를 주기 위하여 고3-4반 학생이 모두 발표하게 하고, 학예부장을 맡은 이재희가 기록과 정리를 하게 하였다. 여기에 먼저 강인원, 모영호, 여미란, 장청이, 모덕경, 필감용, 양미아, 왕소연의 발표내용을 싣고, 마지막으로 이재희의 종합보고를 실었다. 우리 모두 학생들의 생각을 살펴보고 우리 자신을 되돌아보며 새로운 도약의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華僑의 弱點

高 3-4 姜 仁 元

우선 "화교"에 대한 정의를 내려봅시다. 화교란 바로 외국에 살

고 있는 중국교포입니다. 즉, 우리와 같이 한국에 살고 있는 중국사람들입니다. 따라서, 우리의 모든 행동들은 온 중국사람을 대표할 수가 있고, 남에게 준 모든 이미지는 다 우리 중국사람을 뜻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조국인 중국에서 사는 것보다는 훨씬 힘들고, 어렵습니다. 하지만, 화교가 한국에서 뿌리를 내린지 이미 3~5세대 정도 되었고, 여기에서 삶을 꾸며나가는 것도 이미 익숙해졌습니다. 심지어 우리의 조국에서 사는 것보다도 더욱 편리하고, 습관 된 사람도 있습니다. 하지만 비록 여기서 우리는 이렇게 긴 시간을 살았지만, 그 동안 우리화교들의 발전은 너무나도 느리고, 너무나도 잔잔했습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는 우리 자신의 약점에 대해 한번 생각해볼 시간을 가져봅니다.

화교가 처음 한국에 들어왔을 때는 무려 10만 여명의 인구가 있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현재는 단 2만 여명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한국정부의 무관심과 차별로 인해 살기 편한 다른 나라로 떠나간 것입니다. 물론 조금 더 낳은 삶을 위해서 다른 나라로 떠나는 것은 인지상정이지만, 우리는 왜 그렇게 살면서도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당하고만 있었습니까? 그것은 바로 우리화교의 가장 큰 단점인 단결심이 부족 하는 것입니다. 당초 10만 여명의 사람이 있었다면, 그것은 상당한 힘이 될 수 있었는데 우리 화교들은 자기의 생활 중심으로 살기 때문에, 전체 화교들을 위해 힘을 써주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모래와 같이 바람이 불면 흩어진 것입니다. 자기의 주장조차도 내세울 줄 모르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우리가 우리 자신의 주체성도 잃어버리면, 어떻게 한국정부에게 우리의 요구를 바라겠습니까? 이러한 문제들은 요즘 와서 많이 낳아진 편이지만, 미국이나 동남아에 있는 화교들에 비해 우리는 너무나도 뒤쳐져 있습니다. 미국에 있는 화교들은 의원이 되거나, 정부기관에서 일을 해, 정권을 잡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리고 화교들을 위하여 많은 노력을 합니다. 동남아 여러 국가인 경우도 나라 대부분의 경제 권력은 다 화교 손에 잡혀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 한국에 살고 있는 우리들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세계에 많은 나라들을 돌아봅니다. 기본적인 우리 중국인만의 "차이나타운"이 없는

나라는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여기에서 산지가 이미 백여 년, 우리만의 타운도 하나 없는 것은 바로 우리 화교들의 이기적인 생각과 집단에 대한 무관심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 외에도 창조에 대한 도전도 너무나도 부족한 것 같습니다. 우리들은 항상 너무나도 자신감이 없습니다. 현재 화교가 한국에서 갖고 있는 직업들은 불과 열 몇 가지밖에 되지 않습니다. 그것은 바로 거의 모든 화교는 같은 일을 하고 있고, 남들이 해서 좋아 보이는 일을 또 따라하는 것입니다. 새로운 도전에 대한 마음이 없으면 어떻게 僑社를 발전시키겠습니까? 옛것을 지켜온 것은 우리 중국사람의 전통이지만, 여기는 한국이고, 우리는 이에 맞서 우리의 고정관념들도 바꿔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발전이 신속한 지금, 우리는 더더욱 많은 새로운 도전을 하며, 새로운 화교의 삶을 꾸며나가야 합니다.

그 다음으로 우리가 생각해야 할 문제는 바로 "교육"에 관한 문제입니다. 현재 많은 화교들은 중국어와 한국어를 다 제대로 하지 못하는 상황에 처해 있습니다. 그 만큼 학교에서 주어진 중국식 교육과 우리가 일반적으로 접촉할 수 있는 한국식 교육이 뒤얽혀서 중간의 복잡한 상태에 있는 것 같습니다. 이것은 단지 언어의 문제뿐만 아니라, 우리의 생각이나 관습들도 그렇게 돼버린 상황입니다. 이 문제야 정말로 앞으로 우리 화교의 미래를 좌우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후대도 걱정해 줄 필요가 있습니까. 조상 님들께서 한국에 와서 힘들게 돈을 벌어 우리의 대를 이었습니다. 하지만, 뿌리가 깊어질수록 우리는 그 뿌리를 잊어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지켜야 할 것을 지켜야 합니다. 중국사람이 되어서 중국말도 제대로 하지 못하면 그것은 창피한 일이 아닙니까? 중국사람이 중국의 풍습들도 모르고 있으면, 그것은 좀 심하지 않습니까? 우리는 후대교육에 관해서 더욱 많은 신경을 써야합니다. 이것은 앞으로 전체 화교가 한국에서 살아갈 운명을 결정하는 것입니다. 중국과 한국의 문화에서 온갖 장점을 다 골라낸 우리 화교들만의 좋은 문화와 풍습이 필요합니다. 그것은 우리 화교가 정말로 부족한 것입니다.

저는 제가 이 땅에서 화교로 태어난 것이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비록 중국사람이지만, 전 여기에서 살아갈 것입니다. 비록 그

것은 그만큼 힘들겠지만, 또 그만큼의 보람이 있을 것 라고 생각합니다. 한국사람이 우리를 어떻게 보든지, 우리는 우리 화교들의 진정한 모습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지난 과거의 화교들은 너무나도 조용히 있었고, 너무나도 많이 당해왔습니다. 우리는 이제 더 이상 가만히 있으면 안됩니다. 남의 나라에서 우리를 지킬 수 있는 것은 우리 자신뿐, 화교를 지킬 수 있는 것도 화교자신들 뿐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더욱 단결하여, 더욱 열심히 우리의 권리를 찾을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가 속해 있는 단체에 많은 관심을 가지며, 우리가 앞으로 살아갈 미래에 대해서도 많은 새로운 도전을 해야합니다. 아름다운 華僑들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야말로 우리의 진정한 몫이라고 생각합니다.



화교들의 장단점

高 3-4 牟 永 豪

고3 입장에서 본 우리들의 장단점을 간단히 적어 보았습니다. 다들 단점만 얘기하는데, 저는 장점도 한 번 적어 보았습니다.

[장점]

1) 두 개 국어를 동시에 소화할 수 있다.

화교들은 대체로 어릴 때부터 동시에 두 개 국어를 가정에서 배운다. 물론 한국어만 하는 집안도 있지만, 그래도 대체로 두 개를 다 한다. 중학교부터는 영어까지 포함해서 동시에 세 개 국어를 배우는 셈이지만, 영어는 배운다고 해도 그건 어디까지나 기초라서 실제로 외국인과 대화할 수 있는 수준까지는 아니다.

2) 군(軍) 면제 혜택을 받는다.

우리 화교들은 군 면제 혜택을 받는다. 그 이유는, 본국이 아닌 타국에서 생활을 하기 때문에 특별히 우리는 면제를 받는 것이다.

3) 특별히 동창회가 필요 없다.

사실 100%는 아니더라도 대부분 초,중,고 때부터 같이 지내온 동기들이다. 물론 중학교 때부터 만난 친구들도 있지만, 모두들 같이 성장하고 지내기 때문에 따로 동창회를 열어 만날 필요가 없다.

4) 부모가 대부분 맞벌이라서 자립심이 강하다.

직업 선택의 폭이 좁아 맞벌이를 하지 않고서는 자녀 양육을 감당하기 힘들기에 대부분 맞벌이를 한다. 그래서 어릴 적부터 혼자서 무슨 일이든 해야하기 때문에 스스로 책임감이 강하고, 남한테 의지하는 성향이 비교적 적다.

5) 대학교 입학이 쉽다.

우리 화교들, 즉 외국인들은 특별히 수능시험을 보지 않더라도 어느 정도 한국어 실력과 상식만 있으면 비교적 어렵지 않게 대학교에 입학할 수 있다.

[단점]

1) 두 개 국어를 동시에 소화할 수 있다고 해도, 어느 것 하나 수 준 있는 좋은 문장을 구사하지는 못한다.

