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마당 11















韓國漢城華僑中學

韓語韓文敎學硏究會


목 차

<시>

날 개 高3-4 孫德仲 1

<계절 이야기>

겨 울 中2-1 張詩幥 2

<사랑과 행복의 이야기>

내 마음속의 아기 팬더곰 中3-3 高慧丞 3

할머니의 생신 高2-1 王貴珍 3

<추억 이야기>

나의 여름방학 高2-4 牟德京 4

남이섬에서 高1-2 裵嘉惠 4

대천 해수욕장 高1-2 解亨必 5

방학 동안에 있었던 일 中3-3 藍靑榮 6

방학 때 中3-3 鄒智姸 6

방학 때 있었던 일 中2-2 陳勝賢 中2-1 王祖夫 7

여 행 高1-2 馬慧珍 高1-2 宇德隆 高1-2 湯宇隆 9

<우리들의 생활 이야기>

가장 불쌍한 中3-3 牟德芬 12

고등학생이 되어서 高 1-2 馬慧珍 高1-2 初君蓮 12

길고도 짧던 날 中3-1 謝愼珍 14

꿈 高2-4 曺慧珉 15

내게 지금 필요한 것은 高2-4 王暦娟 16

나의 성적 中3-2 于秀莉 16

나의 인생 高2-1 王樹儀 17

독 서 高1-2 裵嘉惠 18

L'arc∼en∼ciel의 노래를 듣고 中2-1 李梅蘭 19

만약 손이 없다면 高2-4 徐玉娜 20

만화 페스티발에 다녀와서 中2-1 李梅蘭 20

Backstreet Boys 영상회 中2-1 王惠里 21

새로운 교과서, 만화 中3-2 邢黛麗 22

선생님과 친구들에게 하고 싶은 말 中2-1 湯志隆 23

10년 뒤의 나 高2-1 吳明蕙 高2-1 田序靜 23

10년 뒤의 내 모습 高2-4 高華虹 高2-4 李在羲 25

13일의 금요일 中3-1 韓仁嘉 26

아르바이트를 찾아 高2-4 劉玉莉 27

We Are The Future 中2-1 王玉華 28

유 행 高2-4 馬燕萍 28

20년 후 高2-1 賀昭允 29

"자유" 그 자체만으로도 高2-4 劉貞希 30

중학교 3학년이 되고서 中3-2 馬智馨, 徐吉全, 孫文誼 31

中3-2 無名氏, 宋樹林, 邢黛麗 33

中3-3 梁詩怡, 王淇萱, 李芷盈 35

중학교 졸업반이 되어서 中3-3 于慧璟 36

콘서트 高2-1 汪怡汎 37

<편지글>

사랑하는 아빠에게 中2-3 王如眞 38

친구에게 中2-2 蕭維燕 39

<독서 감상문>

<갈매기의 꿈>을 읽고 高3-4 呂明美 40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을 읽고 高3-4 李汶采 41

<오체 불만족>을 읽고 高3-4 蘇美媛 43

<일식>을 읽고 나서 高2-1 吳明蕙 44

<죽은 시인의 사회>를 읽고 高3-4 曲元奭 45

<죽은 시인의 사회(속편)>을 읽고 高3-4 焉文卿 46

<영화 감상문>

<얼라이브>를 보고 中3-2 姜昭宇 47

<짱>을 보고 나서 中3-1 王煢煢 48

<과학 이야기>

나무는 왜 낙엽이 지는가? 49

식물도 자기방어를 한다는데? 51

<세상 이야기>

서대문구 동(洞)이름 유래(由來) 53

편집자의 변 58

<시>

날 개

高 3-4 孫 德 仲

개미가 두 손에 긴 겨울을 날 먹이 한 줌을 들고 왔을 때

나팔꽃은 그 긴 주둥아리 같은 꽃잎들로 환호의 나팔을 불어주는 듯 했다.

개미는 한 손으로 마주 인사를 하더니

빠른 걸음으로 녹색의 줄기를 타고 녹색의 잎사귀를 밟고 높이높이 올라갔다.

개미는 은행나무 끝가지까지 올라서고

보이지도 않는 먼 곳을 바라보았다.

세상엔 꽃이 많고, 녹색의 잎파리도 여기저기 널려 있었다.

꽃잎을 덮고 잠든 갈색의 땅과 여기저기 흩어지는 씨앗들.

하얀 민들레가 바람을 타더니 서서히 가라앉는다.

만일 내게 날개가 있다면, 만일 내게 날개가 있다면てててててて.

수캐미는 단 한 번 날아오를 날개를 곧게 뻗고 서 있었다.

일개미인 그놈은 늘 동경의 눈빛으로 그 투명한 잎사귀 같은 날개를 바라보았다.

어두운 터널을 지나면, 녹색의 숲을 지나면 더 넓은 세상이 있음을

개미는 알고 있었지만 감히 개미는 떠나갈 수 없었다.

겨울이 되자 꽃은 시들고 개미는 잠들었다.

그리고 내년 봄이면 다시 깨어날 수 있을 지는 아무도 알 수 없었다.




<계절 이야기>

겨 울

中 2-1 張 詩 幥

가을은 아직 안 지난 것 같은데 벌써 추운 겨울이 찾아오려고 한다.

이젠 며칠만 더 지나면 더욱 춥고 하얀 겨울이 시작되겠지. 겨울이 오면 생각나는 것도 많아지고 또 하고 싶은 것도 많아진다. 나무 곁에 감싸져 있는 예쁜 낙엽들도 조금씩 떨어지겠지. 크리스마스는 아직 멀었지만 나는 벌써 아빠와 엄마의 크리스마스 선물―바로 목도리를 만들고 또 짜고 있다.

눈이 많이 쌓이면 나는 옛날 초등학교 다닐 때, 여러 친구들과 눈 놀이를 하던 생각이 난다. 이번 겨울에는 꼭 눈 놀이를 하고 싶다. 나는 빨리 눈이 오길 바란다. 왜냐하면 지붕 위에, 아니 모든 땅 위에 온통 하얗고 깨끗하고 또 맑은 눈이 쌓이는 것을 보고 싶어서てててててて. 아무튼 이번 크리스마스엔 꼭 눈이 왔으면 좋겠다.



















<사랑과 행복의 이야기>

내 마음속의 아기 팬더곰

中 3-3 高 慧 丞

세월은 정말 빨리 지나간다! 봄이 가고 여름 가고 가을이 가고 겨울이 지나면, 세상은 조금씩 변해 간다. 그래서 어느덧 내 동생도 나와 같은 중학생이 되어 버렸다.

어릴 때 꿈이 뭐냐고 물어 보면 선생님이 되고 싶다고 했다. 집에서 우리 둘이 집을 볼 때면 어김없이 벽엔 흰색 종이를 붙이고 회초리를 들고 선생님 흉내를 많이 냈던 우리 동생. 어릴 때는 내 동생이 아기 팬더곰같이 느껴질 때도 있었다. 둥글둥글한 얼굴, 뒤뚱뒤뚱 걷는 모습, 항상 장난기 어린 얼굴로만 날 보고 있었던 동생이 조금씩 어른스러워지고 있는 걸 난 느낀다. 가끔씩은 이런 것도 느낀다. 동생이 나보다 더 마음도 넓고 인내심도 많다는 걸. 그런 걸 보면 나보다 더 철이 든 것도 같다.

사람들은 우리 동생을 보고 숙녀가 다 되어간다고 하지만 아직도 우리 동생은 내 마음 한 구석에서 날 바라보는 아기 팬더곰이다!

할머니의 생신

高 2-1 王 貴 珍

7월 30일은 우리 할머니의 생신 날이었다. 연세는 아흔이시지만 아흔답지 않게 정신이 맑고 또렷하시다. 어쩔 때는 또 애기같기도 하시다.

큰아빠가 모시고 오던 날, 우리 친척 가족 모든 분들이 할머니의 아흔 번째 생신을 축하하였다. 환호 속에 할머니의 기쁜 눈망울을 난 영원히 잊지 못할 것 같다. 그날 안타깝게도 아빠는 회사 일에 바쁘셔서 할머니의 기쁜 눈망울을 보지 못 하셨다. 모든 축하가 끝나고 밤늦게 아빤 돌아오시고, 할머니는 예전과 마찬가지로 아빠에게 같은 말을 또 하셨다. 하지만 난 그런 할머니를 이해한다. 걸음걸이가 불편하신데다 귀도 잘 안 들리시니, TV를 볼래야 알아듣지를 못하시고, 같이 새 얘기거리를 해 줄 사람도 없으니, 올 때마다 했던 얘기를 백 번도 더 하시고, 우리가 말 좀 하려면 할머닌 또 당신 얘기만 하시고, 항상 얘기는 같고てててててて. 또 항상 짓궂게 화만 내는 나쁜 나를 용서해 주시고てててててて.

난 이런 말이 많으시고 애기 같으시고, 또 되풀이를 좋아하시는 할머니를 너무나도 사랑한다. 사람은 다 늙기 마련이다. 나도 몇 십 년이 지나면 할머니보다 더 할 지도 모르겠다. 그 때 사람들에게 더 많은 존경을 받기 위해선 지금 더 노력하고, 할머니를 더 기쁘게 해 드려야겠다.

<추억 이야기>

나의 여름방학

高 2-4 牟 德 京

따가운 햇살이 내리쬐는 평범한 여름 날, 우린 교실 모퉁이에 둘러앉아 자신의 방학 계획을 자랑스럽게 얘기했다. 늘 맞이하는 방학이라도 매번 다가오는 느낌은 사뭇 다르게만 느껴진다.

그리고 기대하던 방학이 다가오면 우린 모두 게으름뱅이가 되어버린다. 화려하게 짜여 있던 계획은 온 데 간 데 없고, 매일 12시가 지나야 일어나서 종일 바보상자 앞에 마술이라도 걸린 것처럼 멍하니 앉아 있다. 나 역시 생활이 이것과 다를 바가 없다.

어쩌면 집에만 있었던 이번 방학생활이 무의미하지만은 않았다. 고2를 맞이하게 된 이번 여름방학동안 내 머리 속엔 많은 생각들이 자리했다. 추억을 회상하며 혼자 미소짓기도 했고, 후회도 하며 현재의 나와 비교도 해 봤다. 먼 훗날 펼쳐질 찬란한 내 미래에 기대를 걸어보기도 하고, 실패의 두려움으로 고민도 하고, 방학이 끝난 뒤 내 앞으로 남겨질 일들을 위해 다짐도 했다. 마치 봄을 위해 겨울잠을 자는 개구리처럼てててててて.

난 이번 방학을 통해 지쳐 있던 내 정신에 휴식을 주었고, 미래를 위한 준비도 하였다. 개학을 하면 사회인이 되기 위한 준비에 본격적으로 나설 것이다.

이번 방학, 앞으로 오늘처럼 쉴 수 있는 날이 점점 줄어든다는 것을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었다.



남이섬에서

高 1-2 裵 嘉 惠

1999년 4월 17일, 나는 학교에서 단체로 가는 봄 소풍을 갔다. 목적지는 남이섬이었고, 나는 기대를 하지 않았다. 섬이라기에 재미없는, 늘 똑같은 소풍인 줄 알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은 나의 착각이었다

남이섬으로 가는 버스 안에서 우리들은 늘 하던 대로 온갖 과자와 도시락들을 꺼내어 왁자지껄하게 잔치를 벌였다. 남이섬에서 먹어야 할 도시락 따로, 차에서 먹는 도시락 따로, 두 개의 도시락과 군것질들이 버스에서 정리가 될 때쯤, 차 안은 노래와 게임으로 한껏 흥이 났다. 그러다 도착할 쯤에선 절반의 사람들은 이미 지쳐 쉬고 있었다.

남이섬에 도착하여선 감탄을 금치 못했다. 길 양쪽으로 줄지어 서 있는 나무들과 그 옆에 놓여 있는 작은 기찻길, 그 밖으로 펼쳐지는 끝없이 넓은 잔디밭. 마치 영화에서나 보던 멋진 장소였다. 그 길을 따라 끝까지 가면 자그마한 무대도 있었다. 예상 밖으로 놀이터도 있었고, 농구하는 곳도 있었다. 도착 후, 우리는 도시락을 또 먹고 각 반에서 준비한 공연을 하고 자유활동에 들어갔다. 4,000원을 내고 자전거를 빌려 남이섬을 한 바퀴 돌아보았다. 보고 또 봐도 역시나 감탄할 수밖에 없는 한 폭의 수채화 같은 곳이었다. 아직도 그 날의 즐거움은 잊을 수 없다.

기회가 되면 더 많은 곳을 가보고 싶다. 맑은 공기를 마시며 시골 풍경도 즐기고 싶다. 하지만 아무리 많은 곳을 다녀도 내 기억 속에 남이섬은 오래도록 기억될 것이다.



대천 해수욕장

高 1-2 解 亨 必

우리 집 근처엔 큰 바다가 있습니다. '대천 해수욕장'이죠. 넓고 넓은 바다. 넓은 백사장. 참으로 아름다운 곳이죠!

저는 여름마다 바다에 놀러 갑니다. 가족들, 친구들과 함께. 특히 이번 여름엔 큰 축제들이 많아서 재미있었습니다. '머드 축제', '얼음 조각 축제'가 그토록 보고 싶던 것들이죠.

그런데 여름이 너무 더워 나가 놀기도 싫죠. 비도 왔죠. 그래서 놀러갈 시간이 그리 많진 않았어요. 그리고 대천 해수욕장에서 차 타고 5분, 10분 거리엔 계곡도 많이 있어서 놀기는 딱 좋습니다. 파란 바닷물에 풍덩 들어가 조개껍질도 줍고 놀이기구도 타고, 이렇게 멋진 여름은 처음이었어요. 아까운 건 가족들이랑만 간 것이죠.

언제 시간이 생기면 저의 친구들에게도 이 아름다운 풍경을 보여주고 싶어요.



방학 동안에 있었던 일

中 3-3 藍 靑 榮

며칠 전에 아주 큰비가 왔다. 매년 이때쯤이면 문산, 파주, 의정부, 강원도 등 지역에 수해가 난다. 수해가 난 지역을 보면 정말 가슴이 너무나 아프다. 집과 가게가 거의 다 물에 잠겨, 가구나 가전제품들을 다 못쓰게 되고, 논밭과 가축들 일부분이 생명을 잃어 물에 둥둥 떠있는 모습을 보았다. 그나마 남아 있던 가축들도 전염병에 걸려 목숨을 잃을 지경이다.

매년 수해를 입는 사람들을 보면 정말 가슴이 아프다. 어떤 집들은 다 무너져 버렸다. 인근 초등학교에 대피해 있는 수재민들은 며칠 뒤에 개학을 하기 때문에 집으로 돌아가야 하는데てててててて. 집이 무너진 것을 본 수재민들을 생각하면 정말 슬프다!! 그리고 작년에 수해를 입은 집과 가게를 빚을 내어 일 년만에 다 복구했다고 하는데, 이번에도 똑같은 일을 겪었으니 얼마나 가슴이 아플까? 게다가 복구비는 한 가구 당 채 백 만 원도 안 된다고 하는데てててててて.

정말 국가에서 빨리 대책을 세워 내년에는, 아니 다음부터는 지금의 이런 슬프고 비참한 일은 두 번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전보다 세심하고, 좀더 확실하게 대처했으면 좋겠다.



방학 때

中 3-3 鄒 智 姸

즐거운 여름 방학이 시작됐다. 나를 비롯해 모두들 방학이 되면 잠도 실컷 자고 책도 안 봐도 되기 때문에 즐거워한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요즘 왜 그렇게 선생님과 친구들이 보고 싶은 걸까? 그건 내가 좀 컸다는 뜻일까?

올 여름에도 비가 많이 왔다. 또한 그 피해의 규모가 엄청나게 컸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살던 집을 잃고, 식구도 잃고 키우던 가축과 재산을 잃었다. 정말 하늘에 구멍이 뚫린 것처럼 비가 어마어마하게 내렸다. 그래서 우린 방학 동안 놀러 가려는 계획은 포기했다. 우리는 직접 비 피해는 없었지만 많은 수재민들을 보고 놀러 간다는 것은 정말 양심이 허락하질 않았다. 그나마 우리는 비 피해 없이 잘 지낸다는 게 또 하나의 행복일 거라고 생각한다.

잠깐 잊고 살았던 안전한 생활에 대한 행복을 새삼 깨우치게 된 기회를 준 요번 방학이 참 고맙게 느껴진다.



방학 때 있었던 일

中 2-2 陳 勝 賢

저는 방학을 따분하게 지내기 싫어서 우리 가게에서 일을 했습니다. 쉽게 말해 아르바이트라고도 그러더군요. 돈은 받지 않고 그 대신 옷이나 신발 등등을 사달라고 했죠. 방학동안 일하면서 돈 버는 게 그렇게 힘든 일인 줄 몰랐는데, 혼도 나면서 실수도 하고 미끄러지기도 하고, 어려운 일들이 많았습니다. 그래도 저에겐 아주 괜찮은 일상 경험이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었습니다.

한 2주일이 채 안될 쯤부터 장사가 너무 안 돼서 우리 동네를 다 돌아다니면서까지 스티커도 돌리고, 사람들에게 맛있다고 광고까지 하면서 다리도 아프고 힘들고 지쳤지만, 사람들이 많이 와서 짜장면 먹을 생각하니 마구 힘이 솟아서 열심히 사흘 동안 돌렸는데てててててて.

그런데도 사람들은 오질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때서야 '아∼, 장사는 그렇게 간단한 것이 아니구나.' 라는 것을 느끼면서 내가 여태껏 돈 아깝단 생각 안하고 마구 쓸데없이 쓴 것이 참으로 후회됐습니다.

이렇게 부모님이 하루 종일 힘들게 번 돈을 난 아무 생각 없이 써버렸습니다. 난 그 뒤로 좀 다른 생활을 하게 됐습니다. 돈도 아껴 쓰고, 아무리 사고 싶은 것이 있더라도 나보다 못 입고, 못 먹고, 못 살고, 나보다 더 안 좋은 사람도 많다는 걸 생각합니다. 그러고 보면 난 참 행복한 아이입니다. 그래서 앞으로 공부도 열심히 할 것이고, 돈도 아껴 쓸 것입니다.

엄마, 아빠 파이팅! 사랑해요!






방학에 있었던 일

中 2-1 王 祖 夫

"와! 방학이다!"

