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마당 10


















韓國漢城華僑中學

韓語韓文敎學硏究會

목 차

<계절 이야기>

겨울 끝나고 여름 中2-3 牟德芬 1

봄 高3-4 崔美蘭 中2-3 谷美英 中2-3 藍靑榮 1

<사랑과 행복의 이야기>

나의 부모님 中2-3 王琇橱 3

내 짝궁 中2-2 孫和姸 3

아 빠 中2-2 孫鳳德 4

어머니 中2-1 王美燕 5

엄마 사랑해요! 中2-2 李殷禎 5

우리 할아버지 中2-2 于秀莉 6

친 구 中2-2 王偉立 7

<우리들의 생활이야기>

나 中2-3 高慧丞 8

나의 보물 1호 中2-3 張心美 8

나의 자화상 中2-2 姜念珠 中2-3 柳欣雅 9

나의 필수품 中2-3 王淇萱 10

내 자신에 대하여 中2-3 畢美蘭 10

산은 나의 놀이터 高3-3 金秉徹 11

2000년 과학 발전에 대한 나의 생각 中2-1 謝愼珍 12

자기 자신에 대해서 中2-1 張慶惠 13

<기행문>

남이섬 기행문 高1-2 劉貞希 高1-3 李惠正 14

수학여행을 다녀와서 高2-1 劉佩凱 高2-1 林文瑛 16

졸업여행 高2-1 徐小晶 22

<편지글>

예삐에게 中1-1 盛賢實 25




<독서 감상문>

<베니스의 상인>을 읽고 高1-4 牟德京 26

<소나기>를 읽고 中3-3 陳玉珠 29

<우리들의 제안>

동물을 키우는 社團을 中1-1 盛賢實 30

도서관에 대해 中1-1 劉于銀 30

머리를 기르는 건 中1-1 張詩幥 30

학교 컴퓨터 中1-1 梁書銘 31

학생도 아르바이트를 합시다 中1-1 郭明季 31

<기획>

한국인 교사 추천도서 설문 조사 한글 문예반 32

한국과 화교 중, 고생의 의식차이 조사 시사 토론반 36

삼행시 모음 高3-4 학생들 40

<여름 방학 특집>

문화 유적지 탐방활동 요령 43

산에 오를 때 주의할 점 46

갑작스런 사고시 필요한 조치 요령 47

<과학 이야기>

식물 없이 살 수 있을까? 50

<세상 이야기>

서대문구 이모저모 52

편집자의 변 57



<계절 이야기>

겨울 끝나고 여름

中 2-3 牟 德 芬

겨울이 끝나고 봄이 오는 것은 아주 정상이지만 요즘에는 봄 대신 여름이 오고 있다. 봄의 따스함과 파릇파릇함들 따위는 흔적조차 없이 사라졌다. 그것은 모두 환경 오염과 오존층 파괴 같은 현상으로 형성됐지만, 한마디로 우리들 때문이다. 계속 이대로 간다면 우리는 날마다 용광로 같은 날씨, 아니면 얼음 속에서 살아야 할지도 모른다.

환경을 생각합시다!

봄

高 3-4 崔 美 蘭

추운 겨울이 지나고, 다시 봄이 찾아왔다. 따스한 햇살과 파릇파릇 솟아나는 꽃잎들. 그리고 사람들의 옷차림 속에서 봄을 발견할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봄이라는 이 계절을 좋아하듯이 나 역시 봄을 좋아한다. 왜일까? 그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어떤 느낌이라고나 할까?

봄이 되면 사람들은 변화하기를 원한다. 그래서 이맘때 거리에 나가보면 헤어스타일부터 시작해서 옷차림에 이르기까지, 사람들의 개성이 꽃피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또 봄은 여행의 계절이라고도 한다. 정말 그런 것 같다. 이렇게 좋은 날씨에 좋은 풍경과 함께 사진까지 찍는다면 그야말로 일석이조가 아닐까?

또 봄하면 빠질 수 없는 것이 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춘곤증'. 아무리 자도 자도 계속 잠이 쏟아지고, 그것 때문에 시험을 망치는 것, 내가 겪어봐서 알지만 정말 춘곤증은 우리를 못살게 군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봄이 좋은 이유? 이건 모든 사람들이 다 동감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따뜻한 바람과 춥지도 덥지도 않은 날씨 때문에 얼굴이 안 타고 붉어지지도 않는다는 이유에서다. 정말 그렇다. 그래서 나 또한 여름과 겨울보다는 봄이 훨씬 더 좋다.

누가 그랬지? '봄은 1년의 첫걸음이자, 새로운 희망의 시작'이라고. 작년은, 예전의 겨울보다는 그리 춥지는 않았지만, 우리의 마음속에서는 찬바람이 쌩쌩 불고, 쓸쓸한 시기였다. 아마 IMF의 영향이 우리를 그렇게 만든 것 같다. 그래서 이번 봄은, 모든 사람들에게 새로운 희망을 주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비온 뒤에 땅이 더 굳어진다고, 지금부터라도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무슨 일이든 시작한다면, IMF에서 탈출은 물론, 우리의 생활까지도 활기 있고 희망찬 내일로 바뀔 것이다.

봄

中 2-3 谷 美 英

추운 겨울이 지나고 봄이 다시 우리 곁에 왔습니다. 나뭇가지에는 새싹이 돋고, 개나리가 피고, 모두 봄맞이를 합니다. 겨울에 날아갔던 새들도 봄이 오자 우리 곁에서 예쁜 목소리로 봄을 위해 노래를 합니다.

시인들은 봄을 위해 시를 쓰고, 아이들은 봄이 오는 것이 좋은지 아주 기쁜 얼굴을 하고 있습니다. 어떤 아이들은 엄마 손을 잡고 봄나들이를 떠나고, 또 어떤 아이들은 봄 여행을 합니다. 이 세상의 모든 사람, 동물, 식물들이 다 봄이 오기를 바랬듯이 봄이 되자 겨울에 못했던 일들을 시작합니다.

바람이 불면 사람들의 머리카락을 휘날리게 합니다. 그만큼 바람도 봄이 오는 게 기쁜가 봅니다. 저도 이 따뜻한 봄이 아주 좋습니다. 그렇게 춥지도 않고, 그렇게 덥지도 않은 봄, 봄이 계속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합니다.

봄

中 2-3 藍 靑 榮

벌써 기나긴 겨울이 가고 매서운 바람이 어느새 따스한 봄내음을 몰고 왔습니다. 마치 숲 속의 잠자는 공주에게 하듯 봄이 입맞춤을 하자 기나긴 잠에서 깨어난 꽃, 나무, 냇물들이 파릇파릇한 노래를 부르며 봄을 맞이했습니다.

저는 사계절 중 봄이 가장 좋습니다. 봄에는 여러 가지 향기롭고 아름다운 꽃들이 많이 피기 때문입니다. 향기로운 꽃내음을 맡으면 왠지 모르게 기분이 좋아집니다.

봄은 사람들에게 용기를 북돋워 줍니다. 봄에 피는 꽃의 향기는 사람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줍니다. 봄에 피는 꽃은 어느 계절에 피는 꽃보다 화려하고 향기롭습니다. 그것은 사람들에게 주려는 희망과 용기 때문일 것입니다.

저는 간절히 바랍니다. 이 향기가 영원토록 많은 사람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전해 줄 수 있기를てててててて.






<사랑과 행복의 이야기>

나의 부모님

中 2-3 王 琇 橱

제가 이 세상에 태어나서 저한테 없어서는 안 될 사람이 있습니다. 그 사람은 바로 저희 부모님입니다.

부모님, 부모님은 이 세상에서 제가 가장 사랑하고 존경하는 사람입니다. 만약 저에게 부모님이 없었더라면 전 이렇게 곱게 잘 자라지 못했을 겁니다. 저의 부모님은 제가 어렸을 적부터 저한테 아주 친절하게 모든 것을 가르쳐 주셨고, 또 모르는 점은 아주 자세하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또 어려운 일이 닥쳐도, 부모님은 무슨 일이 있어도 제 생각을 하면서 해결해 주려고 노력하십니다. 하지만 저는 가끔 부모님의 그 심정도 모르고 화부터 낼 때가 많았습니다. 그렇지만 부모님은 화도 안 내고 다 제 화풀이를 받아 주셨고, 오히려 저한테 차분히 생각하라고 그랬고, 저는 그만 눈물이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제가 다 울고 나서 부모님 얼굴도 쳐다보기 부끄러웠지만, 부모님은 다 이해하신다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 때 난 또 한 번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때야 저는 깨달았습니다. 부모님이라는 것도 자격이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어떤 부모님은 자기 아이들이 무엇을 하고 살던, 어떤 일을 하던 모른 척하고 지나가는 부모님도 많지만 저의 부모님은 절대로 그런 분들이 아닙니다.

저는 나중에 커서 부모님이 될 때쯤, 지금 저희 부모님이 저한테 대하듯이 저희 아이들한테도 잘 해주고, 이해심도 많이 가질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나중에 꼭 자격이 있고 자랑스런 부모가 될 것입니다.

내 짝궁

中 2-2 孫 和 姸

제 옆에는 항상 절 지켜봐 주는 짝궁이 있습니다. 제 짝궁은 공부도 잘 하고 얼굴도 예쁩니다. 참 본받을 점이 많습니다. 언제나 순진파인 제 짝궁과 활발한 저는 어울릴 수 없게 보이지만 생각보다는 찰떡궁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언제나 말이 별로 없는 '제 짝궁', 언제나 용감하고 수다를 좋아하는 '저'. 제가 무슨 하고픈 말이 있으면 제 짝궁은 잘 들어 주고 잘 이해해 줍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외로움을 덜 타는 것 같습니다.

저는 제 짝궁을 무지무지 좋아합니다. 이유가 뭐냐고요? 히∼ 그건 바로 이 애의 성격이 너무너무 착하다는 거예요. 물론 공부도 잘하고 얼굴도 예쁘지만 무엇보다도 더 제게 정을 주는 건 얼굴보다 더 예쁜 그 애의 성격입니다. 저는 사람이 활발해야만 친구가 많다고 늘 생각해왔어요. 근데 중학교에 올라와 이런 친구를 보고 많은 걸 느꼈어요.

저는 제 짝궁을 사랑합니다. 제가 성격이 불같아서 자주 그 애에게 화를 냅니다. 그럴 때마다 제 짝궁도 화를 내긴 하지만, 제가 사과를 하면 잘 받아주고, 또 제가 어려운 일이 있을 때, 혼자 고민하고 있을 때, 제 짝궁은 자기 일처럼 잘 도와줍니다. 그래서 인지 몰라도 전 제 짝궁을 미워할 수 없을 만큼 사랑합니다.

이 기회를 통해 전 짝궁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짝궁아, 사랑하고 우리 우정 영원히 변치 말자!"

아 빠

中 2-2 孫 鳳 德

오늘 난 오랜만에 우리 집 광주에다 전화를 했다. 이유는 용돈 때문이었다. 평소에는 전화할 생각도 안 하던 내가 그저 용돈 받을 생각에 수화기를 들었다. 아빠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빠는 아주 반가워하시며 아빠 보고 싶어서 전화했냐고 하셨다. 그때 내 머리 속에선 속상함과 죄송함이 교차했다. 그래도 난 내가 하려던 말을 했다. 아빠도 보고 싶었지만 용돈이 다 떨어져서라고 서슴지 않고 말을 꺼냈다.

아빠는 잠시 말이 없으시더니 용돈을 다 어디다가 썼냐고 말씀하시며, 내일 엄마보고 부치라고 하겠다고 말씀하셨다. 너무나도 전화 통화가 빨리 끝났다. 항상 아빠하고 통화를 하면 별로 할 말이 없어 빨리 끊는 것도 어색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때만큼은 아빠랑 더 통화를 하고 싶었는데, 아빠는 빨리 끊으셨다. 미안한 마음 때문이었을까? 아빠한테 너무 죄송할 따름이다. 용돈 보내준다는 말을 들으면 좋을 줄 알았는데てててててて. 공부도 잘 하지 못하고, 뭐 잘하는 거 하나 없는 딸을 이렇게 자라게 해 주신 걸 너무 감사드린다.

요즘 어려운 시기인데 내 학비, 동생 학비, 엄마 생활비, 내 용돈, 가게에서 일하는 사람들 월급 등, 많은 돈이 들어간다. 이렇게 많은 곳에 돈을 써야한다면 그만큼 많이 벌어 들여야 할텐데.

이렇게 고생만 하시는 아빠한테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아무 것도 없다. 아빠한테 진 빚을 영원히 갚지 못할지도 모른다.




어머니

中 2-1 王 美 燕

나의 어머니는 너무 착한 분이시다. 세상 사람들은 누구나 다 자기 어머니를 사랑하고 좋아한다. 하지만 난 우리 엄마를 너무너무 아끼고 사랑한다.

내가 어렸을 적, 우리 집은 잘 살지 못했다. 그래서 엄마는 날 업고 일을 다니셨다. 하루 온 종일 빨래를 하셨다. 그 이유는 우리 세 식구가 먹고살기 위해てててててて. 나는 그 점에 대해 엄마한테 너무 미안하고 또 죄송하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예전보다는 살만하니까, 엄마가 덜 고생하신다. 지금도 힘드신 건 마찬가지시지만.

난 항상 엄마를 볼 때마다 눈물이 글썽거릴 때가 있다. 엄마는 하루종일 뼈 빠지도록 일을 하시고, 다 자식들 잘되라고 고생하신다. 다 우리들한테 투자하시고, 엄마는 돈 벌어서 자신한테는 돈 쓴 적이 별로 없으셨다. 엄마는 나한테 잘 해주시느라고, 언제 친구 만나 맘놓고 제대로 한 번 놀아보신 적도 없었다. 그럴 때마다 엄마를 보면 가슴이 찡하곤 한다.

난 자주 엄마하고 약속을 한다. 내가 커서 엄마에게 꼭 보답한다고, 난 맹세를 한다.

난 세상에서 우리 엄마가 가장 좋다. 그리고 엄마한테 이제부턴 짜증 안 내고, 말 잘 들을 거다. 마지막으로, 엄마, 사랑해요!

엄마 사랑해요!

中 2-2 李 殷 禎

어머니, 아니 엄마라는 이름이 더 좋겠다. 엄마는 나에게 생명 같은 존재이다. 물론 아빠도 말이다. 내가 지금 이렇게 자랄 수 있게 해 주신 것이 다 부모님이 있기에, 우리가 이만큼 클 수 있게 된 것이다.

사람들은 말한다. 부모님이 계실 때 잘 하라고てててててて. 난 어렸을 때 이 말이 무슨 뜻인지 몰랐다. 하지만 철이든 지금은 그 말이 약간은 이해가 된다.

지금 난 사춘기다. 그래서 부쩍 신경질도 많이 부릴 나이지만 엄마와 떨어져서 혼자 기숙사 생활을 하고 있다. 엄마는 그런 내가 신경질을 내도 잘 이해하고 받아주신다. 난 그런 엄마가 참 고맙기도 하고 한편으론 엄마한테 너무너무 죄송하다.

엄마한테 고마운 게 너무 많다. 언니와 나를 학교 보내느라 허리뼈 휘게 일하시며, 잠도 남들 다 편히 잘 때까지도 더 많이 일하시며 우리를 이렇게 학교에 보내주셨다.

이 생각을 하니 부모님한테 효도해야겠다는 생각이 많이 든다. 이것을 계기로 엄마에게 약속을 할 것이다. 이제부턴 공부 열심히 하고, 될 수 있으면 엄마 속을 썩히지 않겠다고. 그러기 위해서는 모든 일에서 내가 지금보다 더 열심히 해야겠다고 생각한다.

내가 지금 이 순간을 빌어서 엄마에게 못했던 말을 하고 싶다. "엄마, 사랑해요!"

우리 할아버지

中 2-2 于 秀 莉

우리 할아버지, 나를 많이 아끼고 좋아해 주신 우리 할아버지, 그렇게 자상했던 우리 할아버지, 지금은 우리 곁에 계시지 않습니다.

이 년 전, 할아버지는 엄마, 그리고 삼촌과 병원에 갔습니다. 뜻밖에도 암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엄마와 아빠는 어떻게 라도 좋으니 할아버지의 병을 고쳐 보려고 이 병원 저 병원을 돌아다니면서 무엇이든 좋으니 방법을 알려고 애썼습니다. 하지만 병원에서는 아무 방법도 찾아주지 못하고, 그저 두 달, 석 달밖에 안 남았다고만 했습니다.