어렸을 적부터 아무리 두 개 국어를 사용한다 하더라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생활 회화고 간단한 문장들이다. 그렇게 어느 것 하나 제대로 학습하지 않고 모호하게 배우기 때문에 문장 구사력은 당연히 떨어진다. 더군다나 교과서는 중국어인데 실제로 사용하는 언어는 한국어라서, 이는 더욱 복잡하고 좋지 않은 결과를 가져온다.

2) 공부를 잘 안 한다.

대학교 입학 문턱에 와 있는 고3임에도 불구하고 비교적 공부를 잘 안 하는 학생들이 많다. 한국 학교나 대만 학교 학생들은 대학교가 인생의 전부가 걸린 것처럼 코피가 터질 정도로 머리를 싸매어 공부를 한다. 아침엔 예습, 방과후엔 자율학습, 귀가 후엔 복습...... 쉴 새 없이 공부를 한다.

하지만 우리 화교들은 대학교 입학 문이 넓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공부를 잘 하지 않는다. 시험기간에만 벼락치기로 하는 학생도 많고, 컨닝으로 점수를 따곤 한다. 즉, 평소에 꾸준히 공부를 해서 지식을 늘리는 것이 아니라 점수만을 따기 위해 공부를 한다는 것

이다.

그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원래 학교 다니는 궁극적인 목적은 바른 생활 지식을 배우고, 올바른 인재로 자라기 위해서인데, 오히려 반대로 점수만을 따길 위해 학교를 다니는 경향으로 되어 가고 있다. 또한 열악한 교육 환경과 이런저런 사정으로 제대로 된 시설을 못 갖추고 있기 때문에 화교들의 교육은 날이 갈수록 쇠퇴해 가는 것 같다.

3) 중고등학교가 한국에 네 군데밖에 없다.

말 그대로 지방에서 소학교를 나온 사람들은 선택의 여지가 없다. 서울, 인천, 대구, 부산 네 군데밖에 없어 지방에 사는 사람들은 기숙사 생활을 한다든지 이사를 해야 하는 번거러움이 있다.

4) 제대로 된 우리 역사를 모른다.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한국인이나 다름없는 화교들. 하지만 초등학교 때부터 우리는 다른 문화를 배운다. 즉, 중국 문화. 실제로 생활을 하는 곳은 한국인데, 문화는 중국 문화를 배운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혼란스럽다. 더구나 화교 학생들은 중국어 수업 내용의 70-80%정도만이 알아듣는 상태인데, 역사 교과서는 일반 다른 교과서와는 달리 문장 수준이 상당히 높아서 제대로 이해하기란 더욱 쉽지 않아 중국의 역사를 점점 잊어 가는 것 같다.

5) 자기 표현력이 부족하고, 적극적이지 못하다.

이 얘기는 친구한테서 들은 얘기다. 친구의 아버지가 아버지 친구에게 이렇게 물어봤다고 한다. 화교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고. 그러자 친구의 아버지 친구가 말씀하시기를, "선량하고 부지런하기는 하지만 조금은 소극적이고 소심한 것 같다."고 하셨다고 한다. 이는 사실인 것 같다. 자기가 나서서 하기보다는 먼저 남의 눈치를 살핀다. 그리고 무슨 일을 할 때 누군가 먼저 나서면 뒤에서 "자기가 뭔데 나서"하고 소곤거린다. 이렇기 때문에 누구 하나 용기 있고 과감하게 나서는 사람들이 별로 없는 것 같다.

6) 직업 선택이 제한적이다.

한국 정부의 외국인에 대한 차별로 직업 선택에서, 또한 직장 내 진급에서 피해를 보게 된다.

7) 미래에 대한 구체적인 생각을 별로 갖고 있지 않다.

이따금씩 친구들에게 물어본다. "너 대학교 갈 거냐", 또는 "장래에 뭐 할 거냐"하고. 대부분 한결같이 하는 소리가 "글쎄"라는 소리다. 즉, 아직도 확고하게 자기가 가고 싶은 길을 선택하지 않았다는 증거다.

선생님이나 주위에선 고3은 인생의 갈림길이라고들 하신다. 거기서 어떻게 선택하느냐에 따라서 장래가 크게 좌우된다고들 하신다. 그래서 다시 그 친구들에게 어디 갈 거냐고 물어보면, 다들 일류대학이나 경쟁률이 치열한 과를 말한다. 특별히 자기 장래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없다는 뜻이다.



화교의 단점

高 3-4 呂 美 蘭

우리 화교는 보다 더 발전을 하기 위해서는 항상 지신의 단점을 살펴보아야 합니다. 단점을 알아야만 새롭게 도약을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나는 화교의 단점은 한국에 살기 때문에 있는 단점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화교 자체에 있는 게 더 많았습니다.

첫째, 언어의 구사력이 애매합니다. 화교라면 중국인이기 때문에 첫째로 중국어를 잘 구사하여야 합니다. 그리고 학교에서 배우지만 한국에서 살기 때문에 한국어도 할 줄 알아야 합니다. 이렇게 좋은 환경이지만 정작 이중에 하나라도 능숙하게 할 줄 아는 사람은 얼마 없습니다. 저의 경우, 중국어는 일상에서 거의 쓰지 않습니다. 한국어는 띄어쓰기까지 완벽하게 하지 못합니다. 한마디로 완벽하게 구사하는 언어가 없습니다.

저희 고3 중에서도 한국어를 맞춤법도 안 틀리고 쓸 줄 아는 학

생이 과연 얼마나 될까? 우리 화교는 언어를 배우기 좋은 환경 속에서 아무 것도 제대로 구사할 줄 모른다는 결과가 나온 것은 학생들의 노력부족 이라고 생각합니다. 기회를 기회로 삼지 않은 것 때문입니다. 앞으로 한국에서 살기 위해서는 한국책이든지 중국책이든지 열심히 독서를 해서 우리의 장점을 살려가야 합니다.

둘째, 제가 객관적으로 본 화교는 정말로 보수적입니다. 시간은 흐르고 세대가 변하고 있는데 화교는 항상 옛 것을 선호하고 새로운 것에 대한 호기심이 부족한 것 같습니다. 이것으로 인해 직업의 다양성이 떨어지고 항상 정해진 범위 내에서의 활동만 합니다. 보수적인 것이 나쁘다는 것이 아닙니다. 단지 너무 지나치게 보수적인 것이 단점이라면 단점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셋째, 외관을 중요시합니다. 저희 학교 학생들은 외모를 꾸미기에 바쁩니다.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전부 메이커로 무장하고 다닙니다. 우리가 남이 나의 겉모습을 본다고 생각하기에, 남에게 잘 보이려고 자신의 모습을 꾸미고 다닙니다. 내면세계보다 외관을 중시하는 것... 이것은 아무래도 화교 전체의 질병인 것 같습니다.

넷째, 화교라는 것 자체가 한국에선 하나의 밀폐된 곳이라고 느낄 때가 많습니다. 한국 학생과 경쟁할 기회도 별로 없어 그들에 비해 경쟁력이 떨어지고 수준차이가 확연히 드러납니다. 그리고 화교는 한국친구를 잘 사귀지 못하기 때문에 정보수집도 늦고 문화교류도 기대하기 힘듭니다. 그렇기 때문에 화교가 우리에 갇혀있는 한 무리의 밀폐된 집단이라는 생각을 저는 떨칠 수가 없습니다.

이외에도 화교의 단점이 무궁무진 하지만 우리에겐 이를 채워줄 장점도 많이 있습니다. 처음부터 우리 화교가 경쟁력이 없었을 리가 없습니다. 우리는 화교라는 사실을 망각하며 한국에서 살아왔는지도 모릅니다. 우리들 자신이 화교라는 걸 다시 한번 상기하고 단점은 고치고 장점을 키우면 한국에서 사는 우리들이 더욱 발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들의 문제점

高 3-4 張 菁 怡

세계 각지마다 많은 화교가 있습니다. 그들은 인간관계가 넓고, 군락--차이나타운을 이루며 살고 있습니다. 특히 한국에 살고 있는 화교들도 예외가 아니라 항상 화교의 생활권에 같이 살고 있습

니다.

저는 화교들의 교육과 취업에 대하여 간략하게 얘기하고자 합니다.

한국에 거주하고 있는 화교들은 두 언어를 구사할 수 있습니다. 우리들은 그렇게 할 수 있다는 것을 당연시 여기고 있습니다.

하지만 해가 거듭함에 따라 중국어를 사용하는 화교들은 점점 줄어들고, 이를 접할 수 있는 기회가 점점 적어져서 심지어 어떤 학생은 학교 수업을 할 때만 빼고 중국어를 사용하는 시간이 거의 없습니다.

할아버지나 할머니가 계시는 집안에는 중국어를 곧잘 사용하지만, 요즘에는 국제결혼에다가 핵가족시대라 좁은 의미의 대가족마저 보기가 힘이 듭니다. 한국에 살면서 한국 문화에 물들여지면서 한국사람이 되어 가는 것 같습니다. 점점 자신들의 정체성을 잊어 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결국엔 그렇게나 자부했던 두 언어는 어느 하나 제대로 구사하지 못하게 됩니다.