검은 벽에 하얀 화이트로 크게 그려져 있는 이런 낙서를 보니, 이전에 있었던 여름 방학이 너무나도 그립고, 다시 그때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계속 머리에 맴돌고 있습니다.

저는 방학하기 전에 너무나도 하고 싶은 일들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계획을 다 짜놓았다고 해서, 다 해낼 수는 없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니 그 중에 하나만은 확실히 실천에 옮겼는데! 그것은 너무나도 길고도 조금은 아쉬운 추억으로 옮겨졌습니다. 당연히 우리 가족들과는 행복하고, 재밌고, 유익하고, 즐겁게 지냈고요.

그때가 아마 여름 방학이 좀 지난 지 3주일 뒤였습니다. 바로 친척들과 함께 계곡이나 바다에 간 일이 있었습니다. 나는 처음으로 동생들과 친척 언니와 같이 목적지인 익산에 가서 열흘 동안이나 친척집에서 지내다 왔습니다. 바로 엄마, 아빠랑 함께 갔더라면 더욱 더 아쉬울 것도 없고 더 재밌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때, 엄마와 아빠의 뜻은 우리끼리 좀 가서 좋은 경험도 하고 오라는 것이었습니다.

우린 거기에서 계곡에도 가고, 친척들이 많이 모여 있기 때문에 친척집에서 많이 얻어먹고 왔습니다. 특히 선물과 돈도 많이 받고 왔고, 신발도 세 켤레나 받아왔습니다. 그리고 언니들과 명동에도 가서 재밌는 것도 많이 놀고 왔습니다. 정말 일석이조였죠! 그리고 항상 저희에게 잘해주셨죠!

하지만 시간은 정말로 아주 빠른 것 같습니다. 정말로 별로 안된 것 같은데, 벌써 친척 언니들이 우리를 집으로 데려다 주었습니다. 그때 언니들한테 가지 말라고 졸라도 보았지만, 결국은 언니들은 소지품 몇 개를 까먹고 놓고 돌아갔습니다. 사실은 엄마, 아빠가 너무너무 보고 싶고, 친척집에서만 있어서 지루한 적도 있었지만, 정말로 그때로 다시 돌아가고 싶습니다.

이 정도면 누구나 얼마나 재미있었는지 조금은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정말로 절대 잊을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왜 이리 가슴이 설레는지! 다시 그때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좀더 지금하고 싶은 일을 다하고 왔을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이 기회를 통해 한마디를 더 하고 싶습니다. 바로, 언니들! 빨리 소지품 가져가세요!

여 행

高 1-2 馬 慧 珍

난 여행을 아주 많이 다녀 봤다. 부모님이랑, 친척분들이랑, 그리고 친구들이랑도 여행을 다녀봤다. 물론 긴긴 여행은 아니었지만, 짧은 기간에도 좋은 추억들을 만들 수 있는 기회가 적지 않았다.

다녀왔던 곳 중에 내 기억 속에서 가장 잊혀지지 않는 곳은 그리 좋은 곳은 아니다. 어릴 때라 그 섬의 이름은 생각도 나지 않지만 아주 외딴 곳이다. 내 기억으로는 거기는 돈을 내지 않고 있을 수 있었다. 그 때 나는 아빠, 엄마, 고모부, 고모, 그리고 친척 언니, 오빠와 동행했다.

그 곳에 도착하자마자 언니 오빠들과 난 냇가에 들어갔다. 들어갔을 때 처음으로 보인 건 물고기들이 떼를 지어서 헤엄치며 빠른 속도로 다니는 것이었다. 어렸을 적에 나는 하도 남자 아이 같아서 물고기 같은 건 전혀 무서워하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물고기를 잡으려다 빠져서 물을 많이 먹었다. 여름이라서 날씨가 너무너무 더웠다. 엄마는 차가운 물 속에 따로 마련해 오신 수박 몇 통을 넣어서 차갑게 하셨다. 그 때 아빠와 고모부께선 텐트를 치셨다. 그 때 처음으로 텐트 치는 방법을 조금 배웠다. 고모와 엄마는 열심히 밥을 짓고 계셨다.

우리는 밥을 먹고는 또 물에 들어가서 수영을 했다. 생각나는 건 아빠가 나를 등에 태우고 수영을 하다가 날 물에 빠뜨려서 물을 많이 먹었던 일이다. 덕분에 그 후론 물을 조금 겁내곤 했다.

우리 가족은 그렇게 즐겁게 3박 4일 동안 그 섬에서 지냈다. 그 때가 무척 그립다. 지금이라면 엄두도 못 낼 즐거움. 다시 한 번 그 곳에 가게 된다면 그 땐 내가 일하고, 부모님들은 편안히 쉬시게 하고 싶다. 엄마는 내가 그 섬에서 자꾸만 울어대고 속 썩이는 바람에 편하게 지내지도 못하셨을 것이다. 나중에 내가 어른이 되면, 이 여행보다 더욱 더 기억에 남을 수 있는 추억을 만들 여행을 갈 거다. 물론 부모님도 모시고, 내 어릴 적보다 더 기억에 남는 여행을 갈 것이다.






여 행

高 1-2 宇 德 隆

나는 여행 다니는 걸 아주 좋아한다. 나는 거의 가족들과 여행을 많이 다녀 왔다. 그 중에 가장 기억에 남았던 곳은 처음으로 친구들끼리 강원도 동해로 3박 4일 동안 다녀온 그 기억을 지금 되살려 보려 한다.

친구들과 난 여름방학이 되기만을 기다렸다. 처음으로 친구들과 함께 가는 여행이라 무척 들뜨고 큰 기대에 부풀어 있었다. 목적지에 도착하고 나서는 우리의 모든 계획은 바닷가에 텐트를 치고 식사는 우리가 직접 지어서 먹는 즐거움을 만끽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 계획이 모두 엉망이 되어 버렸다. 아주 큰 실망감에 돌아가려고 하던 참에 갑자기 생각 난 사람, 그 전까지 같은 반이었다가 강원도 동해로 이사가 버리는 너무 아쉬웠던 친구, 우린 전화를 했다.

그 친구는 너무도 반갑게 우릴 맞아 주었다. 우리는 이틀 동안 그 친구 집에 묶으면서 조금도 불편함이 없었다. 사흘째 되는 날 그 친구는 우리를 안내하여 동해의 즐거움을 느끼게 해 주었다. 바다에 들어가 수영하고, 모래밭에서 뛰어 놀기도 하였다. 나흘째 되는 날 우리는 떠날 준비를 하고, 그 친구의 부모님께 인사를 드리고 왔다. 그 친구와는 꼭 다시 만나자고 약속을 하고てててててて.

그 친구 덕분에 우리가 내내 모았던 용돈도 절감할 수 있었다. 지금 떠올려 보면 너무나 즐겁고 철없었던 시절인 것 같다. 또 다시 친구와 여행을 가라면, 그 땐 날씨도 정확히 알아두고 완벽한 계획을 짜서 정말로 즐거운 여행을 갈 것이다. 그리곤, 더욱 더 아름다운 추억을 만들 것이다.



여 행

高 1-2 湯 宇 隆

오늘 난 중3 마지막 방학은 즐거웠던 여행을 이 글에 재미나게 써보려 한다. 그 여행은 오랜만에 가족들과 함께 시골에 계신 삼촌 별장에 간 것이다. 우리 삼촌으로 말할 것 같으면, 나이는 50대지만 마음은 20대, 한마디로 이팔청춘이시다. 그래서 그런지 체력이나 활발함은 나보다도 더 좋으시다. 우리 가족을 데리고 시골 구석구석을 구경시켜 주시면서 전혀 지친 구석이 보이질 않으셨다. 마치 프로 가이드처럼てててててて.

우린 저녁에 도착했다. 저녁밥을 먹고 모두들 지쳐 그날 저녁은 참 꿀맛 같은 꿈을 꿨다. 다음날 아침, 우린 삼촌을 따라 시골 뒷산으로 향했다. 가는 도중에 배가 아파 오더니 곧 나올 것 같았다. 어찌할까 생각하는 중에 삼촌 왈, "이 문디 자슥아, 그냥 시냇가에다 누그라." 내가 말했다. "그러면 휴지는 요?", "앞에 잎파리 안 보여? 진짜 서울 촌놈이네!" 난 할 말이 없었다. 그렇게 일을 처리하고, 빠른 걸음으로 뒤따라갔다.

끝이 없어 보이던 산꼭대기에 도착했을 땐 정말로 상쾌했다. 그곳에서 본 풍경은 말로 표현하기 힘들 정도로 아름답고 평화로워 보였다. 파란 바다, 푸른 산, 나무, 논, 노란 벼, 빨간 꽃들, 거기다 열심히 일하는 농부님들 등등이 조화를 이루었다. 별장에 돌아왔을 적에는 벌써 저녁이 다 됐다. 차가운 물로 목욕하는 이 기분도 한 몫을 단단히 했다. 저녁엔 삼촌이 특별히 우리를 위해 진짜 숯불구이를 해 주셨다. 숯이 하얀 재가 됐을 때 우리의 손놀림이 바빠지기 시작하면서 그 많던 고기들이 순식간에 뚝딱!! 별미 중에 별미였다.

그러나 이렇게 즐거울 때 다른 지방은 물난리로 피해를 봤다니 조금 미안한 구석도 없지 않아 있었다.

나중에 만약 또 기회가 있다면, 또 한 번 갔으면 한다.















<우리들의 생활 이야기>

가장 불쌍한

中 3-3 牟 德 芬

어떻게든 살아남으려고 발버둥치는 인간들てててててて. 살아남을 수만 있다면, 욕심만 채울 수 있다면 눈 하나 깜빡이지 않고도 다른 사람을 짓밟을 수 있는 인간들てててててて. 배신할 수 있는 인간들てててててて. 치사하고 이기적인 인간들てててててて. 세상에서 가장 잔인하고 무서운 일을 저지르면서도 오리발 내밀 수 있는 인간들てててててて. 자신의 슬픔이 가장 큰 고통인줄 아는 바보 같은 인간들てててててて. 자신만 만족하면 남의 생각 따윈 중요하지 않은 인간들てててててて. 명예와 재산을 위해서는 어떤 일도 아무렇지 않은 인간들てててててて. 거짓과 위선을 위해 끊임없이 내숭떠는 인간들てててててて. 모두 불쌍하다. 아주 많이てててててて.

하지만 가장 불쌍한 건 이 모든 걸 알면서도 인간일 수밖에 없는 인간―나, 바로 나다.



고등학생이 되어서

高 1-2 馬 慧 珍

나는 고등학생이 되었다. 중학생일 때와는 다른 느낌이 든다. 책임감이랄까? 갑자기 내가 아주 성숙한 어른이 되었다는 색다른 느낌이 든다.

고등학생이 되어서 아주 많은 것이 달라졌다. 내 성격은 물론, 공부, 그리고 담임 선생님과 반 친구들.. 모두 다 새롭다. 하지만 그다지 기쁘진 않다. 중학교 생활 3년 동안 정이 든 친구들 그리고 자상하셨던 선생님들이 너무 그립기 때문이다.

학교 공부도 아주 많은 노력이 필요할 것 같다. 중학교와는 달리 아주 어렵고 힘든 과목들이 너무 많은 것 같다.

고등학생이 되어 아주 좋은 점도 생겼다. 새로운 친구들을 많이 사귈 수 있어서 참 기쁘다. 그리고 너무너무 터프하고 털털하신 우리 담임 주선생님, 때론 무섭기도 하지만 항상 너무너무 상냥하시고 재미있으시다. 고등학생이 되어서 처음으로 본 시험은 너무도 어려웠다. 내가 노력하지 않았던 탓도 있지만 문제가 너무 어려웠던 이유도 없지 않는 것 같다. 앞으론 막막한 고등학교 생활을 힘들어도 잘 헤쳐나가야 하겠다.

고등학생이 되어서 남자친구도 사귀게 되었다. 물론 고등학생답게 건전하게 교제할 것이다. 내 남자친구는 너무도 똑똑하고 착하다. 성적도 상위권이다. 내가 이 친구를 사귀고 느낀 바는 내가 공부가 뒤지면 체면도 안 서고 창피하기 때문에 분발해야겠다는 것이다. 앞으론 열심히 공부할 거다.

나는 앞으로 많은 것을 고쳐나갈 것이다. 그동안 내 그 불건전한 행동에 등을 돌리셨던 선생님들과 날 피했던 반 친구들 모든 걸 바꿀 것이다. 물론 그건 내가 하기에 달렸다.

지금은 아주 많이 좋아진 것 같다. 내가 노력한 만큼 대가를 치르는 것 같다. 앞으로는 고등학생답게 착하고 열심히 공부하는 모범생이 되고 싶다. 고등학생이 되었으니까てててててて.



고등학생이 되어서...

高 1-2 初 君 蓮

나는 고등학생이 되어서 변화가 생겼다. 중학교 생활과는 달리...

우선은 고등학생이 되었다는 부담감으로 공부에 신경을 많이 쓰게 되었고 중학교 때는 그냥 공부도 안하고 놀기만 했었는데 지금은 학원도 다니고 과외도 하고 고등학생이 되니까 많이 바빠졌다. 그리고 집에 들어오는 시간도 늦어졌다. 학원과 과외가 같이 있는 날은 집에 들리지도 못하고 공부만 하다가 집에 가면 시간은 벌써 아홉 시가 훨씬 넘는다. 그리고 숙제 쓰고 또 다른 할 일을 다 하고 나면 열 두 시가 다가온다. 갑자기 이렇게 시간에 쫓겨 살려니까 힘이 많이 든다. 어쩔 때는 후회도 많이 하고 있다. 중학교 때 공부 좀 더 열심히 할걸... 중학교 때 공부를 안 했더니 고등학생이 되니까 많이 힘들다. 내가 만약 다시 중학교 때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진짜로 열심히 공부해서 고등학생이 되어서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

고등학생이 되어서 좋은 점은 친구가 많이 생겼다는 것이다. 중학교 때 친구들과 지금 고등학생이 되어서 새로 사귄 친구들...

고등학생이 되어서 공부 때문에 힘든 건 사실이지만 친구들이 많아서 지금이 더 좋다.

길고도 짧던 날

中 3-1 謝 愼 珍

엄마가 지방에 갈 일이 생겼다. 아빠도 어디 가셔서 나 혼자만 집에 있어야 했다. 할 수 없이 다른 집에 사흘 동안 맡겨졌다. 하루를 무사히 보내고 다음 날, 나는 혜리와 만나기로 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 이 분당이라는 곳에서 차 타는 법을 배웠다. 다행히 무사히 약소 장소에 도착했다(혜리와 나는 만화 페스티발에서 만나기로 했다.).

신나게 구경하고 놀고, 드디어 헤어질 시간이 다가왔다. 나는 지하철까지는 무사히 타고, 다음은 버스 타기. 버스 타는 것까진 잘 했는데, 문제는 내리는 곳이었다. 잘못 내리는 바람에 할 수 없이 걸어가야 했다(버스 타도 모르는 건 똑같으니까). '분당에 있는 아파트'라는 것밖에는 기억하지 못했다. 아파트가 너무 많아서 다 그게 그거였다. 헤매고 또 헤매고, 혼자 자신을 위로하면서, "괜찮아, 금방 찾을 거야. 청춘이야, 청춘." 농담까지 하면서 스스로를 위로했다. 똑같은 곳을 계속 왔다갔다 하다가 결국 지쳐 버렸다. 주저앉아서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 짜증을 내기 시작했다. 신경질이 나고 화가 나고 지치고, 다시 일어나서 걷고 또 걷고, "니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보자"라고 말하면서 끝까지 걸었다. 나중엔 정말 지쳐서 길가에 주저앉아 울기 시작했다. "잉잉, 나 길 모르는데, 아, 아파트가 너무 많아. 으앙, 엄마 나빠! 나 데리고 가지, 으앙, 나 잘 모르는데てててててて" 울고 울고, 나중엔 눈물이 안 나와서 끝까지 빼내려고 했다. 운다고 될 일이 아니라고 처음엔 자신만만하게 얘기했으면서, 지치니까 다 필요 없고, 신경질에 짜증에 두려움이 섞인 눈물이 계속 흘렀다. 생각해 보니까, 내가 탄 차가 이 길에 있으니까 이 차가 지나가는 곳곳마다 찾아보면 되지 않을까 생각하고 다시 털레털레 일어나 걸었다. 그곳에도 아파트가 너무 많았다. 할 수 없이 지쳐서 또 주저앉아 소리 죽이고 울었다.

솔직히 말하면 내가 잘못한 건데てててててて. 인간이란 위험에 처하면 자기 탓을 남 탓으로 돌린다는 게 정말이다. 울면서 계속 내 잘못을 모두 남에게 돌렸다. 언니한테 전화하면 될 것을, 괜히 억지를 부렸다. 결국 소방파출소에 가서 전화하고 데리러 오길 기다렸다.

요번 일요일에 대해서, 나는 융통성 없인 못 산다는 걸 느꼈다.

(우리 집에도 갈 수 있었는데, 못 간 이유는, 며칠 전 꿈에 혼자 있는데 도둑이 드는 꿈을 꿨기 때문)

꿈

高 2-4 曺 慧 珉

사람에게는 모두 각자의 꿈이 있다. 이건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사람들은 그 꿈을 이루기 위하여 노력한다. 나도 그 많은 사람들 가운데 하나이다. 꿈을 이루기 위하여.