식구들은 너무 슬퍼했습니다. 사실 어른들께서는 이런 얘기는 아이들이 알 필요 없다며 모두들 쉬쉬하며 우리에게는 잘 말해주지 않으셨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엄마가 저에게 다 털어놓으셨습니다, 할아버지가 암이라는 사실을. 저는 그 때 믿기지가 않았습니다. 하지만 믿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저는 정말 슬펐습니다. 이런 병은 그저 TV에서나 봐왔던 병인 줄 알았는데, 우리 할아버지에게 걸리다니てててててて, 정말 슬퍼서 그만 그 말을 듣자마자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지금 우리 할아버지는 이 세상에 안 계십니다. 하지만 이제 슬퍼하지 않을 겁니다. 우리 할아버지는 기적적으로 다른 사람들보다 일 년 반이라는 세월을 더 사셨습니다. 그리고 아무 고통 없이 돌아가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지금 할아버지가 편히 돌아가셨다는 것을 기쁘게 생각하고 싶습니다.






친 구

中 2-2 王 偉 立

사람들은 저에게 물어봅니다. 제가 세상에서 가장 값지게 여기는 것이 무엇이냐고. 그럼 전 서슴없이 대답을 합니다. 바로 친구라고요.

슬플 때나 힘들 때나 옆에서 위해 줄 사람은 바로 친구입니다. 기쁜 일이 있을 때 옆에서 같이 나눠줄 사람도 역시 친구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전 친구 없인 아무 일도 할 수 없게 돼 버렸습니다. 왜냐면 학교에서 무엇을 하던지 어디를 가던지 가장 먼저 찾는 게 바로 친구니까요.

전 이렇게 생각합니다. 소중한 친구가 단 한 명도 없는 사람은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이라고. 그만큼 사람이 살아갈 때 친구는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예를 들어 성적표가 나왔는데 아주 나쁘게 나왔습니다. 그래서 기분이 아주 안 좋을 때, 엄마 아빠한테 말할 수도 없고, 하다못해 동생한테 말할 수도 없고, 그땐 정말 친구밖에 없어요.

친구는 참 소중한 것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사람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친구는 돈으로도, 명예로도 바꿀 수 없다고.

여러분, 여러분도 지금 당장 진정한 친구를 한 번 사귀어 보세요. 아마 평생 후회하지 않을 거예요.















<우리들의 생활이야기>

나

中 2-3 高 慧 丞

난 어렸을 적부터 서울에서 살았다. 초등학교 때는 공부는 중간, 반에서도 얌전했다. 발표하는 것도 제대로 못했다. 그래서 날 가르치시는 선생님들은 다 나를 얌전하고 사교성이 부족하다고 했다. 친구와 놀기를 꺼려하고 말을 부치는 것을 두려워했다. 그래서 엄마는 동생과 나는 성격이 정반대라고 했다.

하지만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는 성격도 활발해졌고, 친구와 어울리는 것도 매우 좋아하게 되었다. 중학교에 올라온 뒤, 내 주위에는 친구들이 많아졌고, 발표하고 질문하는 것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래서 방과 후에는 친구들과 매일 같이 놀러 다녔다.

지금은 예전과는 달리 얌전하지도 않다. 애들은 날 장난꾸러기라고 한다. 수업 후 쉬는 시간은 남자아이들과 어울려 뛰어 놀고, 점점 사내아이가 돼 가는 것도 같다.

성격이란 것은 자신이 개척하고 창조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앞으로 내 성격은 내가 바꿔서 지금보다 더욱 활달하고, 사람들에게 칭찬 받는 사람이 되고 싶다.

나의 보물 1호

中 2-3 張 心 美

내가 일곱 살 때, 처음으로 기억나는 생일 선물, 바로 동네 남자 친구가 준 꽃목걸이.

이름은 꽃목걸이지만 사실은 색종이로 엮어서 만든 것이다. 선물은 그전에도 엄마, 아빠, 친척들이 사주신 것도 많았지만 처음으로 사귄 친구가 준 거라 더욱 의미가 깊었다. 그 남자애는 유치원에서 만난 애였다.

난 어렸을 때 친구들이랑 잘 어울리지 못했다. 하지만 그 애만은 달랐다. 같이 얘기하면 너무 편하고 재미있었다. 그리고 내 생일날 그애가 준 목걸이, 그 뒤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사랑하는 친구 심미에게", 삐뚤삐뚤한 글씨로てててててて.

난 그때 너무 기뻤다. 그래서 그 목걸이를 걸고 집까지 걸었던 기억도 난다. 하지만 이사한 뒤로는 목걸이가 보이지 않았다. 너무 슬퍼서 난 울어버렸다. 그러나 그 남자애와 목걸이는 아직도 내 마음속에 보물 1호다.


나의 자화상

中 2-2 姜 念 珠

난 이 세상에서 15년이라는, 길다면 긴 시간을 보냈다. 처음 이 세상에 태어났을 땐 난 아마도 아무 생각도 없고, 그저 울기만 했을 것이다. 그렇지만 한 살 한 살 먹어가면서부터 나에게도 생각과 감정이 생겼다.

어렸을 적에 난 너무나도 내성적이었다. 남이 무엇을 요구하면 그걸 거절 못하고 끝까지 들어주고, 남이 나한데 뭐라고 그러면 난 끝까지 아무 말도 못한 채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초등학교 때에 난, 공부를 누구 못지 않게 최선을 다 했고, 항상 좋은 성적만이 나에게 있었다.

하지만, 중학교에 올라와선 왜 그렇게 공부가 하기 싫고, 왜 해야 되는지를 아직까지 모르겠다. 나의 성격은 외성적으로 많이 바뀌었다. 내 의견도 남한테 웬만큼은 표현할 수 있고, 친구들하고 있을 땐 정말 나도 딴 사람인 것같이 느낄 때도 있다.

여태까지 이렇게 많이 변해 온 나, 나의 미래는 과연 어떻게 변해 있을까? 어쨌든, 난 최선을 다해서 하루하루를 살아갈 거다.



나의 자화상

中 2-3 柳 欣 雅

시간은 정말 물처럼 빠르게 흘러갔다. 어제가 바로 갓난아기였는데, 지금은 벌써 훌쩍 커버렸다. 이젠 혼자 밥도 차릴 수 있고, 혼자 생활할 만큼 컸다. 하지만 난 그렇게 기쁘지만은 않다. 왜냐하면 난 지금까지 별로 한 일이 없기 때문이다.

지금까지의 나는 항상 철부지 어린 아이였다. 하지만 이제 난 더 이상 이렇게 시간을 낭비할 수 없다. 난 여태까지 열심히 공부한 적도 없고, 효도한 적도 없다. 그렇다고 친구들에게 잘 해 준 적도 없다. 이것은 자랑거리가 아니지만, 별로 창피하게 생각한 적도 없다.

세계는 좋은 것과 나쁜 것으로 나누어져 있다. 하지만 난 아무래도 나쁜 쪽인 것 같다. 하지만 난 아직 늦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지금부터라도 열심히 해서 고치면 된다고 생각한다.

그 모든 것이 쉬울 순 없다고, 세상은 언제나 소리친다! 하지만 난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열심히, 용감하게 살아갈 것이다.

나의 필수품

中 2-3 王 淇 萱

저는 항상 예전에 여성들이 은장도를 지니고 다닌 것처럼 어디를 가든지 몸에 지니고 다니는 게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제 모습을 비추어 볼 수 있는 '거울'입니다. 이것이 없으면 전 하루도 편히 있을 수가 없어요. 전 항상 제가 걸어다닐 때의 모습은 어떨까, 밥 먹고 있을 때의 모습은 어떨까하고 생각해요. 그래서 전 평소에 거울을 자주 보는 편이죠. 그것을 본 여러 친구들은 "공주병"이라고 놀려대지만, 그렇지만 전 상관없어요. 그냥 이젠 일종의 습관인 걸요. 그래서 저희 반에 걸려 있는 거울은 항상 제가 닦아요. 청소 당번이 아니더라도 그건 언제부턴가 제 차지가 되었죠. 어때요? 저의 필수품 이 정도면 여자애의 필수품으론 충분하죠?

항상 거울을 보면서 자기자신을 비추어 보세요. 그리고 자세히 관찰하세요. 그럼 자기한테 자신이 없어도 부분부분 보면서 자신이 붙을 수가 있겠죠?

이젠 저의 필수품에 대해선 할 얘기가 없네요. 그럼 전 또 거울 보러 가야지!



내 자신에 대하여

中 2-3 畢 美 蘭

벌써 길고 긴 15년이 지난 오늘, 나는 얼마나 황금 같은 시간을 낭비했나? 지난 일을 돌아보면서 나는 정말로 한없는 후회를 하게 된다. 정말이지 지난 일들을 생각하면 한숨만 "푹, 푹" 쏟아져 나온다! 하지만 이제 와서 후회하면 뭐하나, 전부 소용없는 일들을てててててて.

초등학교 땐 철없던 나의 모습들, 마치 어린아이들이 떼를 쓰는 것처럼 철없는 철부지 시절. 그저 엄마, 아빠에게 걱정만 갖다 주는 어린 아이てててててて. 이제 와서 생각하니 정말 부모님께 부끄럽고 죄송스럽기만 하다!!

하지만 지금의 나의 모습은, 전보다 얌전하고 많이 성숙해졌다. 그래도 여전히 떼를 쓰는 건 예전과 같지만. 이제부턴 뭐든 열심히 하여 부모님께 효도하며, 부끄럽지 않은 딸이 되도록 노력할 것이다. 앞으론 좀더 뭐든지 혼자서도 꿋꿋이 해낼 수 있는 내가 됐음 좋겠다.

시간이 흐를수록 난 그 시간과 함께 많은 변화가 생길 것을 다짐한다.

산은 나의 놀이터

高 3-3 金 秉 徹

내가 살던 대전의 한 작은 동네는 시내와는 가까웠지만 그리 번화하진 않았다. 우리 집 앞에는 예전에는 물고기가 아주 많았는데 지금은 오염이 되어 고기가 살지 않는 대전천이라는 조그마한 하천이 흐르고, 집 뒤쪽에는 보문산이라는 작은 산이 있다. 그 산밑에는 내가 다녔던 초등학교가 있다. 그 산은 하도 많이 가서 산 구석구석 모르는 데가 없을 정도였다. 소풍도 그 산으로 가고.

아주 어렸을 적, 아빠와 처음 올랐던 그 산은 그리 높지 않은 산이었다. 걸어서 2시간이면 꼭대기에 있는 보문산성에 다다랐다. 산 밑 입구에는 오락 시설이 있고 여러 음식점이 있다. 산을 오르려고 입구를 지나칠 때 아버지와 난 항상 풍선 터뜨리기 게임을 해서 작은 인형을 하나씩 탔다. 산을 오르기 전에 아버지는 나에게 솜사탕과 번데기를 사 주시며 "힘들어도 참을 수 있지?"라고 물어보시고 했다. 산 중턱에는 놀이동산이 있는데 크지는 않았지만 그 땐 어려서인지 엄청나게 커 보였다. 난 우리 동네에 놀이동산이 있다는 생각만 해도 좋았다. 놀이동산을 지나칠 때마다 난 항상 아버지에게 떼를 쓰곤 했다. 아버지는 내려오면서 들르자고 말하곤 또 산을 올랐다. 한참 동안 올라 꼭대기인 보문산성에 닿으면 항상 마시던 약수를 마신 뒤 아버지와 내가 손을 잡고 외쳤던 '야호'. 그리곤 대전 시내를 바라보다 내려왔던 우리.

그 산에 아버지는 왜 그렇게 자주 나를 데리고 가셨는지. 놀이동산에서 그렇게 놀고 싶어, 지나치면서도 끝까지 바라보던 날 불쌍하지도 않으셨는지 한 번도 같이 가 주시지 않으시고てててててて. 하지만 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난 뒤엔 그 산을 더 자주 올랐고, 그렇게 가고 싶어했던 놀이동산도 친구들과 함께 갈 수 있었다. 그렇게 초등학교 6년 동안은 줄곧 그 산에만 가서 놀았다.

중학교를 서울로 오고 난 뒤로는 그 산엔 한 번도 못 올라봤다. 대전에 자주 가지 않으니 산에 오를 겨를이 없었다. 겨울 방학에도 친구들 만나느라 한 번도 못 올랐다. 고등학교에 올라 여름 방학 때 갔던 그 산은 어렸을 적 올랐던 산과는 너무 많이 달라져 있었다. 아스팔트 도로와 없어진 약수터, 또 예전보다 나무들의 수도 적어졌다. 나도 모르게 기분이 나빠졌다. 그리곤 다 오르지도 못하고 집으로 갔다.

집에서 옛 생각을 하며 그 산에서 찍은 사진들을 펼쳐 보았다. 내가 줄곧 놀던 나의 놀이터가 없어져 좀 실망을 했지만, 사진으로 남은 옛 모습을 보며 다시 한 번 추억들을 떠올렸다.


2000년 과학 발전에 대한 나의 생각

中 2-1 謝 愼 珍

이제 몇 개월이 지나면 2000년대를 맞이한다. 그동안 밀레니엄 베이비다, 종말이다, 복제다 많은 일들을 거쳐 맞이하게 될 2000년, 내 마음은 아직 싱숭생숭하다.

솔직히 '과학 발전'은 별로 원하지 않는다. 인간은 힘든 일을 겪으며 절망하고, 힘들어하며, 그러면서 자신의 생각을 성장시키고, 성공에 대한 뿌듯함을 느끼며 살아가는 게 가장 인간다운 것이라 생각한다.

그런데 과학이 발전해서 무엇이든 로봇을 시키고 한다면, 정말로 눈뜨고 볼 수 없는 세상이다. 로봇이 인간을 대신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인간은 생각하고, 사랑하고, 기뻐하며, 슬퍼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로봇은 그런 게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언젠가 우리 발로 걸어가지 않아도 되는 시대가 될 때, 우리는 살아갈 의미를 잃을 것이며, 모든 기계 속에 파묻혀 기계의 '꼭두각시'가 될 뿐일 것이다.

아침에 차가운 공기를 마시며 부랴부랴 뛰어가는 것도 여느 때 생각해보면 참으로 행복한 것 같다. 해가 뜨는 것을 보면서 바람을 느끼면서 땅을 밟는다는 의미는 우리가 살아있다는 작은 증거이다. 그런데 모든 기계가 세상에 꽉 찼다는 걸 생각해 보면, 땅이 있을 곳이 없어지고, 해도 없어지고, 우리가 뛰는 일이 없어진다는 건 너무 슬픈 일이다.

그렇다고 '과학'을 무조건 비판하는 건 아니다. 모두 편하자고 그러는 거니까! 다만 내 생각은 너무 '편하려고만' 하지 말자는 것이다. 나는 아직까진 이대로가 좋다. '복제 인간'이라는 것도 왜 생겼는지 모르겠다. (그건 신에게 도전장을 내미는 것이나 마찬가진데てててててて.) 너무 편하려고만 하기 때문에 인간은 멸망하는 것이다.










자기 자신에 대해서

中 2-1 張 慶 惠

사람들은 제각기 자기 자신의 인생이 있는 거 같다. 예를 들면, 부자지만 불행한 사람, 가난하지만 행복한 사람, 또 욕심 많은 사람이 있는 반면에 아주 착한 사람도 있으니까.

'나는 전생에 무엇이었을까?', '전생에 어떤 사람이었을까?' 등등은 내가 자주 생각하는 말들이야. 하지만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아. 현재 난 어떤 사람인가가 중요한 거지.

지금까지 내가 살아온 나만의 인생은 정말 편하지만은 않았어. 아니 내가 세상에 태어나서 열 한 살까지는 행복(?)했다고 볼 수가 있어. 문제의 원인은 엄마가 도박을 시작하고 난부터지. 내가 조금만 더 똑똑하고 현명한 아이라면 불행은 없었을 테지. 하지만 내가 그 나이 때는 그리 똑똑하지도, 현명하지도 않아서 오히려 불행이 닥치기만을 바랬는지도 몰라. 엄마랑 같이 아빠를 속였으니까. 그래서 그 불행은 엄마와 아빠가 헤어지는 거였어. 나는 그때도 왜 헤어지는지 엄마의 말만 듣고 아빠를 미워했었어. 그렇지만 지금은 둘 다 이해하기가 싫어. 아니 아빠의 맘은 조금은 이해할 수 있게 됐지.

이혼 후, 며칠 후에 아빤 새엄마를 소개시켜줬어. 엄만 아주 무섭고, 어쩔 땐 다정한 그런 분이었어. 조금 더 말하자면 어쩔 땐 불같이 정열적이시고, 어쩔 땐 얼음장같이 차가운 그런 사람이랄까? 나는 그 분으로 인해 많은 걸 알게 됐고, 성격도 바뀌었지. 공부도 차츰 올라가기 시작했어. 난 이 분을 만난 걸 참 행운이라고 생각했고, 내가 크면 새엄마처럼 될 거라고 생각했지. 하지만 그 꿈도 오래 가진 못했어. 엄마의 지나친 군대식 교육에 나도 점점 지쳤는지, 어느날 엄마에게 반항을 했지. 이 일이 그렇게 큰 잘못이라고 생각하진 못했는데 엄만 나랑 화해를 한 뒤에도 나에게 냉정함을 보이고 있어. 엄만 나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어, "남 자식 키워봤자 아무 소용 없다더라." 난 너무나 슬펐어. 나도 다른 딸처럼 엄마에게나 아빠에게나 애교도 떨고 싶고, 하루에 있었던 일을 엄마랑 하루 종일 말도 하고 싶고, 하지만 맘같이 쉽지가 않은 걸てててててて.

