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마당11
16호 2000년 12월
우리들의 이야기
시, 수필
졸업여행, 수학여행을 다녀와서
영화 감상문
할 얘기가 있어요
쉬어 가는 페이지
바보 이야기
시사 상식
노벨 평화상에 대하여
차 례
<여는 시> 가을 中1-1 唐忠蘭 1
<89-1學年度 韓語作文比賽獲奬作>
시월에 쓰는 편지 高3-2 陳實喜 高1-2 姜念珠 2
두발 자유화를 논한다 高2-3 裵敬華 4
시월에 쓰는 편지 高2-4 王莉娜 6
가을 동화를 보고 나서高3-2 陳秀正 7
두발 자유화를 논한다 高3-4 王暦娟 8
가을에 떠나는 여행 中2-3 賀常煢 中2-1 謝佳儒 10
컨닝과 시험 中3-3 臧珍瑩 中2-1 劉文仙 12
아버지 中3-1 王祖夫 14
<쉬어 가는 페이지> 일곱 번째 난쟁이 - 인터넷 자료 16
<시> 중학생이 되고서 中1-1 梁維君 18
중학생이 되고 나서 中1-1 劉雯琦 19
나의 꿈 中1-1 陳孝娜 19
취미 中1-1 徐沇呈 21
<편지글> 부모님께 中1-1 王祖平 22
<시>
내가 꿈꾸는 가을 中1-1 陳孝娜 23
가을에 떠나는 여행 中1-1 王祖平 24
사랑과 가을 中1-3 孫和秀 25
겨울 中1-1 彭潤雅 中1-2 曹紫薇 26
겨울 방학 中1-3 趙立雲 27
불쌍한 이웃 돕기 中1-1 柳美娜 28
졸업여행 中3-3 郭明季 29
졸업여행에 대해서 中3-1 王玉華 30
우린 졸업여행 가서 한 것은... 中3-3 孫靜宜 31
졸업여행 동안 간 경복궁 中3-1 王姸楆 32
<삼행시 - 졸업여행을 다녀와서> 33
수학여행을 다녀와서 高2-2 孫聖皓 曹晏莉 李慧萍 35
나의 고교시절 수학여행 高2-2 鞠文卿 44
<보고문> 수학여행을 다녀와서 高2-3 初君蓮 48
<시> 느티의 정원 高3-2 孔慶民 55
강촌 MT 高3-4 徐營華 56
高3 시절의 짧은 여행 高3-4 王暦娟 57
MT 갔다 온 후 高3-4 畢鑑龍 60
한국에서 살면서 中1-3 孫元美 64
친구 中1-2 許慧光 65
안과 中1-2 柴愛莉 65
<쉬어 가는 페이지> 바보 이야기 - 인터넷 자료 66
내 동생 中2-2 欒與菁 鄒美慧 中2-3 賀常煢 69
내 언니 中2-1 劉靑雲 71
장애인을 무시하는 모든 분들에게 中2-3 賀常煢 71
우리 高3-2班 高3-2 金梨智 73
<짧은 희곡> 기도 高3-2 王秀仁 74
<영화 감상문> 잔다르크를 보고 高3-2 潘忠熙 高3-3 王紀敏 81
<써클 보고서 - 訪古社團>
경복궁을 다녀와서 高1-2 劉玉萍 王中君 84
국립중앙박물관을 다녀와서 高3-1 王殿玲 85
<할 얘기가 있어요> 친구에게 高3-2 馬慧琪 87
<영화평 - 두 번째> U-571을 보고 趙智亨 89
<역사의 뒤안길> 비행기와 낙하산의 시조는 중국 林宣希 94
<올림픽 이야기> 새 천년 첫 올림픽 화려한 개막 李敬子 96
<시사 상식> 노벨 평화상에 대해서 - 한국경제신문 97
<과학 상식> 인간과 곤충 - 한국4-H신문 100
<이런 이야기>
선식 - 문화일보 102
총명한 하루 보내려면 아침밥 먹어라 - 문화일보 103
편집을 마치고 106
<여는 시>
가을
中 1-1 唐 忠 蘭
가을이 찾아 왔습니다.
가을 바람과 함께 가을은 찾아 왔습니다.
가을이 오고......
나뭇잎들은 색깔이 변해가고, 하나 둘 씩 떨어졌습니다.
들판에 코스모스들도 피어가고 있습니다.
가을이 오고......
날씨는 조금씩 추워지고......
새벽바람도 선선합니다.
가을에는 나무에 맛있는 과일들이 많이 납니다.
감, 배, 사과 등등......
그리고 논에는 많은 곡식들이 익어가고
단풍나무도 붉은 색으로 물들어 갑니다.
농부들은 높은 수확을 얻고 기뻐합니다.
가을 풍경들은 참 아름답습니다.
사람들은 이 풍경을 보려고 찾습니다.
가을은 아름답고도 좋은 계절입니다.
<89-1學期 韓語作文比賽獲奬作>
<最優秀奬>
시월에 쓰는 편지
高 3-2 陳 實 喜
하늘이 유난히도 맑고 투명한 시월. 시월의 하늘만큼이나 파아란 느낌을 주는 내 소중한 친구들...... 오랫동안 띄우지 않았던 편지를 조심스레 써보려 한다.
소중한 친구들아...
벌써 쌀쌀한 바람이 부는 가을이구나. 우리 같은 공간 속에서 5년이라는 세월을 함께 했어. 다섯 번째 가을... 그래, 이 학교라는 정겨운 틀 안에서 어느새 우린 함께 할 마지막 가을을 맞이하고 있는 거야!
마지막이란 단어는 언제나 아쉬움을 주곤 하지. 가만히 생각을 해 보면, 작년, 재작년 그 어느 해 가을에도 우린 고운 추억을 만들었을 거야. 어찌 보면 참 많이도 멀어진 우리들이다! 고등학교 시절의 친구는 평생 남는다는데, 내가 먼 훗날 너희들 기억 한 구석에 자리잡을 수 있을 지도 걱정이야. 너희들이 나에게 좋은 기억을 많이 남겨준 것만큼 나 역시 그랬을 지도 의문이고... 늘 너희에게 해 주고 싶은 말이 많았어. 착한 내 반쪽 같은 친구 유진이, 오묘한 신비감을 남기는 서한이, 언제나 따끔한 충고를 아끼지 않는 감용이... 모두에게 가슴속에 늘 담아두고 있던 무언가를 표현해내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지만, 늘 서툰 장난밖에는 칠 수 없는 내 성격이 원망스러워. 하지만 마음은 하나로 연결되어 있을 거란 생각을 해. 너희들 역시 이 가을 하늘을 보며 한 번쯤은 떠올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는구나.
난 인연이란 걸 믿어. 이 넓은 하늘 아래서 내가 하필 너희들과 인연이 닿았다는 것을 소중히 여기고 싶어. 가끔 오며가며 너희들과 마주치면 이상한 아쉬움이 남곤 해. 우리 중학교 때 기억나? 맨날 치고 박고... 지금이야 그런 일이 없어졌지만, 그런 유치한 일이 그립기도 하구나. 사소한 기억까지도 고이 담아두고 싶은 마음... 나와
같길... 너희들도 나와 같은 마음이길 바라고 있어.
하늘이 흐려지고 있다. 가끔은 가을 하늘도 이렇게 우울할 때가 있구나. 그래도 언제나 그 자리에 있는 하늘이잖아. 흐린 날보다는 투명한 날이 많았다고 생각해. 가을 하늘을 닮은 내 친구들... "투명에 가까운 블루"라는 이미지로 내 가슴속에 있는 유진이, 서한이, 감용이... 고마워! 너희들이 있어서 행복해... 너희들 알지? 절대로 돈 안 쓰는 나, 저 투명하고 너희를 닮은 하늘을 내 멋대로 선물할 게...
시월 어느 날 언제나 친구로 남고 싶은 실희가...
<優秀奬1>
시월에 쓰는 편지
高 1-2 姜 念 珠
사랑하는 나의 셋째 이모!
이모가 벌써 이 세상을 떠난 지 2년이 되어가네요... 그동안 그 넓은 하늘에선 잘 지냈어요? 제가 가 보진 않아 잘 모르겠지만, 이승에 있었던 고통과 슬픔들은 거기에는 없겠죠? 이 세상을 등질 때, 이모의 모습은 너무도 야위었는데...
제가 태어났을 때부터 이모의 손길은 시작되었죠. 어려서부터 저의 부모님들은 다른 나라로 출장을 자주 다니셨고, 그 덕에 이모가 절 거의 맡아 키우다시피 했는데... 제가 잠을 잘 때 몸부림을 너무 실하게 쳐 어디로 굴러갈지 몰라서 온 방에 이불을 다 깔아 놓고... 항상 좋은 것, 예쁜 것만 나에게 보여주고, 맛있는 음식만 먹이셨는데... 언제나 내가 외로울까봐 절 옆에 끼고 밖으로 놀러도 많이 다녔는데... 이모 그것 기억나요? 제 곁에 자주 안 계시던 엄마 아빠를 제가 한시라도 잊을까 항상 제 옆에 누워 저한테 얘기해주셨던 걸!
그렇게 저에게 엄마 같은, 아니 엄마보다 더 절 따뜻하게 해 주셨던, 그 이모가, 제가 6학년 때쯤부터 자꾸 배가 아프다고, 머리가 아프다고... 주위에서 병원에 가 보란 말에는 괜찮다고 며칠만 약 먹고 누워서 쉬면 된다고, 걱정 말라고 했었는데...
그렇게 건강했던 이모가 "암"이라니, 전 믿을 수가 없었고, 그 병은 정말 제 주위에 있는 가람은 안 걸릴 거라고, 그 때까지 생각했던 저였는데... 언제부터인지 병원에 입원해 계셨고, 전 병원에서 치료를 받으면 금방 나을 줄만 알았는데... 이모는 정말 노력했는데... 그때 하나밖에 없던 아이는 겨우 다섯 살이었고, 그 아이를 봐서라도 사시려고 일본에까지 가서 치료를 받았는데... 이모가 돌아가시기 일주일 전쯤부터 집에 누워 저희의 간병을 받았고, 전 점점 야위어 가는 이모를 볼 때마다 눈물이 앞을 막았고...
그렇게 아무 소리도 없이 이모는 떠나갔다. 지금 제 곁에 남은 건 이모와 함께 찍었던 사진, 추억들 뿐. 이모! 전 정말 이모가 늙어 제가 돌볼 때까지 그렇게 언제나 함께 살려고 했는데... 그래도 전 지금 기뻐요! 이모가 지금은 고통 없는 세상에 있잖아! 전 이렇게 믿을 거야, 지금은 기쁨만 가득할 거라고...
끝으로, 제 머리와 마음속엔 항상 이모가 가득해! 이모, 사랑해요!
<優秀奬2>
'두발 자유화'를 논(論)한다
高 2-3 裵 敬 華
현재 거의 모든 학교에서는 주관적이든 객관적이든 일정한 기준을 두어 학생의 품행 내지는 복장에 규제를 두고 있다. 그 중 최근에 뜨거운 감자로 부상된 것은 학생 두발에 대한 자유화 논쟁이다.
지금까지 학교에서는 왜 학생의 두발을 규제하고 있었을까? 그저
지금까지의 관행이었다기보다는 흔히 학생을 학생답게 즉, 배움을 받고 있다는 아이들답게 만들어 학업효율 내지는 개인 품행에 좋은 영향을 끼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왜 학생들은 이런 기준에 반기를 내들고, 결국엔 사이버 공간에서 두발 자유화에 대해 서명운동까지 펼치고 있는 것일까?
그들은 대개 두발의 규제는 학생에게는 불필요한 스트레스를 주고, 현대의 이 개방적이고 자기 표출을 내세우고 인정해 주는 사회에서 그들의 개성과 자유를 가두어 버리는 짓이라고 쉽진 않지만 단정지어 버린다. 사실 두발의 색과 모양, 길이 등의 규제에 반항하거나 또는 그것을 무시하던 부류는 학생 사이에선 늘 존재해왔고, 자신들의 의견을 내세우기도 했지만, 근 몇 주만에 전국적인 집단 활동이 일어났다는 것은, 이제 이 나라의 학생들도 그들 뒤에 숨어있던 새로운 자유에 눈을 떴다는 것을 뜻한다. 그리고 학생들 특유의 순수함과 정열은 자신들이 정한 목적을 향해 엄청난 가속도로 밀어붙이게 되는 것이다. 이미 몇몇 학교에서는 규제를 대거 완화하고, 또 몇몇 극소수의 학교에서는 학생들이 나서서 그들만의 규약을 만들기도 했다. 그리고 지금도 '머리카락' 문제로 학생들과 그들을 지도하는 분들의 소리 없는 전투가 전국에서 산발적으로 벌어지고 있다.
과연 두발 자유화는 현명한 선택이 될 것인가? 아니면 맹목적인 실수가 될 것인가? 이런 문제는 학생이 어찌하느냐에 달려있을 수밖에 없다. 어른들이 크게 우려하는 문제는 주로 학생들에게 그런 자유를 준다면 분명 그들은 또 더욱 더 큰 자유를 원할 테고 결국 너무 자유로워져버린 학생들은 그들의 본분인 學에는 소홀히 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는 결국 학교라는 개체는 무의미해진다는 것이다. 하지만 학생들이 잘 알아서 그들 나름대로 지킬 것을 지키면서 學에 전념할 수 있다면 사실 두발 자유화는 학생들에게는 상당히 고무적인 일이 될 것이다.
하지만 난 두발 자유화를 그리 원하지는 않는다. 학생이 되어서 짧고 정돈된 머리카락으로 생활한다는 것은 자신이 학생이라는 이
미지를 유감없이 다른 사람에게 느끼게 해 줄 것이므로, 학생이 되어서의 자유 아닌 자유를 느끼게 해 주는 것이다.
지금 이 시점에서 분명 머지않아 두발 자유화는 현실화 될 것이며, 사회에 적지 않은 파장을 미칠 것이다. 그리고 학생들은 그들 나름대로 새로운 틀을 만들어 나갈 것이며, 그 후의 학습분위기는 지금과 많이 다른 것이 될 것이다.
<優秀奬3>
시월에 쓰는 편지
高 2-4 王 莉 娜
시간이 너무 빨리 지나간다. 2000년이 시작된 지 얼마 안되어서 벌써 10월이 되었다.
나는 한국의 기후가 너무나도 좋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 모두를 한 번씩 다 음미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중에 가을에는 온갖 아름다운 풍경과 풍성한 먹을 것들을 많이 맛볼 수 있다. 게다가 가을은 농부들이 일 년 동안 힘들게 농사한 것들을 수확하는 감사의 계절이기도 하다.
시월에 가족들과 함께 시외로 나가서 등산을 하면 어디서나 노랑, 주황, 빨간색의 아름다운 단풍나무와 은행나무를 구경할 수 있다. 게다가 가을의 하늘은 너무 높고 맑아서 사람의 마음을 관대하게 만든다. 힘들게 산 정상에 올라가서 맑은 공기를 마시며 아래를 내려다보면 정말 너무너무 아름다운 풍경이 한 눈에 들어온다. 단풍나무들로 알록달록하게 장식되어있는 화려한 산들,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하늘, 그리고 저 멀리 보이는 먼 산들... 아! 감탄이 나올 수밖에 없다. 산을 내려오다 조금 더워서 산 속에 흐르는 맑고 작은 냇물에 손을 담갔다. 그리고 세수를 했다. 갑자기 마음이 상쾌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 샘물이 마치 마법의 샘물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좀 더 내려와서 가족들과 함께 밤나무 밑에서 밤을 주웠다. 밤 껍질을 벗길 때 밤 가시에 손을 찔려 투덜거렸지만, 나중에 집에 와서 밤을 삶아먹으니 그 달콤한 밤 맛에 할 말을 잃었다. 그리고 등산할 때 간간이 주운 은행과 도토리도 집에 가져와 어머니께서 맛있는 음식으로 만들어 주셨다.
이런 아름답고, 먹을 것이 풍부한 시월을 나는 나의 후손들에게도 느끼게 해주고 싶다. 하지만 요즘에 지구가 점차 오염되고 있어서 마음이 너무나도 아프다. 우선 나부터 환경을 보호하는 데 앞장서야겠다. 그래서 이 아름다운 지구를 조금이라도 더 보존할 수 있도록 만들 것이다.
<優秀奬4>
'가을 동화'를 보고 나서
高 3-2 陳 秀 正
요즘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인기 최상급인 TV 미니시리즈는 "가을 동화"이다. 사람들이 왜 이 드라마를 이렇게나 애청하는지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우선 제일 큰 이유인 즉 가을이 되면 왠지 모를 감동과 마음 아
픈 사연이 떠오르고, 고독과 슬픔을 잊기엔 딱 좋은 바로 그 '가을'에 방영되고 있어서가 아닌가 생각한다.
이 드라마가 다루는 이야기는, 어린 시절엔 서로 남매라 믿고 자라왔지만 같은 반 친구와 서로 운명이 뒤바뀐 걸 알고, 슬프지만 현실이기에 각자 자리로 돌아가 학창시절을 보낸다는 것으로 시작한다. 성인이 되자 둘은 다시 운명적으로 만나지만, 어린 시절의 간절했던 마음이 점차 이성적임을 알게 된다. 그래서 둘은 서로 사랑을
한다.
여기까지가 이 드라마의 핵심이다. 작가는 좀 더 아름답고, 좀 더 동화 같은 이야기를 만들기 위해 준서, 은서 남매가 사랑하는 중간중간 많은 우여곡절을 실었다. 이것을 보는 애청자들에게 쓸쓸함과 안타까움을 주는 데는 성공했지만 왠지 이야기가 비현실적이고, 또 여주인공은 반드시 죽어야만 한다는 고정관념을 깨지 못한 것이 시청자들에게 큰 아쉬움을 준다. "가을 동화"라는 제목만큼 동화처럼 사랑을 할 수 있게 이야기를 만들어 간다면 얼마나 좋을까?
21세기가 되고 사람들의 정서가 점점 메마르고 있는 이 시점에서 "가을 동화"란 드라마는 또 한 번의 감동을 주어, 인간이기에 아름다운 이야기 앞에서는 그 누구도 도취하지 않을 수 없다는 걸 보여주었다. 한 드라마가 성공이냐 실패냐는 시청자들에게 달려 있다. 그런데 현 추세를 얼마나 잘 타고 있는가에 가장 많이 신경 써야 할 문제인 것 같다. 여기에 있어선 "가을 동화"가 제일 적합하지 않았나 생각한다.
<優秀奬5>
'두발 자유화'를 논(論)한다
高 3-4 王 暦 娟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이 땅엔 우리가 해야 할 일들이 많이 있다. 그런데 성장하기에, 더 발전하기 위해 필요한 교육이, 아니 그 교육 현장이 오히려 우리에게 많은 짐과 스트레스를 느끼게 한다. 그 중에 하나는 바로 '두발 단속'이다.
얼마 전, 한국 교육부에서는 두발 자유화를 학교 자체적으로 시행할 수 있게 해 주었다. 그렇기에 각 학교마다 학교장의 허가만 있다면 학생들은 더 이상 단발머리, 짧은 머리에 신경 쓸 필요가 없게
되었다. 그 동안 두발 검사가 학생들을 선도하는 방식이라 믿어오신 선생님들과 모든 분들은, 짧다고 단발이라고 다 보기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애매하게 짧은 머리는 오히려 공부할 때 더 방해가 된다는 것을, 마지막으로 사람의 심리가 그렇듯 하지 말라고 하면 더 하고 싶어짐을, 그런 우리의 생각을 단지 '멋 내기 위함'이란 말로 덮어 버리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교육부의 발표 이후 우연히 한 여학생을 보게 되었다. 커트 머리에 탈색까지 한, 그 머리와 교복은 너무도 부자연스러웠고, 또한 불량스러워 보이기까지 했다. 그러한 모습까지 좋다고 말하지는 않겠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하게 강조하는 점은, 우리가 바라는 것은 전면적인 두발 자유화가 아닌 부분적인 두발 자유화이다. 염색을 하고 남과 다른 머리 스타일이 아닌 내 머리카락을 내 마음대로 편하게 묶고 싶으면 묶을 수 있게, 더 이상 눈을 지르며 뻗치는 그러한 것들에 신경을 쓰고 싶지 않은 것이다.
민주주의 시대라 한다. 내가 몸담고 있는, 내가 살고 있는 이 땅이 말이다. 더 이상 우리에게 학생이란 이유로, 어리다는 이유로 우리의 작은 인권마저, 의지마저 빼앗아 갈 이유는 없다고 본다. 공부로 인해 충분히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우리에게 작은 만족감은 줄 수 있지 않은가? 어떤 결정이 현명한 것인지 모두들 다시 한 번 생각해 봐야 한다.
<最優秀奬>
가을에 떠나는 여행
中 2-3 賀 常 煢
가을... 싸늘한 가을 바람이 두 볼을 스치고, 동물들이 겨울 잠 준비를 하느라 분주하게 움직이고, 곡식들이 하나 둘 열리는 소리를 들을 때면 가을이란 걸 느낄 수 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가을에 여행을 떠난다. 가을 속으로...
듣기만 하여도 아름답고 풍성한 두 글자"가을" 속에서 "책"이라는 또 다른 세계로 여행을 떠난다.
그 세계에서 내가 맨 처음 발견한 건, 너무나 쓸쓸한 모습의 어린 왕자였다. 그리고 그 옆 바다 한 가운데에는 무인도에서 좌절하지 않고 홀로 꿋꿋이 생활하는 로빈슨 크루소가 있었다. 어! 갑자기 들려 오는 총소리, 그 곳으로 가보니 전쟁 중에도 용기를 잃지 않는 안네가 가족들과 있었고, 또 한참을 가보니 어느 초라한 오두막집에 제인이 로체스터씨와 다시 만남을 기뻐하고 있었다. 그리고 또 들려오는 작은 속삭임, 그건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에서 의 제제와 나무가 재밌게 속삭이는 소리였다. 이어서 들려오는 건 "가시고기"에서 다움이 아빠의 한숨 소리였다. 그밖에 난 '책'이라는 세계에서 너무나도 많은 것을 보고 느꼈다.
가을에 떠나는 책 속으로의 흥미로운 여행, 그 여행 속에서의 감동과 즐거움, 난 이 즐거움을 십 년이 지나도 아니 죽을 때까지 간직하고 싶고, 앞으로도 계속 이 여행을 하고 싶다.
그리고 너무나 소중해 혼자 알고 있기 아까운 이 여행을 다른 사람들도 맛볼 수 있기를 바라며...
<優秀奬1>
가을에 떠나는 여행
中 2-1 謝 佳 儒
가을에 떠나는 여행이라... 도시에 사는 사람들이라면 적어도 한 번쯤은 가보고 싶고, 해보고 싶은 여행일 것입니다.
황금빛으로 익은 벼, 붉은 색동옷으로 갈아입은 나무들이 모두 다 가을이 옴을 알리는 즉시, 사람들 마음속에는 구경 가고 싶은 간절한 마음이 피어납니다. 가을을 좋아하는 사람은, 물론 가을에 별 관심 없는 사람들까지도 여행을 떠나고 싶게 만드는 요술의 계절. 난 친구들과 한 번쯤 기차 여행을 떠나고 싶습니다. 가을의 정취를 맘껏 느낄 수 있게 말입니다. 기차 창문 너머로 허름한 옷을 입은 허수아비 아저씨, 입에 군침을 돌게 풍성한 음식들, 생각만 해도 군침이... 우리들에게는 황금빛의 논, 화려한 산, 그것들이 아름답게 보일 뿐입니다. 나는 나뭇잎에 많이 쌓인 곳에 여행을 가 누워 보고도 싶고, 바닷가에서 시원한 바람과 가을의 높은 하늘이 너무 푸르게 보입니다. 그 기분은 아마 도시 속에는 느낄 수 없는 자유. 아~ 나도 가고 싶어라~
가을은 공부하기 좋은 계절이라고 하는 어른들... 정말 속상해요. 가을에 누릴 수 있는 자유는 짧지만 공부 할 수 있는 시간은 얼마든지 있는데 말이죠. 가을에 떠나는 여행, 만약 이를 놓친다면 아마 마음속에 후회하는 마음과 가을에 대한 그리움이 많을 것입니다. 가을에 떠나는 여행. 머뭇거리지 마시고, 좋은 것, 좋은 추억 많이 만드세요.
<優秀奬2>
컨닝과 시험
中 3-3 臧 珍 瑩
컨닝과 시험은 때어 놓을 수 없는 관계입니다. 애초에 "시험"이라는 것이 없었다면 "컨닝"이라는 말이 생겨나지 조차 못 했을 테니까요.
일단 "시험"이 닥치면 아직까지 공부를 안 한 대부분의 학생들은 긴장을 합니다. 여기서 두 가지 부류로 갈리는데 못 보는 것이 두려워 그나마 공부를 시작하는 쪽과 역시 못 보는 것은 싫지만 공부하기가 귀찮거나 해서 컨닝을 하는 쪽으로 갈립니다. 공부를 하는 쪽은 시험 도중에 외운 것을 잊을 수도 있고 공부를 하려면 시간도 상당히 할애해야 하지만 컨닝을 한다면 컨닝을 준비하는 시간만 할애하면 되고 중간에 외운 것을 잊을 리도 없지만 '선생님에게 걸릴지도 모른다'는 엄청난 부담감을 안아야 합니다. 점수가 잘 나와도 기쁘기 보단 양심의 한 구석이 찔리기만 하지요.