모든 사람에게 있어 꿈은 소중한 것이다. 꿈은 희망이며, 그리고 자신에게 살아가는 목표다. 이 목표를 위해 살아가면서 조금씩 조금씩 노력을 하며 달성한다. 그것이 꿈을 이루는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 사람들은 큰 착각을 하며 살고 있다. 지금 이 사회에서 '꿈을 이룬다'는 '아주 큰 꿈을 이룬다'로 인식되어 있다. 물질적으로 풍요로움을 이루거나 사회에서 꼭 명예를 얻어야만 꿈을 이룬다고 생각을 하고 산다. 물론 이 말도 틀린 것은 아니나, 난 꼭 맞다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사소한 것일지라도 그것을 달성한다면 그것 역시도 꿈을 이룬 것이고 또한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다고 생각한다. 생각해 보자. 아직 동심의 세계를 꿈꾸는 아이들은 자신이 가진 꿈에서 점점 멀어져 가고 있다. 과연 그 꿈을 멀어지게 하는 것은 누구일까? 그것은 이 사회이다. 아이들은 순수하다. 아이들의 꿈은 엉뚱한 부분도 있지만 그 나름대로 또렷한 주장이 있다. 하지만 아이들은 커가면서 점점 똑같은 길을 걷게 된다. 일등만 알아주는 그곳으로, 왜냐하면 이 사회는 일등 아닌 이등은 인정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지금 이 사회는 최고만 인정받고, 물질적으로만 탄탄하면 그만이라는 생각들을 갖고 있다. 과연 이것이 올바른 생각들일까? 만약 모두 최고의 학벌과 최고 수재들만 모인다해도 이 사회는 꼭 발전하리란 보장은 없다. 왜냐하면 보이지 않는 곳에서 땀을 흘리고 있는 자가 없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청소부 아저씨가 없다고 한다면 곧바로 쓰레기장과 시궁창 냄새로 못 견딜 것이다. 기사 아저씨 역시도, 만일 버스를 운전하는 사람이 없으면, 많은 사람들이 고생을 할 것이다. 불이 나면 재빨리 달려와 불을 꺼주시는 소방관 아저씨들, 그 외에도 너무나 열심인 분들이 많다. 이것이 진정 꿈을 이룬 자들이 아닐까 생각한다. 최고의 수재들보다, 한 분야의 그 재능을 인정받는 것이 사회에 더 큰 보탬이 있으리라 생각한다. 그렇게 된다면 각기 다른 생각과 주장이, 다른 꿈이 생기고, 아이들 또한 순수하게 꿈을 키워 나갈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세상에는 평범한 사람들이 많다. 성공 뒤에는 항상 실패가 따르는 법, 실패하지 않으려면, 우리는 희망찬 꿈을 향하며, 뒤돌아보며 반성을 하고, 앞을 향하여 열심히 노력을 하며, 노력한 만큼의 대가를 바라야겠다. 우리 모두 진정한 꿈을 향하여 노력하자. 노력하는 것, 그것은 무엇보다도 중요한 일이다.

내게 지금 필요한 것은

高 2-4 王 暦 娟

지금 난 많은 생각과 또 많은 혼란 속에 살고 있다. 세상의 많은 것들을 우습게만 보았던 내 어리석은 생각, 잘 해 나갈거라 믿었던 터무니 없는 자신감, 이제 조금씩 현실을 보려는 나는 그저 서글프기만 하다.

오직 한 가지만을 생각했던 나. 내 인생관, 내 장래의 직업, 그밖에 많은 것들이 이제는 나를 괴롭히는 중이다. 한마디로 나는 그동안 환상 속에서 살고 있었던 것이다. 그저 내 생각만이 중요한 나머지 정작 가장 중요한 현실에 등을 지고 살았던 것이다. 내가 바라보았던 현실은 그저 겉모습뿐이었던 것을, 사회라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것이었는지 왜 난 지금에서야 알게 되었는지てててててて, 내 자신이 형편없다 느껴질 뿐이다.

지금 이런 혼란함 속에서 나는 이제서야 겨우 정신이 든 것 같다. 이러한 내게 가장 중요한 것은 나 자신을 괴롭히는 자학이 아니라 나 자신을 먼저 돌아보아야 한다는 것과 또한 현실에 맞설 용기인 것이다. 내가 지금껏 믿었던 용기라는 것은 '용기'라기 보다는 투정에 가까웠던 것이라는 것을 이제야 알게 된 나는 그동안 너무 많은 실수와 착각 속에서 살아왔다.

하지만 지금은 또 다른 생각을 해 보려 한다. 비록 한심했던 행동들을 잊지는 않겠지만, 과거를 돌이키기보다는 앞으로의 일을 더 생각할 수 있도록 노력을 할 것이다. 그동안 틀린 만큼 이제는 더 이상 헛된 것만 보지는 않을 것이다. 현실이 많이 괴로울지라도 그걸 이겨나가도록 도전을 할 것이다. 겁쟁이가 되어 피해 가려는 마음만은 절대 품지 않을 것이라고 나는 감히 맹세를 한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 난 내 자신을 당당한 한 사람으로서 만들 것이다. 나 스스로에게 절대 부끄럽지 않도록てててててて.

나의 성적

中 3-2 于 秀 莉

요즘 내 성적은 계속 떨어지기만 한다. 내가 자만감이 생겨서일까? 솔직히 말해서 겉으로 표현하지는 않지만, 맘 속 어딘가엔 자만감이라는 단어가 있을지 모른다.

처음 중1 때, 성적표를 받고서 나는 너무 기뻤다. 그때는 정말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성적이 잘 나왔다. 내가 십 등 안에 들어가 있었다. 그때 난 너무 기뻤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이렇게 생각했다. '다음에는 더 열심히 공부해서 부모님을 기쁘게 해 드려야지.' 그래서 난 중1 때 7등에서 4등, 중2 때는 2등까지 성적이 올랐다. 2등てててててて, 정말 나에게는 믿기지 않는 성적이었다.

그런데 요즘 난 그 2등이라는 등수를 지키지는 못 하고 자꾸 밑으로 떨어진다. 이건 아마도 내 노력이 부족한 것 같다. 그래서 난 요즘 조금은 겁이 난다. 난 나에게 '자만하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솔직히 난 맘속으로 자만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어쩔 때는 공부를 하면서도 '어차피 공부를 열심히 해도 1등을 못 할 거, 그냥 대충하지 뭐!' 이런 생각을 종종 한다. 난 내가 이러면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그게 잘 되질 않는다.

이제 난 '1등을 못 한다고 포기하는 것'보다는 '난 1등을 못 해도 최선을 다해야 해. 그래서 등수는 어쨌건 점수를 많이 높여야지'라는 생각을 하기로, 그래서 부모님께 좋은 성적으로 기쁘게 해 드리고 싶다. 아니 기쁘게 해 드릴 것이다!

나의 인생

高 2-1 王 樹 儀

세상에는 별처럼 수많은 사람들이 있다. 그 많은 사람들의 머리 속에는 지금의 나와 같이 앞으로의 일을, 또 자신의 인생을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지금 난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내가 택해야 할 많은 선택 중에서 첫 번째 선택을 하려 하는 중이다.

나는 의사가 되고 싶다. 의사라는 직업은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한 번쯤은 꿈꾸는 그런 직업일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것을 단순히 꿈으로만 만들고 싶지는 않다. 내 자신의 노력으로, 또한 내 힘으로 내 꿈을 이루고 싶은 것이다. '의사'라는 직업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닌 것을 안다. 아마도 많은 절망과 후회를 할 지도 모른다. 하지만 난 이렇게 생각한다. 사람이란 어려운 일을 겪어 가면서 성장을 하는 것이라고てててててて. 그렇기에 나는 결코 쉽게 포기하는 그런 나약한 사람은 되지 않을 것이다.

"왜 의사가 되고 싶어?"라고 묻는 많은 사람들. 쉬운 질문이라 할 수 없는 말. 그렇지만 난 당당하게 말을 한다. "내 손으로 생명을 지키고 싶어!" 솔직히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이 말밖에는 없을 것 같다. 의사라는 것은 사람들, 아니 모든 생명체를 지키기 위함이 아닌가! 그렇기에 나는 오직 그 말만을 반복할 뿐이다. 그 말만을てててててて.

아직은 어리다고만 생각이 들 수 있는 내 나이, 나약하게만 보일 수 있는 많은 것들, 하지만 난 결코 내 자신이 어리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내 선택에 확신을 가질 수 있는 것이고, 또 책임을 질 수 있는 것이라 생각한다.

앞으로 많이 망설이게 될 지도 모를 일이고, 또한 많은 고통을 겪을 지도 모른다. 사실 의사가 되지 않을 수도 있을 거란 생각도 없지 않아 해본다. 그러나 난 결코 쉽게 무릎을 꿇지는 않을 것이라 다짐한다. 절대로!


독 서

高 1-2 裵 嘉 惠

요즘 학생들은 영상화된 시대에 살면서 독서를 많이 하지 않는 것 같다. 물론 나 또한 예외는 아니다. 그렇다고 독서의 중요성을 모르는 것 같지도 않다. 오늘 독서에 대해서 이야기 해보자.

사람들 중 독서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하지만 우리 학생들은 주로 만화책인 것 같다. 독서하는 습관은 어려서부터 길러야 하는 것이다. 나부터도 만화책을 보다가 소설이나 수필 같은 문학을 보려 하니 여간 힘든 것이 아니다. 책방에 가면 소설이나 시집보다는 만화가 더 많다. 이런 것들을 보면 사람들은 독서를 즐기지 않을 것 같다. 내가 즐겨보는 책 1순위 또한 만화다. 이것을 제외하고는 시집, 체험수기 또는 보고형식의 문장들을 본다. 그 중에선 무엇보다도 시집이 가장 재미있다. 다른 사람들은 어떨지 몰라도 난 소설을 보지 않는다. 이유는 소설이란 가상 속에선 어떠한 표본도 없다. 자신의 상상력, 그리고 이해력만 존재한다. 이런 가상이 싫지는 않아도 그 많은 글 속의 뜻을 모두 그리긴 힘든 것 같다. 아직 습관이 안되어서 그런 것 일 수도 있다. 하지만 좀 어려운 문장이어도 난 소설이나 수필보단 시나 수기를 좋아한다. 시는 짧은 글 속에서 나에게 무언가를 준다. 수기 또한 읽으면 읽을수록 재미있고 여러 가지 일이 벌어지는 세상이란 생각이 든다. 그래서 난 다른 독서는 즐기지 않아도 시는 굉장히 좋아하고 많이 접하려고 노력 중이다.

독서는 굉장히 중요한 생활 습관이다. 시대가 변하여 컴퓨터가 자료를 제공하고, TV에서 정보를 얻고, 라디오에서 상식을 배운다 해도 책에 숨겨진 그 무한한 지식을 따를 순 없을 것이다.

나 또한 소설을 읽도록 더 노력해야겠다. "독서" 그것은 영원히 변치 않을 배움의 진리이고 누구나 즐겁게 행해야 하는 우리 안에 있는 생활 방법이기도 한다. 세상이 아무리 편리해지고 빨라지더라도 독서, 책은 존재할 것이다.

L'arc∼en∼ciel의 노래를 듣고

中 2-1 李 梅 蘭

나는 일본가수 L'arcenciel이라는 비주얼 락 계통의 그룹을 좋아한다. 이들을 일명 '라르크'라고 부르는데, 난 이 그룹을 안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약 6∼8개월 정도てててててて. 처음에 난 잡지에서 본 L'arcenciel이라는 그룹이 그저 잘 생겼다는 생각으로 좋아하게 되었고, 그렇게 알게 되었다. 난 원래 일본문화에 관심이 있어서 그 후 '라르크'라는 그룹을 자주 접하게 되었다. 그래서 이들의 CD를 사서 들어보았다. 최근에 나온 싱글 CD 2장 중 Ray라는 것을 들었는데 사람들은 이 곡이 '情'적인 느낌이 든다고 말들 했었다. 그래서 노래를 들어 봤는데 난 너무 놀랐다. 왜냐면 상상 이상으로 너무 멋있는 연주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 그룹은 4명으로 구성됐는데, 보컬 Hyde와 드럼 유키히로, 베이스 Tetsu, 기타 켄으로 구성되었다. 이들의 연주와 보컬의 목소리는 환상적이었고 조화가 잘 되었다. 내가 보컬을 좋아해서 그렇게 들렸을지도 모르지만 정말 너무 멋있었다. CD에는 총 11곡이 수록돼 있는데 난 그 중 Honey와 Snow Drop이라는 노래가 제일 좋았다. 특히 Snow Drop에서 간주 중에 흘러나오는 기타사운드는 내 몸에 흥분을 가져다주었다. 마치 질주하는 표범 같은 느낌이 들었다. 굉장히 박력 있는 사운드였다. 이 기타를 연주하는 켄은 일본에서 열 손가락 안에 꼽힐 정도로 기타를 잘 친다는 소리도 들은 적이 있다고 한다. 그리고 보컬의 목소리는 한 곡에서 굉장한 저음과 가성과 섹시하고 밝은 소리를 내는데, 아! 이 보컬은 굉장히 다양한 목소리를 내는구나 하고 생각했다. 물론 다른 노래도 너무 너무 좋았다. 곡을 만드는 자신들의 특징을 잘 살리고 있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나는 기회가 된다면 여러 사람에게 '라르크' 이들의 노래를 들려주고 싶다.


만약 손이 없다면

高 2-4 徐 玉 娜

우리의 손은 일상 생활에서 꼭 필요한 도구 중 하나다. 그런데 만약 우리의 손이 없어진다면 어떻게 될까? 상상을 해 봤는데 정말 끔찍했다. 이 세상 모든 사람들도 다 동감할 것이다.

손이 없다면 우리의 일용할 양식은 어떻게 먹고, 우리의 외모는 어떻게 될 것인가? 또한 글을 못 쓰니 편지도 못 보낼 것이며, 운전은 더더욱 할 수 없을 것이다. 이밖에도 더 많겠지만. 그러므로 우린 이 두 손을 정말 아끼고 정말 많은 데에 활용해야 할 것이다.

내가 우연히 TV를 봤는데, 일본에서 어떤 학생은 어렸을 때부터 두 팔과 손이 없었다. 그런데 꿋꿋이 이겨내 지금은 일본에서 유명한 대학의 학생이며, 팔이 없는데도 자기가 좋아하는 수영을 하면서 수영 대회에 우승까지 했다. 난 그 상황이라면 정말 살고 싶은 맘이 없을 것 같은데てててててて. 하지만 그 사람은 단지 손만 없을 뿐, 다른 것은 정상이라고 생각했기에 이렇게 살아갈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난 이 이야기를 본 뒤, 부끄러움을 느꼈다. 그래서 난 이렇게 좋은 환경을 주신 부모님께 감사드린다. 나도 이 손을 통해 정말 좋은 데에 많이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만화 페스티발에 다녀와서

中 2-1 李 梅 蘭

방학 동안 나는 친한 친구와 함께 SICHF라는 국제 만화 페스티발이라는 행사에 다녀왔다. 친구와 나는 개장 시간에 맞춰 갔지만 첫날이라 그런지 사람들의 줄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우리도 그 줄에 섞여 약 30분 간 기다린 다음에야 행사장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그 곳 안에는 만화와 에니메이션에 관한 것들이 엄청나게 많았다. 나와 친구는 평소에도 이런 것들에 관심이 있어서 너무 신기하고 재미있었다. 그 곳에는 만화 재료와 도구를 파는 곳도 있었고, 만화책을 파는 곳도 있었다. 그리고 시간마다 각국의 에니메이션을 상영해 주기도 하였다. 나는 '바사라'라는 만화책을 샀다. 우리는 여러 곳을 둘러보며 많은 것을 보고 재미도 느꼈다.

내가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만화가들의 원화였다. 일본과 한국의 만화가들이 대부분이어서 그림은 모두 내가 아는 것이었고, 그림도 굉장히 예뻤다. 그것을 보고, 난 만화는 '마술의 손'이라고 생각했다. 하얀 종이 위에 그렇게 아름다운 그림을 그릴 수 있다니, 놀라웠다. 한편에는 유치원, 초중고생들의 그림이 걸려 있었다. 썩 잘 그렸다고는 볼 수 없었지만 그런 대로 개성이 있었다. 구석에는 아마추어들이 만든 회지와 직접 그려 코팅하고 열쇠고리로 만들어 파는 부스도 있었다. 비록 아마추어라는 이름을 달고 있지만 그림 솜씨 등은 프로 못지 않았다. '나도 좀더 크면 이런 활동을 한 번 해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모두 둘러보고 나왔을 땐 태양이 쨍쨍 내리쬐고 있었다. 예상보다 일찍 둘러보고 나왔기 때문에 집에 일찍 돌아왔다. 집에 돌아와 그곳에서 받은 부채 3개를 보면서 오늘 하루는 방학 중 가장 재미있었던 날이 될 거라고 생각했다.

며칠 뒤, 신문에 SICHF 행사에 대해 기사가 나왔다. 그 기사에는 SICHF의 좋은 점과 나쁜 점이 써 있었다. 나는 그 기사를 읽고 '아, 이런 문제점과 좋은 점이 있었구나' 하고 생각했다.

Backstreet Boys 영상회

中 2-1 王 惠 里

<1>

즐거운 방학은 끝났지만 나의 마음엔 아직 못 잊을 즐거움이 있다. 여름방학 때 날짜는 정확히 8월 15일 광복절 일요일 12시, 내가 제일 좋아하는 가수 백 스트리트 보이즈의 영상회 날이다. 나는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백스트리트 보이즈의 노래를 좋아해서 그 날은 무슨 일이 있어도 꼭 가야 한다는 집념 때문에 가게 된 것이다. 나는 항상 즐거울 때나 슬플 때 내가 제일 좋아하는 가수 백 스트리트 보이즈의 음악을 듣는다. 그래서 매일 백 스트리트 보이즈의 사서함을 듣고 영상회는 꼭 챙겨서 간다.

8월 15일 12시에 돈암동 벡스테이지 지하 1층에서 화려한 영상회가 시작했다. 이런 영상회는 백 스트리트 보이즈 팬클럽 회장이 열고 관리하는데 그날 회장이 우리에게 백 스트리트 보이즈의 최신 올랜도 콘서트와 농구하는 모습 등등 여러 가지를 보여 주었다. 그 순간 이날만을 기다린 수 십 명의 팬들은 다 함께 소리를 질렀다. 나도 내 친구와 소리를 크게 질렀다. 이 순간 쌓여 있던 스트레스가 없어지고 몸에는 엔돌핀이 솟아나는 것 같았다. 누가 보면 나를 미친 사람이라고 이야기하겠지만 나는 멀쩡하고 그냥 내가 좋아하는 음악과 가수가 열심히 열창하는 것을 보고 "아 역시 내가 좋아하는 가수는 뭔가 다르구나!"라는 생각에 소리를 지른 것 뿐이다.

나는 앞으로도 오로지 백 스트리트 보이즈를 영원히 사랑할 것이다. 또한 그들을 영원히 내 가슴속에 간직할 것이다.

<2>음악을 듣는 느낌

어려서부터 여러 음악을 들어왔지만 나는 내가 초등학교 5학년 때에 들었던 그 음악을 못 잊는다. 바로 Backstreet Boys의 음악이다. 마음이 아플 때, 속상한 일이 있을 때, 신경이 날카로워지면 Backstreet Boys의 음악을 들으면 그 모든 스트레스가 모두 다 없어지며 나의 몸 안에는 엔돌핀이 쏟아진다.