나는 앞으로 어떻게 지내야 할 지 잘 모르지만 열심히 살 거야. 그리고 내가 크면 친엄마, 새엄마, 아빠 이 세 분한테는 꼭 효도해 드리고 싶어. 그러기 위해선 내가 우선 잘 돼야해! 나 잘할 수 있을까?



<기행문>

남이섬 기행문

高 1-2 劉 貞 希

4월 17일, 토요일, 아침.

아침부터 모두들 들뜬 마음으로 예쁘게 옷을 차려 입고 운동장으로 모였다. 선생님들은 그 많은 학생들을 관리하느라 모두 바쁜 모습이었고, 우리들은 그런 걸 아는지 모르는지 마냥 즐거워했다.

시간이 되자 모두들 자기 반 버스에 들어가 앉아 김밥도 먹고, 노래도 부르고, 모두들 가만히 있지를 않았다. 그리곤 두 시간동안 버스에 앉아 빨리 도착하기를 바라며, 버스는 출발했다.

남이섬てててててて

드디어 그곳에 도착했다. 우리는 그곳에서 남이섬으로 가는 배를 타고 2분도 안 걸려 남이섬에 도착했다. 그곳 남이섬은 말 그대로 작은 섬이었다. 그 섬 주위엔 모두 강이었고, 풍경도 멋졌다. 모두들 다음 배를 타고 올 친구들을 기다리고, 사진도 찍고 있었다. 모두 다 모이자 걸어서 야외 음악당으로 향했다.

낮, <야외 음악당>てててててて

야외 음악당 주위에서 점심밥을 먹고, 사진도 찍고 나서 음악당 무대로 모두 모였다. 그리곤 아이들이 며칠 동안 준비해온 장기나, 춤, 노래를 선보였다. 비록 처음엔 기계상의 문제가 있었지만 모든 게 성공적으로 끝났다. 그리곤 자유시간이 되자 나와 친구들은 놀이 기계를 타면서 이곳저곳 돌아다녔다.

보트

돌아다니다 보니 보지 못했던 동물이 많았다. 그 중에서 닭 같기도 하고, 꿩 같기도 한 어떤 동물인지 분간이 안가는 게 있었다. 우린 열심히 관찰해 봤지만, 그 이상한 동물 우리에서 나오는 지독한 악취 때문에, 우린 그렇게 의문을 갖고 강으로 내려갔다. 강으로 내려오자 보트를 타는 곳이 있었다. 처음엔 타는 게 돈이 아깝고, 타면 위험하고 재미없을 거 같아서 안 타려고 했지만, 친구들이 타보고 싶다며 자꾸 재촉을 하는 바람에 못 이겨 탔다. 그런데 막상 타보니 너무 재미있었고 시원했다. 그리고 보트를 타고 섬 한 바퀴를 돌자 섬이 생각보다 크다는 걸 느꼈다. 또한 그 섬 혼자 강 중간에 있다는 게 외롭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한 바퀴를 돌고 나서, 다시 음악당으로 발길을 돌렸다.

남이섬을 떠나며てててててて

막상 음악당에 앉았으니, 태양이 너무 뜨거워 앉을 수가 없었다. 오늘 아침만 해도 추울까봐 긴 팔을 입고 왔더니, 이렇게 더울 줄은 상상도 못했었다. 음악당에서 친구들과 수다를 떨고 나서, 선생님들께서 부르는 소리에 우리는 처음에 도착한 곳으로 되돌아갔다.

남이섬을 떠나자, 조금은 아쉬웠고, 또 한편은 행복했다. 이번에 이곳으로 여행을 온 건 다행인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다. 이곳 남이섬은 작지만 멋진 풍경을 가진 곳이고, 재미 보단 느낌이 좋았던 곳 같다. 하지만 또 가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 곳이다. 왜 그런지 몰라도 그 섬에 있으면 답답함이 느껴진다. 아무래도 섬이 작아서 인지도 모른다.

그래도 그 곳을 떠나오면서 아직까지도 잊지 못하는 건, 길게 뻗은 나무들과 이름 모를 동물들てててててて, 그리고 고요한 강일 것이다.



남이섬 기행문

高 1-3 李 惠 正

따사로운 햇살 아래 '4월'이란 투명한 친구가 인사를 해왔다. 그러나 반복된 일상 생활속에 나와 모든 친구들은 지쳐 갔다. 하지만 '죽으란 법'은 없다고 투명한 친구 4월은 나와 친구들에게 선물을 주었다. 그건 바로 4월 17일에 '남이섬'으로 소풍을 다녀올 수 있는 선물이었다. 그래서 난 그날만을 손꼽아 기다렸다.

14일, 15일, 앗 드디어 내일이 17일이다. 우리들은 전날 기쁜 마음으로 친구들과 어떤 옷을 입을까, 먹을 것은 하며 이런저런 고민 끝에 모든 준비를 마치고 부푼 마음으로 꿈기차를 타고 떠났다.

17일, 난 아침부터 친구와 만나서 학교로 향했다. 그리고 내 눈엔 웃음 짓고 있는 다른 친구들도 보였다. 둘러모여 친구들과 웃고 떠들고てててててて. 드디어 버스를 타라는 소리에 우리는 또 한 번 흥분하기 시작했다. 당연히 버스에선 조용할 리 없는 우리들은 시끄러운 음악을 틀어놓고 흔들리는 버스에서도 사진을 찍어댔다. 또 먹을 것을 사랑하는 우리는 남이섬에 도착하기도 전에 배가 터지도록 먹어댔다. 그렇게 정신없이 놀다보니 드디어 남이섬으로 가는 배를 타는 곳까지 도착했다. 며칠 전부터 비가 내린다는 소리에 우리들은 걱정 아닌 걱정을 했는데 하늘엔 비는커녕 먹구름 한 점 보이지 않았다.

내 기억으론 배를 타고 5분쯤 들어간 것 같다. 그러자 섬이 보이고, 배에서 내리자 꽃향기가 바람을 타고 코를 스쳤다. '이제 정말 봄이군'하는 마음이 들었다.

무사히 남이섬에 도착했고, 선생님이 식사시간을 주셨다. 또 다시 우리들은 채 꺼지지도 않은 배를 다시 채우기 시작했고, 식사가 끝나고 우리들은 모임 장소에 다들 집합했다. 각 반마다 준비한 춤솜씨와 노래자랑에서부터 아이들이 좋아하는 '꼬꼬마 텔레토비'라는 연극까지, 정말 화려한 무대였다. 우리는 공연이 끝난 뒤에야 비로소 원하던 자유시간을 가졌다. 난 고1이 되어 우리 반 아이들과 처음 와보는 소풍이었기에 바쁘게 이 친구 저 친구와 할 것 없이 사진을 찍었다. 또 이번 소풍은 나한테는 다시 한 번 더 좋은 기회였다. 평소 풍경사진을 찍기 좋아한 나로선 기쁜 일이었다. 그래서 난 내가 그림으로 그리고 싶었던 예쁜 풍경들을 사진에 담았다. 정말 이번 소풍은 내게 소중한 시간이 되었다.

남이섬에서 또 빼놓을 수 없던 건 놀이기구였다. 그 중에 난 두 가지 놀이기구를 이용했다. 아주 오랜만에 타보는 다람쥐통과 온몸을 긴장시키는 도깨비집에 들어갔다. 다른 놀이기구도 이용하고 싶었지만 날씨가 많이 더운 탓에 어지럽고 속도 불편했다. 그래서 의자에 앉아 잠시 친구의 어깨를 빌려 20분간 눈을 감았다. 하지만 그건 문제거리가 되지 않았다. 여전히 마음은 즐거웠으니까!

난 남이섬을 걸으며 계속 이 생각 저 생각을 했다. 그냥 너무 오랜만에 나와 본 야외 소풍이라서 그런지 마음이 너무 편안했다. 그리고 어려서부터 물을 좋아하는 나는 꼬마 아이처럼 쪼그리고 앉아 마냥 물을 쳐다보기도 했다. 머리 속의 고민마저도 물과 함께 떠내려보내는 것 같아서 기분도 좋았다.

남이섬 소풍은 즐겁기도 했고, 한편 힘들기도 했지만, 일상 속에 잃어버린 나를 찾을 수 있던 기회였다. 그날 저녁 모든 것을 끝마치고 돌아오며 많은 생각을 할 수 있었음에, 투명한 친구 4월의 선물은 내게 큰 기쁨

이었다.

수학여행을 다녀와서

高 2-1 劉 佩 凱

정말 순식간에 몇 년이 지나간 것 같다. 안타깝기도 하고, 아쉽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는 겁이 난다. 정리해 보면 해 놓은 일은 그다지 많지 않은데てててててて.

중3 수학여행을 다녀온 지 얼마 지나지 않은 것 같은데, 그때의 추억이 생생하기만 한데, 벌써 고교시절의 추억 중 하나인 수학여행을 가게 되었다. 이번 여행지는 '설악산'이었다. 단풍을 기대하였지만, 길고도 길었던 여름 때문에 단풍의 붉은 빛이 눈에 잘 띄지 않았다. 그래서 그런지 허전했다. 아쉬웠지만 얼마 익지 않은 단풍만이라도 한없이 보았다.

우리는 학교에 남아 수업을 할 선후배의 부러운 눈빛을 한 몸에 받으며 목적지를 향해 출발하였다. 일기 예보에서는 비가 올 것이라 보도하여 걱정이 되긴 하였지만, '비가 무슨 대수냐?'며 걱정을 떨쳐 버렸다. 하지만 하늘도 무심하게 불행은 찾아 왔다.

차안에서는 각자 놀 궁리를 짜다가,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아, 친구들이 집에서 정성껏 준비해 온 도시락을 서서히 꺼내어 나눠 먹었다. 생전 처음 짧은 시간 내에 여러 가지 김밥을 먹었다. 그리고 비좁은 좌석 사이의 공간을 돌아다니며 친구들과의 추억거리인 '사진'을 찍었다.

가는 도중 우리는 38선 휴게소에서 차를 세웠다. 내려다보니 바닷가가 보였다. 물론 바다에 발도 적시지는 못했지만, 근처에만 서 있어도 짠 내가 났고, 바다 속의 식물 냄새가 물씬 풍겼다. 우리 모두 매일 같은 방식으로 정해진 크기의 교실, 집, 학교들을 반복하며 지내다 이렇게 끝이 보이지 않는 바다를 보니, 기분이 너무 상쾌했다. 다행히 춥지는 않았다.

다시 차를 타고 가다보니, 어느새 옛 선비들이 경치를 감상했었다는 경포대에 도착하였다. 단체 사진을 찍고, 휴식 시간도 주지 않은 채, 곧바로 차를 타고 우리가 3일 동안 지낼 숙소로 향했다. 가는 도중 유리창 밖에 보이는 많은 여관을 보며, 친구들 모두 기대하지 않는다는 듯이 밖을 쳐다보았다. 그러나 우리가 지낼 숙소는 예상 밖으로 좋았다. 아마도 처음부터 기대를 하지 않아서 그런 것 같았다.

이튿날, 기어코 비가 내렸다. 따스한 햇살이 가끔 쪼이긴 했지만 가랑비는 끝없이 내렸다. 우리는 아침 8시에 흔들바위를 목적지로 산길로 들었다. 처음에는 얼마만에 맡아보는 산공기냐면서 마음껏 숨을 쉬었다. 장장 2시간이 넘는 산길을 힘들게 올라갔다. 바위에 도착하자 천식에 걸린 사람 마냥 숨을 쉬기가 힘들었다. 다행히도 비가 크게 오진 않아 비옷을 입지 않고 계속 걸어갔다. 하지만 빗방울은 계속 커져만 갔다. 그래도 사진만은 찍고 내려왔다.

숙소에서 휴식을 취한 뒤, 우리가 비옷을 입고 간 곳은 바로 옛날에 선녀가 내려왔다던 비선대였다. 외설악에서 출발을 했다. 그곳을 향한 산길 역시 험했다. 비까지 내려 미끄럽기까지, 엎친 데 덮친 격이었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비는 끝을 보이지 않고, 커져만 갔다. 정신없이 산길을 올라 고개를 들어보니, 안개 사이로 보이는 층층 암벽, 푸른색과 붉은 색으로 혼합된 갖가지 나무, 책에서만 보았던 광경이 바로 내 눈앞에 있었다. 한 폭의 그림 같은 풍경에 우리 모두 흠뻑 젖어 있었다. 그 와중에 우리를 안내해 주시던 산악구조대장은 눈앞에 보이는 세 개의 산봉우리를 설명해 주었다. 그 설명은 귀에 들어오지 않았고, 단지 숨이 차고 현기증이 나서 봉우리가 여섯 개로 보였다. 단체 사진을 찍고 각자 돌아다니다 모이라는 선생님의 불호령이 들려왔다. 집합 시간이 됐지만 모두 모이지 않아 버스에 올라타기 전 우리는 기합을 받았다. "하나에 정신, 둘에 통일てててててて"이라는 말을 외치며. 그 순간의 구조대장 얼굴은 괴물로 보였다.

지친 몸을 이끌며 다시 숙소로 돌아왔다. 무척 힘들었지만 물도 깨끗했고, 공기도 맑고, 무엇보다도 목적지까지 이르렀다는 기쁨으로 나의 아픈 다리를 위로했다. 신기한 건, 친구들과 같이 있으면, 힘든 것도 잊고 마냥 신이 났다. 난 그날, 며칠 동안 걸을 길을 하루만에 다 걸어 버린 거 같았다.

셋째날 아침, 온몸이 아파왔다. 무리한 몸을 추스리며 통일전망대로 향했다. 1시간 뒤 휴게실에서 내렸다. 우리는 줄을 서서 실내로 들어갔다. 안에는 영화관 같은 시설이었다. 스크린과 수많은 의자가 보였다. 우리는 그곳에서 북한에 관한 짧은 필름을 보았다. 다시 버스로 1시간을 가서 통일전망대에 도착하였다. 사방이 유리로 된 방으로 들어가, 여군 안내원이 앞에 보이는 북한의 광경을 자세히 설명해 주었다. '선녀와 나무꾼'이라는 섬 이외에 많은 섬과, 북한과 남한 각 군에서 회의를 했다던 '아처'라는 곳. 아무리 한국에 살고 있어도 이곳에 와 보기는 힘들 것 같다.

우리는 다시 버스를 타고 낙산사로 갔다. 도중 차 밖으로는 바다가 보였고, 그 앞에는 오징어를 말리고 있었다. 정말 많았다. 차에서 내리어 경사진 길을 걸으며 모두 침묵을 지키어 거친 숨소리만 들려 오던 중, 친구는 "왜 유명한 사찰은 높은 곳에 있는 걸까?"하고 힘든 다리를 두드리며 물어왔다. 나는 슬쩍 주위의 친구들 얼굴을 보니 고개를 위아래로 흔들며 공감하였다. 말을 하고 싶지 않을 정도로 모두 지쳐 있었다. 모두 걸음을 멈추자 큰 돌상이 보였다. 바로 해수관음보살이었다. 단체 사진을 찍고, 의상대로 갔다. 언젠가 TV에서 보았던 곳이다. 의상대 뒤로 돌아가면 낭떠러지였다. 밑에는 바다가 있었고, 파도가 돌에 부딪혀 멋있었지만 난 무서웠다. 비록 안전장비는 돼 있었지만 겁이 났다. 그리고 우리는 낙산 해수욕장으로 갔다. 그 곳엔 보트가 있었다. 친구들은 선생님의 허락을 받아 바다를 누비었다. 하지만 난 보트를 타지 않았다. 잠도 못 자고, 힘이 든 나머지 계속 앉아서 바다만 바라보았다.

자유시간을 가진 후, 돌아가 저녁을 먹고 나서, 숙소 앞마당에는 캠프 파이어에 쓸 작은 무대가 마련되었다. 마당에 미리부터 앉아 프로그램이 시작하기를 기다렸다. 물론 큰 무대와 화려한 조명을 기대하진 않았다. 하지만 순간 너무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도 친구들의 춤솜씨, 말솜씨가 무대를 빛내 주었다. 첫번째로 선생님들이 노래를 불러 무대를 장식해 주었다. 학생들의 환호소리와 Encore이 쏟아져 나오자 선생님은 쑥스러워 하시면서 계속 웃고 계셨다. 그리고 4반 아이들이 미리 서울에서 녹음해 온 노래와 급하게 준비해 온 춤, 마지막으로 그날 낮에 입었던 비옷을 활용해서 무대의상을 만들어 가수 흉내를 내었다. 격렬한 박수 소리가 끊이지 않아 모두 신이 났다. 무대에 정신이 빠져 있는데, 뒤에서는 숙소에서 미리 준비해 놓은 폭죽을 터뜨렸다. 그다지 화려하지 않아서 많은 시선을 끌지는 못했다. 정말 아쉬웠던 건 캠프파이어의 전통인 '여장 남자 패션쇼'를 하지 못한 것이다. 다음해부터는 회복되어 전통을 이었으면 좋겠다.