대부분의 학생들이 컨닝을 한번쯤은 해 보았으리라 생각됩니다. 물론 저도 해 보았습니다만 그리 할 짓이 못 되더군요. 시험지를 받은 후에도 자신 있게 써내려 갈 때와 종이, 책상, 손바닥 등에 써 놓은 것을 혹시라도 걸릴세라 마음 졸이며 베끼는 것은 상당한 차이가 있습니다. 지금까지 노느라, 자느라, 바빴던지라 공부 할 새가 없어서 대부분 컨닝으로 때워 왔었던 분들! 한번쯤은 공부로 불타 봅시다! 항상 컨닝만 하다가 자신의 힘으로 시험지의 공백을 답안으로 채워 나갈 때에 성취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열심히 공부해 두었다면 덤으로 "나도 잘 볼 수 있다" 라는 자신감도 따라 올 것.
그.래.도 '나는 컨닝을 할 테다!' 라고 하시는 분들은 부디 걸리지
나 마시길... 걸리면"大過"인 거 다들 아시리라 믿습니다. 덧붙여 컨닝도 한 두 번하고 관둬야지 습관 들면 정말 안 좋습니다. 걸리면 大過예요! 大過라고요! (절규)
<優秀奬3>
컨닝과 시험
中 2-1 劉 文 仙
우선 시험이란 무엇인가? 시험은 내가 내 자신을 실험한다는 것과 똑 같은 거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시험기간이 되면 모든 사람들은 시험에 대한 스트레스를 많이 받게 될 것이다. 그리고 어떤 사람들은 자신의 인생에 "시험"이란 단어는 취급을 하지도 않는다. 그래서 그런 사람들이 시험기간에는 피씨방에서 밤을 세곤 하는 것이구나~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집안에 틀어 박혀서 공부를 열심히 하고, 어떤 사람은 집에서 공부를 하는 것이 아니라 컨닝하는 방법을 열심히 연구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그래서 나에겐 좋은 생각이 하
나 있다.(일종의 컨닝이라고나 할까?)
첫째, 우선 시험지 만한 종이를 준비해서 그 종이에 중요한 요점만 써 놓는다.
둘째, 그리곤 시험지의 반 만한 종이를 준비해서 그 종이에 또 그 요점을 쓴다.
셋째, 또 시험지의 반 만한 종이 보다 더 작은 종이를 준비한다. 물론 그 요점을 더 작게 쓴다. 그리고 나면 지금까지 세 번을 썼기
때문에 아마 그 요점들을 다 외웠을 것이다.
지금 까지 이 방법을 아 써본 사람들은 이 방법을 알고 난 후 실험해 봐도 좋을 것이다! 그리고 어떤 사람들은 시험기간에 받는 스트레스 때문에 빈혈 증상을 보이곤 한다. 근데 난 이해가 안 간다. 왜 꼭 밤을 세서 공부를 하는 것일까? 그냥 평상시에 수업을 잘 듣고 시험기간에 한번씩 복습하면 되는 것이 아닌가?!
마지막으로 난 모든 사람들께 묻고 싶다. "왜 꼭 컨닝을 해서 시험을 잘 보려고 하는 것인가? 시험은 우리가 우리를 테스트하는 것이 아닌가?"
<優秀奬4>
아버지
中 3-1 王 祖 夫
이름만 들어도 마음에 뜨겁게 와 닿는 이름 "아버지". 어렸을 적 이 세상에서 우리 딸이 최고라 하시며 웃으시던 아버지, 이 세상에 나를 태어나게 해 주신 우리 아버지는 가족을 위해 온갖 고생을 다 하신 분이다.
우리 아버지도 젊었던 시절이 있었을 텐데....머리에 흰머리가 하나 둘씩 피어나고, 우리 아버지도 멋있었던 시절이 있었을 텐데, 얼
굴 주름살이 하나 둘씩 아버지의 얼굴을 다른 사람처럼 만들어 가
고 있다.
"아빠! 이 세상에서 누가 제일 좋아?"
"당연히 우리 딸이지"
하시던 그땐 아버지가 건강하시니까 난 영원히 아버지와 함께 평생 이 세상에서 행복하게 살 것이라고 믿어 왔다. 하지만, 아버지는 내가 모르고 있던 아주 약한 분이라는 걸 뒤늦게 야 알아 차렸다. 아버지는 아주 작은 체격이시다. 부담스럽게 아버지는 대 가족을 책임져야할 큰 압력(壓力)이 있던 것이다. 자식이 다섯에 엄마, 거기에 몸져누우신 할머니, 그렇기 때문에 아버지는 항상 피곤해 보였다. 아버지는 자신의 몸보다도 우리를 아껴 주셨고 어떤 힘든 일이 있더라도 아버진 항상 내 편이셨다.
식당 일로 바쁘신 데도 아버지는 시간을 맞추시면서 아침에 학교에 데려다 주시고, 저녁에 학교에서 데려오고, 학원에 또 데려다 주시고, 또 데려오시고...우리는 정말 편했었지만 분명 아버지에게는 하루하루가 정말 힘 드셨을 거다. 항상 아버지에게 "아빠! 힘들지?"라고 물으면 아버지는 "내 딸 일인데 왜 피곤해?"라고 하시며 나를 격려해 주셨다. 아버지의 정성스러운 말에 너무 고마웠다.
아버지는 가끔 아프셔서 병원에 많이 다니셨다. 그땐 아버지가 무척 미웠다. 아버지의 연령에 다른 사람들은 이렇게 아프지 않는데, 왜 우리 아버지만...어쩔 때 아버지는 큰 병원에 입원하신 적도 있었
다. 그 동안 어머니는 홀로 가계를 보셨고 저녁 늦게 집에 발을 들였다. 난 항상 이렇게 늦게 들어오시는 아버지가 생각나서 그날 난 울면서 잠이 들었다. 다음날은 아버지가 오시는 날, 그 동안 아버지가 너무 보고 싶었다. 다행히도 아버지의 얼굴색이 좋아 보였다.
지금의 아버지는 예전보다 많이 나으셨다, 난 아버지에게 해 드린 것이 없어 마음이 무척 편치 않다. 난 아버지에게 효도를 해야겠다. 이제 아버지의 큰 힘이 되었으면 좋겠다. 아버지의 곁에서 말이다...이렇게 난 하고 싶다.
"아버지, 사랑해요!"
<쉬어 가는 페이지>
일곱 번째 난쟁이
인터넷 자료
나는 산너머 너머에 사는 일곱 번째 난쟁이입니다. 아름다운 백설공주가 우리 집을 찾았을 때 앉았던 의자도 일곱 번째 난쟁이 저의 것이었구요,
그녀가 배고픔을 달래기 위해 먹었던 스프도 일곱 번째 난쟁이 저의 것이었구요,
그녀가 피곤한 몸을 누이고 잠들었던 침대도 일곱 번째 난쟁이 저의 것이었구요,
그녀가 나쁜 마녀의 꼬임에 넘어가서 문을 열어주고 숨이 막히는 코르셋으로 쓰러져 있을 때 일곱 번째 난쟁이 저였구요,
그녀가 나쁜 마녀의 독이 든 빗으로 머리를 빗고 쓰러져 있을 때 제일 먼저 달려가서 빗을 빼내 던져버린 것도 일곱 번째 난쟁이 저였구요,
그녀가 나쁜 마녀의 독이 든 사과를 먹고 숨을 멈추었을 때 하루종일 그녀의 곁을 지키면서 목놓아 울던 것도 일곱 번째 난쟁이 저였구요,
왕자님이 오셔서 그녀를 데려가겠다고 했을 때 그녀는 우리들의 공주님이라고..울면서 안 된다고 말리던 것도 일곱 번째 난쟁이 저였구요,
기어이 친구들이 왕자에게 그녀를 내주었을 때 짧은 다리로 숨이 헉헉 차오르도록 따라 쫓았던 것도 일곱 번째 난쟁이 저였구요,
더 이상 왕자를 따라잡을 수 없게 되자 그녀를 마지막으로 보기 위해 나무 위로 올라갔다가 휘청 떨어진 것도 그 바람에 덜컹 유리관이 움직이고 그녀의 목에 걸린 독사과가 튀어나오면서 오랜 잠에서 깨어난 그녀가 '나를 구한 분은 누구신가요?' 물었을 때 차마 초라한 작은 몸으로 나서지 못하고 못나게 움츠려들었던 것도, 늠름한 왕자님이 '바로 저입니다, 아름다운 공주님' 씩씩한 목소리를 유리관 밑에서 쪼그리고 앉아 울면서 들어야 했던 것도 일곱 번째 난쟁이 저였습니다.
지금도 사람들은 가끔씩 산너머 너머에 사는 일곱 난쟁이의 노래의 부릅니다..
하지만.. 누구보다도 공주를 사랑했던 일곱 번째 난쟁이를 기억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당신은 누구의 일곱 번째 난쟁이입니까?
요즘 세상 어디에도 일곱 번째 난쟁이를 찾아보기는 쉽지 않죠. 가끔은 누군가를 위해 일곱 번째 난쟁이가 되어보는 것도 세상을 즐겁게 사는 방법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시>
중학생이 되고서
中 1-1 梁 維 君
중학생이 되고서 나는 힘들었다, 이유는
입학시험 때문에...
중학생이 되고서 나는 무서웠다, 이유는
내가 형들한테 맞을까봐...
중학생이 되고서 나는 밤을 샜다, 이유는
공부 안 해서 선생님한테 혼날까봐...
중학생이 되고서 나는 며칠 동안 배가 아팠다. 이유는
화장실이 냄새나서 볼일도 못 봐서...
중학생이 되고서 나는 혼자 일도 해야 했다. 빨래하고, 신발 빨고 여러 가지로...
그러나...
입학시험을 잘 봐서 기뻤다.
형들이 잘 해줘서 좋았다.
공부하며 밤을 새 힘들었지만 선생님한테 안 혼나서 기분이 좋았다.
냄새나서 볼일도 못 봤지만 이제 화장실도 한층 더 좋아진다고 해서 좋았다.
중학생이 돼서 혼자 일도 해야 했지만 친구들이랑 하니 재미도 있었다.
나는 초등학교보다 중학교가 더 좋다.
오늘부터 열심히 공부하고, 열심히 일하고, 열심히 볼일보고,
형들이자 선배님들을 존중하는 후배가 되어야지.
중학생이 되고 나서
中 1-1 劉 雯 琦
중학생이 되고 나서 너무 너무나 힘들었어요. 숙제도 많아지고 늦게 끝나고, 아침엔 일찍 일어나야 하고, 그리고 내가 싫어하는 치마도 입어야 하고... 그리고 경쟁심이 생겨요. 초등학교 때는 별로 느끼지 못했지만 중학교 오고 나서는 생겼어요.
중학교 와서 좋은 친구들도 많이많이 사귀었고, 다들 착한 친구들이고, 유머들이 많은 친구들이에요. 선생님들도 다 좋고, 하루하루가 재미있어요. 그런데 힘들뿐이지요. 그리고 학교에 불만이 있다면 우리 화장실이 너무너무나 더럽고 냄새나고, 그래서 불만이에요. '화장실 좀 고쳐주세요'하고 소리치고 싶지만 고쳐주니 다행이네요. 그리고 학교에 장점이 있다면 운동장도 크고 선생님들도 좋고, 매점도 있어서 좋고 그래요.
중학생이 되고 나서 정들었던 초등학교를 떠나는 게 슬프기도 했어요. 하지만 중학생이 되고 나서 또 좋은 점은 6학년 때 엄마는 여동생과 남동생만을 챙겨주셨는데, 그때 '엄마가 나 싫어하는 거 아닐까'하고 생각했는데, 중학생이 되고 나서 지금은 밥 먹었냐고 꼼꼼하게 챙겨주시는 엄마...
역시 중학생이 되니 너무 좋아요!
나의 꿈
中 1-1 陳 孝 娜
어렸을 때부터 나의 꿈은 단 하나, 가수였다. 어릴 때부터 춤추고 노래 부르는 걸 좋아했던 나는 다짐했다. 커서 가수가 되겠노라고... 아직까지 난 그 꿈을 키우고 있다.
요즘, 한창 나돌고 있는 어린 가수들, 부럽다. 어쩔 땐 이런 생각도 해본다. '저 애들도 어린데, 어린 게 하는데 나도 도전해볼까...'하는 그런 생각, 아직도 하고 있다. 이 글을 쓰면서 까지도...
나는 주로 "신화"라는 가수를 좋아한다. 그리고 나는 대부분 가수들의 보컬을 좋아한다. 몇몇 가수들은 빼고 말이다. 그러나, 대부분 보컬은 춤을 그리 잘 추는 건 아니다. 나도 그렇다. 내 춤은 믿을 게 전혀 못되는 것이다. 다만 가수가 꿈일 뿐...
어느 날 나에게 행운이 주어졌다. 그토록 바래왔던 오디션... 나와 같은 학년이고, "신화" 팬인 한 아이가 오디션을 같이 보자고 제의를 했다. 나 역시 찬성했고, 그 아이는 여기서 멀지 않은 학교를 다니고 있다. 서울 연북 중학교... 언젠가 만나 기획사에 오디션을 보러갈 우리... 솔직히 난 너무나도 두렵다. 떨어지면 떨어졌을 때의 절망감, 붙는다면 기분은 좋을 것이다. 내 꿈을 이룰 수 있기에. 하지만, 난 그것조차 두렵다. 뽑히면 부모님의 반대는 어떠할 것이고, 게다가 그리 좋지도 않은 성적에...학교 생활은 어찌 하냔 말인가...
꿈을 이루기란... 그다지 쉽지만은 아닐 것이다.
취미
中 1-1 徐 沇 呈
나의 취미는 그림 그리기와 피아노 치기다.
공부는 못하지만, 난 늘 그림 그리기와 피아노 치기에 관심이 있다. 그래서 난 늘 내 책을 펴 보면 온통 그림이다. 그런 그림에 취미가 있게 된 것은 4학년 때부터였다. 이모가 미술 학원을 소개시켜줘서 난 그림에 취미를 갖게 되었고, 그림 실력이 늘게 되었다. 딴 애들은 컴퓨터 게임이 좋다지만 난 컴퓨터에 관심이 없다. 피아노도 4년이 넘도록 배웠다.
하지만 난 미술과 피아노 이외에는 관심이 없기 때문에 컴퓨터 학원도 다녀보고 속셈도 하고 있지만, 난 늘 그런 데에 관심을 갖지 못한다. 성적이 안 좋게 나오면 앞으로 열심히 해야지 하면서도 책을 펴는 순간 내 머리엔 온통 그림 그리는 생각, 아니면 피아노 치는 생각밖에 안 나는 난, 정말 공부 한 번 잘 해 봤으면 하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머릿속엔 늘 허튼 생각뿐이니...
한동안 디자인에 관심이 있다가, 십자수에도 관심이 있다가, 바이올린에도 관심 있다가, 이것저것 다 해보고 싶고 다 관심이 있었다. 하지만 난 늘 이것저것 관심이 많아도 나에게 그림 그리기와 피아노 치기가 제일로 큰 취미인 것 같다.
<편지글>
부모님께
中 1-1 王 祖 平
안녕하세요! 저 조평이에요. 요즘 학교 생활이 너무 바빠서 엄마 아빠께 자주 전화를 못 걸었어요. 죄송해요.
요즘 제가 학교에서 기숙사 생활이 너무 힘들고 엄마 아빠가 보고 싶을 때면 자주 집으로 뛰쳐나가고 싶지만 그럴 수가 없잖아요. 며칠만 있으면 추석인데 빨리 집에 가고 싶어요. 그리고 제가 집에 있을 때 부모님 일도 도와드리고 동생도 잘 돌보고 해야 되는데 집에 있을 때 못한 게 후회가 돼요.
제가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부모님에게 잘못한 게 너무 너무 후회가 되고, 지금 이 편지를 쓰면서 눈물이 나올 것 같아요. 그동안 부모님에게 효도도 못하고, 그리고 제가 잘못을 했을 때 때리시면 제가 오히려 더 화를 냈잖아요. 그만큼 맞고 그만큼 혼나서 이만큼 제가 클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그 매가 사랑의 매였다는 것을 이제야 깨달은 것 같아요. 부모님이 저를 혼내고 제가 잘 때 때리신 데를 만지면서 혼자 우시는 거 알아요. 그 대 저도 이제 부모님에게 잘못된 일은 하지 말자고 그렇게 맘을 먹었는데도 자꾸 부모님 속을 썩이잖아요. 정말 전 나쁜 딸인 것 같아요. 이제 부모님께 효도하는 착한 딸이 될 게요...
2000년 9월 8일
딸 조평 올림
<시>
내가 꿈꾸는 가을...
中 1-1 陳 孝 娜
사람들은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라고들 합니다.
하지만, 내가 꿈꾸는 가을은...
친구들과 같이 기차를 타고
노래를 부르며 놀러 가는 그런 가을...
수많은 연인들이
예쁜 낙엽이 떨어지는 공원에서 자전거를 타는 그런 가을...
아이들은 엄마와 함께
갓 쪼개진 밤을 따러 가는 그런 가을...
저는 그런 예쁜 배경이 깔린
이 가을이
왠지 우아하고 멋있게만 느껴집니다.
<시>
가을에 떠나는 여행
中 1-1 王 祖 平
가을이 되면 전 여행을 떠나죠.
아주 편안하고 행복한 꿈속으로...
눈을 감으면 아주 편안하고 행복한 꿈속으로...
꿈속에선
내가 할 수 없는 그 모든 것을 할 수 있고...
꿈속에선 난 너무 행복합니다.
난 예쁜 천사들과 손을 잡고 놀고
예쁜 꽃들은 절 보며 웃습니다.
그러다
꿈속 여행이 끝나면
어느덧 겨울이 날 반기고 있습니다.
사랑과 가을
中 1-3 孫 和 秀
가을은 사랑과 맞지 않는 계절인가 봅니다. 가을엔 낙엽이 떨어지고... 떨어지는 만큼 더 외로울 뿐입니다.
가을은 아무래도 이별하는 계절인가 봅니다. 나무도 얼마나 외로울까요... 주위 사람들은 가을을 이별이라고도 부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가을이 그저 두려울 뿐입니다. 이별이란 단어는 슬픈 거니까요. 가을은 사랑을 싫어하나 봅니다. 옛날에 무슨 원수라도 진 듯이...
사랑은 가을을 좋아할 겁니다... 우리 모두 사랑하듯이... 가을은 언제쯤 마음을 열까요? 우리들은 가을이 마음을 열기까지 기다립니다. 영원히 기다릴 거라고... 절대 포기하지 않을 거라고...
겨울
中 1-1 彭 潤 雅
겨울이 되면 흰 눈이 펑펑 내렸으면 좋겠습니다.
그 날만큼은 눈싸움을 감기가 걸릴 정도로 신나게 하고 싶습니다. 특히, 크리스마스 이브 날엔 여러 친구들과 눈길을 걸으며 재미있는 이야기도 하고, 맛있는 것도 많이 먹고 사람들 사이에 끼어 숨도 못 쉴 정도로 재미있는 성탄절을 보내고 싶습니다.
성탄절엔 파티도 하고 싶습니다. 커다란 크리스마스 트리에 장식을 하고, 벽난로를 쬐며 무서운 이야기, 재미있는 이야기... 등을 많이 하고 싶습니다.
또, 겨울엔 겨울 바다에 가고 싶습니다. 겨울 바다는 왠지 멋있고 낭만적일 거 같아서입니다. 전 겨울 바다에 한 번도 가 본 적이 없습니다. 그래서, 이번 기회에 한 번 가보고 싶습니다.
왠지 이번 겨울 방학은 더 설레고 재밌을 것 같습니다.
겨울
中 1-2 曹 紫 薇
한국에는 사계절이 있습니다. 봄, 여름, 가을, 겨울. 그 중에서도 제일 추운 계절은 겨울입니다.
벌써 또 겨울이 찾아왔습니다. 하얀 눈이 내려오는 겨울, 상상만 해도 기분이 좋습니다. 하지만 겨울은 감기의 계절이라고도 하죠! 코감기, 목감기, 기침 등... 많은 병이 있지요. 그래서 겨울이 오지 않았으면 하고도 생각해요.
겨울은 제가 제일 좋아하는 계절입니다. 무엇보다 하얀 눈이 오기 때문이죠. 친구들과 눈싸움도 하고 눈사람도 만들고, 스키, 스케이트
등... 재미있는 운동이 많으니까요. 조금 있으면 크리스마스도 다가
오고, 겨울은 참 좋은 계절이네요. 선물도 받고, 눈도 오고, 사람들에게 행복을 주네요.
이번 겨울이 지나가면 또 한 해가 지나가네요. 앞으로 모든 사람들이 소망하는 것이 모두 이루어 졌으면 좋겠습니다.
겨울 방학
中 1-3 趙 立 雲
제가 제일 좋아하는 방학은 겨울 방학입니다. 왜? -냐하면- 여러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는, 봄 여름 가을 겨울 방학 중에서 겨울 방학이 가장 길기 때문입니다.
둘째는, 일 년을 끝내는 마지막 날인 12월 31일, 그리고 1년을 시작하는 1월 1일이 모두 겨울 방학 안에 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셋째는, 제가 제일 좋아하는 크리스마스가 겨울 방학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겨울 방학 하면 젠 제일 먼저 첫눈 그리고 크리스마스가 생각납니다. 그래서 겨울 방학을 잘 지낼 계획을 짤 땐 크리스마스부터 생각합니다.
이것 말고도 제가 겨울 방학을 좋아하는 이유는 많습니다.
전 겨울 방학에 가장 중요한 것은 눈이라고 생각합니다. 왜냐면? 제가 여러 친구들한테 물어 보았습니다.
"넌 겨울 방학 때 뭘 할 거야?"
친구들 절반 이상이 스키장에 갈 거라고 했습니다. 겨울 방학을 좋아하는 이유는 아마도 다들 눈을 좋아하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겨울에 추워서 집에만 있던 아이들도 눈, 하얀 눈 때문에 밖에 나와 추위도 잊고 놀고 합니다.
하루는 저희 동생이 엄마한테 혼났을 때였습니다. 바로 그 때 밖에 눈이 내리는 것이었습니다. 얼굴을 찡그리고 울고만 있던 저희 동생은, 하얀 맑은 눈을 보더니 얼굴을 활짝 펴고 밖으로 뛰어 나갔습니다. 저희 동생은 눈을 정말 좋아합니다. 그래서 겨울 방학까지 좋아하지요. 저처럼......
불쌍한 이웃돕기
中 1-1 柳 美 娜
겨울이 되면 생각나는 것이 많습니다. 예를 들면, 눈썰매, 크리스마스, 눈사람 등... 그리고 불쌍한 사람들...
다른 계절은 몰라도 추운 겨울에는 얼어죽기 쉬워서 생긴 게 불쌍한 이웃을 돕는 일들입니다. 매일 거리에서는 종을 울리면서 "불쌍한 이웃을 도웁시다"라고 말합니다.
나도 도운 적이 있습니다. 차비를 빼고 남은 돈은 겨우 몇 백원이지만(용돈을 다 써버려서) 동전도 상관없다고 생각하며 통에 넣으려고 그랬는데... 그 안에는 천 원 짜리 만 원 짜리만 잔뜩 있었습니다. 그래도 용돈이 바닥이 나서 달랑 몇 백원을 냈습니다. 그런데도 그 분들은 "고맙다"하고 말해주었습니다. 그 때는 기분이 좋았지만 지금 생각하면 참 웃긴 얘기입니다.
지금도 겨울인데 밖에는 그 사람들을 전혀 못 보았습니다. 또 도와주려고 했는데...
만나면 또 도와야지!
졸업 여행
中 3-3 郭 明 季
우리는 조마조마한 마음을 갖고 드디어 10월 17일 아침에 졸업 여행을 떠났다. 생각했던 거처럼 여행의 길은 너무나도 길고 힘들었다. 그래도 친구들이 있기 때문에 그나마 지루했던 시간들을 좀 더 편하게 지낼 수 있었다.
경주에 도착하자마자 우리의 관심은 숙소에 있었다. 모텔이라고 해도 괜찮아! 그저 다 같이 같은 방을 쓸 수만 있다면... 다행히도 그렇게 됐지만... 방이 너무 작아--!! 등치 큰 아홉 명이 어떻게 그 작은 방에서 잘 수 있을까? 결국 우리들 중 몇 명은 앉아서 자야 했고, 편하게 발을 펼 수도 없었다.
고생을 했지만, 결코 그렇게 나쁜 여행이 아니었다. 단체 생활이란 게... 다 같이 힘들 때 서로 돕고, 즐거울 때 다 같이 즐거워하는 게 아닌가! 몇몇 친구의 괴상한 잠버릇 때문에 우리는 정말로 즐거웠다. 물론 그 친구한테는 미안했지만...!!
이번 여행은 길기도 하면서 짧은 여행이었다. 솔직히 말해서, 학교에서 준비한 여러 행사들을 많이 따라가지 않았지만, 그래도 단체 생활에 대해 너무나도 큰 경험을 얻은 것 같다.
2년 뒤엔, 전교생이 다 같이 즐길 수 있고, 다 같이 웃고 생동감을 함께 느낄 수 있는 졸업 여행이 되었으면......
졸업 여행에 대해서
中 3-1 王 玉 華
저번 주 화요일에 난 처음으로, 식구들과 헤어지고 친구들과 여행을 떠났다. 이유는 다름이 아니라 "졸업 여행".
난 학기가 시작할 때부터 무지막지하게 설레 친구들과의 얘기는 오직 졸업 여행에 대한 것뿐이었다. 일주 일 전에는 아예 "10월 17일은 여행가는 날-!" 하며 노래를 부를 정도로 기대했다. 지금 생각하니 참 우습고, 누구 같다(?).
드디어 출발하는 날. 우린 모두 이민 가는 사람같이 짐이 산더미. 서로 보며 하는 첫 말이 "밤새도록 놀자!"는 말. 우리는 밤낮을 가릴 것 없이 놀고, 놀다 지치면 먹고, 먹다 심심하면 손 운동과 두뇌 싸움, 지칠 줄 몰랐다.