난 이미 Backstreet Boys의 팬클럽에 들었다. 물론 팬클럽을 한다고 다 좋은 것은 아니지만 내가 제일 사랑하는 아름다운 음악을 부른 그 다섯 명을 볼 수 있다면, 음악을 계속 들을 수 있다면 난 정말 그 무엇이라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렇지만 그렇다고 이성을 잃으면서까지는 아니다. 난 지금 나의 부모님께 감사드리고 싶다. 팬클럽을 들게 해 준 거에 대해서, 또 Backstreet Boys의 CD를 사게 해주시고 부모님도 나와 함께 어깨동무를 하며 함께 들으시니까てててててて.

난 앞으로 영원히 Backstreet Boys 음악을 사랑하며 나의 일을 충실히 하면서 그 다섯 명의 음악을 들을 것이다.

I Love Backstreet Boys Forever!!

새로운 교과서, 만화

中 3-2 邢 黛 麗

얼마 전 서울 국제 만화 페스티벌에 다녀왔습니다. '겨우 만화 페스티벌인데 뭐 볼 게 있나'하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거기를 가보면 정말 놀라서 입을 다물지 못합니다. 그곳은 정말 만화를 사랑하는 만화인들만 모였습니다.

만화는 현재 어른들한테서 많은 비판을 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분들도 어릴 적엔 만화책 한두 권 정도 넘겨 본 경험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공부에 방해된다는 말도 안 되는 이유로 만화를 보지 못하게 하는 건 아주 큰 잘못입니다.

사람들은 만화를 보면서도 많은 것을 배우게 됩니다. 추리만화에서 상식을, 댄스만화에서 리듬을, 스포츠만화에서 스포츠맨쉽을. 이렇게 만화를 보면서도 각자의 꿈을 키워 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전 만화를 "인기 받는 교과서"라고 표현하고 싶습니다.

선생님과 친구들에게 하고 싶은 말

中 2-1 湯 志 隆

난 항상 학교에 오면 스트레스를 받는다. 왜냐하면 오늘은 또 어떤 야단을 맞을까하는 생각 때문이다. 난 반장이기 때문에 항상 대표로 혼나고 때론 대표로 맞는다. 수업시간에 친구들이 떠들고 노는 걸 선생님들은 내가 먼저 떠들었다며 한 대 쾅!!

난 이해가 안 된다. 왜 학교에서는 반장을 가만히 안 두지? 반장은 꼭 배로 더 힘들고 배로 더 맞고 반장의 자유는 눈꼽만큼도 없나? 그리고 우리 학교는 반장을 너무 괴롭힌다. 더군다나 친구들도 짜증나, 중요한 일인데 내가 목 터져라 외쳐도 듣는 척도 안 하고, 놀기 바쁜데てててててて.

앞으로 우리 학교는 반장을 한번만 더 생각해주고, 친구들도 반장을 조금만 더 존중해주길 바란다.(부탁!!)

마지막으로 추신 P.S. 교장선생님 선생님만 좋은 컴퓨터 쓰지 말고 우리도 좋은 컴퓨터, Win3.1이 아닌 Win98 팬티엄으로 바꿔주세요. Please.

10년 뒤의 나

高 2-1 吳 明 蕙

10년 뒤의 나てててててて. 요즘 생각하는 것이지만, 난 락(ROCK) 가수가 되고 싶다. 락 가수, 보통 댄스 가수가 아닌 정말 가창력 있고 멋진 그런 보컬이 되고 싶다. 비록 부모님이 반대는 하겠지만, 그래도 정말 하고 싶은 마음이 가끔 나를 흥분되게 한다.

X-JAPAN의 노래를 처음 듣고 많은 영향을 받았다. 평상시에 볼 때에는 그저 남자들이 머리를 헝클고, 치마를 입고, 그것도 모자라서 화장까지, 정말 제정신인지 알고 싶을 만큼 대단한 차림새였다. 하지만 그런 생각도 잠시, 우연하게 그들이 콘서트 하는 장면을 담은 비디오를 보게 되었다. 정말 황홀했다! 그 후로 난 락에 관심을 많이 갖게 되었고, 일본의 락 그룹뿐만 아니라 한국의 락 그룹 또한 대단하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더구나 EVE라는 락 그룹의 팬클럽에 들 정도로 관심을 많이 갖게 되었다.

내가 락 가수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완전히 굳힌 것은 이번 주 토요일 EVE의 콘서트를 보고 나서였는데, 그 열기와 멋진 연주, 보컬의 매력적인 목소리, 그 모든 것이 나를 흥분하게 하였다. 나도 정말 그런 멋진 보컬이 되고 싶다.

10년 뒤의 나의 모습, 아직은 상상할 수 없지만, 그래도 정말 상상을 한다면 락 가수가 되어 있는 그런 나를 상상하고 싶다.

내가 10년 뒤에 정말 락 가수가 될 수 있을까? 락 가수가 됐으면 한다.

10년 뒤의 나

高 2-1 田 序 靜

사람들은 각자 자기의 꿈이 있고, 희망이 있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다 꿈과 희망을 향해 매일 노력하고 달려가고 있습니다. 과연 십 년 뒤의 나는 어떤 모습일까요? 이 문제는 누구든지 다 한 번쯤은 생각해보지 않았을까요?

어렸을 때부터 저의 꿈은 실력 있고 일에 충실할 수 있는 의사가 되는 것입니다. 물론 제가 생각하고 있는 십 년 뒤의 저도 당연히 의사가 돼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알고도 모르는 것이 인생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제가 지금 상상하고 있는 것보다 더 좋을 수도 있고, 더 불행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미래가 궁금하여 점쟁이든지 매복자를 찾아갑니다. 그리고 그들이 하는 말을 다 믿는 것입니다. 정말 어이없지 않습니까? 자기의 미래는 자기의 노력만큼 자신이 개척해 나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당신이 어느 처지에 있어도, 당신의 미래만큼은 저 별, 저 태양보다도 밝고 환합니다.

10년 뒤의 제가 어떻게 되어 있어도 저는 후회하지 않을 겁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바로 제가 노력한 만큼이니까요.





10년 뒤의 내 모습

高 2-4 高 華 虹

"10년 후의 내 모습"이라てててててて. 정말 궁금하다. 어떤 모습으로 변해 있을지, 또 어떤 어려움이 다가올지, 걱정 또한 이만저만이 아니다.

훌쩍 커버린 내가 지내온 시간만큼 꿈도 많았다. 그중 너무나 되고 싶었던 '스튜어디스'てててててて. 이 꿈만큼은 정말 이루고 싶었는데てててててて. 하늘이 허락할 리가 없었다. 시력도 낮고, 키도 작고, 예쁘지도 않은 내가 어째서 그런 자리를 탐내고 있었을까?! 언제부터인가 나는 다른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꼭 '약사'가 되고 싶다. "잘해낼 수 있을까?" "포기할까"등 나에 대한 의심은 지금까지 멈출 줄 모른다. 그러나 이번만큼은 굳은 나의 의지에 기대를 걸어본다. 열심히 해야겠다. 이젠 다 컸으니 미래를 위해서 한 발 한 발 내딛고 싶다. 10년이든, 20년이든, 몇 십 년이 걸린다 하여도, 꼭 성공하여, 웃음 지으며 지금의 나를 되새겨보며 흐뭇해 할 수 있기를 나는 바란다.

'10년 후에てててててて.' 아직 시간은 넉넉한 것 같다. 10년 후에 내가 무엇이 되어 있든 간에 지금 선택에 절대 후회는 않을 것이다. 아니, 후회하지 않길 바란다. 또한 성공했더라도, 욕심 내지 않고 그 상황에 만족하며, 처음 시작할 때처럼 언제나 긴장을 늦추지 않고 열심히 앞을 향해 뛰길 나 자신에게 희망한다.

10년 뒤의 내 모습

高 2-4 李 在 羲

10년 뒤의 내 모습이라てててててて, 정말 상상만 해도 즐겁다. 10년 뒤의 내 모습은 과연 어떨까? 여러 가지 상상을 해봤다.

10년 뒤라면 난 27살てててててて. 아마도 내가 이루고픈 꿈을 이루고 행복하게 살고 있겠지? 아마 열심히 공부하여 약사가 된 뒤에 좋은 남자를 만나 결혼하여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있을 것이다. 예쁜 새댁 치마에 장바구니てててててて, 물론 내가 약사가 된다면 이러기는 힘들 테지만, 그래도 난 우리 엄마가 했던 것처럼 장바구니를 들고 시장을 보고 싶다. 여러 가지 반찬거리를 사고 남편을 위해 밥을 짓는 행복감, 아마도 우리 엄마가 느끼는 그런 행복한 감정일 것이다! 그리고 아주 예쁜 아기도 있었으면 좋겠다. 아이와 함께 하는 시간 동안은 왠지 나 자신도 동심의 세계로 빠져들 것 같다. 물론 그 와중에 난 내 본분인 약사 일을 잊지 않고, 몸이 아픈 사람에게 약을 지어주고 있을 것이다.

이렇게 모든 사람들에게 항상 필요한 사람이 되어있기를 바란다. 물론 모든 사람들에게 필요한 사람이 되려면 항상 열심히 노력해야 할 것이다. 난 내 10년 뒤의 모습을 위해 지금부터 열심히 노력할 것이다.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을 기쁘게 해 주고, 행복하게 해 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있기를 정말 간절히 바란다. 10년 뒤의 내 모습이 내가 상상한 대로의 모습이 되어있기를 바라고, 10년 뒤의 나의 가정이 내가 상상한 대로의 행복하고 단란한 가정이 되어 있기를 바란다.

물론 그리 큰 꿈은 아니지만, 난 내 자신이 이렇게 되기 위하여 열심히 노력할 것이고, 항상 모든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도록 또한 노력할 것이다!!.

13일의 금요일

中 3-1 韓 仁 嘉

오늘은 8월 13일이다. 바로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그날―13일의 금요일이다. 많은 사람들이 13일의 금요일은 불길한 날이라고, 건물의 l3층도 불길한 층이며, 13이란 숫자는 대체로 불길하다고 생각한다. 어떻게 해서 그렇게 되었는지 정확히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 것 같지만 그럴듯한 설명이 많이 있다.

그 한 가지 생각은 최후의 만찬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그 만찬에는 예수를 포함해서 13명의 사람들이 있었는데, 유다가 13번째 손님인 것으로 생각되었다고 한다.

몇몇 고대 유럽종교에는 열 두 명의 선(善)신과 한 명의 악(惡)신이 있었는데, 그 악신을 13번째 신이라 불렀다. 그리고 마녀들의 연회라고 불리는 마녀들의 모임에는 적어도 13명의 마녀가 필요하다고 하는데てててててて.

금요일 또한 오랫동안 불길한 날로 간주되어 왔는데, 아마도 예수가 금요일에 죽었기 때문인 것 같다. 금요일과 13이라는 숫자 둘 다 불길하다고 생각되기 때문에 13일의 금요일은 가장 불길한 날로 여겨진다.

어렸을 때 친구들은 13일의 금요일마다 서로에게 말해준다. "너 오늘 집에 갈 때 조심해. 일곱 시 지나고 밖에 나가지마. 그 시간에 유령이 돌아다닌대!"라고. 나는 겁이 많아서 그 말을 진짜로 믿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니 내가 바보였던 것 같다.

나는 지금 13일의 금요일을 두려워하지도 무서워하지도 않는다.

아르바이트를 찾아

高 2-4 劉 玉 莉

"이번 방학 때는 아르바이트를 해야지!" 방학 전부터 계획한 일이다. 그리고 지금은 방학. 난 방학하자마자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신문도 뒤져가면서 내가 할 수 있는 아르바이트를 찾아다녔다. 전단지 돌리기! 난 친구와 같이 전단지 아르바이트를 하기로 했다.

다음날, 친구와 같이 전단지를 돌리기 위해 가게를 찾아갔다. 그런데 우리가 생각했던 것과 너무나도 틀렸다. 너무너무 힘이 들고 또 그만큼 수입이 적기 때문이었다. 결국 우린 그만둬야 했다. IMF 후 집안이 어려워져서 내 손으로 돈을 벌어 보려고 했지만, 일자리 하나 찾는 것도 이렇게 힘이 드는데 정말 엄마 아빤 너무 고생하신다.

전부터 해온 굳은 결심이기 때문에 여기서 멈출 수는 없었다. 다음날 또 친구와 같이 어렵게 찾은 일터로 출발했다. 아니, 그런데 이게 웬일, 버스를 잘못 탄 것이다. 낯선 곳에서 내려 우리는 둘 다 허둥지둥. 길가는 사람에게 물어 봐 겨우겨우 집으로 왔지만 4천 원이라는 어마어마한 돈을 차비로 몽땅 날렸다. 완전히 돈을 벌려고 나간 것이 아니라 돈을 쓰려고 나간 게 되어 버렸다. 정말 눈물이 핑 돌았다. 친구는 안 한다고 그랬다. 하지만 포기할 수 없는 일. 이젠 오기로라도 하고 만다고てててててて.

그러나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난 아르바이트를 하려는 이유가 무조건 돈, 오직 돈을 벌기 위해서였기 때문에 고생 같은 건 생각 못하고 조금만 힘이 들어도 그만뒀던 것이다. 한마디로 내 눈엔 돈만 보였던 것이다. 돈에 눈이 멀었던 거였다. 난 먼저 마음을 다시 먹기로 했다.

오늘도 난 아르바이트를 찾고 있다. 한편으로는 결국 돈만 또 쓸 텐데 하는 생각도 없지 않지만, 이제는 내가 아르바이트를 하려는 목적이 바뀌었다. 아르바이트를 하며 고생도 해보고, 방학을 낭비하고 싶지 않아서이다. 물론 돈도 벌어가며てててててて.



We Are The Future

中 2-1 王 玉 華

요즘 우리 어른들은 자기 자식들한테 이렇게 말합니다. "니들이 곧 우리 나라의 미래다." 그러면서 "이것도 안돼! 저것도 안돼!"하며 어른들은 자신들 맘대로 이거 하고 저거 하고, 그렇다고 안 하면 "왜 어른 말을 안 들어, 다 너 하나 잘 되라는 건데てててててて" 하신다. 근데 우리는 어쩔 때 정말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이걸 요즘 흔히 쓰는 말로 표현하자면 '세대차이'입니다.

요즘 우리가 흔히 입는 힙합 바지, 사이즈 큰 신발 등, 몇몇 어른은 예쁘다고 말하지만 또 그에 맞선 반대의 소리도 만만치 않습니다. 도대체 왜 그럴까요? 힙합 바진 너무 편하고 신발은 자기 발에 한 5cm, 10cm 크게 신으면 예쁜 거 같은데てててててて. 어른들이 우릴 이해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니들은 장차 나라의 미래다" 만약 이 말대로 정말 우리가 미래라고 생각하신다면 우리들을 좀 이해해주시고 좀 우리 스스로 자기 일을 처리할 수 있게 지켜봐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우리 미래의 주도자가 될 학생 여러분들에게 전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우리의 미래들이여! 날개를 활짝 펴라!!"

유 행

高 2-4 馬 燕 萍

요즘 아이들은 유행을 아주 많이 따르는 편이다. 나 역시도 그 중에 한 사람이고, 이른바 신세대라고 불리는 아이라면 누구보다 더 의상, 머리, 화장 이런 데에 관심이 많을 거다.

하지만 난 유행을 따라가는 것보다는 자기만의 개성을 가져보는 것이 훨씬 더 그 나름대로 좋아 보인다. 남들이 안 한 것에 더 관심이 가고, 또 유행을 그저 따라가기보다는 유행하는 것에 나만의 멋을 더해서 하는 것도 괜찮은 아이디어다.

나는 유행을 싫어하는 것만도 아니다. 그러나 유행을 그저 따라 가다보면 끝이 없고, 그만큼의 자금도 많이 들어간다. 그리고 우린 지금 학생 신분으로 낭비를 하는 것도 안 되는 것이고, 또 그때그때 유행하는 옷을 사고 머리를 하면 분명 몇 달이 지난 뒤에는 또 다른 유행이 찾아오기에 쓸모가 없어진다. 이런 것이 모두 낭비투성이다. 그래서 난 좀더 실용적이고 단순하면서 예쁘고 편한 옷을 즐겨 입는다.

유행에 적당히 따르는 것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정도를 넘기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옷뿐만 아니라 모든 면에서도 그렇다. 요즘 청소년 흡연 문제도 심각하다. 영화나 드라마 같은 데서 누가 멋지게 담배를 피면 멋있어 보인다는 이유 하나로 유행처럼 빨리 번져 우선 피고 싶다는 충동에 빠지고 만다.

이런 면을 본다면 유행의 좋고 나쁨의 뜻을 잘 알고 따라 갔으면 한다. 좋은 면의 유행이라면 따라가도 괜찮을 것이다.

20년 후

高 2-1 賀 昭 允

나에겐 고민이 있다. 그것은 바로 뚜렷한 목표가 없다는 것이다. 앞으로 내가 무엇을 해야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2년만 있으면 대학 진학을 해야하는 나로서는 목표가 없다는 것은 커다란 고민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이 글을 쓰면서 나는 미래의 나, 20년 후의 나를 이렇게 생각하게 되었다.

20년 후, 나는 한 가정의 어머니와 아내가 되어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가정을 아주 화목하게 가꿀 것이다. 내가 이토록 가정을 먼저 이루고 싶은 것은, 안정된 가족이 있는 사람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따뜻한 집과 가족이 있는 사람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보물을 지닌 사람이며, 그 보물은 그 어떤 값비싼 보석과도 바꿀 수 없을 것이다.

또한 20년 후의 나는, 내가 맡은 분야에서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 될 것이다. 가정에서나 직장에서나, 그저 우수하게 평가되기 위해서만 노력하기보다는 내가 맡은 일들을 책임감 있게, 흠 잡힐 곳 없이 완벽하게 해내는 사람이고 싶다.

20년 후의 나는 여유가 있는 사람이었으면 한다. 생활에 쫓겨 삶의 중요한 것들을 놓치고 살기보다는 여러 곳을 돌아다니며 많이 배우고 느끼고 싶다. 또한 나보다 어려운 사람을 돌아볼 수 있는, 나보다 다른 사람을 먼저 위할 수 있는 넓은 마음을 갖고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20년 후의 나는 출세해서 많은 돈을 가진 사람보다,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친구가 많은 사람이 되고 싶다. 그때의 친구도 지금 친구처럼 나와 통하는 게 많은 친구라면 더 바랄 게 없을 것이다.

20년 후의 나는 부모님과 친구 같은 딸이고 싶다. 또한 부모님의 은혜에 조금이나마 보답할 수 있는 딸이 될 것이다.