캠프파이어를 마친 뒤, 각자 방으로 돌아갔다. 마지막 밤이라서 그런지 친구들이 피곤에 지쳐 있었다. 하지만 우리는 두 번 다시 오지 않는 기회라 여기고 둘러앉아 못 다한 이야기도 나누고 게임도 했다. 여학생들은 3일 밤 동안 대부분이 각자의 방에서 잠을 잤다. 하지만 남학생들은 내내 도박장 분위기에서 보냈다고 들었다.

마지막 날이다. 3일 동안 '정'이든 숙소를 떠나 버스에 올라탔다. 창 밖으로 보이는 풍경을 보며 잠이 들었다. 우리는 제4땅굴에 도착하였다. 군사지역이라서 그런지 검문을 철저히 하였다. 땅굴에 들어가기 전, 우리는 군인 아저씨의 안내를 받아 안으로 들어가 또 하나의 짧은 필름을 봤다. 제목이 '북한의 실체'였다. 남한에서 알고 있는 북한은 모두 굶주려 가며 생활하지만, 북한은 지금 자금이 없어서 힘들게 사는 게 아니라, 나라에서는 자금을 모두 전쟁 무기와 장비에 투입하고, 국민 모두가 굶주리는 게 아닌, 많은 학생들은 교복을 입고 학교에도 다닌다고 한다. 그리고 남한에서는 북한으로 수많은 식량지원을 하였지만, 북한에서는 남한으로 잠수 공비를 투입시키고, 전쟁을 준비하고 있고, 네 번씩이나 땅굴을 파 침입하려 하였다. 이런 사실을 담은 테이프를 보고 나와서 난 어리둥절했다. 내가 알고 있는 사실과 너무 다르지 않은가! 우리는 땅굴 앞에서 줄을 서서 들어가기만을 기다렸다. 군인 아저씨가 사진 촬영을 금한다며 카메라를 수거하였다. 땅굴에 들어가니 온도가 낮았다. 춥기도 하고, 무서운 느낌도 들었다.

땅굴에서 떠나 마지막 여행지인 '소양강댐'으로 향하는 도중, 기사 아저씨의 착오로 댐에는 가지 못하고, 시간이 늦어져서 차를 돌려 학교로 향했다. 친구들이 기사 아저씨를 졸라 노래방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친구들 대부분이 빠른 노래를 불러, 정신없는 가사와 음이 기사 아저씨에게 방해가 된다고 해서 얼마 부르지 못했다. 모두 아쉬움이 남는 눈치였다.

차안에서, 다 끝났구나 하는 생각에 서글프고 허탈한 웃음이 나왔다. 중학교 일 학년부터 여태까지 있었던 일이 한 편의 영화처럼 머리 속을 지나갔다. 언제 다시 이런 즐거움이 있을까 하며, 어느새 잠이 들어 버렸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나는 이렇게 생각했다. 남은 학교 생활에 충실하고, 나중에 돌이켜봐도 후회하지 않을 만큼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여태껏 모든 것을 같이 하고 도와준 친구들의 우정에 정말 고마움을 느꼈다. 친구란, 인디언 말로는 '내 슬픔을 지고 있는 사람'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내 곁에 친구라는 소중한 것이 나를 뿌듯하게 만들어 준다. 순간 마음이 정말 편하고 따뜻했다.

우리는 모두 각자의 소중한 추억을 마음속에 새긴 채, 일상의 생활로 돌아갔다. 이번 여행으로 인해 많은 친구를 사귀었고, 새삼스레 우정의 소중함을 느꼈고, 많은 것을 깨달았다. 단체 생활의 중요함과, 평소에 무심코 흘려 보냈던 일들을 다시 생각하게 했고, 견문도 넓혀 주었다.

여행이란 사람에게 있어 정말 꼭 필요한 것이겠구나.

수학여행을 다녀와서

高 2-1 林 文 瑛

학기초 학교의 행사표를 보고 학수고대해온 수학여행, 그 여행을 다녀온 뒤 마음속에 깊이 새겨진 여운을 간직한 채 여행을 회상해 보려한다.

여행 전날, 내일 있을 수학여행을 잔뜩 기대하며 이것저것 정신없이 넣다 빼기를 수 차례. 대충 정리를 끝마치고 내일 차 속에서부터 한 판 '땡길' 생각에 일찍 잠을 청하려 했으나, 마치 약이라도 먹은 듯 더욱 말똥말똥해지는 눈. 참다못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이리저리 훑어보다 마침내 찾아낸 라디오를 듣다보니 잠이 들었다.

오늘은 수학여행가는 날, 학창시절에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단체 여행을 절대 후회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하고 학교로 향했다. 교문에서부터 마치 광고라도 하듯이 많은 사복 차림의 학생들이 환한 미소를 띠며 서있고, 교내는 더욱 말할 것 없이, 이리저리 흩어진 사람들에게서 공통적으로 웃음을 찾을 수 있었다.

얼마가 지났을까, 선생님의 신호와 함께 모두 한 곳으로 모여 교장 선생님 이하 몇 분 주임 선생님의 연이은 당부 및 경고의 말씀이 있으신 후, 우리는 교실에서 발신해온 부러운 눈초리를 한 몸에 받으며 차에 올랐다. 드디어 수학여행의 막이 오른 것이다.

차가 학교를 막 벗어났을까, 차안은 금세 먹자판이 됐다. 다들 아침을 거르고 왔는지 여기서 한 입, 저기서 한 주먹 씩 빼서 끊임없이 먹어대는 것이었다. 얼마가 지나 먹는 게 수그러드나 했더니, 이젠 남대문 시장을 방불케 하는 수다가, 그 다음엔 여기저기서 수 만 가지의 놀이가 여행 중 가장 지루한 차안을 가장 재미있게 장식하였다.

차를 탄지 다섯 시간쯤 지났을까, '38선 휴게소'란 곳에 도착했는데, 이름부터가 심상치 않던 이곳은 앞이 바다였다. 바다는 언제나 아름답고 신비하다. 저 바다의 끝은 어딜까? 정녕 하늘이란 말인가? 잠시 끝없이 펼쳐진 바다에 빠져 넋 나간 듯이 서있던 나는 애들의 사진 찍자는 권유에 귀가 솔깃해 달려가 사진을 몇 장 찍고 차로 돌아왔다. 다음으로 도착한 곳은 경포대였는데, 이곳은 명성과는 달리 나를 빨아들이진 못했다. 마침내 걱정하던 숙소 도착. 뜻밖에 숙소는 매우 흡족했다. 특히나 우리 방은 반에서 부러움을 살만큼 좋았다. 더욱 안심이 된 건 이곳에서 3일 밤을 다 지낸다는 것이었다. 정말 다행이었다.

다음 날, 선생님의 계속되는 재촉에 어제 밤을 설친 애들이 충혈된 눈을 힘겹게 깜박이며 떠날 차비를 하였다. 그들의 희망은 오직 차안에서나마 눈을 붙이는 것이었는데, 차를 탄지 2분 여가 지났을까? 막 편안한 자세로 앉아 있는 우리에게 선생님의 날카로우며 냉정한 말 한 마디, "일어나!", 주여, 진정 도착했단 말씀이십니까? 그러나 더욱 가혹한 건 오늘의 여행 코스-흔들바위와 비선대. 몸만 간신히 가누는 우리들에게 등산이라니, 하지만 젊음은 무한한 에너지.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더니 성큼성큼 잘도 올라 비선대에 도착, 올라온 노력이 헛되지 않게, 앞에 펼쳐진 절경에 입을 딱 벌리고 말았다. 그곳엔 장군봉 등 세 봉우리가 있었는데, 그 산들을 보고 있노라면 자연의 위대함에 고개를 숙이지 않을 수 없었다. 세상에 그 어느 누가 이런 것을 만들어 낼 수 있겠는가? 인간은 자연에 비해 한갓 미물에 지나지 않은데, 오만은 있을 수 없다는 걸, 겸손해야 한다는 걸 배웠다.

숙소로 돌아온 우리는 긴장이 풀려서일까, 이제 더는 움직일 수조차 없다는 듯이 "어휴"하는 소리와 함께 방에 주저앉아 버렸다. 그날 밤은 어떻게 지냈는지 모르게 아침이 밝았다.

셋째날, 우리가 도착한 곳은 통일전망대. 도착하기 전에 거쳐야 하는 휴게소, 그곳에서 10분 정도 되는 영화를 봤는데 정말 충격이었다. 제목은 '북한의 두 얼굴'이었는데, 한쪽엔 굶다 굶다 더는 못 견뎌 사람마저 잡아먹는데, 또 한편에서는 보도된 것과 마찬가지로 벤츠 200대를 구입할 정도로 여유롭고, 또 한국에 자금 및 식량 지원을 요구하면서도 땅굴이나 잠수함을 이용 공작원을 특파하고, 한편으론 민주와 평화를 외치면서도 핵무기를 개발한다. 그들에겐 평화나 통일 따윈 단지 공작원이 발각된 후 임시 피신할 구실이란 말인가? 너무나 뻔뻔스런 그들을 보며 한국 사람들의 염원인 통일이 언제쯤 이루어질 수 있을 지를 생각해 보았다.

영화를 다 본 우리는 통일전망대로 향했다. 그리고 그곳에 도착하자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건 성모상과 불상. 내가 가장 좋아하는 푸르른 바다보다, 한없이 인자하신 성모 마리아님의 두 손 모아 기도하는 가여운 모습과, 대자대비 하신 부처님의 모습이 북쪽을 향해있는 것이 먼저 눈에 들어와 순식간에 머리 속이 복잡해졌다. 얼마 후, 그곳 군인의 설명을 들으니 이곳에서 금강산까지 직경으로 차를 타면 30분도 안 되는 거리라는 것이다. 그래도 다행인 건 지금은 배를 타고나마 금강산을 유람할 수 있다는 것. 하지만 유람하는 사람들은 더 많은 것을 바라지 않을까?

그곳을 떠나 우리들이 도착한 곳은 낙산사. 하지만 사찰보다 바다에 더 애착이 가는 나는 바다에 도착하자 비로소 마음이 평화로와졌다. 더구나 그곳에서 생각지도 못한 무지 흥미로운 일을 경험했다. 그것은 바로 보트타기. 나는 처음으로 타는 배였지만 두려움보다는 흥분이 앞서 시종일관 감정정리를 할 수 없었다. 그리고 배에서 내린 후에야 흥분이 만족으로 변해 가슴속을 꽉 채웠다. 정말 행복했다. 그리고 못내 아쉬움을 간직한 채 해마랜드에 도착, 팔뒤꿈치가 새파래지도록 디스코를 타고 젊음의 열정을 마음껏 발산하고 숙소를 향하는 차에 몸을 실었다.

숙소에선 오늘만은 절대 자지 않겠다고 애들과 굳게 맹세했건만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노는 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고 자꾸만 감기는 눈을 도저히 올릴 제간이 없자 우린 그냥 자 버리고 말았다. 그래도 새벽 4시 30분이면 이른(?) 시각은 아니지てててててて.

마지막 날, 어제 잠을 못 잔 것도 원인이 되지만 이젠 이곳을 떠나야 한다는 아쉬움에 더욱 몸이 무거웠던 우리들은 힘겹게 그곳을 떠나고야 말았다. 우리는 한계령을 지나 안보교육관에 도착했는데, 그곳은 다름 아닌 제4땅굴의 소재지였다. 그 땅굴은 북한에서 남한으로 통하는 지하 통로였는데 더 놀라운 건 한 시간에 자그마치 1만 명이 통과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대단했다.

이어서 우리는 차를 타고 꼬불꼬불한 산길을 올라갔는데, 막 점심을 먹어서인지 모두들 속이 말이 아니었다. 그런데 도착할 줄은 모르고 계속해서 제자리걸음만 할 뿐이니 답답했다. 그러다 겨우 내린 곳은 옆에 호수가 있는 길가, 알고 보니 이건 소양댐이었다. 우리는 소양댐으로 올라가려 했었는데 결국엔 차로 운행할 수조차 없거니와 이미 시간도 많이 늦어져 그 길로 학교로 방향을 돌렸다.

요번 수학여행은 좀 특별했다. 생전 신경 쓰지 않았던 북한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또 다른 많은 것들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산과 바다를 고루 만나 매우 만족스러웠고, 첫날의 다짐이 완벽히 이루어졌음에 감사한다.


졸업여행

高 2-1 徐 小 晶

기다리고 또 기다리던 우리의 졸업여행이 다가왔도다. 정말 이 설레이는 마음 어찌 감당할까! 그동안 얼마나 들떠있었던지 여행 날짜가 바로 시험기간 이후라서 시험도 제대로 못 치루고, 오직 '여행' 생각 때문에 잠도 이루지 못했다. 언제나 항상 always '여행' 두 글자가 내 머리 속에서 가실 날이 없었다. 잔뜩 긴장하며 짐을 꾸리고 내일 학교 갈 생각만 했다. 너무 긴장해서 별 생각이 다 났다. 너무 긴장되어서 '정서불안'까지 되었다. 그래도 난 어김없이 잠이 들었다.

여행 날 아침, 새벽같이 일어나 대충 밥을 먹고 3박 4일의 해방의 시간들을 만끽하러 학교로 갔다. 여러 아이들이 각자 짐을 싸 메고 환한 얼굴로 있었다. 마침 나도 버스에서 내려 아이들을 만날 수 있었다. 만나자마자 친구들의 짐보따리에 관심이 먼저 같다. 친구들도 짐꾸러미에 60%의 음식(군것질 류)과 30%의 옷가지, 10%의 세면도구 등이 가득 들어 있었다.(친구들 덕분에 포식하겠다.)

드디어 조회 시간이 끝나고 관광 버스로 갈 시간이 됐다. 모두들 좋은 자리로 가기 위해 육상 선수들로 돌변했다. 어찌나 빨리 뛰던지, 그러나 우리 버스의 first class는 나와 친구들이 차지했다. 버스는 출발했다. 우리들을 부러워하는 학우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리고 마중 나온 선생님들도 보였다. 우린 마치 왕이 된 기분이었다.

버스가 시원스레 도로를 달릴 때쯤 여기저기서 폭죽 소리가 울려 퍼졌다(과자 봉지 뜯는 소리). 아이들은 너나 할 것 없이 군것질을 하고 있었다. 나 역시도てててててて. 아이들의 얼굴은 창 밖에 눈부신 햇살처럼 밝았다. 우리는 목적지에 도달할 동안 쉴새 없이 먹었다(심심해서 먹은 것이 습관화 됐다). 한강대교를 넘어 서울을 벗어나 고속도로로 진입했다. 강원도 쪽으로 점점 갈수록 풍경은 더욱 아름다웠다. CD 플레이어에서 흘러나오는 요즘 유행하는 노래 조성모의 To Heaven을 들으며 운치 있게 바깥 풍경을 감상했다. 캬!

강원도에 다다랐을 때쯤 날씨가 흐려지더니 이슬비가 내리는 것 같았다. 강원도의 명승지-경포대. 우린 경포대에 도착했다. 친구들과 경포대에 올랐다. 신사임당의 동상이 보이고 '경포대'라고 한자로 쓰인 정자 비슷한 것도 있었다. 산 속이라 풍경이 아름다웠고 공기도 좋았다. 무엇보다 신사임당의 일화가 많이 떠올랐다. 현모양처의 본보기인 신사임당의 고향 강원도, 구경거리가 많은 곳이다. 단체사진을 찍고 다시 버스에 올랐다. 숙소로 가는 도중 바다에도 들렸고 휴게소에도 들렸다. 꼬불꼬불한 산줄기를 따라 계속 올라갔다.

한참을 갔을까 숙소에 도착했다. 기쁜 마음으로 피곤한 몸을 이끌고 방문을 열었다. 그러나てててててて, 정면에 보이는 것이 변기통이 아닌가! 방문 바로 앞 맞은편이 화장실이라? 다시 말해 방과 화장실이 붙어 있었다. 거기다 화장실 문은 활짝 열려져 변기통이 웃고 있었다. 정말 너무 꺼림찍했다. 밥맛이 떨어지는 것 같았다. 그런 중에도 방과 화장실이 격리되어있는 방을 차지한 행운아들이 있었으니 우리 반 이과 아이들てててててて, 정말 부러웠다. 3박 4일 동안 깨끗한 방과 화장실을 쓸 수 있다니, 우리 화장실은 슬리퍼조차 없고 우중충했고 변기통 물 내려가는 것도 시원치 않았다. 여러 선생님들께선 말씀하셨다. "원래 좀 더럽고 지저분하고 불편한 졸업여행이 기억에 남는다". 그러나 정말 그럴까, 지금 생각해도 기분이 안 좋다.