현재 학교에서는 대만 대학 진학반 학생의 수가 계속 줄어들고 있고, 한국 대학 진학반의 학생 수가 날로 증가하고 있습니다. 공부 외에 게임, 외모치장 등 신경 쓰이는 것들이 산재해 있으니까, 많은 학생들은 거기에 푹 빠지게 되어 정신을 차리지 못하니 공부는 뒷전으로 밀리게 되자, 대학에 들어갔다고 하더라도 실력이 딸려서 따라가지 못해 휴학 계를 내든지 아니면 퇴학을 당해서 집으로 돌아오는 학생들이 점점 많이 생기고 있습니다.

한국에서 화교들이 선택할 수 있는 직업은 그리 많지가 않습니다. 대만이나 한국 대학을 졸업하였다고 하더라도 한국에서 직장을 얻기가 힘이 듭니다. 그래서 자유직업-- 즉 혼자 경영을 할 수 있는 직업으로 몰리게 됩니다. 일부 직장을 얻지 못한 화교들과 사업하기에 자본이 부족한 화교들은 먹고살기 위하여 법의 틈을 이용하여 돈을 벌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한국은 화교가 살아가는 데에

있어서 가장 열악한 환경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이제 남이 먼저 달라지길 바라기전에, 우리가 먼저 변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남들 앞에서 자랑스럽게 서서, 보는 이로 하여금 선망의 눈으로 바라볼 수 있도록 우리 스스로가 노력을 해야만 합니다.

그러기 위하여서는 허심탄회하게 자신의 단점을 찾아서 고치고, 장점은 장점대로 살린다면, 남들은 우리들을 행운아라고 할 것입니다. 우리 모두 자신감을 가지고 끊임없이 노력하여 당당하고 멋지게 살았으면 합니다.



화교의 문제점

高 3-4 牟 德 京

화교라는 이름 아래 같은 민족인 우리들은 타국에 함께 모여 생활하고 있다. 초기 한국 정부의 정책으로 인해 다른 나라의 화교들과 달리 성장하지 못하고 화교의 경제적 상황이나 사회적 지위 등 모두 제자리에만 머물고 있다. 게다가 지금 우리들은 많은 정책상 불이익이 사라졌음에도 불구하고 발전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더 이상 남의 책임으로 돌릴 것이 아니라 화교의 발전을 위해 우리 스스로의 문제점을 되짚어야 할 시기이다.

* 자국 문화에 대한 자긍심 결여, 사라진 개성

예로부터 화교는 외국에 생활하면서 민족의 생활이나 사고방식은 잘 지켜나가는 것으로 유명했지만 한국의 화교들은 자국에 대한 역사, 문화적 지식이 희박할 뿐더러 그다지 적극적인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다. 그리하여 무작정 한국의 유행만 쫓아가게 되었으나 한

국에 대한 감정을 또한 좋지 않은 편이다. 화교는 중국인의 특성과 한국인의 특성 모두를 갖고 있어, 결국 아무 특성도 완전히 갖고 있지 않은, 개성을 찾아볼 수 없는 화교 개성의 상실의 단계까지 이어진다.

* 자기 발전을 위한 노력 부족

더불어 화교 구성원 하나 하나인 우리들도 개성을 잃어가고 있다. 학교 성적을 예로 들어보더라도 남들보다 뛰어나기보단 남들과 대충 비슷한 성과만 나오면 만족하고, 자기 발전을 위한 노력을 소홀히 하여 학교 외의 지식엔 관심도 없다. 그러니 대학 진학에 있어서도 학생들의 선택의 폭은 점점 좁아지기 마련이고, 새로운 직업에 도전하는 이들도 드물다. 그렇다고 해서 화교들이 자주 가는 학과에서 화교가 뚜렷한 성적을 보이는 것도 아니다. 그것 역시 대충 대충 넘기려는 화교의 문제점과 관련이 있다.

* 문제 해결 방법의 문제점

앞서 말한바와 같이 화교들은 예로부터 많은 정책적인 불이익을 받아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적어도 내가 아는 한에선 화교들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해 노력하는 단체나 어른들을 볼 수 없었다. 이에 비추어 볼 때 우리들 역시 비슷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항상 학교에 대한 불만은 가득 차 있지만 용기 내어 말하는 이는 드물고, 기회를 준다하여도 꼬리를 감추기 마련이다. 핸드폰 보증금이나 인터넷 사이트 주민등록번호 인식 불가 등 모두 불만을 토로하지만 해결에 나서는 이는 매우 적다. 결국 변화하지 못하고 항상 그 자리에 머물 수밖에 없다. 이런 면은 우리 화교와 재일 교포들의 차이점이다.

작은 부분에선 화교 학생들이 의사 전달 능력이 떨어진다는 것과 연결시킬 수도 있다. 모국어와 한국어, 모두 할 순 있지만 어느 것 하나 제대로 하지 못해 공식적인 자리에선 논리 있는 얘기를 하지 못하고, 내가 잘못된 것을 발견했다 하더라도 나만 알고 있고 남들에게 알리지 않아 때론 문제점의 공식화조차 어려울 때가 있다.

이상 몇 가지 사례는 나를 포함한 화교들의 문제점들 간략하게 소개한 것이다. 이들 중 무엇보다 가장 큰 문제는 문제를 알면서도 반성하지 않는 우리들의 태도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한다. 문제점을 해결하여 화교의 위상을 높이려면, 먼저 우리들의 문제점을 객관적인 시각에서 바라보고, 생각의 범위를 넓혀 우리도 발전할 수 있다

는 자신감을 갖고 현실에 안주하고 만족하지 않고 새로운 것에 도전하며 노력하는 길밖엔 없다고 생각한다. 지금 이 순간도 그냥 흘려 보낼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보아야 한다.



화교의 문제점

高 3-4 畢 鑑 龍

세상엔 완벽한 사람은 없습니다. 어떤 방면에 특출난 사람은 있겠지만 다방면에 모든 것을 섭렵한 사람은 없습니다. 만약 그런 존재가 세상에 나와 있다면, 그것은 신(神)에게 버림받은 자이자 신의 유일무이한 실패작일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존재에겐 노력이란 단어 자체와 개선이란 게 필요가 없어 삶에 재미를 얻기 힘들 것 같기 때문입니다. 전 모든 사람을 평론할 재주는 없습니다. 때문에 제가 제일 잘 알고 있고, 제일 많이 접하는 화교의 문제점들에 대해 조금이나마 제 의사를 표현해 보겠습니다.

제가 보는 화교의 문제점은 크게 몇 가지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첫째로, 과다발산형. 어떤 일이건 간에 과장하고 범위를 크게 확대시켜 얘기를 변질시킵니다. 하지만 이는 장점일 수도 있습니다. 왜냐면 여기서 우리는 화교의 뛰어난 상상력이 다른 사람들보다 더 발달돼 있어 창조력의 활용범위가 넓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둘째로, 자아불만형. 화교는 아무래도 한국에서 직업선택의 폭이 좁고, 여러 가지 혜택에 제약이 따르다 보니 불만이 쌓이기 마련일 것입니다. 하지만 이 역시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비록 화

교들이 한국 사람들보다 직업선택의 폭이 좁지만, 한국 사람들도 선택하기 힘든 길을 우리는 걸을 수 있습니다. 우리에겐 비록 완벽하진 못하지만 뛰어난 어휘력과 여러 가지 특기가 있습니다. 때문에 우리는 이 약점을 기회로 삼아 더욱 크게 도약할 수 있습니다.

셋째로, 타인의존형. 이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화교는 너무 타인을 의존하는 것 같습니다. 이는 하려는 마음과 의지가 현저히 부족하다보니 일어난 사태입니다.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났을까? 이는 화교가 시사정보를 접하는 빈도가 적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일상 생활에서 접하는 뉴스나 신문을 외면하다보니 시사정보가 거의 제로에 가깝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남에게 질문하는 일이 점차 많아져 의존하는 지경에까지 왔습니다. 이런 상황을 하루아침에 개선하기는 어렵습니다. 하지만 하루 빨리 대책을 생각해야 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자아도취형. 화교의 마지막 문제점이자 가장 위급한 이 점은, 진짜 빠른 대책이 필요하다 생각합니다. 화교는 한 마디로 너무 낙천적입니다. 물론 전부 다 그런 건 아닙니다. 다만 대다수가 그렇다는 겁니다. 세상은 그렇게 만만하지만은 않습니다. 그렇다고 그렇게 어렵게 생각하지는 마십시오. 노력하면 안 될 일은 없습니다. 다만 노력의 질과 양에 차이가 있을 뿐.