20년 후의 나는, 내가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었으면 좋겠다. 그것이 작은 일이든 큰일이든 내가 원하는 일을 하며 그 일을 통해 성취감을 느끼고 싶다.

20년 후의 나, 생각해보면 아득한 먼 미래처럼 느껴지지만, 난 지금부터 차근차근 미래를 준비할 것이다. 그렇다면 20년 후의 나는 충분히 행복한 사람이 되어 있을 것이라 믿는다.

"자유" 그 자체만으로도

高 2-4 劉 貞 希

"자유", 이 말만으로도 왠지 편해진다. 우리가 알고 있는 자유란, 자신이 하고 싶은 대로, 구속받지 않는 대로, 그래서 한 번쯤 탈선까지도 해보는 것てててててて, 하지만 이런 게 정말 자유일까?!

나도 한때는 자유란 게 그런 것인 줄 알았다. 하지만 그런 건 자유를 느낄 줄 모르는 사람들이나 하는 짓이다. 비록 나 또한 자유를 느낄 수 있다고 보장은 할 수 없지만, 느낄 수 없다면てててててて, 자유를 찾는다.

내 자유는, 지겨운 수업 중에도 창 밖에 있는 풍경들과 많은 물체들, 그리고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보는 것이다. 누가 들으면 "그게 뭐가 자유야!", "너무 처량하다"라고도 할 것이다. 하지만 창 밖의 모습을 보고 자유롭게 상상할 수 있는 것도 자유라고 생각한다. 가급적이면 남에게 피해 안 주고, 나한테도 피해 안 주는 것, 그런 점에서 난 창 밖의 자유를 느낀다.

창 밖을 보면 마치 내가 그곳에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어떤 날은 그 집에서 잠을 자는 상상, 어떤 날은 하늘을 나는 상상てててててて. 난 이렇게 상상을 하면 자유를 느낀다.

누구나 자유가 있다. 하지만 날개를 줘도 날 수 없는 사람과 날개를 주지 않아도 잘 나는 사람이 있듯이, 아직 날 수 없는 사람은 자신이 자유가 없다고 생각한다. 난 그런 사람들에게 말해주고 싶다.

"당신들이 자유가 없다고 느낀다면, 차라리 나처럼 작은 것에서도 자유를 찾도록 노력해 보세요てててててて"하고.

중학교 3학년이 되고서

中 3-2 馬 智 馨

새로운 학기가 시작되었다. 이제 나도 졸업반이다. 친구들보다는 일 년이 늦은 학년이지만, 열심히 다시 시작하려고 한다. 다른 친구들은 고등학교에 들어갔다. 부럽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다. 난 지금 후배들과 수업을 받고 있다.

유급! 이 두 글자는 나의 친구와 멀어지게 하고, 부모님께 불효와 실망을 드렸다. 그 땐 정말 착잡하고 미칠 것만 같았다. 지금은 열심히 공부를 하려고 한다. 그렇지만 조금은 어려움을 느낀다. 역시 기초가 부족한 것 같다.

3학년이 되고 나서 난 점점 더 공부에 집중을 못하는 것 같고, 자꾸 밖에서 맴돌게 된다. 집에서 있으면 근심걱정이 많아지고, 스트레스가 싸여온다. 그래서 난 결심을 하고 싶다. 이번엔 열심히 해서, 졸업을 하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그리고 난 당당하게 공부를 하고, 부모님께 기쁨을 한 번이라도 드리고 싶다.

지금 내 꿈은 한 번 열심히 해서 대학을 가보는 것이다. 자신은 없지만, 지금 공부를 안 하면 나중에 후회할 것 같아서てててててて. 그래서 난 그냥 앞으로 나가고 싶다.

중학교 3학년이 되고서

中 3-2 徐 吉 全

"학생 여러분, 안녕하세요! 새 학기가 시작됐습니다! 이 말을 듣고 나의 마음이 왜 그렇게 신이 나는지 몰랐다. 새 학기라서 그런가? 친구들을 만나서 그런가? 3학년이 되어서 그런가? 아하! 바로 3학년이 되어서 그렇구나.

개학식이 끝난 그날, 나는 친구들과 함께 "3학년, 3학년, 3학년"을 외치면서 집으로 걸어가는 순간, 갑자기 옆에 있던 친구 여서원이 말을 걸었는데, "얘들아! 3학년이 되어서 좋니? 나는 두 가지 좋은 점과 나쁜 점이 있어. 좋은 점은 졸업여행을 가는 것과 형이 되는 것이고, 나쁜 점은 졸업시험을 보니까 공부를 열심히 해야 되는 게 싫어! 싫어! 싫어!" 이 말을 듣자 나의 마음은 반으로 찢어지는 것만 같았다. 하지만 나는 여서원이 하는 말을 당장 까먹고 마음을 하늘에 대고 3학년을 아주 유익하게 지내겠다고 나와 약속을 했다.

3학년이 되자 우리들은 새 책을 가지고 새 교실에서 수업을 하는 게 너무나도 기분이 좋았다. 나는 3학년 생활을 의미 있게 지내 고등학교에 올라가서도 나에게 기쁨을 주는 추억으로 만들어 보고자 한다.

중학교 3학년이 되고서

中 3-2 孫 文 誼

세월이 지나 중1이 되었다. 세월이 또 지나지나 중3이 되었다. 중3이 되니 뭔가가 틀려진 것 같다. 성숙해졌다고나 할까?

중학생 중에 고참인 우리들, 왠지 모르게 자신감과 책임감이 생긴 것 같다. 중3이 되면 공부도 많이 어려워진다고 하던데, 아직까지는 별로 어렵고 힘든 것은 없다. 앞으로가 걱정이다.

엊그제가 중2 올라온 것 같은데 벌써 중3이라니, 세월 참 빠르네! 중3이 되니 선생님도 많이 바뀌었다. 반 친구들도 많이 변했다. 키도 더 커졌고 머리색도 좀 바뀌었고, 교복이 좀 줄어든 친구도 있다. 목소리가 변한 친구도 있다. 난 다른 사람 보기에 얼마만큼 변했을까?

중3은 청소년 시기의 중간쯤 있어서 걱정이 더 많을 거라 하는데, 정말 그렇다. 왜 이리 답답하고 공부가 하기 싫은지. 꿈은 있고, 공부는 하기 싫고, 정말 어떻게 해야 될지. 꿈 때문에 그래도 공부는 해야지. 중3이 되어서 내가 좀 변해야 하는데 변한 게 아무 것도 없어 내가 좀 한심하게 느껴질 때도 있다. 아르바이트를 하여 돈 좀 벌어보고 싶은데, 부모님이 "공부나 하지, 무슨 아르바이트야" 라고 하시고. 돈을 벌면 부모님도 좀 편하시고 좋을 텐데.

어른들은 왜 우리 때가 좋은 때라고 하는지 모르겠다. 난 빨리 어른이 돼서 이 학교를 탈출하고 싶은데. 난 이상하게 이유 없이 학교에 관련된 모든 것이 귀찮고 싫다. 이런 생각을 갖고 있는 내가 10등 안에 드는 것이 친구들은 이상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중3이 되어서 왜 게임에 더 관심이 많아졌는지 모른다. 방과 후 정보인터넷실로 직행, 그래도 공부는 흔들리지 않으니 친구들한테는 안 이상하게 느껴질 수가 없다. 그만큼 더 노력하고 힘든 걸 그들이 알까?

우리 부모님은 참 고생을 하신다. IMF에다 수입도 많지 않고 내 뒷바라지하시느라 하루도 쉬지 못하신다. 중3이 되자 학비도 더 비싸지고, 내가 더 필요한 게 많아질 거라면서 용돈을 더 주시는 엄마. 난 돈을 많이 아끼려고 하는데 그게 잘 안 된다. 지금 내가 그 돈을 갚을 길은 공부 열심히 하고 부모님 말씀 잘 듣는 일뿐인 것 같다.

난 지금 오로지 한 생각뿐이다. 우리 집안은 기독교 집안이다. 예수님만 잘 믿고 착하게 살아 천국에나 가야지てててててて, 하는 생각이다. 중3이 되었으니 좀더 철들고, 부모님 말씀 잘 듣고, 공부 열심히 하여 순조롭게 내 꿈을 이루자.

중학교 3학년이 되고서

中 3 無 名 氏

3학년이 된 난 기쁘고 새롭다는 느낌이 들 줄 알았는데, 막상 3학년이 돼보니 2학년 때와 별로 틀린 게 없다. 변한 것도 없다. 단지 새로운 교실, 새로운 선생님을 만난 것 뿐 다른 건 그대로다. 참, 변한 게 있다면 나 자신의 성격, 또 친구들과의 관계가 변했다.

지금 난 혼자다. 2학년 때까지는 나에게 많은 친구들이 있었다. 하지만 나의 못된 성격에 친구들은 모두 날 외면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현재 나는 혼자. 쉽게 말하면 "왕따"てててててて. 그런 내가 싫고 창피해서 학교를 다니지 않기로 했지만 주위에 있는 사람들은 그러지 말라고 날 설득했다. 그래서 이렇게 지금은 학교를 다니고 있다. 하지만 처음과 같이 난 학교 오기가 싫다. 그 생각은 아마 쉽게 변하지 않을 것 같다. 3학년이 되어서 내가 이렇게 될 줄은 정말 생각도 못했다. 2학년 때 난 3학년이 되면 친구들이랑 꼭 수학여행을 가서 좋은 추억을 만들고 싶어했는데, 그때 그런 생각조차 지금은 모두 잊었다. 현재 난 나의 못된 성격을 고치고 있는 중. 하지만 그게 쉽게 고쳐지기까지 아마 시간이 더 필요할 것 같다. 3학년이 되어서 학교에 흥미를 잃었다. 그래서 난 지금 학교 수업에 신경을 쓰지 않고 예전보다 공부에 관심을 갖지 않는다. 나 자신조차 날 싫어하는데 그 어떤 사람이 날 좋아할까??

오늘도 오기 싫은 학교, 3학년 교실에 와서 잠만 잤다. 빨리 집에 가서 자고 싶은데てててててて. 앞으로 나의 3학년 생활은 지루하고 짜증나는 생활이 될 것 같다.



중학교 3학년이 되고서

中 3-2 宋 樹 林

나는 유급생이다. 그래서 다른 학생들과 기분이 남다르다. 그저 착잡할 뿐. 왜 나는 다른 친구들과 같이 있지 않고 후배들과 공부하고 있는 걸까? 그건 전부 "공부" 때문てててててて.

유급은 정말 학생에겐 사형선고이다. 몇 년 동안 쌓아온 우정이 유급으로 인해 깨어진다. 아버지가 그러셨다. 너희 학교는 다녀봤자 헛수고라고. 하지만 난 다니고 있다. 친구들이 있으니까.

3학년이 되어서 달라진 게 너무 많다. 집안 환경, 학교 환경, 나 자신도 달라졌다. 원래 학교는 세상사는 지식을 가르쳐주고 존중이란 것을 가르치는 것이 아닐까? 하지만 지금의 학교는 그렇지 않다. 무관심과 차별로 찌들어 있다. 정작 불량학생의 마음은 그렇지 않다.

꿈에도 그리던 3학년, 난 그리 기쁘지 않다. 그냥 마음이 놓인다. 나는 하루하루가 지날 때마다 안도의 한숨을 쉰다. 나는 오늘 잘한 건가 하고 말이다. 그렇게 3학년이 아무렇지 않게 흘러간다. 내 마음도 모르고てててててて.

중학교 3학년이 되고서

中 3-2 邢 黛 麗

내가 벌써 중3이 되었습니다. 그런 이유에서인지 이젠 내 머리 속엔 행복하고 좋은 생각으로만 가득찰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옛날에는 내겐 진정한 친구가 수 없이 많다고 느꼈습니다. 그러나 이젠 진정 나를 이해해 주는 친구를 만나기가 얼마나 힘든지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그런 친구를 기다리기 전에 제가 그런 친구가 되도록 노력해 볼 것입니다. 지금 내 곁에는 나를 싫어하는 친구도 있고, 나를 좋아해 주는 친구도 있습니다. 나는 그것을 다 느낄 수 있습니다. 친구들이란 친하면 친할수록 조심해야 하는 법. 이 법을 어기고 살아가는 내 자신이 과연 잘 살아갈 수 있을지てててててて.

또 하나의 변화. 중1 때만해도 "욕"이라는 것을 애들이 많이 경계했습니다. 그러나 이젠 그것이 일종의 생활 용어가 되었습니다. 어느새, 내 입에서 자유롭게 나오는 "욕", 고칠 수 있다면 정말 고치고 싶은 것입니다. 내 마음속에 숨어 있는 양심이 아직까지는 고칠 수 있다고 속삭이고 있으니까요!

중학교 3학년이 되고서

中 3-3 梁 詩 怡

小學을 졸업한 지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은데 벌써 중학교 3학년이 되었다. 한편으로는 기쁘고, 한편으로는 무섭기도 하다. 2학년 2학기 때 전학을 와서 주변 환경에 적응을 하지 못했지만, 지금은 어엿한 중학교 3학년이라는 글자가 내 귀에 와 닿았다. 친구들과 더 친해졌고, 학교 생활에 익숙도 해졌다. 그리고 내 곁에 동생이 있어서 더욱 마음이 편하다.

중3, 어떤 애들은 자기가 중학교에서 가장 높다고 생각하며 약한 애들과 어린애들을 괴롭히기도 한다. 왜 그럴까? 더욱 더 잘해 줄 수는 없는 것일까?

중2 땐, 계속 1등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 왠지 두렵기만 하다. 그러나 난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부모님을 위해서라도てててててて. 그리고 또 동생이 옆에 있어서, 내가 잘 해야 동생도 잘 할 것이니까.

중3이 되고서, 난 내 목표를 아직 정하지 못했다. 무엇을 선택해야 할지, 참 고민이다. 내 결정에 나의 인생이 바뀌는 것인데てててててて.

아무튼, 이제 공부도 더 열심히 할 것이고, 부모님께 더 효도하고, 친구도 더욱 더 많이 사귈 것이다. 화이팅!

중학교 3학년이 되고서

中 3-3 王 淇 萱

벌써 중3이 되었다. 이젠 중학교에선 제일로 높은 학년이 됐다. 그래서 어떻게 생각하면 좋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책임이 막중하다. 그래도 좋은 생각이 머리 안을 더 많이 채워준다.

우선 가장 기대되는 건 바로 졸업여행. 이건 정말 대대로 듣기만 해도 가슴 벅찬 이야기였지만 이젠 우리가 가야할 차례가 드디어 온 것이다.

그리고 두 번째는 공부가 더 많아지고 어려워진 걸 안다. 제일로 중요한 시기, 한눈 팔면 안 된다는 사실을 난 알고 있다. 그래서 난 좀더 나은 성적을 위해 노력할 것이다.

세 번째는 친구들과 더욱더 사이좋게 지내야할 것 같다. 고1이 되면 각자 다른 반으로 나뉠 것이고, 우리의 끈끈한 우정이 없다면 계속 이렇게 우정을 지켜나가지 못한다는 걸 느끼니까!

이상 나의 계획대로 착오 없이 잘해나갈 것이고, 또 난 내가 바라는 대로 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러기 위해선 열심히 뛰는 수밖에!

중학교 3학년이 되고서

中 3-3 李 芷 盈

이 학교에 온 지 얼마 안 되는 것 같은데 벌써 3학년이 됐다. 우리 엄마도 나한테 '너 벌써 3학년이네'라고 하셨다. 또 우리 아빠가 학교에 나를 바래다주시면서 하시는 말씀은 '우리 딸 이제 중학교에서 고참이네'. 그래서 나는 실실 웃었다.

그런데 중3은 졸업반. 참 어려울 거 같다. 왜냐면 공부를 열심히 안 하면 고1 올라갈 생각은 꿈도 꾸지 말아야 하니까. 그리고 중학교 선생님이랑 헤어지니까 너무 슬프다. 그래서 때론 중학교를 떠나기 싫다. 그러나 중3은 좋은 게 있다. 뭐냐면 바로 졸업여행을 떠나는 것. 참 재미있을 것 같다.

나는 졸업을 위해서 학교 생활에 충실할 거다.

중학교 졸업반이 되고서

中 3-3 于 慧 璟

저는 이번에 중3이 되었습니다. 좀 늙었다는 생각도 들지만 그래도 중2 때보다 더 노력할 것입니다. 처음 새로운 교실에 들어올 때 너무 생소했습니다. 예를 들어 새로운 선생님, 새로운 책, 새로운 짝꿍 등. 하지만 지금은 다 익숙해졌습니다. 오히려 중2 때보다 더 재미있는 걸요!

지금 아직도 생각나요. 제가 처음으로 이 학교에 들어올 때, 학교가 왜 그렇게 커 보였던지! 어딜 가도 길을 잃어버릴 것 같았어요. 근데 지금은 완전히 반대입니다. 학교가 더 커졌으면 좋겠어요. 지금 생각해 보니까 참 웃기죠!

오늘부터 저는 이전보다 백 배, 천 배 더 노력할 겁니다!




콘서트

高 2-1 汪 怡 汎

매년 우리 십 대를 위한 "콘서트"가 온다. 내가 좋아하는 그룹이 나오면 빼놓지 않고 참석한다. 팬클럽에 들어갈 정도로 좋아하니까てててててて.

어른들은 "팬클럽"이란 말만 들어도 다들 한결같이 색안경을 끼고 본다. 이상한 아이들이라고 오해를 한다. 팬클럽이라고 해서 학교도, 공부도, 집도 무조건 버리고 심하게 하지 않는다. 마음먹기에 달렸다. 팬클럽이 아닌 사람도 밤 새워 그들의 집 앞에서 기다린다. 그러니깐 그 어리석은 생각들 좀 버렸으면 좋겠다. 십 대라고 해서 무조건 생각 없이 행동하진 않는다.

콘서트장에서 펜클럽 단체복을 입고, 풍선을 흔들며 열광하고 소리를 지르면 스트레스가 쫘악∼! 평소 얌전한 내가 그러면 친구들 모두 놀라서 황당해한다. 자기 할 일만 다 한다면 괜찮다고 생각한다. 평소 엄마, 아빠가 하시는 말씀을 다 듣는 건 아니지만, 귀에 담아두고 생각도 해보고, 하지만 콘서트 가지 말라고 하면 절대 상대도 안 할 거다. 난 내가 하고 싶은 일이라면, 남에게 피해주지 않고 정당한 방법이라면 죽어도 하는 성격이다. 내가 좋아하는 그룹이 없을 때보다는 착해진 것 같다. 아니, 나쁜 생각을 하지 않게 된다. 그럴 틈이 없다. 내가 좋아하는 멤버는 사실 정말 미남이 아닐지도 모른다. 하지만 난 생긴 것이 전부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그의 사고 방식, 행동이 마음에 든다.