그럭저럭 인내하며 "적응하겠지, 뭐"라는 위안으로 하룻밤을 지냈다. 첫날밤엔 아이들의 눈이 빛났다. 귀신 이야기한다고 불 다 꺼놓고 벌벌 떨었던 우리방 아이들, 졸업여행인데 뭘てててててて카드와 화투놀이의 옆방 아이들, 새벽까지 소란스러웠다. 난 카드놀이를 못했다. 한 친구에게 카드 놀이를 배웠다(알고 보니 다들 할 줄 알았던 거야. 나만 못했어). 그럭저럭 새벽이 되어서야 아이들은 잠이 들었다.

이튿날, 어수선한 방 속에서 아침의 차가운 공기와 싸우며 일어났다. 간단하게 씻고 아침을 먹으러 갔다. 다음 목적지는 설악산!!! 호된 훈련(?)이 강행됐다. 우리를 안내해 주실 산악대장님과 산을 오르게 됐다. 설악산은 높았다. 끝이 없을 것만 같았다. 가도가도 대장님은 멀었다 한다. 다리가 아팠다(극기 훈련인가 보다). 드디어 장엄하고 멋진 울산바위가 보였다. 그 밑에는 흔들바위가 있었다. 울산바위의 경치는 아름다웠다. 속이 탁 트이는 것이 10년 묵은 체증이 가시는 것 같았다. 우린 산을 내려오면서 기념품도 사고 감자전, 도토리묵 같은 맛난 음식도 먹었다.

우리는 점심 시간을 숙소에서 보내고 또다시 설악산으로 들어갔다. 다음 목적지는 비선대. 설악산에서도 유명한 비선대. 선녀가 목욕을 하다 날아갔다 하여 비선대라 한다. 날아가는 선녀의 모습てててててて, 얼마나 설악산이 아름다웠기에 선녀가 온 것일까? 산악 구조대 대원 아저씨에게 설명을 듣고 우린 비를 맞으며 산을 내려왔다.

셋째날, 우리는 어김없이 아침 일찍 일어나 밥을 챙겨 먹고 다음 목적지 통일전망대로 향했다. 그곳에서 우린 사진도 찍고 멀리 보이는 북한 땅을 관찰했다. 교관의 이야기를 들으니 약간 오싹한 기분이 들었다. 북한이 너무 가까워 보였다. 그밖에 낙산사, 의상대, 그리고 바닷가들을 거쳤다. 낙산사에 들어서자 마음이 편안해지고 기분은 숙연해졌다. 가을 햇살이 낙산사를 비춘다. 붉은 노을이 세상을 비추고 있었다. 모든 것이 아름다워 보였다.

이날의 마지막 코스-놀이동산이다. 동산이라기보다 그냥 기구 몇 개 탈 정도의 작은 공간이었다. 처음엔 재미없을 것 같았지만, 정말 재미있었다. 특히 디스코 기구를 아시는지? 빙글빙글 돌아가는 기구 속에 둘러 앉아 떨어지지 않도록 손잡이를 꼭 잡고 있어야 한다. 스릴 만점이었다. 디스코 기구를 타기 위해 아이들은 전쟁을 치루었다. 정말 스펙터클한 놀이기구였다. 너무 재미있었다. 우린 비록 힘들게(?) 놀았지만 좋은 추억을 만들었다.

이 밤의 하이라이트, 아니 3박 4일 여행 중의 하이라이트 '晩會'가 기다리고 있었다. 뽐내기 대회가 시작되기 전 사진 찍기에 바빴다. 주위는 북적댔고 다들 훙분돼 있었다. '晩會'가 시작됐다. 프로그램 진행자가 사회를 시작했다. 우린 두 손을 맞잡고 기대에 부풀었다. 여장 남자들이 선보인 '핑클'팀, 멋진 춤솜씨를 뽐냈던 중3 후배들. 섹시한 춤과 여장한 모습을 한 고2 남학생들, 정말 춤을 잘 췄다. 가을 하늘 아래, 조금은 초라한 무대, 그리고 산 속てててててて, 주위는 온통 나무들이고, 찻길엔 차도 다니지 않는 조용한 산 속에서 우리의 '晩會' 소리만이 산 속에 울려 퍼졌다. 하늘엔 맑고 예쁜 별들이 떠 있고, 바람 소리와 아이들의 환성, 그리고 선생님들의 노래자랑. 이 모든 아름다운 광경들이 과연 잊혀질까? 내 인생 중에서 이처럼 젊고 예쁜 추억은 또 없을 것이다. 친구들과 우정이 싹트고 모든 것이 아름답게 보이는 가을 이때, 나는 세상에 하나 밖에 없는 나만의 소중한 추억을 만들고 있다. 난 행복하다, 내 청춘에 이처럼 행복한 추억을 만들었으니.

마지막 여행 날, 우린 제4땅굴을 관람하러 갔다. 그곳에서 땅굴 속을 걸어 들어가 보고, 북한의 만행을 경계하는 자료 테이프도 보았다. 북한은 남한 땅을 침략하려는 목적에 땅굴을 계속 파 들어가고 있다고 한다.

우린 점심을 먹고 소양강댐을 구경하려 했지만, 날씨 탓인지 너무 늦어져서인지 소양강댐 구경은 취소됐다. 그동안 아이들은 추억을 하나라도 더 남기려고 사진을 찍고, 출출한지 간식을 먹는 아이들도 있었다.

차가 많이 막혔다. 서울로 진입했다. 다리를 넘고 있었는데 야경이 멋졌다. 지루한 시간을 보내던 중 우린 노래방 기기를 켤 수 있게 됐다. 신나는 분위기가 조성됐다. 조명도 이 분위기랑 딱 어울렸다. 이어 몇 아이들이 노래를 멋들어지게 불러댔다. 정말 재밌었다. 그러나 노래 부르는 것도 잠시, 기사 아저씨가 노래를 그만 하자고 했다. 운전에 영향을 준 듯 싶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우리들은 여러 놀이를 하며 시간을 보냈다.

밤하늘의 별들이 쏟아질 것 같았다. 나는 다시 한 번 이번 여행에서 재미있었던 일들을 떠올렸다. 소중한 시간들이었다. 예쁜 추억들을 난 잘 간직할 것이다. 난 또다시 피곤함 속에 잠이 들었다.

<편지글>

예삐에게

中 1-1 盛 賢 實

내가 이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우리 집 귀염둥이 예삐에게

매일 학교에서 공부하고 지쳐 기분이 언짢을 때, 집에 오면 날 제일로 반기는 예삐. 널 보면 힘이 나!

내가 강아지 좋아하는 거 너도 알지? 그래서 무슨 일이 있으면 우선 너에게 말하잖아! 사람들이 보면 내가 바보같이 보이겠지만, 난 그래도 강아지가 너무 좋아! 어쩌다 TV에서 강아지를 학대하는 장면을 보면 강아지가 불쌍해서 울기도 해. 그럼 네가 내 마음을 꿰뚫어 보는 듯이 나에게 와서 애교를 떨고 그랬지. 그럼 난 널 보고 힘이 나서, 다음에 내가 크면 그런 불쌍한 강아지를 꼭 구해 주어야겠다고 생각을 해!

난 네 살 때부터 쭉 강아지를 키워 봤지만 잃어버리고, 아파서 죽고 해서 그때마다 난 울고 그랬어. 그런 이유 때문에 할머니가 이젠 더 이상 강아질 키우지 못하게 하셨지. 그런데 우리 아빠도 강아질 무척 좋아하셔서 결국 작년 12월 대통령 당선일에 널 사 가지고 오셨어! 그 때 난 다짐했지, 널 꼭 건강하게 키워 늙어 더 이상 못 살 때까지 기른다고 말이야! 지금 넌 아주 건강하고 활발한 강아지야!

언제까지나 우리 식구를 기쁘게 해 주기 바래. 그럼 이만.

1999년 6월 19일

이 세상에서 널 가장 사랑하는 주인 현실이가

<독서 감상문>

<베니스의 상인>을 읽고

高 1-4 牟 德 京

낭만 희극이라 불리는 '베니스의 상인'은 아마도 셰익스피어의 전 작품 중에서 자주 공연된 작품 중 하나라 말할 수 있다. 이 책은 제목처럼 베니스의 상인들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벌어지는데, 가난한 밧사니오는 부자 상속녀 포오쇼라는 아름다운 여인에게 청혼을 하기 위해서 절친한 친구인 상인 앤토니오에게 돈을 빌리려 하는 것이 사건의 발단이다. 하지만 앤토니오의 전 재산은 사업을 위해 항해 중이어서 빌려줄 수 없게 되자 앤토니오는 친구를 위해서 하는 수 없이 유태인 샤일록에게 그의 살 1파운드를 담보로 돈을 빌린다. 또 하나의 중요한 인물 포오셔는 아버지의 유언에 따라 금, 은, 납 이 세 가지 함 중에 자신의 초상화가 들어있는 함, 즉 납의 함을 고르는 남성과 결혼을 하겠다고 맹세를 했고, 다행히 밧사니오의 현명한 판단 때문에 그와 포오셔는 결혼을 맹세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그 둘이 만나는 데 가장 큰 역할을 했던 친구 앤토니오는 배가 침몰해버렸기 때문에 파산을 하고 돈을 돌려주지 못하여 증서를 위반하자 유태인에게 심장에서 가장 가까운 곳의 살 1파운드를 떼어 줘야 하는 운명에 놓이게 되었다. 그 사실을 알게 된 밧사니오는 포오셔의 도움으로 당장 베니스로 달려가 친구를 구하려 한다. 샤일록은 밧사니오가 그에게 준 원금의 10배나 되는 돈을 거절하고 굳이 앤토니오의 살 한 덩어리를 원한다. 그리고 사건은 남편의 친구를 살려주기 위해서 포오셔와 그의 시녀는 변호사와 그의 서기로 변장을 하여 서서히 풀려가고, 법정에서 포오셔는 샤일록에게 살을 떼어가되 피는 한 방울도 흘리면 안 된다는 조건과 정확하게 1파운드만 떼어가라 하자 드디어 샤일록은 궁지에 몰리고 오히려 그의 재산마저 반은 앤토니오에게 돌아가고 모두가 행복해 하는 가운데 베니스의 상인은 거대한 막을 내린다.

이 책을 읽는 순간 나는 세익스피어라는 인물을 한층 더 존경하게 되었고 이 작품을 통하여 그의 언어의 천재성을 다시 한 번 두 눈으로 확인하게 되었다. 그가 사용한 언어에는 그야말로 시적인 느낌이 있었고 아름다움이 있었다. 그리고 잘 짜여있는 구성과 등장인물 하나하나의 성격묘사에도 뛰어났기 때문에 후세에도 그 명성을 널리 퍼트렸다.

어떤 이들은 이 작품을 읽었을 때 밧사니오를 향한 안토니오의 우정에 감동을 받게 된다. 나 역시도 마찬가지다. 그는 친구인 밧사니오를 위해서라면 전재산도 줄 수가 있었고 심지어 목숨도 아까워하지 않았다. 그가 재판을 받을 때, 곧 죽음을 당할지도 모르는 순간에서조차도 밧사니오가 자신으로 인해 죄책감을 느낄까 걱정만 했다. 그런 그의 행동이 읽는 이로 하여금 혹 그가 죽음을 당하진 않을까 불안하고 초조하게 만들었다.

이 희곡을 두 부분으로 나누어 본다면 '함 고르기'와 '인육 재판'으로 나눌 수가 있다. 우선 함 고르기를 얘기하자면 빼놓을 수 없는 사람이 바로 여주인공 포오셔이다. 극중 보여지는 그녀의 성격은 아버지와 남편에게 매우 순종적인 그야말로 옛날 시대의 여성이다. 하지만 그녀의 또 다른 면을 우리는 재판 중에 찾아낼 수가 있다. 법정에서 앤토니오를 위해 변론을 할 때에는 매우 총명하고 지성을 지닌 현대적인 여성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녀는 바로 지금 우리 모두가 윈하는 그런 여성이다. 순종적이며 순수하지만 총명하고 당당하고 자신의 의지와 개성은 잃지 않는 두 가지 얼굴을 가지고 있는 여성이다. 아니, 남성도 마찬가지로 사람들에게 순종하면서도 자기의 의지대로 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그런 면에서 나는 포오셔를 존경한다. 그는 나의 이상형이자 내가 본받고 싶은 사람 중 하나이니까.

그리고 이 희곡의 핵심 내용인 인육 재판을 살펴보자. 이 희곡 속 모든 등장인물 중 가장 눈길을 끄는 사람은 선량한 앤토니오보다 악역이자 유일하게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하는 주인공-유태인 샤일록이다. 우정을 소중히 하고 친구를 위해 무엇이든 하는 앤토니오를 샤일록의 입장에서 생각한다면, 그는 샤일록에게 개라고 욕을 했고 턱수염에 침을 뱉었으며 그가 남에게 돈을 빌려주고 이자를 받는다고 한없이 비난해온, 그의 원수라고도 할 수 있다. 앤토니오 뿐만 아니라 샤일록을 미워하는 사람은 수없이 많았다. 베니스의 모든 사람들은 거의 그를 증오했으며, 그 근본적인 이유는 바로 샤일록이 유태인이라는 사실 때문이었다.

잠시 이 작품을 만들 당시의 배경을 살펴본다면 그것은 엘리자베스 여왕의 전의인 유태인이 스페인 국왕에게 매수되어 여왕을 독살하여다 발각된 시기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하여 당시 여러 작품 속엔 반유태인의 감정이 더욱 선명히 나타난다고 한다. 이 작품 역시 그런 감정을 잘 나타내고 있는데 아마도 당시 사람들은 이 희곡을 통하여 유태인에 대한 분노를 한층 더 깊이 했을 것이고, 셰익스피어 역시 그런 그들의 감정을 이해하고 창조한 것이 바로 '베니스의 상인'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샤일록, 그의 이름에는 항상 '유태인'이라는 꼬리표가 달려져 있다. 모두들 샤일록을 샤일록이 아닌 유태인 샤일록으로 바라보고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나 모두의 마음속에 유태인은 이기적이고 제멋대로이며 탐욕스럽고 교활한 모습뿐이다. 만약 샤일록이 유태인이 아니었다면 모두들 그를 그렇게 증오했을까? 단지 그가 기독교도가 아닌 이교도이기 때문에, 유태인이기 때문에 모두들 이유없이 그를 괄시했다. 자신과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그리고 그의 딸 제세커마저도 아버지가 유태인이란 것을 원망했고 결국 기독교도가 되기를 원하며 아버지 곁을 몰래 떠난다. 하지만 샤일록이 이기적이고 교활한 건 사실이다. 샤일록은 앤토니오의 살덩어리를 원했다. 그건 곧 살인이나 마찬가지인데 그는 왜 10배나 되는 돈을 거절하고 1파운드의 살을 원했을까? 그것은 샤일록이 그때까지 기독교인 사회로부터 받은 갖은 수모와 고통 때문에 인간적인 분노를 복수로 해결하려고 마음을 먹었기 때문이다. 셰익스피어도 처음 의도와는 다르게 후반부에서는 인간적인 분노를 강렬하게 표현했다. 만약 증서를 만들기 훨씬 전 그가 세상에 태어났을 때부터 그의 주변 인물들이 그를 유태인이 아닌 모두와 같은 눈으로 바라보았다면 그는 결코 혼자 고립되지 않았을 것이고 외로워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사람들이 바라보는 시선이, 그리고 혼자라는 외로움이 그를 처음부터 빗나가게 했고 그를 더욱 악하게 만들었다. 어쨌든 극중의 그는 이미 잔인해져 있었다. 모두를 자신을 미워하는 상황 속에서 그에게 생존이란 모두가 함부로 하지 못하게 힘, 권력을 키우는 것, 그것이 잘못된 판단일지라도 살기 위해서 실속을 챙기는 것이 가장 빠른 길이라고 샤일록은 생각했던 것이다. 현재 사회에서도 누군가 재력이 있으면 곧 권력이 있는 것이고 아무도 그들에게 함부로 대하진 않을 것이다. 희곡 속의 샤일록은 결국 씁쓸한 최후를 맞이했지만 지금 이 사회는 오히려 그런 사람에게는 영원한 행복을 남겨 준다는 점이 나를 안타깝게 했다.