이상 화교에 대한 제 의견을 마치겠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한 마디만 더 하겠습니다. 화교 여러분, 어느 노래 가사에서도 나왔듯이 세상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결코 노여워하거나 슬퍼하지 마십시오. 노력하는 자에겐 반드시 그에 합당한 결과가 올 것입니다!



화교 학생에 대해

高 3-4 楊 美 娥

중국 국적을 가지고 있지만 한국에 살고 있는 우리 화교들은 어

느 한 쪽에도 정착하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습니다. 중국어 또는 한국어 어느 하나 확실하게 구사할 줄 모르며, 같은 나이 또래의 다른 한국 학생들에 비해 경쟁심 또한 떨어지는 이러한 모든 문제들의 가장 큰 책임은 우리 한 사람 한사람 모두에게 있겠지만, 학교 교육에도 어느 정도 책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른 한국 학생은 중학교를 거쳐 어느 고등학교로 가야할지 고민해야 되고, 자신에게 적합한 학교에 들어가기 위해 여러 가지 시험을 거쳐야합니다. 거기에 비해, 우리 화교들은 초등학교 때부터 줄곧 어떠한 기준도 시험도 없이 입학하는 이런 상황들 때문에 나 아닌 다른 사람들과 경쟁하는 기회조차 갖기 힘들고, 경쟁해야 할 필요성도 느끼지 못하게 되어 이로 인해 뒤떨어지는 실력을 갖게 되고, 대학에서 더 나아가 사회에 나가서 많이 힘들어지게 됩니다.

이러한 복잡한 문제들은 결코 쉽게 해결될 문제들은 아니지만, 우리들이 모호한 태도가 아닌 적극적인 자세를 가지고 노력한다면 반드시 해결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화교의 정체성

高 3-4 王 暦 娟

화교란 세계 곳곳에 퍼져있는 중국인을 말합니다. 세계에서 가장 많은 인구를 가졌고, 오천 년의 역사, 그리고 역사 속의 무수히 많은 변동으로 인하여 많은 화교들이 해외로 이민을 갔습니다. 그래서 아무리 낯선 타지에서도 항상 화교가 존재하고 있습니다.

현재 한국에 살고 있는 화교들은 많은 문제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중에 가장문제가 되는 것은 우리 한국 화교들은 갈수록 조국에 대한 자부심은 늘지 않고 오히려 무관심하기만 합니다. 그것은 우리 화교의 신분이 어디에도 속할 수 없는 그런 애매함 때문입니다.

솔직히 저 역시 대만이나 한국이나 그 어느 쪽에도 속하지 못한다는 애매한 우리들의 위치로 인해 모국에 대한 역사나 그 외에 것들에 대해 소홀했습니다. 또한 나날이 늘어가는 한국대학 진학률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점차 모국보다는 현재 처한 상황에 맞추어 가는 현실을 접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한국에서 어깨를 펴고 살려면 이럴 때일수록 화교에 대한 자부심과 정체성을 잊어선 안됩니다. 설사 우리가 한국 대학에 진학을 한다고 해도 우리들은 '용의 자손'임을 잊어선 안될 것입니다. 어느 나라를 가던 제대로 된 대우를 받기란 쉬운 일이 아니지만 우리가 우리의 정체성을 잊지만 않는다면 그건 큰 문제가 되진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자신의 정체성을 알기 위하여 우리의 역사를 알아야 합니다. 자신의 민족에 대한 역사를 모른다는 것은 자기 자신을 모른다는 말과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더 좋은 나를 만들기 위해선 지금의 나 자신도 중요하지만 우리를 이곳까지 오게 한 우리의 조상들과 그리고 우리의 위대한 역사를 외면해선 안될 것입니다.

또한 우리의 후손들을 더 좋은 조건 아래서 살게 하기 위해서는 우리는 우리의 행동에 신경을 써야 하며, 불공정한 차별을 해소하기 위한 많은 노력을 해야 합니다.

강인한 생명력을 지닌 '화교', 위대한 민족성과 단합을 잘 하는 '화교'가 될수록 있도록 노력하고 조국에 대한 자부심과 애정을 가지면서 살아간다면 아무도 우리를 넘보지 못할 것입니다.



고3-4반 발표수업 --화교의 문제점

종합발표자 : 高 3-4 李 在 羲

저는 여러분께서 제시한 "화교의 문제점'들을 제 나름대로 다시

정리해 보았습니다. 우리 자신들의 문제인 만큼, 한 사람 한사람마다 모두 더욱 관심을 기울여 제시한 의견들이었고, 이번 계기로 인하여 모두 자신들에 대해 반성을 했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자, 그럼 이제 제가 다시 정리한 화교들의 단점에 대해서 이야기 해 보겠습니다.

첫째, 한국 학생들 보다 기본 상식이 부족하다는 문제점입니다. 한국 학생들과 달리 화교 학생들은 뉴스나 신문 등을 잘 보지 않아 시사 정보를 접하는 기회가 희박합니다. 이는 앞으로 우리 미래에 크나큰 영향을 미칠 뿐만 아니라, 자칫하면 기본 상식도 잘 모르는 화교로 낙인 될 수 있습니다.

둘째, 우리 화교 학생들은 화교란 밀폐된 공간 안에서 자라왔기 때문에, 입시의 고충이 많은 한국 학생들과는 달리 어느 정도 공부만 하면 그대로 중학교나 고등학교에 입학해 왔습니다. 그러므로 한국 학생들보다 남들과 경쟁하려는 노력이 부족하고, 입시 문제에 대한 조금의 관심도 없습니다. 어쩌면 이러한 문제들로 인해 더욱 더 대학 입학 문제가 어려워지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셋째, 우리 화교 학생들은 자기 자신의 주장을 표현하는 능력이 많이 뒤떨어집니다. 항상 겁부터 먹고, 위축되어 자기 자신의 생각이나 의견을 당당히 발표하지 못합니다. 자신감이 부족한 탓일까요? 장차 사회에 나가서도 지금과 같이 자신의 주장을 내세우지 못한다면, 그저 바보 같은 사람이라고 생각될 뿐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당당히 이야기 할 수 있는 발표력을 키워 어느 곳에 가더라도 자기 자신의 생각을 표현할 줄 아는 당당한 화교가 되야 하겠죠?

넷째, 이것은 여러분들께서 가장 많이 제시한 문제점이기도 합니다. 바로 "언어"에 관한 문제죠! 우리 화교학생들은 자신들의 모국어인 중국어도, 그리고 한국어도 어느 것 하나 제대로 구사하지를 못합니다. 그저 간단한 말뿐이지, 문장 실력이 뛰어난 사람은 그리 많이 않다는 얘깁니다. 모국어를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면서도 전혀 부끄러움을 느끼지 못할 뿐더러, 한국어와 중국어를 모두 접할 수 있는 좋은 조건에서도 전혀 이를 기회로 삼지 않고, 노력도 하지 않습니다. 더 나아가선 어쩌면 이러한 문제들은 화교학생들이 한국

학생들에 비해 연약한 교육환경아래 교육받고 있기 때문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되었습니다. 언어도, 교육환경도 한국인보다 훨씬 월등해 지도록 노력해야겠지요?

마지막으로는 여러분 모두가 다 잘 알고 있듯이 외국인 등록번호나, 인터넷 사이트 가입, 핸드폰 구입, 세금 문제 그리고 취업의 범위가 좁아 많은 불편을 겪고 있다는 등의 의견이었습니다. 한국정부의 불합리한 대우와 불공평한 법률 등을 질책하고, 나무랄 뿐 정작 가장 필요한 개선의 노력을 화교들은 하지 않습니다. 다른 나라에 거주하고 있는 화교들에 비해 한국에서 살아가는 화교들이 더

욱 불공평한 대접을 받는 이유도 다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다른 나라에서 거주중인 화교들은 모두 자신들의 생활과 문화를 발전시키려고 노력하는 반면에 한국 화교들은 자신들의 주체성을 잃어가며, 자기 고유의 문화 풍습을 추구하려는 생각조차 하지 않고 있습니다. 단합심이 부족하며 이러한 문제점들을 알고 있으면서도 개선하려 하지 않습니다. 이젠 정말 화교들도 자신들을 돌이켜 볼 때 가 온 것 같습니다. 이제 정말 늘 한국정부를 비판할 것이 아니라, 서로 힘을 모아 좋은 해결책을 찾아 더욱 더 좋은 화교사회를 만들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됩니다.



화교의 사명감

譚 道 經

고3-4반(54명) 한국어 시험에 '한국화교로서 자신이 느끼는 장단점에 대하여 논하라'는 문제를 출제하고 평상시 생각한 것을 쓰고 싶은 데로 쓰라고 했다. 시험 문제이기 때문에 오랫동안 사고할 시간이 별로 없었을 것이다. 이로써 그들이 평상시에 생각하는 것을 살펴보고, 화교의 정체성과 사명감을 알려주고 싶었다.