공부도 열심히 하고, 콘서트도 열심히 가고, 이 두 가지 일이 균형을 잃으면 안 된다. 두 가지 다 훌륭하게 하고 싶다. 그러니깐, 표가 내 손에 들어올 수만 있다면てててててて, 당장 출발!









<편지글>

사랑하는 아빠에게

中 2-3 王 如 眞

사랑하는 아빠에게

아빠! 나야, 여진이. 아빠한테 처음으로 편지를 쓰는 거예요. 아빠, 요즘 많이 더워졌지요. 그 더운 날씨에도 주방에서 일하시는 아빠를 보면 내가 너무 미안해져요. 아빠는 열심히 일해서 돈을 버시는데, 난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그 돈을 헤프게 쓰는 것 같아요.

아빠, 저번에 일하시다 손을 데어 한 손으로 일하시는 모습을 보고 집에서 많이 울었어요. 그때만큼 내가 미워진 적은 없어요. 나는 아빠한테 "아빠, 많이 힘들지"라는 말 한 마디 한 적이 없지요. 아빠, 죄송해요. 아빠 힘드신 것 알면서도 걱정만 시켜드렸어요.

아빠의 흰 머리카락을 보면 이젠 아빠도 많이 늙으셨구나하는 생각도 해요. 아빠의 그 흰 머리카락을 하나하나 뽑아드리고 싶어도 아빠의 머리에 머리카락이 몇 가닥밖에 남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뽑아드려야지 하는 생각을 접어 두어야겠어요

아빠, 많이 보고 싶어요. 기숙사에 있어 잘 보지도 못하고 전화를 걸면 더 보고 싶은 마음이 생겨요.

아빠, 기숙사는 참 재미있어요. 친구들도 있고, 하지만 힘든 일도 너무 많아요. 모든 일을 나 혼자 하는 것이 힘들어요. 그래도 나보다 아빠, 엄마가 더욱 힘들죠. 엄마는 가게일 집안 일로, 아빠는 바깥일로. 아빠가 집에 돌아오시면 아빠 몸에 흠뻑 밴 땀 냄새가 난 좋아요.

아빠 생일 때 선물도 못 산 난 그 다음날에야 알았어요. 그래서 손수건을 사서 아빠에게 드렸더니 아빠가 참 기뻐하시는 것 같아서 나는 그때 왜 아빠한테 진작 선물을 드리지 못 했을까 생각했어요. 아빠가 그렇게 기뻐하시는 데 나도 아빠의 웃음을 보니 기분이 너무 좋았어요.

아빠 이젠 나도 열 여섯 살인 청소년이니까 내 일을 스스로 할 게요. 그리고 이젠 걱정시키지 않는 여진이가 될 게요. 마지막으로 아빠, 힘내세요. 그리고 사랑해요!

7월 2일

아빠의 딸 여진이가

친구에게

中 2-2 蕭 維 燕

내게 가장 소중한 친구 문나에게,

안녕∼ 나 유연이야. 우선 내가 중1에 올라와서 너에게 편지를 처음으로 쓰는 것 같아. 그래도 이렇게나마 너에게 글을 띄울 수 있는 게 난 너무나도 기쁘다! 내가 5학년 때도 너에게 편지를 썼지. 네가 그땐 전학을 가서 난 얼마나 가슴이 아팠는 줄 아니? 넌 아마 모를 거야. 그래도 지금은 우리 함께 학교 생활을 할 수 있게 돼서 난 정말 기쁠 뿐이다.

난 네가 너무 부러워. 사람을 배려할 줄 알고, 이해심도 많고, 어떠한 일이 있어도 딱 부러지게 좋고 싫고가 분명해서 딴 사람 같으면 우왕좌왕할텐데, 난 너의 그런 성격이 너무 마음에 든다.

우리가 여태까지 친구로 지낸 지가 언 3-4년이 다 됐구나. 와∼ 참 빠르다! 요샌 별로지만 옛날엔 진짜 밥먹듯이 매일 다투곤 했는데てててててて. 그때마다 넌 자존심도 없는지 매번 사과를 먼저 하고, 난 그럴 때마다 내 자신에게 창피해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지. 나의 그 못난 자존심 때문에 "미안" 그 두 글자도 말할 용기가 없었어. 그때마다 넌 얼마나 가슴이 아팠는 줄 이제서야 알 것 같아. 만일 내가 타임머신에 타면 그때로 다시 돌아가 너에게 천 번이고 만 번이고 사과를 하고 싶구나.

넌 마음이 여려서 반 친구가 억울하게 맞는 걸 보면 괜시리 눈물을 흘렸었지. 처음엔 이해가 가질 않았지. 차츰 나는 너의 그 선한 마음을 알게 됐어. 친구를 위할 줄 아는 그런 마음 말이야. 넌 항상 친구가 많았지. 아마도 너의 그 성격 때문일 거야. 미워할래야 할 수 없는 그런 성격 말이야. 나는 꽤 내성적이라 친구 사귀기가 만만치 않은 것 같아.

이제 얼마 안 있으면 중1을 끝마치고 중2로 껑충 뛰어 올라가겠다, 그치? 중2에 올라가면 또 반을 나누겠지? 나와 너, 그리고 나의 친한 친구들 모두 같은 반이 됐으면 너무너무 좋겠다. 그렇게만 되면 더 이상 바랄 게 없다!

중2에 올라가는 것도 좋지만 그 전에 이번 시험부터 꼭, 꼭, 꼭 잘 봐라, 알겠지? 그래 그럼 항상 건강하고, 행복하고, 끝으로 사랑해!

1999년 7월

너의 친구 유연이가

<독서 감상문>

<갈매기의 꿈>을 읽고

高 3-4 呂 明 美

초등학교 교과서에서 한 마리의 갈매기가 그려져 있었다. (몇 학년 교과서인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그 갈매기의 힘찬 비상은 나에게 큰 감동을 안겨주었고, 언젠가는 '갈매기의 꿈'을 꼭 읽기로 다짐했다. 그리고 내용을 요약하자면 아래와 같다.

조나단 리빙스턴 시걸이라 불리는 새가 있었다. 그는 보통의 갈매기와 달랐다. 먹이를 먹기보다 날기를 갈망하였다. 그리고 그는 '존재의 이유와 삶의 가치'를 찾고자 하였고 남들과 다른 길을 가고자 한다는 이유만으로 그는 그의 집단에서 추방당했다. 그 후 그는 그와 비슷한 갈매기들이 있는 새로운 집단에 합류하게 되었다. 그는 그 곳에서 더욱 더 많은 것을 배웠지만 마음 한 곳에 고향을 그리는 마음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래서 비록 그는 고향으로 돌아간다면 환영받지 못 할 것을 알고도 제자들을 이끌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그 후 그는 제자들을 가르치다 어느 날 떠날 때가 온 것을 깨닫고 제자 앞에서 사라졌다.

나는 이 책을 읽고 "왜 하필이면 갈매기를 소재로 삼아 이야기했을까?"라는 의문이 생겼다. 그리고 나는 나만의 답을 찾았다(남들과 같지 않을지는 몰라도). 갈매기는 독수리나 신천옹 같은 새처럼 비행기술이 뛰어나거나 멋있지 않다. 그래서 다른 새들보다 먹이를 낚아채는 기술 또한 좋지 못하다. 때문에 어선의 주변을 배회하며 쉽게 어부들이 낚은 것을 훔치거나 사람들이 주는 빵, 과자 같은 것들을 얻어먹는다. 이런 점에서 노력하기보다는 쉽게 무엇이든 얻어내려는 대다수의 인간과 닮았다. 예를 들어 사람들은 '재물'을 노력해 불리기 보다 일확천금과 공짜에 관심을 더 기울인다. 또한 신이 만든 한계점에 도전을 하기보다는 노력도 하지 않고 포기해버린다. 그리고 이것을 순응이라 한다. 하지만 '순응'과 '포기'는 명백히 다르단 것을 모른다.

"사람은 빵만으로 사는 동물이 아니다" "사람은 만물의 영장이다"라고 주장하며 자부하고 있지만 인간은 자신의 이익을 챙기는 데만 급급하다 (나 또한 다를 것이 없지만). 인간이라면, 아니, 최소한 '만물의 영장'이라 자칭할 정도라면 이상을 갖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 비록 이상이 남들의 비웃음에 지날지라도, '조나단'처럼 추방당할지언정 자신의 이상을 굽히지 않는 고집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더 높은 이상 실현을 하기 위해서는 우선 지식으로 무장해야 한다.

'그의 유일한 슬픔은 고독이 아니라 다른 갈매기들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비상의 영광을 믿으려 하지 않는 것이다. 그들은 자신의 눈을 열어 보기를 거부한 것이다'(본문에서).

무지한 자는 '우물 안 개구리'와 같다. 그래서 우물 안이 전세계라고 착각하고 자신이 유식하다 자만한다. 그리고 자신이 모든 것을 알고 있는 그 작은 세계를 벗어나려 하지 않는다. 용기조차 없는 것이다. 때문에 영원히 그 작은 우물 안에 자신을 가둔다. 때문에 더 큰 이상을 갖지도 않는다.

'이상', 이상의 근본에는 무엇이 깔려 있어야 하는가? 그것은 남을 사랑하는 마음이다.

'사랑이란 무엇인가?' 나는 아직 사랑이 무엇인지 잘 모른다. 하지만 조나단이 '사랑의 실천'은 다른 갈매기들에게 비상의 영광을 가르치는 것이라 생각했고, 그 이유로 그는 다시 원래의 집단으로 돌아왔고 자신을 이해해 달라고 혹은 자신과 같이 되라고 강요하지는 않았지만 자신을 따르는 젊은 갈매기들이 생기자 묵묵히 받아 주었고, 자신을 욕하는 자들을 미워하지도 않았다.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사람들은 자신의 삶이 유한하기 때문에 삶에 매우 집착하고 이기적이라고. 하지만 삶이 유한하기 때문에 더욱 사랑을 나누어야 한다. 그리고 사람들은 자신의 생명이 유한하기 때문에 생명의 끝이 곧 모든 것의 끝이라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좀더 넓게 멀리 생각해 보면, 비록 자신이 죽는다 해도 후손과 가족이 남아 있기 때문에 죽음이 영원한 끝이 아니다. 신은 우리에게 가족, 친구, 후손을 주었다. 따지고 보면 그들 모두 자신의 일부다. 그래서 자신을 사랑한다면 남들 또한 사랑해야 한다.

끝으로, 이것만은 분명히 하고 싶다. '삶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갖고 있다면 꼭 이 책을 읽어보라고, 이 책은 그 질문에 대한 수많은 답 중에서 하나이니ててててててて.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을 읽고

高 3-4 李 汶 采

이 소설은 한 가정에서 아내와 어머니, 그리고 며느리로서 일인삼역의 역할을 해 나가야 하는 주인공이 암에 걸리면서 이야기는 전개된다.

김인희, 그녀 나이 오십 칠 세. 결혼 후 신혼 초부터 객지로 떠돌던 어떻게 보면 손님 같던 남편의 자리를 대신해야 했고, 그후엔 자식들 뒷바라지에, 8년 전 의사인 남편의 뜻하지 않은 의료사고로 집안이 풍비박산되고 어렵게 개업한 병원마저 남의 손에 넘어가게 되자 그 충격으로 쓰러진 시어머니는 치매에 중풍까지 들었으며, 이 모든 불운을 모두 며느리인 인희씨의 탓이라고 믿고 그녀에게 모질게 대했다. 그런 시어머니까지 모시며 점점 자신의 인생은 망각한 채 지내던 그녀에게 암이라는 불청객이 찾아오게 되고, 그제서야 가족들은 비로소 인희씨의 소중함을 깨닫게 된다. 평생 아내에게 따뜻한 말 한 번 해준 적 없던 무뚝뚝한 남편은 조금은 자상하게 변하고, 자식들도 엄마에 대한 태도가 많이 바뀌었다.

인희씨는 몇 년 전부터 한가로운 노후를 보내고 싶다며 서울 근교에 새로 이사할 집을 짓고 있었으며 모든 구조는 그녀가 원하는 대로 만들어졌다. 남편은 그 집이 완공된 뒤 정성스레 그녀의 취향에 맞게 그 집을 꾸몄다. 많이 힘들고 고통스러웠던 투병 시간 후에 주인공은 가장 사랑하는 남편과 함께 그 집에서 단 하루의 짧은 행복을 누린 뒤 세상을 떠났다.

난 이제껏 이처럼 슬픈 소설은 처음 읽는다. 작가는 소설 속에 인물 하나하나의 심정을 너무나 잘 표현했고, 그 때문에 난 소설을 읽는 동안 마치 내 일인 양 공감할 수 있었고, 많이 울었다. 그리고 나는 하늘은 정말 불공평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평생을 그저 남편과 자식들, 그리고 치매에 걸린 시어머니를 위해 헌신적으로 살아온 그녀에게 그런 몹쓸 병이 걸리게 하고 끝내 그녀를 데려간 하늘이 원망스러웠다.

저자 후기를 읽어보면 이런 글이 있다. '참 묘하다. 살아서는 어머니가 그냥 어머니더니, 그 이상은 아니더니, 돌아가시고 나니 그녀가 내 인생의 전부였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자식이 부모의 한이듯, 부모도 자식의 한이 되더라.' 이 짧은 글들은 나로 하여금 많은 생각을 하게 하였고 작은 깨달음을 주었다. 흔히 많은 사람들은 어머니를 사랑한다고 입이 닳도록 부르짖지만 실제론 어머니 알기를 소홀히 하며, 효도 역시 생각뿐이 고 제대로 행동에 옮기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하늘 아래 부모님들의 마음은 다 똑같다. 자식을 작은 배려와 효도에도 그 분들은 감동하시며 행복의 눈물을 지으실 것이다.

난 이 소설을 통해서 '부모님 살아 계실 때 잘해야 한다. 돌아가신 뒤에 아무리 후회하고 정성 들여 효도하려 해도 그 마음 받아 주실 부모님이 안 계시면 모두 부질없는 것이다.'라는 말을 다시금 떠올리게 되었다. 그리고 언제나 내 걱정을 해주시고, 날 위해 배려해 주시고, 우리 가족의 행복과 내가 부족함을 느끼지 않게 하기 위해 매일 열심히 일하시는 내 부모님이 내 곁에 계실 때 후회 없이 최선을 다해 효도하고, 그 분들 마음을 아프게 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오체 불만족>을 읽고

高 3-4 蘇 美 媛

난 몇 달 전에 오체 불만족이란 책을 선물 받았다. 그것을 줄곧 방구석에 처박아 놨었던 나는 이번 기회를 통해서 그 책을 보게 되었다. 이 책은 어떤 장애자가 자신의 인생을 살아오면서 불편하지만 행복했던 일들과 어릴 적부터 성인이 되기까지의 과정을 쓴 자전적 소설이다.

이 책은 주인공이 태어날 때부터를 기록하고 있다. 그는 팔다리가 없는 사람으로 태어났다. 흔히 우리가 말하는 장애자라는 타이틀을 달고서... 그는 입학시절 때부터 좌절을 느꼈을 것이다. 그의 부모는 그를 일반학교에 입학시키려 했지만 그게 뜻대로 쉽게 되진 않았다. 일반 학교에서 팔다리가 없는 장애자를 입학시키는 건 부담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그러던 중에 그에게 행운이 찾아 왔다. 그는 다른 장애자처럼 좌절하지 않고 가슴 가득히 자신감을 갖고 모든 일에 열중했다.

그는 그가 팔다리가 없다는 걸 장애라 생각하지 않고 그냥 신체상 특이한 개성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그의 몸으로 다른 사람들은 상상할 수도 없는 수영, 농구, 달리기 미식축구 등을 해냈으며 학생회장 등 모든 사람들의 리더를 해왔다. 그가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주위에 있는 사람들의 도움도 있었겠지만 자신의 장애에 굴복하지 않으려는 의지가 더욱 컸을 것이다.

그는 책을 마치면서 이런 말을 했다. "장애가 있긴 하지만 나는 인생이 즐거워!" 헬렌 켈러도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장애는 불편하다. 그러나 불행하진 않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도 장애자를 멀리 하는 시선들이 많다. 하지만 장애자란 타이틀을 달고 태어난 것이 그들의 잘못은 아니다. 그들을 더욱 사랑하며 아껴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들도 나름대로 맘속에서 많이 울고 괴로워했을 테니까...

이 책을 보고 많은걸 느꼈다. 그는 불구라 해서 그의 인생이 어둡고 슬픈 것은 아니다.

그의 밝고 명랑한 성격은 그의 주위에 있는 사람들의 시선이 자신을 정상인으로 보게끔 하였다. 그리고 보호보다는 자립의 측면에서 그를 이끌어준 부모와 교사들의 태도 역시 당사자 못지 않게 귀감이 된다. 자신의 장애에 굴복하지 않으려는 모습이 아름답다. 우린 정상인으로 태어났으면서도 많은 투정을 하고 자신에게 처한 상황들이 너무 불리하다고 생각을 한다. 우리 이 사람을 보면서 많이 느끼고 배우고 깨달아야 할 것이다.

<일식>을 읽고 나서

高 2-1 吳 明 蕙

나는 이번 여름 방학에 처음으로 많은 책을 읽었다. 기본적으로 보아야 하는 유명한 책들과 그 외의 베스트셀러도 골라서 많이 봤다. 그 중에서도 일식이란 책을 읽고 난 느낌을 쓰려고 한다.

내가 이 책을 사서 읽게 된 동기는 솔직히 말하자면 신문에 난 이 책에 관한 기사를 읽고서였다. 작가가 와타쿠와상을 받은 사람 중에 무라카미류와 같이 너무나 젊어서였고 히라노게이치로라는 이름 하나로도 내 관심을 끌기에는 충분했다. 그 이유는 이름이 너무나 내게 강한 인상을 주었기 때문이다.