그렇게 이틀이 지나, 마지막 밤이 됐다. 모두 무대로 모였는데, 각 반 학생들이 춤과 노래를 췄다. 오빠들이 원피스나 치마를 입고, 화장도 하고 나왔는데, 재미있었지만 솔직히 보기 조금 민망했다. 왜지?
마지막 나흘 째 되던 날, 경주 박물관에 갔는데, 이게 웬일? 일본 학생들도 수학 여행 왔네-? 같이 사진도 찍었는데, 역시 일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에선 상상도 못 할 헤어스타일, 무릎까지 오는 양말, 무척 짧은 치마... 신기했다. 어쩌면 우리가 더 신기할 수도 있지만......
이상은 옥화의 이번 여행 얘기였다. 재미도 있어 웃기도 하고, 슬퍼서 울기도 했던 3박 4일. 결코 날 괜히 설레게 한 게 아니었다. 그럼 난 또 고2 여행을 기다려야겠다.
우린 졸업 여행가서 한 것은...
中 3-3 孫 靜 宜
졸업 여행 3박 4일 동안 거의 차안에서 보냈다. 밤에 모텔에 들어오면 친구 여덟 명과 함께 민화투와 원 카드를 놀았다(당연히 재미로 논 거다. 돈 안 걸고).
첫 날은 원 카드를 놀았다. 처음 애들이 놀자고 할 땐 어떻게 놀 줄 몰라서 배웠다. 배운 지 5분만에 게임을 시작하고, 분위기는 꼭 아줌마 도박판 같았다. 시간이 늦자 대부분의 친구들은 잠을 자고 나를 포함해 네 명이서 원 카드를 놀면서 밤을 샜다.
이튿날은 모텔을 옮긴다고 해서 짐 싸고 차에 탔다. 밤에 잠을 못 잔 탓에 차에서 잠을 자고 모텔에 도착하자마자 이불을 깔고 이번에는 민화투를 배워 치기 시작했다. 이번 밤은 새벽 3-4시까지 민화투를 치고 잤다.
다음날, 눈을 감기만 하면 "光"자가 보였다. 그날도 놀다와서 민화투를 치다 자고, 다음날 늦게 일어나서 세수도 못하고 옷만 입고 나와 어디 약수로 세수를 했다.
마지막 날이라서 그런지 여러 군데를 들렀다. 난 그 중에서 포항제철이 기억에 많이 남는다. 보는데 다리 바닥에 조그만 구멍이 있고 쭈그러진 부분은 밟으면 "우두둑" 하는 소리를 내서 무서웠다.
이번 졸업 여행에서 기억에 가장 남는 것은 민화투를 논 것이다. 아-! 그리고 포항제철 다리에서 나는 우두둑 소리... 또 모텔에서 주는 밥... 너무 맛이... 흑, 흑, 흑!
졸업여행 동안 간 경복궁
中 3-1 王 姸 楆
저는 졸업여행을 안 가서 국어 숙제로 경복궁을 가서 보서 보고문을 쓰려고 필름도 사고 자료도 모았습니다.
우선 인터넷에서 경복궁 관련 자료를 모으려고 찾긴 했는데 의외로 자료가 많아 두 시간 동안 한 사이트에서 저장만 했습니다. 너무 많아서 생각나는 것도 없을 만큼이더라고요. 처음엔 보이는 대로 저장했는데 나중엔 모니터를 너무 오래 봐서 눈도 퍽퍽하고, 뒷골도
땡기고 해서 대충하고 전철 타고 경복궁에 갔습니다.
역에서 내리고 출구로 나갔는데, 길만 있어서 한참을 걸었습니다. 출구를 잘못 나왔나 싶었지만, 지금까지 걸어온 걸 다시 뒤돌아 갈 용기도 쉽사리 나지 않아서 그냥 계속 걸어갔습니다. 한 시간 정도 걸으니 표 파는 곳이 나오더라고요. 열 여덟 살 아래 학생은 무료인데 외국인이라 300원을 주고 표를 샀습니다.
사진을 찍으러 간 것이라, 열리고 있는 축제는 보지도 않고 고궁부터 찾아 사진을 찍는데, 플래쉬 터질 때 빛이 안 나와서 사진 안 찍힌 건 줄 알고 같은 곳을 다른 각도에서 한 번 더 찍었는데, 나중에 집에 가서 엄마한테 얘기하니까 그건 상관없는 거라 하시더라고요... 필름 아까워서...
그래도 날씨가 좋아서 사진은 다 잘 나왔어요. 어제 비어 있는 탁상용 소형 액자에 향원정(?)을 찍은(정말 잘 나왔어요.) 사진을 집어 넣었습니다.
처음 가는 경복궁이었지만 제 나름대로 재미있었어요.
<삼행시 - 졸업여행을 다녀와서>
미용실에서 머리를 하고 있는데
남자 친구가 졸자 여자 친구가 하는 말...
졸 : 졸려도 졸음을 쫓아봐.
업 : 업그레이드 된 내 모습을 봐야지.
여 : 여자의 변신은 무죄라구!
행 : 행(헹)구기만 하면 끝인데......
- 中3 周
포 : 포기하지마!
항 : 항복하면 안돼!
제 : 제대로 다시 시작해보는 거야! 강하게 살아가라구!
철 : 철인처럼...
- 中3 郭
법 : 법을 따르고
주 : 주위 사람과 서로 돕고 즐겁게 살아야
사 : 사랑이 가득 찬 나라를 만들 수 있다.
- 中3 郭
고 : 고민이 있냐, 아그야?
속 : 속- 시원히 말해봐라, 아그야!
버 : 버벅거리지 말고, 아그야.
스 : 스...스......성님, 팬티가......
- 中3 玉
법 : 법도 필요 없다.
주 : 주먹도 필요 없다.
사 : 사랑만 있을 뿐이다!
- 中3 任
신 : 신라면은 맛있다.
라 : 라면은 역시 신라면
시 : 시대가 바뀌어도 변함없는 신라면
대 : 대대손손 이어가자, 우리 신라면
- 中3 祥
고 : 고속버스를 탔다.
속 : 속이 울렁거린다.
버 : 버스에 이렇게 오래 타고 있어도 아무렇지도 않은 저 친구를
스 : 스승으로 삼고 싶다.
- 中3 祥
고 : 고속버스를 탔다.
속 : 속이 메스껍다.
버 : 버스 기사 아저씨 하시는 말씀
스 : 스(쓰)레기통에 얼굴 박고 볼일 봐!
-中3 新
<기행문>
수학 여행을 다녀와서
高 2-2 孫 聖 皓
2000년 10월 17일, 드디어 高2 수학 여행 날이 밝았다. 이 시간을 얼마나 기다렸는지... 어젯밤 수학 여행을 간다는 생각에 마음이 부풀어서 잠도 제대로 못 잤다.
오늘 아침 친구들의 얼굴은 몹시 밝았다. 친구들의 양손에는 모두 도시락이 들려 있었고, 옷차림도 아주 다양했다. 이제 출발 시간이 되어 다 버스에 올라타자마자 친구들은 도시락을 먹기 시작했다. 각양각색의 김밥과 먹음직스러운 음식들이 많았다. 마치 뷔페에 온 기분이었다.
버스를 탄 지 두 시간 좀 지나, 드디어 첫 목적지에 도착했다. 첫 목적지는 바로 독립기념관이었다. 친구들은 차에서 내리자마자 사진을 사정없이 찍어댔다. 어떤 친구는 벌써 필름 한 통을 다 써버렸다. 박물관에 들어가서 당시 일본인이 한국을 침략한 역사를 다시 보니 정말 잔인했구나하는 생각과 함께 화가 났다. 역시 세상에서 제일 잔인한 것은 인간이란 것을 느꼈다. 그렇지 않아도 나는 일본 사람을 싫어하는 데다가 이런 역사를 다시 보니까 정말 피가 거꾸로 흐르는 것 같았다!
그리고 나서 우리는 다시 버스를 타고 숙소로 향했다. 숙소에 도착하여 방에 가보니 상상밖에 방은 아주 넓었다. 저녁밥도 아주 맛있게 먹었다. 여행 첫날이라 애들은 잘 생각을 안 했다. 하지만 머지않아 訓導處 선생님들이 무서운 표정으로 우리를 겁줬고, 우리는 할 수 없이 자기로 하였다.
다음날 아침, 우리는 아침 식사를 끝낸 뒤 바로 속리산으로 향했다. 속리산에 도착하자 가을이라 그런지 단풍들이 빨갛게 물들어 있었다. 속리산도 다른 산과 비슷했다. 다만 큰 불상이 놓여 있었고 다른 산보다 공기가 더 맑은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속리산 여행을 마친 뒤, 우린 곧바로 경주로 향했다. 경주로 가는 도중에 한 공원에 들려 잠깐 자유활동을 했다. 그 공원은 경치가 아
주 좋았다. 그 공원에서 친구들은 자전거를 빌려 타기도 하고, 강가에서 사진을 찍기도 했다. 저녁이 다 될 무렵 우리는 숙소로 향했다. 숙소에 도착해 친구들이 방에 들어가자마자 얼굴을 찡그렸다. 왜냐하면 경주 숙소는 어제 잔 숙소보다 방이 터무니없이 작았고, 욕실에 물도 잘 나오지 않았다. 이날 밤도 선생님들의 끈질긴 감시로 우리들은 할 수 없이 일찍 자야 했다!
다음날 아침, 우리는 모두 네 군데를 다녀왔다. 석굴암, 불국사, 포항제철, 그리고 바다... 이 네 장소에서 내 기억에 가장 인상 깊었던 곳은 바로 포항제철이었다. 포철에 도착하자마자 나와 친구들은 그 규모에 우선 놀랐다. 총 270만 평의 면적! 이 면적은 대전 엑스포의 1배나 되는 면적이라고 한다. 그리고 환경을 위하여 공장 군데군데 나무를 심었는데 총 160만 그루라고 하니 어마어마하였다. 여기에서 일하는 인원은 모두 만 이천 명... 역시 세계적으로 유명한 공장은 뭐가 달라도 달랐다.
이제 마지막 날 저녁이 다가왔다. 밤 축제가 열렸을 무렵, 갑자기 여자 같지도 않은 여자가 대거 축제에 참여하여 쇼를 하였다. 그것은 바로 여장 남자였다. 한편으론 웃겼지만 한편으론 정말 엽기적이었다. 마지막날이라 친구들은 잘 생각을 안 하고, 밤새 난리를 치며 날을 샜다.
다음날 아침 우리는 천마총을 끝으로 3박 4일 동안의 수학 여행을 마쳤다. 정말 재미있고 아쉬운 여행이었다.
수학 여행을 다녀와서
高 2-2 趙 晏 莉
이 천고마비의 가을날에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수학 여행을 가는 날이 왔다. 비가 올 거라는 기상 예보가 언제였냐는 듯 하늘은
정말 맑았다. 오늘 따라 매일 지각하던 친구들도 아침 일찌감치 학교를 찾았다. 모든 이들의 손에는 짐과 먹을 것이 가득 들려 있었고, 모두들 들뜬 모습이었다.
버스를 타고 한 두 시간을 갔을까? 우리는 오늘의 첫 코스 "독립기념관"에 도착했다. 거긴 정말 멋진 곳이었다. 출입문을 통과하면 아주 큰 다리를 볼 수 있다. 그 아래에는 호수가 있는데 이엉들이 어찌 그리 크고 많은지... 정말 놀라웠다. 독립기념관에는 6개의 관(館)이 있는데, 난 친구들과 하나하나 정말 유심히 봤다. 제 3관에는 일제 시대에 있었던 고문과 관련된 것들을 전시하고 있었다. 어떻게 그렇게 잔인한 짓을 할 수 있었을까? 의문이 들었다. 혹시 그 당시의 일본인들은 모두 정신병을 앓고 있던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다시는 그런 일이 없었으면 하는 간절한 바람도 들었다. 집합할 시간이 다 되어 우리는 다시 버스를 타고 숙소로 갔다. 숙소가 생각 이상으로 너무 좋았다. 너무 많이 먹었는지 오늘은 너무 피곤해 이렇게 하루를 마치고 잠을 청했다.
이튿날, 우리는 역시 아침 일찍 일어나 두 번째 코스 "속리산"으로 갔다. 거긴 숙소와 별로 멀지 않아서 그냥 걸어갔다. 오늘 날씨는 그다지 좋지는 않았다. 강풍으로 인해 찍는 사진마다 머리가 휘날려 제대로 안 나왔다. 그 길로 점심을 먹고 우리는 경주로 향했다. 경주는 정말 멀었다. 점심에 출발해 오후 6시쯤 도착했다. 정말 힘이 들었다. 차에서 잤긴 했지만 좁아서 자도 잔 것 같지가 않았다. 그래서 저녁만 먹고 얼른 목욕하고 자려고 했으나 친구의 방해로 자지도 못 하고 거의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이제 셋째 날이다. 오늘은 정말 스케줄이 빡빡한 날이다. 왜냐하면 네 곳을 가야 하니까... 우선 우리는 불국사를 찾았다. 생긴 것은 속리산의 법주사와 별로 다를 것이 없었다. 특별한 것도 없어 그냥 대충 훑어보고 친구와 빨리 버스로 달려갔다. 잠을 자기 위해서... 석굴암으로 향했을 땐 정말 죽는 줄 알았다. 꼬불꼬불한 길 때문이다. 왜 그렇게 그런 길이 많은지, 대관령보다 더한 것 같았다. 하지마 고통도 잠시, 그 산꼭대기에서 본 경주가 너무나 멋있었다. 우린
기념 촬영을 하고 석굴암을 보기 위해 걸었다. 석굴암은 정말 대단한 조각인 것 같다. 그래서 국보 23호인가 보다.
시간이 다 되어 우린 얼른 점심을 먹고 포항제철을 견학하기로 했다. 한 두 시간을 가야 도착할 거라는 기사 아저씨의 말에 우린 곧장 차에서 잤다. 눈을 떴을 땐 포항제철에 다 와 있었다. 도착 후, 안내원 아줌마께서 타셨다. 그 분은 정말 친절하게 안내해 주었지만, 우리가 어제 너무 무리를 했는지 듣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히 들었다. 이 포항제철은 세계에서도 손꼽힐 정도라는 것을... 아무튼 이렇게 또 한 곳을 보았다.
이제 오늘의 마지막 코스인 동해를 둘러보기로 했다. 가을 바다라서 그런지 정말 멋있었다. 오늘 따라 싫어했던 갈매기들도 왜 그렇게 귀여워 보이는지... 역시 난 가을을 타나 보다. 한 일곱 시가 되자 우린 숙소로 돌아왔다. 물론 자고 싶었지만 잠시 후에 있을 하이라이트 "저녁 만찬"이 있기 때문에 정말 힘들 게 참았다. 내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저녁 만찬은 정말 환상적이었다. 남자애들이 여장을 하는데 어떻게 진짜 여자보다 더 예쁜지, 여자인 내가 봐도 정말 예뻤다(부러울 정도로). 이렇게 오늘도 잠과 싸우며 힘들게 하루를 보냈다.
역시 오늘도 일찍 일어났다. 오늘이 마지막이라서 그런지 마음이 참 이상했다. 미련이 남는 것일까? 모두들 하루 더 지내고 싶은 마음이었을 것이다. 우선 우리는 천마총에 갔다. 선배들이 말한 것과 같이 정말 넓은 풀밭 같았다. 올록볼록한 산 같은 것들도 참 많았다. 무엇인지는 잘 몰라도, 함부로 하면 안 된다는 것은 확실한 것 같았다. 아무튼 우리는 마지막 코스인 경주기념관을 찾았다. 여기선 우린 에밀레종과 기와들을 볼 수 있었다. 특히 에밀레종에 관한 전
설을 들었을 땐 정말 섬뜩했다. 좋은 종을 만들고 싶은 맘은 알겠지만... 정말 잔인하다.
집에 가는 버스 속에서는 남은 필름을 다 찍으려는 친구들의 노력이 볼 만했다. 결국 다 찍지는 못했지만, 집에 오는 시간은 특히 빨랐다. 다섯 시 조금 넘었을까, 우린 학교에 도착했다. 아쉬웠지만
이번 수학 여행은 이렇게 끝이 났다. 참 많은 아쉬움을 간직한 채 끝난 여행이지만 평생 잊지 못 할 만큼 소중한 시간들이었다.
수학여행을 다녀와서
高 2-2 李 慧 萍
수학여행 즉 졸업여행이 아닌가, 말 그대로 졸업을 앞두고 다녀오는 여행이다...... 하지만 참 웃기는 일은 졸업이랑 거리가 좀 있는 우리가 그 여행을 다녀왔다는 사실..... 학교측에서는 고3 시기에 공부 때문에 시간이 없어, 고2 때 가는 것으로 정했다 해도, 졸업을 일년 반 후에나 할 수 있는 고2-1 학기인 우리에게 그 여행이 그다지 큰 기쁨이나 큰 의미를 주지 못하고, 실감은 더 더욱 나지 않았다.
매년처럼 우리도 3박4일을 잡아 경주로 갔다. 첫째 날엔 우리는 수업도 안 하고 논다는 사실이 마냥 신나고 기뻤다. 그날, 애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머리부터 발끝까지 온통 메이커로 둘러 한껏 뽐내며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우리는 집합해 교장 선생님의 길고도 긴 충고에 귀를 기울이기는커녕, 친구들끼리 수다를 떨어댔다. 집합이 끝나고 우리는 양손 가득 먹을 것을 챙겨 버스에 올라탔다. 우리 반은 인원이 적어 1반 애들이랑 짬뽕차를 탔다. 근데 두 자리가 모자라, 동작이 느린 나와 또 한 친구는 서서 가야했다...... 독립기념관에 도착했을 땐 깨끗이 처리된 빈 도시락 과자봉투와 빈 캔들만이 가방에 온통 지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차에서 내려 초스피드로 기념관을 맴돌았다. 슬슬 짜증이 날 무렵 우리들의 눈길을 끄는 것이 있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고문현장이었다. 유리창으로 통해 그 냉혹하고도 처참한 장면을 볼 수 있었다. 방 속에 있는 마네킹들이 움직여 더욱 실감이 났다. 그것은 일본군
이 독립운동가를 잡아가 고문을 하는 현장이었다. 여자의 손목을 비틀어 뼈에다 밧줄로 묶고 의자에 꿇어앉힌 채 허벅지에 나무막대기를 찔러 넣는가하면, 펄펄 끓는 물을 입 속으로 퍼부어 고문하고 사람들을 땅속에 생매장하는 등. 보고있으면 소름이 끼칠 뿐만 아니라 혐오감이 들 정도였다...... 인간은 정말 잔인하고도 못된 동물이다.... 씁쓸한 마음으로 기념관을 나와, 우리는 모텔로 향했다. 모텔에 도착했을 땐 오후 6시에 가까운 시간이었다. 밤에, 한참 TV에 몰두하는데, XXX친구가 밖에서 들어와 긴장하면서 물통(?)을 들고 왔다 갔다 어쩔 줄 몰라 했다. 하지만, 결국 담임 선생님이 변기통에서 찾아내 압수했고, 그 친구는 방을 치우며 아쉬워했다...... 11시를 넘기고 우리는 서서히 한 사람씩 목욕을 하려고 했는데, 수도꼭지에선 온수는커녕 빙하수만 철철 흘러내렸다... 결국 목욕은 내일 아침으로 미루었다.
나와 XXX는 친구들이 다 잠든 늦은 밤, 잠이 안 와 밖으로 나가 바람을 쐬다가 그만 房老師에게 걸렸다. 선생님이 딴 애들도 잡으러간 뒤 우린 재빨리 방으로 뛰었다. 우리는 죽은 듯이 방에 누워 떨린 가슴으로, 잡혀서 도망 못 간 애들의 매맞는 소리를 들었다. 정말 길고도 무서운 밤이었다!
나는 이렇게 친구랑 밤을 지새고 이튿날을 맞이했다. 아침이 되었지만 결코 뜨거운 물은 나오지 않았다. 우리는 할 수 없이 그 빙하수로 머리를 감았다. 머리가 너무 아파 그 어떤 풍경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난 그저 빨리 모텔로 가길 바랬다...
점심을 먹고 나서, 우린 짐을 챙겨 경주로 향했다. 차에서 난 두통 때문에 죽은 듯이 자기만 했다. 그리하여 도착한 곳은 이름 모르는 공원이었다. 친구들이 자전거를 타자고 제의했지만, 운동신경이 둔해 세 발 이상 안 타본 난 그 제의를 거절했다. 그저 사진만 몇 방 찍고 차로 돌아갔다. 그 다음 우리가 도착한 곳은 불국사 별장, 우리가 이틀 밤을 지새야 할 곳이다. 별장, 별장이라. 이 얼마나 엘레강스한 이름인가! 하지만, 빛 좋은 개살구란 걸 아셔야죠! 간판만 번지르르하고 속은 완전 여관이 따로 없죠...... 방도 작아 가지고, 12
명이 어떻게..... 아! 속리산의 모텔이 그립도다...... 흑,흑,흑 그 땐 그 것도 모르고 뜨거운 물 안 나온다고 불평불만을 했었는데... 후~! 아무튼 뭐든지 있을 때 잘 해야지.
이윽고 저녁식사 시간이 찾아왔다. 이 별장에 첫 발을 디딜 때부터 난 모든 기대를 버렸다. 예상대로 밥은 형편없었다. 하지만 만든 정성(?)을 무시 못해 난 밥이라도 해치울 결심에, 그 돌덩어리처럼 넘기기 힘든 것들을 먹었다... 밤새기를 결심한 우린 여러 가지 게임을 하면서 잠과 싸우다가, 마지막으로 진실게임을 하게 됐다. 그러나 밤이 깊어 갈수록 방은 더 춥고, 결국 우린 이불 속으로 모여 그 게임을 하다 나도 모르게 잠이 들었다. 내가 정신을 차려 일어 날 땐 이미 셋째 날의 해가 밝았다... 으~악! 바보처럼 잠을 자다니.... 일어난 순서에 따라 씻기로 했는데, 몇몇 새치기 한 친구가 있어, 나의 순서는 점점 뒤로만 가고, 결국 꼴찌로 한 친구랑 같이 하게 됐다... 우리는 머리를 감고, 이를 닦는데 갑자기 물이 안 나왔다. 나와 친구는 당황하여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는데... 갑자기 선생님이 집합하라고 방송을 했다...... 그때까지도 물은 한 방울도 나오지 않았다...... 결국, 그 뒷이야기는...... 말 할 수가 없다, 각자의 상상력에 맡기겠다. 이렇게 꺼림칙하게 불국사로 향했다.
불국사는 약 1500년 전 신라 때 건축, "화엄불국사" 또는"법류사" 라고 불렸다고 한다. 불국사의 불국이란 뜻엔 모든 것이 완전하게 갖추어진 안락하고 깨끗한 나라가 되고자 하는 바램이 담겨있다. 불국사에서 우린 그다지 오래 머물지도 못 하고 석굴암으로 향했다. 우리는 굼벵이처럼 느릿느릿 산길을 올라가는데 담임 선생님이 보이지 않았다. 자세히 찾아보니 선생님은 저 만치 떨어진 앞에 계셨다. 석굴암에 도착하여 불상을 찍고 싶었지만, 촬영금지구역이라 찍을 수 없었다. 도대체 왜 이 곳도 저 곳도 다 금지구역입니까? 존엄하면서도 인자하고 부드러운 본존불, 석가 여래좌상의 생명력을 간직한 모습은 감히 범할 수 없는 위엄을 간직하고 있다. 석굴암에서 나와 우린 포항제철로 향했다.
포항제철에 도착하자 안내원이 탑승을 했다. 안내원의 소개에 따
라 우린 제철소의 이곳 저곳을 관람했지만 내가 바보인지 안내원이 말재주가 없는 건지, 내가 알고있는 이 제철소의 정보는 대전 엑스포 3배 크기, 여의도 10배 크기란 말뿐이다. 이것으로 미루어봐 그 규모가 얼마나 큰 줄 알 수 있다. 우리는 용철(熔鐵)공장에 내려가 견학하게 되었다. 내리자마자 내가 느낀 것은 그 곳의 공기가 정말 장난 아니게 오염되어 나쁘단 걸 느낄 수 있었다. 또 길거리의 녹이 정말 쌓여서 길거리며 건물이며 다 갈색으로 되어있었다. 견학을 마치고 우린 마지막으로 동해에 갔다. 동해에서 난 난생처음으로 황소를 보았다, 그 것도 그렇게 가까이... 난 황소랑 아주 가까운 자리에서 사진을 찍고 싶었지만, 황소가 날 거부했다. 우리가 가까이 가면 갈수록 황소는 더 멀리 가 버리고 나중에 황소가 화가 났는지 우릴 아주 매서운 눈빛으로 노려보았다......
동해에 큰 손 조각 두 개가 나란히 있었는데, 친구말로는 그 것은 달맞이의 상징이란다. 동해 해변엔 코를 찌르는 냄새 비슷한 냄새가 났다. 동해에서 대충 사진을 찍고 애들이랑 꼬인 오징어 몇 마리를 사들고 우리 버스에 왔지만, 차 문은 안 열렸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기사 아저씨가 우리 선생님들한테 얘기해서 좀 늦은 거란다.