학생들이 생각하는 화교로서의 장점으로는 '2개 국어를 사용할

수가 있어서 좋다'(42명), '특별 전형으로 대학교에 비교적 쉽게 들어갈 수가 있다'(31명), '협동심과 단결력이 강하다'(17명), '군대에 갈 필요가 없기 때문에 사회 적응할 시간이 많다.'(9), '적응력이 탁월하다'(5) 등의 내용으로 나타났으며, '상술이 뛰어나다'(4), '애국심이 강하다'(3), 그 외에는 '낙관적이다', '중국문화 전통을 잘 보존하였다', '사고의 폭이 넓다', '선한 사람이 많다', '절약 정신이 강하다'라는 답을 썼다.

단점으로는 화교가 한국인의 배타성으로 본의 아니게 발생된 신분상의 불이익을 '한국의 차별대우'라고 생각을 하고 있는 학생들이 많다(32), 한국에서 매일 한국어로 보고, 읽고, 쓰고, 생각하니, 모국어에 대한 실력의 감소가 많은 고민을 안겨다 주게 되어 모국어인 중국어능력의 저하를 많이 걱정하였다(28). '대학교를 쉽게 들어가기 때문에 반드시 무엇을 해서 이겨야 된다는 사명감이 결여되었기에 경쟁력이 없고 공부를 안 한다'(13). '자기 자신을 남에게 나타내는 것이 습관화가 되지 않아서 나서려고 하지 않는다'(10), '발표력이 부족하고 자신감이 없으며 의지력이 약하다'(9), '화교의 생활이 폐쇄적이다'(9), '개선하려는 용기가 부족하고 자신의 주장을 내세우지 못하고', '부당한 처사에 대한 항의 용기가 없다'(9), '상식에 별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8), '직업 선택 폭이 적다'(8), '소문을 잘 퍼트린다'(8), '주관이 또렷하지 않다'(5), '남에게 의지를 잘 한다'(4), '낭비벽이 심하다'(4), '단결력이 약하다'(3), '소극적이다'(3), '행동보다 말이 먼저다'(3), '새로운 것에 대한 도전성이 부족하다', '게으르다', '화교로서의 특성을 잃어가고 있다', '시간 약속을 잘 지키지 않는다', '큰 일은 회피하고 작은 일은 안 하려고 한다', '사교성이 없다', '모국에 대한 관심도가 떨어진다', '조국의 차별대우' 등을 화교들의 단점으로 지적하였다.

위의 내용으로 본다면, 화교들의 한국화가 심각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가장 큰 장점으로 나타났던 다언어의 사용이 지금은 오히려 모국어에 대한 능력저하의 우려를 나타내고, 특별전형으로 대학에 갈 수 있는 장점은 오히려 대학교의 자의적인 선발로 인하여 때로는 가고 싶은 대학 또는 학과에 가기 힘든 경우가 발생한다. 군대에 갈 필요가 없기 때문에 시간이 많아서 사회적응할 시간이 많

다고 하지만, 조직적인 생활의 결여로 한국 사회의 적응이 오히려 어렵게 되었다.

학생들은 한국의 배타적인 정책을 한국사회에서 살아가는데 가장 큰 어려움이라고 생각하고 있다(32). 한국인은 외국인에게 매우 친절하다. 그러나 외국인에 대한 정책적인 배려는 특혜라고 생각을 하고, 외국인이 한국에서 착취를 해간다는 피해의식이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외국인이 자신에게 피해를 주었다싶으면, 제재를 가해 온다. 화교들은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 길옆에 있는 잡초처럼 현실에 잘 적응하면서 살아간다. 자신을 감추고 화교들만의 폐쇄적인 생활을 한다. 그러나 개선하려는 용기가 부족하고, 자신의 주장을 내세우지 않고, 부당한 처사에 대해 '잘 못하다간 불이익을 당할까봐' 나서서 항변도 하지 않는다. 때로는 매사에 소극적이다. 그래서 우리가 알고 있는 화교의 특성들이 사라지고 있는 것 같아서 아쉽다.

다행스럽게도 학생들은 자신을 뒤돌아 볼 줄 아는 안목을 가지게 되어 매우 기쁘다. 용감하게 자신을 비판할 줄 알아서 좋다. 그러나 비판만 하고 개선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다면 불평불만만 늘어나고 부정적인 삶을 살아가게 된다. 그렇게 되면 한국에서의 우리들의 삶의 질은 점점 하강의 곡선을 그리게 된다.

어떻게 하여야 우리가 잘 살 수가 있을까? 어떻게 해야 우리의 전통을 살리고 한국과 상부상조하여 살아갈 수가 있을까? 어떻게 해야 우리의 조국과 우리가 살고 있는 한국에 도움을 주며 살 수 있을까? 이것들은 바로 우리 화교들이 고민해야하고, 해쳐나가야 할 중요한 사명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다언어 사용의 장점을 살리기 위해서는 모국어를 충실히 사용하여야 하고, 한국어도 정확한 표현을 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래야 우리 화교가 중한양국의 다리 역할을 할 수가 있을 것이고 더불어 살아가게 된다. 또한 이로서 중한양국을 비교할 줄 아는 안목이 생기게 되고, 우리가 아니면 누구도 할 수 없는 것들을 찾아 낼 수가 있을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우리들은 자신감이 생기고 한국에서 긍정적인 삶을 살아갈 수가 있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우리 한국화교들의 사명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 모두 피나는 노력을 해서 우리의 조상들이 한국에서 세운

명성을 이어받고, 우리 후손들이 질 좋은 삶을 살아 갈 수 있도록 하자.

학생들이 지적한 내용을 살펴본다면 다음과 같다

우리들의 장점

2개국어 사용..................................... 46

특별전형으로 상급학교 진학........ 31

협동. 단결심이 강하다................. 17

군대에 갈 필요가 없다.................. 9

적응력이 탁월하다........................... 5

상술이 뛰어나다.................................4

애국심이 강하다.................................3

문화의 다양성이 있다................... 1

낙관적이다........................................ 1

중국문화를 잘 보존하였다........... 1

사고의 폭이 넓다........................... 1

선한 사람이 많다........................... 1

절약 정신.......................................... 1

우리들의 단점

화교에 대한 한국의 차별............. 32

중국어능력의 저하......................... 28

경쟁심 부족..................................... 13

나서려고 하지 않는다................... 10

의지력이 약하다.............................. 9

개선 용기 부족................................. 6

생활의 폐쇄성................................... 9

상식에 별 관심이 없다................... 8

직업 선택 폭이 적다....................... 8

소문을 잘 퍼트린다......................... 8

주관이 뚜렷하지 않다..................... 5

남에게 의지를 잘 한다................... 4

낭비벽이 심하다............................. 4

단결심이 약하다............................. 3

소극적이다....................................... 3

행동보다 말이 먼저다.................. 3

새로움에 대한 도전성 부족........ 2

게으르다 ......................................... 2

특성을 잃어가고 있다................... 2

시간 약속을 잘 지키지 않는다... 1

큰일은 피하고 작은일은 안 함... 1

모국에 대한 관심이 떨어진다..... 1

화교에 대한 조국의 차별............. 1

사교성이 없다.................................. 1







<우스개 소리 - 웃으며 살아요>

할인 슈퍼마켓

인터넷 자료

어떤 사내가 대형 할인 슈퍼마켓에서 강아지 먹이를 사려고 했다.

그런데 점원이 단호한 목소리로 말하는 것이었다.

"손님. 강아지가 있다는 증거를 보여 주셔야만 먹이를 사실 수 있습니다."

"뭐요? 그런 게 어딨소?"

"하지만 어쩔 수 없습니다. 증거를 보여 주셔야 합니다."

남자는 할 수 없이 번거롭게 집까지 강아지를 가지러 갔다가 들고 와서 보여 주고 난 후에 먹이를 살 수 있었다.

며칠 후 남자는 다시 고양이 먹이를 사러 그 가게에 들리게 됐다.

"고양이 먹이 두 개 주세요."

"죄송합니다만 고양이가 있다는 증거를 보여 주셔야만 고양이 먹이를 사실 수 있습니다."

남자는 황당해서 종업원에게 따져 들었지만 결국 할 수 없이 집에 가서 고양이를 붙들고 와서야 겨우 고양이 먹이를 살 수 있었다.

그렇게 며칠 후 남자는 웬 가운데 구멍이 뚫린 상자를 갖고 가게에 들렸다.

점원이 말했다.

"뭘 사시러 오셨죠?"

"이 상자 구멍에 손을 넣어 보면 알아요."

점원은 상자에 손을 넣어봤다.

그랬더니 이게 웬일인가?

상자 안에는 뜻밖에도 "똥"이 들어있는 것이었다.

점원이 말했다.

"아니! 손님. 무슨 짓이십니까? '똥'이잖아요!"

그러자 남자가 하는 말,

"알았으면 두루마리 화장지 두 개!"