인간 차별, 그것은 아무리 노력을 해도 쉽게 뿌리 뽑을 수 없는 문제이다. 어쩌면 그건 인류가 존재하는 한 영원히 함께 할 문제이다. 그리고 그 차별의 대상이 옛날엔 다른 민족이나 피부색이 다르다는 것이 이유였는데, 요즘은 아주 작은 것에도 쉽게 남을 학대하곤 한다. 그 예는 요즘 사회에서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최근 동료를 따돌리거나 폭력을 행하는 경우가 많다. 대개 자신보다 못난 사람 아니면 부러운 사람, 즉 자신들과는 다른 사람을 따돌리는 경우가 많다. 색안경을 끼고 그들을 바라보기 때문에 그들이 우리와 달라 보이는 건 아닐까? 우리가 애당초 그들에게 아무런 꼬리표도 달아주지 않고 그들을 한결같은 시선으로 바라본다면 아마 샤일록과 같은 비극은 다시는 되풀이 되진 않을 것이고 나아가 서로 피부색이나 민족의 피가 다르다며 다른 민족을 조롱할 일도 없을 것이다. 민족 차별이 세계를 동요하게 하며 전쟁으로까지 발전하는 요즘에 한결같이 남들을 바라보는 것, 그것은 우리 모두가 배워야 하고 실천해야 하는 숙제이다. 비록 다소 힘들더라도 서로가 서로를 자신과 같다고 생각하고 대한다면 비극은 순식간에 사라질 것이다. 그리고 새상은 한층 더 평온해 질 것이다. 모든 사람을 평등하게 대하는 것, 그것이 내가 '베니스의 상인'을 읽으면서 가장 크게 배운 것이다.







<소나기>를 읽고

中 3-3 陳 玉 珠

이 소나기라는 소설은 소년과 소녀가 서로 좋아하는 애뜻한 사랑이 담긴 이야기이다.

어느 날, 피부도 하얗고 예쁜 소녀가 서울에서 농촌으로 이사를 오게 되었다. 그런데 그 농촌에 사는 주인공 소년은 그 소녀를 보자 좋아하게 되었다. 소년과 소녀는 개울가에서 자주 만나게 되었고, 차차 이야기도 나누었다. 하루는 소년과 소녀가 산에 올라갔는데 그때 마침 소나기가 내리는 바람에 소녀는 그 비를 맞고 앓게 되었다. 그 이후로는 소년과 소녀는 자주 만나지 못하게 되었지만, 그 둘은 서로 좋아하게 되었다. 그러나 소녀는 병이 깊어 곧 죽고 만다.

만약에 소년이랑 소녀가 산에 올라갔을 때, 소나기가 안 내렸다면 소녀는 아프지도, 죽지도 않았을 것이고, 또 안 죽었더라면 소년과 소녀는 개울에서 물장난도 치고 산에 올라가 재미있게 놀면서 하루하루를 보냈을 텐데てててててて.

내가 감동 있게 읽은 부분은, 소녀가 죽을 때 소년이랑 함께 했던 시간에 입었던 옷을 같이 묻어달라고 했던 부분이다. 이것은 바로 소녀가 소년을 좋아하고, 기억하고 싶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소나기를 읽으며 아쉬웠던 점은, 소나기가 개자 서로 집으로 돌아간 뒤로 한동안 만나지 못했다는 것과, 또 소녀가 아프다는 것을 소년이 조금만이라도 더 빨리 알았더라면 소녀를 위해 기도도 해 주고, 산에 올라가 약초도 구해 다 주었을지도 모르는데 그냥 죽게 되었다는 것이다. 너무 안타까웠다. 그 소년은 소녀가 죽고 나서 많이 슬퍼했겠지てててててて.

이 소설에서 소년은 좀 답답하고 소극적인 성격인 것 같다. 그래서 소녀를 좋아하면서도 소녀에게 좀더 다가가지 못한 것 같다.

읽어보니 중국 소설만큼 재미있고 흥미로웠다. 이제부터라도 한국 소설도 많이 읽어 봐야겠다. 또 중국 소설의 감상문과 한국 소설의 그것을 쓰는 것이 약간의 차이도 있었다. 그래서 감상문을 쓰는 연습도 좀더 많이 해야겠다.







<우리들의 제안>

동물을 키우는 社團을

中 1-1 盛 賢 實

우리 학교는 나무나 앵두, 토마토, 꽃 등등 여러 가지를 키우는 社團이 있습니다. 근데 아깝게도 동물을 키우는 社團이 없습니다. 강아지는 좀 어렵고, 토끼나 병아리는 손쉽게 키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물론 키우다가 귀찮아 신경을 안 쓰게 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한 반에 몇 명 씩만 돌아가면서 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우리 집엔 강아지를 키우지만 집안 사정이 안 좋은, 예를 들어 집에 동물을 못키우는 환경(아파트)이거나 식구들 중 누가 동물을 싫어하면 못키울 것입니다. 그래서 학교에서 동물을 키우면 좋을 것 같습니다.

도서관에 대해

中 1-1 劉 于 銀

전 우리 하교 도서관이 더욱 발전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좋은 서점처럼 여러 책외에 백과사전도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먹는 걸 갖고 오는 사람을 엄격하게 막아야 합니다. 전 이 점을 학교에서 좀 고쳐 줬으면 좋겠어요! 이게 바로 제가 학교에 대해 바라는 것입니다.

머리를 기르는 건てててててて

中 1-1 張 詩 幥

제가 주장하고 싶은 것은 바로 학교에서 머리를 기르게 할 수 있도록 했으면 하는 바람으로 이 글을 썼습니다.

나는 왜 학교에서 머리카락을 일정해게 잘라야 하는지 그 이유를 잘 모르겠습니다. 나는 특히 단발머리가 별로 맘에 안듭니다. 왜냐하면 뜨겁고 더운 여름엔 머리가 자꾸 목에 대여서 더욱 답답하고 덥게 느껴집니다. 만약에 머리를 기를 수 있다면, 여름에 머리를 뒤로 묶고 다녀 훨씬 시원하고 또 곰부할 때나 운동할 때나 신경이 안 쓰일 텐데てててててて.

그리고 학교 다닐 때 머리가 길다고 공부를 못하는 것도 아니고, 불량학생이 되는 것도 아닙니다. 단발머리도 깨끗하게 보이지만 자다 일어나면 더욱 흉하게 보입니다. 만약 머리가 길면 머리가 뜨지도 않고 더욱 자연스럽고 예쁘게 보일 것입니다.

제가 쓴 내용이 정말 현실로 옮겨진다면 정말 좋겠습니다.

학교 컴퓨터

中 1-1 梁 書 銘

우리 학교는 컴퓨터가 386이라서 너무 불편합니다. 요즘은 새로 나온 윈도우 98을 씁니다. 그런데 우린 겨우 윈도우 3.1, 그래서 좀 화가 납니다. 왜냐하면 저는 윈도우 98을 사용하는 방법을 알고 싶은데 우리 학교는 윈도우 3.1밖에 안 배워서 매우 안타깝습니다.

학교가 좀 큰 마음 먹고 컴퓨터를 다 요즘 새로 나온 '펜티엄Ⅲ'로 바꾸면 좋겠습니다.


학생도 아르바이트를 합시다

中 1-1 郭 明 季

"이 시대에는 아이들이 못하는 일이 없다."

제가 아르바이트를 하고 싶은 이유 :

1. 엄마의 부담을 적게 하기 위해

- 용돈을 많이 달라고 하지 않도록 노력.

2. 지식과 상식을 늘려 나가기 위해

- 사회 생활 속에서 지켜야 할 예의를 미리 배운다.

3. 돈 버는 게 힘들다는 걸 알아야

- 그래야 돈을 많이 쓰지 않죠.

㟉허락해 주세요!










<기획 1>

한국인 교사 추천도서 설문 조사

한글 문예반

학생들의 독서 생활에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뜻으로 본교 한국인 선생님들에게 "추천 도서"를 설문 조사하였습니다. 한국 작품과 외국 작품(한국어로 번역된)을 모두 포함하여 나온 내용을 정리하여 보았습니다.

┰ 李敬子 선생님(한국어, 체육 과목)

1. 추천 도서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 김진명

<람세스> / 크리스티앙 자크

<아니 세상에 이런 일이> / 편집부

2. 가장 인상 깊은 책과 그 이유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분단된 조국의 현실에서, 남과 북의 서로 다른 정치제도 속에서도 조국의 통일을 위해 몸과 마음을 바치는 과학자들의 노력과, 현실적으로 그 가능성을 가질 수 있어 우리도 핵(核)을 가질 수 있다는 자신감과 세계 어느 민족보다도 우수한 민족이라는 자부심을 갖게 하기 때문에.

┰ 金英姬 선생님(한국어 과목)

1. 추천 도서

<이문열의 삼국지> / 나관중 지음, 이문열 평역

<어린 왕자> / 쌩 떽쥐뻬리

<데미안> / 헤르만 헤세

2. 가장 인상 깊은 책과 그 이유

<이문열의 삼국지>

문장이 너무 수려(秀麗)하여서.


┰ 李賢玉 선생님(한국어 과목)

1. 추천 도서

<어린 왕자> / 쌩 떽쥐뻬리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 미첼

<당신들의 천국> / 이청준

2. 가장 인상 깊은 책과 그 이유

<당신들의 천국>

우리 현대인들의 삶을 다시 한 번 재조명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음.

┰ 崔淑子 선생님(물리 과목)

1. 추천 도서

<빵장수 야곱>

<지상에서 첫 번째 사랑>

<손자병법>

2. 가장 인상 깊은 책과 그 이유

<빵장수 야곱>

현 시대의 각박한 사회 속에서 야곱을 통해 자신을 정화시키는, 마치 맑은 샘물 같은 책이다.

┰ 權相基 선생님(한국어 과목)

1. 추천 도서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 조세희

<노동의 새벽> / 박노해

<죄와 벌> / 도스토예프스키

2. 가장 인상 깊은 책과 그 이유

<노동의 새벽>

진짜로 우리 주변에서 늘 벌어지고 있는 우리 이웃의 삶을 솔직하게 말해준, 그래서 이웃을 더욱 따뜻하게 볼 수 있도록 우리의 마음을 밝혀 주는 시집(詩集)이다.

┰ 尹東恩 선생님(사회 과목)

1. 추천 도서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 전혜린

<예언자> / 칼린 지브란

<여자의 일생> / 모파상

2. 가장 인상 깊은 책과 그 이유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제 자신의 삶의 나래를 펴기 시작하는 중고생들이 꼭 한 번 읽고 자신의 삶을 개척해나가는 데 많은 참고가 될 수 있는 책이며, 많은 간접 경험과 아울러 따스한 인간애도 느낄 수 있는 책이다.

┰ 林宣希 선생님(한국사, 세계사 과목)

1. 추천 도서

<개선문> / 레마르크

<세계사 100 장면> / 박은봉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 / 엘봄

2. 가장 인상 깊은 책과 그 이유

<세계사 100 장면>

세계적인 여러 주요한 사건들에 대해 지식을 넓힐 수 있다.

┰ 趙智亨 선생님(영어, 컴퓨터 과목)

1. 추천 도서

<동물 농장> / 조지 오웰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 조세희

<폭풍의 언덕> / 에밀 브론테

<비명을 찾아서> / 복거일

2. 가장 인상 깊은 책과 그 이유

<폭풍의 언덕>

"언덕에 폭풍이 쳐서 그 곳에 살고 있는 사람이 모두 죽었다"라는 내용이 절대 아님. 읽다 보면 자신의 주위에 폭풍이 일어날 것 같은 환상에 젖어 그 책에 몰두하며 읽게 됨. 책이라는 것이 이렇게 재미있을 수가 있구나 하며 감탄하게 될 것임. 꼭 읽어 볼 것. 어렵지 않음.

┰ 朴英植 선생님(생물 과목)

1. 추천 도서

<노인과 바다> / 헤밍웨이

<수레바퀴 밑에서> / 헤르만 헤세

<이문열의 단편 소설 모음집> / 이문열

2. 가장 인상 깊은 책과 그 이유

<노인과 바다>

망망대해에 믿을 것이라곤 자기 자신 뿐. 여기서 고래를 잡기 위한 자기 자신과의 싸움. 고래는 상어에게 빼앗기지만 그래도 노인은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겼다.

┰ 林智宣 선생님(수학 과목)

1. 추천 도서

<수학 귀신>

<멋진 신세계>

<그리스 로마 신화>

2. 거정 인상 깊은 책과 그 이유

<수학 귀신>

학생들이 수학을 매우 싫어하는데, '수학 귀신'이란 책은 수학의 아주 기초적인 사고부터 많은 삽화와 쉬운 언어로 아이들에게 다가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중학생 정도 학생에게 권하고 싶습니다.









<기획 2>

한국과 화교 중, 고생의 의식차이 조사

시사토론반

1. 들어가며

화교의 신분으로 타국에서 생활하는 것이 그 나라 국민들이 생활하는 것보다 힘들거라는 것은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우리 시사토론반에서는 이러한 생각을 확인해보려는 시도의 일종으로 중, 고생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를 선택하였다. 어차피 4-5년 후에는 이들이 화교사회의 엄연한 일원으로서 활동할 것이기 때문이다. 화교의 신분으로서 느끼는 구체적인 어려움이나 차이점보다는 아직은 그러한 점을 덜 느끼는 학생으로서의 여러 사고방식의 차이를 조사하기로 하고, 시사토론반 회원과 지도교사가 모여 논의를 시작하였다.

설문내용으로 5개는 일반생활과 관련된 것으로 하고 나머지 5개는 학업과 관련된 것으로 설정하여 총 10개의 문항으로 정하였다. 더 많은 문항을 정하고 싶었으나 문항수가 많아지면 설문지 회수율이 떨어질 우려가 있고 또 설문을 담당해야할 우리 시사토론반 학생들의 입장에서도 처음 해보는 설문지조사라는 점을 감안해 10개 정도로 만족해야 했다.

완성된 설문지를 회원들에게 약 10-20여 장씩 배부하고 약 한 달간의 기간동안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한국학생들에 대한 설문은 주변의 중, 고등학교와 신촌, 명동 등의 시내 Fastfood점내의 중, 고생들을 대상으로 직접 1대1 조사방식을 택하였다. 이 과정에서 학생들은 타인의 의견을 묻는 과정과 자료를 수집하는 방법 그리고 거절당할 때의 대처방법 등을 스스로 터득하고 학교에서는 배울 수 없는 것들을 배울 수 있는 좋은 기회를 갖게 되었다. 한편 화교학생에 대한 의식조사는 우리 학교 고2, 3학년들을 대상으로 실시하였다.

이하에서는 설문내용의 자료들을 근거로 한국학생과 화교학생들과의 생활 및 의식차이를 비교, 분석하도록 한다.

2. 본론

1) 일상생활 비교

우선 한달 용돈이 얼마냐는 질문에 대한 아래의 통계표를 보자.

















위 표를 보면 한국학생들의 한달 용돈은 3-10만원 정도가 전체의 약 70%가량을 차지하는데 반해 화교학생들은 5-20만원이 전체의 75%이상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나 화교학생들이 훨씬 많은 용돈을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이는 한국학생들에 비해 훨씬 일찍 끝나는 화교 학생들이 상대적으로 돈을 쓸 기회가 많이 주어지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할 수 있겠다. 실제로 한국고교의 경우 대부분의 인문계 고교생들은 야간자율학습에 참여해 귀가시간이 대개 9시를 넘게 된다. 우리 학교의 경우에는 기숙사생들을 제외하고는 야간에까지 남아서 공부하는 경우는 없다.

용돈의 주된 용도를 묻는 물음에서는 한국학생들의 경우는 약 40%가량이 옷이나 신발을 구입한다고 나타났고, 우리 학생의 경우는 옷이나 신발구입, CD기 등 음향기기 구입, 패스트푸드이용, 기타 여가활동비 등 그 쓰임새가 상당히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다.

다음은 이성문제에 관한 설문으로 이성친구가 있느냐는 물음에 대해 화교학생들이 약간 높긴 했으나 약 2/3로 비슷한 비율로 이성친구가 있다고 대답하고 있다. 시대의 조류에 따라 이성교제에서도 점차 개방적인 면이 나타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겠다.

2) 학업에 대한 비교

다음으로 학생들의 학업에 관한 설문에 대한 통계이다. 우선 진학에 있어서 가장 크게 영향을 미치는 사람은 누구인지를 묻는 물음에서 양쪽모두 본인이라고 대답한 학생이 전체의 80%가 넘었다. 이는 예전과 달리 자신의 관심분야와 적성을 스스로 고려해 진학에 반영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겠고, 그 밖의 다른 사람들은 참고의 대상으로만 보고 있다는 것을 말해 준다.

그 다음 질문인 진학시 가장 먼저 고려할 것은 무엇인가에서는 '전공'이 양쪽 모두 가장 높게 나왔으나 한국학생의 경우가 '성적대로'가겠다는 비율이 화교학생보다 좀 더 높게 나타났다. 이는 대학진학난이도가 화교학생보다는 한국학생이 좀 더 높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된다. 이같은 생각은 다음 설문내용에서 보다 더 확실하게 알 수 있다. 언제 자신이 입시생이라고 느끼는가 라는 질문에서 양쪽 모두 '시험 때'가 1위로 나타났고 그 다음이 한국학생은 '과중한 공부량' 화교학생은 '진학상담 때'로 나타났다. 공부에 대한 부담감이 화교학생들보다는 한국학생들에게 훨씬 더 많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겠다.