드디어 고대하고 기대한 수학여행의 하이라이트 저녁만찬이 오늘 밤에 열리게 되었다. 그리 하여 숙소로 돌아간 애들은 프로그램 준비에 바빠 정신이 없었다. 시간이 흘러 만찬이 시작 됐다. 중3 고2 중3 고2 이런 순서로 지속 댔다. 쇼는 막바지에 들어서자 점점 재미를 더 했다. 우리 반은 깜직하고 귀여운 다섯 요정(?)들이 '뽀뽀야(파파야)'를 연출했다. 그 중 노랑치마를 입은 친구가 제일 예뻤다...... 애들 말로는 섹시한 박지윤의 1반 친구가 예쁘다지만, 알고 보니 다 화장발, 조명발이었다.... 만찬의 끝을 장식한 프로그램은 숙명의 대결 '미스 華僑 진'선발대회였다, 기억에 남는 후보 이름은 3반 "게이"랑 우리 반 막내 "순대"였다. 하지만 이들을 물리치고 1반 화장발 친구가 진으로 뽑혀 끝내 아쉬움을 남게 했다. 晩會는 이렇게 끝나고, 우린 수학여행의 마지막 밤을 부엉이처럼 밤을 지샜다.... 아니, 솔직히 말해 난방이 안돼 도저히 잠을 청할 수가 없었다......
최후의 날을 맞이한 우린 천마총으로 향했다. 거기에는 몇 개의 작은 산이 있는데, 알고 보니 신라 때 만들어진 고분들이었다. 그 높이는 12.7미터, 밑 둘레는 157미터였다. 와! 정말 장관이었다. 그후, 우린 이번 여행 마지막 코스인 경주 박물관에 도착했다. 그 곳엔 신라 때 벽돌과 유물들이 있었다, 하지만 옛날 것에 관심이 없는 우린 얼렁뚱땅 훑어보곤, 버스에 올라타 서울로 향했다. 이리하여 우리의 수학 여행은 막을 내렸다.
이번 수학여행은 여운이 많이 남은 여행이었다...... 가을에도 불구하고 단풍은 빨갛게 물들지 않았다...... 첫째 날, 둘째 날 밤엔 잠만 자고, 결국 마지막 날 밤만 재밌게 놀았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여행 동안 우리가 무엇을 관람했는지 가물가물하고 내 기억 속에 간판만 거창한 별장에 그 흔한 컵라면조차 찾을 수 없는 아주 형편없는 별장뿐이었다...... 이렇게 길고도 고된 수학여행이 끝나고 난 결국 집에서 이틀 밤낮으로 꿈속을 헤매었다.
나의 고교시절 수학여행
高 2-2 鞠 文 卿
마지막인 이번 수학여행은 정말로 특이한 여행 이였다. 물론 재미도 있었지만, 내 기억엔 특별한 추억이 더 많은 것 같다.
10월 17일 이른 아침, 난 꽃단장을 하고 한 손엔 무거운 여행가방, 다른 손엔 먹을 것밖엔 안 들어 있는 큰 쇼핑백을 들고, 숨막히는 만원 버스를 타고 학교에 왔다. 학교 앞엔 멋있게 사복을 차려입은 친구들과 중3 아이들이 옹기종기 모여 서서 수다를 떠는 모습이 참 재밌어 보였다... 그리고, 잠시 후 교장선생님의 지루한 연설을 듣고 나서 드디어 우리 모두는 버스를 타고 속리산으로 출발했다.
버스를 타자마자, 우리는 정말 놀라울 정도도 전체가 다 먹기 시작하였다. 그것도 버스가 학교 대문을 채 떠나기 전부터^^; 우리는 쉴 틈 없이 먹었다. 드디어, 첫 번째 여행지에 도착했다. 그곳은 다름 아닌 "독립기념관" 말로만 듣던 곳이었는데, 막상 가보니 정말 컸다! 들어가자마자 다들 카메라를 꺼내들고 찍기 시작하는데, 여기 반짝! 저기 반짝! 정말 눈이 아플 지경이었다. 심지어 어떤 친구는 버스에서부터 독립기념관까지 벌써 필름 한 통을 다 써서 우리를 놀라게 했다. 우리가 독립기념관까지 걸어가는 길은 참 넓고도 멀었다. 나와 친구들이 그 넓디넓고 깨끗한 길을 밟으며 걷는 그 기분은 정말 말로 표현 할 수 없이 상쾌했고 우리 모두 감탄했다. 매일 도시 속에서 찌든 생활을 하다가 이런 야외도 나와서 그런지 모두들 표정이 밝고 보기 좋았다. 한참 후, 독립기념관에 도착했다. 거기서 나의 시선을 사로잡은 것이 있었으니..... 그것은 굉장히 큰 하나의 조각이었다. 몇 명의 천사인지 사람인지 다들 하나같이 손을 하늘을 향해 찌르고 있는 하얀 조각, 그것이 재미있는 지 다들 그 조각 앞에서 한 컷씩 찍었다. 아무튼 친구들은 아무거나 다 찍어댔다.
독립기념관을 참관하고 나서 전쟁이 얼마나 참혹했는지 상상이 갔다. 고문당하는 것도 끔찍했지만, 내가 정말로 무서워서 차마 끝까지 보지 못한 것은 바로 전쟁을 그대로 그린 미술작품이다. 기념
관의 한쪽 벽을 차지하는 그 큰 그림을 볼 때마다 정말 너무 무서웠다. 그저 다신 이런 일이 안 생기길 바랬다. 기념관에서 나와 우린 버스를 타고 곧바로 숙소로 향했다. 우리가 묵을 숙소는 생각 외로 방도 크고 깨끗하고 꽤 좋았다! 밥도 참 맛있었는데 아깝게도 하루밖에 묵지 못했다.
10월 18일 우린 상쾌한 아침을 맞이하였다. 맛있는 아침도 먹고 바로 속리산을 향했다. 속리산은 말 그대로 산이다. 의외로 풍경도 아름답고 공기도 맑았다. 특히 좀더 깊숙이 들어가면 산길 양쪽이 모두 단풍인데, 정말 절경이었다. 너무 아름다워서 나랑 친구들은 산에서 내려오기가 싫었다. 산에서 내려와 우린 버스를 타고 경주로 떠났는데 경주로 향하는 버스 안에선 다들 피곤했는지 어제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이었다.
경주에 도착해서 숙소에 가기 전에 한 공원에 들렸는데, 우린 거기서 자전거도 타고, 시시한 "괴물의 집"도 들어가 보았다. 정말 재밌었다! 그곳에서 약 한 시간쯤 있다가, 드디어 우리가 사흘 동안 묶을 숙소에 도착했는데, 그 숙소는 이름부터 심상치가 않았다. "불국사 별장", 귀신이 나올 듯한 이름... 주위에 수많은 모텔 여관이 있었지만, 이런 특이한 이름의 숙소는 없었다. 이름부터 심상치 않아서 우린 뭔가 낌새를 느끼고 천천히 짐을 들고 각자의 방을 찾아갔는데, 결국 우린 경악을 금치 못 했다. 왜냐하면 그 방은 겨우 7-8명밖에 못 자는 방인데도 우리보고 13명이 그 방에서 자라니... 우린 정말... 하지만 할 수 없었다. 우린 그 별장의 지배인과 직원들을 보고 더더욱 놀랄 수밖에 없었으니... 거긴 전부 남자들밖에 없었다. 그것도 다들 하나같이 딱 벌어진 어깨에 깍두기 모양 머리스타일을 하고 있었으니 우린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리고 저들은 우릴 마치 감옥에 가둔 것처럼 대문을 쇠사슬로 감아서 자물쇠로 채워 났다. 그리고 우리가 밤만 되면 선생님들의 눈을 피해 미션 임파셔블을 하면서 이 방 저 방 옮겨다닌 것을 생각하면 정말 재있고 우리는 위대했다! 캬! 캬! 캬!
10월 19일 셋째 날.
어제 밤새 놀아서 다들 눈이 팅팅 붓고 비몽사몽이었다. 특히 버스에선 거의 시체가 된 듯 자느라 정신이 없었다. 우린 잠결에 석굴암과 불국사에 들렀다. 그리고 드디어 나의 기억에서 잊혀지지 않는 곳에 갔으니.... 그곳은 바로 말로만 듣던 "포항제철"...... 난 잠결에 버스에서 내려 친구들을 따라서 어디론가 올라갔는데, 한참 올라가서 정신을 차려보니 내가 웬 공장 안에.... 그것도 거의 3m 나 높은 곳에서 철을 만드는 걸 보고있어야 했다. 물론 평소에 기계 등에 관심 있던 나는 열심히 관찰하고 싶었지만, 고소공포증 환자로서 정말 그곳에 제대로 서있기조차 너무 힘들었다. 하지만 버스는 이미 떠났으니.... 이러 지도 저러 지도 못하기 때문에 난 겨우 친구의 손을 꼭 잡고 땀을 삐질삐질 흘려 가며 겨우 그곳을 벗어났다. 그 끔찍한 곳에서 빠져 나온 다음 한 친구에게서 기쁜 소식을 들었다. 바로 우리의 다음 코스가 바다라는 소식을!!! 다들 기다리고 기다리던 바다에 간다는 생각에 기대 반 설렘 반을 품고서 우린 바다를 향해서 출발했다! 우린 가는 동안에 전혀 얌전히 앉아 있을 생각을 하질 않았다. 그러길 10분이 지나서 창밖에 저 멀리서 동해가 보이기 시작했다. 우리 모두 기쁜 맘에 환호성을 질러댔고 버스 안은 열기도 가득 찼다!
도착하자마자 우리는 선생님의 설명과 충고를 잠시 듣고 나서 전부 다 바다와 가장 가까운 곳으로 달려갔다. 바다의 한 가운데에 금색 손 하나가 떡 하니 지릴 잡고 있었는데, 그것이 멋있어 보였는지 우리는 그 손을 중심으로 해서 정말 정신없이 사진을 찍어댔다. 비록 바다에 가서 물 한번 못 묻혀보고 그냥 왔지만 잠시나마 바다를 볼 수 있었기에 우린 정말 기분이 좋았다! 숙소에 돌아와서 저녁을 먹고 드디어 기다리던 그야말로 수학여행의 하이라이트라 말할 수 있는 축제가 시작됐다. 거기서 우리 2반 역시 남장 여장을 하는데 남자애들 화장을 해 주면서 그 모습이 정말 웃기면서도 너무 징그러웠다.... 으악~ 축제가 시작되고, 반마다 준비한 장기를 하나 하나씩 볼 수 있었다. 다들 너무 잘해서 우리 반이랑 비교가 되기도 했지만, 그래도 무지 재밌었다! 특히 우리 반 남학생들의 그 남사스러
운 모습이 정말 인상깊었다! 하! 하! 하!
축제가 끝나고 우리는 얼마 남지 않은 수학여행을 위해 재밌게 놀기도 하고 엽기적인 사진들도 마구 찍었다! 정말 그 날 밤은 학창시절에 있어 결코 잊을 수 없는 밤이라고 생각한다.
10월 20일 마지막 날.
그렇게 기다리던 수학여행이 이렇게 빨리 갈 줄은 몰랐다. 이날도 역시 아침 일찍 일어났다. 하지만 짐을 챙기고 막상 숙소를 떠나려니 발걸음이 무거웠다. 그리고 왕릉으로 가는 버스에서 난 지난 3일을 회상해보았다.
왕릉에서 우린 일본학생들을 만나게 되었다. 그들을 만나서 그다지 기분은 별로였지만, 그래도 외국으로 수학여행을 온 그들을 보며 조금은 부러웠다.
왕릉은 내가 상상한 것과는 완전히 틀렸다. 왕릉의 생김새와 그 정체 풍경은 마치 전자오락 슈퍼마리오에 나오는 그런 풍경이었다. 둥글둥글 작은 언덕 같은 왕릉이 난 마냥 귀여워 보였다!^^. 그리고, 수학여행의 마지막 코스 천마총에 갔다. 그곳엔 에밀레라는 섬뜩한 큰 종이 있었고. 또 그곳에 있는 불상들은 대부분 다 목이 잘려져 있어서 그걸 보는 나로서는 조금 슬프고 무섭고 기분이 묘했다.
옥결이는 목이 없는 불상 등을 보고 무섭다고 했지만, 난 슬펐다. 저 조각들은 다 혼을 깃들여서 만든 작품들일 텐데, 저렇게 잔인하게 망가뜨려 놓은 걸 보고 기분이 별로 안 좋았다... 이것도 문화유산인데... 그래서 남아있는 거라도 잘 보존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돌아오는 버스에선 다들 아쉬움을 뒤로 한 채 학교에 도착할 때까지 더 더욱 재밌게 놀았다. 이번 수학여행은 한마디로 조금 끔찍하고 잘 놀지는 못 했지만. 그래도 마지막 수학여행이니 만큼, 그만큼 추억도 많이 만들었다고 난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보고문>
졸업 여행을 다녀와서...
高 2-3 初 君 蓮
[유물,유적에 대해]
다보탑
사면으로 계단을 놓은 사각의 육중한 기단 위에 날개를 편 듯 힘찬 추녀가 가로 뻗은 사각 기와집 형식이며, 그 위에 연꽃잎 모양으로 창문을 낸 팔각정이 세워진 3층 양식의 화려한 탑이다.
팔각지붕에는 귀마다 풍경이 달려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 구멍이 뚫려있다. 탑의 높이는 10.4m이며 국보 제 20호로 지정되어있다.
다보탑은 다른 탑에서는 전혀 볼 수 없는 통일신라 최 전성기의 화려한 탑으로써 완전히 규범에서 벗어나 참신하고 기발한 창작으로 이루어졌다.
석가탑
튼튼한 2중의 기단 위에 탑신 부의 몸들과 지붕 돌이 단순한 모양으로 크기가 줄어들면서 차곡차곡 쌓아져 3층으로 솟아오른 석가탑은 감은사 터 삼층석탑과 고선사 터 삼층석탑에서 이어지는 통일신라 삼층석탑의 전형을 이루고 있다.
탑의 높이는 3.2m이며 국보 제 21호호 지정되어있다. 석가탑은 창건이후 상륜부를 제외하고는 큰 손상 없이 원형대로 잘 보존되어 왔다!
1966년 보수공사 도중 석탑 안에서 사리 장엄구와 세계 최고(最古)의 목찬 인쇄물이라 할 수 있는 무구정광다라니경(국보 제 126호)이 발견되었다. 이 유물들은 현재 국립 경주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사천왕상
석굴암의 전실을 지나 본존불이 모셔진 주실(主室)로 들어가기
위하여는 사천왕상이 있는 비도(扉道)를 지나야 합니다.
비도(扉道)라는 것은 한가지 표시하는 비와 같이 집(戶)안으로 들어가는 사다리(非자모양)를 뜻하는 것입니다. 석굴암을 참배하는 신앙인은 전실(前室)을 지나면서 사바세계의 더러움을 씻어내고, 다시 비도를 통하면서 천상세계에 떠도는 악귀들의 위협에서 벗어나 사천왕이 비호하는 안전한 불법(佛法)의 세계로 인도됩니다.
불교에서 사천왕이란 천상계(天上界)의 첫 번째 하늘인 욕계(欲界)6천 가운데 제1천인 사천왕천을 다스리는 왕들을 말합니다.
불교에서 상징하는 하늘의 중앙에는 수미산(須彌山)이 있고, 그 산의 중턱에는 동서남북에 각 천왕(天王)이 있어 그 지역을 관장한다고 합니다.
사천왕이란 원래 고대 인도의 신화적 존재였으나 불교에 흡수되면서 온갖 귀신들을 다스리며 불법(佛法)을 수호하는 호법(護法)의 존재가 되었습니다.
-동방 지국천왕(東方 持國天王)
본존을 향하여 오른쪽 앞쪽에 있는 천왕상 입니다.
그 옆에는 북방 다문천왕(多聞天王)상이 있습니다. 동방 지국천왕(持國天王)은 수미산 중턱의 동쪽 영역을 관장하는 천왕입니다. 아쇼카왕경이나 방등대집경에 의하면, 수미산을 다스리는 제석천 또는 부처님이 지국천왕으로 하여금 동방에서 불법(佛法)을 지키라고 명령하였다고 하며, 그래서 지국천왕은 나라를 지키고, 백성을 편하게 할 것을 맹세하였다고 하여 그 이름이 유래된 것입니다.
석굴암의 지국천왕상은 오른편 앞쪽에서 고개를 동쪽으로 향하고, 갑옷차림에 두 손에 칼을 비스듬히 들고는 당당하게 악귀를 밟고 서 있습니다. 상체는 갑옷을 걸치고 하체는 그대로 둔 형태로 이는 전투형과 의식(儀式)형을 합한 형태로서, 갑옷은 어깨와 가슴에 견고한 형태로 걸쳐져있고, 머리는 굳게 동여맨 형태이며, 무릎까지 종아리받이(脛甲)를 단단히 조여 매었고, 입을 가볍게 벌리고 있습니다.
발아래 밟힌 악귀는 곱슬머리에 머리카락을 한 줄로 땋아 내리
고, 눈을 크게 뜬 채 고통을 호소하는 듯 입을 한껏 벌렸으며, 두 손은 무릎을 잡고 지국천왕이 내려 밟는 힘에 굴복하여 겨우 버티고 있는 형상이고, 볼록한 배와 울퉁불퉁한 근육이 보이며. 옷은 입지 않은 모습입니다.
-서방 광목천왕(西方 廣目天王)
본존을 향하여 왼편 뒤쪽에 있는 천왕상 입니다.
서방 광목천왕(廣目天王)은 수미산 중턱의 서쪽에 주처(住處)가있는 천왕입니다. 범어로는 "Virupaksha"라고 하며, 그 뜻은 이상한 눈, 추한 눈의 의미를 가진 거으로, 그래서 한문으로는 추목(醜目), 악안(惡眼)이라고도 하며, 일반적으로는 광목천왕이라고 불리어집니다.
석굴암에 조각된 서방 광목천왕의 머리는 본체에서 떨어져서 윗 부분을 쇠못으로 고정시켜둔 상태이며, 언제부터 이러한 형태로 되어왔는지는 알려진 바가 없습니다.
머리칼은 머리에 찰싹 달라붙어 있고, 무늬 띠로 머리를 묶고 있으며 꽃장식이 있습니다. 얼굴은 약간 둥근 편이지만 광대뼈가 불거져 나와있고, 턱끝이 뾰족하여, 두 눈을 크게 뜨고 있고 입은 약간 벌린 채 혀를 내민 듯 하고, 약간 미소를 띤 듯 느껴집니다.
어깨는 약간 비틀고 있고 가슴과 어깨는 당당하고 허리는 잘쑥하고 왼발을 활기차게 내밀어 발가락을 위로 쳐들었으며, 오른발도 발꿈치를 들어 앞으로 걸어나오는 듯 합니다.
광목천왕에게 밟힌 악귀는 왼팔을 땅을 집고 상반신을 약간 들어 위로 보면서 옆으로 기어 도망하려다가 잡힌 형상을 하고 있습니다.
-남방 증장천왕(南方 增長天王)
본존을 향하여 왼편 앞쪽에 있는 천왕상 입니다.
남방 증장천왕(增長天王)은 수미산 중턱의 남쪽에 있는 "유리"라는 지방을 관장하는 천왕입니다. 범어로는 "Virdhaka"라고 하며, 그 뜻은 자꾸 늘어난다, 확대 된다는 의미를 가진 것으로, 그래서 한문으로 증장(增長)이라고 합니다.
석굴암의 증장천왕은, 머리칼을 뒤로 빗어 넘기고 이를 구슬띠로 묶었는데 그 띠 자락이 왼쪽 귀 부근으로 내려와 가슴까지 날리고 있습니다. 어깨는 넓고 가슴은 당당하며, 허리는 잘쑥하여 활기찬 무장의 단단한 신체를 잘 묘사하고 있으며, 오른손으로 칼을 자아 칼끝을 왼쪽 어깨로 비스듬히 올라가는데 왼손 등으로 가볍게 칼날을 받치고 있는 모습입니다. 양 팔꿈치 부분의 소매는 바람에 휘날리는 듯 활짝 벌려져 있어 전체적이 활력을 느끼게 하며, 오른발은 꼿꼿이 세웠고, 왼발은 유연하게 옆으로 벌려 강인하면서도 유연한 자세를 취하고 있습니다.
남방 증장천왕이 밟고 있는 악귀는 두 팔 굽과 양 무릎으로 땅에 대어 기고 있으며, 오른손은 이마를 짚어 부끄러워 어쩔줄 모르는 모습으로 보여지고, 왼손으로는 증장천왕의 나부끼는 천의(天衣)자락을 잡고 고통을 참고 있는것 처럼 보입니다.
-북방 다문천왕(北方 多聞天王)
본존을 향하여 오른편 뒤쪽에 있는 천왕상입니다.
북방 다문천왕(多聞天王)은 수미산 중턱의 복쪽 영역을 관장하는 천왕입니다. 범어로는 "Vaisrvana"라고 하며, "Vai"는 두루(遍,普)의 뜻을 가지고, "Sravana"는 듣는다는 뜻으로, 두루 많이 듣는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다문천왕은 수미산 북방을 지키면서 부처님의 설법을 가장 많이 들었다고 하여 그 이름이 유래한 것입니다.
그래서, 석굴암의 사천왕상에 대해서도 그 지물이 분명히 구별되지 아니하나, 바로 탑을 들고 있는 이 사천왕상을 북방 다문천왕으로 판별한 다음 방향에 따라 나머지 사천왕상을 구별하고 있습니다. 북방 다문천왕은 몸을 약간 틀어 왼손에 탑을 들고 있으며, 발은 악귀의 어깨를 딛고 있습니다. 허리를 활처럼 굽혀 한쪽으로 전진하는 듯한 느낌을 주며, 다른 사천왕상에 비하여 젊게 묘사되어 있고 신체도 보다 건장합니다.
머리칼은 비교적 얕게 조각되었고, 스카프를 쓴 것처럼 보이며, 구슬띠로 머리를 묶었고 중심에 꽃 장식이 있습니다. 왼손은 활짝
펴서 힘을 집중시키는 듯한 느낌을 주며 오른선은 어깨까지 들어 묘하게 굽혀 손끝에 살짝 올려놓고 있습니다.
탑은 4각형 대좌에 중간에 4각형 탑신, 맨 위에 4각 지붕이 있고, 탑을 든 손은 손상된 것을 복원 당시 떨어진 부분을 발견하여 다시 붙여 놓은 것입니다.
석굴암
석굴암(石窟庵)은 신라(新羅) 경덕왕(景德王) 10년(751) 재상(宰相)인 김대성(金大城)에 의하여 창건(創建)되었다고 전한다.
석굴암(石窟庵)의 조각들은 심오(深奧)한 믿음과 우아(優雅)한 솜씨가 조화(造化)된 통일신라시대(統一新羅時代)의 걸작품으로써 한국불교조각을 대표하는 동시에 세계적인 명작으로 인정받고 있다.
굴(窟) 가운데에는 높이 3.48m의 여래좌상(如來坐像)이 둥근 대좌위에 東向으로 안치(安置)되어 있고 전실(前室)과 주실(主室)입구 및 통로의 좌우 벽에는 팔부신장(八部神將) 인왕(仁王), 사천왕(四天王) 등이 입상(立像)으로 조각(彫刻)되어 불천(佛天)을 지키고 있다.
굴(窟) 내부 본존불(本尊佛) 둘레 요벽(腰壁)에는 천부입상(天賦立像)을 배열하고 본존불(本尊佛) 바로 뒤에는 11면 관세음보살입상(十一面觀世音菩薩立像)을 조각(彫刻)하였다.
천상(天障)주위에는 10개의 감실(龕室)이 있는데 두 곳은 비워있고 7곳에 보살좌성, 1곳에 유마거사좌상(維摩居士坐像)이 안치되어 있다.
또한 1995.12.6 유네스코에 의해 우리 민족의 문화유산이 세계적으로 공인 받은 관광명소이다.
에밀레종
신라시대에 만들어진 한국 최대의 종. 국보 제29호.
높이 3.33m 입지름 2.27m, 두께 2.4cm, 에밀레종 또는 봉덕사에
달았기 때문에 봉덕사종이라고도 한다. 원래 봉덕사에 걸었던 것을 1460년(세조 6년) 영모사에 옮겨 걸었는데, 홍수로 절이 떠내려가고 종만 남았으므로 현 봉황대 옆에 종각을 짓고 보존하다가 1915년 경주박물관으로 옮겼다. 종 모양은 입 부분에 당초무늬로 된 띠가 있으며. 당초무늬 사이에 8개의 큼직한 연꽃무늬를 일정한 간격으로 둘렀다. 종 위에는 온건한 모습의 용이 음관을 감고 있다. 몸체에는 당초무늬를 두른 견대가 있고 그 아래에 4개의 유곽 안에 각각 9개씩 모두 36개의 연꽃을 넣었으며, 그와 대칭으로 보상화 무늬와 연꽃으로 된 당좌가 있다. 비천상은 양각된 종명을 사이에 두고 2구씩 상대한 4구가 연화좌 위에 무릎을 꿇고 공양하는 공양 상이다. 그 주위로 보상화가 구름처럼 피어오르고 있다. 비천상 사이의 2개 처에 이 종의 유래와 종을 만들때 참가한 사람 및 글쓴이의 이름이 적힌 종명이 있어 신라사를 연구하는데 좋은 자료가 된다.
에밀레종의 비밀
아버지 성덕대왕과 어머니 소덕태후의 명복을 빌기 위해서 구리 12만근을 들여 만들기를 수 차례. 번번이 실패는 계속 되었다.