이 책은 작가가 철학을 많이 응용한 작품이기도 하고, 책을 읽을 때 문자 하나하나의 해석을 보지 않으면 뜻을 모를 정도로 정말 어렵고도 대단한, 훌륭한 책이었다. 어떻게 스물 셋이라는 나이에 이토록 일본을 뒤흔들 수 있는 작품을 쓸 수 있는지, 정말 열 일곱에 하루 종일 망상에 빠져있는 내가 너무나 부끄러웠다. 이 책은 확실히 내 또래 아이들이 읽기에는 어쩌면 이해를 못할 수도 있고, 이 책에 담겨진 깊은 뜻을 헤아릴 수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한 번이 아닌 두 번 또는 세 번을 읽고 나면 그래도 조금은 이 책이 그렇게 어렵지만은 않은, 너무나 광활한 뜻이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이 책을 읽고 깨달은 것이 있다면, 책은 재미로 보는 게 아니라 그 깊은 뜻을 알기 위해, 또한 많은 지식을 쌓기 위해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재미를 위해 책을 본다고 해도 나쁘지는 않지만, 되도록 자신이 보고 성장할 수 있고, 도덕적으로나 지식적으로나 많은 도움이 되는 그런 책을 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정말 훌륭한 책, 정말 뛰어난 책은 보는 사람에 따라 더 훌륭해지고 뛰어난 작품이 될 거라 생각하고, 끝으로 나 자신 또한 그런 사람이 되었으면 한다.






<죽은 시인의 사회>를 읽고

高 3-4 曲 元 奭

난 이 책을 한자리에서 다 읽었다. 그리고 울었다. 이 책이 단지 감동적이었기 때문만은 아닌 것 같다. 뭔가 동감하는 바가 있었다고나 할까!

이 책에 나오는 여러 학생들은 자신의 내면에 있는 끼를 찾아내지 못한 채 부모의 뜻에 따라 명문대에 가려고 발버둥친다. 난 이 사실을 웰튼 아카데미의 입학식만 보고도 알 수 있었다. 모두들 자신의 꿈이 뭔지,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언지도 모르고서 알려고도 하지 않으며, 그저 일류 대학을 향한 경쟁에서 젊은 시절의 자유와 꿈을 희생당한 모습. 이 소년들이 삶의 끝에 섰을 때 얻어지는 것은 무엇일까?

일류 대학 졸업장, 좋은 직업, 부てててててて, 이런 것들이 그들에게 주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나만이 잘나서 자만심에 허우적거리는 삶, 또 다시 자신 같은 아이들을 만들어 나가는 것, 이런 것들 말고 다른 게 있을 수 있을지 의문이다.

이런 최악의 상황 속에서 '존 키팅'선생의 부임은 너무나 새롭게만 느껴졌다. 그런 새로운 교육 방식은 그들에게 처음 시도되는 것이었기에 말이다. 교과서의 서문을 찢게 하고, 책상 위에 올라서게 하는가 하면 수업시간에 복도에 서게 하고 자신을 'Oh, Captain! My Captain!'이라고 부르라고까지 시켰다. 이런 그의 파격적인 수업 방식은 상식을 깬 너무나 새로운 시도였던 것이다. 바로 아버지의 강압적이고 억압적인 큰 기대에 복종할 수밖에 없는 닐 페리, 오빠의 그늘 아래 가려진 토드 앤더슨, 크리스를 너무나 사랑하는 녹스 오버스트릿, 피츠와 믹스에게 있어서 말이다.

그런데 카멜론이 교장 선생님께 '죽은 시인의 사회 클럽'을 알리고 존 키팅에 대한 불만을 토한 것에 대해서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카멜론은 벌써 깨어 나올 수 없을 만큼 명문대학을 향한 엄격한 교육의 지도 아래 묻혀버린 것인가? 너무나 안타까운 사실인 것 같다.

닐의 아버지께서 닐이 성공적인 연극을 마쳤음에도 학교를 옮기라고 소리쳤을 때에는 닐의 아버지가 너무나 싫었다. 자신이 걸어온 불행한 희망 없는 삶을 그의 아들에게 다시 대물림해 주는 것은 얼마나 무의미한 악순환인지 그는 모르는가 보다. 학교를 옮기라는 아버지의 말에 순간 나약해진 닐은 죽음을 맞는다.

우리가 닐의 자살에 대해 욕할 수 없는 것은 그것이 우리 사회가 빚어낸 모순의 하나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닐의 모습이 더 이상 남의 얘기만이 아니기에 말이다. 우리 나라에도 성적 때문에 자신의 삶을 비관하고 목숨을 끊는 일이 줄지 않고 있다. 명문 대학만을 원하는 부모들은 법까지 어긴 채 과외를 시키는 이 시점에서 '죽은 시인의 사회' 이 책은 오늘의 현실을 너무나도 잘 표현한 이야기라 생각된다. 절대적인 공감 속에서 단지 그러한 모습이 사라졌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죽은 시인의 사회(속편)>을 읽고

高 3-4 焉 文 卿

"오, 선장님! 나의 선장님!" 이는 이 소설에서 가장 감동적인 말이었다. 막 떠나려는 '키팅' 선생님을 바라보며 반에서 가장 내성적이던 '토드'는 책상 위에 올라가며 이 대사를 읊었던 것이다. 이윽고 학급 전체가 책상에 올라가며 힘차게 말하자 교실 안에는 형언할 수 없는 진한 감동의 물결이 맴돌았다. "제군들, 고맙다." 그들에게 가장 존경받는 '키팅' 선생님은 입가에 미소를 띄었다. 그것은 스승과 제자의 가장 진실된 순간인 것이다.

이 속편에는 등장인물이 추가된 것 외엔 첫째 편과 다를 게 없지만 새로운 사람들이 엮어나간 이야기들 역시 우리에게 가슴 벅찬 감동을 선사했다. 첫사랑을 얻기 위해 '녹스'는 열심히 몸과 정신을 단련해서 자기보다 덩치가 훨씬 큰 풋볼선수와 맞서 싸워 쾌거를 이루는 한편, 자기의 이익만을 쫓던 공부벌레 '카멜론'도 영혼의 눈을 뜨도록 해준 '키팅' 선생님의 가르침에 의리의 길로 들어섰고, 수줍음을 많이 타던 '토드'도 어느덧 의젓한 죽은 시인의 사회 리더가 되어 있는 등 아직도 이 소설에 대한 깊은 감명이 내 마음을 뭉클하게 하고 있다.

요즘은 명문대에 나와야 인간대접을 받는 사회로 되어버렸고 학생들은 대학에 들어가는 것을 인생목표로 삼으며 각박한 입시제도에 목메어 살고 있다. 최근 들어 청소년 가출, 자살 사건이 해마다 급증하고 있다. 이것이 바로 이 사회가 빚어낸 비극이 아닌가 싶다. 한창 민감한 나이에 부모의 무관심이나 너무 심한 간섭은 우리들로 하여금 쉽게 나쁜 길로 빠지게 한다. 그래서 내 생각엔 아무리 부모가 바빠도 조금만 시간을 쪼개서 아이들과 같이 얘기를 나누면 마음의 교류가 생겨 이와 같은 슬픈 결과를 모면할거라고 생각한다. 아무래도 우리 곁에는 '키팅' 선생님과 같이 우리를 이해해주고 우리에게 꿈과 희망과 사랑의 씨앗을 안겨 주는 그런 분이 절실히 필요한지도 모른다.

<영화 감상문>

<얼라이브>를 보고

中 3-2 姜 昭 宇

우연한 기회에 언니가 빌려 논 비디오를 보게 되었다. 제목은 "얼라이브". "살아남다"라는 제목에서 무언가 느껴지는 것 같았다.

처음 도입부의 화면은 다른 종류의 영화나 다를 것이 없게 느껴졌다. 미국의 미식축구 선수들이 해외로 경기를 하러 가는 비행기 안, 젊은이들의 혈기와 장난기, 별로 특별한 것은 느껴지지 않았다. 제목에서 보았던 그러한 강렬함에 비해 첫 영상의 이미지는 좀 지루한 듯 했다. 그러나 곧 이어지는 기상이변, 그리고 비행기의 추락, 눈 덮인 산맥의 어느 곳에서의 조난, 급박한 상황의 엄습, 추위와 싸우며 살아남기 위한 인간의 처절한 몸부림이 보였다. 그리고 의리. 하지만 여러 사람이 있으면 그 안에서의 분열이 있듯이, 그들 사이에서도 절망 속에 죽음이라는 그림자에 굴복해 버려 분열을 일으키는 자와 그들을 포용해지도해 나가려는 자와의 갈등. 그렇게 초반은 구조를 막무가내로 기다리며 죽음을 기다리는 것이었다. 그러나 더 이상의 구조 노력이 없음을 느낀 사람들은 자신들의 힘으로 살아날 결심을 하고 비행기의 조종석 잔해에 있는 무전기로 무전을 쳐서 구조를 받기로 하지만 굶주림과 추위로 실패하고 만다.

그러나 거기에서 실망하고 좌절치 않고 다음 계획을 실행하려 하는데 나에게 정말로 충격적인 화면이 다가왔다. 아직도 그 장면과 그 대사는 잊혀지질 않는다. "우리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먹어야 한다. 이들은 더 이상 사람이 아니다. 우리에게 이들은 고기에 불과하다. 하나님도 우릴 용서하실 것이다." 그 대사가 끝나고 사람들이 반대하지만 살기 위해 인육을 먹는 장면은 일반적인 상황에서는 상상하기 힘든 일이다. 너무나 충격적이었으며, 사람의 양면성이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노력과 자신의 목숨 앞에 괴로워 하지만 살기 위해서는 노력도 인간성도 사라진다는 것, 그것은 나에게 너무 큰 충격이었다.

그리고 나서 세 명의 선발대가 마을을 찾아 인육과 비행기 좌석 시트로 만든 침낭을 들고 마을을 찾아 떠났다. 갖은 어려움 끝에 그들은 마을을 찾아내고 살아남은 동료를 찾아 돌아왔다. 그리고 환호하는 이를 향해서, 친구가 살아남아 만나자는 약속으로 준 작은 아기운동화를 들어올리며 영화는 끝을 맺는다.

인간은 자연 앞에서는 아주 조그마한 존재지만 그것에 좌절하지 않는 그러한 인간의 큰 힘, 할 수 있다는 의지는 너무 짜릿했다. 그리고 더욱 놀라운 것은 이것은 픽션이 아니라 논픽션, 실제로 있었던 일이며 아직도 그들이 살아있다는 것이다. 그들에게 경의를 표한다.

이렇게 생각한다. 이 영화의 인물들처럼 어떠한 상황에서도 좌절치 않고 노력하고 충실하면 못해 낼 것이 없다는 것을, 설원에서 살아남은 이들처럼 나도 나의 삶에 자신감과 용기를 가지고 노력하며 살아야겠다는 것을, 생명이란 존귀하다는 것을 이 영화를 통해 배웠다.


<짱>을 보고 나서

中 3-1 王 煢 煢

저는 오늘 <짱>이란 비디오를 보았습니다. 이 영화를 본 뒤, 저는 선생님과 학생들의 존경 또는 약속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 영화는 친구의 우정도 아주 아름답게 담고 있습니다. 비록 문제 학생이지만 자기만의 끼와 개성이 있다는 게, 또 이룰 수 있다는 것을 이 영화는 보여줍니다. 선생님도 학생을 위해 아주 많은 노력과 희생을 보여 주었습니다. 선생님 덕분에 문제 학생들은 성공을 했습니다. 인제 아무도 그 학생들의 꿈을 막을 수는 없습니다.

이 영화를 보고 나서 저는 친구가 너무나도 소중하다는 것을, 또 가족의 사랑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알았습니다.

우리 학생들은 자기 꿈을 이루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합니다. 선생님들은 우리의 꿈을 위해 우리를 가르치고 합니다. 만약 그런 선생님이 없었더라면 전 아마 꿈을 이루기에는 너무 부족할 것입니다. 이 영화는 학생들에게는 아주 좋은 영화일 것 같습니다!

우리 모든 학생이 꿈을 이루길 바라며てててててて.








<과학 이야기>

나무는 왜 낙엽이 지는가?

한국4-H신문(99/10/01)

활엽수들은 잎이 넓은 것 이외에 다른 공통점이 있는가?

나무는 활엽수종과 침엽수종의 커다란 두 집단으로 나뉜다. 제3의 집단을 이루는 야자수는 잎이 넓지만 나무보다 초본과에 더 가깝기 때문에 활엽수로 분류되지는 않는다.

이름이 의미하는 바와 같이 활엽수종은 일반적으로 넓고 평평한 잎을 가지고 있다. 침엽수종은 폭이 좁고 바늘 형태의 입이나 작은 비늘 모양의 잎을 가지고 있다. 또 다른 차이점은 활엽수종이 꽃을 피우는 데 비해 침엽수종은 자웅(雌雄)수를 만든다. 그리고 대부분의 침엽수종은 송진과 같은 끈끈한 수액을 내는 데 비해 활엽수종은 거의 진액을 만들지 않는다.

활엽수와 낙엽수의 차이는 무엇인가?

낙엽수를 의미하는 deciduous tree의 "deciduous"는 라틴어에서 유래했다. 단풍나무, 느릅나무 등의 활엽수종은 가을에 낙엽이 지기 때문에(온대 지방의 다른 대부분의 활엽수들도 마찬가지다) 낙엽수와 활엽수는 동의어가 되었다. 침엽수종은 1년 내내 녹색의 잎을 유지하기 때문에 상록수라는 별명이 붙었으며 겨울철에도 녹색 잎을 유지한다.

그러나 식물학계의 다른 많은 용어들이 그렇듯이 이러한 구분은 불완전하다. 그러나 만병초 속의 나무들과 미국 남부에 있는 참나무의 일종과 같이 1년 내내 푸른 잎을 유지하는 활엽교목과 관목들도 많다. 그리고 낙엽송 주목 같은 침엽수종은 추위가 닥치면 바늘잎이 모두 떨어진다.

흔히 이용되는 또 다른 수종의 구분은 경재(硬材:활엽수), 연재(軟材:침엽수)의 구분이다. 사실 버드나무 같은 활엽수는 목질이 대단히 연한 반면 채찍소나무와 같은 일부 침엽수종은 목질이 대단히 단단하다.

나무는 왜 낙엽이 지는가?

낮의 길이가 짧아지고 기온이 내려가는 가을이 되면 낙엽수의 잎이 대량으로 떨어진다. 너무나 두드러지고 규칙적으로 일어나는 낙엽 현상은 가을의 대표적인 계절적 특징이 되었다. 해마다 낙엽이 지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나무의 보온을 위해서가 아니라 수분을 보존하기 위해서다. 활엽수종은 넓은 표면을 통해 엄청난 분량의 수분이 증발된다. 겨울에는 흙이 얼어 뿌리에 수분 공급이 중단되기 때문에 물을 보존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활엽수들이 잎사귀를 달고 있을 경우 치명적인 수분 감소를 초래할 것이다.

바늘잎을 가진 침엽수종은 표면적이 훨씬 작기 때문에 잎사귀를 떨어뜨리지 않고도 생존할 수 있다. 잎을 보존하는 것이 실제로 생존하는데 도움이 된다.

침엽수는 날씨가 온화한 겨울날에 잎사귀로 광합성을 할 수 있다.

나무는 어떻게 잎을 떨어뜨리는 시기를 아는가?

계절적인 낙엽 현상은 일조 시간의 단축과 기온저하가 함께 작용한 결과다. 밤, 낮, 추위의 균형이 임계점에 도달하면 전형적인 활엽수는 나뭇잎과 줄기의 접합부분에 특수한 코르크세포의 장벽을 만들어 대응한다.

나무의 순환체계로부터 차단된 잎은 서서히 죽어간다. 결속력이 약화되면 잎사귀는 나무에서 떨어진다.(너도밤나무와 일부 떡갈나무의 족은 잎사귀들은 보다 오랫동안 나무에 붙어 있는 경향이 있다. 그 때문에 정원을 가꾸는 사람들은 봄에 다시 한 번 낙엽을 쓸어야 하는 불편을 겪는다.) 잎이 떨어지면 또 다른 특수한 세포층이 작은 상처 부분을 감싸서 수분 손실과 곰팡이의 침입을 막는다.

한편 건기와 우기가 뚜렷한 지역에서는 나무들이 건기의 시작 때 잎사귀를 떨어뜨린다. 이러한 경우에 낙엽현상을 촉발시키는 것은 흙 속의 수분감소며 우기가 닥치면 나뭇잎이 다시 돋아난다.

새싹은 어떤 기능을 갖고 있는가?

나무는 낙엽이 지기 오래 전에 성장을 준비한다. 일반적으로 새싹은 가지와 잎의 사이 그리고 가지의 끝에 만들어진다.

새싹들은 일반적으로 비늘조직에 싸여 있어 말라죽는 것이 방지된다. 비늘조직 속에 밀집해 있는 세포들은 잎과 새순이 되지만 일부는 꽃이 된다. 모든 싹들은 가을과 겨울에는 매우 작다. 봄이 되면 길어지는 낮 시간과 흐르는 수액 그리고 상승하는 기온에 반응하며 봉오리가 부풀어 눈이 터진다.

나무에서 생산되는 호르몬이 눈의 성장을 통제한다. 나뭇가지는 싹의 눈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성장한다. 과일나무나 관상용 나무를 전지하여 원하는 형태로 만들려고 할 경우에는 원하는 방향을 가리키는 잘라주어야 한다. 그러나 새싹들은 빛을 향하여 자라며 다른 가지들이 만드는 그늘로 인해 성장방향이 바뀔 수도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식물도 자기방어를 한다는데?

한국4-H신문(99/10/15)

왜 일부 식물에는 가시가 있는가?

식물들은 먹히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주목할 만한 방어 무기를 다양하게 발달시켰다. 생울타리로 이용되는 멀티플로라 장미의 짧고 튼튼하며 갈고리처럼 끝이 흰가시에서부터 캐멀손의 9cm나 되는 가시에 이르기까지 가시의 크기와 모양은 다양하다. 모든 가시는 식물들에게 효과적인 방어수단이 된다. 아무리 굶주려도 혀와 입을 찔리는 것을 개의치 않을 동물들은 별로 없다. 식물의 찌르고 할퀴는 기관들이 모두 가시는 아니다. 산사나무의 가시는 나뭇가지가 변형된 것이다. 장미의 가시는 사실상 줄기의 껍질이 변형되어 돌출된 것이다. 엉겅퀴를 직접 본적이 있는 사람들은 잎사귀에도 가시가 자란다는 사실에 놀라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어떤 가시는 식물 목질부의 일부이기 때문에 부러뜨리기가 어렵지만 그렇지 않은 다른 가시는 편면에만 붙어 있어 쉽게 떨어진다.