<올림픽 이야기>

제27회 2000년 시드니 올림픽

체육 교사 李 敬 子

지구촌을 들끓게 한 200 시드니 올림픽은 새 천년을 시작하는 올림피아드 축제에 걸맞게 사상 최대의 규모로 열렸다. "황금 알을 낳는 거위"로 막대한 이익도 예상되었으며, 최다 선수, 최다 종목, 최다 수익으로 삼위일체를 이뤄 열전 17일 동안 지구 팬들의 이목을 끌어 모으게 된 시드니 올림픽을 숫자, 인원, 돈 등으로 풀어보았다.

[숫자]

1) 1 : 첫 체혈 검사 도입으로 강화된 도핑 테스트 양성 반응 예상 비율

2) 2 : 새로 채택된 정식 종목 수(태권도, 트라이애슨론)

3) 4 : 호주 달러화로 선수촌 내 김치 한 봉지 판매가

4) 17 : 대회 일수

5) 26 : 하루 가장 많이 걸린 금메달 수. 대회기간 중 9월23일

6) 27 : 대회 횟수

7) 28 : 총 종목 수

8) 36 : 총 경기장 수

9) 96 : 남북한 최초 올림픽 동시 입장 순서

10) 179 : 선수촌 하루 메뉴 종류

11) 200 : 출전국 수. 아프가니스탄 제외한 전 IOC 회원국 참가

(96년은 197개국)

12) 300 : 총 금메달 수. 96년보다 29개 늘어남.

13) 599 : 99일간 성화가 돈 호주 도시

14) 800 : 중계 카메라 수

15) 1031 : 최다 규모 선수단(호주)

16) 1500 : 선수촌 제공 전 세계 음식 메뉴 수

17) 3100 : 제작된 총 메달 수

18) 3400 : 중계되는 총 경기 시간

19) 2만 4000 : 전 세계에서 운영되는 올림픽 관련 사이트 수

20) 2만 7000 : 사상 최장의 성화 봉송 거리

21) 6만 : 선수촌에서 제공되는 하루 끼니 수

22) 9만 : 올림픽으로 호주에서 창출되는 일자리 수

23) 17만 : 대회기간 하버브리지에 설치된 대형 오륜마크를 밝히는

전등 수

24) 500만 : 총 입장권 수

25) 400억 : 전 세계 방송사들이 방영할 연시간

[인원]

1) 40 : 중국 선수단 출정 직전 약물검사 양성반응 사태로 애

거 제외한 멤버 수(선수만 27명)

2) 2700 : 도핑테스트 예정 인원

3) 1만 : 대회 경기 요원(군인 포함)

4) 1만 1000 : 취재 보도진 규모



<과학상식>

광우병이란?

성인건강 동의보감연구회 www.today365.net

4∼5세의 소에서 주로 발생하는 전염성 뇌 질환으로서 그 원인은 프리온 단백질의 화학구조에 인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광우병은 사람에게 야곱병이라는 병증으로 옮길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광우병에 대하여 항상 관심을 가지고 지켜봐야 할 것입니다.

광우병이 사람에게 전이시킬 야곱병이란 프리온 단백질의 화학구조에 의해 발생하며, 증상은 소의 뇌에 구멍이 생겨 갑자기 미친 듯이 포악해지고 정신이상과 거동불안, 그리고 난폭해지는 등의 행동을 보이는 것이 특징인 것입니다. 이러한 광우병은 1996년 3월 영국정부의 보건부장관이 광우병의 원인이 되는 프리온 단백질의 화학구조가 야곱병을 일으키는 원인물질과 비슷하다는 연구결과를 받아들여, 광우병이 인간에게 감염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인정함으로써 인류사회에 대단한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광우병과의 접촉으로 인간에게 감염될 가능성이 있는 야곱병은, 종래에는 고령자에게 나타나는 병이라고 생각되어왔으나 새로운 종은 젊은이에게도 걸릴 우려가 있다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또 발병에서 사망까지의 기간이 종래의 4개월보다 긴 1년이며, 병원체로 보이는 프리온이 뇌 전체에 퍼져 있는 것이 고령의 환자와는 뇌파의 패턴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한편 영국정부는 광우병에 대한 조사 보고와 함께 1996년 3월 쇠고기의 일시 판매중지를 선언하고 유럽연합도 영국산 쇠고기에 대한 전면 금수조치를 취하였고, 그 후 유럽의 쇠고기 소비량은 40%나 감소하고 수많은 소가 떼죽음을 당하여 유럽 전역의 육류시장과 농가에 커다란 피해를 입고 있는 실정입니다.

신화학물질 프리온이 인간의 몸에 들어오면 뇌를 스펀지 덩어리처럼 무력화시킬 것으로 우려되고 있으며, 인체가 프리온을 분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프리온이 신경조직에 침입해 퍼지기 시작하면 막을 방법이 없다는 것으로, 처음에 음식과 함께 위장으로 들어간 프리온은 신경망을 돌아다니다 뇌까지 도달하며, 그리고 서서히 속도를 높여가며 뇌를 쓸모 없는 스펀지 덩어리로 만들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전혀 희망이 없는 것은 아니고, 로키 마운틴 연구소는 광우병 프리온의 형성을 방해하는 것으로 보이는 화합물 몇 가지를 확인했으며, 이 물질은 야콥병 초기 환자를 치료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여지고, 그러나 현재로서는 증상으로만 야콥병을 진단하는 방법이 없다는 것이 문제이며, 아직 과학자들은 프리온이 많이 몰려 있는 뇌·편도선·맹장 등의 조직을 직접 떼어내 검사해야 합니다.

스위스 취리히大 과학자들은 더 간편하고 정확한 검사방법을 개발했다고 발표했으나 이 방법이 널리 사용되려면 얼마나 더 기다려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과학 상식>

석빙고

한국교육신문

우리 유산 중 가장 한국적이 면서도 과학적인 것으로 석빙고를 꼽을 수 있다. 석빙고의 외견은 단순한 고분 형태다. 빙실 공간이 주변 지반에 비해 절반은 지하에, 절반은 지상에 있는 구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이런 석빙고에 무슨 대단한 과학이 들어있냐고 할 지 모르지만 그렇지 않다.

석빙고의 유래는 삼국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삼국유사>에 의하면 노례왕 (24~25년)때 이미 얼음창고를 지었다는 기록이 있으며 <삼국사기>의 '신라본기'에도 지증왕 6년 (505년)에 얼음을 보관토록 명령했다는 기록이 있다. 석빙고의 규모는 대부분 30평 이상, 적은 경우에도 10평이 넘었다. 석빙고에 저장하는 얼음의 두께는 12m 이상이 되어야만 했다.

빙고의 바닥은 흙다짐이나 흙다짐 위에 넓은 돌을 깔아 놓았고 바닥은 경사지게 만들어 얼음이 녹아서 생긴 물이 자연 배수되게 했다. 빙고 구조에서 가장 특징적인 요소는 빙실 천장을 아치로 만든 것이다. 그러나 이 형식은 전체를 아치로 만든 구름다리나 성문들과는 달리 일정 간격으로 세우고 이를 구조재로 해 그 사이를 석재로 쌓거나 판석을 얹었다. 석재는 화강석으로 규격은 대체로 0.5톤 정도, 석빙고 건축 때 철물과 회를 많이 사용했는데 철물은 석재와 석재 사이가 서로 분리되지 않도록 삽입했다. 회를 많이 사용한 것은 봉토 조성 때 진흙과 함께 혼합해 외부에서 물이나 습기가 침입할 수 없도록 하기 위한 용도였다. 천장에는 빙실 규모에 따라 환기 구멍을 만들었다. 환기공은 봉토 밖으로 나오게 해 그 위에 환기공보다 큰 개석을 얹어 빗물이나 직사광선이 들어가지 않게 했다.

장도순 교수는 석빙고가 반지하 냉동창고의 역할을 할 수 있었던 매커니즘을 분석했다. 즉 단열재로 사용한 볏짚이나 갈대의 존재 여부 및 얼음의 충진량에 따른 계산 결과를 분석한 것이다.

얼음의 충진량이 50%인 경우 짚이 없을 때는 석 달 후 얼음량 감소가

6.4%, 여섯 달 후 38.4%가 되는 반면, 짚이 있을 경우 석 달 후 얼음량 감소는 0.04%, 여섯 달 후 얼음량 감소는0.4%에 불과했다. 얼음 충진량이 100%인 경우 짚이 없을 때는 석 달 후 얼음량 감소가 9.2%, 여섯 달 후 51.8%로 절반 이상이 감소한 반면, 짚이 있을 경우 석 달 후의 얼음량 감소는 2.8%, 여섯 달 후에는 18.4&나 되었다. 얼음의 양과 볏짚의 유무에 따라 얼음 저장 능력이 조절되는 것이 현실적으로 가능했다는 뜻이다.