입시관련 학원등록수는 다음과 같다.



화교학생의 70%이상이 입시관련 학원을 다니고 있지 않은 것으로 조사되었고 한국학생들은 그보다는 좀 더 많은 학생이 학원을 다니고 있었다. 이는 물론 실업계, 인문계, 예고 등을 모두 포함해서이다. 인문계 고교생들만 따로 조사한다면 이보다는 많은 수치가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마지막으로 자신이 생각하는 현재의 가장 큰 스트레스가 무엇이냐는 질문에서는 다음과 같은 결과가 나타났다.














화교학생의 경우, 성적이 45%로 나타난 반면 한국은 61.6%로 한국학생들이 좀더 성적에 의해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3. 결론

이상의 조사와 분석을 바탕으로 생각건대, 화교학생들의 진로지도와 생활지도 등에 참고해야 할 다음 몇 가지의 결론을 도출해 볼 수 있겠다.

우선 첫째, 관심분야가 다양하고 개성이 뚜렷하며 자유분방한 면이 많다는 것이다. 이는 어느 정도의 경제적 여유와 시간적 여유를 바탕으로 공부이외의 여러 예체능계통이나 문학, 연예 등 여러 곳에 관심이 많으므로 학교에서도 공부만을 강요할 것이 아니라 그 학생의 개성과 적성에 맞는 진로를 찾아 주어야 할 것이다.

둘째, 이를 위해서 학교에서는 다양한 특별활동과 커리큘럼(교육 과정)을 개발해 학생교육에 활용해야 하고 공부에 관심이 없는 학생도 이를 통해 학교생활과 단체생활에 적응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학교는 공부만을 하는 곳은 아니기 때문이다. 인성을 개발하고 특별활동을 하며 대인관계의 예절을 배우는 것이 현대의 교육제도에서는 더욱 중요하기 때문이다.

셋째, 본 설문 조사결과가 전체 한국학생과 화교학생들을 비교한다고는 볼 수 없으나 적어도 몇 가지 점에서는 위에서 보듯이 뚜렷한 차이가 드러나는 것을 쉽게 인정할 수 있으므로 이러한 현존하는 차이점을 인식하고 교육방침과 방향을 그 현실에 맞게 재설정해야 할 것이며, 교과서 상에서 배우는 간접경험이 부족한 우리 학생들에게 이를 보충해 줄 수 있는 획기적인 대안을 연구, 적용한다면 높은 대학진학률 못지 않게 대학졸업률 또한 높은 수준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라 확신한다.

현재 우리 나라 교육제도는 성적과 아울러 기타능력, 예를 들어 외국어, 컴퓨터, 사회활동 등을 입시에 적극 반영하고 있는 추세이다. 과거와 같이 공부만을 하는 상태에서는 유연한 대학생활에 잘 대처할 수 없게 된다. 여기에 맞는 우리 학교의 교육제도와 방법에 관하여는 차후에 연구, 조사하여 따로 논하기로 하고 본 보고서에서는 제외키로 한다. 끝으로 본 보고서가 우리 학교 학생들의 학교생활과 선생님들의 지도에 많은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이 간절하다.









<기획 3>

삼행시 모음

高 3-4 학생들

이 : 이렇게 뜨거운 햇빛 아래에서

혜 : 혜군이는 하루 종일 밖에서 놀다가

군 : 군고구마처럼 시커멓게 타 버렸다.

임 : 임꺽정보다 힘이 센

선 : 선희 선생님은 항상

희 : 희희거리며 웃는 세계사 선생님

손 : 손 대면 톡하고 터질 것 같은

복 : 복스럽고 귀여운 아기 꿀꿀이는

해 : 해가 질 때까지 쉬지 않고 먹었다.

유 : 유광홍은 자기 이름이

광 : 광홍이라지만 사실은

홍 : 홍이 아니라 굉! 유광굉이랍니다.

소 : 소처럼 부지런한 사람이 되기 위해

태 : 태어난 나 태창이는

창 : 창피한 일 없이 살아가겠습니다.

이 : 이뻐서 걱정이래요

현 : 현재 따라 다니는 남자도 많대요

옥 : 옥처럼 예쁜 게 어디 우리 담임 선생님 잘못인가요?

갈 : 갈증이 나실 때는

수 : 수박을 드십시오

환 : 환장하실 겁니다.

정 : 정이 많고 착해서 언제나 내 고민을 잘 들어 주던

옥 : 옥 같이 한 점 티없이 맑고 순수하기만 한 내 친구 옥명이!

명 : 명랑한 너의 웃음 소리가 오늘 따라 참으로 그립구나!

손 : 손이 통통해요

전 : 전신이 통통해요

유 : 유난히 통통해요.

차 : 차를 마시며

광 : 광야라는 글을 읽었습니다

미 : 미래의 광복을 기원하는 글이었습니다.

이 : 이 세상에 비가 한없이 내릴 때는요

수 : 수 많은 신(神)들이 웃고 있는 것이래요

진 : 진정 착하고 예쁜 천사가 이 세상에 내려 왔다고요

방 : 방문 밖에서 풍기는 맛있는 냄새

문 : 문을 살짝 열고 내다 보니

군 : 군고구마를 혼자 먹고 있는 얄미운 동생.

진 : 진실한 친구를 사귀고 싶습니다

현 : 현재가 아닌 미래를 약속하는 친구를요

려 : 여자도 좋지만 남자라면 더 좋겠지요.

김 : 김 빠지네 그려!

병 : 병 사이다를 샀더니

철 : 철뚜껑 따개가 없다니????

오 : 오락가락 마음이 흔들릴 때

락 : 락카페로 가자

실 : 실감나게 놀 수 있다.

공 : 공주병에 걸렸다

주 : 주사를 맞아도 약을 먹어도 낫지 않는다

병 : 병이 심한 것 같다.

미 : 미스 리는 노처녀입니다

용 : "용용 죽겠지" 하고 놀리면

실 : 실실 웃다가 금방 악마로 변합니다.

어 : '어머니'라는 이름으로

머 : 머슴 같이 일만 하시고

님 : 님 같은 고운 얼굴 호박꽃이 다 되었네!

고 : 고교 시절이 끝나가는구나

삼 : 삼년이란 시간이 참으로 짧구나

사 : 사랑하는 우리 반 친구들아! 훗날 다시 만나거든

반 : 반가운 얼굴로 서로 맞아주자.

한 : 한국에 있는 화교 학교에

성 : 성격 좋은 선생님들 많이 계신

화 : 화교 학교에

교 : 교장 선생님께선 늘 왠지 모를 빛을 발하십니다.

한 : 한강의 힘을 이어

성 : 성장한 우리 학교

화 : 화교의 명예와

교 : 교육의 참의미를

중 : 중요시하며

학 : 학교의 발전을 위해

교 : 교장 선생님은 오늘도 머리가 빠지십니다.














<여름 방학 특집>

문화 유적지 탐방활동 요령

한국4-H신문(99/05/15)

문화재 답사의 의미와 목적을 알고, 문화재를 조사하고 유적 유물을 찾아봄으로써 역사를 바로 알기 위해 노력한다. 아울러 우리 고장의 역사와 문화를 이해함으로써 향토에 대한 이해와 자긍심과 애향심을 높인다.

준비물

문화재 자료집, 사진기, 줄자, 필기도구, 향토의 유래에 관한 자료집, 지도, 녹음기

탐방계획과 준비활동

- 참고문헌을 통해 미리 조사할 내용들

- 현장에 가서 조사해 와야 할 내용들

- 필요한 준비물

- 현장에서의 봉사활동 계획

- 견학할 때 주의해야 할 사항들

- 나누어 맡아야 할 일 들

탐방중 조사 사항

○ 성터, 건축물, 사찰, 탑

- 명칭, 크기, 소재지, 문화재 지정번호

- 축조한 때와 시대적 배경

- 지형적 특성

- 축조한 목적과 필요성

- 관련 인물의 활동과 일화

- 당시의 생활상과 관련유물 및 유적

- 축조한 방법과 그 특징

- 교과서와의 관련

- 역사적 의의와 우리의 각오

○ 능, 묘소, 고분, 사당

- 관련 인물과 활동 및 공적

- 일화와 무용담

- 축조시대와 방법

- 출토물과 그 시대의 생활모습

- 시대적 배경과 문화

○ 유물

- 제조시대

- 만든 재료 및 제조방법 및 사용된 곳

- 그 시대의 생활모습

- 보존상태 및 보존방법

견학의 방법

○ 충분한 사전 조사를 한다.

- 출토된 조사연구물, 연구학회지, 전문잡지, 향토사 연구물, 역사적 배경 구전자료

- 조사한 내용이 많을 경우에는 개인 또는 소모품 별로 주제를 나눈다.

- 현대의 상황 즉, 유적지의 지리적 특성, 교통, 특산물, 주변환경 등에도 관심을 가지도록 한다.

○ 견학기록을 위한 기록장을 마련한다.

- 견학활동의 목적에서 벗어나지 않은 형식의 기록장 제공.

- 견학기록장은 유적의 소재지, 조사날짜, 조사자, 명칭, 역사적 배경, 외형적 배치와 특징, 부분과 전체 얼개, 인접 자연환경과의 관계 등이 기록되도록 하고 사진이나 실측 그림을 위한 공간을 둔다.

○ 과학자의 눈을 닮는다.

- 듣고 본 내용의 메모시간, 대상물의 모습, 건물의 배치도, 내용물의 구분, 산세와 물길의 방향, 새겨진 그림 하나, 돌 한 개의 모양까지도 세밀하게 조사하고, 사진촬영이나 실측 그림을 그린다.

○ 관련자료는 가능한한 많이 수집한다.

- 사진, 스케치, 관련문헌, 소개책자, 안내지도, 녹음자료 등 자료수집.

- 사진을 찍을 때에는 자료화할 수 있도록 구체적인 부분을 자세하게 촬영한다.

○ 모든 자료는 체계적으로 정리하여야 하나다.

- 사전 조사한 것을 현지에서 메모된 사실을 바탕으로 형식에 맞게 재정리, 분류하여 스크랩하거나 파일 등에 묶는다.

- 견학 기록물을 카드화하여 주제별로 보관하면 나중에 유사한 활동을 하게 될 때 훌륭한 참고자료가 된다.

견학결과 정리활동

○ 견학한 내용과 느낌을 글로 써보도록 한다.

○ 사진과 수집자료를 잘 정리하여 보관한다.

○ 견학보고회, 자료전시회 등의 시간을 가지고 전체적인 평가와 함께 활동을 정리한다.

유의사항

- 유적지에서 문화재를 대할 때에는 소중히 여기는 마음을 갖도록 한다.

- 유적지 답사라는 활동목적을 분명히 인식하도록 하여 목적에서 벗어나는 행동을 하지 않도록 한다.

- 답사활동이 있기 전에 관계문헌조사를 철저히 함으로써 역사교육에 대한 생생한 체험이 될 수 있도록 한다.

- 견학하는 과정에서 반드시 메모를 해 가면서 자세하게 보고 듣게 한다.

- 현지에서 얻을 수 있는 관련자료를 다양하게 수집하도록 한다(사진, 스케치, 안내도, 관련책자, 현지인 대상 녹음).

- 견학활동이 끝나면 모든 자료를 정리하여 발표하고 활동 전체에 대한 종합적인 반성이 이루어지도록 한다(학습면, 질서, 생활면, 조사활동면, 정리 등).











산에 오를 때 주의할 점

한국4-H신문(99/04/15)

산에서의 예절

일반 사회에서의 예절과 조금도 다를 것이 없으나, 무한한 위엄과 매력을 지닌 산이라는 대자연 속에서 언제나 겸손한 마음의 자세로 산을 찾고, 산을 아끼는 자세를 지녀야 한다.

등, 하산할 때

① 만나는 사람과 인사를 나눈다.

② 내려가는 사람이 올라오는 사람에게, 또 연상의 분에게 길을 양보한다.

③ 라디오나 녹음기를 크게 틀고 다니지 않도록 한다.

④ 다른 팀을 앞질러 가려할 때는 인사말을 하고, 또 앞지르려는 팀이 있으면 잠깐 길을 피하여 준다.

식사할 때

① 산 속의 옹달샘은 산악인의 오아시스이다. 물을 아끼고 항상 깨끗이 사용해야 한다.

② 식사나 야영 후 쓰레기를 지정된 장소에 버리거나 아니면 가지고 내려온다.

③ 계곡에 흐르는 물을 더럽히지 않도록 주의한다.

자연보호

① 휴게소나 산장 등을 이용할 때는 정숙하고, 깨끗이 하여야 한다.

② 등산로 표지나 리본은 절대로 손상시켜서는 안된다.

③ 산림을 훼손시키는 행위는 결코 용납될 수 없다.

산에서의 기상

인간의 힘으로 어떻게 해결할 수 없는 것이 바로 기상 문제이다. 또한 산중에서의 급격한 기상 변화는 불행한 사고마저 가져다주는 가장 큰 요인인 것이다.

기온

높이 올라갈수록 기온이 낮아진다. 즉, 100m 올라갈 때마다 0.65℃ 낮아진다. 가령 제주시의 기온이 30℃라 할 때 한라산(1,950m) 정상에서는 약 13℃정도 낮아진 17℃가 된다. 또한 산에서의 체감 온도는 풍속이 1m씩 빨라질 때마다 1.2-1.5℃씩 낮아지게 되므로 한라산 정상의 온도는 17℃보다 더욱 낮아질 것이다. 따라서, 여름산에서도 동사(凍死)할 위험이 있으므로 스웨터 정도는 반드시 준비해야 한다.

벼락

비도 오지 않는 맑은 날, 별안간 벼락 소리가 나며, 어떤 때는 옆으로부터 쳐오는 것이 산벼락의 특징이다.

벼락은 쇠붙이나, 큰나무와 높은 벼랑에 떨어지는 것이 통례이다. 이러한 때는 몸에서 쇠붙이를 멀리하고 움푹파진 곳으로 몸을 숨겨야 한다.

안개

안개가 차면 시야가 흐려져서 심하면 발목이 안 보일 정도가 되므로, 방향 감각은 물론 거리감마저 마비되어 조난당하기 쉽다. 이러할 때 행동하면 환상방황(Ringwanderung)이라고 해서 직선으로 움직인다고 느껴도 사실상 크게 원을 그리는 행동이 되고 만다. 이렇게 짙은 안개가 생길 때에는 행동 중지가 원칙이다.

※ 환상방황(環狀彷徨) : 산에서 안개나 폭우 또는 풍설을 만나 방향 감각을 잃고 같은 지점을 맴도는 보행운동.




갑작스런 사고시 필요한 조치 요령

한국4-H신문(99/05/01)

응급 기본 조치

응급조치란 갑작스런 사고가 생겼을 때, 급한 대로 우선 필요한 조치를 취하는 일을 말한다. 응급처치를 해야 될 환자가 생기면, 서두르지 말고 다음 순서를 따라 조치하도록 한다.

① 위험한 상태의 환자일 때는 먼저 환자의 안전을 확보한다.

② 환자의 의식이 있는지를 살펴보고 출혈 여부도 알아본다.

③ 출혈이 심하면 빨리 지혈을 시킨다.

④ 의식이 없으면 숨쉬는 데 지장이 없는 자세로 눕힌다.

⑤ 의식도 없고 숨도 쉬지 않을 때는 인공호흡을 시킨다.

⑥ 심장이 멎은 상태라면 심장 마사아지를 해 준다.

⑦ 의식이 있으면 환자를 안심시키고, 환자의 호소를 듣거나 외부의 상처를 살펴본다.

⑧ 당황하여 자기 상상대로 환자치료를 하거나 함부로 환자를 다루지 않도록 주의한다.

⑨ 독물(毒物)을 먹었을 때는 즉시 토하게 한다.

⑩ 한 사람이 응급 처치를 하는 동안 또 다른 사람은 구급차나 의사를 부른다.

환자를 운반하는 법

환자를 운반할 필요가 있을 때는 미리 어디로 어떻게 옮길 것인가를 생각하고 다음과 같이 운반한다.

① 옮기는 데는 들 것을 쓰는 게 가장 좋다.

② 운반하는 동안 환자가 악화되는 듯하면 당황하여 망설일 때가 있는데, 이때는 빨리 병원으로 옮기는 게 좋다.

③ 중환자는 꼭 눕혀서 운반해야 하지만, 가슴을 다친 환자는 앉은 자세로 운반해야 숨쉬기에 편하다.

④ 골절 환자라면 환부에 부목을 대어 고정시킨 뒤 옮겨야 한다.