경덕왕은 끝내 바라고 열망하던 신종을 만들지 못하고 실망 속에 세상을 떠나고 이어 경덕왕의 아들 혜공왕이 8세의 어린 나이로 즉위했다. 혜공왕 반드시 천하에 없는 신종을 만들고야 말겠다고 하였다. 그리고, 검교사령부령 김옹과 검사숙대령 감양상을 불러 신종을 만들 것을 명령하였다. 그쯤 항간에는 이상한 말이 나돌았다. 신비한 종을 만들려면 끓는 쇳물 속에 천진난만하고 마음이 때묻지 않은 어린아이를 넣어야 된다는 소문이다. 그리하여 나라안의 여러 승려들을 불러 논의하기에 이른 것이었다. 그러나 적절한 결론을 얻을 수 없었고 의견만 분분하였는데 신종을 불사하기 위해 시주를
다니던 승려 하나가 나서서 "지난날 시주를 받으러 이 마을 저 마을 다닐 때 어느 마을에 모녀가 가난하게 살고 있는 집을 들린 적이 있었습니다. 찾아간 뜻을 말하고 시주를 청하니 아이 어머니가 "우리 집은 가난하여 시주할 것이 없습니다. 가진 재산이라고는 이 아이 뿐인데 이 아이라도 받아 가시려면 데려가시지요." 하며 애기를 어르고 있는데 가난 속에서도 자식을 사랑하는 모습이 정겨워 앞날을 축원하고 돌아왔습니다. 이제 일이 이렇게 되었으니, 그 아이라도 시주 받아 인주로 바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고 얘기하였다. 신하들과 승려들이 그 집을 찾아가 그때의 일을 얘기하며 아기를 시주하라고 했다. 아이어머니는 농으로 한 말이라고 하였지만 부처님을 속일 수는 없는 일이라고 하며 아이를 강제로 뺏어다가 끓는 쇳물에 집어넣었다. 세상을 진동하는 아이의 처절한 울음소리가 그치고 쇳물을 종틀에 부었다. 아름답게 그림을 새기고 정성 들여 만든 종틀이 쇳물에 부어지자 이번에는 금간 데도 없고 구멍이 뚫린 데도 없이 종신이 이루어 졌다. 드디어 타종의 그날을 맞아 서라벌의 떠들썩하던 장안의 소란스러움이 일순 멈추고 스치던 바람조차 숨을 죽였다. 당목이 움직이는 듯 하더니
"에밀레......."
부드럽고 맑으면서 애처로운 소리가 섞여 서라벌 장안에 울려 퍼졌다. 온 나라가 기원하고 바라던 훌륭한 신종이 완성된 것이다. 사람들은 엄마 품을 떠나 쇳물속에 녹아든 어린 딸아이의 슬픈 울음이 종소리에 섞여 울려 퍼지는 것이라고 하며 "에밀레종"이라 부르게 되었다.
<시>
느티의 정원
高 3-2 孔 慶 民
유월이면 푸른 정원에 느티나무를 자라게 하자
계수나무 미루나무 잣나무
넓은 하늘을 바라보게 하자
여름이면 가득한 별들
귀뚜라미 쓰르라미 매미
이름 모를 풀벌레들의 노래
이제 유월이면 푸른 느티의 정원에
싱그러운 계절을 들여놓자!
강촌 MT
高 3-4 徐 營 華
우리는 1박2일로 경기도에 있는 강촌이란 곳을 MT장소로 잡았다. 우리 반은 목적지를 정한 후 조를 짰다. 난 거기서 7조에 편성되었다.
드디어 기다렸던 첫째 날 10월 21일. 그 날은 날씨가 화창해서 기분까지 좋았다. 우리 반은 오전에 조회를 마친 후 바로 각자 집으로 해산했다. 그리고 청량리 기차역 시계탑 앞에서 집합하기로 했다. 물론 한두 명은 지각했다. 나도 포함해서...
우리는 조를 이루어 기차를 타기 시작했다. 드디어 목적지 강촌을 향해 출발! 우리들은 설렘을 안은 채 기차 좌석에 앉았다. 그리고 간단한 끼니로 배를 채웠다. 기차 안에서 먹은 김밥과 샌드위치는 그야말로 꿀맛이었다.
기차 안에서 우리들은 1시간 반이란 시간을 보내고 드디어 목적지에 첫 발을 디디게 되었다. 우리는 기차에서 내리자마자 숙소를 향해 걷고 또 걸었다. 몇 분이나 걸었을까... 얘들은 힘이 들지도 않는지 미소가, 수다가 입가에 계속 머물었다. 우리들의 숙소는 바일 민박이었다. 멀리서 민박집이 언뜻 눈에 띄었을 때 우리들은 기뻐서 숙소를 향해 달렸다. 집 구조는 방 세 개와 주방과 화장실 하나로 되어 있었다. 그리고 우리는 두 시간을 자유시간으로 정하고 해산했다. 친구들은 자전거를 타며 여기저기 구경했다.
두 시간 후, 저녁 6시. 우리는 서둘러 조끼리 밥을 지어먹었다. 비록 조금 탔지만 야외에서 먹은 밥 또한 꿀맛이었다. 식사를 마친 후, 우리는 모닥불 주위에 조끼리 앉아 간단한 게임을 했다. 늘 그랬듯이 즐거운 시간은 빨리 지나갔다. 밤 10시가 됐을까? 우리는 캠프파이어를 시작했다. 그로부터 1시간 후, 밤 12시가 조금 넘었을 때 사람들은 하나둘씩 방으로 들어갔다. 난 잠이 오지 않아 그냥 무의식적으로 따뜻한 모닥불로 향했다. 거기에는 나 말고 선생님과 많은 학생들이 모여 있었다. 역시 방보다 모닥불에 있는 것이 더욱 따
뜻했다. 새벽 1시쯤 선생님께서도 피곤하셨는지 먼저 방으로 들어가셨다. 우리는 여전히 모닥불 앞에서 간단한 게임을 하였다. 몇 시간이 지났을까... 인원수는 밤이 깊어갈수록 줄어들었다. 새벽 6시쯤 결국은 나와 어느 학생만 남게 되었다. 우리는 그래도 수다를 계속 떨었다. 불이 약하면 나무를 넣어 따뜻하게 해서 몸을 녹였다. 아침 7시, 그 친구도 못 견디겠는지 결국엔 들어가고 말았다. 밤을 새워 불을 지펴 나무는 다 써버려서 더 이상 남아있지 않았다. 할 수 없이 타다 남은 것을 모아 또 몸을 녹였다.
아침 8시쯤 얘들이 일어났을 무렵, 난 드디어 방에 들어가 따뜻한 온기 안에서 잠이 들었다. 밤을 지새웠더니 몸이 피곤했다. 결국에는 일요일날 놀지도 못한 채 방에서 잠만 잤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친구들과 했던 이야기들, 비록 평범한 이야기들이었지만, 내게 있어서 MT는 그 이야기들 덕분에 더욱 빛나 보였던 것 같다. 언젠가 또 친구들과 MT를 간다면 이번처럼 즐거운 날을 보냈으면 좋겠다.
고3 시절의 짧은 여행
高 3-4 王 暦 娟
10월경에 우리 고3-4반은 강촌으로 MT를 가게 되었다. 말 많고 탈 많았던 여행인 것 같지만 지금 내겐 즐거웠던 우리들만의 추억이 되어 있다.
출발 당일...
쌀쌀하지도 않은 조금은 더운 날씨였다. 오후 1시에 반 친구들은 모두 청량리역에서 일행을 기다렸고, 곧이어 우린 강촌 가는 열차를 탈 수 있게 되었다. 기차 안은 시끄러웠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지만... 덕분(?)에 우린 주변의 따가운 눈총을 받으며, 그래도 조금은 조용하게 놀면서 짧은 시간을 열차에서 보내게 되었다.
숙소로 가다 ...
숙소로 가는 길은 왜 그리도 멀게만 느껴졌는지 모르겠다. 아마도 부푼 마음에 그런 것이겠지만... 가는 도중에 선생님께 많이 여쭈어 본 거 같다."아직 멀었어요?"하고 말이다. 숙소에 도착하였을 때엔 생각보다 넓은 방들이 너무 맘에 들었다. 너무도 넉넉한 것 같은 방들... 우린 제각기 짐들을 정리한 뒤에 자전거를 타러 나갔다. 난 숙소에 남아서 자전거를 타지 못하는 친구들을 가르쳐주면서 그렇게 시간을 보냈다. 물론 중간에 잠시 자전거 전용도로를 찾아 다녔지만... 하지만 하루살이들이 너무 많아서 조금만 가다보면 머리며 얼굴이며 옷이며 잔뜩 붙어있곤 했다. 덕분에 기분은 결코 상쾌할 수가 없었다.
MT 에 간 첫날 ..
그날 오후쯤에 우린 각 조끼리 밥을 해 먹었다. 냄비에 쌀을 씻어서 밥을 하고 찌개며 고기며 하물며 샌드위치에 넣을 후라이마저 해 먹으며 재밌어했다. 맛으로 따지면 결코 맛있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우리가 나가서 처음으로 지은 밥이며 찌개이기 때문에 너무 맛이 있었다. 그리고 밤에는 야외에서 고기를 구워먹으며 놀았던 게 생각난다. 한 가지 특징이 있었다면 남자애들이 먹은 고기는 남달랐다. 그들만의 방식으로, 여러 가지 야채와 쌈장을 같이 불 위에 올려서 몰래 먹었던 것이 생각난다. 물론 나도 거기에 껴서 조금 얻어먹었지만...
가장 하일라이트는 그날 밤이었다. 캠프파이어를 했던 아름다운 추억... 모닥불을 중간에 놓고 각 조마다 넓게 앉아서 게임을 하며 놀았다. 정말 가지가지 일들이 많았다. 그 많던 일들을 어찌 다 얘기할 수 있을지... 난감한 마음마저 든다. 지금 생각난 것은 조지형선생님이시다... 클레오파트라게임을 하시던 모습... 그 모습은 마
치 아이와도 같았다. 그런 면을 지니신 선생님이 너무 좋았다. 같이 게임을 하시며 동참하고, 언젠가 먹고 말 거야라고 하시던 장난기하며.. 그 때의 그 분위기는 다신 느낄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그 다음날 새벽..
몇몇 아이들이 남아서 캠프파이어를 계속 했다. 없는 장작으로 겨우 불을 지피고(결국은 샀다) 서로의 얘기를 했다. 그땐 친하지 않은 사이도 싸운 친구도 전혀 상관이 없었다. 모두가 하나였다. 고민이며, 하고 싶었던 말이며, 그 동안 할 수 없었던 말이며, 모두들 서슴없이 말을 했다. 그 때 느낀 것은, 우리 반은 역시 하나라는 것이다. 결국 난 새벽 4시쯤에 잠을 잤다.
마지막 날..
우린 아침에 일어나서 밥을 해 먹었다.. 우리 조는 떡국을 해먹었다. 친구들이 달라고 성화였다. 우리 조가 가장 맛이 좋았던 거 같다. 그렇게 밥을 먹고, 번지점프를 하러 간 뒤, 디스코를 타러 갔다. 정말 재미가 있었다. 친구 하나가 여유만만하게 움직였더니 기계를 관리하던 사람이 기계를 심하게 조작했다. 결국 내 팔은 시퍼렇게 멍이 들고 말았다. 떨어지지 않으려 안간힘을 썼기 때문이다(타 본 사람은 그 고통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 날 오후에 우린 강촌 기차역에서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기차를 탔다. 입석이라 서서 왔기에 힘들었지만.. 조끼리 놀아서 그렇게 지루하긴 않았다.
이번 여행을 통해 난 여러 가지를 느낄 수 있었고, 그 동안 많이 느낄 수 없었던 친구들과의 우정을 느끼게 되었다. 우리의 그 아름다웠던 추억과, 선생님과의 시간과, 그리고 함께 느낀 시간만큼은 내가 커서도 절대 잊혀지지 않을 것 같다. 만약 내년에 마지막 고3시절의 여행을 다시 간다면... 그 땐 지금보다도 더 많은 것을 느끼고 돌아오지 않을까 싶다. 추억이란 것은 저절로 생기는 것이 아니다. 만들어 가는 것이다. 그렇기에 우린 지금 이 시간도 추억으로 만들 필요가 있다..
MT 갔다 온 후
高 3-4 畢 鑑 龍
꿈만 같던 우리들의 MT는 끝났다. 이번 MT는 우리 담임 선생님 주최로, 또 우리 반 애들의 독촉에 출발했고, 모두가 기다린 만큼이나 이번 MT는 상당히 재미있었다. 아니 재미있다는 말로는 차마 표현하기가 부족할 만큼이나 좋았다. 한마디로 굿(GOOD)이었다.
10월21일 토요일
우린 12시에 청량리 기차역에서 집합하기로 했다. 그날은 마침 학교에 어떤 기념일도 겹쳐 준비 할 시간도 많았다. 난 전날 밤잠을 설쳐 거의 1등으로 집합장소에 도착했고 설레는 마음으로 친구들이 오는 모습을 지켜봤다. 모두들 거의 밤잠을 설쳤는지 눈 밑에 기미가 보이는 애들이 간간이 눈에 띄었지만, 그것보단 입 꼬리가 올라간 아이들이 더 많이 보였다. 워낙 인원이 많다 보니 집합시간도 거의 한 시간이 걸렸고, 그 사이에도 우리 반 애들의 수다는 끝날 줄 몰랐다.
마침내 길고 긴 집합시간이 끝나고 우리 반은 한 명의 낙오도 없이 전부 기차에 오를 수 있었다. 난 태어나서 처음으로 기차를 타봤다. 촌놈이라고 비웃을지도 모르지만 난 기차가 매우 신기하고 낯설었다, 하지만 애들의 수다와 아름다운 바깥 풍경 덕에 이 낯선 상황은 금새 익숙해졌다. 여행의 시작은 우선 먹는 걸로 시작됐다. 난 여기서 다시 한번 화교의 특징을 확인할 수 있었다. 화교는 여행 시작 때 음식량이 현저히 감소한다. 흡사 전쟁터를 방불케 하는 이 상황에서, 나 역시 조금이라도 많은 양을 확보하기 위해 분주히 뛰어다녀야만 했고, 또한 조금이라도 다른 물품을 획득하기 위해 나의 물품을 희생하는 뼈아픈 쓰라림을 겪어야만 했고, 조금이나마 이익을 남기기 위해 엄청난 잔머리를 희생해야 했다. 이 치열한 전쟁(?)이 종결된 후 우리 일개 병단들은 전쟁 후유증에 시달려 잠시 휴식을 취해야만 했고, 약간의 유희(遊戱)를 통하여 피로를 풀었다. 이 즐거운 유희 시간에 모든 병사들의 눈을 끈 놀이는 우리들의 최고
참이신 선생님이 창조하신 클레오파트라라는 게임이었다. 이 게임은 매우 단순하지만 굉장히 어려운 게임이었다. 게임의 규칙은 매우 단순하다. 웃으면 죽는다! 규칙을 어길 때엔 칠 천만 한국인들이 한 번쯤 겪어본 무서운 형벌인 인디안 밥의 뜨거운 맛을 볼 것이다. 때문에 모든 참가자들은 완벽한 포커페이스를 유지해야만 했고, 나 역시 참가자들의 틈에 끼어 끈질긴 인내로서 버틴 결과, 마침내 톱으로까지 칭송 받게 되었다.
이 처절한(?) 생존경쟁을 끝으로 우리의 기차여행은 막을 내렸고, 목적지인 강촌에 도착한 후, 다음으로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지옥의 하이킹(?). 비록 산을 오른 것은 아니지만, 산 못지 않은 긴 거리의 길을 평균 10kg이 넘는 짐을 들고 걸어 보라! 그게 하이킹이 아니면 무엇이겠는가? 난 이 긴 거리를 앞에 두고 약간의 잔머리를 이용, 가벼워 보이는 짐과 교환했지만 누가 알았겠는가? 그 안에는 25kg이 넘는 돌덩이들이 담겨져 있었다는 걸. 어쨌든 난 그날 초겨울에 땀으로 샤워하는 행운을 겪을 수 있었다.
어쨌든 천신만고 끝에 숙소로 도착한 우리들은 우선 여장을 풀고 6시까지의 자유시간을 누릴 수 있었다. 만약 숙소에 자전거가 없었다면 그 당시 아무도 밖에 나가지 않았을 것이다.이런 추측을 한 이유는, 자전거의 존재는 우리에게 정말 엄청난 힘이 돼주었기 때문이다. 여러 가지 아름다운 풍경들을 스피디하게 볼 수 있었던 것도 다 자전거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점은 우리를 생각하여 자전거를 대여해주신 선생님께 감사드린다.
어쨌든 길지만 짧은 자유시간이 지나간 뒤 여행 전에 이미 배정해놓은 조대로, 우리는 각기 저녁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이 저녁식사 시간 역시 1차 음식쟁탈전 못지 않은 치열함을 과시했다. 1차가 막무가내식 돌진형 전투였다면, 이번 2차는 외교를 하여 타협과 협상을 앞세우는 두뇌 플레이였다. 외교관들의 아첨과 아부 속에 점차 상황은 좋아졌고, 점점 오가는 음식량도 활발해졌다. 이렇게 2차 전쟁도 성황리에 종결됐다.
우리는 밤을 준비하는 동안 잠깐의 자유시간을 보냈고, 이 시간을
이용하여 우리들은 놀이공원으로 직행했고 강촌에서 가장 재미있다는 놀이기구인 디스코를 타봤다. 이 놀이기구를 딱 한 단어로 표현하자면 이보다 좋은 말은 없을 것이다. 엽기!(왜 이 단어를 썼는지는 강촌에 가보면 알 것이다!) 다음 코스로 애들이 선택한 놀이기구는 바이킹, 참고로 내가 제일로 싫어하는 놀이기구다. 왜냐하면 난 고소공포증이 있기 때문에 바이킹 타는 걸 꺼려했다.
여하튼 공원 얘기는 여기서 끝내고 우리들은 다시 숙소로 돌아왔고, MT의 하이라이트인 캠프파이어를 시작했다. 모닥불이라는 것은 참으로 신기했다.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사람을 빨아들이는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이렇게 모닥불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 사이에 우리 병단들의 즐겁고도 아름다운 놀이는 서서히 마지막을 향해 갔고, 나의 인생에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인 불꽃놀이가 피날레를 장식했다. 난 난생처음 신에게 감사했다. 이 아름다운 순간을 볼 수 있게끔 해준 신에게...
캠프파이어가 끝나고 곧 이어 삼겹살 파티로 이어졌다. 3차 전쟁의 예고를 알리는 순간이었다. '모든 전쟁 중 가장 치열한 전쟁이 이번이 아니었을까?'하고 난 생각한다. 모두들 걸신이 들렸는지 정신없이 먹어 치우는 통에, 타협, 외교, 돌격, 같은 건 생각 할 겨를도 없었던 것이다. 이렇게 삼겹살 파티도 끝나고 대부분 친구들은 잠자리로 들어갔지만, 극소수의 친구들은 여전히 캠프파이어를 하던 자리에 남아 새벽까지 밤을 지새며 얘기를 했다. 무슨 얘기를 어떻게 했는지는 별로 얘기하고 싶지 않다. 왜냐하면 추억은 감출수록 빛이 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때 일은 될 수 있다면 그 친구들이랑 영원히 비밀로 간직하고 싶다. 이렇게 우리의 MT 첫날은 지나갔다.
10월 22일 일요일
전날에 잠을 늦게 잔 나는, 계속해서 꿈나라에서 빠져 나오기 싫었지만 아침을 기다리던 병졸들의 성화에 못 이겨 할 수 없이 아침을 준비하기 위해 일찍 일어 날 수밖에 없었다. 난 여기서 한국 옛 속담을 깨달을 수 있었다. 일찍 일어나는 새가 벌레를 더 많이 잡는다.여기서 이 속담이 왜 나오냐 하면? 우리 조가 가장 일찍 일어난
관계로 가장 먼저 아침을 끝냈고, 고로 다른 조들의 식사에 끼어 들 수 있는 기회가 많아짐으로, 더욱 많은 영양을 보충할 수 있는 기회가 온다는 것이었다. 설명은 이렇게 했지만 간략하게 정의하자면 남의 떡이 맛있어 보여 뺏어 먹는다라는 말이 아마 더 맞을 것이다. 아침 식사가 끝난 후 우리는 번지점프대로 향했다. 가장 학수고대하던 그 순간, 비록 내가 고소공포증이 있었지만 번지점프는 꼭 한번 뛰어보고 싶었다. 어쨌든 소원은 풀었다. 소원은 풀었지만 한가지 아쉬운 점이 있었다. 번지점프는 나까지 포함에 11명이 뛰었다, 그 중엔 우리 담임 선생님 J.G.H선생님도 있었지만 마지막까지 남아서 끝끝내 뛰지 못했다. 무척이나 아쉬웠지만 한편으로는 이런 동정심도 갔다. 나도 나이가 들면 저렇게 겁이 많아질까? 이런 반면에 K.S.H군의 뒤로 공중돌기 하면서 점프하던 그 모습, 정말이지 가관이었다.
이렇게 번지점프도 끝나고 드디어 마지막 자유시간에 들어갔고 정말이지 후회 없이 놀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돌아오는 길에는 입석으로 기차를 탔지만 우리들은 모두 아랑곳하지 않고 기차 바닥에 앉아 조용히 서울로 돌아왔다.
MT, 어찌 보면 대학생들한테나 어울리는 단어일수도 있다. 주제넘게 어른들을 흉내내본 철없는 어린아이들의 충동적인 행동, 하지만 흉내라도 정말이지 후회 없는 흉내였다. 이런 흉내라면 10번이고 100번이고 더 할 자신은 있지만, 흉내라고 불릴 수 있는 나이도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우리의 흉내내기 MT는 이렇게 짧게 끝났지만, 아직 실질적인 MT는 시작도 안 했다. 바로 우리 인생의 MT! 흉내내기 MT는 미련과 아쉬움이 많이 남았지만, 우리 인생의 MT는 결코 미련이 남지 않게 모두들 최선을 다해주길 바란다. 고3-4반 파이팅~!
한국에서 살면서
中 1-3 孫 元 美
저는 태어날 때부터 지금까지 한국에서 살아왔습니다. 물론 저의 고향이기도 하고요.
태어날 때부터 한국말을 많이 써서 그런지 지금은 한국어를 자기 나랏말처럼 아주 쉽게 사용하지요. 저의 한국 친구들은 저를 모두 부러워하지요. 중국말도 하고 한국말도 하니까요. 하지만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물론 한국에서 한국말을 할 줄 알아야 하는 건 기본이니까요. 저는 오히려 저의 나랏말보다 한국말을 주로 더 씁니다. 그게 저의 단점이기도 합니다.
저는 한국이란 나라를 아주 좋은 나라라고 생각합니다. 중국에서도 한국에 오면 한 마디씩 꼭 하고 갑니다. "여길 와서 정말 친절이 무엇인지 배웠다"고요. 비록 행동은 중국인처럼 하지만 따뜻한 마음씨는 한국인들처럼 행동해 보이고 싶습니다.
친구
中 1-2 許 慧 光
사람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얻을 수 있는 것은 친구일 것이다.
좋은 친구는 인생의 반을 얻는 것과도 같다고 한다. 그래서 나는 친구를 위해 나 스스로가 좋은 친구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나쁜 친구를 얻는 거면 오히려 인생의 반을 버리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난 친구란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보물이라고 생각한다.
난 지금껏 많은 친구를 사귀었다. 하지만 서로 믿고 또 의지가 될 수 있는 친구는 없었다. 난 아직 더 많은 친구를 사귀고 싶다. 나 또한 좋은 친구가 되어 줄 수 있게 많은 노력을 할 것이다. 나와 영원한 우정을 나눌 친구를 위. 해. 서...
안과(眼科)
中 1-2 柴 愛 莉
저는 눈이 나쁩니다. 그래서 안경을 쓰지요. 저는 며칠 전에 안과에 갔습니다. 전 어렸을 때부터 안과를 다녔습니다. 물론 그 때부터 눈이 안 좋았죠. 잘 생각은 안 나지만 3학년? 4학년? 그쯤에 눈 수술을 했습니다. 느낌이 안 났죠. 왜냐면 전 너무 무서워서 잘 때 했다고 합니다.
안과는 누가 먼저 만들었고 생겼을까요? 제 생각에는 안과는 참 좋은 곳이라고 생각합니다. 눈이 안 좋은 사람들을 도울 수 있고, 시력을 좋게 해줍니다. 눈은... 사람 몸에서 참 중요한 거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시각 장애인을 보고 도와주고 싶습니다. 세상을 볼 수 없다는 것이 얼마나 답답할까요? 전 부모님께 감사드립니다. 이렇게 건강하게 키워주셔서... 비록 조금은 눈이 안 좋지만...
앞으로도 제 눈을 잘 보호할 겁니다.
<쉬어 가는 페이지>
바보이야기
인터넷 자료
한 마을에 소년이 살았습니다. 그 소년은 마을 아이들한테서 바보라고 놀림을 당했습니다. 왜냐하면 마을 아이들이 마구 때려도 "히~" 하고 웃기만 했거든요. 그러자 아이들은 "바보라서 아픈 지도 모르나 보다"하며 놀렸습니다. 그럴 때면 바보 소년은 누런 이를 히죽 드러내고는 웃었습니다. 정말 안 아픈 것처럼요.
그 바보 소년은 어려서부터 혼자 자랐습니다. 7살 때 부모님이 일찍 돌아가셨거든요. 그 이후 마을 어른들이 불쌍하게 생각해서 먹을 거며 입을 거를 매일 갖다 주곤 했지요. 바보 소년에겐 친구도 없었습니다. 마을 아이들이 바보 소년만 보면 "와~ 바보다" 하며 마구 때리기만 할뿐이었지요. 바보 소년은 마을 아이들과 친구가 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눈에 보이기만 하면 때리는 아이들이 친구가 되어줄 리 없었습니다. 어쩌면 바보 소년은 일부러 아이들에게 맞는지도 모릅니다. 혼자서 외롭게 지내는 것보다 매일 맞더라도 아이들과 함께 있는 것이 더 좋았나 봅니다.