여름에 항상 얼음을 먹을 수 있도록 만든 시설은 세계적으로 거의 유례가 없다는 것은 부연하면 우리 조상들의 슬기에 으쓱해질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이야기>

말(言)의 고향을 찾아서 - 설렁탕

한국4-H신문(2000/12/15)

소의 머리·내장·족·무릎도가니...... 따위가 폭 고아진 국물에다 그 고기 조각들이 섞인 국밥이 설렁탕인데 요즈음에는 설렁탕인지 곰탕인지 구별을 할 수 없는 상태로까지 되었다. 설렁탕국물은 보얀 편이어서 누렇게 뜬 기름기가 싫은 사람에게는 술 마신 이튿날의 해장으로도 그럴싸한 것이었다.

그러나 요즈음 시중에서 파는 설렁탕이란 것은 그야말로 황우도강탕(黃牛渡江湯)이다 싶게 싱거운 것들이 대부분이다. 그도 그럴 것이 제대로 국물을 뽑기로 든다면 그 값에 밑천 건지기 어렵다는 말도 나오게 될 테니 말이다.

서울 용두동 쪽 서울대학교 사범학교 터에 선농단(先農壇)이라는 것이 있었다. 지금도 그 흔적이 있지만 농사짓는 법을 가르친 신농씨와 후직씨를 제사지냈던 곳이었으니, 농경민다운 습속을 이어받은 때문이었다고 할 일이다. 해마다 절기가 봄으로 접어들 때, 즉 경칩(驚蟄)이 지난 돼지날(亥日)을 가려 지낸 이 제사에서는 적전지례(積田之禮: 임금이 친히 밭을 가는 의례)를 행했으며 비가 안 오면서 가물어대는 해에는 이곳에서 기우제를 올리

기도 했다.

그러던 조선 왕조 성종 6년(1475) 정월에 임금께서 이곳에 납시되었다. 종친 월산대군에 재상 신숙주도 끼었으며 거기에 시민이 합세하여 밭을 갈았다. 그러고서 백성을 위로하여 국말이밥과 술을 내렸는데, 이때 선농단(先農壇)에서 먹게 된 국밥을 '선농탕’(先農湯)이라 이름지어 부르게 되었다. 그리고 그 이름이 오늘날까지 내려오게 되어 '설렁탕’이라는 말로 되었다는 것이 '설렁탕’에 대한 일반적인 어원론이다.

'곤난(困難)'이 '곤란→[골란]’으로 발음됨은 이른바 닿소리의 이어바꿈 현상이다.

우리말은 '遁’과 '遁’이 이어질 때 '鱁+鱁’로 발음되는 것이어서 '한남동’이 '[할람동]', '논난(論難)’이 '[놀란]’으로 된다. 그런 발음 현상에 따라 '선농탕’을 '설롱탕’이라 말하는 동안 그 한자인 '先’자를 '蕓’자로 갈아 끼워 봤던 것이라고도 할 수 있을 때, '蕓’과 '濃’의 두 한자에서 말의 뜻을 찾으려 함은 애당초 잘못이었다고 하겠다.

이야기가 여기까지 나와서 말이지만, 오늘날의 '설렁탕’과 '先農壇’과는 아예 관련이 없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것은 굳이 말밑을 캐다보니 그쪽으로 기울어 해석하게 되었다고도 말할 수 있겠기 때문이다. '先農壇’의 '先農’과 여항에서 말하는 '설롱탕’혹은 '설렁탕’의 '설렁’이 비슷한 음이어서 갖다붙여 본 것일 수도 있지 않겠냐 함인데, 어쨌거나 '설렁탕’의 유래를 '先農壇’에 갖다댄 것은 농경민이었던 우리네 조상의 냄새를 그대로 풍겨 준다는 뜻에서도 그렇게 어색하지는 않다. 학자 가운데는 몽골말 silu(n)-실루(실룬)에서 차용한 말이라는 설을 내세우는 이도 있다. 그렇게 말한다면 고깃국물을 뜻하는 만주어인 sile(실레)와 무관하지 않다고 말할 수도 있겠다. 설사 뿌리가 거기였다 해도 너무 멀리만 느껴진다는 것은 사실이다.

직장에서 동료들과 어울려 점심을 하러 갔을 때 설렁탕집에라도 들를 양이면 비록 맛이야 장삿속으로 옅어졌다 하더라도 거기서 지난날 내 조상들의 적전지례 정경이나마 떠올려 볼 일이다.

<이런 이야기>

예절과 문화생활 - 탈것에 대한 공공예절

한국4-H신문(2001/02/01)

[전철, 버스 등 대중교통수단]

지정석이 없는 대중교통수단을 이용할 때 노약자나 여성에게 자리를 양보한다는 것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에티켓의 기본. 차내에서 크게 떠드는 등 다른 승객에게 폐가 되는 행위도 금물.

남녀가 함께 대중교통수단을 이용한다면 남성은 여성이 먼저 타는 것을 돕고 난 뒤에 승차한다. 승차 후에 자리가 나면 여성이 먼저 앉게 한다. 혹시 다른 승객이 자리를 양보한다면, 남성이 대신 감사인사를 건넨다. 내릴 때에는 남성이 먼저 내려서 뒤에 내리는 여성을 돕는다.


[엘리베이터]

손윗사람이나 여성이 먼저 타고 내린다.

엘리베이터 내부에서의 상석은 엘리베이터로 들어갈 때 왼편 안쪽 자리다.

호텔이나 아파트 등의 엘리베이터에서는 여성이 타고 있을 경우 남자는 모자를 벗는 게 예의다. 사무용 건물이나 백화점 등 공공장소의 엘리베이터에서는 모자를 벗을 필요까지는 없다.

[계단이나 복도]

연장자나 상급자가 중앙에 서게 한다. 나란히 걸을 때에는 연장자가 오른쪽에 서도록 하고, 상급자를 수행할 때에는 수행하는 사람이 조금 앞서서 걷는다.

계단을 올라갈 때에는 남성이 여성보다 먼저 올라간다. 계단을 내려갈 때에는 여성이 앞에 서는 것이 에티켓. 다만 계단 경사가 급하거나 위험해 보일 때에는 남성이 앞장을 선다.

[장거리 버스]

유럽에는 장거리 버스 교통망이 잘 돼 있어서 쾌적한 여행을 즐길 수 있다. 버스 안에 화장실은 물론 냉장고가 비치된 버스도 많다.

장거리 버스 여행을 할 때의 복장은 편하게 활동할 수 있는 것이 최선. 여성은 니트나 스웨터, 슬랙스에 뒤축이 낮아 편한 신발, 남성은 스포츠 재킷에 스웨터, 편한 바지 정도가 좋다.

차멀미의 원인이 될 수 있으므로 승차 전에는 술을 많이 마시거나 음식물이나 음료를 많이 먹지 않도록 한다. 만일의 경우를 생각해서 비닐봉지를 가져가는 것도 좋다. 그 외에 선글라스, 가벼운 무릎덮개, 수면용 안대나 귀마개 등을 준비하면 편한 수면을 즐길 수 있다.

차안에서는 휴대용 라디오를 크게 켠다거나 일행끼리 시끄럽게 떠드는 등 다른 승객에게 폐가 될 만한 행동은 피한다.

[비행기]

비행기는 상급자, 연장자가 마지막으로 타고, 맨 처음 내리는 것이 올바른 순서. 기내에 들어가면 승무원에게 탑승권을 보여주고, 안내에 따라서 자기 좌석 방향의 통로로 들어간다. 무거운 휴대품이나 작은 가방 같은 것들은 앞좌석 아래에 놓고, 코트나 모자 등 가벼운 것만 머리 위 선반에 넣는다.

이착륙 때나 비행기가 난기류를 만나 요동칠 때, 표시등에 불이 들어오면 반드시 안전벨트를 착용해야 한다. 이 외에도 이착륙 시는 휴대용 전자기기로 음악을 듣지 않는 등 안전에 관련되는 일은 철저하게 지켜야 한다.

장거리 여행의 경우 기내에서는 양복 대신 구김이 덜 가는 간편한 옷차림을 하는 것이 좋다.

장거리 여행 중에는 기압관계로 발이 붓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신발을 벗고 슬리퍼로 갈아 신는 것은 무방하다. 그러나 양말을 벗는 등 지나친 행위는 삼가야 한다.

또 신발을 벗은 채, 혹은 슬리퍼만 신은 채 좌석 사이를 왔다갔다하는 것도 절대 금물, 국제선에서는 기내식을 제공하는데, 좁은 공간에서 식사를 하기 때문에 승객들에게 기본 예의를 지키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식사 서비스가 시작되면 자기 자리에 앉아서 등받이를 바로 세우고 테이블을 펴놓는다.

통로 쪽에 앉은 사람은 창가좌석으로 식판을 건네주는 것이 좋고, 창 쪽에 앉은 사람은 식사 도중에 통로로 나오는 일이 없도록 주의한다.