⑤ 목뼈나 척추뼈가 부러져 의식을 잃은 환자는 특히 주의해서 운반해야한다. 잘못하면 치료 후에도 신경마비를 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갖추어야 할 구급용품

① 구급용품은 되도록 꼭 필요한 것만을 갖추고, 정기적으로 기구나 약품을 조사하여 사용기간이 지난 것은 어린이 손에 닿지 않도록 버리고, 언제나 누구든지 급히 쓸 수 있도록 정리해 둔다.

② 구급상자는 운반하기 편리한 것으로 한다. 약품은 볕이 들지 않고, 습기가 적은 곳에 둔다.

③ 단골 의사나 구급병원의 전화번호를 적어 두면 급할 때 당황하지 않게 된다.

④ 구급용품은 소독 가압제, 붕대, 삼각건, 타월, 탈지면, 반창고, 화상 가아제, 항생제연고, 알코올, 머어큐러크롬액, 암모니아수, 해열제, 진통제, 체온계, 핀셋, 가위 등이다.

온몸에 큰 부상을 입었을 때

이 때는 재빨리 환자가 어떤 상태인지를 살핀다. 넥타이, 단추, 허리띠 등을 풀어 주고 바로 눕힌다. 이렇게 한 뒤 다음과 같은 조치를 취한다.

① 팔다리에 부상을 입었으면 그 부분을 높여 준다.

② 몸에 오한이 나지 않게 담요로 싸 준다.

③ 출혈이 심하면 상처에 깨끗한 헝겊을 대어 묶고, 그 곳을 힘껏 눌러 지혈시킨다.

④ 머리, 가슴, 복부에 큰 부상을 입었을 때는 환자를 움직이지 말고, 급히 병원으로 옮길 방법을 취한다.

⑤ 관절 근처를 크게 다쳤으면 부목(副木)을 대고 붕대로 묶어야 한다.

⑥ 의식이 있고 메스꺼워하지 않으면, 더운 소금물(물1컵에 차 숟가락으로 하나)을 15분마다 한 컵씩 먹인다.

⑦ 어떤 부상이든 6시간 이내에 의사의 진찰을 받게 한다.

⑧ 옮길 때는 부상에 타격이 안 가도록 주의하고, 상처를 우선 치료해야 될 경우는 세균이 침입하지 않도록 주의한다.

출혈이 심할 때

심한 출혈이 있는 환자는 치료보다 먼저 지혈을 해 줘야 한다. 사람은 500cc의 피를 흘리게 되면, 가벼운 쇼크가 일어나며, 1,000cc이상 피를 흘리면 생명이 위험하게 된다.

내출혈(內出血:몸 안에서 피를 흘리는 것)일 때는 안색이 창백해지고 식은땀이 흐르는데, 그대로 놔두면 죽기 쉽다. 이 때는 급히 수술을 해야 될 경우가 많으므로, 병원으로 옮기는 것이 상책이다.

머리를 세게 다쳤을 때

안색의 변화를 주의해서 본다. 의식을 잃은 시간이 길고 맥박이 약해지면 위험하므로 의사와 구급차를 부른다.

숨을 잘 쉬지 못하면 입속을 깨끗하게 닦아주고, 숨이 멎을 경우는 인공호흡을 시킨다.






<과학 이야기>

식물 없이 살 수 있을까?

한국4-H신문(99/06/15)

식물은 모두 녹색이고 또 모두 잎을 가지고 있나?

어느 공원이나 정원을 둘러보더라도 사람들이 식물의 표본이라고 생각하는 녹색의 잎을 가진 생물들이 둘러싸고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머리 위의 수목들과 밀집한 생울타리를 이루고 있는 관목들은 분명히 식물이다. 장미와 백이초, 전륜화 등 화단에서 가지런히 자라는 꽃들과 잔디도 식물이다. 아마도 그늘진 구석에 이끼가 무리를 지어 자라거나 양치류가 작은 덤불을 이루고 있을 것이다. 이들도 식물이다.

그러나 풀밭을 뚫고 올라오는 유령처럼 하얀색의 잎사귀도 없는 버섯은 어떤가? 버섯은 다른 유형의 식물인 균류다. 바위의 표면에도 페인트의 얼룩처럼 보이는 여러 가지 색깔의 외피모양의 반점들이 있을 것이다. 이는 암석에 붙어사는 지의류다. 잎사귀와 줄기, 뿌리가 없지만 지의류도 식물이다. 나무줄기에 있는 녹색의 작은 반점도 미세한 단세포 조류(藻類)로서 식물의 일종이다. 숲 속과 늪지대 혹은 대부분의 다른 식물의 서식처를 유심히 관찰하면 우리가 식물이라고 부르는, 색깔과 형태 그리고 크기가 다양한 유사한 생물들이 살아있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식물과 동물의 차이점은 무엇인가?

식물과 동물은 민들레와 사슴처럼 서로 다르다. 양자 사이에 뚜렷이 구별되는 점도 있지만 경계선이 불분명한 경우도 있다. 예를 들어, 대부분의 동물들은 능동적으로 이동할 수 있지만 대부분의 식물들은 이동할 수 없다. 그러나, 특정한 단세포 해조류는 편모라는 채찍모양의 기관을 이용하여 헤엄을 칠 수 있다. 대부분의 식물들은 녹색소인 엽록소로 광합성작용을 하여 스스로 소비하는 양분을 생산한다. 동물들은 녹색식물들이 만든 자양분에 의존해야 한다. 그러나, 여기에도 예외는 있다. 곰팡이류와 심지어 일부 꽃을 피우는 식물들은 엽록소가 없으며 따라서, 자신이 소비하는 양분을 만들 수 없다.

동물과 달리 식물들은 신경계가 없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자극에 신속한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민감한 식물의 잎사귀들은 건드렸을 때, 재빨리 움츠린다. 나팔꽃의 촉수덩굴은 지주를 더듬으며 단시간에 물체를 휘감는다.

식물과 동물은 섬유구조도 다르다. 대부분의 식물들은 섬유소를 함유한 질긴 벽으로 세포가 둘러싸여 있지만, 이러한 섬유소는 동물에서는 발견되지 않는다. 식물과 동물은 생장방식도 다르다. 동물은 성숙기까지만 성장하는 반면 식물들은 죽을 때까지 성장을 멈추지 않는다.

식물의 종류는 몇 가지나 될까?

일부 식물들은 육지와 바다, 사막과 열대우림 그리고 심지어는 동물들의 체내에 이르기까지 지구의 거의 모든 곳에 살고 있다. 또한, 현미경으로만 볼 수 있는 단세포 박테리아나 해조류 같은 가장 작은 생물에서부터 살아 있는 모든 생물들 가운데서 가장 큰 북아메리카 서부의 미국삼나무에 이르기까지 크기도 다양하다. 과학자들은 35만종 이상의 식물이 존재하는 것으로 추정한다. 단순히 개체의 숫자만으로 볼 때 이 세계에는 식물이 동물보다 훨씬 많다. 총체적인 양의 면에서 보면 식물이 지상에 존재하는 생물의 거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인간은 식물 없이 살 수 있을까?

지구 위를 뒤덮은 식물들의 녹색 덮개가 없다면 우리가 알고 있는 동물들은 존재할 수 없었을 것이다. 가장 키가 큰 나무에서부터 바다에 표류하는 가장 작은 해조류에 이르기까지 식물들은 인간이 먹는 식품과 호흡하는 대기의 산소의 원천이기 때문이다.

녹색식물들은 태양광선을 이용하는 광합성작용을 통해 구조가 간단한 당분을 만든다. 광합성작용의 일환으로 녹색식물은 산소를 대기 속으로 방출하는데, 이 산소는 모든 동물들이 생존하는 데 필요하다. 끊임없는 순환 과정 속에서 동물들은 탄산가스를 방출하며, 이는 식물들이 광합성을 하는 데 필요하다.

식물들이 독자적으로 자양분을 생산할 수 있기 때문에 모든 동물들은 영양을 식물에 의존해야만 한다. 일부 동물들은 식물의 잎사귀와 열매 그리고, 식물의 다른 부분들을 먹는다. 그리고 다른 동물들은 이러한 초식동물들을 먹이로 삼는다.

인류는 다른 수많은 방법으로 식물들을 이용한다. 다양한 용도의 종이와 생명을 구하는 수많은 약품까지도 식물을 원료로 하여 만든다.










<세상 이야기>

서대문구 이모저모

◆ 서대문구 제일 ◆

● 서대문구에서 제일 오래된 초등학교는?

미동초등학교로 미근동 36번지에 있으며 1896년에 개교하였다.

● 서대문구에서 제일 오래된 남자 중.고등학교는?

인창중.고등학교로 충정로 2가 69번지에 있으며, 1922년에 인창의숙으로 개교하였다.

● 서대문구에서 제일 오래된 여자 중학교는?

동명여자 중학교로 천연동 31번지에 있으며, 1921년에 향상기예(向上技藝)학교로 개교하였다.

● 서대문구에서 제일 오래된 여자 고등학교는?

중앙여자고등학교로 북아현동 190-1에 있으며, 1940년에 경성가정여숙으로 개교하였다.

● 가장 오래된 대학교는?

연세대학교로 신촌동 134번지에 있으며, 1885년에 개교하였다.

● 가장 오래된 여자대학은?

이화여자대학교로 대현동 11-1에 있으며 1886년에 개교한 최초의 여성교육기관이다.

● 우리 나라 최초의 사립 초등학교는?

이화여자대학교 사범대학 부속초등학교로 1955년에 개교하였다.

● 서대문구에서 제일 오래된 경로당은?

총정로2가 115-13에 있는 경서경로당으로 1913년에 문을 열었다.

● 가장 큰 규모의 벽화는?

연희로변(홍은3동) 암벽에 길이 454.4m. 면적 1,490m에 그려진 벽화의 최고 높이는 4.64m. 평균 높이 3.1m규모로 국내 최대 규모의 벽화이다.

● 가장 높은 인공암벽은?

서대문구 창천동 인터갤러리 빌딩 벽면에 설치되어 있는 높이 37m, 폭 3m의 인공암벽으로 국내 최대이다.

● 제일 오래된 절은?

홍은동 321번지에 있는 백련사로 신라 경덕여왕 5년 746년에 건립됐다.

● 제일 오래된 기차역은?

대현동 124번지에 위치한 신촌역으로 1905년에 개통하였다.

● 가장 오래된 나무는?

홍은동 319번지 백련사에 있는 음나무로 500년 되었다.

● 주민등록 나이가 가장 많은 사람은?

홍은동 9-188에 거주하는 이만년 할머니로 111세이다. 주민등록번호는 870505-0806518이다.

● 가장 오래된 제적등본은?

편제일 - 1912년 8월 10일

호주 - 이갑봉(李甲奉)

본적 - 경기도 고양군 연희면 연희리 4-4

● 가장 많이 거주하고 있는 외국인은?

①중국인(2,184명) ②미국인(1,527명) ③일본인(404명)

● 외국인이 가장 많이 사는 동은?

①연희3동(1,254명) ②홍은3동(633명) ③대신동(624명)

● 호적인구중 가장 많은 성씨는?

김씨 성으로 168,631명이다.

● 주민등록인구가 가장 적은 동은?

대신동으로 8,393명이다.

● 주민등록인구가 가장 많은 동은?

북가좌2동으로 34,844명이다.

● 같은 번지에서 최고로 오래 거주하고 있는 사람은?

홍은3동 437번지 1호에 사는 김효진씨로 7대째 229년간 살고 있다.

● 서대문구 최고의 토박이는?

연희동 187-115에 사는 윤정석씨로 28대째 608년간 거주하고 있다.

● 최고령 토박이는?

홍은3동 205-1에 사는 김동혁씨로 1890년에 태어났다.

● 최다가족 동거 토박이는?

서대문구 현저동 103-11에 거주하는 정항구씨로 3대 가족 9명이 거주하고 있다.

● 선조의 가업을 가장 오랫동안 이어가고 있는 사람은?

홍은1동에 사는 조종수씨로 4대째 산골 광산가업을 전승하고 있다.

● 땅값(공시지가)이 가장 비싼 곳은?

대현동 56-74번지로 평당 32,667,000원이다.

● 땅값(공시지가)이 가장 싼 곳은?

홍은2동 1-45번지의 임야로 평당 14,720원이다.

● 세금을 최고 많이 납부하는 사람은?

창천동 30-1의 윤주용씨로 28,718,170원이다.

● 세금을 최고 많이 납부하는 법인은?

홍은동 201-1 스위스 그랜드 호텔을 운영하고 있는 렌사법인으로233,735,100원이다.

● 서대문구에서 가장 긴 도로는?

독립문에서 금화터널을 거쳐 양평동 경인고속도로에 이르는 연장거리 23,000m인 성산대로이다.

◆ 서대문구와 관련된 인물 ◆

● 김종서(1390-1453)

조선시대에 함길도 도절제사가 되어 육진을 개척하여 두만강으로 국경을 삼았다. 경기감영(현 적십자병원 자리)옆에 집이 있었다.

● 민영환(1861-1905)

1905년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이를 비관하여 자결한 순국 지사이다. 충정로라는 가로명을 붙일 때 시호인 충정공에서 충정을 땄다.

● 서재필(1866-1951)

독립운동가로 독립신문을 발간하였다. 독립협회를 결성하여 지금의 영천동에 있었던 문화관을 개축하여 독립회관으로 사용하였다.

● 연산군(1476-1506)

조선의 제10대왕(재위1494-1506)으로 1498년 사초(史草)를 문제삼아 신진 사류(士類)를 죽이는 최초의 사화(士禍)인 무오사화를 일으켰다. 연세대 후문쪽으로 추정되는 연희궁을 연회장으로 삼아 궁녀들과 함께 여름이면 질퍽하게 놀았다 한다.

● 이괄(1587-1624)

조선조 광해군과 인조때의 무신으로 시정의 문란을 개탄하여 이괄의 난을 일으켰다. 반군을 추격해 온 장만의 군대와 무악재에서 싸웠으나 대패했다.

● 이동인(1849-1881)

조선왕조 말기의 개화승, 1882년 한미수호조약을 체결할 때 그가 기안해 둔 초고를 기준으로 하여 조약을 체결하였다. 주로 봉원사에 기거했다고 한다.

● 이재(1680-1746)

숙종28년(1702) 알성문과에 병과로 급제했으며, 영조의 탕평책을 부정한 대표적인 인물이다. 지금의 아현고개 부근에 살았다.

● 이정암(1541-1600)

조선중기의 문신으로 1597년 정유재란 때 충청도 관찰사가 되어 이몽학의 난을 평정하는데 공을 세웠다. 현재 합동, 중림동 지역에 살았다.

● 장만(1566-1629)

조선조 중기의 문신으로 1623년 팔도 도원수로 평양에 있었을 때 부원수 이괄이 반란을 일으키자 반란군을 추격하여 무악재에서 크게 무찔러 난을 평정했다.

● 정충신(1575-1636)

조선조 중기의 무신으로 광해군 13년에 안주목사로 방어사를 겸임하였다. 1623년 이괄의 난이 일어나자 도원수 장만의 휘하에서 이괄의 군사를 서대문 밖 안산에서 크게 무찔렀다.

● 태종(1367-1422)

1404년에 송도에서 한성으로 천도하기 위해 2번씩이나 안산에 올라가 연희궁이 있는 신촌지역을 바라보며 두루 살폈다 한다.

● 하륜(1347-1416)

고려말, 조선초의 문신으로 새로운 도읍지를 정할 때 무악정도론을 주장하여 지금의 신촌동, 연희동 일대를 천거하였다.






편집자의 변

제 9호와 두 달이라는 시간을 두고 만들어 학생 작품이 많이 줄어 든 것이 아쉽습니다. 그러나 이번 호에는 다른 선생님들의 도움으로 기획내용이 포함되어 작으나마 새로운 모습을 보이게 돼 기쁩니다. 앞으로도 꾸준히 학생들에게 도움이 되는 기획물이 나왔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끝으로 도움을 주신 많은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편집자 올림


한글마당 편집을 위하여 방과 후에도 학교에 남아서 수고해 주신 선생님과 편집에 참여한 문예반 수인, 소윤, 유진, 실희, 혜정과 다른 아이들 모두 감사합니다. 앞으로 더 좋은 한글마당을 내도록 노력하겠습니다.

한글문예반






















한글 마당 10

發 行 者 : 韓國漢城華僑中學 韓語韓文敎學硏究會

總 編 輯 : 權相基

編 輯 者 : 한글문예반

編輯部員 : 唐梅娜 呂嘉媛 王昭娟 王秀仁 于德莉 劉貞希

李惠正 蔣有珍 陳實嬉 初曉艶 賀昭允

揷 畵 : 한글문예반

發行號數 : 88-2(通卷 第 10 號)

聯 絡 處 : 서울 西大門區 延禧 3 洞 89 - 1

印 刷 者 : 華星文化社

發 行 日 : 中華民國 88年 6月