오늘도 바보 소년은 아이들에게 실컷 맞고 왔습니다. 오늘은 아이들에게 친구가 되어서 함께 놀자고 했다가 죽도록 맞기만 했습니다. 마을 아이들은, "어떻게 바보하고 놀아?" "너 죽고 싶어?" "이 더러운 게 누구 보러 친구하자는 거야?"하며 마구 때렸습니다. 그래도 바보 소년은 히죽 웃으며 "히~ 그래도 나랑 친구하자. 나랑 놀자" 라고 말을 했습니다. 그러자 아이들은 돌을 집어던지기 시작했습니다. 아무리 아무렇지도 않게 맞아 온 바보 소년이었지만 도망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픈 몸을 이끌고 소년이 간 곳은 마을에서 좀 떨어진 오두막집이었습니다. 집이라고는 하지만 문짝 하나 제대로 달리지도 않은 흉가였습니다. 하지만 이곳이 바보 소년의 안식처였지요. 아이들에게 맞아서 온몸이 멍투성이인 불쌍한 바보 소년을 맞아 준 것은 거적 몇 장과 다 떨어진 담요 한 장이 고작이었습니다. 아무도 없는 빈집, 너무나도 외로운 거처였지요. 바보 소년은 슬펐습니다. 아이들에게 맞아서가 아니라 매우 외로워서였지요. 바보 소년의 눈에선 슬픔이 흘러 내렸습니다. 바보 소년은 꿈속에서라도 아이들과 친구가 되어서 함께 노는 꿈을 꾸길 바라며 잠이 들었습니다.
다음날도 바보 소년은 놀고 있는 아이들에게로 다가갔습니다. 전날 그렇게 얻어맞은 걸 잊었나 봅니다. 바보 소년은 언제나처럼 누런 이가 드러나도록 히죽 웃으며 이렇게 말을 했습니다. "얘들아 나랑 놀자. 나랑 친구하자"하고 말이에요. 그러자 아이들은 "이 바보 자식이 아직 정신을 못 차렸네?" "오늘은 정신이 들도록 때려 주겠다." 하며 또 마구 때리기 시작했습
니다. 불쌍한 바보 소년은 맞으면서도 친구가 되어서 함께 놀아 달라는 말만 되풀이했습니다. 그러자 한 아이가 무슨 생각이 있는지 때리는 아이들을 말리면서 이렇게 말을 했습니다. "좋아. 너랑 친구가 되어서 함께 놀아줄 게. 단, 조건이 있어. 내가 시키는 대로 하는 거야. 어때?? 싫으면 관두고." 그 말을 들은 바보 소년은 날 듯이 기뻤습니다. 바보 소년은 친구들이 생길 수 있다는 말에 뭐든지 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좋아. 뭐든지 시켜 줘." 바보 소년은 그 아이의 마음이 변할까봐 즉시 대답을 했습니다. 그러자 그 아인 "그럼 내일 아침에 여기로 다시 나와"하는 말을 내뱉고 아이들과 가버렸습니다. 바보 소년은 빨리 집으로 뛰어 갔습니다. 일찍 집에 가서 잠을 자야 빨리 내일이 올 수 있으니까요. 소년은 밤새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친구가 생긴다는 설렘 때문이었지요. 소년은 새벽까지 친구들과 노는 상상을 하다가 겨우 잠이 들었습니다.
소년은 다음날 늦게 일어났습니다. 바보 소년은 문득 아이들과 했던 약속이 생각났습니다. 재빨리 전날 그 약속 장소로 뛰어갔습니다. 아이들은 이미 와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전날 소년에게 조건을 말한 아이가 소년의 뺨을 때리며, "이 바보 자식아 왜 이렇게 늦게 와? 혼나고 싶어?"하며 화를 냈습니다. 그러자 바보 소년은 항상 그래 왔던 것처럼 히죽 웃으며,"히~ 미안해 한 번만 용서해줘라" 하며 사과를 했습니다. 바보 소년의 웃음을 본 그 아인 더 때리고 싶은 마음이 없어졌는지 "따라와!" 하며 아이들과 마을로 내려갔습니다. 아이들은 바보 소년을 마을 구석진 곳의 한 헛간으로 데려갔습니다. "오늘 저녁 때 마을 아저씨들이 여길 불태운다고 했어. 네가 헛간 안에서 헛간이 다 탈 때까지 나오지 않으면 친구가 되어 줄 게"하고 그 아이가 말을 했습니다. 그 헛간은 공동 헛간이었는데 너무 오래 돼서 마을 사람들이 불을 태우고 새로 지으려고 했습니다. 바보 소년은 꼭 하겠다고 말을 하곤 헛간으로 들어갔습니다. 바보 소년은 헛간의 한 구석으로 들어가서 웅크렸습니다.
이윽고 저녁이 되었습니다. 헛간 주위에는 불타는 헛간을 구경하려고 마을 사람들이 많이 몰렸습니다. 그 중에는 불타는 헛간에서 뛰어나올 바보 소년을 기다리는 아이들도 끼어 있었습니다. 마을 어른들은 헛간 곳곳에 불을 붙이기 시작했습니다. 아이들은 "바보자식 이제 곧 뛰쳐나오겠지" "뜨거워서 어쩔 줄 모르는 꼴 좀 보자" "나오기만 해봐라. 이번에는 단단히 혼을 내주겠어"하며 각자 바보 소년을 골려줄 생각만 했습니다. 얼마 되지 않아 헛간은 반쯤 타 들어 갔습니다. 바보 소년이 도망 나올 거라 생각했던 아이들은 바보 소년이 나오질 않자 걱정이 되기 시작했습니다. "이 바보가 왜 안 나오지? 벌써 도망갔나?" 불길은 더 거세졌지만 바보 소년은 나오질 않았습니다. 한편, 헛간 안에 숨어있던 바보 소년은 헛간 안
에서 자기도 모르게 잠이 들었습니다. 소년이 잠에서 깨었을 땐 이미 헛간 안은 불바다가 되었지요. 바보 소년은 무서워서 도망가려 했지만 순간 아이들의 말이 떠올랐습니다. "이 헛간이 다 탈 때까지 견디면 너랑 친구 해 줄 게." 이 말이 계속 귓속에서 맴돌았습니다. 불바다는 점점 소년에게로 다가왔고 불파도는 소년의 몸에 닿을 듯 했습니다. 소년은 무서웠지만 친구가 생긴다는 생각에 계속 웅크리고 있었습니다. 밖에서 바보 소년이 도망 나오길 기다리던 아이들은 겁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저 바보가 정말 견디는 거 아냐?" "벌써 죽은 건가?" 아이들은 불안하고 두려웠습니다. 그래서 마을 어른들에게 헛간에 바보 소년이 있다고 말을 했습니다. 처음에는 아이들이 장난을 하려고 거짓말을 한 줄 알고 믿질 않았습니다. 하지만 아이들이 울면서 전날 바보 소년과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자 그제서야 아이들의 말이 거짓이 아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어른들은 불을 끄기 시작했습니다. 재빨리 물을 길어다 불길을 잡으려 했지만 쉽지 않았습니다. 얼마 후 헛간이 거의 다 타버려서 불길이 약해지다가 어른들의 노력으로 불길은 잡을 수 있었습니다. 어른들은 바보 소년이 틀림없이 죽었을 거라 생각하고 시체를 찾기 시작했습니다. 얼마 후 헛간 구석에서 시커먼 것이 발견되었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바보 소년이었습니다. 웅크리고 꿈적도 하지 않았지만 아직 살아 있었습니다. 하지만 화상이 너무 심해 곧 죽을 것 같았습니다. 지금까지 살아있는 것도 기적이었습니다. 어른들은 바보 소년을 어떻게 도와주어야 할지 몰랐습니다. 어쩔 줄을 몰라하는 얼른들 사이를 헤집고 아이들이 바보 소년 곁으로 다가왔습니다. 바보 소년에게 조건을 내걸었던 아이가 울면서, "이 바보야 그런다고 정말 계속 있으면 어떻게?"하고 말했습니다. 그제서야 바보 소년은 고개를 들고 주위를 살피더니 마을 사람들이 모여 있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자기 곁에는 항상 친구가 되고 싶었던 아이들도 있다는 걸 알았지요. 바보 소년은 항상 그래 왔던 것처럼 히죽 웃으며 말을 했지만 힘이 없었습니다.
"히~나.....야...약속....지켰....지?... 이제 ......우......우리 ..치......친구 맞지?"
"그래 우린 인제 친구야. 이 바보야" 아이들은 울면서 말을 했지요.
"그........럼...이제 ...나랑.....노....놀아 주....주.....줄................."
바보 소년은 끝내 말을 잊지 못 하고 그대로 눈을 감았습니다. 하지만 바보 소년의 입가에는 밝은 미소가 남아 있었습니다. 아마도 바보 소년은 하늘 나라에서 새 친구들과 재미있게 놀고 있나 봅니다.
지금 친구들한테 메일이나 전화하세요... 제 주위에 친구가 있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지...... 이 글을 통해서 조금이라도 느꼈으면 좋겠네요.
내 동생
中 2-2 欒 與 菁
내 동생은 아주 어리다. 지금 겨우 한 살이다. 내 동생은 2000년 3월 15일에 이 세상 밖으로 나왔다.
난 내 동생이 태어난 순간 너무 싫었다. 왜냐면 동생이 태어나면 엄마, 아빠가 동생만 예뻐하고 동생만 아껴주실 줄 알았다. 하지만 내가 생각한 반대로 엄마, 아빠는 나도 동생도 모두 예뻐해 주시고 사랑해 주셨다.
난 동생을 싫어한다고 했지만, 지금은 나도 모르게 동생을 아주 사랑한다. 나는 동생하고 인연이 있는 것 같다. 왜냐면 나랑 동생은 같은 용띠고 하는 행동들이 모두 똑같다. 동생이 한 살밖에 안 됐지만 내가 생각하기에 똑똑한 거 같다. 내 동생이라서 그런가?
동생이 커갈수록 먹는 음식들이 점점 많아진다. 처음엔 우유만 먹다가 지금은 우유, 이유식, 밥 등등을 먹는다. 그리고 지금은 자기 혼자서 무엇을 하려고 한다. 동생은 행동 하나 하나가 나에겐 사랑스럽고 귀엽기만 하다.
마지막으로 동생이랑 영원히 사이좋은 남매로 남았으면 좋겠다.
내 동생
中 2-2 鄒 美 慧
저희 집에는 저 밑으로 동생이 둘이 있습니다. 하나는 여동생, 또 하나는 남동생. 여동생과 남동생은 너무너무 귀여워요. 울고 떼쓸 때만 빼고는......
여동생은 지금 4학년이고, 남동생은 3학년이에요. 여동생은 어렸을 때 참 착했어요. 밥 조금 느리게 먹는 것만 빼고는... 지금 커서
는 미진이(여동생)가 꾀가 들어서 공부하기가 싫으면 내 방에 와서는 이상한 것만 물어보고 시간을 때웁니다. 남동생도 똑같습니다. 다른 점이 있다면 남자라서 그런지 더 까부는 것이죠.
저는 동생들이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내 말 좀 들어줬으면 합니다. 저는 동행들을 하늘보다 땅보다 더 사랑합니다. 아니, 끝이 없는 숫자만큼보다도 더 일지도......
내 동생
中 2-3 賀 常 煢
나는 남동생이 한 명 있다. 뚱뚱한 몸과 작은 손과 발이 그 아이의 특징이다. 살이 쪘다보니 어쩔 땐 너무 둔해 보인다. 하지만 그래서 더욱 귀엽기도 하다.
동생과 나, 서로 너무 많은 영향을 준다. 게임을 좋아하는 동생, 종일 게임만 하다가 나마저 게임을 너무 좋아하게 됐고... 음악을 너무 사랑하는 나, 날마다 음악 듣고 노래 부르고 피아노 치고... 그러다 보니 동생도 음악에 대해 좀 더 많이 알고 좋아하게 됐다.
그리고 동생은 나의 가장 좋은 상담원이기도 하다. 비록 대답은 안 해주지만 걔한테 말을 하고 나면 너무 시원하다.
또 동생은 나이가 열 한 살이나 됐으면서도 항상 나랑 놀자고 한다. 그래서 걔랑 팽이 돌리기, 딱지치기, 컴퓨터 게임... 등을 하고 나면 나의 어린 시절도 조금씩 생각이 나고, 동생과도 더욱 친해진다.
동생... 나에겐 상담원, 선생님도 돼주는 동생, 비록 말은 잘 안 듣고 개구쟁이에 말썽꾸러기인 내 동생, 그래도 나는 내 동생이 너무 좋다.
내 언니
中 2-1 劉 靑 雲
일상생활을 함께 보내는 사람...... 그 사람은 바로 나의 언니이다.
나와 언니는 어려서부터 성격이 맞지 않아서 티격태격 댈 때가 많았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몇 분만 지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다시 사이좋은 언니 동생으로 돌아간다.
언니는 누구보다도 나를 잘 이해해준다(물론 부모님은 제외). 때로는 나의 잘못에도 눈감아주는 나의 언니, 내가 힘들어할 때 언제나 내 옆에서 힘이 되어주는 언니, 그래서 나는 그런 언니가 있어 마음이 뿌듯하고 기분이 좋다.
나의 언니.... 어쩔 때는 정말 바보인 것 같다. 무슨 일을 하든 나를 위해서 모든 걸 희생하면서 산다. 다른 언니들 같으면 자기자신을 위해서 살 때도 있을 텐데...... 그치만 언니는 항상 나를 먼저 생각해주고 나의 의견을 존중해 준다. 그런 언니를 볼 때마다 나는 언제나 반성한다.
이제부터라도 언니에게 정말 좋은 동생이 되고 싶다.
장애인을 무시하는 모든 분들에게
中 2-3 賀 常 煢
우리는 생활하면서 많은 장애인들을 접할 수 있습니다. 그 중 한 분이 저희 큰아버지입니다. 비록 지금은 이 세상에 안 계시지만... 그래서 더욱 이 말을 하고 싶습니다.
전 아주 어릴 적, 어쩌면 태어나서부터 큰아버지와 함께 살았습니다. 큰아버지께서는 세 살 때 소아마비로 한 쪽 다리가 불편하심에도 불구하고 바쁜 엄마, 아빠 대신 저를 돌보아 주셨습니다. 초등하
교에서 처음으로 맞는 어린이날 행사도 큰아버지와 함께 가고, 준비물을 잊고 갔을 때 학교까지 가져다주신 것도 다 저희 큰아버지였습니다.
그런데 저는 큰아버지와 같이 길을 갈 때 사람들의 이상한 눈초리가 너무 싫었습니다. 물론 좋은 사람들도 있었지만 대부분이......
왜 사람들은 장애인과 비장애인을 비교하는 거죠? 장애인, 그들도 한 때는 우리와 같았습니다. 그들은 장애인이 되고 싶어서 된 게 아니라 그저 운이 나빴을 뿐인데, 왜 일생동안 차별을 받고 살아야 합니까?
사실 저도 저희 큰아버지께 잘 해드리지 못했습니다. 큰아버지가 저와 제 동생을 가장 예뻐하는 것을 알면서도 잘 해드리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지금 이 글을 씁니다.
큰아버지께서 돌아가실 때, 대부분의 사람들이 "아이고... 그 몸으로 오래 살면 고생만 하지... 차리리 잘 된 일인지도 몰라..." 하고 말했습니다 저는 그 말도 너무 싫었습니다. 그리고 아직도 이해를 못하겠어요. 장애인은 왜 차별 대우를 받아야 하는지...
그런데 제가 엄마와 고모께서 하신 말씀 중에, 저희 큰아버지는 천사였다는 소릴 들었어요. 그래서 무슨 뜻인지 여쭈었더니 어른만 아는 비밀이라고 하셨어요. 저는 그래서 혼자 열심히 생각해 보았는데 아무래도 큰아버지께서 생전에 너무 좋은 일을 많이 했다는 뜻일 것 같아요. 솔직히 그건 아주 틀린 말도 아니거든요...
그래서 저는 큰아버지께서 우리한테 잘 해주신 걸 늦게나마 조금이라도 보답하는 길은 지금 이 글을 쓰는 방법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마지막으로 여러분! 장애인을 단지 몸이 불편해서, 외모가 우리와 다르다고 해서 생각까지, 그 내면까지 다르다고 판단하지 맙시다. 오히려 그들이 우리보다 나을지도 몰라요.
그리고 장애인들을 위해 봉사활동을 하시는 분들께는 정말 존경스럽고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어요.
우리 高3-2班
高 3-2 金 梨 智
우리 고3-2반, 예쁜 노랑 커튼과 잘 정돈된 책상, 애들이 하나하나 생각하고 고민하며 만든 교실이다. 이 교실에선 우리의 추억이 하나하나 만들어진다......
우리 반 친구들은 모두 밝고 명랑하다. 몇몇 선생님들께선 우리 반 남자애들은 말이 없다고 하시는데, 그건 전혀 아니다...... 아직 어려서 철부지인 친구, 잠을 못 자서 자느라 조용한 친구, 쑥스러워서 얼굴이 빨개져 도저히 말을 못하는 친구들...... 그러나, 애들끼리 있으면 말만 잘한다...... 음~ 그리고 우리 반에 예전에 내가 싫어하던 친구가 있었다. 그건 다름 아닌 반장...... 그땐 말하는 것도 거만하고 한때 때려주고 싶었지만, 지금은 조금 알고 나니, 착한 것 같다. 거만한 건 여전하지만......
우리 반 여자 애들은 모두 착하다. 우리 반이라서라기 보다는 한 명 한 명 알다보면 모두 예쁘고(?) 착하다...... 예를 들어 정말 온몸으로 웃겨주는 친구, 만화를 잘 그리는 친구, 내가 말이 많아서 힘들어하는 내 짝궁...... 장래 축구선수(?)를 꿈꾸는 멋있는 친구, 또, 예전부터 알아온 소중한 친구 등..... 모두 소중한 친구들이다. 그리고, 우리 담임 선생님, 때론 화도 잘 내시고, 잘 삐지시지만, 늘 우리 반을 위해서 힘써주시고, 이해해주신다. 이런 화목한~ 교실에서 생활하는 나는 참 행복하다.
마지막으로 이제 얼마 안 남은 고3 생활, 늘 지금처럼 재밌고 화목한 우리 반 애들과 좋은 추억 만들면서 재밌게, 즐겁게 지내고 싶다.
<짧은 戱曲>
기도
高 3-2 王 秀 仁
[등장 인물]
이지섭(30세) - 평범한 성격의 회사원
남자(40대 중반)
[때]
2000년 겨울
[곳]
서울의 한 지하철 안
[줄거리]
주인공 지섭은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탈출조차도 꿈꾸지 못한 채 자신의 숨막히는 현실을 수긍하면서 살아간다. 그러던 어느 날 지섭은 회사에서 야근을 하게 된다. 야근을 끝내고 새벽이 돼서야 집으로 돌아온 지섭은 얼마 쉬지도 못한 채 다시 회사로 향하는데......
(이 글에서 주인공이 하는 모든 대사는 독백 형식임.)
(오전 8시 반, 지섭이 지하철을 탄다.)
출근 시간인데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얼마 보이지 않는다. 지섭은 쉽게 자리를 차지할 수 있었다.
지섭 : (잠시라도 수면을 취해 두기 위해서 눈을 감는다.)
젠장! 피곤해서 돌아가시겠군! (지섭은 그대로 잠이 든다.)
지하철은 계속 달리다 정류장에 멈춰 선다. 문이 열리자 옷차림새가 깨끗하지 못한 40대 중반쯤의 한 남자가 탑승했다. 그리고 그
남자는 자신이 탑승한 칸의 중간 지점으로 발걸음을 옮긴 다음 멈춰 선다.
남자 : (큰소리로) 여러분! 저에게는 다섯 살 짜리 딸이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 제 딸은 대학병원 중환자실에 누워 있습니다. 언제 죽을 지도 모르는 불치병을 앓고 있습니다...
남자의 목소리가 어찌나 크던지 지섭이 잠에서 깬다. 지섭은 속으로 계속 중얼거린다.
지섭 : (중얼거리며) 그럼 그렇지∼ 어쩐지 오늘 아침은 편하게 가 는가 했네∼ 빌어먹을∼ 아무리 돈이 궁해도 그렇지∼ 딸까 지 팔아먹는 사람이 있으니∼ 이 세상이 이 지경이지∼
(지섭은 짜증을 내며, 주위에 있는 사람들의 표정을 살피기 시작했다.)
주위 사람들의 표정이 모두 아랑곳하지 않는다는 듯이 무표정이다.
지섭 : (주머니를 뒤진다) 그래, 까짓∼ 착한 일 한 번 해주지∼
그 남자는 계속 말을 잇는다.
남자 : 저는 언젠가 책에서 이런 글을 읽었습니다. 아무리 어려운 일이 있어도 많은 사람들이 함께 같은 마음으로 기도해 준 다면 그 일은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그래서 저는 지금
기도를 해 주십사 부탁을 드리러 많은 곳을 돌아다니고 있습니다. 여러분∼ 부디 제 딸을 위해서 기도해 주십시 오∼ 제 딸의 이름은 "소영"입니다.
지섭 : (손에 쥔 돈을 숨긴다. 부끄러워서 어쩔 줄을 모른다.)
이런∼
지섭은 슬그머니 주위의 사람들에게 시선을 옮긴다. 사람들이 하나 둘 눈을 감는 것이 보인다.
지섭 : (미소를 지으며) 살다 보니 나 같은 놈도 기도를 할 때가 다 있군∼
지섭은 두 손을 모으고 눈을 감는다.
<영화감상문>
<잔다르크>를 보고
高 3-2 潘 忠 熙
[배경]
영국과 프랑스 사이의 100년 전쟁(1337-1453)
이 100년 전쟁은 솔직히 100년이란 세월 동안 계속해서 전쟁을 치른 것은 아니다. 그 와중에도 조금씩 쉬고 조약을 맺으면서 국권을 강화시키고 전쟁은 조금씩 치렀다고 전해진다.
영국과 프랑스의 100년 전쟁의 원인은 프랑스가 자신의 식민지인 플랑드르(벨기에와 네덜란드)에게 과다한 세금을 요구하자 그들은 영국에 충성을 맹세해 돈으로 영국군을 사서 프랑스와 전쟁을 일으킨 것이다. 한때 파리까지 점령해 많은 영토를 확보했으나, 잔다르크에 의해 프랑스군이 영국군을 몰아내자, 이를 계기로 100년의 사투에서 프랑스가 승리를 거두었고, 그 후 영국은 왕권 다툼으로 장미전쟁(1455-1485)이 일어난다. 장미전쟁은 요크家와 랭카스터家 사이에 일어난 전쟁이다. 이 전쟁으로 인하여 영국은 귀족층이 멸망하고 왕권이 강해진다고 한다.
[당시 상황]
1420년 영국과 프랑스가 체결한 트로이 조약에 따라 프랑스 샤를6세가 세상을 떠나자, 아직 갓난아기인 영국인 헨리6세가 프랑스의 왕위를 차지하게 된다.
하지만 프랑스의 황태자 샤를7세가 영국의 젖먹이에게 순순히 프랑스를 내주려하지 않자, 영국군은 프랑스를 침공하여 꽁비에뉴, 렝스, 파리를 함락시킨다. 그리고 영국군은 그 기세를 몰고 르와르강에 이르자 샤를7세는 쉬농으로 피신한다. 절대절명의 순간 그때 나타난 것이 잔다르크였다. 초반에 이 전쟁은 영국군의 우세로 프랑스영토의 대다수를 빼앗아 영국의 승리로 끝날 것 같았다. 영국은 그 기세로 프랑스 통일을 선포하나 가장 중요한 오를레앙 전투에서 지고 만다. 프랑스는 오를레앙 전쟁에서 승리하여 위축되었던 분위기
를 다시 살려 빨리 침공을 하지만 황제의 경계로 원군이 오지 않아 잔다르크는 영국군에게 패하게 된다. 그리고 당시 전쟁은 대부분이 신의 이름으로 전쟁을 했다고 한다.
[인물 잔다르크]
그는 어려서부터 신의 계시를 받았다고 한다. 하늘에서 한 줄기 광채가 내려와 그에게 속삭였고, 천사와 춤을 추고 자신의 옆에 한 자루의 칼이 놓여 있었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그가 어렸을 때 살던 동네에 영국군이 쳐들어와 마을을 불태우고 난동을 피운다. 그 와중에 언니는 자기를 숨기고 대신 영국군에게 잡혀 죽임을 당하고, 그 것도 모자라 강간까지 당하게 된다. 그 후 그는 17세까지 성장하는 동안 사람들과 친하게 지낸 적이 없고 항상 주위를 경계하며, 황태자를 만날 때까지는 아무에게도 자신이 신의 메신저라는 말을 안 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는 나라가 위태로운 것을 알고 황태자 샤를7세를 찾아가지만 문전박대를 받다가 나중에는 황태자를 만나 신의 계시를 전한다. 그리고 그는 곧 바로 반년간 교전중인 오를레앙으로 달려가 전쟁을 치른다. 하지만 처음으로 도착한 오를레앙에서 장군들은 그녀를 여자라는 이유로 그녀를 무시한다. 하지만 그녀는 마침내 병사들과 장군들로 하여금 신뢰와 믿음을 주어 침체된 프랑스군을 다시 일으켜 전쟁에서 승리한다. 그 와중에 영국군에게 왼쪽 가슴에 화살을 맞아 잠시 의식을 잃고 기절한다. 그러나 그는 기적적으로 살아나서 다음날 다시 전쟁을 치러 영국군을 격파하여 성을 빼앗는다. 다시 영국군은 성을 빼앗기 위해 공격해오지만 잔다르크는 그들을 대화로써 돌려보내고 피해를 막았다. 이 승리를 들은 샤를7세는 다시 프랑스의 왕으로 등극한다. 하지만 잔다르크는 이후에도 파리를 함락시키기 위해 출전하지만 샤를7세가 지원군을 보내 주지 않으려고 한다. 이유는 그의 신하들이 반대를 주장하여 영국과 화해할 조짐이 보이기에 전쟁을 미루었던 것이다. 지원군이 제때 오지 않아 잔다르크는 결국 영국군에게 잡혀 교황청으로 넘어가 재판을 받는다. 교황청에서도 그녀의 재판을 꺼려하고 다시 영국군에게
그녀를 넘겨 그녀는 결국 1431년 5월 30일 화형에 처해진다. 그때가 그의 나이 19세였다. 그 후 500년이란 시간이 지나서야 로마 교황청은 그녀를 성인으로 인정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녀가 왜 그렇게 전쟁을 하려 했는지는 모른다. 아마 일부의 예측으로는 지난날의 충격에 의해 영국군에 대한 복수라고 판단 지을 수 있다. 하지만 그는 역시 프랑스의 국민영웅이자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장본인이며 위대한 여성 중에 한 사람이다.