동물들은 식물의 방어용 가시를 무력화시킬 수 있을까?

가시는 위협적으로 보임에도 불구하고 굶주린 초식동물의 공격을 막는 100% 효과적인 수단은 못된다. 가시는 포유동물들을 쫓기 위해 "고안"된 것으로 식물을 먹고사는 수천 사지의 곤충들에게는 효과가 없다. 뿐만 아니라 일부 초식동물들은 줄기나 잎사귀에 가시가 달린 식물들을 뜯어먹는 기술을 발달시켰다.

나귀는 엉겅퀴를 맛있게 뜯어먹는다. 낙타는 어깨 높이의 낙타가시나무 잎을 뜯어먹는다. 기린은 감는 재주가 있는 긴 혀로 가시가 있는 아카시아 줄기의 잎들을 따먹는다. 그러나 이러한 경우는 예외에 속한다. 대부분의 동물-인간도 포함-은 가시를 피한다.

어떤 가시나무는 두 번째 방어수단을 갖고 있다. 중남미에 서식하는 한 아카시아 나무는 짝을 이룬 가시의 크기와 형태로 인해 쇠뿔아카시아라고 불린다. 가시의 속은 비어 있으며 개미들이 그 속에 집을 짓고 있다. 조금만 건드려도 달려나와 침입자를 공격하는 개미들은 초식동물들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해충들도 격퇴한다.

이 나무는 개미에게 거처뿐만 아니라 식량도 제공한다. 가지에 있는 특수한 분비선에서 단맛의 수액이 흘러 나와 단백질, 지방, 탄수화물이 풍부한 달걀보양의 작은 액체 방울이 엽편에 맺힌다.

쐐기풀은 왜 쏘는가?

많은 식물들은 동물의 피부를 가렵거나 따갑게 하는 털로 무장되어 있다. 털은 살짝만 건드려도 떨어져 나와 공격자의 방어되지 않은 피부에 작용한다. 이러한 털은 콧구멍과 입 주변의 피부가 연한 초식동물을 저지하는 데 효과적이다. 그러나 쐐기풀은 한술 더 뜬다.

쐐기풀의 털은 뻣뻣하고 속이 비어 마치 주사 바늘과 같다. 털 속에는 인간에게 알레르기를 일으키게 하는 주요 성분의 하나인 히스타민과 말벌의 독과 유사한 물질이 함유된 액체가 들어있다. 동물이 쐐기풀을 스칠 경우 털끝의 미세한 액체 방울이 파열된다. 약간의 힘을 가해 접촉해도 털의 뻣뻣한 죽기가 침입자의 피부에 박힌다. 동시에 털의 부드러운 밑둥이 주사기와 같은 작용을 하여 독액을 상처 속으로 밀어 넣는다.

식물들은 적을 어떻게 중독시키는가?

쑥국화와 당면 그리고 개정향풀을 으깨거나 깨물면 악취가 발생한다.

최소한 초식동물들에게는 달갑지 않은 다른 많은 식물들처럼 이 특정 식물들은 독성을 가지고 있다. 독소는 식물들의 주요한 방어수단이며 고약한 맛은 먹으려 드는 동물들에 대한 경고다. 초식동물들은 이런 식물들을 건드리지 않는다. 동물들은 중독이 될까봐 이런 식물들을 기피한다.

식물의 독소는 모두 동일하지 않다. 디펜바치아와 앉은 부채는 바늘 모양의 수산염칼슘 결정을 지니고 있는데 이 결정체는 이 식물들을 씹거나 삼키는 초식동물의 입과 목구멍의 점막을 뚫고 들어가 극심한 통증과 염증을 일으킨다. 한편 등대풀속 식물들의 수액은 가렵거나 따가운 증세를 우발한다. 일부 식물들은 보다 교묘한 방식으로 자기 몸을 지킨다. 예를 들어, 콩과의 많은 식물들은 동물들의 정상적인 단백질과 반응하여 성장과정을 교란시키는, 독성 아미노산을 갖고 있다.

독성 식물들을 극복하는 곤충은 어떤 것인가?

당면 속(屬)의 식물들은 수많은 종류의 곤충들을 죽일 수 있지만, 제왕나비의 애벌레와 당면독나방의 애벌레는 당면속 식물이 잎을 먹고 자란다. 특정한 곤충들은 특정한 식물의 독성을 파괴하거나 중화시키는 능력을 발달시켰다. 한 단계 더 나아가 제왕나비의 애벌레는 당면속 식물의 독을 체내조직에 저장하여 곤충을 먹는 새들에게 고약한 맛을 낸다.

특정한 독성 식물을 먹을 수 있는 능력을 발달시켜온 곤충들은 그 식물을 주식을 삼거나 그 식물만을 먹는 경향이 있다. 그러한 곤충들에게는 식량을 놓고 경쟁할 상대가 거의 없다.

<세상 이야기>

서대문구 동(洞)이름 유래(由來)

남,북가좌동

맑은 물에서만 사는 가재가 많이 잡히는 지역, 가재의 앞발과 같이 두 개의 조그마한 산들로 둘러싸여 있는 마을이라 해서 불리어졌다는 '가재울'은 음이 변하여 가좌동이 되었다하며, 조선시대에는 훈련도감에서 실시하는 군사들이 무예를 시험하던 곳이기도 하였다.

남,북가좌동은 가재울 남쪽, 북쪽에 있다하여 불러진 이름이며 남가좌동은 북한산의 자갈이 모래로 변하여 모래가 많은 개천이란 뜻에서 사천 또는 성사천이라 하였다. 50년 전까지도 남가좌동 지역은 개천이 범람하여 하얀 모래가 뒤덮여 황량한 사막과 같아 밭을 일굴 수가 없어서 모래내밭이라고 하였으며, 북가좌동은 화산군 신도비, 일명 거북비가 있는 '거북 마을'을 중심으로 조선초부터 마을이 형성되었다.

냉천동

금화산 기슭에 자리잡고 있는 냉천동은 경기대학교 북쪽지역 부근에 맑고 찬 우물이 있다하여 "찬우물골"로 불리다가 해방과 더불어 냉천동으로 개칭되었으며, 감리교 신학대학교가 이곳에 있다.

대신동

대현, 대신 ,신촌, 봉원동의 4개 동을 대신동사무소에서 관할하고 있으며, 대신동은 금화터널을 지나면서 "성산로" 좌우 및 금화터널 남쪽에 있는 동으로, 1962년에 동 이름을 지을 때 대현동의 "대"자와 신촌동의 "신"자를 따서 붙인 이름이다. 이 지역은 금란여자중고등학교, 이대부속 초등,중고등학교 등이 있는 교육지이며, 학교 건너편은 주택가를 형성한다.

대현동

대신동사무소 관할 지역 중 가장 큰 지역을 형성하고 있는 대현동은 조선시대에는 대현동과 마근동 지역이었는데, 그 중 대현이란 아이고개(아현고개, 애오개)에 비하여 높은 고개, 큰 고개라는 뜻으로 불리어져 생긴 이름이다. 마근동은 고개 북서쪽 럭키아파트 주변에 위치하여 망건 당줄, 감투 등을 만드는 집이 많았기 때문에 우리 고유의 말로 망건당골이라 하다가 마근동으로 변했으나, 이제는 대현동 지역에 포함되어 우리 고유의 마을 이름은 찾아 볼 수 없게 되었다.

미근동

옛날에 지금의 경찰청 북쪽에 큰 우물이 있었는데, 이 우물은 항상 물이 넘쳐흘렀으며, 가뭄이 심해도 마르지 않아 우물에 꼬리가 있는 것 같다하여 초리우물, 미정이라 하였고, 미근동은 미정의 앞 한자인 "미"와 옛날에 이곳에 미나리가 많다하여 미나리의 한자말인 "근"을 합쳐 미근동이라 하였다.

미근동은 1970년 이전까지 합동사무소가 관할하였으나, 1975년 10월 1일부터 충정로동사무소 관할 구역이 되어 오늘에 이르렀으며 경찰청과 미동초등학교가 여기에 있다.

봉원동

봉원동 지역은 안산의 남쪽 기슭에 위치하여 안산과 함께 역사를 간직한 지역으로, 그 명칭은 현재 봉원동 23번지에 위치한 불교 태고종의 본산인 봉원사의 이름에서 유래되어 붙여진 것이다.

봉원동의 역사를 보면 조선시대에 한성부 북부 연희방 봉원동이었다가, 1914년에 경기도에 편입되었고, 1936년에 다시 경성부로 소속되어 봉원정으로 되었다. 그러다가 광복 후 봉원동으로 되었으며, 1955년에 동제 실시로 봉원동 지역은 대신동사무소 관할 행정구역에 속하게 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재 안산에는 봉원사를 비롯하여 약수터 22군데, 생활체육시설 22군데가 마련되어 있으며, 하루에 약 5,000명 이상의 주민이 이곳을 이용하고 있기도 하다.

북아현동

종근당 빌딩에서 아현 지하철역으로 넘어가는 곳에 만리현과 대현이라는 두 고개가 있었는데, 중간에 작은 고개가 있어 아기 고개 즉, 한자어로 아현이라 부르던 것이 동 이름이 되었다는 일설이 있으나 정확치는 않다.

북아현동은 일제시대 때 북아현정으로 불리어지다 1946년에 북아현으로 되어 지금의 아현동과 북아현동으로 나누어 졌으며. 북아현동은 1955년에 1て2て3동으로 나뉘어져 오늘에 이르게 되었다.

경의선 철로변을 경계로 한 1동에는 가구점이 밀집되어 있으며, 한성 중고등학교가 이곳에 있다. 2동에는 15개 동의 시민아파트가 밀집되어 있으며, 현재는 재건축 사업이 활발히 진행중이며, 아현시장과 북성초등학교가 이곳에 있다. 3동에는 대부분 일반 주택이 자리하고 있으며, 추계초등학교와 중앙여자중고등학교가 이곳에 있다.

신촌동

신촌동은 조선초기에 태조 이성계가 새로운 도읍터를 물색할 때에 풍수지리설에 밝은 경기좌우관찰사(지금의 도지사)인 하륜의 주장과 여러 신하들의 여론에 따라 신촌동 일대를 돌아보고 갔으나, 터가 좁아 도읍지로 정하지 못하고, 그때부터 새 도읍의 터라하여 "새말터"라 한 것이 한자어로 번역되어 신촌이라 하였으며, 신촌동은 여기서 유래되었다.

연세대학교와 세브란스병원이 이곳에 위치해 있으며, 연세대학교내에는 스팀슨관과 언더우드관, 아펜젤러관 등 3동의 건물이 사적 제275호, 276호, 277호로 지정되어 있다.

연희동

조선초 양주 땅이었던 이곳은 태조가 새로운 도읍지를 찾고 있을 때 무악재 아래에 위치, 북쪽에 나지막한 산봉우리가 있고 동서쪽으로 산맥이 뻗어있는 명당터라 하여 하륜 등이 도읍지로 적극 천거했을 만큼 좋은 지역이며, 연희동이란 동 이름은 현재 연세대학교가 있는 자리로 추정되는 연희궁터의 이름에서 연유된 것이라 한다. 연희궁은 조선 2대 임금인 정종이 아우 태종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기거하던 궁으로 세종이 상왕을 위해 세운 궁궐이다.

연희궁의 위치는 연세대학교 자리가 되지만, 일설에서는 우정 스포츠센터 뒤쪽 연희입체교차로 부근이라 전하기도 한다. 조선시대에는 정자동, 염동, 궁종, 음월리라 부르던 지역으로 일제 때 경기도에 속하다가 다시 경성부에 속하여 연희정이 되었으며, 1946년에 연희동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또한, 1970년 5월에는 1, 2동으로 분리되었다가 1975년 10월에 연희2동은 다시 2동, 3동으로 분리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영천동

영천동이란 이름은 금화산 중턱에 "영천"이라고 부르던 약수가 유명하여 그 이름을 따서 불리다가 오늘에 이르렀다. 이곳에는 재래시장인 영천시장이 있으며, 이 동의 행정을 맡았던 영천동사무소가 1978년 10월 1일 폐쇄되고, 현재는 천연동사무소에서 관할하고 있다.

옥천동

옥천동이라는 이름은 인왕산 밖의 안산에서 시작하여 지금의 영천 시장을 지나 마포를 거쳐 한강으로 흘러가는 개울이 있었는데, 이 지역에서 물이 모여 맑은 폭포가 되어 옥같이 맑은 물이 흘렀다 하여, 일제시대에 옥천정이라 불리게 된 것이 1946년 일제식 동 이름을 없애기 위해 옥천동으로 바뀌었다.

창천동

청천이란 동 이름은 지금은 복개되어 보이진 않지만, 신촌의 중심부로 흐르는 창내천의 이름을 따서 창천동이라 부르게 되었다.

신촌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이 지역은 연세대를 중심으로 항상 지성과 젊음이 넘치는 곳이기도 하며, 특히 이곳은 대학 문화와 지역 발전을 위해서 신촌 문화축제가 매년 5월에 개최되고 있는 등 여러 가지 행사를 추진하고 있어, 지역 발전을 위한 대학과 주민의 화합이 돋보이는 지역이기도 하다.

천연동

지금의 천연동은 1914년 지역의 구획을 새로 정할 때 구한말까지 불리어오던 이판동 일부와 석교동 일부를 각각 합해서 이룩된 동으로 당시 옛부터 내려오던 천연정이란 정자가 이 지역에 있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충정로동

충정로란 동 이름은 조선말 갑신정변 때 일본공사이던 죽첨 진일랑의 이름을 본 따서 죽첨정이라 부르던 것을, 1946년 10월 1일에 조선말의 순국열사 충정공 민영환의 시호인 "충정"을 본따 지은 것이다.

합동

합동은 마포강으로부터 온 어물이 서소문 밖 시장에 집결되어 소비되었던 곳으로, 각종 건어와 조개가 항상 끊어지지 않고 공급되었기 때문에 이곳 일대를 "조갯골"이라 하던 것이 한자말로 번역되어 합동이라 부르게 되었다.

합동은 1975년 관할구역 조정으로 남쪽의 반은 중구 중림동에 흡수되고 북쪽의 반만 남아 충정로동사무소 관할로 되어 있으며, 프랑스 대사관 과 서울시 상수도사업본부가 이곳에 있다.

현저동

무악재 고개 밑에 마을이 형성되면서 "고개 밑의 마을" 이라는 뜻으로 불리어진 현저동은, 조선시대에는 중국사신이 머물렀던 마을이라 해서 모화현이라 부르다가, 일제 때 현저정으로 바뀌었으며, 광복과 함께 현저동으로 부르게 되었으며 '98년 10월 7일 직제개편에 따라 천연동에 통합하여 관리하고 있다.

현재 이곳에는 재개발 사업이 한창 진행 중이며, 옛 서울 구치소가 이 곳에 있다가 없어지고, 서대문 독립운동으로 공원이 새롭게 조성되어 있다.

홍은동

홍은동이란 이름은 1950년 서울특별시에 편입되면서 예전의 경기도 은평면 홍제외리 지역이라는데서 홍제외리의 "홍"자와 은평면의 "은"자를 따서 붙여진 이름으로 1964년에 홍은1,2동으로 분할되고 1970년과 1975년에 홍은3,4동이 새로 생겼다. 그러다가 1980년에 홍은 4동이 폐동되면서 홍은2동에 통합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지리적으로 보면 남쪽으로는 홍제천을 경계로 홍제동과, 동쪽으로는 종로구 홍지동, 구기동과 접하며, 북쪽으로는 은평구 녹번동, 서쪽으로는 명지여자중고등학교를 경계로 연희동, 남가좌동과 접하고 있다.

홍제동

홍제동은 일찍부터 중국사신이 드나드는 중요한 육로에 위치한 지역으로 중국사신 및 여행객들이 머물렀던 홍제원과 인왕산, 안산을 중심으로 무속신앙이 형성되어 장안의 화제를 불러 일으켰던 곳이었으나, 지금은 지하철 3호선이 통과하고 있어 교통이 편리하고 인왕산과 안산을 배경으로 하여 경치가 좋은 곳이다.

마을 이름이 생기게 된 유래를 살펴보면, 홍제동 131번지에 "홍제원"이라는 현재의 국립여관 같은 것이 있었기 때문이다. 조선시대의 원은 주로 관리의 숙소로 사용되었는데, 원의 명칭은 대개 널리 베푼다는 뜻의 "인덕원", "광혜원", "보제원", "홍제원" 과 같은 이름으로 붙여 불렀다.

특히, 홍제원은 중국사신이나 여행자들에게 해가 저물면 돈을 받지 않고 숙소를 제공해 주었을 뿐만 아니라, 병자에게는 약을 주기도 하였다하여 널리 베푼다는 뜻으로 홍제원으로 부르던 것이 홍제원의 안쪽에 있는 마을이라고 하여 홍제내리라고 하다가 광복 후에 홍제동으로 바뀌었다.

행정구역 관할 변천을 보면, 홍제천을 경계로 홍제동 지역은 일제 때 잠시 경기도 고양군 은평면 홍제내리가 되었다가 광복 후 다시 서울특별시 관할지역이 되었다.

1959년부터 1970년까지 안산동사무소 관할이었다가, 1970년에 홍제1,2,3동으로 분할되어 행정을 담당하였으며, 1975년에 다시 홍제2동이 2동과 4동으로 분할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편집자의 변

가을이 다 지나갈 무렵에야 책을 내 놓게 되었습니다. 늘 바쁘다는 핑계로 미루어 모든 분들께 죄송할 따름입니다. 책을 내면서 학생들의 글이 점점 좋아지고 있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정직하고 솔직한 글들이 많아졌습니다. 생활 속에서 늘 갖는 느낌을 잘 표현해내는 아이들이 자랑스럽습니다.

끝으로 도움을 주신 많은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편집자 올림




















한글 마당 11

發 行 者 : 韓國漢城華僑中學 韓語韓文敎學硏究會

總 編 輯 : 權相基

編 輯 者 : 한글문예반

編輯部員 : 唐梅娜, 王昭娟, 王秀仁, 李惠正,

. 蔣有珍, 趙錦玲, 陳實嬉, 初曉艶, 賀昭允

揷 畵 : 한글문예반

發行號數 : 89-1(通卷 第 11 號)

聯 絡 處 : 서울 西大門區 延禧 3 洞 89 - 1

印 刷 者 : 華星文化社

發 行 日 : 中華民國 89年 11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