식판이나 음료를 받을 때에는 승무원에게 감사 표시를 한다. 목적지 도착해서 기내에서 내릴 때에도 문 앞에 서있는 승무원들에게 가볍게 인사하는 게 예의.



<역사의 유적을 찾아서>

덕수궁

한국4-H신문(2001/02/01)

중구 정동 5번지 덕수궁(德壽宮: 사적 제124호)은 우아하고 조용한 넓은 정원의 꽃밭에 피어나는 봄철의 작약꽃, 여름철의 모란꽃이 온갖 사람들을 매혹시키고 가을이 되면 정성껏 가꾼 국화전이 선을 보이는 등 고궁의 그윽한 정서가 넘쳐흐르는 곳이다.

덕수궁은 원래 성종의 형님인 월산대군(1954~1488)의 사저였는데 1593년 10월에 의주의 피난길에서 환도한 선조를 이곳에 들게 하고 서궁이라고 불렀다. 선조는 이 서궁의 음어당(音御堂)에서 승하할 때까지 15년간 국사를 보았으며 이어 광해군이 왕위에 오르게 되자 국명을 경운궁이라 칭하였고, 명례궁이라고도 했다. 이곳에서 즉위한 광해군은 궁궐을 확장시켜 지금의 정동 1번지 일대를 모조리 궁역으로 삼았다. 그 후 선조의 뒤를 이은 광해군은 1608년 이곳 행궁에서 즉위한 후 1611년 행궁을 경운궁이라 고쳐 부르고 7년 동안 왕궁으로 사용하다가 1615년에 창덕궁으로 옮기면서 이곳에는 선왕인 선조의 계비 인목대비만을 거처케 하였다. 1618년에는 인목대비의 존호를 폐지하고. 경운궁을 서궁이라 낮추어 부르기도 하였다. 1623년

광해군을 몰아낸 인조가 이곳 즉조당(卽祚堂)에서 즉위를 올리고 1647년에 창덕궁으로 옮겨 갈 때까지 이 궁전을 사용했다.

그 후 이 궁전은 1897년부터 고종에 의하여 정식 궁궐로 사용되기까지 270여 년 동안 왕가의 별궁 또는 사고로 사용됐었다.

1895년 8월 불행하게도 민비가 왜인(倭人)들에게 시해당한 을미사변이 일어난 후 다음해2월 고종이 정동에 있는 러시아공사관으로 피신하였다가 8개월만에 이 궁궐로 환궁 동 10월에 함녕전에서 황제즉위식을 거행했다.

이로부터 국호는 대한제국(大韓帝國)이며 연호를 광무(光武)라 정했다 민비를 명성황후로 추봉했으며, 왕세자를 황태자로 한 것도 이때였다. 1897년 고종황제가 러시아 공관에 있다가 환궁하면서 이곳을 다시 왕궁으로 사용하게되었는데, 그때부터 다시 경운궁이라 부르게 되었고 그 규모도 다시 넓혔다 광무 8년(1904년)에 이 경운궁에서는 불행의 큰불이 발생하여 석어당을 제외한 모든 전각, 당우가 소실되고 말았다. 다음 해에는 중건되었으나 친일세력의 음모, 책동과 일제의 강압으로 말미암아 이곳에서 우리 외교관을 일제에 탈취 당하는 치욕적인 을미조약이 체결되고 말았다.

그리고 2년 후에 고종황제는 황태자에게 자리를 물려주는 양위식을 일제에 의하여 강요당해 역시 이곳에서 이조최후의 임금 순종이 즉위식을 올렸었다. 순종은 1907년 11월 창덕궁으로 옮겨 갈 때 태황제(고종)의 장수무강을 기원하는 뜻으로 이 경운궁의 명칭을 덕수궁이라고 고쳤다.

1910년 8월 22일 한일합방이 조인됨으로써 조선왕조 500년의 찬란한 역사가 막을 내렸거니와 이태왕(李太王)으로 불리게 된 고종은 엄비와 함께 이 덕수궁에서 치욕과 울분에 찬 세월을 보내다가 1919년 마침내 일제에게 독살당하고 말았다. 고종 승하한 후 빈 궁궐이 된 덕수궁은 주로 빈객의 접대장소로 사용되었는데 일반시민들에게 개방되기는 1934년부터이다.

대한문을 들어서면 현재 덕수궁 안에는 중화문과 정전인 중화전을 비롯, 즉조당, 석어당, 준명당, 함녕전, 석조전등 전각 이외의 물시계인 누각과 서남쪽 한구석에 홍천사 대종이 있으며 한글 창제의 영주 세종대왕의 동상과 어머니 헌장비도 건립되어있다. 88년까지 추진된 5대 궁의 복원사업지침을

보면, 일제 때 의도적으로 파괴하였던 중화전 전정을 복구정비하고, 고층건물에 포위된 주위환경을 정화하기 위하여 나무를 심어 경관을 조화 있게 만들었다.

석조전과 미술관건물을 궁의 역사성에 맞게 조선왕조 궁 유물박물관으로 개설하고, 석조전 앞 중정식 서양공원은 고종 때 조성된 것이므로 보존하고 시멘트로 된 분수대(원래 청동제였으나 일제 때 청동을 쓰기 위해 뜯어감)를 청동제로 다시 주조(鑄造)했다.

덕수궁은 특히 구한말 비운의 황제 고종이 일제의 압박으로 양위를 강요당하고 한 많은 여생을 보내다가 돌아가심으로 3·1독립운동의 직접적인 계기가 되었던 곳이다.

덕수궁 광명문은 원래 함녕전의 정문으로 사용됐던 것을 광무 8년(1904)의 큰불로 소실된 것을 그 해 중건한 것이다. 그 후 1938년에 석조전을 미술관으로 개관하면서 홍천사의 범종과 누각을 진열하기 위해 이 문을 현재의 위치로 옮겨 오늘에 이르게 되었다.

대한문은 덕수궁의 정문으로, 원래는 덕수궁의 정전 남쪽에 있었던 대한문을 동쪽으로 옮긴 것인데, 광무 10년(1906)에 중건하고 고종황제가 이름을 대한문이라 개칭한 것이다.

대한문이란 현판은 당시 조정의 중신으로서 예조판서, 한성판윤을 역임한 남정철의 글씨이다. 이 문은 정면 3칸, 측면 2칸에 원주를 사용하고, 원래 높은 장대석의 기단 위에 돌계단이 설치되었던 것이다.







열일곱 번째 <한글마당>을 마치고 나서

이번 편집은 고3학생들이 졸업을 앞두고 있어서 고1과 중2학생들로만 하게 되었습니다. 아직은 서툴기도 했지만 열심히 해 보려는 아이들의 모습이 늘 보기 좋았습니다. 풋풋한 의욕도 대단합니다.

한글마당을 위해 각 반의 좋은 글들을 모아주신 여러 선생님들께도 고마움을 느낍니다.

봄꽃이 지려는데 17호를 펼쳐 보입니다.

- 權

참 재미있었어요. 지금껏 두 번밖에 안 다녔지만... 더 좋은 글로 재미있게 문예반을 다니고 싶어요.

- 영수

이번 한글마당 17호를 우리가 직접 편집하면서 느낀 점이 많습니다. 재미도 있고, 이제 한글마당은 우리 손으로 지켜야한다고...

- 서진

이번 한글마당은 선배님들의 도움 없이 했습니다. 좀 힘들었지만 재미있었어요. 재미있게 봐 주세요.

- 언운

막상 쓰려니 쓸 말이 없네요. 어쨌든 재미있게 봐 주세요.

- 옥방

너무 재미있네요. 이런 기회 많이많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 유영

별로 한 것도 없는데, 막상 쓰려니... 여러분, 이거 버리지 마시고 재밌게 보세요!

- 의청

우선 너무 재미있었어요. 제 나름대로 열심히 했는데, 성과는 어떨지 모르겠어요! 아무튼 다음엔 더 노력할 거고요, 한글마당 재미있게 보셨으면 해용!!!

- 청운

참 재미있어요. 다음에 더욱 열심히 할 거예요.

- 문기, 선금, 영매, 진련

오늘 처음으로 문예반에서 이렇게 하게 되어 너무 재미있었어요.

- 홍이

정말로 재미있어요. 그런데 들어오자마자 너무 어려워요.

- 병혜

오늘 처음으로 편집을 했어요. 처음 해 본 건데 재미있어요. 다음에 또 할 기회가 있으면 좋겠어요.

- 전매

저는 한 것도 없는데 쓰려니 쓸 게 없네요. 다음엔 열심히 하겠습니다.

- 이름 없음









韓國漢城華僑中學 <한글마당>通卷17號

發 行 . 漢城華僑中學 韓語韓文敎學硏究會

總編輯 . 權相基

編 輯 . 한글문예반

그 림 . 劉靑雲

發行日 . 中華民國 90年 5月

住 所 . 서울 서대문구 연희3동 89-1

印 刷 . 正元文化社