[영화 평론]
뤽 베송은 이 영화에서 잔다르크의 무용담이 아니라 신의 존재와 그 신에 대한 맹목성을 비판하는 데 집중했다. 그래서 영화에는 화려한 액션과 종교적 이야기를 하나로 묶어 단조롭지 않으며 화려하지도 않게 영화를 전개시켰다.
이 영화의 주인공을 맡은 프랑스의 새별로까지 불리는 밀라 요보비치는 같이 출연한 존 말코비치나 헐리우드의 대 배우인 더스틴 호프만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만큼 뛰어난 연기력을 보였다. 이 영화로 인해 그는 프랑스를 이끌어갈 대 배우로 성장한 것이다.
잔다르크는 크게 두 가지 축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첫 번째는 백년전쟁 때 잔다르크의 위대한 영웅담, 두 번째는 신의 메신저라고 자칭한 잔다르크의 인간적인 부분으로 초점이 맞춰진다.
하지만 영화는 끝가지 신의 존재가 있다는 것인지 없다는 것인지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결론은 관객들이 풀어야만할 숙제인 것 같다.
또한 지금까지 여러 편의 잔다르크를 이야기한 영화가 출시되었지만 모두 그 나름대로의 이야기가 전개되어 있다. 하지만 鹂 베송의 잔다르크는 그들과 다르게 서사극의 영웅담을 이야기한다.
[감상문]
잔다르크는 세계적으로도 잘 알려진 인물이다. 하지만 그 역시 각자 다른 의견으로 둘러싸인 인물. 예를 들어 기독교에서는 그를 성
녀로 숭배하며 신의 메신저, 신의 예언자라고 하며, 또한 프랑스를 구하기 위해온 신의 대리인이라고도 한다. 다른 한쪽에서는 이단자라는 평가도 받는다.
중세유럽의 수많은 전쟁사를 보면 그 중에서도 가장 돋보인 것은 역시 영국과 프랑스의 100년에 걸친 전쟁일 것이다. 그 100년 전쟁 사이에서도 가장 위대한 전쟁이라 손꼽을 수 있는 건 단연 잔다르크가 이끈 프랑스군과 영국군의 오를레앙 전투이다. 그 전투는 프랑스군이 모두 하나로 뭉쳐서 이루어낸 값진 승리이다.
이 승리는 잔다르크의 힘이라고만 볼 수는 없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 대목을 가지고 신의 계시라고 한다. 그는 오를레앙으로 가기 전에 말타기나 검술도 하지 못 했다. 그런 그녀가 전장에서 할 수 있었던 건 그저 군사의 사기나 용기를 북돋아 주는 역할뿐이었다. 하지만 그토록 사람들의 이목이 잔다르크에게 집중될 수밖에 없었던 것은 프랑스에는 한 소녀가 침체된 나라를 궁지에서 탈출시킬 거라는 전설이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이 영화로 인하여 그 당시 프랑스의 문화와 귀족들의 생활을 엿볼 수가 있었으며, 당시의 부패된 정치권을 너무도 잘 비쳐주었던 작품이라고 생각된다. 이러한 작품을 통해 현 정치권의 부패성 또한 다시금 되새기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잔다르크>를 보고...
高 3-3 王 紀 敏
[영화 줄거리]
유럽의 가장 처절했던 전쟁이라 일컫는 백년전쟁(1338-1453). 프랑스는 영토의 반을 잃고 트로아 조약(샤를 6세 이후 프랑스의 왕위는 영국 왕에게 귀속된다)으로 왕권마저 빼앗기게 된다. 그러나 황태자(후에 샤를 7세가 됨)는 이에 굴복하지 않고 대관식을 거행하려 하나 렝스(이곳에서 왕관을 쓰지 않으면 왕으로 인정받지 못한다. 당시에는 교황으로부터 인정받아야 왕이 되었다.)로 가는 길 마저 영국군에게 점령당한다.
13세의 어린 소녀 잔은 매일 기도하며 신과 여러 가지 방법으로 대화하고 있었다. 어느 날 영국군에게 자기 대신 잔인하게 죽어간 언니의 참혹한 광경을 목격한 잔은 성당에서 영국군을 결코 용서하지 않으리라 다짐하고 하나님과 하나 되기 위해 선혈(포도주)을 마신다.
몇 년 후, 황태자는 국민들 사이에 신의 메신저라고 불리며 새로운 희망이 된 잔에게 군대를 주면 조국을 되찾겠다는 편지를 받는다. 그러나 황태자와 측근들은 당시 16세의 어린 잔을 믿을 수 없어 다른 이에게 왕 행세를 하도록 명령한다. 잔은 그의 속임수를 알아차리고 황태자를 맞춘 후 군대를 받아내는데 성공한다.
첫 번째 전투 오를 레앙으로 가는 문을 지키고 있는 난공불락의 요새. "나를 사랑하는 군사들이여, 이 밤이 오기 전에 우리는 승리한다." 깃발을 들고 적진을 향하는 잔을 보고 지쳐있는 프랑스군은 사기가 최고조에 올라 대 승리를 얻어낸다. 그러나 잔은 전쟁터에 널려진 시체들을 바라보다 피 흘리는 신의 환상을 보고 괴로워한다.
그리고 잔은 몇 번의 전투를 승리로 이끈 후 혼자 적의 진영 앞으로 나아가 적에게 이야기한다. "헨리 왕에게 전한다. 이것은 명령이다. 이 들판에 묻히고 싶지 않다면 물러가라" 그리고 기적적으로 영국군은 철수하고 오를 레앙을 탈환한다.
황태자는 마침내 렝스 대성당 대관식을 올리고 샤를 7세 즉위하
여 다시 프랑스는 왕권을 되찾지만 아직 영국군에게 점령당한 많은 땅에서 굶어 죽어 가는 백성들은 처절한 편지를 잔에게 보내고 있었다. 그들을 구해야만 하는 잔과 전쟁을 계속할 이유가 없어진 샤를7세. 결국 왕은 잔이 껄끄럽기만 하고 잔을 영국군에게 넘기게 된다.
그런데 신과 만났다는 잔다르크의 주장으로 인해 그녀는 종교재판에서 이단, 마녀로 몰리게 되었다. 교회 성직자의 중개를 거치지 않고 직접 신적 존재와 접촉했다는 것이 문제가 되었으나, 잔다르크는 순수한 신앙심으로 신념을 굽히지 않았고, 결국 교회는 그녀를 이단으로 인정했다. 그 결과 잔다르크는 노르망디의 루앙 광장에서 활활 타오르는 불꽃 속에서 짧은 인생을 마감하게 되었다.
[역사 기록상의 잔다르크]
백년전쟁을 승리로 이끈 프랑스의 국민영웅. 프랑스 동부의 로렌과 샹파뉴 사이에 있는 농촌에서 태어났다. 패전의 프랑스를 구하는 사명을 신탁(신에게 부여) 받았다고 미고, 1429년 왕위 계승권을 빼앗긴 샤를7세를 도와 오를 레앙을 해방시키고, 프랑스의 국왕 승계를 실현시켰다. 그러나 1430년 콩피에뉴에서 영국군에게 붙잡혀, 1431년 이단자로서 화형 당하였다. 그러나 1456년 명예가 회복되었고, 그 후 많은 문학작품의 주제가 되었으며, 19세기 이후에는 구국의 영웅으로 칭송되었다. 1920년 카톨릭의 성녀가 되었다.
[영화를 보고 난 후 느낀 점들]
1. 영화 속 중세 유럽의 특징
1) 신 중심의 사회 (교회 중심의 사회)
교황의 권력이 왕보다 강해, 왕위 계승도 마음대로 못하고, 종교재판에서도 신과의 접촉은 마녀의 증거가 될 정도로 교회의 권위가 막강하였다.
2) 기사 제도
전쟁에서의 기사 제도
3) 남녀 차별의 사회
잔다르크가 남자의 옷을 입었다는 이유만으로 마녀라 지탄을 받았다.
2. 영화를 보고 난 후의 느낌
무신론자인 저로서는 교회 중심인 중세유럽의 사교관념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리고 저는 단순히 신의 계시 때문에 잔다르크가 전쟁터에 나가 영국과 싸웠다고 여기지 않습니다. 영화에서 잔다르크가 보는 앞에서 친언니가 영국군에게 무참히 살해를 당했습니다. 잔다르크는 성녀(聖女)가 아닌 한 사람의 인간으로써 그녀의 내부에 응어리진 영국군에 대한 원한이 앞선 듯 합니다.
제가 보는 잔다르크는... 성녀도 마녀도 아닌 그저 평범한 인간일 뿐입니다. 거기다 그녀가 신의 계시를 받든 사자였다고 한 주장을 생각할 때에는 의문이 있지만....
첫째, 그녀가 진정으로 하느님이 선택한 사자(使者)였다면 어째서 신에게 버림받았는가?
---> 신의 사명으로 순교자는 있게 마련!
둘째, 신께서 선택한 사자(使者)가 왜 하필이면 힘도 권력도 없는 여성이었고, 더욱이 자신의 이름조차 쓸 줄 모르는 평민이었는가.. 에도 의문이 생깁니다.
---> 원래 신은 약하고 보잘 것 없는 자를 통해 신의 뜻을 나타내심!
---> 그러면 더욱 감동적이니까...
마지막으로 어째서 신께서는 프랑스의 편을 들어주시고 영국은 전쟁에 지게 되었는가?
---> 원래 영국이 프랑스 영토를 침범하여 비롯된 전쟁이므로 원점으로 돌아가야 함!
아무튼 중세유럽과 관련된 숙제라 잔다르크를 보긴 했지만 어린 나이에 자기 나라와 국민을 위해 싸우다가 억울하게 죽어간 그 소녀가 불쌍하고 멋있어 보였습니다.
<써클 보고서 - 訪古社團>
경복궁을 다녀와서
高 1-2 劉 玉 萍, 王 中 君
경복궁은 조선이라는 나라의 왕궁이었던 곳이다. 그 곳은 넓고 예쁜 왕궁으로 공기도 좋은 곳이었다. 그런데 그곳에서 생활하면 불편할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왜냐하면 급해서 화장실을 가려해도 10분 이상은 걸릴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 시대 사람들의 생활은 좀 불편할 것 같았지만, 그래도 그 시대에 맞게 편안한 생활을 하고 있었던 것 같다. 비가 올 땐 비를 피하기 위해서 만들어 놓은 走廊이 있었고, 임금님이 정사를 돌보던 勤政殿이 자리잡고 있어, 文·武 大官들이 한 곳에 모여 나라의 정치를 논의하였다. 뒤로 돌아가면 왕비의 숙소가 있는데, 그 뒤뜰을 아미산이라고 한다. 그 아미산은 인공으로 만들어 놓은 정원으로 아담하면서도 아름다웠다.
그 곳에서 가장 인상깊었던 것은 화려했던 굴뚝이었다. 그 굴뚝은 보통 굴뚝과 달리 화려한 무늬의 장식과 그림들이 그려져 있었다. 내가 볼 땐 옛 사람들은 조그만 것에도 멋스러움을 강조했던 것 같다. 사소하게 지나칠 수도 있는 곳에도 장식을 하는 것을 보며 정말 우아한 사람들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경복궁을 더 걷다보면 慶會樓라는 곳이 있는데, 이 곳은 宴會를 베풀던 곳이라고 한다. 지금도 많은 관광객들이 찾아와 주위를 산책하며 사진 촬영을 하는 곳이다. 그 곳에서 宴會를 하면서 봄·가을에 飮酒·歌舞를 즐겼던 옛사람들은 정말 멋있게 놀았던 것 같다. 아름다운 경치에 한 잔, 아름다운 음악에 한 잔, 기분 좋아서 한 잔!
경복궁을 다녀와 느낀 점은 그저 왕과 왕비, 공주 등 왕족이 살았던 곳이 아닌 한국 역사의 자취를 담고 있는 곳이라는 것을 생각하게 되었다.
몇몇 곳은 경복궁 복원사업으로 공사 중이었다. 일제에 의해 훼손된 왕궁의 제 모습을 살리기 위해 복원 사업이 한창 진행 중이었다. 오랜 풍파의 역사의 세월을 거치며 왕궁도 시련을 겪었으리라 생각된다.
국립중앙박물관을 다녀와서
高 3-1 王 殿 玲
수요일 점심시간, 역사반원들이 모이는 시간이다. 모두 모여 답사지역을 의논하였다. 날씨가 추워졌기 때문에 지방 답사계획은 연기하고 가까운 도심 근처의 지역을 가기로 하였다. 그 중 첫 번째 지역이 경복궁이었다.
경복궁은 조선의 왕궁이기도 하고, 그 곳에는 국립중앙박물관·민속박물관도 있었기 때문에 한 번에 세 곳을 둘러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하였다. 또한 무엇보다도 중요한 건 고등학교 학생까지는 무료 입장이라는 것이다. 답사 전 우리는 선생님께서 주신 자료를 읽고 사전 지식을 갖춘 후 토요일 방과후에 함께 모여 가기로 하였다.
토요일 오후, 인원들이 모두 모인 후 우린 가벼운 점심을 하고 지하철을 타고 경복궁으로 향하였다. 대부분의 친구들이 처음 가는 길이라 조심조심 도착하였다. 지하철 연결 통로를 나오니 바로 건물들이 보였다. 선생님과 함께 박물관에 들어갔다.
국립중앙박물관은 용산 가족공원 내로 이전할 계획으로 공사가 진행 중이어서, 많은 유물이 전시되어 있지는 않았다. 박물관 내부에는 선사시대∼삼국시대, 고려·조선의 자기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사진에서 보았던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었는데, 석기시대의 간단한 도구들이 점점 진화된 모습들로 발전한 모습을 한 눈에 알 수 있었다. 그걸 보며 인류의 진화된 모습을 느낄 수 있었다.
신석기시대 사람들이 토기를 제작하는 모습을 모형인형으로 전시하고 있어, 예전에 어떻게 토기를 만들었는지도 이해가 쉬웠다. 신석기시대 사람들은 해변 근처에서 땅을 파 움집을 만들어 조개나 생선을 먹고 생활하였다고 한다. 지금도 그 흔적이 남아있어 조개무덤(貝塚)이라고 발굴된 곳도 있다.
고려시대의 자기는 송나라 때 자기의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그 색과 무늬가 눈길을 끌었다.
그 곳엔 프랑스 도자기 특별 전시회가 열리고 있어서, 둘러볼 수 있었다. 동양의 소박한 도자기와는 달리 서양적인 화려함이 있는 도자기들이어서 비교할 수 있었다.
국립중앙 박물관은 한국의 중요한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는 곳으로 역사적 가치가 높은 유물들을 볼 수 있는 곳이다. 교과서에서 본 것을 실제 눈으로 보고 설명을 들으니 한층 흥미를 느낄 수 있었고, 재미있었던 시간이었다.
이 번 답사를 통해 '百聞이 不如一見'이란 말을 새삼 느낄 수 있었다. 우리가 올바른 이해와 판단으로 역사의 가치를 알아나갈 때 여러 역사 유물들이 더욱 가치를 더해 갈 것이라는 생각을 하며 문화인으로서 역사 유적·유물들을 아끼고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할 얘기가 있어요>
친구에게
高 3-2 馬 慧 琪
너랑 사귄 지 4년 5개월이란 시간이 지났구나... 지금까지 함께 지내왔던 날들이 즐겁고 참 행복하단다. 내가 이 글을 쓰는 이유는 이 수많은 사람들한테 내가 너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리고 싶어서야...
혹시 그 때 알고 있었니? 널 처음 볼 때부터 좋아했었던 거? 아직도 어네 일처럼 생생하게 기억이 나는데... 벌써 5년 반이라는 시간이 흘렀구나. 그 동안 우리는 슬펐던 일, 기뻤던 일들, 참 많았지?
제일 슬펐던 일은 너랑 사귀고 깨졌을 때, 그 때 참 많이 슬펐는데... 다시 너랑 사귀지 못 할 것 같아서... 많이 걱정했는데... 네가 다시 사귀자고 할 때, 내가 자꾸 싫다고 했지? 너랑 사귀면 또 깨질까봐 무서워서 그랬던 거 알지? 근데 지금은 남들이 우리를 많이 부러워할 만큼 잘 지내니까 참 기쁘다.
비록 우리가 함께 한 시간은 길지만 이렇게 서로 편해지기까지 참 어려웠던 거 같아. 네가 많이 노력하고 있다는 거 알면서도 내 못난 성격 탓인지 쉽게 다가가기가 힘들었어. 그래서 너도 알게 모르게 힘들었을 거야... 내 마음은 그게 아닌데 늘 표현할 줄 모르는 내 성격에 나도 답답했어. 만일 다른 사람이었다면 이런 나를 일찍이 포기했을 거야. 근데 바로 "너"니까 꾹꾹 참고 기다려 준 것 같아... 지금 내가 이렇게 예쁜 마음으로 너를 볼 수 있는 건 다 네가 참고 지내온 시간 덕분일 거야. 정말 고마워...
예전의 나를 돌아보면 너무 철이 없었던 거 같아. 지금은 너 때문에 많은 걸 알게 됐어. 아직도 부족한 건 많지만... 네가 보기엔 난 아무 생각 없는 줄 알지? 아니야. 나 나름대로 생각 많이 해. 단지 그걸 표현해 내지 못해서이지... 그래도 지금은 너도 나한테
많이 익숙해져서 다 이해해주니깐 내 걱정이 좀 덜어졌어.
우리 이렇게 서로 이해해주면서 지낼 수 있었던 날들... 난 참 자랑스러워. 4년 반 동안 남들이 모를 힘든 날들도 있었지만, 그렇게 힘들었기에 지금의 우리가 있을 수 있는 거라고 생각하면, 다 예쁜 추억이라고 생각해...
항상 투정 하나 없이 날 지켜봐 준 너한테 늘 고맙고, 지금처럼 내가 편하게 너 옆에 있게 해 준 것도 고마워. 이미 지난 시간들은 우리 예쁘게 마음속에 간직하고, 앞으로 딱 지금처럼만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이렇게만 지내자. 지난날들은 네가 날 위해 노력하고 힘들었지만, 앞으로 지낼 날들은 내가 널 위해 노력하고 또 노력할 게...
育明아! 우리 행복하게 오래 오래 잘 지내자!
2000년 12월 XX일
항상 너에게 힘이 되어주고 싶은 慧琪가...
<영화평 - 두 번째>
<U-571>을 보고
영어 교사 趙 智 亨
'U-571'은 2차 대전 당시 미 해군이 독일 U보트의 암호해독기를 탈취하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사건을 그린 영화이다.
잠수함이란 특수 공간 때문에 자연스럽게 확보되는 폐쇄공포증과 절박한 긴장감에 덧붙여 유약한 장교가 리더십을 쟁취해 가는 과정, 생명을 담보로 한 전우애 등도 선보이고 있다.
간략한 줄거리는, 2차 대전 당시의 대서양. 독일 U보트들이 맹위를 떨치고 있다. 연합군은 U보트에 속수무책으로 당한다. 결국 택한 고육책이 U보트의 암호해독기 탈취. 그러나 적 잠수함에 어떻게 들어가고, 또 어떻게 빠져 나오나.
여기서부터 'U-571'의 상상력이 재미있어진다. 잠수함 침투의 유일한 방법은 잠수함이 해상에 떠있을 때 생긴다. U보트가 바다 위로 부상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든 다음, 영화는 위장한 미군 잠수함을 접근시킨다. 그리곤 적 잠수함 점령과 암호해독기의 탈취.
모든 게 순조롭게 끝나는가 할 때 독일 구축함의 포격이 시작되고, 살아남은 특공조는 거꾸로 적 잠수함인 U보트를 타고 바다 속으로 사라진다. 적 잠수함을 이용한 탈출 작전.
'U_571'의 출연진은 매튜 매커너히, 하비 케이틀, 빌 팩스톤 등 개성 넘치는 남자배우들이다. 특히 록스타 존 본 조비가 미군 장교로 출연한다.(오호~~)
※참고사항 : 1,2차 대전 때 사용된 U보트는 디젤엔진으로 움직였다. 해상으로 부상해 전기를 충전, 충전한 축전지로 움직이는 방식. 2-3시간 충전으로 사흘 가량 잠수가 가능하지만 고속 잠항의 경우 1시간 내로 연료가 바닥난다. 따라서 U보트는 적의 공격을 피하거나 적을 공격할 때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시간 동안 해상에 떠있었다. 얼마 전 러시아에서 작전도중 침몰해 승무원 124명이 전사한 잠수함이 이 영화에 나오는 잠수함과 기종이 똑같다고 한다.
무지 재미있을 거 같죠? 하하하, 하지만 나는 과감히 이 영화의 문제점에 대해 한 번 여러분들과 생각해보고 싶다. 물론 개인적인 관점이므로 읽고 절대 돌 던지지 말도록...
[영화 외적인 문제점...번역의 경우]
번역자가 군사 용어, 기계 용어에 무지한 연고로 의사전달이 전혀 엉뚱하게 된 곳이 많다... 예를 들어, 급히 잠항할 때 함장이 "Blow the Tanks!!" 한다. 이걸 번역자는 "탱크를 폭파해버려!!"라고 했는데... 이건 어마어마한 오역... "공기를 빼라!!"정도가 적당할 듯...
아시다시피 잠수함은 좌우, 전후, 상하의 공기탱크에 공기를 채우면 부상, 물을 채우면 하강... 앞에 채우면 앞부터 하강, 앞부터 공기를 채우면 머리부터 부상... 이런 원리다. 급히 잠항시(전투시) 부상용 공기를 탱크로부터 재빨리 빼내려면 밸브를 순간 완전 오픈하고,
그러면 압축되어 있던 공기가 압력으로 굉음과 함께 터지듯이 빠져나간다. 그걸 승조원(승무원이 아니다!)들은 Blowing the Tanks라고 한다...
그리고 미군 잠수함 승조원들은 함장을 Captain 이라고 부르는 것 빼고는 나머지는 무조건 Mr를 붙여서 쓴다. 계급을 안 부른다는 거다(물론 작전 때에만..) 근데 영화에선 이걸 지켰는데 번역자는 꼬박꼬박 계급을 붙여 두었음. 과잉친절...
이런 경우를 공군전투기 조종사의 경우에도 볼 수있다. 조종사는 비행 중엔(연습비행포함) 계급뿐 아니라 이름조차 안 부르고 별명을 부른다(영화 탑건을 보면 알 수 있다). 적국의 조종사 가족에 대한 테러를 막기 위함이란다.
그리고 독일함 함장이 사격을 거부하는 부하에게 사격을 강요하며 "이건 명령이야!"했다. 오역... 정확히는 "총통의 지시야!"로 해야한다. 가만 들어보면 그 장면의 대사에 "퓌러"라는 발음이 독일어로 나오고 영어자막에도 있다. 이게 총통의 독일어인 Furer(u자위에 점이 두 개 있어야 한다-움라우트라고 한다)이다.
아주 작은 차이인데 뭘 그리 까다롭게 구냐고도 하겠지만.. 구원
요청하는 포로를 무차별 학살시키는 명령이 자신이 내리는 자의적 판단이 아니라 총통의 지시에 따른 무조건적 절대명령임을 강조하는 대목이다.
독일 유보트도 전쟁 초기에는 적함(주로 상선)을 격침 전에 선원을 하선시켜 잠수함에 수용 후 침몰시키는 등 아주 신사적이었으나, 그후로는 더 이상의 작전이 불능(포로 때문)하여 귀환하는 사례가 늘자 총통이 절대 포로를 잡지 말라고 엄명한데 따른 행동이었다. 하지만 대부분 그냥 선원들을 방치하고 떠나거나 식량, 물을 건네주고 떠나는 등, 무조건 전원 학살을 시켜버린 경우는 극히 일부의 사건으로서 종전 때까지 일반화된 경향은 절대로 아니었다.
여기까진 영화 외적인 단점이고....
[영화내적인 문제점...전투장면과 스토리의 허구]
1) 전투장면은 거의 완전히 뻥이다.
철판으로 만들어진 좁은 함내에서 자동화기를 난사하면 그 공간 안에 있는 모든 생명체는 다 죽는다. 총알이 보통 20-30회는 사방팔방 튀니까... 라이언일병 구하기에서 타이거전차의 헤치 안에 톰슨을 밀어 넣고 긁으니까 내부가 조용해진 것이 바로 그 효과이다.
철판뿐이 아니라 콘크리트 벙커 내에서도 같은 현상이 일어나나 튀는 횟수는 삼분의 일로 준다. 이유는 맞을 때 콘크리트 표면이 깨지며 그때 운동에너지의 손실이 발생해서이다(오호~)
그리고, 마지막 독일구축함과의 교전 때, 함포야 빗나간다고 해도 25mm 기관포에 그렇게 두들겨 맞고도 멀쩡하다는 건 완전 뻥... 상당수의 독일 유보트는 전쟁 중 폭뢰가 아닌 항공기의 기총소사에 당해서 침몰하였는데, 그 기총의 구경이 보통 12mm. 최고 큰놈이 20mm이다. 25mm는 총이 아니라 포로서 육지에선 대전차화기이다. 우리 육군엔 없다. 발칸은 20mm.
마지막의 후미의 어뢰 한 발로 구축함이 산산조각 대폭발?(만화영화?) 구축함 등의 전투함은 적함과의 격돌을 대비하여 배 앞부분은 아주 두텁고 또 방수격벽을 수없이 세워두었다. 당연히 대폭발을 일
으킬 탄약은 뒷부분에 선적한다. 배가 어뢰로 대폭발을 일으키는 경우는 유조선과 인화물질운반선, 전투함 탄약고 피격 시이다.
당연히 설계부터 피격을 고려해 연쇄폭발을 막도록 격벽 처리되어있다. 진주만 공습 때의 아리조나호 대폭발은 재수 더럽게 없이 250Kg 폭탄이 연돌(연통이라고도 한다)속으로 골인하여 배의 뱃속 한가운데서 폭발하여 일어났다. 스타워즈의 데쓰 스타 폭발처럼.
그리고 잠수함은 대부분 두 종류의 어뢰를 싣는다고 한다. 내가 조사한 바로는 접촉식 신관과 자기식 신관이 있다. 접촉식은 일반포탄처럼 앞의 뇌관에 충격이 가면 터지는 것으로 보통 수면 위의 선박에 쏜다. 홀수 밑에 처박히어 선박내부에서 폭발하게 지연장치가 되어있다(음).
나머지 한 종류는 금속물체 가까이 가면 일정거리 내에서 자동 폭파되는 신관이다. 주로 잠수함끼리의 전투나 고속전투함과의 기동전에 사용한다. 공기중과는 달리 물속 폭발압이 근거리 내에서는 상당한 효과를 보기 때문이다. 또한 볼 수 없는 잠수함과(잠항중) 고속으로 회피기동중인 전투함을 정확히 직접 타격키가 어려워서 일단 피해를 주어 정지시키거나 떠오르게 한 후 직접타격으로 침몰시키는 전법을 구사키 위함이다.
근데... 영화에서 잠수함끼리의 수중전에 사용된 그 많은 어뢰 중 자기신관식은 한 개도 없었다. 더욱이 접촉신관이라는 놈이 상대잠수함의 몸체에 비스듬히 맞고는 미끄러져 지나간다. 공상과학영화인가?
2)그런 사건은 실존하지 않았다
영화 끝에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었다는 식의 설명이 있지만, 그런 식의 극적인 유보트 탈취작전은 실재하지 않았다. 비슷하게 보급선(그냥 배)을 위장한 시도는 있었지만 성공치 못하였고, 대부분 자침시도하는 유보트를 성공적으로 인양하여 습득한 경우였다.
그리고 사건의 무대는 북서 아프리카 쪽 대서양인데 전쟁시 이곳에 독일 구축함이 나타났던 적은 없다. 아시다시피 구축함은 근해용
으로서 장거리 항해 때는 함대에 소속되어야 하는데, 전쟁 중 그 지역의 제공권은 연합군에 있었기에 독일군은 아프리카에 대한 수송업무를 거의 잠수함에 의존케 된다. 구축함이 대낮에 단독으로 초계중? 연합군기에 아작나려고?.
불쌍하게도 독일은 대전 중 변변한 해군력 없이 독일근해와 영불해협 방위용으로만 전투함을 운용하였고, 그에 따른 해군전투력 약화를 만회코자 유보트를 연합군보다 적극 운용하였던 것이다.
[그럼..장점은]
진짜 보기 힘든 2차대전 영화를 오랜만에 성의 있게 만들었다. 일단 완성도를 떠나 그 정성에 감복한다. 오랜만에 보는 2차대전 영화, 물론 라이언일병 구하기보단 못하지만 여자가 안 나와서 넘 좋다. 액션, 모험, 전쟁극에 여자가 나오면 분위기 망친다.(여학생들 열 받지 말도록)
인디아나존스 시리즈의 여자도 싫다. 특히 특공대가 특수임무 떠나려 하면 꼭 여군이나 여자 민간전문가가 억지로 따라 간다든가(람보처럼). 도착지의 원주민 유격대에 꼭 여자가 섞여 있다가 나중에 이 여자 때문에 엄청나게 작전이 꼬여버리고, 그래서 우리의 특공대는 잘 될 일도 일이 틀어져 하나만 죽어도 될 일을 여럿이 죽게된다.
이 영화는 그런 것이 없어서 좋다... 정말 훌륭한 남자영화다. 여자들이 좋아할 만한 멜로적 요소를 쏙 빼낸 정통 남자들의 영화.
오늘 비오는 날, 따뜻한 코코아와 팝콘... 그런 거 안 먹어도 침흘리며 볼 수 있는 영화.
"U-571!"
<역사의 뒤안길 - 두 번째>
비행기와 낙하산의 시조는 중국
역사 교사 林 宣 希
서양에서 처음으로 비행기를 고안해낸 사람은 레오나르도 다빈치였습니다. 그러나 그도 비행에 성공하지는 못했습니다. 그 후 400년이 지난 1903년 미국의 라이트 형제가 최초로 비행에 성공하였습니다.
그러나 다빈치보다 1000년이나 앞서 중국에서는 하늘을 날았답니다. 중국인들이 하늘을 나는 도구로 사용한 것은 '연'이였습니다. 중국 송나라 때의 역사가 사마광이 쓴『資治通鑑』을 보면 "고양(高洋)은 원황두(元黃頭)와 다른 수인(囚人)들을 금봉대(金鳳臺) 위에서 올빼미 모양으로 된 종이연에 태워 날게 했다. 원황두만이 용케 자맥(紫陌)까지 날아가 무사히 착지했다."라는 기록이 있습니다.
고양은 서기 550년부터 577년까지 존재한 북제(北齊)라는 나라의 초대 황제였습니다. 그는 황제가 된 후 정적(政敵)을 죽이는 방법으로 사용한 것이 바로 '비행'이었답니다. 고양은 죄수들의 몸에 대나무로 만든 커다란 거적을 날개처럼 단 다음 백 척의 단 위에서 뛰어내리게 했습니다. 뛰어내린 대부분의 사람은 목숨을 잃었습니다.
599년 황제는 이번엔 커다란 올빼미 연을 만들어 죄수들을 시험 비행사로 태웠습니다. 그 중 위나라 태자 원황두라는 사람은 꽤 먼 거리(약2.5㎞ 정도)를 날아 이 비행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황제의 명에 의해 결국은 굶어 죽었답니다.
연은 주로 군사적인 목적으로 사용되었습니다. 군의 지휘관들에게 위급함을 알린다든지 신호용이나 편지를 전달하거나 선전물을 뿌린다거나, 또 연은 낚시에도 이용되기도 하였답니다. 미끼를 단 낚시바늘을 연에 매달아 강, 호수에서 배에서 아주 먼 곳까지 날린 것입니다. 연은 주로 새 모양을 본떠 만들어졌고, 지네, 개구리, 나비, 용
모양을 한 것도 있고, 눈동자가 빙글빙글 돌거나 꼬리나 발이 움직이게 만든 것도 있었습니다.
중국사람들은 연을 이용하여 하늘을 날았는가 하면 우산을 이용해 낙하산을 만들었습니다.
기원전 90년 완성된 사마천의 『史記』에 따르면 중국의 황제 순이 자기를 죽이려 하는 아버지를 피해 높은 곡물창고로 도망을 치자 아버지가 창고에 불을 질렀고, 순은 커다란 원추형의 밀짚모자를 잔뜩 몸에 묶고 뛰어내려 무사히 땅에 닿았다고 합니다.
1180년 광동에는 아랍 상인들이 많이 왕래했었는데, 아랍사원 꼭대기에는 금으로 만든 닭이 있었다고 합니다. 한 도둑이 그 닭의 한쪽 다리를 훔쳐 도망쳤는데, 그 도둑은 두 개의 우산에 매달려 내려왔다고 합니다.
그 후 100년 후 프랑스인들은 같은 실험을 하여 낙하산에 '파라슈트'라는 이름을 붙였으며, 지금도 서양에서는 낙하산을 파라슈트라고 부른답니다.
중국인의 낙하산 발명은 서양보다 무려 1,500년이나 앞선 셈이지요.
오늘날 발달된 문명들이 서양의 것이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실제로는 동양에서 만들어진 것이 이슬람상인들을 통해 서양에 전해져 다시 동양으로 재수입된 것들이 상당히 많답니다. 중국의 인쇄술, 화약, 종이, 나침반 등은 그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답니다.
우수한 문화민족의 후손으로서 자부심을 가지고 열심히 생활하시기 바랍니다.
<올림픽 이야기>
새 천년 첫 올림픽 화려한 개막
체육 교사 李 敬 子
뉴 밀레니엄 첫 지구촌 스포츠 제전인 제27회 시드니 하계 올림픽이 2000년 9월 15일 화려한 개막을 갖고 17일간이 불꽃튀는 열전을 벌였다.
15일 오후 5시, 시드니 홈부시베이 올림픽파크의 "스타디움 오스트렐리아"에서 밤늦도록 진행된 개막식에는, 북한과 개최국인 호주 등 국제올림픽위원회(I.O.C) 회원 199개국과 개인 자격으로 참가한 동티모르에서 모두 1만6600명의 선수와 임원이 참가했다.
'굳 데이(G' Day)'를 테마로 한 시간 여에 걸친 공식행사가 끝난 뒤 남북한은 '코리아'라는 하나의 이름으로 96번째로 동시입장 뜨거운 갈채를 받았다. 선수 입장이 끝나고, 오후 8시41분 개최국 '국가수반' 자격으로 윌리엄 딘 호주 총독이 개막을 선언, 올림픽 찬가가 울려 퍼지는 가운데 올림픽기가 게양되었다. 이어 성화 최종 주자인 호주 원주민 여자 육상 선수 캐시프리던(애틀랜타 올림픽 400m 은 메달 리스트)이 오후 9시 10분 점화한 물 속 성화대가 공중에 솟아오르면서 개막식을 장식했다.
[대회장 올림픽旗 반기 게양]
국제 올림픽위원(I.O.C)위원장인 사마란치(80)의 부인 마리아 테레사 살리 삭스로웨(67)여사가 16일 사망했다.
사마란치는 개막식 직후 전용기편으로 급히 스페인으로 돌아갔으나 부인이 사망한 뒤에 도착, 임종은 두 자녀가 지켜보았다고 외신은 전했다. 테레사 여사는 암을 앓아온 것으로 알려졌다.
I.O.C는 주경기장과 I.O.C위원들이 묵고 있는 3개 호텔 주변에 17일 정오 24시간동안 올림픽기를 반기로 게양해 조의를 표했다. 테레사 여사는 미모와 재능을 겸비해 비비스(우아한 여성)라는 별칭을 가졌다. 남편의 공식 일정에 잘 동행하지 않았으나, 지난 20여 년간 올림픽에는 반드시 참석해 왔으나 최근 질환이 악화되어 시드니 올림픽 개막식에 불참했고, 그녀의 자리엔 호주의 수영 스타 돈 프레이저가 앉았다.
<시사 상식>
노벨 평화상 100년
한국경제신문(2000/10/14)
노벨 평화상은 노벨의 유언에 따라 국제 우호와 평화회담, 전쟁 방지를 위해 노력한 개인이나 단체에 주어지는 상으로 1901년 처음 시상된 이후 올해로 1백 회 째를 맞았다. 노벨 평화상은 수상자 개인의 영예뿐 아니라 전세계에 인도주의 정신을 확산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경제 물리 화학 문학 의학 등 다른 5개 부문의 노벨상은 스웨덴 왕립 과학아카데미가 심사 및 시상을 맡는 것과는 달리, 이 평화상은 노르웨이 노벨위원회가 심사와 시상권한을 가지고 있다.
<과학 상식>
인간과 곤충
한국4-H신문(2000/11/15)
미국 텍사스주의 초원 상공을 날아가는 쌍발수송기가 나선구더기검정파리를 방제하기 위해 한 개의 하물을 떨어뜨리고 있다. 이 하물은 살충제가 아니다. 그 속에는 지상에 살고 있는 것과 동일한 종의 파리가 수없이 들어 있다. 그리고 그것은 모두가 수컷으로 연구실에서 키운 것들이다. 소에 피해를 주는 이 파리의 암컷과 교배시키기 위해 풀어놓고 있는 것이다.(유충이 소를 죽게 한다.)
이것은 파리의 수를 줄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늘리려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연구실에서 자란 이 파리들은 방사선을 쪼여 생식 능력이 없어진 것들이다. 이 수컷들이 암컷들과 교미를 하면 알은 무정란이 되고 암컷은 다시는 교미를 할 수 없게 된다. 이 방법이 매우 효과적이라는 것은 8년 동안에 감염된 소의 수가 5000두에서 150두로 줄어들었다는 사실로 증명되었다.
이렇게 생물을 방제하는 데 다른 생물을 이용하는 방법을 생물적 방제라고 한다. 자연계 동물의 개체 수는 먹이의 공급량이나 기후이외에도 다른 동물의 포식, 또는 기생충, 질병 등에 의해 균형이 유지되고 있다. 요즈음 실용화하고 있는 생물적 방제법도 새로운 것은 아니다. 이미1000년 전에 중국인은 개미를 이용해서 과일나무의 해충을 구제했다. 미국에서 이것이 최초로 이용된 것은 1888년이었는데 캘리포니아의 과일나무에 번식한 개각충을 잡아먹게 하기 위해 오스트레일리아의 무당벌레가 수입되었던 것이다.
생물적 방제는 DDT등 화학적 살충제의 결점이 명백히 드러남에 따라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더울 중요시되었다. DDT등 화학적 살충제는 작물의 보호 및 병충해 예방 등에 필요할 때도 있었지만 그것을 사용하면 유해 성분이 주위에 쌓여 해충만이 아니라 유익한 동물까지도 죽게 된다.
예로부터 가장 효과적인 생물적 방제법의 하나는 해충의 천적의 힘을 빌리는 것이었다. 그 좋은 예가 모기의 유충인 장구벌레를 먹
는 북아메리카의 모스키토피시이다. 1905년 모기의 방제를 위해 이 물고기를 하와이의 하천과 연못에 방류시켰다. 그 결과가 너무나 성공적이었기 때문에 아메리카, 유럽, 아시아 및 뉴질랜드에서도 이 물고기가 도입되었다.
자연의 천적은 전세계에 걸쳐 찾아내는 것이 좋을 것이다. 유럽과 아시아를 샅샅이 되진 끝에 과학자들은 캘리포니아주에서 악명 높은 올리브나무 해충인 깎지벌레를 죽이는 말벌을 이란에서 발견했다. 그러나 이 이란의 말벌은 낯선 풍토에서 잘 견디지 못했다. 다시 새로운 수색 작업을 결과 이번에는 파키스탄에 서식하는 말벌을 찾아냈는데 이 벌은 신대륙의 기후에 훨씬 더 잘 적응했다.
일본 딱정벌레에게 유화병을 발생시키는 세균을 농작물에 살포해서 이 딱정벌레를 방제하는데 성공한 곳도 몇 군데 있다. 이들 세균은 딱정벌레에게는 전혀 해가 없다. 해충 방제에 바이러스도 이용할 수 있다.
어떤 중의 실험용 곤충이 다 자라기 전에 죽어버린 우연한 사건에서 하나의 무기가 발견된 예가 있다. 죽은 곤충을 키운 우리에는 뉴욕타임스 등 미국 신문지를 발랐었고 죽지 않은 벌레를 키운 일에는 런던타임스를 발랐었다, 일찍 죽은 원인을 조사해 봤더니 그 원인은 미국 신문지의 펄프에 사용되었던 미국의 발산전나무에 포함된 화학 물질이었다. 유럽에서 만들어내는 펄프용 재목에는 이 물질이 없었던 것이다. 현재에는 이화 유사한 화학물질을 살포제로 사용하여 해충의 정상적인 발육을 막거나 부적합한 때에는 고치에서 나오게끔 만들고 있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생물적 방제법이라 해도 완전할 수는 없다. 나선구더기검정파리의 경우도 예외는 아니었다. 과학자들은 이것을 해충과의 싸움에서 사용하는 한가지 무기에 불과한 것으로 보고 있다. 화학적 살충제를 조심조심 사용하면서 동시에 생물적 방제를 실시하면 환경을 훼손함이 없이 우리 자신과 농작물을 지켜갈 수가 있을 것이다.
<이런 이야기>
선식(禪食)
문화일보(2000/11/13)
아침 식사를 제대로 챙겨먹을 수 없는 직장인이나 맞벌이 부부에게 권장하고 싶은 식이법으로 선식(禪食)이 있다. 요즘에는 곡류, 해조류 등 수십 가지의 성분을 섞어 만든 선식 제품이 시중에 나와 있지만, 선식의 기본 구성은 현미, 찹쌀, 보리, 검정콩, 검정깨, 들깨, 율무 등 7가지 곡류이다. 원래는 불가(佛家)에서 참선 때 머리를 맑게 하고 위에 부담을 주지 않으려고 이용하던 식품이다.
선식은 편중된 식생활과 인스턴트 식품의 과다 섭취로 결핍되기 쉬운 영양소를 단시간 안에 효과적으로 골고루 섭취할 수 있다는 장점 때문에 아침이 바쁜 직장인이나 학생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식품이다. 또한 장기간 지속적으로 섭취할 경우 고혈압이나 당뇨병 등 성인병을 치료하고 예방할 수 있어 일석이조의 효과를 얻을 수 있다.
선식을 만들려면 먼저 준비한 곡식들을 깨끗이 씻고, 쪄서 말린 다음 분리한다. 이후 적당히 타지 않게 볶은 다음 7가지 곡식을 한 데 빻아 시원한 곳에 보관한다. 그런 다음 먹을 때마다 큰 수저로 3-4회씩 덜어내 생수나 우유 등을 1-2회 나눠 붓고 기호에 맞게 소금이나 설탕으로 간을 맞춰 잘 저어 먹으면 된다. 곡류 외에 해조류나 야채, 과일류, 효모나 솔잎, 인삼 가루나 대추, 호도, 잣 등을 넣어 먹으면 더 훌륭한 영양식이 된다. 선식의 주요 구성 성분인 곡류의 효능을 소개한다.
◆현미
각종 비타민과 미네랄이 풍부하다. 체내 유해 물질과 노폐물을 분해, 배출하는 작용으로 변비, 위장병 등을 개선하는 데 도움이 된다. ◆찹쌀
위와 비장을 따뜻하게 하고, 설사를 그치게 한다. 속이 냉하거나 위장 기능이 부실해 맥주나 찬 음식을 먹으면 자주 설사를 하는 사
람들에게 효과적이다.
◆보리
체력 증진에 필요한 비타민 B1, B2가 풍부하다. 섬유질이 많아 장을 튼튼하게 하며 알칼리성 식품으로 체내 산성 체질을 중성화하는 작용을 한다.
◆검정콩
위장의 열을 내리고 신장의 여러 장애를 다스려 소변을 깨끗이 하는 작용을 한다. 특히 검정콩에는 불포화 지방산이 많아 고혈압과 동맥경화의 원인인 콜레스테롤이 쌓이는 것을 막아준다.
◆검정깨
새치를 예방하는 효과가 있다. 또 허약한 체질을 강하게 하고 두뇌를 좋게 하며 근육과 뼈를 강화시켜 장수식품으로 꼽힌다.
◆들깨
간과 위장을 보호하고 가래 섞인 기침을 그치게 하는 효과가 있다. 또 피부를 좋게 하는 작용의 리놀산과 비타민 E, F가 풍부하다. ◆율무
게르마늄이란 성분 때문에 한방에서는 항암제로 많이 쓰인다. 꾸준히 먹으면 위궤양, 신경통, 생리불순 등을 완화시키는 데도 도움이 된다. 체내 노폐물을 배출해 피부 미용과 구취 제거에도 효과적이다. 그러나 여성의 경우 생리중이거나 임신중일 때는 섭취하지 않는 것이 좋다.
'총명한 하루' 보내려면 아침밥 먹어라
문화일보(2000/11/13)
[이래서 거르면 안 된다]
출근시간에 쫓기는 직장인들이 매일 균형 있는 아침식사를 꼬박
꼬박 챙기기란 쉽진 않다. 상당수는 시간 부족이나 입맛이 없다는 이유 등으로 매일 아침식사를 거르러나 라면 같은 간단한 인스턴트 식품으로 대충 때우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두뇌활동을 많이 해야 하는 직장인들의 겨우 아침식사는 반드시 챙겨야 한다"고 강조한다. 무엇보다 아침식사가 밤 동안 떨어졌던 신진대사를 높여줌으로 하루를 활기차게 할 뿐 아니라 두뇌활동의 중요한 에너지원이 되기 때문이다.
◆아침식사가 대뇌에 미치는 영향 = 아침은 모든 신체활동의 근간인 대뇌가 활동을 시작하는 때이다. 우리 몸은 대뇌의 지배를 철저히 받기 때문에 대뇌가 깨어남과 동시에 심장, 위장, 등 장기와 근육, 혈액 등 신체 조직들도 가동할 수 있게 된다. 흔히 대뇌를 자극하는 방법으로 안면극육 운동 등이 권장되는 이유도 이 때문으로 아침식사는 대뇌 활동을 자극하는 좋은 수단이 된다.
[매일 굶는 사람 집중력 떨어져]
일반적으로 아침식사를 하는 경우와 굶는 경우 활동력 면에서 많은 차이가 있다. 아침을 습관적으로 굶는 사람은 일의 집중력이 떨어지고 신경이 날카로워지며 문제해결능력도 떨어지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학생들이 아침을 거르면 두뇌활동이 떨어져 아침식사를 하는 학생에 비해 학업 성취도가 떨어지게 된다.
이는 뇌가 작동하려면 연료도 포도당이 필요한테, 포도당은 식사 후 12시간이 지나면 대부분 소모되기 때문이야 연세대 내가 허갑범 교수는 "뇌가 움직이려면 하루 400kcal 정도의 에너지가 필요한데, 아침을 거르면 전날 저녁식사를 한 후 다음날까지 17시간 가량 영양공급이 안돼 뇌기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설명한다.
[위장·당뇨질환 환자에게 필수]
◆아침식사와 질병과의 관계 = 평소 위장질환이나 당뇨 기운이 있는 사람에게 아침식사는 더욱 중요하다. 아침을 굶으면 위가 장시간 비어있어 아무래도 점심에 폭식을 하게 된다. 갑자기 많은 양의
음식을 먹으면 가장 먼저 위장이 부담을 받게 된다. 또한 장시간 공복으로 인한 저혈당 상태에서 혈당이 갑자기 높아짐으로써 신체대사의 균형이 흐트러져 콜레스테롤혈증이나 지방간 등의 질환을 일으킬 위험이 높아진다.
아침식사를 안 하는 사람은 변비에도 걸리기 쉽다. 밤사이 대장에 자극을 주어 배변이 촉진된다. 따라서 다이어트를 필요로 하는 사람일수록 아침식사는 반드시 챙겨야 한다. 실제로 비만한 사람일수록 아침식사를 덜 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장시간 굶었다가 음식물이 들어가면 인체는 또 굶을 것에 대비하여 에너지 흡수율을 높이고 가능한 한 많은 에너지를 체내에 지방 형태로 저장하려 하기 때문에 살이 잘 빠지지 않는다.
◆아침 식욕을 돋우려면 = 아침을 먹고 싶어도 입맛이 없어 못 먹는 경우 한번쯤 자신의 저녁식사 패턴을 고려해 볼 필요가 있다. 저녁식사를 늦게 하거나 야식을 즐기면 음식물이 위나 장에 그대로 남아 있어 아침 식욕을 떨어뜨리게 된다.
[늦은 야식 줄여야 식욕 살아나]
밤늦도록 술을 마시는 것도 균형 있는 아침식사를 방해하는 요인이 된다. 과음을 하면 입에서만 얼큰한 맛을 찾게 될 뿐, 내장은 술로 손상되어 있기 때문에 제대로 되 아침식사에 대한 욕구가 떨어지게 된다.
식욕을 증진시키기 위해서는 충분한 수면도 중요하다. 이와 함께 아침 일찍 맨손체조나 조깅, 산책 등의 가벼운 운동으로 장기능을 촉진하도록 한다. 또한 식전에 마시는 차가운 냉수 1잔은 아침 식욕을 돋우는 데 도움이 된다.
◆아침식사 효과적으로 먹는 방법 = 아침 식사는 되도록 밥이나 빵, 감자, 고구마 등 복합탄수화물이 많이 함유된 식품을 먹는 것이 좋다. 아침은 뇌의 에너지원인 당질을 공급하는 주요한 시점이다. 따라서 단순한 식빵보다는 통밀빵으로, 흰쌀보다는 잡곡밥을 먹는 것이 더 유리하다.
[잡곡밥 등 탄수화물 음식으로]
아침부터 지나친 지방 섭취는 위에 부담을 주기 때문에 가급적 삼가는 것이 좋다. 반면 단백질은 달걀이나 생선 등 양질의 단백질을 위주로 적당량 섭취하도록 한다. 특히 아침에는 과일이나 샐러드, 오이 같은 신선한 야채류를 충분히 섭취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열 여섯 번째 <한글마당>을 마치고 나서
이번 겨울은 매섭게 시작하는군요. 날씨가 추운 건지, 아니면 마음에 따뜻한 그 무언가가 없기 때문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편집을 하며 아이들의 글을 보면 마음이 따뜻해지기도 합니다. 겨울 동안 더 성숙해지는 아이들의 글을 기대해 봅니다.
- 權
韓國漢城華僑中學 <한글마당>通卷16號
發 行 . 漢城華僑中學 韓語韓文敎學硏究會
總編輯 . 權相基
編 輯 . 한글문예반
揷 畵 . 蔣有珍. 劉靑雲
發行日 . 中華民國 89年 12月
住 所 . 서울 서대문구 연희3동 89-1
印 刷 . 正元文化社